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1-11(월)
 
  •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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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우한 가정 형편으로 인해 윤락녀로 20년을 살았던 한 여성의 진솔한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어떤 책을 보다 추천 받아 읽게 되었는데 한 인생이 어떻게 망가지고 짓밟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나마 20년 만에 그 생활을 마감하고 이제는 일상을 살아가니 다행이다.

한때 이혼남과 결혼해 평범한 가정생활을 살기 원했으나 그도 잠깐만에 폭력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때 그녀의 피난처가 되어준 곳이 바로 교회였기에 감사했다. 교회나마 이 역할을 해 줄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여자의 성(性)을 돈으로 팔고 사는 죄 많은 세상이 빨리 끝나기를 바란다. 

 

아이들도 맞아서 울고 나도 맞아서 울었다. 그 날 이후 그 남자의 폭력은 더욱더 심해졌다. 하루는 결국 나를 죽이겠다고 칼을 들이댔다. 내 비명소리를 들은 큰아이가 그 남자를 말렸고, 손아귀에서 벗어난 나는 필사적으로 집 밖으로 도망쳤다. 갈 곳도 없는 나는 울면서 거리를 배회하다가 교회로 향했다. 사모님은 깜짝 놀라면서 교회에 딸려 있는 작은방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방에 보일러를 켜주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이불을 덮어쓰고도 내 몸은 심하게 떨렸다. 그 남자가 나를 찾아낼까 봐 겁에 질려 눈에서는 눈물만 하염없이 흘렀다. 방이 따뜻해지고 어느덧 잠든 나는 밤새 앓았다. 꿈조차 꾸지 않는 어둠이 차라리 위안이었다. 내일이 찾아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눈을 뜬 것은 새벽이었다. 온몸이 쑤시고 아팠지만 돌아갈 곳 없는 내 처지가 슬펐다. 다시 그 남자의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몸은 괜찮냐고 묻는 사모님의 말에 대답도 제대로 못 하고 눈물만 흘렸다. 사모님은 그 남자의 전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고단한 시집살이와 그 남자의 폭력으로 이혼하게 되었다고 했다. 남자가 여러 여자들과 동거하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전해주었다. 오후에는 아이들이 나를 찾아왔다. 큰아이에게 밥은 먹었냐고 하니 고개를 저으며 할머니가 엄마 욕을 너무 많이 해서 집에 들어가기도 싫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죄를 짓는 기분이 들어서 미안했다.

이제야 겨우 나에게 정을 주고 엄마라고 부르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줘서 마음이 아팠다. 사모님의 배려로 아이들과 식사를 같이 했고,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아이들은 집으로 돌려보냈다. 사모님은 나에 제 몸을 추스를 때까지 교회에서 지내라고 했다. 아픈 내 마음을 위로해주는 사모님이 친언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면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 같아서 다시는 그 집으로는 돌아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몸이 회복되며 마음도 편안해졌다. 팔순 노모가 교회로 나를 찾아와서 "여자가 함부로 집을 나가고, 어디서 배운 짓이냐?" 하고 화를 냈다. 그러면서 생선 가게가 너무 바쁘니 당장 집으로 돌아오라고 했다. 맞아서 몸이 상한 나에게 가게가 바쁘다고 말하는 팔순 노모가 미웠다. 그 남자가 휘두르는 폭력으로 몸과 마음이 다친 나는 더이상 가정부로, 하녀로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단호하게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다. 팔순 노모는 표정이 굳어지면서 다 교회 사모님이 시킨 짓이라고 악담을 퍼부으면서 돌아갔다. 며칠 후 술에 취한 그 남자가 교회에 왔다. 교회 앞마당에서 고함을 지르며 목사님을 불렀다. 교회가 시끄러워져서 목사님과 사모님에게 죄송했다. 목사님은 그 남자를 조용히 달랬고, 한동안 말이 없던 그 남자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교회 옥상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그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역겹고 비릿한 생선 냄새를 맡아가며 시장에서 일을 했고, 몸이 아프고 힘들어도 열심히 노력하면 잘살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 내 마음은 너무나 망가져 있었다. 그 남자와의 관계도 이제 끝이 나고 있었다.

다음 날 나는 그 남자와 살면서 시달렸던 폭력을 끝내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내 과거를 들먹이는 그 남자의 폭력에 힘들었지만 20여 년간 온갖 학대를 받았던 업소로 돌아가지 않으려 그 폭력을 참아냈다.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보탬이 된 시간보다 빛을 갚기 위해 산 시간이 더 길었기에 언제나 미안했고,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 역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돌아가서도 많은 좌절과 아픔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예상했지만, 이제는 지긋지긋한 폭력을 벗어나고 싶었다. 사모님과 함께 그 남자의 집으로 가서 짐을 챙겼다. 내가 사용하던 화장품과 옷가지 몇 개를 챙기고 나머지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주방과 욕실에서도 내가 사용하던 물건을 정리했다. 이 집에서 내가 머물렀던 흔적을 모두 정리하고 싶어서 쓰레기통이 넘치도록 짐을 버렸다. 마을에 오일장이 섰는지 시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주머니에 있는 돈으로 시장 좌판에서 파는 운동복 한 벌과 5000원짜리 신발을 샀다. 그 남자 집에서 가져온 물건은 화장품과 속옷이 전부였기에 입고 다닐 옷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치고 목사님과 사모님에게 그동안 민폐만 끼치고 간다며 인사를 했다. 목사님과 사모님은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해주었고 내 손에 차비를 쥐어주었다. 사모님은 늘 기도하겠다며 건강하게 잘 지내고 다음에 좋은 얼굴로 다시 만나자고 했다. 눈에는 눈물이 맺혔고 목이 메어 제대로 대답하지도 못한 채 버스 에 올라탔다. 버스가 출발하면서 눈앞에 펼쳐지는 이 마을의 전경이 새롭게 느껴졌다. 살기 위해 몸부림쳤던 시간들이 상처로 남아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픔이 되었다. 버스 안에서 모든 것을 잊고 싶은 마음에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pp. 31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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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윤락녀 생활 20년의 진솔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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