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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일노회 정기회..김광철목사의 포용과 김기현목사의 복귀
    경일노회 제43차 정기회가 10월 13일 오전 10시 염창중앙교회(송원석 목사 시무)에서 모여 회무를 처리하고, 최대한, 김지훈씨를 강도사 인허, 박정하, 정재웅, 김신영, 정민재씨를 목사임직했다. 이날 제110회 총회(총회장 장봉생 목사) 합동타임즈조사처리위원회(위원장 이형만 목사)에 의해 직무정지된 노회장 김기현 목사 문제가 다뤄졌다. 제111회 총회(총회장 정영교 목사)는 경일노회에 합동타임즈조사처리위원회의 징계가 원인무효라는 결정 공문을 보내왔기에 이날 노회를 재판회로 변격해, 임시노회를 열어 김기현 목사에게 내렸던 “노회장 직무정지 · 2년 총대 정지 처분”을 취소하고 해벌해 직무 복귀했다. 이 과정에서 김기현 목사는 총회를 바르게 세우는 언론의 역할을 감당하다 노회와 김광철 부회록서기 후보에게 피해를 준 점에 대해 사과했다. 김광철 목사는 김기현 목사가 발행인으로 있는 언론으로 인해 노회가 피해를 받은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으나 넓은 마음으로 수용하고 2년 후 부서기 후보로 나설 것을 노회원들 앞에 공식 발표했다. 김광철 목사는 경선에서 유리한 입장이었으나 제110회 총회 천서위원회(위원장 김용대 목사)가 총회 2시간 전에 경일노회를 천서제한했다. 천서제한에 대해 경일노회가 대응할 시간을 주지 않은 문제가 있다. 이 천서제한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위원장 김용대 목사에게 있다. 그리고 김광철 목사가 선거를 하지 못한 책임은 110회 총회장 장봉생 목사와 선관위원회 서기 김종철 목사에게 있다. 김종혁 선관위원장은 김광철 목사가 선거할 수 있도록 화요일에 부회록서기에 대한 선거를 하자고 제안했다. 이때 장봉생 목사와 김종철 목사는 거절했고 결국 육수복 목사는 단독이 되어 투표 없이 당선됐다. 이후 총회장으로 취임한 정영교 목사는 천서위원회가 천서제한했던 모든 노회의 천서를 허락했으나 이미 선거가 끝났기에 김광철 목사는 선거도 치러보지 못하고 낙선됐다. 그러면 이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합동타임즈조사처리위원회 위원장 이형만, 천서위원장 김용대, 총회장 장봉생, 선관위서기 김종철 목사에게 있다. 이들은 총회 선거를 방해한 해총회자들이다. 반드시 이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현재 장봉생, 김용대 목사는 천안중부교회 제명출교자 박요한 불법위임식과 관련해 조사를 받고 있다. 또한 총회임원회에도 이에 대한 진정서가 접수되어 있다. 이들이 헌법을 어겨가며 제명출교자를 위임한 이유를 밝혀 그 책임도 물어야 할 것이다. 개회예배는 서기 박형선 목사의 인도로 부노회장 김종섭 장로가 기도, 회록서기 조현민 목사가 엡 4:1-3을 봉독, 염창중앙교회찬양대가 찬양했다. 노회직무대행 정상혁 목사가 ‘부르심에 합당한 삶’이란 제목으로 “우리는 부름받은 자로서 합당하게 행해야 한다. 이는 은혜의 무게에 걸맞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부르심의 자리에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겸손, 온유, 오래참음, 사랑으로 용납하며 살아야 한다. 또한 평안의 메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한다.”라고 설교 후 축도로 예배를 마치고, 신용구 목사의 집례로 성찬식을 갖고 회무를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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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회
    2026-10-13
  • 황서노회 정기회 모여..유병희 목사 총회서기 당선 축하
    황서노회 제147회 정기회가 10월 12일 오전 11시 예우림교회(유병희 목사 시무)에서 모여 유병희 목사의 제111회 총회 서기 당선을 축하하고, 회무를 처리하며 강도사 인허식을 했다. 총회 서기 유병희 목사가 “우리 황서노회 목사님 장로님들이 적극적으로 기도해 주시고 도와주셔서 제가 서기가 되었습니다. 이번 111회 총회도 참 은혜스럽게 잘 마쳤고 또 오늘 강석로 목사님 오셨는데 너무나 감동적입니다. 우리가 황동노회에서 갈라지면서 임원된 분들이 없었는데 제가 이제 총회에서 일할 때 우리 총회장님 잘 섬기고 또 법과 원칙을 따라서 잘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하고 싶은 것은 미자립교회, 연약한 교회, 농어촌 교회 또 CE와 SCE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살려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올해 예산도 제가 강력하게 부탁해 CE와 SCE, 미자립교회에다 많이 배정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진짜 한국 교회가 다시 일어나고 우리 합동측 교회가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열심히 뛰겠습니다. 기도해 주시고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감사 인사말했다. 부천삼락교회 강석로 목사가 “유병희 목사가 총회서기가 된 것은 노회적으로 큰 축복이며 앞으로 총회장까지 하기를 바란다.”라고 축하했다. 개회예배는 서기 이인수 목사의 인도로 부노회장 박동순 장로가 기도, 회록서기 김재순 목사가 호 3:1~5을 봉독, 예우림교회 장로회가 찬양했다. 노회장 이기봉 목사가 ‘승리적 헌신과 성공 인생’이란 제목으로 “우리는 다 성공을 원한다. 그런데 성공은 실패 너머에 있다. 성공의 기준은 무엇인가? 호세아 선지자 당시 사회적으로는 풍요로웠으나 영적으로는 우상을 숭배하며 타락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자와 결혼해 음란한 자녀를 낳으라고 했다. 이것은 따르기 어려운 명령이며, 큰 희생이 따르는 요구였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내며 아내 고멜은 타락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징한다. 우리는 호세아처럼 희생하며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야 한다. 그럴 때 진정한 성공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해야 한다. 또한 고통을 감당해야 한다. 그리고 진솔한 삶을 살아야 한다.”라고 설교했다. 이어 고정용 목사의 집례로 성찬식 후 증경노회장 홍인택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예우림교회에서 제공한 식사 후 회무시간에 열린문교회와 건강한교회의 합병 청원을 허락하는 등 안건을 처리하고, 신두섭 · 방요한 씨의 강도사 인허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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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회
    2026-10-12
  • 김성수 장로, 행복한 칠순 잔치 열어
    교육계에서 한평생 수고한 김성수 장로가 칠순을 맞이한 10월 10일 오전 11시, 자녀들이 기쁨으로 잔치를 베풀고 소수의 지인들을 청해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은퇴 후 계전리에 머물며 농사를 지으면서 일상을 페이스북에 올리는데 팔로워가 7500여명이나 되고, 현역 시절 못지않게 분주히 많은 일을 감당하며 교회, 단체, 사회일을 하고 있다. 참석자들은 칠순을 축하하며 앞으로도 부부 모두 건강하게 살기를 축원했다. 이력 • 2021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교육 부문) 수상 • 대통령 표창, 교육부 총리인적자원부 장관상, 국무총리상 등 수상 성석교회 장로 서울오케스트라 이사 용인여성합창단 상임지휘자 서울외국어고등학교 이사 기빙플러스 밀알나눔재단 이사장 한국예술가곡총연합회 상임이사 서울중등퇴직교장평생동지회 회장 후레초중고등학교장 성남노회목회자부부합창단 지휘 서라벌고등학교총동창회장역임 서울특별시성동광진교육지원청발전자문위원 서라벌고등학교운영위원 서울특별시동작관악교육지원청 교육장 구로고등학교 교장 창덕여자중학교 교장 서울서부교육지원청 장학관(과장) 서울동부교육청 장학관(과장) 서울독산고등학교 교감 서울 서초중학교 교감 서울강남교육청 장학사 서울동작교육청 장학사 서초고등학교 교사 대영고등학교 교사 숭인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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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물
    2026-10-10
  • 제111회 총회 첫 임원회, 비정상의 정상화 시작
    제111회 총회(총회장 정영교 목사) 첫 임원회가 10월 9일 열렸다. 이날 여러 해 분란을 겪고 있는 천안중부교회 담임 김종천 목사 측의 서수원노회 가입과 총회 전산등록을 결의했다. 다툼 중인 천안중부교회에 여러 인간들이 개입해 하이에나같이 이권을 챙겼다. 같은 노회 이00 목사는 자신이 담임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악착같이 김종천 담임목사를 내쫓을려고 몸싸움까지했다. 그리고 총회에서 해산된 노회의 소집권을 받을려고 당시 고00 목사에게 7천만원을 건낸 후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이를 언론을 통해 알리고 돌려받았다. 부서기였던 서00 목사는 전남노회에서 함께 징계 받아 제명출교된 박00을 담임목사 반대 측 설교 목사로 보내더니 곧 공동의회를 열고 위임청빙했다. 110회 총회장, 서기, 회록서기가 가서 이 자의 위임식을 주관했다. 제명출교된 자가 담임이 된 기적이 바로 성탄절에 총회 임원들에 의해 이뤄졌다. 그리고 총회 임원회는 박00을 전산에 담임으로 등록하고 대표자 증명서를 발급하는 “짓거리”를 했다. 이 모든 일이 정상적인가? 이런 일을 아무거리낌없이 자행하는 110회 정임원들을 보며 절망했다. 그러나 제111회 총회 임원들을 통해 비정상의 정상화가 시작됐다. 총회 전산망에 김종천 목사가 천안중부교회 담임으로 등록됐다. 이렇게 쉬운 일을 왜 지난 110회 총회 임원들은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해서는 안될 일만 골라서 했는가? 결국 불법위임식을 행한 임원들은 고발되어 경찰 조사를 받았고, 그 일에 큰 돈이 건네졌다는 내부자 폭로가 있어 이 일은 앞으로 조사를 통해 밝혀져야 하고, 드러나면 총회에 큰 파장이 있을 것으로 보여 당사자들은 떨고 있다고 한다. 110회 총회는 정책총회를 표방했지만 정임원들은 비정상적인 일을 도모했다. 부임원들은 정임원들이 하는 일을 보며 속이 상했을 것이다. 이제 정임원들은 물러나고 부임원들이 정임원이 됐다. 먼저 할 일은 전 임원들이 비정상적으로 한 일을 정상화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개혁이고, 이것만해도 전 총대원들은 “이번 111회기는 역시 다르다”는 평가를 할 것이다. 실제로 정영교 목사는 총회장이 되어 사회를 보자마자 앞서 천서 제한 당했던 모든 노회들의 천서를 허락했다. 이것부터가 비정상의 정상화였다. 비정상화의 정상화 행보를 시작한 제111회 총회 임원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하나로, 미래로, 거룩함으로” 중단없이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첫 단추를 잘 꿰어 속이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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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회
    2026-10-09
  • 월기총, 제13차 총회 준비 조찬 기도성회 및 세미나
    월드기독교총연합(이사장 정진희 목사) 제13차 총회 준비 조찬 기도성회 및 세미나가 10월 9일 오전 7시 서울신학교회(김춘환 목사)에서 열렸다. 이사장 정진희 목사가 “월기총이 더 크게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오고 있다. 믿음으로 잘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인사말했다. 제1부 기도성회는 정진희 목사의 인도로 이형춘 목사가 기도, 박선규 목사가 계 21:4을 봉독했다. 수석총재 박승주 목사가 ‘천국을 누리며 삽시다’란 제목으로 “이 땅에서도 천국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 몸과 영혼이 잘 관리되어야 한다. 먼저, 몸을 잘 관리해야 한다. 우리 몸은 성전이다. 정금과 같은 성전을 관리하듯이 관리해야한다. 둘째, 혼을 잘 관리해야한다. 이는 마음 관리를 뜻한다. 예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한다. 좋은 마음을 갖고 하나님과 주파수를 맞춰 살아야 한다. 셋째, 영을 잘 관리해야 한다. 성령에 이끌려 말씀 따라 살아야 한다. 영적 교제 속에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 기도하고 예배하며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해야 내세의 천국을 소망할 수 있다.”라고 설교했다. 김복례 목사가 광고 및 인사 후 박승주 목사가 헌금축복 및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특강 제2부 특별강연·축사는 정진희 목사의 사회로 서울신학교회 김춘환 목사가 “기도는 하나님 앞에 향기이다. 하나님을 기쁘게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라고 축사, 이석인 목사가 ‘정사와 권세를 진리로’란 주제로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에 우리가 쓰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다윗처럼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특강, 참사랑교회 김명주 목사가 “우리도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야 한다. 재림 신앙으로 살자. 월기총이 더욱 확대되어 큰 일을 감당하기 바란다. 서로를 귀히 여기며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특강 후 박재천 목사가 성시낭송하고 모임을 마무리하고, 식당으로 옮겨 박승주 목사가 대접하는 조찬을 나누며 친교했다. ※ 합심 기도제목 1. 한민족복음화·월드선교 인재양성 2. 치매예방·건강복지 연속 사역 3. 월기총 13차 총회 준비를 위하여 ※ 광고 1. 오늘 기도성회에 은혜로운 말씀을 전해 주신 박승주 목사님과 참석하신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2. 좋은 장소를 제공하신 서울신학교회 김춘환 목사님과 사모님께 감사 드립니다. 3. 모든 순서를 마치고 박승주 목사님께서 제공하시는 조찬을 하며 친교를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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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관
    2026-10-09
  • 서북지역노회협의회, 제23회 체육대회 폐회예배
    서북지역노회협의회(대표회장 배만석 목사)가 주최한 제23회 체육대회(체육위원장 윤영민 목사)가 10월 8일 오전 8시 개최되어 좋은 날씨에 맘껏 뛰며 하나되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1부 폐회예배는 체육위원회 총무 김병오 목사의 인도로 체육위원회 부위원장 장승수 장로가 기도, 본회 서기 정여균 목사가 빌 3:12-14을 봉독했다. 증경회장 이은철 목사가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란 제목으로 “계속해서 걸어가는 자만이 길을 걸어갈 수 있다. 인생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상을 얻기 위해 달려가야 한다. 부르심의 상을 위해 달려갈 수 있기 바란다.”라고 설교했다. 특별기도 1.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수양회위원장 조대천 목사가 2. 복음 통일을 위하여 북한선교위원장 조영기 목사가 3. 총회와 총신대를 위하여 실무회장 김신근 목사가, 4. 해외선교사와 이주민 선교를 위하여 장로증경상임회장 현광욱 장로가, 5. 서북협의회와 산하 지교회를 위하여 실무회장 김용제 목사가 특별기도 후 체육위원회 서기 박동규 목사가 광고, 본회 상임회장 김학목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2부 종합 시상식은 체육위원회 총무 김병오 목사가 성적발표, 체육위원회 위원장 윤영민 목사가 시상진행, 대표회장 배만석 목사가 시상, 체육위원회 부위원장 김성찬 목사가 경품추첨, 증경회장 • 지도위원 김동관 목사와 체육위원장 윤영민 목사가 인사 후 증경회장 이춘복 목사의 폐회기도로 즐거운 체육대회를 마무리했다. 광고 1. 제23회 서북지역노회협의회 체육대회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2. 말씀을 전해주신 설동욱 목사님과 이은철 목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순서를 맡아주신 목사님, 장로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3. 행사 진행을 위해 후원과 협찬을 해주신 모든 목사님 장로님들과 업체들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4. 오늘 선수들의 안전을 위해 수고해주신 구리 윤서병원 의료진에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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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10-08
  • 서북지역노회협의회, 제23회 체육대회 개회예배
    서북지역노회협의회(대표회장 배만석 목사)가 주최한 제23회 체육대회(체육위원장 윤영민 목사)가 10월 8일 오전 8시 남양주체육문화센터에서 개최 되어 좋은 날씨에 맘껏 뛰며 하나되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대표회장 배만석 목사가 “오늘 만남 통해 우리가 서로 가까워지고 연합하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대회사했다. 체육위원장 윤영민 목사가 "복된 날에 안전하고 행복한 하루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환영사했다. 1부 개회예배는 체육위원장 윤영민 목사의 인도로 장로상임회장 김성대 장로가 기도, 본회 부서기 손대성 목사가 전 4:9-10을 봉독했다. 실무회장 설동욱 목사가 ‘함께 달릴 때 우리는 강해집니다’란 제목으로 “혼자 수고하는 것과 함께 수고하는 것은 상이 다르다. 맡은 역할을 달라도 같은 주님을 섬기니 서로의 수고를 귀하게 여기고 협력하자. 함께 수고함으로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라고 설교했다. 체육위원회 총무 김병오 목사가 광고 후 증경회장 최재우 목사의 축도로 마쳤다. 축사 2부 격려와 축사는 증경회장 • 지도위원 김동관 목사가 “서북의 끈으로 하나되는 즐거운 체육대회 되기 바란다.”라고 환영사, 증경총회장 김선규 목사가 “끝까지 잘 경기하시기 바란다.”라고, 증경회장 권순직 목사가 “끝까지 잘하시기 바란다.”라고 격려사, 총회 서기 유병희 목사가 “서북 화이팅! ”라고, 총신재단 이사장 이철우 목사가 “모든 노회가 하나되기 바란다.”라고, 장로부총회장 손원재 장로가 “부총회장 되는데 도와주심에 감사드린다. 열심히 잘 하겠다.”라고 축사했다. 본회 상임총무 김태영 목사가 내빈소개, 대표회장 배만석 목사가 대회선언, 선수대표 체육위원 문태인 목사가 선서 후 본회 회계 김완겸 장로가 애찬기도하고 식사교제의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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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10-08
  • 전남연, 조형국 회장 이임·최병도 회장 취임 감사예배
    전국남전도회연합회 46회기 회장 조형국 장로 이임, 최병도 장로 취임 감사예배가 10월 7일 오전 11시 총회 회관 5층 예배실에서 있었다. 명예회장 조형국 장로가 “지난 1년은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진 시간이었다. 어려울 때 기도를 통해 피할 길이 생겼다. 전도훈련과 진중세례식, 코린신학교 방문 등은 은혜의 시간이었다. 함께 수고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라고 이임사, 회장 최병도 장로가 “하나님을 감동시키도록 겸손히 최선 다해 섬기겠다. 기도 많이 부탁드린다.”라고 취임사했다. 예배는 증경회장 김대규 장로의 인도로 부회장 남석필 장로가 기도, 서기 심재기 장로가 고전 16:13-14을 봉독, 이숙경 권사가 특송했다. 총회장 정영교 목사가 ‘내가 붙들어야 할 3가지 신앙의 자세’란 제목으로 “첫째, 깨어 믿음에 굳게 서자. 이는 예배자로 살라는 것이다. 주님의 임재를 믿고 예배드리자. 예배의 감격을 잊지 말자. 둘째, 남자답게 강건하라. 이는 용기백배해 믿음을 지키라는 것이다. 셋째,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라고 설교했다. 격려사 부총회장 송기섭 목사가 “한 회기 수고하셨고, 새 회기 잘 충성하실줄 믿는다. 한번 더 기도하라. 깊이 생각하라. 고개 숙이고 인사하라. 잘 청종하라. 남보다 한발짝 앞장 서라.”라고, 전도부장 이권희 목사가 “출 33:11 하나님은 모세와 대면해 말했다. 리더십은 기도에서 나온다. 모세는 하나님과 친밀했기에 지도자가 됐다. 전도도 기로로 시작하는 것이다.”라고, 총회회계 안수연 정로가 “시작도 중요하나 마지막이 중요하다. 하나님께 마지막에 칭찬받으시기를 바란다.”라고, 기독신문사장 고동운 장로가 “한 회기 많이 수고하셨고, 또 새 회기에도 많이 수고하시기 바란다. 군선교, 미자립교회를 위해 많이 수고하고 있는데 엡 2:22말씀처럼 함께 하겠다.”라고 격려사, 한국교회평신도단체협의회대표회장 오수철 장로가 “최 장로께서는 많은 자리에서 일하셨다. 건설회사 사장의 리더십으로 잘 감당하셔서 복 받으시기를 바란다.”라고, 증경회장 신신우 장로가 “전남연은 교단에서 전도에 핵심적인 부서다. 한 회기 열심히 하셨다. 최 회장은 CE출신으로 칭찬받는 회기가 되기를 바란다. 금식하며 성경 읽으면서 감당하시기 바란다.”라고, 증경회장 강신홍 장로가 “그동안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은 우리를 택배 인생으로 쓰시기를 원하신다. 주님의 향기를 드러내기 바란다.”라고, 증경회장 김영구 장로가 “시 133:1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아름답다. 선한 일 많이 하시기 바란다.”라고 축사했다. 이어 총무 하정민 장로가 광고 후 총회장 정영교 목사의 축도로 회장 이취임 감사예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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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10-07
  • 요한선교단, “감사와 찬양으로 올려드리는 1일 성경통독”
    성경 통독과 암송을 통해 건강한 신앙생활을 추구하는 요한선교단(대표 천귀철 목사)이 “감사와 찬양으로 올려드리는 1일 성경통독” 모임을 10월 5일 광진구에 소재한 성광교회(천주찬 목사 시무)에서 갖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시가서(욥, 시, 잠, 전, 아) 통독하고 암송하며 은혜 받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대표 천귀철 목사(성광교회 원로)가 다쳐 전 대표 김동진 목사가 모임을 진행했다. 오전 9시 김동진 목사가 성경의 핵심에 대해 설명하고 통독과 암송을 진행하다 성광교회에서 정성껏 준비한 점심 식사 후 계속해서 성경을 읽고 암송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후 6시에 통독을 마치고 김동진 목사가 “말씀대로 살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받아 누리자.”라고 말한 후 헌금축복기도 후 은혜로웠던 모든 순서를 마무리했다. 성경 암송, 통독1 성경 암송, 통독2 성경 암송, 통독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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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10-05
  • 재경호남협의회 주최, 정영교 총회장 취임감사예배 드려
    제111회 총회 정영교 총회장의 취임감사예배가 재경호남협의회(대표회장 이경석 목사) 주최로 10월 5일 새에덴교회(소강석 목사 시무)에서 있었다. 이날 호남 측 서기 유병희 목사, 부회록서기 육수복 목사도 함께 축하받았다. 총회장 정영교 목사가 “하나님의 절대주권으로 총회장이 되었다. 힘들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재경호남, 전국호남, 전국의 총대들이 함께 하기에 감당할 수 있다고 믿는다. 모든 분들에게 감사 드린다. 장소를 제공한 새에덴교회에 감사드리며 순서를 맡은 분들에게도 감사드린다. 주님 바라보며 좋은 열매를 맺도록 하겠다. 기도해 주시고, 좋은 의견들 문자로 말씀해 주시기 바란다. 총회장 나가도록 권한 김용대, 고광석 목사에게 감사한다. 생명을 살리고 성장시키는 일을 감당하기를 바란다.”라고 답사했다. 제1부 예배는 이경석 목사(대표회장)의 인도로 수석운영회장 최규운 장로가 기도, 서기 심태 선 목사가 엡4:11-12을 봉독, 새에덴교회 성가대가 찬양했다. 증경총회장 소강석 목사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영광’이란 제목으로 “저는 총회 정치를 비열하게 해본 적이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기 위해 부름 받았다. 총회장 시절 코로나 시기 어려운 교회들을 도우며 그 때를 지나왔다. 그런데 기독교에 대한 호감도는 계속해 내려가고 있다. 이때 교회를 세우고 호감도를 높이는 총회장이 되시기를 바란다. ”라고 설교했다. 이어 복음가수 김문기 장로가 특송하고 광신대학교 총장 박은식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축사 격려사 2부 축하시간은 정봉기 목사(사무총장)의 사회로 새에덴교회 음악목사 박주옥 목사가 특별찬양, 증경회장 오범열 목사가 “돛단배는 태평양을 건널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로 정 목사님이 대교단의 총회장이 되셨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기 바란다.”라고, 증경회장 윤익세 목사가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을 믿고 기도로 돕자.”라고, 실무회장 조영기 목사가 “총회장 되심을 축하드리며 섬김과 헌신으로 막중한 사명을 감당하시기 바란다.”라고, 전국호남협의회직전회장 이형만 목사가 “총회는 하나님께서 이끄시고 인물을 세우신다. 잘 감당하시는 임원회가 되시기를 바란다.”라고, 증경상임회장 정채혁 장로가 “하나로 미래로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총회가 되기를 바라며, 또한 당선되신 모든 분들을 축하드린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며 맡은 바 일을 감당하시기 바란다.”라고 축사, 증경회장 윤창규 목사가 “정 총회장은 교회의 회복과 부흥에 관심이 크다. 그 소원대로 이뤄지는 역사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라고, 수석실무회장 윤영민 목사가 “호남은 총회장과 함께 할 것이다. 총회를 목회하듯이 하셔서 살리는 일 하시기를 바란다.”라고, 실무회장 이상달 목사가 “교회에는 믿음이 큰 자도 작은 자도 있다. 다양한 사람들을 품고 총회를 이끌어가시기 바란다.”라고 격려사했다. 축하패 전달 대표회장 이경석 목사가 정영교 목사(총회장), 유병희 목사(서기), 육수복 목사(부회록서기)에게 축하패를 전달 후 사무총장 정봉기 목사가 광고하고 마친 후 교회 식당으로 옮겨 정성껏 준비한 애찬을 나누며 친교했다. 광고 1. 제111회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 하나로, 미래로, 거룩함으로 출발한 총회장 정영교 목사님, 서기 유병희 목사, 부회록서기 육수복 목사, GMS이사장 조승호 목사 취임 감사예배를 드리게 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2. 설교해 주시고, 장소와 식사를 제공해 주신 소강석 목사님과 당회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3. 본 행사를 위해 후원해 주신 윤익세 목사님, 윤영민 목사님, 이두형 목사님, 윤창규 목사님, 이경석 목사님, 이상달 목사님, 정채혁 장로님께 감사드립니다. 4. 기념품을 받아 가시기를 바랍니다. 5. 재경호남협의회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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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10-05

오피니언 검색결과

  • 【북토크452】 잊혀진 유태인 빨치산들 이야기
    2차 대전 가운데 항전한 여러 빨치산들이 있었다. 그들 중 유태인으로만으로 구성된 빨치산은 어디에나 속하지 못하고 겉돌았다. 가장 큰 고통을 당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계속 외면 당하는 유태인들의 아픔과 전쟁의 고통이 잘 드러난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예스24-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경험을 토대로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자전적 성찰 회고록을 쓴 이탈리아의 화학박사 프리모 레비의 자전적 장편소설이다. 생존 당시 세계의 수많은 양심적인 지식인들과 인문주의자들이 '당대의 가장 고결하면서도 가장 고독한 작가'라는 찬사를 보냈던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아우슈비츠 경험과 동유럽 유태인 빨치산 투쟁을 그렸다. "홀로코스트를 제대로 표현하기에는 인간의 언어가 너무 빈약하다"고 고백했던 프리모 레비. 홀로코스트 앞에서는 그 어떤 언어도 무력하고, 그 어떤 진실도 밝힐수록 더욱 초라해지지만 그는 기어이 그것을 언어로 표현해내고자 한다. '신이 없는 곳'이라고 불릴 정도로 참혹한 현장인 아우슈비츠에서 생존 자체를 혼란스러워 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우리네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나치의 추적과 공포로부터 숲속으로 도망다니는 이질적인 두 젊은 유태인의 야영생활을 그린 부분은 특히 인상적이다. 비록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지만 굳이 그걸 붙잡고 싶은 희망은 마치 질식상태 직전의 마지막 호흡과도 같은 것이다. 작가는 흥미진진한 빨치산 부대의 활동, 여러 강제수용소 포로들의 고백들, 러시아와 폴란드 빨치산 부대들과의 만남, 이따금 마주친 나치병사들, 빨치산 대원들의 사랑, 유태인 풍자극, 내면의 고통과 정신적인 변화 같은 이야기들을 드라마틱하게 전한다. "그리고 여기, 이 느슨한 하나의 공동체에 합류한 이상 우리에겐 비밀이 없네. 그게 여기 총책임자로서의 내 원칙이네. 그동안 많은 이들이 왔다가 떠나고 또 죽음을 맞기도 했지. 또 많은 젊은이들도 왔다가 내 허락과 무관하게 떠나갔네. 이 초라한 엉터리 공동체에서 기아와 공포 속에 떨며 무기력하게 살아가느니, 차라리 유격대에 가담해 화끈하게 싸우다 죽는 게 훨씬 뜻 깊을 테니까. 역설적으로 좌절과 절망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얼마든지 죽을 수 있는 게 젊은이들의 특권이 아닌가. 그만큼 무서운 게 절망이라네. 죽음에 이르는 병이지(p. 103) 파벨이 또 능청을 떨자 조제크가 슬쩍 핀잔을 주었다. 웃음이 가라앉자 게달레 대장이 점잖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늘, 진정한 사랑을 위해서는 사랑의 소유보다 점유를 더 중시해야 한다는 귀한 사실을 배웠군. 그렇지만 역시 문제는 실천이란 말이지. 문득 맑스와 엥겔스 선생의 지적처럼 '철학자들은 세계를 이러쿵저러쿵 해석만 할뿐 변화시키지는 않는다'는 말이 떠오르는 군. 그렇다고 해서 거꾸로 우리가 실천적인 빨치산이기 때문에 철학자들의 다양한 이론적 해석을 무시해도 좋다는 얘기는 더욱 아(p. 264)니네. 그걸 우려한 맑스 선생이 이미 100년 전에 일침을 가하기도 했지." "....” "이론적으로 철저하게 깊이 파고들지 않으면 혁명도 성공시킬 수 없다고 말야. 그러니 여러분들도 비록 가시밭길 같은 힘든 생활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욱 이론학습에 정진하길 바래. 난 책 없는 빨치산 배낭은 실탄 없는 총이나 조종사 없는 전투기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네. 그런 자들은 좋은 세상이 와도 살 자격이 없는 인간쓰레기들이지. 그리고 책은 읽고 난 다음엔 반드시 덮게. 오늘 라인과 시슬 동지가 제기한 여성해방 문제는 우리 남성들의 치부를 건드리는, 그러면서도 앞으로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보네. 라인의 지적처럼 남성의 야수적인 본능이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해결되지는 않기 때문이지?" ".." "오히려 거만하고 오만한 권력과 결탁해 더욱 교활한 폭력으로 바뀌겠지. 10월 혁명이 지난지 벌써 30년이 다 되어가네. 그 30년간 우린 이 두 눈으로 많은 실상들을 똑똑히 보고 겪으며 살아왔네. 우리가 쫓겨다니며 지금 딛고 있는 이 땅, 수십 년 동안 해결되지 않은 여성동지들의 삶과 불만사항들, 날마다 추방당하거나 처형당하는 형제들, 나치로 위장한 우리 붉은 군대의 대학살... 바로 그게 성공한 이 위대한 혁명사회의 알량한 현실이네..."(p. 265). 게달레 대장은 이 말이 곧 결론이라는 뜻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뒤쪽에 서 있던 멘델에게 말했다. "자네도 빨리 준비하게. 모험적인 전투에는 모험적인 전사가 필요한 법이지." "그렇지만 무모한 모험은 피하는 게··" "어떤 모험이든 처음엔 다 무모했네." "..." "콜럼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까지는 바다에 빠져죽은 수많은 탐험가들이 있었네. 바로 그 시체들을 딛고 올라섰기 때문에 그가 신천지를 볼 수가 있었던 거네. 어쩌면 우리도 그 시체들 중의 하나가 될지도 모르지. 운명이네."(p. 307). "포로가 전부 120명이었는데 우리 10명을 차출하고는 모조리 죽여버렸소." "어떻게 죽였소?" "넓은 자재창고에 다 몰아넣고는.. 석유를 뿌려 불태워버렸소...." "그런데... 당신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소?" "우리한테...그 짓을 대신 시켰어요...." "그래서 시키는 대로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단 말이오?" "안 하면 머리에 권총을 대고..." "..." 구레나룻 대머리가 죄지은 아이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기어들 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포로들도 모두 눈치를 보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게달레 대장은 어이가 없었다. 비명과 아우성이 들려오는 창고에 계속 석유를 뿌려대는 저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살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이것이 인간이란 말인가...? 과연 삶을 위해서는 모든 것이 용납되어야만 하는가? 도대체 삶이 뭐길래? 수천 년 동안 누구나 살다 죽었고 앞으로도 역시 그럴 것인데, 고작 100년도 안 돼 소멸되는 건 불멸의 이치가 아닌가... "대장님, 저 포로들은 풀어주고 이놈은 죽이고 빨리 철수하죠?" 게달레 대장이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있자 피오트르가 재촉했다. 그러자 라인이 포로들을 매섭게 쏘아보더니 분노한 음성으로 반기를 들었다. "저 포로들은 더 이상 인간들이 아니에요. 아무리 강압에 못 이(p. 314) 계 시키는 대로 했다고 하더라도 엄연히 자기 손으로 수백 명을 불 태웠어요. 그것도 자기와 똑같은 유태인 형제들을요." "어쩔 수 없었잖아? 안 그러면 자기도 죽는데..." "어쩔 수 없다니요? 그럼 내가 살기 위해 당신 가슴에 총을 쏘아도 괜찮다는 얘긴가요?" “...” 라인의 비수 같은 말에 피오트르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갑자기 분위기가 심상찮게 돌아가자 유태인 포로들이 동요하며 몸을 떨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대원들이 라인의 서릿발 같은 말에 수긍이 가는지 간혹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멘델도 라인의 전혀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슴에 찬바람이 불었다. "전 그렇게 생각해요. 아무리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상관이 시키는 대로 무조건 따라하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라구요. 도대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뭐죠? 제 아둔한 머리로서는 생각한다, 못 한다 바로 그 차이라고 봐요. 그래서 아무리 하늘같은 상관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그게 잘못된 명령이면 당연히 거역해야죠. 왜냐하면 인간은 바로 생각할 줄 아는 동물이니까요. 그런데 저 포로들은 자기들이 살기 위해 그런 생각을 모조리 유보해버린 거예요! 무뇌아나 짐승이 됐단 말예요!" “...” "설사, 저 사람들이 여기서 살아서 나간다고 하더라도 동료들을 죽인 죄책감과 자괴감 때문에 앞으로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겠어요? 전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요. 차라리 여기서 깨끗하게 죽는 게 자신들을 위해 훨씬 나을지도 몰라요."(p. 다음날 아침에 뜨거운 캔커피가 배급되더(p. 373)니 식기도 전에 날카로운 인상의 간부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대원들의 몸을 신체검사하듯 일일이 살핀 다음 다시 세 그룹으로 나누었다. 첫 번째 그룹은 거의 폴란드 빨치산들이었는데 간부가 말했다. "여러분들은 폴란드 출신 군인이고 계속 군인으로 살게 될 것이다! 새로운 군복과 무기가 지급되어 러시아군대로 편입된다!" "아니, 우리가 왜 붉은 군대가 돼야한단 말이오?" "옳소! 전쟁도 끝나지 않았소?" 폴란드 빨치산들이 웅성거리며 저항하자 보초병들이 일제히 총을 겨누었다. 분위기가 차츰 험악해져가기 시작했다. 간부가 다시 두 번째 그룹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러분들은 다른 방식으로 붉은 군대를 도울 것이다!" 에데크 대장이 포함된 10명의 소수그룹이었는데, 예전의 학생이나 점원 출신들이었다.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진 에데크가 버럭 소리쳤다. "이 폴란드 빨치산 부대의 대장은 나요!" "그 부대는 이미 해체된 걸 모르나?" "난 대장으로서 해체한 적이 없소!" "그 부대는 더 이상 존재이유가 없다. 아직 라디오방송도 못 들었나?” "무슨...라디오 말이오?" 그랬다. 며칠 전 폴란드 임시정부가 있는 영국의 '라디오 런던'에서 총사령관의 긴급메시지가 발표되었다. 내용은 소비에트 붉은 군대가 나치를 물리치고 폴란드를 해방시켰으니, 앞으로 폴란드의 모든 정규군대, 레지스탕스, 빨치산 부대들은 붉은 군대로 재편돼야 한다는 것이었다(p. 374) "그럼 이제 우리를 어디로 보낼 생각이오?" 에데크 대장이 한풀 꺾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 본인 소관이 아니라 알 수 없다. 다만 여러분들을 본부가 있는 지역으로 보내라는 명령만 받았을 뿐이다." 세 번째 그룹은 유태인 빨치산들이었는데, 게달레 대장과 슈물레크도 포함되었다. "현재로선 여러분들에게 내릴 명령이 없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은 군인도 아니고, 민간인도 아니고, 전쟁포로도 아니고, 그냥 남자와 여자들뿐이니까?" "우리는 빨치산이오." 러시아간부의 모욕적인 말에 속이 울컥했지만 게달레 대장은 최대한 억누르며 말했다. 그 간부가 다시 말했다. "러시아의 어느 빨치산이든 모두 소비에트 빨치산 연맹에 소속되어 있다. 그런데 유태인만의 독자적인 빨치산 부대에 관해서는 아직 들은 바가 없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여기에 머무르면서 상부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으니 그리 알기 바란다."(p. 375). 음침한 성채로 둘러싸인 글로가우는 게달레 대원들이 마주친 첫 번째 독일 도시였다. 대대로 석탄생산 중심지라 검고 우중충한 도시 주변으로는 철책이 쳐진 나치의 군수공장들로 빽빽했다. 임시 포로수용소로 쓰는 그 공장들에는 이제 나치포로들과 신분이 불확실한 각양각색의 빨치산들, 또 어쨌든 수상한 자로 찍히는 자들은 모조리 감금시켰다. 게달레 대원들 역시 도착하자마자 아무 확 인절차도 없이 한 공장에 곧장 수용됐다. 그 안에는 폴란드 유태인, 독일인, 프랑스인, 네덜란드인, 그리고 그로스-로젠에서 해방된 유태인 등 50여 명이 이미 수감되어 있었다. 나치에 맞서 목숨 걸고 싸운 대가가 죄수나 다름없는 포로신세였으니, 그 치욕감이 어떠 하겠는가. 결국 모두 자폐증 환자처럼 스스로의 가슴에 철책을 치고 완벽하게 고립시켰다(p. 389).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투하!" 연합군, 특히 미군이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만 것이었다. 멘델도 가슴이 무너져내려 저 검은 버섯구름만큼이나 후폭풍이 솟아올랐다. 제2의 드레스덴 폭격만큼은 그토록 없기를 바랐는데, 수십만의 무고한 시민들이 아침햇살 속에서 '리틀보이'라는 이름의 핵폭탄을 맞자마자 처참한 시체로 변했다. 평화라는 이름으로 복수가 복수를 불렀고, 자유라는 이름으로 탐욕이 탐욕을 부른 것이었다. 과연 이런 역사는 언제까지 되풀이될 것인가? 멘델은 현기증이 일어나(p. 436)고 도통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지금 당장은 또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는 문득 지난 모든 것을 잊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내 삶의 단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고향으로 가 나치가 총살해 아무렇게나 묻어버린 아내의 시신을 찾아 제대로 묻어주는 게 그 첫 단계로 판단되었다. 비록 예루살렘에 가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 다음은? 그 다음 단계는 그 다음에 생각하기로 했다. 병원을 뛰쳐나온 멘델은 지체 없이 발길을 돌려 밀라노 중앙역으로 달렸다. 카틴숲에서 학살당한 줄도 모른 채 무작정 아버지를 찾아 모스크바로 떠나는 폴란드 소년처럼 자욱한 새벽안개 속을 숨차게 달렸다. 그때 멘델의 귓가로 애절한 노래가 들려왔다. 내가 나를 위해 살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나를 위해 대신 살아줄 것인가? 내가 또한 나 자신만을 위해 산다면 과연 나의 존재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 길이 아니면 어쩌란 말인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란 말인가?(p. 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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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10-05
  • 【북토크451】 대치동 입시 전쟁터에서 증명된 독서의힘
    사교육 1번지 대치동. 많은 부모들이 자식에 올인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부모와 자식은 함께 고통당하며 갈등한다. 이때 독서에서 갈길을 찾은 주부들의 남다른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흥미롭게 읽었다. 예스24-우리나라 사교육의 대표 성지인 대치동에서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이 책은 이런 변화를 몰고 온 대치동 엄마들의 유쾌한 반란을 이야기한다. 독서를 통해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대치동 엄마들은 “대치동에 가면 니 새끼가 뭐라도 될 줄 알았지?”라는 질문에 ‘무엇’의 정의가 달라졌다고 말한다. 이전에 ‘무엇’은 자식이 명문대에 들어가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갖고 사는 것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 ‘무엇’은 스스로 삶의 주인공으로 당당히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 책은 이러한 대치동 엄마들의 유쾌한 변화 과정을 이야기하며 독서의 힘이 무엇인지 실감나게 그려낸다. 내 새끼가 뭐라도 되길 바라며 닦달하지 않으면, 유명 학원에 들여보내는 걸 목표로 삼지 않으면, 주변이 아닌 내 아이를 바라보며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게 해 준다면 '대치동 살이'는 충분히 즐거움으로 채워 갈 수 있다는 걸, 걱정 반 설렘 반으로 대치 입성을 앞둔 학부모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물론, 쉽지 않다. 레벨 테스트에 낙방 하는 거 별거 아니라고 머리는 말해도 가슴이 거부하는 일이 학원(p. 67) 세팅이 끝날 때까지 반복될 수도 있다. 머리와 가슴만 시끄러우면 다행인데 입에서 총알이 발사되고 손이 아이의 등판을 향해 달려가기도 한다. 나 또한 다 겪었던 일이다. 그럼에도 ‘Inner peace!’ 견디시길, 엄마니까!(p. 68). 지나간 세월을 돌이켜 보면 나는 아들을 독립된 인격체로서 믿지 못했다. 나 스스로 설정한 허상들-명문대 입학, 좋은 학원, 유능한 강사, 그리고 이를 이루어 줄 대치동의 삶-에 아들을 끼워 넣으려고만 했을 뿐이었다. 그것들조차도 진정 아들을 위하기보다 나 자신의 체면과 만족을 위한 것이었다. 이제는 깨닫는다. 공부든 그 무엇이든 자신의 삶에 대한 독립적이고도 주체적인 자각과 깨달음이 생기면 저절로 해결된다는 것을. 오랜 시간 나는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끌어 주는 것이 아이를 위하는 길이라고 착각을 하며 살았다. 결국 중요한 건 신뢰였다. 자신이 결정하도록 믿어 주고, 자신이 책임지도록 격려하는 것만이 부모가 할 수 있는 역할인 것이다(p. 129). 고3처럼 학원과 독서실에서 자정을 넘겨 공부하던 큰아이가 운이 좋게도 영재고에 진학했다. 합격의 기쁨은 딱 일주일이라더니 합격 발표 직후 학부모 모임에서 과학 각 과목과 수학 그리고 영어와 컴퓨터 선행 학습이 논의되었다. 학기 중에는 좀 덜 했지만 방학 때는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또다시 공부가 이어졌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고 큰아이가 고백하기를 친구들과 야식 먹는 재미 때문에 학원을 다녔고, 복습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깨진 독에 물 붓기였다는 것이다. '자기 주도가 아니라 자본 주도'였던 것이다. 선행 학습의 효과는 없었다. 그 많은 사교육비며 대치동의 살인적인 픽업 전선에서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아이가 얄밉고 철이 없(p. 192)다는 사실에 더 화가 났다. 게다가 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친구들이 자신보다 머리가 좋다고 말하며 열등감을 표현했고 짜증까지 늘었다. 공부보다는 방송반, 축구부 동아리 활동에 더 열심이었다. 아이는 고등학교 삼년 내내 축제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자랑했다. 그 사이 고음 불가의 노래 실력이 늘어 조금 들어 줄 만하게 변했다. 성적은 오월 단오 너울마냥 오르내렸다. 기숙사에서 늦은 밤 야식을 먹으러 친구들과 학교 담을 넘어서 우리까지 불려가 혼나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 부부는 참고 또 참았다. 들판에서 좀 거칠게 자라다 보면 스스로 성장하고, 상대적으로 집이 따뜻하다는 것도 알리라 생각했다. 지금도 큰아이는 몸과 마음이 성장 중이다. 나는 아이가 넘어 질 때마다 적당하게 거리를 두고 기다려 줄 마음의 준비를 해 왔다. 그래도 때때로 지치고 힘들면 친한 사람들에게 하소연한다. 해답을 얻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숨을 한 번 길게 내쉬고, 다시 기다려 본다. 아이들은 더디게 그러나 분명 커 간다(p. 193).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그러니 자신을 믿고 나를 찾는 여행을 지금 바로 시작하시길! 그 여행에서 나는 '니 새끼가 뭐라도 될 줄 알았니?'라는 질문에 자신있게 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의 정의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전에 나에게 '무엇'은 자식이 명문대에 들어가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갖고 사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 '무엇'은 스스로 삶의 주인공으로 당당히 살아가는 것이다. 내 아이가 선택하고 내 아이가 사랑하는 삶을 산다면 그것(p. 233)은 타인의 평가와는 무관하게 ‘뭐라도 된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당연히 우리 아이들은 모두 뭐라도 될 수 있다. 아니, 뭐든지 될 수 있다(p.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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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10-05
  • 【북토크450】 벗어나기 힘든 아우슈비츠의 고통
    프리모 레비와 장 아메리는 동시대 같이 아우슈비츠를 경험했다. 이후 살아남아 글로 그 죄악을 드러냈는데 두 사람의 반응은 달랐다. 레비는 화해를 아메리는 적대적이었다. 그리고 결국 둘 다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아우슈비츠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다. 예스24-이 책은 도이칠란트라디오의 방송을 위한 원고 「말로 담아낼 수 없는 이야기: 작가 프리모 레비와 장 아메리를 생각하는 기나긴 밤」을 토대로 한다. 저자는 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 아우슈비츠를 오랫동안 꾸준히 성찰해 왔고 아우슈비츠의 경험에서 서로 다른 결론을 끌어내 선명한 대비를 이루는 두 인물, 레비와 아메리의 생생하고도 농밀한 초상화를 그려냈다. 두 사람은 매우 비슷한 운명을 겪었음에도 그 삶과 작품에서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장 아메리: 검은 머리의 청년이 피를 철철 흘리며 거리를 정신없이 달린다. 그 뒤를 갈색 셔츠를 입은 남자 약 15명이 추격한다. 몇 명은 곤봉을 휘두른다. (…·) 미쳐버릴 것처럼 벌렁거리며 뛰는 가슴은 청년을 도우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이내 혐오스럽기 짝이 없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저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다행이다. (••) 아냐, 나도 노릴 거야. 나도 공격당할 수 있어. (•••) 오이겐은 알았다. (••) 자신이 다시금 못난 선택을 하리라는 걸. 물론 15명에 맞서는 것은 무의미하다. (•••) 그러나 그는 생각만으(p. 45)로라도 쫓기는 청년에게 거리를 두고 싶지 않았다. 특히 저 15명이 지켜보는 앞에서. 간격은 남았다. 저 술집이나 기웃거리며 춤추기 좋아하는 청년 또는 아버지의 잘나가는 법무법인을 물려받을 법대생을 내가 뭐라고 신경 쓰나. 하지만 피를 흘리는 청년을 공격하는 저 남자들에게는 반드시 거리를 두어야만 한다. 저들에게 맞선다면 나도 쫓기겠지. 하지만 맞서지 않으면 나 자신에게 쫓기리라(p. 46). 학교의 파시즘 교과과정은 레비가 인문학을 싫어하도록 몰아붙였다. 레비가 다닌 학교였던, 휴머니즘을 교훈으로 삼는 김나지움은 파시즘에 반대하는 교사 대다수를 이미 1930년대 중반에 교직에서 몰아냈다. 다시금 레비는 화학이야말로 이런 ‘타락’으로부터 자유로운 학문이라고 확인했다. “모든 단계를 검증할 수 있으며, 부풀려진 거짓말이 통할 수 없는 화학”이야말로 파시즘을 막아줄 해독제라면서. 어떤 여교사는 진정한 교양은 오로지 문학만이 선물한다며, 자연과학은 그저 정보만 줄 뿐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이 말에 충격을 받은 레비는 이후로도 평생, 인식의 세계를 이처럼 인문학과 자연과학으로 갈라놓고 자연과학을 차별하는 것에 분노를 참지 않았다(p. 59). 타인을 고문으로 괴롭히며 독재자로 군림하는 사람은 생명이 깃들 안식처를 짓밟는다. 잔혹하게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린 주체의 생활세계는 두려움과 불신으로 얼룩진다. 관계를 갈망하며 세계를 향해 자신을 던지는 인간의 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주체에게 세계는 언제라도 절대적인 지옥이 될 수 있는 곳, 아직은 아닐지라도 언제라도 돌변할 잠재적 지옥이다(p. 96). 프리모 레비: 수용소 생활에서 신발은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것이다. 죽음은 신발에서 시작한다. 우리 대다수에게 신발은 정말이지 냉혹한 고문 도구다. 신발은 몇 시간만 걸어도 발에 상처가 나게 만들어 피할 수 없는 감염을 일으켰다. 발에 상처가 나 곪는 사람은 체중을 가누지 못해 뒤뚱거리(p. 112)며 걷는다. (...) 무슨 일을 하든 늘 꼴찌이며 어디서든 얻어맞는다. 누가 쫓아와도 달아날 수가 없다. 발은 부풀어 오르고, 그럴수록 나무로 만든 신발 바닥에 쓸리며 고통은 극심해진다. 결국 남은 방법은 의무실 신세를 지는 것이다. 하지만 상처로 곪은 발로 의무실을 찾는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그럼 누구나, 특히 친위대 대원은 이 아픔에 시달리는 사람이 쓸모를 다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p. 113). 독일제국이 패망하고 독일 민족이 다른 민족들에게 천덕꾸러기 취급받던 ‘0시’, 곧 새로운 출발점에서 아메리는 잠시나마 역사가 순리대로 흘러간다고 만족해했다. 드디어 정의를 바로잡을 기회가 주어졌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1950년대부터 그는 희망이 환멸로 바뀌는 쓰라림을 맛봐야만 했다. ‘감자밭과 폐허의 독일...은 언제 그랬냐는 듯 패망을 떨치고 일어났다. 승전국들은 어제의 숙적을 감싸며 먹여 살렸다. 새롭게 빚어진 대치 상황, 이른바 '냉전'의 서막을 여는 세력 구도 재편성에서 승전국들은 독일을 새로운 동맹으(p. 169)로, 적과 맞설 전선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잘못을 참회하는 분위기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대신 다시 형편이 좋아진 독일에서 사람들은 아메리에게 왜 끝도 없이 그런 비난을 하냐며 손가락질을 해댔다. 괜스레 분란만 조장하려는 훼방꾼, 마치 빚을 갚을 수 없으면 살점이라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샤일록이라며 곳곳에서 자신을 손가락질하는 것 같은 느낌, ’그저 복수심에 불타는 유대인’이라는 진부한 반유대주의가 다시 기승을 부린다는 느낌에 아메리는 허탈한 환멸을 맛보았다(p. 170). 하이센뷔텔의 적극적인 도움 덕에 아메리는 실력을 인정받는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한나 아렌트가 나치스의 악행 원인을 평범한 속물의 진부함에서 찾은 것을 두고 그녀가 ‘유리 상자’ 안에 앉은 아이히만을 보고 지어낸 이야기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아우슈비츠 재판, 특히 프리모 레비의 책에 동기를 얻어 마침내 그 자신도 전쟁의 극복을 시도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고 결심하게 되었다(p. 174). 사르트르의 자유와 주체 철학을 아메리가 중시한 또 다른 이유는 자유가 필연적으로 책임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책임은 언제나 개인의 몫이다. 주변 정황 탓에, 지도자의 명령으로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저 명령을 수행했다는 말로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아이히만은 이 세상에 없다. 바로 그래서 아메리는 개인이라는 주체를 사회 전체라는 구조에 종속된 것으로 보는 모든 철학을 경멸했다. 미셸 푸코와 구조주의를 아메리가 거듭해서 비판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인간은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파도에 휩쓸릴 뿐이라는 구조주의의 저 유명한 비유, 푸코의 제자들이 행동하는 주체에게 조롱하듯 조종을 울리면서 사회 전체를 이길 수 있는 개인은 없다며 의기양양해하는 비(p. 196)유에 아메리는 분통을 터뜨렸다. 개인의 모든 행동이 사회 구조 탓에 다른 선택의 여지를 가지지 않는다면 책임져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p. 197). 너그러운 ‘용서’를 어떻게 말할 수 있느냐는 아메리의 비난은 사실 레비의 진의를 잘못 짚은 것이다. 레비는 독일 전체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했다. 또 독일인 대다수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외면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자신이 중시하는 것은 진정한 참회의 전제조건인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말했다. 레비는 오랜 세월이 지나 자신의 책 『이것이 인간인가?』 가 마침내 독일에서 출간되었을 때 전율했다. 그는 독일인이 이 책을 읽고 진상을 알기를 바랐다. 동시에 자기 나름대로 독일인을 이해하고 싶어 했다(p.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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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10-05
  • 【북토크449】 왜 그는 자살했는가?
    레비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왔지만 끝내 자살했다. 수용소에서의 충격은 평생 그를 따라다녔을 것이다. 이 세상에 이런 비극이 다시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과거의 악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1945년 10월, 평균 생존기간이 3개월인 아우슈비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프리모 레비는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의 처절한 경험과 사유를 시와 소설과 성찰록 등 다양한 형식의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시집으로 이탈리아 최고의 시인에게 주는 ‘존 플로리오상’을 수상했다. 『살아남은 자의 아픔』은 그가 생전에 펴낸 2권의 시집인 〈쉐마〉와 〈브레마의 선술집〉을 하나로 묶은 것으로, 전체 82편 가운데 60여 편을 가려내 수록하였다. 나치학살과 야만성에 초점이 맞춰 사실을 과장하고 미화시키고 감정적인, 대부분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과는 달리 프리모 레비의 글은 매우 간명하고 담담하다. 나치의 야만성을 밖으로 격렬하게 고발하기보다는 오히려 안으로 내면화시킴으로써 나치를 하나의 현상 이전에 먼저 그 본질을 추적한다. 생존의 극한상황 속에서도 주어진 운명에 섣불리 대립하지 않고, 오히려 내면으로 성찰의 날을 세워 자신을 단련시킨 시인의 모습이 빛을 발하는 작품집이다.-예스24 포솔리 수용소의 석양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게 난 무슨 뜻인지 너무 잘 알고 있다. 저 높은 담장 철조망 너머로 태양도 막간을 이용해 잠깐씩 뜨고 진다는 걸 난 이 두 눈으로 매일 확인했다. 문득, 늙은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떠올라 하얀 뼈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태양은 지고 나면 다시 떠오르건만 우리는 그 짧은 빛이 사라지면 끝없이 암흑 속으로 침몰해야 하는구나. • 1943년 11월에 이탈리아 최초의 유태인 수용소가 포솔리 (Fosol)에 설립되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 말에는 이탈리아 유태인 30% 이상이 절멸당하거나 감금되어 있었다. 나는 1944년 초 한겨울, 이 수용소에 감금되어 고문을 받다가 갑자기 가축 화물열차에 실려 폴란드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다.(프리모 레비)(p. 11) 기차는 슬프다 단 하나의 목소리와 단 하나의 노선으로 정해진 시간에 떠나야하는 기차보다 더 슬픈 게 있을까? 그 어떤 것들도 이보다는 더 슬프지 않다. 아마도 두 개의 막대기 사이에 묶여 서로를 바라보지도 못하는 마차만이 유일한 예외일 것이다. 물론 그 인생은 그저 앞으로 걷는 것뿐이다. 그럼 인간은 어떠한가? 인간도 슬픈 존재가 아닌가? 오랜 시간 고독하게 정해진 길만을 돌며 충만한 삶을 살았다고 믿는다면 그 인간 역시 슬픈 기차에 불과하리라(p. 25). 생각하지 않은 죄-아돌프 아이히만에게 바람이 평원을 가로질러 자유로이 불어오고 거센 파도가 끊임없이 해변으로 몰아친다. 인간은 땅을 비옥하게 만들고 땅은 그에게 꽃과 열매를 선사한다. 인간은 고된 노동과 기쁨 속에 살아가고 희망과 공포 속에서도 고귀한 자손들을 남긴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의 저승사자인 그대가 나타났고 짐승처럼 우리들은 죽음의 쇠사슬에 묶여버렸다. 우리가 만난다면 그대는 과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여전히 신에게 하소연이라도 하겠는가? 그럼 어느 신에게 말인가? 또 기꺼이 무덤에라도 뛰어들 것인가? 아니면 오히려 미완성의 작품을 아쉬워하는 예술가들처럼 아직 살아있는 1300만의 생명에 대해 통탄이라도 할 텐가? 오- 죽음의 화신이여(p. 31) 우리는 그대에게 결코 한 순간의 죽음을 바라지 않으며 그 어느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장수하기를 바란다. 단지 500만 년 동안만 불면으로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가스실에서 숨져간 모든 이들의 신음과 비명소리가 매일 밤 그대를 방문해 강한 위로를 해주기를 바랄 뿐이다(p. 32) 아우슈비츠의 소녀 타인의 고통은 곧 나의 고통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고통 속에 함께 산다. 어린 폼페이의 소녀여! 하늘이 잿빛으로 변하며 세상이 무너질 때 다시 자궁 속으로 회귀라도 하듯 넌 뼈만 남을 때까지 어머니의 몸을 끌어안고 있구나. 검은 화산재는 노래와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던 너의 집 창문으로 일제히 침투했다. 그 재는 2천 년의 세월이 흘러 가냘픈 소녀들의 육체를 영원히 덮어버렸다. 이처럼 넌 지금도 우리와 함께 회색 담장 속에 갇혀 끝없이 고통 받고 있구나. 내일이면 굴뚝의 검은 연기로 피어오를지도 모를 도축장 같은 수용소에 갇혀 날마다 몰래 일기를 쓴 13살 어린 아우슈비츠의 소녀여!(p. 35) 가녀린 그대 가슴속에는 검은 재만 흩날릴 뿐 이미 안네의 짧은 생애는 일기장에서 끝나버렸구나.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리틀 보이'의 검은 불바다에 살점 하나 없이 완벽하게 사라져버린 어린 히로시마의 소녀여! 네 영혼이 아직도 검은 구름처럼 떠돌며 울부짖는구나. 더러운 자본의 권력, 끊임없는 탐욕의 침략자들 지금도 살육의 광풍을 은밀히 준비하는 전쟁광들이여 그대들은 그동안 하늘이 우리에게 내린 고통들만으로는 정녕 부족하단 말인가. 한 개의 손가락으로 폭탄단추를 누르기 전에 잠깐만, 아주 잠깐만 멈추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 타인의 고통은 나의 고통이다(p. 36). 진주조개 야만적이고 성급하고 조악한 인간들이여 나의 이 쫄깃한 맛 외에 당신들이 부드러운 내 몸에 대해 무얼 더 알고 있는가? 난 깊은 바다 속에 살며 추위와 더위를 느끼고 수축과 이완을 거듭하며 고요한 리듬에 몸을 맡기고 때로 민첩하게 움직이며 먹이들을 포획해 즐길 줄 알고 당신들처럼 사나흘 굶으면 고래고래 아우성도 지른다. 또 단단한 혈관에 기억과 지능 같은 칩들이 심어진다면 나도 얼마든지 미래를 예언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난 당신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당신들과 닮아 있고 눈물과 정자 같은 것들도 가슴속에 은밀히 품는다. 간혹, 파편이 내 몸에 상처를 내면 나 역시 당신들처럼 조금씩 그것을 몰래 감추며 안으로 삭혀간다. 나는 언제나 진주조개다(p. 64) 증인심문 증인의 이름은? 알렉스 징크라고 합니다. 태어난 곳은? 화려한 고대도시로 유명한 뉘른베르크입니다. 그런데 재판장님, 먼저, 일사부재리 원칙에 입각해 이미 나치전범 재판에서 다뤘던 것들은 여기에선 더 이상 효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논쟁의 여지가 많을수록 더욱 그렇구요. 셋째, 참고로 이 세상 최고의 카페트들은 바로 제가 만든 펠트제품이라는 사실입니다. 허허- 증인이 쓸데없는 것까지 걱정하는군.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나 말해 보시오. 물론 위증의 대가에 관해선 잘 알 테고.... 재판장님,(p. 86) 전 진짜 피땀 흘리며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돌 위에 돌을 쌓고, 상처 위에 상처를 쌓으며 제 이름을 딴 '징크 컴퍼니' 공장을 설립해 최고로 아름다운 펠트 카페트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직원들의 봉급도 후하게 주는 자비롭고 근면성실한 사장인데다가 고객들도 절대로 불평하는 법이 없었어요. 한마디로 유럽 최고의 제품만 생산했죠. 카페트 제조기술이 아주 좋은 모양이군. 근데 그 훌륭한 솜씨는 어디에서 배웠소? 예? 그, 그건..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고 했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머리카락으로... 카페트를 짜면서 배웠습니다... 양모와 머리카락 중 어떤 게 더 품질이 좋던가? 아무래도... 머리카락이...(p. 87) 그래, 그동안 꿈자리는 편안하던가? 뭐, 대충은 꿀 만했는데....간혹 슬픈 영혼들이 자꾸 흐느끼는 것 같이 꿈이 뒤숭숭하긴 했죠. 증인은 이제 돌아가서 기다리시오. • 나치는 굴뚝에 검은 연기가 나기 전에는 머리카락을 잘라 카펫과 담요를 짰고, 연기가 난 다음에는 금니로 금괴를 만들어 전쟁자금을 마련했고, 또 화장 후의 쌓인 재로는 정원의 꽃 밭과 전시 작물밭의 비료로 사용했다. 유태인을 인간이 아니라 짐승으로 취급했기에 가능한 나치의 알뜰하기 그지없는 실용 주의다. 특히 머리카락으로 짠 카펫과 담요는 양모재료보다도 더 따뜻하고 더 윤기가 잘잘 흐른다고 해서 당시 주문생산이 밀릴 만큼의 최고 인기상품이었다. 그 VIP고객들은 나치와 연합군 간부들을 비롯해 전쟁물자를 생산해 이익을 챙기던 기업가들과 사회의 소수 특권층 인사들이었다. 그들은 주로 사업 로비용이나 가정 선물용으로 앞다퉈 구입했다. 물론 최대의 납품처는 나치의 병영이었다. 특히 날씨가 쌀쌀해지는 가을이면, 따뜻한 방한용 담요가 필요한 동계 전투를 대비해 수용소의 머리카락 삭발식이 더욱 분주해졌고, 굴뚝도 그만큼 바빠졌다(p. 88). 참고로 주문생산자들의 구체적인 명단은 굳이 밝히지 않겠으나 우리의 귀에 익숙한 나치간부들과 2차대전의 연합군 영웅들은 거의 포함되어 있다고 보면 틀림없다. 심지어 같은 유태인들도 있다. 여기서 2차대전 중 일부 특권층 유태인들이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 유태인들을 아우슈비츠로 보내기 위해 게슈타포한테 팔아넘긴 사실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일찌감치 전시 안전지대로 벗어나 자기 형제들의 머리카락으로 짠 따뜻한 이불을 덮고 자며 안락한 삶을 누렸다. 또 그것도 모자라 전후에는 희생자들의 가족서류를 위조해 사망 보상금까지 가로챘다. 우리의 일제 식민지 역사도 그와 다르지 않다. 다른 게 있다면 우린 아직도 참된 사과나 보상 같은 것들을 전혀 받아내지 못 했다는 점이다. 모두 친일잔재가 청산되지 않아서 겪는 우리의 수모이지만, 그런 수모를 겪을수록 난 나치의 그 '알뜰한 실용주의'를 더욱 본받고 싶어진다. (이산하)(p. 89). 살아남은 자의 아픔 -생존자 B.V에게 언제부터인가 그 끔찍한 순간들이 되살아나 그 얘기를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내 가슴은 너무나 쓰라리고 저려왔다. 그는 희미하게 밝아오는 새벽이면 온통 시멘트 가루로 뒤덮인 잿빛 얼굴이며 다음날을 기약할 수 없는 불안한 잠자리로 죽은 송장이나 다름없는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밤마다 악몽을 꾸며 너무 배고픈 나머지 무 같은 거라도 씹는 듯 마구 턱을 움직이며 애절한 목소리로 잠꼬대를 하곤 했다. "돌아가게! 제발 나를 내버려두고 돌아가게, 먼저 간 동료들이여! 난 아직 어느 누구의 것도 빼앗은 적이 없고 어느 누구의 빵 한 조각도 훔친 적이 없네. 그리고 지금까지(p. 103) 나 때문에 정말 단 한 사람도 죽은 적이 없네. 제발 그대들은 그대들의 세상으로 어서 돌아가게. 내가 아직 살아서 내가 아직 죽지 못해서 먹고, 입고, 잠자며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는 게 어찌 내 탓이고 내 잘못이란 말인가!" • 생존자 B.V는 오스트리아 도나우 강변의 마우트하우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레비의 친구 부루노 바사리(Bruno Vasari)를 말한다. 그는 유태인 레지스탕스였고, 나치는 이 악명 높은 수용소의 30만 죄수들을 '귀향 거부자들'로 불렸다. 이 시는 프리모 레비가 바사리의 처절한 경험을 토대로 쓴 작품이며, 그 작품배경에 대해서는 미리엄 아니시모프의 평전인 〈프리모 레비- 한 낙관주의자의 비극》 속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이산하) (p. 104) 석양 그 어떤 것도 억지로 꿈꾸지 않았고 그 어떤 것에도 애써 매달리지 않았네. 거센 폭풍의 바다를 헤치고 나와 항구의 선술집 난로 옆에 앉아 홀로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그런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여라. 축제 뒤의 사그라져가는 불씨처럼 저물어가는 강가의 모래알처럼 무거운 짐을 모두 내려놓은 채 이마의 땀방울을 닦으며 조용히 길모퉁이에 앉아 쉬고 있는 그런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여라. 욕망도 집착도 모두 내려놓고 말없이 저무는 석양만 응시하네(p. 118) 인생연감 무심한 강물은 하염없이 돌지만 결국은 바다로 흘러가고 거대한 빙하는 표류하면서도 끊임없이 정착을 하려다가 한순간에 미끄러져 어린 생명의 숲들을 지우기도 한다. 바다는 풍요로울수록 더욱 탐욕을 내며 싸우고 태양과 별과 행성들은 언제나처럼 자기궤도를 유지하며 지구별 역시 정교한 우주의 이치대로 돌고 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아니다. 반란의 씨앗에다 지능까지 높다는 그 멍청한 인간들은 항상 불안하고 탐욕스런 나머지 마구 짓밟고 파괴해왔다. 조만간 울창한 아마존 숲과 삶이 꿈틀거리는 이 세상 그리고 마지막엔 따뜻한 인간들의 가슴까지 모조리 황폐한 사막으로 만들어버릴 것이다(p. 123) • 이 시는 1987년 4월 11일, 프리모 레비가 투신자살 직전에 쓴 마지막 작품이다. 따로 남긴 유서가 없으므로 이 시가 결국 유서가 된 셈이다. 강물과 빙하는 디아스포라를 연상시키며, 자연과 우주는 특별한 사태 없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데, 유독 인간만은 다르다. 68세에 그는 결국 인간에 대한 희망의 단서를 찾지 못하고 완전히 절망한 것처럼 보인다. (이산해) (p. 124) 프리모 레비는 평균 생존기간이 3개월도 채 안 되는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1년을 버티며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살아야 한다는 것보다는 살아서 내가 경험한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의지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아케론 강가에서 망자를 실어주는 사공의 "이 저주받을 영혼들아, 비통하고 비통할지어다!"라는 절규 대신, 아우슈비츠로 달리는 열차 속에서 나치병사가 돈이나 반지나 시계 같은 귀중품들을 당연한 듯이 요구할 때부터 이미 지옥이 종착지임을 예감했으리라. 그 예감대로 단테의 '지옥' 입구에는 "여기 들어오는 자, 지금부터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라는 경고문이 있었던 것처럼,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에는 "노동이 그대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뜻 깊은' 모토가(p. 145)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노동은 그를 너무 자유롭게 만들었다. 프리모 레비는 역사를 왜 기억하고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를 그의 생이 끝날 때까지 거듭 물으며 고뇌 했다. 그 고뇌의 핵심이자 그를 죽음으로 이송시켰던 ‘악은 무엇인가?’라는 화두에 대한 가장 빠른 대답이 '내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난 맹세코 악과 생각의 역사는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 가지 못하고 오히려 전속력으로 후진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그래왔듯 앞으로도 우리는 아우슈비츠에 대해서 여전히 계속 대답해야 하고,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과 최소한의 인권마저 완벽하게 파괴해버린 아우슈비츠는 과거에서 미래까지 일어날 세계의 모든 학살과 폭력의 한 상징이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의 굴뚝이 사라졌다고 해서 지옥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가슴에 뜨거운 화상을 입으며 때로는 차가운 숨결로, 때로는 뜨거운 숨결로, 간신히 옮겨 다듬고 또 간신히 후기를 쓰다가 이제야 글을 접는다(p. 146) 아직도 레비의 상처 받은 영혼들이 디아스포라처럼 떠돌고 있을 이 시집이 나오기까지,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준 많은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특히 의역의 폭에 대한 도정일 선생님의 여러 조언과 지금은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 어디쯤에서 도보여행하고 있을 김종돈 형의 꼼꼼한 텍스트 해석과 고영주 형의 자료조사, 그리고 여러 언어를 비교하며 행간의 의미를 일깨워준 보스톤의 내 사랑스럽고 애틋한 딸 한나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1987년 4월 11일, 프리모 레비는 투신자살을 했다. 그는 죽음으로써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다시 들어간 것이다. 지난번엔 타의였고 이번엔 자의였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회의를 끝내 떨치지 못한 그의 마지막 항변에 나는 거듭 동의하면서도 거듭 절망한다. 2011년 겨울 이산하(p.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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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10-02
  • 【북토크448】 아우슈비츠 수용소 희생자의 최후의 말들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인 프리모 레비의 책을 다시 읽고 있다. 또 이전에 못 읽었던 책도 읽고 있다. 인간이 인간에 대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에 대해, 그럼에도 생명이 얼마나 질긴지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홀로코스트로 대표되는 인간의 야만을 거론할 때 누구보다 먼저 거론되는 사람은 이탈리아의 화학자이자 작가 프리모 레비다. 유대인이라는 별다른 자각 없이 살았던 그는 대학 졸업 후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부의 인종법에 저항하다 체포돼 1944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되었고, 11개월 뒤인 이듬해 1월 해방돼 아홉 달 만에 고향인 토리노로 돌아왔다. 그 뒤 도료 공장의 관리자 내지 연구자 등으로 생업을 이으며 틈틈이 자신의 체험을 글로 옮겼고, 지금도 최고의 증언 문학으로 인정받는 『이것이 인간인가』 『주기율표』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등으로 시대의 진상을 알렸다. 하지만 시대를 대표하는 거창한 일은 그의 애초 셈과는 거리가 멀었다. 극도로 내성적인 유년과 학창 시절을 지나온 그는 “이야기가 최고의 치료제”임을 누누이 말하며 누구보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려고 글을 썼다. 그러나 당황스럽게도, 여러 권의 저서를 출간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가가 된 뒤에, 모든 걸 털어놓음으로써 과거를 극복했다고 믿던 67세의 나이에 그는 돌연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프리모 레비의 말』은 마음산책 ‘말 시리즈’의 열두 번째 책이다. 프리모 레비가 세상을 뜨기 두 달 전인 1987년 1월과 2월에 가진 마지막 인터뷰를 담았다. 이탈리아 문학 교수이자 평론가인 조반니 테시오가 인터뷰어로 나섰다. 그는 프리모 레비가 세상을 뜰 때까지 10여 년간 우정을 나눈 조언자로서, 프리모 레비와 공동으로 자서전을 쓰기 위해 구술을 받던 중이었다. 따라서 『프리모 레비의 말』은 1987년 1월 12일, 1월 26일, 2월 8일, 이렇게 세 차례의 인터뷰로 이루어졌지만 맥락상 한 편의 인터뷰로 볼 수 있다. 두 사람의 대화는 가족과 유년 시절의 이야기로 시작해 학창 시절, 성격, 취향, 독서 등 편안하고 애틋한 이야기를 계속하다가도 언뜻언뜻 프리모 레비 자신도 낯선 듯 털어놓는 즉흥적인 변주가 끼어들어 긴장감을 일으킨다. 자신에 관해서도 남에 관해서도 격렬한 목소리를 내지 않던 프리모 레비의 심경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예스24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의 첫 부분에서 그런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건 당신에게 말할 수 있어요. 한 여인을 암시했어요. 제가 이 여인에게 내 방식으로 환심을 사려고 해서 그녀를 몹시 당황스럽게 만들었어요. 그녀는 제가 극도로 내성적이고 우유부단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우리는 함께, 정확히 말하면 아주 흔한 방식으로 체포되었어요. 콜드주Col de Joux. 이탈리아 발다오스타 계곡과 맞닿은 프랑스 쪽 알프스의 산길에서 우리는 어떤 임무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정치적 임무를 수행하러 함께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밤중에 산으로 올라가지 말고 계곡의 은신처에서 자고 가라는 제안을 받았어요. 우리는 거절했습니다. 무슨 이유 때문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러고는 한밤중에 콜드주까지 올라갔고 다섯 시간 뒤에, 그 밤이 지나고 체포되었지요. 저는 자주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테시오: 본의 아니게 체포에 일조했다는 것 때문인가요? 레비: 게다가 그 여자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자살을 시도했어요. 동맥을 잘랐지만 곧 봉합을 해주었습니다. 그 후 그녀가 죽었기 때문에, 간단히 말해 저는 지금의 아내를 만날 때까지 그녀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제게는 정말 절망적인 상황이었어요. 사랑하는 여자가 더(p. 135)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게, 게다가 내가 그녀의 죽음에 한 원인이었다는 게 말입니다. 이것이 어떤 느낌인지 생각하면.... 내가 그녀에게 조금만 더 적극적이었다면, 우리가 같이 도망쳤더라면, 우리가 같이 잤더라면.... 그런데 저는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p. 136). 『이것이 인간인가』의 번역을 마치고 난 뒤 한참 동안 가슴이 먹먹했던 기억이 난다. 테시오와 인터뷰 약속을 해놓고도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선택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서인지 이 책을 번역할 때는 자주 그런 기분이 들었다. 레비의 자살에 대한 이유는 아직도 알려지지 않았고 알 수도 없다. 그러나 레비가 남긴 이 마지막 "말"에서는 굽이 굽이 숨겨진 아픔과 슬픔을 어렴풋하게나마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삶과 인간에 대한 레비의 변함없는 진실성과 애정도 읽을 수 있어서 한 걸음 더 그에게 다가간 느낌이다. 2019년 4월 이현경(p. 227). 번역자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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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6-10-02
  • 정영교 총회장, “하나됨과 화해의 아이콘이 되시라”
    제111회 총회 총회장 정영교 목사의 당선감사예배가 5일 새에덴교회에서 재경호남협의회(회장 이경석 목사) 주최로 열리는 것을 축하한다. 작년 중부·호남지역 목사부총회장 선거는 불미스러운 일로 모 후보가 탈락당하며 격렬해졌다. 이 일에 불만을 품은 지지자들로 인해 총회는 매우 시끄러워 제110회 총회가 정상적으로 개최될 수 있는지 장담할 수 없었다. 과연 난장판이 된 가운데 선거가 진행되어 정영교 목사가 부총회장으로 당선됐다. 그러나 상대 측의 이의제기로 인해 임원회는 시작부터 갈등하게 됐다. 그리고 제111회 총회를 앞두고는 정 부총회장을 “날리고” 모 목사를 후보로 세울 것이라는 루머도 돌아 분위기가 흉흉했었다. 하지만 사랑의교회에서 “사랑스럽게” 총회는 잘 진행됐고, 정 부총회장은 아무일 없이 총회장이 됐다. 작년 선거 때 상대 진영에서는 “호남 홀대론”을 주장하며 그동안 영남에서 많은 총회장이 나왔으니 이번에는 호남에서 부총회장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때 본 기자는 고향이 영남인 목사들이 타 지역에 가서 목회하고 그 지역 후보로 나서서 당선된 것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호남 홀대론”은 착각이다. 또한 정 목사는 호남에서 태어나 조선대학교를 나온 호남인이다. 비록 중부지역에 속한 노회에 있으나 “찐” 호남인이다. 그런데도 호남에서 나서 호남에서 목회를 해야 진짜 호남인이라며 정 목사를 배격했다. 총회의 선거 구도는 서울·서북, 중부·호남, 영남으로 나뉘어 두 지역은 경쟁하게 되어있다. 금번 부서기나 부회계는 영남 몫으로 단일화가 됐다. 한 지역이다보니 조정이 가능했는지 모른다. 정 목사는 중부 후보로 나섰으나 속은 호남인이다. 그러나 선거 때는 호남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이제 선거의 혼란은 끝났고 정영교 목사는 총회장이 되었다. 취임 후 며칠만에 재경호남협의회가 주최해 정 총회장의 당선감사예배를 드리는 것은 많은 의미가 있다. 그것도 호남 출신 구 개혁측의 첫 총회장 소강석 목사의 새에덴교회에서 소 증경총회장이 설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지난 선거 때 있었던 모든 분열과 소란은 이제 사라졌다. “찐”호남인이 아니라는 소리를 듣던 정 총회장의 당선을 누구보다 먼저 호남 측에서 축하하니 보기 좋다. 비록 지역적으로는 중부에 속하지만 호남인인 정 목사가 총회장이 된 것을 호남인들은 기뻐해야 할 것이다. 또한 같은 중부권에 속하는 새에덴교회에서 이 행사를 갖는 것도 의미가 깊다. 정 총회장은 중부권 후보로 나서서 당선됐기 때문이다. 정 총회장은 중부에 속한 호남인이며,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도 중부에 속한 호남인으로 구 개혁측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정 총회장이 자신들 지역은 아니지만 뼈속 깊이 호남인이기에 재경호남협의회에서 발빠르게 당선감사예배를 드리며 축하한다고 본다. 이날 예배가 지난 날의 분열과 반목을 뒤로하고 호남이 하나되고, 총회가 하나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정영교 총회장은 호남인으로 중부권에서 배출한 총회장이며 교단을 대표하는 총회장이다. 정영교 총회장이 이 독특함을 아우르어 총회를 하나되게하고, 화해를 만들어 내는 아이콘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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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6-10-01
  • 【양대식 목사 칼럼38】 마음의 상처 받고 사는 인생들
    마음의 상처 받고 사는 인생들 (고린도전서 8:13) 세상에는 마음의 상처 받고 사는 인생들이 너무 많습니다. 실족 당했다, 상처받았다, 같은 의미입니다. 고린도전서 8: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사도 바울은 사람들을 실족시키지 않겠다, 상처 주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남을 실족시키고, 마음에 상처 주는 것은 큰 죄입니다. 마태복음 18:6-7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어느 누구도 심지어 어린아이까지도 실족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의 상처 받고 사는 자들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으면 여러 가지 병들게 됩니다. 마음의 상처가 큰 스트레스입니다. 마음의 상처는 성령님께서 치유하십니다. 이사야 61:1-3 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마음의 상처가 크고, 너무 슬프면 면역력이 약해져 병들기 쉽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의 상처 받은 수많은 사람들을 격려해 주시고, 치유해 주셨습니다. 우리 주위의 여러 가지 이유로 마음의 상처가 있는 자들을 기도해 주고,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사람이 좋은데 또한 사람이 상처를 줍니다. 인간의 죄성 때문에 상처를 줍니다. 가까운 인간관계에서 서로 상처를 줍니다. 관계가 깨지면 상처받게 되기에 관계를 잘 맺어야 합니다. 성장 과정에 상처받고 치유되지 못하면 인격의 장애가 있어 문제를 일으키고 또 다른 상처를 줍니다. 자녀 교육 때, 사랑과 훈계로 잘 양육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 섬기는 성도들끼리 서로 상처 주는 것이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교회 생활에서 상처받고 교회 적응 못하는 예가 많습니다. 영적으로 어린아이이고, 성숙이 없어서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대부분 마음의 상처가 있는 자가 상처를 줍니다. 인간은 상처를 주나, 예수님과 하나님의 말씀은 상처를 치유합니다. 남의 마음에 상처 주고, 마음에 고통을 주고, 실족시키는 자는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기쁨을 주고, 덕을 세우고,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가 복을 받고, 사랑받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0: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상처 주는 것은 사탄의 성품입니다. 사탄은 속이고, 죽이고, 스트레스 주고, 상처를 줍니다. 과거의 죄나 약점을 캐내어 상처를 줍니다. 고집이 세고 강한 자, 교만한 자가 남의 마음에 상처를 줍니다. 고집과 자기주장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강한 자가 싸우고, 싸우면 상처 주게 됩니다. 미움받고 미워하면 상처받게 됩니다. 사랑은 덕을 세우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합니다. 입으로 함부로 말해 마음에 큰 상처를 줍니다. 비난, 모함, 협박, 저주의 말, 거짓말, 부정적인 말, 공격의 언어, 근거 없는 말을 하여 사람의 마음에 큰 상처를 줍니다. 말 때문에 상처 주고, 상처받은 자가 너무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입으로 격려하고, 칭찬하고, 정직한 말을 해야 합니다. 나의 입으로 실족시키고, 상처 준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자신의 입을 위해 기도해야 하고, 입을 다스려야 합니다. 골라서 말하고, 기도하고, 말해야 하며,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해야 합니다. 가정과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것은 잘못 사용하는 혀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상처 주고 깨닫지 못하는 자는 양심이 마비된 자입니다. 교회에서 서로 마음 상하게 하고, 실족시키고, 상처 주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상처 주는 인간을 보면 사람이 무섭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교회 직분자들이 어떤 때는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이런 일이 없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서로 격려하고, 덕을 세우면 부흥되고, 실족시키고 상처 주면 교회는 침체가 되고, 무너지게 됩니다. 욕심 많고, 이기적이고, 사나운 사람이 남의 마음에 상처를 줍니다. 성령 받아 마음이 다듬어지고, 온유해야 남의 마음에 상처 주는 일을 하지 않게 됩니다. 상한 마음 치유를 위해 기도하고, 남의 마음에 상처 주고 실족시킨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어디에서나 덕을 세우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 잘 섬기는 방법은 상처 주지 않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 잘 섬긴다고 하면서 상처 주는 것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남의 마음에 상처 주지 않고 기쁨을 줍니다. 사랑은 온유하고 친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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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30
  • 【양대식 목사 칼럼37】 부정적인 요소가 많은 인생들
    부정적인 요소가 많은 인생들 (로마서 1:21) 긍정의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은 죄성이 있어 부정적이고, 부정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인간에게 소망을 두는 것은 미련한 것입니다. 전적 부패와 타락한 인간이기에 부정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부정적인 인간이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인간을 기대하는 것은 스스로 속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선하시고, 인간에게는 선함이 없습니다. 은혜받고, 거듭나야 새사람 되고, 인격이 성숙해집니다. 은혜받지 못한 인간은 어디서나 나쁜 냄새를 풍깁니다. 로마서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로마서 1:29-31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인간들이 가지고 사는 부정적인 요소가 어떤 것인가, 살펴보겠습니다. 감사하는 자보다 원망하는 자가 많고, 긍정적인 자보다 부정적인 자가 많습니다. 격려, 칭찬해 주는 자보다 시기, 질투하는 자가 많고, 욕심이 없는 자보다 욕심 많은 자가 많습니다. 의리 지키는 자보다 의리 없고, 배신하는 자가 많습니다. 선한 자보다 악한 자가 많고, 나누고 베푸는 자보다 나누지 못하고 받기만 원하는 자가 많습니다. 주는 자보다 인색한 자가 많고, 은혜를 아는 자보다 배은망덕한 자가 많고, 성경을 읽는 자보다 읽지 않는 자가 많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자보다 해결 못하는 자가 많고, 이해하는 자보다 오해하는 자가 많습니다. 겸손한 자보다 교만한 자가 많고, 섬기고 대접하고 선물 주는 자보다 대접받고 싶어 하는 자가 많습니다. 새벽 기도하는 자보다 안 하는 자가 많고, 전도하는 자보다 전도 안 하는 자가 많습니다. 돈을 주는 자보다 돈을 안 주는 자가 많고, 희생, 헌신하는 자보다 요령 피는 자가 많습니다. 성공하는 자보다 실패하는 자가 많고, 인정받는 자보다 인정받지 못하는 자가 많습니다. 도전하는 자보다 도전 정신이 없는 자가 많습니다. 꿈을 가진 자보다 꿈이 없는 자가 많고, 강하고 담대한 자보다 두려움에 떠는 자가 많습니다. 돈을 잘 버는 자보다 돈을 못 버는 자가 많고, 부자보다 가난한 자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보다 불순종하는 자가 많고, 세계 여행 다니는 자보다 못 다니는 자가 많습니다. 능력 있는 자보다 무능한 자가 많고, 유식한 자보다 무식한 자가 많습니다. 칭찬받고 사는 자보다 비난받고 사는 자가 많고, 강한 자보다 약한 자가 많습니다. 공부 잘하는 자보다 공부 못하는 자가 많고, 많이 배운 자보다 배우지 못한 자가 많습니다. 선진국보다 후진국이 많고, 선교하는 교회보다 선교 못하는 교회가 많습니다. 부흥하는 교회보다 침체하는 교회가 많고, 상처받지 않는 자보다 상처 주는 자가 많고, 재정이 넉넉한 교회보다 부족한 교회가 많습니다. 넉넉하게 사는 자보다 부족하게 사는 자가 많고, 건강하게 사는 자보다 병든 자가 많습니다. 지혜 있는 자보다 어리석은 자가 많습니다. 자녀가 잘되는 자보다 속 썩이는 자가 많고, 사랑이 많은 자보다 미움이 많은 자가 많습니다. 찬양대와 오케스트라가 있는 교회보다 없는 교회가 많고, 좋은 자동차 타고 다니는 자보다 자동차 없는 자가 많습니다. 선물 주고 팁을 주는 자보다 주지 못하는 자가 많고, 부자로 사는 자보다 가난하게 사는 자가 많습니다. 존경받고 사는 자보다 존경받지 못하는 자가 많고, 마음이 넓은 자보다 마음이 좁은 자가 많고, 교회 다니는 자보다 우상을 섬기는 자가 많습니다. 마음이 선한 자보다 악한 자가 많고, 의인보다 죄짓고 사는 자가 많습니다. 인정받고 사는 자보다 인정받지 못하는 자가 많고, 은퇴 계획이 잘 된 자보다 못한 자가 많습니다. 넉넉하게 사는 자보다 힘들게 사는 자가 많고, 운동 잘 하는 자보다 못하는 자가 많습니다. 주는 자보다 받고 사는 자가 많고, 웃고 사는 자보다 우는 자가 많습니다. 믿음 큰 자보다 믿음 없는 자가 많고, 걱정근심 없는 자보다 근심이 많은 자가 많고, 리더십이 있는 자보다 없는 자가 많습니다. 평안보다 불안이 많고, 관계 잘 되는 자보다 깨진 자가 많습니다. 헌신하는 자보다 헌신하지 않는 자가 많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자보다 실망시키는 자가 많습니다. 정직한 자보다 거짓된 자가 많고, 의로운 자보다 불의한 자가 많습니다. 남의 유익을 구하는 자보다 자기 유익을 구하는 자가 많고, 분별력이 있는 자보다 분별력이 없는 자가 많고, 자신을 아는 자보다 자신을 모르는 자가 많고, 건강한 자보다 병든 자가 많습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는 자보다 땅에 소망을 두는 자가 많고, 돈에 대한 욕심이 없는 자보다 욕심 가진 자가 많고, 칭찬하는 자보다 남을 비난하는 자가 많습니다. 글을 써서 책을 출판한 자보다 못하는 자가 많고, 무엇을 하든지 잘하는 자보다 못 하는 자가 많습니다. 비행기 타는 자보다 못 타는 자가 많고, 행복한 자보다 불행한 자가 많습니다. 실수하지 않는 자보다 실수하는 자가 많고, 능력 있는 자보다 무능력한 자가 많고, 기억력이 좋은 자보다 없는 자가 많고, 인간관계 잘하는 자보다 못하는 자가 많습니다. 좋은 이미지 가지고 사는 자보다 나쁜 이미지 주는 자가 많고, 좋은 자세 가지고 사는 자보다 나쁜 자세 가지고 사는 자가 많고, 믿음 좋은 자보다 믿은이 적은 자가 많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보다 하나님을 멀리하는 자가 많습니다. 부정적인 요소가 많은 인간임을 이해할 때, 인간에 대해 적게 실망하게 됩니다. 부정적인 인간의 요소를 가진 자이기에 어느 정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관계를 맺어야 하며, 내게 상처 주고 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잊어버리고 좋으신 하나님만 생각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영과 육, 정신과 마음의 근육을 든든히 해야 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부정적인 요소가 많은 인생들 은혜받고, 성령 받고, 새롭게 거듭나야 긍정의 사람,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6:1-2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린도전서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오직 은혜, 오직 성령으로만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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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27
  • “회장·서기에게 물어봤다, 사과하면 끝난다?”
    “회장·서기에게 물어봤다, 사과하면 끝난다?” 홍*기 목사의 제98회 재판국 해석, 판결문과 권징조례에 맞지 않는 이유 제98회 남수원노회 재판국 판결 이후 홍*기 목사가 평택제일교회에서 설명한 내용과 이후 제108회 재판국에서 한 증언을 살펴보면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에 이르게 된다. 홍*기 목사는 제98회 재판국의 판결을 정확하게 설명한 것인가, 아니면 마지막 회의록 일부와 회장·서기의 설명을 토대로 판결의 법적 의미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인가. 판결문, 2024년 8월 31일 제98회 재판국 회의록, 당시 재판국원이었던 두 국원의 진술, 사과 대상자였던 박* 장로의 진술, 그리고 법률의견을 종합하면 후자의 문제가 매우 선명하게 드러난다. [2024. 9. 22. 속기 녹취록 홍*기 목사 발언, 2026. 2. 10. 속기 녹취록 홍*기 목사 발언] 1. 홍*기 목사 “권계는 사과하면 끝나는 것” 홍*기 목사는 제108회 재판국에서 자신이 2024년 9월 12일 임시당회장으로 파송되었고, 9월 22일 평택제일교회에서 제98회 재판국 관련 내용을 설명했다고 증언했다. 그 과정에서 박*민·윤*호 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취지로 말했다. “권계라고 하는 건 우리 교단법에 의하면 그냥 사과하고 동영상 제출하면 끝나는 겁니다.” 그리고 제98회 재판국 마지막 회의록에 사과 관련 동영상을 확인하고 공정한 사과가 이루어졌음을 확인했다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시무장로로 복귀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그러나 제98회 판결 전체는 ‘사과하면 끝’이라는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또 하나 권계 처벌에 관한 동영상 제출이 아니라 제명•출교에 관한 동영상이고 불이행할 경우 제명•출교이다. 2. 홍*기 목사 자신도 “제 기준”이라고 말했다 더 주목해야 할 발언이 있다. 홍*기 목사는 임시당회장으로 파송된 뒤 당회를 구성하려 했던 과정을 설명하면서 자신의 판단에 관하여 “제 기준인 거죠.” 라는 취지로 말했다. 그러나 교인의 권징상 지위는 임시당회장의 ‘제 기준’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판결문과 권징조례, 그리고 권한 있는 재판회의 적법한 판단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3. 제98회 남수원 재판국 “국장·서기에게 물어봤다”는 설명도 판결은 아니다 홍*기 목사는 아무 근거 없이 판단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제98회 재판국 관계자에게 문의하고, 재판국 서기에게 마지막 회의록을 요청하여 받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누가 자료를 전달한 것인지 묻는 질문에 그는 “요청해서 받았죠.” 라고 답했다. 그의 입장을 최대한 유리하게 정리하면 “내가 혼자 판단한 것이 아니라 재판국 회장·서기 측에 문의하고 회의록까지 확인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여기서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된다. 재판국장 개인의 설명은 재판국의 판결이 아니다. 재판국 서기 개인의 설명 역시 재판국의 판결이 아니다. 문의는 문의이고 답변은 답변이다. 판결은 권한 있는 재판회가 정해진 절차에 따라 내려야 한다. 재판국 국장과 서기에게 문의했는데, 이런 발언을 할 수 있는가? “권계라고 하는 건 우리 교단법에 의하면 그냥 사과하고 동영상 제출하면 끝나는 겁니다.” 제98회 재판국 판결과 너무 다르지 않은가! 4. 결정적으로 2024년 8월 31일 회의록에는 무엇이 적혀 있었나 제98회 재판국의 2024년 8월 31일 마지막 회의록에는 다음과 같은 취지의 문구가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제출된 사과 관련 동영상을 확인하고 공정한 사과가 이루어졌음을 확인하고 동의와 재청으로 받기로 하다.” 바로 이 문장이 홍*기 목사가 자신의 판단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근거로 삼은 부분이다. 하지만 제98회 재판국 판결은 이 문구 자체에 중대한 법리적 문제가 있다. “동의와 재청으로 받기로 하다”는 것과 권징재판에서 조건충족 여부를 심리하여 최종적인 재판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제명·출교라는 중대한 책벌의 발생 여부가 달려 있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누가 어떤 영상을 제출했는지, 그 영상이 어느 판결의 어느 조건에 해당하는지, 판결이 명령한 사과와 회개가 실제 이루어졌는지, 각 조건에 대해 재판국원들이 어떻게 판단했는지가 확인되어야 했다. 재판국은 동의 제창이 아니라 한건 한건, 한 사람 한사람 일일이 심의 축조 판단을 하고 그 판단을 회의록에 정확하게 기록을 해야 한다. 추후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고, 제명과 출교와 관련된 판결이기 때문에 신중하고 정확하게 판단을 해야 한다. 만약 그러하지 아니하였다면 그 책임은 제98회 재판국 서기에게 있다. 5. 그런데 당시 제98회 재판국 국원 중 두 국원의 진술은 “함께 제대로 보지 않았다”는 취지다 [2024. 8. 31. 제98회 마지막 재판국 회의에 대한 국원 2명 진술 속기 녹취록] 이 부분에서 당시 제98회 재판국원이었던 두 국원의 진술이 중요해진다. 제108회 재판국에 제98회 재판국 국원 두 사람의 진술을 증거로 제출되었다. 제98회 재판국이 마지막으로 해벌 문제를 논의할 당시 사과 영상의 내용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속기 녹취록이다. 제98회 재판국 국원 진술의 요지는 이렇다. 재판국원들이 관련 영상을 모두 함께 보고 각 당사자의 조건 이행 여부를 일일이 심리한 것이 아니라, 영상 내용을 함께 확인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과가 이루어진 것으로 정리했다는 것이다. 이 진술이 사실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보지 않은 증거에 대하여 어떻게 ‘공정한 사과가 이루어졌다’고 재판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가.! 6. 박* 장로의 진술은 더욱 직접적이다 더구나 제98회 원심판결에서 중요한 사과 대상자였던 박* 장로의 진술도 제출되었다. 박* 장로가 진술한 내용에 따르면, 박* 장로는 자신이 판결에서 요구된 사과를 받지 못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매우 단순한 사실확인 문제다. 판결이 “박*과 공회 앞에 사과하라” 고 명령했다면, 먼저 확인할 것은 “2024. 8. 25일까지 박*에게 실제 사과했는가?” 27일까지 사과 영상을 제출했는가? 이다. 그런데 사과 대상자인 박* 본인이 사과를 받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박*에게 사과한 영상도 확인되지 않는다는 자료가 존재한다면, 어떻게 단순히 “사과가 공정하게 이루어졌다”고 정리할 수 있었는지 설명이 필요하다. 7. 이것은 단순한 영상 확인 문제가 아니다 — 권징조례 제17조 문제다 영상을 확인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판결은 영상이 제출되었다는 사실과 판결조건을 충족했다는 재판적 판단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권징조례가 요구하는 재판은 단순히 서류나 영상을 접수하는 행정회의가 아니다. 재판회 국원들이 증거를 검토하고, 사건의 각 부분을 판단하고, 판결조건이 충족되었는지를 재판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따라서 “영상이 제출되었다.” “사과가 있었던 것 같다.” “동의와 재청으로 받았다.” 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8. 권징조례 제24조 제6·7·8항은 더욱 명확하다 권징조례 제24조 제6·7·8항은 이 사건의 핵심을 정확히 짚는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6. 본 치리회원만 합의한다. 7. 고소장과 설명서의 각 조에 대하여 일일이 가부 결정한다. 8. 본 안건 전부에 대하여 결정하고 그 최후 결정은 회록에 기록한다.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재판국원들이 함께 합의해야 한다. 회장 한 사람이나 서기 한 사람의 판단으로 대체할 수 없다. 물론 동의 제창으로 결정할 수 없다 둘째, 사건의 각 조에 대하여 일일이 판단해야 한다. 누가 영상을 냈는지, 누구에게 사과했는지, 공회 앞 사과가 있었는지, 악의적 선고소에 대한 회개가 있었는지를 사람별·판결별로 판단해야 한다. 셋째, 사건 전체에 대한 최종결정을 내리고 그것을 회의록에 기록해야 한다. 이것이 재판이다. 그런데 제98회 재판국은 함께 합의하지도, 사건의 각 조에 대하여 일일일 판단하지도, 사건 전체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리고 그것을 회의록에 기록하지도 않았다! 9. 그렇다면 8월 31일 실제로 ‘축조심의’를 했는가 바로 이것이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제98회 재판국 국원 두 사람의 관련 진술에 따르면, 사과·회개 관련 영상을 재판국원들이 함께 시청하지 않았고, 누가 어떤 영상을 제출했는지 일일이 함께 확인하지 않았고, 각 당사자별로 판결조건 충족 여부를 축조하여 가부 결정하지 않았고, 본 안건 전체에 대한 최종결정을 적법한 재판적 방식으로 남겼는지도 문제된다. 이 진술들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단순한 회의록 작성상의 실수가 아니다. 권징재판의 핵심 절차 자체가 제대로 이루어졌는가의 문제다. 10. 특히 최*근을 축조해서 판단했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었어야 하는가 최*근 장로를 대입하면 문제점은 더욱 명확해진다. 판결문에 따르면 최*근은 원심판결과 기타병합판결 두 곳에 모두 등장한다. 원심판결에서는 사과조건 불이행시 제명·출교. 기타병합판결에서는 악의적 선고소에 대한 거짓말에 대한 회개조건 불이행시 다시 제명·출교. 따라서 8월 31일 재판국이 최*근의 지위를 판단하려 했다면 최소한 두 가지를 별도로 심리했어야 한다. 원심판결의 사과조건을 이행했는가? 그리고 기타병합판결의 악의적 선고소에 대한 회개조건을 이행했는가? 하나의 영상을 보고, “사과했으니 됐다” 고 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었다. 11. 안*호·원*순도 사람별로 판단했어야 한다 원심판결의 안*호·원*순 역시 마찬가지다. 판결이 박*과 공회 앞의 사과를 명령했다면, 안*호가 박*장로에게 사과했는가. 안*호가 공회 앞에서 판결이 요구한 사과를 했는가. 원*순이 박*장로에게 사과했는가. 원*순이 공회 앞에서 사과했는가. 각각 정해진 기한 내 영상이 제출되었는가. 이것을 각각 판단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각 조에 대하여 일일이 가부 결정한다”는 권징재판의 취지다. 12. 이*관·최*근은 기타병합판결의 ‘악의적 선고소에 대한 거짓말에 대한 회개’를 별도로 판단했어야 한다 기타병합판결도 마찬가지다. 이 사건에서 요구된 것은 단순한 사과가 아니라 악의적 선고소에 대한 거짓말에 대한 회개였다. 따라서 이*관과 최*근 등에 대해서는 단순히 “사과영상이 제출되었다.” 는 것으로 끝날 수 없다. 판결이 요구한 악의적 선고소에 대한 거짓말에 대한 회개가 있었는지를 별도로 판단했어야 한다. 특히 최*근은 원심판결과 기타병합판결 양쪽에 걸쳐 있기 때문에 더욱 엄격하게 구별했어야 한다. 13. 권징조례 제25조 — 최종 판단은 기록으로 남아야 한다 권징조례 제25조도 중요한 근거이다. 2024. 8. 31. 제98회 재판국 회의 재판기록에 고소장, 설명서, 피고의 답변, 최후 결정, 모든 처리 조건과 명령 및 그 이유 등이 밝혀져야 한다. 이 조항의 의미는 명확하다. 재판의 최종결과는 나중에 회장이나 서기가 말로 설명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재판 당시의 기록에서 확인되어야 한다. 따라서 2024년 8월 31일 회의록이 단지 “공정한 사과가 이루어졌음을 확인하고 동의와 재청으로 받기로 하다.” 라는 정도에 그쳤다면 질문해야 한다. 누구에 관한 판단인가? 원심판결인가, 기타병합판결인가? 누가 어느 조건을 이행했다고 판단한 것인가? 박*에 대한 사과는 어떻게 확인했는가? 공회 앞 사과는 어떻게 판단했는가? 악의적 선고소에 대한 회개는 어떻게 확인했는가? 각 사람에 대해 가부를 결정했는가? 최*근에게 존재하는 두 개의 조건부 제명·출교 문제를 각각 판단했는가? 그 답이 재판기록에서 명확하게 확인되어야 한다. 14. 이것이 홍*기 목사의 “회장·서기에게 물어봤다”는 설명이 결정적 근거가 될 수 없는 이유다 이제 홍*기 목사의 설명으로 돌아가 보자. 홍*기 목사는 재판국 관계자에게 문의하고 국장과 서기에게 회의록을 요청하여 판단했다고 한다. 하지만 권징조례가 요구하는 것은 회장에게 물어봤는가가 아니다. 서기에게 물어봤는가도 아니다. 재판국원들이 적법한 재판절차를 거쳐 함께 증거를 확인하고, 함께 심의하고, 각 조를 축조하여 가부를 결정하고, 전체 사건에 대한 최종결정을 기록했는가이다. 따라서 회장이나 서기가 나중에 “사과한 것으로 처리했다.” 고 설명하더라도 그것이 8월 31일 당시 존재하지 않았던 재판절차를 사후적으로 만들어 줄 수는 없다. 15. 홍*기 목사는 마지막 회의록 한 문장을 너무 크게 해석했다 홍*기 목사의 가장 큰 오류가 여기서 드러난다. 그는 마지막 회의록의 “공정한 사과가 이루어졌음을 확인하고 동의와 재청으로 받기로 하다” 라는 취지의 문구를 근거로 권징상 지위가 회복된 것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그 문장 이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증거를 함께 보았는가. 사과 대상자에게 실제 사과했는가. 원심판결과 기타병합판결을 구별했는가. 사과와 회개를 구별했는가. 사람별로 조건충족 여부를 판단했는가. 각 조에 대해 가부를 결정했는가. 재판국원들이 합의했는가. 최종 판단과 이유를 회의록에 남겼는가. 이것이 먼저다. 16. 제98회 판결문이 홍*기 목사의 설명보다 법리적으로 중요한 이유 단순하다. 판결문을 판결문대로 보자는 것이다. 원심판결의 안*호·최*근·원*순은 각각 판결조건 이행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기타병합판결의 이*관·최*근·박*민·윤*호 역시 각각 별도의 조건을 확인해야 한다. 특히 최*근은 두 판결에 모두 포함되어 있으므로 두 조건을 각각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그 판단은 회장이나 서기의 개인적인 설명이 아니라 재판국원들이 증거를 확인하고 합의하여 내린 재판적 판단이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홍*기 목사의 “사과하면 끝난다.” 라는 설명과 제98회 판결문의 법률적 분석이 결정적으로 갈라지는 지점이다. 결론 — 8월 31일 회의록 한 줄로 제98회 판결 전체를 설명할 수 없다 이 사건의 핵심은 의외로 단순하다. 홍*기 목사는 제98회 재판국의 마지막 회의록을 요청하여 받았고, 재판국 관계자에게 문의한 뒤 그 내용을 근거로 성도들에게 권징상 지위를 설명했다. 그러나 이후 제출된 제98회 재판국 국원의 진술과 박* 장로의 진술과 제98회 재판국 판결문은 그보다 훨씬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재판국원들이 영상을 실제로 함께 보았는가. 박*에게 실제 사과했는가. 공회 앞 사과를 사람별로 확인했는가. 기타병합판결에서 요구한 악의적 선고소에 대한 거짓말에 대해 회개를 확인했는가. 원심판결과 기타병합판결을 구별하여 심리했는가. 각 사람과 각 조건에 대해 축조하여 가부를 결정했는가. 본 안건 전체에 대한 최종 판단을 회의록에 남겼는가. 이것이 확인되지 않는다면 “공정한 사과가 이루어졌음을 확인하고 받기로 했다”는 회의록 한 문장만으로 제98회 판결 전체의 법적 효과를 확정했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관련 진술대로 재판국원들이 사과·회개 영상을 함께 시청하지 않았고, 제출자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았으며, 원심판결과 기타병합판결의 조건을 사람별로 축조하여 가부 판단하지 않았다면, 문제는 단순한 회의록 표현의 부정확성이 아니다. 권징조례가 요구하는 합의·축조심의·전부결정·기록이라는 재판의 핵심절차가 실제로 이루어졌는가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된다. 그런데 홍*기 목사는 이러한 문제를 확인하기보다 “권계는 사과하면 끝나는 것”, “제 기준”, 그리고 회장·서기에게 문의하여 받은 마지막 회의록을 근거로 결론을 내렸다. 바로 그 점에서 그의 설명은 법리적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회장에게 물어본 것은 합의가 아니다. 서기에게 확인한 것은 판결이 아니다. 영상을 제출한 것은 조건충족의 판단이 아니다. ‘받기로 했다’는 한 문장은 축조심의와 최종판결을 대신하지 못한다. ‘그렇게 들었다’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증거를 보고, 함께 심의하고, 각 조를 판단하고, 최종결정을 기록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그 절차가 없었다면 홍*기 목사의 당시 설명은 단순한 표현상의 실수를 넘어, 제98회 재판국의 판결과 권징절차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성도들에게 법적 결론을 먼저 설명한 것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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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6-09-26
  • 적법한 위탁판결 방법은?
    권징조례상 위탁판결은 하회가 결정하기 어려운 재판사건을 상회에 맡기는 제도이고, 직접 심리·판결을 구하면 사건 전체가 상회에 위임되는 구조입니다! “임시당회장은 재판할 수 없으니 위탁했다?” 홍*기 목사의 설명, 과연 총회헌법에 맞는가? 공개재판에서 홍*기 목사는 이 사건의 위탁판결과 관련하여 “임시당회장이 재판할 수 없기 때문에 위탁판결을 청원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이 설명을 총회헌법과 제110회 총회 각 치리회 재판 시행세칙과 권징조례의 구조에 대입해 보면 오히려 근본적인 의문이 발생한다. 1. 재판권이 없으니 위탁하면 된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위탁판결은 재판권이 없는 임시당회장이 재판할 수 없다는 이유로 사건을 상회에 보내는 제도가 아니다. 권징조례 제78조는 위탁판결을 “본회에서 결정하기 어려운 재판 사건”에 관하여 하회가 상회에 서면으로 제출하는 제도로 규정한다. 제80조는 직접 상회의 심사와 판결을 구하는 경우에는 “그 사건은 상회에 전부 위임한다”고 규정한다. 즉 위탁판결의 출발점은 단순한 민원이나 행정안건이 아니라 적법하게 성립한 재판사건이다. 따라서 “임시당회장이 나는 재판권이 없으니 상회에 넘기면 된다”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2. 오히려 홍*기 목사의 발언은 더 큰 질문을 만든다 홍*기 목사의 설명대로 임시당회장에게 재판권이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면,그 다음 질문은 너무나 명확하다. 재판권이 없는 임시당회장이 어떻게 재판사건의 기소와 형성에 관여하고, 다시 그 사건을 상회에 넘기는 위탁판결 절차에 관여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한다. 제110회 총회 각 치리회 재판 시행세칙 중 위탁판결 시행세칙은 원칙적으로 “위탁 판결은 소송을 맡은 재판회만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임시당회장에게 재판권이 없다는 사실은 잘못된 기소·위탁절차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아니라, 오히려 그가 왜 재판절차에 관여했는지를 따져야 하는 출발점이 된다. 3. 기소와 위탁판결 사이의 절차가 사라져서는 안 된다 특히 치리회(당회, 노회, 총회)가 직접 기소하는 사건이라면 절차가 있다. 치리회의 기소결의 → 기소위원 선정 → 기소장·죄증설명서 작성 및 제출 → 적법한 접수→ 재판회 변격 → 재판사건 성립 → 위탁판결 결의 → 위탁판결청원→ 상회의 수리 및 재판국 위탁. 이러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따라서 “임시당회장이 직접 재판할 수 없었다 → 그래서 노회에 위탁했다”는 두 단계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중간에 반드시 누가 적법하게 기소하였는지, 누가 기소위원을 선정하였는지, 언제 재판사건이 성립하였는지, 어느 재판회가 위탁판결을 결의하였는지가 확인되어야 한다. 4. ‘재판권 없음’과 ‘위탁할 권한 있음’은 같은 말이 아니다 이 부분에서 홍*기 목사의 설명은 특히 법리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재판권이 없다”는 명제에서 곧바로 “그러므로 위탁판결을 청원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논리의 순서는 반대다. 위탁판결을 하려면 먼저 적법한 재판사건과 이를 맡은 재판회의 권한이 존재해야 한다. 따라서 재판권이 없는 임시당회장이 관련 절차에 실질적으로 참여하였다면, 무슨 권한으로 기소절차에 관여했는가? 무슨 권한으로 재판사건 형성에 관여했는가? 무슨 권한으로 위탁판결 결의에 관여했는가? 이 세 가지부터 밝혀야 한다. 5. 재판법리를 거꾸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홍*기 목사의 발언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재판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위탁했다”는 설명은 ‘재판권 없음’을 ‘위탁판결권의 근거’처럼 사용하는 논리이다. 그러나 재판권의 부재가 새로운 재판권을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위탁판결은 재판권이 없는 임시당회장에게 주어지는 우회수단이 아니라, 권징조례가 정한 요건을 갖춘 재판사건을 하회가 상회에 맡기는 정식 권징절차이다. 따라서 홍*기 목사의 발언이 위와 같은 의미였다면, 이는 위탁판결의 법적 구조를 정확하게 이해한 설명이라고 보기 어렵다. 6. 홍*기 목사는 먼저 이것부터 설명해야 한다 홍*기 목사가 공개재판에서 위와 같은 법리를 주장하였다면 다음 질문에 답하는 것이 먼저다. 임시당회장에게 재판권이 없다면서, 재판권이 없는 임시당회장이 관여한 기소와 위탁판결 절차는 어떠한 총회헌법과 권징조례에 의하여 적법하다는 것인가? 단순히 “재판을 못 하니까 노회에 넘겼다”고 설명할 문제가 아니다. 적법한 기소결의가 있었는지, 적법한 기소위원 선정이 있었는지, 재판사건이 성립했는지, 재판회가 적법하게 위탁판결을 결의했는지, 정식 위탁판결청원과 관계서류가 제출되었는지부터 밝혀야 한다. 결론 — 헌법을 모르고 재판을 설명해서는 안 된다 홍*기 목사의 발언대로 임시당회장에게 재판권이 없다면, 그것으로 위탁판결의 적법성이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재판권이 없는 임시당회장이 어떻게 기소와 위탁판결이라는 권징재판절차에 관여할 수 있었는지를 먼저 설명해야 한다. “재판할 수 없어서 위탁했다”는 말은 그 자체로 적법한 위탁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적법한 기소도, 적법한 재판사건도, 적법한 위탁결의도 확인하지 않은 채 이러한 설명을 하였다면 이는 총회헌법상 위탁판결의 법리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거나 잘못 이해한 설명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교회 재판은 말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소에는 기소의 법이 있고, 위탁에는 위탁의 법이 있으며, 재판에는 재판권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 재판권이 없다는 사실이 위탁판결권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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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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