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0-04(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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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 아침 58년 개띠 ‘백형’이

시 한편을 보냈다.

하기야 오늘만 보낸게 아니다.

그 형은 매일 보내신다.

 

백형의 사랑의 수고로

나는 요즘 매일 시 한편을 읽는

멋스런 남자로 바뀌고 있다.

 

나름 감성 있다 자부하는 나에게

백형은 시적인 감각까지

겸비하도록 업그레이드 시키고 있다.

 

오늘 아침 보낸 시를 읽는데

고향과 아버지 생각에 눈물이

와락 쏟아졌다.

 

백형이 보낸 시는 ‘피재현’ 시인의

‘별이 빛나는 감나무 아래서’였다.

 

“아버지는 가을이 깊어지면 감 따러 오라고

성화를 부렸다.

나는 감 따는 게 싫어 짜증을 냈다.

 

내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지 아느냐고.

감 따위 따서 뭐 하냐고.

 

아버지 돌아가시고 다시 가을이 왔을 때

엄마는 내게 말했다.

니 애비도 없는데 저 감은 따서 뭐 하냐.

 

나는 별이 빛나는 감나무 아래서

톱을 내려놓고 오래도록 울었다.”

 

2.

내 고향 청도는 감나무 천지다.

집집마다 서너 그루 있고,

밭에도 있고, 가로수도 감나무다.

 

가을이 되면 감나무마다 달린

빨간 홍시들은 장관을 이룬다.

 

달린 홍시를 하나 따서 쪼개면

촉촉하게 밴 감물이 뚝뚝 떨어지지만

입에 넣으면 세상을 다 얻은 맛이다.

 

난 감나무 밑에서 눈 깜짝 할 사이에

홍시를 단숨에 서너 개를 먹어 치운다.

 

고구마처럼 목 매이는 것도 없고,

사과처럼 껍질 깎을 필요도 없다.

 

그냥 중간을 쪼개어 입에 넣고

쭉 빨아먹고 껍질은 버리면 된다.

그렇게 홍시로 배를 채우며 자랐다.

나뿐만 아니다.

우리 청도사람들은 대부분 그렇다.

 

근데, 그 흔한 감나무가 사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한 그루도 없었다.

 

겨우 닭장 옆에 깨양나무(고욤나무)

한 그루만 있었을 뿐이다.

 

깨양 열매는 감을 닮았지만

모양도 작고 씨도 많아

맛도 별로였다.

 

감나무 천지인 마을에

한 그루도 없는 우리 집이

늘 불만이었다.

 

그리고 자기 집 감나무에서

홍시 따 먹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웠다.

 

나는 몇날 며칠 아부지(경상도 호칭)에게 투덜거렸다.

 

“아부지, 우리 집도 감나무 좀 심어 주이소~

맨 날 남의 집 감나무에서 홍시 따먹기 이젠 싫심더~”

 

3.

어느 날, 아부지가 감나무 접붙이기에

일가견이 있는 동네 전문가를 모셔 와서

깨양 나무를 베고, 청도 반시감나무 가지로 접붙였다.

 

그날부터 감나무가 자라는 것을

나는 매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역시 내 기대대로 감나무가 잘 자랐다.

 

그러던 어느 해, 가을이 왔다.

봄부터 열매를 낸 감나무에서 제법 굵은 감들이 달렸고,

그 중에서 몇 개는 홍시가 되었다.

 

나는 얼른 감나무에서 홍시를 따서

어릴 때부터 터득한 기술로

둘로 쪼개어 입 안에 쏙 넣었다.

 

달달하게 흐르는 감물을

몇 번 쪽-쪽- 빨아먹고는

껍질은 미련 없이 던져버렸다.

 

행복했다.

 

매해 감나무는 무럭무럭 자랐다.

어느 해 보니 옆집 친구 집의 감나무와

키 재기 할 정도로 컸었다.

뿌듯했다.

 

4.

감나무는 한창 잘 자라고 있었지만

아부지는 점점 늙어갔다.

 

시골집도 새집이 들어서는 주변 집들에 비해

점점 초라해졌고,

급기야는 쓰러지기 일보직전까지 갔다.

바지런한 막내 자형이 시골집을

새로 지어야겠다고 서둘렀다.

 

읍내 농협에서 장기대출을 받고

넓은 거실에 큰 방 하나, 작은 방 하나

실 평수 26평 정도의 아담한 집을 설계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집터가 워낙 좁아 집을 지으려니

감나무를 베어야만 했다.

 

감나무가 베어지던 날

난 속상하고 너무 아쉬워 울었다.

 

또 남의 집 감나무에서

홍시를 따 먹어야 할

신세가 된 것이 솔직히 서러웠다.

 

5.

지난 추석에 시골에 갔다.

여전히 우리 집에는 감나무가 없다.

아부지도 20년 전에 하늘 가시고 없으시다.

 

하지만 홍시는 여전히 천지삐까리다.

세월이 흐르고 낫살 먹어도

어릴 때 익힌 홍시 따 먹는

실력은 여전했다.

 

어머님께 아들 왔다고 인사하고는

곧바로 집 앞 남의 집 감 밭에 갔다.

익숙한 솜씨로 빨갛게 익은 홍시를 몇 개 땄다.

그리고 게 눈 감추듯 서너 개를 입에 넣었다.

 

얼마 만에 느끼는 달달함인가?

그날 모처럼 홍시로 배 채웠다.

 

찬바람이 분다.

고향땅 감나무에는 까치 밥으로

남겨진 홍시 몇 개 외에는 남겨진

것이 없지 싶다.

 

홍시를 먹으려면 내년 가을까지

기다려야 한다.

 

근데, 오늘 따라 홍시가 또 먹고 싶다.

덩달아 우리 아부지도 눈물겹도록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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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와 홍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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