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9-19(목)
 
  • 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 박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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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생인 나만해도 외국인이 낯설다. 외국도 기껏해야 아시아권만 다녀봤다. 그런데 안산이나 구로동, 혹은 농어촌에는 이미 많은 외국인들이 와서 살고 있다. 우리나라 출산률은 세계 최저이고 인구는 소멸 중이다. 결국 외국 이민자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단일민족”이라면서 5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거친 한민족은 이제 자연스럽게 더 혼혈족이 될 것이다. 낯설지만 적응해야한다.

 

(pp. 42-43)홍류는 〈오래된 황금산>과 〈파리스의 심판>에서 중국계 미국 여성으로서 미국을 그린다. 여러 문화가 뒤섞인 미국의 역사와 현재를 증언하면서, 오해받는 타자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드러낸다. 그럼으로써 작가는 자신을 포함한 중국 이주민들이 미국의 낯선 외부자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한다. 차이나타운의 풍경이 유럽 이민자들의 것과 다르긴 해도, 외딴 섬은 아니 라고 강조한다. 실제 차이나타운에서는 포춘쿠키를 찾을 수는 있어도, 하얀 미국의 휘어진 욕망을 만족시키는 미스테리한 존재 같은 것은 없다. 아직까지 비닐봉지를 쓸지언정, 호랑이는 돌아다니지 않는다. 끊임없이 다른 인종과 문화가 만나고 부딪히며, 매 순간 개개인의 위치 와 사정이 바뀌는 미국에서 (그리고 온 세상에서) 순수한 원래 집단 같은 것이 별도로 존재할 리 없다. 힘을 더 가진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은 있겠지만, 불순한 쪽과 아닌 쪽을 나누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미국에서(또한 어디에서든) 아시아는, 그리고 유색의 이주민들은 저 멀리 따로 있지 않다. 사실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더 가깝게 있다. 텔레비전만 틀면 나오는 한국 범죄 영화에서도 차이나타운은 단골 배경으로 등장한다. 그곳은 언제나 아는 것보다 무섭고,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끔찍한 일들이 발생하는 골목으로 그려진다. 마치 애초부터 이 곳의 일조량과 냄새가 달랐던 것처럼, 어둡고 축축한 이미지로 우리의 바깥을 맴돈다. 차이나타운은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이 사는 지역과도 쉽게 겹쳐진다. 우리가 쳐놓은 불친절한 경계선 너머의 그곳에는 다름을 배척하는 모난 마음들이 풀어놓은 호랑이들이 서성거린다. 

통 계청에 따르면 2021년 대한민국에 사는 외국인의 수는 133만 명이고, 그중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수는 공식적으로만 84만 명 이상에 달한다고 한다. 다양한 사회 구성원이 만드는 혼종 문화와 변화하는 정체성은 이미, 지금, 여기의 실제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차이와 낯섦을 구실로 이방인들을 여전히 멀리 밀어내곤 한다. 코로나19 이후로 외부인에 대한 경계는 더욱 살벌해지는 분위기다. 정치적 갈등이나 문화적 차이, 혹은 전염병의 확산 등을 핑계로 중국이나 외국인들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난폭한 차별의 말을 내뱉는 것을 자주 듣게 된다. 폭력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끔찍하지만, 혐오의 언어들이 그저 가볍게 받아들여지고 일상적으로 자리 잡아간다는 사실은 더 소름끼친다. 오해와 증오는 가짜 맹수를 살찌운다. 몸집을 키운 사나운 상상들이 모두를 물어뜯게 될까 봐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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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이미 다민족, 다문화 사회인 한국...그 낯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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