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9-19(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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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미 고인이 되신 박완서 작가를 좋아한다. 그분의 여러 책을 읽었고 이제 나머지 책도 다 읽으려고 한다. 이 책은 그분의 에세이로 1990년이 초판이다. 책에 보니 2002년에 이 책을 샀다고 기록해 뒀다. 광복절에 그 분이 광복절에 대해 쓴 글을 소개한다. 과거 어렸을 때 나도 창경원에 갔었고 거기서 미아가 된 적이 있었다. 이후 창경궁이 동물원이 된 것이 얼마나 극악무도한 일인가를 알게 됐다. 이제는 궁으로 복원이 되었지만 말이다. 악랄한 일본에 대해 쉽게 용서하지 말아야하며 늘 경계심을 가져야한다. 요즘 세상을 보니 친일파가 판치는 것 같다. 일제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다. 참으로 지겨운 역사다. 잡초같이 질긴 친일파들이다.

 

광복절에(pp. 63-65)

옛모습을 되찾기 위해 오랫동안 문을 닫았던 창경궁의 복원 공사가 마무리되어 곧 일반에게 공개되리라 한다. 감개가 무량하다. 해방된 지가 올해로 41년째가 된다. 동물들이 과천의 대공원으로 이사가기 전까지 그곳이 동물원이었으니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고 나서도 근 40년 가까이나 그곳을 동물원으로 놓아두었었다는 얘기가 된다. 지금이라도 복원이 되었으니까 다행이지만 그 일이 야말로 좀더 일찍 했어야 했다.

생각해 보라. 궁(홈)이란 왕족이 거처하는 곳이다. 고로 왕조 시대엔 국가의 존엄성의 상징이었다. 특히 창경궁 안의 명정전은 임금이 백관의 조하(朝賀)를 받던 정전이다. 남대문, 돈화문과 함께 남아 있는 조선 왕조의 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 되고도 건축미의 우아하고 장중함으로 손꼽혔었다.

일제는 한 나라의 왕후를 시해하는 가공할 범죄로 이 나라를 능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던지 궁을 동물원으로 만들고 그 안에다 그들의 국화(國花) 인 벚나무를 대량으로 심었다. 경복궁이 안 보이게 전면에다 총독부 건물을 지은 것과 함께 얼마나 악랄한 침략자의 수법인가. 왕궁의 뜨락을 동물의 우리로 삼고 침략자의 상징인 벚나무를 심어 그 아래에서 유흥을 즐기게 했으니 한 나라를 통째로 먹기 위해선 그 나라의 살아 있는 얼을 먼저 마비시켜야 된다고 계산했음직하다. 얼마나 간악하고도 용의 주도한 계산인가.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다. 그걸 거꾸로 뒤집으면 호랑이도 정신만 빼버리면 쉽게 잡을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그들의 침략 정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정신을 빼는 걸로 일관했다. 신사 참배, 창씨 개명, 언어 말살 등이 그것이다.

창경궁을 해방이 되고 나서도 계속해서 동물원으로 놓아둔 것은 왕조 시대가 아닌 민주 시대를 열려는 우리로서 왕궁의 존엄성의 회복이 별로 시급하지 않았고 그동안 어린이뿐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도 유일한 휴식의 장소로서 굳어져 버렸기 때문이었으리라.

또 지금보다 훨씬 가난할 때였으니 재정상의 애로도 있었을 것 이다. 그렇더라도 40년 가까이나 동물원으로 놓아두고 밤 벚꽃놀이를 즐겼다는 건 너무했다고 여겨진다.

사람이 너무 오래 원한을 마음속에 담아두면 독하다는 소리를 듣지만 너무 쉬 잊으면 업신여김을 당하기가 쉽다. 용서한다는 것하고 잊어버린다는 것하곤 다르다. 용서하되 잊어버리진 말았어야 했다. 잊어버리지 않고 있다는 표시로 그들이 우리의 상징적인 문화재에 가한 모독과 오욕은 속히 씻을수록 좋았었지 않나 이제 명정전과 함께 창경궁이 복원되었다고 해서 동물원이었던 점을 잊어서도 안되겠다. 원한을 너무 쉬 잊으면 업신여김을 당 하는 것은 개인과 개인 사이보다 국가와 국가 사이가 더하다. 침략과 함께 말살까지 당할 뻔했다는 걸 잊어버린다는 건 자존심이 없다는 증거고, 일본처럼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오만 불손한 국민성한테는 먹이나 다름없는 대우를 받기 십상이다.

독일은 유태 민족에게 저지른 잘못을 두고두고 사과하고 뉘우치는데 일본은 역사를 뜯어고치는 등 과거의 잘못을 은폐하기에 급급하다고 비난만 할 게 아니라 우리가 그들의 죄과를 잊어버리지 않고 깨어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할 일이다.

만일 유태인이 그들이 당한 걸 금방 잊어버리고 뼈없이 굴었다면 독일인도 시치미를 딱 떼었을지 알 게 뭔가. 청소년들이여, 잊지 맙시다. 그리고 그들이야 역사를 왜곡시키건 개칠을 하건 우리는 먼저 우리 역사를 바로 압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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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친일파가 큰소리 치는 광복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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