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9-19(목)
 
  •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 이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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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건물 외벽에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어떤 책을 보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과거 금서(禁書)도 있었고, 책을 태우는 일도 있었다. 15년간의 담임목회를 중단하고 목양실을 비울 때 가장 곤란했던 것이 수많은 책들이었다. 많은 책들을 처분하고 중요하다 싶은 책들만 가지고 이사를 했고 현재 옥탑방에 서재가 마련됐다. 이제는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본다. 둘 곳도 없고, 한번 읽고 말 책을 굳이 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어려서부터 독서가 취미인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요즘은 취재가며 책을 들고 다닌다. 지하철에서 읽다보면 그래도 꽤 읽을 수 있다. 책 읽는 재미는 여전히 쏠쏠하다.

 

(pp. 53-54) 나는 남의 집 책 구경을 좋아한다. 누군가의 집에 놀러 갔을 때 제일 먼저 눈이 가는 건 그 집 책꽂이다. 꽂아둔 책들을 보면 평소에는 닿지 못 했던 그 사람의 안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의 허락 없이 책꽂이를 보는 건 그 사람의 비밀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조금 무례한 일인가 싶기도 하다. 타인의 서가 앞에 서면 간질거리는 마음과 조심스러운 마음이 서로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일어난다. 서로 쌈박질하는 마음으로 꽂혀 있는 책들을 보고서 뒤돌아 그 사람을 보면, 그를 좀 더 알게 된 것 같은 친밀감이 한결 피어난다.

이십 대 때까지만 해도 한쪽 벽은 만화책으로, 다른 쪽은 그림책으로, 나머지는 좋아하는 글자책으로, 사면이 책으로 넘실대는 방을 꿈꿨었지만 현재의 내겐 그만한 공간도 재력도 없다. 누가 내 빈약한 책꽂이를 들어 보면 살짝 부끄럽다. 뿌리가 없고 이사가 잦은 해외동포의 삶은 애초에 책과 좋은 궁합이 아니다. 내 책들은 여러 국가와 도시를 거치는 동안 뿔뿔이 흩어져버린 데다. 좋아하는 책일수록 빌려주길 좋아해서 어딘가로 사라진 책도 많다. 알고 지내는 어느 작가분께서는 결혼이란 걸 생각하면 둘의 서가를 결혼시키는 일이 가장 설렌다고 했다.

하지만 나의 반려인은 물성이 있는 종이책보다 디지털 북을 선호하기에 우린 딱히 결혼시킬 책이 없었다. 나는 단단한 나무로 짠 좋은 서가에 책들이 빽빽이 꽂힌 넓은 벽을 갖는 게 로망이지만 반려인은 이 편한 세상에 무겁게 책을 싸 짊어지고 다니는 취향이 아니다.

나도 나이가 들면서 쥐려는 마음보단 놓으려는 마음이 커지고 있지만, 좋아하는 책들로만 가득 찬 책장은 작게라도 만들고 싶은 소망이 있다. 어렸을 때 어른들의 책이 가득한 서가를 기웃거리며 미지의 세계를 궁금해하던 기억이 있기에 내 아이들에게 엄마의 책장이라는 추억을 주고 싶은 마음도 한몫한다. 아이들이 훗날 그곳에 꽂혀 있던 알록달록한 책들을 추억하며 엄마라는 사람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으려나. 한곳에 정착을 하면 개미처럼 야금야금 책을 물어다 놓으리라, 나는 상상 속의 서가에 들어갈 책 리스트를 틈틈이 구상하며 히죽거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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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진부하지만 맞는 말...“책은 마음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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