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1-18(화)
 
  • 모두가 힘들다고 할 때 기회가 있다 - 한근태(글의온도 · 20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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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자기개발서를 읽었다. 매우 유익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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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함을 의심할 때 혁신이 시작된다

통념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믿음이다.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당연하다고 여기는 생각이다. 이 책이 통념에 저항하자고 주장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통념을 의심하는 순간,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새로운 기회가 열리며 남다른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속담은 통념의 대표적 집합체다. 오랜 세월 데이터가 축적(p. 15)되어 만들어진 것이니 검증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이 빠르게 변하면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통념이 늘고 있다. "짚신도 짝이 있다"는 말을 보자. 결혼보다 비혼을 선택하는 솔로가 넘쳐나는 시대에 이 말이 여전히 유효할까? 짚신도 짝이 있다면 결혼정보회사들이 성업할 리 없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속담은 더욱 그렇다. 가짜뉴스와 딥 페이크가 날뛰는 시대인데, 얼마든지 거짓 연기를 피울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언제 통념에 저항해야 할까? 사업에서는 매출이 예전 같지 않을 때 통념을 의심해봐야 한다. 대부분은 "불황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같은 불황 속에서도 잘되는 가게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보는 불황은 "기존의 상품, 서비스, 유통경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해 세상은 변했는데, 우리가 그것을 읽지 못한 채 낡은 방식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해결책은 명확하다. 세상의 변화를 읽고, 기존의 통념을 깨고, 그 변화에 맞춰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때로는 사업의 본질을 바꾸거나. 방법론에 혁신을 가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믿는 많은 통념은 이미 유통기한이 지났다. 변화하는 시대에 낡은 통념을 붙잡고 있는 한, 새로운 기회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p. 16).

 

통념을 깨는 5가지 실천법

모든 변화는 실천에서 시작된다. 통념에 저항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금 바로 시작할 수 있는 다섯 가지 방법을 소개 한다.

1. 습관적으로 하는 일의 30%를 과감히 없애라.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불필요한 일을 정리하라. 가짜 일과 진짜 일을 구분하고, 습관적으로 하던 일들을 재점검하라. 정리할 일을 4가지로 분류해보자. "하지 않아야 할 일", "하지 않아도 될 일",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일", "나보다 남이 더 잘할 일". 이것들을 과감히 없애거나, 위임하거나, 외주를 주어라. 그리고 비로소 그 여유 공간에 새로운 도전을 채워 넣어라. 남들은 다 하는데 당신은 아직 시작하지 않은 일, 늘 하고 싶었지만 미뤄둔 일들을 시작하라.

2. 성공 경험에 안주하지 마라

과거의 성공 경험이 미래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나이가 많고, 직급이 높고, 성공 경험이 많을수록 실패 위험도 커진다. 잘나가던 개인과 조직이 몰락하는 이유는 대개 잘못된 경험과 과도한 자기확신 때문이다. 해결책은 낯섦'을 찾아가는(p. 17)것이다. 비슷한 부류보다는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고, 평소 자신과 상관 없던 책이나 영상을 접하고, 새로운 것을 배워라. 딱딱한 사고에서 벗어나 유연한 사고로 전환하라.

3. 생각의 자유를 지켜라

절대적 진리처럼 보이는 것도 의심하라. 모든 가설에 '왜? 라는 질문을 던지고, 구체적인 증거를 요구하라. 대중의 의견을 무작정 따르지 말고, 반대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라. 특히 확신에 가득 찬 사람을 경계하라. 확신이란 때때로 무지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4. 안 했던 일은 새롭게 시작하고, 하던 일은 그만둘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당연해 보이는 것도 처음에는 낯설었다. 1818년 이전까지만 해도 정시 출발이란 개념조차 없었다. 화물선은 적재량이 채워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뉴욕의 해운사 블랙볼라인은 이 통념을 깼다. 벤저민 마셜은 엄청난 비용과 위험을 무릅쓰고 정시 출항을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특히 사업에서는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길을 과감히 나서야 한다(p. 18).

5. 당연한 것을 의심하라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당연함에 머무는 것보다는 당연을 의심할 때 사업의 기회를 볼 수 있다. 위기에 처했던 레고가 부활할 수 있었던 것도 '당연함'을 의심했기 때문이다. "왜 레고는 움직이면 안 될까?", "왜 어른은 레고의 고객이 될 수 없을까? 이 두 가지 질문이 혁신의 시작이었다. 다만 기억하라. 모든 의문은 고객의 관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처럼 통념에 저항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거기에 비즈니스 기회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보는 곳에는 더 이상 기회가 없다. 아마존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모두가 불가능 하다고 말하는 일에 도전했다. 심지어 회의 자료도 남들이 다 쓰는 파워포인트 대신 워드를 고집했다. 통념을 깨는 순간,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p. 19). 

 

7. 중간이 가장 위험하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중간'을 선호한다. 강의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앞자리는 기피하고 뒷자리는 불안해하면서, 결국 중간쯤 자리를 잡는다. 이건 무리 속에 숨어 안전을 추구하는 동물적 본능이다. 하지만 이런 '중간 선호' 심리 가 직업 시장에서도 통할까? "남들 하는 만큼만 하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과연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아마도 당장 굶어 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제값을 받지 못하고 끊임없는 원가 경쟁에 시달리다 결국 시장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명확하다. 중간을 벗어나야 한다. 자신만의 독특한 강(p. 34)점, 즉 '나 아니면 안 되는' 영역을 만들어야 한다.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중간은 안전해 보이지만 사실 가장 불안전한 자리다. 《평균의 종말》이라는 책에서도 이런 관점을 확인할 수 있다. 성인의 평균 키와 몸무게에 맞춰 제품을 만들면, 아무에게도 맞지 않는다. 평균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상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자신만의 독특한 엣지'가 있는가? 아니면 그저 수많은 진열대 위의 평범한 제품 중 하나같은 존재인가? 평균 뒤에 숨거나 안주하지 말라. 역설적이게도, 가장 안전해 보이는 '평균'이 실은 가장 위험한 자리다. 차별화가 곧 생존이다(p. 35).

 

9. 좋아하는 일보다 싫어하는 일을 먼저 찾아라

자기계발 강사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라. 그러면 평생 일하지 않아도 된다." 일리가 있고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지만, 이 말에는 몇 가지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냉정히 생각해보자. 돈 버는 일이 그렇게 쉬울까? 일이란 본질적으로 고통과 인내를 요구한다. 남의 돈을 정당하게 받아내는 과정이 즐거울 리 없다. 게다가 전 세계에서 진짜 좋아하는 일로 먹고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0.01%도 안 될 것이다. 그런 행운이 당신에게 올 확률은 무척 낮다. 그렇다면 당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대부분, 특히 젊은이들은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을 하지 못한다. 세상(p. 38) 모두가 힘들다고 할 때 기회가 있다. 경험도 부족한 20대에게 이런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내가 제안하는 방법은 이렇다. 우선 무슨 일이든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일에 미친 듯이 몰입하라.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 기본적인 일조차 못 하는 사람이 무슨 낭만을 즐길 수 있겠는가? 오히려 전략을 바꿔보자.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싫어하는 일을 먼저 찾아라. 그리고 그 정반대 지점에서 당신의 진짜 열정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먼저 실력을 쌓아라. 좋아하는 일은 그다음의 문제다(p. 39).

 

11. 글쓰기는 육체노동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난 회사원처럼 시간을 정해놓고 꾸준히 일하는 작가다. 소설을 쓸 때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대여섯 시간 작업한다. 오후에는 10km 달리기나 1.5km 수영을 한다. 그리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다. 아홉 시에 잠든다. 이 일과를 매일 반복한다. 긴 소설 쓰기는 서바이벌 훈련과 비슷하다. 신체적 강인함은 예술적 감수성만큼 중요하다." 그의 작품이 연이어 히트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비결은 없다. 그저 44년 동안 꾸준히 소설을 써왔고. 그 과정에서 독자들의 신뢰를 얻은 것뿐이다.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p. 42). 여전히 달리기를 하느냐는 질문에는 "당연히 달린다. 글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쓰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하루키의 성 공 방정식은 단순하다. 강인한 체력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글과 싸우는 것. 요즘 글쓰기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좋은 현상이다. 하지만 글쓰기에 대한 잘못된 통념도 많다. 가령 글은 머리로 쓰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조용히 앉아 명상하면 글이 저절로 나올 것이라는 착각도 있다. 진실은 다르다. 글은 치열한 메모와 자료 수집의 전쟁터에서 태어난다. 밑천이 많아야 비로소 글이 나온다. 더 중요한 진실이 있다. 글은 온몸으로 쓴다는 사실이다. 영감이란 게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매일 아침 전장에 출전하듯 책상에 앉아 몇 시간씩 사투를 벌여야 한다. 그런 면에서 글쓰기는 머리보다는 몸으로 하는 일이다. 작가는 지식노동자이자 육체노동자인 셈이다. 50권이 넘는 책을 쓴 나 역시 작년에만 5권을 출간했는데, 하루키의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글쓰기는 지적 작업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육체노동에 가깝다(p. 43).

 

18. 책 읽는 당신에게 주어진 특별한 능력

유튜브, 틱톡 같은 영상 콘텐츠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챗GPT 같은 AI가 순식간에 거의 모든 질문에 답을 주는 시대다. 이런 환경에서 독서는 비효율적이고 구시대적인 활동으로 치부되기 쉽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이런 시대에 독서가 제공하는 고유한 가치가 더욱 빛난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글의 흐름을 따라가며 사고력을 기른다. 저자의 섬세한 유머 감각을 포착하고, 개성 넘치는 표현과 문장을 만난다. 또한 읽은 내용이 머릿속의 다른 지식과 충돌하고 융합하면서 예상치 못한 통찰이 솟아나는 경험은 독서만이 선사하는 특권이다. AI는 우리에게 정확하고 즉각적인 답변을 제공하지만, 그(p. 56) 과정에서 우연한 실수로 얻는 영감이나 스스로 고민하며 발견하는 재미는 주지 못한다. 이는 마치 요리 레시피를 따라 하는 것과 직접 요리를 실험하며 새로운 맛을 발견하는 것의 차이와 같다. 현대인의 독서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기회가 생긴다. 독서를 통해 얻는 깊이 있는 사고력과 창의적 통찰력은 점점 더 희소해지는 능력이 되어가고 있다. 이는 곧 책 읽는 당신만의 강력한 차별화 포인트가 된다. 디지털 시대에 오히려 독서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한다. 탕누어의 말을 인용하자면, "전문성이란 모르는 것, 확실하지 않은 것,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능력이다. 그런 안목이 있어야 타인들이 못 보는 것을 볼 수 있다." 독서는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 이러한 전문가적 통찰력과 안목을 기르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다. 디지털 시대의 홍수 속에서, 독서는 당신을 차별화하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p. 57).

 

24. 사람은 바뀔 수 있는가?

사람이 변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의견은 갈린다. 변하지 않는다는 이도 있고, 변한다는 이도 있다. 성선설과 성악설처럼 견해가 나뉜다. 대부분 자기 경험에 기대어 판단하지만, 나는 '습관'을 바꾸면 변할 수 있다고 본다. 일란성 쌍둥이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쌍둥이 중 한 명은 술과 담배에 찌든 삶을 살고, 다른 한 명은 법정스님처럼 공부와 수행에 매진한다면, 그들을 같은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겉모습만 봐도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이런 걸 보고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 논어의 ‘성상근야, 습상원야’를 떠올린다(p. 68). 사람은 태어날 때는 비슷하지만, 습관에 의해 크게 달라진다는 뜻이다. 사람의 본성은 원래 비슷하다. 그러나 나쁜 습관을 버리고 좋은 습관을 들이면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그 핵심은 바로 “배움, 학습"이다. 학교를 졸업한 후 책과 멀어진 사람과 평생 책을 손에서 놓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나는 워렌 버핏 과 찰리 멍거가 떠오른다. 매일 한 권씩 책을 읽은 워렌 버핏은 90이 넘은 나이에도 주주총회에서 몇 시간 동안 다양한 질문에 통찰력 넘치는 답변을 쏟아낸다. 그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나 역시 20년 넘게 책을 소개하고 써오면서 계속 성장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변화할 것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공부하지 않으면 변하지 않지만, 공부하면 변한다. 공부하면 유연해지고, 공부하지 않으면 고지식해진다. 변화의 열쇠는 우리 손에 있다(p. 69).

 

28. 세상이 날 알아주지 않는 게 아니라, 내가 세상을 모르는 것

실패한 사람에게서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이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의문이 든다. 그것이 진실일까? 정말 그 사람의 역량이 출중한 데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걸까? 하지만 세상이 그를 알아주지 않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세상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의 미성숙함을 보여주는 증거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너를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괘념치 마라. 세상이 알아준다고 네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이 너를 몰라준다고 네가 못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p. 78). 나도 공감한다.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자존감이 중요한 것이지. 세상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알아줄 만하니까 알아주는 것이고. 만약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면 아직 때가 아니거나 내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상품 광고와도 같다. 정말 좋은 상품은 광고가 필요 없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입소문을 내고, 제품은 저절 로 팔린다. 반면 결함 있는 상품은 광고가 오히려 독이 된다. 단점이 더 빨리 드러나 시장에서 외면받기 때문이다. 자질이 부족한 사람이 장관 후보가 되어 곤욕을 치르는 모습을 볼 때 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조용히 있었다면 모를 일을, 왜 자기를 드러내 저런 수모를 자초했을까? 스스로 한계를 알았다면 애초에 거절했어야 했는데.' 결국 진정한 실력자는 세상의 인정을 구하지 않는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으며 실력을 쌓아갈 뿐이다. 때가 되면 세상은 자연스럽게 그 가치를 알아보게 된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원망하기보다, 스스로 더 성장시키는 데 집중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p. 79).

 

29. 실패는 권장하되, 실수는 경계하라

혁신은 실패를 먹고 산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실패를 통해 배울 수 있기에 실패를 권장한다는 얘기다. 이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실패와 실수를 구분 하는 것이다. 흔히 실패라고 부르는 것들은 사실 실수에 가깝다. 디테일이 부족하거나 준비 없이 덤벼들었다가 쓴맛을 보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런 것들은 엄밀히 말해 실패라기보다는 실수에 해당한다. 한 번의 실수는 용납할 수 있지만, 두 번의 실수는 이미 습관이 된 것이다. 이런 실수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 반면에 진정한 실패란 치밀한 준비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을 말(p. 80)한다. 이런 실패는 오히려 혁신을 위해 필요하다. 새로운 시도에는 항상 실패의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는 교훈과 경험은 다음 도전을 위한 자양분이 된다. 물론 아무리 가치 있는 실패라 해도 그 횟수를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 실패가 반복되면 개인과 조직의 사기가 꺾이기 때문이다. 지인 중 한 명은 사회 초년에 크게 부도를 낸 후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다. 이처럼 실패가 주는 충격과 후유증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성공적인 혁신을 위해서는 실수와 실패를 구분 하는 안목이 필수적이다. 안일한 준비와 부족한 디테일에서 비롯된 실수는 단순한 시행착오에 불과하므로, 이는 철저히 예방해야 한다. 반면 치밀한 준비와 전략적 계획하에 시도했음에도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실패한 경우, 이는 오히려 혁신을 위한 값진 자산이 된다. 이러한 의미 있는 실패에서 얻은 깊이 있는 통찰은 다음 도전의 초석이 되며, 이런 경험들이 쌓여 결국 진정한 혁신의 발판이 된다(p. 81).

 

13. 착각도 때로는 약이 된다

인간은 왜 착각을 할까? 대부분 착각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만, 착각이 우리 삶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는 사실을 아는가? 《착각의 쓸모》(샹커 베단텀 지음, 반니)는 착각의 숨겨진 이점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책에 따르면, 자기기만은 실제로 신체에 변화를 일으킨다. 미국 외과 의사 브루스 모슬리의 실험이 대표적이다. 그는 관절염 환자들에게 무작위로 플라시보 수술을 했다. 2년 후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실제 수술을 받은 환자나 가짜 수술을 받은 환자나 모두 비슷한 수준으로 호전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단순히 수술 자체가 아니라. 병원이라는 공간과 의(p. 114)사의 믿음직한 말 한마디가 만들어낸 자기기만이 실제 치료 효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와인 실험도 흥미롭다. 싸구려 와인에 비싼 가격표를 붙여 마시게 했더니, 실제로 비싼 와인을 마실 때처럼 뇌의 쾌락 중추가 반응했다. 이는 현실의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자기기만이 실제 신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증거다. 게다가 자기기만은 불안을 줄이고 심리적 안정감도 준다. 때문에 착각은 단순한 오류가 아닌, 생존의 유효한 전략일 수 있다. 인간의 인지적 한계, 시스템의 복잡성, 불확실한 미래···이런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하고 전진할 수 있는 건 역설적으로 '적정 수준의 착각'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성과 조직의 리더들은 종종 '과도한 자신감'이나 '비현실적 낙관'이라 불릴 만한 착각을 품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이런 착각들이 만드는 미세한 균형점 위에서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뇌는 완벽한 진실보다 유용한 착각을 선택했고, 그것이 인류를 지금까지 생존하게 만든 진화의 비밀일지도 모른다. 결국 '적절한 자기기만'이야말로 우리가 진화 과정에서 획득한 가장 영리한 생존 전략인 셈이다(p. 115).

 

16. 비결을 알면 오히려 성공하기 어렵다

세상에는 온갖 비결과 노하우가 넘쳐난다. 출세, 장사, 돈 버는 법, 인간관계, 건강, 행복 등 무엇이든 그에 대한 비법을 알려준다고 난리다. 하지만 문득 의문이 든다. 이런 비결을 잔뜩 늘어놓은 사람들이 정말 그 분야에서 성공 한 사람들일까? 돈 버는 비결을 쓴 사람이 실제로 부자일까? 리더십에 대해 책을 쓴 사람은 진정한 리더일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아 보인다. 더 중요한 건, 이런 비결을 접한 사람들이 과연 그대로 따라 하면 성공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출세 비법을 읽고 그대로 따랐다고 해서 정말 출세할 수 있을까? 무엇이든 비결만 알면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리 쉽지 않다. 어(p. 120)떤 일이든 전제 조건이 있기 마련이다. 체력, 능력, 인품 같은 기본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런 기본기가 갖춰지지 않은 채 비결만 안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남이 만든 비결을 참고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 비결을 그대로 따른다고 해서 성공을 보장할 순 없다. 대신 기본에 충실하면서 스스로의 힘으로 높은 경지에 오르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다.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와 좌절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런 경험을 거치며 어느 순간 자신만의 비결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그런 깨달음 없이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비결을 접한들 그림의 떡일 뿐이다. 진정한 고수들은 남의 비결을 좇지 않는다. 그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간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깨달음은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전수될 수 없다. 마치 등산로를 자세히 설명해준다고 해서 히말라야 정상 정복의 체험을 전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당신이 찾아야 할 것은 누군가의 비결이 아닌, 자신 만의 길이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터득되는 통찰이야말로 당신만의 비결이 된다(p. 121).

 

25. 과거의 성공이 독이 되는 순간

길을 걷다 "의사 전원 서울대 출신"이란 간판을 본다. 연대, 고대도 마찬가지다. 이런 광고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저 병원, 내세울 게 학벌뿐이구나. 실력이나 경험, 환자 치료 결과 같은 진짜 중요한 걸 내세우지 못하니 낡은 타이틀로 포장하는구나." 명함에 무슨 학위를 잔뜩 늘어놓은 사람도 비슷하다. 왜 작은 명함을 그토록 복잡하게 만들까? 현재의 성과나 실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니 과거의 학위로 허세를 부리는 건 아닐까? 한 명사는 서울대 졸업식에서 이런 말을 했다. "먼 훗날 당신이 진정으로 대단한 사람이 되면, 서울대 졸업장은 아무 의미 없을 것이다. 내세울 게 너무 많아서다. 하지만 성장하지 못(p. 138)한다면, 서울대 졸업장이 유일한 자랑거리로 남게 될 것이다." 여전히 학벌을 자랑하는가? 스카이 대학 나온 게 그렇게 뿌듯한가? 그렇다면 당신은 현재가 아닌 과거에 갇혀 사는 것이다. 수십 년 전 좋은 대학 다닌 게 유일한 자랑거리라면, 그건 꽤나 초라한 성장 궤적이 아닐까? 진정한 고수는 과거의 영광에 의지하지 않는다. 학벌이라는 허상을 내세울수록 현재의 공허함만 더 도드라진다. 역설적이게도 학벌을 잊을 때, 과거의 성공을 내려놓을 때 당신의 진짜 실력이 빛나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성장의 아이러니다(p. 139).

 

13. 헌 것 속에 새로움이 있고, 새로움 속에 헌 것이 있다

우리 사회는 종종 나이를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곤 한다. 은행권에서는 전문성과는 상관없이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임금 피크제를 적용한다. 공평해 보이지만 사실 전혀 공평하지 않은 제도다. 또한 로테이션이라는 명목하에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다. 우수한 인력이 왔다가도 뚜렷한 주특기 없이 평범한 사람이 되어 나온다. 반면 정치권은 전반적으로 노령화되어 있다. 기업이라면 벌써 물러났어야 할 사람들이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한다. 늘 세대교체의 필요성이 제기되지만, 정작 그들 자신이 현역이다 보니 실천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진정한 세대교체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김성근(p. 176) 감독의 주장은 들어볼 만하다. 컵에 물을 계속 부으면 어느 순간부터 원래 담겨 있던 물이 자연스럽게 빠져나온다. 이런 것이 세대교체다. 컵에 있는 물을 전부 비우고 새로 넣는 게 아니다. 세상일은 원래 헌 것 속에 새로움이 있고 새로움 속에 헌 것이 있는 법이다. 나이를 먹어도 능력이 있으면 계속하는 것이고, 젊어도 능력이 없으면 그만둬야 한다. 가득염은 1969년생, 2007년 SK 왔을 때 내일모레 마흔이다. 그런데 4년이나 더 선수생활을 했다. 경력이 많으니 위기에도 떨지 않고 대범하게 자기 볼을 던졌다. 한 마디로 나이 먹었다고 자르고, 젊다고 쓰지는 말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었어도 가득 같은 선수는 기용하고, 젊어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 자르라는 것이다. 컵에 있는 물을 쏟고 새 물을 채우는 대신 계속 새로운 물을 부으라는 것이다. 나이 든 사람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젊기만 한 사람을 채우는 게 세대교체가 아니다. 제 역할을 잘하고 발전에 대한 욕구가 있는 사람은 남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을 내보내고 새로운 피를 수혈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세대교체다(p. 177).

 

19. 사과를 잘하는 사람의 연봉이 높은 이유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과를 하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강자는 사과를 잘하는 반면, 약자는 어떤 수를 써서라도 사과를 피하며 고집을 부린다. 미국의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I am sorry" 라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일수록 소득 수준이 높다고 한다. 연봉 10만 달러 이상의 고소득자가 연간 2만 5천 달러 이하의 저소득층보다 두 배나 더 많이 사과를 한다 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느냐"는 질문에 연봉 10 만 달러 이상자의 92%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소득 구간이 낮아질수록 그 비율도 점차 줄어들어 2만5천 달러 이하 소득자의 경우 52%에 그쳤다. 이는 성공한 사람일수록 자신의(p. 188) 실수에서 배우려 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고소득자들은 보다 총명하고 자신을 안전하게 지키려는 경향이 있으며,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오히려 경력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승자는 어린아이에게도 사과할 수 있지만, 패자는 노인에게조차 고개를 숙이지 못한다." 탈무드의 이 말은 사과와 성공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사과는 강자의 언어인 것이다. 오직 강한 사람만이 진정으로 사과할 수 있다. 사과는 과오를 끝내겠다는 의미이자, 과오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진정한 사과란 무엇일까? 사과는 '쏠 사'에 '과오 과'가 더해진 단어이다. 말 그대로 자신의 과오를 인정 하고 말로 표현하는 것이 사과다. 여기서 핵심은 자신의 잘못을 분명히 얘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어떤 면에서 잘못했는지를 먼저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사과는 변명으로 가득 차 있다. 정작 자신은 빠져 있고, , "그러려던 건 아니었는데..", "그 사람이 그럴 줄은 몰랐어" 같은 말만 늘어놓는다. 이는 사과가 아니라 변명이다.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으면 오히려 문제를 키울 수 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성장할 수 있다(p. 189).

 

21. 몸이 마음을 결정한다

"생긴 대로 살아야 한다. 나와 다른 나로 사는 건 효과도 없고 고통스러울 뿐 행복하지 않다." 이는 내가 한 때 의심 없이 믿었던 통념이었다. 그러나 백영옥의 칼럼을 읽고 나니,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깨달음이 스쳤다. 그 칼럼에서는 《프레즌스》의 저자 에이미 커디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에이미 커디는 19살에 자동차 사고로 뇌를 크게 다쳐 기억력 장애에 시달리며 움츠러들어 살았다. 그러나 그녀가 찾은 해법은 바로 "너 자신을 속여라"라는 것이었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면 행복해진다는 말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그 결과 그녀는 하버드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학생들에게 가장 먼저 움츠러든 어깨와 가슴을 펴고 허리를 곧게 세우라(p. 194)고 조언한다. 즉, 당신이 원하는 사람이 될 때까지 스스로를 속이라는 것이다. 내면의 목소리를 애써 찾기보다는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외면을 먼저 그려보고,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칼럼을 읽는 순간, 나는 골프선수 신지애의 일화가 떠올랐다. 슬럼프에 빠져 부진을 겪던 그녀에게 코치는 단 한 마디, "챔피언처럼 당당하게 걸으라"고 조언했다. 그 후 그녀는 본래의 기량을 되찾았다. "생긴 대로 살라"는 말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가 만든 틀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잘못된 모습을 진짜 자기 모습으로 여겨 거기에 머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내가 진정 되고 싶은 모습,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를 상상하고 마치 이미 그렇게 된 것처럼 행동하는 편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나의 조언은 단순하다. "위를 보고 걷자." 스마트폰에 고개를 파묻고 걷는 대신, 세상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자신만만하게 걸어보라. 그 걸음걸이 속에 당신이 되고 싶은 모든 것이 담겨 있다(p. 195).

 

24. 굴러온 돌이 있어야 박힌 돌도 득을 본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걸까? 아니다. 굴러온 돌은 정체된 조직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역사를 살펴 보면, 개방적인 사회가 폐쇄적인 사회보다 더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아테네는 부모가 모두 아테네인이어야만 시민권을 부여했다. 심지어 아리스토텔레스조차 마케도니아 출신이란 이유로 시민권을 얻지 못했다. 반면 로마는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없었다. 그들은 좋은 것이면 적의 것이라도 흡수 했고, 피지배민족인 그리스의 신들마저 받아들였다. 스페인은 달랐다. 순수한 사회를 지킨다며 새로운 것을 무조건 배격했다. 처음엔 종교에 국한되었으나, 점차 모든 학문(p. 200)과 예술 분야로 확산되었다. 공포의 종교재판소가 커질수록 스페인은 역동성을 잃었고,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활력은 떨어졌다. 결국 패권을 내주고 말았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두 종류의 조직이 있다. 하나는 사람들이 계속 드나드는 조직, 다른 하나는 한번 들어오면 나가지도 않고 새로 들어오지도 않는 조직이다. 공무원이나 공공기 관이 후자에 속한다. 예전에는 대기업도 그랬지만, 공채제도가 사라지며 달라졌다. 이 두 조직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정체된 조직을 살리는 최선의 방법은 고인 물을 빼고 새 물을 넣는 것이다. 그럴 때 사람들은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라며 반발한다. 하지만 박힌 돌만으로는 발전할 수 없다. 주기적으로 박힌 돌을 빼내고 굴러온 돌이 그 자리를 메워야 한다. 반짝이는 굴러온 돌들이 안주하는 박힌 돌을 자극해야 한다. 그때 박힌 돌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변화하고 발전하거나, 물러나거나.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는 이들 중 제대로 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굴러온 돌이 계속해서 박힌 돌을 빼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조직은 발전한다(p. 201).

 

4. 인생의 전환점은 예고 없이 온다

인사철이면 으레 승진자가 있는 만큼 퇴직자도 생기기 마련이다. 퇴직자들에게 소회를 물으면 너무 갑작스러워 당혹스럽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60을 앞둔 임원도 그런 얘기를 하는데, 남의 일로만 여겼던 퇴직이 자신에게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거라 믿었던 모양이다. 몹쓸 병에 걸려도 사람들은 "하필 나한테 이런 병이 올 까?"라며 한탄한다. 물론 그런 말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무슨 일이든 오늘 일어날 수 있다"Anything can happen today." 내가 즐겨 인용하는 말이다. 언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는 게 우리 인생이다. 우리는 세상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나에게는(p. 222) 좋은 일만, 병은 없어야 하고, 내 자식들은 모두 잘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가? 그래서 뜻밖의 일을 맞닥뜨리면 으레 'Why me' 라고 묻는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하고 말이다. 이는 잘못된 가정이고 잘못된 질문이다. 나만 피해 갈 수 있으리라 바라는 건 오만한 발상이다. 누구에게나 비슷비슷한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부자고 높은 지위에 있다고 병마가 비껴가는 건 아니다. 열심히 살았다고 늘 좋은 일만 생기는 것도 아니다. 누구에게든, 언제든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받아 들여야 한다. 중요한 건 그런 일이 닥쳤을 때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할지를 미리 생각해두는 것이다. 그래야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다. 퇴직도, 질병도, 죽음도 누구에게나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일이다. 특히 죽음이 그렇다. 영원히 살 것처럼 사는 사람과, 언제든 삶이 끝날 수 있다고 여기며 사는 사람의 태도는 완전히 다르다. 삶의 전환점은 예고 없이 온다. 그때 우리는 "Why not me" 라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인생의 큰 전환점을 지혜롭게 맞이하는 방법이다(p. 223).

 

16. 용서의 역설: 기억해야 자유로워진다

사람들은 종종 "다 잊고 용서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마음먹은 대로 잊을 수 있을까? 오히려 잊으려 할수록 기억은 더 또렷해지기 마련이다. "다 잊었어"라는 말 자체가 사실은 아직 잊지 못했음을 뜻한다. 진정 잊었다면 떠 올릴 일조차 없어야 한다. 잊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의미 있는 사건일수록 더욱 그렇다. 잊힐 순 있어도 잊을 순 없는 법이다. 까맣게 잊었 던 일이 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결국 망각이란 우리 의지와는 무관한 것이다. 설령 잊을 수 있다 해도, 그것이 곧 용서일까? 용서의 한자를 보면 "담다, 받아들이다"는 뜻의 '용'과 "마음이 같(p. 248)다"는 뜻의 '서'가 합쳐져 있다. 즉, 용서란 마음의 평정을 되찾는 것이다. 단순히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 그 일을 떠올려도 동요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용서인 셈이다. 《심리학이 어린 시절을 말하다》(우르술라 누버 지음, RHK)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당신이 의식적으로 기억하고 용서하면, 과거는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존재하지만 있어야 할 곳. 즉 과거로 추방된다. 그럼으로써 과거는 현재에 대한 지배력을 잃는다." 그러므로 용서하려면 오히려 기억해야 한다. 자꾸 떠올리되, 원망이나 한탄에 빠지지 말고 객관적으로 바라 봐야 한다. 상처받은 순간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나아가 상대방의 입장도 헤아려 봐야 한다. 그가 그랬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해하려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비록 그 행동이 잘못되긴 했어도, 그 심정만큼은 공감이 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상대가 밉기보다 불쌍해 보인다. 상대가 불쌍해지는 순간 내 마음에 조금씩 안정이 찾아온다. 평정심이 생긴다. 그 일을 떠올려도 더는 마음이 요동치지 않을 때, 비로소 용서에 이른 것이다. 용서는 상대방을 위한 게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한 것이다. 불현듯 기억나도 아프지 않게 되는 것, 그(p. 249)것이 용서의 완성이다. 잊으려 하면 오히려 용서할 수 없다. 떠오를 때마다 제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용서하기 위해선 기억하고,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동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문득 스쳐도 내 감정에 흔들림이 없다. 용서는 결국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한 것이다. 평정심을 회복하는 것, 그것이 참된 용서다(p.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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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끊임없이 자기개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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