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1-11(월)
 
  •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정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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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은 자주 언급되는 일이다. 공직자 청문회에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이다. 또한 대중가요도 표절로 몸살을 앓는 경우가 많고, 목사들도 설교 표절로 곤혹을 치루거나 혹은 사임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표절은 남의 노력을 훔치는 도적질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새로운 중세가 안착했다

표절이 문제인 건 단순히 타인의 지식을 가져다 썼기 때문만이 아니다. 저작권(copyright) 개념에 저항하는 지식 공유 운동인 카피레프트(copyleft)도 있다. 우리가 지향하는 바는 어쨌든 간에 '좋은 지식'을 생산하는 것인데 표절이 이 과정을 방해한다. 표절은 인생을 건 총체적 노동을 하지 않아도 쉽게 학위 소지자가 되고, 이들이 지식 생산을 저지하는 시스템을 만들기 때문이다.

인생 공부를 포함해 공부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일상, 읽기, 여행, 경험과 그 해석, 인간관계, 쓰기... 그중에서도 나는 '쓰기'가 공부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어 공부를 할 때도 읽기, 듣기, 말하기, 쓰기 중 쓰기가 가장 어렵다. 쓰기가 최고의 공부이자 지식 생산 방법인 이유는 쓰는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쓰기와 실험 외에 모르는 것을 아는 방법은 많지 않다. 생각과 읽기가 공부의 주요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수학 공부의 이치와 비슷하다. 남이 풀어놓은 것을 이해하는 능력(읽기)과 자기가 직접 푸는 능력(쓰기)은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수학 점수가 안 오르는 지름길이다. 글을 쓰다가 막히거나 진도가 안 나가는 상황이 있는데, 이는 거기서 멈추고 다시 질문해야 한다는 좋은 신호이다. 이럴 때는 글쓰기를 정지하고 모든 것을 재점검해야 한다. 쓰다가 길을 잃은 느낌이 드는 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최초의 문제의식과 다른 내용을 쓰고 있거나, 자기 생각을 뒷받침할 사유틀(이론)을 찾지 못해 ‘이론을 창시하는 고통’을 겪고 있거나, 사례가 적절하지 않거나, 애초에 문제의식 자체가 틀렸다거나.....

이 과정에서 내가 모르는 것, 부족한 것을 깨닫고 쓰기를 반복해야 한다. 겪어야만 깨달을 수 있고, 이때 새로운 지식이 생산된다. 과학자는 실험을 반복하고, 글쓴이는 쓰기를 반복한다. 프로 운동선수나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은 연습을 거듭 한다. 연습을 훈련이라고 하는 이유다. '훈'은 해석, 풀이라는 의미인데, 이는 몸에 도장을 ‘새길 만큼’ 익힌다는 뜻이다. 우리는 위대한 운동선수나 예술가들의 영광을 보지만 사실 그들의 영광은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연습한 몸의 결과다. 연습이 예술(art, 기술)이다. 공부는 쓰기가 연습이다. 글쓰기의 좌절에 익숙한 나는 '완벽한 글은 없어도 완벽한 인생은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에 자주 빠진다.

나는 부동산 구입으로 인한 불로소득보다 표절로 인한 불로소득이 더 부정의하다고 생각한다. 전자는 세금도 내고 비난도 받는다. 발품도 팔아야 한다. 표절할 땐 그냥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새로운 글, 익숙하지 않지만 뭔가를 시도하는 글, 논쟁적인 글을 쓰려는 이들에게 표절 문화는 우주로 떠나고 싶을 만큼의 절망이다. 한국 지식 사회의 절도 문화는 왜 이리 당당할 까.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중세가 안착했다(pp. 138-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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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표절은 도적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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