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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토크】 중년에는 다르게 살자
- 중년에게 실질적인 조언을 많이 해주는 유익한 책이다. 내 나이에 걸맞은 삶의 팁들이었다. 이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은 나이가 됐다. 중천에 떴던 해가 급히 지고 있다. 이륙이 아니라 착륙을 생각해야 할 나이가 됐다. 물론 언제나처럼 열심히 살 것이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살 때가 되었다는 사실 앞에 겸허해진다. 암 검진을 받지 않아도 되는 이유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내용은 오랜 시간 고령의 암환자들을 지켜본 경험에서 나온 지극히 개인적(p. 140)인 생각이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 모두 몸 어딘가에 암세포를 품은 채 살아간다. 자신의 몸에 암세포가 있었다는 사실을 평생 모르다가 다른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는 사람도 많다. 내가 근무했던 요쿠후카이 병원의 고령 환자 중 3분의 2가 실제로 그랬다. 일반적으로 70대나 80대에 발견된 암은 중년 환자의 암세포보다 진행 속도가 현저히 느리다. 그대로 내버려 두어도 환자가 수술을 받았을 때와 비슷한 나이까지 생존하는 사례가 많다. 암은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어 대부분의 성인들은 정기적으로 암 검진을 받는다. 물론 나도 중년 환자라면 하루라도 빨리 암을 발견해 조기에 치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70대에 접어들면 빠르게 발견해서 서둘러 치료해도 큰 의미가 없다. 자신이 암이라는 사실을 모르면 적어도 4~5년간은 별다른 증상 없이 평소와 똑같이 건강을 유지하며 살 수 있다. 지병과의 공존 의식이 필요하다는 말을 기억하는가?(p. 141) 암과도 공존 의식이 필요하다. 점진을 받고 암이 발견되는 바람에 급히 수술을 받았다가 몸이 쇠약해지는 고령 환자들을 많이 보았다. 기력이 떨어져 거동이 힘들어지고 결국 다른 병에 걸려 예상치 못하게 일찍 삶을 마감하는 케이스도 있었다. 그러니 굳이 암을 찾아내려 하지 말고 ‘모르는 게 약’ 이라는 생각으로 주어진 삶을 끝까지 누리는 게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로 치부 해버릴지 모르지만 암과의 공존은 나이가 들면 한 번쯤 생각해볼 문제다. 건강검진에 집착할 필요 없다 지금까지 내가 여러 저서와 기고문에 수없이 설파하고 다닌 만큼 이미 들어본 독자들도 있겠지만, 나는 솔직히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암 검진은 물론이고 건강검진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p. 142) 마음 편하고 즐거운 것이 최고의 건강 관리법 지금까지 내가 주장한 내용을 요약해보자. 60대가 지나면 의사가 권하는 대로 무리해서 암 검사와 수술을 받지 않아도 된다. 굳이 건강검진을 받을 필요도 없다. 더 오래 살게 해준다는 보장도 없는 각종 약을 매일 꼬박꼬박 복용할 필요도 없다. 독자분들 중 몇몇은 분명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의사들은 이런 조언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프기 전에 건강검진을 꾸준히 받고 약을 잘 챙겨 먹으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게 유지하는 사람이 더 오래 산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적어도 일본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규모 임상 시험 결과는 본 적이 없다. 즉, 건강검진에서 나온 수치 대부분은 질병과 명확한 인과관계를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체중, 혈압, 혈당치, 콜레스테롤 수치를 열심히 조절한다. 그것이 건강한 삶을 위한 기(p. 152)본 상식처럼 받아들여진다. 상식처럼 알려졌지만 명확한 근거가 없는 경우도 의외로 많다. 이런 의학 상식을 무조건 믿어도 괜찮을까? 세상에는 다양한 의사가 있다. 보통은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잘 파악하고 진료한다. 하지만 연구실에 틀어박혀 몰두하느라 고령 환자를 진찰해본 임상 경험은 적은, 논문과 연구에만 정통한 의사도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특히 대학병원이 그렇다. 현재 의료계는 그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며 만들어왔다. 나는 솔직히 그런 의사들의 조언을 무조건 신뢰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전히 대학병원 교수라는 권위에 끌려 그들의 말을 믿고 따르는 고령자가 많다. 그들의 믿음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대학병원에도 분명 환자의 상태를 배려하며 그들의 말을 경청하고, 완쾌 후 삶의 질까지 신경 쓰며 진료를 보는 의사가 있을 것이다. 결국 의사와 치료법은 환자 스스로가 충분히 내담해 믿을 수 있다고 판단되는, 끌리는 쪽을 선택하면 된다. 다만 지금까지 내가 권한 조언(암 수술 받지 않기, 건강(p. 153)검진 받지 않기, 복용약 줄이기 등)을 따른다고 오래 산다는 보장이 없는 것처럼, 대학병원 의사들이 말하는 강수 비결에도 근거가 없기는 마찬가지라는 점은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겠다. 적어도 내가 권하는 건강 관리법은 오랜 시간 수많은 고령 환자를 지켜봐온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양쪽 모두 근거가 부족하다면 연구실에서 동물 실험과 논문에 집중했던 의대 교수보다는 현장에서 수많은 환자를 만나며 임상 경험을 쌓은 나의 주장이 더 믿고 따를 만하지 않은가? 의학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대부분의 치료법과 지식은 아직 연구 중인 최신 이론일 뿐이다. 이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생각을 조금만 바꿔보면 어떨까? 억지로 각종 수치를 조절하며 걱정하는 괴로운 건강 관리법보다 마음 편하고 즐거운 건강 관리법이 낫다. 나는 참고 억눌러도 건강과 장수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지금의 즐거움과 활력을 우선시하는 관점이 낫다고 생각한다. 강박적으로 건강을 관리하겠다는 생각은 버리자(p. 154).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인생관이나 좌우명이 있다. 젊은 시절에는 마음에 품은 생각이나 기준 덕분에 나태해진 태도를 바로잡기도 하고 갈림길 앞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 줄곧 품고 살아왔던 생각과 기준을 바꿔야 할 때가 온다. 젊은 시절에 세우고 지켜왔던 인생관이나 좌우명을 60대 이후까지 그대로 유지하려 고집하다가는 그것이 자유와 행복을 속박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좌우명이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인 사람이 있다고 치자. 젊은 시절에는 이 좌우명을 마음에 품고 열심히 일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나이가 들면 결국 일을 할 수 없는 때가 온다. 그때 그 사람은 다음과 같이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p. 174). ‘일도 하지 않고 연금만 받으며 놀고먹어도 괜찮을까?’ ‘생활이 어렵기는 하지만....연금을 제대로 납부하지 못했는데 복지 혜택을 받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지.’ 나이가 들어 체력이 떨어지고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고, 노인을 위한 일자리도 많지 않은 상황에서 젊은 시절의 좌우명을 계속 고집해 스트레스를 받고 정신적으로 힘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잠시 간략히 설명하고 지나가자면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라는 구절은 성경에서 비롯되었다. 신약 성경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에는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라는 구절이 있다. 타인에게 참견하며 나태를 부리지 말고 정직하게 일하며 나에게 주어진 의무와 책임을 다하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표현을 가져다가 성경과 다르게, 이념적으로 활용한 이가 바로 소비에트연방을 수립한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 Vadimir Lenin이다. 레닌이 가리키는 '일하지 않는 자'는 토지를 소유한 지주들이었다. (p. 175) 나이 먹고 뒤늦게 후회하는 6가지 지금까지 고령의 환자들을 만나면서 깨달은 사실이 한 가지 있다. 노년에 들어서 과거의 삶을 후회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다시 젊어질 수 있다(p. 190)면 다르게 살 것이라는 이들도 여럿 있었다. 사람들이 나이 들어 후회하는 것은 대부분 아래의 6가지로 나뉜다. 1. 좋아하는 일을 많이 하지 못했다. 2. 다양한 경험을 해보지 못했다. 3. 개성을 억누르며 남에게 맞추려고 애썼다. 4. 주변에 적극적으로 생각을 표현하지 못했다. 5. 돈 걱정만 하며 살았다. 6. 의사의 말을 과하게 믿고 따랐다. 읽다 보니 가슴 뜨끔한 부분이 있지 않은가? 위의 6가지를 후회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은 뒤집어 말하면 지금부터 반대로 살면 후회할 일이 적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6가지를 아울러 정리하면 '남의 눈치만 보지 말고 내 개성을 드러내며 원하는 대로 과감하게 사는 것' 정도가 될 것이다. 당장 마인드를 리셋하고 지금부터 후회 없는 인생을 살자. 60대부터 남은 인생은 모두 당신의 손에 달려 있다(p. 191) 6가지 후회를 남기지 않는 것이야말로 노후를 행복하게 보내는 비결이다(p. 192). 60세의 마인드셋 7계명 이 책의 서두에서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 마인드셋 7계명을 언급했다. 지금까지 나의 주장을 경청하고 공감해 준 독자 여러분이 삶의 중후반을 잘 보내고 행복한 고령자로 살아가기를 기원하며 마지막으로 60대를 위한 마인드셋 7계명을 정리하고자 한다. 1. 이기고 지는 일에 연연하지 말자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기 마련이다. 비교하다 보면 남들보다 앞서 나가(p. 204) 이기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기고 지는 것만 생각하면 살면서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타인을 인정하면 내가 지는 거라는 고지식한 가치관으로는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처음에는 당신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주변 사람들도 하나둘씩 떠나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좁은 시야에 갇혀 점점 고립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승패에만 연연하며 편협한 사고에 빠지는 일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고집을 내려놓자. 세상에 유일한 정답은 없다.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이면 점점 더 지혜로워 질 것이다. 하지만 마음가짐을 바꾸지 못하면 점점 더 어리석어질 뿐이다. 2. 해보기 전에 지레 판단하지 말자 인생은 실험의 연속이다. 나는 50세쯤에 정답을 찾기 위해 책을 읽는다는 생각을 그만두었다. 그때 부터는 세상에 다양한 답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p. 205) 다양한 답을 찾고자 더 폭넓은 독서를 시작했다. 간혹 세상만사에 정해진 답안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직접 부딪혀보기도 전에 모범답안만 찾으려고 한다. 이미 마음속으로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책을 읽는다 해도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입맛에 맞는 책만 골라 읽는다. 반대로 절대적인 정답은 없으며 실제로 해볼 때까지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세상은 끝없이 넓어질 것이다. 내가 2장에서 주장했던 내용을 기억하는가? 상속세를 100퍼센트로 높이면 고령자들의 적극적인 소비 활동이 늘어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주장 말이다. 내가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말하면 “전 세계적으로 상속세를 낮추는 추세인데 무슨 소리냐”, “어떤 경제학자의 이론에도 맞지 않는 허황된 생각이다”라는 반론이 즉각 튀어나온다. 당연히 그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과격한 주장임은 나도 인정한다. 그렇지만 실제로 해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현재 일본은 전 세계에서 고령 인구 비율이 가장(p. 206) 높은 나라다.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정책을 시행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인생은 실험하듯이 살아야 한다. 당신이 오늘 점심으로 라멘을 먹고 싶다고 하자. 항상 가던 단골집에 가면 틀림없이 맛있는 라멘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단골집 옆에는 다른 라멘집도 있다.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가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으로 보아 맛집인 모양이다. 왠지 꿀꿀하고 기분 전환이 필요한 날, 그 라멘 집에 가보는 것은 어떨까? 기대하지도 못한 색다른 인생이 펼쳐질 수도 있다. 아, 색다른 인생까지는 조금 과장되고 유난스러운 표현임은 인정한다. 아무튼 그 가게의 라멘이 맛있다면 당신이 종종 찾을 맛집이 하나 늘어난 것이다. 물론 맛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럴 때는 그저 ‘오늘 실험은 실패!’ 라며 가볍게 넘기면 된다. 이렇게 소소한 변화를 계속 시도하면 삶이 즐겁고 풍요로워진다. 일상에 작은 재미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p. 207). 실제로 해보기 전에 지레 겁먹고 판단하지 말 것. 호기심을 갖고 무엇이든 직접 경험해보자. 3. 틀에 박힌 생각에서 벗어나자 나이가 들수록 사고방식은 점점 보수적으로 변한다. 새로운 것이나 변화가 부담스럽고 어렵게 느껴져 기존의 것을 유지하려 한다. 그래서 많은 고령자들이 “이 나이에 무슨”, "나잇값 못한다는 소리나 듣지"라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새로운 일은 도전조차 하지 않는다. 당연히 지켜야 할 나름의 선을 그어놓고 바깥으로 한 발짝도 내딛으려 하지 않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이제 그만 고정관념을 내려놓자! 쇼핑몰에서 진한 빨간색 셔츠를 발견했다고 하자. 디 자인도 독특하고 예뻐서 보는 순간 당신의 마음에 쏙 들었다. 하지만 당신은 '이런 옷을 입으면 너무 눈에 띄겠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비웃음만 사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주저한다. 세상에는 하고 싶은 일을(p. 208) 바로 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사람이 정말 많다. 앞에서 말했듯이 인생은 끝없는 실험의 연속이다. 비웃음을 받을지 아닐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의 생각이 뭐가 중요한가? 당신이 입고 싶다면 일단 입으면 된다. 오히려 잘 어울리고 젊어 보인다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입고 길을 나서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는 말이다. 4장에서 살펴본 당위적 사고란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고 따르는 것을 일컫는다. 긍정적인 관점에서는 스스로를 인정하고 좋게 받아들이는 자긍심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당위적 사고방식이 당신 삶의 새로운 가능성과 변화의 문을 점점 닫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당위적 사고는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 쓰는 데에서 시작한다. 빨간색 옷을 보고 당신이 주저했던 이유도 결국 주변의 시선을 과하게 의식했기 때문이다. 나이 든 사람이 화려한 옷을 입으면 웃음거리만 될 테니 눈에 띄지 않는 수수한 옷을 입어야 한다며 뻔하고 틀에 박힌 결론을 내려버리는 것이다(p. 209) 당위적 사고와 고정관념은 당신의 행동 범위를 좁힌다. 그러니 무언가를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과감히 버리자. 타인의 눈에 내가 어떻게 비춰질지 고민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지팡이를 짚고 걷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면 점점 바깥 출입을 하지 못하게 된다. 보청기를 끼는 것이 남들 눈에 이상해 보일까 걱정하기 시작하면 여러 사람과 대화 나누는 자리 자체를 피하게 된다.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어쩔 수 없는 변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며 이것저것 새롭게 시도해봐야 한다. 그래야 남은 인생을 활기차게 즐길 수 있고, 더불어 노년에 우울증에 빠질 위험도 낮출 수 있다. 4.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 한동안 여론을 떠들썩하게 달궜던 '노후 자금 2,000만 엔'은 상당히 과장된 수치라고 생각한다. 각종 지표나 현재 상황을 보면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것처(p. 210)럼 경제가 휘청이고 위기가 찾아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니 노후 자금에 손대지 않겠다고 허리띠를 졸라매 고 절약할 필요 없다. 그보다는 돈을 쓰고 풍요를 즐기며 지금 당장 행복을 느끼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 '노후 자금은 나중을 위해 아껴두자. 5년만 더 버텼다가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가야지'라고 생각하며 절약하고 있는가? 미안한 말이지만, 5년 후에 당신이 여행을 갈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당신이 꿈꾸는 그 여행지가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고, 5년 안에 다른 일이 생겨 큰돈을 쓰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은 건강하지만 갑자기 이상이 생겨 당장 내일부터 침대에 누워 간호를 받는 처지가 될 수도 있다. 당신은 5년 후를 기약하지만 그때 몸 상태가 지금만큼 좋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이 순간을 즐겨라.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지 않으면 나중에는 즐길 수 없다. 나이가 들어서야 이 사실을 깨닫고 후회하게 된다. 젊은 시절에는 '지금 참고 노력하면 언젠가 좋은 때가 오겠지'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사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p. 211)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그런 생각은 내려놔도 된다. 그보다는 지금 즐기지 않으면 손해라고 생각하는 것이 낫다. 인생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당신이 지금 이 순간부터 즐기며 충실하게 살길 기원한다. 5. 남과 비교하지 말자 2021년에 별세한 작가 하시다 스가코는 생전에 『나답게 살다 나답게 죽고 싶다』(21세기북스, 2018) 라는 책을 펴내 화제를 모았다. 하시다 스가코는 이 책에서 자신이 어떻게 죽음을 준 비하고 있는지, 어떤 죽음을 바라는지 담담하게 밝혔다. 만약 자신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리면 안락사로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내용도 담겼다. 그녀의 말에 동의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이 주장이 알츠하이머병 환자나 그 가족들에게 상처가 되는 차별적인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알츠하이머 환자에게도 생을 끝까지 누릴 권리가 있다(p. 212) 아직 치매에 걸리지 않은 고령자가 치매 환자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마치 자신에게는 절대 벌어지지 않을 일이라는 듯, 치매 환자를 부정적이고 한심하게 보는 듯하다. 이는 고령자가 고령자를 차별하는 셈이다. 그들은 정신이 또렷하고 거동도 잘하며 암에도 걸리지 않았고 성인용 기저귀를 찰 필요도 없으니 비슷한 연배의 타인과 비교해 자신이 '승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더 지나면 그들도 언젠가는 노쇠해서 거동이 불편해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패자가 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괴로워할지도 모른다. 치매는 오래 살면 언젠가 걸리는 병이다. 나의 의지대로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빨리 걸리냐 늦게 걸리냐의 문제다. 지금 당장 치매가 아니라고 안심하며 나와 거리가 먼 이야기로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몇 년 지나면 주변 사람이 당신을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니 다음 교훈을 항상 마음에 새기자. 남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 사람은 제각각 태어나 모두 함께 나이 드는 존재가 아닌가(p. 213). 6. 답은 스스로 찾자 우리는 살면서 풍부한 인생 경험을 쌓아간다. 나이를 먹으며 실패와 성공을 수없이 반복하고 직접 피부로 느끼고 배운다. 미처 깨닫지 못했을지언정 60대쯤 되면 몸으로 경험해 단련된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 감각과 직감을 바탕으로 얻어낸 답은 옳다고 믿어도 된다. 특히 육체적, 심리적 상태에 관해서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알 것이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시끄러웠을 때 감염병 전문의들과 정부, 언론은 모두 입을 모아 외출을 자제하라고 했다. 모두가 숨죽인 채 집에 갇히고,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고독하게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렇게 집에만 틀어 박혀 있으면 신체 활동에 제한이 생기고, 사람을 만날 일이 없어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 계속 이렇게 살 수 있을지 의문이 들지 않았는가? 스스로 견딜 수 없고 힘들다고 느낀다면 밖으로 나가야 한다. 물론 전문가의 의견을 참고하고, 서로 거리를 두며 병이 전염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각종 건(p. 214)강 방침을 무비관적으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 몸은 자기가 가장 잘 알고, 스스로 가장 잘 지킬 수 있다. 생활 방식이나 건강과 관련해서는 직접 생각해서 내리는 답이 최선의 해답이다. 인생의 큰 결정들도 마찬가지다. 이혼하거나 사별하고 혼자가 된 당신에게 새로운 연인이 생겼다고 하자. 남은 평생을 함께하고 싶을 정도로 뜻이 잘 맞는다. 다시 결혼하고자 준비하며 주변에 알렸더니 자식들과 친구들은 분명 재산이 목적일 것이라며 반대한다. 이런 경우에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새로 만난 연인이 어떤 사람인지, 정말 믿고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지는 당신이 가장 잘 알 것이다. 결혼해서 생활하는 당사자는 바로 당신이다. 그러니 결론도 당신 이 마음 가는 대로 내려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무슨 일이든 타인의 생각보다 나 자신의 생각이 중요하다. 당신의 인생은 당신이 사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대신 살아주지도, 책임져주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인생의 모든 결정은 당신이 스스로 판단해서 내려야 한다(p. 215) 7.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말자 마지막으로 내가 꼭 하고 싶은 말은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말라는 것이다. 사실 이 말이 앞에서 말한 6가지 마인드셋을 아우르는 말이다. 이기고 지는 일에 집착하거나 고정관념, 당위적 사고 방식에 사로잡히는 이유도 남의 눈을 지나치게 신경 쓰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타인은 타인이고 나는 나다. 내가 원하는 대로 결정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태도부터 고쳐야 한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이 타인을 무시하고 폐를 끼쳐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범죄를 저지르거나 상해를 입히는 것은 당연히 안 된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는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들을 즐기며 살자는 것이다. 눈에 띄는 옷을 입고 싶으면 주저 말고 입자. 군데군데 하얗게 보이는 흰머리가 싫다면 과감하게 염색을 해보자. 그런 당신을 보고 어떤 이는 어울리지 않는다거나 젊어 보이려고 애를 쓴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다고 새치가(p. 216) 안 나는 것도 아닌데 자기만족이라며 비웃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으면 그만이다. 당신의 마음이 흡족하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자기만족을 자만심처럼 생각해 나쁘게 보는 사람도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자기만족은 긍정적이고 행복한 심리 상태다. 스스로 만족감을 느낄 때 분비되는 세로토닌은 기분, 행동, 신체 기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건강과 젊음을 유지하게 해준다. 감정과 애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햇살 좋은 날, 배우자와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어보자. 나잇값 운운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무시하면 그만이다. 밖으로 나가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새로운 경험을 해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당장 시작하라. 시인 가와다 준은 "황혼에 찾아온 노년의 사랑은 두려울 것이 없다"라는 문장을 남겼다. 나이가 들어도 새롭게 좋아하는 무언가가 생길 수 있다. 이는 꼴불견이거나 나잇값 못하는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축복이다. 인생의 절반쯤 왔으니 남은 절반은 원하는 대로, 후회 없이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남이 뭐라고 하든 살고 싶은(p. 217) 대로 살아야 한다. 여기, 마인드셋 7계명이 이제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이다(p.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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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회농어촌부 교역자부부수양회-새벽예배(김기중 목사)
- 총회농어촌부(부장 김상기 목사)가 주관한 농어촌교회 교역자부부수양회가 “연합하여 변화하는 농어촌교회‘(롬 12:2)란 주제로 3월 17일부터 20일까지의 일정으로 132명의 목회자 부부가 참석한 가운데 양양 더앤리조트에서 은혜롭게 진행됐다. 농어촌부장 김상기 목사가 “농어촌 목회에 수고하고 지친 목회자와 사모들이 3박 4일 짧은 일정 가운데 새 힘을 얻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 수련회를 위해 부장 김상기 목사를 비롯한 모든 임원들과 순서자들이 물심양면의 헌신을 했고 매 시간 행운권 추첨을 통해 좋은 물품을 경품으로 선물했다. 둘째 날 새벽예배는 총무 김종수 목사의 인도로 샘물교회 김외봉 목사가 기도, 한국농선협의회장 김기중 목사가 ‘연합하여 변화하는 농어촌교회 새로운 대안’이란 제목으로 “마을 목회를 해야 한다. 군림하는 자세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목사가 마을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한다. 정주목회자로서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라고 설교 후 임근석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다음은 김기중 목사의 설교 강의안 전문이다. 연합하여 변화하는 농어촌교회 새로운 대안 사)한국농어촌선교단체협의회 회장 농림축산식품부 기독선교회 담임목사 농어촌은퇴목회자 공동체 옹기종기 대표 시작하는 말 도시 목회에서는 설교를 가장 핵심적으로 생각하며 준비한다고 합니다. 우리 농어촌 목회현장의 핵심은 그 무엇보다도 ‘생활목회’입니다. 농어촌 지역사회의 초고령화와 인구감소 등 대내외적인 농어촌 환경의 큰 변화 가운데서 농어촌교회가 오늘까지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요인은 목회자 내외분들의 소명과 헌신적인 희생 때문입니다. 섬김의 생활 목회의 현장입니다. 다시 한번 농어촌교회가 새 힘을 얻고, 농어촌 지역사회에서 복음의 생명력을 더욱 힘차게 전파하기 위해서는 농어촌 목회자 자신이 신발 끈을 동여매고 무딘 연장(전도서 10장 10절)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무너진 영성을 다시 회복하고, 건강하고 행복한 농어촌 목회현장을 만들고, 영혼 구원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연합하여 변화하는 농어촌교회 자활, 자립 목회의 새로운 대안을 제안합니다. ▶정주목회입니다. 오늘도 농어촌 목회 현장에는 생명력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중장년 신앙공동체가 활발하게 형성되며, 다양한 지역 교회들이 각자의 목회 특성에 따라 세워지고 있습니다. 이들 교회는 교단을 초월하여 농어촌 지역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 핵심 원인을 살펴보면, 첫째 목회자 내외분들이 사명을 갖고 정주목회를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농어촌교회 자활, 자립이라는 문제를 경제적인 요소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정주목회 현장에서 보면 경제문제는 우선순위에 다음 문제입니다. 따라서 정주목회는 목회자 스스로 빈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주목회는 현시대의 중심적 가치관인 물질주의적 가치관을 지양합니다. 많은 목회자가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리려고 합니다. 이것이 곧 목회의 성공 여부를 무언중에 암시합니다. 오늘날 목회 현장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와 우리들의 사회 생태학적 문제 또한 대다수 물질에서 기인하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 (막10:17-27) 하신 말씀을 놓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정주목회는 예수님의 "나를 따르라"는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는 물질적 어려움보다 농어촌 목회 그 자체에서 기쁨과 감사를 발견하며, 끊임없는 섬김을 통해 지역사회에 녹아들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생활 목회의 현장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정주목회는 생명 농어업을 통하여 땅(자연)과 사람을 살리는 생명목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농어촌 목회현장에는 지금 땅이 죽어가고 있으며 사람 또한 화학비료, 농약, 제초제로 말미암아 각종 질병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농어촌 생태계가 죽어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죽어가는 땅을 살리는데, 생태학적으로 최소한 5년 내외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정거장 목회 현실로는 땅을 살리고 땅과 하나 되는 목회를 할 수 없습니다. 농심을 살리는 생명 농어업의 분명한 가치관을 갖고 실천하는 목회가 바로 정주목회입니다. 그러므로 농어촌 목회에 최우선 실천과제는 정주목회 실천에서 시작됩니다. 얼마 전부터는 시대적으로 목회 환경적으로 어쩔 수 없이 농어촌 목회를 떠나지 못하고 개념 없이 장기목회로 시간만 허비하는 목회자를 보게 됩니다. 충남 금산군 군북면 천을리전원교회는 2007년 마굿간터 가정교회로 출발했습니다. 박희환 목사는 40대의 젊은 나이에 정주목회를 시작하여, 2008년 12월 7일 첫 예배를 드린 이후 올해로 17년째를 맞이하였습니다. 천을리전원교회는 단순한 예배 공간을 넘어, 마을을 섬기고 다음 세대를 키우는 사랑의 공동체로 자리 잡았습니다. 교회는 지역 대표 작물인 깻잎 농사에 종사하는 주민들과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에게 최고의 놀이 공간이자 방과 후 마을 학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 다. 방과 후 마을 학교를 운영하며, 아이들에게 악기 교육, 기초 학습 지도, 합창 및 오케스트라 활동, 생태학교, 요리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정서적 안정과 자부심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재능기부 다드림'을 통해 성도들의 재능을 지역사회와 나누며, 독거노인과 어르신들을 위한 반찬 나눔, 가정 방문, 아동 돌봄 등 다양한 섬김 사역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 직접 반찬을 만들어 배달하며, 이를 통해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 할머니들과 예배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천을리전원교회는 매년 정기 음악회를 개최하며, 농촌과 도시의 문화적 거리를 좁히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작은 천막에서 시작된 음악회는 이제 지역 축제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정주목회는 개념 없는 장기목회를 뛰어넘어서 말씀으로 깨어있는 영성(시 119:105)으로 무장하고 목양을 하며 농어촌 지역사회의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초/중/장 단계별로 자활, 자립 목회를 지역 공동체 속에서 생활 목회로 실천하는 맞춤형 프로그램으로 내용 있는 정주목회가 되어야 합니다. ▶마을목회(우리동네 목사) 입니다. 그동안 전통적인 농어촌 목회현장에서 새로운 농어촌 목회의 대안으로 마을 목회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사)한국농어촌선교단체협의회 부설 농어촌목회연구소를 통해 2007년부터 마을 목회 공동체를 만들려고 대안을 제시해 왔고, 농어촌 목회 활동을 지원하며 농어촌 목회학교, 농어촌 목사합창단, 농어촌 사모 이야기, 농어촌 선교신문 등을 통하여 마을 목회현장에 대한 실질적인 사례 발표를 지금까지 매월 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우리 농어촌 마을 현실은 농어민 감소, 농어업의 수입 감소와 더불어 문화적 소외, 초고령화, 출산율 0% 등으로 다중적인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1960년대 70% 이상이 농어민이었으나 2018년에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4.6% 에 불과하게 되었습니다. WTO의 출범과 각국 간의 FTA 체결 등 신자유주의 세계 시장화로 농수산물 수입이 완전히 개방되면서 우리 농어업과 농어촌의 몰락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농어촌 마을마다 빈집과 휴경지는 늘어가고 있으며 농어촌 마을 1인 가구인 독거노인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현실이며, 특히 농어촌의 빈집은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농어촌 환경 속에 도시교회 목회 이상으로 농어촌 목회현장도 매우 척박해 지고 있습니다. 농어촌 마을 공동화 현상과 농어촌교회 존립 자체가 불투명하며 농어촌 목회현장이 무너지고 있는 이때 마을공동체 회복은 마을 목회 우리 동네 목사 이야기가 대안이 되었습니다. 2017년 2월 24일 마을공동체 기본법이 국회에서 발의되었습니다. 마을공동체 기본법은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지역사회 현안을 해결해 나가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마을공동체를 지원하는 법입니다. 그동안 마을 가꾸기, 생태 마을, 마을 축제, 마을환경개선사업, 마을 디자인 등 공동체 운동이 앞으로 더욱 활성화되며, 새로운 농어촌 목회의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2023년 귀농 및 귀촌 가구 통계에 따르면, 귀농 가구는 10,307가구이며, 귀촌 가구는 306,441가구입니다. 도시의 은퇴자와 청년들의 귀농, 귀촌, 귀어는 농어촌 사회에 또 다른 환경 변화 속에서 농어촌 목회현장 또한 마을 목회로 자리매 김하고 있습니다. 농어촌 목회! 우리 동네 목사가 답입니다. 목사가 교회를 맡아 설교하며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것을 사전적 의미에서 목회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우리 동네 목사는 목회 활동에 있어서 시간 공간을 뛰어넘어 사역해야 합니다. 오늘의 농어촌 목회 환경이 교회 공동체 밖으로 목회자를 부르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마을공동체 주민들에 대한 '생활심방'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교회 울타리 안에서 우리 목회자들을 마을 속으로 오늘 시대가 부르고 있습니 다. 공허한 농어촌 마을 속에 준비된 목회자들에게 지금까지 농어촌교회를 맡기신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농어촌 목회현장에 마을이 살아나야 농어촌교회도 활력을 되찾습니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세상으로부터 구별하여 택함을 받은 신앙공동체인 동시에 '세상을 향하여 파송된 삶의 공동체'의 정체성을 갖고 있습니다. 앞서 농어촌교회의 정통적인 의미의 목회만 답습하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오늘의 농어촌교회는 존폐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거의 모든 지역에 농어촌교회는 이미 ‘초고령 교회’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농어촌 자립 대상 교회 구성원들이 초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된 리단위의 농어 촌교회들을 현재 연로하신 교우들이 돌아가시거나 더 이상 농어촌 마을에 살아 가실 수 없을 만큼 건강이 악화됨으로 요양시설에 입소하시게 되므로 점차 교회의 문을 닫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향후 농어촌교회의 지속적인 존립을 위해서는 목회적 발상의 대전환이 필수적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정주목회가 되어야 합니다. 농어촌교회가 생존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지금 다시, 즉시, 마을 주민들의 삶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우리 동네 생활 목회를 해야 합니다. 우리 동네 목사가 되어야 합니다. 경기 강화 일벗교회 서정훈 목사는 마을 목회에 모범적인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감리교 농도생협을 하던 중 고향으로 2001년 돌아와 평생 농사짓던 아버님의 가업을 물려받았습니다. 친환경 쌀재배를 시작하여 지역주민들과 마을 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농촌 사회적 기업인 콩세알을 운영하여 마을 주민들이 생산하는 콩으로 두부, 유부, 콩나물 등을 지역 학교 급식으로 공급하였으며, 지금은 한살림과 인천 지역 등지에 공급하며 20명이 넘는 마을 주민들과 생업을 함께 하는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목회자가 준비하고 중심이 되어서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일벗 교회는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생명 살리는 일을 함께 하는 벗이 모이는 교회를 개척하여 서정훈 목사님을 담임으로 요청하여 2018년 시작 되어 지금은 30명이 모이고 있습니다. 서정훈 목사는 자연과 이웃, 땅과 벗하며 공동체적으로 살아가는 생명 살림의 마을을 만들어 가는 마을 목회, 생명 목회를 하는 우리 동네 목사입니다. 또한, 한국농선회 경기남 농어촌 목회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동네 마을 목회를 실천하는 데 가장 우선적으로 동네 주민들과 교회와 목회자가 소통과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전국의 수많은 농어촌 지역을 순회하며 현장에서 매번 확인하고 답을 찾는 핵심은 소통과 신뢰입니다. 우리 동네 목사님! 호칭 속에는 소통과 신뢰가 모두 담겨져 있습니다. 농어촌 지역의 교회가 마을 주민들과 소통하는 ‘마을의 교회’가 되고 농어촌교회의 목회자가 교회에 머무르지 않게 ‘마을의 목회자’가 될 것인가? 이것은 지속적인 마을 주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입니다. 마을의 역사와 특성을 공부하고 주민들의 희로애락을 주민들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고 함께하는 노력이 필수입니다. 또한, 마을공동체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며, 필요를 파악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시 교회(공교회 정신회복) 및 단체들과 네트워킹을 통하여 마을 주민들에게 대안을 제시하며 농어촌교회와 목회자의 역량을 통하여 신뢰를 얻는 활동이 필요합니다. 농어촌 지역 공동체 운동에 있어서 목회자의 역할이 중요함을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마을공동체 사역의 초기 단계에는 목회자의 역할이 결정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마을공동체가 성장해 감에 따라 목회자의 역량을 축소해 가며 새로운 리더십으로 바뀌어 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농어촌교회와 목회자가 할 수 있는 대로 동네 주민들과 마을 교회로 마을 목회자로 소통하는 노력을 진심으로 다 할 때 우리 동네 목회자로 신뢰를 얻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우리마을, 동네 목사로 호칭 되는 행복한 농어촌 목사가 되어야 합니다. '농어촌 목회는 소통과 신뢰가 최우선되어야 하며, 교회와 마을 주민들을 잇는 가교역할을 할 수 있다.' 더 자세한 농어촌교회와 목회자가 소통하고 신뢰를 쌓아가는 방법들을 농어촌선교신문 참고하시며, 농어촌 목회학교 등에서 각 분야 전문가분들을 통하여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마을 공동체에 맞는 프로그램 개발, 능력 있는 일꾼, 필요한 자본 등은 우리 동네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데 필요한 조건들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마을 목사로 주민들과 소통, 신뢰가 우선되어야 하므로 먼저 말씀드렸습니다. ▶농어촌 목회 은퇴 이후의 대안, '옹기종기공동체'입니다. 어느덧 동서울노회에서 농어촌선교사로 파송 받아 교회 없는 마을에 개척을 하여 농어촌 목회의 길을 43년째 접어들었고, 또한 한국농선회(1996년 3월 29 일 농림부 법인 인가)에 몸을 담고 농어촌 선교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예장합동 교회 자립개발원과 함께 농어촌교회의 새로운 모델을 연구하며, 권역별로 옹기종기와 같은 자활자립 모델을 꿈꾸며 준비하였으나, 세속적인 교단 정치와 성장 논리에 밀려 이러한 계획은 땅에 묻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날이 갈수록 농어촌교회 목회자들의 현실은 더욱 절박해져 가고 있습니다. 은퇴 후 많은 목회자들은 경제적 어려움, 예배 공동체의 부재, 그리고 은퇴 이후의 상황에서 겪게 되는 심리적 위기라는 삼중고에 직면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현실, 주일 예배드릴 장소가 없는 영적 외로움, 그리고 사역을 마치고 겪는 공허함과 우울증이 농어촌 은퇴 목회자 내외분들을 무겁게 짓눌러 왔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랜 기간 노력해 오던 중 2021년, "누구도 하지 않으려는 일을 부족한 종과 농선회가 해 보겠다"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용인의 살던 집을 처분하고, 농선회 이사분들의 지원을 받아, 충남 서천군 화양면 남성리, 금강이 유유히 흐르고 너른 들판이 펼쳐진 그곳에 '농어촌 은퇴 목회자를 위한 일터공동체 옹기종기'를 설립(2023년 3월 29일)했습니다. '옹기종기공동체'는 은퇴 목회자들이 함께 노동하며 예배하고, 행복한 은퇴 이후의 삶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입니다. 농어촌 목회의 길을 걸어온 이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새로운 사역을 만들어가는 공간, 바로 그것이 옹기종기 공동체입니다. 농어촌 목회자들이 함께 손잡고 걸어가기 위한, 그리고 한국교회가 농어촌 목회의 가치를 다시금 되새기기 위한 하나님의 일터공동체입니다. 농어촌 은퇴 목회자를 위한 옹기종기 공동체는 세 가지 중요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영적인 삶과 신앙 공동체입니다. 농어촌 은퇴 목회자들이 은퇴 이후에도 예배와 기도를 중심으로 한 영적인 삶 을 지속하며, 더욱 깊은 신앙과 내면의 평안을 누릴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단순한 거처가 아니라, 함께 찬양하고 예배드리며, 신앙의 기쁨을 나누는 살아 있는 믿음의 공동체를 꿈꿉니다. 은퇴 이후에도 언제든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배자로 살아가길 소망하는 목회자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은혜의 장소가 될 것입니다. 둘째, 경제 공동체로서의 역할입니다. 은퇴 목회자들이 최소한의 경제적 자립을 이루고, 땀 흘려 일하며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은퇴 이후에도 단순한 쉼이 아니라 일을 통한 보람과 자립을 목표로 합니다. 이를 위해 공동체 일터에서 은퇴 후 노동의 가치를 실현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며, 은퇴 후 목회자들의 일상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핵심입니다. 특히, ‘엄마의 밥상’ 프로젝트를 통해 은퇴 목회자와 사모님들의 손길로 건강 하고 안전한 반찬과 음식을 만들어 한국농선회 생협 회원, 도시민과 성도들의 가정에 공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정직한 노동을 통해 자립하는 은퇴 목회자의 삶"이라는 상징성을 가지며, 공동체의 지속성을 위한 중요한 기반이 될 것입니다. 셋째, 은퇴 후 평생 설교한 대로 살아보려는 살아 있는 공동체입니다. 은퇴 이후에도 활기찬 일상을 보내며, 함께 기쁨을 나누고, 즐거운 노후를 누릴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랍니다. 단순히 경제적 자립을 넘어, 목회자로서의 삶을 마친 후에도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살아가는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은퇴 목회자 내외분들이 평생 설교했던 대로 살아볼 수 있는 곳이 되고자 합니다. 복음을 전하며 살아온 삶을 은퇴 후에도 이어가며, 믿음과 섬김을 실천하는 공간이 되기를 꿈꿉니다. 주일마다 감동과 은혜가 있는 예배를 드리며, 함께 찬양하고 교제하며 더욱 깊은 영성과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옹기종기공동체의 중요한 가치입니다. 옹기종기공동체 현황 ▪옹기종기는 예배와 신앙 공동체를 중심으로 운영됩니다. 이를 위해 42평 규모의 예배당 겸 다목적 홀을 마련하여 은퇴 목회자들이 함께 예배 드리고, 문화 활동(취미)을 누리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단순한 예배뿐만 아니라, 문화 활동, 교육 활동, 음악회, 미술 및 취미 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됩니다. 이를 통해 은퇴 후에도 신앙과 공동체 안에서 풍성한 삶을 누리며,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지속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경제적 자립을 돕기 위해, 옹기종기는 60평 규모의 공동 작업장을 설립하였습니다. 이곳은 HACCP(해썹) 인증을 받은 식품 제조 공장과 식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은퇴 목회자들이 직접 건강한 먹거리를 만들어 판매하는 공간입니다. 농어촌 은퇴 목회자와 사모님들이 직접 김장김치, 지역 특산물, 반찬, 꽃차 등 건강한 식품을 생산하고 도시민들에게 공급하는 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은퇴 후에도 노동을 통한 보람과 경제적 안정을 동시에 이루며, 공동체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군산, 서천지역 에서 생산된 농수산물을 가공하고, 추후 전국의 농어촌교회와 협력하여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구조를 구축할 계획입니다. ▪옹기종기는 은퇴 목회자들의 삶의 질 향상과 치유를 위한 공간도 마련했습니다. 12평 규모의 게스트하우스 3동을 준비하여, 은퇴 목회자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지치고 힘든 성도들과 도시민들에게도 쉼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야외 잔디 음악당, 소나무 정자, 조각품, 수석, 나무, 꽃으로 조성된 2,000평 규모의 정원이 있어 자연 속에서 회복과 치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5,000평 규모의 적송 소나무 숲에 는 주기도문 길, 팔복 길, 맨발 힐링 공원이 조성되고 있어, 자연 속에서 기도하고 묵상하며 영적인 쉼을 얻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각 교단의 농어촌부와 여러 교회 및 선교 관련 단체들이 큰 관심을 보이며 방문하고 있습니다. 이는 옹기종기공동체가 단순한 은퇴 목회자의 쉼터가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동참해야 할 중요한 현장임을 나타내는 증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농어촌이 살아야 나라가 바로 선다." 이 믿음으로, 오직 복음으로, 오직 은혜로 한국농선회와 옹기종기는 변함없이 농어촌 선교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겠습니다. 첫발을 내디딘 옹기종기공동체가 앞으로 한국교회 은퇴 목회자들에게 모범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많은 기도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맺는말 정주목회 현장에서 마을 목회를 통하여 우리 동네 목사로 생활 목회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끝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오직 복음의 능력을 믿고 생활 목회현장 열매로 "영혼 구원"입니다. 저의 농어촌 목회와 농어촌선교단체협의회 사역의 결론 또한 영혼 구원에 있습니다. 여러분 농어촌 사역 현장에 일할 일꾼이 없고, 고령화되고, 곳간도 텅 비었고, 사명과 열정도 세월 속에 묻혀 버리므로 “아! 해도 안 되는구나!” 라는 생각과 결론에 낙담하며 다른 곳에 마음을 빼앗기고 곤고함에 계시고 있다면, 우리 다시 한번 (Reset) 복음의 능력 믿고 강당에서 무릎을 꿇고 "철 연장이 무디어졌는데도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전10:10) 하나님께 부르짖어 영혼 구원에 열매를 맺도록 영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목회자가 복음의 능력으로 회복될 때 농어촌교회가 활력을 되찾고 농어촌 마을공동체가 살아나며 농어촌 목회자들이 영적으로 깨어 하나님께서 주신 각자의 은사를 활용하며 자기 발전에 거룩한 노력과 성령의 능력 가운데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영성은 오늘의 어려운 농어촌 목회현장에 새로운 힘을 날마다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정주목회와 마을 목회현장에 생명 살림과 영혼 구원의 기쁨을 보는 믿음은 우리의 생활 목회 현장이 될 것입니다. 농어촌 목회 은퇴 후에도 100세 시대에 맞추어 옹기종기 공동체를 통하여 예배와 노동, 쉼을 누리는 목회자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묵묵히 이름도 빛도 없이 오직 농어촌 지역민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품고 희생하며 영혼 구원의 열매를 이루어 가시는 농어촌 목회자 내외분 여러분께 깊은 존경을 표하며, 저희 농선회와 옹기종기도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추천 도서 『공허한 마을을 교회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민정웅 목사/땅에쓰신글씨/1995) 『예수로 성경 읽기』 (김동일 목사/한국NCD미디어/2019) 『새로운 교회가 온다』 (앨런허쉬, 지성근 목사 역/IVP출판/2009) 『천국의 섬』 (유승준 목사/가나북스/2007) 『장기려, 그 사람』 (지유강철/홍성사/2007 『왜 기독교인은 예수를 믿지 않을까?』 (김진 목사/위즈덤로드/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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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회농어촌부 교역자부부수양회-개회예배·저녁집회
- 총회농어촌부(부장 김상기 목사)가 주관한 농어촌교회 교역자부부수양회가 “연합하여 변화하는 농어촌교회‘(롬 12:2)란 주제로 3월 17일부터 20일까지의 일정으로 132명의 목회자 부부가 참석한 가운데 양양 더앤리조트에서 은혜롭게 진행됐다. 개회예배는 서기 이철우 목사의 인도로 총무 김종수 목사가 기도 후 농어촌부장 김상기 목사가 레 6:12-13, 출 25:23-30을 본문으로 ‘불을 꺼뜨리지 말고, 염려하지 말라!’란 제목으로 “도심지 교회는 농어촌교회에 큰 빚을 졌다. 감사한 마음으로 섬기고자 하니 위로와 힘이 되시기를 바란다”라고 설교 및 당부의 말씀을 전한 후 원당교회 지창호 목사의 축도로 개회예배를 마쳤다. 첫날 저녁집회는 부장 김상기 목사의 인도로 회계 이광재 장로가 기도했다. 총회장 김종혁 목사가 삼하 22:1-20을 본문으로 ‘간증이 있는 삶’이란 제목으로 “우리 삶에 간증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 계명을 주셨는데 주님과 동행하며 행복한 여정이 되기를 바란다. 다윗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지만, 그 배후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을 경험했다. 저도 돕는 자를 달라고 기도하며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돕는 자를 부쳐 달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돕는 자를 더해 주신다. 또한 다윗은 환난 날에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것을 경험했다. 직접 대응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신다. 가만히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어려울수록 조용히 하나님을 의지하자. 그러면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신다. 다윗은 어려울 때 기도했고 하나님은 응답하셨다. 하나님의 응답을 믿고 우리도 기도하자. 우리의 고통의 현장에 하나님은 함께 하신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 바르게 신앙 생활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니. 어떤 상황이든지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라고 설교했다. 헤세드 중창단 특송 후 가산교회 박광원 목사의 축도로 첫날 일정을 마쳤다. 남은 일정은 새벽과 저녁 집회, 통일전망대, 송이밸리 자연휴양림, 주문진항 방문, 자유 시간 등으로 진행된다. 김상기 부장 환영사 사랑하는 농어촌 교회의 목회자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 인사를 드립니다. 이번 수양회의 주제는 "연합하여 변화하는 농어촌 교회"입니다. 여러분이 섬기는 각자의 사역지에서 헌신하는 동안 많은 어려움과 도전이 있으셨을 줄 압니다. 금번 수양회를 통해 주님 안에서 쉼과 위로를 얻고 새롭게 힘을 내어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을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는 고린도전서 15:58 말씀은 목회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며 씨를 뿌리는 여러분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될 줄 믿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헌신과 노고를 기억하시며, 그 수고가 헛되지 않음을 분명히 약속하십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보낼 당시 고린도 교회는 여러 도전과 갈등 속에 있었습니다. 교회 내부의 분열과 외부로부터의 핍박 속에서, 바울은 성도들이 흔들리지 않고 주님의 일을 더욱 열심히 하도록 격려했습니다. 그들이 겪는 고난과 수고가 주 안에서 결코 헛되지 않음을 확신하며, 더 큰 소망을 품고 사역하길 바란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농어촌교회의 상황도 이와 유사한줄 압니다. 각자가 처한 상황이 어떠하든 크고 작은 어려움 속에서 믿음의 씨앗을 뿌리고, 교회를 세우며, 성도들을 목양하는 일에 집중하고 계십니다. 때로는 사역의 열매가 보이지 않아 낙심할 때도 있지만, 바울의 권면처럼 주님의 일을 더 힘써 행하며, 그 수고가 결코 헛 되지 않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모든 노고를 보시고, 반드시 그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연합의 힘을 통해 농어촌 교회들이 변화되고 부흥의 길로 나아가는 큰 역사를 함께 체험하게 되길 기도합니다. 여러분과 함께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날마다 발견하며, 모든 사역에 기쁨과 은혜가 충만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귀한 수양회 준비를 위해 애써주신 농어촌부 임원들과 교육전도팀 직원들의 노고에도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수고 또한 헛되게 하지 않으실 주님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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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토크】 번역의 무거운 짐을 진 번역가들
- 외국 책을 쉽게 접하기 위해서는 번역가를 비롯한 출판사 등 여러 사람들의 수고가 필요하다. 요즘은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있어 직접 원서를 구해 읽기도 하고, 아마존 등을 통해 E book을 바로 구매해 보는 경우도 많다. 이제 AI시대를 맞아 퇴출 위기에 직면한 직업군이 번역가다. 최근 뉴스에 보니 AI를 도입한 한 회사는 외국어 번역 부서를 없앴다고 한다. 세상이 좋아지는 만큼 생계의 위협을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중에 번역가는 곧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세상 참 많이 변했다. 그리고 굳이 외국어를 배우지 않아도 AI를 통해 순식간에 외국 서적이 번역될 날도 멀지 않았다. 참 좋은 세상이 됐다(참 이 책은 절판됐는데 도서관을 통해 대출 받아 읽었다). 번역은 여자들의 부업거리? 언젠가 번역하는 사람들의 인터넷 카페에 어떤 남자분이 '번역은 여자들의 부업거리밖에 안 된다.'는 내용의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아마도 한 가정의 가장인 듯한 그는 열심히 일해도 가정을 꾸려 갈 만한 수입이 되지 않는 것을 한탄하며, 한잔하고 넋두리하듯 올린 글 같았다. 나는 그런 글을 올린 심경에 심히 공감하였는데, 뜻밖에도 다른 회원들의 득달같은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번역에 대한 모욕이며, 여자들에 대한 모욕이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 열화와 같은 비난에 한 줄이라도 그 가장의 편을 들어주고 싶었으나, 소심한, 혹은 귀차니스트인 나는 아무 댓글도 달아주지 못했다. 몇 년 전 나도 진지하게 했던 고민이다. 이게 부업이면 모를까, 번역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들구나, 번역으로 돈 벌기는 힘들겠구나. 말이 좋아 프리랜서이지 일이 없을 땐 날백수이지 않은가. 남편이란 존재가 있을 때는 몇 달 일이 들어오지 않아도 상관없었으나, 이제 어엿한 아줌마 가장으로서 아이를 키우고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 내게, ‘번역만으로 살 수 있을까’. 는 그 무렵 머릿속에 붙박혀 떠나지 않는 화두였다. 이렇게 벌어서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인형 눈알 박는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하지 않나, 종이봉투 풀칠하는 부업이 요즘도 있을까(p. 68) 길가다 ‘홀서빙 아줌마 구함’ 이라고 삐뚤삐뚤 쓴 글씨가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딸랑 두 식구의 가장인 나도 그렇게 절박했는데, 처자식을 둔 그 남자 회원의 심정은 오죽할까, 싶어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번역은 여자들의 부업거리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정말 번역은 여자들의 부업거리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밖에 안 되는' 것으로 스스로가 미리 단정짓고 하는 일은 평생 본업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직업이 번역이라면 어떡하든 열심히 해서 가족들에게 넉넉한 의식을 공급하는 가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나 또한 남편의 월급에 의존해 살 때의 작업 습관대로 책 한 권 들고 세월없이 번역하곤 했다. 한 권에 200만 원 정도 나오는 얇은 책을 두세 달씩 끌 때도 있었다. 그러면 한 달 수입이란 것은, 고졸 초봉과 비슷해진다. 배우고 싶은 것이 많은 아이는 이 학원 보내 달라, 저 학원 보내 달라, 요구사항도 많은데, 그런 수입으로는 어림도 없다. 어느 날 문득, 아, 이제 아무 데도 의지할 곳 없는데 이렇게 나태하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목표를 정하여 일을 하자, 내 능력의 한계까지 목표를 세워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달 수입은 최소한 얼마까지, 하루에 작업시간은 몇 시간, 잠은 몇 시간씩.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것은 확실히 효과적이었다. 예전보다 한 달 정도는 작업시간이 당겨졌다. 그렇다고 해서 날림작업을 하는 게 아니라, 빈둥거리며 노는 시간을 대폭 줄이고 바짝 긴장하여 작업을 하니, 완성도는(p. 69)더 높아졌다. 그러자, 비로소 부업이 아닌 본업으로서의 수입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아무도 통제하지 않고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자기자신을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에 따라 번역은 본업이 되기도 하고 부업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아직 번역 초기인 많은 분들은 이렇게 투덜거릴 것이다. 일이 있어야 하지. 맞는 말이다. 일이 있는 경우의 이야기이긴 하다. 하루에 몇 시간이 아니라 일만 있다면 밤을 새워서라도 하고 싶은데 번역 일은 빈익빈 부익부, 빈곤의 악순환, 좀처럼 들어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고고한 프리랜서이고 싶지만 내용물은 날백수인, 그런 생활을 나도 초보 시절엔 수없이 해보았다. 소심하고 소극적이며 새로운 세상에 대해 두려움이 많았던 나는, 번역 일을 시작해 놓고도 시장을 개척할 생각보다 마냥 나무의 감이 입 안에 떨어질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넓고 권남희는, 보이지도 않았다. 키가 작은 내가 높은 감나무의 감을 따기 위해 발악을 하지 않는 한, 감이 내 입에 떨어질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물론 감을 먹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다면야 그깟 감 따위, 어디로 떨어지든 상관없지만, 나는 절박했다. 일본 생활을 청산하고 들어온 애 아빠의 구직활동은 난항이었고, 한창 재롱을 떠는 아이는 세상모르고 밝기만 한데 잔고가 없는 통장은 내 목을 조이고 있었다. 그럴 때 생각했던 것이 기획이었다. 직접 일본에 가서 책을 구해와 기획서를 작성하여 출판사에(p. 70)소개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 나라에 유미리의 에세이집 《창이 있는 서점에서》가 처음 소개되었는데, 때마침 유미리가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는 바람에 출판사도 나도 서로 득을 본 작품이다. 그 이외에도 무라카미 류의 《고흐가 왜 귀를 잘랐는지 아는가》, 《오디션》, 《실낙원》의 작가 와타나베 준이치의 아포리즘, 추리소설집, 연애 에세이집 등등, 많은 작품을 스스로 기획하여 번역했다. 이제는 먹으라고 따다 주는 감만으로도 배가 부를 지경이라,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 그러나 이런 건 인터넷이 없던 시절의 이야기라, 지금은 현실성이 없을지도 모른다. 번역은 하고 싶은데 인맥도 없고, 사방이 막혀서 도무지 방법이 없다고 생각되는가. 그렇다면 일찌감치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하거나, 이판사판 목숨 걸고 뚫어 보라. 압축기, 가끔 마시마로가 모자처럼 머리에 붙이기도 하는 그 압축기로 막힌 하수도를 뚫듯이, 막혀 있는 미래를 뚫어 보라. 일본어 번역을 하는 사람이라면(어느 언어권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인터넷에서 아마존 재팬 같은 일본 사이트를 찾아, 국내에 출간되지 않은 좋은 책들을 골라 보라. 검토서를 작성해서, 출판사에 보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니, 가장 보편적인 뚫기 방법이다. 열심히 뒤져서 좋은 책을 골랐으나, 알고 보니 이미 계약된 책일 수도 있고, 시장성이 없어 출판사에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수도 있고, 혹은 채택되어도 다른 기성 번역가에게 맡길(p. 71)수도 있다. 그러나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다 해서 ‘아, 삽질했네.’ 하는 좌절은 금지다. 번역 책을 많이 내는 출판사에서는 신간 검토할 사람들을 항상 찾고 있다. 고정적으로 맡기는 사람이 있다 해도, 검토서 작성을 깔끔하게 하고, 적극적으로 자료를 찾아오고 발췌 번역이 훌륭한 사람이 나타난다면 아마 한번쯤 기회를 줄 것이다. 선임자가 친인척이 아닌 한은 말이다. 그렇게 기회가 찾아왔을 때마다 검토자 역할을 잘 해낸다면, 그 다음은 믿고 책 한 권 덜컥 맡겨주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일이 없다고 투덜대는 사람들은 아마 실력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떨어지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딴에는 완벽한 조준이라 생각하며 감나무 밑에 누워 입만 벌리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일이 없는 동안에는 차라리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부지런히 책을 읽어 국어실력을 키워라. 번역을 하는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다음 번역은 매끄러워져 있을 것이다. 이것은 내 자신에게 항상 들려주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번역을 한 권 마치고 나면, 뒤에 아무리 똥차 밀리듯 일이 밀려 있어도 반드시 국내소설 한두 권쯤 읽은 후, 다음 작업을 시작한다. 일본식 문장에 익숙해진 머리를 조금이나마 원위치 시켜놓기 위함이다(p. 72). 보르헤스의 작품 번역을 수정하면서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 중의 하나가 지금의 번역본에는 옮긴이 각주가 많이 있는데, 과연 그것이 필요한가라는 의문이었다. 어느 세계문학전집에는 "세대마다 문학의 고전은 새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말이 적혀 있다. 보르헤스가 국내에 본격적으로(p. 147) 소개된 지는 불과 10년 정도밖에 안 되었지만, 지금과 그 당시를 비교하면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다. 가령 10년 전에는 많은 작가들과 독자들이 리얼리즘 양식에 집착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또한 보르헤스에 대한 관심도 상당하고 그에 대한 연구도 많이 진척되어 있다. 하지만 아직도 독자들은 보르헤스의 작품에 담긴 서스펜스나 극적인 반전과 같은 서사양식이 아니라 그의 현학적인 지식에만 관심을 보이며 그가 파놓은 미로에 빠져버린다. 번역가 역시 그의 현학적인 지식 때문에 많은 애를 먹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한다. 보르헤스의 현학적 지식에 담긴 사상이 현대의 과학적 패러다임의 허구를 밝히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확실성에 대한 의문은 그의 작품 구조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런 것들을 염두에 두니 보르헤스의 현학적 지식을 설명하는 번역 각주가 이제는 그다지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차라리 독자들이 그런 지식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번역하는 것이 그의 작품을 보다 잘 이해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 수정본이 결정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정본이란 '화석'과 같은 죽은 존재라고 여긴다. 번역에서 결정본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런 의미에서 번역은 영원히 살아 있다. 번역할 가치가 있는 모든 것은 가능한 한 여러 번 번역되어야 한다. 번역은 변화이며 움직임이다. 더 이상 가야할 장소 없이 동일한 상태로 남아 있을 때 문학은 죽어버리기 때문이다(p.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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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토크】 어디서나 책을 읽자
- 나는 요즘 지하철에서 책을 많이 읽는다. 취재 가방에 꼭 책 한 권을 넣어 간다. 그러면 여유가 생긴다. 시간이 남을 때 지루해하지 않고 책을 읽으면 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가 불현듯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것에 관해 쓴 책이 있는지 궁금해 검색했더니 있어 대출해 읽었다. 매우 유익했다. 그런데 이미 절판됐다. 복잡한 지하철이지만 그래도 책을 읽을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도서관이고 훌륭한 저자의 사상을 접할 수 있는 만남의 현장이다.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을 잘 활용하면 엄청나게 책을 읽을 수 있다. 이래저래 내 차를 잘 안 타고 다니니 여러모로 유익하다. 자신이 출퇴근하는 시간대가 러시아워 시간이라면 지하철에 서 독서습관은 어렵다. 이때 출퇴근 시간은 죽는 시간이 되어버(p. 40)린다. 지하철 독서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는 아침에 러시아워를 피해 일찍 출근할 것을 권한다. 이른 아침의 지하철은 독서 하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다. 30분만 일찍 집을 나와도 러시아워는 피할 수 있다. 당신의 아침이 달라지면 하루가 달라지고 하루가 달라지면 인생이 달라진다. 죽어 있는 출퇴근 시간만 살려도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 덜커덩덜커덩하는 흔들림은 오히려 책 읽기 좋은 진동이다. 독서습관이 완성되는 날까지 당신의 최선은 아직 실행되지 않았다. 지하철 독서습관이 완성되는 날까지 작은 행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조금 더 일찍 출근하는 작은 행동은 지하철 독서습관을 들이기 가장 좋은 방법이다(p. 41). 세계적인 동기부여가 찰스 존스는 “지금부터 5년 후의 내 모습은 두 가지에 의해 결정된다. 지금 읽고 있는 책과 요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슴 뜨거워지는 꿈을 갖고 싶은가? 그럼 바로 책을 읽어라. 너무나 쉽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독서다. 왜냐하면 꿈을 찾기 위한 독서는 꾸준히 해야 하기 때문이다. 꾸준한 독 서는 마음을 열고 설레는 꿈을 찾게 한다. 지하철 독서로 독서(p. 69) 습관을 기르면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날이 올 것이다. 단순히 ‘무엇이 되고 싶다’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독서이다. 나의 경우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작가 아니라 독서의 힘을 알리고 많은 사람에게 좋은 변화를 불러오게 하는 작가가 되는 꿈이다. 그 꿈을 실현하는 나의 첫 책을 2017년 3월까지 초고를 완성하기로 계획했다. 그리고 새벽 5시에 일어나 독서하고 책을 쓴다. 지금 이 글도 새벽에 쓰고 있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이 많아지고 독서습관으로 성장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이것이 출판 기약도 없는 집필을 계속하게 하는 힘이다. 매년 독서의 힘을 알리는 좋은 책을 쓰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독서모임을 이어가는 작가가 될 것이다. 특히 아이들, 엄마들에게 독서의 힘을 전파하고 싶다. 난 그러기 위해 계속 책을 읽을 것이다. 누구나 성공을 꿈꾼다. 누구나 부자를 꿈꾼다. 그렇게 되려면 만나는 사람을 바꿔야 한다. 지금의 나를 성공한 사람이 만나 주지 않아도 괜찮다. 당신이 그의 책을 읽으면 된다. 오히려 직접 만나는 것보다 책을 통해 저자와 가까이서 만나고 대화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통해 이지성, 하우석, 김송호,(p. 70)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그리고 고인이 된 사람들까지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철학자 데카르트도 "좋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지난 몇 세기에 걸쳐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성공한 사람들을 만남으로써 생각이 달라지고 인생이 달라진다. 하우석의 〈5년 후〉에서 오로지 공부만 해온 카이스트 학생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최근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수재들만 들어갈 수 있다는 카이스트에서 잇달아 학생들이 자살한 사건이 우리 사회를 깊은 충격에 빠뜨린 적이 있다. 그즈음 나는 카이스트 학생 몇몇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때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이 다음과 같은 말을 털어놓았다.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여태까지 정말 공부만 해왔거든요. 믿지 않으시겠지만, 저는 공부에 소질이 있어 공부를 했을 뿐이지, 뚜렷한 목적을 품고 공부를 한 게 아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1등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선행학습을 하게 되었고 명문 중학교를 거쳐 과학고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선 오로지 '카이스트, 서울대, 포스텍'만 생각하게 됩니다. 선생님도, 학생도 모두 그래요. 어쩌면 '당연하게(p. 71)도 저는 카이스트에 입학했습니다. 또 그곳에서 오직 공부만 했습니다. 석사를 목표로, 또 그 후엔 박사를 목표로, 드디어 박사과 정이 끝나갑니다. 그런데 정말 저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현실은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남은 인생 동안 무엇을 하고 싶은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선배들처럼, 친구들처럼 그냥 연구원의 길을 따라가야 하는 건지..., 아니면 새로운 삶에 도전해야 하는 건지...., 연구원으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그런데 그게 과연 제가 원하는 삶일까? 하는 질문에 저는 그렇다는 대답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길에 대한, 새로운 삶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정보도 없고요. 그래서 고민입니다. 후후 그냥 막연한 고민이죠.” 최고의 수재들이었지만, 공부보다 우선해야 할 자신의 인생 설계에는 너무나 취약했다. 어느 순간부터 공부가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는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하지 말고 내 꿈을 위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달리는 우리의 삶은 기업처럼 주도면밀하게 자신의 인생계획을 짜야 한다. 평범한 주부도, 은퇴를 앞두고 있는 직장인도, 중고등학생도 모두 자기 책임으로, 자기 주도하에 자신만의 인생계획을 수립해야 한다(p. 72). 책을 읽으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물론 책을 많이 읽었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내가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배우자가 바뀌지도, 자녀의 태도가 달라지지도 않 는다. 직장에서 일거리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집안일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달라지는 것은 바로 내 마음가짐이다. 내 마음가짐이 달라지면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그러면 배우자,(p. 75) 자녀, 직장 동료를 대하는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편안해진다. 오가는 대화도 한결 부드러워진다. 주어진 환경은 바꿀 수 없지만 내 마음은 바꿀 수 있다. 마음을 달리 먹는다는 것은 생각을 바꾼다는 것이다. 생각을 조심하라. 그것이 너의 말이 된다. 말을 조심하라. 그것이 너의 행동이 된다. 행동을 조심하라. 그것이 너의 습관이 된다. 습관을 조심하라. 그것이 너의 인격이 된다. 인격을 조심하라. 그것이 너의 운명이 된다. <마거릿 대처> 결국 운명을 바꾸는 근원은 생각이다. 생각은 씨앗이다. 씨앗은 뿌린 대로 거둔다. 자연의 섭리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빌은 “현재 우리의 모습은 과거에 우리가 했던 생각의 결과”라고 했 다. 생각은 힘이 있다. 심지어 김승호 대표는 생각은 ‘물리적인 힘’이라고 했다. 생각이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뀐다(p. 76). 한국경제신문에 소개된 〈전쟁터로 간 책들〉의 독자편지한 대목이다.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군인들은 책을 들었다. ‘무릎까지 빠지는 진창을 헤맨 이래로,...동료 병사가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는 데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던 이래로, .... 더 이상 사람이나 사물을 사랑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열여(p. 104)덟 살에 입대해 2년간 전장을 돌아다니며 지옥을 겪었다는 한 미국 해병대원의 고백이 이어진다. ‘차가운 마음과 무뎌진 정신으로 저는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잃었다고 여겼습니다’ 그는 전쟁터에서 만난 베티 스미스의 〈나를 있게 한 모든 것들〉을 읽으면서 뭔가 내부에서 꿈틀거렸다고 했다. '차갑던 마음이 다시 살 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책은 제게 웃음과 기쁨, 눈물을 가져다 줬습니다. ... 눈물이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제가 인간임을 증명해 줬으니까요.' 내가 살기 위해 적을 죽여야만 했다. 아무리 전쟁터이었지만, 처음에는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정신적인 충격이었을 것이다. 전쟁이 계속될수록 사람을 죽여도 아무런 감정이 일지 않았다. 내가 살인병기가 된 것인가? 무섭고 두려웠을 것이다. 인간의 감정을 잃어버렸을까 봐. 의문이 들었던 군인들은 전쟁터에서 책을 읽었다. 끝없는 진창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빗물 고인 참호에서 불편하게 잠을 청해야 했던 군인들의 바지 뒷주머니와 상의 주머니에는 책이 있었다. 군인들은 책을 읽으면서 ‘기쁘고 화나고 슬프고 즐거운’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여전히 인간의 감정이 존재한다는 것에 안도했을 것이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책은 수많은 군인들의 삶에 위안을 주었다(p. 105) 다구치 미키토 서원이 쓴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동네서점〉의 일부를 소개한다. 2011년 3월 11일, 진도 9.0의 대지진이 일본의 도후쿠 지방을 덮쳤다. 건물 3층에 박힌 자동차, 당장에라도 쓰러질 듯 기울어져 버린 주택, 대량 건물의 잔해들과 쓰레기... 상상을 초월하는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도시의 흔적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삶의 흔적을 찾고 있었고, 행방불명된 사람들을 찾는 소방대와 자위대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 다. 그곳에 작은 동네서점이 있었다. 서점 안에는 책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설마 혼란스러운 와중에 사람들이 전부 책을 가져간 걸까? 그곳 직원의 말에 의하면 서점을 다시 열었을 때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고 한다. '어떤 책이든 좋으니 아무튼 책을 좀 달라'며 다퉈 사 갔고, 그 후로 책이 들어오지 못해 서점이 텅 비어버렸단다. 전기며 수도, 가스도 복구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책을 필요로 했다. 갑작스러운 대지진으로 인한 불안, 앞일에 대한 걱정으로 사람들은 겁이 나고 불안한 그때 왜 책을 생각했을까? 그렇다. 책은 사람들에게 평상심을 갖게 하는 대상이다(p. 106). 2011년 3월 일본 최악의 재난인 쓰나미가 발생했다. 쓰나미는 집, 자동차, 심지어 가족까지 앗아갔다. 사람들은 많은 것을 잃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생존의 위협에 처한 사람들이 책을 사러 서점에 왔다. 그런 상황에서 왜 그들은 책을 사러 온 것일까? 그들은 책을 읽으며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을 달래고 평상심을 유지하려고 했다. 그로 인해 삶의 균형감을 얻으려고 했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 인간은 육적인 존재만이 아니라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마음이 배고플 땐 책을 읽어야 한다. 내면의 배고픔은 책으로 채워진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보낸 8년 동안 거의 매일 밤 한 시간가량 짬을 내서 책을 읽었다. 그는 "일이 정신없이 돌아가고 정보가 어지럽게 오갈 때 독서는 속도를 늦추고 균 형감을 갖게 한다. 책 읽기가 나를 더 나은 대통령으로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난 8년간 균형을 잃지 않게 해준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분초 단위로 짜인 공적 생활의 압박감과 긴장감을 그는 매일 취침 전 한 시간씩 책을 읽으며 균형감을 잃지 않고 견뎌냈다(p. 107). 〈완벽한 공부법〉을 쓴 신영준 박사는 "우리나라 성인들의 문해력 수준이 토론할 수 없는 정도라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어른들은 토론을 시작하면 싸움으로 변질하곤 한다. 토론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말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문해력은 단순히 단어와 문장을 해독하는 것을 넘어 복잡한 텍스트를 읽고 그를 해석하고 평가하는 능력을 말한다.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우리나라 성인은 좀 복잡한 문장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평가하지도 못한다는 뜻이다. 자녀와 기본적인 토론을 하려면 부모부터 독서를 통해 문해력을 키워야 한다.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은 국영수 공부하기 바빠 독서를 할 시간이 없다. 시험에 나올 인문고전을 달달 외울 뿐이다. 독서 습관이 없는 학생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책을 읽지 않는다. 주입식 교육에 길들어진 대학생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독서를 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독서를 주입식 교육으로 외워 독서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한 권을 보더라도 제대로 읽고, 충분한 토론과 비판이 이뤄지도록 하는 방식의 새로운 독서방식이 필요하다(p. 117).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은 "책은 인간이 마법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고 말했다. 책은 정말 마법의 도구이다. 헌책방에서, 서점에서, 도서관에서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보 물들이 잠자고 있다. 그 보물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당신의 멋진 인생을 위해서 계속 책을 읽어야 한다. 소크라테스도 "남의 책을 많이 읽어라. 남이 고생한 것을 가지고 쉽게 자기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현자들이 죽어가면서 남긴 것은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책이다. 그 현자들은 지금 알려진 사람일 수도 있고, 알려지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다. 우리는 그들이 오랜 시간 걸려서 깨우친 것을 그가 남긴 책으로 아주 간단하고 쉽게 얻을 수 있다. 책보다 더 쉽고 빠르고 간단하게 남의 것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책만큼 인생을 쉽게 바꿀 수 있는 것도 없다(p.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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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토크】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자
- 현직 일본 의사가 말기 환자의 의료행위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과연 존엄한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는 책이다. 중환자실에서 가망 없는 연명치료를 하며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모두 죽은 것은 확실한데, 이에 대한 담론이 적다. 존엄하게 죽는 법을 함께 토론하고 준비해야 한다. 대부분의 의사나 간호사들은 죽을 고비에 이른 환자에 대한 인공호흡이나 심장 마사지 등의 소생술은 의료인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확실히 건강하던 사람이 갑작스럽게 이상을 일으켰을 때, 예를 들어 심근경색 발작 같은 양성 질환으로 갑자기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는 구급소생술을 적정하게 실시하는 것으로 죽음의 문턱을 한 걸음 넘어서버린 환자의 호흡을 되돌릴 수 있다. 그리고 그 후의 치료에 따라 어느 정도 사회 복귀도 가능하다. 따라서 응급 시에 능숙하게 소생술을 실시하거나 각종 약제를 적합하게 사용할 줄 아는 것은 의사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p. 44) 능력이다. 또 상황에 따라 임사(臨死) 환자에 대한 인공호흡이나 심장 마사지 등의 소생술은 의료인으로서 당연한 의무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 나오는 환자의 경우는 과연 적절했다고 할 수 있을까. 이 환자와 같이 이미 손쓸 도리가 없는 사람에게, 그리고 본인조차 죽음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 말기 암 환자에게 시행하는 소생술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설령 이 소생술이 성공해서 환자의 목숨이 몇 시간에서 며칠 정도 연장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진단 말인가. 만약 의식이 돌아온다고 해도 환자는 의료 기계에 둘러싸여 고통으로 가득 찬 시간만 다시 맛볼 뿐이다. 그리고 다시 곧 죽음에 이를 것이다. 의식이 돌아오지 않으면 (이런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환자의 심장이 기계적으로 몇 시간 움직일 뿐이고, 그 환자는 곧 소생술을 개시하기 직전의 임사 상태로 돌아가 버린다. 임사 상태에 있을 때 시행하는 소생술은 그때까지 불치병과 싸우느라 영혼까지 지쳐버린 말기 암 환자에게 겨우 찾아온 휴식 시간을 방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미 아무런 힘도 의지도 없는 환자의 육체에게 억지로 버텨보라고 강요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거기엔 죽어가는 사람에 대한 배려도 경외도 애도의 마음도 없다. 그저 일분일초라도 환자의 목숨을 더 연장시키려고 하는, 연명지상주의의 현대 의학 교육을 받은 의사의 의무감만 있다(p. 45)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의사 스스로 그 소생술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의미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이 이야기에 나오는 것처럼 허락할 수 없는 소생술이 자행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의미가 없는 일을 임사 환자에게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이런 상황에서의 소생술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만약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고 바라는 사람들에게 나는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 싶다. "자신의 죽음이 확실해졌을 때는 ‘절대로 무의미한 소생술은 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죽게 해주세요.’ 라고 가족과 의사에게 반드시 말해두십시오." 그렇게 해두지 않으면 이 이야기에 나오는 환자처럼 당신의 죽음은 당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최후의 순간에 엉망진창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p. 46). 말기 암 환자가 모두 통증을 호소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동통 때문에 괴로워하는 암 환자는 전체의 3분의 2로 알려져 있다. 또 동통을 호소하는 환자가 모두 극심한 통증을 경험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통증 때문에 죽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괴로움을 호소하는 환자는 틀림없이 존재한다. 그러나 임상 현장에서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의사들이 말기 암 환자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동통 대책도 불충분하기 짝이 없는 게 현실이다. 아니 동통 대책이 불충분하다기보다는 다양한 제통법이 있는데도 그것들을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든다. 예를 들면 암성 동통에 대한 모르핀의 유효성과 안전성은 충분히 입증되었고, 그것을 제대로 사용하면 이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성격이 바뀔 정도로 통증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모르핀 중독의 미신을 믿는 의사들 때문에 환자의 고통이 방치되고 있다. 그러한 실태를 보고 있으면 의사들의 관심이 환자 자체가 아니라 암에만 가 있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또 그러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말기 암 환자는(p. 90) 불쌍하다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그런데 암 환자가 호소하는 고통이 모두 암 자체로부터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고통의 대부분은 암 종양 때문에 생기는 것이고, 암 종양이 커지면서 주위 기관을 압박하거나 신경으로 차츰 퍼져 나가는 것 등에 기인한다. 그 밖에 호소하는 고통은 이 이야기에 나오는 것처럼 육체적인 고통이라기보다 날로 약해져가는 자신의 상태에 대한 불안이나 고독, 공포 등에 따른 심리적, 정신적 고통이다. 그러한 심리적, 정신적 고통을 육체적인 고통으로 호소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이런 에피소드도 있다. 어느 대학병원에 여성 암 환자가 입원해 있었다. 그녀의 암은 말기 유방암이었고, 늘 심한 동통을 호소했다. 그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진통제 주사를 요구했다. 그런 그녀가 더 이상 치료 수단이 없다는 이유로 시내의 다른 병원으로 보내졌다. 하지만 그것은 그럴듯한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를 그저 성가신 물건 처리하듯 다른 병원으로 보내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병원을 옮긴 것이 그녀에게는 행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병원에는 그녀와 같은 말기 암 환자도 여느 환자와 똑같이 간호해주는 간호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병원을 옮긴 후에도 대학병원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자주 동통을 호소하며 진통제 주사를 요구했다(p. 91) 그러던 어느 날 고통을 호소하는 그녀에게 어느 간호사가 진통제 주사 대신 한 잔의 뜨거운 커피를 들고 갔다. 간호사는 커피를 권하며 환자의 이런저런 호소를 진심으로 들어주었다. 그 다음 날부터 그녀가 고통을 호소하는 일이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진통제 사용도 격감되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실화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이런 의료 현장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적을 것이다. 어느 병원이나 분주하게 돌아가는 데다 대부분 말기 암 환자가 방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같은 주장을 펼칠 생각이지만, 일반 병원은 사람이 죽기에 알맞은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우선 독자 여러분께 알려드리고 싶다. 지금 잠깐만이라도 나의 이 생각에 동의 해주셨으면 한다(p. 92) 운명을 바꿔놓은 한 권의 책 이 조용한 남극 바다에서 승조원들은 곧장 해저의 지질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무한한 자유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 청정한 자연 속에서 뱃멀미에 시달리지 않으면서 이럴 때를 대비해 일본에서 가져온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독서에 지쳐 갑판으로 나오면 그곳에는 맑고 차가운 공기가 가득했고, 눈앞의 빙산에서는 펭귄들이 침입자에 아랑곳 않고 자기들만의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바다 속에서는 가끔 고래들이 포획 따위는 두렵지도 않다는 듯 물을 뿜어 올리면서 유영하고 있었다. 어쨌든 이처럼 태평스럽게 책을 읽는 것도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그 책들 가운데 한 권이 내 운명을 바꿔놓게 되었는데, 일 본을 떠나기 전에 아무 생각 없이 산 책이 이렇게 내 인생관을 송두리째 바꿔놓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 한 권의 책이란 1926년 스위스에서 태어난 미국 여성 정신 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쓴 《죽음과 죽어감on Death and Dying)이다(p. 126). 특이한 제목의 책이었지만, 의사 나부랭이인 나는 죽음에 관한 책을 읽어두면 어떻게든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가벼운 생각에 냉큼 사고 말았다. 따라서 이 책에 대한 예비지식은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처음 책을 대한 순간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으려면 나름대로 노력이 필요하겠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읽기 시작해서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내가 의사가 되고 8년이나 걸려서 얻은 몇 가지의 '바로 그런 것'이라는 상식이 너무나도 쉽게 뒤집혀버린 것을 내 가슴속에 차오른 뜨거운 감동 속에서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몇 가지의 의료 행위가 급속도로 괴로운 과거가 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 한 구절을 읽고 나서 잠시 동안 책장을 넘길 수 없었다. 그 한 구절 이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환자가 삶의 마지막을 정들고 애착이 가는 환경에서 보낼 수 있다면, 환자를 위해 일부러 환경을 조성할 필요는 거의 없다. 가족들은 그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진정제 대신 그가 가장 좋아하는 한 잔의 포도주를 따라 줄 것이다. 집에서 만든 수프라면 그 냄새에 식욕을 느낀 그가 몇 모금 삼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수프 한 모금은 어쩌면 그에게 어떤 영양제보다도 훨씬 더 기운을 북돋아줄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나는 그런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지금 다시 읽(p. 127)어봐도 아련한 감동이 느껴지는 구절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깟 거에 무슨 감동까지 느끼냐고 의아해할지도 모르지만 당시의 나는 이 한 구절을 읽었을 때, 솔직히 말하면 온몸의 피가 역류 하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 한 구절은 내가 의사가 되고 나서 배운, 또 당연한 것으로 알고 시행하던, 죽어가는 사람들의 목숨을 일분일초라도 더 연장시키려는 의료 행위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지켜본 후에 항상 느끼던, 열심히 치료했는데도 왠지 뒤끝이 개운치 않고 찜찜한, 뭐라 말할 수 없이 답답하던 내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구절이기도 했다. 그랬다. 그런 것이다. 혼자뿐인 선실 안을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방 안을 돌아다니면서 나는 죽어가는 사람을 대하는 내 자세의 출발점이 되기도 했던 어느 환자의 임종 장면을 떠 올리고 있었다(p. 128). 병원에 돌아온 지 9일째 되는 날 그녀의 조용한 반응은 더욱 약해졌고, 10일째 되는 날 밤에 그녀는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60년의 생을 마감했다. 그녀는 여러 튜브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평온하게 죽음을 맞았다. 그녀의 인생 대부분이 결코 행복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마지막 10일 동안 그녀가 절망적인 불행의 한복판에 있었다고는 해도 스스로 납득하는 삶을 보낼 때, 그것을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을 때, 비통한 외침 속에서가 아니라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미소를 지으며 최후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었다(p. 197). 실제로 임종에 이르러 환자의 고통스런 숨소리와 가래 끓는 소리, 표정, 손발의 움직임 등은 병원에 있든 집에 있든 장소를 불문하고 나타날 수 있는 증상들이다. 그러한 증상들 대부분은(p. 222) 인간이 죽어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 시점에서는 병원에 있다고 해도 대처할 만한 방법이 거의 없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그런 상태의 환자 대부분은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이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생각하듯 고통이란 걸 느끼지 못한다(p. 223) 나는 모든 말기 암 환자에게 환자 자신의 병명과 현재 상태를 알려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암 고지처럼 무겁고 괴로운 정보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런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나름대로 극복하는 사람들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p. 242) 내가 이처럼 말기 암 환자에게 병명과 병세를 전하는 데 얽매 이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환자 본인의 정보이고, 그 정보가 환자의 남은 인생을 크게 좌우하기 때문이다. 정확한 병명과 병세는 환자에게 괴로운 정보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불치병이라는 이유로, 어차피 치료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쌍하다는 이유로, 의사나 가족의 판단 만 갖고 환자에게 진실을 숨겨서는 안 된다. 그러한 행위는 결국 상대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고, 동시에 올바른 정보를 근거로 직접 판단하고 결정해서 자신의 남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자기 결정권'이라는 소중한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일방적으로 그 사람 인생의 가능성을 빼앗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누구나 다른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그것이 설령 가족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인생을 함께 짊어지는 도움쯤은 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실제 임상 현장에서는 의사가 가족과 함께 생각하면서 고민해야 하고 가족의 동의하에 진행되어야 하지만, 병명과 병세를 전하려는 노력을 아예 처음부터 하지 않는다면 환자의 인생을 모욕하는 것이 될 수도 있는, 당연히 잘못된 행위다(p. 243). 여기서 한 가지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은 병명과 병세를 전했다고 해서, 즉 거짓이 없어졌다고 해서 깊은 교류 관계가 성립 되었다기보다는 깊은 교류를 맺었기 때문에 진실을 전할 수 있(p. 273)었고, 또 그에 따라 더욱 깊은 신뢰 관계로 발전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의료인과 환자 그리고 환자 가족이 서로에게 우정을 느낄 정도로 교류를 할 수 있으려면 당연히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재삼재사 강조하지만 실제 의료 현장은 매우 바쁘게 돌아가는 곳이다. 그러므로 환자에게 진실을 전하고, 환자가 자신이 처한 진짜 상황에 근거한 인생을 보내게 해준다는 것은 나름대로 각오하고 매달리지 않는 한 불가능에 가깝다. 즉 대부분의 말기 암 환자가 죽어가는 일반 병원의 경우, 충분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그들에 대한 간호는 통상적인 업무 리듬과 맞지 않기 때문에 대개는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 나는 지금 근무하는 병원에서 종말기 의료(터미널 케어)에 몰두했던 것인데, 그 성과는 아무리 노력해도 입원 중인 말기 암 환자의 20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것이 일반 병원에서 할 수 있는 터미널 케어의 물리적인 한계임을 여실히 느꼈다. 결국 지금의 이 체제나 상황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80퍼센트에 가까운 환자는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깨닫지 못하고, 설사 깨닫는다 해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비참한 상황에서 환자나 그 가족은 불만을(p. 274) 터뜨리지 않는 것일까. 대부분의 말기 암 환자는 자신의 실상을 모른 채 투병하고 있고, 가족과 의료인은 환자에게 진실을 전하지 않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가치관이 바뀌지 않는 한 의료 현장의 실상 또한 그리 쉽게 바뀌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진실을 알고 나름대로 인생을 마무리 하려는 자립적인 사람들에게는 일반 병원만큼 최악의 장소도 없을 것이다(p. 275). 호스피스에 대해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종교적인 도움의 문제다. 영국과 미국의 호스피스가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은 호스피스 간호를 제공하는 쪽이나 받는 쪽이 모두 기독교라는 공통된 종교를 지녔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래도 종교적 배경이 두텁고 같아야 환자의 종교적인 필요와 욕구에 부응하기 쉬울 것이다. 그래서 종교적 배경이 허술한 일본에서는 호스피스 간호가 곤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한다(p. 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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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토크】 전쟁 중에 벌어진 억울한 민간인 희생
- 6.25 전쟁에서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 따르면 국군 전사자는 13만 7,899명, 부상자는 45만 742명, 실종자 2만 4,495명, 포로는 8,343명으로 총 62만 1,479명이 피해를 입었다고 밝히고 있다. 반면 민간인 사망자는 24만여 명, 양민 학살로 숨진 사람은 12만 8,000여 명, 부상자 22만여 명, 실종자는 30만 명이 넘어 총 99만여 명의 인명피해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들 민간인 희생자 가운데는 억울한 죽음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저자는 그것을 파헤치고 있다. 이 땅에 두 번 다시 그런 비극이 없어야 하는데 과연 그럴지 자신할 수 없다. 나는 누구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 물음표가 비대하게 몸집을 키워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1966년 추석의 그 만남은 내 사유체계의 바탕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형해화시켰다. 1992년, 파리에서 망명 중인 아들에게 아버지가 찾아왔다. 나는 물었다. “왜 그때 동네 아이들까지 싹 다 죽였을까요?" 1950년 9•28수복 직후, 황골처럼 가족 단위로 마을 사람들을 학살한 경우는 드물다. 한국전쟁에서 이런 유의 학살은 주로 1951년 1·4 후퇴 직후 벌어졌다. 아버지는 구원(舊怨)과 텃세와 이권을 이야기했다. 오랫동안 묵혀왔던 사적 감정, 가문끼리의 기싸움 그리고 가구 수에 비해 좁은 땅. 숨기고 있던 알력이 이데올로기 대립과 전쟁이라는 기회를 틈타 순식간에 타올랐다고 했다. 단순한 복수가 아니었다. 상대 집안 씨를 말려야 했다. 그래야 그 집과 땅을 통째로 차지할 수 있었으니까(p. 222). 이승만 정부의 '부역자' 처리 양상과 규모 '부역(附逆)'은 국가에 반역이 되는 일에 동조하거나 가담한 행위를 말한다. 법에 처음으로 ‘부역’을 법률적으로 정의한 ‘부역행위 특별처리법’과 ‘사형금지법’ (1950년 12월 1일 공포)에서도 '부역자'는 "역도(逆徒)에게 협력한 자"로 기술하고 있다. 문제는 어떤 행위가 협력한 것인 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법률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임하에 따르면, 자발성이냐 비자발성이냐도 부역의 기준이 되지 못했다. 역도에게 도움을 주었다고 심판자가 일방적으로 판단하기만 해도 부역자로 간주되었다. 이런 부역 행위 규정의 자의성, 모호성, 불특정성은 그대로 부역자 처리, 처단의 잔혹성으로 재현될 수밖에 없었다. 이승만 정부의 부역자 심사와 처벌의 법적 토대는 대통령 긴급명령이었다. 긴급명령 제1호 비상사태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 (1950년 6월 25일 공포)은 단 한 번의 재판만으로 증거 설명도 생략한 채 부역 혐의자에게 사형 또는 중형을 내릴 수 있어서 적극 활용되(p. 360)었다. 이 명령은 제헌헌법 제57조가 규정한 긴급명령 제정과 공포의 절차와 형식도 어긴 것이어서 위헌적이었다. 수많은 무고한 국민들을 감금하고 처형했다. 긴급명령 제5호 '계엄하 군사재판에 관한 특별조치령' (1950년 7월 26일 공포)도 마찬가지였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급증하는 부역혐의자에 대한 군사재판을 신속하고 간략하게 처리하기 위해 민간법원의 판·검사를 활용할 수 있게 했다. 그 결과 부역혐 의자들이 범죄처벌특조령으로 “사색 없이 사형, 사형” 당했다. 유병진 판사의 이야기다(본문 ‘소리 없는 도망’ ‘사색 없이 사형, 사형’). 마지막으로 긴급명령 제9호 비상시 향토방위령(1950년 8월 4일 공포)은 우익 청년단체를 중심으로 구성된 마을 단위의 자위대가 인민군과 공비, "기타 이에 협력하는 자"를 체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전시 민간단체에게 '체포'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자위대나 치안대가 임의적으로 '즉결처형' 형식으로 대량 학살할 수 있었던 건 향토방위령을 제멋대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치안대원들의 사적 원한과 보복, 욕망 등이 여기저기 참극을 만들었는데, 법은 이 사적 폭력들을 방조하고 묵인했다. 긴급명령 같은 국가긴급권 조치들은 국회마저 사후적으로도 통제 할 수 없는 무소불위의 전권이었다. 비상사태라는 미명하에 국민의(p. 361) 기본권을 유린한 법제화된 국가폭력이었다. 국회는 이를 견제해 부역 행위 처리에 신중을 가하고 극단적 처벌을 감면하도록 '부역행위 특 별처리법'을 제정했다. 국회는 전국 곳곳에서 부역자 학살의 서막이 올랐던 1950년 9월 29일에 제정했지만, 이승만 정부는 그 긴급성에도 불구하고 12월 1일이 되어서야 공포했다. 무분별한 사형을 금지하고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국회가 제정한 ‘사형금지법’도 마찬가지였다. 급기야 국회는 국민의 안전은커녕 스스로의 안전마저 도모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하기도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역혐의자로 체포되었고 재판을 받았는지, 얼마나 많이 처형되었거나 징역을 살았는지, 또는 석방되었는지, 전모를 확인할 수 있는 종합적인 통계는 없다. 다만 내무부 치안국이 1973년 발간한 《한국경찰사 1948.8-1961.5》에 주한미대사관이 미 국무부에 보낸 〈한국정부의 부역자 처리에 관한 보고》 문건을 보면. 1950년 11월 8일까지 서울과 인천 지역의 부역자 재판 결과 통계가 있어서 처리 양상과 규모를 가늠해볼 수 있다(p. 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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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토크】 남을 함부로 단정 짓는 편견이 무섭다
- 어느 날 아빠가 몸과 정신에 병이 나 이 모든 것을 아들 혼자 감당해야 했다. 그때의 막막함과 사회의 허술함을 보여주는 책이다. 이때 꿋꿋하게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자신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얼마나 큰 폭력인가를 말하고 있다. 이럴 땐 차라리 무관심이 났다고 말한다. 우리는 남의 인생에 관심이 많고 또 쉽게 말하는 버릇이 있다. 당해 보면 그것이 얼마나 큰 폭력인가를 알 수 있다. 도시가스 검침을 받았다. 집을 둘러보던 검찰원이 물었다. "원래 계시던 할아버지는 어디 가셨어요?" 할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이고, 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대답했다. 검침원이 숫자를 입력하던 손을 멈추더니 목을 앞으로 쭉 뺐다. "무슨 병이라도?" "그냥 화상이에요. 약간 치매 초기라." "지금 할아버지가 아니라면 연세가?" "이제 쉰일곱.." "아니 어쩌다 벌써?"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질문이 밀고 들어왔다. 가족들은 어디 있느냐, 아버지의 과거는 어땠느냐, 당신은 지금 뭘 하느냐. 의도를 알 수 없는 질문이 계속되더니, 결국 종착지처럼 한 질문에 도착했다. "가족 중에 예수 믿는 사람 없죠?" 검침원은 내가 시험에 빠졌다고 했다. 지금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큰 불행이 온다고, 더 큰 고난이 기다린다고, 저주처럼 전도를 했다. 지나친 사명감으로 나를 들들 볶더니 확실한 답을 얻으려는 듯 예수님 믿을 생각이냐고 되물었다. "우리 집에서 어서 나가세요." 이 집에 들어오는 순간 맡게 되는 가난의 냄새, 오래되고 낡은 가구, 벽지, 문틀 같은 요소들이 사명감을 높여주나 싶었다. 집을 나가면서 검침원은 재빠르게 가방에서 팸플릿 하나를 꺼내 던졌다(p. 162) "언제든 도울 수 있으니 연락 주세요!" 난데없이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팸플릿은 소년 소녀 가장이 무능한 부모를 원망하고 세상을 증오하다가 예수를 만나 구원받았다는, 꼭 나를 염두에 둔 듯한 내용이 채워져 있었다. 찢어버렸다. 사람들은 꼭 이랬다. 아버지하고 함께한 시간을 부정하려는 시도는 세상이 다 권유하지만, 긍정하려는 노력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어쩌다 내 상황을 직접 듣거나 우연히 알게 된 사람들은 대부분 심드렁하게 쳐다봤다. 더군다나 내 나이 또래에게 질병이나 죽음은 너무 먼 이야기였다. 세상은 질병이나 죽음의 근처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효자 났네, 효자 났어." 누군가는 나를 '효자'라고 불렀다. 부모 자식 사이에도 버리고 버려지는 요즘 같은 세상에 병든 부모를 챙기는 일만으로도 용하다는 칭찬이었다. 그럴 때면 나는 '효자'가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다. "병원 앞에서 안 가겠다고 떼쓰면 멱살 잡고 끌고 잤어요." "새벽마다 주절거리는 아버지를 잠재우려고 장롱 문을 발로 꽝 꽝 찼어요." 그렇다고 나는 ‘불효자’라고, '효자'가 되기에는 아직 멀었다고 말하려는 생각은 아니었다. 효자라는 말 앞에 서면 아버지를 돌보는 내게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일이 무용해졌다. 부모 돌봄은 가(p. 163)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당연한 일이었고, 그런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사람들이 문제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나를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꽁꽁 싸매는 사람들을 원망할 수 없었다. 그저 병든 아버지하고 함 께하는 나 같은 사람을 부를 수 있는 말이 딱히 없으니까, 가장 적당하고 적절하다고 여겨지는 단어를 쓸 뿐이었다. "으이구, 밥이라도 많이 먹어." 밥은 먹고 다니냐는 연민과 동정도 많이 겪는 반응이었다. 졸지에 비 맞고 있는 안쓰러운 강아지가 된 기분이었다. 힘들어도 스스 로 버텨냈다는 어떤 자긍심이 있었는데, 그런 마음이 짓밟혔다. 연민과 동정은 그동안 혼자 고민하고 행동한 내 삶의 가치를 깎아내렸다. 효자라는 말이나 연민과 동정은 차라리 무관심만 못했다. 한 번은 거기에 반박한답시고 이렇게 말해봤다. "아버지랑 함께하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지 못했을 거예요. 아버지랑 함께하면서 겪은 사건들 때문에 사회과학 책을 피부로 읽을 수 있었고, 아버지에 관한 고민이 철학을 공부하면서 철학자들하고 맞닿은 계기였다고 생각해요." 그런 말을 들은 누군가는 더 측은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렇게 안간힘을 쓰면서 합리화할 필요는 없다고 나를 다독였다. 그러니까 나는 불행한 사람이었고, 무능한 부모를 원망해야 마땅했으며, 이 세상을 향한 증오로 가득해야 했다. 그런 내가 사람들이 허락한 내 모습이었다(p.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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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중(Th.D) 01-20 12:50
총회 특별편목교육, 총신대에서 개강예배
총회 주관 특별편목교육 개강예배가 1월 20일 오전 11시 총신대학교 종합관 백남조기념홀에서 있었다. 1부 예배는 임병재 목사(편목과정소위원회 위원장)의 인도로 김형곤 장로(총회 장로부총회장)가 기도, 전원일 목사(편목과정소위원회 위원)가 겔 36:26~28을 봉독했다. 김종혁목사(총회장)가 ‘새 영과 새 마음’이란 제목으로 “편목과정을 통해 본 교단에서 새롭게 사역을 잘 감당하시기를 바란다. 총신의 개혁주의 신앙을 잘 전수하길 바란다. 하나님은 불법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셨지만, 저들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이스라엘이 부패할 때 지도자들은 더 큰 징계를 당했고 나라는 망해 포로로 끌려갔다. 이때 자신들의 죄를 깨달은 백성들에게 에스겔은 회복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영적 부흥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포함하는 것이다. 새출발을 기대하고 모인 여러분들 모두 새 영과 새 마음으로 충만하기를 바란다. 또한 편목을 시작하며 개혁신앙으로 무장하기를 바란다. 우리 총회는 개혁신앙을 붙들고 지금까지 성장해 왔다. 이 수업 기간을 통해 개혁신학으로 무장하기를 바란다.그리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끝으로 장자 총회의 자부심을 갖기 바란다. 복음으로 무장해 품격 있는 총회를 만드는 데 동참해 주기 바란다. 이를 위해 새 마음과 새 영으로 무장하자. 편목 과정은 사역자로서의 새로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이다”라고 설교했다. 김종철 목사(편목과정소위원회 서기)의 광고 후 장봉생 목사(총회 목사부총회장)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축사 2부 오리엔테이션은 황선우 교수(총신대 평생교육원장)의 사회로 박성규 박사(총신대학교 총장)가 “총회 정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일치된 개혁신학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교리적 중요성이 필요하다. 우리 교단은 개혁신학이다. 이 기간 개혁신학을 잘 배울 수 있기 바란다”라고 환영사, 박용규 목사(총회 총무)가 “개혁신학의 요람인 총신에서 수업받게 된 것을 축하드린다. 새로운 개혁신학의 지평을 넓혀 가기 바란다”라고 격려사, 황재열 목사(편목과정소위원회 부위원장)가 “이 자리에 오신 것을 축하드린다. 성령을 받은 후 제자들은 굳건해졌다. 총신에서 보수신학을 잘 배워 목회가 더 잘 되고, 좋은 교수를 통해 많이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이민호 장로(총회 회계)가 “이 기회를 통해 새로운 여정이 열려지기를 바라며 귀한 사역자들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축사했다. 이어 황선우 교수(평생교육원장)가 편목수업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마무리했다. -
김병중(Th.D) 01-02 13:05
총회, 2025년 신년하례회 및 구국을 위한 특별기도회
2025년 총회(총회장 김종혁 목사) 신년하례회 및 구국을 위한 특별기도회가 1월 2일 오전 10시 30분 한우리교회(권종렬 목사 시무)에서 있었다. 1부 예배는 서기 임병재 목사의 인도로 부총회장 김형곤 장로가 기도, 부서기 서만종 목사가 사 43:19 봉독, 용천노회 남성의 사모가 ‘거룩한 성’을 특송했다. 총회장 김종혁 목사가 ‘다시 복음 앞에서’란 제목으로 “이사야는 절망 가운데서도 새로운 미래를 예언했다. 그는 새 일을 말했다. 독창적이고 질적인 변화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혼란한 가운데 있다. 이 가운데 하나님을 믿으며 복음 앞에 서야 한다. 복음만이 우리를 새롭게 하고 희망을 준다. 위대한 새 일을 기대하며 복음 앞에 서서 변화에 앞장서자.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장하자. 다윗은 하나님께 물어 승리했고, 사울은 묻지 않아 실패했다. 새해 복음 앞에 서서 새출발하자”고 설교했다. 특별기도 부회록서기 안창현 목사가 ‘총회와 산하기관 발전과 교단부흥을 위해’, 회계 이민호 장로가 ‘총회사역과 재정을 위해’, 부회계 남석필 장로가 ‘총신대와 산하 각 기관을 위해’ 특별기도 했다. 총회총무 박용규 목사가 광고한 후 부총회장 장봉생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구국을 위한 특별기도회 2부 하례 및 구국을 위한 특별기도회는 회록서기 김종철 목사의 사회로, 대한민국 대통령과 정부의 안정과 평안을 위해 - 총신대학교 총장 박성규 목사, 대한민국 복음화와 세계 선교사명 감당위해 - GMS 이사장 양대식 목사, 대한민국 언론이 정론이 되어 시대의 등불 되기를 - 기독신문 이사장 장재덕 목사, 저출산 고령화의 현실 가운데 미래세대를 위하여 - 교육개발원 이사장 송태근 목사, 북한의 지하교회와 복음 통일을 위하여 - 통일목회개발원 원장 김찬곤 목사, 한국교회 부흥과 총회 산하 모든 교회를 위하여 - 교회자립개발원 이사장 박윤성 목사가 기도했다. 덕담의 시간 덕담의 시간에 증경총회장, 증경부총회장, 산하기관장, 상비부장, 상설/특별위원장, 속회장, 지방신학교총(학)장, 지역협회장이 새해 인사 후 전국장로회연합회 회장 홍석환 장로가 폐회기도로 순서를 마치고 교회 3층에 마련된 애찬을 나누며 친교했다. -
김병중(Th.D) 12-19 17:07
화양중앙교회 화재 관련 김종혁 총회장 특별 담화문
김종혁 총회장은 화재로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화양중앙교회를 위한 기도와 도움을 호소하는 특별 담화문을 발표했다. 다음은 그 전문이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전국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지난 12월 11일, 충청노회 소속 화양중앙교회가 뜻하지 않은 화재로 예배당과 사택이 전소되는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작년에 어려운 가운데서 리모델링을 마치고 새롭게 단장한 교회였지만, 이번 화재로 인해 예배당과 사택이 불길에 휩싸여 큰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너희는 서로 짐을 지라”(갈6:2)라는 말씀처럼, 이 어려운 때에 우리 총회 산하 전국교회와 성도들이 화양중앙교회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사랑과 위로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 때입니다. 화재는 수요예배 직전에 발생하여 예배당과 사택이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성도들은 가까스로 대피했으나, 담임목사 부부는 사택 전소로 인해 당장 기거할 곳조차 없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성탄을 앞두고 큰 시련에 처한 화양중앙교회와 함께 아파하며, 우리 모두의 따뜻한 사랑을 나눌 수 있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전국교회가 화양중앙교회의 회복과 재건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작은 정성이라도 십시일반 모아주신다면 무너진 교회가 다시 일어나 복음의 빛을 밝히는 교회로 회복될 것입니다. 총회도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 충청노회와 함께 화양중앙교회의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이번 시련을 통해 더 크고 놀라운 은혜와 회복을 허락하실 줄 믿습니다. 전국교회가 화양중앙교회의 재건을 위해 함께 기도해 주시고 사랑으로 힘을 보태주셔서, 우리의 연합된 마음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024년 12월 19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총회장 김종혁 목사 후원계좌: 농협 465096-51-025902 (화양중앙교회) 문의: 010-6509-1240 (고상만 목사) -
김병중(Th.D) 10-11 17:15
제109회 총회임원 · 상비부장 연석회의
제109회 총회를 시작하는 총회임원 · 상비부장 연석회의가 10월 11일 오후 2시 총회회관 5층에서 있었다. 1부 예배는 서기 임병재 목사의 인도로 회계 이민호 장로가 기도 했다. 총회장 김종혁 목사가 시 42:1-5를 본문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이란 제목으로 “고난 앞에 각자의 반응을 보면 믿음이 드러난다. 어려울 때 하나님께 소망을 두자. 하나님을 바라보기로 확정하는 것이 낙심을 이기는 방법이다. 또한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며 맡은 바 일을 감당하자. 총회 일을 할 때 재정적인 압박이 있을 것이지만 하나님을 믿고 기대하며 섬기도록 하자”고 설교 후 총회장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이어 각 상비부장과 임원들의 발언이 있었다. 조무영 헌의부장은 “원칙대로 바르게 하겠다”고, 임홍길 규칙부장은 “일이 많은데 예산이 줄었다. 전년도 만큼 예산 조정 해주시기를 바란다”고, 이재천 재판국장은 “재판국이 욕을 제일 많이 먹고 구설수가 많았다. 소문에 흔들리지 않고 신뢰 회복을 하며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게 하겠다”고, 김희근 은급부장은 “은퇴 목사님을 열심히 잘 섬기겠다”고, 이형만 교육부장 “교육부가 늘 하던 일 잘 감당하고, 정치부에서 내려온 것들을 잘 받아들이겠다”고, 김인환 학생지도부장은 “할 일이 많은데 기도하며 감당하겠다. 면려부랑 통합하게 되어 있는데 명칭 변경이 필요하지 않은가 고려 중이다”라고, 최효식 전도부장은 “기본에 충실하겠다”고, 유광철 군선교부장은 “군선교 부흥에 박차를 가하겠다. 이를 위해 군선교 정책 연구소가 필요하며 노회가 군인교회를 입양하는 것과 군인사병선교사 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광염 구제부장이 “도울 수 있는 예산이 정해져 있어 나눠줄 때 오히려 민망할 때가 있다. 또 재정 집행이 늦어 시기를 놓친다. 폭우로 많은 어려움을 당했는데 지원 제한이 있어 못 도왔다. 앞으로 개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여성구 경목부장이 “저는 경찰 가족이다. 경찰은 물질을 나누지 않고는 복음화될 수 없다. 경찰은 13만 명이다. 복음화를 위해서는 베풀어야 한다. 방문을 요구하는 경찰서가 많은데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고, 김상기 농어촌부장이 “진심을 다해 섬기겠다. 올해 부부수양회는 국내에서 해 예산을 절약해 참석자들에게 혜택을 주겠다”고, 박의서 신학부장은 “총회 때 모 장로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대해 목사보다 자세히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놀랐다. 총회의 신학을 바르게 지키기 위해 무거운 마음으로 직책을 감당하겠다”고, 박종국 면려부장은 “올해 예산이 줄었다. 학생지도부와 면려부가 통합됐는데 이를 위해 회의비 증액을 원한다”고 말했다. 김경태 사회부장이 “어려운 목사와 성도들을 잘 섬기겠다”고, 고관규 순교자기념사업부장이 “순교자 가족들을 잘 위로했으면 하고, 순교자기념주일을 잘 지켰으면 한다”고, 김성환 고시부장이 “총회의 미래를 위해 고시를 엄격하고 흠 없이 잘 관리하겠다”고, 오광춘 재정부장은 “추경에 예산보다 많은 액수가 올라왔다. 부장들이 부족한 예산을 채워 운영해 주었으면 한다”고, 조승호 정치부장은 “존경받는 어른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박용규 총회총무가 “상비부 회의에 총회 직원들을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외부에서는 꼭 필요할 때만 불렀으면 좋겠다”고, 이민호 총회회계는 “교회들에서 세례교인 헌금이 늦게 올라와 예산 집행에 어려움이 많다”고, 김종혁 총회장이 “과거 고 정필도 목사님은 할 수 있는 헌금을 하고 나머지는 빌려 온다. 그리고 교인들에게 말하면 교인들이 나머지를 채웠다. 본인이 먼저 헌신하니 다 해결됐다. 상비부장의 헌신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교회 부흥을 통해 세례교인 헌금을 많이 내도록 하자. 함께 기도하며 책임을 감당하자. 총회 파회 후에는 상비부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전도를 위해 교단의 중요한 자원을 많이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발언 후 합심기도하고 장봉생 부총회장의 기도로 모든 순서를 마쳤다. 아울러 불참자들을 대신해 다른 임원이 꼭 참석해 논의된 사항을 전해줄 것을 당부했다. (총회를 출입하는 교단 목사 기자로서 109회 총회의 성공을 기원하며 동영상과 기사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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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중(Th.D) 03-18 00:47
총회농어촌부 교역자부부수양회-개회예배·저녁집회
총회농어촌부(부장 김상기 목사)가 주관한 농어촌교회 교역자부부수양회가 “연합하여 변화하는 농어촌교회‘(롬 12:2)란 주제로 3월 17일부터 20일까지의 일정으로 132명의 목회자 부부가 참석한 가운데 양양 더앤리조트에서 은혜롭게 진행됐다. 개회예배는 서기 이철우 목사의 인도로 총무 김종수 목사가 기도 후 농어촌부장 김상기 목사가 레 6:12-13, 출 25:23-30을 본문으로 ‘불을 꺼뜨리지 말고, 염려하지 말라!’란 제목으로 “도심지 교회는 농어촌교회에 큰 빚을 졌다. 감사한 마음으로 섬기고자 하니 위로와 힘이 되시기를 바란다”라고 설교 및 당부의 말씀을 전한 후 원당교회 지창호 목사의 축도로 개회예배를 마쳤다. 첫날 저녁집회는 부장 김상기 목사의 인도로 회계 이광재 장로가 기도했다. 총회장 김종혁 목사가 삼하 22:1-20을 본문으로 ‘간증이 있는 삶’이란 제목으로 “우리 삶에 간증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 계명을 주셨는데 주님과 동행하며 행복한 여정이 되기를 바란다. 다윗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지만, 그 배후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을 경험했다. 저도 돕는 자를 달라고 기도하며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돕는 자를 부쳐 달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돕는 자를 더해 주신다. 또한 다윗은 환난 날에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것을 경험했다. 직접 대응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신다. 가만히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어려울수록 조용히 하나님을 의지하자. 그러면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신다. 다윗은 어려울 때 기도했고 하나님은 응답하셨다. 하나님의 응답을 믿고 우리도 기도하자. 우리의 고통의 현장에 하나님은 함께 하신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 바르게 신앙 생활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니. 어떤 상황이든지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라고 설교했다. 헤세드 중창단 특송 후 가산교회 박광원 목사의 축도로 첫날 일정을 마쳤다. 남은 일정은 새벽과 저녁 집회, 통일전망대, 송이밸리 자연휴양림, 주문진항 방문, 자유 시간 등으로 진행된다. 김상기 부장 환영사 사랑하는 농어촌 교회의 목회자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 인사를 드립니다. 이번 수양회의 주제는 "연합하여 변화하는 농어촌 교회"입니다. 여러분이 섬기는 각자의 사역지에서 헌신하는 동안 많은 어려움과 도전이 있으셨을 줄 압니다. 금번 수양회를 통해 주님 안에서 쉼과 위로를 얻고 새롭게 힘을 내어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을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는 고린도전서 15:58 말씀은 목회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며 씨를 뿌리는 여러분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될 줄 믿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헌신과 노고를 기억하시며, 그 수고가 헛되지 않음을 분명히 약속하십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보낼 당시 고린도 교회는 여러 도전과 갈등 속에 있었습니다. 교회 내부의 분열과 외부로부터의 핍박 속에서, 바울은 성도들이 흔들리지 않고 주님의 일을 더욱 열심히 하도록 격려했습니다. 그들이 겪는 고난과 수고가 주 안에서 결코 헛되지 않음을 확신하며, 더 큰 소망을 품고 사역하길 바란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농어촌교회의 상황도 이와 유사한줄 압니다. 각자가 처한 상황이 어떠하든 크고 작은 어려움 속에서 믿음의 씨앗을 뿌리고, 교회를 세우며, 성도들을 목양하는 일에 집중하고 계십니다. 때로는 사역의 열매가 보이지 않아 낙심할 때도 있지만, 바울의 권면처럼 주님의 일을 더 힘써 행하며, 그 수고가 결코 헛 되지 않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모든 노고를 보시고, 반드시 그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연합의 힘을 통해 농어촌 교회들이 변화되고 부흥의 길로 나아가는 큰 역사를 함께 체험하게 되길 기도합니다. 여러분과 함께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날마다 발견하며, 모든 사역에 기쁨과 은혜가 충만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귀한 수양회 준비를 위해 애써주신 농어촌부 임원들과 교육전도팀 직원들의 노고에도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수고 또한 헛되게 하지 않으실 주님을 기대합니다. -
김병중(Th.D) 03-14 17:28
총회군선교부 주관, 2025년 신임군목 9명 파송예배 드려
2025년도 신임군목 파송예배가 총회군선교부(부장 유광철 목사) 주관으로 3월 14일 오전 11시 꿈과사랑의교회(김동진 목사 시무, 예비역 군목 소령)에서 있었다. 이날 9명이 임관하게 되어 합동측 교단 군목은 총 75명이 된다. 그동안 총신대학교(박성규 총장, 예비역 군목 소령)의 물심양면의 협력과 총회군선교부, 합동군목회의 헌신으로 총신대에서 다수의 합격자가 나오고 있어 교단의 군선교 미래는 매우 밝다. 이날 합동군목회 대표회장 윤병국 목사(예비역 군목 중령)를 비롯한 임원들이 참석하여 축하하고 격려금을 전달하는 훈훈한 시간을 가졌다. 이날 파송된 군목들은 3월 27일 육군학생 군사학교에 입교해 5주간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이어 육군종합 행정학교에서 4주간 직무교육을 이수한 후 6월 말에 임관하여 주로 연대급 교회에 배치되어 군선교에 귀한 하나님의 사역자로 쓰임받게 된다. 이날 예배는 군선교부 서기 박영수 장로의 인도로 군선교부 회계 이인순 장로가 기도, 군선교부 부장 유광철 목사가 창 45:5을 본문으로 '나를 보내셨나이다'란 제목으로 설교, 군선교회장 박창식 목사, 합동군목회장 윤병국 목사가 축사, 군목단장 이석영 목사가 격려사, 군선교 부장 유광철 목사가 파송장 수여, 군선교부 총무 김동진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
김병중(Th.D) 03-13 13:35
김선규 증경총회장, 총신대 기숙사 건축기금 1000만 원 쾌척!
증경총회장 김선규 목사가 지난 3월 11일, 총신대학교를 찾아 박성규 총장에게 기숙사 건축 기금 1,000만 원을 전달하며 후배들을 향한 마음을 전했다. 김선규 총회장은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01회 총회장을 역임하면서 학교를 향한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김 총회장은 “작게나마 학교와 후배들을 위한 일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며 “기숙사 건축이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참된 일꾼을 양성하는 귀한 사역이 되었으면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에, 총신대학교 박성규 총장은 “학교 기숙사 건축을 위한 총회장님의 소중한 손길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학생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경건 생활과 학업에 열심히 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
김병중(Th.D) 03-04 15:20
월기총 · 지선협 연합 공동 주관 구국 비상기도 대성회
월드기독교총연합회(월기총, 명예총재 정도출 목사 · 이사장 정진희 목사)와 지구촌예수선교협회(지선협, 대표총회장 강영준 목사)가 주최한 연합공동주관 구국비상기도대성회가 3월 4일 오전 10시 30분 구리시에 소재한 성민중앙교회(강영준 목사 시무)예배당에서 있었다. 참석자들은 피종진 목사의 설교를 통해 은혜를 받고 나라를 위해 뜨겁게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환영사 월기총이사장 정진희 목사가 “일제 치하에서 기독교는 큰 역할을 했다. 탄핵정국에서 민족을 위해 쉬지 말고 기도하자”고, 명예총재 김동진 목사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모세처럼 손을 들어 기도하자”고, 지선협여성고문 임은선 목사가 “다니엘 때처럼 하나님께서 민족을 위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다”라고 환영사했다. 지선협 대표총회장 강영준 목사가 “국가가 어려울 때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오늘 간절하게 연합해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자”고 인사 말했다. 예배는 정화수 목사의 찬양 인도 후 지선협 여성총재 임수연 목사의 인도로 애국가 제창, 만세삼창 후 지선협 기획사업본부장 이정일 목사가 기도, 실무총재 이 수 교수가 성시낭독, 월기총 재정이사 김복례 목사가 시 37:23-31을 봉독했다. 월기층 · 지선협 대표고문 피종진 목사가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야 큰 일을 감당할 수 있다. 문제를 피하는 자가 아니라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첫째,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면 붙잡아 주신다. 오해받을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 악한 것을 본받지 말아야 한다. 둘째, 맡기고 의지하면 붙잡아 주신다. 짐을 맡기라. 염려를 맡기라. 길을 맡기라. 행사를 맡기라”고 설교했다. 특별기도 사무총장 변용성 목사가 헌금 기도 후 ‘나라와 민족 정치 안정을 위해’ 김미옥 목사가, ‘한국교회와 세계평화 비핵화 위해’ 한경희 목사가, ‘지구촌선교와 선교사들을 위해’ 김종오 목사가 특별기도하고, 강영준 목사가 광고, 조성우 선교사가 찬양 율동 후 대표고문 피종진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축사 축사 2부는 지선협 실무총재 안영화 교수가 사회로 지선협고문 유연동 목사가 “사람은 가치를 두는 데에 따라 산다. 유관순 열사도 마찬가지였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많이 기도하자”고, 토마스신학교 임성아 학장이 “어려운 때 모여 기도하게 되어 감사하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다”라고, 장희연 교수가 “넘어질 때마다 일어나는 것이 위대한 영광이다. 영광스러운 사람으로 살아가자”고, 한국신학연합회총재 탁명진 목사가 “올 한 해 월기총, 지선협에 좋은 일이 가득하기를 바란다. 회개를 통해 나라를 바로 세우는 데 역할을 감당하시기를 바란다”고, 지선협상임총재 김새천 목사가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들으신다. 일상을 3.1 정신으로 살기 바란다. 성민중앙교회가 부흥하기를 바란다”고, 지선협상임총재 박영수 목사가 “오순절 성령이 임하시기 전에 신자들은 간절히 기도했다. 우리도 간절히 기도해 이 혼돈을 이겨나가자”고, 정찬숙 목사가 “마음이 하나 되고, 사랑으로 하나 되자. 마지막 시대에 사명을 감당하자”고, 이창조 목사가 “부풀리는 목회를 하기 바란다. 현재 국가가 성장통을 겪는다고 생각하며 더 기도하기를 바란다”고, 유진기 목사가 “처음보다 나중이 중요하고, 과정 없이 되는 것이 없다.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를 위해 기도하자. 사명 감당하는 월기총, 지선협 되기를 바란다”고, 강상수 교수가 “눈 오는 가운데 오늘 모이신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베푸시기 바란다. 국가가 어려운 때이다. 기도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자”고, 김홍규 교수가 “오늘 기도회로 모여 축하드리고 감사하다”고, 박재천 교수가 “현재 진영이 나뉘어 갈등하고 있다. 우리가 변화되어 기도하기를 바란다”고, 수원노회장 한문주 목사가 “기회는 소중하다. 종의 멍에를 메지 말고 자유를 누리자”고 축사했다. 이어 교회 1층 식당에서 정성껏 준비한 삼계탕으로 애찬을 나누며 친교했다. 기도해 주세요 1. 월드기독교총연합회, 사단법인 지구촌예수선교협회 두 단체의 설립취지와 목적 사업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본 지구촌예수선교협회가 목적사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2. 본 두 단체 법인의 산하기관들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기관들이 될 수 있도록 신하기관들의 사역을 위해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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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중(Th.D) 03-08 14:53
수도노회 장로회, 하정민 장로 회장·신웅철 장로 수석부회장 선출
수도노회 장로회가 제40회 정기총회를 3월 8일 오전 10시 30분 대성교회(조영석 목사 시무)에서 개최해 하정민 장로를 회장으로, 신웅철 장로를 수석부회장으로 선출하고 회무를 처리했다. 전임회장 우재혁 장로가 “회원 모두의 지지와 협력으로 한 회기를 마치게 되어 감사하며 은혜 충만하시기를 기원드린다”고 이임인사했다. 신임회장 하정민 장로가 “하나님의 은혜로 회장이 됨을 감사드린다. 모든 회원이 한마음으로 일하는 장로회를 만들겠다. 사랑과 섬김이 넘치는 장로회를 만들겠다”라고 취임인사했다. 다음은 취임사 전문이다. 존경하는 증경회장님들과 자문위원님들, 그리고 사랑하는 위원들과 회원 여러분 감사합니다. 사도바울이 나의 나된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신 것 같이 지금의 제가 수도노회장로회 회장으로 섬기게 된 것은 여기에 모이신 모든 장로님의 기대와 격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장로회뿐만 아니라 각 연합회는 한 세대가 지나가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됩니다. 수도노회 장로회도 아직 일하실 장로님들이 많으신데 은퇴하심을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40회기 회장을 맡은 저는 은퇴하신 장로님들과 시무장로님들이 하나가 되어 친목하는 수도노회장로회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누구라도 소외 받지않고, 누구라도 나오고 싶은 장로회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회장을 하신 증경회장님들 보시기에는 당연히 부족한 면도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부족한 면보다는 잘하는 것을 보시며 더 많이 격려해 주시면 후배 장로들은 더욱 힘을 얻을 것 같습니다. 40회기 수도노회장로회는 회장 하정민 장로가 만들어가는 장로회가 아닌, 은퇴하신 장로님들과 시무장로님들께서 하나가 되어, 나이에 상관없이 하나님 안에 우정을 나누는 장로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만나면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어 만나는 장로회가 40회기 수도노회 장로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먼저 손을 내밀고 다가서길 바랍니다. 선배장로님들께서 후배장로들에게 무엇을 해줄까? 후배장로들은 선배장로님께 어떻게 섬길 수 있을까? 아마 그것은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만 있으면 수도노회 장로회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연합회의 모임이 될 것입니다. 부족한 회장의 손을 잡아주시고,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40회기 회장으로 이임할 땐 이 모든 것을 이루고 나기는 회장이 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제1부 예배는 회장 우재혁 장로의 인도로 수석부회장 하정민 장로가 기도, 서기 성명철 장로가 빌 2:5-8을 봉독, 호산나찬양대가 찬양했다. 노회장 장성태 목사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는 제목으로 “예수님은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비우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닮는 일, 신앙에 실패해서는 안 된다. 옳은 것을 옳게 해야 한다. 주님의 마음으로 해야 한다.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면서도 내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사람 앞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니 신앙의 좋은 열매를 맺자”고 설교했다. 회계 이규한 장로가 헌금기도, 신배윤·정지선 집사가 특송 후 증경총회장 서기행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격려사 제2부 축하는 증경부총회장 최수용 장로가 “지난 한 해 수고 많이 하셨다. 올 한 해도 수고 많이 하시기를 바라며, 아버지 대를 이어 회장이 되는 하 장로가 좋은 일 많이 하시기를 바란다”라고, 전국장로회연합회 증경회장 정채혁 장로가 “수도노회 장로회가 40년 불혹의 나이가 됐으니 맡은 책임을 잘 감당하기를 바란다. 앞선 선배들의 길을 잘 따르고 섬길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한국교회평신도단체협의회 직전회장 김상윤 장로가 “한해 수고하셨고, 올해 수고 많이 하시기를 바란다. 단합과 일치를 이루기를 바란다”라고, 수도노회 부노회장 조태구 장로가 “수도노회 장로회를 세우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모든 회원이 한마음으로 동역하시기를 바란다”라고 격려사 했다. 축사 전국남전도회연합회 회장 배원식 장로가 “지난 회기 수고하셨고, 새로운 회기 잘 감당하시기를 바라며, 남전도회 전도훈련대회에 많은 참여를 바란다”라고, 서울·서북지역장로회연합회 회장 이해중 장로가 “수도노회는 총회에서 큰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많은 일 감당하기를 바란다”라고 축사, 대성교회 조영석 목사가 “우리 교회 하정민 장로가 회장 되심을 축하드리며 기도 많이 해주시기를 바란다”라고 환영사 후 총무 최점동 장로가 광고했다. 제3부 회무처리는 회장 우재혁 장로의 사회로 서기 성명철 장로가 회원 80명이 참석한 것을 보고해 개회, 회의록서기 이희중 장로의 회의록낭독, 총무 최점동 장로의 사업보고는 유인물로 받고, 감사 정달성 장로가 감사보고, 회계 이규하 장로의 결산보고는 유인물로 받은 후 회칙을 개정했다. 임원 개선 시간에 하정민 장로를 신임회장으로 추대하고 선거를 통해 신웅철 장로를 수석부회장으로 선출 후 신·구회장 회기 인계인수, 임원 교체, 명예회장 추대, 배지 증정하고 모든 잔무는 임원회에 맡기기로 하고 증경회장 이방균 장로의 기도로 폐회한 후 교회 식당에서 정성껏 준비된 애찬을 나누며 친교했다. 신웅철 수석부회장 정견 발표 안녕하십니까! 수석부회장 후보 기호 1번 신웅철 장로입니다. 어느덧 제가 2010년 10월에 장로 직분을 받고 15년 차에 이르렀습니다. 장로가 되면서부터 수도노회장로회에서 실무임원을 두루 거치며 지금까지 섬기며 수석부회장 후보로 나서게 된 것은 평신도 사역을 하나님께서 주신 사역이라 생각하며 보다 열정적으로 감당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저를 선택하여 주신다면 다음과 같이 최선으로 우리 장로회를 섬기겠습니다. 첫째로, 거룩한 공동체요 믿는 이들의 연합체인 우리 장로회가 연합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온전히 실천하도록 하겠습니다. 부족한 저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적극적으로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이를 위해서 살아갈 것입니다. 둘째로, 증경회장님과 자문위원님들의 헌신으로 세워진 좋은 전통을 계승 발전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제가 그동안에 장로회를 섬기면서 선배 장로님들의 보이지 않는 가르침, 헌신과 희생, 봉사와 섬김, 열정과 열심 등 저는 이러한 모든 리더십을 바라보면서 참으로 이것은 닮아가야 되며 어떻게 하면 우리 장로회를 위해서 연합 사역을 위해서 열정을 가지고 섬겨야 하겠는가라는 것에 대해서 분명히 배워왔습니다. 셋째로, 모범적이며 하나 되는 장로회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젊고 열정적인 후배 장로님들과 함께 하나님의 기쁨 되는 장로회가 되도록 40회기 회장으로 섬길 하정민 장로와 함께 협력하여 성장해 가는 장로회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제 1세대의 선배 장로님들이 눈물과 헌신으로 걸어오셨던 40년의 역사를 기억하며 저 역시 자부심을 가지고 그 흔적들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기호 1번 신웅철 장로를 기억해 주시고 부족하지만, 저를 선택해 주신다며 그 선택이 절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며 증명해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귀를 열어 장로님들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물질적으로도 풍요한 수도노회장로회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늘 선거가 마치고 나면 저 역시 결과에 승복하며 민주주의의 꽃이 선거라고 말하는 것처럼 모든 것을 하나로 만들고 하나 되는 장로회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겠습니다. 기호 1번 신웅철 장로를 꼭 선택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김병중(Th.D) 01-18 19:52
중서울노회장로회 정기총회, 전창완 장로 회장·이옥섭 장로 제1부회장 선출
중서울노회장로회 제31회 정기총회가 1월 18일 오후 3시 구리시 안골로에 소재한 돌다리교회(김정현 목사 시무)에서 열려 전창완 장로를 회장으로, 이옥섭 장로를 제1부회장(수석부회장)으로 선출하고 회무를 처리했다. 명예회장 신현철 장로가 “한 회기를 감당케 하신 하나님과 협력해 주신 모든 회원에게 감사드린다”라고 인사말했다. 신임회장 전창완 장로가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일 년 동안 장로회를 섬길 때 항상 하나님의 영광과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서 모든 일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이 여기 계신 우리 모든 장로님의 뜻을 가장 받드는 길이라 생각됩니다. 아무쪼록 많은 기도와 지도 편달을 부탁드립니다”라고 인사말했다. 개회예배는 제1부회장 전창완 장로의 인도로 제2부회장 이옥섭 장로가 기도, 회원관리차장 김만석 장로가 골 3: 1-11을 봉독 후 돌다리교회 글로리아남성중창단이 특송했다. 중서울노회 부노회장 최문진 목사가 '재활훈련을 잘하고 계십니까?'란 제목으로 “구원의 정점은 부활이며 부활은 신자의 가장 큰 소망이다. 구원해 하나님의 거룩한 자로 만드는 것이 구원의 본질이기에 날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에 동참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부단한 영적 훈련이 필요하다(갈 6:16-). 영적재활의 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예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다시 거듭나며 영적으로 훈련해야 한다. 첫째, 생각의 훈련을 해야 한다. 육신이 아니라 영의 일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가 중요하다. 사단에게 지배당하지 않도록 부단히 생각의 훈련을 해야 한다. 둘째, 삶을 훈련해야 한다. 생각을 넘어 삶으로 가야 한다. 이를 위해 땅에 있는 지체를 죽여야 한다(갈 5:17-21). 죄악된 세상에서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 이때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한다”라고 설교했다. 축사 전국장로회연합회 증경회장 정채혁 장로가 “귀한 설교를 들어 감사하다. 중서울노회는 중요한 노회이다. 중서울노회 정찬홍 장로님은 귀한 분이시다. 앞으로 서울서북노회협의회에서도 중요한 일을 감당하시기를 바란다. 신현철 장로님 수고 많으셨고, 전창완 장로님께서도 잘 감당하시리라 믿는다”라고, 서울서북지역장로회연합회 회장 이해중 장로가 “오고 싶었던 돌다리교회에 와서 감사하고 와 보니 아는 장로님들이 많이 계셔서 반갑다. 저의 여러 선거에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하다. 중서울노회에서 서북서북지역장로회협의회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바란다. 회장으로 장로연합회가 본질에 충실한 장로회 모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각자 교회에서 잘하시고 연합회 활동도 잘하시기를 바란다. 큰 부흥 있기를 바란다”라고 축사했다. 회계 장윤성 장로가 헌금기도, 총무 서희원 장로가 광고 후 돌다리교회 김정현 담임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업무 보고 총회는 회장 신현철 장로의 사회로 신임회장 전창완 장로의 부친 8대 증경회장 전병순 장로가 개회기도 후 서기 노용호 장로가 15개 교회 39명이 참석한 것을 보고하여 개회하고 신입회원을 환영했다. 이어 회의록서기 이상두 장로가 전회의록 낭독, 총무 서희원 장로가 사업 보고, 감사 송병운 장로가 감사보고, 회계 장윤성 장로가 회계보고 후 “제1부회장을 수석부회장으로 명칭 변경하는 것으로” 회칙 개정하기로 했다. 제12대 증경회장 박성복 장로가 임원개선 기도, 제31대 증경회장 김성수 장로가 임원개선 결과 발표 후 임원개선, 신구 임원 교체, 의사봉 전달, 직전 회장에게 공로패 증정, 신임회장 가족 소개, 안건 토의했다. 잔무는 신임원에게 맡기기로 하고 돌다리교회 당회원들을 소개 후 제27대 증경회장 박상준 장로의 폐회기도로 은혜롭게 정기총회를 마무리하고 교회에서 정성껏 준비한 애찬을 나누며 친교했다. -
김병중(Th.D) 01-11 21:40
중서울노회남전연, 금곡교회에서 순회예배 및 월례회
중서울노회 남전도회연합회(회장 정기영 집사) 제44회기 제5차 순회헌신예배 및 월례회가 2025년 1월 11일 오후 5시 남양주시 사릉로에 소재한 금곡교회(이면수 목사 시무)에서 있었다. 순회헌신예배는 회장 정기영 집사의 인도로 부총무 이준량 집사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 표어 제창, 6부회장 양흥철 장로가 기도, 김재현 장로가 창 1:1-2 봉독, 금곡교회 남전도회가 특송했다. 금곡교회 이면수 담임목사가 '하나님의 영이 임하소서'이란 제목으로 “요즘 여러 가지로 어려운 가운데 있다. 이때 예수님 앞으로 나오며 안으로 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심을 알아야 우리가 어려울 때 도우신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심을 믿고 날마다 고백하며 어려울 때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창조시 흑암 가운데 주의 영이 운행하셨듯이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새로워져야 한다. 세상은 발전해 가는데 우리의 심령은 어떠한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고 발전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이 세상을 고쳐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다윗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했기에 골리앗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울 수 있었다. 우리도 하나님의 영이 임해 강하고 담대하기 바란다”고 설교했다. 신년하례식 회계 장성규 집사가 헌금 기도,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민족 복음화를 위하여 / 지교회 부흥과 중서울남전도회연합회 부흥을 위하여 / 금곡교회와 금곡교회 남전도회 발전을 위하여' 다 같이 뜨겁게 합심기도 후 25대 증경회장 송병운 장로가 마무리 기도한 후 총무 정인성 집사가 광고하고 이면수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친 후 신년하례식을 했다. 회무 처리 월례회는 회장 정기영 집사의 사회로 33대 증경회장 이영철 집사가 기도, 서기 이재근 집사가 14개 교회 회원 61명이 참석한 것을 보고해 개회, 회의록서기 이금재 장로가 전 회의록 낭독, 총무 정인성 집사가 사업 보고, 회계 장성규 집사가 회계보고 했다. 우수 교회 및 우수 회원 시상 안건토의 시간에 회원들의 관심을 일깨워 남전도회 활동을 같이 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자고 논의했다. 금곡교회 송병운 장로가 금곡교회 및 남전도회를 소개 후 주기도로 모든 순서를 마쳤다. -
김병중(Th.D) 01-07 18:15
평양제일노회, 2025년 신년하례예배 및 척사대회
평양제일노회(노회장 최범규 목사)가 2025년 신년하례예배 및 척사대회를 1월 7일 오전 10시 30분 삼일교회(송태근 목사 시무) B관 1층에서 가졌다. 신년하례예배는 서기 전태진 목사의 인도로 부노회장 오명균 장로가 기도, 회록서기 최형일 목사가 엡 4:20-24 봉독, 노회장 최범규 목사가 ‘옛사람을 벗어버리고’란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어 ①노회와 지교회 총회를 위하여 교직자회 회장 이성회 목사가 ②나라와 민족, 세계선교를 위하여 장로연합회장 노희국 장로가 ③노회연합회의 부흥성장 발전을 위하여 남전연합회장 박동진 장로가 ④여전도연합회와 목회자 자녀 사모를 위하여 여전연합회장 최인실 권사가 ⑤주일학교와 다음세대 부흥을 위하여 주교연합회장 이승한 장로가 특별 기도했다. 계속해 서문강 · 정융화 · 김은각 · 한윤주 · 조대천 증경노회장이 축사, 증경노회장 김진웅 목사가 신년덕담, 증경노회장 권순직 목사가 인사, 서기 전태진 목사가 광고 후 증경총회장 김선규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이어 부서기 이종배 목사의 사회로 케이크 커팅식 후 노회임원, 교직자회, 장로회, 남전도회연합회, 여전도회연합회, 주일학교연합회가 새해인사했다. 노회장기 시찰별 척사대회는 교회 5층으로 장소를 옮겨 임계빈 목사(증경노회장)가 기도 후 부서기 이종배 목사가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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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중(Th.D) 03-07 01:00
새로남교회 교역자 수련회, 경북 안동 일대에서 가져-첫날
새로남교회(오정호 목사 시무) 교역자 30명이 3월 6일부터 7일까지 경북 안동 일대에서 수련회를 가졌다. 안동은 경상북도 중북부에 위치한 도시로, 조선 시대 유교 문화의 중심지이자 한국 전통문화의 보고(寶庫)로 불린다. 안동은 수많은 유학자와 선비들이 활동했던 지역이며, 전통마을, 서원, 고택 등이 잘 보존되어 있어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로도 불린다. 또한, 독립운동과 기독교 역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던 지역이다. 안동 지역은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하였으며,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 유적이 발견되었다. 삼국 시대에는 신라의 영역에 속하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는 지방 행정구역인 '고창군'으로 불렸다. 고려 시대에는 '안동부'로 승격되었으며, 당시 많은 명문가가 자리 잡으면서 유학과 학문이 발달했다. 조선 시대에는 유교 문화를 중심으로 학문과 교육이 발전했다. 안동은 퇴계 이황(1501-1570)과 류성룡(1542-1607) 같은 대표적인 유학자들을 배출하였으며, 이들의 학문적 업적은 도산서원, 병산서원과 같은 교육기관에서 계승되었다. 이 시기의 안동은 양반 문화를 대표하는 지역으로, 여러 가문들이 모여 살며 유교적 가치관을 실천하는 삶을 이어갔다. 특히, 하회마을과 같은 전통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가문의 종택과 서원들이 세워지면서 학문과 예절 교육이 이루어졌다. 일제강점기에는 많은 안동 출신 인물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항일 시인 이육사(1904-1944)가 있으며, 그는 문학을 통해 독립 의식을 고취시켰다. 또한, 이원영 목사와 같은 기독교 지도자들도 민족운동에 헌신하였다. 첫날 일정은 새로남교회 마당에 모여 기도와 찬양 후 오정호 목사가 “안동 일대를 둘러보면서 과거 선비들의 정신문화를 체험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는 당부의 말을 듣고 출발했다. 첫 번째 방문지는 한국CE 100주년 기념교회로 지어진 안동사랑의교회였다. 2021년 전국CE 회장 윤경화 집사의 헌신과 새로남교회의 후원을 통해 교회가 세워졌다. 그러나 다른 농촌 교회와 같이 적은 성도 수로 인해 운영에 어려움이 있으나 오정호 목사가 격려했으며 온 교역자들이 교회의 부흥을 위해 합심기도하고, 담임목회자를 위한 건강식품과 금일봉을 전달했다. 이어 식당으로 옮겨 중식을 나눴다. 이 식당은 권택성 장로가 교직에 있을 때 제자였던 여집사가 운영하고 있었으며 놀랍게도 여집사가 용인제일교회에서 교육부서 부장으로 섬길 때 교역자였던 새로남교회 교역자를 15년 만에 만나게 되어 음료수를 서비스로 받았다. 두 번째 방문지는 병산서원이었다. 이곳은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에 위치한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서원 중 하나로 서애 류성룡(1542-1607)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본래 풍악서당이라는 이름으로 고려 말부터 존재했으나, 조선 중기인 1572년 류성룡이 이를 확장하고 교육기관으로 발전시켰다. 이후 1614년(광해군 6년) 그의 문인들이 서원을 설립하고 병산서원이라 명명하였다. 병산서원은 조선 시대 서원의 전형적인 배치 양식을 따르며, 만대루라는 누각에서 바라보는 낙동강의 풍경이 특히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만대루는 강당 앞에 위치한 2층 구조의 누각으로 학자들이 학문을 하고 자연을 감상하며 사색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서원의 건축적 특징은 자연과의 조화에 있으며, 조선 후기 서원의 건축미를 대표하는 유산으로 평가받는다. 1868년(고종 5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불구하고 병산서원은 훼철되지 않고 존속할 만큼 역사적 가치가 높았다.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 중 하나로 지정되어 있으며, 매년 향사가 열려 선현을 기리고 있다. 이어 하회별신굿탈놀이를 관람했다. 세 번째 방문지는 하회마을이었다. 하회마을은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위치한 전통 한옥마을로, 낙동강이 마을을 감싸듯 흐른다고 하여 '하회'라는 이름이 붙었다. 16세기 이후 풍산 류씨 가문의 집성촌으로 자리 잡았으며, 특히 서애 류성룡과 그의 형 류운룡을 비롯한 명문가 출신들이 배출된 유서 깊은 마을이다. 가장 큰 특징은 한국의 전통적인 양반 문화와 건축 양식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을에는 조선 시대 상류층이 거주하던 기와집과 평민들의 초가집이 공존하며,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양진당(보물 제306호), 충효당(보물 제414호) 등이 있다. 또한, 하회마을은 탈놀이로도 유명하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원래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민속놀이였으나, 현재는 관광객들을 위한 공연으로 발전하였다.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방문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어 하회세계탈박문관을 관람 후 수석을 구경했다. 네 번째 방문지는 월영교였다. 월영교는 안동댐 아래에 위치한 국내에서 가장 긴 목조 다리로, 총길이는 약 387m에 달한다. 2003년 건설되었으며, '달빛이 비치는 다리'라는 뜻을 담고 있다. 월영교는 단순한 교량이 아니라, 주변의 경관과 어우러지는 문화공간으로도 활용된다. 야간에는 조명이 더해져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사계절마다 색다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가을에는 단풍이 어우러져 낙동강 위를 거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한, 월영교 입구에는 '월영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이는 조선 시대 안동 지역의 선비 문화와 연관이 있다. 월영교는 '월영가'라는 전설적인 사랑 이야기를 테마로 한 조형물과 시비(금전화) 등이 조성되어 있다. 마지막 방문지는 동문교회였다. 반진모 담임목사와 장로들, 여교인들의 환대를 받고 첫날 일정에 대한 소감을 말한 후 교회에서 준비한 떡과 오정호 목사가 준비한 간고등어를 선물로 받았다. 폐회 시간에 근처에서 업무를 보던 전국장로회연합회 홍석환 장로가 잠시 방문해 격려하는 시간을 갖고 은혜로운 첫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
김병중(Th.D) 02-18 19:41
제자훈련 칼넷 평신도 지도자 컨벤션 - 강의, 찬양페스티벌
제자훈련 칼넷 평신도 지도자 컨벤션이 "공동체의 심장, 평신도 지도자여-다시 힘차게 박동하라!"를 주제로 2월 18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새로남교회(오정호 목사 시무)에서 있었다. 본당과 부속시설을 가득 채운 1800여명의 참석자들은 예배와 주제 · 선택강의, 김순영 소프라노 & 윤정수 테너가 공연하는 페스티벌을 통해 제자훈련에 대한 열정으로 다시 뜨거워지는 시간을 가졌다. 선택 강의1은 칼넷 이사장 오정호 목사가 ‘목회자의 안전지대(잠 29:25-27)’란 제목으로 강의했다. "사역지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나의 사역의 원리는 무엇인가? 예) 1. 능력보다 화목 2. 혼자보다 함께 3. 문화보다 복음 4. 현재보다 미래 5. 나보다 주님이다" ◆ 담임목사의 뜻에 맞는 부교역자의 특성: 첫째, 맡겨진 부서와 교구를 훤히 꿰고 있는 사역자다. 이 시대는 사역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사역자가 아쉬운 때다. 교회의 중점 사역(전도축제, 성경통독, 예배당 건축, 교육관 증축, 해외선교, 소외계층 돌아보기 등)에 마음을 두는 사역자가 의외로 적은 것이 현실이다. 진돗개는 자기 영역 안에 들어온 동물을 반드시 제압한다고 하는데 그와 같이 사역자도 자신의 사역 영역에 속한 모든 것을 훤히 꿰고 있어야 한다. 둘째, 시간이 흐를수록 교우들로부터 '진국'이라고 칭찬받는 사역자다. 사역의 평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나타나게 된다. 기술이나 잔재주가 없더라도 우직하게 인격과 신뢰로 사역을 감당하는 사역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교회에서 칭찬을 받게 된다. 셋째, 동료들과 연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줄 아는 사역자다. 더불어 조화롭게 팀워크를 이루어 사역하는 공존, 공생, 상생 모습은 아름답다. 동료는 경쟁자가 아니라 함께 사역하는 동역자라는 것을 알고 실천하는 사역자는 성도들의 기쁨이 된다. 넷째, 자신의 위치와 분수를 지키는 사역자다. 자기 분수를 깨닫지 못하여 넘어서거나 모자라는 부교역자는 흔하고 수분(守分)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역자는 귀하다. 겸손하게 자신의 자리와 위치를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다섯째, 자신의 진로와 사역 현장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사역자다. 담임목사와 소통이나 불통이냐는 사역의 판도를 가른다. 독단적인 일방적 통보는 자신과 교회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론을 내기 전에 대화하고 반드시 ‘출필곡 반필면’해야 한다. 여섯째, 담임목사에게 날아오는 비난과 오해를 대신 맞을 수 있는 사역자다. 결정적인 순간에 부교역자는 어느 편에 설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담임목사 목회의 불만적인 요소에 기름을 끼얹는 사역자는 많으나 폭풍의 시기를 컵 안의 물처럼 잠재우는 지혜롭고 충성된 부교역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은 현실이다. 일곱째, 유행에 편승하기보다 신학적 기초가 견고하며 동시에 혁신적인 목회 현장을 추구하는 사역자다. 사역의 겉멋보다 내실을 다지는 교역자에게 신뢰가 간다. 가벼우면 오래 못 간다. 반대로 무겁기만 하면 변화가 어렵다. 말씀을 중심에 두면서 열정과 균형과 절제의 미덕을 가진 부교역자와 동역하는 기쁨을 누리고 싶어 한다. 여덟째, 목회 야망이 아닌 목회 소명이 견고한 사역자(목회 소명> 목회 야망)다. 사역지를 목회 야망을 위한 정거장으로 여기면 안 된다. 오늘 맡겨진 자리에서 양 떼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소명이 분명한 사역자는 반드시 열매를 거둔다. 아홉째, 소나무처럼 언제나 앞뒤가 동일한 모습의 사역자다. 자신의 유익에 따라 좌고우면하지 않고 교회 앞에서 반듯한 사역자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사역자가 되어야 한다. ◆ 금전문제에 대해 투명해야 한다. 목회자는 금전 문제에 대하여 투명해야 한다.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연루되면 목회자의 이미지에 치명상을 입게 된다. 이에 관하여 금전 문제에 대한 몇 가지 원칙을 살펴보자. 첫째, 공적인 재정은 공적으로 한다. 부서에서 사용되는 재정은 공적인 절차를 밟고 반드시 영수증과 근거를 넘겨야 한다. 그리고 예산에 근거하여 재정 계획을 세우고 집행해야 한다. 재정 문제는 악의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근거 없는 소문을 만들거나 비난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들에게 어떠한 근거도 주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둘째, 교회 재정에 다른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 교회 재정을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속여 사용해서는 안 된다. 개인 식사영수증을 청구하거나, 교회 비품을 구입할 때 리베이트를 받는다거나, 영수증에 금액을 다르게 적어서 올리는 경우 등은 치명상을 입힐 수 있으므로 이런 문제에 있어서 투명해야 한다. 또한 교회 내 공사 수주, 물품 구매의 일로 금품을 요구하거나 대가성 있는 선물을 요구해서도 안 된다. 목회자는 하나님 앞에 선한 청지기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셋째, 금전적인 기대를 갖고 심방이나 만남을 가져서는 안 된다. 성도들에게 일종의 압력을 행사하여 필요한 것들을 얻어 내는 행위는 목회자의 품위를 현격히 떨어뜨린다. 간혹 재정적인 이득을 목적으로 성도들과 접촉하여 요구하는 목회자들이 있다. 성도가 운영하는 병원이나 사업체에서 상습적으로 무료 서비스나 물건을 받아오는 행위, 자신의 필요를 SNS로 포장하여 기도 요청하는 일을 금해야 한다. 목회자가 사역지를 옮겼다면 이전 교회 성도들과는 어떤 이유로든 접촉하지 않는 것이 품격 있는 목회자의 모습이다. 넷째, 가정과 개인의 경제관이 분명해야 한다. 부교역자들 중에 경제생활에 여유가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나 어렵고 힘든 시기일수록 가정과 자신의 경제윤리에 관해 확고한 원칙을 세워두어야 한다. 신용카드 남용을 자제하고 지혜로운 재정 사용으로 신실한 청지기로서의 삶을 사는 훈련을 계속해야 한다. 계획 없는 소비는 가정 경제를 어렵게 하고, 그로 인해 성도들에게 재정을 요구하거나 교회 공적 재정 유용의 유혹 앞에 흔들릴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가정 경제에 대한 분명한 원칙과 계획을 세워 실천해 가야 한다. 다섯째, 청지기로서 헌금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 현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은혜에 대한 감사와 신앙고백의 표현이다. 경제적으로 어렵더라도 신실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며 하나님께 반듯하게 헌금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목회자가 하나님 앞에 바르지 못하면 성도들 중 누가 온전한 헌금 생활을 하겠는가? 기쁜 마음으로 드리되 넘치도록 주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풍성하게 드리는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 목회자가 헌금을 마치 세금 내듯 한다면 그 그릇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로 귀하게 쓰임 받기 어렵다. 헌금을 온전하게 드리는 목회자라면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청지기로서 바른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 끈기있는 리더십 교회는 하루아침에 변화하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목회자의 가장 큰 임무 중 하나는 ‘견디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한국교회 전반에 갑작스러운 변화를 모두가 기대하고 있지만 그런 변화는 쉽게 이루어지기가 어렵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묵묵히 교회를 지키고, 변함없이 기도하는 끈기 있는 리더십이라고 생각합니다. 롱타임으로, 장기간 내다보고 장거리 싸움을 준비하는 그런 인내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가 한순간에 크게 변하기를 기대하기보다는 무엇보다도 현재의 분위기를 잘 이끌어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옥한흠 목사님도 다음 세대 사역자들을 안타까워하셨는데, 특별히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고 생활에 큰 지장이 없는 상황에서 교회가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한순간에 확 변하지 않는다고 해서 지루해하거나 힘들어해선 안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시대적 상황을 수용해야 한다고 보며 이런 때 일수록, 우리가 영적으로 집요하게 싸우며 열정을 가지고 하향 곡선으로 바꿔내는 리더십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박지웅 목사/ 내수동교회 ◆ 결론 •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목회자 되기를 원합니다! •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목회자 되기를 원합니다! • 예수님만이 드러나는 목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제 강의는 박성규 총신대 총장이 ‘교회, 주님의 희망!’이란 제목으로 “교회가 여전히 희망될 수 있는 비결은? 1. 그리스도의 몸 다운 몸이 되어야 한다. 1)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지시(통치)를 받아야 한다 - 순종, 전적 위탁 2) 유기체 다워야 한다. 유기체: 생물체처럼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각 부분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서로 도와 생명을 유지하는 것. 몸의 비유는 유기적 관계(organic relation)와 생명의 연합(vital union) 3) 만물을 충만케 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충만함이 있는 곳은 교회 밖에 없다. 그리스도의 충만함만 있다면(진정한 제자가 된다면) 교회는 회망이다! 오늘 이 시대 교회의 가장 큰 숙제는 그리스도로 충만한가이다! 통일-전적 위탁-순종하는 교회가 주님의 희망, 이 시대의 희망이다! 교회의 다섯가지 유형 (Christ=교회, culture=사회) 1. 사회에 대립하는 교회 (Christ against culture) 2 사회의 교회 (Christ of culture) 3. 사회 위에 군림하는 교회 (Christ above culture) 4. 모순적인 교회와 사회 (Christ and culture in paradox) 5. 사회를 변혁시키는 교회 (Christ the Transformer of culture) 만물의 주권자이신 그리스도께서 ‘내 것이야?’ 라고 외치지 않는 우리 인간의 실존 영역은 단 일 평방 인치도 없다. 교회도 변화되어야 한다. 기독교인의 행동 철학은 목적, 기준, 동기이다. 결론적으로 교회는 주님의 희망이다. 그리스도로 충만해 질 때 주님과 세상의 희망이 된다. 그리스도의 통치에 순종할 때 그리스도로 충만해진다. 그리스도로 충만한 증거는 교회가 유기체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충만한 증거는 교회가 공교회성을 가지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충만한 증거는 교회가 세상의 변혁자로 서는 것이다. 세상의 변혁자는 사랑과 섬김, 복음 전파와 문화 변혁이다”라고 말했다. 선택강의 2는 이권희 목사가 ‘소그룹 안에서 받는 상처 치유’란 제목으로 “받아야 할 것을 받지 못할 때 상처가 된다. 편애해서는 안된다. 또한 받지 말아야 할 것을 받을 때 상처가 된다. 갈등 때문에 관계가 어려워지고 상처를 받게 된다. 소그룹에는 탐색기, 애착기, 권태기, 성숙기가 있다. 상처는 말, 탓, 다름, 섭섭함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을 조심해야 한다. 아무리 화가 나도 막말은 하지 말자. 남의 인격을 깍아 내리는 말을 하지 말자. 뒷담화를 하지 말자. 서로 이해하자.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의지를 가지라. 갈등을 히결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라. 마음을 넓히자. 공감하자-잘 듣고, 상대방의 감정에 공감해주고, 요약해 주며 내 느낌을 말해주라. 격려하자-격려하는 사람 주변에 사람들이 모인다. 웬만한 문제는 그냥 안고 가자! 남이 나에게 잘해주는 것은 기적이다. ‘남이 나에게 잘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상처가 없는 개인도 없고 상처가 없는 관계도 없다. 상처를 변화와 성숙의 기회로 삼자”고 말했다. 마지막 순서는 김순영 소프라노 & 윤정수 테너가 공연하는 페스티벌이었다. 이들은 독창, 혼성으로 찬양과 클레식 곡을 불러 큰 은혜와 감동을 끼쳤다. 특별찬조로 새로남교회 제자반 정의인, 김성수 집사가 로마서 8장을 힙합으로 불렀다. 오정호 목사는 컨밴션에 참석한 담임목사들을 앞자리로 불러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가 우리 칼넷”이라고 말한 후 찬양하고 전북지역대표 오주환 목사의 기도로 마무리했다. 오주환 목사의 예안교회는 최근 총신대학 기숙사 건립을 위해 1억원을 기부했다. -
김병중(Th.D) 02-18 11:23
제자훈련 칼넷 평신도 지도자 컨벤션, 새로남교회에서 개최
제자훈련 칼넷 평신도 지도자 컨벤션이 "공동체의 심장, 평신도 지도자여-다시 힘차게 박동하라!"를 주제로 2월 18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새로남교회(오정호 목사 시무)에서 있었다. 본당과 부속시설을 가득 채운 1800여명의 참석자들은 예배와 주제강의, 선택강의, 소프라노 · 테너 페스티벌을 통해 제자훈련에 대한 열정으로 다시 뜨거워지는 시간을 가졌다. 칼넷 이사장 오정호 목사가 “우리는 걸어 다니는 교회이다. 우리 모두 평신도 지도자의 마음을 갖고 사명을 감당하자”고 환영사 했다. 다음은 환영사 전문이다. 제자훈련 칼넷 평신도지도자 컨벤션에 전국 각지에서 달려오신 동역자님들을 격하게 환영합니다. "공동체의 심장, 평신도 지도자여-다시 힘차게 박동하라!"는 주제로 모이는 이 소중한 모임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우리 모두를 새롭게 하기를 소원합니다. 만남의 축복이 가슴마다 아로새겨지기를 축복합니다. 그동안 한결같이 주님사랑, 교회 사랑, 영혼사랑으로 달려오신 모든 동역자님들 개인과 가정과 소속된 교회 위에 주님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가득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는 모두 걸어 다니는 주님의 교회입니다. 한국교회입니다! 저의 환영하는 마음을 소그룹인도자로 사역하는 순장의 기도에 담아 드립니다. 순장의 기도 영혼의 푸르름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저의 영혼의 목자가 되신 주님께 내 모습 이대로 나아왔습니다. 순원들의 영혼을 돌아보기 전, 먼저 저의 영혼이 주님의 보혈로 늘 세탁되게 하소서. 세속의 도전과 저 자신의 나약함으로 인하여 의기소침해 있을 때 주님의 은혜의 손길로 저를 어루만져 주소서. 새롭게 회복시켜 주소서. 저의 속사람의 강건함을 붙들어 주소서. 저에게 맡겨주신 순원들의 가정의 평안을 위하여 간구의 무릎을 꿇을 때마다 응답의 복을 내려주소서. 저의 가정에도 주님의 평강이 가득 흘러넘치게 하소서. 만민의 교사이신 주여! 진리에 목마른 귀를 열어주셔서, 주님의 음성을 간절함으로 듣게 하시고 사랑에 갈급한 심령이 되어 하늘의 자원으로 가득 채워지게 하소서. 맡겨진 순원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의 영혼의 상처와 삶의 눈물을 헤아릴 줄 아는 신령한 눈을 열어주소서. 동역자 순장들과 순원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동고동락의 성숙한 인품으로 빚어지게 하시고, 오늘의 시몬에게서, 내일의 베드로의 비전을 보게 하소서. 거친 사울에게서, 온유한 바울의 꿈을 간직하게 하소서. 농부가 이른 봄에 씨앗과 함께 가을 추수에 대한 거룩한 꿈을 파종하듯, 영혼성숙과 영적재생산의 비전을 가슴에 아로새겨 살게 하소서. 주님의 거룩한 사역에 부르심을 받았으니 주님과의 교제가 더욱 깊어지게 하시고, 뜨거워지게 하소서. 그리하여 주님 안에서 사람을 만나고, 영혼을 세우는 일에, 쓰임 받음을 늘 감사 감격하며, 한결같이 주신 사명 감당하게 하소서.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개회예배는 칼넷 전국부대표 조정희 목사의 인도로 칼넷 경남대표 강대열 목사가 기도, 칼넷 전국대표 김종원 목사가 골 1:28을 본문으로 ‘왜 다시 제자훈련인가?’란 제목으로 설교했다. 김 목사는 “우리는 종교 소비자가 되어서는 안 되며, 벤치 워머가 되어서도 안 된다. 교회에 이런 신자들이 많아지면 교회는 이들의 요구에 맞게 변질되게 되며 교회의 본질을 놓치는 교회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다시 제자훈련을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자훈련은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초기 신자들은 ‘제자’로 먼저 불려지고 이후 ‘신자’라고 불려졌다. 예수님은 제자로 삼으라고 명령하셨다. 제자훈련은 끝까지 붙들어야 할 본질이다. 교회는 가르쳐야 하고 교인들은 훈련을 받아야 한다. 완전한 자로 세워지기 위해서이다. 주님 안에 있는 제자훈련은 주님이 이끌어 가시기에 실패가 없다. 우리는 주님께 부름을 받아 세상으로 보낸 받은 제자이다”라고 설교했다. 칼넷 사무총장 조성민 목사가 광고 후 칼넷 고문 최홍준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
김병중(Th.D) 01-11 22:18
시온제일교회, 감격의 헌당감사예배
대한예수교장로회 서울동노회 소속 시온제일교회 헌당감사예배가 1월 11일 오후 3시 본당에서 있었다. 예배는 이상근 담임목사의 인도로 고효곤 장로가 기도, 인도자가 시 145:1-5 봉독, 할렐루야 찬양대가 찬양했다. 직전총회장 오정호 목사가 ‘누가 왕이십니까?’란 제목으로 “교회 건축에는 땀과 눈물이 필요하다. 헌신하신 모든 분들로 인해 자손이 복을 받기 바란다. 헌당을 통해 이 복이 넘치기를 바란다. 그런데 헌당은 종착이 아니라 시작이다. 주님께 헌당하는 것은 너무나 귀한 일이다. 그리고 시온제일교회의 왕은 하나님이시기에 주를 높이고 송축해야한다. 즉 예배해야한다. 이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주님과 우리 사이에는 어떤 것도 끼어들지 않고 늘 친밀해야 한다. 헌당 후 더 큰 은혜와 복이 주어지기를 바란다. 또한 예배와 선교에 힘쓰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말씀, 만남, 가정, 건강, 경제의 복을 누리시기 바란다”고 설교 후 서울동노회 노회장 소재혁 목사의 봉헌,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축사 권면 헌당식은 이상근 목사가 건축보고 · 헌당기도 후 총신대학교 박성규 총장이 “건축하게 되어, 이 교회에서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기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어 치유와 은혜가 있을 것이기에 격려하며 수고한 분들에게 큰 복이 있기를 바란다”라고 격려사, 광주중앙교회 석찬영 목사가 “이곳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시온의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가 되시기 바란다”라고, 곤지암만나교회 김광탁 목사가 “벧전 5:1의 말씀을 드린다. 시련을 견딘 금이 귀하다. 큰 부흥의 역사를 기원한다”라고, 하남교회 방성일 목사가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이루기 바란다”라고, 혜림교회 김성오 원로장로가 “헌당 이후 큰 부흥을 이루기 바란다. 새로운 성도들이 잘 정착하도록 배려해 주고, 거룸이 기름질 때 좋은 결실을 하듯이 밑거름이 되시기를 바란다”라고 축사, 혜림교회 김영우 목사가 “새가족이 교회에 올 때 담임목사를 보고 오는 경우가 많다. 성도 사랑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란다. 교인들도 목사를 사랑해야 교회가 잘 된다”라고, 주영광교회 이석관 장로가 “교회 이름을 잘 지었다. 앞으로 제일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권면했다. 최천곤 장로 지도로 Give & Share 색소폰 앙상블이 특별연주, 주영규 집사(명지대 교수)가 특송했다. 감사패 수여 건축을 담당한 4개 업체와 수고한 교인들에게 감사패 수여 후 주기도송으로 은혜로운 헌당식을 마무리하고 애찬을 나누며 친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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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중(Th.D) 01-23 22:28
【心콕】 기부 천사 가수 김장훈의 미담 스토리
“기부 천사” 김장훈 가수를 취재 현장에서 처음 실물로 보게 됐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지구촌나눔재단 정기총회 때였다. 이사장 이선구 목사는 15년 전부터 시작된 김장훈 가수와의 인연에 대해 말했는데 마음을 울렸다. 15년 전 태어난 지 두 달 된 여자아이가 중증장애 시설인 소망의집에 맡겨졌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 서울아산병원에 입원시켰다. 심장 수술을 했는데 수술비가 4,200만원가량 나왔다. 2,000만 원은 해결했는데 나머지 금액이 부족했다. 이때 가수 김장훈이 이 소식을 듣고 마음에 부담이 됐지만 도와줬다. 그 아이가 퇴원할 때 김장훈이 병원에 가 그 아이를 품에 앉으니 너무 좋아 졸지에 이 아이의 아빠가 됐다. 이후 수시로 그곳을 방문해 아이들에게 후원하고 있다. 이제 은혜라는 이름을 갖게 된 그 아이는 15살이 됐는데 결혼할 때 김장훈은 손잡고 식장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선구 이사장은 김장훈 가수에게 “자신을 위해 손 벌리면 거지고 어려운 사람을 위해 손을 벌리면 성자다”라고 했는데 그는 이 말을 마음에 간직하고 선한 일을 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
김병중(Th.D) 01-21 18:35
【心콕】 위임받는 목사에게 주는 권면
지난 12월 28일 성남제일교회에서 홍정기 목사의 원로목사 추대 및 천동원 담임목사의 위임 감사예배가 있었다. 이때 증경노회장 김재호 목사가 위임목사 권면했는데 심콕했다. 김 목사는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성도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은혜를 끼치며 말씀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나가라. 둘째, 원칙과 기준이 있는 목회를 해야 한다. 성경, 헌법, 노회 규칙, 교회 정관을 무시로 살펴서 원칙과 기준이 있는 목회를 하라. 셋째, 관계 맺기를 잘하기 바란다. 먼저 성도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바란다. 또한 목사의 소속은 당회가 아닌 노회이기에 노회원들과 좋은 관계를 갖기 바란다. 노회에서 성남제일교회로 파송시킨 것이다. 노회의 선배, 동료, 후배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바란다”라고 했다. 3분 남짓한 시간에 위임목사에게 필요한 내용을 잘 전해 20년 전 내 위임식 때를 떠올렸다. 세월이 흘러 뭐라고 권면 받았는지 기억을 못 하지만 이 권면은 위임받는 목사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수십 년 목회하고 있는 선배의 충언이기에 마음에 잘 새길 필요가 있다고 본다. -
김병중(Th.D) 01-21 16:43
【心콕】 축사는 이렇게 - 축사의 달인 정채혁 · 이해중 장로
지난 1월 18일 오후 3시 중서울노회장로회 제31회 정기총회가 구리시 안골로에 소재한 돌다리교회에서 열려 신현철 장로가 명예회장으로, 전창완 장로가 회장으로, 이옥섭 장로가 제1부회장(수석부회장)으로 선출됐다. 이날 정채혁 장로(전국장로회연합회 증경회장)와 이해중 장로(서울서북지역장로회 연합회 회장, 전국장로회연합회 수석부회장)가 축사했다. 정채혁 장로는 전국장로회 회장 홍석환 장로를 대신한 것이다. 그런데 순서에 착오가 생겨 이해중 장로가 먼저 축사하고 정채혁 장로가 이어서 했다. 이날 현장에서 취재하면서 두 분을 축사의 달인이라고 생각했다. 너무나 잘했기 때문이다. 행사 취재를 가면 축사, 격려사 등 순서가 있는데 대부분 순서자가 많아 수박 겉핥기식이거나, 행사와 상관없는 발언, 시간 초과 등 별일이 많다. 그런데 이날은 노회장로회 정기총회로 순서가 많지 않고 축사도 2명이었기에 각 5분여간 넉넉히 축사할 수 있었다. 먼저 이해중 장로의 축사를 보면 초청해 준 것에 대한 감사, 다른 사람에 대한 칭찬, 불러준 기관과의 친밀한 관계 언급, 초청 기관에 있는 연관된 분들에 대한 언급, 초청 기관이 잘 되기를 격려, 본인이 속한 기관과 초청한 기관의 협력 관계 강조, 초청 기관 주요 인물에 대한 칭찬(전임 회장, 신임 회장) 등이 있었다. 5분 동안 막힘없이 내용 있는 축사를 했다. 이어 축사를 한 정채혁 장로는 자타가 공인하는 축사의 달인이다. 대타로, 두번째로 축사해야 하는 부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알차게 했다. 설교자의 설교에 대한 칭찬, 초청 기관에 대한 칭찬과 인정, 초청 기관 회원 칭찬, 초청 기관의 발전 기원, 초청 기관 주요 인물에 대한 칭찬(전임 회장, 신임 회장) 등 시종 여유 있게 축사했다. 보는 것과 하는 것은 다르다. 남 앞에서 발언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정채혁 장로가 축사나 격려사를 하는 것을 보면 늘 여유 있게 내용을 담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짧은 시간에 축사를 해야 한다면 1-2분 안에 끝내야 하기 때문에 두 장로처럼 5분여 정도 여유 있게 할 수 없다. 상황에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순서 많은 집회에 길게 발언해 봤자 좋은 소리 듣지 못한다. 그때는 짧게 하는 것이 더 호응이 좋다. 축사나 격려사를 할 기회가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장단점을 통해 배우는 게 필요하다. 이날 정채혁 장로와 이해중 장로의 축사는 여러 가지로 배울 점이 많아 심콕했다. 진정 우리 교단의 축사의 달인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
김병중(Th.D) 01-13 00:49
【설교피드백】 장순직 목사-설교자의 자기 노출
서북지역노회협의회가 신년하례회 및 구국을 위한 특별기도회를 1월 3일 오전 11시 남현교회에서 가졌다. 이날 대표회장 장순직 목사는 빌 3:13-14을 본문으로 ‘비상’이란 제목의 설교를 했다. 장 목사는 설교 도중 올해 본인이 사례비를 대폭 줄인 것에 대해 말하며 교인들이 별로 호응하지 않아 괜히 했나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은퇴를 앞두고 돈 앞에 흔들리는 자신에 대해 고백하며 그럼에도 푯대를 향해 가자는 취지의 설교를 했다. 자진해서 사례비를 줄였다는 것도 놀랍고, 이에 대해 교인들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섭섭했다는 말을 한 것도 놀랍다. 이것은 목회자도 평범한 한 인간에 지나지 않다는 것에 대한 고백이다. 장 목사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연약함을 노출했는데 이는 흔들림에 대한 좋은 예화라고 생각한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목회자는 자신의 부족함을 노출할 필요가 있다. 그럼으로써 목회자 자신도 흔들리는 가운데 신앙으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게 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이 자기 노출을 참신하게 받아들였다. 물론 과유불급이라고 목회자가 늘 자기 이야기만 해서는 안 된다. 자기 자랑을 해서도 안 된다. 아주 가끔 목회자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은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동영상 8분 42초부터의 설교 요약이다. “바울처럼 박해와 저항을 당하지 않지만 우리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유혹과 미혹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전에 그렇지 않았는데 40년 목회 은퇴가 다가오자, 걱정이 생겼다. 모아둔 돈도 없다. 그러자 남에게 받는 돈봉투 두께에 신경이 쓰이는 나이가 됐다. 그동안은 가난한 농촌 목회자로서 이에 대해 자유로웠었다. 그런데 변질이 되고 위축되는 것 같아 작년 말 결단하고 사례에서 천몇백만 원을 줄였다. 제직회에서 이에 대해 말했는데 교인들은 엄지손가락을 들고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팔짱을 끼고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잘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어 하는 나를 보며 미성숙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루 종일 ‘돌리도, 돌리도’를 불렀다. 괜히 했다는 생각도 하며 돈에 약해져 가고 있는가 하는 생각도 했다. 목사는 직업으로 생업을 위한 것인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위축된다. 정년을 앞두고 흔들리는 것 같다. 100세의 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목표가 선명했기에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울도 그랬다. 푯대가 분명했다. 저도 그랬는데 정년을 앞두고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소원과 상급을 믿고 주님을 붙들 수 있다면 비록 흔들릴지라도 이 길에서 이탈하지 않을 것이고 비상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확신 속에 달려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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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 임원들은 공과사를 구분해야 할 것이다
109회 총회에서 GMS 선관위원회(위원장 이성화 목사) 조사처리위원회가 가결됐다. 이미 여러 언론들이 GMS 행정사무총장 선거와 관련해 선관위원장의 처신에 많은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이로인해 조사 처리를 받게 된 것이다. 곧 임원회에 의해 조사처리위원회가 구성될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이성화 목사는 지난 10월 6일 교회설립 40주년 행사를 성대하게 가졌다. 초청된 인사는 김종혁 총회장을 비롯해 화려하다. 장봉생 부총회장, 권순웅 증경총회장, 박용규 총회총무 등등. 혹시나 이것이 앞으로 그가 받아야 할 조사 처리에 하나라도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란다. 임원들은 공사를 잘 구분해야 할 것이다. 진행 상황을 관심 있게 지켜볼 것이다. 순수한 선교 조직인 GMS의 명예를 실추시킨 당사자가 어떤 조치를 받을지 총회원들의 관심이 크다는 것을 밝혀둔다.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해서는 안될 것이다.김병중(Th.D) 10-07 16:20 -
그래도 교회 세습은 안 된다
예장합동은 20여 년 전에 만든 70세 정년제를 상향하거나, 폐지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반면 예장통합은 만든 지 몇 년 안 된 세습금지법을 변경하거나 폐지하려고 애쓰고 있다. 세습(世襲)은 “한 집안의 재산이나 신분, 직업 따위를 대대로 물려주고 물려받음”을 말한다. 이 뭔 코미디인가? 그 당시 법을 만들 때는 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며, 찬반 격론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각 지교회와 노회가 동의해 법을 만들었다. 그런데 얼마나 지났다고 이 법을 폐지해 보려고 매년 총회 때마다 격론을 벌여야 하는가? 그나마 예장합동측 교회들은 세습금지법이 없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합동교단은 세습금지법을 만들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나이 든 목사, 특별히 개척교회 목사는 자식에게 교회를 물려주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세습을 자행하고 있다. 그러나 세습금지법이 없다고 해도, 아무리 봐도 교회 세습은 “아니다”. 교회는 목사의 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인데 어찌 가업을 물려주듯이 세습한단 말인가? 어느 교회는 세습에 성공하기도 하고, 어떤 교회는 그 일로 인해 난리가 나기도 한다. 교회 세습은 요즘 사람들이 예민한 “공정과 상식”에 맞지도 않는다. 제사장들은 세습했다는 말은 하지도 말자. 어떻게 성경을 그렇게 취사선택해 왜곡할 수 있는가? 남 주기 아까우니 자기 자식 주는 게 아닌가? 평생 목회하고 마지막에 목회를 망치는 세습은 결코 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목사 것이 아닌 주님의 것이다. 내 것인 양 마음대로 하지 말자. 그럼에도 여전히 "뻔뻔하게" 교회를 넘겨주는 아버지 목사들과 "즐거이" 넘겨받는 아들 목사들이 많으니 할 말이 없다. 있던 정년제 마저 변경하거나 폐지할려고 하는 합동교단은 과연 교회 세습 금지법을 만들 수 있을까?김병중(Th.D) 10-07 11:06 -
【단상】 행사와 예배를 방해하는 기자들(?)
지난 10월 4일 전국남전도회연합회 제44회기 회장 이 · 취임 감사예배 현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모 장로가 사진을 찍으러 강단 앞으로 나가 있던 기자에게 “뒤에가서 찍으라”고 짜증 섞인 말을 했다. 그 기자는 계면쩍은 표정을 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앞에 나가 사진 찍는 일은 계속됐다. 요즘 나는 취재 갈 때 카메라를 들고 다니지 않는다. 4년 전 신문사를 시작하면서 거금을 들여 카메라와 일반 렌즈, 망원렌즈, 플래시를 구입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스마트폰 카메라를 사용한다. 우선 카메라는 무겁다. 망원렌즈까지 포함하면 어깨가 아플 정도다. 또한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려면 앞으로 나가야 한다. 망원렌즈를 사용한다 해도 앉은 자리에서 찍으면 작게 나오니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예배나 행사를 방해할 수 있다. 그래서 더 이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지 않는다. 다행히 스마트폰의 카메라 성능이 좋아져 멀리서 줌으로 당겨도 잘 찍힌다. 요즘 교계 기자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취재를 가면 사진 찍는 것이 쉽지 않다. 자리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예배와 행사를 방해하는 경우도 많다. 자리에 앉아 있는 목사와 장로 등 참석자들은 기자들이 앞을 가려 제대로 볼 수 없다고 불평하기도 한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래서 나는 예배 때는 앉은 자리에서 사진을 찍는다. 필요할 때 자리에서 잠깐 일어나 찍고 바로 앉는다. 설교 중에는 결코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지 않는다. 설교자와 회중을 방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총회 결의에도 어긋나는 행위다. 정진모 목사가 쓴 『헌법 해설 문답서』에 “질의 262] 예배에 관한 총회결의를 알려주세요? 답변] 3) 기도 설교 찬양할 때 강단에 올라가 촬영을 금하는 것이 좋다. (45회 총회 결의)”고 나와 있다. 교계 기자들은 대부분이 목사이다. 그러면서 예배 방해자가 되어서야 하겠는가? 행사 참석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을 해서야 되겠는가? 강대상 앞까지 나가 사진 찍는 일을 자제해야 한다. 설교 중 돌아다니며 사진 찍는 일도 금해야 한다. 예배와 행사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방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기자들의 이런 행태가 고쳐지지 않으면 조만간 “기자 출입금지, 기자 사절”이라는 경고를 받을지도 모른다. 행사와 예배를 방해하는 기자들의 행태에 대한 불만의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나부터 더욱 조심하며 취재에 힘쓰겠다.김병중(Th.D) 10-05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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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두리】 기독신문 글 지적에 대한 반응을 겪으며
최근 기독신문 사설에 대해 한마디 했다가 별 희한한 소리와 반응을 겪었다. 나는 내용을 문제 삼은 것이 아니라 문장 표현의 모호함 그리고 오류를 지적한 것이었다. 그런데 “감히 찌라시 언론이 기독신문에 대해 말하는 것이 가당키나 하느냐? 남에 대한 인신공격이다. 왜 남의 언론을 공격하느냐? 이런 글 쓰게 한 배후가 누구냐? 누가 너에게 어드바이스 해달라고 했느냐, 네가 뭔데 앞으로 기독신문 기사를 자세히 읽겠다”라는 것이냐 등등의 말을 들었다. 방금 어느 한 책을 읽다가 이에 대한 답을 발견했다. 이런 데서 위로를 편집자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물었다. 교정지에 손 많이 대고 참견이나 꼬투리 잡는 멘트 넣는 것이 기분 나쁘지 않느냐고. 그랬더니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렇지 않다고, 많이 고칠수록 고맙다고 했다. 신초샤(일본 출판사)는 워낙 꼼꼼해 교정지가 새까맣게 돼서 오는데 정말 고맙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교정지도 그렇게 새까맣게 온다고 하니 교정지가 빨갛게 와도 좌절하지 마세요, 동료 여러분(권남희,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pp. 55). 교단 소식지인 기독신문 글에 오류가 있어 애정으로 지적한 것인데 이런 반응을 보이니 참으로 노답이다. 만약 내가 다른 언론사 글이라면 이렇게 여러 번 읽고 오류를 지적하는 피드백을 썼을까? 나와 별로 친하지 않은 언론사의 글은 잘 읽지도 않지만, 우연히 봤는데 오타가 있으면 그냥 내버려둔다. 반면 친근한 언론사같은 경우 오타를 알려준다. 오타 하나가 그 기사와 신문사의 격을 얼마나 떨어트리는지 알기 때문이다. 간혹 내 기사를 읽고 오타를 지적해 주면 너무나 감사하다. 그만큼 내 기사를 꼼꼼히 읽었다는 것 아니겠는가? 이처럼 기사는 내용은 말할 것 없이 오타와의 전쟁이다. 부목사 때 주보 제작을 맡으면 오타와의 전쟁이었다. 오타가 나서 욕을 먹기도 하고, 주보 전체에 종이를 붙여가며 수정하기도 하고, 하필이면 까다로운 장로 이름이 잘 못 나가 소동이 나기도 하는 등의 일을 겪다 보니 책을 읽으면 오타가 자주 눈에 띈다. 내 기사도 여러 번 교정하는데, 나중에 읽다 보면 또 오타가 있는 것을 볼 때 등에 식은땀이 난다. 그나마 인터넷 신문은 수정이 가능하지만 지면 신문은 그것이 불가능하다. 사람인지라 오타는 피할 수 없다고 해도 매사 조심해야 할 일이다. 그걸 지적했다고 이런 말들이 들리니 이제 기독신문에서 오타와 非文을 발견하면 타산지석으로 삼고 끝내야겠다. 나나 잘하자!김병중(Th.D) 02-07 13:27 -
【피드백】 교단지 기독신문, 사설의 오류를 줄여야 한다
기독신문 2월 4일 자 사설은 『교계가 가짜뉴스의 온상이 되어선 안 된다』이기에 인터넷 신문사를 운영하는 입장이라 관심 두고 읽었다. 기독신문은 우리 교단의 교단지이며 사설은 그 신문사의 격(格)을 보여주는 논조 글이기에 몇 가지를 지적할까 한다. 첫째, 논조의 구체성이 떨어진다. 논자는 “우리 교단도 가짜뉴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심지어 가장 진리의 보루가 되어야 할 신학교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고 하면서도 신학교와 관련한 가짜뉴스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 앞에서 가짜뉴스로 피해를 당한 서울의 한 대형교회 담임목사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었는데 “신학교”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어 신학교에 무슨 일이 있어 가짜뉴스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하다. “최근 일부 유튜버들이 서울의 한 대형교회 담임목사에 대해 동성애를 옹호하고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종북 좌파라는, 사실과 거리가 먼 가짜뉴스를 실어 나르고 있다. 온갖 왜곡된 정보를 서로 베끼고 조직적으로 퍼뜨리는 심각한 수준을 넘어서는 범죄행위이다. 개인뿐만 아니라 교회까지 상처와 피해를 주는 무서운 범죄행위이다. 목회의 근간을 흔들만큼 심각한 상황에 이르자 최근 당사자가 참다못해 적극 해명과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동성애를 단 한 번도 옹호한 적이 없다고 밝혔으며, 종북 좌파 몰이에 대해서도 자신의 가정사까지 드러내며 종북 좌파가 아님을 강하게 밝혔다. 그의 설교 영상을 보면 몇몇 청년이 나가는 경우가 생겨도 동성애가 죄라는 것을 분명히 밝힌 적도 있다.” 둘째, 非文이 눈에 띈다. 비문은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이다. “교계가 무책임하고 근거 없는 기사와 영상에 따라 흔들려 사탄의 도구가 되지 말아야 한다.” 거짓 뉴스에 흔들려 교계가 사리분별을 못하고 사탄의 도구가 된다는 말인가? 교계가 거짓 뉴스에 휘둘려 사탄에게 피해를 당하는 것 아닌가? “특징 중 가장 중요한 하나는 바로 거룩성이다.” 이것은 앞 문단과 전혀 연결되지 않는다. 사설 분량이 많이 신문사 담당자가 문장을 잘라낸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기독신문사 정도면 기사를 체크하는 담당자들이 여럿일 텐데 이런 명백한 오류가 수정되지 않은 것을 보니 놀랍다. 지면 신문이야 수정할 수 없다고 해도 인터넷판이라도 수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 사설 제목이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이 사설의 제목은 『교계가 가짜뉴스의 온상이 되어선 안 된다』이다. 온상(溫床)이란 “범죄의 온상”처럼 “어떤 현상이나 사상, 세력 따위가 자라나는 바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러면 사설의 제목 뜻은 『교계가 가짜뉴스가 자라나는 바탕이 되어선 안 된다』이다. 교계가 어떻게 가짜뉴스가 자라나는 바탕이 될 수 있는가? 교계가 가짜뉴스의 생산지라는 것인가? 가짜 뉴스는 일반 언론계가 극심하다고 본다. 탄핵 정국에 들어서면서 그 정도가 도를 넘고 있다고 본다. 교계의 가짜 뉴스는 그에 비하면 덜하고 금방 탄로난다. 어떤 매체고 어느 기자가 썼는지만 봐도 대충 감이 잡힌다. 굳이 제목을 그렇게 잡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차라리 『교계에서 가짜뉴스를 퇴출하자』, 『교계의 가짜뉴스에 휘둘리지 말자』등으로 하는 것이 사설 논지와 더 맞지 않겠는가? 교단의 회원으로서, 작은 인터넷 신문사를 운영하는 언론인으로서 앞으로 기독신문의 기사 내용을 자세히 봐야겠다. 그래서 오류가 줄어들 수 있다면 이 또한 교단을 돕는 일이 아니겠는가? [사설] 교계가 가짜뉴스의 온상이 되어선 안 된다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서 세상은 가짜뉴스로 홍역을 앓고 있다. 가짜뉴스(Fake News)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실이 아닌 내용을 퍼뜨리기 위해 뉴스가 아닌데도 뉴스의 형식으로 퍼뜨리는 정보 또는 그 매개체 등을 의미한다. 또한 넓은 의미에서는 오보나 날조, 거짓 정보, 루머, 유언비어, 패러디, 풍자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용어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뉴스 전부를 의미하기도 한다. 미디어와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의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가짜뉴스도 상상을 초월할 만큼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SNS나 유튜브를 통한 가짜뉴스는 파급력이 커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아니면 말고 식의 가짜뉴스가 퍼진 게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목회자나 성도들에게 사상이나 돈 그리고 여자문제와 관련된 가짜뉴스는 참으로 치명적이다. 진실이 밝혀지고 본인이 해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짜가 진짜로 둔갑하는 경우가 너무도 허다하고 그 피해가 엄청나게 크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일반국민의 가짜뉴스에 대한 인식’을 조사 연구하여 발표한 적이 있다. 해당 내용 중에 왜곡된 가짜뉴스에 관해서 응답자의 40.1%만이 가짜뉴스로 인식했다고 한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잘못된 가짜뉴스를 가짜뉴스라고 생각하지 않고 믿어 버린다는 것에 그 심각성을 찾을 수 있다. 최근 일부 유튜버들이 서울의 한 대형교회 담임목사에 대해 동성애를 옹호하고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종북 좌파라는, 사실과 거리가 먼 가짜뉴스를 실어 나르고 있다. 온갖 왜곡된 정보를 서로 베끼고 조직적으로 퍼뜨리는 심각한 수준을 넘어서는 범죄행위이다. 개인뿐만 아니라 교회까지 상처와 피해를 주는 무서운 범죄행위이다. 목회의 근간을 흔들만큼 심각한 상황에 이르자 최근 당사자가 참다못해 적극 해명과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동성애를 단 한 번도 옹호한 적이 없다고 밝혔으며, 종북 좌파 몰이에 대해서도 자신의 가정사까지 드러내며 종북 좌파가 아님을 강하게 밝혔다. 그의 설교 영상을 보면 몇몇 청년이 나가는 경우가 생겨도 동성애가 죄라는 것을 분명히 밝힌 적도 있다. 가짜뉴스의 피해는 너무도 크다. 이미 퍼진 가짜뉴스를 과연 주워 담을 수 있을까? 진실이 밝혀졌더라도 가짜 정보의 속성상 모든 잘못을 다시 완벽하게 주워 담고 정확하게 수정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가짜뉴스는 어느 특정인에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교단에서도 총회장을 비롯해 앞장서 일하는 이들이 무차별적 폭격 대상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최소한 교계에선 가짜뉴스를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 우리 교단도 가짜뉴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심지어 가장 진리의 보루가 되어야 할 신학교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각종 사건이나 정치적인 이해관계 속에서 가짜뉴스가 난무하는 실정이다. 가짜뉴스의 근원지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그것을 악용하는지 모른다. 이것이 더욱 비열하고 악하다. 이제는 가짜뉴스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근거 없이 확인 안 된 것을 퍼 나르기만 해도 무거운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사이트에서 정부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목적이 없었다고 할지라도 해당 뉴스로 인해 명예를 훼손당하거나 피해를 입었다면 민·형사상의 책임을 져야 하며, 특별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고 강력하게 밝히고 있다. 재미로 가짜뉴스를 만들어도 법적인 책임을 묻는 게 사회법이다. 가짜뉴스에 대해서는 교단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아니면 말고 식의 유튜브를 통한 공격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사탄은 거짓의 아비다. 기독교는 모든 분야에서 정직해야 한다. 교계가 무책임하고 근거 없는 기사와 영상에 따라 흔들려 사탄의 도구가 되지 말아야 한다. 근거 없는 추측성 기사로 인해 상대방에게 엄청난 상처는 물론 회복 불가능 상태로 몰고 가는 경우가 참 많다. 가짜뉴스는 분명 큰 죄악이다. 특징 중 가장 중요한 하나는 바로 거룩성이다. 거룩성의 핵심은 정직함에 있다. 무분별한 정보 홍수 시대다. 누구나 영상과 글을 올릴 수 있는 시대를 살지만, 거기에 따르는 윤리 지침이나 실천 방안은 너무도 걸음마 수준이다. 지금의 천박한 가짜뉴스 전성시대에 우리 교단이 선제적으로 적극적인 가짜뉴스 퇴치 운동과 정보클린 운동을 펼쳐나가기를 바란다. 더욱 건강하고 생산적인 기독교 문화를 우리 교단부터 만들어가면 좋겠다.김병중(Th.D) 02-04 21:58 -
정치 논쟁은 폭행과 살인을 부를 것이다
탈무드에 “친구를 잃고 싶지 않으면 친구와 정치, 종교 및 돈에 대해서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최근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한국일보 2월 3일 인터넷 신문은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실었다. 대전서부경찰서는 함께 술을 마시던 지인에게 흉기를 휘두른 50대 A씨를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했다고 3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1일 오전 2시 20분쯤 대전 서구 도안동 한 다가구주택에서 같이 술을 마시던 50대 B씨를 흉기로 찔러 중상을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범행 직후 119에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에게 현장에서 체포됐다. B씨는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져 긴급수술을 받아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경찰에서 "정치와 종교 이야기를 하다 말다툼이 격해져서 그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자세한 범행 경위를 조사한 뒤 송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윤석열 탄핵 정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목사 장로도 여야로 나뉘어 원수 사이가 됐다. 과거 6.25 한국전쟁을 전후해서는 좌우익이 서로를 죽이기도 했다. 현재 상황이 그렇다고 본다. 실제 극우는 지난달에 서부지방법원을 난입해 때려 부수는 폭거를 벌였다. 방화에 실패하고 사람이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이제 폭도들은 사법부의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인생을 망칠 것이다. 자기 정치 견해를 남에게 강요하지 말자. 이에 대해 논쟁하지도 말자. 그런다고 바뀌지도 않는다. 감정만 상할 뿐이다. 너무 정치에 매몰되지 말고, 우선은 헌법재판부의 결정을 지켜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그 결정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에 참 대책이 없다. 국가를 위해서도 빨리 이 혼란이 종식되어야 한다. 나라가 망하게 생겼다.김병중(Th.D) 02-0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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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09회 총회는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
109회 총회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마쳤다. 총회에 대해 총평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 몇 자를 남기고자 한다. 금번 109회 총회는 우려 반 기대 반으로 끝났다고 할 수 있다. 먼저 기대 반으로 끝났다는 것은 1) 정년 연장, 여 강도사 인허 문제는 해결이 아닌 해법을 찾아서 결의했다는 점이고, 2) 회의 진행에서 총회장의 의사진행은 그대로 찬성과 반대의 의견을 골고루 들어가며 소통하면서 결의를 꾀하려고 했다. 그래서 찬, 반의 소통을 이루어 갔다. (이전 총회에서는 총회장의 생각과 반대되는 의견은 발언의 기회도 주지 않고 묵살하거나, 결의되었다고 일방적으로 진행했다고 볼 수 있는 여러 사례가 있다) 개혁신학적이어야 하는 우리의 삶에 정처 없음이 만연되고 있는 시점에서 다시 한번 총회의 결의가 우리의 삶과 신앙에 대해 깊은 고뇌를 하게 했다는 점에서 기대를 가지게 했다. 그러나 우려 반은 또 많은 걱정과 염려를 하게 했다. 1)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 하였기에 우려 반이다. 우리 선배들은 오랫동안 주류와 비주류라는 정치세력으로 존재하면서 정치를 했다. 10여 년을 넘게 주류의 정치적 독식은 비주류의 이탈을 낳았고, 우리 총회 안에는 총회를 개혁하고 교회를 새롭게 해야 한다는 기치를 걸고 교갱협이 출현되면서 교갱협 인사의 목사 부총회장 출마가 이루어지고, 교갱협 안에서 단일화를 이루지 못하여 후보가 양립되면서 교회 영성목회의 후보를 내고 결국은 영성목회의 후보가 당선되면서 총회는 금권선거가 만연되기 시작했다. 그 후 이러한 금권선거를 방지하기 위해서 제비뽑기 제도가 도입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27년 전에 분열되어 나간 비주류가 ‘신학과 신앙이 같으면서도 다른 교단을 형성하였기에 이제는 합병을 하자’고 하여 교회의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교단 합병을 하였다. 그리고 제비뽑기 방식에서 절충형 제비뽑기 방식으로, 다시 직접선거로 선거방식이 바뀌면서 영성목회에 가입한 분들이 총회장이 되었다. 사실 총회의 개혁을 위해 만들어진 교갱협에 속한 목사가 총회장이 된 것은 108회이다. 내가 알기로는 다른 회기에 교갱협에 속한 목사가 총회장이 되지는 못하였다. 교갱협과 영성목회의 힘겨루기(?)는 109 회기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왜냐하면 합동포럼이라는 새로운 단체가 전면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그래서 우려 반이다. 왜냐하면 그 순간을 즐기려고 하는 사람은 항상 순간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2) 총회의 헌의와 처리에 대한 우려이다. 한쪽에서는 잘 준비된 총회라는 평가를 한다. 그러나 다른 쪽에서는 완전히 기획된 총회라는 평가도 한다. 내가 봤을 때는 총회 자체의 회의와 결의는 대체로 무난하다고 할 수 있다. 점수로 보면 B 학점이나 C 학점 정도는 되는 총회였다. 그러면서도 우려 반이 되는 것은 109회 총회가 한 집단과 단체에 카르텔화 될 소지가 농후해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특보체제가 잘 운영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만 특보들이 총회장의 눈과 귀를 막고 자신들이 입이 되어 성경과 헌법에 어긋나는 일들을 말하고 시행하려고 한다면 109회 총회는 세상이라는 바다를 거룩한 교회로 항해하지 못하고, 거룩한 산을 오르겠다고 돛대를 부러뜨려서 등산용 지팡이를 만드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총회장의 지혜가 어느 때보다도 더 필요할 때다. 지혜가 없으면 어떤 지혜도 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3) 이번 총회는 그 어느 때보다 증경총회장과 부총회장의 발언이 많았다. 원로들의 지혜와 지식이 어려운 문제일수록 필요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에서는 어른들은 발언을 자제하고 또 필요에 따라 요청했을 때와 잘못 결의하여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때 발언하여 후배들에게 깨우침을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우려가 된다. 왜냐하면 어른들의 발언은 조언이나 권고이어야 하지 참견이나 관여가 되어서는 안 되는데 계속하여 어른 대접으로 발언을 주어서 결정해야 할 총대들의 발언에는 조금 소홀히 했다. 만일 직무상의 결정에 따른 결의를 다시 묻고 조언을 구한다면 총회는 개혁되지 않고 구태가 만연되게 될까 우려된다. 109회 총회는 기로에 서 있다. 지금까지의 우리의 리추얼이 종말을 고할 것인지, 아니면 개혁되고 갱신되어서 리추얼이 힘을 가지게 될 것인지에 대한 분기점에 있다. 항상 우리의 삶인 리추얼은 관습과 전통이라는 것으로 드러난다. 사실 관습과 전통은 겉으로는 동일하게 보일 때가 많다. 이러한 피상적 유사성은 우리의 인습주의 즉 전통을 해롭게 한다. 전통이 되어버린 관습, 특히 성경의 해석은 진짜인 정통을 죽이고 현실에서 숨통마저 끊어 놓는다. 이렇게 되어 버리면 개혁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여성 강도권에 대한 허용 결의는 이런 점에서 우리의 전통은 살아 있고 활동적이지만 그 전통 속에 있는 관습은 항상 수동적임을 알 수 있다. 적어도 이제는 관습이 수동적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살아나서 전통을 이해하고 신학적으로 재해석해야 하는 과제를 남겼다. 역사적으로 전통 속에 관습이 되어 버린 전통은 어느 순간 정통의 자리에서 내려와 관습이 되고 별다른 노력 없이도 판에 박힌 체 일상이 되어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적어도 이런 점에서 제109회 총회는 전통 속에 관습으로서 수동적으로 이해되는 여성의 역할을 신학적으로 재조명하려고 노력하며 고군분투하려는 모습이 총대들의 모습에서 볼 수 있었다. 사실상, 신학의 전통은 정통의 자리에서 관습이 되어 물러서게 될 때는 항상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지도 않고 우리의 삶에 대해서 각자가 책임을 지는 방법도 알려주지 않는다. 사실상 지금의 전통이 된 정통은 한때는 분명 혁신이었다. 그런데도 전통이 되어 버린 정통은 혁신을 아니, 개혁을 마귀가 예수님을 싫어하듯 싫어한다. 혁신과 개혁이 정통이 되고 그 정통이 관습이 되면 우리들의 삶은 매너리즘의 늪에 빠지고 결국은 전통과 관습을 지키기 위해 병적인 공동체적 반응을 하며 소통할 수 없는 공동체가 되고 전통파와 개혁파가 대립하며 분열하고 적대시하게 된다. 그리고 어떠한 견해든지 우리들의 삶을 안정화하지 못한다. 금번 제109회 총회는 신학적 진영논리에 빠지지는 아니했지만 결국은 주일성수의 문제와 여 강도사 인허의 문제는 벌써 진영논리로 변질되고 있다. 심지어 장신도 아닌 기장의 신학으로 이야기하는 글들이 나오고 있다. 진영의 신학(조직신학)이 아닌 성경(성경신학)으로 우리는 다시 묻고 다시 답해야 할 때가 되었다. 결국은 진영의 논리로 서로가 무장하게 될 때 우리의 신학과 신앙은 세속화될 뿐 아니라, 세속적인 삶 속에서 의미도 뜻도 모른 체 주술화 되고 마법화 된다. 진영의 논리로 여 강도사 인허의 문제를, 주일성수의 문제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신학의 문제로 바라보고 신앙적인 답을 찾아가야 한다. 이러한 기로에 놓여 있는 총회가 금번 총회이다. 그래서 우려 반 기대 반이다. 결국 기대도 우려도 다 지나갈 것이지만 그래도 기대도 해보고 우려도 해본다. 대다수의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의 의미나 타당성을 그리고 적합성에 대해서 민감하지 못하고 둔감할 때가 많다. 그래서 깨닫지 못하고 정체성이 변하지 않는다. 제109회 총회에서는 신학적으로 변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와 변해야 된다는 기대가 총대들 속에 있음을 감지했다. 기대와 우려를 할 수밖에 없다. 15회 이상을 총대로 참석하면서 느끼고 깨달은 것은 우려도 기대도 다 쓸모가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총회가 그리고 그 결의된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주크박스에서 나오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려는 아닌 것 같아서, 기대는 그럴 것 같아서이다.김병중(Th.D) 10-14 20:56 -
【기고】 정년제, 과연 성경적인가?
다음은 원 철 목사의 정년제 폐지를 주장하는 기고문이다. 본 기고는 빛과소금뉴스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힌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교단은 성경말씀을 기본바탕으로 세워진 보수교단이며, 개혁주의에 입각하여 세워진 교단이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있다고 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신학을 배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본 원리로 해서 가르치고 목회를 하고 있다. 그러나 늘 염려하는 것들이 있다. 과연 우리 교단이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충실하고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헌법이라는 것을 앞세워 정치와 사회라는 관점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빗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 말씀 앞에서는 순종하고 하나님 말씀이 신앙의 기초가 되고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가슴에 품고 살려고 성도들도 몸부림치며, 목사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목회하며 몸부림치고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회적인 관점이 우리 교단에 서서히 목소리를 높이더니 이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메어지는 것 같고 몹시 아프다. 교회와 기독교를 보는 사회에서의 시선 때문에 정년제를 사수해야 하거나 정년제를 지금보다 5년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세습제도가 마치 죄인인 것처럼 보는 것 역시 사회시선을 의식한 것 같다. 이유는 사회가 어떻게 보느냐하는 것이다. 심지어 정년을 연장하거나 세습을 하면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난다고 이야기 한다.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교회와 기독교를 비난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천주교는 75세 정년이 있으나 자율에 맡겨서 자신이 원하는 때에 은퇴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천주교를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불교에도 아예 정년이 없는데도 불교를 비난하는 소리나 사람을 본적이 없다. 그런데 유독히 기독교만 정년제를 폐지하면 사회에서 비난할 것이라고 이유를 댄다. 왜 그럴까? 언제부터 사회시선을 의식하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살고 있는지 교단이 부끄럽기만 하다. 우리의 판단의 기준이나 근본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는 것이다. 목회자의 의식에도 문제가 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본주의(人本主義) 사상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면 가고 ‘서라’하는 곳에 서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명령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려고 노력해왔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이 신사참배를 강요하며 굴복시키려고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켜왔다. 이러한 신앙의 선배들의 숭고한 신앙을 본받아 지금까지 믿음으로 순종하며 살려고 노력해 왔고 신앙의 절개를 지켰던 선배들을 존경하고 있으며 그분들의 영향으로 우리 교단이 보수교단이라는 명분을 이어 가고 있다. 이러한 신앙이 좋아서 합동이라는 교단이 태어났고 이를 선택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보다도 성경에서는 정년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하는 것이다. 제108회 총회에서 박00 목사는 정년제 문제를 가지고 나와서 발언하기를 정년제 연장을 해서는 안 되며 40대 50대의 80%의 젊은 목사들이 담임목사 근처도 못 가고 있다며 지금 400~500여명이 담임목사 되기 위하여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이들은 담임목사도 한번 못하고 은퇴해야할 형편”이라며 “베이비붐 세대는 젊은 세대를 위해 조용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발언이 얼마나 위험한 발언인지 모른다. 하나님의 말씀과 보수 신학은 어디로 가고 성경에서 말씀하는 내용은 하나도 없고 인간적인 관점과 사회적인 관점에서만 주장하고 시도하려고 하는가? 우리의 사역과 사명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사역인지 아니면 사회의 시선을 의식하여 그들을 기쁘게 하고 젊은 세대들을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인지 깊이 성찰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의 베이비붐 세대는(Baby Boom Generation :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46년부터 1964년까지 베이비붐이 일어난 시기에 출생한 세대를 말한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후, 기도하면서 뜨거운 사명감을 가지고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주여 이 몸 바쳐 주의 일을 하렵니다”라고 찬양하면서 수 많은 목회자들이 빈곤한 살림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자신의 재산을 털어 지하에 삭월세를 얻고 칸을 막아 살림을 하면서, 밤낮 부르짖어 기도하면서 전도하고 교회를 개척하였다. 이렇게 베이비붐 세대가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헌신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에 수많은 교회들이 세워졌고, 기독교 부흥이 일어났으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지금 40대, 50대, 80%의 젊은 목사들은, 개척하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 기성세대가 70세가 되어 은퇴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선배들이 열심히 사역하여 이루어 놓은 부흥된 교회에 청빙 받아 안전하게 목회하려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 한 예로, 대형교회에 담임목사 청빙광고가 나오면, 100~200여통의 이력서가 접수된다고 한다. 중소교회가 청빙광고 하면, 생활비를 얼마 주느냐? 교인은 몇 명이냐? 사택은 몇 평짜리 아파트를 주느냐? 상여금은 얼마나 주느냐? 자가용은 제공하느냐? 월요일은 쉬느냐? 월요일에 출근하면 출근 수당은 주느냐? 새벽기도회에와 금요기도회를 하면 수당을 얼마나 주느냐? 부터 묻는다고 한다. 반면 시골교회가 청빙광고 하면 아예 이력서도 내지 않는다고 한다. 시골교회와 소형교회는 앞으로 10년 이내에 담임목사를 모시지 못하여 교역자가 없는 교회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중소도시에서도 부교역자를 구하지 못하여 힘들다고 한다. 총신대학교 박성규 총장도 이대로 가면 2026년부터 목회자가 모자라는 형상이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서울의 교회들도 교육전도사 구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라고 한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입학하는 학생은 적은데 베이비붐 세대가 열정적으로 개척하며 교회를 세웠던 분들이 앞으로 10년동안 계속 은퇴하시기 때문이다. 지방도시나 시골에는 부교역자가 없어서 사역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담임목사 타령이나하고 있는 세대를 볼 때 대단히 심각한 일이다. 왜 이렇게 변하고 있는 것일까? 이것을 박00 목사가 말한 것처럼 기성세대 목회자에게 그 책임을 물어 “베이비붐 세대는 젊은 세대를 위해 조용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듣기 좋은 말로서 군중들의 인기를 모으는 이야기로 남아서는 안 된다. 그 분은 역사학자로 알고 있는데 미래를 보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있다. 우리나라가 경제가 성장하면서 도시교회는 경제적으로 부유해졌다. 유학 가는 신학생들이 부쩍 늘어났으며 유학파들이 40~50대에 주를 이루고 있다. 유학 다녀온 분들 가운데 신학을 더 깊이 연구함으로 하나님을 더욱 뜨겁게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복음을 들고 교회를 개척하려는 뜨거운 사명감을 가진 사람들을 찾기가 어렵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도시의 기성교회의 후임자로 가려고만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복음전파를 위하여 하나님께 부르심으로 소명을 받고 신학교에 가서 성경과 신학을 배우고, 복음을 더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하여 더 배워서 하나님께 헌신과 충성하기로 다짐하고, 유학까지 다녀온 사람들이 꼭 큰 교회의 빈자리를 찾아다녀야 하는지 그 이유를 묻고 싶다. 어느 날 갑자기 대형교회 후임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더 큰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베이비붐 세대가 젊은 세대를 위해 조용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이 대안인가? 묻고 싶다. 제104회 총회에서 우리 대전중앙노회가 ‘정년제 연구위원회’를 두어 연구해서 보고하기로 제안하였다. 이를 총회가 받아들였고 결의해 주어 2년동안 정년제연구위원회(위원장 고영기 목사)가 조직되었고 신학자 4분에게 의뢰하여 그분들이 연구한 결과를 발표하는 공청회를 가진 바 있었다. 2020년 4월 21 새에덴교회에서 열린 “정년연구를 위한 공청회”에서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역사신학자 서창원 교수, 실천신학자 양현표 교수, 구약신학자 이희성 교수 3분과 칼빈대학교 총장 김근수 교수가 그동안 연구한 것들을 발표하였다. 4분 중에, 한 분만 조심스럽게 사회의 관점이 있음으로 정년제를 현행대로 유지하거나 73세로 연장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였고 서창원 교수, 이희성 교수, 김근수 교수는 성경적인 근거와 신학적인 근거를 들어 정년제를 폐지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였다. 미국의 보수교단들을 조사하여 본 결과 미국교단들도 정년제가 거의 없음을 보고하였다. 제108회기 신학부주최 대전중부지역 ‘교회와 신학세미나’에서 김길성 교수는 정년제에 대하여 ‘교회에는 2가지 직분이 있는데, 하나는 ’항존직‘으로서 영원히 있는 것으로서 목사나 장로가 은퇴하고 사역을 하지 아니할지라도 목사를 목사로 장로를 장로라고 부르는 것이다. 또 하나는 ‘시무’가 있는데 시무는 기간을 정하여 사역을 하는 것으로서 우리 총회에서 시무연한을 정해 놓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70년 사역을 하고 은퇴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하고 싶다. 시무 연한이 과연 성경적인가?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공동체이다. 70세가 되면 사역을 그만 두어야 하는가? 성경적으로 말해주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바탕으로 보수를 지향하고 있으며 칼빈의 신학사상과 개혁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헌법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어디로 가고 인간의 사상들이 지배하고 있는가? 헌법이 우선인가? 아니면 성경이 우선인가? 성경이 하라는 대로 하고 하지 말라면 멈추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교단이 지향하는 신학정체성이 아닌가? 신학정체성을 부르짖고는 있으나 과연 신학정체성에 맞는 올바른 길을 걷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왜 장로들은 연합하여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정년제 연장은 절대 하면 안 된다고 하는가? 그 이유를 나이가 들면 너무 시대적으로 낡은 생각과 열정이 사라져서 교회 부흥에 도움이 안 되므로 정년제를 65세로 하향해서라도 빨리 젊은 목회자로 담임목사를 교체하여야 교회가 신선해지고 젊어지고 부흥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성경적이냐 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다. 교회 안에서 목사들이 성경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있는가? 장로들이 이런 집단행동을 하는 것은 목사들이 성경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지 않은 결과이므로 먼저 목사들이 회개하여야 한다. 성경에 어디에 70세가 되었으니 은퇴하라는 내용이 있는가? 필자가 제안하는 ‘정년제를 폐지해야 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우리 교단이 세워진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확실하게 믿고자 세워진 교단이다. 신본주의(神本主義)이며 칼빈의 신학사상을 따르고 있으며 개혁주의 노선을 지지하고 있다. 정치 제13장 제3조 장로. 집사 임직서약 1항은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또한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정확 무오(正確無誤)한 유일(唯一)의 법칙으로 믿느뇨?” 이다. 구약에 아브라함을 가르켜 선지자라고 했고 모세 역시 선지자라고 했으며 120세 죽을 때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사역을 감당하였다. 사무엘선지자 역시 죽기까지 사역을 하였다. 구약의 제사장 예언자 대선지자 소선지자 사사 왕 모두 정년이 없는 종신직이었다. 신약에서도, 예수님의 12제자들에게도 정년이 없었으며 순교할 때까지 사역하였다. 사도행전 7장에 나오는 예루살렘교회 7집사들도 생명을 다하는 날까지 하나님께 충성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고린도전서 12장 28절에 은사로 사역을 주실 때 사도 목사 교사들에게도 정년이 없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감독 장로 집사를 임명할 때에도 정년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사도요한은 오히려 밧모섬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아 계시록을 기록하고 96세에 순교하였다. 모든 직분자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직분에 맞게 사역을 하며 하나님께 쓰임 받았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던 사가랴제사장 역시 늙었으나(눅 1:8~9, 18) 하나님께서 맡겨준 성전에서의 사역을 성실하게 이행하였다. 제사장이나 선지자들은 오늘날의 목사와는 사역면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하나님께 대한 사역은 변함이 없어야 한다. 왜 성경에서는 정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 대하여 충성을 다하고 맡겨진 사역에 대해서는 생명을 다하는 날까지 잘 감당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요한계시록 2:10절에서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고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은, 행 20:24절에서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사명을 선언하였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사역자들은 구약시대나 신약시대에 정년제를 시행했다는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 디모데전서 3장에도 장로와 집사를 선발하는 기준에도 정년 규정이 없다. 항존직이란, 옛 헌법 정치 제4장 제4조 1항에 위임목사는 “한 지교회나 1구역(4지교회까지 좋으나 그 중 조직된 교회가 하나 이상 됨을 요함)의 청빙으로 노회의 위임을 받은 목사이니,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그 담임한 교회를 종신(終身)토록 시무한다.”고 되어 있다. 항존직(恒存職)이라는 말은 자신이 사직하거나 면직되지 않는 한 종신(終身)토록 시무하는 것을 의미한다. 서창원 교수는 정년제법을 ‘제정하는 그 자체가 비성경적이고 비신학적’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실천신학 양현표 교수는 ‘수요와 공급’이라는 주제에서 ‘평균수명이 늘어났으며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가면서 건강지수가 현격히 좋아졌다’고 말하면서 ‘지금의 정년제는 성경과 헌법 정신에 어긋났다’고 지적했다. 지금 현행대로 가면, 2029년부터 목회자의 수가 179명이 모자라며 교회수를 현재대로 유지하고 신학교 지원자들이 감소하는 경우 당장 3년 후인 2027년부터 목사의 수가 140명이 모자라며 2035년에는 무려 2,960명이 모자랄 것이라고 통계를 통하여 전망하였다. 지금도 지방에서는 부교역자를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려우며 각 노회마다 교회를 폐교하는 청원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고 한다. 전국신학대학뿐만 아니라 우리 총신도 2021학년부터 정원미달이 되었으나 박성규총장이 열정적으로 홍보한 결과 미달은 겨우 면하였다. 그러나 앞으로 2029년에는 100명정도 입학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 교회는 성장이 퇴보하고 있으며 지금은 매년 3천여개의 교회가 문을 닫고 있으며 교인 수가 감소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박성규 총장 역시 신대원 입학생이 점점 줄어드는 시점에서 수요와 공급의 미달로 심각한 현실로 가다오고 있다고 하였으며 유럽의 뒤를 따라 문을 닫는 교회가 점점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이희성 교수는 우리 교단 헌법에는 1992년 제77회총회에서 정년제를 시행했으나 기독교한국침례회총회에서는 “목회자의 정년을 교단에서 규정하지 않고 개 교회에 일임하여 교회에서 정하는 것으로 한다”고 보고하였다. 대신교단은 현행 정년제가 성경적이 아님으로 성경말씀에 준하여 시행하기로 결의하고 단호하게 정년제를 폐지하였다. 개혁교단에서도 성경을 바탕으로 하는 보수교단으로서 당연하게 정년제가 없어야 한다고 하였다. 개혁, 대신을 비롯한 독립교단들은 일찍이 정년제를 폐지하였다. 이희성 교수와 김근수 교수가 미국장로교 10개 보수교단을 조사한 결과 9개 교단이 정년이 없음을 발표했으며 초창기 미국의 선교사님들이 우리나라에 복음을 들고 들어와 교회들을 세우고, 우리 총회를 세우고 우리 교단 헌법을 만들 때에도 미국교회의 성경적인 헌법을 기준으로 하여 정년이 없도록 만들었다. 이후 우리 총회는 1992년 제77회 총회에서부터 정년제를 시행하였다. 미국 R.C.A.교단 만이 70세 정년이 있지만 “70세가 된 목사나 은퇴한 목사라할지라도 교회와의 계약에 의하여 위임의 형식으로 사역을 지속할 수 있다”라는 단서를 붙였다. 미국 남침례교회는 ‘목회자의 청빙에서 은퇴까지 전적으로 개교회의 특성과 자율성에 일임하기에 교단적으로 목사에 대한 헌법 규정이 없으며 목사 시무정년은 종신토록 시무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정년제 폐지를 반대하는 분들의 의견은 대부분 정년제를 폐지하면 사회적인 관점에서 지탄받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필자가 정치를 잘 하시는 목사님에게 고견을 들으려고 정년제는 성경적이 아님으로 정년제를 폐지해야한다고 이야기 했더니 “목사님은 정치를 모르는구먼” 하면서 “정치적으로 안돼”하는 것이다. CTV에서 2주전에 “목사 장로 정년연장 필요한가?” 제109회 총회 특집 토론에서 함성익 목사와 박창식 목사가 패널로 나와서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이 토론을 보면서 내가 왜 총회에 있어야 하는지,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왜 이분들은 통계를 중요시하고 사회시선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젊은 목사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그들의 이야기는 경청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야기는 왜 한 마디도 안하는가? 이들이 우리 교단의 대표하는 목사들이 맞는가? 우리 교단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가? 신학정체성을 주장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허울 좋은 개살구와 같다.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우리가 믿는 대상은 하나님이고 성경이다. 우리의 헌법을 정치적으로 생각하고 사회적인 것에 기준을 삼으면 안 된다. 지금의 우리 헌법은 성경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70세 정년제가 아니다. 정치적으로 현실 상황과 필요에 따라 만든 제도이다. 그렇다고 헌법 정신을 살리기 위하여 만든 제도도 아니다. 정치적인 목적과 바탕으로 헌법을 개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성경말씀에 비추어 문제점이 드러났다면 성경적으로 수정하는 것이 성경적이요 개혁주의 정신에 부합한 것이다. 교회법을 사회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하나님과 성경말씀을 믿는 신본주의(神本主義)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스스로 인본주의(人本主義)로 전락하는 것으로서 엄청난 실수를 범하는 것이다. 모세가 성경을 기록했던 5500여년 전이나 사도들과 바울이 성경을 썼던 2000여년 전이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나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해서는 안 된다. 창조시대부터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변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도와 기준을 따라야지 떠나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정년제는 반드시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보수를 지향하는 신본주의 우리 교단이 단호하게 성경말씀으로 돌아가서 한국교회와 세계 교회에 성경적인 모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본 필자는 우리 교단 목사 장로들이 하나님 나라 갈 때까지 죽도록 충성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잘하였구나 충성된 종아! 칭찬받으며 하나님께서 배설한 천국잔치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여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상급받는 신실한 사명자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바라기는 우리 총회가 한국교회에서 가장 성경적이요, 보수적이며 개혁주의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매년 계속되는 정년제 폐지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성경으로 바로 세워지기까지는 계속 문제가 될 것이다. 정년연장이 아니라 폐지하여야 한다. 성경에 기초하지 않는 것은 보수가 아니다. 신본주의도 아니며 칼빈주의도 아니고 보수라는 말과 개혁주의라는 말을 사용해서도 안 된다. 왜 해마다 수백 교회가 우리 교단을 탈퇴하고 떠나는지 생각해보라? 이 문제를 속히 해결해야 한다. 신학대학의 교수들은 왜 눈치만 보고 있는가? 성경적으로 그 답을 확실하게 제시해야 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소리를 높여야 한다. 그래야 우리 교단이 정체성도 확립되고 세계 교단과 교회의 모델이 될 것이다. 또한 신학교도 본래의 신본주의 모습으로 살아날 것이다. 제109회 총회에서 현명하게 결단해 주기를 바란다.김병중(Th.D) 09-18 14:07 -
【기고】여성 안수 문제,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1. 안타까운 108회 총회의 갈지(之)자 행보 이번 108회 총회에서 여성 사역자 위원회는 여성들에게도 강도사가 될 수 있는 길을 제안하였고, 이를 이의 없이 총회는 받아들였다. 이러한 결정은 우리 총회가 획기적인 방향으로 걸어갈 수 있는 놀라운 진전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총회 마지막 날 번복되었다. 없던 일이 되었고, 더 나아가 아예 여성들이 안수에 대해서는 꿈도 꾸지 못하도록 다른 이름의 직책을 만들어주겠다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교육사”, “신학사”라는 이름으로 설교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인데, 이는 목사 안수는 아예 가능하지 않도록 못박아 버리는 일로 보여진다. 이러한 갈지자 행보는 더더욱 여성들로 하여금 분노하게 만들고, 교단을 떠나는 일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예상된다. 이러한 결정이 아쉬운 것은 여성이 교회에서 잠잠해야 하기 때문에 목사 안수를 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교육사”, “신학사”라는 이름으로 설교할 수 있게 하겠다는 자기모순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2. 교단은 이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 우리 교단의 현행 헌법에서 여성 안수를 허용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 안수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종종 여성안수를 주장하려거든 그런 교단으로 떠나가라고 겁박하는 분들이 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칼빈주의자라고 하는데, 칼빈주의의 요체는 무엇보다도 성경이 최고의 기준이며, 그 어느 것도(교단헌법과 교리교과서 등등) 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갖지 못하기에, 모든 것이 성경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칼빈주의자라면 성경의 가르침을 들어서 반박해야지, 교단 헌법으로 겁박한다면 너무 궁색해 보일 뿐이다. 성경만이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최고의 기준이며, 다른 모든 것은 성경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 교단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성경 외에는 그 어느 것도 무오(無誤)한 것은 없으며, 실제로 우리 교단의 헌법은 여러 번 수정을 해왔다. 그리고 심지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안에 있는 행위언약이 성경의 가르침에 부합하는지 질문이 들어왔을 때, 왜 신앙고백서를 따르지 않느냐고 정죄하지 않고 성경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고 입장을 정리했다. 여성 안수의 문제는 과연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여성에게 안수를 해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시대의 조류를 따르는 것이라고 폄하해 버릴 것이 아니다. 우리가 시대의 조류를 따라서는 안 되고, 성경이 최고의 기준이라고 하는 원칙은 아주 소중하다. 우리는 시대의 조류를 따를 것이 아니라, 성경이 가라고 하는 데까지 가야 하고, 성경이 금한다면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 문제는 과연 여성에게 안수하는 문제가 시대 조류에 편승한 것인가이다. 여성에게 안수하자는 주장이 시대의 조류에 편승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 과거에는 과거라는 시대의 조류에 따라 여성에게 안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무엇보다도 성경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물론 성경은 분명하게 “여성은 교회에서 잠잠하라”(고전 14:34)고 되어 있다. 그렇게 성경이 금하고 있는데, 여성 안수가 어떻게 가능하다는 말인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즉 만일 여성이 교회에서 잠잠해야 한다는 이 말씀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분명하게 믿는다면, 지금 당장 여성들이 하고 있는 대부분의 모든 사역들을 교회에서 금지해야 할 것이다. 구역장도 안 되고, 세미나 강사로 세워서도 안되고, 교사도 할 수 없다. 만일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진정으로 믿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 여성으로 하여금 교회 내에서 성직자로 세워질 수 없는 근거 구절로 사용될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 전체로”(tota scriptura)의 원칙 때문이다. 성경 구절 한두 구절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성경 전체로의 원칙이 무너지고 성경의 한두 구절에 의존하면, 하나님의 뜻과 위배되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예를 들어,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만을 선택했다고 말하고 있으며, 모압과 암몬 민족은 하나님의 회중에 “영원히” 들어올 수 없다고 되어 있고, 더 나아가 예수님은 오직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만 보냄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다. 이런 말씀들만 보면 이방인들에게 선교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완전 위배되는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성경 전체의 가르침에서 보면 선교가 하나님의 뜻임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모압 여인인 룻도 하나님의 회중 속으로 들어와 메시야의 조상이 되었다. 그러니까 성경 한두 구절만 보면 안 되는 것이다. 성경 전체의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구해야 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구속사역이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한 관점 때문에 초대교회 예루살렘 총회는 할례를 이방인들에게 요구할 필요가 없다는 가장 진취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미 하나님은 여성인 드보라와 훌다를 지도자와 선지자로 세웠고, 고린도전서 11장에서는 여성들이 교회내에서 예언(하나님의 뜻을 풀어 가르치는 것)하는 것 자체를 금하지 않고 머리에 두건만 쓴다면 예언할 수 있다고 하였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은 요엘 선지자의 예언을 결국 성취시켰다. 즉 그때가 되면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오순절 때 이미 성취되었다. 이제는 여성들도 하나님의 뜻을 풀어 가르칠 수 있게 하신 것이다. 종종 예언과 가르침은 다르다고 반론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고린도전서 14:31에서는 예언의 목적이 가르치고 권면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못박고 있다.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예수님께서 12제자 중에 여성을 한 명도 세우지 않았다는 사실이 반론의 근거일 수 없다. 물론 예수님께서 여성도 12 제자 가운데 포함시키셨더라면 논란 자체가 정리되었겠지만, 예수님께서 남자들만 제자로 세우셨다는 것이 여성은 안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 사실 따지고 보면 12제자 중에는 사마리아 출신이 한 명도 없고, 더 나아가 이방인도 한 명도 없었다. 그러면 오로지 유대인만 사역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일까? 한국 사람이 성직자를 하겠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 되는 것일까? 개혁주의의 원조격인 칼뱅도 오로지 남자들만이 사역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는 것도 반론의 근거일 수 없다. 칼뱅은 아주 뛰어난 신학자이지만,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다. 칼뱅의 입장이 모두 다 100% 맞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칼뱅은 성경의 가르침이 비추어보아서 자신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면 자신의 주장을 따르지 않아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우리가 칼뱅을 우상화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항상 성경만이 최종적인 권위가 되어야 한다. 여성 안수를 받아들이면 결국 자유주의를 받아들이게 되지 않을까 우려가 많다. 자유주의를 받아들인 교단들이 주로 여성 안수를 시행하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 안수를 받아들인 교단이 모두가 다 자유주의화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CRC교단, 고신교단의 모교회 격이라고 할 수 있는 화란개혁교회(31조파)도 여성 안수를 수용했다. 또한 한국 내에서도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보수교단인 백석 교단과 여러 개혁 장로교단들도 여성 안수를 받아들이고 있지만, 철저하게 자유주의를 배격하고 있다. 그 동안 이런 식의 반론은 참 많이 있었다. 주5일제 시행하면, CCM 복음송을 받아들이면, 외국과 무역을 하게 되면, 조상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부모님이 주신 머리카락을 자르면, 세상이 망할 것이라는 식의 주장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찰싹거리는 작은 파도를 보면서, 두려움과 무서움 때문에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면 결국 도태될 뿐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과연 무엇이 성경 전체를 통해서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의 뜻인가일 것이다. 물론 우리와 깊은 관계가 있는 미국의 PCA, OPC 교단과 같은 곳에서도 여성 안수는 허용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PCA, OPC 교단도 머지않은 장래에 여성 안수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왜냐하면 모두가 성경의 가르침에 순복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교단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연구하고 또 연구해보면, 여성들에게 잠잠하라고 했던 것이 당시에 있었던 일시적인 명령이었을 뿐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결국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여성들이 사역하는 것이 막혀 있었다는 사실도 반론의 근거일 수 없다. 안타깝게도 사람은 객관적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자신의 환경과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성경을 해석하다 보니, 그 해석이 잘못될 수 있다. 사실 종교개혁자들은 천년이 넘도록 지속되었던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이 잘못된 것이라고 외칠 수 있었다. 아니 그 이전에 이미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중심의 종교가 순 엉터리일 뿐이며 잘못된 것이라고 외치셨다. 역사가 오래 되었다고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의 불변의 원칙은 “개혁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est secundum verbum dei)이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다시 비추어보아서 그동안의 전통이 잘못된 것은 없는지 점검해야 한다. 전통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면 안 된다(마 15:3). 사실 초대교회에서도 브리스길라와 같은 여성 사역자가 있었고, 유니아라는 여성(롬 16:7)도 12 사도는 아니었지만 바나바와 같은 또는 비슷한 역할을 했던 사도였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황금의 입이라고 알려진 요한 크리소스톰(350-407)은 유니아에 대해서 “사도가 되는 것은 위대한 일인데, 그 가운데 뛰어난 자였다. 이게 얼마나 놀라운 영예의 노래인가!”라고 했다. 장로나 집사로 세우려면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는 말은 여성은 안 된다는 뜻으로 보아야 할 필요가 없다. 장로의 자격에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한다(딛 1:6)는 구절이 있지만, 결혼하지 않았거나 아직 자녀가 없다고 해서 목사나 장로 임직의 결격 사유로 보지 않는다. 이 표현은 “자녀를 두었을 경우에는”이라는 말이 생략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는 말은 “만일 그가 결혼한 남자라면”이라는 전제가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는 말을 여성은 안 된다는 뜻으로 확대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 구절은 결혼 생활에 있어서 성결을 유지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직 교단 내에 여성 안수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초대 교회 할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하면 그냥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게 아니라, 서로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구해야 한다. 3. 현행 법으로도 강도사를 줄 수는 있다 부흥하고 성장하는 공동체는 모든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든 더 잘 일할 수 있게 하는 공동체이다. 망할 수밖에 없는 공동체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사역을 막고 소수가 가진 그 힘을 행사하는 공동체이다. 광야에서 모세는 이드로의 제안을 받아들여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재판권을 천부장, 백부장에게 나누어 주었다. 우리 교단도 여성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사역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야 한다. 우선 총회는 여성 사역자들이 강도사 인허를 받을 수 있도록 도우면 좋겠다. 현행 헌법도 여성이 강도사가 되는 것을 명시적으로 금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편 제14장에 의하면, 총회가 신학 졸업생을 고시하여 노회가 강도사로 인허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총회가 결의하고 받아주면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사실 108회 총회 전에 이에 대한 합의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었다. 108회 총회의 결정이 뒤로 역행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 상당히 우려스럽다. 목사 안수의 문제는 총회가 좀 더 심도 있게 성경에 드러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토론해야 한다. 그 옛날 예루살렘 회의를 통해 할례를 시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성경에는 반드시 할례를 시행해야만 한다고 되어 있지만,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가져온 관점으로 성경을 이해하면서 할례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와 마찬가지로 총회의 역할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토론을 통해 구해야 한다. 현재 우리 교단 내에는 다양한 해석과 의견이 존재한다. 세미나, 토론회, 전문 연구 등을 병행하는 것을 통해, 서로 경청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 이웃 교단인 백석은 발 빠르게 여성 안수를 허용했고, 엄청난 교단적 발전과 신학교의 발전이 있었다. 사실 많은 여성 사역자들을 이웃 교단에 빼앗긴 것도 사실이다.김병중(Th.D) 10-03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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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번역의 무거운 짐을 진 번역가들
외국 책을 쉽게 접하기 위해서는 번역가를 비롯한 출판사 등 여러 사람들의 수고가 필요하다. 요즘은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있어 직접 원서를 구해 읽기도 하고, 아마존 등을 통해 E book을 바로 구매해 보는 경우도 많다. 이제 AI시대를 맞아 퇴출 위기에 직면한 직업군이 번역가다. 최근 뉴스에 보니 AI를 도입한 한 회사는 외국어 번역 부서를 없앴다고 한다. 세상이 좋아지는 만큼 생계의 위협을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중에 번역가는 곧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세상 참 많이 변했다. 그리고 굳이 외국어를 배우지 않아도 AI를 통해 순식간에 외국 서적이 번역될 날도 멀지 않았다. 참 좋은 세상이 됐다(참 이 책은 절판됐는데 도서관을 통해 대출 받아 읽었다). 번역은 여자들의 부업거리? 언젠가 번역하는 사람들의 인터넷 카페에 어떤 남자분이 '번역은 여자들의 부업거리밖에 안 된다.'는 내용의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아마도 한 가정의 가장인 듯한 그는 열심히 일해도 가정을 꾸려 갈 만한 수입이 되지 않는 것을 한탄하며, 한잔하고 넋두리하듯 올린 글 같았다. 나는 그런 글을 올린 심경에 심히 공감하였는데, 뜻밖에도 다른 회원들의 득달같은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번역에 대한 모욕이며, 여자들에 대한 모욕이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 열화와 같은 비난에 한 줄이라도 그 가장의 편을 들어주고 싶었으나, 소심한, 혹은 귀차니스트인 나는 아무 댓글도 달아주지 못했다. 몇 년 전 나도 진지하게 했던 고민이다. 이게 부업이면 모를까, 번역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들구나, 번역으로 돈 벌기는 힘들겠구나. 말이 좋아 프리랜서이지 일이 없을 땐 날백수이지 않은가. 남편이란 존재가 있을 때는 몇 달 일이 들어오지 않아도 상관없었으나, 이제 어엿한 아줌마 가장으로서 아이를 키우고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 내게, ‘번역만으로 살 수 있을까’. 는 그 무렵 머릿속에 붙박혀 떠나지 않는 화두였다. 이렇게 벌어서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인형 눈알 박는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하지 않나, 종이봉투 풀칠하는 부업이 요즘도 있을까(p. 68) 길가다 ‘홀서빙 아줌마 구함’ 이라고 삐뚤삐뚤 쓴 글씨가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딸랑 두 식구의 가장인 나도 그렇게 절박했는데, 처자식을 둔 그 남자 회원의 심정은 오죽할까, 싶어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번역은 여자들의 부업거리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정말 번역은 여자들의 부업거리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밖에 안 되는' 것으로 스스로가 미리 단정짓고 하는 일은 평생 본업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직업이 번역이라면 어떡하든 열심히 해서 가족들에게 넉넉한 의식을 공급하는 가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나 또한 남편의 월급에 의존해 살 때의 작업 습관대로 책 한 권 들고 세월없이 번역하곤 했다. 한 권에 200만 원 정도 나오는 얇은 책을 두세 달씩 끌 때도 있었다. 그러면 한 달 수입이란 것은, 고졸 초봉과 비슷해진다. 배우고 싶은 것이 많은 아이는 이 학원 보내 달라, 저 학원 보내 달라, 요구사항도 많은데, 그런 수입으로는 어림도 없다. 어느 날 문득, 아, 이제 아무 데도 의지할 곳 없는데 이렇게 나태하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목표를 정하여 일을 하자, 내 능력의 한계까지 목표를 세워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달 수입은 최소한 얼마까지, 하루에 작업시간은 몇 시간, 잠은 몇 시간씩.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것은 확실히 효과적이었다. 예전보다 한 달 정도는 작업시간이 당겨졌다. 그렇다고 해서 날림작업을 하는 게 아니라, 빈둥거리며 노는 시간을 대폭 줄이고 바짝 긴장하여 작업을 하니, 완성도는(p. 69)더 높아졌다. 그러자, 비로소 부업이 아닌 본업으로서의 수입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아무도 통제하지 않고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자기자신을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에 따라 번역은 본업이 되기도 하고 부업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아직 번역 초기인 많은 분들은 이렇게 투덜거릴 것이다. 일이 있어야 하지. 맞는 말이다. 일이 있는 경우의 이야기이긴 하다. 하루에 몇 시간이 아니라 일만 있다면 밤을 새워서라도 하고 싶은데 번역 일은 빈익빈 부익부, 빈곤의 악순환, 좀처럼 들어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고고한 프리랜서이고 싶지만 내용물은 날백수인, 그런 생활을 나도 초보 시절엔 수없이 해보았다. 소심하고 소극적이며 새로운 세상에 대해 두려움이 많았던 나는, 번역 일을 시작해 놓고도 시장을 개척할 생각보다 마냥 나무의 감이 입 안에 떨어질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넓고 권남희는, 보이지도 않았다. 키가 작은 내가 높은 감나무의 감을 따기 위해 발악을 하지 않는 한, 감이 내 입에 떨어질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물론 감을 먹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다면야 그깟 감 따위, 어디로 떨어지든 상관없지만, 나는 절박했다. 일본 생활을 청산하고 들어온 애 아빠의 구직활동은 난항이었고, 한창 재롱을 떠는 아이는 세상모르고 밝기만 한데 잔고가 없는 통장은 내 목을 조이고 있었다. 그럴 때 생각했던 것이 기획이었다. 직접 일본에 가서 책을 구해와 기획서를 작성하여 출판사에(p. 70)소개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 나라에 유미리의 에세이집 《창이 있는 서점에서》가 처음 소개되었는데, 때마침 유미리가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는 바람에 출판사도 나도 서로 득을 본 작품이다. 그 이외에도 무라카미 류의 《고흐가 왜 귀를 잘랐는지 아는가》, 《오디션》, 《실낙원》의 작가 와타나베 준이치의 아포리즘, 추리소설집, 연애 에세이집 등등, 많은 작품을 스스로 기획하여 번역했다. 이제는 먹으라고 따다 주는 감만으로도 배가 부를 지경이라,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 그러나 이런 건 인터넷이 없던 시절의 이야기라, 지금은 현실성이 없을지도 모른다. 번역은 하고 싶은데 인맥도 없고, 사방이 막혀서 도무지 방법이 없다고 생각되는가. 그렇다면 일찌감치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하거나, 이판사판 목숨 걸고 뚫어 보라. 압축기, 가끔 마시마로가 모자처럼 머리에 붙이기도 하는 그 압축기로 막힌 하수도를 뚫듯이, 막혀 있는 미래를 뚫어 보라. 일본어 번역을 하는 사람이라면(어느 언어권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인터넷에서 아마존 재팬 같은 일본 사이트를 찾아, 국내에 출간되지 않은 좋은 책들을 골라 보라. 검토서를 작성해서, 출판사에 보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니, 가장 보편적인 뚫기 방법이다. 열심히 뒤져서 좋은 책을 골랐으나, 알고 보니 이미 계약된 책일 수도 있고, 시장성이 없어 출판사에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수도 있고, 혹은 채택되어도 다른 기성 번역가에게 맡길(p. 71)수도 있다. 그러나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다 해서 ‘아, 삽질했네.’ 하는 좌절은 금지다. 번역 책을 많이 내는 출판사에서는 신간 검토할 사람들을 항상 찾고 있다. 고정적으로 맡기는 사람이 있다 해도, 검토서 작성을 깔끔하게 하고, 적극적으로 자료를 찾아오고 발췌 번역이 훌륭한 사람이 나타난다면 아마 한번쯤 기회를 줄 것이다. 선임자가 친인척이 아닌 한은 말이다. 그렇게 기회가 찾아왔을 때마다 검토자 역할을 잘 해낸다면, 그 다음은 믿고 책 한 권 덜컥 맡겨주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일이 없다고 투덜대는 사람들은 아마 실력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떨어지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딴에는 완벽한 조준이라 생각하며 감나무 밑에 누워 입만 벌리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일이 없는 동안에는 차라리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부지런히 책을 읽어 국어실력을 키워라. 번역을 하는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다음 번역은 매끄러워져 있을 것이다. 이것은 내 자신에게 항상 들려주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번역을 한 권 마치고 나면, 뒤에 아무리 똥차 밀리듯 일이 밀려 있어도 반드시 국내소설 한두 권쯤 읽은 후, 다음 작업을 시작한다. 일본식 문장에 익숙해진 머리를 조금이나마 원위치 시켜놓기 위함이다(p. 72). 보르헤스의 작품 번역을 수정하면서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 중의 하나가 지금의 번역본에는 옮긴이 각주가 많이 있는데, 과연 그것이 필요한가라는 의문이었다. 어느 세계문학전집에는 "세대마다 문학의 고전은 새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말이 적혀 있다. 보르헤스가 국내에 본격적으로(p. 147) 소개된 지는 불과 10년 정도밖에 안 되었지만, 지금과 그 당시를 비교하면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다. 가령 10년 전에는 많은 작가들과 독자들이 리얼리즘 양식에 집착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또한 보르헤스에 대한 관심도 상당하고 그에 대한 연구도 많이 진척되어 있다. 하지만 아직도 독자들은 보르헤스의 작품에 담긴 서스펜스나 극적인 반전과 같은 서사양식이 아니라 그의 현학적인 지식에만 관심을 보이며 그가 파놓은 미로에 빠져버린다. 번역가 역시 그의 현학적인 지식 때문에 많은 애를 먹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한다. 보르헤스의 현학적 지식에 담긴 사상이 현대의 과학적 패러다임의 허구를 밝히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확실성에 대한 의문은 그의 작품 구조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런 것들을 염두에 두니 보르헤스의 현학적 지식을 설명하는 번역 각주가 이제는 그다지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차라리 독자들이 그런 지식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번역하는 것이 그의 작품을 보다 잘 이해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 수정본이 결정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정본이란 '화석'과 같은 죽은 존재라고 여긴다. 번역에서 결정본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런 의미에서 번역은 영원히 살아 있다. 번역할 가치가 있는 모든 것은 가능한 한 여러 번 번역되어야 한다. 번역은 변화이며 움직임이다. 더 이상 가야할 장소 없이 동일한 상태로 남아 있을 때 문학은 죽어버리기 때문이다(p. 148).김병중(Th.D) 03-17 00:16 -
【북토크】 어디서나 책을 읽자
나는 요즘 지하철에서 책을 많이 읽는다. 취재 가방에 꼭 책 한 권을 넣어 간다. 그러면 여유가 생긴다. 시간이 남을 때 지루해하지 않고 책을 읽으면 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가 불현듯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것에 관해 쓴 책이 있는지 궁금해 검색했더니 있어 대출해 읽었다. 매우 유익했다. 그런데 이미 절판됐다. 복잡한 지하철이지만 그래도 책을 읽을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도서관이고 훌륭한 저자의 사상을 접할 수 있는 만남의 현장이다.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을 잘 활용하면 엄청나게 책을 읽을 수 있다. 이래저래 내 차를 잘 안 타고 다니니 여러모로 유익하다. 자신이 출퇴근하는 시간대가 러시아워 시간이라면 지하철에 서 독서습관은 어렵다. 이때 출퇴근 시간은 죽는 시간이 되어버(p. 40)린다. 지하철 독서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는 아침에 러시아워를 피해 일찍 출근할 것을 권한다. 이른 아침의 지하철은 독서 하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다. 30분만 일찍 집을 나와도 러시아워는 피할 수 있다. 당신의 아침이 달라지면 하루가 달라지고 하루가 달라지면 인생이 달라진다. 죽어 있는 출퇴근 시간만 살려도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 덜커덩덜커덩하는 흔들림은 오히려 책 읽기 좋은 진동이다. 독서습관이 완성되는 날까지 당신의 최선은 아직 실행되지 않았다. 지하철 독서습관이 완성되는 날까지 작은 행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조금 더 일찍 출근하는 작은 행동은 지하철 독서습관을 들이기 가장 좋은 방법이다(p. 41). 세계적인 동기부여가 찰스 존스는 “지금부터 5년 후의 내 모습은 두 가지에 의해 결정된다. 지금 읽고 있는 책과 요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슴 뜨거워지는 꿈을 갖고 싶은가? 그럼 바로 책을 읽어라. 너무나 쉽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독서다. 왜냐하면 꿈을 찾기 위한 독서는 꾸준히 해야 하기 때문이다. 꾸준한 독 서는 마음을 열고 설레는 꿈을 찾게 한다. 지하철 독서로 독서(p. 69) 습관을 기르면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날이 올 것이다. 단순히 ‘무엇이 되고 싶다’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독서이다. 나의 경우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작가 아니라 독서의 힘을 알리고 많은 사람에게 좋은 변화를 불러오게 하는 작가가 되는 꿈이다. 그 꿈을 실현하는 나의 첫 책을 2017년 3월까지 초고를 완성하기로 계획했다. 그리고 새벽 5시에 일어나 독서하고 책을 쓴다. 지금 이 글도 새벽에 쓰고 있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이 많아지고 독서습관으로 성장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이것이 출판 기약도 없는 집필을 계속하게 하는 힘이다. 매년 독서의 힘을 알리는 좋은 책을 쓰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독서모임을 이어가는 작가가 될 것이다. 특히 아이들, 엄마들에게 독서의 힘을 전파하고 싶다. 난 그러기 위해 계속 책을 읽을 것이다. 누구나 성공을 꿈꾼다. 누구나 부자를 꿈꾼다. 그렇게 되려면 만나는 사람을 바꿔야 한다. 지금의 나를 성공한 사람이 만나 주지 않아도 괜찮다. 당신이 그의 책을 읽으면 된다. 오히려 직접 만나는 것보다 책을 통해 저자와 가까이서 만나고 대화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통해 이지성, 하우석, 김송호,(p. 70)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그리고 고인이 된 사람들까지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철학자 데카르트도 "좋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지난 몇 세기에 걸쳐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성공한 사람들을 만남으로써 생각이 달라지고 인생이 달라진다. 하우석의 〈5년 후〉에서 오로지 공부만 해온 카이스트 학생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최근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수재들만 들어갈 수 있다는 카이스트에서 잇달아 학생들이 자살한 사건이 우리 사회를 깊은 충격에 빠뜨린 적이 있다. 그즈음 나는 카이스트 학생 몇몇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때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이 다음과 같은 말을 털어놓았다.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여태까지 정말 공부만 해왔거든요. 믿지 않으시겠지만, 저는 공부에 소질이 있어 공부를 했을 뿐이지, 뚜렷한 목적을 품고 공부를 한 게 아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1등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선행학습을 하게 되었고 명문 중학교를 거쳐 과학고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선 오로지 '카이스트, 서울대, 포스텍'만 생각하게 됩니다. 선생님도, 학생도 모두 그래요. 어쩌면 '당연하게(p. 71)도 저는 카이스트에 입학했습니다. 또 그곳에서 오직 공부만 했습니다. 석사를 목표로, 또 그 후엔 박사를 목표로, 드디어 박사과 정이 끝나갑니다. 그런데 정말 저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현실은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남은 인생 동안 무엇을 하고 싶은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선배들처럼, 친구들처럼 그냥 연구원의 길을 따라가야 하는 건지..., 아니면 새로운 삶에 도전해야 하는 건지...., 연구원으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그런데 그게 과연 제가 원하는 삶일까? 하는 질문에 저는 그렇다는 대답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길에 대한, 새로운 삶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정보도 없고요. 그래서 고민입니다. 후후 그냥 막연한 고민이죠.” 최고의 수재들이었지만, 공부보다 우선해야 할 자신의 인생 설계에는 너무나 취약했다. 어느 순간부터 공부가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는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하지 말고 내 꿈을 위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달리는 우리의 삶은 기업처럼 주도면밀하게 자신의 인생계획을 짜야 한다. 평범한 주부도, 은퇴를 앞두고 있는 직장인도, 중고등학생도 모두 자기 책임으로, 자기 주도하에 자신만의 인생계획을 수립해야 한다(p. 72). 책을 읽으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물론 책을 많이 읽었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내가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배우자가 바뀌지도, 자녀의 태도가 달라지지도 않 는다. 직장에서 일거리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집안일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달라지는 것은 바로 내 마음가짐이다. 내 마음가짐이 달라지면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그러면 배우자,(p. 75) 자녀, 직장 동료를 대하는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편안해진다. 오가는 대화도 한결 부드러워진다. 주어진 환경은 바꿀 수 없지만 내 마음은 바꿀 수 있다. 마음을 달리 먹는다는 것은 생각을 바꾼다는 것이다. 생각을 조심하라. 그것이 너의 말이 된다. 말을 조심하라. 그것이 너의 행동이 된다. 행동을 조심하라. 그것이 너의 습관이 된다. 습관을 조심하라. 그것이 너의 인격이 된다. 인격을 조심하라. 그것이 너의 운명이 된다. <마거릿 대처> 결국 운명을 바꾸는 근원은 생각이다. 생각은 씨앗이다. 씨앗은 뿌린 대로 거둔다. 자연의 섭리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빌은 “현재 우리의 모습은 과거에 우리가 했던 생각의 결과”라고 했 다. 생각은 힘이 있다. 심지어 김승호 대표는 생각은 ‘물리적인 힘’이라고 했다. 생각이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뀐다(p. 76). 한국경제신문에 소개된 〈전쟁터로 간 책들〉의 독자편지한 대목이다.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군인들은 책을 들었다. ‘무릎까지 빠지는 진창을 헤맨 이래로,...동료 병사가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는 데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던 이래로, .... 더 이상 사람이나 사물을 사랑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열여(p. 104)덟 살에 입대해 2년간 전장을 돌아다니며 지옥을 겪었다는 한 미국 해병대원의 고백이 이어진다. ‘차가운 마음과 무뎌진 정신으로 저는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잃었다고 여겼습니다’ 그는 전쟁터에서 만난 베티 스미스의 〈나를 있게 한 모든 것들〉을 읽으면서 뭔가 내부에서 꿈틀거렸다고 했다. '차갑던 마음이 다시 살 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책은 제게 웃음과 기쁨, 눈물을 가져다 줬습니다. ... 눈물이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제가 인간임을 증명해 줬으니까요.' 내가 살기 위해 적을 죽여야만 했다. 아무리 전쟁터이었지만, 처음에는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정신적인 충격이었을 것이다. 전쟁이 계속될수록 사람을 죽여도 아무런 감정이 일지 않았다. 내가 살인병기가 된 것인가? 무섭고 두려웠을 것이다. 인간의 감정을 잃어버렸을까 봐. 의문이 들었던 군인들은 전쟁터에서 책을 읽었다. 끝없는 진창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빗물 고인 참호에서 불편하게 잠을 청해야 했던 군인들의 바지 뒷주머니와 상의 주머니에는 책이 있었다. 군인들은 책을 읽으면서 ‘기쁘고 화나고 슬프고 즐거운’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여전히 인간의 감정이 존재한다는 것에 안도했을 것이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책은 수많은 군인들의 삶에 위안을 주었다(p. 105) 다구치 미키토 서원이 쓴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동네서점〉의 일부를 소개한다. 2011년 3월 11일, 진도 9.0의 대지진이 일본의 도후쿠 지방을 덮쳤다. 건물 3층에 박힌 자동차, 당장에라도 쓰러질 듯 기울어져 버린 주택, 대량 건물의 잔해들과 쓰레기... 상상을 초월하는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도시의 흔적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삶의 흔적을 찾고 있었고, 행방불명된 사람들을 찾는 소방대와 자위대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 다. 그곳에 작은 동네서점이 있었다. 서점 안에는 책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설마 혼란스러운 와중에 사람들이 전부 책을 가져간 걸까? 그곳 직원의 말에 의하면 서점을 다시 열었을 때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고 한다. '어떤 책이든 좋으니 아무튼 책을 좀 달라'며 다퉈 사 갔고, 그 후로 책이 들어오지 못해 서점이 텅 비어버렸단다. 전기며 수도, 가스도 복구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책을 필요로 했다. 갑작스러운 대지진으로 인한 불안, 앞일에 대한 걱정으로 사람들은 겁이 나고 불안한 그때 왜 책을 생각했을까? 그렇다. 책은 사람들에게 평상심을 갖게 하는 대상이다(p. 106). 2011년 3월 일본 최악의 재난인 쓰나미가 발생했다. 쓰나미는 집, 자동차, 심지어 가족까지 앗아갔다. 사람들은 많은 것을 잃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생존의 위협에 처한 사람들이 책을 사러 서점에 왔다. 그런 상황에서 왜 그들은 책을 사러 온 것일까? 그들은 책을 읽으며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을 달래고 평상심을 유지하려고 했다. 그로 인해 삶의 균형감을 얻으려고 했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 인간은 육적인 존재만이 아니라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마음이 배고플 땐 책을 읽어야 한다. 내면의 배고픔은 책으로 채워진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보낸 8년 동안 거의 매일 밤 한 시간가량 짬을 내서 책을 읽었다. 그는 "일이 정신없이 돌아가고 정보가 어지럽게 오갈 때 독서는 속도를 늦추고 균 형감을 갖게 한다. 책 읽기가 나를 더 나은 대통령으로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난 8년간 균형을 잃지 않게 해준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분초 단위로 짜인 공적 생활의 압박감과 긴장감을 그는 매일 취침 전 한 시간씩 책을 읽으며 균형감을 잃지 않고 견뎌냈다(p. 107). 〈완벽한 공부법〉을 쓴 신영준 박사는 "우리나라 성인들의 문해력 수준이 토론할 수 없는 정도라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어른들은 토론을 시작하면 싸움으로 변질하곤 한다. 토론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말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문해력은 단순히 단어와 문장을 해독하는 것을 넘어 복잡한 텍스트를 읽고 그를 해석하고 평가하는 능력을 말한다.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우리나라 성인은 좀 복잡한 문장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평가하지도 못한다는 뜻이다. 자녀와 기본적인 토론을 하려면 부모부터 독서를 통해 문해력을 키워야 한다.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은 국영수 공부하기 바빠 독서를 할 시간이 없다. 시험에 나올 인문고전을 달달 외울 뿐이다. 독서 습관이 없는 학생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책을 읽지 않는다. 주입식 교육에 길들어진 대학생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독서를 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독서를 주입식 교육으로 외워 독서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한 권을 보더라도 제대로 읽고, 충분한 토론과 비판이 이뤄지도록 하는 방식의 새로운 독서방식이 필요하다(p. 117).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은 "책은 인간이 마법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고 말했다. 책은 정말 마법의 도구이다. 헌책방에서, 서점에서, 도서관에서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보 물들이 잠자고 있다. 그 보물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당신의 멋진 인생을 위해서 계속 책을 읽어야 한다. 소크라테스도 "남의 책을 많이 읽어라. 남이 고생한 것을 가지고 쉽게 자기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현자들이 죽어가면서 남긴 것은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책이다. 그 현자들은 지금 알려진 사람일 수도 있고, 알려지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다. 우리는 그들이 오랜 시간 걸려서 깨우친 것을 그가 남긴 책으로 아주 간단하고 쉽게 얻을 수 있다. 책보다 더 쉽고 빠르고 간단하게 남의 것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책만큼 인생을 쉽게 바꿀 수 있는 것도 없다(p. 208)김병중(Th.D) 03-16 21:16 -
【북토크】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자
현직 일본 의사가 말기 환자의 의료행위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과연 존엄한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는 책이다. 중환자실에서 가망 없는 연명치료를 하며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모두 죽은 것은 확실한데, 이에 대한 담론이 적다. 존엄하게 죽는 법을 함께 토론하고 준비해야 한다. 대부분의 의사나 간호사들은 죽을 고비에 이른 환자에 대한 인공호흡이나 심장 마사지 등의 소생술은 의료인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확실히 건강하던 사람이 갑작스럽게 이상을 일으켰을 때, 예를 들어 심근경색 발작 같은 양성 질환으로 갑자기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는 구급소생술을 적정하게 실시하는 것으로 죽음의 문턱을 한 걸음 넘어서버린 환자의 호흡을 되돌릴 수 있다. 그리고 그 후의 치료에 따라 어느 정도 사회 복귀도 가능하다. 따라서 응급 시에 능숙하게 소생술을 실시하거나 각종 약제를 적합하게 사용할 줄 아는 것은 의사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p. 44) 능력이다. 또 상황에 따라 임사(臨死) 환자에 대한 인공호흡이나 심장 마사지 등의 소생술은 의료인으로서 당연한 의무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 나오는 환자의 경우는 과연 적절했다고 할 수 있을까. 이 환자와 같이 이미 손쓸 도리가 없는 사람에게, 그리고 본인조차 죽음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 말기 암 환자에게 시행하는 소생술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설령 이 소생술이 성공해서 환자의 목숨이 몇 시간에서 며칠 정도 연장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진단 말인가. 만약 의식이 돌아온다고 해도 환자는 의료 기계에 둘러싸여 고통으로 가득 찬 시간만 다시 맛볼 뿐이다. 그리고 다시 곧 죽음에 이를 것이다. 의식이 돌아오지 않으면 (이런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환자의 심장이 기계적으로 몇 시간 움직일 뿐이고, 그 환자는 곧 소생술을 개시하기 직전의 임사 상태로 돌아가 버린다. 임사 상태에 있을 때 시행하는 소생술은 그때까지 불치병과 싸우느라 영혼까지 지쳐버린 말기 암 환자에게 겨우 찾아온 휴식 시간을 방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미 아무런 힘도 의지도 없는 환자의 육체에게 억지로 버텨보라고 강요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거기엔 죽어가는 사람에 대한 배려도 경외도 애도의 마음도 없다. 그저 일분일초라도 환자의 목숨을 더 연장시키려고 하는, 연명지상주의의 현대 의학 교육을 받은 의사의 의무감만 있다(p. 45)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의사 스스로 그 소생술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의미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이 이야기에 나오는 것처럼 허락할 수 없는 소생술이 자행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의미가 없는 일을 임사 환자에게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이런 상황에서의 소생술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만약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고 바라는 사람들에게 나는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 싶다. "자신의 죽음이 확실해졌을 때는 ‘절대로 무의미한 소생술은 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죽게 해주세요.’ 라고 가족과 의사에게 반드시 말해두십시오." 그렇게 해두지 않으면 이 이야기에 나오는 환자처럼 당신의 죽음은 당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최후의 순간에 엉망진창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p. 46). 말기 암 환자가 모두 통증을 호소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동통 때문에 괴로워하는 암 환자는 전체의 3분의 2로 알려져 있다. 또 동통을 호소하는 환자가 모두 극심한 통증을 경험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통증 때문에 죽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괴로움을 호소하는 환자는 틀림없이 존재한다. 그러나 임상 현장에서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의사들이 말기 암 환자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동통 대책도 불충분하기 짝이 없는 게 현실이다. 아니 동통 대책이 불충분하다기보다는 다양한 제통법이 있는데도 그것들을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든다. 예를 들면 암성 동통에 대한 모르핀의 유효성과 안전성은 충분히 입증되었고, 그것을 제대로 사용하면 이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성격이 바뀔 정도로 통증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모르핀 중독의 미신을 믿는 의사들 때문에 환자의 고통이 방치되고 있다. 그러한 실태를 보고 있으면 의사들의 관심이 환자 자체가 아니라 암에만 가 있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또 그러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말기 암 환자는(p. 90) 불쌍하다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그런데 암 환자가 호소하는 고통이 모두 암 자체로부터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고통의 대부분은 암 종양 때문에 생기는 것이고, 암 종양이 커지면서 주위 기관을 압박하거나 신경으로 차츰 퍼져 나가는 것 등에 기인한다. 그 밖에 호소하는 고통은 이 이야기에 나오는 것처럼 육체적인 고통이라기보다 날로 약해져가는 자신의 상태에 대한 불안이나 고독, 공포 등에 따른 심리적, 정신적 고통이다. 그러한 심리적, 정신적 고통을 육체적인 고통으로 호소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이런 에피소드도 있다. 어느 대학병원에 여성 암 환자가 입원해 있었다. 그녀의 암은 말기 유방암이었고, 늘 심한 동통을 호소했다. 그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진통제 주사를 요구했다. 그런 그녀가 더 이상 치료 수단이 없다는 이유로 시내의 다른 병원으로 보내졌다. 하지만 그것은 그럴듯한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를 그저 성가신 물건 처리하듯 다른 병원으로 보내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병원을 옮긴 것이 그녀에게는 행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병원에는 그녀와 같은 말기 암 환자도 여느 환자와 똑같이 간호해주는 간호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병원을 옮긴 후에도 대학병원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자주 동통을 호소하며 진통제 주사를 요구했다(p. 91) 그러던 어느 날 고통을 호소하는 그녀에게 어느 간호사가 진통제 주사 대신 한 잔의 뜨거운 커피를 들고 갔다. 간호사는 커피를 권하며 환자의 이런저런 호소를 진심으로 들어주었다. 그 다음 날부터 그녀가 고통을 호소하는 일이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진통제 사용도 격감되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실화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이런 의료 현장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적을 것이다. 어느 병원이나 분주하게 돌아가는 데다 대부분 말기 암 환자가 방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같은 주장을 펼칠 생각이지만, 일반 병원은 사람이 죽기에 알맞은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우선 독자 여러분께 알려드리고 싶다. 지금 잠깐만이라도 나의 이 생각에 동의 해주셨으면 한다(p. 92) 운명을 바꿔놓은 한 권의 책 이 조용한 남극 바다에서 승조원들은 곧장 해저의 지질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무한한 자유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 청정한 자연 속에서 뱃멀미에 시달리지 않으면서 이럴 때를 대비해 일본에서 가져온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독서에 지쳐 갑판으로 나오면 그곳에는 맑고 차가운 공기가 가득했고, 눈앞의 빙산에서는 펭귄들이 침입자에 아랑곳 않고 자기들만의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바다 속에서는 가끔 고래들이 포획 따위는 두렵지도 않다는 듯 물을 뿜어 올리면서 유영하고 있었다. 어쨌든 이처럼 태평스럽게 책을 읽는 것도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그 책들 가운데 한 권이 내 운명을 바꿔놓게 되었는데, 일 본을 떠나기 전에 아무 생각 없이 산 책이 이렇게 내 인생관을 송두리째 바꿔놓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 한 권의 책이란 1926년 스위스에서 태어난 미국 여성 정신 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쓴 《죽음과 죽어감on Death and Dying)이다(p. 126). 특이한 제목의 책이었지만, 의사 나부랭이인 나는 죽음에 관한 책을 읽어두면 어떻게든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가벼운 생각에 냉큼 사고 말았다. 따라서 이 책에 대한 예비지식은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처음 책을 대한 순간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으려면 나름대로 노력이 필요하겠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읽기 시작해서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내가 의사가 되고 8년이나 걸려서 얻은 몇 가지의 '바로 그런 것'이라는 상식이 너무나도 쉽게 뒤집혀버린 것을 내 가슴속에 차오른 뜨거운 감동 속에서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몇 가지의 의료 행위가 급속도로 괴로운 과거가 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 한 구절을 읽고 나서 잠시 동안 책장을 넘길 수 없었다. 그 한 구절 이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환자가 삶의 마지막을 정들고 애착이 가는 환경에서 보낼 수 있다면, 환자를 위해 일부러 환경을 조성할 필요는 거의 없다. 가족들은 그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진정제 대신 그가 가장 좋아하는 한 잔의 포도주를 따라 줄 것이다. 집에서 만든 수프라면 그 냄새에 식욕을 느낀 그가 몇 모금 삼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수프 한 모금은 어쩌면 그에게 어떤 영양제보다도 훨씬 더 기운을 북돋아줄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나는 그런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지금 다시 읽(p. 127)어봐도 아련한 감동이 느껴지는 구절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깟 거에 무슨 감동까지 느끼냐고 의아해할지도 모르지만 당시의 나는 이 한 구절을 읽었을 때, 솔직히 말하면 온몸의 피가 역류 하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 한 구절은 내가 의사가 되고 나서 배운, 또 당연한 것으로 알고 시행하던, 죽어가는 사람들의 목숨을 일분일초라도 더 연장시키려는 의료 행위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지켜본 후에 항상 느끼던, 열심히 치료했는데도 왠지 뒤끝이 개운치 않고 찜찜한, 뭐라 말할 수 없이 답답하던 내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구절이기도 했다. 그랬다. 그런 것이다. 혼자뿐인 선실 안을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방 안을 돌아다니면서 나는 죽어가는 사람을 대하는 내 자세의 출발점이 되기도 했던 어느 환자의 임종 장면을 떠 올리고 있었다(p. 128). 병원에 돌아온 지 9일째 되는 날 그녀의 조용한 반응은 더욱 약해졌고, 10일째 되는 날 밤에 그녀는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60년의 생을 마감했다. 그녀는 여러 튜브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평온하게 죽음을 맞았다. 그녀의 인생 대부분이 결코 행복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마지막 10일 동안 그녀가 절망적인 불행의 한복판에 있었다고는 해도 스스로 납득하는 삶을 보낼 때, 그것을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을 때, 비통한 외침 속에서가 아니라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미소를 지으며 최후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었다(p. 197). 실제로 임종에 이르러 환자의 고통스런 숨소리와 가래 끓는 소리, 표정, 손발의 움직임 등은 병원에 있든 집에 있든 장소를 불문하고 나타날 수 있는 증상들이다. 그러한 증상들 대부분은(p. 222) 인간이 죽어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 시점에서는 병원에 있다고 해도 대처할 만한 방법이 거의 없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그런 상태의 환자 대부분은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이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생각하듯 고통이란 걸 느끼지 못한다(p. 223) 나는 모든 말기 암 환자에게 환자 자신의 병명과 현재 상태를 알려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암 고지처럼 무겁고 괴로운 정보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런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나름대로 극복하는 사람들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p. 242) 내가 이처럼 말기 암 환자에게 병명과 병세를 전하는 데 얽매 이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환자 본인의 정보이고, 그 정보가 환자의 남은 인생을 크게 좌우하기 때문이다. 정확한 병명과 병세는 환자에게 괴로운 정보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불치병이라는 이유로, 어차피 치료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쌍하다는 이유로, 의사나 가족의 판단 만 갖고 환자에게 진실을 숨겨서는 안 된다. 그러한 행위는 결국 상대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고, 동시에 올바른 정보를 근거로 직접 판단하고 결정해서 자신의 남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자기 결정권'이라는 소중한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일방적으로 그 사람 인생의 가능성을 빼앗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누구나 다른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그것이 설령 가족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인생을 함께 짊어지는 도움쯤은 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실제 임상 현장에서는 의사가 가족과 함께 생각하면서 고민해야 하고 가족의 동의하에 진행되어야 하지만, 병명과 병세를 전하려는 노력을 아예 처음부터 하지 않는다면 환자의 인생을 모욕하는 것이 될 수도 있는, 당연히 잘못된 행위다(p. 243). 여기서 한 가지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은 병명과 병세를 전했다고 해서, 즉 거짓이 없어졌다고 해서 깊은 교류 관계가 성립 되었다기보다는 깊은 교류를 맺었기 때문에 진실을 전할 수 있(p. 273)었고, 또 그에 따라 더욱 깊은 신뢰 관계로 발전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의료인과 환자 그리고 환자 가족이 서로에게 우정을 느낄 정도로 교류를 할 수 있으려면 당연히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재삼재사 강조하지만 실제 의료 현장은 매우 바쁘게 돌아가는 곳이다. 그러므로 환자에게 진실을 전하고, 환자가 자신이 처한 진짜 상황에 근거한 인생을 보내게 해준다는 것은 나름대로 각오하고 매달리지 않는 한 불가능에 가깝다. 즉 대부분의 말기 암 환자가 죽어가는 일반 병원의 경우, 충분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그들에 대한 간호는 통상적인 업무 리듬과 맞지 않기 때문에 대개는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 나는 지금 근무하는 병원에서 종말기 의료(터미널 케어)에 몰두했던 것인데, 그 성과는 아무리 노력해도 입원 중인 말기 암 환자의 20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것이 일반 병원에서 할 수 있는 터미널 케어의 물리적인 한계임을 여실히 느꼈다. 결국 지금의 이 체제나 상황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80퍼센트에 가까운 환자는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깨닫지 못하고, 설사 깨닫는다 해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비참한 상황에서 환자나 그 가족은 불만을(p. 274) 터뜨리지 않는 것일까. 대부분의 말기 암 환자는 자신의 실상을 모른 채 투병하고 있고, 가족과 의료인은 환자에게 진실을 전하지 않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가치관이 바뀌지 않는 한 의료 현장의 실상 또한 그리 쉽게 바뀌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진실을 알고 나름대로 인생을 마무리 하려는 자립적인 사람들에게는 일반 병원만큼 최악의 장소도 없을 것이다(p. 275). 호스피스에 대해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종교적인 도움의 문제다. 영국과 미국의 호스피스가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은 호스피스 간호를 제공하는 쪽이나 받는 쪽이 모두 기독교라는 공통된 종교를 지녔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래도 종교적 배경이 두텁고 같아야 환자의 종교적인 필요와 욕구에 부응하기 쉬울 것이다. 그래서 종교적 배경이 허술한 일본에서는 호스피스 간호가 곤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한다(p. 281).김병중(Th.D) 03-16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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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중(Th.D) 11-04 19:37
3代의 감 따기
2020년 12월 담임목회 사임 후 부모님 댁에 얹혀 살면서 이듬해부터 가을에 감을 따고 있다. 올해도 감을 땄다. 20여 년 전 어머니께서 이 집을 사서 오신 후 종로 묘목상에게 어린 감나무를 사서 마당에 심었다가 아버지께서 집 밖 귀퉁이로 옮겨 심으셨다. 올해 4년째에는 이전처럼 감나무에 비료를 주지도 못하고 지냈는데 어머니가 막걸리 등 양분을 주셔서 그런지 깨끗하게 감이 열렸다. 이전에는 감 주위에 흰 것들이 붙어 있었는데 말이다. 이 감이 탐스러웠는지 동네 어떤 사람이 두 번이나 따는 것을 어머니 아는 분이 소리쳐 내쫓았다고 한다. 그래서 더 손타기 전에 어머니, 아들과 함께 감을 땄다. 이사 올 때 감나무 잎 떨어지는 것이 지저분해 어머니는 잘라버리시려고 했는데 나는 살려 두자고 했다. 그 결과 서울에서 감을 따는 재미와 먹는 재미를 누리고 있다. 아버지도 침대에 누워계시면서 잘 익은 감을 맛있게 드시니 다행이다. 70여 개는 딴 것 같다. 대봉이라 익혀 먹어야 한다. 매년 감 따는 재미를 누리고 싶다. 단톡에 어떤 사람이 감의 효능에 대해 올려 공유해 본다. "감" 많이드세요! "감"만큼 다양한 치유력과 탁월한 효능을 갖고 있는 과일은 없다고 해도 될 만큼 놀라운 과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감은 종합 영양제라고 할 수 있는 최고의 과일이죠. 감 1개에는 사과 9.5개 분량의 비타민이 들어있는데 이는 최고의 천연 종합 비타민 과일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리고 비타민 A는 시각 유지에 필요한 로돕신을 만드는 영양소인데 이 비타민 A가 감 1개에 성인이 하루 섭취해야 할 양이 모두 들어 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눈을 많이 쓰는 수험생이나 노안으로 눈이 나빠지는 경우에 시력 보호용 과일로도 좋습니다. 감의 주성분은 당질(15~16%)인데 포도당과 과당의 함유량도 매우 높으며, 비타민 C와 A 그리고 탄닌, 칼륨, 마그네슘 등이 풍부하게 함유된 알칼리성 식품입니다. 감은 최상의 건강 과일이라 해도 지나침이 전혀 없다고 합니다. 이런 최상의 건강 과일이 흔하고 값도 싸기 때문에 무시하고 비싼 과일만 사드시고 있겠죠! 사과 10개 먹는 것보다 감 1개 먹는 것이 더 좋다고 증명하고 있어요. 잘 모르셨죠? 감은 자연 치유제로도 최상의 특급 과일이며 피부에도 최고랍니다. 심폐(心肺)를 녹여주며 갈증을 멈추고 폐위(肺痿)와 심열(心熱)을 치료합니다. 위의 열을 내리고 입이 마르는 것을 낫게 하며 토혈(吐血)을 멎게 해 주는 탁월한 효능을 갖고 있는 약입니다. 얼굴의 주근깨를 없애고 기침, 만성기관지염, 고혈압, 심장 질환 등에도 효능이 있는 식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중풍 예방약으로도 쓰입니다. 감만큼 다양한 치유력과 탁월한 효능을 갖고 있는 과일은 없다고 합니다. 감 많이 드세요. -
김병중(Th.D) 03-30 10:30
옥수수 파종
옥수수 파종 옥수수 두 알을 땅을 파고 묻는다. 끝! 어제 10년 같이 산 개를 장사했다. 밤나무 언덕에 땅 파고 사체 넣고 묻는다. 끝! 장례식도 비슷하다. 땅 파고 넣고 묻는다. 끝! 성도의 삶을 땅에 묻힌 밀알이라 했다. 땅에서 썩어 열매 맺는다. 땅에 묻히는 게 영광이다. 흙으로 가려지는게 시작이다. 나머지는 생명을 주관하는 주의 몫이다. -
김병중 10-28 19:12
강의창 장로 부부 시
강의창 장로 시 에벤에셀 참으로 오랜 세월 방황하며 허우적거릴 때 미스바로 모여라 부르는 소리 가야만 된다는 거역할 수 없는 부르심에 제단 앞에 무릎 꿇었습니다. 회개의 눈물은 얼굴에 홍수를 이루고 입술이 열리며 알 수 없는 천국 방언이 쉴새 없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후로부터 모리아 산 이삭의 제물처럼 생(生)과 사(死)를 당신께 맡겼습니다 이제는 달려 갈길 다 가고 여기까지 도우신 기념비를 지워지지 않는 종이에 아로새깁니다 여명(黎明) 밤 새워 진통을 앓던 어둠은 동해에 떠오르는 붉은 태양에 희망의 나래를 펴고 날아든다 그림자 없는 어둠을 헤메이며 밤 새워 토해 내던 역겨운 세월들 하늘 눈물 쏟아 내고 눈이 열렸다 가지 끝에 매달려온 가느다란 빛줄기는 검붉은 심장을 터트리고 여명(黎明)의 호흡으로 벅차 오른다 해당화 이른 아침 이슬 머금은 해당화 장독 항아리 여는 엄마와 눈 맞춤한다 인생살이 고달파도 장독대에 가면 마음의 부자 해당화 꽃향기에 취해 얼굴에 미소 지으며 간장 된장 퍼와서 식구들에게 고운 정 퍼붓던 엄마 엄마의 향기 지금도 내 마음에 피어오른다 홍수임 권사 시 아버지 (1) 이름만 불러도 마음 깊은 곳에서 사랑의 울림이 메아리쳐 옵니다. 밤늦게 귀가할 땐 딸 사랑에 잠 못 이루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마당에 서성이셨다. 딸 발자국 소리 들려오면 모르는 척 방에 들어가 등잔불 끄고 아침이 오면 말없이 일거리 주시며 마음으로 안아주시던 아버지 예수 부활 (4행시) 예수 믿고 구원됨이 복중에 제일 큰 복이요 수확 중에 제일 많은 수확이다 부하게 넘치는 축복으로 하나님 영광을 위해 활용하여 많은 상급으로 선한 사업에 부요하길 원합니다. -
김병중 10-17 11:41
이제 가을은 끝났다 - 손근식 장로
이제 가을은 끝났다. 기온이 뚝 내려간다고.. 아직 들판은 추수를 마치지않았는데... 누가 추수를 하러 갈런지.. 오이코스 초청 추수 대작전이 조용하게 개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