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09(월)
 
  • 철도원 삼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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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66년생으로 일제의 지배와 6.25 한국전을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하다. 만약 내가 일제치하에서 살았다면 얼마나 좌절했을까? 그리고 한국전을 경험했다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주권을 잃고 일제의 노예로서 살아온 36년의 세월은 얼마나 비참한가? 그런데 일본은 여전히 사죄하지 않고 있고, 일부 국민들은 그때가 좋았고, 일본에 의해 근대화가 되었다는 말을 서슴치 않고 있다.

황석영이 쓴 이 책은 600페이지가 넘는 장편이다. 일제시대에 누군가는 매국노와 앞잡이가 되고, 누군가는 독립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쳤다. 그러다 미국에 의해 독립이 됐다. 이후 어떻게 되었는가? 친일 매국노와 앞잡이를 단죄하지 못하고 그들은 카멜레온처럼 변신에 성공해 부귀영화를 누리며 천수를 살다가 자식들에게 물려줬다. 그런면에서 친일파와의 싸움은 현재 진행형이고, 이것이 마무리 되어야 민족정기는 바로 설 것이며, 역사의 모순이 해소될 것인데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매우 회의적이다.

 

(pp. 531-535) 야마시타 최달영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늘 덴노 폐하의 옥음은 무슨 의미입니까?" "무슨 의미? 말씀 그대로 일본이 연합국의 결정을 받아들여 종전하겠다는 거요." "그럼 일본 사람은 누구나 귀국하게 되는가요?" "물론이지. 이제 당신 같은 사람이 나서서 조선의 경찰을 발전시 켜야겠지." 최달영은 다시 그에게 물었다. "조선이 독립국가가 되면 저 같은 사람은 처벌을 받게 되겠지요." 그때 마쓰다는 낮게 웃음소리를 냈다. "아마 그렇게 되지는 않을걸.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이 이긴 건 아니잖소. 이제 미군이 들어오면 우리의 치안 행정 체계를 고스란히 받아들일 거요." 마쓰다는 손가락을 위로 세우면서 말했다. "저쪽에 들어오는 건 공산주의 소련 아닌가. 여긴 자본주의 미국이 들어오고. 미군은 당신 같은 유능한 사람을 원하게 될 거요. 우리에게 잘했으니 그들도 자기네에게 잘해줄 사람을 찾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더구나 당신은 공산주의자 때려잡는 기술자란 말이지."

최달영은 눈앞이 번쩍할 정도로 어떤 깨달음이 지나가는 걸 느꼈다. 마쓰다가 계속해서 말했다. "야마시타 상만 그런 게 아니야. 오늘 오후에 보니까 조선인 순사들 보조원들 모두가 슬그머니 사라져버렸더군. 우리도 휴직을 하게 될 모양인데 아마 열흘이 못 갈 거요. 미군이 들어오면 그때 부터 치안은 다시 회복이 될 테니까." "그러면 저도 오랜만에 휴가를 좀 가겠습니다. 미군 점령군이 오면 그때쯤 다시 뵙겠습니다." "음. 그러지. 그때는 꼭 서에 출근하오. 그리고 무기두 챙기고 다니라구." 최달영은 무엇인가 큰 깨달음을 얻고 어쩐지 기운이 나서 안양 처갓집으로 가는 경부선 완행열차를 탔다.

건준의 보안대나 학병동맹의 청년들이 서울의 각 경찰서를 점거 하면서 일경과 마찰을 빚었다. 과거의 원한으로 조선인 경찰들을 살해하거나 폭행한 경우가 수십건 발생했지만 사태는 곧 찾아들었다. 이에 비하면 소련군 점령하의 북한은 일본 경찰과 헌병은 물론 검사나 판사의 과거 이력을 조사하고 조선인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라 재판정에 세워 사법적 처벌을 했다. 따라서 수많은 조선인 출신 경찰과 관리가 이남으로 도망쳐 내려왔다. 예상했던 대로 구월 초에는 서울의 경찰서마다 뒤숭숭하던 치안 불안 현상이 사라졌다. 서울 시내를 일본군이 지키기 시작했고 일제 경찰 간부들은 조선인 경찰 간부들에게 직임을 승계해주었다.

최영은 안양 처가에 푹 박혀서 세월을 보냈다. 겉으로는 무사태평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의 속내는 불안하고 착잡하기만 했다. 그는 자기가 확보한 경부보라는 일제 경찰 계급이 수많은 조선인 직업 가운데서 흔치 않은 위치임을 알고는 있었다. 미군이 인천에 상륙하고 나서 최달영은 조심스럽게 영등포경찰서로 출근했다. 포고령에 의하면 모든 직업인이 직장으로 돌아가 평소의 직무를 수행하라고 되어 있었다. 경찰은 누구보다도 먼저 직무 수행에 나서야할 것이다. 마쓰다 부장은 최달영이 사무실로 들어서자 오이, 하면서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가 다가가자 마쓰다는 반갑게 말했다. "당신의 출근을 기다렸소. 우리 일본 측 경찰관은 모두 해임 조치되었다. 그리고 조선인 서장이 부임하게 될 게야, 당신은 용산서로 발령이 났더군." 마쓰다는 공문을 최달영에게 내밀어주었다. "여기서 잔뼈가 굵었지만 아무래도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겠소. 미군정 경무부에서는 그런 점들을 참조한 것 같더군." 서울 시내 열개 경찰서장과 경기도 내 이십일개 경찰서의 서장이 미군정 당국에 의해 임명되었으며 이들은 모두가 일제의 경찰 이었거나 관리의 경력을 가진 자들이었다. 최달영은 발령받은 용산서로 출두했다. 조선인 신임 서장은 역시 이전에 일제 경찰 경시였고 정식으로 순사 시험을 치르고 간부직에 오른 사람이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고위직에 오르려면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을 많이 체포하고 투옥시켜야 했을 것이다. 그는 그의 이력이 적힌 서류를 들고 잠시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바로 직속상관이던 마쓰다 경부는 내 동료였다. 자네 같은 유능한 전문가들이 필요한 시국이다. 경감으로 일계급 특진하고 사찰과장을 맡아주게." "핫, 멸사봉공하겠습니다." 서장은 빙긋 웃었다. "이봐, 우리는 일제 경찰이 아니다."

경부보는 개칭된 경찰 계급으로 경위였고 직책은 계장이나 주임 이었는데 이제 그는 과장인 경감이 되었다. 더구나 사찰과는 바로 몇달 전 일제의 고등과를 개칭한 것이었다. 그리고 해방된 지 불과 한달 뒤인 구월 중순에 군정경찰은 처음으로 경찰관 채용 시험을 일제 때의 경찰강습소에서 실시했다. 무슨 문제를 내고 필기로 답하는 식이 아니고 면접 시험이었다. 최달영은 수소문하여 옛날에 정탐조의 순사 보조 두 사람과 조선인 형사 등 예전 부하들에게 연 락하여 면접 시험에 응하도록 했다. 그는 시험관으로 면접을 책임졌다. 면서기나 간수 또는 일제 기관의 용인 사환 등 관청 근처에서 밥 부쳐먹던 자는 무조건 합격시켰다. 성명 석자를 써보게 해서 적당히 끄적거리면 문맹자가 아닌 것을 확인하고 합격시켰다. 처음에 군정 당국이 급히 발령을 냈던 서장들 중에 경찰이 아닌 관리 출신의 인사들과 정견이 다른 인사들이 물러나자 서울 시내의 경찰서장 여덟자리가 비게 되었다. 용산서장이 다른 행정직으로 옮겨가고, 해방 당시에 경부보였던 최달영은 용산경찰서장을 맡으면서 다시 이 계급 특진을 했다. 그의 이력에 주목했던 경무부 간부들의 결정이었다. 해방 이듬해 일월 중순이었으니 경찰서 고등계 형사반장이던 야마시타 경부보가 불과 다섯달 만에 총경이 되고 용산경찰서장이 된 것이다. 그는 이름도 최용으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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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청산되지 않은 과거의 악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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