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엄령의 밤 – 김성종
내란 수괴 윤석열의 계엄령 시도가 실패한 뒤 계엄령에 대해 알고 싶어 책을 검색했으나 의외로 없었다. 그러다 이 책을 알게 됐고 대출해 읽었다. 이 책의 작가 김성종은 자타가 인정하는 국내 추리소설의 대가다. 그는 이 책을 2017년에 냈다. 이 책은 1950년 6.26 전쟁 때 우익에 희생된 한 가정이 1980년대 군부독재에 의해 다시 파멸되는 과정을 통해 역사의 부조리, 폭력의 잔인함을 보여주고 있다. 추리소설 양식이라 겉으로 볼 때는 가벼워도 역사의 무참한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다.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 책을 읽으실 분은 스포가 있으니 패스하시기를. 이 책의 주인공 서문도는 조남구, 박선화 부부의 아들이다. 조남구는 일제말 독립운동, 해방 후 나라를 세우는 일에 앞장 서다 좌익으로 몰려 비참하게 죽고, 이를 안 아내 박선화는 그를 죽인 ‘저승사자’란 자를 죽게 만들고 25년형을 살다 석방되어 종로 뒷골목 창녀가 된다. 박선화는 어린 아들을 오빠에게 부탁하나 그는 외숙모 작은 아버지에게 입양 보냈고 아이는 서문도로 개명된다. 일본에서 돈을 번 오빠가 아이 뒷바라지를 해 일본과 미국에서 공부해 조각가가 된다. 서문도는 일본에 체류 중인 반정부 정치인 J의 수행 비서 최세희와 내연 관계를 맺으나, 최세희는 정부 요원에 납치 후 잔인하게 살해당한다. 서문도는 독재자 M을 암살하기 위한 모임을 만드나 배신으로 발각 되어 일행은 사형을 당하고 도망자 생활을 하게된다. 이 일 전에 모임 장소였던 다방에서 은혜라는 아가씨와 교제해 아들을 갖게 된다. 포위망이 좁혀 오자 일본으로 밀항해 자기 뒷바라지를 해준 외삼촌을 만나 자신이 도피시절 만났던 절름발이 창녀가 자기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고 다시 어머니를 찾아 밀입국하고 시신 인수를 위해 경찰서에 갖다가 신분이 탄로나 도주 중 사살 된다.
북쪽은 혁명을 통한 이상주의 사회가 아닌, 개인숭배와 거기에 따른 권력 암투와 숙청의 회오리바람이 거리를 휩쓸고 있었다. 혁명에의 순수한 열정은 회색분자와 반동으로 낙인찍혀 쓰 레기 취급을 받고 있었고, 거기에 저항하면 숙청의 반열에 올라 한밤중에 사라지기 일쑤였다. 밤은 점점 어둠의 공포로 변해갔고, 사람들은 앵무새처럼 누군가를 계속 찬양하거나, 아니면 숫제 입을 다물고 있어야 했다.
한편 남쪽은 이른바 빨갱이 검거 선풍이 불고 있었다. 미소 냉전시대를 맞아 공산화에 공포감을 느낀 미국은 미 군정을 통해 점령 지역을 철두철미 반공국가로 만들기 위해 온갖 강압적인 수단을 동원하고 있었다. 그를 위해 과거 조선에서의 친일 행위 같은 것은 일절 문제 삼지 않고 덮어둔 채 기존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친일분자들을 대거 요직에 앉혔다. 다년간 미국에서 생활하고 영어에 능통한 데다 기독교 신자인 이승만은 그와 같은 미 군정의 정책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고, 그를 간파한 이승만은 미 군정을 등에 업고 단기간에 남한만의 정부를 수립, 권좌에 올랐다. 미 군정처럼 친일분자들을 대거 권력 유지에 이용한 이승만은 그들에게는 구세주나 다름없었고, 현실적으로 더할 수 없이 든든한 후원자인 셈이었다. 미 군정의 입맛에 딱 들어맞은 이승만의 반공 일변도 정책에 편승한 친일분자들은 친일 문제를 거론하면서 자신들을 비판해 온 인사들을 반공이라는 이름 아래 빨갱이로 몰아세우면서 역공을 가했다. 군과 경찰력이 부족하자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각종 민간단체들까지 동원, 대대적인 빨갱이 사냥에 나섰다. 빨갱이로 체포된 사람들 가운데에는 공산주의자들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거의 아무 의식도 없는 선량한 양민들이 대부분이었다. 방방곡곡에서 검거 선풍이 불었고, 체포된 사람들은 어디다 하소연도 못한 채 한밤중에 무더기로 끌려가 처형되었다. 이와 같은 양민학살은 1950년 6월, 전쟁이 발발하자 거의 발광 상태로 돌입한다. 군인과 경찰, 각종 청년단체들은 마치 제 시절을 만난 듯 정신 없이 날뛰면서 그들이 말하는 이른바 빨갱이들을 일거에 쓸어버리기 위해 전국 도처에서 일제히 무차별 살육극을 벌였다. 그 가운데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보도연맹원 학살이었다.
보도연맹은 이승만 정권의 강력한 반공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만들어진 관제 반공단체였다. 듣기 좋게 겉으로 내세운 것이 반공이었을 뿐 그 내용은 좌경화된 사람들을 모아서 지도 계몽 한다는 아주 그럴듯한 명분으로 결성된 것으로, 간단히 말하면 이른바 불순분자들을 다루기 쉽게 한데 묶어 관리하는 조직이었다. 그런데 회원수를 무리하게 늘리다 보니 좌우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거 회원으로 등록되었다. 각 면 단위까지 지시가 내려가 할당된 숫자를 연맹에 가입시키기 위해 아무것도 모르는 양민들에게 그저 형식적인 것이니 지장만 찍으면 쌀 한 말을 주겠다는 식으로 유인하여 회원수를 늘이다 보니 그 수가 수 십만에 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전쟁이 발발하자 보도연맹원들을 모두 처단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고, 전국 도처에서 수십만 명이 한밤중에 영문도 모른 채 끌려 나가 재판도 없이 잔인하게 학살되었다. 일제강점기에서도 없었던 일이 동족의 손에 의해, 그것도 정부의 지시로 자행되었던 것이다. 수십만 보도 연맹원들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구실이 붙어 학살된 양민의 수는 거의 백만에 달했고, 그들이 흘린 피의 강을 타고 전쟁은 수행되었던 것이다(pp. 61-64).
작가의 말
사람들은 세월이 흐르면 상처는 아물어지고 잊혀지다가 결국 치유되는 것이라고, 쉽게 생각해버린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이 복잡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 편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거기에는 자기 부정과 비굴한 타협 같은 것은 없는 것일까. 생각하기도 싫은 그것을 지금 다시 굳이 꺼내 말썽을 피울 필요가 뭐 있느냐는 무책임한 질책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른바 극우라는 계층이 토해내는 강자의 논리에 굴종하는 비굴 함이 만연해 있는 사회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생각하기도 싫은, 너무 오래되어 곰팡이까지 낀 그것을 햇볕에 꺼내는 일이 지금까지 너무도 부족했음을 절감했고, 그래서 이번 작품을 집필하게 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부터 30년이 지난 1980년대 군부독재에 이르는 시기는 전쟁의 상처가 아물기는커녕 곪을 대로 곪아 고름이 질질 흐르는 그것을 임시방편으로 가마때기로 덮어두었을 뿐이었다. 그것을 들춰보거나 거기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를 엄단했기 때문에 학살당한 양민들의 유족은 묘비마저 제대로 세우지 못한 채 숨을 죽이고 살아야 했다. 군부독재의 악랄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계엄령이다. 날카로운 총검을 든 채 요소요소에 서있는 계엄군의 살벌 한 모습은 그 자체가 공포였다. 군부는 걸핏하면 계엄령을 발동, 공포를 통해서 국민을 통제했고, 사찰 기관들은 제철을 만난 듯 신이 나서 거리를 휘젓고 다녔다.
한국전쟁으로부터 군부독재로 이어지는 30여 년에 걸친, 감추고 싶은 그 상흔을 누더기처럼 온몸에 걸친 채 생존해온 한 여인을 창조하는 작업은 나에게 감동적이면서도 깊은 슬픔을 안 겨주었다. 거기에 계엄하의 엄혹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온몸으로 부딪쳐 절망 속으로 자신을 내던진 한 젊은이의 삶은, 두 영혼의 연결고리로 인해 그 참담한 시대의 비극을 극한으로까지 몰고 가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계엄하의 그 살벌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절망적인 몸부림과 저항을 그린 작품이 별로 없는 초라한 한국 문학에 이 작품이 조그만 불씨가 되어 이제라도 계속 말썽을 피우는 작품 들이 쏟아져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2017년 1월 김성종(pp.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