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7-11(금)
 
  • 코끼리 만지는 인생, 이근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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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베스트셀러 《나는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살고 싶다》의 저자, 이화여대 명예교수, 50년간 정신과 전문의로 활동한 이근후 박사가 쓴 책이다. 각 단락별로 내용이 길지 않고 좋다. 팁을 준다면, 설교자들에게 사용할 수 있는 예화거리가 풍부하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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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 없는 삶이 있을까?

요즘 유행어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소확행이라고들 한다. 일본의 소설 가무라카미 하루키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A Small, Good Thing)에서 따와 만든 신조어라고 한다. 작은 데서 기쁨을 누리고 단순하고 소박한 삶에서 느끼는 행복을 말한다. 사람들의 희망 사항 중에는 그 누구도 이룰 수 없을 만큼 과하고 허망한 것이 있는가 하면 이룰 수 있는데도 작은 것이라고 등한시하는 것이 있다. 작고 소박하다는 이유로 이룰 수 있음에도 이루지 못했다면 그야말로 정말 아쉽다는 말을 해도 손색이 없겠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자기가 한 행동이 아쉽다고 하는 분이 꽤 많다. 그 내용을 들어보면 그리 큰 후회가 생길 일도, 아쉬움이 들법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게는 몹시도 안타깝고 아쉬운 일인 모양이다. 아쉬움이란 ‘어떤 일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거나, 필요한 것이 모자라거나 없어서 안타깝고 서운한 마음’인데, 곧 내가 뜻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불만이 싹트고 그 지점이 바로 서운함이 생기는 출발점이 된다. 한 번에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혹여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나 행복을 위해 도전한다면 성취 후의 기쁨은 배가 될 것이다. 아쉬움이란,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었지만 어떠한 사정으로 이루지 못한 데서 오는 감정으로서 어찌 보면 값진 것이다. 특히 젊은이들은 아쉬움이 남는 일에 젊음과 패기로 재도전할 기회를 갖고 있다. 역설적으로 아쉬움을 많이 경험한 사람이 다시 도전할 확률이 높고, 노력을 거듭한다면 인생의 성공률도 높아질 것이다. 단, 그 아쉬움의 원인을 자신에게 끝없이 따져 물어보며 포기하지 않고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삶을 성공적이고 행복하게 이끌 수 있다. 그러나 아쉬움이 크더라도 사람마다 제각각 그 능력과 상황이 달라서 도저히 이룰 수 없는 목표도 분명히 있다.

지금까지 말한 아쉬움은 일반적으로 느끼는 소소한 아쉬움이지만 그보다 더 큰 아쉬움도 있다. 이러한 커다란 아쉬움은 개인적이라기보다 사회나 국가를 위한 이타적인 희망이 성취되지 못했을 때 드는 아쉬움을 말한다. 그런 아쉬움은 특히 마음속 깊은 곳에 오래 남으리라고 생각된다. 누군가는 자연과 인류를 위해 못다한 일을 돌이켜 보며 아쉬움을 마음에 품고 후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질주하듯 내달리는 시간이 없다면 훗날 아쉬움과 함께할 수밖에." 이런 속담도 전해져 내려온다. "잃은 도끼는 쇠가 좋거니(새로운 물건이나 사람이 먼저의 물건이나 사람보다 못할 때 생기는 아쉬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나간 머슴이 일은 잘했다(있을 때는 귀함을 모르다가 잃은 다음에야 아쉬움을 느 끼게 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모두 이미 없어졌거나 잃어버린 것에 대한 소중함은 뒤늦게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전 세기에 활약했던 프랑스의 철학가이자 소설가, 극작가이자 평론가인 장 폴 사르트르(1905~1980)는 한평생 자유를 부르짖고 개인의 실존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는 1980년 3월 파리의 부르세 병원에서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로 병명도 묻지 않고 한 달 동안 찾아온 사람들에게 소리 지르며 발악하다가 죽었다고 한다. 그가 일평생 부르짖은 자유와 실존을 생각해 보면 믿기지 않는 이야기지만 만일 실제로 그가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며 괴롭게 생을 마감했다면 만족스럽지 못했던 인생에 대한 아쉬움의 절규는 아니었을까?

또 다른 예로 프랑스의 황제이자 군인이었던 나폴레옹(1769~1821)을 들 수 있다. 나는 유럽 여행 중 나폴레옹이 연합군에 패전했던 장소인 워털루를 찾은 적이 있다. 워털루 평원의 한편에는 자그마한 나폴레옹 기념관도 있었는데 당시 치열했던 전투 상황을 미니어처로 만들어 전시해 놓았다. 그리고 실제 크기와 비슷하게 만든 모형 사령관실에는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한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는 나폴레옹 모형도 놓여 있었다. 마치 그 모양새가 잘 나갔던 옛날처럼 호기를 부리며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말을 되새기고 있는 듯했다. 위세가 등등 했던 그가 임종이 가까워지자 이런 유언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나는 불행했다. 프랑스, 군대, 조제핀...." 이 말을 하고 나폴레옹은 초라하게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자신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없다고 했던 그가 죽음에 이르렀으니 그 죽음은 또 얼마나 아쉬웠겠는지 감히 짐작만 해볼 따름이다.

크든 작든 아쉬움이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작지만 이루고 싶었던 일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나 나폴레옹처럼 불가능이 없는 삶을 꿈꾸며 유럽을 정복하던 이가 느낀 아쉬움도 굳이 비교해 본다면 그 모양새가 다를 뿐이지 그 메커니즘은 동일하다. 반대로 만약 아쉬움이 없는 삶이 있다면 그 삶은 꿈결처럼 달콤하기만 할까? 하는 일마다 곧바로 성취로 이어지니 만족감이 대단할 것도 같으나, 실제로는 실패의 좌절과 아쉬움을 경험하지 못했으니 성취에서 오는 만족감을 오롯이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실패의 경험이 부족한 경우에는 경험의 부재에서 오는 실패의 충격이 너무 커서 다시 일어서지 못할 만큼 취약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크든 작든 아쉬움이 있는 실패를 직시하며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저 본다면 곧 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해답을 찾았다면 재도전해 보는 것이다. 실패했던 윈인을 찾아 보완하여 재도전한다면 웬만한 소소한 아쉬움은 극복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행동으로 옮겨 재도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패가 두려워서 움츠러들고 재도전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다른 형태의 아쉬움을 남기고 말 것이다. 다시 한번의 도전을 통하여 마음먹은 것을 이룰 수 있다면 그 만족감은 곧 행복으로 이어질 것이다. 주어진 삶이 다하여 임종에 가까워진 순간 아무리 아쉬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남은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젊었을 때 아쉬움도 경험해 보고 또 그 아쉬움을 발판삼아 극복하기를 도전해 보기를 적극 권장한다(pp. 165-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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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살아보니, 인생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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