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블루칼라 여자 - 박정연
3D 직업은 어렵고(Difficult), 더럽고(Dirty), 위험한(Dangerous) 직업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로 이 직종은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는데 요즘은 여성들의 진출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면서 여성들은 임금차별과 성차별, 성희롱을 당하고 있다. 이제 모든 분야에서 여성이 약진하고 있다. 여성을 대하는 남성의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 앞으로 남녀 평등을 넘어 여성 상위 시대가 될 것이다.
지나 씨가 일터에서 남성 동료들과 평등하게 일하려면 앞으로 노동환경이 어떻게 변해야 할까요?
여성 화물 노동자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일터에 여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적습니다. 남성중심적인 문화가 형성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성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그냥 주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부산 신항의 여자 화장실 문제도 계속 목소리를 내니 바뀌었습니다. 꾸준히 요구하니 노동환경이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화물 운송 문화 자체가 바뀌고 있는 게 느껴집니다.
서로 몰랐던 부분을 대화를 통해 알아가게 되기도 합니다. 남성중심 문화 속에서 남자들이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모르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성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시키면 ‘맞네’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여자가 여자의 권리를 위해 계속 얘기를 해야 합니다(p. 28).
한번은 무더운 여름 공장 셧다운(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보수하는 기간) 현장에서 일한 적이 있어요. 더우니까 회사에서 아이스크림을 줬죠. 팥빙수랑 우유가 간식으로 나왔는데, 어떤 남자 동료가 우유가 떨어졌다고 팥빙수만 받아오더라고요. 그러더니 저한테 "우유가 없으니까 우유 좀 짜줘요"라고 그러더라고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서 "뭐라고요?" 그랬더니 옆 사람이 "니 젖 짜달라잖아"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그 순간 너무 열이 받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내가 애 젖 뗀지가 언젠데 아직도 젖이 나와! 니 며느리한테나 가서 짜달라 그래"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 사람들 몰래 눈물을 훔쳤습니다. 결국 그 사람이 저한테 직접 와서 "아무리 친해도 그런 농담 하면 안 되는데 미안해"라고 사과하더라고요. 그런 상황이 오면 사과를 받고 할 말을 제대로 해야 해요.
시대가 바뀌면서 혼자였던 신혜 씨 곁에 이제는 여성 용접사 동료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신혜 씨가 속한 전국플랜트건설노조 충남지부에는 여성 용접사 열 명이 함께 일하고 있다. 남성 조합원이 4000여 명인 것에 비하면 턱없이 미미한 수치지만 유일한 여성 용접사로 혼자 버텨야 했던 시절과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여자라는 이유로, 용접사 일당이 아닌 조공 일당 12만 원을 받고 일하던 그는 이제 20만 3000원의 용접사 일당을 받는 13년 차 용접사가 됐다. 주변 동료들도 '양손으로 용접하는 김신혜' 라며 그를 인정한다. 신혜 씨에게 일하게 만드는 동기가 무엇인지 묻자 그는 단번에 일이 재밌다며 웃어 보였다. 자부심 넘치는 엄마를 따라 신혜 씨의 아들도 용접사로 일한 지 3년째에 접어들었다.
이런 얘기하면 동료들이 미쳤다고 하는데, 파이프(배관)를 보면 반가워요. 용접하면서 ‘내가 너를 예쁘게 떼워줄 테니까 오래오래 잘 있어’라고 최면을 걸어요. 지금도 아침에 눈을 뜨면 일하러 갈 수 있는 게 너무 좋고 새로운 현장에 가면 설렙니다. 현장마다 해야 하는 일도, 분위기도, 냄새마저도 달라요. 그래서 좋아요. ‘더 일찍 용접을 배웠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마저 듭니다. 건강하게 정년까지 용접을 하고 싶다는 신혜 씨는 "안 되면 말고, 어차피 가능성은 반반이니까 겁부터 먹지 말고 어떤 일이든 도전을 해봤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pp. 38-39).
일을 시작하기 전의 저는 편히 있어야 할 집에서도 아파서 집에 있는 사람처럼 위축되어 있었는데, 일을 하다 보니 자신감이 생겨서 공부도 하고 그림도 그리게 되고 뭔가 자꾸 하고 싶어지는 사람이 됐습니다. 일을 하면서 제가 새로 태어난 것 같아요. 항상 주눅 들어 살다가 스스로 돈을 벌면서 집에서 큰 소리도 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집안일이 저만의 일이 아니게 되었어요. 우리 신랑이 빨래 해주고, 아이들이 설거지도 하고 집안일도 서로 나눠서 하며 가정도 평등해졌습니다. 일하는 제 모습이 너무 좋아요. 제가 좀 당당해지는 것 같아요.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좋습니다.
예순이 넘을 때까지 일하고 싶다고 밝힌 연옥 씨는 "더 정확하게 도면을 보고, 기술도 더 배워서 형들 목수의 여자 반장이 되어보고 싶어요"라며 웃어 보였다. 그의 뒤에는 그와 동료들이 세운 거푸집들이 중력을 거슬러 우뚝 서 있었다(pp. 78-79).
잠을 못 자서 얼굴이 노래진 적도, 여자라고 무시당한 적도 있었지만 황점순 씨는 20년 넘게 이 공장에서 일하셨네요. 그렇게 일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인가요?
집안이 어려워서 일을 시작하기는 했습니다. 딱히 수입이 없으니까 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직장에 오래 나오니까 점차 제 인생에 자신감이 생겼어요. 일하면서 좋은 동료들도 만나고, 그들과 탈의실에서 잠깐 서로 사는 이야기하는 게 제 인생에 생기를 불어 넣어줬습니다. 주간과 야간이 교대하기 전 30분 여유가 있으면 부서 힘든 이야기도 하고, 사는 이야기도 공유하는 그 시간들이 저를 버티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일하면서 자부심을 느끼는 순간도 있었을 것 같아요.
제가 직접 돈을 버니까 베풀 수 있는 마음도 생기고 자부심을 느낍니다. 아들 결혼할 때 집도 사줬습니다. 고정된 수입이 있으니까 지인들한테도 조금이나마 베풀 수 있어서 좋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일이 재미있습니다. 일하면서 활력이 생깁니다. 오래 일을 하다 보니 노하우가 생기고 여유로움도 생겼습니다. 마음이 맞는 동료들끼리 한 공간에서 이야기하면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저를 기쁘게 해요.
출근하는 것 자체가 좋고,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게 좋습니다.
이 일에 베테랑이시니 일하면서 “이것만큼은 내가 자신 있다” 하는 지점이 있나요?
신입이 부품을 컨베이어벨트에 걸 때 방향이 안 맞으면 낙하물이 생겨서 불량이 발생합니다. 그냥 부품을 마구잡이로 거는 것 같아 보여도 일정 규격과 간격을 잘 맞춰 걸어야 낙하물이 없어요. 저는 그 규격을 정말 잘 맞춰서 불량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게 제 노하우예요(pp. 179-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