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3-18(화)
 
  • 한 명 - 김 숨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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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와 관련된 책은 처음 읽었다. 그것도 소설로 말이다. 역사의 팩트와 엮어 쓴 이 소설은 위안부 문제를 더 가슴 아프게 서술한다. 이 책의 주인공인 위안부 할머니는 알지 못하는 다른 위안부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방송을 보고 지난 시절 참혹했던 자신의 위안부 경험을 떠올리며 그 할머니를 병문안하기 위해 찾아간다.

몇몇 위안부 할머니들은 죽기 전 억울한 자기의 사연을 피를 토하며 외쳤다. 나라가 망한 고통을 온몸으로 겪으며 많은 위안부 소녀가 죽었고, 타국으로 흩어졌지만, 일부는 살아 돌아왔다. 그러나 위안부였던 것을 가슴 한구석에 숨기며 살아왔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오히려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라가 망해서 끌려가 몹쓸 짓을 당했는데 그것이 어찌 비난받을 말한 일인가? 오히려 불쌍히 여기고 품어줘야 할 일이 아닌가? 그런 면에서 우리 민족이 얼마나 배타적이고 야만적인가를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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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둔 부모들이 딸들을 서둘러 시집보내려고 안달했다는 걸 그녀는 만주 위안소에 와서야 알았다. 자식 딸린 홀아비든, 늙은 영감이든, 다리 하나 없는 총각이든 가리지 않고. 시집을 가면 안 잡아 가는 줄 알고서, 그래서 시집을 갔지만, 남편이 보는 앞에서 강제로 끌려간 소녀도 있었다. 일본 군인들과 헌병들은 소녀들이 시집을 간 것처럼 머리를 쪽 짓고 수건으로 둘러도 용케 알고서 잡아갔다.

"우리 아버지는 가짜로 혼인 신고까지 냈잖아. 나보다 열여섯 살이나 많은 최 씨라는 남자하고... 나는 그 남자 얼굴도 본 적 없어. 내가 정말로 시집가게 되면 혼인 신고를 취소시켜주기로 최 씨하고 아버지하고 단단히 약속했대. 정말로 시집간 것처럼 머리도 올리고 다녔는데, 동네 반장 부인이 내가 가짜로 시집간 걸 알고서 공장에 돈 벌러 가지 않겠냐고 꼬드기잖아. 바늘공장에서 3년만 일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반장이 일본인이었거든." 밤새 한숨도 못 잔 한옥 언니의 눈은 반쯤 감겨 있었다.

"총각이 있어야지 시집을 가지.... 다 징용 가버려서. 우리 친구는 얼굴이 박꽃처럼 허여니 좋은데 영감이 쪼글쪼글하니 얄궂어." 동숙 언니가 소리도 없이 희미하게 웃었다. "알궂어도 차라리 영감한테 시집가는 게 나을 뻔했어" 애순의 쪼그라든 목소리가 높낮이도 없이 실처럼 쭉 뽑혀 나왔다.

소녀들이 정신대로, 위안소로 보내지는 동안 소년들은 탄광으로 제철소로, 광산으로, 군수공장으로, 비행장으로, 철도 공사장으로 징집되어 갔다. 충남 논산이 고향인 동숙 언니의 오빠도 일본으로 돈을 벌러 갔다고 했다. "일본 제철소에서 직원을 모집한다는 광고가 신문에 났잖아. 백 명을 모집하는데 살 집도 주고, 월급도 일본 사람과 똑같이 주고, 2 년 동안 기술을 배우면 자격증도 준다고 해서. 오빠가 기술을 배우고 싶어 했거든."

따뜻해지는 볕을 두고 소녀들은 슬금슬금 일어나 흩어졌다. 겨우내 기다리던 봄볕을 떨쳐내기가 못내 아쉬워 소녀들은 하늘을 향해 얼굴을 한 번 쳐들고 나서야 방으로 들었다.

군인들은 금방 버글버글 몰려와 위안소 마당에 노랗게 깔렸다. 마당에서부터 발목에 감는 각반을 풀고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렸다. 소녀들의 몸에는 보통 하루에 15명 정도가 다녀갔다. 일요일에는 50명도 넘게 다녀갔다.

졸병들은 대개 바지를 벗으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지퍼를 내리고 훈도시만 풀고서 다녀갔다. 그럴 때면, 군복 바지 허리에 매달린 주머니 칼집이 그녀의 배를 쿡쿡 찔렀다. 소녀들의 아래가 부어서 그게 잘 들어가지 않으면 군인들은 삿쿠에 연고를 발라서 들어가게 했다. 군인들이 다녀갈 때마다 그녀는 식칼로 아래를 포 뜨는 것 같았다. 군인이 열 명쯤 다녀가고 나면 포를 하도 떠 아래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아래는 무시로 바늘 들어갈 구멍도 없이 훌떡 뒤집어졌다. 소녀들은 자신들 몸에 다녀가는 군인들 명수로 일요일인지 알았다. 그곳에는 달력도 없어서 소녀들은 날짜도, 요일도 몰랐다. 모든 날들은, 모르는 날들이었다. 모르는 날들이 흘러가는 동안 소녀들은 폭삭 늙었다.

일본 군인들이 몰려오기 시작하자 춘희 언니가 투덜거렸다. "저 씨팔놈의 새끼들이 왜 끄대 오냐." 춘희 언니는 군인들에게 보이려고 낯도 안 씻고, 머리도 안 빗었다. 군인들은 금세 불개미 끓듯 끓었다. 소녀들은 전투가 매일 있었으면 했다. 전투가 있는 날에는 군인들이 오지 않았다. 전투가 매일 있었으면 하는 바람만큼이나 전투를 나간 군인들이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전투에서 살아 돌아온 군인들은 광기에 휩싸인 듯 들떠 있고 난폭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먼지투성이에다 씻지를 않아 악취를 풍겼다. 전투에서 돌아온 군인들이 몰려오는 날이면 위안소에서는 아귀다툼이 벌어졌다(pp. 86-88).

    

알루미늄 통을 뒤집어 그 안의 삿쿠(그 당시 군인들이 썼던 콘돔)들을 쏟는 그녀에게 향숙이 말을 건네왔다. "아침 먹으러 안 왔던데, 못 일어났어?" "........" "다카시가 놓고 간 칸즈메가 있는데 배고프면 줄까?" 다카시는 간혹 향숙을 찾아오는 일본 군인이었다. 자신의 삿쿠를 다 씻은 향숙이 그녀 쪽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발 앞에 널린 삿쿠를 씻어 알루미늄 통 속에 담았다. "다카시가 그러는데, 일본 군인들도 불쌍하대." 삿쿠를 씻으면서 일본 군인들을 동정하는 향숙이 그녀는 이해가 안 되었다. "일본 군인들도 우리처럼 부모형제하고 생이별하고, 목숨을 버리러 만주까지 왔대. 어제는 내가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우니까 그러더라. 죽지 말라고....어떻게든 살아서 엄마가 있는 조선에 돌아가라고..." 만주 위안소에 있던 7년 동안 그녀의 몸에 다녀간 일본 군인은 어림잡아 3만 명이었다. 3만 명에 달하는 군인 중 그녀에게 그렇게 말해준 군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죽지 말라고, 어떻게든 살아서 조선에 돌아가라고(p. 174).

    

1930년부터 1945년까지 20만 명에 달하는 여성이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되었고, 그중 2만 명만이 살아 돌아왔다. 끝끝내 돌아오지 못한 나머지 여성들은 죽거나, 언어도 물도 낯선 땅에 버려졌다. 기록에 의하면 일본이 전투를 벌인 아시아 전역과 태평양 군도 곳곳에 위안소가 있었다. 그 20만 명 중에는 심지어 열한 살짜리도 있었다. 평균 나이는 열 예닐곱 살이었고, 대부분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 초등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공장에 취직이 되어 돈을 벌러 가는 줄 알았거나, 납치되었다. 팔려 가는 가축처럼 트럭에, 배에, 열차에 태워져 전쟁터로 보내졌다. 조센삐('삐'는 중국어로 여성 성기를 저속하게 부르는 말이다)로 불리며 하루에 십수 명씩 일본 군인을 받았다. 50명 넘게 일본 군인을 받았다는 증언도 있다.) 임신을 하면 태아와 함께 자궁이 통째로 들어내지는 수술을 받기도 했다. 살아 돌아온 소녀들은 대부분 임신이 불가능한 몸이 되어 있었다. 위안부는 피해 당사자들에게는 물론, 한국 여성의 역사에 있어서도 가장 끔찍하고 황당한, 또한 치욕스러운 트라우마일 것이다.

'트라우마에 대한 기억은 그 자체로 트라우마'라고 프리모 레비는 말했다.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을 시작으로, 피해자들의 증언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그 증언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소설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초고를 쓰던 해 아홉 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짧은 시차를 두고 세상을 떠나셨다. 소설을 연재하고 퇴고하는 동안 여섯 분이 더 떠나셔서, 작가의 말을 쓰는 지금은 불과 마흔 분만이 생존해 계신다.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모두 238명이었다.) 그 와중에 한국과 일본 양 정부는 '사실 인정과 진정한 사과'라는 절차를 무시하고, 피해자들을 저 멀찍이 구경꾼의 자리에 위치시킨 채 일방적인 ‘2015년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발표했다. 일본 정부는 ‘10억 엔 정도의 지원금을 출연할테니,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암묵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피해자 중 한 분인 훈 할머니 말씀처럼 "개나 고양이만도 못한" 시절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서 기품과 위험, 용기를 잃지 않은 피해자들을 볼 때마다 나는 감탄하고는 한다. 내 할머니이기도 한 피해자들이 행복하시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부족한 소설을 세상에 내보낸다. 2016년 8월 김 숨(pp. 286-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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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처음 읽은 치떨리는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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