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9-16(수)
 
  • 왜 나만 우울한 걸까?-김혜남 저 | 중앙m&b |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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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귀찮기만 하다는 귀차니스트, 죽도록 먹거나 먹지 않는 사람들, 무언가에 중독되어야만 살 수 있는 사람들, 외모에만 집착하는 사람들, 자살을 꿈꾸는 사람들, 늘 피곤하다는 사람들, 그들은 언뜻 다른 범주에 있는 사람들 같지만 모두 우울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그들이 우울과 어떤 관련을 가지고 있는지 조목조목 밝혀내고, 그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우울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를 일러준다. 또 인터넷과 메신저, 문자메시지 등을 타고 급속하게 전개되고 있는 심각한 언어 파괴 현상, 인터넷 폐인과 리플족의 탄생, 조폭영화와 코미디에 열광하는 심리 등을 통해 우울에 빠진 시대를 짚어내고 우울한 시대가 만든 사람들, 키덜트족의 심리를 파헤친다.-예스24

 

인간의 심리는 늘 흥미로운 주제이다. 나를 알고 상대방을 알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재미있게 읽었다. 내게는 아직 우울증이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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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쓸모 없는 인간이다

‘살아가는 일이 너무 힘겹게 느껴진다. 나는 너무 나약하다. 그래서 내 인생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지 않다. 내 인생은 엉망진창이다. 나는 내가 싫다.’ 우울한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파괴시켜 나간다. 그러다가 결국엔 자신의 존재 의미마저 부정하면서 자신을 전혀 쓸모 없는 무가치한 인간이라고 규정 짓는다. 그들이 그렇게 되는 이유는 다른 사람에 비해 부정적인 사건을 더 많이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들과 똑같은 사건을 겪어도 부정적인 사건을 더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긍정적인 사건마저 부정적인 생각으로 일관하면서 덜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다 보니 즐거운 일은 별로 없고 온통 불쾌한 일투성이다(p. 21). 긍정적인 사람들이 긍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황금 비율은 16 대 1.0이다. 그러나 우울한 사람들은 긍정적인 생각마저 부정적인 생각으로 몰아간다. 그러나 사노라면 우리의 희망과 상관없이 불행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게 인생이다. 아무리 능력이 많고 뛰어난 사람이라도 불행을 피해 갈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인간이 불행에 대처하는 가장 훌륭한 자세는 아무리 부정적인 일이라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지혜롭게 헤쳐 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라는 생각으로 우울하다면 먼저 ‘왜 내가 그렇게 생각할까?’를 따져 보자.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반드시 있다. 그러나 그렇게 따져 들어가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얼마나 모든 상황에서 나 자신을 깎아내리고 있는지 말이다. 이제 그만 나 자신에게도 조금 관대해져 보자.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이다(p. 22).

 

남들의 시선에 목숨 거는 당신, 그래서 어느 순간 우울에 빠진 당신이 잊고 있는 것은 남들이 뭐라든 당신은 태어난 것만으로도 존중 받아 마땅한 귀한 생명이라는 사실이다. 당신은 지금껏 남들의 찬탄을 받기 위해 그들보다 더 열심히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 왔다.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느 순간 당신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트린다면, 이제는 그 껍데기 같은 삶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여라. 더 이상 그 신호를 무시함으로써 더 깊은 우울에 빠져 들지 말고 말이다(p. 27).

 

이러한 상실의 고통이 시간의 강물을 타고 흘러가서 과거라는 시간의 바다의 일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애도 과정' 이라고 한다. 이 과정을 심리학자 볼비는 네 단계로 구분했다. 첫번째 단계는 절망에 빠지면서 무감각해지고 항의를 하는 단계다. 이 때는 죽음을 부정하기도 한다. 두 번째 단계는 죽은 사람을 매우 그리워하고 찾아 다니는 단계로 안절부절못하며 그저 죽은 사람에게 집착하게 된다. 세 번째 단계는 와해의 단계다. 인생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사회적인 관계를 모두 끊고 고립되며, 무감각해지고, 불면증과 체중 감소에 시달리게 된다. 끊임없이 죽은 사람에 대한 기억을 반추하다, 그것이 단지 기억뿐이라는 사실에 실망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시기다. 마지막 단계는 회복의 단계다. 이제 상실의 고통은 줄어들면서 현실로 복귀하게 된다. 떠나간 그 사람이 가슴속에 살아 있으면서 그에 대한 기억은 기쁨과 슬픔을 동반한다. 보통 이 과정은 6개월 정도를 필요로 한다. 이 동안 충분히 슬퍼하면서 그 사람을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부터 떠나보내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우리는 언뜻언뜻 그의 모습(p. 59)을 보기도 하고, 그의 목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죽은 사람을 붙잡아 두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그 사람이 이제는 더 이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서, 차츰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먹게 된다. 그러고는 조금씩 현실로 돌아와 그 사람 없는 세상에서도 살만 하다는 것을 느낀다. 이런 과정을 밟으면서 아주 서서히 에너지가 다 소진되면 그 사람과의 단절이 일어난다. 즉 고통스런 슬픔을 거쳐 애도를 끝내면 그 슬픔의 도가니에서 빠져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제야 비로소 우리는 다시 일어나 새로운 대상과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p. 60).

 

그러니 만약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다면, 마음껏 슬퍼하라. 그런 뒤에야 새로운 관계, 새로운 사랑을 만나 다시금 살아갈 힘을 얻게 될 테니까.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직 살아가야 할 날이 많이 남아 있다(p. 64). 그리고 그 시간을 우울의 감정으로 흘려 보내기엔 삶이 너무도 소중하다. 우울에 빠져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삶은 떠나간 이에게도, 남은 자신에게도 예의가 아니다(p. 65).

 

술이든 약물이든 모든 중독 행동은 자신의 무기력감과 무능감을 잊어버리고자 하는 데서 출발한다. 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특히나 무능감이란 감정에 상당히 취약해서, 자신이 무능하다고 느낄 때 극심한 분노를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중독을 통해 재빨리 무능(p. 110)감과 무력감을 극복하고자 한다. 이처럼 중독에 잘 빠져 드는 사람은 어릴 때 마음에 상처를 입고 자아 발달에 손상을 받아서 자신을 보호하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자신의 감정과 충동을 제대로 조절할 줄 모르기 때문에 기분이 저하될 때마다 참지 못하고 약물이나 술을 통한 즉각적인 기분 상승을 하려 드는 것이다. 게다가 중독 상태가 되면 오래 전 엄마 뱃 속에서 느끼던 깊은 안락감을 맛볼 수 있어서 중독자들은 더욱더 술과 약물에 빠져 든다. 스트레스에 직면했을 때 술이나 약물을 통해 고통스러운 현실로부터 물러나서 환상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다. 특히 약물 중독의 경우 대개 혼자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투약을 하며 환각 상태로 빠져 드는데, 이것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어릴 적 부족하던 애정 어린 관계를 복원하고자 하는 심리로 볼 수 있다.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열등감에 사로잡힌 사람들. 그렇게 우울해진 사람들은 자기에 대한 만족을 약물이나 술을 통해 인위적으로 유지하려 한다. 그러나 약효가 사라지면 현실 속에 있는 자기의 모습이 더욱 비참하게 느껴지면서 또다시 우울해진다. 그러면 그 깊은 우울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다시 약물에, 술에 손을 뻗치게 된다. 그렇게 우울의 악순환이 계속된다. 자신을 보호하기는커녕 자신을 파괴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말이다(p. 111).

 

순덕 씨처럼 오랫동안 화나고 속상하고 억울한 감정들을 계속 참기만 해서, 그러한 화가 쌓이고 쌓여 덩어리로 뭉쳐진 것을 '화병' 이라고 한다. 우울과 화가 마음속에 쌓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화병은 대부분 힘든 과정이 다 끝난 후에 생길 확률이 높다. 시집살이를 시키던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술과 여자 문제로 평생을 속 썩이던 남편이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돌아온 후 등 힘들던 일이 지나가고 이제야 한숨 돌리고 좀 편해진다 싶으면 몸이 이상해지면서 화병이 오기 시작한다(p. 211). 이것은 억압이 풀어지는 것과 관련이 있다. 힘들 때는 자신을 억압하면서 참는 데만 급급하지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돌볼 여력이 없는 것이다. 그러다 억압이 느슨해지면 그 동안 쌓인 우울과 분노가 "이제 나도 좀 숨을 쉬어야겠다" 며 밖으로 나오려 하는 것이다(p. 212).

 

다만 나는 말해 주고 싶을 뿐이다. 우울은 그저 견디거나, 삶에 무언가 다른 것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넘어서 뛰어난 창조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으니, 우울의 끝이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또 우울이라는 고통스런 감정을 잘 승화시키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충분히 있음을 말이다. 누구는 우울로 인해 죽음에 이르고, 누구는 우울로 인해 위대한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그것은 전적으로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p. 247).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느끼려 한다면 우리는 부정적인 측면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또 그러다 보면 세상은 때로 우울하고 힘들기도 하지만 살 만한 가치가 있음을, 그리고 나에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을 수도, 피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된다. 허락하지 않는 한 그 무엇도 우리를 계속 우울하게 만들 수는 없음을 기억하자. 그런 마음으로 우울의 강을 건너자. 그럴 수 있다면 우리는 우울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감정을 경험하면서 우울이 우리에게 주는 ‘성숙’ 이라는 선물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p. 256).

 

아무런 상처나 고통도 없는 완전한 세상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인생은 유한하며 살아가는 데 있어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과 불안은 늘 있게 마련이다. 그런 것처럼 인간에게 외로움은 숙명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외로움을 이겨 보겠다고 발버둥쳐 봐야 외로움을 없애기는커녕 고통스러울 뿐이다. 그러나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면, 그 시간이 나와 타인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는 있다. 그러니 더 이상 미련하게 외로움을 이겨 보겠다며 외로움과 싸우지 말라. 그건 당신이 외로워지는 걸 두려워하는 약한 사람이라는 반증밖에 안 되니까 말이다(p. 275).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루소, 도스토예프스키, 빅토리아 여왕, 링컨, 차이코프스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인생의 한때를 우울증으로 고통받던 사람들이라는 것. 그래서 일정 기간 같은 종류의 고통을 경험했다는 점이다. 우울증을 앓아 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 괴로움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그것은 인류를 괴롭히는 무서운 질병 열 가지 중에서 네 번째를 차지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병이다. 그 고통에 대해 인생의 반 이상을 우울증으로 보낸 링컨은 다음과 같이 털어 놓았다. "나는 현재 가장 비참한 사람이다. 만일 내가 느끼는 것이 온 세상 사람에게 나뉠 수 있다면 이 지구상에는 기쁜 얼굴이란 단 하(p. 283)나도 없을 것이다. 내가 좋아질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이대로 남아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죽거나, 아니면 내게 벌어지고 있는 일이 좋아지거나 해야 한다."

심지어 《우울증에 관한 희망의 보고서》를 쓴 루이스 월퍼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기도 한다. "그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 최악의 경험이었다. 아내가 암으로 죽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보다도 더 괴로웠다. 아내의 죽음보다 우울증이 더 고통스러웠다고 인정하는 것은 좀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은 진실이었다.” 이렇게 말 못할 고통을 동반하는 우울증은 전체 인구의 5명 중 1 명이 걸릴 정도로 많은 사람이 걸리는 질병이다. 오죽하면 마음의 독감 이라고 불리겠는가. 그러나 우리 나라 사람들은 정신질환에 대해 깊은 거부감과 편견을 가지고 있다. 몸이 아프면 자연스럽게 병원을 찾거나 병원에 갈 것을 권유하면서도, 마음이 아프거나 우울하다고 하면,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개인적인 성격 문제로 치부해 버린다. 아니면 "할 수 있는데도 일부러 꾀병을 부리는 것 같다"거나, "그건 의지가 약해서 생긴 병이니 마음을 강하게 먹고 네 의지로 고쳐 봐라" 혹은 "여행을 가거나 푹 쉬면 나을 것이다"라는 조언을 한다. 정신과 병원에 가 보라고 하는 이는 드물다. 왜냐하면 사람들은(p. 284) 정신과 하면 으레 텔레비전에서 봄직한 괴상한 환자들이 가는 병원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정신과 약 먹으면 중독되고 바보가 된다", "정신과에 입원하면 사람을 때리고 묶는다"는 등의 잘못된 믿음은 그러한 사람들의 두려움을 더욱 부추긴다. 그래서 애석하게도 한약이나 안수 기도, 굿 등 이것저것 좋다는 방법을 다 써본 다음에야 비로소 어쩔 수 없이 정신과 병원을 찾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다 보니 가족 중 누군가가 정신질환에 걸리기라도 하면 병을 고칠 생각은커녕 창피하게 생각하며 쉬쉬하거나, 그것을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괜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환자 자신도 ‘내 의지가 약해서 그렇다’고 자책하며, ‘내가 가족들에게 짐이 된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우울증은 뇌의 병일 뿐이다. 증세는 심각하지만 치료하면 완전 회복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빠른 진단과 바른 치료만 이루어진다면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폐렴에 걸렸을 때 병원에 가서 약을 먹고 치료를 받듯이 ‘마음의 독감’ 인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우울증의 기미가 발견되면 바로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우울증의 치료 방법으로는 항우울제를 사용한 약물치료, 전기경련요법, 광선치료, 대인관계 정신치료, 인지치료, 행동치료, 정신 분석적 정신치료, 가족치료, 집단정신치료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약물치료와 정신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가장 효과(p. 285)가 높다. 항우울제로는 뇌에서 노어에피네프린과 세로토닌의 시냅스 농도를 높여 주는 삼환계 항우울제가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약물은 효과를 기다리기까지 시간이 걸리며 사람에 따라 졸음 등의 부작용이 많다는 단점이 있다. 최근 들어서는 세로토닌- 재흡수- 차단제인 프로작 같은 약물이 우울증 치료에 많이 이용되고 있다. 이러한 우울증 약물은 그 효과가 완전히 나타나기까지 3~4주 기다려 봐야 한다. 초기에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것은 약물이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증거로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므로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더구나 항우울제는 일반적인 믿음과 달리 습관성이 없다. 이처럼 우울증 치료를 시작하게 되면 대부분 3개월 내에 호전된다. 하지만 그대로 방치할 경우 우울증은 6~13개월 지속되며, 그 극심한 고통은 개인을 황폐화시키고, 심리적 • 사회적 합병증까지 부르게 된다. 그 중에서도 자살의 위험성은 특히나 심각하다. 그러므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 가장 시급한 것은 우울증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치료를 받으면 회복되는 병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을 심하게 탓하거나, 다른 그 누구를 비난하 는 것은 병을 더 키울 뿐이다. 중요한 것은 우울증이 어디에서부터 왔는가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치료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p. 286). 우울증은 분명 치료될 수 있는 병이며, 그 지옥 같은 어둠의 끝은 반드시 있다. 다른 우울증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우울증을 앓은 경험을 책으로 펴낸 윌리엄 스타이런은 어둠의 끝을 이렇게 말한다. "깊이 모를 지옥의 심연에서 위로 위로 힘겹게 걸어 오르면 마침내 눈부신 세상 속으로 나오게 되고, 평정과 기쁨을 즐길 수 있는 능력 또한 회복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절망을 넘어선 절망을 견딘 자들에게 돌아가는 충분한 보상이다." 그러므로 당신에게도 희망은 있다. 우울증에 걸린 자신을 수치스러워하며 꼭꼭 숨기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그저 독감에 걸린 것처럼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p. 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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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32】 우울증을 앓고 있다면...치료를 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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