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7(금)
 
  • 이국진 목사 (전주 예수비전교회 시무), 총신신대원 83회, 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수학, North-West Univ.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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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진 목사 

1. 안타까운 108회 총회의 갈지(之)자 행보 

이번 108회 총회에서 여성 사역자 위원회는 여성들에게도 강도사가 될 수 있는 길을 제안하였고, 이를 이의 없이 총회는 받아들였다. 이러한 결정은 우리 총회가 획기적인 방향으로 걸어갈 수 있는 놀라운 진전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는 총회 마지막 날 번복되었다. 없던 일이 되었고, 더 나아가 아예 여성들이 안수에 대해서는 꿈도 꾸지 못하도록 다른 이름의 직책을 만들어주겠다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교육사”, “신학사”라는 이름으로 설교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인데, 이는 목사 안수는 아예 가능하지 않도록 못박아 버리는 일로 보여진다. 이러한 갈지자 행보는 더더욱 여성들로 하여금 분노하게 만들고, 교단을 떠나는 일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예상된다. 이러한 결정이 아쉬운 것은 여성이 교회에서 잠잠해야 하기 때문에 목사 안수를 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교육사”, “신학사”라는 이름으로 설교할 수 있게 하겠다는 자기모순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2. 교단은 이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 

우리 교단의 현행 헌법에서 여성 안수를 허용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 안수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종종 여성안수를 주장하려거든 그런 교단으로 떠나가라고 겁박하는 분들이 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칼빈주의자라고 하는데, 칼빈주의의 요체는 무엇보다도 성경이 최고의 기준이며, 그 어느 것도(교단헌법과 교리교과서 등등) 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갖지 못하기에, 모든 것이 성경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칼빈주의자라면 성경의 가르침을 들어서 반박해야지, 교단 헌법으로 겁박한다면 너무 궁색해 보일 뿐이다.

성경만이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최고의 기준이며, 다른 모든 것은 성경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 교단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성경 외에는 그 어느 것도 무오(無誤)한 것은 없으며, 실제로 우리 교단의 헌법은 여러 번 수정을 해왔다. 그리고 심지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안에 있는 행위언약이 성경의 가르침에 부합하는지 질문이 들어왔을 때, 왜 신앙고백서를 따르지 않느냐고 정죄하지 않고 성경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고 입장을 정리했다. 여성 안수의 문제는 과연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여성에게 안수를 해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시대의 조류를 따르는 것이라고 폄하해 버릴 것이 아니다. 우리가 시대의 조류를 따라서는 안 되고, 성경이 최고의 기준이라고 하는 원칙은 아주 소중하다. 우리는 시대의 조류를 따를 것이 아니라, 성경이 가라고 하는 데까지 가야 하고, 성경이 금한다면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 문제는 과연 여성에게 안수하는 문제가 시대 조류에 편승한 것인가이다. 여성에게 안수하자는 주장이 시대의 조류에 편승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 과거에는 과거라는 시대의 조류에 따라 여성에게 안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무엇보다도 성경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물론 성경은 분명하게 “여성은 교회에서 잠잠하라”(고전 14:34)고 되어 있다. 그렇게 성경이 금하고 있는데, 여성 안수가 어떻게 가능하다는 말인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즉 만일 여성이 교회에서 잠잠해야 한다는 이 말씀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분명하게 믿는다면, 지금 당장 여성들이 하고 있는 대부분의 모든 사역들을 교회에서 금지해야 할 것이다. 구역장도 안 되고, 세미나 강사로 세워서도 안되고, 교사도 할 수 없다. 만일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진정으로 믿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 여성으로 하여금 교회 내에서 성직자로 세워질 수 없는 근거 구절로 사용될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 전체로”(tota scriptura)의 원칙 때문이다. 성경 구절 한두 구절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성경 전체로의 원칙이 무너지고 성경의 한두 구절에 의존하면, 하나님의 뜻과 위배되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예를 들어,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만을 선택했다고 말하고 있으며, 모압과 암몬 민족은 하나님의 회중에 “영원히” 들어올 수 없다고 되어 있고, 더 나아가 예수님은 오직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만 보냄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다. 이런 말씀들만 보면 이방인들에게 선교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완전 위배되는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성경 전체의 가르침에서 보면 선교가 하나님의 뜻임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모압 여인인 룻도 하나님의 회중 속으로 들어와 메시야의 조상이 되었다. 그러니까 성경 한두 구절만 보면 안 되는 것이다. 성경 전체의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구해야 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구속사역이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한 관점 때문에 초대교회 예루살렘 총회는 할례를 이방인들에게 요구할 필요가 없다는 가장 진취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미 하나님은 여성인 드보라와 훌다를 지도자와 선지자로 세웠고, 고린도전서 11장에서는 여성들이 교회내에서 예언(하나님의 뜻을 풀어 가르치는 것)하는 것 자체를 금하지 않고 머리에 두건만 쓴다면 예언할 수 있다고 하였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은 요엘 선지자의 예언을 결국 성취시켰다. 즉 그때가 되면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오순절 때 이미 성취되었다. 이제는 여성들도 하나님의 뜻을 풀어 가르칠 수 있게 하신 것이다. 종종 예언과 가르침은 다르다고 반론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고린도전서 14:31에서는 예언의 목적이 가르치고 권면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못박고 있다.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예수님께서 12제자 중에 여성을 한 명도 세우지 않았다는 사실이 반론의 근거일 수 없다. 물론 예수님께서 여성도 12 제자 가운데 포함시키셨더라면 논란 자체가 정리되었겠지만, 예수님께서 남자들만 제자로 세우셨다는 것이 여성은 안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 사실 따지고 보면 12제자 중에는 사마리아 출신이 한 명도 없고, 더 나아가 이방인도 한 명도 없었다. 그러면 오로지 유대인만 사역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일까? 한국 사람이 성직자를 하겠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 되는 것일까?

 

개혁주의의 원조격인 칼뱅도 오로지 남자들만이 사역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는 것도 반론의 근거일 수 없다. 칼뱅은 아주 뛰어난 신학자이지만,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다. 칼뱅의 입장이 모두 다 100% 맞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칼뱅은 성경의 가르침이 비추어보아서 자신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면 자신의 주장을 따르지 않아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우리가 칼뱅을 우상화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항상 성경만이 최종적인 권위가 되어야 한다.

 

여성 안수를 받아들이면 결국 자유주의를 받아들이게 되지 않을까 우려가 많다. 자유주의를 받아들인 교단들이 주로 여성 안수를 시행하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 안수를 받아들인 교단이 모두가 다 자유주의화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CRC교단, 고신교단의 모교회 격이라고 할 수 있는 화란개혁교회(31조파)도 여성 안수를 수용했다. 또한 한국 내에서도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보수교단인 백석 교단과 여러 개혁 장로교단들도 여성 안수를 받아들이고 있지만, 철저하게 자유주의를 배격하고 있다. 그 동안 이런 식의 반론은 참 많이 있었다. 주5일제 시행하면, CCM 복음송을 받아들이면, 외국과 무역을 하게 되면, 조상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부모님이 주신 머리카락을 자르면, 세상이 망할 것이라는 식의 주장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찰싹거리는 작은 파도를 보면서, 두려움과 무서움 때문에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면 결국 도태될 뿐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과연 무엇이 성경 전체를 통해서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의 뜻인가일 것이다.

 

물론 우리와 깊은 관계가 있는 미국의 PCA, OPC 교단과 같은 곳에서도 여성 안수는 허용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PCA, OPC 교단도 머지않은 장래에 여성 안수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왜냐하면 모두가 성경의 가르침에 순복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교단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연구하고 또 연구해보면, 여성들에게 잠잠하라고 했던 것이 당시에 있었던 일시적인 명령이었을 뿐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결국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여성들이 사역하는 것이 막혀 있었다는 사실도 반론의 근거일 수 없다. 안타깝게도 사람은 객관적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자신의 환경과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성경을 해석하다 보니, 그 해석이 잘못될 수 있다. 사실 종교개혁자들은 천년이 넘도록 지속되었던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이 잘못된 것이라고 외칠 수 있었다. 아니 그 이전에 이미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중심의 종교가 순 엉터리일 뿐이며 잘못된 것이라고 외치셨다. 역사가 오래 되었다고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의 불변의 원칙은 “개혁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est secundum verbum dei)이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다시 비추어보아서 그동안의 전통이 잘못된 것은 없는지 점검해야 한다. 전통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면 안 된다(마 15:3).

 

사실 초대교회에서도 브리스길라와 같은 여성 사역자가 있었고, 유니아라는 여성(롬 16:7)도 12 사도는 아니었지만 바나바와 같은 또는 비슷한 역할을 했던 사도였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황금의 입이라고 알려진 요한 크리소스톰(350-407)은 유니아에 대해서 “사도가 되는 것은 위대한 일인데, 그 가운데 뛰어난 자였다. 이게 얼마나 놀라운 영예의 노래인가!”라고 했다.

 

장로나 집사로 세우려면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는 말은 여성은 안 된다는 뜻으로 보아야 할 필요가 없다. 장로의 자격에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한다(딛 1:6)는 구절이 있지만, 결혼하지 않았거나 아직 자녀가 없다고 해서 목사나 장로 임직의 결격 사유로 보지 않는다. 이 표현은 “자녀를 두었을 경우에는”이라는 말이 생략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는 말은 “만일 그가 결혼한 남자라면”이라는 전제가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는 말을 여성은 안 된다는 뜻으로 확대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 구절은 결혼 생활에 있어서 성결을 유지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직 교단 내에 여성 안수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초대 교회 할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하면 그냥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게 아니라, 서로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구해야 한다.

 

3. 현행 법으로도 강도사를 줄 수는 있다 

부흥하고 성장하는 공동체는 모든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든 더 잘 일할 수 있게 하는 공동체이다. 망할 수밖에 없는 공동체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사역을 막고 소수가 가진 그 힘을 행사하는 공동체이다. 광야에서 모세는 이드로의 제안을 받아들여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재판권을 천부장, 백부장에게 나누어 주었다. 우리 교단도 여성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사역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야 한다.

우선 총회는 여성 사역자들이 강도사 인허를 받을 수 있도록 도우면 좋겠다. 현행 헌법도 여성이 강도사가 되는 것을 명시적으로 금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편 제14장에 의하면, 총회가 신학 졸업생을 고시하여 노회가 강도사로 인허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총회가 결의하고 받아주면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사실 108회 총회 전에 이에 대한 합의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었다. 108회 총회의 결정이 뒤로 역행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 상당히 우려스럽다.

 

목사 안수의 문제는 총회가 좀 더 심도 있게 성경에 드러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토론해야 한다. 그 옛날 예루살렘 회의를 통해 할례를 시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성경에는 반드시 할례를 시행해야만 한다고 되어 있지만,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가져온 관점으로 성경을 이해하면서 할례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와 마찬가지로 총회의 역할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토론을 통해 구해야 한다. 현재 우리 교단 내에는 다양한 해석과 의견이 존재한다. 세미나, 토론회, 전문 연구 등을 병행하는 것을 통해, 서로 경청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 이웃 교단인 백석은 발 빠르게 여성 안수를 허용했고, 엄청난 교단적 발전과 신학교의 발전이 있었다. 사실 많은 여성 사역자들을 이웃 교단에 빼앗긴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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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여성 안수 문제,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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