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 아렌트-알로이스 프린츠 저, 김경연 역, 이화북스, 2019년

오늘날 우리는 어둠이 전 세계를 삼키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한나 아렌트는 아무리 어두운 시대라 하더라도 불빛을 찾을 희망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 불빛은 이론이나 개념보다는 개인들의 삶과 일에서 등장하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바로 그러한 불빛을 제공하며 우리가 정치와 당혹스러운 문제들에 비판적 관점을 갖출 수 있게 돕는다. 한나 아렌트는 현대의 삶에 나타나는 위험한 경향들을 빈틈없이 비판했으며, 정치의 품위를 회복하기 위한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한나 아렌트가 읽히고 있는 그리고 한나 아렌트를 읽어야 할 이유다. 『한나 아렌트』는 따듯한 시선과 감동적인 서술로 한나 아렌트의 삶과 작품을 소개한다.-예스24.
한나 아렌트의 사상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면도 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영향력을 끼치고 있기에 마음 먹고 종종 한나 아렌트의 책을 읽고자 한다.

귄터 안더스가 도피하고 며칠 후, 그러니까 2월 27일에 제국 의회 의사당에 불이 났다. 히틀러는 이 방화 사건을 긴급조치를 내리고 기본권을 무효화시킬 구실로 삼았다. 이제 자의적인 체포는 다반사가 되었고, 정적에 대한 테러도 늘어났다. 베를린과 독일의 많은 유대인들은 그제야 국가사회주의자들의 반유대주의를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한나가 보기에 그것은 벌써 몇 년 전부터 예고되었던 상황을 어처구니없게 오해한 것이었다. 그녀는 회상한다. “나치가 우리의 적임을 알게 된 건 히틀러의 정권 장악 때문이 아니예요! 정신이 모자란 사람들을 뺀 모든 사람에게 나치가 우리의 적이라는 것은 적어도 4년 사이에 너무도 자명한 일이 돼 있었어요.” 한나는 예를 들어 여전히 유대인들이 처한 위험을 믿고 싶지 않은 친구 안네 멘델스존보다 상황을 훨씬 더 현실적으로 평가했다. 한나가 보기에 나치의 목적은 분명했다. 마찬가지로 그녀 의 태도 역시 명명백백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공격을 당한다면, 유대인으로서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 그것은 나치의 반유대주의를 개인적인 비극으로 받아들이는 유대인들을 향해 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정치적인 행동을 호소하는 일이었다(p. 79).
한나는 쉽게 절망하는 여성은 아니었다.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그녀에게는 ‘살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그러나 '너무도 나쁜' 세계 상황을 볼 때 그녀 역시 어떤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12년 후 그녀는 쿠르트 블루멘펜트에게 귀르 수용소에서 자살을 하면 어떨까 곰곰이 생각했지만, 결국 "웃긴다"는 대답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개인적인 일과 정치적인 일을 구별할 줄 안다고 자부하는 한나에게 포로 수용소에서의 자살이란 대단히 무기력한, 웃기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그녀는 귀르 수용소에서의 체험에 대해 훗날 이렇게 말한다. “귀르 수용소에서 [••] 자살에 관한 소리를 들은 것은 단 한번뿐이었다. 그것도 집단행동을 위한 제안으로서의 자살이었다. 프랑스인들이 당황하도록 일종의 항의 행동을 제안한 것이다. 몇 사람이 우리가 ‘뒈지려고’ 이리 실려왔냐고 말하자 갑자기 모두들 분위기가 바뀌며 열정적인 삶의 용기가 터져나왔다. 전체의 불행을 여전히 개인적인 불운으로 여기며 자신의 생명을 개인적, 개별적으로 끝맺음했던 사람은 비정상적이고 비사회적인 사람이며 사태의 일반적인 결말에 관심을 상실한 것이 틀림없다는 견해가 일반적이었다.” 귀르 수용소의 여러 생존자들은 수용소의 여자들 사이에 반항적(p. 100)인 자기 주장의 의지가 팽배했음을 증언한다. 그들은 화려하게 화장을 하고 제일 좋은 옷을 입고 마치 가로수길을 산책하듯이 수용소 지대를 산책하곤 했다(p. 101).
그녀는 미국에 머문 지는 불과 몇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자신의 주장을 펼칠 토론의 장을 발견했다. 그녀가 독일어 잡지 『아우프바우』에 공개서한을 보내자 편집장 만 프레트 게오르게는 그녀가 피력하는 논거의 힘에 깊은 감명을 받고, 그녀에게 문예란의 자유기고가로서 활동하기를 제안했다. 『아우프바우』에 1941년 11월부터 격주로 '이것은 당신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라는 제목으로 한나의 칼럼이 실렸다. 제목만큼이나 내용도 독자의 마음을 흔들어 깨웠다. 하인리히는 그녀의 정열적이고 가차 없을 정도로 객관적인 이야기 방식을 "도끼 같다"고 말한다(p. 112). 그녀는 첫 기고에서 이렇게 쓴다. “히틀러에 대항한 유대 민족의 현실적인 전쟁만이 유대인 전쟁에 관한 뜬소문에 종말을 준비해 줄 것이다. 그것은 가치 있는 종말이다. 자유란 선물이 아니다. [...] 자유란 괴로움을 견뎌낸 데 대한 보상이 아니다.” 한나는 동유럽에서 나치의 유대인 박해와 팔레스타인에서 영국인들의 변화된 정책을 배경에 두고 이 글을 썼다. 점점 더 많은 유대인들이 유럽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고, 아랍인들에게서 유대인의 우세에 대한 저항이 점점 더 커지자 영국인들은 이주민의 수를 제한하기로 결정했다. 이주민들을 수송하는 배들은 팔레스타인의 항구에서 거부되었다. 수송선 '스트루마'의 침몰과 같은 재앙이 발생했다. 스트루마호는 오랫동안의 외교적인 줄다리기 끝에 다시 바다 로 끌려가 운명에 맡겨졌던 것이다. 과도하게 많은 사람과 짐을 실은 데다 기동능력이 없는 그 수송선은 예상대로 가라앉았고, 여기서 구출된 생존자는 단 두 사람이었다. 다른 760명의 승객들은 모두 물에 빠져 죽었는데, 그들 중 절반이 여자와 아이들이었다.
이러한 정책의 결과로 지하운동단체 '이르군단'과 같은 전투적인 유대인 집단들이 생겨나 영국의 시설물과 사람들을 공격했다. 한나 아렌트는 메나 베긴 휘하의 이런 테러리스트들을 "폭약 속물" 이라고 부르며 비판했다. 그들은 친구와 적이라는 완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이분법에 매달리며 무책임하게 행동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유대인들의 위험한 경향, 즉 반유대주의를 '자연스런 현상'으로 간주하고, 선택된 민족으로서 적대적인 세계에 에워싸여 있(p. 113)다는 잘못된 믿음에 빠지는 경향에 대해 경고한다. 마찬가지로 독자적인 유대인 국가가 반유대주의를 피해 도망갈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되리라는 시온주의의 기대에 대해서도 경고한다. 그녀는 칼럼에서 팔레스타인이 '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랍인들로 에워싸여 있 고, 그들에게 협조를 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거듭 상기시킨다. 독자적인 유대인 국가는 이러한 양해를 불가능하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유대인 국가 내에서 비유대인들은 언제나 소수로서의 권리밖에 갖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유대인 국가는 영국이나 미국과 같은 강대국의 손에 자신을 내맡기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약속의 땅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다시 말해 스파르타와 같은 '전사족 1'이 될 것이며, 적대 적인 아랍인들로 에워싸인 상황에서는 군사적 방어가 최우선이기 때문에 모든 경제적 발전과 문화적 진보는 질식되고 말 것이다(p. 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