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6-12(금)
 
  • 리추얼-메이슨 커리 저자(글) · 강주헌 번역, 책읽는수요일 ·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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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방해로부터 나를 지키는 혼자만의 의식 『리추얼』. ‘리추얼’은 의식을 의미하는 단어로, 하루를 마치 종교적 의례처럼 여기는 엄격한 태도이자, 일상의 방해로부터 나를 지키는 유용한 도구, 삶의 에너지를 불어넣는 반복적 행위이다. 이 책은 토마스 홉스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까지 지난 400년간 가장 위대한 창조자들로 손꼽히는 161명의 완벽한 하루에서 찾아낸 결정적 리추얼들을 소개한다. 가령, 애거서 크리스티는 글을 쓰기 위해 특별히 마련된 공간이 아닌 튼튼한 탁자와 타이프라이터가 필요한 것의 전부라고 말했으며, 윌리엄 개스는 매일 더럽고 썩은 곳의 사진을 찍어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대여섯 시간을 일하고 오후에는 달리기나 수영을 하며 저녁 9시에 잠들었다. 소설가, 시인, 극작가, 화가, 철학자, 영화감독, 과학자들이 창작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을 어떻게 극복하고, 또 자신의 시간을 지키기 위해 하루를 어떻게 설계했는지 흥미롭게 설명한다. 저자 메이슨 커리는 문학·예술·철학·과학 등의 분야에서 커다란 업적을 남긴 인물들의 일상적인 삶, 예를 들어 그들이 언제 잠들고 언제 밥을 먹었으며, 언제 작업을 하고 언제 고민했는지 등과 같은 사소한 면들을 밝혀냄으로써, 그들의 영감이 특별한 일탈에서가 아닌 자신의 일상에서 얻어낸 산물임을 증명하였다. 이는 곧, 가장 평범한 보통의 시간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순간임을 보여주고, 하루를 특별하게 대하는 엄숙한 삶의 태도를 일깨워준다.-교보문고.

 

자신이 만든 일상의 습관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다. 흥미롭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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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이른 새벽에 일어나신 것처럼

조너선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8세기의 신학자 조너선 에드워즈는 대각성 운동(Great Awakening)을 주도한 핵심 인물로서, 〈분노한 신의 손아귀에 잡힌 죄인들〉이란 설교로 유명했다. 에드워즈는 아침 4시나 5시부터 서재에서 매일 열세 시간을 보냈다. 그는 일기에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이른 새벽에 일어나신 것으로 판단하건대 우리에게도 아침 일찍 일어나라고 충고하신 듯하다"라고 썼다. 서재에서 보내는 긴 시간 때문에 몸이 약해지는 걸 막기 위해 신체 활동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는데 겨울에는 장작을 팼고, 날씨가 좋으면 산책 하거나 말을 탔다. 산책을 나갈 때도 펜과 잉크를 갖고 다니며, 번뜩 떠오르는 생각들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말을 탈 때는 기억술을 활용했다. 전기 작가 조지 W. 마즈던(George W. Matsden)은 에드워즈의 기억술을 이렇게 설명했다. "떠오르는 영감을 기억해두려고 에드워즈는 그 영감과 관(p. 26)련된 옷의 특징 부분에 작은 종이를 핀으로 꽂아두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종이를 하나씩 뽑아내며 그와 관련된 생각을 써내려갔다. 때문에 며칠간의 여행을 다녀오면 에드워즈의 옷은 작은 종잇조각으로 뒤덮여 있을 때 가 많았다.

조너선 에드워즈 1703~1758. 미국이 낳은 위대한 복음주의 신학자. 회중교회 목사의 가정에서 태어나 열세 살이 되기도 전에 예일 대학교에 입학했다. 대학을 졸업할 때쯤 회심을 경험하고 신학을 공부하여 회중교회 사역자가 되었다. 엄격한 칼뱅주의 입장에서 설교했는데, 그 힘과 영향력이 대단했다. 대표적인 저서로 《영적 감정을 분별하라》, 《순전한 헌신》, 《참된 신자가 되어라》 등이 있다(p. 27).

 

똑같은 일과의 반복은 일종의 최면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는 소설을 쓸 때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대여섯 시간을 쉬지 않고 일한다. 오후에는 달리기나 수영을 하고(때로는 둘 다), 이런저런 일을 하거나,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다. 저녁 9시에는 잠자리에 든다. 그는 2004년 〈파리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이런 습관을 매일 별다른 변화를 주지 않고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반복 자체가 중요한 것이 된다. 반복은 일종의 최면으로, 반복 과정에서 나는 최면에 걸린 듯 더 심원한 정신 상태에 이른다"라고 말했다. 무라카미는 한 권의 소설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시간 동안 이처럼 똑같이 반복되는 습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신 수양이 있어야 하고, "체력도 예술적 감성만큼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도쿄에서 자그마한 재즈 카페를 운영하다, 1981년 전업 작가로 나섰을 때, 무라카미는 주로(p. 56)앉아서 생활하는 방식 때문에 체중이 급속히 증가했다는 걸 깨달았다. 게다가 그는 하루에 60개비 이상의 담배를 피웠다. 생활 습관을 완전히 뜯어고치기로 결심한 그는 아내와 함께 시골로 이사하고, 담배를 끊었다. 음주량도 줄이고, 채소와 생선으로 이루어진 식사를 주로 했다. 또 매일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그 습관은 사반세기 이상 꾸준히 계속되었다. 무라카미가 2008년에 발표한 수필에서 인정했듯이, 이런 자기중심적 시간표는 사교적인 삶을 허용하지 않는 단점이 있었다며 "초대를 반복해서 거절하면 누구나 불쾌하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무라카미는 자신의 삶에서 결코 등한시할 수 없는 관계가 독자와의 관계라고 확신하 며 "내가 늘 앞선 작품보다 더 나은 신작을 발표한다면, 독자들은 내가 어떤 식으로 살든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소설가로서 내 의무, 또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바는 그것이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1949~, 일본의 소설가. 현대 사회의 소외된 군상의 고독을 '나'라는 일인칭 시점으로 집요하게 파헤쳤다. 대표작으로 《해변의 카프카》, 《1Q84》,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등이 있다(p. 57).

 

일정한 규칙성을 도덕적 원칙으로 승화하다

이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칸트의 전기에서는 외적인 사건을 찾아보기 힘들다. 칸트가 평생 프로이센의 외딴곳에서 살며 고향인 쾨니히스베르크 담 밖을 나간 적이 거의 없는 데다, 몇 시간 거리밖에 떨어지지 않은 바닷가조차 여행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칸트는 쾨니히스베르크 대학교에서 40년 이상 철학을 강의했다. 그의 삶은 질서 정연한 규칙의 삶이었다. 훗날 칸트의 초상이 아무 개성이 없는 로봇으로 그려진 것도 이 때문이다. 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Heintich Heine)는 칸트의 삶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칸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쓰기는 매우 힘들다. 그에게는 삶도 없었고 이야기도 없었기 때문이다. 칸트는 기계처럼 질서 정연하고, 추상적인(p. 60) 삶을 살았다. 그는 독일 북동쪽 국경 근처에 있는 오래된 도시 쾨니히스베르크의 한적한 곳에서 독신으로 살았다. 쾨니히스베르크 대성당의 커다란 벽시계도 이마누엘 칸트보다는 더 재밌고 조금은 규칙에 어긋나게 제 역할을 했을 듯싶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글을 쓰고 강의를 하고, 식사를 하고 산책하는 등 모든 것이 정해진 시간에 이루어졌다. 칸트가 잿빛 코트를 입고 스페인 지팡이를 손에 쥐고 집 밖으로 나오면, 이웃들이 정확히 3시 30분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만프레트 퀸(Vanfed Kuchn)이 2001년에 발표한 전기에 따르면, 칸트의 삶은 하이네와 여러 사람이 주장한 것만큼 추상적이지도 않았고 무색무취하지도 않았다. 칸트는 사람들과 교제하는 걸 좋아했고, 타고난 이야기꾼이었으며, 싹싹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가 눈에 띄게 모험적인 삶을 살지 못한 이유는 건강 때문이었다. 칸트는 선천적인 골격 기형으로 가슴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작아서 심장과 폐를 압박한 까닭에 체질적으로 허약했다. 이런 상황에서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결국 건강염려 증에서 비롯되는 정신적 고뇌를 가라앉히기 위해, 칸트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머리를 사용하는 대상과 삶의 방식에서 일정한 규칙성"을 받아들였다. 이런 규칙적인 삶도 칸트가 마흔 번째 생일을 맞은 다음부터 극단적인 형태를 띠기 시작했는데, 인간의 성격에 대한 그의 독특한 견해가 반영된 결과였다. 칸트가 생각하기에, 성격은 오랜 세월의 경험을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선택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칸트는 인간의 성격이 마흔(p. 61)살에 이르러서야 완성된다고 믿었다. 또 성격의 중심에는 좌우명, 즉 일단 형성되면 평생 동안 따라야 하는 기본적인 삶의 규칙들이 있다고 생각 했다. 안타깝게도 칸트의 개인적인 좌우명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록은 전해 지지 않는다. 하지만 칸트가 삶의 방식에서 '일정한 규칙성'을 단순한 습관에서 도덕적 원칙으로 승화하려고 결심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따라서 마흔 번째 생일을 맞기 전까지 칸트는 가끔 카드놀이를 하느라 자정 까지 귀가하지 않기도 했지만, 마흔 살을 넘긴 후에는 일상에서 반복되는 행위들을 예외 없이 고수했다. 칸트의 습관은 다음과 같았다. 칸트는 5시에 일어났다. 그를 오랫동안 섬긴 하인이 퇴역 군인인 까닭에 주인이 늦잠을 자도록 내버려두지 말라는 명령을 충실히 수행한 덕분이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한두 잔의 옅은 차를 마시며 파이프 담배를 피웠다. 퀸에 따르면, "칸트는 하루에 파이프 담배를 한 번만 채우겠다는 나름의 원칙을 세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파이프의 대통이 점점 커졌다고 전해진다" 묵상의 시간을 가진 후에는 그날의 강의를 준비하고 글을 썼다. 강의는 오전 7시에 시작해 11시까지 계속되었다. 교수로서의 의무를 끝내면 칸트는 식당이나 술집에 가서 점심 식사를 했는데 그가 실질적으로 배를 채우는 유일한 식사였다. 칸트는 동료 교수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배경을 지닌 주민들과도 함께 식사를 즐겼다. 칸트는 완전히 익힌 고기에 괜찮은 포도주를 곁들인 소박한 식사를 좋아했다. 점심 식사가 3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그다음엔 널리 알려진 산(p. 62)책을 시작하며, 절친한 친구 조지프 그린(Joseph Green)의 집을 방문했다. 그들은 주중에는 오후 7시까지 대화를 나누었고, 주말에는 다른 친구도 끼어들어 오후 9시까지 대화를 나누었다. 칸트는 귀가해서 글을 쓰고 책을 읽다가, 정확히 10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이마누엘 칸트 1724~ 1804, 독일의 철학자. 계몽주의 사상가로, 데카르트에서 시작된 합리론과 베이컨에서 시작된 경험론을 통합했다. 인식론 윤리학• 미학에 걸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작업은 이후의 철학들에 큰 영향을 주었다. 대표적인 저서로 《순수 이성 비판》, 《실천 이성 비판》,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 《판단력 비판》 등이 있다(p. 63).

 

침묵과 질서의 무아지경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찰스 디킨스는 15편의 장편 - 그중 열 편이 800페이지가 넘는다 - 과 많은 단편소설, 수필 및 편지와 희곡을 쓴 작가였지만 일정한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글을 쓰지 못했다. 첫째, 주변이 무조건 조용해야 했다. 그의 서재에는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덧문이 추가로 설치되어 있을 정도였다. 둘째, 서재가 정확히 정돈되어 있어야 했다. 책상 앞에는 거울이 있어야 했고, 책상에는 그가 글을 쓸 때 사용하는 물건들, 예컨대 거위 펜과 푸른 잉크가 몇 가지 장식품 옆에 반듯하게 놓여 있어야 했다. 장식품으로는 생화가 꽂힌 작은 꽃병, 커다란 종이칼, 토끼가 앉아 있는 모습의 금박을 입힌 잎사귀, 두 개의 청동상(하나는 싸움질하는 한 쌍의 뚱뚱한 두꺼비, 다른 하나는 강아지들에게 둘러싸인 신사)이 있었다. 디킨스의 작업 시간은 일정했다. 장남의 기억에 따르면, "시청 공무원(p. 73)도 아버지보다는 규칙적이거나 꼼꼼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상상과 공상의 세계를 그리면서도 시간을 엄수했고 기계처럼 규칙적으로 행동했다. 단조롭고 따분한 들에 박힌 일을 하는 사람도 아버지만큼 정확할 수는 없었다." 디킨스는 7시에 일어나 8시에 아침 식사를 했고, 9시에 서재에 들어가자마자 오후 2시까지 꼼짝하지 않았다. 그전에 휴식을 겸해 가족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했지만, 그동안에도 디킨스는 무아지경에 빠진 듯 기계적으로 식사하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식사를 끝내자마자 서재로 돌아갔다. 평일에는 이런 식으로 작업하며 2,000단어를 썼고, 때로 상상력에 날개가 더해지는 날에는 그보다 두 배나 많은 양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한 글자도 쓰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에도 디킨스는 예외 없이 작업 시간을 준수했는데,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정각 2시, 디킨스는 서재에서 나와 시골길이나 런던 시내를 정확히 세 시간 동안 산책하며 소설의 줄거리를 구상했다. 디킨스 자신의 말을 빌리면, "내가 표현할 그림들을 찾아다녔다" 한편 다킨스 처남의 기억에 따르면, 산책에서 돌아온 "디킨스는 에너지의 화신처럼 보였다. 감춰놓은 창고에서 흘러나오듯 모든 모공에서 에너지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디킨스는 밤에는 철저히 휴식을 취했다. 6시에 저녁 식사를 한 후 가족이나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고, 자정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찰스 디킨스 1812~1870, 영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소설가로 평가되며. 가진 자에 대한 풍자와 인간 생활의 애환을 그려 명성을 얻었다. 당시 사회와 부조리를 명확히 파악하여 시대의 양심을 대변하는 작가로 인정받았다. 대표작으로 《위대한 유산》. 《올리버 트위스트》, 《크리스마스 캐럴》, 《두 도시 이야기》 등이 있다(p. 74).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은 바보다

카를 융 Carl Jung

1922년 융은 스위스 취리히 호수 북부 지역의 볼링겐이란 자그마한 마을 근처에 한 필지의 땅을 구입하여, 2층짜리 소박한 돌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 후 12년 동안 그 돌집을 개조하고 확장하는 과정에서 한 쌍의 보조탑을 덧붙이고, 마당에 마련한 커다란 화덕을 담으로 쌓은 까닭에 그 돌집은 볼링겐 타워(Bolingen Tower)로 불렸다. 이렇게 계속해서 증축되었지만, 원시적인 거주지라는 볼링겐 타워의 최초 개념은 달라지지 않았다. 울퉁불퉁한 돌바닥에 카펫은 물론이고 마룻장도 깔리지 않았다. 전기도 없었고 전화도 없었다. 장작을 때서 난방했고, 조리는 석유난로를 이용했으며, 인공의 빛이라곤 등잔 불빛이 전부였다. 물은 호수에서 길어와 서 끓여 사용하다가, 결국에는 수동 펌프를 설치했다. 융은 불링겐 타워에 대해 "16세기 사람이 이 집에 온다면 등유 램프와 성냥만 보일 것이(p. 78)다. 그 외에는 모든 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어렵지 않게 알아낼 것 이다"라고 말했다. 1930년대 내내 융은 볼링겐 타워를 도시 생활로부터의 피난처로 이용했다. 도시에서 융은 하루에 8~9시간 정도 환자를 진료하고 강연과 세미나를 주최하며 그야말로 일중독자처럼 살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융의 저서 대부분은 휴일에 쓰였다. 융은 자신에게 의지하는 환자가 많았지만 휴가 내는 걸 조금도 꺼리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피곤에 지쳐 휴식이 필요한데도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은 바보다." 볼링겐에서 융은 7시에 일어나 냄비와 솥과 프라이팬에 아침 인사를 건넸다. 전기 작가 로널드 헤이먼(Ronald Hayman)의 기록에 따르면, "아침 식사를 준비하며 오랜 시간을 보냈고, 아침 식사는 주로 커피와 살라미 소시지, 과일, 빵과 버터였다" 융은 아침에 두 시간을 할애해 집필에 몰두했다. 그 후에는 서재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명상하고, 주변 언덕들을 오랫동안 산책하고, 방문객을 만나거나, 매일 끝없이 날아드는 편지들에 답장하며 오후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2시나 3시경에는 차를 마셨다. 저녁에는 푸짐한 식사를 준비하는 과정을 즐겼다. 저녁 식사 전에는 '해 질 녘에 마시는 술(sun-downer)'이라고 스스로 칭한 아페리티프를 곁들이기도 했다. 10시에는 잠자리에 들었다. 융은 볼링겐에서의 생활을 이렇게 요약했다. 볼링겐에서 나는 진정한 삶의 한복판에 있으며, 나 자신에게 가장 가까워진다.... 전기 없이 살아가며, 벽난로와 난로를 직접 관리한다. 저녁에(p 79).는 등잔불을 켠다. 수돗물도 없어 우물에서 물을 길어온다. 장작을 패서 먹을 것을 조리한다. 이 같은 단순한 행동들이 인간을 단순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처럼 단순하게 지내는 일이 무척 어렵다! 

카를 융 1875~1961.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심리학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영향을 받아 분석심리학의 기조를 세웠고, 내향성과 외형성을 구별하는 성격 유형을 분석하였으며 외향성 · 내향성 성격, 개인의 무의식과 집단의 무의식이란 개념을 제시하며, 그 원형을 신화나 민화에서 찾았다. 대표적인 저서로 《영웅과 어머니 원형》, 《무엇이 개인을 이렇게 만드는가》. 《인간과 상징》 등이 있다(p. 81).

 

창조적 리듬을 만들기 위한 규칙적인 시간

헨리 밀러 Henry Miller

젊은 시절 밀러는 주로 자정부터 새벽까지 글을 썼지만, 결국 자신이 아침형 인간이란 걸 깨닫고 그 습관을 바꾸었다. 1930년대 초 파리에 살면서 밀러는 글 쓰는 시간을 바꿔, 아침 식사 후부터 점심 식사 전까지 글쓰기에 몰두했다. 점심 식사 후에 잠깐 낮잠을 즐긴 것 이외에는 오후 내내 글을 썼고, 때로는 밤까지 작업이 이어졌다. 하지만 나이 들어가면서 밀러는 정오 이후의 작업이 불필요하고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온다는 걸 깨달았다. 실제로 한 인터뷰에서 "나는 이야기 창고가 고갈된다는 말은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야기할 것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도 타이프라이터 앞에서 일어나 책상에서 멀어져야 한다고는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침에 두세 시간 정도의 작업이면 충분하다고 말했지만, 창조적인 리듬을 만들기 위해서는 규칙적인 시간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p. 101)며 "진정한 통찰의 순간들을 꾸준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철저히 절제해야 합니다. 절제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헨리 밀러 1891~1980. 미국의 소설가, 끝없이 자유분방한 예술가이며 성을 솔직하게 표현한 자전적 소설을 발표해 20세기 중반 문화에 자유의 물결을 일으켰다. 대표작으로 《북회귀선》, 《남회귀선》, 《욕망》, 《신들의 정원》 등이 있다(p. 102).

 

묵상과 산책의 시간

존 밀턴John Milton

존 밀턴은 세상을 떠나기 전의 20년을 맹인으로 살았지만 꾸준히 글을 쓰며, 1658년부터 1664년까지 집필한 1만 행의 서사시 《실낙원》을 비롯해 불후의 걸작을 빚어냈다. 밀턴은 침대에 누운 채 새벽 4시(겨울에는 5 시)부터 시작해서 아침 시간을 혼자만의 묵상에 할애했다. 먼저 조수가 30분가량 성경을 읽어주면, 밀턴은 혼자 앉아 기억에 담을 수 있을 만큼 서사시를 머릿속에 써내려갔다. 7시에 조수가 돌아와서 밀턴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썼다. 밀턴의 전기를 쓴 한 작가의 글에 따르면, 조수의 받아쓰는 속도가 느려지면, 밀턴은 "시간을 끌어 수고비를 더 받아내려 하는 게 아니냐며 투덜거렸다." 구술이 끝난 뒤에는 조수가 점심 식사 때까지 밀턴에게 글을 읽어주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밀턴은 정원을 서너 시간 정도 산책했(p. 106)다. 늦은 오후와 저녁때 주로 방문객을 맞이하며 가볍게 저녁 식사를 했고, 파이프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9시경에는 잠자리에 들었다.

존 밀턴 1608~1674. 영국의 시인. 종교 개혁 정신의 부흥, 정치적 자유, 공화제를 지지하다 탄압을 받았고. 실명과 가정불화로 절망과 고독에 시달렸다. 그런 비운을 달래면서 《실낙원》을 썼다. 그 밖의 작품으로 《복낙원》과 《투기사 삼손》 등이 있다(p. 107).

    

내게 필요한 것은 튼튼한 탁자와 타이프라이터뿐

애거서 크리스티 Agatha Christie

자서전에서 크리스티는 열 권의 소설을 발표한 후에도 자신을 '진짜 작가'로 여기지 않았다는 걸 인정했다. 또 직업을 묻는 설문지를 작성할 때도 '가정주부'란 단어밖에 생각나지 않았다며, "재밌게도 결혼한 후에는 내가 쓴 책들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평범한 삶을 즐겁게 받아들여, 글쓰기를 단숨에 폭발적으로 해내는 일이라 생각한 듯싶다. 나만의 방이란 공간이나, 글을 쓰기 위해 특별히 마련한 공간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라고 덧붙였다. 이런 이유에서 애거서 크리스티는 책상에 앉은 작가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어 하던 기자들과 끝없는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하지만 크리스티에게 그런 공간은 없었다. 그녀의 자서전에서 "내게 필요한 것은 튼튼한 탁자와 타이프라이터가 전부였다. 대리석을 위에 덧댄 침실의 세면대는(p. 111) 글쓰기에 정말 좋았다. 식당의 탁자도 글쓰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라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많은 친구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소설을 언제 쓰는지 모르겠어. 네가 글 쓰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든. 심지어 글을 쓰겠다고 어디론가 떠난 적도 없잖아." 나는 개들이 뼈를 물고 사라질 때처럼 행동해야 했다. 개들은 말없이 순식간에 사라져서, 30분가량 눈에 띄지 않는다. 그리고 코에 진흙을 잔뜩 묻힌 채 수줍어하며 돌아온다. 나도 거의 똑같이 행동했다. 글을 쓰려고 사라질 때 나 자신도 약간은 쑥스러웠다. 하지만 일단 어딘가로 사라져서 문을 닫고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으면, 내가 하는 일에 몰입 하여 글을 써낼 수 있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1890~1976. 영국의 추리 작가. 80여 편의 추리소설을 발표하여 미스터리의 여왕으로 불린다. 그녀의 작품들은 총 1억 부 넘게 팔렸다. 대표작으로 《오리엔트 특급 살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크 로이드 살인 사건》 등이 있다(p. 112).

 

나에게 정해진 시간표는 없다

움베르토 에코 Umberto Eco

마흔여덟 살에 발표한 첫 소설 《장미의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이탈리아의 철학자이며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는 특별히 정해진 습관에 따라 글을 쓰지는 않는다고, 2008년의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나에게는 정해진 시간표라는 것이 없습니다. 아침 7시에 글을 쓰기 시작해 새벽 3시에 끝내며, 샌드위치를 먹으려고 가끔 작업을 중단할 뿐입니다. 때로는 전혀 글을 쓰고 싶지 않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터뷰 진행자가 거듭해서 묻자, 에코는 글쓰기 습관이 항상 들쑥날쑥하지는 않다는 걸 인정했다. 몬테펠트로의 언덕 꼭대기에 있는 시골집에서 지낼 때는 일정한 습관을 따르는 편입니다. 컴퓨터를 켜면 이메일부터 확인하고, 뭔가를 읽은 후에 오후까지 글을 씁니다. 그리고 마을 술집에 내려가 목을 축이며 신문을 읽(p. 122)습니다. 저녁때 집으로 돌아와 11시까지 텔레비전이나 DVD를 시청하고, 밤 1시나 2시까지 좀 더 작업을 합니다. 밀라노나 대학교에 있을 때는 내 시간이라고 해서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나에게 뭔가를 해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있으니까요. 하지만 자유로운 시간이 없을 때도 에코는 짧은 '겨를'을 활용해 생산 적인 활동을 한다고 말했다. 〈파리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에코는 이런 예를 들었다. "오늘 아침에 당신이 아파트 앞에서 전화를 했습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가 내려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을 겁니다. 따라서 우리 집 현관에 도착할 때까지 몇 초가 흘렀습니다. 그 몇 초 동안,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요즘 쓰고 있는 새로운 작품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나는 화장실에 앉아서도, 기차 안에서도 작업할 수 있습니다. 수영을 하는 동안, 특히 바다에서 수영하는 동안에도 많은 것을 생각하고 구상합니다. 욕조에 앉아서는 그런 경우가 적지만, 그래도 내 머리는 멈추지 않습니다."

움베르토 에코 1932~ , 이탈리아의 기호학자이며 철학자, 역사학자. 소설가.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에서 퍼스널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지식을 쌓은 학자이며, 지식계의 티라노사우루스로 불릴 만큼 엄청난 양의 독서에서 비롯된 깊이 있는 비평과 수필로 유명하다. 대표적인 소설로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프라하의 묘지》, 이론서로는 《일반 기호학 이론》, 《기호학과 언어 철학》 등이 있다(p. 123).

 

규칙적 작업이 만성 불안감을 해소하다

찰스 슐츠 Charles Schulz!

찰스 슐츠는 50여년 동안 1만 7,897편의 '피너츠' 만화 하나하나를 조수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그렸다. 일요판까지 매일 만화를 그려야 했기 때문에 규칙적인 시간표가 필요했고, 슐츠는 일주일에 닷새씩 하루에 일곱 시간을 '피너츠'에 할애하며 회사원처럼 자신의 역할을 다해야 했다. 주중에는 새벽에 일어나 샤워와 면도를 하고 아이들을 깨워 아침을 먹였다(그의 아내가 만든 팬케이크). 8시 20분, 슐츠는 아이들을 스테이션왜건에 태워 학교에 데려다 주었고, 가는 길에 이웃 아이들을 태우기도 했다. 그 이후는 집 옆에 마련한 개인 작업실에서 화판 앞에 앉아 작업을 했다. 처음에는 연필을 만지작거리며 상상의 나래를 폈다. 그가 일반적으로 사용한 방법은 "화판 앞에 앉아 과거를 생각하며, 아쉽고 고약했던 기억들을 끌어내는 것"이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곧바로 작업에 돌입했(p. 174)다. 영감이 마르기 전에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여 그 아이디어를 종이에 옮겼다. 슐츠는 점심 식사 - 언제나 햄 샌드위치와 우유 한 잔 - 까지 작업실에서 해결하고, 아이들을 학교에서 데려와야 하는 4시까지 작업을 계속 했다. 이런 규칙적인 작업 습관은 그의 기질에 맞아, 평생 그를 괴롭혔던 만성 불안감을 극복하는 데 적잖은 도움을 주었다. 언젠가 슐츠는 "만화를 그릴 수 없었다면 두려움에 휩싸여 지냈을 것이다. 만화 그리는 일을 할 수 없었다면 공허감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

찰스 슬츠 1922~2000. 미국의 만화가, 스누피, 찰리 브라운, 루시 등 '피너츠' 시리즈의 캐릭터들을 탄생시킨 만화계의 거장이다. 탁월한 그림 솜씨에 뛰어난 문장력으로 빚어낸 '피너츠'에는 위트와 유머, 따뜻함 그리고 삶의 지혜와 인생철학까지 담겨 있어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대표적인 만화집으로 《심술쟁이가 뭐 어때》, 《걱정은 걱정을 낳는다》, 《많이 컸네, 찰리 브라운》 등이 있다(p. 175).

 

늦은 아침의 성찰 시간

르네 데카르트 René Descartes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늦게 일어나는 사람이었다. 아침나절에야 눈을 뜨고 11시 남짓까지 침대에서 뒹굴며 사색하고 글을 끄적거리는 걸 좋아했다. 1629년부터 생을 마치기 수개월 전까지 살았던 네덜란드에서 보낸 편지에서 데카르트는 "이곳에서 나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매일 열 시간씩 잠을 잔다네. 꿈속에서 내 정신은 숲과 정원과 마법의 궁전을 헤매고 다니며,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즐거움을 맛본 후에 잠을 깨면 밤의 몽상과 낮의 몽상이 뒤섞이기 시작한다네" 라고 썼다. 이처럼 늦은 아침의 성찰 시간이 그에게는 하루 중에서 지적 능력을 유일하게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데카르트는 정신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서는 빈둥거리는 습관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머리를 무리하게 학대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이른 시간에 점심 식사를 마친 뒤 데카르트는 산(p. 321)책을 하거나, 친구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였다. 저녁 식사 후에는 편지를 읽거나 답장을 썼다. 이처럼 편안한 독신의 삶은 1949년 말 갑자기 끝났다. 데카르트가 스웨덴 크리스티나 여왕의 철학 과외 교사 초빙 제안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스물두 살이던 여왕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군주 중 하나였는데, 데카르트가 그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데카르트가 자신의 권위를 더 확실히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나, 젊은 지도자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겠다는 욕망에 끌렸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결정이었다. 데카르트가 스웨덴에 도착한 때는 하필이면 인류의 기억과 스웨덴의 역사에서 가장 추웠던 겨울이었다. 그리고 데카르트는 아침 5시부터 크리스티나 여왕을 가르치라는 지시를 받았다. 데카르트는 그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른 새벽 시간과 매서운 추위를 데카르트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결국 한 달 만에 폐렴에 걸렸고, 열흘 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르네 데카르트 1596~1650. 프랑스의 물리학자•철학자. 근대 철학의 아버지, 해석기하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합라론의 대표 주자이며 《방법 서설》에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근본 원리를 확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표적인 저서로 《방법 서설》 이외에 《성찰), 철학의 원리》, 《정념론》 등이 있다(p. 322).

 

한 페이지씩 쌓이는 것이 중요하다

조이스 캐럴 오츠 Joyce Carol Oates

조이스 캐럴 오츠는 지금까지 50여 편의 장편소설과 36편의 단편집, 수 십여 권의 시집과 수필집 및 희곡을 발표한 다작의 작가로 유명하다. 오츠는 대체로 아침 8시나 8시 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글을 쓴다. 점심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한 후에 오후 4시부터 저녁 식사를 하기 전, 7시까지 다시 작업에 열중한다. 때로는 저녁 식사 후에도 작업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책을 읽는 데 저녁 시간을 할애한다. 오츠의 지적대로, 그녀가 책상 앞에서 보내는 시간을 고려하면 다작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나는 글을 쓰고 또 쓰고, 틈만 나면 쓴다. 하루 종일 작업해서 겨우 한 페이지를 완성하더라도 그 한 페이지가 중요하다. 그 한 페이지들이 차곡차곡 쌓여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다작의 작가라는 평판을 얻었지만, 엄밀히 말하면 나만큼 열심히 일하(p. 372)지도 않고 오랫동안 일하지도 않는 작가들을 기준으로 한 평가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오츠가 항상 재밌고 쉽게 글을 쓴다는 뜻은 아니다. 새로운 소설을 시작할 때마다 처음 몇 주는 무척 힘들고 좌절감까지 맛본다며 "초고 작업은 더러운 바닥에 떨어진 땅콩을 코로 밀어내는 것과 같다"라고 말했다.

조이스 캐럴 오츠 1938~ 미국의 소설가, 소설·시·산문·비평·회곡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직품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춰 평단과 일반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대표작으로 《얼베이니 가족》, 《좀비》, 《블론드》 등이 있다(p. 378).

 

권투 선수처럼 끊임없이 훈련할 뿐

조지 거슈윈 George Gershwin

아이라 거슈윈은 동생 조지 거슈윈에 대해 "조지는 일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있어 내게는 항상 적잖이 슬퍼 보였다"라고 말했다. 조지 거슈원이 하루에 평균 열두 시간 이상을 일했다는 건 사실이다. 그는 아침 늦게 작업을 시작해 자정 넘어서까지 계속했다. 달걀과 토스트, 커피와 오렌지 주스로 아침 식사를 끝내면 파자마에 목욕 가운을 걸친 채 슬리퍼 차림으로 피아노 앞에 앉아 곧바로 작곡을 시작했다. 오후 중간 쯤 점심 식사를 위해 잠시 쉬었다가, 오후 늦게 산책을 다녀와서는 8시경에 저녁 식사를 했다. 저녁에 파티에 참석하게 되면, 자정 넘어 귀가해서도 새벽까지 작업에 몰두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거슈윈은 영감이란 것 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뮤즈의 여신을 기다렸다면 1년에 기껏해야 세 곡 정도 작곡했을 거라고 말했다. 그는 매일 작곡에 매진하는 게 훨(p. 389)씬 낫다면서 "작곡가는 권투 선수처럼 끊임없이 훈련을 해야 한다" 라고 덧붙였다.

조지 거슈원 1898~1937, 미국의 작곡가·피아니스트, 대중적인 경악을 작곡하면서 재즈 기법으로 관현악곡과 오페라도 창작했으며, 20세기 전반에 현대 음악에서 미국적인 성격과 기법을 가장 잘 발휘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오페라 《포기와 베스》의 작곡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p. 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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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00】 성공의 법칙-일상의 성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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