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1-11(월)
 
  • 실패를 해낸다는 것, 최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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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학자 최재천 박사에 대한 책을 대출하면서 함께 대출받았는데 동명이인이었다. 책을 고르는데 실패했지만 내용은 성공적이었다.

살면서 도전하는 사람들은 실패를 경험할 수 있다. 이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가? 이 책은 실패에 대한 책이다. 실패를 가지고 책 한권을 썼다는 것도 대단한데 내용이 읽을만했다. 성공했거나 실패했거나 한 번 읽어보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실패를 예배하라, 실패를 장례하라

“인생의 90%는 실패의 연속이며, 실패를 묻어 두면 계속 실패하고, 실패에서 배우면 성공한다.”-하타무라 요타로(도쿄대 명예교수, 실패학 창시자)

 

세계 실패의 날

10월 13일은 세계 ‘실패의 날(Day of Failure)’이다. 우리도 이 날을 기념하는 이들이 있다. 유래가 있다. 2010년 10월 13일, 핀란드에서다. 핀란드 알토대학의 창업동아리인 ‘알 토이에스(AaltEs)’는 실패의 날 행사를 열었다. 벤처 성공의 경험이 아닌, 실패의 경험을 나누고 소개하고 무엇을 배웠는지를 털어놓는 행사를 개최했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는 핀란드의 로비오 엔터테인먼트가 앵그리버드라는 게임으로 성공하기까지 52개의 게임을 출시했다가 쫄딱 망해 파산 직전까지 갔던 이야기가 공유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창업동아리의 행사였지만 기업들이 참여했다. 다음 해에는 핀란드를 대표했던 요르마 올릴라 노키아 명예회장이 자신의 실패 경험을 공개하기도 했다. 더불어 핀란드 정부가 후원에 나서면서 실패의 날은 세계적인 운동이 됐다.

이미 적었듯 실리콘밸리의 표어는 '일찍 실패하고, 자주 실패하고, 진취적으로 실패하라'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실패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결코 부끄러움일 수 없다. 당연하게도 실패의 날과 비슷한 행사가 실리콘밸리에서도 열리고 있다. 실패를 공유하는 콘퍼런스 형식인데, '페일콘(FilCon)'이라 부른다. 2009년 시작됐다. 역설적으로 실리콘밸리의 ‘정상회담’이라 부르기도 한다. 실리콘 밸리를 대표하는 창업자들이 참여해 실패의 경험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희극성 무대일까. 강조하지만, 우리 사회는 실패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실패는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부정적인 것만도 아니다. 숨겨야 할 그 무엇도 아니다. 정직한 패배가 부끄러움이 아니듯, 성실한 실패는 결코 음습한 절망일 수 없다. 실패를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실패를 객관화할 수 있어야 한다. 냉정하게 실패를 드러내 보이고, 그 실패의 원인과 과정을 토론하고 그 경험을 나만의 것이 아닌 우리와 세상과 공유할 때 실패의 가능성은 축소되고, 성공의 가능성은 확장된다. 모두가 나서서 실패의 날을 기념해야 한다.

 

실패 장례식

이번엔 장례식이다. 실패와 이별을 고하는 장례식. 2014년 멕시코에서 시작된 실패 공유 네트워킹 운동 ‘퍽업 나이츠(FuckUp Nignt)’의 일부다. '퍽업'은 '개판'이라는 의미다. 재밌게 표현하자면 '개판 쳐 본 사람들'끼리 모여 경험을 공유하자는 행사다. 우리나라에서도 열리고 있다. 이 중 하나로 실패한 벤처기업의 장례식을 진행하는 퍼포먼스를 열기도 한다. 재미있는 건 후원회사가 주류회사라는 점. 슬로건은 "장례식에 재미를"이다. 종교 행사가 된 사례도 있다. 미국의 닉슨 매킨스라는 소셜 미디어 회사는 매달 ‘실패의 예배’를 개최한다. 고해 성사의 시간도 있다. 하지만, 공개적이다. 예배는 늘 박수와 함성의 찬양으로 끝맺는다. 축하파티도 있다. ‘클래시 오브클랜’, ‘클래시 로얄’등 모바일 게임을 히트시킨 핀란드 게임사 슈퍼셀은 2010년에 시작한 스타트업이다. 2016년 중국 텐센트가 인수했는데, 금액이 무려 10조 원에 달했다. 회사의 독특한 문화 중 하나가 “실패 축하 파티”다. 프로젝트의 실패가 확인되는 순간 샴페인을 터뜨린다. 실패를 허용하는 정도를 넘어 실패를 지원했을 때 더한 벤처 정신이 살아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구글의 CEO였던 에릭 슈밋 역시 비슷한 관점에서 회사를 이끌었다. 그의 말이다. "구글은 실패를 축하하는 기업입니다." 실패 박람회도 있다. 2018년, 우리나라 행안부와 중소 벤처기업부가 공동으로 개최하기 시작했다. 1회 행사의 모토는 ‘실패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에요!’ 우리 사회도 실패의 경험이 사회의 자산일 수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다들 왜 이러는 걸까. 어느 나라건 실패는 감추고 싶은 문화였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하지만, 더 이상 감출 필요가 없는 자산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어떤 형식을 빌리더라도 실패를 공개하고, 공유하고, 사회적 자산으로 만들 때둘 사회의 한 사회의 성공이 재촉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하얀색 콜라, 보라색 케첩

‘콜라 색’이 있다. 어떤 색인지 바로,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색깔이 없는 무색의 콜라가 있다면? 그걸 ‘크리스털 콜라’라고 불렀다. 1992년 펩시가 시장에 내놓았다. 첫해에는 반응이 뜨거웠는데 다음 해에는 차갑게 식어 버렸다. 그럼, 케첩의 색깔은 무슨 색이어야 할까. 2000년 하인즈는 보라색 케첩을 내놓았다. 처음에는 열광했지만, 나중에 징그럽다며 시장에서 쫓겨났다. 어디로 갔을까. 실패박물관으로 모여들었다. 미국 미시간주에는 실패박물관이 있다. 처음에는 실패 박물관이 아니었다. 신제품 작업소였다. 로버트 맥메스라는 이가 1960년대 말부터 신제품들만을 모으기 시작했다. 애써 모았더니 신제품의 80%가 실패한 제품이 되더라는 것. 7만 점 이상을 수장하게 되자 마케팅 전문가들이 이곳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MBA의 필수 코스가 되었다. 1990년 실패박물관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실패학의 성지가 됐다. 2017년 6월, 스웨덴 헬싱보리에도 실패박물관이 개관됐다. 대표적인 전시품 중 하나가 오토바이 제조사 할리 데이비슨이 1996년 출시한 향수인'핫 로드'다. 할리데이비슨 마니아들은 그들만의 액세서리를 선호한다. 향수도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라이더들의 옷깃에 바람이 스쳐 가듯 향수는 실패했다.

박물관은 최고의 유산만 보존된 곳이 아니다. 아니, 실패 또한 인류 최고의 유산일 수 있다. 실패박물관은 인간의 본질인 실패의 역사를 수집하고 보존하는 곳이다. 인간의 특성인 호기심을 수장하는 곳이다. 인간의 모험과 시도가 얼마나 특별한지를 자랑하는 곳이다. 모든 박물 관이 그러하듯 실패를 기억하는 곳이다. 실패를 전달하고, 공유하는 곳이다. 간접 체험하는 곳이다. 실패의 경험을 컨설팅하고, 반면교사 삼는 곳이다. 실패가 인류의 자산이요, 지식재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곳이다.

우리도 이제 실패박물관을 건립할 때가 됐다. 이를테 면, 2021년 궤도 안착에 실패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1995년 삼성전자 구미 사업장에서 있었던 애니콜 화형식에서의 휴대전화 등등을 전시한다면 박물관으로서의 가치는 넘쳐날 것이다.

 

실패를 포상한다

미국의 신용정보회사인 '던 앤드 브래드스트리트(Dun and Bradstreet)에는 '실패의 벽'이 있다. 안내문 내용이다. “1. 실패한 순간을 자세히 기록하세요. 2. 그것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를 쓰세요. 3. 자신의 이름을 적고 사인하세요." 이것은 강요가 아니다. 실패에 대한 자기 고백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는 장이다. 실패를 배우는 방식은 이렇듯 다양하다. 단순한 고백을 넘어 아예 실패를 포상하는 기업들이 있다. 가장 큰 실패, 가장 훌륭한 실패에 상을 준다. 대표적인 회사가 일본 혼다 자동차가 시행 중인 '올해의 실패 왕’이다. 한 해 동안 가장 크게 실패한 연구원에게 수여한다. 상금은 우리 돈으로 약 1,000만 원 정도. 혼다의 창업자 소이치로 혼다가 말했다. "성공이란 당신의 일에서 그저 1%의 비율로 존재할 뿐이고, 나머지 99%는 실패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1%가 아닌 그 99%에서 가치를 찾아 내려는 것이다. 미국 3M은 2003년부터 '퍼스트 펭귄 어워드'라는 포상 제도를 실시해 오고 있다. 다른 펭귄이 머뭇거릴 때 과감하게 맨 먼저 바다에 뛰어드는 펭귄이 있다. 그 펭귄을 '퍼스트 펭귄'이라 부른다. 선구자 또는 도전자의 의미로 사용되는 관용어다. 그런데 수상자는 선구자도, 도전자도, 성공자도 아니다. 실패자다. 프로젝트에서 실패한 사람만이 수상 자격을 갖는다. 대신 이들은 자신의 프로젝트가 실패한 이유를 발표해야 한다.

이미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 톰 피터스가 한 말이 있다. "탁월한 실패에는 상을 주고, 평범한 성공에는 벌을 주어라" 왜 그랬을까. 실패를 공포와 손잡게 해서는 안 된다. 실패는 버려서는 안 될 기업의 자산이다. 실패를 어떤 방식으로든 위로하고, 고무하고, 찬양하는 데서 모험은 시작된다. 기본적으로 실패를 어떻게든 어둠 속에서 끄집어내고 싶은 것은 세계적 흐름이다.

 

성공과 실패에 겸손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

질문을 던져 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혼자서는 해결이 안 되어서다. 함께 고민해 보고 싶은 지점이다. 첫째, 성공과 실패의 상대성이다. 어느 게 성공이고, 어느 게 실패일까, 성공과 실패라는 판정은 늘 공정하고 정확할까. 둘째, 성공과 실패의 시간성이다. 너무 일찍 세상에 나오는 바람에 시장에서 외면받아 실패라고 낙인찍히는 발명품들이 있다. 세상의 무지 때문에 실패한 이론들도 있다. 지동설 같은 경우다. 또 다른 경우도 있다. 성공과 실패의 순환 혹은 부조화다. 한편에서는 실패였지만, 엉뚱하게도 다른 한편에서는 성공으로 평가되는 경우다. 숨겨진 효능이 발견되는 의약품의 경우가 그렇다.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 사건이 있다. 독일의 상품명을 따서 일명 ‘콘테르간(contergan) 스캔들’이라고도 한다. 현대 의학 역사상 최악의 사건 중 하나다. 1957년 산모들 입덧 방지제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입덧 방지제로서는 성공이었다. 하지만 성공이 성공이 아니었다. 약을 복용한 산모에게서 사지 기형아들이 태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끔찍한 실패였다. 판매가 금지되기 전까지 5년 동안, 전 세계에서 1만 2000여 명 이상의 기형아가 태어났다. 하지만, 미국은 예외였다. 미국 FDA에는 켈시상이 있다. 1960년 탈리도마이드 약효를 끝까지 의심하고, 실패 여부를 끝까지 확인하면서 승인을 거부했던 프랜시스 켈시 박사를 기리기 위한 상이다. FDA는 미국에서의 판매를 허락하지 않았는데 이는 온전히 켈시 박사의 공로였다. 그래서 미국에서만큼은 이 약의 실패 사례를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 성공과 실패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의학자들은 먼 훗날 탈리도마이드에서 다른 효능을 찾아낸다.

1998년 미국 FDA는 탈리도마이드를 한센병 합병증 치료제로 승인한다. 2006에는 다발성 골수 종양 환자에게 제한적으로 사용을 승인하기도 했다. 하나의 약품이 어느 때는 성공이고 어느 때는 실패로, 또 어느 기관, 어느 학자, 어느 질병에 따라서는 성공으로, 실패로 인정되거나 평가받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성공과 실패에 대해 겸손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pp. 11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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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실패를 자산으로 만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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