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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중 03-26 00:47

    돈인가? 하나님인가? 선택의 길에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예수님의 이 말씀은 재물이나 하나님 중에서 오로지 하나만을 선택하여 섬길 수 있는 것이지, 둘 다 얻을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선택하면 재물을 버릴 수밖에 없고, 재물을 선택한다면 하나님을 선택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성경적 삶이란 가난하게 사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부자는 천국에 갈 수 없고, 오로지 가난한 삶을 사는 자만이 하나님에게 합당한 것이라고 결론 내린다. 실제로 기독교 역사를 보면, 이러한 정신에 따라 스스로 가난한 삶을 추구했던 분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맨발의 최춘선 할아버지는 가난한 삶을 실천하였다. 그를 중심으로 찍은 다큐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김우현 작품)는 아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물론 그래서 그렇게 자기도 살아보겠다는 사람을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불교에서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그렇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살겠다는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자는 이 세상에서 잘 되고 복을 받을 것이라고 묘사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얻을 수 없다는 이 말은 무슨 뜻일까? 적어도 하나님을 믿으려면 가난해야만 한다는 뜻은 아니다. 부자이면서도 하나님을 잘 믿었던 사람들이 성경에는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말은 “섬기는 대상”에 오로지 하나님 한 분만을 모셔야 한다는 의미이다. 우리들의 마음의 왕좌에 앉을 자리는 하나밖에 없다. 거기에 하나님이 앉으시면 재물이 들어설 수 없고, 재물이 들어서면 하나님께서 앉을 자리가 없다. 재물은 우리에게 주어진 수단이고 하나님의 선물일 뿐이다. 그런데 이 재물이 너무 좋은 나머지 우상이 되어버리고, 섬김의 대상이 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결국 재물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버리고, 우리의 경배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렇게 된 사람들을 향하여 부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신다. 여기서 말하는 부자란 돈이 많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왕좌에 돈을 앉혀버린 사람들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자가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 언제 재물이 우리들에게 우상이 되는가? 언제 재물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해버리는 것인가? 우리는 재물이 우상이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만일 재물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고 있다면, 그것은 재물이 우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법칙에 따르는가, 따르지 않는가로 판단할 수 있다. 얼마 전 영국 레스터-노팅엄 포레스트 FA컵 4라운드 경기에서 있었던 일이다.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레스터는 2부 리그 노팅엄 포레스트에게 1-4로 패배하였는데, 전반 32분 3-0을 만들며 승리를 확신한 노팅엄 선수들은 기쁨에 겨워 골 세리머니를 펼쳤을 때였다. 레스터 팬 한 명이 뛰어들어가 선수들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안면을 가격했다. 그에게 있어서 스포츠는 단순히 여가를 즐기는 수단이 아니라, 어느새 우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우리에게 좋은 모든 것들이 우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들의 자녀들도, 우리들의 직장도, 내가 좋아하는 정치인도, 때로는 심지어 교회에서의 사역도 우리의 우상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우상이 되어버리면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로 행동하게 되어 있고, 때로는 악을 행하면서도 악한 줄 모르게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좋아함을 넘어서서 우상의 단계로 올라가 버린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님과 겸하여 섬길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이국진 목사 - 현, 전주 예수비전교회 담임 - 총신 대학교 신학과 졸업 - 총신 신대원 졸업(M.Div. 목회학) - 고든콘웰 신학교 졸업(Th.M. 신약학) -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해석학 박사 과정 수학 - 노쓰웨스트 대학교 졸업(Ph.D. 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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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중 03-29 00:54

    바른 결정과 선택

    바른 결정과 선택 인생을 살아오면서 우리는 많은 결정들을 내리고 살아간다. 어떤 학교를 갈 것인가? 누구와 결혼을 할 것인가? 어디에 집을 구할 것인가?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 와 같은 큰 결정들을 내리기도 하고 무엇을 먹을 것인가? 잠을 조금 더 잘 것인가? 어떤 옷을 입을 것인가? 와 같은 작은 결정들을 수도 없이 하면서 일상의 삶을 살아간다. 그런데, 어떤 결정들은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게 하기도 하고 어떤 결정들은 처음에는 별 것이 아닌 것 같으나 나중에 그 결정이 큰 결과를 가져오게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호주라고 하는 곳으로 이민을 가기로 하는 결정은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게 하는 결정일 수 있다. 호주에 와서 사는 곳, 친구, 직업 등 삶의 대부분의 것이 완전히 바꿔 지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어떤 결정은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고 용서하기로 한다’ 라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결정일 수 있지만 용서함으로 인해 오는 마음의 평안이 자신뿐 아니라 가족들과 타인과의 관계 가운데도 영향을 미쳐서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행복해지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결정과 선택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들 중 좀 더 탁월하고 완벽해지고 싶은 성향으로 인해 오히려 결정을 잘 내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결정을 못 내리는 사람들은 때로 배우자나 타인이 자신을 대신해서 결정을 내려주기를 바라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그럴 때 자신이 면밀한 준비와 조사를 다하고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결정권은 타인에게 주어버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바른 선택을 연습하지 않으면 늘 후회와 회피의 삶을 살아가게 되고 때로는 선택의 결과가 주는 고통을 뼈저리게 경험할 수밖에 없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나의 삶의 선택을 내어주어 버린다면 나의 삶은 자유와 자율성을 상실해 버림으로 더 이상 나의 삶이 아니게 된다. 그러므로 힘들지만 자꾸 선택하고 결정하는 연습을 하고 결정을 할 때 좀 더 나은 결정을 내리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또는 바른 결정을 할 수 있을 까? 이 질문에 쉬운 답은 없지만 몇 가지의 생각을 살펴보고자 한다. 사람들이 어떤 결정을 할 때는 ‘이익 추구’의 관점이 많다. 어떤 결정을 하는 것이 나에게 더 유익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필자는 상담을 하면서 종종 내담자의 결정을 돕게 되는데 내담자가 어떤 결정을 하는 것이 자신에게 더 유익된 결과를 가져올 지를 생각하게 할 때가 있다. 이것은 개인의 차원에서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감정적 차원이 아닌 이성적 차원에서 손익을 생각하고 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돕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본 주의의 논리와도 비슷하다.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더 이윤이 남으면 그 일을 하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이익을 추구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으나 그것이 개인이나 집단 이기주의로 이어지면 나의 가족의 이익을 위해 나는 어떤 불의한 일도 서슴지 않고 하는 것은 잘못된 길로 가게 될 수 있다. 나의 이익이 타인의 이익이나 모두의 이익이 아닐 때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코로나 사태가 생겼을 때 사람들은 사재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사재기를 한 사람에게는 유익이고 안심을 가져다 주는 행동이었지만 필요한 물건을 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어려움을 주게 되었다. 다수를 위한 결정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공리 주의’의 관점을 띄게 된다. 공리주의에서는 다수의 유익을 위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혼자가 아닌 다수를 위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상당히 합리적일 수 있다. 많은 사람을 유익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한 개인의 인권이 다수의 유익을 위해 희생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무조건 문을 닫아야 한 많은 비즈니스 운영자들은 공리주의를 기반으로 한 결정의 피해자일 수 있다. 다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정부는 그런 결정을 내렸고 사람들은 그것을 따르고 받아들여야 했으며 누군가는 그런 결정의 결과로 ‘자살’을 선택하는 일도 생겼으니 말이다. 다음으로 사람들이 결정을 내릴 때는 ‘미덕 추구’의 관점이 있다. 어떤 결정이 옳은 것이고 사회의 정의에 가깝다고 여길 수 있는 것인지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더 정의롭고 청렴하고 사랑과 자비와 존중과 배려와 같은 덕목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이번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병함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잃어버리고 특히, 임시 비자 소지자들은 더 많은 고통을 겪게 되었는데 많은 한국인 상인들이 유학생들과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가진 사람들에게 무료 음식이나 비상용품들을 제공하는 일들이 일어났다. 또한 정부도 어려운 시기에 정부 예산을 다른 것에 쓰지 않고 사람들을 돕는 일에 우선적으로 사용하는 일들이 있는 것은 ‘어려운 시기에 서로를 돕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생각들이 사람들에게 있고 그것에 따른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작은 개인의 삶의 결정과 큰 사회적 구조안의 결정과 선택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동일하게 모든 결정에는 개인의 가치관 또는 사회적 담론 (social discourse)그리고 그 이면에는 철학적 이슈와 함께 가는 윤리적 부분이 함께 따라간다. 개인 모두가 성인군자처럼 완벽하게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결정을 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내리는 결정이나 선택이 나 뿐 아닌 타인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결정이라면 전체의 유익과 결정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는 것이 개인과 공동체 전체를 건강하도록 유지하는 것에 필요한 것이라 생각된다. 최근, 코로나로 인한 중국의 위상이 내려간 부분에 대해서 말이 많은 것은 문제가 생겼을 때 중국이 대처한 방법에 대한 윤리적 부분에 대한 책임성의 문제가 크다고 본다. 그들이 내린 결정이 집단 이기 주의의 결정이 아니라 좀 더 큰 사회의 공익을 생각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권과 복지를 존중하는 윤리적 결정을 할 수 있었다면 전 세계는 지금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내리는 결정들이 작은 결정일 수 있지만 ‘나비 효과’처럼 작은 결정이 큰 효과를 가져오는 결정일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내리는 결정을 나의 관점에서만 생각하지 말고 조금 더 큰 관점으로 바라보고 살펴봄으로 좀 더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도록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호주기독교대학 대표 (President of Australian College of Christianity) One and One 심리상담소 대표 (CEO of One and One Psychological Counselling Clinic) 호주가정상담협회 회장 (President of Australian Family Counselling Association) 한국인 생명의 전화 이사장 (Chair of Board in Australia Korean Life Line) ACA Registered Supervisor (ACA등록 수퍼바이저), ACA Member Level 3 (ACA정회원) 기독교 상담학 박사 (Doctor of Christian Counselling) 목회상담학 박사 (Doctor of Pastoral Counselling) 고려대학교 국제경영 석사 (MBA of International Business at Korea University)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MdiV at Chongshin Theological Seminary)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졸업 (BA of Mass Communication at Korea University) 총신대학교 신학과 졸업(BA of Theology at Chongshin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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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중 04-28 14:50

    『화제의 신간』 내일 맑음

    < 책 소개 > * 발행 : 씽크스마트 * 제목 : 내일 맑음 * 부제: 좋아해 감사해 행복해 * 발행일 :2022년 5월 8일 * 지은이 : 김민홍 * 시리즈 : 스토리 인 시리즈 ⑫ * 판형 : 130*210 / 쪽수 :300쪽 * 가격 :13,000원 * ISBN :978-89-6529-318-7 03810 '한계 상황 속에서 겪은 고통을 극복한 어느 치유자의 이야기' <30년이 넘는 투병 생활> 한창 젊음을 꽃피울 대학생 시절, 저자는 당뇨의 합병증으로 왼쪽 눈을 실명했다. 또한 만성 신부전증으로 10년 동안 혈액 투석을 받고 아내의 신장을 기증받았다. 병원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고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것도 익숙하다. 아직도 건강이 완전하게 회복하지 못한 저자는 자신이 겪은 질병의 고통을 이야기한다. <목표는 애인 백 명 만들기?> 아내에게 신장을 기증받아 이식 수술을 받고 지방의 어느 치유 센터에서 요양하던 저자는 암과 싸우는 여성을 만났다. 그 여성과 같이 투병 생활을 하면서 허락을 받아 ‘애인’이라고 불렀다. 저자가 말하는 ‘애인’은 서로 사랑하는 애인이 아닌,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이다. 저자는 치유 센터에서 우연히 만난 첫 번째 애인을 시작으로 백 명의 애인들 만나 돌보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고 오늘도 애인들을 만나러 간다. <상처받은 사람이 치유하는 사람으로> 저자는 오랜 투병 생활로 깨달은 것을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눴다. 투병 생활로 인해 암울한 삶을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의 메시지는 오늘을 살아가는 힘이 되었다. 저자는 <내일 맑음>을 통해 어두웠던 과거와 투병 생활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끊임없이 닥쳐오는 한계 상황을 극복하며 다른 사람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는 사람으로 변한 저자의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들여다보자. < 출판사 서평 > '상처받은 치유자' 어두웠던 학창시절, 젊은 나이에 찾아온 실명, 혈액 투석과 신장 이식 수술까지. 파란만장한 삶이 주는 고통에 넘어지면서도 언제나 다시 일어나는 저자의 모습은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내일 맑음>은 상처와 시련에 넘어져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는 저자의 모습을 담고 있다. 자신의 상처를 가감없이 드러내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치유하기 위해 힘쓴다. 이 책이 몸과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희망을 주길 바란다. < 책 속으로 > p24. ‘프롤로그 – 상처가 사명이다’ 중에서 요즘 나는 수많은 암 환자들과 당뇨, 고혈압, 만성 신부전증 같은 만성 질환자들, 그리고 우울증과 공황장애와 같은 마음이 아픈 분들을 계속해서 애인으로 만나고 있다. 세상에는 환자들과 미래의 환자, 이렇게 두 부류만 살고 있는 것 같다. 환자는 갈수록 많아지고 질병의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다. 상상할 수 없는 희귀질환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런 질병의 원인은 다양하다. 하지만 원인을 찾아가다보면 한 가지 이유를 만나게 된다. 다름 아닌 마음이다. 마음이 상하고 아프면서 이것이 질병이라는 이름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p39. ‘이제 진짜 시작이다’ 중에서 치료가 이렇게 드러난 증상만을 제거하는 일이라면, 치유는 그 증상이 일어나게 된 그 원인을 찾아 제거하는 일이다. 그래야 암이나 질병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 방구석에 곰팡이가 생기면 락스로 닦아 곰팡이를 제거하는 것은 치료이다. 겉으로 나타난 증상만 제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치유는 방에 곰팡이가 생긴 원인을 찾아 환기도 시키고, 구들장에 뜨거운 불을 피워 곰팡이 생길 환경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다시는 방에 곰팡이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락스로 백날 열심히 닦아봤자 시간이 지나면 곰팡이는 다시 생길 것이다. p115. ‘웃어야 산다’ 중에서 지금 돌이켜봐도 우리 아들이 손주를 낳아주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까지 살지 못했으리라고 100% 확신한다. 앞을 보지 못하고 장님으로 살았던 2년, 그리고 이틀에 한 번씩 해야 하는 혈액 투석은 고통 그 자체였다. 살고 싶지 않았고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자연히 웃을 일이 없어졌고 삶 속에서 기쁨이 없었다. 그런데 손주가 태어나니 이 세상이 환히 밝아졌다. 내가 살아야 할 이유와 목적이 생긴 것이다. 자연스럽게 웃을 날도 많아지고, 기쁨이 회복되니까 내 건강에도 청신호가 켜지는 것 같았다. p207.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다’ 중에서 이렇게 대학교 2학년 때 당뇨병에 걸리고 심한 당뇨 합병증으로 고생한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7살 먹은 막내의 죽음, 그리고 유일한 목격자로서 동생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 이로 인해 부모님께 너무나 죄송해서 모범생으로 살겠다고 결심하면서 나도 모르게 걸린 모범생 콤플렉스, 그리고 어머니의 자살 시도와 대학 시절 친구 집에서 약 5년 동안 빈대 아닌 빈대생활을 하면서 절실하게 느꼈던 가난의 상처들, 마지막으로 학비를벌려고 시작한 장사 때문에 어머니께서 폭력을 당하고 내 마음속에 용솟음쳤던 죽이고 싶을 만큼의 미움과 분노. 이 모든 것이 스트레스로 다가와서 내 몸을 집어삼켰다. p250. ‘삶의 목표를 찾아야 한다’ 중에서 당뇨병으로 고생한 지 벌써 35년이 지났고, 장님처럼 2년을 살았으며, 10년 동안 혈액 투석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은 신장 이식 수술까지 받았다. 이런 세월을 지내면서 내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아버지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평생 아프셨던 아버지였지만 그래도 치열하게 투병생활을 하셨다. 물론 마지막에 가서는 끝까지 견디지 못하고 몇 번이고 자살을 시도하셨고 그때마다 내가 발견해서 아버지를 살릴 수 있었다. 비록 이렇게 삶의 마지막에 가서는 마음이 약해지셨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투병생활은 대단하셨다. 삶의 의지가 대단하셨다. 질병에서 일어나려는 아버지의 노력은 지금도 내 눈에 선하다. 그러므로 나 또한 그 어떤 질병에서도 쓰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 같다. < 목 차 > 추천의글 애인들의 응원 메시지 프롤로그 : 상처가 사명이다 1. 염증과의 싸움 2. 이제 진짜 시작이다 3. 마음이 먼저다 4. 가장 무서운 것 5. 환자의 주권 찾기 6. 기다려야 한다 7. 눈물이 치료제이다 8. 눈물은 영혼의 해독제이다 9. 울어야 산다 10.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다 11. 웃음의 힘 12. 웃어야 산다 13. 애인 만들기 프로젝트 14. 반드시 길이 있다 15. 치유의 핵심은 동역자이다 16. 사랑받는 세포가 치유된다 17. 스트레스에는 원인이 있다 18. 착하게 살지 말자 19.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다 20. 자존심을 버리자 21. 이왕 할 거라면 즐겁게 하자 22.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른다 23. 삶의 목표를 찾아야 한다 24. 삶의 목표가 있는 자는 쓰러지지 않는다 25. 상처가 사명이다 에필로그 : 덕분입니다 < 저자 > 김민홍 상처 입은 치유자 한창 대학교에 다닐 때 당뇨병에 걸려 합병증으로 왼쪽 눈을 실명하고 만성 신부전증으로 10년 동안 혈액투석을 받았다. 결국 아내의 신장을 기증받아 신장이식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고혈압, 심근 경색 등 다양한 성인병 경험을 통해 전인 치유에 관심이 생겼다. 백 명의 애인 신장 이식 수술을 받고 지방에 있는 치유 센터에서 요양하였다. 여기서 암으로 투병 중인 한 자매를 만났는데 그 자매의 허락을 받아 애인이라고 부르면서 함께 투병생활을 하였다. 이때의 경험으로 환자들을 ‘애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목표는 몸과 마음이 아픈 환자들, 즉 애인 백 명을 돌보고 섬기며 그들과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는 것이다. 멘토링 현재 하는 사역은 멘토링을 통한 치유 사역이다. 환자가 되면 외롭다. 건강과 치유에 대한 정보도 필요하다. 애인들과의 교제와 상담을 통해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진정한 친구가 되고 싶다. 인간은 영·혼·육으로 이루어진 전인적인 존재이므로 몸과 마음과 영성까지도 돌보는 치유 사역을 하고 싶다. 정체성 총신대학교 신학과와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천안에서 새백성교회를 개척하여 현재까지 목회하고 있다. 치유 사역을 위해 건양대학교 보건복지대학원 치유선교학과의 석사 과정을 마치고 박사 과정 중에 있다. 동양의학을 접목하고 싶어 이혈(耳穴) 전문 대학원에서 이혈치유 상담학을 공부하여 이혈 지도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목사로 목회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치유 사역자로 활동하며 치유 세미나, 치유 캠프, 강의, 상담 등의 사역을 통해 열심히 애인들을 만나며 교제하고, 섬기고 있다. < 추천사> <누구나 일독해야 할 책> 추천사를 부탁받고 원고를 몇 편 읽으며 글 속에 빠져들어 갔습니다. 저자는 신장병으로 10년 간 투석을 하고 결국 신장이식 수술을 받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겪은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길어 올린 주옥같은 깨달음의 글들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체험을 치료와 치유라는 단어를 설명하면서 잘 정리해 주고 있습니다. ‘치료란 증상을 완화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반면에 치유는 병의 원인을 밝혀내서 그 원인을 제거함으로 깨끗이 완치시키는 것을 말한다.’ 누구나 환자는 치유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현대의료는 치유에 목적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저자도 책에서 고백했듯이 목사님으로 일생을 살아오며 체험한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그래서 글을 읽으면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줍니다. 저자는 ‘상처가 사명이다’라는 말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사명은 저절로 깨달아지는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깨닫는다는 말이겠지요. 사명적 존재란 내가 누구인가, 그리고 내게 사명을 부여한 분은 누구인가를 묻는 질문입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인생을 바르게 산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책은 누구나 꼭 일독해야 할 책입니다. 건강한 분들에게는 건강을 위하여, 환우들에게는 실제적인 도움을 위하여, 그리고 의학적인 지식도 쉽게 전해 주고 있기 때문에 추천을 드립니다. 끝으로 목사님의 소중한 글의 출판을 축하드리며 독자들이 이 책을 읽을 때 성령께서 함께 하시어 귀한 깨달음과 실제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 건양대학원 치유선교학과 학과장 김찬기 교수 <다큐멘터리이자 육필원고> 이 책은 ‘치유일지’입니다. 의사가 자신이 치유한 환자들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환자 자신이 자신의 질병을 어떻게 치유 받아 왔는가를 기록한, ‘병상일지’ 같은 기록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 글을 대할 때, ‘어, 뭐지? 드라마 아닌가?’라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 글은 다큐멘터리이며, 온몸으로 쓴 ‘육필원고’입니다. 저자의 글을 한 편씩 읽어 갈 때면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도 견디고 살아남을 수가 있었을까?’ 또 다른 한 권의 ‘욥기’를 보는 것 같아 독자로 하여금 가슴이 먹먹해 짐을 느낍니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 있는 이 글의 주인공은 ‘지금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라는 물음을 던지게도 합니다. 이 글은 의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너무나도 특이한 내용입니다만, 신앙의 눈으로 볼 때 비로소 이해하고 납득 할수 있을 내용입니다. 그래서 이 ‘치유일지’를 읽어 나갈 때면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치유의 손길을 느끼게 되며, 나도 이런 하나님을 만나고 싶고 또 이런 사랑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글들이 정말 귀하면서도 감사한 것은 저자 자신이 온갖 고난과 질병 가운데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도리어 어렵고 힘든 역경과 질병 가운데 있는 다른 이들을 가슴에 품고, 위로하며, 격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며 어떤 절망의 상황 가운데서도 소망이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들의 병들고 상처받은 몸과 영·혼이 온전히 치유 받을 수 있음을 고백하게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을 찬양하며, 이 귀한 책을 온 정성을 다해 발간하게 되신 김민홍 목사님께 큰 박수를 보내며, 온 마음으로 추천합니다. - 소망 이비인후과 손영규 원장 <환우들에 대한 깊은 공감과 사랑> 질병으로 김민홍 목사님만큼 오랫동안 극단적인 고생의 체험을 한 사람도 흔치 않을 것이다. 그 과정들을 자세히 관찰해 두었다가 정확히 기억해서 기록한 용기와 냉철함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다양한 병증과 치료 이력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때 동료 인간으로서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간결하고 읽기 쉬운 문체로 재미있게 쓰여 있다. 장황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잘 읽힌다. 한번 손에 잡으면 놓기가 싫을 정도이다. 솔직담백한 글이다. 자신의 체험과 상태를 보통 사람들은 부끄럽게 여길 수 있는 것까지 환우들을 위해 진솔하게 기록했기에 생생하고 실감이 난다. 그 체험들이 예사롭지 않고, 놀랍고, 충격적이기도 하다. 단순히 이론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마음에 와 닿는다. 내가 최근에 읽은 것들 중 가장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인 책이다. 목사님 자신이 30여 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병으로 고생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겠지만 환우들에 대한 깊은 공감과 사랑이 진하게 느껴진다. 질병, 특히 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인상이다. 암의 경험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이처럼 해박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 놀랍다. 단지 풍부할 뿐만 아니라 그 통찰들이 건전하고 우리의 이성과 상식, 그리고 신앙적 원리에 부합되는 것들이라 느껴진다. 그러므로 만성병을 가진 사람들에게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 고려신학대학원 양낙흥 교수 <민홍이의 감사의 노래> 김민홍 목사님은 지난 2년간 함께 공부했던 우리 학회 지도사 과정생들에게 치유일지라는 제목으로 글을 공유하여 충격과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 후 학회밴드에서 파장이 휘몰아치더니 이어 라는 작은 잡지에 몇 편의 글이 실렸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구입하여 텃밭에서 여름내 땀흘려 수확한 것들과 함께 과정생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들깨의 기름을 기쁨의 눈물로, 볶은 참깨는 행복의 미소로 칭하며 잡지에 실린 목사님의 글을 <민홍이의 감사의 노래>라는 이름으로 표현했다. 목사님의 어린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고비마다 숱한 역경과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난은 우리가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그 이상의 것이었다. 이 글은 애간장이 끊어지듯 땅을 치고 몸부림치며 통곡하는 지난 삶을 표현한 것이었지만 목사님에게 그 삶은 역경과 고난이라는 이름으로 상처를 낸 삶이 아니라 먼저는 자신의 아픔을 이겨내고, 세상의 모든 아픈 이들의 위로와 회복과 치유를 위한 감사의 노래인 것이다. 이제 그 노래를 아픈 이들과 함께 부르고 얼싸안고 보듬어 춤을 추며 노래하고 싶은 그 간절한 마음이 책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왔음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기뻐한다. 김민홍 목사님은 죽는 그 순간까지, 아니 죽음 이후에도 이 노래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는 그에게 주어진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명이기 때문이다. - 한중 이혈 건강 요법 학회 이현중 학회장 영혼육의 상처와 아픔을 지닌 이 땅 순례자들의 고백과 회복의 대언, 가족들과 걸어온 인생의 숲길에서 정직한 참회의 소리만큼 우리를 울리는 파동이 있을까? 김민홍 목사님을 통해 전달되는 삶의 시간과 여정을 묻는 절대자의 물음에 숲속 그루터기에서 상처 입은 발을 감싸는 우리의 정직한 고백이 쏟아지고 회복의 길로 인도함을 받는 축복과 은혜가 가득하시길. Where are you? - 경주 숲속유향의원 임부돌 원장 <상대방을 위한 배려나 이해, 사랑으로 느낀다는 것> 치유는 우리 자신의 존재를 전체로 들어가도록 인도한다. 그것은 잃어버렸던 자신의 목소리. 거부하고 감추어 두었던 것들을 다시 발견하고 포용하며 초대한다. 치유는 자신의 내면의 견고함을 발견하게 하는 신뢰의 여정이다. 자신의 삶이 부분이 아닌 전체적 삶으로 초대될 때 잃어버렸던 우리의 목소리는 비로소 즐거운 노래로 발견되고, 잊어버렸던 자신의 존재는 춤과 웃음으로 변하게 된다.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껴안고 상처받은 마음을 부드럽게 감쌀 때 우리는 또 다른 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것은 내 자신의 정직한 본성의 발견이며 만남이고 구원이며 자유이다. 치유를 뜻하는 영어 단어인 ‘healing’은 그리스어 홀론(holon)에서 나왔는데 이는 healing, health, wholeness, holiness, holy 등으로 파생되었다. 따라서 치유는 건강과 전체, 신성, 그리고 구원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질병은 부분으로 나누어지고 분리된 것을 의미한다. 질병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disease’에서 ‘dis-’의 의미는 ‘떨어져 나감’, ‘분리 됨’을 말한다. 그리고 ‘ease’는 ‘편하다’, ‘쉽다’, ‘일상적 삶’을 말한다. 따라서 질병은 삶에서 분리되고 파괴된 것에서 기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반면 구속을 뜻하는 ‘salvation’은 ‘완전함’과 ‘전체’를 말하는데 이는 신과 떨어져 있다가 다시 결합된 것을 의미한다. 이는 치유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지금까지 의학은 질병 치료에 중점을 둔 나머지 환자의 남아 있는 생명과 삶의 문제와 인간관계 회복의 문제, 감정 치유의 문제 등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등한시한 경향이 있었다. 이제 현대의학이 이런 요소까지 의료범주에 넣어 치료를 고려한다면 우리 사회는 한 걸음 더 성숙한 ‘인간다움’으로 진화할 것이다. 고통과 상실을 통해서 인간은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회복할 기회를 얻는다. 고통과 상실은 우리가 인간임을, 그리고 우리의 존재가 진정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고통과 상실은 치유와 깊은 관련이 있다. 치유는 질병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삶의 질과 생활의 기술, 삶의 존재방식의 문제에 더 초점을 두기 때문이다. 고통과 상실의 순간에 그동안 밀봉되었던 마음의 본성을 드러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신마저 소외될 때 자신의 실존만이 깃발처럼 바람에 펄럭인다. 습관화되고 마음이 만들어 낸 거짓된 자아와 집착이 고통과 상실의 바람에 산산이 흩어지는 순간, 자신의 정직한 본성과 만나게 된다. 이제 고통과 상실은 영적 성장의 기회가 된다. 슬픔은 슬픔으로, 아픔은 아픔으로, 눈물은 눈물로 해결할 때 비로소 치유가 안착된다. 슬픔과 아픔, 눈물과 온전히 대면하지 않고 다른 것으로 대체하거나 회피한다면 증환은 다시 왜곡되고 인간의 실존마저 박탈된다. 치유는 공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리고 공감은 타자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한다. 타자의 이해는 자신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한다. 자신의 반성으로부터 여과되지 않은 것은 공감이 아니다. 공감의 보편성과 실천적 태도는 자신의 주체적 반성을 거쳐 시작한다. 반성은 타자에 대한 이해와 자신의 자율적 제한의 절제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공감의 출발은 객관적인 대상이나 사건이 아니라 바로 주체의 반성에 의한 것이다. 이런 자기점검의 성찰은 공감의 기초가 되고 사적 감정이 비로소 보편적 감정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된다. 사랑의 감정은 사적 감정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고 할 때 자기 자신만을 내세우고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상대방을 사랑한다고 할 수 없다. 상대방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상대방의 관계 속에서 제한해야 한다. 무제한적 사랑은 결코 사랑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자기제한’을 부자유나 제한, 억압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위한 배려나 이해, 사랑으로 느낀다는 것이다. 이렇게 상대방을 배려와 이해, 사랑의 대상인 타자로 인정할 때 공감이 일어난다. 이 때 상대방은 나의 중심적 계교에 포섭되거나 수단화되는 것이 아니라 독립된 하나의 인격체인 타자로 존재한다. 이제 타자는 ‘존재 그 자체로’ 인정받을 때 쌍방 간의 관계가 치유 회복되기 시작한다. 김민홍 목사님이 쓴 이 책은 한계 상황 속에서 겪은 환자의 고통을 치유자와 함께 일구어 낸 우리들 삶의 진솔한 내러티브이다. 그래서 울림이 크다. 이 이야기는 환자와 치유사 간에 이루어지는 증환의 이야기이지만, 오늘 이 순간 우리가 맞이하게 될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에 등장한 분들이 앞서 행한 일과 이야기는 앞으로 우리가 겪게 될 경험에 어떻게 대면하고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나침반과 따뜻한 위로가 된다. - 고려대학교 임병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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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중 03-29 09:46

    “감사로 채워지는 인생!”(살전 5:18)

    우리 신앙에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과 뜻과 목적입니다.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우리 보다 훨씬 큰 능력과 힘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모든 일에 감사함이 주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언급합니다. 뜻이란 원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의지, 목적이 이 감사에 담긴 것입니다. 신자의 감사의 수준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감사는 어떤 일이 만족을 주거나 소원을 충족할 때 합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 대한 감사는 어려울 때나 슬플 때에도 고난 속에서도 감사를 할 수 있는 내면의 마음을 말합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의 감사는 세상에서 통용되는 감사보다 깊고 넓은 의미가 담깁니다. 오늘은 우리가 성도라면 더 이해하고 누려야 할 감사에 대한 의미와 삶을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먼저, 이런 깊은 감사를 체험했던 믿음의 선배들이 남겼던 감사의 내용을 살펴 보겠습니다. 그들이 만나서 함께 즐거이 고백하고 노래했던 것이 시 136편에 있습니다. 그들이 가장 기본적으로 고백했던 것은 바로 1절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구약 성도들이 하나님을 뵙고 경배할 때 마다 선포했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라. 왜냐하면 그 하나님은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기 때문이. 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러한 감사가 그들의 신앙 가운데 형성되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알게하신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로 인한 인자 인애와 자비가 풍성함을 넘어 영원합니다. 끝이 없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선하시다’라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단순히 착하다 순수하다 라는 개념으로만 알면 너무 적게 안 것입니다. 선하심은 그 존재가 완전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기에 스스로 무언가를 받으셔서 만족하게 되는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을 위해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필요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최고선으로서 그 분의 선하심은 피조물 안에 모든 선의 원천이 되십니다. 우리와 모든 피조물 가운데 좋은 것, 즉 자연적, 도덕적, 영적 선의 원천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선은 윤리적으로 ‘상대방을 유익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런 윤리적 측면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은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들의 유익을 위해 즉 우리를 위해 호의, 은혜를 베푸시며 관대하게 행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즉 그 분의 선함에서 흘러오는 자비와 긍휼, 사랑, 인애들을 우리를 위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나옵니다. 영원하며 끝이 없으며 불변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여기서 나오게 됩니다. 그것을 이해하는 예가 바로 모성애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흘러 나오는 것입니다. 누가 시키거나 규칙으로 정하여 윤리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은혜가 나옵니다. 은혜란 호의와 구별되는데,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주는 것은 호의입니다. 그런데 받을 자격이 없는 원수 같은 사람을 용서해 주고 사랑하여 주는 것은 은혜입니다. 그래서 은혜는 우리의 구원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긍휼이 나옵니다. 우리의 죄로 인해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받지 않고 오히려 모든 비참함과 고통으로부터 건져주시는 것을 긍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인내가 나옵니다. 죄인들이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인내가 바로 하나님의 선한 성품에서 오는 것입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림 속에서 온전한 구원을 이루시는 것을 바라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자기 백성들을 향하여 말할 수 없는 감사를 가져옵니다. 그 분의 선하심은 그 백성들을 애굽의 압제로부터 자유케 하시고 그들에게 정착할 곳으로 인도하시며 그 땅의 소산물을 수확하도록 긍휼을 베푸십니다. 그래서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절기를 통해 축제를 벌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감사하며 즐기고 나누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이 크고 놀랍습니다. 골 2:6-7절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어떻게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옵니까? 하나님은 예수의 인격 안에 당신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담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선하심을 따라 은혜와 진리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즉 원수같은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죄의 비참함에 거하는 우리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받으시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창기와 세리라도 영접하고 친구가 되어 주신 것입니다. 이 모든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십자가를 통해 부어 주십니다. 가장 큰 사랑, 가장 큰 은혜, 가장 큰 긍휼이 십자가에서 있었습니다. 즉 주님은 십자가에 이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통해 흘러 나오는 사랑, 은혜, 긍휼, 자비를 담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십자가가 우리를 위한 십자가인줄 믿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과 구원자로 받아들였고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체험합니다. 우리의 삶은 그 분의 사랑을 풍성하게 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삶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주 안에서 하신 일과 행하실 일이 크고 놀랍기 그지 없는 것입니다. 오직 감사할 것 밖에 없는 것입니다. 감사로 고백하며 살아갈 것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살게 될 때 감사하는 인생을 만드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송이 나오게 마련입니다. 즉 주님과 동행하는 삶은 필연적으로 감사의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래서 주 안에서 살면서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골 2:6-7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그 특성이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넘치는 감사가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성령께서는 주님 안에서 주신 하나님의 선함과 인자하심이 풍성한 사랑, 은혜와 긍휼로 우리를 채우시는 것입니다. 즉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과정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은 한 해 한 해 우리를 통해 구원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의 한해의 인생에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 한 없는 선하심과 자비를 담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현실의 가정과 일터, 직장, 그리고 삶의 터전속에서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담아 우리를 살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얻은 이 땅의 소산물은 우리와 함께 하셔서 얻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일한 결과 얻은 열매는 하나님이 능하게 하시고 건강하게 견디게 하셔서 이룬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로움이 함께 하신 결과 입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세례를 받고 건강하게 자라가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로 인하여 채워지는 것입니다. 한 살 더 먹고 한 해를 더 살아가는 것은 은혜의 삶이며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심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나이 먹음에 대하여 한 해를 지내는 것에 대하여 후회를 많이 하는 편일 것입니다. 왜 없겠습니까? 후회하는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믿음의 삶의 내용가운데 포함된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는 한 살 더 먹는 것에 대해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전히 코로나19의 영향은 줄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의 인도는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치지 않는 사랑과 긍휼로 우리와 동행하시는 주님이 지금 우리 곁에서 계십니다. 그리고 성령을 통해 지혜롭게 인생을 살도록 격려하십니다. 엡 5:18-20절을 보겠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성령으로 충만함, 즉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은 지혜로운 삶입니다. 그 삶은 말씀과 찬송으로 예배하며 모든 일에 주님의 이름으로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찬양과 감사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항상 감사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항상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 찬송하는 것입니다. 감사 기도하는 것입니다. 감사 봉사 하는 것입니다. 감사 헌금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과 더불어 감사로 모든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넘치는 자비하심 아래 삶을 감사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거대하고 커 보이는 일을 성취하심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실, 어렵고 힘든 것이 기다리는 현실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그 영광스러운 인도, 크고 놀라운 힘과 능력으로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현실 속에서 당신의 크나큰 은혜를 담습니다. 다른 꽃 길에서,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완벽한 곳에서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연약하고 실수하여 눈물짓는 우리의 삶 안에서 감사의 고백을 통해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모든 일에 감사로 당신의 남은 인생을 채워 나가시기 바랍니다. 특히 고난 가운데 있는 상황에서 감사하는 고백을 당신의 삶에 채워야합니다. 좋은 일은 당연하게 감사합니다. 그러나 어려운 일이 주어져도 감사함으로 그것을 행해야합니다. 할 수 있다면 감사함으로 받아야합니다. 이럴 때 때로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이 있기도 합니다. 1874년부터 1877년까지 3년에 걸친 심한 가뭄과 엄청난 수의 메뚜기 떼의 습격으로 농작물은 전멸하고 대경제 공황에 빠졌습니다. 1877년 4월 27일, 미네소타 주 주지사 필스버리(Pillsbury) 씨는 모든 주민에게 '감사 기도의 날'을 선포하였습니다. 농작물이 전멸하였으나 몸이 살아 있고 앞으로도 기회를 주실 하나님께 먼저 감사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미네소타 주민 전체의 감사 기도는 하늘을 덮었습니다. 그러자 들판을 덮었던 메뚜기 떼가 며칠 사이에 전부 죽었습니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교회로 부르십니다. 그래서 감사로 채워진 인생을 함께 살아가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감사하는 감사촌 마을에 삽니다. 마치 아이가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고마운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일하심이 함께 하는 존재로 함께 있는 것으로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즉 있는 것으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없는 것으로 불평하지 말고 있는 것으로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뜻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매튜 헨리(Matthew Henry)라는 목사님이 하루는 어떤 골목길을 가다가 매를 맞고 정신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정신차려 일어 나보니 온 몸이 상처투성이고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간신히 일어나 집에 들어오니, 온 식구가 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재에 들어가서 그 피투성이의 몸을 가지고 엎드려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는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생명만은 살아 돌아와서 가족들을 만나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또 내가 예수를 안 믿었다고 하면 나를 때린 저 강도와 같이 되었을 터인데 예수 믿고, 강도가 안 되고 목사가 된 것을 감사합니다. 또 이 세상의 모든 것 다 잃어버린다 하더라도 내가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하면서 감사의 조건만 찾아서 기도를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를 통해 놀랍게도 예수와 함께 사랑의 띠로 묶어 주신 성령의 충만한 일하심이 오늘 우리 모두의 인생을 감사로 채워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합시다. 항상 감사합시다. 매주 마다 감사의 고백으로 하나님과 기쁨을 나눕시다. 그리고 그 감사가 여러분의 인생을 꽉꽉 채워내어 감사의 인생을 수 놓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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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중 03-18 18:00

    바보처럼 살라고요?(시편 37:1~11)

    I. 도입 우리나라 고전소설 가운데는 춘향전, 흥부전, 홍길동전처럼 ‘권선징악(勸善懲惡)’이 주제인 것이 많습니다. 세상에서는 악당들이 떵떵거리고 사는 경우가 많지만, 사람들은 소설의 주인공처럼 지조를 지키며 욕심을 버리고 약자를 도우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인공이 악당을 물리칠 때 환호성을 지릅니다. 권선징악은 사람들의 양심의 소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은 양심의 소리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온유한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온유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온유하게 살면 어떻게 될까요? 온유하게 사는 것은 여러 가지로 불리한데 왜 온유하게 살아야 할까요? II.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은 여덟 종류의 복 있는 사람에 관해 설명하셨습니다. 그 세 번째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예수님과 우리 사이의 시간적, 문화적 간격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1)온유하다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 (2)복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 (3)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 개념이 아니라 예수님의 개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먼저 복에 대하여 설명하고 시편으로 돌아가서 온유한 자와 땅을 차지한다는 말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예수님과 마태는 유대인입니다. 또한, 마태복음의 주된 독자는 유대인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은 2000년 전 유대인의 사고방식으로 생각해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마태복음이 사용한 복(μακάριος)이라는 말 속에 담긴 히브리적 개념부터 알아야 합니다. 구약에서 복 있는 사람에 대해 말하는 대표적인 성경은 시편 1:1입니다. 여기서 복 있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아쉐르(אֶשֶׁר)인데 이 말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바로 천국의 모습입니다. 결론적으로,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할 때 세속적인 복을 받는다는 의미보다는 하나님께서 온유한 자와 함께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온유하다는 것은 무슨 뜻이며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청중들은 모두 시편 37편을 떠 올렸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어릴 때부터 회당에서 이 성경을 여러 번 읽고 달달 외우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라는 말을 하면 누구나 이순신 장군을 떠올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시편 37편을 통해서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III. 온유한 자는 의인이고 여호와를 신뢰하는 사람이다. 시편 37편은 두 가지 이미지(image)를 대조적으로 보여주는데 첫째는 풀이고(2절) 둘째는 빛입니다(6절). 풀이 얼마나 잘 자라는지 농부들은 풀과의 전쟁을 치릅니다. 조그마한 주말농장만 해도 이것을 실감합니다. 그런 풀들도 겨울이 오면 다 죽어 버립니다. 이스라엘에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가을부터 봄까지 우기(雨期)입니다. 그러다가 봄에 건기(乾期)가 시작되면 온 세상은 메마르고 강렬한 햇볕이 내리쪼입니다. 우기 동안에 쑥쑥 자라던 풀들은 건기의 햇빛에 금새 말라 죽어 버립니다. 다윗이 보기에 지금 떵떵거리는 악인들은 우기 때의 풀과 같습니다(2절). 하지만 하나님께서 의인들은 정오의 빛 같게 해 주실 것입니다(6절). 그러니까 악인들이 까불어 봐도 별 것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시편 37편을 인용하여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온유한 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온유하다는 말을 헬라어로 보면 프라우스(πραΰς)인데 이 말은 gentle하고 친절하고 겸손하고 동정심이 많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인용하신 시편 37편에서 말하는 온유한 자란 인정 많고 친절하고 동정심이 많은 것과는 다릅니다. 시편 37:11에서 온유한 자는 히브리어로 아나우(עָנָו)인데 가난하고 고통받는 자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싸울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대신 싸워 주실 것을 믿기에 가난하고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다윗 자신입니다.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을 죽일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사울은 전쟁터에서 적에게 죽었습니다. 때가 되자 하나님이 사울을 제거해 주신 것입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이 원수를 제거해 주실 때까지 가난하게 고통받으며 사는 것이 복되며 결국 주인공이 되어 몽땅 차지할 수 있습니다. 시편 37편 11절에서 말하는 온유한 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서는 9, 22, 29, 34절과 비교해보면 선명해집니다. 온유한 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9절을 보면 그들은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입니다. 22절을 보면 그들은 주의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또 29절을 보면 그들은 의인이며, 34절을 보면 여호와를 바라고 그의 도를 지키는 자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신자는 여호와를 신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자의 싸움은 이기느냐 지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신자의 문제는 악한 방법으로 싸우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는 그 유혹을 물리칩니다. 그런 사람이 진실로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사탄의 세 가지 유혹을 이긴 것은, 바로 이 유혹을 물리치신 것입니다. 제가 부끄러운 고백을 한 가지 하겠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저는 제 일생에 이 싸움에 진 적이 있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딱 한 번만 눈 질끔 감으면 되겠지 했는데 그것이 평생의 후회로 남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저는 한 번 눈 감으면 다음에 또 눈 감아야 하는 일이 생기는 것을 알았습니다. 반면에 한 번 물리치면 다음에도 물리치게 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한번 외쳐 보세요. “한번 눈 감으면 또 눈 감게 되고, 한번 물리치면 또 물리치게 된다. 한 번만 물리치자.”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말과 행동만이 아니라, 생각까지도 다 알고 계십니다. 온유한 사람이란 부드러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떳떳한 사람입니다. 그런 온유한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며 그런 사람이 땅을 차지할 것입니다. IV. 진정한 기업(상속)은 영원한 천국이다. 이제는 ‘땅을 차지한다’ 혹은 ‘땅을 기업으로 상속받는다’는 말을 생각해 볼 차례입니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대로 여호수아 시대에 가나안에 들어왔습니다. 가나안 땅은 약속의 땅이며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땅이며 풍요롭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구약 시대에 가나안 땅은 천국의 모형이지 완성된 천국은 아닙니다 . 그래서 세상에는 악인이 순진한 사람의 땅을 빼앗아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빼앗긴 땅을 되찾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사람은 땅을 빼앗길지언정 악한 방법을 동원할 수는 없습니다. 자기 권리를 빼앗겼을 때 그것을 되찾기 위해 악한 방법을 동원하기보다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기를 기다리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온유한 사람입니다. 이럴 때 이것을 지켜보시는 하나님은 뭐라고 하시며 어떤 조처를 내리실까요?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네 권리도 못 챙기는 너는 참으로 어리석구나. 그래서야 어디 세상에 살아남겠니?”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 사람을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시편 37편에서 다윗은 그렇게 온유한 사람이 결국 땅을 차지하게 된다고 5번이나 말하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윗은 2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이것은 다윗의 고백일 뿐이 아니라 다윗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방식대로 사느라 나의 정당한 권리를 빼앗겨서 가난하고 고통당할 때 여러분은 하나님이 내 편이 되시고 하나님이 도우시고 하나님이 더 큰 것으로 채워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 놓칠 수 없는 다른 비밀이 하나 더 있습니다. 성도가 믿음으로 살고 의롭게 사느라고 손해를 본 것 가운데 이 땅에서 다 보상받지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것을 다 보상해 주지 않으실까요? 그 이유는 이 땅은 영원히 살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은 천국의 모형이지만 완성된 천국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가 이 땅에서 복을 누리는 것도 영원한 복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방식으로 사느라 빼앗긴 것 가운데 다 보상해 주지 않으신 것은 천국에 적립해 놓은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월급을 받아서 다 써버리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요즘은 국가에서 강제로 월급 일부를 떼어가서 적립해 놓습니다. 그렇게 떼어간 돈으로 갑자기 직장을 잃어버리면 실업 급여를 지급해줍니다. 또 퇴직할 때는 퇴직금을 지급해줍니다. 은퇴 후에는 연금도 줍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우리에게 보상해 주는 대신 일부는 천국에 적립해 놓으십니다. 그리고 영원한 천국에서 생명의 면류관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찬양합니다.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 나의 갈길 다가도록 나와 동행 하소서 주께로 가까이 주께로 가오니 나의 갈길 다가도록 나와 동행 하소서 V. 마무리 세상에는 악인이 있어 성도의 권리를 빼앗아 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를 괴롭히는 악인은 저 밖의 불신자 가운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 같은 교회의 지체나 한 가정의 가족도 우리를 시험합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하던 사울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럴 때 우리는 내가 나서서 그 사람을 혼 내주고 빼앗아 오고 싶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다윗은 원수를 자기 손으로 갚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온유한 사람을 돕는 것을 믿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롬 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시편 37편에서 말하는 온유한 사람이란 세상의 시각으로 보면 바보 같은 사람입니다. 시편 37:1은 그렇게 바보처럼 살라고 합니다. 왜일까요? 시편 37편에는 ‘왜냐하면(כִּי 키)’이라는 단어가 8번이나 나오는데 첫 번째가 2절입니다. 2절에서는 우리가 바보처럼 빼앗기며 살아야 하는 이유가 전능하고 선하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의뢰하고 온유한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서 주의 복을 받고 땅을 차지하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천국에서 면류관을 받는 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시편 37편 설교 준비과정 1. 이 시의 카테고리는 전형적인 신뢰시이다. 2. 이 시의 패턴은 평행법이 주를 이룬다. 대부분은 동의적 평행법이고 일부 구간에는 대조적 평행법도 사용하고 있다. 김창대에 의하면 이 시는 다음과 같은 패널 구조로 되어있다. A. 여호와를 의지하는 의인은 공의와 의로 빛날 것 (1-8절) B. 의인의 복: 땅 상속, 화평을 누림 (9-11절) C. 의인을 해하려는 악인의 행동을 실패함 (12-15절) D. 의인과 악인의 대조: 의인의 기업은 영원함, 땅 상속 (16-22절) B’. 의인의 복: 여호와께서 잡아 줌, 땅 상속 (23-31절) C’. 의인을 해하려는 악인의 행동을 실패함 (32-33절) A’ 여호와를 의지하는 의인은 땅을 차지하고 평안과 구원을 누림 (34-40절) 3. 이 시에 사용된 이미지는 풀(2절)과 빛(6절)의 대조이다. 풀은 한 낮의 빛에 말라버린다. 4. 시편 37편에서 왜냐하면(כִּי)이 8번 나온다. 즉 이 시는 반전의 시이다. 이 시가 말하려는 핵심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여호와가 계시기에 의인은 반드시 성공하고 악인은 반드시 멸망한다. 5. 이 시가 신약에 제공하는 신학은 무엇인가? 마태복음 팔복에서 예수님이 설명하는 온유한 자의 기초를 제공한다. 온유한 자란 여호와를 의뢰하고 악인을 부러워하지 않으며 악을 떠나 선을 행한다. 6. 신자의 싸움은 이기느냐 지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신자는 악한 방법으로 싸우고 싶은 유혹에 넘어가느냐 물리치느냐의 문제이다. 예수님은 사탄의 세 가지 유혹에서 바로 이 유혹을 물리치셨다. 나는 평생에 한 번, 이 싸움에 진 적이 있다. 내 평생의 후회되는 경험이다. 내 생각과 말과 행동이 낱낱이 신문 기사로 나간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고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을 선택을 하라. 7. 시편 37편의 아웃라인은 악인과 의인의 반복되는 대조를 통해 점점 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는 진행이므로 하향 및 상향 그래프를 반복하면서 올라가는 모습이다. 8. 이 시를 통한 설교 제목은 8번의 왜냐하면(כִּי)을 생각하면서 “왜냐하면요?”가 적합하다. 9. 본문은 40절로 설교 본문으로는 너무 길기에 1~11절만 선택하고 나머지는 필요에 따라 설교 도중에 언급한다. 10. 설교 개요 I. 도입 우리나라의 유명한 고전소설 가운데 심청전을 제외한 춘향전, 흥부전, 홍길동전은 ‘권선징악(勸善懲惡)’이 주제이다. 권선징악은 모든 사람의 양심의 소리이다. 하지만 실제로 세상에서는 악인이 더 떵떵거리고 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성도는 전혀 다른 이유로 온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II.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마태복음 팔복에서 예수님은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 복이 있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 말에서 온유하다는 말은 오해받기 쉬운 표현이다.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말 역시 설명이 더 필요한 내용이다. 이 시에서 보여주는 두 가지 이미지는 태양과 풀이다. 팔레스틴에서 풀은 낮의 강력한 햇빛에 맥없이 말라버리는데 악인은 단지 풀과 같고 의인은 강력한 빛이다. III. 온유한 자는 의인이고 여호와를 신뢰하는 사람이다. 에수님의 말씀은 바로 시편 37편의 사상을 그대로 펼친 것이다. 의인과 악인은 그 행동이 얼마나 착한가보다 여호와를 신뢰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자의 싸움은 이기느냐 지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신자는 악한 방법으로 싸우고 싶은 유혹에 넘어가느냐 물리치느냐의 문제이다. 예수님은 사탄의 세 가지 유혹에서 바로 이 유혹을 물리치셨다. 나는 평생에 한 번, 이 싸움에 진 적이 있다. 내 평생의 후회되는 경험이다. 내 생각과 말과 행동이 낱낱이 신문 기사로 나간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고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을 선택을 하라. IV. 진정한 기업(상속)은 영원한 천국이다. 가나안 땅은 천국의 모형이다.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은 1차적으로는 가나안 땅을, 궁극적으로는 천국 약속이다. 하나님 방식으로 사느라 빼앗긴 땅 가운데 이 땅에서 회복하지 못한 기업은 천국에 적금해 놓은 것이다.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 V. 마무리 신자를 유혹하고 시험하는 자는 언제나 바깥 불신자가 아니다. 때로 같은 신앙공동체의 지체나 한 가정의 가족도 시험한다. 그 사람이 회개하고 연단받는 것은 그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문제이다. 그 사람은 하나님께 맡기고 나는 내 믿음을 지켜야 한다. 결론/ 내가 왜 바보 같이 빼앗기고 살아야 하느냐고? 전능하고 선하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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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중 03-18 17:55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교회 활성화를 위한 청중의 설교 참여 방안 연구』

    I. 들어가는 글한국교회는 1970년대와 80년대를 지나오면서 선교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부흥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2000년대로 들어오면서 부흥과 성장이 주춤하더니 2020 년에 와서 코로나 19의 직격탄을 맞아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방역을 이유로 정부로 부터 각종 소그룹 모임과 식사의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가 금지당한 것은 물론이고, 정규 예배마저도 집합 인원이 제한당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교회는 신앙 공동체의 기능을 상실할 위기에 놓여 있다. 집합 제한 기간이 장기화함에 따라, 목회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는 코로나 사태 이후에 출석 교인 30% 정도가 교회로 복귀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는 우려스러운 통계도 나오고 있다.1) 실제로 10월 5일에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16%의 교회는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2) 과연 언제쯤이면 코로나 19가 종식되고 다시 소그룹 모임을 시작할 수 있을까? 2020년 5월 14일에 WHO는 COVID-19는 팬데믹(pandemic)을 넘어 엔데믹 (endemic)이 될 수 있다는 우울한 경고를 했다.3) 엔데믹이란 말라리아(Malaria)나 뎅기열(Dengue fever)처럼 지역사회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감염병을 의미한다. 한편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2021년 11월 초에는 위드 코로나(with COVID-19)를 시작할 수 있다고 발표하였다.4) 이런 추세라면 코로나 19가 종식되지 않더라도 머지 않아 다시 소그룹 모임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형외과적 치료 후에는 재활 치료가 꼭 필요하듯이 코로나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정체된 신앙 공동체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교회가 바람직한 공동체의 모습으로 회복하기 위해 설교자는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연구자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초대교회의 모습으로부터 모색하려고 한다. 초대교회의 모습을 볼 때 생명력 있는 설교와 설교 후의 말씀 나눔이라는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신앙 공동체가 활성화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베뢰아의 성도들은 말씀을 받은 후에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 이같은 성경적 모범을 따르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교회를 활성화하기 위한 해결책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설교자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며, 둘째는 청중들도 받은 말씀을 서로 나누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설교자가 수준을 높이고 청중은 받은 말씀을 나누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할 방법으로 연구자는 “설교 비평”을 대안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설교 비평의 근거와 기준, 그리고 실행 방법은 무엇인가? 1) 이 내용은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코로나19 이후 2021년 한국교회 변화 추적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공개됐다. 「크리스천투데이」 (2021년 8월 13일), 2021년 10월 19일 접속, 해당싸이 트: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41847.2) 「크리스천투데이」 (2021년 10월 13일), 2021년 10월 19일 접속, 해당싸이트: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08335.3) 「중앙일보」 (2020년 5월 14일). 2021년 10월 19일 접속, 해당싸이트: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776686#home.4) 「KBS NEWS」 (2021년 10월 7일), 2021년 10월 19일 접속, 해당싸이트: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295884. 선포된 말씀을 드높이는 설교 비평을 수행하기 위하여, 그리고 이를 통해 교회 활성화에 이바지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이론 정립과 방법론을 마련할 필 요가 있다. ⓵먼저 설교 비평의 필요성과 설교 비평의 이론적 근거를 확인하고 ⓶설교자의 설교를 더욱 발전시킬 방안을 마련한 후에 ⓷청중이 설교 비평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긍정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하여 청중의 자발적인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II. 펴는 글1. 설교 비평의 필요성과 비평 사례(事例) 1) 찬미로서의 설교 비평설교 비평이 필요한 이유는 먼저 열정적으로 말씀을 준비하고 전달한 설교자를 격려하고 찬미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청중 역시 그 말씀을 통해 성숙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근거는 독일의 설교학자 Rudolf Bohren(1920~2010)의 설명으로부터 확보할 수 있다.5) Bohren은 설교자에 대한 청중의 열정적 공감을 유도하는 방안으로 설교 비평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Bohren은 설교에 관한 그의 역작 Predigtlehre 마지막 장(章)에서 설교 비평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교회의 성숙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역설(力說)한다. Bohren에 의하면 설교 비평이 설교의 추가 부록이 아니며 설교에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비평(批評)이란 그 용어부터 부정적 느낌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Bohren이 교회 성숙에 설교 비평이 꼭 필요하다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Bohren이 설교 비평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은 청중이 설교를 평가하도록 하자는 것이 아니다. Bohren이 생각 하는 설교 비평은 설교를 찬미하고 설교에 대하여 “아멘”이라고 말하게 하는 방법이다. 마치 설교가 본문의 찬미인 것처럼 설교 비평은 설교 찬미를 목적으로 삼는다.6)다시 말하면, Bohren이 말하는 설교 비평이란 청중이 설교를 듣는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였음을 표현하는 열정적 공감이다. 그래서 Bohren은 설교 비평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설교 비평의 과제는 설교의 이해와 설교에 관한 기쁨을 재촉하는 일에 있다. 설교를 듣는 도움을 주려고 한다. 설교와 꼭같이 말씀에 봉사하는 길이다.”7) 5) Rudolf Bohren은 스위스 Grindelwald에서 태어난 스위스인 목사이지만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University of Heidelberg) 등에서 교수 활동을 하였고 마지막으로 독일 뷔르템베르크 (Württemberg)에서 사망했기에 독일 학자라고 할 수 있다., 박근원 옮김, 『설교학실천론』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0), 287.6) Rudolf Bohren, 7) Bohren, 『설교학실천론』, 288.이처럼 찬미로서의 설교 비평은 비평에 노출된 설교자와 비평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청중 모두에게 도움을 주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Bohren은 설교 비평을 외면하거나 회피하는 설교자나 설교 비평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청중은 말씀 안에서 성숙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고 한다. Bohren은 교회 안에서 설교 비평이 방해를 받는 동안에는 말씀의 진행도 방해를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설교 비평은 설교에 빠져서는 안 되는 본질이다. 다만, 설교 비평은 찬미가 목적이기 때문에 오직 성숙한 교회만이 설교 비평의 과제를 수행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성숙한 교회는 건전한 설교 비평을 통해 더욱 성숙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다.8) 2) 청중 참여로서의 설교 비평설교 비평이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청중의 설교 참여를 위해서이다. 설교에서 청중은 수동적인 존재들이 아니라 설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이다. 이러한 사실은 Fred B. Craddock과 Lucy Atkinson Rose의 설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Craddock은 오늘날 청중은 설교에 참여하되 설교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설교자에게 말하고 설교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9)Rose 역시 청중은 설교에 참여하는 자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Rose는 『하나님 말씀과 대화 설교』에서 설교학의 흐름을 전통적인 설교학과 케리그마 설교학, 그리고 신설교학으로 구분하여 각각 특징과 장단점을 분석하였다. 그 후 신설교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자신의 대화 설교(conversational preaching)를 제안하였다. 여기에서 Rose는 설교의 목적을 “교회의 중심적인 대화를 촉진시키고 강화하기 위하여 신앙 공동체를 매 주일 하나님의 말씀 주위로 끌어모으는 것”이라고 결론짓는다.10) 설교의 목적이 ‘청중을 대화 테이블로 초대하는 것’이라면 대화 테이블로 모이게 하는 방법은 무엇이며 모여서 할 일은 무엇인가? 이 설명을 뒷받침하기 위해 Rose는 Dietrich Ritschl의 말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설교자와 회중은 함께 만인 제사장의 권리를 공유하고 있으며, 함께 공유하는 제사장적 책임을 감당함에 있어서 설교자와 회중은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해석해야 한다.”11) 더 나아가 Rose는 설교는 설교자만의 고유한 사역이 아니라 모든 예배자들이 함께 감당해야 할 사역이라는 Ritschl의 말을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Rose의 대화 테이블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아마 ‘들은 말씀을 드높이는’ 설교 비평일 것이다.Rose는 Craddock을 잇는 신설교학자로서 설교의 목적이 진리를 전달하거나 하나 8) Bohren, 『설교학실천론』, 298.9) Fred B. Craddock, , 이우제 옮김, 『크래독의 설교 레슨』 (서울: 대서, 2007), 37.이승진 옮김, 『하나님 말씀과 대화 설교』 (서울: 기독교10) Lucy Atkinson Rose, S 문서선교회, 2010), 190.11) Rose, 『하나님 말씀과 대화 설교』, 179-81. 님과의 만남을 중재하거나 회중을 변화시키는 것에 있지 않다는 신설교학의 설교관을 가지고 있다.12) 개혁주의의 입장에서 Rose의 설교관을 다 동의할 수는 없지만, 신앙 공동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대화할 것을 강조하는 면에서 Rose의 주장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설교 비평의 필요성은 설교의 적용이라는 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Daniel M. Doriani는 적용의 네 가지 측면을 의무, 성품, 목표, 그리고 분별력으로 구분한다. 다시 말하면 성경은 청중의 다음 네 가지 질문에 답한다는 것이다. ⓵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⓶나는 어떻게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 ⓷우리는 어떠한 목표를 추구해야 하는가? ⓸우리는 어떻게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을 얻을 수 있는가?13)Doriani는 적용을 청중의 의무로 남겨놓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적용으로 청중을 데려갈 책임이 설교자에게 있다고 한다. 하지만 청중을 적용까지 데려가는 것은 설교자의 책임이지만 그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실행하는 주체는 청중 자신이다. 그러므로 공동체 구성원들이 각자 결심한 내용을 자신의 입으로 표현하고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기 위해서는 설교 비평이 꼭 필요하다. 3) 성경과 교회사에 나타난 설교 비평 사례이처럼 중요한 설교 비평은 성경 속에서, 그리고 교회사에서는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그 사례를 확인해 볼 때 그 필요성에 대하여 더욱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 적으로 그리고 교회사적으로 모범적인 설교 비평의 사례가 있다. 성경 속에서는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설교 비평의 사례를 확인할 수 있고 교회사에서는 청교도의 가르침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신앙의 바람직한 전통이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설교 비평 사례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 예수님이 제자들과 육체로 함께 계시지 않는 상황에서 시작되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무덤에 갔다가 무덤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그 후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달려와 그녀가 주를 본 사실과 예수님이 전하신 가슴 벅찬 말씀을 전하였다(요 20:18). 또 다른 예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 역시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은 후 밤중에 예루살렘으로 달려와서 그들이 예수님을 만난 사실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의 내용을 다른 제자들에게 전달하였다(눅 24:35). 이처럼 제자들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서로 나누는 모습은 설교 비평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모습은 부활이라는 충격적인 상황에서만 발생한 일시적 현상인가? 사도행 12) Rose, 『하나님 말씀과 대화 설교』, 190.13) Daniel M. Doriani, Getting the message : a plan for interpreting and applying the Bible,정옥배 옮김, 『적용, 성경과 삶의 통합을 말하다』 (서울: 한국성서유니온선교회, 2011), 133.전에 나타난 사건을 볼 때 부활 이후 상당한 기간이 지난 후에, 예루살렘이 아닌 마케도니아의 도시 베뢰아에서도 이런 현상이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도 바울로 부터 복음을 전해 받은 베뢰아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은 후에 그 말씀을 성경에서 확인하며 내면화하는 과정을 거쳤다.14) 그런가 하면 바울이 이고니온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는 정반대의 반응이 일어났다.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사람들이 바울에게 반감을 품도록 선동하였고 심지어 돌로 쳐 죽이려고 하였다. 이것을 보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졌을 때는 기뻐하며 그 말씀으로 서로 대화하든지 혹은 반발하든지 어떤 종류의 반향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능력 있는 말씀이 선포되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이 조용히 귀가하고 잊어버린다면 오히려 이상한 현상이다. 설교를 들은 청중은 그 들은 내용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것이 자연스럽고 설교의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다. 설교 비평의 사례는 교회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7세기의 청교도들은 설교를 통해 들은 말씀으로 서로 교제하는 것을 강조했고 또 실천했다.15) 설교 비평(설교 나눔)은 공동체의 구성원들만이 아니라 가장(家長)을 중심으로 가족들과 하는 것이 신명기 6장에 나타난 쉐마의 정신에 부합된다. 그런 정신에 입각하여 17세기의 영향력 있는 청교도 가운데 Lewis Bayly(1575~1631)는 그의 저서 The Practice of Piety를 통해 예배가 끝난 후에 집으로 돌아가서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 들은 설교를 검사하고, 저녁에는 하나님의 하실 일을 묵상하면서 기도함으로 주일을 마치라고 권면했다.16) 이러한 Bayly의 가르침이야말로 가장 모범적인 설교 비평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성경의 제자들과 신실한 청교도 신앙인들이 설교를 들은 후에 서로 그 내용을 나누며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오늘날의 청중 역시 설교를 들은 후 서로 확인하고 내면화하여 순종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서로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나 지금처럼 코로나 시대를 맞아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거나 설교를 듣는 경우에는 그 한계점을 보완할 방안이 필요한데 그 가운데 하나가 가정이나 소그룹에서 설교를 나누는 것이다.17) 14) 사도행전 17:11에서 “상고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ἀνακρίνω는 ‘조사하다’, ‘검토하다’, ‘심문하다’의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베뢰아 성도들의 모습은 설교 비평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15) Nicholas Bownd, The True Doctrine of the Sabbath: or, Sabbatum Veteris Et Novi Testamenti(Grand Rapids: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5), 368, 370-75.16) 홍인택,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율법과 성화』 (서울: 개혁주의신학사, 2021), 273.17) 조광현, “코로나 시대, 영상 설교에 대한 설교학적 고찰”, 한국복음주의실천신학회, 「복음과실천신 학」 57 (2020): 203-204. 2. 설교 비평의 실태(實態)와 비평의 기준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설교학적 이유와 또 성경적, 교회사적 근거로 볼 때 설교 비평은 꼭 필요한 덕목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설교 비평이 지금까지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는 강단의 성역화라는 장벽 때문이고 둘째는 설교 비평자의 자질 및 설교 비평의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연구자는 먼저 설교 비평의 현주소를 살핀 후에 바람직한 기준과 방법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한다. 1) 성역화된 한국교회 강단설교는 정당성(validity)이 있는 성경해석을 통해 도출해 낸 메시지를 청중의 삶 에 적실성(relevancy)이 있도록 전달해주는 것이다.18) 그런데 일부 설교자의 설교에서는 정당성과 적실성 가운데 한쪽 혹은 양쪽 모두 확보되지 않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설교자들이 어떠한 교정도 받지 않은 상태로 계속해서 강단에 서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한국교회의 설교 강단은 오래전부터 성역(聖域)으로 취급되어 객관적인 평가를 받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총신대학교 류응렬 교수는 2004년 10월 18일에 「기독교사상」이 발간한 『한국교회 16인의 설교를 말한다』에 대해 평가하면서 그동안 한국교회 강단은 거의 폐쇄된 성역이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 책이 지적하는 한국교회 설교자들의 문제를 류응렬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한다.19)첫째, 한국교회 설교자들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신학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래서 성경해석을 자의적으로 흐르게 만들고 주어진 현실과 타협하게 만드는 문제가 발생한다. 둘째, 한국교회 강단의 문제는 잘못된 교회론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공동체에 대한 시각을 상실한 채 개인주의 신앙으로 흐르는 결과를 초래한다. 셋째, 설교자들의 역사의식 결여를 지적한다. 그 결과 한국교회 강단은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개인적 신앙생활에만 집중하게 된다.한국교회 강단의 이런 문제점은 「기독교사상」이 선정한 16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 책에 선정되지 않은 설교자들에게 어쩌면 더 많은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 그 로부터 17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런 문제점들은 미해결의 문제점으로 남아있다. 그러므로 설교자들은 정기적으로 자신의 설교에 대해 올바른 기준으로 평가받을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그동안 한국교회 설교 강단은 왜 이처럼 평가 불가한 성역으로 인식 되었을까? 서울신학대학교 정인교 교수는 한국교회의 설교가 거론 불가의 성역이었던 이유를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으로 여기는 가치관에 있다고 본다. 이런 가 18) 정창균, 『고정관념을 넘어서는 설교』 (수원: 합동신학대학원출판부, 2002), 9. 19) 류응렬, “한국교회 설교비평의 분석과 평가 그리고 제언”, 대한기독교서회, 「기독교사상」 51 (2007/12) : 186-88. 치관은 Martin Luther가 설교를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Verkuendigtes Wort Gottes)으로 설명한 것에서 기원한다. 그러므로 문자적으로만 보면 설교 비평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건드린다는 부담이 있는 것이다.이런 부담이 있음에도 정인교는 설교에 대한 비평은 피할 수 없는 당위라고 주장한다. 정인교는 설교 비평은 설교자가 가진 속성상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설교가 한계를 가진 인간 설교자를 매개로 청중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비록 설교자가 사역자로 부름을 받았다는 ‘내적 소명 ’(vocatio interna)과 신학 수업과 안수(按手)라는 ‘외적 소명’(vocatio externa), 그리고 교회의 부름이라는 ‘간접 소명’(vocatio mediata)을 받았더라도 설교자는 불완전한 인간일 수밖에 없다.20)그러므로 정인교는 “이런 완전치 않은 설교자에게 말씀을 맡겨놓고 아무런 통제나 조정의 노력이 없다면 그로부터 야기될 수 있는 문제는 실로 심각한 것이 사실이다.”라고 평가한다. 그래서 정인교는 설교 비평은 설교의 성격상 반드시 필요한 영역이며, 120년(2007년 당시 기준) 한국 기독교 역사로 볼 때 오히려 늦은 감이 없지 않다고 주장한다.21)그러므로 정인교는 정용섭의 『속빈 설교 꽉찬 설교』에 대해 논평하면서 “이 책을 통해, 설교자를 하나님의 진리의 완벽한 매개자로 신격화하는 것은 결국 설교자뿐 아니라 스스로를 죽이는 위험한 일임을 깊이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라고 설교 비평의 필요성을 피력하였다.22) 2) 한국교회 설교 비평의 실태와 문제점그렇다면 한국교회 강단에서 설교 비평의 실태는 어떠한가? 한국교회에서 설교 비평은 2006년과 2007년에 정용섭에 의해 발간된 두 저서, 『속빈 설교 꽉찬 설교』와 『설교와 선동 사이에서』를 통해 본격적인 문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두고 류응렬은 설교 비평이라는 장르가 드디어 하나의 학문이 될 가능성을 보여준 사건으로 평가한다. 류응렬은 정용섭이 한국교회 강단에서 성경이 사라지고 간증 수준의 설교가 되어버린 사실을 지적하는 것과 설교자가 본문을 제대로 다루지 않거나 제멋대로 다루는 것을 지적한 사실을 중요하게 평가한다.23)하지만 류응렬은 한국교회 설교를 비평한 정용섭 자신에게도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류응렬에 의하면 올바른 설교 비평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설교 비평이란 설교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통해 사람들에게 그 사람과 설교에 대한 정확한 20) 정인교, “한국교회와 설교 비평 – 이상과 현실 그리고 미래”, 대한기독교서회, 「기독교사상」 51 (2007/12): 147-48.21) 정인교, “한국교회와 설교 비평 – 이상과 현실 그리고 미래”, 161.22) 정인교, “한국교회와 설교 비평 – 이상과 현실 그리고 미래”, 155.23) 류응렬, “한국교회 설교비평의 분석과 평가 그리고 제언”, 190-93. 이해력을 돕고, 바람직한 설교에 대한 그림을 그려주며, 또한 설교하는 당사자에게는 이를 통해 설교의 발전을 꾀하여 결국 한국교회 강단을 말씀에 근거하여 새롭게 세우는 데 있어야 한다.”24) 이에 비해 정용섭의 설교 비평에는 중대한 문제점이 있는데 첫째는 그의 성경관의 문제이다. 정용섭은 성경에 대한 축자영감설을 믿는 설교자들이 미숙한 성서 이해를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처럼 정용섭이 성경의 축자영감설을 믿지 않는다면 그는 왜 설교자가 강단에서 성경 본문을 존중하지 않음을 지적한 것일까? 성경 속에 하나님의 말씀도 아닌 신화적 요소까지 들어있다고 가정한다면 설교자들이 그런 성경 본문에 집중해서 무엇을 얻겠느냐고 류응렬은 반문한다.25) 그러므로 설교 비평을 하는 사람은 먼저 성경에 관한 바른 관점을 소유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 설교가 과연 성경의 바른 해석에서 출발했는지를 물어야 그 설교 비평이 올바르고 유익한 비평이 될 수 있을 것이다.잘못된 성경관을 소유한 정용섭의 비평에는 여러 설교자에 대한 그릇된 평가가 다수 발견된다. 먼저 김상복의 설교에 대해 정용섭은 “김 목사는 축자영감설에 기초 함으로써 신학과 과학을 혼동하는 창조과학회 유의 방식으로 성서에 접근한다.”라면서 “김 목사가 이런 자기모순에 빠진 이유는 성서의 신화까지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싶다는, 일종의 신화적 심리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26)정용섭이 축자영감설을 부정하는 잘못된 성경관은 로이드 존스를 비평하는 것에도 드러난다. 그는 로이드 존스에 대하여 “복음주의자로 자처하는 로이드 존스는 성서를 문자의 차원에서 오류가 없는 말씀으로 믿는다는 것에 대해 여러 말을 할 생각은 없다.”라고 하면서도 축자영감설이 로이드 존스의 설교 구성에 다음 두 가지 오류를 끼쳤다고 지적한다. “하나는 그가 오늘날의 고고학을 총체적으로 부정한다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성서의 희화화이다.” 로이드 존스가 성경을 희화화했다는 말에 대하여 정용섭은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고대인들의 우주론적 언어를 아 런 해석 없이 그대로 문자의 차원에서 선포한다는 것은 종말론적으로 하나님 말씀이 성서를 박물관의 유물로 만드는 격이다.”27) 정용섭의 또 다른 문제점은 다른 설교자를 향한 그의 태도이다. 정용섭은 자신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매우 공격적이고 부정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서슴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김남준에 대해서는 “청교도 신앙의 영적 결벽증”이라고 했고 한국교회 다수가 존경하는 하용조에 대해서는 “근본주의적 강해 설교의 조급증”이라는 표제를 붙였다.28) 특히 박영선에 대해서 “그럴듯한 신학적 포즈를 취하긴 했지만, 그 포즈의 뒤안길은 결코 신학적이지 못하다.”라고 표현한 것은 정당한 비평이 아니라 작정하고 비꼬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29) 24) 류응렬, “한국교회 설교비평의 분석과 평가 그리고 제언”, 176.25) 류응렬, “한국교회 설교비평의 분석과 평가 그리고 제언”, 193-95.26) 정용섭, 『설교와 선동 사이에서』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7), 28-29.27) 정용섭, 『설교와 선동 사이에서』, 329-30.28) 정용섭, 『속빈 설교 꽉찬 설교』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6), 63, 315. 『설교와 선동 사이에서』에서 정용섭은 『속빈 설교 꽉찬 설교』에서보다 더욱 도발적인 용어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김서택의 설교에 대해서는 “종교적 모범생 콤플렉스에 의한 복음의 훼손”이라고 했고, 이동원의 설교에 대해서는 “규범 설교의 역사 허무주의”라고 했다. 장경동의 설교에 대해서는 “허무주의 영성”이라고 간단히 말하는가 하면 정필도의 설교에 대해서는 “기독교 신앙의 은폐된 폭력성”이라고 비판하고 있다.30) 이와 같은 정용섭의 태도는 비평이 아니라 비판이며, 깎아 세우기가 아니라 허물고 짓밟기에 불과하다. 정용섭은 자신의 저서 제목을 『설교와 선동 사이에서』라고 붙였는데 정용섭이야말로 “비평과 선동 사이에” 서 있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러한 정용섭의 설교 비평에 대해 정인교는 “이러한 접근은 설교 비평의 본질을 훼손하고 오도할 수 있는 지극히 위험한 요소를 함유하고 있다.”라고 우려를 표현한다.31) 3) 바람직한 설교 비평의 기준신성욱 교수가 말한 대로 “한 편의 설교 속에는 그 사람의 성경관과 신학적인 지식과 인생 경험과 인격 모두가 고스란히 녹아져 있다.”32) 그러므로 설교를 비평할 때는 설교자에 대하여 예를 갖추어 긍정적 평가 후에 아쉬운 점이나 보완점을 언급해야 한다. 또한, 설교를 비평하는 사람은 설교자 못지않은 설교학적 기준을 확보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김창인의 설교를 평가한 신성욱은 설교 비평의 좋은 예를 보여주고 있다. 김대혁 교수 역시 설교 비평의 모범을 보여준다. 김대혁은 Abraham Kuruvilla의 설교 이론에 대하여 비평하면서 먼저 네 가지의 공헌을 나열한 후 세 가지 정도의 아쉬운 점을 덧붙이는 방식을 취하였다.33) 하지만 정용섭의 비평은 비평가의 자질과 비평 기준 확보의 시급성을 절감하게 했다. 정인교에 의하면 한국교회 설교 비평의 문제점은 다음 다섯 가지이다. 첫째, 비평자들의 기본적인 시각과 태도가 부정적 비판 일변도인 것이 문제이다. 둘째, 작금의 설교 비평은 지나치리만큼 설교의 내용에만 치중함으로 설교를 전체적으로 조명하지 않는다. 셋째, 설교 비평의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는가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넷째, 비평자의 입장이 설교 비평의 절대 기준이 되어 선택의 문제를 당위의 문제로 몰 29) 정용섭, 『속빈 설교 꽉찬 설교』, 145.30) 정용섭, 『설교와 선동 사이에서』, 37, 129, 197, 243.31) 정인교, “한국교회와 설교비평 – 이상과 현실 그리고 미래”, 157.32) 신성욱, “성경해석학적 관점에서 본 김창인 목사의 설교와 신학적 특징”, 한국복음주의실천신학회, 「복음과 실천신학」 60 (2021): 91. (https://doi.org/10.25309/kept.2021.8.15.082)33) 김대혁, “Abraham Kuruvilla의 설교 방법론에 관한 비평적 평가”, 한국복음주의실천신학회, 「복음 과 실천신학」 60 (2021): 31-40. (https://doi.org/10.25309/kept.2021.8.15.011) 고 가는 것 역시 설교 비평을 왜곡시킬 수 있다. 다섯째, 비평자의 독선이 문제이다. 설교 비평은 설교자에 대한 예의만이 아니라 회중에 대한 예의까지도 갖추어야 한다.34) 그렇다면 설교 비평을 위한 바람직한 기준은 무엇인가? 정인교가 제시하는 설교 비평의 합리적 기준은 다음의 일곱 가지이다. 첫째, 설교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둘째, 설교된 내용의 조직신학적 배경에 관해 물어야 한다. 셋째, 어떻게 설교되어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설교는 무엇을 말하는 것과 더불어 어떻게 말하는가가 중요하다. 넷째, 누구에 의해 설교가 행해지는가를 물어야 한다. 설교 비평은 설교자에 대한 이해와 공동체 및 설교의 목회적 차원과 계획에 대한 이해를 요구한다. 다섯째, 설교가 위치하는 삶의 정황에 관해 물어야 한다. 여섯째, 설교의 결과를 물어야 한다. 일곱째, 설교가 주로 어떤 공동체를 만들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35) 류응렬 역시 한국교회 강단이 말씀으로 회복되고 하나님 나라를 진리 위에 세우는 설교 비평을 위하여 다섯 가지 제안을 하고 있다. 첫째, 성경적인 설교 신학의 정립이 필요하다. 둘째, 균형 잡힌 설교 비평은 설교자와 설교를 동시에 연구하는 것이 다. 셋째, 설교자의 의도를 존중하며 읽는 자세이다. 넷째, 설교 본문뿐 아니라 설교 전달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설교는 예배의 상황에서 이해해야 한다.36)이상의 다섯 가지 제안 가운데 세 번째의 태도에 관한 부분은 특히 중요하다. 류응렬이 한종호의 『전병욱 비판적 읽기』에 대한 평가에서도 말했듯이 설교자의 의도와 다르게 비평가의 의도대로 해석해버리는 것은 파괴적인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한종호의 눈에 비치는 전병욱은 어떤 말을 해도 이미 그의 눈 밖에 난 사람처럼 여겨진다.”라고 한 류응렬의 평가처럼 설교자의 의도를 존중하지 않으면 결코 균형 잡힌 설교 비평이 될 수 없을 것이다.37) 그렇다면 설교 비평은 설교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며 설교에 대한 찬미라고 하는 Rudolf Bohren의 기준은 어떠한지 살펴보자. Bohren은 설교 분석의 기준을 먼저 “지, 정, 의” 세 개의 카테고리로 구분하고 각 카테고리에 세부적인 가지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비평의 기준을 제시하였다.38) 설교 비평의 기준을 세 개로 구분하는 Bohren의 카테고리는 청중이 기억하기 좋은 장점도 있으며 그 속에는 정인교가 제안하는 일곱 가지 기준도 대부분 포함된다. 그러므로 연구자는 Bohren의 구분을 설교 비평의 기준으로 삼고자 한다. 한편, 김지혁 교수에 의하면 설교의 적용은 마음의 결단 문제이며, 의지와 더불어 정서와 감정을 포함하는 전인격적인 문제이다. 그리고 성도들은 마음의 감각을 통 34) 정인교, “한국교회와 설교비평 – 이상과 현실 그리고 미래”, 161-66.35) 정인교, “한국교회와 설교비평 – 이상과 현실 그리고 미래”, 168-71.36) 류응렬, “한국교회 설교비평의 분석과 평가 그리고 제언”, 197-99.37) 류응렬, “한국교회 설교비평의 분석과 평가 그리고 제언”, 184-86.38) Bohren, 『설교학실천론』, 290-298. 해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경험한다.39) 그러므로 설교 비평을 할 때는 지, 정, 의 삼 요소 가운데 감동을 가장 먼저 나누는 것이 좋다. (1) 감동 : 어떤 감동을 하였는가?설교자는 메시지를 전할 때 청중의 감정에 호소한다. 그러므로 그 설교가 청중의 마음을 붙잡았다는 사실은 메시지 전달이 성공했음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청중이 자신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파악할 때 설교자가 호소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한다. 이처럼 청중에게 무엇인가가 들렸고, 청중이 그것을 이야기 하는 일은 바로 설교의 찬미이다. 이렇게 될 때 청중은 설교자의 편에 선 증인이 되 는 셈이다. (2) 내용 : 어떤 내용을 들었는가?마음을 붙잡는다는 것은 개인적인 정서로만 이해되어서는 안 되고 설교의 근거와 내용도 함께 파악해야 한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다음 질문이 필요하다.a. 본문의 내용: 본문의 고유한 교훈은 무엇인지, 본문에서 무엇을 깨달았는지, 설 자는 무엇을 설교하였는지 나누는 것이다. b. 교리의 내용: 성경해석을 통해서 깨닫게 된 신앙 교리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 이다. 율법과 복음의 관계, 그리스도의 사역과 그 은혜를 나누고 그 깨달음과 전체 성경 및 조직신학적 조화에 대해 나누는 것이다. c. 청중의 상황: 설교의 내용이 현재 시대와 교회의 상황과 개인의 상황에서 어떤 의미로 와닿는지 나누는 것이다. 설교는 그 문제에 대해 어떤 해답을 주었는지 나누는 것이다. (3) 결단 : 어떤 결단을 하였는가?설교는 단순발화행위나 의미 수반 발화행위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효과 수반 발화행위가 되어야 한다.40) 그렇다면 설교는 청중에게서 어떤 효과가 발생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므로 그런 효과를 함께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a. 개인에 대한 효과: 설교가 개인을 어디로 인도하려고 하는가? 개인에게 어떤 사고를 하도록 하는가? 개인에게 어떤 호소를 주는가에 대해 나누는 것이다.b. 교회에 대한 효과: 설교가 교회의 미래에 대해 어떤 의미가 있는가? 교회의 미래 현상과 그 근거를 설교 가운데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었는가?c. 사회에 대한 효과: 설교가 비판적 정치의식과 사회적 책임감을 일깨워주는가? 예를 들어 최근에는 교회가 차별금지법과 동성혼 합법화를 막아내어야 하는 필요성이 39) 김지혁, “Jonathan Edwards의 마음의 감각과 그의 설교학적 미학”, 한국복음주의실천신학회, 「복음과 실천신학」 33 (2014): 43, 53.40) John L. Austin, How to do things with words, 2nd ed. by J. O. Urmson & Maria Sbisa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62. 1975), 94-132. 있다. 이런 사회적 이슈들에 관하여 청중을 어떤 행동의 필요성을 깨달았는가? 3. 효과적인 설교 비평 방법지금까지 설교 비평의 필요성과 설교 비평의 실태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비평을 위한 바람직한 기준이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그러므로 이제는 이러한 기준으로 설교의 발전과 청중의 설교 참여를 위하여 효과적인 설교 비평 방법에 관하여 생각해 보자. 설교 비평을 통해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신중하고 지혜로운 방법이 필요한데 이를 위하여 연구자는 설교자 그룹과 청중 그룹을 구분하는 이중 노선의 설교 비평 방법론을 제안한다. 한편, 모임 운영 방식 역시 대면과 비대면이라는 이중 방식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중 노선의 설교 비평이란 무엇이며 그 필요성은 무엇인가? 설교 비평은 아무리 좋게 표현해도 설교자와 청중 모두에게 부담스러운 것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다. 왜냐하면 비평(批評, critique)이란 평가하고 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 문이다.41)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포된 다른 사람의 설교를 평가하는 것도 부담이지만 자신의 설교를 다른 사람에게 평가받는 것도 그다지 달갑지 않은 일이다. 특히나 신앙과 인격 수준이 다양한 청중에게 설교를 비평하도록 했을 때 과연 어떤 결과들이 쏟아져 나올지는 예측 불허의 일이다. 그리고 설교 비평에 참여한 청중들 쪽에서도 이를 통해 반드시 개인의 경건은 깊어지고 신앙 공동체는 활성화된다고 보장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Bohren은 오직 성숙한 교회만이 설교 비평의 과제를 수행할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42)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연구자는 설교 비평에 참여하는 주체를 설교자 그룹과 청중 그룹으로 구분하여 이중 노선으로 시행할 것을 제안한다. 1) 설교자 중심의 설교 비평 모임먼저 설교자 중심의 설교 비평 모임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앞에서 언급했듯이 한국교회에서 설교 비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는 한국교회 강단이 성역으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며 성역화의 첫째 이유는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의식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 설교자가 하는 말은 어떤 이유와 근거로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는가? 이에 대하여 Rudolf Bohren은 두 가지 이유로 설명한다. Bohren이 말하는 첫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인간 설교자와 공동 설교자가 되어 41)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비평(批評)’을 ‘사물의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 따위를 분석하 여 가치를 논함’이라고 해설하고 있다.42) Bohren, 『설교학실천론』, 298. 주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 설교자와 공동 설교자가 되어 주실 뿐 아니라 첫 번째 설교자가 되어 주신다.43) 인간 설교자가 말하는 내용은 하나님께서 하고 싶은 말씀이며 인간 설교자는 하나님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그 말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는 자신의 말이 과연 하나님께서 하고 싶은 말씀이 맞는지 점검하는 겸손함이 필요하다. 그런데 사람이란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에 한계가 있는 존재이다. 또 본인이 중요하게 여기고 강조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그 부분에 실수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의 약점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설교를 객관적으로 평가받고 발전시키기 원하는 설교자는 설교자들로 구성된 비평 그룹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앞에서 정용섭의 설교 비평을 통해서도 살펴보았듯이 한 사람이 설교 비평을 독점하는 것은 균형을 잃을 우려가 있다. 그러므로 설교를 평가하고 점검하는 작업은 일정한 교육을 받고 준비가 된 설교자들이 그룹을 만들어 참여하는 것이 안전하다. 설교자들로 구성된 설교 비평 그룹은 매주 한 사람씩 순서를 정하여 설교를 비평하되 설교자의 개별성과 시간적, 공간적 상황성도 함께 고려하도록 사전에 설교 환경에 대한 설명을 들고 설교 영상을 시청한 후에 평가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설교자들의 설교 비평 모임에 계속 참여하는 설교자의 설교는 점점 정당성과 적실성을 확보한 설교로 발전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인식하지 못했던 습관도 발견하여 개선하게 될 것이다. 설교자 비평 그룹에서 하는 일은 설교에 공감하고 격려하는 일과 더불어 설교의 내용과 전달 방법 등을 평가하며 그 설교자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세워주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반드시 설교에 대한 공감과 격려를 먼저 한 후에 발전 요소를 덧 붙여 주는 순서를 지키는 것이 좋다. 이러한 방향성을 잘 기억하기 위해서는 이 그룹의 이름을 “설교 비평 모임”보다는 “설교 공감 모임”(설공모)이라고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설교 비평을 할 때의 기준은 앞에서 설명한 Bohren의 기준을 사용하는 것이 무난하다. 이처럼 기준을 정해놓고 평가를 하게 되면, 설교를 준비할 때부터 그 기준을 의식하며 균형 있는 설교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런 비평 활동에 참여 하는 설교자는 자신의 교회 공동체 안에 일반 청중 중심의 설교 비평 모임을 시작할 마음이 생길 것이다. 2) 청중 중심의 설교 비평 모임이제 일반 청중이 참여하는 설교 비평 모임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Bohren은 자신이 열정을 다하여 즐기는 일이 네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그림을 그리는 일, 스키를 타는 일, 나무를 찍어 넘어뜨리는 일, 그리고 설교하는 일이라고 한다. 이 말은 설교 43) Bohren, 『설교학실천론』, 119-20. 를 여가의 일종으로 한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이다. 그가 설교하는 일에 그 만큼 열정을 다하며 즐겁게 한다는 뜻이다.44) 그러면 청중 중심의 설교 비평 모임은 어떻게 운영하는 것이 좋을까? (1) 설교자가 설교하는 일에 그런 열정을 가지고 임한다면 청중 역시 같은 열정으로 동참하도록 할 방안이 필요하다. 청중의 열정적 동참은 청중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하며 설교자가 계속해서 열정을 가지고 설교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청중이 설교에 열정적으로 참여한다는 말은 먼저 설교가 선포되는 시간에 귀를 기울여 잘 듣는 것이다. 또한, 설교 후에 그 내용을 기억하고 개인의 가치관과 삶에 적용하는 것도 포함한다. 어떻게 하면 청중이 설교를 듣는 일과 적용에 열정적으로 동참하게 할 수 있을까? 예배가 끝나면 곧장 일상생활과 생업에 쫓기며 살아가는 청중은 제도적으로 모임을 만들어 참여하도록 권장하지 않으면 자발적으로 이런 관심을 가지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그들이 들은 메시지를 기억하게 하고, 깨달은 교훈대로 순종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설교 비평이다. 사람이란 자기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정리되고 결심이 강화되는 존재이다. 그리고 순종의 결심을 서로 나누면서 책임감이 강화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설교를 들은 후에 소그룹에서 서로 나누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처럼 설교 나눔에 참여 하는 사람은 설교 시간에 더욱 집중해서 듣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2) 또 한 가지 중요한 방법은 청중이 열정을 다하여 설교를 듣는 것 자체가 곧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설교를 경청하는 것은 왜 하나님과 동역 하는 것인가? 이것은 Bohren이 말하는, 인간 설교자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두 번째 이유를 통해서 설명할 수 있다. Bohren에 의하면 설교자가 강단에 설 때 인간 청중들에게 설교하기에 앞서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청중 앞에서 설교하는 것이다. 그 청중은 거기에 있는 어떤 청중보다 더욱 주목받기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 청중들보다 더욱 소중한 청중이시다. 설교의 우선적인 목표는 첫 번째 청중이신 하나님의 존재를 알리고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자가 하는 설교의 가치를 판단하는 분은 바로 이분,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설교자의 설교는 첫 번째 청중이신 하나님에 의해 정당화되는 것이다.45)그런데 설교 현장에서 하나님이 첫 번째 청중이 되신다는 이 사실은 설교자의 설교를 정당하게 할 뿐 아니라 청중이 설교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도 중요성을 부여한다. 설교가 행해질 때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듣고 계신다면 청중이 설교를 듣 44) Rudolf Bohren, Predigtlehre, 박근원 옮김, 『설교학원론』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79), 13. 45) Bohren, 『설교학실천론』, 151-52.는 것은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이 된다. 설교를 듣는 행위만이 아니라 설교 이후에 그 설교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과 들은 설교를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도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이 된다. 시편 1편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 복되다고 한다. 여기서 묵상한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하가(הָגָה)인데 ‘중얼거리다’, ‘묵상(명상)하다’, ‘작은 소리로 읊조리다’ 등의 뜻을 가진다. 이를 근거로 Bohren은 설교에 대해 명상하고 설교 비평에 참여하는 것이 바로 설교자의 열정에 동참하는 것이며 설교를 찬미하는 것이라고 한다.46) (3) 이렇게 일반 청중을 중심으로 설교 비평 모임을 운영할 때는 설교자 그룹과는 다른 주의가 요구된다. 일반 청중은 설교에 대한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적이 없으므 로 이 모임에서 설교자의 발전 요소를 지적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다. 청중이 참여하는 설교 비평 모임은 설교에 대한 이해를 보완해주며 각자의 공감을 나누는 것, 그리고 각자의 깨달음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을 나누는 것이 목적이다. 말하자면 청중 그룹의 설교 비평은 설교를 평가하기보다는 말씀을 공유하 고 내면화하는 방법으로 들은 말씀을 드높이는 것에 목적이 있다. Bohren은 설교 비평은 설교의 찬미이며 설교를 해석하는 것이고 설교에 열정적으로 공감하는 것이라고 설명 하였다.47) 그런데 비평이라는 단어는 날카롭게 분석하고 옳고 그름을 논한다는 부정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러므로 이 모임의 이름에는 ‘설교 비평’이라는 표현대신 서로 격의 없이 대화한다는 느낌을 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연구자가 설교 비평 모임의 이름으로 “들은 말씀 드높이기, 위톡(We Talk)”을 제안한다. ‘위톡’ 46) Bohren, 『설교학실천론』, 286-87. 47) Bohren, 『설교학실천론』, 287-88. 의 원활한 진행을 위하여 참석자들에게 위의 그림과 같은 양식(Form)을 제공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위톡(We Talk) 모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잘 훈련된 리더가 필요하다. 리더를 세우는 가장 모범적인 사례는 옥한흠 목사의 제자훈련을 예로 들 수 있다. 평생의 목회를 통해 평신도를 깨우는 일에 집중했던 옥한흠은 한국교회의 문제점이 평신도를 수동적인 존재로만 취급한 것이라고 지적한다.48) 옥한흠의 제자훈련은 평신도 지도자를 세우는 것이 목적인데 평신도 지도자(순장)들의 사명은 각 다락방에서 순원들과 함께 말씀을 중심으로 하는 대화를 이끄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제자훈련은 한 시대의 유행이 아니라 지속(持續)되어야 할 성경적 모델이다. (4) 이처럼 청중들이 설교를 서로 나누고 적용하게 할 때 여기에 ‘집단지성’이 발생 하는 유익이 있다. 집단 지성(集團知性, collective intelligence)이란 한 세기 전까지는 필요성과 유익함을 생각하지 못하던 새로운 발견이다. Charles Leadbeater에 의하면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출현한 대규모 기업들은 군대형 조직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고 싶으면 작업 지시서를 보거나, 명령계통의 직속 상관의 지시를 따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집단지성은 조직이 직면한 여러 가지 도전을 극복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을 제공하는 대안적인 조직화 방식으로 떠오르고 있다.49)Leadbeater에 의하면 단독 발명가로 널리 알려진 토머스 에디슨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훌륭한 협업활동가였기 때문이다. 아이디어가 소비자, 개발자, 공급자 사이에 공유될 때 혁신은 번성한다. 아이디어 창안에 관계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면, 누가 무슨 일을 했고, 따라서 누가 어느 만큼 소유하게 될지를 계산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진다. 협업에 의한 혁신은 반드시 공동 소유권의 형태를 취해야 한다.50) 이처럼 발명과 생산의 아이디어 창출에서 협업을 통한 집단지성이 발생한다면 청중이 들은 말씀을 가지고 서로 이해와 깨달음 및 그 적용을 서로 나누는 동안에도 집단지성을 통한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유익함은 태초부터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부여해 주신 축복이다. 그러므로 이를 가장 먼저 활용하고 유익함을 누려야 하는 것은 바로 교회 공동체이다. 그리고 이러한 유익은 설교 비평을 위한 ‘들은 말씀 드높이기, 위톡’ 모임을 통해서 적용할 수 있다. 48) 옥한흠, 『다시 쓰는 평신도를 깨운다』 (서울: 두란노, 1999), 43.49) Charles Leadbeater, We think : mass innovation, not mass production, 이순희 옮김,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 : 우리는 나보다 똑똑하다』 (파주: 북이십일, 2009), 131.50) Leadbeater,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 : 우리는 나보다 똑똑하다』, 137. 165. 3) 메타버스 시대의 청중 참여 방안그런데 ‘위톡’을 운영할 때는 대면 방식만이 아니라 비대면 방식까지 적절하게 사용할 필요성이 있다. 2020년에 한국교회는 갑자기 들이닥친 코로나 19의 사태에서 “대면 예배 전면금지 및 비대면 예배만 허용”이라는 전대미문의 행정 명령에 직면하였다. 처음에는 예배 및 설교를 촬영하고 송출하는 것에 관심이 없던 일부 목사들은 혼란을 겪기도 했지만 궁하면 통한다는 격언처럼 1년 이상 그런 상황을 지나오면서 이제는 목사마다 방송 전문가가 되었다. 청중들도 마찬가지이다. 대면 예배 전면금지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통해 일반 성도들이 가정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예배드리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51) 소그룹 모 임을 금지당하자 영상으로 회의와 성경공부를 하는 것에 익숙해진 상황이다. 신광철에 의하면 코로나 사태가 극복된 이후에도 사람들은 코로나 19 이전의 상황으로 회복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52)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시작한 비대면 활동이었으나 이제 비대면 활동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고 다양한 방법과 목적으로 활용될 것이다. 오늘날은 메타버스 시대이며 현대인들은 포노 사피엔스가 되어 있기에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공동체 모임에는 비대면 활동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들은 말씀 드높이기, 위톡’ 역시 대면 모임과 비대면 모임이라는 두 가지 방식을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현대인들은 스스로 인식하기도 전에 메타버스 세계에 살고 있다. 메타버스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메타버스(Metaverse)는 초월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현실 세계를 뜻하는 유니 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서 현실 세계와 다른 가상 공간 세계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메타버스는 1992년 Neal Stephenson의 SF 소설 스노우 크래쉬(Snow Crash) 에서 처음 등장한 표현이다.53) 기술연구단체인 ASF(Acceleration Studies Foundation)는 메타버스를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일상기록(Lifelogging), 거울 세계(Mirror Worlds), 가상세계(Virtual Worlds)의 네 가지로 분류한다.54)메타버스는 전 세대를 막론하고 문화와 예술, 교육과 각종 사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직 메타버스라는 용어조차 생소한 사람일지라도 인터넷 쇼핑을 한 번 이라도 해 보았거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한 번이라도 사용해 보았다면 그는 이미 메타버스의 거울 세계와 라이프로깅을 경험한 사람이다. 또한, 오늘날은 뉴미디어 생태계의 세상이다. 스마트폰, 태블릿PC, 스마트TV 등 51) 안덕원,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기독교 예배-전통적인 경계선 밖에서 드리는 대안 예배를 위한 제언”, 한국복음주의실천신학회, 「복음과 실천신학」 56 (2020): 48. (https://doi.org/10.25309/kept.2020.8.15.045)52) 신광철, “위드/포스트 코로나 시대 문화콘텐츠 교육의 방향”, 인문콘텐츠학회, 「인문콘텐츠」 59 (2020/12): 109.53) 한송이 · 김태종, “메타버스 뉴스 빅데이터 분석: 토픽 모델링 분석을 중심으로”, 한국디지털콘텐츠 학회, 「한국디지털콘텐츠학회 논문지」 22/7 (2021/07): 1092.54) 김상균, 『메타버스』 (화성: 플랜비디자인, 2020), 23. 으로 IT 패러다임이 확산된 ICCT(Information, Communication, Contents Technology) 거버넌스(governance)에서의 미디어 환경은 콘텐츠(Contents), 플랫폼 (Platform), 네트워크(Network), 그리고 디바이스(Device)의 네 가지 CPND가 상호 결합하여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55) 현대인들은 이러한 뉴미디어의 CPND를 통해서 온라인 쇼핑과 음식 주문, 영화감상과 은행 업무 등 온라인 전가 상거래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물론이고 상당수의 노년층 인구들도 각종 SNS를 통해 의사소통과 희노애락을 나누고 있다.56)이렇게 뉴미디어의 CPND를 사용하는 현대인들은 특히 스마트폰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포노 사피엔스가 되어 있고 오늘날이 포노 사피엔스 시대라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57) 현대인이 가장 사랑하는 물건, 내 몸에서 절대로 멀리 두지 않는 물건, 명품을 제외하고는 외출할 때 반드시 소지하는 물건은 바로 스마트폰이다. 자신이 소지한 물건의 목록을 작성하게 한 후 하나씩 버리는 실험을 해 보면 속옷을 제외하고는 거의 마지막까지 남는 물건이 바로 스마트폰이다.58) 이렇게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생활하는 사람들을 포노 사피엔스라고 부른다. 성균관대학교 기계공학부의 최재붕 교수에 의하면, “포노 사피엔스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시공간의 제약 없이 교통할 수 있고 정보 전달이 빨라져 정보 격차가 점차 해소되는 등 편리한 생활을 하게 되면서, 스마트폰 없이 생활하는 것이 힘들어지는 사람이 늘어나며 등장한 용어이다.” 이 말은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혜가 있는 인간’이라는 의미의 호모 사피엔스에 빗대어 포노 사피엔스(지혜가 있는 폰을 쓰는 인간)라고 부른 데서 나왔다.”59) 최재붕은 포노 사피엔스 시대는 전 세계 50%의 인구가 선택한 인류의 운명(運命)이라면서 앞으로 지속적으로 확대될 문명으 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60)이는 사도 시대에 복음이 전해진 로마의 도로망과 비교해 보더라도 당연한 이치 이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기 전에 로마 사회는 로마는 반란을 진압하고 세금을 징수하며 상업적 이익을 도모하여 제국을 효율적으로 통지하고자 제국 전역으로 통하는 도로를 만들어 ‘길은 로마로’ 통하게 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인프라를 복음을 전파하는 도구로 사용하셨다. 로마가 군사적 목적으로 만든 도로를 통해 복음은 급속히 제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인터넷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인터넷은 처음에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되었지만 상업 용도로 급속히 확산되었다.61) 55) 최창현, “C-P-N-D 생태계와 ICCT”, 한국디지털정책학회, 「디지털융복합연구」 12/3 (2014): 7-8.56) 이승진, “뉴노멀 시대에 적실한 설교 사역에 관한 연구”, 한국설교학회, 「설교한국」 13 (2021 봄): 13.57) 박성환, “포노 사피엔스 시대에 스마트폰을 활용한 어린이 설교”, 한국복음주의실천신학회, 「복음과 실천신학」 59 (2020): 199. (https://doi.org/10.25309/kept.2021.5.15.173)58) 김상균, 『메타버스』, 29.59) 최재붕, 『포노 사피엔스 :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파주: 쌤앤파커스, 2019), 25.60) 최재붕, 『포노 사피엔스 :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90-92.61) 김현철 · 조민철, 『메타버스 교회학교』 (서울: 꿈이있는미래, 2021), 41. 초대교회 시대에도 예배는 모여서 드렸지만 복음 전파와 양육에는 편지를 사용 하기도 했다. 특히 사도 바울은 직접 전도했던 지역 교회는 양육하는 일에 편지를 활용하였고 방문한 적이 없는 로마교회에도 편지로 복음을 전했다(롬 1:15).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와 유다도 편지로 성도를 양육하는 일에 힘썼다. 이것을 생각하면 오늘날 예배는 대면 모임을 중시하더라도 전도와 성경공부 등의 소모임은 비대면을 활용 할 수 있다. 총신대학교의 주종훈 교수에 의하면 가상 공간의 모임에서도 성령께서 역사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다.62)현실 세계와 메타버스를 병행하여 위톡 모임을 운영할 때는 다음과 같은 긍정적인 효과가 예상된다. (1) 현실 세계는 한 주간에 두 번 이상 모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메타버스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나 교제하며 삶을 나눌 수 있다. (2) 혹 어떤 구성원이 대면 모임에 동참하지 못하는 사정이 발생했을 경우 그 구성원을 위하여 대면 및 비대면 모임을 병행할 수 있다. 이 경우 현장에 와 있는 구성원들 도 모두 영상회의 도구(Zoom, Meet 등)에 접속하여 얼굴을 마주 볼 수 있다. (3) 메타버스로 대화하면서 발생하는 아쉬움은 현실 세계의 대면 만남을 더욱 갈망하게 만들어 준다. 그 결과 약속된 대면 모임을 더욱 귀히 여기며 사모하게 될 것이다. (4) 위톡 구성원들끼리의 대화방을 적절히 활용하면 지난주일 설교의 요지를 올려 주어서 기억을 되살려 주거나 각자가 결심한 실천 사항을 격려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III. 나가는 글이상으로 연구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교회 활성화를 위한 청중의 설교 참여 방안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코로나 19로 공동체의 기능을 상실할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는 코로나 19가 종식되지 않더라도 위드 코로나의 방법으로 소그룹 모임이 재개될 것을 기대하면서 대비할 필요성이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연구자는 설교 비평을 제안하였다. 설교 비평이 필요한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한국교회 강단의 설교가 정당성과 적실성이 확보되지 않은 채 선포되는 경우가 있고 이에 대한 보완책이 필요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설교 비평은 자칫하면 설교 비판이라는 부정적 결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이런 우려는 실제로 설교 비평의 포문을 연 정용섭의 두 비평서에서도 드러났음을 류응렬과 정인교의 분석과 평가를 통해 확인하였다. 그러므로 설교 비평을 시행하기 전에는 먼저 객관적이고 바람직한 비평의 기준을 마련하고 비평자의 자질도 잘 준 비해야 한다. 또한, 설교 비평을 시행할 때에는 설교 발전을 위한 설교자 비평 그룹 62) 주종훈, “디지털 예배의 목회적 신학적 고찰과 실천 방향”, 한국복음주의실천신학회. 「복음과실천신학」 60 (2021): 74. (https://doi.org/10.25309/kept.2021.8.15.045) 과 설교를 찬미하고 말씀을 드높이기 위한 일반 청중 그룹으로 구분하여 시행하는 것 이 좋다. 설교자 비평 그룹은 먼저 비평을 위한 충분한 준비 공부를 한 후에 시작하되 서로 예의를 갖추어 격려와 감사를 한 후에 발전을 위한 제언을 하는 “설교 공감 모임”으로 진행함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일반 청중의 경우에는 먼저 성숙한 리더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비평 그룹의 명칭도 비평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고 허심탄회하게 서로 대화하는 느낌을 주는 이름 “들은 말씀 드높이기: 위톡”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대화의 내용은 “지, 정, 의”의 요소로 구분하여 설교에서 무엇을 깨달았는지, 설교에서 어떤 감동을 받았는지, 그리고 설교를 통해 어떤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를 나눔으로 신자 개인의 경건과 신앙 공동체의 성숙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오늘날은 메타버스 시대이며 현대인들은 포노 사피엔스임을 감안(勘案)하면 현장에 직접 모이는 방식과 더불어 비대면으로 만나는 방식도 적절히 활용하여 운영할 수도 있다. 그럴 때 대면 모임으로만 미처 생각하지 못한 여러 가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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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중 03-18 16:31

    "주님 때문에 참으로 행복합니다"

    2009년 5월 가정의 달 옥인교회 말씀축제 시간에 저는 처음 예배의 자리에 나왔습니다. 가족으로는 사랑하는 아내와 사랑하는 아들, 사랑하는 딸 네 식구가 불광동에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삶이 아니라, 무엇에게 홀린 듯한 부끄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좋았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친구가 있어 좋았고, 세상적으로도 잘 나가면서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사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처럼 즐겁고 행복했던 저에게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도박이라는 검은 그림자가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평상시에 술과 담배는 했었지만, 도박장 근처에는 아예 가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친구로부터 어느 순간에 유혹을 받아 카지노에 첫 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재미도 있었고, 무엇보다 많은 돈을 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서히 도박에 중독되어 사업도 직원들에게 맡기고 악의 구렁텅이로 한없이 빠져 들어갔습니다. 가정불화로 인해 사업장에 그 많던 물건들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친척들에게, 피해를 주었습니다. 제가 도박을 하니 가까운 친구들도 점점 제 곁을 떠나갔습니다. 저는 경마와 경륜, 경정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서 할 수 있는 도박은 다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아내와의 불화는 끊이지 않았고 결국은 제가 집을 뛰쳐나갔습니다. 집을 나와 혼자 살면서도 도박을 계속 하였고, 시간이 흐르면서 건강에도 이상이 왔습니다. 당뇨가 생기고 간이 나빠지면서 몸은 서서히 망가져가고 있었습니다. 악의 구렁텅이에서 혼자 힘으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한탄하고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나, 더 이상 고통의 삶을 살지 말고 죽자는 생각으로 죽을 자리를 찾을 때 전혀 몸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죽을 때 죽더라도 아내와 자식들은 한번 보고 죽자는 생각에 오랜만에 집으로 가보니, 식구들이 이사를 가고 없더군요. 야속한 남편, 부족한 아버지였기에 나도 모르게 이사까지 했나보다 생각하고, 다음날 저녁에 아내의 가게로 가보니 아내가 저를 보고 깜짝 놀라더군요. 아내는 이 못난 남편을 반갑게 맞이하여 줄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푸대접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들 안부를 물으며 집은 어디로 이사했는지 물어보니 집은 저로 인하여 산동네로 이사를 했다더군요. 아내와 함께 산동네 집으로 가던 길이 얼마나 힘이 들던지 다섯 번이나 쉬고 간신히 좁은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때 저는 망가진 몸으로 걷는 것도 힘이 들었습니다. 건강이 악화되어 불면증에 시달렸으나 집에 돌아오니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죽으려고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온 제가 염치없이 먹고 자며 지내던 그 어느 날, 딸이 “아빠 나 소원이니 한번만 우리 같이 교회 가보자”고 하더군요. 사랑하는 딸의 이야기를 듣고 ‘그래 한번 가보자’하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딸은 모두 옥인교회에 다녔습니다. 주일 아침마다 교회에 가기 바쁜 가족들을 보며 한편으로는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지만, 도대체 교회가 어떤 곳이기에 주일 내내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이 한 동안 궁금하기도 하였습니다. 처음으로 찾아간 교회에서 찬양과 말씀을 듣던 중에, 처음인데도 제 눈에는 마음에 복받쳐 오르는 눈물이 한없이 차올랐습니다. 또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한없이 울었습니다. 아내가 집에 오면서 말하더군요. 우리 식구가 나를 위하여 3년째 새벽기도를 한다고 했습니다. 그 때 저는 가족들의 마음을 생각하여 그래 나도 새벽기도를 다니자 하고 딸과 아내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다음날 새벽기도 시간에 받은 마음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의 예배만으로 끝낼 수는 없었습니다. 제 마음에는 사랑이 넘치는 은혜의 기쁨이 넘쳐났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교회 예배의 모든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젊었을 때는 운동만 하던 제가, 책과는 거리가 멀어 책 한번 읽어본 기억도 없었는데, 글자만 봐도 졸린 저에게 아내가 성경을 읽어보라고 권했습니다. 못이기는 척하며 성경의 첫 장인 창세기를 폈는데 창세기 1장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첫 구절부터 감동을 받아 그날부터 성경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1독을 거침없이 끝냈습니다. 1독을 끝낸 기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삶의 의미가 없었던 저에게 성경은 큰 의미를 안겨주었고, 담임목사님의 설교 말씀은 시들어가는 저에게 생명수와 같았습니다. 모든 것이 성경과 말씀에 있었고, 그 이후로 저는 성경 말씀으로 살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습니다. 내 인생의 관리자로 예수님을 붙잡았고, 기도로 그리스도를 저의 삶 가운데로 모셨으며,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술과 담배를 끊었습니다. 그렇게 2년이 지나자 건강도 회복되었습니다. 다혈질이며 욱하는 성격도, 나만 알던 이기적인 성격도 변해갔습니다. 한 동안 저러다 말겠지 하던 가족과 친구들이 완전히 변한 제 삶을 보고 “하나님이 계신가보다!” 하더군요. 부모님과 형제들, 아내와 자식들도 이제는 저를 믿어주고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가족 간에도 대화로 벽을 허물며, 따뜻한 말로 서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느 때보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제가 주님 안에서 변하니 모든 것이 행복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만나서 새로운 삶을 얻은 것이기에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저는 매일 주님의 이름으로 가족들에게 축복기도와 포옹을 해주고 있습니다. 부족한 남편, 못난 아버지였지만 이제는 아내의 좋은 남편, 당당한 아버지로 바로 서기를 원합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제 마음에 남아 있는 죄의 쓴 뿌리를 뽑아내기 위하여 눈물로 울부짖으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면 모두가 고통 속에 있다는 것을 알기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기도를 간절하게 드립니다. 앞으로도 삶 속에서 더욱 예수님을 전하며 살아가는 인생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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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투구된 부총회장 선거, 성총회 해법은....
    지난 8월 9일 서대전노회가 한기승 목사를 고발했다. 이는 전남제일노회가 먼저 오정호 목사를 고발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맞대응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인해 이번 부총회장 선거는 후보간, 노회간 다툼이 됐다. 이를 바라보는 총대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이제 공은 선관위로 넘어갔다. 선관위가 두 후보 중 한 명을 낙마시키든지, 혹은 두 후보 다 낙마시키든지 또는 대승적 차원에서 두 후보를 다 경선에 올려 총대들이 결정하게 하든지 세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한다. 노회간 고발 내용을 살펴보면 분명 경중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총회 선거법에는 경중에 따른 처벌이나 제제가 세세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다. 오직 후보 등록이냐, 탈락이냐 둘 중 하나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경한 규정 위반을 한 후보가 중하게 규정 위반을 한 후보와 같은 처벌을 받으면 그 후폭풍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전남제일노회는 오 목사를 선관위에 고발하면 낙마되어 한 목사가 쉽게 당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나 현실은 그렇게 녹녹치 않다. 전남제일노회는 같은 사안을 한데 묶지 않고 나열해 22건으로 만들어 고발하고 또 허위사실까지 적시해 이로인해 자충수에 빠지고 말았다. 이것은 오 목사를 고발 안하느니만 못한 일을 한 것이다. 반면 한 목사의 학력위조는 세상법정에 가면 처벌될 수 있다. 한 목사의 학력위조에 대해 왈가왈부가 많은데 세상이 이 문제를 얼마나 엄격히 다루는지 알아야한다. 혹시 한 목사가 부총회장에 당선된다해도 직무정지 되고 세상법의 엄중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그 이후 총회는 이 사태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서울신문은 지난 8월 9일자 기사에서 허위학력 문제를 다뤘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20809500062) ‘학벌이 뭐길래’ 최경식 남원시장 허위학력으로 낙마 위기 최경식 남원시장이 허위 학력 혐의로 낙마 위기에 처하면서 재선거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전북경찰청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최경식 남원시장을 송치했다고 9일 밝혔다. 최 시장은 선거 출마 당시 학력을 ‘한양대 졸업’이라고 허위 기재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실제 도내 한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것으로 파악됐다. 또 최 시장은 선거공보물에 '원광대 소방학 박사'를 '원광대 소방행정학 박사'로 기재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경찰은 지난 2일 최 시장을 불러 5시간에 걸친 조사를 진행했다. 최 시장은 당시 경찰 조사를 마치고 “고의성은 없었다. 경찰 조사에서 상세히 소명했고 수사기관이 현명한 판단을 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메일을 압수수색 하는 등 확보한 증거물과 참고인 진술 등을 토대로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고 최근 사건을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전주 설정욱 기자 이처럼 세상의 법과 기준이 결코 만만하거나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결자해지”(結者解之)란 말이 있다. 먼저 고발한 측이 앞서서 서로간의 고발건을 취하하도록 하는 것이 살 길이라고 본다. 선관위도 이 사태를 잘 수습하는 묘안을 찾아야한다. 솔로몬의 재판같은 지혜가 필요하다. 두 후보 모두 총회를 위해 일해보겠다고 나섰으니 적어도 총대들의 판단과 선택을 받을 기회를 주어야하지 않을까? 그래서 “공멸”(共滅)이 아닌 “공생”(共生)의 길을 찾아야한다. 후보와 노회간 고소 고발로 인해 각 후보의 공약은 관심밖이 되버렸다. 이제 소모전은 그치고 후보의 자질과 정책, 삶의 이력으로 냉정히 후보를 검증하는 단계로 나아가야한다. 107회 총회가 며칠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주 기독신문 1면 하단에 총회 소집 공고가 났다. 그런데 윗면에는 오정호, 한기승 목사 모두 후보 보류 됐다는 기사가 실렸다. 한기승 목사는 이미 지난 7월 22일 있었던 선관위 전체 회의에서 후보 등록되었으나 고소 건으로 결국 십여일만에 후보 보류로 강등(?)된 것이다. 남을 때리면 내 주먹도 아프게 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 아닌가? 이러한 총회 현실이 웃프다! 가수 김민기의 “작은 연못” 가사 중 일부가 생각난다.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 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위에 떠오르고 그놈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 속에선 아무 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 것도 살지 않죠 더 늦기 전에 두 입후보자의 상생의 길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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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9일 서대전노회가 한기승 목사를 고발했다. 이는 전남제일노회가 먼저 오정호 목사를 고발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맞대응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인해 이번 부총회장 선거는 후보간, 노회간 다툼이 됐다. 이를 바라보는 총대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이제 공은 선관위로 넘어갔다. 선관위가 두 후보 중 한 명을 낙마시키든지, 혹은 두 후보 다 낙마시키든지 또는 대승적 차원에서 두 후보를 다 경선에 올려 총대들이 결정하게 하든지 세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한다. 노회간 고발 내용을 살펴보면 분명 경중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총회 선거법에는 경중에 따른 처벌이나 제제가 세세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다. 오직 후보 등록이냐, 탈락이냐 둘 중 하나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경한 규정 위반을 한 후보가 중하게 규정 위반을 한 후보와 같은 처벌을 받으면 그 후폭풍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전남제일노회는 오 목사를 선관위에 고발하면 낙마되어 한 목사가 쉽게 당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나 현실은 그렇게 녹녹치 않다. 전남제일노회는 같은 사안을 한데 묶지 않고 나열해 22건으로 만들어 고발하고 또 허위사실까지 적시해 이로인해 자충수에 빠지고 말았다. 이것은 오 목사를 고발 안하느니만 못한 일을 한 것이다. 반면 한 목사의 학력위조는 세상법정에 가면 처벌될 수 있다. 한 목사의 학력위조에 대해 왈가왈부가 많은데 세상이 이 문제를 얼마나 엄격히 다루는지 알아야한다. 혹시 한 목사가 부총회장에 당선된다해도 직무정지 되고 세상법의 엄중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그 이후 총회는 이 사태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서울신문은 지난 8월 9일자 기사에서 허위학력 문제를 다뤘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20809500062) ‘학벌이 뭐길래’ 최경식 남원시장 허위학력으로 낙마 위기 최경식 남원시장이 허위 학력 혐의로 낙마 위기에 처하면서 재선거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전북경찰청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최경식 남원시장을 송치했다고 9일 밝혔다. 최 시장은 선거 출마 당시 학력을 ‘한양대 졸업’이라고 허위 기재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실제 도내 한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것으로 파악됐다. 또 최 시장은 선거공보물에 '원광대 소방학 박사'를 '원광대 소방행정학 박사'로 기재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경찰은 지난 2일 최 시장을 불러 5시간에 걸친 조사를 진행했다. 최 시장은 당시 경찰 조사를 마치고 “고의성은 없었다. 경찰 조사에서 상세히 소명했고 수사기관이 현명한 판단을 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메일을 압수수색 하는 등 확보한 증거물과 참고인 진술 등을 토대로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고 최근 사건을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전주 설정욱 기자 이처럼 세상의 법과 기준이 결코 만만하거나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결자해지”(結者解之)란 말이 있다. 먼저 고발한 측이 앞서서 서로간의 고발건을 취하하도록 하는 것이 살 길이라고 본다. 선관위도 이 사태를 잘 수습하는 묘안을 찾아야한다. 솔로몬의 재판같은 지혜가 필요하다. 두 후보 모두 총회를 위해 일해보겠다고 나섰으니 적어도 총대들의 판단과 선택을 받을 기회를 주어야하지 않을까? 그래서 “공멸”(共滅)이 아닌 “공생”(共生)의 길을 찾아야한다. 후보와 노회간 고소 고발로 인해 각 후보의 공약은 관심밖이 되버렸다. 이제 소모전은 그치고 후보의 자질과 정책, 삶의 이력으로 냉정히 후보를 검증하는 단계로 나아가야한다. 107회 총회가 며칠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주 기독신문 1면 하단에 총회 소집 공고가 났다. 그런데 윗면에는 오정호, 한기승 목사 모두 후보 보류 됐다는 기사가 실렸다. 한기승 목사는 이미 지난 7월 22일 있었던 선관위 전체 회의에서 후보 등록되었으나 고소 건으로 결국 십여일만에 후보 보류로 강등(?)된 것이다. 남을 때리면 내 주먹도 아프게 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 아닌가? 이러한 총회 현실이 웃프다! 가수 김민기의 “작은 연못” 가사 중 일부가 생각난다.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 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위에 떠오르고 그놈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 속에선 아무 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 것도 살지 않죠 더 늦기 전에 두 입후보자의 상생의 길을 찾자!

    상대방에게 예의를 지키는 것이 사람의 도리다

    개혁타임즈(김창연 목사)가 서대전노회 임시노회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썼다. 이날 열린 서대전노회 임시노회는 앞서 밝혔듯이 법을 지키려는 모습이 매우 강하게 느껴졌지만 "옥의 티"라면 상대측 목사 부총회장 예비 후보인 전남제일노회 한기승 목사에 대한 비방 유인물이 특정 인터넷 언론사의 기사 형태로 거의 모든 노회원들에게 배포되었고, 한 노회원은 인터넷이나 SNS에서 이 유인물을 잘 숙지해서 맞대응하자고 발언하기도 한 점이다. 이날 서대전노회에서 참석 회원들에게 자료로 준 것은 4개 신문사 기사였다. 기독교종합신문, 합동투데이, 빛과소금뉴스, 합동타임즈이다. 이들 신문이 한기승 목사에 대해 다룬 기사를 “비방 유인물”이라고 폄하하고 이러한 기사를 노회원들에게 배부한 것은 “옥의 티”라고 지적했다. 어떤 신문이 어떻게 한 목사를 비방했는가? 한 목사의 ‘학력위조’와 ‘교회 간 거리 위반’은 팩트이다. 그래서 한 목사도 광주중앙교회 홈페이지에서 학력을 변경했으며(이또한 잘못 기재했다), 교회 주소도 변경했다. 그러나 이는 ‘눈가리고 아옹’이다. 어차피 허위학력으로 서류를 제출했기에 이제 아무리 홈페이지를 변경해도 소용없다. 제출서류가 판단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또한 홈페이지에서 교회 주소를 변경했는데 이미 매각한 교회 주소이니 이 또한 허위이다. 참으로 이러한 노력이 서글프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을 기사로 쓴 신문사들을 가리켜 “비방”이라고 했으니 이것은 동종 업계의 신문사가 지켜야할 도를 넘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신문에 대한 반박 기사를 써서 서로 검증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동안 이에 관한 기사를 개혁타임즈가 쓴 적이 없으니 이제라도 반박 기사를 써 보기를 권한다. 또한 개혁타임즈는 이렇게 썼다. 특히 본 노회의 목사 부총회장 예비 후보 오정호 목사도 공개적으로 확전보다는 중재를 원하고 있는 가운데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런 비방 유인물을 앞세워 상대측을 비방하고 자극하는 모습은 분란만 키울 뿐 사태 해결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개혁타임즈는 유인물에 기사 인용된 4개의 신문사를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라고 했다. 서대전노회는 노회원들에게 실상을 알리기 위해 유인물을 만들 때 본인에게 전화를 해서 기사 사용에 대한 허락을 받았고 유인물에 기사의 출처 신문사를 밝혔다. 아마 다른 신문사에게도 그런 절차를 밟았을 것이다. 합동타임즈는 신생 언론사이지만 설마 단톡에 활발하게 기사를 올리고 있는 기독교종합신문, 합동투데이, 빛과소금뉴스를 모르는가? 언론인으로서 다른 언론사의 기사를 보고 비교 검토하는 것은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본인도 수시로 개혁타임즈 기사를 보며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으로 삼는다. 개혁타임즈는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언론사들을 공개적으로 ‘듣보잡’ 언론사로 만들었다. 그리고 정당한 기사를 ‘비방’이라고 했다. 상대 언론사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언론사의 수준은 기자가 쓴 기사이다. 비방만 하지 말고 기사로 실력을 보이길 바란다. 개혁타임즈의 대응 기사를 기다려 보겠다. 사족으로, 이번 기사와 지난번 서대전노회 임시회 무산 기사는 지금까지의 개혁타임즈 스타일과 다르게 보이기에 대필인가(?) 생각들 정도로 많이 놀랐음을 밝힌다. 이 정도로 본인은 개혁타임즈의 열혈 구독자이다. 또 하나의 사족으로, 오정호 목사가 “격앙된 표정으로 작심신상발언” 했다고 기사를 썼던데 같이 현장에서 취재했던 본인은 1도 그런 생각 들지 않으니 무엇이 팩트인지 현장에 참석하지 않은 분들은 궁금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먼저 고발당해 어쩔 수 없이 고소하고, 이제 노회가 고발해야하는 현 상황에 대해 참담한 심정으로 발언하는 오 목사의 녹취를 단톡에 올릴 수도 있다.

    오정호 목사, "허위사실 고발로 명예를 실추시키고 교회 전도의 문을 막았다"

    서대전노회 140회 1차 임시노회가 8월 5일 오전 11시 서대전노회 회관 2층 예배실에서 모여 제107회 총회 부총회장 예비후보 오정호 목사의 선거와 관련한 고발 대응에 관하여 노회 임원회에 위임키로 가결했다. 오정호 목사는 신상발언을 통해 "그동안 금권선거를 멀리하는 선거운동을 해왔다. 그런데 7월 18일 전남제일노회가 저를 22건으로 고발했다. 그래서 7월 27일 심의분과에 출석해 성실히 소명했다. 저는 그동안 목회자로 비루하게 살지 않았다. 아들 목사에게 '목사다운 목사'라는 평을 들으며 살고자 했다. 그런데 허위사실 고발을 통해 제 명예를 실추시키고 교회에 부덕을 끼치고 전도의문을 막았다. 그럼에도 고소 고발은 하지 않으려 의견서를 제출했는데, 선관위에서 고소장을 제출하라는 요청에 따라 고소장을 제출하게 되었다. 저는 '총회가 필요한 목사'가 아니라 '총회가 찾는 목사'가 되기를 바란다. 저로 인해 임시노회로 모여주신 모든 회원들에게 송구한 마음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한 후 노회원들의 현명한 판단을 부탁하고 본인과 관련된 건이라 임시노회 자리를 떠났다. 결국 먼저 전남제일노회가 오정호 목사에 대해 사전불법선거 운동 건으로 고발했기에 이에 대한 대응으로 서대전노회에서도 어쩔 수 없이 노회적으로 대응키로 가결한 것이다. 두 후보간 정책 선거를 기대했는데 결국 노회간 고소 고발로 비화된 것에 대해 총대들은 안타까워하며 그런 가운데서 시시비비가 잘 가려져 공정한 조사와 판결이 이뤄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라도 가능하다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덕이 안되는 고발건을 서로 취하하고 정책 대결로 나가기를 소망하는 바램도 있다. 회의 전에 있었던 예배에서 노회장 강지철 목사는 성총회가 되기를 위해 시찰별로 연속 금식기도할 것을 제안하며 설교 후 총회를 위해 간절히 합심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예배는 서기 성옥석 목사의 인도로 부노회장 유영만 장로가 기도 후 회의록서기 도남철 목사가 역대하 20장 3절부터 4절까지 봉독한 후 노회장 강지철 목사가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란 제목으로 "여호사밧 왕은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전쟁에서 승리했다. 우리 노회도 선거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지만 시찰별로 하루 1끼씩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설교하고 합심기도한 후 부노회장 양현식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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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헌식 목사, 기하성 총회장 취임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광화문) 제70차 총회장 정경철 목사 이임과 제71차 총회장 강헌식 목사 취임식이 6월 5일 오후 5시 평택순복음교회(강헌식 목사 시무) 대성전에서 있었다. 1부 예배는 총회 총무 기용성 목사의 인도로 총회 서기 백용기 목사의 기도 후 총회 회계 백 충 목사가 사도행전 1장 6절 부터 11절 까지 봉독한 후 평택순복음교회 찬양대가 찬양했다. 정경철 목사(제70차 총회장)가 '주님의 약속과 성취'란 제목으로 설교 후 총회 재무 김상찬 목사가 헌금기도하고 테너 하만택 집사(유럽 최고의 오페라 가수)가 헌금송했다. 2부 이취임식은 기용성 목사의 사회로 교단기 인수인계 후 정경철 목사가 "저는 부족했는데 강 목사님이 총회장이 되셔서 이제 덕분에 저도 은혜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해 감사드린다. 우리 교단은 성령 교단이다. 원래의 명성을 회복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이임사하고 강헌식 목사가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는 겸손히 섬기는 총회장이 되겠다"고 취임사 했다. 취임 총회장 강헌식 목사가 이임 총회장 정경철 목사에게 공로패와 증서를 전달하고 이병옥 목사가 취임 총회장을 소개 후 강헌식 목사에게 취임패를 증정하고 각 기관이 꽃다발을 증정했다. 3부 축하 권면 격려는 총회 전 부총회장 송종철 목사의 사회로 하만택 집사가 축하송을 하고 갈릴리형제회 회장 김삼환 목사가 축하패를 전달하고(대신 전달함) 안산제일교회 원로 고 훈 목사가 축시를 낭송했다. 총회 증경총회장 함동근 목사가 "강헌식 목사님은 탱크 목사님이다. 탱크는 길을 가리지 않고 같은 속도로 간다. 탱크는 지치지 않고 주저하지 않는다. 강 목사님은 성령이 원동력 되셔서 탱크 목사님이 되셨다. 그 동안 총회 일을 위해 많이 힘쓰셨다. 성령께서 언제나 원동력이 되셔서 앞으로도 강 목사님이 잘 달려가실 것이다. 더 힘을 얻으시고 성령의 도움으로 큰 일 이루시기 바란다"고 격려사 후 강 목사가 금배지를 전달했다. 총회 정책위원장 백종선 목사가 "총회장의 일은 어려운 일이지만 강 목사님을 하나님이 세우셨다. 바울이 하나님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사도가 됐다는 것을 늘 의식하며 살았듯이 주님만 바라보며 여호수아처럼 강하고 담대하게 교단 발전의 비전을 이루시기 바란다. 평택순복음교회 교인들은 강 목사님이 총회장의 일을 잘 감당하도록 기도로 밀어드리고 영육의 강건을 위해 기도하며 마음과 물질로 헌신해 주시기 바란다"고 권면하고, 세계성령운동중앙협의회 이사장 안준배 목사가 "강 목사님은 변함이 없으시다. 과거 故 한경직 목사님을 도와 수련회를 진행할 때도 시종일관하셨고 목회자로서 부임한 교회에 늘 시종일관하셨다. 강 목사님은 늘 하나님의 부르심, 성령의 감동에 늘 순종하신다. 강 목사님은 1990년 4월에 평택순복음교회에 부임해 2달간 간절히 기도하시며 목회를 시작하셨다. 목사님과 함께 성령 운동을 하면서 미국에서 성회를 하게 됐는데 폭설이 내려 공항에서 비행기가 뜨지 못했다. 8 시간 지나 비행기가 이륙했는데 저는 겁이 나 못가겠다고 했는데 강 목사님은 약속했기에 가자고 해서 간 적이 있다. 이처럼 강 목사님은 약속을 지키는 분이시다. 강 목사님은 교단 총무로서 교단 일을 하며 예배 마지막 곡으로 신학교 때 은혜 받은 '부름 받아 나선 이 몸을' 늘 부르셨다. 강 목사님은 목회에 성공하셨지만 변함이 없으시기에 성령운동의 기수로 초지일관, 시종일관 하실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고 권면했다. 예장통합 증경총회장/명성교회 원로 김삼환 목사가 "주의 일은 주님이 하신다. 준비된 종으로 사명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강 목사님은 그릇이 깨끗하며 헌신된 정금같은 종이다. 강 목사님으로 인해 교단과 한국교회가 큰 발전을 이룰 것이다. 지금 이 세상은 훌륭한 하나님의 종들을 기다리고 있다. 강 목사님이 그 역활을 하시리라 믿는다"고 영상으로 격려 및 축사하고,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 이 철 목사가 "총회장 되신 강 목사님을 축하드린다. 교단장은 한국교회 회복에 대해 무거운 짐을 지게 된다. 한국교회가 어려움 당하는 이유에 대해 조사하면 첫째는 한국교회에 갈망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과거의 뜨거운 기도의 열정이 사라졌다. 두번째는 희생이 없다는 것이다. 교회가 이기적이 됐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이것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한국교회의 부흥은 어렵다. 강 목사님은 이 두가지 문제를 해결할 적임자이기에 세움받으셨다고 생각한다. 열정과 희생을 통해 이루실 것이다. 귀한 사명 감당하는 강 목사님과 평택순복음교회가 되시기를 바란다. 성령 운동으로 시작한 감리교와 앞으로 함께 손잡고 한국교회를 회복하는 일에 협력하기를 바란다"고 축사했다. 경동교회 원로/국민문화재단이사장 박종화 목사가 "아라비아의 한 동네에 아들 셋이 있었다. 아버지가 유산으로 양 17마리를 남겼다. 이들의 옆 친구는 가난해 양 한마리 밖에 없었다. 큰 아들은 양의 절반을 상속하고, 둘째는 3/1을, 셋째는 9/1을 상속하라고 했다. 이때 옆집의 양을 한마리 포함해 잘 나누게 됐다는 이야기다. 이웃 친구의 양 한 마리가 없으면 양 17마리를 나눌 방법이 없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한 마리의 은혜로 한 마리는 예수님이시다. 강 목사님도 예수님처럼 한 마리 양이 되시기 바란다. 오늘은 오순절 주일인데 강 목사님이 성령의 종이 되시기 바란다"고 축사하고, 오세아니아기하성 총회장 홍요셉 목사가 "강 목사님과 오래 교제해 왔다. 목사님은 VIP(Vision, Inspiration, Passion) 탱크이다. 여호수아와 같은 대장군이시다. 힘과 열정으로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축복하셔서 어디에서도 이기게 하셨듯이 강 목사님을 통해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을 믿는다. 또한 선구자, 선각자의 사명을 잘 감당하실 줄로 믿는다"고 축사했다. 세계성령운동중앙협의회 대표회장 장기철 목사가 "강 목사님은 종의 자세로 왕의 권세를 사용하실 분이시다. 섬기는 종이 되실 것이다. 강 목사님께서 세계성령운동중앙협의회 21대 대표회장을 역임하셨다. 그때 난감한 상황에서도 원만히 문제를 해결하셨다. 성령의 일하게 하심을 따라 단체를 이끌어 가셨다. 그래서 평화롭게 감당하셨다. 총회장으로 큰 일 하실 것이라 기대하며 축하드린다"고 축사하고, 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임다윗 목사가 "강 목사님은 부드럽고 온유하시나 포스가 있으시다. 보통 분이 아니시다.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으시다. 이 모든 것은 성령의 권능이시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성령의 권능으로 탱크처럼 쓰임 받으시기 바란다. 사람을 얻는 자 흥하고, 사람을 잃는 자는 무너진다. 강 목사님을 통해 교단이 크게 흥왕하시기를 바란다"고 축사하고, 평택시기독교총연합회 총회장 신용현 목사가 "고전15:10에서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다. 하나님의 섭리와 허락으로 총회장이 되셨기에 축하드린다. 강 목사님과 평택에서 30년을 함께 지냈다. 강 목사님은 긍정적이며 탁월하신 분이시다. 이처럼 좋은 지도자를 총회장으로 세운 교단에도 축하드린다"고 축사 후 평택시 정장선 시장이 "평택시는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와 바이든이 평택 미군 기지를 방문했다. 이러한 때 강 목사님이 총회장이 되신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모든 평택 시민과 함께 총회장 되신 강 목사님을 축하드린다. 앞으로 성공하는 총회장 되시기를 바라며 많이 협력해 드리겠다"고 축사했다. 다음은 영상 축사이다. 전 한기총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가 "취임을 축하드린다. 강 목사님은 변함이 없으신 분으로 지금은 애국운동에 앞장서고 계신다. 강 목사님과 교단이 함께 '예수한국 복음통일'에 큰 기여를 하실 것이라고 기대한다. 평택순복음교회도 더 크게 성장해 큰 역할 하기를 바란다"고 축사하고, 세계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 김상복 목사가 "총회장 되심 축하드린다. 교단 총무로 그동안 많은 수고를 하셨다. 평택 성시화, 경기도 성시화 운동에도 많은 일 하셨다. 하나님께서 기회 주셔서 총회장이 되셨는데 잘 준비된 총회장이시니 하나님의 능력과 도움으로 교단이 크게 발전될 줄 믿고 축하드린다"고 축사하고, 기하성여의도 대표총회장 이영훈 목사가 "코로나 여파로 한국교회가 어려웠다. 이제 코로나가 끝나는 시점에 재정비하고 새로운 역사를 이끄실 강 목사님을 축하드린다. 목회에 큰 부흥의 역사를 이루신 목사님을 통해 승리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축사했다. 기독교한국침례회 총회장 고명진 목사가 "한 사람의 지도력이 한 시대를 좌우한다. 강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교단에 선한 영향력이 있기를 바란다"고 축사하고, 기하성 신수동 총회장 우시홍 목사가 "총회장 되심을 축하드린다. 강 목사님은 탁월한 리더십으로 교회를 성장 시키셨고, 부흥사의 큰 일을 감당하셨다. 총회장으로 교단의 위상을 세우실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축사하고, 미하나님의성회 한국 총회장 김웅철 목사가 "강 목사님의 총회장 되심을 축하드린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귀하게 쓰시고자 큰 일꾼으로 세우셨다. 모든 임원, 회원들이 한 마음 되어 교단이 든든히 세워지기 바란다. 또한 큰 일 하시는 담임목사님과 협력해 큰 일 감당하는 평택순복음교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축사했다. 미하나님의성회 한미 총회장 이병진 목사가 "강 목사님은 선한 목회자이시며 탁월한 지도자로서 세계선교에 많은 수고를 하시고 한국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위해 일하셨다. 강 목사님을 통해 교단이 발전하고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가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축사하고, 예수마을교회 담임 장학일 목사가 "강 목사님은 끈기와 열정이 있으신 분이시다. 교단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총회장이 되셨다. 앞으로 잘 하실 것이기에 축하받아 마땅하시다. 교단을 위해 큰 일을 하셔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많은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시기 바란다"고 축사하고, 대전중문교회 담임 장경동 목사가 "어려운 코로나 시기에 주님의 능력으로 승리하시기 바란다. 마지막 때이기에 성령의 충만으로 기도할 때 문제가 해결된다. 강 목사님의 리더십으로 교회와 교단에 크게 쓰임 받으시기 바란다"고 축사했다. 평택순복음교회 장로회장 이창근 장로가 광고한 후 수원순복음교회 원로 이재창 목사의 축도로 은혜로운 총회장 이취임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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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미요양원, 개원예배 드려

    동작구에서 최고의 시설로 인정받은 서울신학교 직영 은미요양원 개원예배가 7월 15일 오전 11시 서울신학교 4층에서 있었다. 예배는 이사장 김대근 목사의 인도로 서울신학부이사장 이종득 장로가 기도 후 서울신학부학장 손은광 목사가 요한복음 2장 11절을 봉독한 후 서울신학교 학생 채선영 4명이 특송했다. 서울지역노회협의회장 최효식 목사가 '생활 속의 복을 받자'란 제목으로 은미요양원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의 실제적인 생활 속의 영광이다. 가정, 직장, 사업 등에서 드러나야한다. 은미요양원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드러나는 현장이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우리와 늘 함께 계셔서 만나고 체험하게 된다. 멀리 계신 추상적인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생활 속에 나타나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변함없이 더 좋아지는 요양원이 되기를 바랬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됐다. 과학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기에 기적이 벌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감춰진 능력이 드러난 것이다. 은미요양원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남으로 깜작 놀랄만한 일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변화를 만드시는 분이다. 변질은 쓸데가 없다. 은미요양원이 변질이 아닌 변화를 만들기 바라며 변화에 촛점을 두는 요양원이 되기를 바란다. 가룟 유다는 변질됐다. 반면 베드로는 변화됐다" 특별히 입소하는 어르신과 가정의 아픔을 공감하며 가족처럼 잘 대해야한다고 말했다. "또한 십자가의 정신은 상대방의 아픔을 느끼는 것으로 이것이 있을 때 변질되지 않는다. 아픔을 느끼지 않으면 사람은 잔인해진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이 그러하다. 요양원에 입소한 어르신과 가족의 아픔에 공감하며 일하기 바란다. 예수님은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체험하시기 우리를 낫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 충성, 순종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은미요양원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영광이 나타날 때 칭찬이 따르게 된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 은미요양원도 갈수록 칭찬 받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은혜로 은미요양원이 잘 되기를 바란다. 하인들이 순종해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역사를 이뤘다. 비행기는 활주로에서 시속 366km가 되야 이륙한다. 하나님께 부족함 없이 완전히 순종해서 하나님의 충만한 영광을 드러내는 은미요양원이 되기를 바란다" 서울신학이사 최윤길 목사가 "은미요양원이 새롭게 잘 리모델링 되어 축하드린다. 제가 아는 목사님은 몸이 불편해져서 시설은 부족해도 기도하는 요양원으로 들어가셨고 그곳에서 천국으로 가셨다. 은미요양원도 기도하는 요양원이 되기를 바란다"고 축사하고, 신도교회 김정기 장로가 "좋은 시설로 은미요양원이 개원하게 되어 축하드린다. 준비하시느라 많은 고생을 하셨는데 앞으로 요양원 사역을 할 때 많은 수고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곳에 오는 어르신들은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변화가 있기를 바라고, 좋은 소문이 나는 요양원이 되기를 바란다"고 격려사한 후 남양주요양원 김영은 원장이 "서울신학교를 다닐 때 이곳에 요양원을 하라고 추천했었다. 사모님이 주방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고 더욱 추천했다. 요양원에서 수고하는 선생님들이 중요하다. 선생님들은 후에 내가 늙으면 가고 싶은 요양원을 만들어야한다. 저는 13년간 요양원을 운영하면서 인생의 마지막으로 요양원에 오는 분들을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며 어르신들을 돌봐야한다. 저는 무료로라도 봉사하고 싶은데 요양원을 해서 돈을 받고 어르신들을 봉사하니 요양원 일을 하는 것이 감사하다. 앞으로 발전하는 은미요양원 되시기 바란다"고 격려사했다. 서울신학 학장 은미요양원 대표 및 시설장 김춘환 목사가 "이사회에서 신학교 4,5층 건물을 활용하기 위해 요양원을 하기로 했다. 또한 요양원 어르신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고 신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보조하기 위해서 이 요양원을 한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허가가 일찍 나오는 등 공무원들은 이곳이 동작구에서 최고의 시설이라고 말했다. 이곳이 주님이 역사하시는 곳이 되어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요양원을 광고한지 10일 밖에 되지 않았는데 10명이 입소하기로 했다. 놀라운 일이다. 과거 제 노모를 모시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어 동창이 하는 요양원으로 모셔 그곳에서 세상을 떠나셨다. 그 사랑의 빚을 갚는 마음으로 요양원을 하고자한다. 내일부터 개원하게 된다. 불신자들이 와서 예수님 믿고 천국 가는 일이 계속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란다. 목사님들이 이곳을 많이 소개해주기를 바란다"고 인사및 광고한 후 남서울노회장 김영현 목사의 축도로 은혜롭고 감격스러운 은미요양원 개원예배를 마쳤다.

    중서울노회남전도회연합회, 순회헌신예배 및 월례회

    중서울노회남전도회연합회 제42회기 2차 순회헌신예배 및 월례회가 7월 9일 오후 5시 청평교회(장익봉 목사 시무)에서 있었다. 1부 예배는 회장 최은한 장로의 인도로 부총무 이재호 장로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는 표어를 다같이 제창 후 2부회장 정기영 집사가 기도한 후 부서기 이재근 집사가 요한복음 8장 31절부터 36절까지 봉독하고 청평교회 아가페중창단이 특송했다. 청평교회 장익봉 목사가 '복음혁명'이라는 제목으로 "과거 총회적으로 전도회가 세워진 이유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전하기 위해서, 총회에 있는 전도부의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전도보다는 친교에 중점을 두게 됐다. 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처럼 남전도회가 여전도회보다 늦게 만들어졌지만 여전도회를 앞서는 남전도회가 되어야한다. 이것이 혁명이고 개혁이다. 개혁교회의 시작은 마틴 루터에 의해서 시작됐다. 이후 종교개혁이 사회를 바꾸게 됐다. 이것이 복음이다. 그래서 종교개혁은 복음혁명이다. 코로나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의 혁명 기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복음으로 나의 삶을 돌아보고 복음으로 바꿔야한다. 남전도회원들의 삶에 개혁의 정신이 있기를 바란다. 그럴 때 종교개혁자를 따르게 되는 것이다. 이제 주님의 부활을 통한 소망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종교개혁자들이 중시했던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만을 우리가 중심으로 삼고 사는 것이 필요하다. 남전도회원들이 더 많이 모이고, 더 전도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한다. 31절에 보면 주님 안에 거할 때 주님의 제자가 되고 진리가 자유롭게 한다고 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복음혁명을 통해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께 내려 놓아야한다. 그럴 때 우리를 통해 주님의 생명이 드러나게 된다. 복음을 위해 고난 받는 남전도회원들이 되기 바란다. 또한 모일 때마다 예수님을 위해 어떻게 살았는지를 나누며 미래를 위해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설교했다. 회계 이준량 집사의 헌금기도 후 봉헌하고 '나라와 민족, 민족 복음화를 위해, 지교회 부흥과 중서울남전도회연합회 부흥을 위해, 청평교회 부흥과 남전도회 발전을 위해' 간절히 합심기도 후 30대 증경회장 이학영 장로가 기도한 후 총무 최동균 집사가 광고하고 장익봉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2부 월례회는 회장 최은한 장로의 인도로 37대 증경회장 권성식 장로가 기도 후 서기 정인성 집사가 회원점명해 10교회 53명 회원이 참석해 개회했다. 총무 최동균 집사가 사업보고하고 회계 이준량 집사가 회계보고 후 안건토의시간에 1부회장 조태영 집사가 순회헌신예배 및 월례회 순서지에 간증, 시, 단편 소설, 교회 소개, 목사님의 글 등을 실어 알차게 내용을 보완하자고 제안해 통과하고 순회헌신예배 1시간 전에 미리 행사 제공하는 교회에 모여 노방전도하자는 한 회원의 안건에 대해 임원회가 논의하겠다고 했다. 박재석 장로가 청평교회 당회원들을 소개하고 윤필영 원로장로가 "더운데 먼 곳까지 오셔서 감사하다. 남전도회가 발전하기 위해 관심 갖고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담임목사를 통해 도전 받은 것을 잘 실천하자"고 말한 후 김기환 집사가 회의록 낭독 후 주기도로 월례회를 마쳤다. 이 날 행사 전에 청평교회에서 전도회회원들을 위해 저녁 식사를 정성껏 준비해서 코로나로 그동안 갖지 못했던 식탁교제를 나누게 되어 회원들 모두 교회에 감사했다.

    제14회 한국장로교의날 행사 성대히 개최

    제14회 한국장로교의날 행사가 '참된 생명의 길을 걷는 장로교회'(시편16편 11절, 디모데전서 6장 12절)를 표어로 7월 7일 오후 2시 서울한영대학교에서 있었다. 1부 기념예배는 준비위원장·상임회장 정서영 목사의 인도로 공동대회장·합신총회장 김원광 목사의 기도 후 준비위부위원장·부회장 양성수 장로와 김순미 장로가 시편16편 11절, 디모데전서 6장 12절을 봉독한 후 신원에벤에셀중창단이 찬양했다. 공동대회장·통합총회장 한교총대표회장 류영모 목사가 '참된 생명의 길을 걷는 장로교회'란 제목으로 설교했다. 종교인구 절정을 이루던 10여년 전 통계에 의하면 한국교회 천만성도 가운데 장로교인이 700만명 정도 였습니다. 전세계 1800만 장로교인 가운데 한국장로교인이 700만명입니다. 한국교회에서는 대의정치를 따르는 장로교회에서는 물론, 감독정치 감리교회와 회중교회에도 장로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기독교 대한 감리적 장로교회, 기독교 대한 성결장로교회, 기독교 대한 침례장로교회, 기독교 하나님의 장로성회 - 한국에서는 모든 교회가 장로교회라고 합니다. 그러나 장로교회는 분명한 원칙이 있습니다. 바로 신조와 정치제도가 장로교회의 두 기둥이자 정체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정체성으로 세워진 장로교회가 한국 땅에서 크게 번성케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장로교회가 바로 서면 한국교회가 바로 섭니다. 장로교회가 하나되면 한국교회가 하나됩니다. 19세기 말 우리민족은 5천년 역사 가운데 가장 암울했던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강대국들이 이 나라를 짓밟고 이 나라는 일제강점으로 조금씩 빨려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께서 이 땅을 찾아오시는 조그마한 발자국 소리가 있었습니다. 1882년 5월 22일 한미수호통상조약이 있었습니다. 수호통상조약이라는 이름 그대로 장사를 하고 자국의 정치적 영향을 키우겠다는 조약이었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국가간의 이기심을 뚫고 신묘막측(神妙莫測)하신 복음의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먼저 의사와 교사들이 복음을 들고 들어와 병원과 학교를 세웁니다. 우리는 서구 사회에 눈을 뜨고 복음에 마음을 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885년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가 이 땅에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교회 역사학자 백낙준 박사의 말처럼 하나님은 이 백성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 마지막 날에 당신의 지팡이로 쓰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바로 우리 한국장로교회는 마지막 때 하나님의 지팡이로 쓰임 받고 있습니다. 1905년 국가의 외교권을 박탈당한 을사늑약 직후에 1907년 하나의 독립된 한국 장로교회 최초의 노회가 설립됩니다. 1910년 한일합방 직후에 1912년 장로교 총회가 창립되고 금년에 110주년을 맞이합니다. 국가가 위기 속에 무너져갈 때 하나님께서는 장로교회가 전국적인 조직을 갖추게 하시고 신음하는 백성을 돌보게 하셨습니다. 한국장로교총연합회 한장총은 쟝 깔뱅 선생 탄생 500주년이 되던 2009년 장로교회의 날을 선포하고 깔뱅 선생의 생일(7월 10일) 전후로 장로교회의 날을 지키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은 열 네 번째 장로교회의 날 “참된 생명의 길을 걷는 장로교회”란 주제로 모이게 되었습니다. 한장총 산하 26개교단 43,791개 교회가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번 대회 주제 성구로 선택된 시편 16편은 다윗이 절박한 위기 상황, 절대절명의 위기 앞에서 받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시편에 담긴 7편의 메시야 예언시 가운데 한 편입니다. 다윗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위기를 만났을 때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자신을 세웁니다. 종교개혁자의 Coram Deo 정신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살길을 보여주십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라고 고백합니다. 언제나 위기시대는 주께로 돌아오라는 음성을 듣는 때입니다. 본질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Back to the Bible!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는 때입니다. 그것이 사는 길입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요14:8). 예수 그리스도의 종말의 빛에서 오늘을 바라보면 그 어떤 위기 속에서도 희망이 보입니다. 생명의 길이 보입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예수는 세상의 희망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교회는 구원의 희망입니다. 사도 바울은 제자 디모데를 “너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어떤 도전과 위기 앞에서도 선한 싸움을 싸워 영생을 취하라고 명합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딤전6:11-12) 오늘 한국의 장로교회가 패배의식과 위기감을 떨쳐버리고 함께 벌떡 일어나 참된 생명의 길을 걸어갈 때 세계교회가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힘을 얻어 일어날 것입니다. 교회들이 위축되기는커녕 진정한 부흥의 길, 참된 생명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 우리 시대를 어떻게 보십니까? 위기로 보십니까 아니면 기회로 보십니까? 절망으로 보십니까 아니면 희망으로 보십니까? 저는 6.25 끝자락에 태어났습니다. 제가 태어나서 한 달도 안 되어 한국전쟁이 끝나고 휴전협정이 되었습니다. 70년 사는 동안 위기 아닌 때가 없었지만 지금처럼 커다란 위기를 느낀적은 없습니다. 숨 가쁘게 인생을 달려왔지만, 지금처럼 세상이 빛의 속도로 달리는 걸 본 적은 없습니다. 6년 전 세계경제포럼의 수장이던 클라우스 슈밥이 선언했던 제4차 산업혁명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제3차 산업혁명시대는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었는데, 지금은 빠른 물고기가 느린 물고기를 잡아먹는 시대랍니다. 교회는 우리시대의 작은 물고기, 느린 물고기가 되어 그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기존 강대국 미국과 치고 올라오는 중국과의 패권 싸움으로 주변의 국가들이 피해를 보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져 사라졌던 망령, 신냉전시대가 되살아났습니다. 지구촌은 육해공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는 기후위기시대에 빠져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가 중병을 앓고 있습니다. 인간의 공격을 받아 상처 입은 자연이 이제 인간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산불로, 바이러스로 온갖 질병으로 공격을 가해오고 있습니다. 남북관계는 전에 없는 적대관계, 무기 경쟁, 공포의 균형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국내 정치와 사회는 극단적 진영대결 외에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습니다. 정치인에게서도 기업인에게서도 지금까지 이 나라를 지켜왔던 애국심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사회 마지막 보루 자기희생 정신이 보이지 않습니다. 미래가 희망으로 보이질 않아 다음세대가 태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세계 출생률 꼴지 국가가 되었습니다. 지구촌에서 제일 먼저 사라질 나라로 치닫고 있습니다. 1000조를 넘어선 나라의 빚더미 속에서 젊은이들이 꿈을 꾸고 일할 수 있는 기회 총량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세상은 지금 이런 전방위적 위기 상황 속에서 아직도 교회는 세상의 희망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아직도 이 시대에서 세상은 ‘종교를 아니, 교회를 필요로 하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눈을 밟으며 들길을 갈 때 모름지기 허튼 걸음을 말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는 마침내 후인의 길이 되리니” 백범 김구 선생이 그의 좌우명으로 즐겨 외우던 조선후기 문신 이양연이 쓴 시의 한 토막입니다. 우리는 지금 코비드19 팬데믹 이후 전방위적 위기, 문명사적 대전환기 한 번도 걸어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문제를 끌어안고 위기만을 보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내가 살고 네가 살고, 교회가 살고 세상을 살리는 생명의 길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할머니 사라에게서 이삭이 태어날 때 찾아오신 하나님은 엘샤다이 하나님, 전능자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끝난 그 자리에서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 길이 없는 땅에서 길을 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는 지금 엔데믹시대에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못 돌아갑니다. 우리가 돌아갈 곳은 코로나 이전, 팬데믹 이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Back to the Bible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살아계신 성령님 앞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개혁된 교회는 날마다 개혁됩니다. 우리 장로교회, 개혁교회가 출발하던 날마다 새로워져 새 길을 가던 그 길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공신학, 번영신학, 교회성장 지상주의, 물량주의를 자랑하다 무너진 그 자리가 아니라 공적복음, 공공교회를 인정해야 합니다. 교회의 주인은 오직 한 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복음의 주인도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그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 복음만이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일제강점기 미국 장로교회 장로였던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전 세계 자주독립에 위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특별히 미국 하와이, 상하이, 한인교회와 동경 YMCA 젊은이들을 거쳐 드디어 3.1독립만세운동으로 번져갑니다. 3.1만세운동을 준비하던 장로님 남강 이승훈 선생은 한국교회 지도자들을 찾아가 만세운동을 주도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복음을 전하는 목사들이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이때 남강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일갈합니다. “나라 잃은 놈들이 혼자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게 복음입니까? 온 백성은 지옥에서 살고 있는데 천당 얘기만 하는게 목사요 교회입니까?” 바로 애국의 복음, 공적복음, 해방의 복음을 외칩니다. 드디어 33인 가운데 16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민족대표로 참여하게 됩니다. 당시 한국기독교인은 단 1.3%였습니다. 그 가운데서 50% 가까운 민족대표를 만들어냅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이 투옥되었던 분들이 장로교인이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대한민국 장로교회입니다. 이제 우리 다시 일어나 장로교회 성도여! 참된 생명의 길을 함께 걸어갑시다. 공동대회장·한영총회장 김시홍 목사가 '장로교인으로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지 못함을 용서하옵소서', 공동대회장·합동중앙총회장 조옥선 목사가 '장로교 신앙을 바르게 세워 성경적 가치관을 굳게 세우게 하옵소서', 공동대회장·개혁개신총회장 박영길 목사가 '장로교인으로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일에 힘쓰게 하옵소서', 교회부흥위원장·합동 오범열 목사가 '한국교회의 예배회복을 통하여 새로운 부흥의 길이 열리게 하옵소서', 다음세대위원장·백석 장사무엘 목사가 '다음세대에 대한 위기를 희망으로 바꾸어 주옵소서'라고 기도했다. 재정위원장 ·회계 김충무 장로가 헌금기도하고 캄보디아 장로교신학대학교를 위해 헌금하고 아마빌레앙상블이 특주했다. 성찬식은 공동대회장·대신총회장 이정현 목사의 집례로 공동대회장·개혁총연총회장 표세철 목사가 성찬기도 후 고린도전서 11장 23절부터 29절까지 봉독한 후 분병·분잔하고 고문·직전대표회장 김종준 목사의 축도로 예배와 성찬식을 마쳤다. 2부 기념식은 운영위원장·총무 김종명 목사의 사회로 운영위원장·총무 고영기 목사가 내빈을 소개하고 회보발행위원장 우상용 목사가 한장총을 소개했다. 대회장·대표회장 한영훈 목사가 대회사를 했다. 제14회 한국장로교의 날을 맞아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치유와 회복의 은총이 한국교회와 한국 사회 위에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지구촌 곳곳이 전쟁의 소문이 멈추지 않고 있으며, 북한은 핵 실험을 재개하고 미사일을 발사하여 동북아와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와 기후변화로 인한 기후 위기와 천재지변이 빈번하여 일상화된 재난과 위기상황을 살아갑니다. 우리사회는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인구 절벽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으며, 대도시로 인구가 집중됨에 따라 농어촌마을과 지방 소도시는 소멸위기에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우리사회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는 심화되었으며,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의 2배가 넘어 하루에 36명꼴로 자살 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사회 기분장애(우울, 조울증) 치료를 받는 환자가 100만명이 넘었으며 그 중 20대 환자의 비중이 17%로 가장 높다고 합니다. 노인 인구와 황혼 이혼과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불안과 불만이 가득하며 희망과 비전이 보이지 않으며 교회가 소금과 빛의 역할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열네 번째를 맞이한 한국장로교의 날은 한국교회의 약 70%에 이르는 한국 장로교회들이 하나 되는 날입니다. 한국갤럽이 2021년에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사회 무종교인구가 2014년 50%에서 2021년 60%에 이르러 무종교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먼저 장로교회가 하나됨으로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통하여 민족 복음화가 앞당겨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한국장로교총연합회가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공교회적 역할을 감당함으로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가 회복되며, 예배와 교회의 거룩성이 회복되어지고, 교세감소를 교세 성장으로 역전 시킬 계기를 마련할 수 있기 바랍니다. “참된 생명의 길을 걷는 장로교회(시 16:11, 딤전 6:12)”라는 주제로 모이는 제14회 한국장로교의 날은 110년 한국장로교회의 역사를 회고하고, 아름다운 전통을 계승하여, 장로교회의 정체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계승하며, 한국장로교의 분열의 과오를 반성하고, 코로나19 팬데믹을 너머 예배와 선교 사명을 회복합시다. 참된 생명의 길을 걷는 장로교인으로서 시대적 사명을 새롭게 인식하며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는 한국장로교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이어 윤석열 대통령의 축하인사를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이 대독했다. 목회부문 - 채영남 목사(통합, 본향교회 위임목사) 교육부문 – 조성국 교수(고신대신학대학기독교교육과 교수) 선교부문 – 강인중 선교사(합동, 총회세계선교회 행정사무총장) 특 별 상 - 故 주선애 장신대 명예교수 증경총회장 박위근 목사(통합)가 “제14회 한국장로교의 날 행사를 통하여 여러 교단으로 나누어진 한국장로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연대하는 일이 이루어져 한국장로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하나로 연합할 수 있는 길이 열려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격려사하고, (재)세복협 대표총재 피종진 목사(합동)가 “1981년 통합, 합동, 고신, 대신, 한국기독교장로회 등 5개 교단으로 시작해 41년 지난 현재 26개 교단 연합으로 발전했다. 더욱 한장총이 한국교계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전세계 인류가 고통당한 코로나 시대를 극복하는데 앞장서기 바란다”고 격려사하고, 제37대 대표회장 김수읍 목사(통합)가 “현재 26개 회원교단 장로교회들이 오늘을 기점으로 주님의 가르침대로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며 헌신하는 일에 더욱 앞장서 아직도 어수선한 이 민족 앞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복음의 빛, 희망의 빛, 생명의 빛을 비추자”고 격려사했다. 기하성대표총회장 이영훈 목사가 “이번 대회의 표어인 ‘참된 생명의 길을 걷는 장로교회’처럼 여러분 모두가 생명의 근원 되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용기를 통해 영적으로 성장하고 도약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축사하고, 뉴욕지구한인교회협의회 회장 김희복 목사가 “제14회 한국장로교의 날을 맞이하여 바라기는 코로나 시대에 침체되었던 한국교회를 새롭게 일으키고 세우는 역할을 당부 드린다. 또한 전 세계에 피 묻은 복음을 전하다가 주님을 만나는 장로교단이 되기를 바란다. 뉴욕과 뉴저지 800여 개의 교회 대표로 어제 왔는데 오늘 함께 이 행사에 와서 너무나 기쁘고 감사하다”고 축사하고, 기성총회장 김주헌 목사가 “2년 반 넘게 진행되어온 코로나의 위기, 유례없이 극단적으로 치닫는 갈등과 분열, 심각한 저출산율과 고령화 사회 등은 우리 각 사람으로 하여금 소외감과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여 깊은 절망에 이르게 하는데 이 위기를 극복할 유일한 길은 바로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 밖에 없다. 한국을 대표하는 장로교회와 모든 교회들이 힘을 모아 이 위기를 능히 이겨내고, 지난 날의 대 부흥이 이 땅에 다시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축사하고, 오세훈 서울 시장과 국민의힘 이준석 당대표가 영상으로 축사했다. 소강석 시인(합동직전총회장) 박승식 시인(서울한영대학교 이사장)이 축시를 낭송 후 서울한영대학교 박일권 교수가 축가했다. 공동대회장·고신총회장 강학근 목사와 공동대회장·호헌총회장 이남규 목사가 비전선언문을 낭독하고 다같이 파송의 노래 ‘사랑하는 주님 앞에’(220장)을 부른 후 공동대회장·개혁총회장 김기남 목사가 파송의기도를 한 후 예배위원장·서기 조강신 목사가 광고 후 은혜로운 제14회 한국장로교의날 행사를 모두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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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은 정론직필 해야한다

    본 동영상은 합동투데이 김성윤 기자가 촬영한 것을 허락받아 게재합니다. 개혁타임즈(김창연 목사)가 지난 8월 5일 있었던 서대전 임시노회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목사 부총회장 예비 후보 오정호 목사는 격앙된 표정으로 임시노회에서의 신상발언을 통해” 문제는 과연 '오정호 목사가 격앙된 표정으로 작심 신상 발언을 했는가?'이다. 촬영된 동영상을 통해 독자들이 판단해 보시기를 바란다. 단지 평소 오 목사의 성량이 크고, 마스크를 한 상태로 음성을 높여 말했다는 것을 참고하기 바란다. 또한 개혁타임즈는 오 목사가 전남제일노회에 고발당해 어쩔 수 없이 노회원을 보호하기 위해 고발해야하는 서대전노회에 이러한 훈수를 했다. “총회선관위와 상대측을 향해 감정 호소나 열정과 의욕보다 법리로 나서야 한다” 서대전노회가 무엇을 했길래 이런 조언을 하는가? 현장에 없던 독자들은 오로지 기사를 보고 판단한다. 그래서 기자의 사사로운 편견이 들어가지 않은 정론직필이 필요하다. 동영상을 보고 오 목사가“격앙된 표정”으로, “작심 신상 발언”을 했는지 판단해 보기 바란다. 사족으로, 개혁타임즈는 지난 7월 25일 절차상 실수로 무산된 서대전노회 임시회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전화위복이 될지 악재가 될지,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갈지에 그 귀추가 주목된다" 그러나 곧바로 10일 후 임시노회를 연다고 공고했고 이후 별 문제 없이 임시회가 개최됐다. 개혁타임즈 기사처럼 호들갑 떨일이 아니었다. 기자의 바램이나(?), 누군가의 바램을(?) 적어봤는지는 모르지만 별일 없이 임시회가 개최됐으니 지금이라도 기사를 수정하는 것은 어떨지.... "개혁주의는 끊임없이 개혁해야한다" 는 유명한 말도 있지 않은가!

    충남노회원들은 폭행사태를 "방임'했는가?

    충남노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11일 총회회관에서 정기회로 모였다가 벌어진 노병선 장로 부총회장 폭행 사건 이후 6일 만인 17일에 총회 임원들이 ‘긴급회의’를 열었다. 폭행 후 6일 만에 열린 임원회가 ‘긴급’인지 ‘완급’인지는 이 사건을 접한 모든 목사 장로들이 판단할 것이다. 그동안 임원들은 무슨 일을 했는가? 배 총회장은 16일 오전 총회장실에서 6월 1일 지방선거에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한 오세훈 서울시장의 예방을 받고 환담했다.(출처:개혁타임즈) 그리고 17일에 예장합동과 예장통합 총회임원들이 앰버서더 서울풀만호텔에서 연석회의를 열고, 양 교단의 교류와 더불어 사학법과 차별금지법 제정 문제 등 각종 사회 현안 대처에 협력키로 다짐했다.(출처:기독신문) 이처럼 임원들은 11일 벌어진 초유의 폭행사건에 17일 ‘긴급’회의를 열고 몇 가지 대책을 마련했다. 그런데 이 회의를 보도한 기독신문 기사에 따르면 “임원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폭행이 자행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입을 모았다. 또 폭행 가해자와 충남노회에 대해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공감을 이뤘다”고 했다. 합동투데이 김성윤 목사는 “충남노회에 대해 엄중한 처벌”에 대해 허 은 서기 목사에게 전화로 이에 대해 문의했고, 「또한 긴급 임원회는 폭행 영상을 통해 폭행현장에서 윤익세 목사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은 충남노회원들에 대해서도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결정했다. 서기 허 은 목사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총회 영상을 통해 수습위원과 사무총장의 제지 행동을 확인했다”면서 “반면 충남노회원 어느 누구도 일어나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고 충남노회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필요함을 말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총회임원들은 노회에 참석한 충남노회원들이 이 사태를 수수방관, ‘방임’했다고 판단하고 노회원들을 징계하겠다는 것이다. 본 기자는 11일 당일 총회회관 충남노회 정기회에 참석한 분들께 사실 확인을 했다. 그들은 “당일 이은철 사무총장이 3-4명의 총회직원과 함께 와서 자기들이 노회를 잘 진행하는데 돕기 위해 왔다고 하면서 흠석사찰위원처럼 노회원들의 모든 행동을 ‘통제’해서 모두 제자리에 앉아 있는 상황이었으며 Y 목사가 갑자기 폭행을 했고 곧 수습위원과 사무총장이 Y 목사를 제지 했기에 노회원들이 더 이상의 대응을 하지 않은 것 뿐이었다”고 억울해했고 오히려 “이 상황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이은철 사무총장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다 지나간 일이지만 만약 이 당시 노회 현장을 취재하러 온 여러 기자들을 강제로 내보내지 않고 계속 취재하게 했더라면 이런 상상을 초월한 폭행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폭행이 아닌 실랑이"라는 말도 안되는 주장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누가 기자들을 내보내게했는지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총회임원들이 총회본부에서 촬영한 노회 장면을 함께 시청했다고 했는데 과연 편집이 없는 100% 원본인지에 대해서 합리적인 의혹이 든다. 이해관계없이 이를 검증할 사람이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자들을 내보내고 벌어진 일이기에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초유의 총회회관 노회현장 장로 부총회장 위원장의 폭행사건이기에 정확한 팩트체크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이를 알지 못하는 목사와 장로들은 잘못된 정보에 근거해 판단하게 된다. 끊임없는 크로스체크를 통해 진실에 다가가는 언론사의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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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신자 전도 세미나, 성황리 개최

    태신자 전도 세미나가 길요나 목사, 최윤식 박사를 주강사로 「교회를 교회되게 전도Reengineering, 팬데믹 시대! 전도를 새롭게 디자인하다」란 주제로 7월 11일 오후 1시부터 6시 20분까지 왕성교회(길요나 목사 시무)에서 있었다. (분량이 많아 먼저 3, 4강을 싣고 추후 1, 2강을 싣도록 함) 3강은 왕성교회 담임 길요나 목사가 '초청주일 설교를 말하다'란 제목으로, “1장. 전도설교의 준비. 대상: 누구에게 설교할 것인가? 불신자와 교회 내 불신자와 기존 신자로서 초청주일 설교는 불신자와 함께 기존 교인들에게 축복임을 기억해야한다. 1. 기도로 무장하기-초청주일 설교는 중압감이 있으며 두렵다. 그래서 더 많이 기도해야한다(고전2:3-5). 2. 본문의 선택-복음을 담은 쉽고 단순한 구절로, 이해가 쉽고 듣고 집에 가서라도 그 본문이 생각나고 반응할 수 있는 본문으로 단순 명료하게 기억할 수 있는 본문이 좋으며 불신자가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 기적 이야기는 피하는 것이 좋으며 가능하면 본문을 암기해서 설교하는 것이 필요하다. 3. 설교의 구성-아리스토텔레스는 효과적인 전달기법에 세 범주가 있다고 했다: 에토스(설교자의 인품, 인격), 파토스(열정과 열심), 로고스(논리적인 설교 전달). 어떻게 청중에게 이해시킬지에 주안점을 두고, 원포인트 설교를 하며 들려야 믿을 수 있으니 들리는 설교를 해야한다. 예수님은 청중의 눈높이에서 설교하셨고, 존 웨슬리는 효과적인 대중설교를 위해 노력했다. 그는 설교문을 작성하고 불학무식한 하녀에게 읽어주어 이해가 되는지 확인하는 일을 했다. 서론이 너무나 중요하며 청취의 텐션을 위한 예화나 영상을 삽입하고 주제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설교에 잔가지를 치지 않도록 해야한다. 2장 청중이해. 효과적인 설교를 위해 청중을 분석하라. 불신자인가? 거듭난 크리스찬인가? 청중의 연령대는? 살고 있는 지역은? 경제상황은? 등등. 탈권위의 시대이기에 권위적인 말투나 외모를 지양하고 ‘왜 죄인이며, 왜 회개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알려줘야한다. 믿고 이해하는 시대에서 이해하고 믿는 시대로 변했기에 기적이야기는 나중에 듣게하고 예화, 통계, 설교 내용에 오류가 없어야 하며, 시대적 적실정이 필요하다. 유튜브 이후의 틱톡과 쇼츠의 시대이기에 집중력 장애 증후군의 시대를 극복해야한다. 3장. 전도설교 진행 방법으로 서론은 아이스 브레이킹으로 무조건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아야한다. 유머 코드를 넣어 청중을 위한 배려를 하고 시대상황적 이슈로 설교자와 청취자의 접점을 찾고 질문을 통해 궁금증을 유발해야한다. 본론의 진행을 위해 성경본문을 해설하되 기독교의 전문용어 사용을 자제하고 적절한 영상이나 사진을 활용하고 클라이멕스를 향해 꾸준히 그리고 점진적으로 나아가야한다. 복음 제시를 위해 백문일답이신 예수님을 제시하고 감동적이고 실제적인 예화나 간증을 제공해야한다. 결론의 진행을 위해 서론의 질문과 본론의 해답을 간단히 정리하고 좋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로 마치면 된다. 이어서 설교의 내용과 복음을 담고 있는 찬양을 하면 좋다. 찬양은 강력한 도구이다.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시기를 기대하라. 찬양 후 영접기도를 따라하게 하고 설교자의 기도로 마무리한 후 박수로 격려하며 마치라. 4장. 전도 설교에 관한 조언으로 설교 시간은 30-35분 정도로 하고 설교자는 복음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하며 교회 안의 불신자 역시 전도설교의 대상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결과에 흥분하지도 실망하지도 말아야하며 평소의 설교에도 최대한 복음과 십자가를 담고 남을 모방하지 말고 당신 자신의 스타일로 설교하고 실천해 보며 시뮬레이션을 하는 것이 좋다. 5장. 기도 동역자를 조직하라. 설교의 황태자 찰스 스펄전에게는 300명의 중보기도자가 있었다. 사탄의 방해를 예상하고 설교자와 태신자를 집중 공격하는 사탄을 막기 위한 방패기도를 하며 모든 예배와 기도회 시간에 초청주일과 설교자를 위해 기도부탁하며 예배 보안관을 세워 예배가 방해없이 진행되게 해야한다"고 말했다. 4강은 미래교회인재연구소 대표 최윤식 박사가 '빅 체인지 한국교회를 말하다'란 제목으로 "한국교회의 위기 원인은 무엇인가? 전도가 무너진 것이다. 전도는 '지친 영혼들에게 소망을 선물하는 것이며, 시대에 맞는 변증'이며 교회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긴급성, 열성을 회복해야한다. 다음 세대를 세우기 위해서도 전도해야하는데 전도가 안되는 이유는 무엇보다 전도하지 않기 때문이며 누구에게 복음이 필요한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기독교 신앙은 철학과 싸웠기에 신학자들이 철학을 배워 철학의 용어로 기독교를 변증하고 철학에 대응했다. 현재는 과학기술이 기독교의 대응 세력이기에 과학기술의 언어로 기독교를 변증할 수 있어야한다. 현재 한국교회의 위기 중 하나는 재정의 위기(경제)이다. 버불은 언제나 붕괴했다. 버블 규모와 붕괴 규모는 비례하며 버블이 터지면 원래 시작점이나 그보다 약간 아래까지 하락하는 경향을 갖는다. 한국은 상위 10%가 46.5%의 자산을 갖고 있다. 이 갈등을 교회가 치유할 수 있을까? 행2장의 신앙공동체는 유무상통했다. 교회 안에서부터 시작해야한다. 이단들은 고통 받는 자들에게 잘 접근해 그 세력을 넓히고 있다. 앞으로 교회는 영성에 집중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2040년에 한국교회 중심층은 55-80세일 것이며 가장 많은 세대는 65-75세일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신중년을 중심세력으로 해야한다. 한국사회도 신중년층이 부상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지방이 소멸해가고 있는데 그러면 당연히 지방교회도 소멸하게 된다. 2060년이 되면 전체 교회 중 절반이 독자생존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큰 교회와 작은 교회, 도시교회와 시골교회가 상생 교회 생태계가 만들어져야하며 이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전도이다. 전도만이 위기를 극복할 방법이다. 앞으로는 목회 패러다임을 바꿔야한다. 성장에서 자기 변화로 가야한다. 자기 자신을 중요시 하는 MZ세대를 위해 목회 방향을 조정해야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니 하나님을 의지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복음의 능력을 드러내면 한국교회는 침체를 벗어나 부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정된 시간을 50분 가량 초과하면서 강사들은 열정적으로 강의했고 수많은 참여자들은 열심히 강의를 들으며 코로나로 움추렸던 전도에 대한 열정을 회복하는 귀한 시간이었다. 또한 왕성교회에서는 시간시간 다양하고 풍성한 간식으로 참가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봉사했다. 폐회 기도는 백령도에서 참석한 목사가 기도함으로 태신자 전도 세미나를마쳤다.

    성진교회 원로목사 추대, 담임목사 위임 감사예배

    성진교회(서평양노회) 원로목사 추대, 담임목사 위임 감사예배가 7월 9일 오전 11시 본당에서 있었다. 1부 예배는 노회장 성림교회 신남수 목사의 인도로 증경노회장·보배교회 김학목 목사의 기도 후 서기·비전교회 박형석 목사가 여호수아 11장 15절, 23절을 봉독한 후 성진교회 연합찬양대가 찬양했다. 전 총신대 총장 김의원 목사가 '아름다운 사역'이란 제목으로 "모세와 후계자 여호수아는 아름다운 사역을 했다. 첫째로, 모세와 여호수아는 목표를 공유했다. 모세는 백성을 가르치고 또한 여호수아를 양육시키고 훈련시켜 후계자로 키웠다. 모두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이었다. 둘째로, 그들은 비전을 공유했다. 말씀대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인도하신 것을 경험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비전을 같이 했다. 셋째로, 동역자들이 함께 했다. 목회는 교인들과 동역하는 것이다. 황일동 목사는 요5장에 있는대로 불빛을 등경 위에 두고 예수님을 드러내며 사역하셨다. 후임 목사와 교인들도 그러하기를 바란다. 황 목사님은 은퇴 이후 더 큰 사역하기를 바란다"고 설교했다. 제2부 담임목사 위임식은 위임국장·올리브교회 박치홍 목사의 집례로 푸른초장교회 최성철 목사가 기도 후 위임국장이 임직자에게, 교우에게 서약한 후 위임기도하고 공포했다. 증경노회장·주품교회 최성은 목사가 위임목사에게 "바울은 딤전1:12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충성되이 여겨 직분을 주셨다고 했다. '충성'이란 자기 자리에 제대로 있는 것이다. 김 목사를 하나님께서 성진교회에 보내주셨다. 교인들은 목사를 사랑하고, 감사하며, 순종하며 좋은 교회를 만들어 가기 바란다. 믿음이 좋으면 목회를 잘할 수 있고 믿음이 좋기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으로 은혜가 충만해야한다. 은퇴하시는 황 목사님은 목회를 잘하셨으니 담임목사는 원로목사님을 잘 모시고 목회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권면하고, 부노회장·신남교회 김봉현 목사가 교인들에게 "좋은 목사는 교인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담임목사가 미국 국립공원의 거대한 나무처럼 크게 성장해 큰 일을 이룰 수 있도록 해서 더욱 아름다운 교회 만들어 가기를 바란다"고 권면했다. 노회장·성림교회 신남수 목사가 담임목사에게 위임패를 증정하고, 교회를 대표해 황일동 목사가 담임목사에게 위임패를 증정 후 힘껏 김 목사를 안아주고, 성진교회 김희태 장로가 건강하게 사역해 주기를 부탁하며 김 목사에게 산삼을 선물로 증정했다. 연합사·생터군사역본부장 대령 이석영 목사가 "목회를 잘 하시고 원로가 되신 황일동 목사님을 축하드린다. 김 목사는 군목 1년 후배이다. 김종천 목사는 부교역자로 사역한 교회에 위임이 되어 축하드린다. 또한 좋은 원로와 위임 목사를 가지신 성진교회도 축하드린다"고 축사하고, 김종천 목사가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영광스럽게 은퇴하시는 황 목사님께도 감사드린다. 황 목사님은 영적인 아버지, 멘토, 스승이시다. 황 목사님을 잘 따를 수 있을까 두려움이 있는데 황 목사님께서 칭찬 받는 모범적인 교회를 만드셨는데 바짝 엎드려 따라갈 것이다. 온 성도들이 기도하고 도와 주기를 바란다. 순서 맡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 그리고 성진교회 성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사 후 성진교회 김아영 집사가 축가했다. 3부 원로목사 추대식은 김종천 목사의 사회로 증경노회장·신창교회 박태옥 목사가 기도 후 성진교회 김유중 장로가 추대사한 후 김종천 목사가 황일동 목사가 성진교회 원로목사가 되었음을 공포했다. 증경노회장·목동방주교회 임흥수 원로목사가 "은퇴 후는 모든 것이 달라진다. 교회에서 많이 도와주어야한다. 건강하게 여생을 사시기 바란다"고 권면하고, 증경노회장·드림교회 장순직 목사가 "황 목사는 실속없이 나누고 베풀며 목회를 하셨다. 성공적인 목회 이착륙을 하셔서 축하드린다. 또한 목양아카데미를 통해 많은 후배들을 섬겨주셔서 축하드린다"고 축사 후 행복한설교아카데미 원장 이의행 목사가 "황 목사님은 3 권의 책을 쓰셨는데 '행복'이라는 말을 언제나 사용하셨다. 황 목사님을 만난지 16년이 됐는데 늘 힘을 주셨다. 21세기 화두는 행복이다. 구약에는 11번의 행복이란 말이 나오는데 신약에는 없다. 행복과 유사한 '유다이노미아'란 말뜻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인데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황 목사님은 하나님과 사람, 교회를 사랑하신 목사님이셨다. 황 목사님께서 목양아카데미를 통해 좋은 열매를 거두시기 바란다"고 칼럼집 출판을 축하했다. 성진교회 신만근 장로가 축시 낭송하고 노회장·성림교회 신남수 목사가 공로패를 증정하고 김종천 목사가 추대패를 증정한 후 성진교회 이상기 장로가 원로목사 부부가 해외여행 다녀올 수 있도록 여행 경비를 선물로 증정했다. 증경노회장·성진교회 황일동 원로목사가 "이 자리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성도님들께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란 말씀을 드린다. 자랑할 것도 내세울 것도 없기에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동산에서 살기를 원한다. 남은 생애도 주님의 증인으로 살기를 바라며 후임 목사를 볼 때 행복하고 기대가 되 감사하다"고 답사 후 황 원로목사 사모가 "하나님의 사랑과 성도들의 사랑으로 여기까지 왔다. 좋은 후임 목사님 때문에 감사드린다. 은퇴하지만 계속해서 교회와 담임목사님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4부 축하 및 인사는 김종천 목사의 사회로 참석 내빈을 소개하고 증경노회장·창성교회 이용규 목사가 "황 목사께서 31년 목회 완주 후 원로가 되셔서 축하드리고, 좋은 후임 김종천 목사를 통해 더 큰 부흥이 있을 것이기에 축하드린다. 좋은 원로와 담임 목사를 모신 성진교회이기에 축하드린다"고 축사 후 주진원 은퇴 장로가 "황 목사님 부임 당시 교인들은 80명이었으며 한 주 헌금이 80만원 나오던 개척교회였다. 이후 목사님의 무릎 꿇는 눈물의 기도와 솔선 수범의 헌신 그리고 감명 받은 교인들이 합심해 봉사했기 때문에 이처럼 부흥했다고 생각하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전,현교역자 목양아카데미 회원들의 특송 후 성진교회 이상근 장로가 인사 및 광고한 후 증경노회장·성동중앙교회 최재우 원로목사의 축도로 은혜로운 원로목사 추대 담임목사 위임식을 마쳤다.

    부총회장 권순웅 목사, “내 생애 최고의 기도 120일 새벽기도회 「BUMA」” 강행군

    권순웅 부총회장이 차기를 염두에 두고 한 두 번의 ‘샬롬부흥 세미나’를 취재하며 총회를 앞두고 120일 새벽기도회를 하는 것에 감동을 받아 지난 6월 25일 기사를 썼는데 조회수 500건에 육박할 정도로 많은 목사 장로들이 관심을 가졌다. 이는 차기 총회장 권순웅 목사에 대한 기대감의 반영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직접 새벽기도에 참석해 현장을 취재했다. 권 목사는 이날도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며 간절히 기도했다. 부총회장 권순웅 목사의 주다산교회가 “내 생애 최고의 기도 120일 새벽기도회 「BUMA」”를 5월 30일부터 9월 25일까지를 일정으로 진행하고 있다. 새벽 아직 어두운 시간 동탄을 붉게 밝히고 있는 주다산교회의 십자가를 따라 때이른 열대야로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을 수많은 성도들이 주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교회 본당에 모여 새벽을 깨운다. 인도자에 따라 주님께 대한 신앙을 사도신경으로 고백 후 힘차게 찬양하고 에스더 7장 1절부터 10절까지의 말씀을 다같이 교독한 후 100여명의 인원으로 매일 새벽마다 찬양하는 ‘아나톨레’(아나톨레는 헬라어로 ‘돋는 해’로 새벽을 뜻한다) 찬양대가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렸다. 찬양 후 등단한 권순웅 목사는 감사한 마음으로 새벽에 예물을 드린 많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총회를 위해, 샬롬 부흥의 역사를 위해, 주다산교회를 위해 기도했다. 이어서 권 목사는 ‘원수를 이겨라’는 제목으로 “모르드개와 에스더에게 원수는 하만이었다. 그는 아말렉의 후손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말렉이 공격했다. 이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겼지만 대대에 후손간에 전쟁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말렉처럼 사단은 교회를 무너뜨릴려고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한다. 성도들의 대적은 마귀이다. 어둠의 영들이다. 하나님 백성들을 공격하고 교회를 공격하는 어둠의 세력이다. 이 싸움에서 신자는 이겨야한다. 마귀를 이겨야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며 하나님의 역사로 마귀를 이겨야한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와 함께 거룩한 전쟁에서 이겼다. 어떻게 이겼을까? 첫 번째, 지혜로 이겼다. 에스더는 하만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왕의 힘을 이용해야한다는 것을 알고 죽을 각오로 왕에게 나가 왕의 마음을 알아 왕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것이 에스더의 지혜였다. 왕은 에스더에게 소원을 물었다(7장 2절). 왕의 마음이 움직일 수 있도록 그 마음을 잘 헤아리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면 하나님의 눈으로 관찰하게 된다. 지혜는 하나님과 사람을 알게 해준다. 솔로몬에게도 하나님께서 관찰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셨다. 지혜가 있으면 잘 관찰하고 분석할 수 있게 된다. 미련한 사람은 사람을 잘 알지 못한다. 지혜로운 아이는 부모에게 원하는 것을 얻고 어리석은 아이는 꾸중을 자초한다. 4절에서 에스더는 중요한 말을 하게 된다. 에스더는 왕의 궁금증을 유발하고 자기의 소원을 아뢴 것이다. 이때도 에스더는 지혜롭게 말한다. 자기가 노비로 팔릴 수도 있고, 또 죽임을 당할 수 있는데 그것은 왕에게 큰 손해가 된다고 했다. 에스더는 자기의 필요와 이익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왕이 당할 손해로 접근한다. 자기의 필요가 아니라 왕의 필요에 따라 말한 것이다. 마케팅은 소비자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비자의 필요를 알아야한다. 마찬가지로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의 필요가 아닌 상대방의 필요에 집중한다. 전도도 지혜롭게 해야한다. 비둘기 같이 순결하고 뱀같이 지혜로워야한다. 샬롬 축복 전도 방법은 상대방을 축복하는 전도 방법이다. 우리도 지혜로 이기자. 두 번째, 담대함으로 이겼다. 에스더는 왕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나갔고, 하만의 권세나 왕의 권세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왕에게 요청할 말을 잘 준비해서 대적과 원수가 하만이라고 담대하게 말했던 것이다. 에스더에게 겁이 있었다면 이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담대함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하실 줄 믿어야한다. 하나님은 악을 심판한다. 예수님을 해칠려고 했던 헤롯의 가문은 100년 후 멸절됐다. 바로의 대군도 홍해에서 다 수장됐다. 3.1운동 때는 중학생이 일경 앞에서 태극기를 흔들다 옥고를 치를정도로 담대했었다. 우리 모두 담대하자. 세 번째, 기도로 이겼다. 기도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한다. BUMA의 응답이 있는 기도회가 되야한다. 어제 107회 총회 준비위 모임이 있었는데 관계자들이 모두 다 한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다. 이번 총회가 잘 되리라고 기대가 된다.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이다. 총회를 하나님께서 복 주실 것이다. 나라와 의를 구하는 우리 모두에게 응답하실 것이다. 사30: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긍휼히 여기시기에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다. 기도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응답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고 설교하고 축도한 후 합심해서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많은 교인들이 교회에 와서 새벽기도를 하고 또한 실시간 중계되는 유튜브를 통해 가정에서 더 많은 교인들이 새벽기도에 참여하며 이후 저장된 유튜브동영상을 더욱 많은 교인들이 보면서 온 교인들이 기도와 말씀에 집중하는 주다산교회는 ‘하나님이 많이 낳아주신다'(主多産)는 이름 뜻 그대로 앞으로도 더 많은 주님의 자녀를 영적으로 생산하며 건강한 교회의 사명을 감당할 것이다! 권 목사는 이날 새벽기도회에 엄마와 함께 참석한 초등학생을 축복하며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런 아이들이 앞으로 주다산교회를 이끌 미래의 주역이다. 권 목사와 온 교인들이 기도한대로 하나님께서 총회를 복주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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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영훈 목사, 서울한영대학교 제8대 총장 취임

    한영훈 목사의 서울한영대학교 제8대 총장 취임 감사예배가 7월 3일 오후 2시 서울한영대학교회에서 있었다. 1부 예배는 김천수 부목사의 인도로 오동록 장로가 기도 후 박일권 안수집사가 특송한 후 법인이사장 박승식 목사가 히브리서 13장 17절을 본문으로 '지도자가 즐거움으로 일하게 해야 하는 이유'란 제목으로 설교했다. 박 목사는 "지도자는 참으로 중요하다. 북한은 김일성 세습으로 인해 많이 피폐했지만 우리는 좋은 지도자들로 인해 많은 성장을 했다. 아프카니스탄이나 베네수엘라를 보면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또한 리더 고래가 무리를 잘못 인도하면 따르던 고래들이 해변에서 떼죽음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지도자에 따라 공동체가 달라진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알게 된다. 서울한영대학교에도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한영훈 총장께서 그동안 많은 수고를 하셨다. 이제 8대 총장에 재취임하며 앞으로 비약적인 발전이 있기를 소망한다. 그런데 지도자에게는 좋은 협력자가 필요하듯이 우리 모두 한영훈 총장에게 좋은 협력자가 되야한다. 다윗이 위대한 왕이 되었던 이유는 삼하23:13-17에 있는대로 다윗에게 목숨 거는 충성스러운 참모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목회하는 교회도 크지는 않지만 온 교인들이 협력을 잘 해서 많은 일들을 감당하고 있다. 지도자가 즐거운 마음으로 일할 때 교회나 학교나 잘 되는 것이다. 한영훈 총장이 즐거운 마음으로 일할 수 있도록 협력해 함께 유익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고 설교 후 한 총장을 위해 합심해서 간절히 통성 기도했다. 2부 총장 인사 및 축하는 김천수 부목사가 사회하여 총장을 소개한 후 총장 한영훈 목사가 "많은 분들을 번거롭게 하지 않기 위해 오늘 주일에 조촐하게 총장취임감사예배를 드리게 됐다. 4일 후인 7월 7일에 장로교의 날 행사가 있기에 간소하게 했다. 오늘은 학교와 저를 사랑하시는 분들이 왔다고 생각한다. 이사장님을 통해 귀한 말씀을 들었다. 저는 8대가 마지막 총장 기간이라고 생각한다. 학교를 위한 하나님의 마지막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시간과 몸과 마음과 물질로 헌신하고자한다. 하나님 영광 위해 수고했다는 말을 듣고자 수고할 것이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여러분들이 제가 4년 동안 총장직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란다"고 총장인사하고 박승식 박사가 축하패 및 선물을 전달하고 교회서기 오동록 장로가 축하패를 증정 후 가족 및 성도대표가 꽃다발을 증정했다. 전 이사장 박요일 목사가 "오랜 기간 서울한영대학교와 연관을 맺었다. 요즘은 대학교가 많이 어려운데 한영훈 목사가 총장의 중책을 맡으셨는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순적히 책임을 감당하시기 바란다. 행27에 보면 유라굴로 광풍을 만난 276명의 죄수들을 바울이 잘 이끌었다. 대학 현실이 바로 이와같다.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 살 궁리를 하고 있을 때 바울은 기도했다. 서울한영대학교가 사는 길은 기도하는 일이다. 기도하면 하늘 보좌를 움직여 응답이 온다. 강소대학이 될 것이다. 총장과 이사장이 무릎꿇어 기도하고 동역자들이 함께 기도한다면 반드시 놀라운 역사가 있을 것이다. 저는 백석대 이사장으로 매주 화요일에 출근해 법인에 가서 결재하고 나머지 기간에는 대학을 위해 조직표에 손을 놓고 기도한다. 서울한영대학교와 백석대학이 함께 좋은 학교로 발전하기를 바란다"고 격려사 후 새하늘의 교회 샤론중창단이 축가를 한 후 박승식 목사의 축도로 은혜로운 취임 감사예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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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도 연대, 불송치 결정 이의신청

    중도유적보존범국민연대회의 본부장 오정규 씨는 강원도의회 기획행정위원장과 춘천시 문화콘텐츠과장을 상대로 불송치 결정 이의신청서를 춘천경찰서에 접수했다. 다음은 그 전문이다. 불송치 결정 이의신청서 사 건: 2022-000532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 등 피의자: 강원도의회 기획행정위원장 김규호 신청인: 중도유적보존범국민연대회의 본부장 오정규 위 피의사건에 대한 춘천경찰서 2022. 3. 22.자 불송치 처분에 대하여 신청인(고발인, 이하 ‘고발인’이라고만 합니다)은 불복이므로 이의 신청을 제기함과 아울러 다음과 같이 이의신청 이유를 개진합니다. 다음 1. 피의사실의 요지 및 불송치 결정 이유 가. 피의사실의 요지 이 사건 피의사실의 요지는 1) 중도 역사유적지위에 레고랜드 놀이터를 짓는 반역적인 범법자들이 놀이터로도 부족하여 초대형 컨벤션센터를 유적지위에 짓겠다고 합니다. 더구나 이 과정에서 불법 부동산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컨벤션센터는 일종의 공공기관 시설물이므로 강원도가 자기 소유의 부지였던 컨벤션센터 부지(춘천시 중도동 357-41번지 등을 포함하는 54,200m²(이하 해당부지))에 강원도비로 그냥 지으면 되는 것인데도, 주식회사인 강원중도개발공사에 공사비를 밀어주기 위해 해당부지를 평당 58만원에 팔고 다시 5배 이상 올려서 평당 304만원에 되사기하는 불법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백억원의 강원도민의 혈세가 탕진되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부동산 범죄는 지난 수년동안 수차례나 자행되어 왔습니다. 피의자 김규호는 강원도의회 기획행정위원장으로써 기획행정위의 심의와 강원도의회 본회의에서의 상기 불법사항에 대한 의결을 주도하였습니다. (특가법, 배임, 직무유기, 공직자윤리법, 부동산법 등 위반) 2) 강원도가 해당부지 중의 357-41번지 등을 평당 약 58만원에 판 시점이 2021.4.28.인데 5배 이상 올려서 다시 되사겠다고 도의회에서 심의한 시점이 2021.04월에 열린 강원도의회 제299회 임시회였으며 결국 의결 통과시킨 시점이 2021.05월에 열인 300회 임시회였습니다. 즉 거의 같은 시기 시점에서 강원도는 357-41번지 자기소유 토지를 평당 약 58만원에 팔았고 거의 동시에 357-41번지를 포함하는 인접부지인 컨벤션센터 부지를 평당 약 304만원에 되사기를 하겠다며 도의회에서 의결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명백히 관청이 주도하는 부동산 매매가격 조작입니다. 컨벤션센터 부지매입비 명목으로 이렇게 탕진되어지는 강원도민 혈세만도 499억입니다. (특가법, 배임, 직무유기, 공직자윤리법, 부동산법 등 위반) 나. 불송치 이유 원처분 사법경찰관의 이 사건 불송치 결정의 요지는 상기 피의자의 배임의 범의 등을 찾기 어려워 고발을 각하한다는 입장입니다. 2. 불송치 결정 이유의 부당성 원처분 사법경찰관의 이 사건 불송치 결정의 부당함을 아래와 같이 진술하는 바입니다. 1) 원처분 사법경찰관은 배임의 범의를 찾기 어렵다고 하였으나, 상기 피의자는 도의원으로써 “강원도민의 민의를 대변하고 잘못된 행정에 대한 감시”라는 본연의 임무를 배신하고 불법적인 컨벤션센터 부지매입비 499억을 통과시키는 의결을 주도하여 (주)강원중도개발공사에게는 막대한 재산상의 이익을 강원도민에게는 큰 손해를 가하였으므로 이는 명백히 배임에 해당한다 하겠습니다. 2) 원처분 사법경찰관은 “피의자의 부지 매입 절차상 불법을 찾을 수 없다”고 하였으나, 춘천 레고랜드 사업의 투자구조를 보면 강원도는 중도 땅을 현물출자하게 되어있으므로 그냥 1회에 걸쳐 현물출자만 하면 되는데도, 지난 수년동안 강원도는 자기 소유의 중도 땅을 (주)강원중도개발공사에 싸게 팔고 다시 수배를 올려서 되사주는 방식으로 공사비를 밀어주며 천문학적인 도민혈세를 탕진해 왔습니다. 이러한 부동산 범죄가 한두 건이 아닙니다. 더구나 컨벤션센터는 레고랜드 놀이시설이 아니고 공공기관시설물이므로 강원도가 가기 소유의 부지에 그냥 컨벤션센터를 지으면 되는데도 불구하고 강원도는 자기 땅을 레고랜드 놀이시설 기반공사 시행사인 (주)강원중도개발공사에게 싸게 팔고 다시 공공시설 컨벤션센터 부지 명목으로 비싸게 사주며 혈세를 탕진하는 불법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지 매입 절차는 명백히 불법입니다. 3) 원처분 사법경찰관은 “강원컨벤션센터 신축사업 진행으로 인해 지역경제와 발전에 파급효과 등을 고려하면”라고 하면서 범법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려 하고 있습니다만, 고발인은 국가에 묻습니다! 국법을 위반하면서까지 부동산 비리를 저지르면서까지 경제효과가 의문시되는 컨벤션센터를 지어야 하는 것입니까? 초대형 건축물인 컨벤션센터를 왜 선사유적지 위에 지어야 합니까? 문화재보호법 위반 아닙니까? 유적지위에 컨벤션센터를 짓는 방안에 대하여 지금 현재 문화재청에서는 심의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것 또한 절차상 위법 아닙니까? 또한 천혜의 자연경관을 갖춘 관광지에 컨벤션센터를 짓는게 타당합니까? 이것은 오히려 관광지와 관광자원을 훼손하는 행위 아닙니까? 관공서나 비즈니스 구역에 짓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습니까? 4) 원처분 사법경찰관은 “감정평가하여 매입한 것은 배임의 고의가 인정되기 어렵다”고 하였으나, 강원도가 중도동 357-41번지 부지를 판 시점과 피의자가 해당부지 매입을 심의 의결한 시점이 거의 동일하므로 즉, 감정평가하여보니 평당 304만원으로 5배 이상 오를 것으로 예상되면 당연히 처음부터 땅을 팔지 말아야지요! 뻔히 오를 것을 알면서도 강원도 자기 소유 땅을 평당 58만원에 팔았다가 다시 304만원에 사겠다는 의결을 하여 도민혈세 수백억을 탕진하겠다는 것은 명백히 배임입니다. (특가법, 배임, 직무유기, 공직자윤리법, 부동산법 등 위반) 5) 원처분 사법경찰관은 “재산상의 손해를 입힌 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하였으나, 고발인의 상기 진술을 보면 강원도민 혈세가 수백억 탕진되는 것이 명백합니다. 6) 원처분 사법경찰관은 “마땅한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하였으나, 도의회에 제출된 동의안과 도의회 회의록 그리고 피의자의 발언 기록 등은 명백한 증거자료입니다. 7) 원처분 사법경찰관은 “피의자가 그 직무수행을 거부하거나 유기한 점을 발견할 수 없고”라고 하였으나, 피의자는 기획행정위원장으로써 컨벤션센터 부지 매입 안건이 기획행정위를 통과한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며 본회의에서도 의결되도록 주도하였으므로 피의자는 마땅히 엄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3. 결 어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피의자의 범죄사실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보아야 할 것인데도, 원처분 사법경찰관은 법리를 오해하거나 또는 피의자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믿고서 부당하게 불송치 결정을 하였는바, 고발인의 억울함이 없도록 반드시 이 사건을 재수사하여 피의자를 엄히 처벌해 주시기 바랍니다. 4. 별 첨 없음. 2022. 04. 05 . 위 신청인 오 정 규 (인) 춘천경찰서장 귀중 불송치 결정 이의신청서 사 건: 2021-007674 직무유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피의자: 강원도 문화유산과장 김 맹 기 피의자: 춘천시 문화콘텐츠과장 안 효 란 신청인: 중도유적보존범국민연대회의 본부장 오 정 규 위 피의사건에 대한 춘천경찰서 2022. 2. 28.자 불송치 처분에 대하여 신청인(고발인, 이하 ‘고발인’이라고만 합니다)은 불복이므로 이의 신청을 제기함과 아울러 다음과 같이 이의신청 이유를 개진합니다. 다 음 1. 피의사실의 요지 및 불송치 결정 이유 가. 피의사실의 요지 이 사건 피의사실의 요지는 1) (피의자 김맹기에 대한 피의사실과 고발내용을 수정 보완합니다.) 피의자 김맹기는 중도적석총(강원도 기념물 제19호) 외곽경계로부터 300미터 이내의 역사문화환경보존구역 내에서 (주)강원중도개발공사(이하 GJC)가 현상변경 허가를 득하지 않고 수년동안 무허가 불법공사를 해오다 고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후 현상변경허가를 해줌으로써 행정절차를 위반하였고, GJC의 불법행위를 지원하였으며 또한 수년동안 무허가 불법공사가 진행되어 왔음에도 이를 단속하지 않는 등 관리감독 직무를 유기하였고, 행정적 실익과 공공의 이익이라는 명분으로 불법을 정당화 함으로써 헌정질서를 문란케 하였습니다. (형법 제91조, 형법 제122조, 문화재보호법, 절차법 등을 위반.) 피의자 김맹기의 2021.7.12. 사후 현상변경허가는 피의자 안효란의 2021.4.22. 사후 현상변경허가 신청에 따른 것이므로, 피의자 김맹기가 춘천시청의 적법한 행정행위를 방해하였다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고발 사항을 취하합니다. 2) (피의자 안효란에 대한 피의사실과 고발내용을 수정 보완합니다.) 피의자 안효란은 상기 사건과 관련하여 GJC에 대해 공사중지 및 원상복구 행정명령을 적법하게 조치하였으며 GJC를 고발까지 해놓고도 이후에 자신의 적법한 결정을 뒤집고 사업자인 GJC를 위해 사후 현상변경 신청을 대행해 준 것은 명백히 공직자윤리법 위반이며 또한 사후 현상변경을 신청하고 공모한 것은 명백히 행정절차 위반입니다. (공직자윤리법, 형법 제91조, 형법 제122조, 문화재보호법, 절차법 등을 위반.) 나. 불송치 이유 원처분 사법경찰관의 이 사건 불송치 결정의 요지는 상기 피의자들의 직무에 대한 의식적 방임·포기·거부를 찾을 수 없고 직권을 남용한다는 인식을 포함한 범의를 찾을 수 없어 고발을 각하한다는 입장입니다. 2. 불송치 결정 이유의 부당성 원처분 사법경찰관의 이 사건 불송치 결정의 부당함을 아래와 같이 진술하는 바입니다. 1) 원처분 사법경찰관은 “강원도의 허가서 통보를 받아 춘천시는 그 허가서를 GJC에 통보하여 적석총 주변 공사를 재개한 것은 적법한 절차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한다”고 하였으나, 강원도의 그 사후 현상변경 허가서가 바로 행정절차를 위반한 불법이므로 피의자들의 주장처럼 적법한 절차가 절대로 성립되지 않겠습니다. 2) 원처분 사법경찰관의 조서에 의하면 “강원도는 2021.4.22. 춘천시청으로부터 현상변경 허가신청을 받고”로 되어 있는데, 이는 춘천시청이 행정절차를 위반하는 사후 현상변경허가를 신청하였다는 것인데, 이것은 곧 GJC의 무허가 공사에 대한 공사중지 및 원상복구 행정명령을 적법하게 발동하였던 춘천시청이 스스로 자신의 적법한 행위를 부정하는 것이며 춘천시청 자신이 고발까지 하였던 GJC의 무허가 범법행위를 지원하는 것이 되는 등 이중삼중의 자기모순 자가당착 상태에서 행정절차와 법질서를 심히 위반하고 있는 것이 되고 더구나 사업자인 GJC가 해야 할 현상변경 허가신청까지 대행하여 주는 공직자윤리법 위반까지 하고 있습니다. ( 행정절차 위반, 공직자윤리법 위반, 직무유기 등) 3) 원처분 사법경찰관의 조서에 의하면 강원도 문화재위원들이 원상복구를 하지 않은 이유가“(단순누락)현상변경 심의관련 기반시설 허가사항 미신청”로 되어 있는데, 설사 현상변경신청 누락이라 치더라도 위법은 위법입니다. 형법 제91조 국헌문란의 방지를 위해서도 법에 따라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사후 심의는 행정절차를 위반하는 위법행위이므로 사후 현상변경허가를 즉각 취소하고 해당부지의 그 현상을 원상복구해야 하겠습니다. 4) 원처분 사법경찰관의 조서에 의하면 강원도 문화재위원들이 원상복구를 하지 않은 이유가“행정적 실익, 공공의 이익”때문으로 되어 있는데, 바로 그러한 어떤 이익 때문에 위법이 정당화 되는 것이 바로 국헌문란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공공의 이익이라는 명분으로 불법을 정당화 하는 행위는 헌정질서문란 행위로 반란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형법 제91조 위반 등) 사후 현상변경심의에 관련된 자들을 전부 공개할 것을 요구하며 반란행위를 추가하여 처벌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5) 원처분 사법경찰관의 조서에 의하면 “강원도의 심의허가가 났으므로 불법공사는 아니다”라고 되어 있으나, 바로 그 사후 현상변경심의허가 자체가 행정절차를 위반한 불법이므로 GJC의 중도적석총 인근 공사는 불법공사가 맞다 하겠습니다. 6) 원처분 사법경찰관은 “피의자 안효란은 GJC에 대한 고발조치를 전결한 사람으로써 직무에 대한 의식적 방임·포기·거부를 찾을 수 없다 ”라고 하였으나, 피의자 안효란은 무허가 불법공사중인 GJC에 대해 공사중지 및 원상복구 행정명령을 적법하게 발동하고 심지어는 고발조치까지 하고서도 곧이어 GJC의 그 무허가를 지원하여주는 사후 현상변경허가신청을 한 자로써 스스로 자신의 정당한 결정을 뒤집는 자가당착 이율배반에 빠지며 직무유기를 범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업자 GJC를 위해 사후 현상변경허가신청을 대행하여주기까지 하였습니다. (직무유기, 공직자윤리법 위반 등) 7) 추가 고발합니다. 별첨1. 강원도고시 제2014-531호의 도면을 보면 범법자들은 중도적석총 도지정 문화재보호구역 외곽경계로부터 300미터이내 역사문화환경 원지형보존구역내에서 현상변경 허가를 득하지않고 무허가 불법공사를 해왔을 뿐만 아니라, 도지정 문화재보호구역 자체를 관통하는 도로공사를 하고 옹벽을 쌓는 등 문화재를 파괴하였습니다. 상기 피의자들은 문화재 보호 및 관리 책임자들로써 그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문화재보호법 위반 등) 8) 법은 법이기 때문에 법대로 처리해야 합니다. 행정적 실익이나 공공의 이익을 핑계로 불법을 정당화 하는 것이 바로 형법 제91조 국헌문란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국가가 이익을 위해 불법을 정당화 하게 되면 국민들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불법을 정당화 하게 될 것이며 결국 국가의 법질서는 무너지게 될 것이고 법치국가의 법치 또한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그 어떠한 경제적 이익이라 할지라도 국가의 법보다 우선시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3. 결 어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피의자의 범죄사실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보아야 할 것인데도, 원처분 사법경찰관은 법리를 오해하거나 또는 피의자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믿고서 부당하게 불송치 결정을 하였는바, 고발인의 억울함이 없도록 반드시 이 사건을 재수사하여 피의자를 엄히 처벌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피의자 안효란으로 하여금 당초 자신의 적법한 결정이었던 공사중지 및 원상복구 행정명령을 끝까지 관철할 수 있도록 사법부와 검찰과 경찰은 올바른 수사와 판결을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4. 별 첨 - 강원도고시 제2014-531호.끝. 2022. 04. 06 . 위 신청인 오 정 규 (인) 춘천경찰서장 귀중

    레고랜드에 짓밟힌 문화 유적지, 춘천 중도!

    레고랜드에 짓밟힌 문화 유적지, 춘천 중도! 춘천시에 위치한 테마파크 레고랜드가 2022년 3월 26일 준공되었으며 2022년 5월 어린이날에 정식 개장한다. 레고랜드는 대한민국에 정식 개장하는 최초의 "외국 프랜차이즈 테마파크"다. 그동안 대한민국에 무수히 많은 외국 테마파크 프랜차이즈들이 입점을 시도했으나 여러 이유로 줄줄이 무산되었는데 그 중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테마파크가 레고랜드이다. 레고랜드 부지는 하중도의 5분의 1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레고랜드이며 아시아에서 가장 큰 레고랜드이다. 그런데 레고랜드를 지을 곳을 찾지 못해 그나마 춘천 하중도를 찾았는데 하필이면 그곳에 공사가 진행되던 도중 세계 최대 규모의 선사시대 유적이 발굴되는 바람에 엄청난 난관을 겪었다. 한반도 최대 규모 선사 시대 유적이 발굴되어 이를 갈아버리고 지을 것인지, 아니면 이를 보존할 것인지 논란이 심한 가운데 공사가 진행되었고 결국 개장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꾸준히 중도 레고랜드 건설을 반대했던 '중도유적 보존 범국민연대회의'에서는 계속해서 다방면으로 중도의 복원을 위해 싸울 것을 밝혔다. 그 한가지 방법으로 연대회의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에게 역사문화분야 정책을 제안했다. 다음은 제안서 내용이다. 제20대 윤석열 대통령 역사문화분야 정책 제안 영토보다 근본인 우리역사문화를 지켜냄으로써 헌법을 수호하고 성공한 대통령! 성공한 정부!를 위한 제20대 대통령 정책과제를 첨부와 같이 요청 드리오니 국민의 간절한 뜻을 받으시고 반드시 정부 실행과제로 선포하여 주시기를 청원 드리는 바입니다. 별첨1. 우리 역사문화 말살시대를 멈추어야 합니다! 1. 춘천 중도유적을 원상복원하여 중도시국으로 만들어 세계 최고의 역사문화관광명소로 만들어야 합니다. 2. 가야고분군 유네스코 등재시 임나일본부론에 따른 일본서기 지명인 기문국과 다라국을 삭제하고 등재. 3. 김포 장릉 역사문화환경보존구역의 그 현상을 원상복구. 4.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에 신설된 “강원도 예맥역사문화권”에 “중도 전체”를 포함. 5.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에 “고조선 역사문화권”을 추가로 신설 6. 대선과 총선에 출마하는 입후보자들의 역사의식 검증절차를 제도화. 7. 역사청 신설. 별첨 2. 헌법 제9조 “전통문화 계승발전 민족문화 창달”에 입각한 제 20대 대통령 역사문화 분야 정책 과제 우리 역사문화 말살시대를 멈추어야 합니다! 1. 중도유적 원상복원! 1-1. 춘천 레고랜드는 헌법을 위반하고 수많은 불법과 비리로 얼룩져 있으므로, 법과 원칙에 따라 즉각 철거해야 함! 1-2. 중도유적 가치평가 재실시를 통하여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한 후 차제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1-3. 중도 선사유적지를 중도의 천혜의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세계 최고의 역사문화관광명소로 만들어야 함! 1-4. 우리역사를 통사적으로 관측할 수 있는 중도유적을 수십년을 두고 정밀히 발굴조사해 나가야 함. 1-5. 중도시국 건설! 대한민국 안에 중도시국!을 건설하여 바티칸시국을 능가하는 세계 최고의 역사문화 명물로 만들어야 함! 2. 가야고분군 유네스코 등재시 임나일본부론에 따른 일본서기 지명인 기문국과 다라국을 삭제하고 등재! 3. 김포 장릉 역사문화환경보존구역의 그 현상을 원상복구! 4.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에 신설된 “강원도 예맥역사문화권”에 “중도 전체”를 포함하여야 함! 4-1. 상기 특별법은 2020년 6월에 공표되어 2021년 6월부터 시행되었는데, 강원도만 누락되어 있어 강원도민들의 요구에 따라 얼마전 지역구 허영의원이 대표발의하여, 강원도를 예맥역사문화권으로 하여 특별법에 추가하는 개정 발의가 이루어 짐. 5.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에 “고조선 역사문화권”을 추가로 신설해야 합니다! 5-1. 상기 특별법에 고조선 역사문화권을 신설하여 중도와 전국의 고인돌들과 암각화들을 고조선 역사문화권에 포함하여 영구히 보존하여야 합니다. 6. 대선과 총선에 출마하는 입후보자들의 역사의식 검증절차를 제도화! 7. 대통령 직속의 청을 두되 어떤 정권이나 정부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학문과 학자들 위주의 우리민족사 보존과 발굴에만 목적을 두는 역사청 신설. 별첨 3. 레고랜드 건설로 파괴되고 있는 1만년 우리역사_춘천 중도유적을 복원하라 (중도유적은 왜 특별한 유적인가?) 1만년춘천중도역사유적살리기백만국민서명운동본부 중도유적 8000년! (로마유적 2000년!) 중국의 동북공정을 막아낼 춘천 중도유적! 역사와 문화재는 그 나라의 영혼이요 심장이다! 고인돌이 무려 166기가 모여있는 선조들의 고대 현충원! 고인돌 집단군_ 지금은 해체되어 잡석 처리되어 비닐하우스에 야적되어 있다. 중도유적은 고대 도시유적이라 한다! 세계 최고의 관광자원! 춘천 중도유적! 중도섬(39만평) 전체가 유적지 그러나 중도유적지는 무참히 파괴당하고 있다! 1만년 우리역사와 중도유적을 파괴하는 레고랜드 몰아내자! 중도유적을 짓뭉개고 레고랜드를 짓고 있다. 영국 해적들에게 중도땅을 100년간 무상임대(할양)해준 최문순 강원도청! 중도는 제2의 홍콩이 되었다! ○ 춘천 중도(中島)유적은 왜 특별한 유적인가? 유물유적 몇점이 나온 유적지가 아니고 39만평 중도 전체적으로 1만여점 이상의 유물유적이 발굴되었으며 전일적인 체계를 갖춘 고대 도시유적이 출현한 것임. 중도 고대 도시유적지는 중도 주변의 천혜의 자연경관과 더불어 세계최고의 관광자원이며 후대들에게 만년 관광자원이 됨. 최고 8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신석기시대 유적부터 청동기, 철기, 고조선, 삼국시대, 고려 및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유적들이 겹쌓여있는 층층이 유적지로써 매우 희귀한 유적지이며 우리민족의 1만년 역사를 통사적으로 관측해볼 수 있는 더없이 소중한 역사유적임.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침탈을 막아낼 우리역사의 증거 유적임. 고인돌이 무려 166기가 모여있는 선조들의 고대 현충원 또는 국립묘지임. ○ 영토를 빼앗길지언정 역사를 빼앗겨서는 안된다! 빼앗긴 영토는 힘을 길러 다시 되찾을 수 있으나 역사를 잃어버리게 되면 결국 그 민족이 해체되어버리므로 영원히 되찾지 못하기 때문이라 한다! ○ 강대국들의 역사왜곡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역사 증거인 유적이 있으면 역사왜곡을 못한다. 유적이 있으면 심지어는 왜곡된 역사를 다시 바로 잡을 수 있다. ○ 온갖 불법과 탈법이 난무한 레고랜드 건설은 원천적으로 무효이다. 중도유적 문화재 원형보존점수가 91.77점(기준점수 74.31점)으로 매우 높았음에도 원형보존을 하지 않고 개발을 허락한 점. 별첨 4. 대한민국 역사 청 신설에 대한 정책 제안 역사청의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