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6-12(금)
 
  • 언어가 삶이 될 때-김미소 저자(글), 한겨레출판사 ·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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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우리에게 무엇일까? 우리는 왜 언어를 공부하는 걸까? 다문화가정의 구성원으로 자라 미국에서 응용언어학을 공부하고 일본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김미소가 삶에서 언어와 함께하는 법, 언어와 함께 성장하는 법을 들려준다. 우리는 영어를 그 자체로 공부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교과서와 문제집을 반복해서 읽고 외워야 한다고 여긴다. 이른 나이에 배울수록 더 능숙하고 원어민답게 말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김미소는 말한다. 언어 학습을 시작한 나이보다는 해당 언어로 쌓는 경험이 더 중요하며, 언어는 나와 세계를 이어주는 매개체이고, 따라서 언어 자체가 아니라 언어를 통해 경험하는 세계가 중요하다고. 최근의 연구 결과는 어릴수록 외국어 학습에 유리하다는 통념을 깨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제2언어에 노출된다 해도 이중언어자가 된다는 걸 보장하지는 못하며, 아이보다 성인이 제2언어를 초기에 습득하는 속도가 더 빠르고, 제2언어를 배우기 시작한 나이보다는 그 언어를 통해 쌓아온 경험이 능숙도에 더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언어를 배우는 데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라, 그 언어와 함께 살아가는 경험이다. 사람은 지식이나 능력을 들고 다니는 컴퓨터가 아니고, 제2언어 역시 뇌 안에만 존재하는 추상적인 능력이 아니다. 사람들은 언어를 배워서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새로운 사회와 교류하며 삶을 꾸려간다. 이처럼 언어는 관계, 사회, 삶 속에 존재한다.-교보문고.

 

흥미롭게 읽었다. 영어광풍인 우리사회가 한 번은 읽어볼만한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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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빠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틀에 박혀 있던 내 사고가 산산이 깨져버렸다. 아장아장 걸어다니던 아기 시절의 큰아이를 마지막으로 봤었는데, 지금은 가족 간에 이중언어를 편하게 구사하고 있었다. 성장 과정 내내 3개월 단위로 베트남과 한국을 번갈아 가며 살기를 반복해 온 덕이었다. 물론 아직 대화라(p. 26)고 부를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맥락상 상대가 아빠나 나나 오빠일 때는 7세 또래들이 쓸 정도의 한국어로, 상대가 엄마나 할머니일 경우에는 베트남어로 편하게 대화하고 있었다. 종종 엄마와 이야기할 때는 두 언어를 섞어 쓰기도 했다. 가족과 이야기해 보니 베트남으로 돌아가서 국제학교를 보내려고 한다고 했다. 아아, 그래 그럴 수도 있구나. 국경 하나만 넘으면 이 친구가 경험할 수 있는 게 정반대로 바뀔 수 있구나. 이 친구가 갖고 있는 정체성, 언어 자원, 문화 자본이 환영받을 수 있는 곳이 지구본에 그어진 선을 조금만 넘으면 존재했다. 나는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한국의 틀에만 갇혀서 생각했던 내가 바보였다. 이주, 디아스포라, 코스모폴리타니즘 등 머릿속에만 둥둥 떠다니던 개념이 눈앞에 뚜벅뚜벅 살아나왔다(p. 27).

 

외국어는 이른 시기에 배울수록 좋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다. 한 예로 사춘기(대략 12세 이후)까지 제2언어를 배우지 못한다면, 그 언어를 제대로 배울 수 없다는 '결정적 시기 가설(critical period hypothesis)'이 있다. 아주 간단히 요약하면, 사람의 뇌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편화(lateralization)'되기 때문에 새로운 언어를 배울 수 있는 뇌의 가소성이 떨어지므로, 새로운 언어를 배워도 원어민처럼 될 수 없다는 가설이다. 성인이 되어 제2언어 실력이 더 이상 향상되지 못하고 굳어 버리는 현상을 '화석화(fossilization; Selinker, 1972)'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인일수록 언어를 배우기 어려워지는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제기되었는데, 뇌의 가소성이 줄어들기 때문일 수도 있고 (Long, 1990) 자신이 쓰는 제2언어와 원어민이 쓰는 언어 간의 차이를 알아차리기 어려워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Schmidt & Frota, 1986). 그러나 최근의 연구 결과는 어릴수록 외국어 학습에 유리하다는 기존의 통념을 깨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제2언어에 노출된다 해도 이중언어자가 된다는 걸 보장하지는 못하며, 아이보다 성인이 제2언어를 초기에 습득하는 속도가 더 빠르고, 제2언어를(p. 33) 배우기 시작한 나이보다는 그 언어를 통해 쌓아온 경험이 능속도에 더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Ortega, 2019). 언어를 배우는 데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라, 그 언어와 함께 살아가는 경험이다. 사람은 지식이나 능력을 들고 다니는 컴퓨터가 아니고, 제2언어 역시 뇌 안에만 존재하는 추상적인 능력이 아니다. 사람들은 언어를 배워서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새로운 사회와 교류하며 삶을 꾸려간다. 이처럼 언어는 관계, 사회, 삶 속에 존재한다. 아이가 제1언어 또는 제2언어로 만들어나가는 세계는 대체로 말랑말랑하고 유연하다. 아이는 추상적이고 복잡한 사고체계를 만들어나가는 중이므로 아직은 어른의 개념을 배우지 않아도 된다. 보통은 주변의 성인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대화를 해준다. 아이들은 아직 단단히 만들어진 세계가 없는 만큼 새로운 변화에 유연할 수 있다. 반면 성인이 제2언어를 통해 만들어가는 세계는 아이의 세계만큼 친절하고 말랑말랑하지 않다. 성인이 될수록 언어를 배우는 게 힘들어지는데, 단순히 발음을 잘할 수 없거나 문법에 능숙하지 않은 게 문제는 아니다. 성인은 이미 모국어로 구축해 놓은 정 체성과 사회관계망이 단단하기 때문에 그 벽을 깨고 제2언어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 게 큰 도전이 된다. 화석화되는 건 제2언(p. 34)어 능력이 아니라, 이미 모국어로 단단히 형성된 자신의 자아다. 모국어로 쌓아 올린 자아는 이미 편안하게 안정되어 있다. 모국어 세계에서 이뤄놓은 성취도 많고 친척, 친구, 동료와의 관계도 탄탄하다. 그렇지만 제2언어로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상황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갈 때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때로는 부당함과 무시도 감수해야 한다. 세상은 성인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으며, 제2언어를 통해 성인 대 성인으로 맺는 관계는 꼭 평등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아, 외국어를 배우는 건 숨 쉬듯 편안했던 자신의 자아를 다 무너뜨리는 과정이구나. 너무 당연해서 자아라고도 느껴지지 않았던 것들을 다 부수고 새로 만들어가야 하는구나. 자신을 위험에 노출시키고, 부끄러워질 기회를 일부러 더 만들고, 자존심을 굽히고, "내가 한국에서는~" 같은 생각을 전부 내려놓고, 새로운 언어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야 하는구나. 이 관계에서는 수도 없이 불편한 일이 일어나고, 원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권력관계 안에 들어가야 하며, 상대에게 친절함을 기대하기 어렵다. 모호함을 견뎌야 하고, 지나가는 여섯 살 아이에게도 배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모국어 세계에 편안히 머무르면서 제2언어 자아를 만들어나갈 수는 없다(p. 35). 자아가 말랑말랑해야 새로운 언어를 배울 수 있다. 자존심을 세우면 자신이 고립될 뿐이다(p. 36).

 

"Whats your hobby?"도 "What do you do for fun?"도 좋은 문장이다. 만약 여러 언어를 넘나드는 친구라면 Whats your 취미?" "What do you do after 퇴근?"처럼 말할 수도 있다. 아니면 의미 자원을 활용하는 방법으로, 스마트폰 사진 앱을 켜서 직접 사진을(p. 84) 보여주며 이게 내 취미인데 너는 취미가 뭐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원어민처럼 말하지 않는 게 나쁜 게 아니라, 원어민처럼 말하지 않는다고 핀잔을 주는 사람이 나쁘다. 언어는 진공 속에서 존 재하지 않으며, 원어민의 언어가 항상 맞는 것도 아니다. 원어민처럼 말하는 것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의미 자원을 활용하여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생각과 관점을 제시하는 게 훨씬 가치 있는 일이다(p. 85).

 

영어 말하기라는 여정을 시작할 때는 이 두 가지를 꼭 기억하고 출발했으면 좋겠다. 언어는 대상이 아니라 매개체라는 것, 이제 막 태어나는 내 외국어 자아에게 친절해지는 것. 언어는 스파르타로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나와 새로운 세계 사이에서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다. 내 말랑말랑한 영어 자아는 채찍질이 필요한 게 아니라 따스한 양육이 필요하다(p.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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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98】 외국어를 배운다는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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