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역에 살고 죽고 – 권남희
요즘 열심히 찾아 읽고 있는 작가의 책을 2권 대출해 하루 만에 다 읽었다(이 책과 『혼자여서 좋은 직업』). 소소한 일상 이야기, 번역에 대한 이야기 등 내가 모르는 세계가 흥미로웠다. 우연히 저자와 나는 1966년생 동년배다. 찾아보니 저자는 중앙대 일어과를 나왔다. 나도 열심히 살고 있지만, 이 저자도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을 보며 같은 해 태어난 인연으로 건투를 빌어본다.
책을 보면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것을 그다지 원치 않고 조용히 책 읽는 것을 좋아하니 번역가, 작가 일이 적성에 맞을 것 같다. 그러면서도 생활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겪은 에피소드들은 타인에게도 유익해 보인다. 그중 몇 가지를 추려봤다. 그 중 ‘일이 없을 때는 무조건 읽고, 쓰고, 공부하기’ 조언은 나도 동의한다. 내가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취재가 있으면 열심히 기사를 쓰고, 취재가 없으면 열심히 책을 읽고 이에 대한 글을 쓴다. 그러다 보니 신문사 홈페이지인지 북클럽 홈페이지인지 모를 정도로 책에 대한 글이 많다. 설 연휴에 취재가 없다 보니 그동안 밀린 책 이야기 기사를 올리고 또 연휴 기간 읽은 책들에 대한 것을 올렸기 때문이다. 글 쓰는 것은 쉽지 않다. 결국 많이 읽고 쓰고 또 글쓰기에 관해 공부해야 한다. 나와 같은 생각을 남도 하고 있다니 신기했다(각 문단 제목은 임의로 정해본 것임).
선배가 가르쳐 주는 사회생활 방법
가끔 후배들이 편집자와 트러블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어온다. 사실 어찌 보면 두 사람 중 약자는 역자다. 일을 주는 사람은 편집자니까 칼자루는 그쪽이 쥐고 있다. 그래서 후배들은 일거리 끊어질까 봐 차마 하고 싶은 말 못 하고, 되도록 좋게 마무리하려고 참는다. 그러다 도저히 못 참을 지경이 되면 그 출판사와 일 못 할 것을 각오하고 받아친다. 그래놓고 후회하지 않는 사람 별로 못 봤다. 다들 그때 좀 참을걸, 이런다. 성질대로 하긴 했지만 속은 시원해지지 않고 거래처만 하나 끊기니 말이다.
역시 상대방에게 서운한 감정은 묻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터트려서 형식상 화해를 한다 해도 다음에 다시 일 하기는 불편하다. 역자들 널렸는데 굳이 불편한 사람에게 일을 맡기겠는가(이건 어디까지나 한 권의 일이 아쉬운 후배들에게 하는 얘기다). 비굴함을 권하는 것 같지만, 억울하면 출세하랬다고, 더 영향력 있는 역자가 되어 당당해질 수밖 에 없다. 그러나 이런 충돌이 잦은 건 아니니(이십 년 동안 두세 번이면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 미리 저자세가 되어 겁먹거나 굽실거릴 필요는 없다. 아군끼리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편집자와 충돌이 잦은 역자라면 역자 본인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pp. 132-133).
내공을 키워라
요즘 주위에 보면 일이 없어서 한숨 쉬는 후배들이 많다. 몇 년 전에 비해 일본소설 인기가 주춤하기도 하지만, 환율도 높은데 선인세가 자꾸 비싸지니 아무래도 계약 건수가 많이 줄어든 탓인 듯하다. 그러나 출판사에서는 여전히 일본 책을 계약하고 있고, 일부 번역가들은 작업할 책이 밀려 있다. 그러니 미안하지만, 일이 들어오지 않는 것은 실력이 부족해서일지도 모른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몇 번 성의 없이 교정보고 넘겼더니 일 끊어지는 건 시간 문제였다. 그동안 쌓아온 인지도고 경력이고 다 소용없었다. 번역의 세계는 '실력, 이름, 학벌, 그중에 제일은 실력' 인 곳이다.
일이 없을 때는 무조건 읽고, 쓰고, 공부하기. 아무 생각 없이 읽은 책들, 긁적거린 글들이 쌓여서 분명 다음 번역을 반짝거리게 할 것이다. 안다. 조급함과 초조함에 여유롭게 활자를 음미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걸. 그렇지만 그것마저 하지 않으면 드문드문 들어오던 일마저 떨어질지 모른다. 읽고 쓰는 와중에 한번씩 같이 일했던 편집자에게 안부 메일을 보내 자신의 존재를 일깨우는 것도 괜찮다. 그렇다고 일이 없어 죽겠어요, 하고 징징 짜는 메일을 보내면 안 된다. 밝고 맑고 에너지 넘치는 긍정적인 글이 상대방에게 호감을 준다는 사실을 잊지 말 것. 개중에는 답장을 안 해주는 편집자들도 있겠지만(아마도 절반 정도는) 상처받지 말고 바빠서 그러려니 할 것. 일이 들어오는 간격이 너무 길어지면, 그 참에 진지하게 미래를 생각해보고 전직을 고려해보는 것도 조심스럽게 권한다(pp. 158-159).
책을 내자
일 끊기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은 덜 하고 살게 됐을 즈음에, 『번역은 내 운명』이란 책이 나왔다. 강주헌, 김춘미, 송병선, 이종인, 최정수 선생님과 공동으로 쓴 책이다. 많이 팔리진 않았지만 내게는 참 은혜로운 책이었다. 그렇고 그런 번역가에서 약간 주목받는 번역가가 된 것은 이 책 덕분이 아니었나 싶다. 이 책은 부제 그대로 6인 6색이다. 책이 나온 뒤에야 다른 분들의 글을 읽어봤을 정도로, 책에 대한 사전 의논이나 조율 같은 게 전혀 없었다. '번역은 내 운명'이라는 주제로 각자 쓰고 싶은 대로 쓰면 됐다. 이 여섯 사람은 표지 사진을 촬영할 때 처음으로 모여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역시 외모나 성향이나 연령이나 6인 6색. 한 가지 공통점이라면 번역가 특유의 선함이랄까(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비웃으시려나)? 그때 만난 인연으로 몇몇 선생님들과는 요즘도 동지 의식을 느끼며 연락하고 지낸다.
『번역은 내 운명』은 여섯 명의 번역가가 번역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삶을 풀어낸 책이다. 그 언어권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면 다소 지루할 것 같은 내용도 있지만, 훌륭한 선생님들의 좋은 글이 많다. 나는 그 책에서 유일하게, 번역가의 일상에 관한 신변잡기를 늘어놓았다. 소소한 경험담이어서인지 재미있게 읽었다는 평을 꽤 들었다. 책이 그리 잘나갔던 것도 아닌데, 이 책 이후로 삶에 변화가 많이 생겼던 것은 신문에 많이 소개되어서인 듯하다. 6인의 번역가가 쓴 독특한 에세이집이라는 화제성으로 중앙일간지에 커다랗게 사진과 함께 기사나 인터뷰가 실렸고, 크고 작은 신문의 신간 코너에 빠짐없이 소개됐다. 하루는 평소 단골인 동네 약국에 갔더니 약사 할아버지가 신문에서 봤다며 반갑게 알은체를 했다. 그러더니 그날부터 머리 하얀 어르신이 "선생님, 선생님" 하고 부르는 게 아닌가. 그래서 그 약국 끊었다. 동네에서 듣는 '선생님' 소리도 민망했지만, 더 이상 집에서 뒹굴던 차림에 맨얼굴로 갈 수가 없었다. 알아본 사람이 그 할아버지뿐이라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책이 나온 뒤로 원고 청탁도 심심찮게 들어오고, 작업 의뢰도 부쩍 늘어났다. 어쩌면 번역가로서의 내 인생은 이 책이 나오기 전과 후로 나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도 계약서를 쓸 때면 이 책을 들고 와서 사인해달라고 하는 편집자들이 있지만, 그해에는 작업 의뢰하는 전화 의 반 이상이 "선생님, 책 재미있게 읽었어요" 하는 인사였다. 이래서 역자에게도 저서가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저인데도 이런 반응이라니, 다른 선생님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이 책이 나온 이후로 살림이 좀 피었다(pp. 246-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