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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자와 홍보자로서의 기자의 역할
우리는 하루를 살면서 수많은 소식을 접한다. 개인 간 소식을 나누는 사적인 것이 아니라면 대부분 기사를 통해 소식을 접한다. 그것이 방송이든, 신문이든, 포털이든 접하는 모든 소식에는 그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있다. 기자(記者)는 누구인가? “신문, 잡지, 방송 따위에 실을 기사를 취재하여 쓰거나 편집하는 사람”이다. 기자는 기본적으로 쓰는 사람이다. 쓰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 현장에 가야 한다. 그리고 보고 들으며 취재한다. 이후 이것을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기사로 만드는 것이다. 나는 기자이기에 수많은 곳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한다. 내가 운영하는 ‘빛과소금뉴스’ 행사 기사의 특징은 내용이 자세하고, 사진을 많이 올리며 동영상을 첨부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행사를 글로, 사진으로, 동영상으로 잘 남기기 위해서이다. 글만으로는 부족해서 사진을 첨부하고, 이것으로도 부족해서 동영상까지 촬영해 기사에 첨부하는 것이다. 신문 기자든 방송 기자든 와서 행사를 취재하지 않고 보도해 주지 않으면 행사 후에 모든 것이 사라진다. 그래서 자신들의 행사를 취재해 달라고 먼저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광고 등으로 알려진 행사에는 기자들이 취재하러 간다. 그렇다면 기자들을 잘 활용하기를 바란다. 행사를 잘 취재해 홍보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단회적으로 하고 잊혀져도 될만한 수준의 행사라면 취재와 보도는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인터넷 신문을 관리하는 섹션에 가면 각 기사에 대한 조회수가 나온다. 어떤 기사는 수천 명이 보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각 기사를 수백 명이 본다. 그만큼 홍보 효과가 있다. 준비하는 데 노력했고, 또 남들에게도 알릴만한 가치가 있는 행사라면 적극적으로 기자를 잘 활용해 기록하고 홍보하도록 하자. 적은 비용으로 큰 홍보 효과를 보게 된다. 나도 구두 계약을 통해 몇 년간 고정적으로 취재하는 단체들이 몇 군데 있다. 언론의 홍보 효과를 알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기자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행사가 잊힐 수도 있고 알려지고 기록으로 남을 수도 있다. 기자를 잘 활용할 수 있기를 바라고, 기록으로 남길만한 행사를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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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반복되는 목사 정년 갈등…해법은 있는가?
매년 전국장로회연합회 하기부부수련회가 끝날 때 결의문을 채택한다. 올해도 그랬는데 역시나 장로들은 목사들의 정년제 연장을 적극 반대했다. “우리는 항존직 정년 연장을 적극 반대한다. 우리 교단은 헌법에 항존직 정년을 70세로 명시하고 있다. 급변하는 AI시대에 걸맞게 젊고 열정이 있는 목회자가 더욱 필요한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정년 연장을 적극 반대한다.” 이것을 가리켜 혹자는 노(장로)사(목사)갈등이라고 했다. 정년을 앞둔 목사 중에는 연장을 바라는 경우가 많은데, 장로들은 결사반대하고 있다. 지난 109회 총회에서 잠시 정년 연장안이 통과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장로들의 벌떼 같은 항의로 곧 무효가 됐다. 올해도 정년 연장안과 고수안이 헌의될 것이다. 언제까지 이런 소모전이 되풀이되어야 하는가? 목사들은 인디언 기우제처럼 될 때까지 매년 연장안을 올리고 거기에 목을 매달 것인가? 사회 통념상 보면 70세까지 목회하는 것은 많이 하는 것이다. 젊어서 개척한 경우는 30년, 40년 목회할 수도 있다. 하지만 통상 40대 후반에 담임으로 나가는 지금 현실에 부임하면 25년 정도 목회를 한다. 그러면 일반 직장인 보다 많이 했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교단마다 정년이 없거나 긴 경우도 있으니 70 정년제에 해당하는 목사들은 이래저래 심난할 것이다. 목사는 70이 넘어서도 더 목회하고 싶고, 장로들은 안 된다고 하니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가? 매년 총회에서 1시간 넘게 설전을 벌이는데 올해도 재탕이 될 것 같아 취재하는 기자 입장에서 참으로 갑갑한 노릇이다. 해법은 그 어디에 있는가? 뭐든 만들기는 쉬워도 없애기는 어렵다. 과거 정년제를 왜 만들었는지? 그리고 이제 왜 그것을 수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가 있지 않는 한 이 노사갈등은 매년 되풀이될 것으로 보인다. 책을 읽다가 노년 정년 연장에 대한 힌트를 주는 내용이 있어 소개해 본다(『모두가 힘들다고 할 때 기회가 있다』 - 한근태. 글의온도 · 2025년) 헌 것 속에 새로움이 있고, 새로움 속에 헌 것이 있다 우리 사회는 종종 나이를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곤 한다. 은행권에서는 전문성과는 상관없이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임금 피크제를 적용한다. 공평해 보이지만 사실 전혀 공평하지 않은 제도다. 또한 로테이션이라는 명목하에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다. 우수한 인력이 왔다가도 뚜렷한 주특기 없이 평범한 사람이 되어 나온다. 반면 정치권은 전반적으로 노령화되어 있다. 기업이라면 벌써 물러났어야 할 사람들이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한다. 늘 세대교체의 필요성이 제기되지만, 정작 그들 자신이 현역이다 보니 실천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진정한 세대교체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김성근 감독의 주장은 들어볼 만하다. 컵에 물을 계속 부으면 어느 순간부터 원래 담겨 있던 물이 자연스럽게 빠져나온다. 이런 것이 세대교체다. 컵에 있는 물을 전부 비우고 새로 넣는 게 아니다. 세상일은 원래 헌 것 속에 새로움이 있고 새로움 속에 헌 것이 있는 법이다. 나이를 먹어도 능력이 있으면 계속하는 것이고, 젊어도 능력이 없으면 그만둬야 한다. 가득염은 1969년생, 2007년 SK 왔을 때 내일모레 마흔이다. 그런데 4년이나 더 선수생활을 했다. 경력이 많으니 위기에도 떨지 않고 대범하게 자기 볼을 던졌다. 한 마디로 나이 먹었다고 자르고, 젊다고 쓰지는 말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었어도 가득 같은 선수는 기용하고, 젊어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 자르라는 것이다. 컵에 있는 물을 쏟고 새 물을 채우는 대신 계속 새로운 물을 부으라는 것이다. 나이 든 사람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젊기만 한 사람을 채우는 게 세대교체가 아니다. 제 역할을 잘하고 발전에 대한 욕구가 있는 사람은 남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을 내보내고 새로운 피를 수혈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세대교체다(pp. 176-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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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카게 살자!
명도소송 모든 절차가 오늘로 마무리됐다. 내가 담임 사임 후 어머니 집으로 이사 온 후에 한 여자가 지하방에 세 들어왔다. 어머니 말씀에 돌싱인 것 같다고 했다. 이후 3층에 사는 나와 거의 마주칠 일이 없었는데 한동안 집을 비우더니 월세가 밀리기 시작했고 결국 연락이 끊겼다. 오랜 기간 기다리다 결국 집을 비우기 위해 명도소송을 했고 내가 법원에, 집행관실에 들락날락했다. 그러면서 법무사에, 집행관실에, 짐 빼는 일에, 보관비에 등등 수백만 원이 들었고 나도 시간을 뺏겨야 했다. 오늘로써 소송 건 지 약 4개월 만에, 보관창고에 있던 짐을 30만 원 들여 폐기하는 것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수십년 세를 받아 생활하시는 어머니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셨다. 나야 더 문외한이다. 세를 밀리기 시작했을 때 바로 조처해야 했는데 무슨 사정이 있겠지하며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그간 받은 월세를 다 날려버렸다. 그동안 전화를 받지 않았던 여자와 우연히 한번 통화가 됐다. 그 여자는 자기는 다른 사람이라고 했다. 그 여자 목소리를 잘 모르는 나로서는 다그치기도 애매했다. 이후 전화하니 다시는 받지 않았다. 집행관실에서 명도소송 진행 중인 것을 알리기 위해 그 여자의 초본을 뗘 주소를 알아냈지만 그런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민사라 경찰도 개입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튼 이상한 세입자로 인해 손해 본 것이 한두 푼이 아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차카게 살자는 것이다. 남에게 선을 베풀지는 못하더라도 피해는 주지 않고 살고 싶다. ‘남에게 눈물 흘리게 하면 자기는 피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말도 있다.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나부터 차카게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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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홍수...이제는 공해, 자중하시라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교회나 개인이나 온라인, 유튜브의 달인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설교를 찍어 영상으로 보내는 목사들이 많아졌다. 한다리 거쳐 알게 된 목사가 주일 낮이 되면 오전 예배 때 찍은 자신의 설교를 보내오고 있다. 차단해 버렸다. 도대체 목사에게 자신의 설교를 보내는 목사의 심리가 궁금하다. 카톡에 보면 심심치 않게 자신의 설교를 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제발 자중하시라. 타인이 설교를 올려준다면 그나마 봐줄만하지만 본인이 본인의 설교를 올리면 참 없어 보인다. 이제 설교는 홍수를 넘어 공해 수준이 되었다. 잘 하는 설교는 찾아서 듣는다. 맛집은 골짜기에 있어도 사람들이 찾아가는 것과 같다. 제발 자신의 설교를 본인이 올리는 일은 그만 두기를 바란다. 자신의 설교를 들으라고 강요하지 말라. 들어볼만한 설교가 너무나 많은데 도대체 왜 당신의 설교를 들어야 하는가? 막상 들어봐도 별 내용이 없으니 참 담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설교에 자신감을 갖는 설교자가 가장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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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인 내가 카메라 대신 스마트폰 카메라를 쓰는 이유
4년 전 인터넷 신문사를 만들면서 캐논 카메라와 일반렌즈, 망원렌즈, 플레쉬를 구비했다. 많은 돈이 들었지만 제대로 사진을 찍고 싶었다. 약 3년간 무거운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다녔다. 그러나 이제는 스마트폰 카메라를 사용한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스마트폰 카메라의 성능이 많이 좋아졌다. 물론 일반 카메라 만큼의 화질은 나오지 않더라도 봐줄만 하기에 카메라를 내려놨다. 둘째, 기사의 신속성을 위해서다. 일반 카메라로 찍으면 메모리카드를 꺼내 편집하고 전송하는 등 절차가 필요하다. 반면 스마트폰은 찍자 마자 편집해서 좋은 사진을 골라내고 바로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다량의 사진을 실어 기사를 만드는데 편리하다. 셋째, 행사 분위기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다. 스마트폰 카메라는 줌으로 당기면 많이 확대 된다. 굳이 앞에 나가지 않아도 앞 자리에 앉아서 찍을 수 있다. 일반 카메라는 줌을 사용하지 않으면 앞에 나가서 찍어야 한다. 결국 행사를 방해할 수 있다. 실제로 취재하다 보면 앞에 나가 사진 찍는 기자들에게 한소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기자들이 돌아다니면서 행사 분위기를 망치고 앞자리를 차지해 자신들이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래저래 비싼 돈 주고 산 카메라 장비를 두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러니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는다고 괄시하지 마시기를 부탁드린다. 기자는 사진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사 내용으로 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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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협 고문단의 좋은 전통, 대표 축사
중부협의회 정기총회 취재를 가서 순서지를 보니 수많은 순서가 있었다. 다른 협의회나 행사를 가도 순서가 어지러울만큼 많은 것을 보게 된다. 세세하게 취재하는 입장에서 보면 탄식이 나올 정도이다. 그런데 중부협의회 고문단에는 좋은 전통이 있다. 대상자 모두 나와서 함께 인사하고 그 중 한명이 대표자로 격려사나 축사를 한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이런 모습을 보았는데 이번 정기총회에서도 그렇게 했다. 6월 27일 있었던 중부협 정기총회의 고문단은 총 10명으로 하귀호 목사, 박신범 목사, 문세춘 목사, 정진모 목사, 김인기 목사, 박춘근 목사, 오범열 목사, 김정설 목사, 강의창 장로, 노병선 장로이다. 이날은 오범열 목사가 대표로 “강문구 대표회장께서 많이 수고하셨다. 김종원 목사는 많은 것들을 갖추셔서 존경을 받으신다. 중부협을 통해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이루기 바란다”라고 짧지만 필요한 격려사를 했고 이에 참석자들은 박수를 보냈다. 고문단 한명씩 발언했다면 꽤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행사를 취재하러 가다 보면 “말잔치”다. 그래서 누군가는 “말 못하고 죽은 귀신이 들어갔나”하며 비아냥 거리기도 한다. 설교나 격려사나 축사나 짧게 하자. 그것이 참석자들에게 박수 받는 방법이며 다음에라도 초청 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 오늘도 어느 행사를 취재하고 있는데 순서자들이 너무 말이 많아 시간이 초과 되어 뷔폐 음식을 준비한 업체 사람들이 불평하고 있다. 나 또한 배가 고프다. 순서자들의 수많은 말에 시달려야 하는 것이 기자가 감당해야할 직업의 애로사항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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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자와 홍보자로서의 기자의 역할
- 우리는 하루를 살면서 수많은 소식을 접한다. 개인 간 소식을 나누는 사적인 것이 아니라면 대부분 기사를 통해 소식을 접한다. 그것이 방송이든, 신문이든, 포털이든 접하는 모든 소식에는 그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있다. 기자(記者)는 누구인가? “신문, 잡지, 방송 따위에 실을 기사를 취재하여 쓰거나 편집하는 사람”이다. 기자는 기본적으로 쓰는 사람이다. 쓰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 현장에 가야 한다. 그리고 보고 들으며 취재한다. 이후 이것을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기사로 만드는 것이다. 나는 기자이기에 수많은 곳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한다. 내가 운영하는 ‘빛과소금뉴스’ 행사 기사의 특징은 내용이 자세하고, 사진을 많이 올리며 동영상을 첨부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행사를 글로, 사진으로, 동영상으로 잘 남기기 위해서이다. 글만으로는 부족해서 사진을 첨부하고, 이것으로도 부족해서 동영상까지 촬영해 기사에 첨부하는 것이다. 신문 기자든 방송 기자든 와서 행사를 취재하지 않고 보도해 주지 않으면 행사 후에 모든 것이 사라진다. 그래서 자신들의 행사를 취재해 달라고 먼저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광고 등으로 알려진 행사에는 기자들이 취재하러 간다. 그렇다면 기자들을 잘 활용하기를 바란다. 행사를 잘 취재해 홍보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단회적으로 하고 잊혀져도 될만한 수준의 행사라면 취재와 보도는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인터넷 신문을 관리하는 섹션에 가면 각 기사에 대한 조회수가 나온다. 어떤 기사는 수천 명이 보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각 기사를 수백 명이 본다. 그만큼 홍보 효과가 있다. 준비하는 데 노력했고, 또 남들에게도 알릴만한 가치가 있는 행사라면 적극적으로 기자를 잘 활용해 기록하고 홍보하도록 하자. 적은 비용으로 큰 홍보 효과를 보게 된다. 나도 구두 계약을 통해 몇 년간 고정적으로 취재하는 단체들이 몇 군데 있다. 언론의 홍보 효과를 알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기자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행사가 잊힐 수도 있고 알려지고 기록으로 남을 수도 있다. 기자를 잘 활용할 수 있기를 바라고, 기록으로 남길만한 행사를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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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반복되는 목사 정년 갈등…해법은 있는가?
- 매년 전국장로회연합회 하기부부수련회가 끝날 때 결의문을 채택한다. 올해도 그랬는데 역시나 장로들은 목사들의 정년제 연장을 적극 반대했다. “우리는 항존직 정년 연장을 적극 반대한다. 우리 교단은 헌법에 항존직 정년을 70세로 명시하고 있다. 급변하는 AI시대에 걸맞게 젊고 열정이 있는 목회자가 더욱 필요한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정년 연장을 적극 반대한다.” 이것을 가리켜 혹자는 노(장로)사(목사)갈등이라고 했다. 정년을 앞둔 목사 중에는 연장을 바라는 경우가 많은데, 장로들은 결사반대하고 있다. 지난 109회 총회에서 잠시 정년 연장안이 통과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장로들의 벌떼 같은 항의로 곧 무효가 됐다. 올해도 정년 연장안과 고수안이 헌의될 것이다. 언제까지 이런 소모전이 되풀이되어야 하는가? 목사들은 인디언 기우제처럼 될 때까지 매년 연장안을 올리고 거기에 목을 매달 것인가? 사회 통념상 보면 70세까지 목회하는 것은 많이 하는 것이다. 젊어서 개척한 경우는 30년, 40년 목회할 수도 있다. 하지만 통상 40대 후반에 담임으로 나가는 지금 현실에 부임하면 25년 정도 목회를 한다. 그러면 일반 직장인 보다 많이 했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교단마다 정년이 없거나 긴 경우도 있으니 70 정년제에 해당하는 목사들은 이래저래 심난할 것이다. 목사는 70이 넘어서도 더 목회하고 싶고, 장로들은 안 된다고 하니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가? 매년 총회에서 1시간 넘게 설전을 벌이는데 올해도 재탕이 될 것 같아 취재하는 기자 입장에서 참으로 갑갑한 노릇이다. 해법은 그 어디에 있는가? 뭐든 만들기는 쉬워도 없애기는 어렵다. 과거 정년제를 왜 만들었는지? 그리고 이제 왜 그것을 수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가 있지 않는 한 이 노사갈등은 매년 되풀이될 것으로 보인다. 책을 읽다가 노년 정년 연장에 대한 힌트를 주는 내용이 있어 소개해 본다(『모두가 힘들다고 할 때 기회가 있다』 - 한근태. 글의온도 · 2025년) 헌 것 속에 새로움이 있고, 새로움 속에 헌 것이 있다 우리 사회는 종종 나이를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곤 한다. 은행권에서는 전문성과는 상관없이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임금 피크제를 적용한다. 공평해 보이지만 사실 전혀 공평하지 않은 제도다. 또한 로테이션이라는 명목하에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다. 우수한 인력이 왔다가도 뚜렷한 주특기 없이 평범한 사람이 되어 나온다. 반면 정치권은 전반적으로 노령화되어 있다. 기업이라면 벌써 물러났어야 할 사람들이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한다. 늘 세대교체의 필요성이 제기되지만, 정작 그들 자신이 현역이다 보니 실천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진정한 세대교체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김성근 감독의 주장은 들어볼 만하다. 컵에 물을 계속 부으면 어느 순간부터 원래 담겨 있던 물이 자연스럽게 빠져나온다. 이런 것이 세대교체다. 컵에 있는 물을 전부 비우고 새로 넣는 게 아니다. 세상일은 원래 헌 것 속에 새로움이 있고 새로움 속에 헌 것이 있는 법이다. 나이를 먹어도 능력이 있으면 계속하는 것이고, 젊어도 능력이 없으면 그만둬야 한다. 가득염은 1969년생, 2007년 SK 왔을 때 내일모레 마흔이다. 그런데 4년이나 더 선수생활을 했다. 경력이 많으니 위기에도 떨지 않고 대범하게 자기 볼을 던졌다. 한 마디로 나이 먹었다고 자르고, 젊다고 쓰지는 말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었어도 가득 같은 선수는 기용하고, 젊어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 자르라는 것이다. 컵에 있는 물을 쏟고 새 물을 채우는 대신 계속 새로운 물을 부으라는 것이다. 나이 든 사람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젊기만 한 사람을 채우는 게 세대교체가 아니다. 제 역할을 잘하고 발전에 대한 욕구가 있는 사람은 남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을 내보내고 새로운 피를 수혈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세대교체다(pp. 176-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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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카게 살자!
- 명도소송 모든 절차가 오늘로 마무리됐다. 내가 담임 사임 후 어머니 집으로 이사 온 후에 한 여자가 지하방에 세 들어왔다. 어머니 말씀에 돌싱인 것 같다고 했다. 이후 3층에 사는 나와 거의 마주칠 일이 없었는데 한동안 집을 비우더니 월세가 밀리기 시작했고 결국 연락이 끊겼다. 오랜 기간 기다리다 결국 집을 비우기 위해 명도소송을 했고 내가 법원에, 집행관실에 들락날락했다. 그러면서 법무사에, 집행관실에, 짐 빼는 일에, 보관비에 등등 수백만 원이 들었고 나도 시간을 뺏겨야 했다. 오늘로써 소송 건 지 약 4개월 만에, 보관창고에 있던 짐을 30만 원 들여 폐기하는 것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수십년 세를 받아 생활하시는 어머니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셨다. 나야 더 문외한이다. 세를 밀리기 시작했을 때 바로 조처해야 했는데 무슨 사정이 있겠지하며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그간 받은 월세를 다 날려버렸다. 그동안 전화를 받지 않았던 여자와 우연히 한번 통화가 됐다. 그 여자는 자기는 다른 사람이라고 했다. 그 여자 목소리를 잘 모르는 나로서는 다그치기도 애매했다. 이후 전화하니 다시는 받지 않았다. 집행관실에서 명도소송 진행 중인 것을 알리기 위해 그 여자의 초본을 뗘 주소를 알아냈지만 그런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민사라 경찰도 개입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튼 이상한 세입자로 인해 손해 본 것이 한두 푼이 아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차카게 살자는 것이다. 남에게 선을 베풀지는 못하더라도 피해는 주지 않고 살고 싶다. ‘남에게 눈물 흘리게 하면 자기는 피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말도 있다.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나부터 차카게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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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홍수...이제는 공해, 자중하시라
-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교회나 개인이나 온라인, 유튜브의 달인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설교를 찍어 영상으로 보내는 목사들이 많아졌다. 한다리 거쳐 알게 된 목사가 주일 낮이 되면 오전 예배 때 찍은 자신의 설교를 보내오고 있다. 차단해 버렸다. 도대체 목사에게 자신의 설교를 보내는 목사의 심리가 궁금하다. 카톡에 보면 심심치 않게 자신의 설교를 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제발 자중하시라. 타인이 설교를 올려준다면 그나마 봐줄만하지만 본인이 본인의 설교를 올리면 참 없어 보인다. 이제 설교는 홍수를 넘어 공해 수준이 되었다. 잘 하는 설교는 찾아서 듣는다. 맛집은 골짜기에 있어도 사람들이 찾아가는 것과 같다. 제발 자신의 설교를 본인이 올리는 일은 그만 두기를 바란다. 자신의 설교를 들으라고 강요하지 말라. 들어볼만한 설교가 너무나 많은데 도대체 왜 당신의 설교를 들어야 하는가? 막상 들어봐도 별 내용이 없으니 참 담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설교에 자신감을 갖는 설교자가 가장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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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인 내가 카메라 대신 스마트폰 카메라를 쓰는 이유
- 4년 전 인터넷 신문사를 만들면서 캐논 카메라와 일반렌즈, 망원렌즈, 플레쉬를 구비했다. 많은 돈이 들었지만 제대로 사진을 찍고 싶었다. 약 3년간 무거운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다녔다. 그러나 이제는 스마트폰 카메라를 사용한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스마트폰 카메라의 성능이 많이 좋아졌다. 물론 일반 카메라 만큼의 화질은 나오지 않더라도 봐줄만 하기에 카메라를 내려놨다. 둘째, 기사의 신속성을 위해서다. 일반 카메라로 찍으면 메모리카드를 꺼내 편집하고 전송하는 등 절차가 필요하다. 반면 스마트폰은 찍자 마자 편집해서 좋은 사진을 골라내고 바로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다량의 사진을 실어 기사를 만드는데 편리하다. 셋째, 행사 분위기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다. 스마트폰 카메라는 줌으로 당기면 많이 확대 된다. 굳이 앞에 나가지 않아도 앞 자리에 앉아서 찍을 수 있다. 일반 카메라는 줌을 사용하지 않으면 앞에 나가서 찍어야 한다. 결국 행사를 방해할 수 있다. 실제로 취재하다 보면 앞에 나가 사진 찍는 기자들에게 한소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기자들이 돌아다니면서 행사 분위기를 망치고 앞자리를 차지해 자신들이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래저래 비싼 돈 주고 산 카메라 장비를 두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러니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는다고 괄시하지 마시기를 부탁드린다. 기자는 사진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사 내용으로 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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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인 내가 카메라 대신 스마트폰 카메라를 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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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협 고문단의 좋은 전통, 대표 축사
- 중부협의회 정기총회 취재를 가서 순서지를 보니 수많은 순서가 있었다. 다른 협의회나 행사를 가도 순서가 어지러울만큼 많은 것을 보게 된다. 세세하게 취재하는 입장에서 보면 탄식이 나올 정도이다. 그런데 중부협의회 고문단에는 좋은 전통이 있다. 대상자 모두 나와서 함께 인사하고 그 중 한명이 대표자로 격려사나 축사를 한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이런 모습을 보았는데 이번 정기총회에서도 그렇게 했다. 6월 27일 있었던 중부협 정기총회의 고문단은 총 10명으로 하귀호 목사, 박신범 목사, 문세춘 목사, 정진모 목사, 김인기 목사, 박춘근 목사, 오범열 목사, 김정설 목사, 강의창 장로, 노병선 장로이다. 이날은 오범열 목사가 대표로 “강문구 대표회장께서 많이 수고하셨다. 김종원 목사는 많은 것들을 갖추셔서 존경을 받으신다. 중부협을 통해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이루기 바란다”라고 짧지만 필요한 격려사를 했고 이에 참석자들은 박수를 보냈다. 고문단 한명씩 발언했다면 꽤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행사를 취재하러 가다 보면 “말잔치”다. 그래서 누군가는 “말 못하고 죽은 귀신이 들어갔나”하며 비아냥 거리기도 한다. 설교나 격려사나 축사나 짧게 하자. 그것이 참석자들에게 박수 받는 방법이며 다음에라도 초청 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 오늘도 어느 행사를 취재하고 있는데 순서자들이 너무 말이 많아 시간이 초과 되어 뷔폐 음식을 준비한 업체 사람들이 불평하고 있다. 나 또한 배가 고프다. 순서자들의 수많은 말에 시달려야 하는 것이 기자가 감당해야할 직업의 애로사항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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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협 고문단의 좋은 전통, 대표 축사
실시간 칼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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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자와 홍보자로서의 기자의 역할
- 우리는 하루를 살면서 수많은 소식을 접한다. 개인 간 소식을 나누는 사적인 것이 아니라면 대부분 기사를 통해 소식을 접한다. 그것이 방송이든, 신문이든, 포털이든 접하는 모든 소식에는 그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있다. 기자(記者)는 누구인가? “신문, 잡지, 방송 따위에 실을 기사를 취재하여 쓰거나 편집하는 사람”이다. 기자는 기본적으로 쓰는 사람이다. 쓰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 현장에 가야 한다. 그리고 보고 들으며 취재한다. 이후 이것을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기사로 만드는 것이다. 나는 기자이기에 수많은 곳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한다. 내가 운영하는 ‘빛과소금뉴스’ 행사 기사의 특징은 내용이 자세하고, 사진을 많이 올리며 동영상을 첨부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행사를 글로, 사진으로, 동영상으로 잘 남기기 위해서이다. 글만으로는 부족해서 사진을 첨부하고, 이것으로도 부족해서 동영상까지 촬영해 기사에 첨부하는 것이다. 신문 기자든 방송 기자든 와서 행사를 취재하지 않고 보도해 주지 않으면 행사 후에 모든 것이 사라진다. 그래서 자신들의 행사를 취재해 달라고 먼저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광고 등으로 알려진 행사에는 기자들이 취재하러 간다. 그렇다면 기자들을 잘 활용하기를 바란다. 행사를 잘 취재해 홍보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단회적으로 하고 잊혀져도 될만한 수준의 행사라면 취재와 보도는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인터넷 신문을 관리하는 섹션에 가면 각 기사에 대한 조회수가 나온다. 어떤 기사는 수천 명이 보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각 기사를 수백 명이 본다. 그만큼 홍보 효과가 있다. 준비하는 데 노력했고, 또 남들에게도 알릴만한 가치가 있는 행사라면 적극적으로 기자를 잘 활용해 기록하고 홍보하도록 하자. 적은 비용으로 큰 홍보 효과를 보게 된다. 나도 구두 계약을 통해 몇 년간 고정적으로 취재하는 단체들이 몇 군데 있다. 언론의 홍보 효과를 알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기자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행사가 잊힐 수도 있고 알려지고 기록으로 남을 수도 있다. 기자를 잘 활용할 수 있기를 바라고, 기록으로 남길만한 행사를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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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자와 홍보자로서의 기자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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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반복되는 목사 정년 갈등…해법은 있는가?
- 매년 전국장로회연합회 하기부부수련회가 끝날 때 결의문을 채택한다. 올해도 그랬는데 역시나 장로들은 목사들의 정년제 연장을 적극 반대했다. “우리는 항존직 정년 연장을 적극 반대한다. 우리 교단은 헌법에 항존직 정년을 70세로 명시하고 있다. 급변하는 AI시대에 걸맞게 젊고 열정이 있는 목회자가 더욱 필요한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정년 연장을 적극 반대한다.” 이것을 가리켜 혹자는 노(장로)사(목사)갈등이라고 했다. 정년을 앞둔 목사 중에는 연장을 바라는 경우가 많은데, 장로들은 결사반대하고 있다. 지난 109회 총회에서 잠시 정년 연장안이 통과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장로들의 벌떼 같은 항의로 곧 무효가 됐다. 올해도 정년 연장안과 고수안이 헌의될 것이다. 언제까지 이런 소모전이 되풀이되어야 하는가? 목사들은 인디언 기우제처럼 될 때까지 매년 연장안을 올리고 거기에 목을 매달 것인가? 사회 통념상 보면 70세까지 목회하는 것은 많이 하는 것이다. 젊어서 개척한 경우는 30년, 40년 목회할 수도 있다. 하지만 통상 40대 후반에 담임으로 나가는 지금 현실에 부임하면 25년 정도 목회를 한다. 그러면 일반 직장인 보다 많이 했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교단마다 정년이 없거나 긴 경우도 있으니 70 정년제에 해당하는 목사들은 이래저래 심난할 것이다. 목사는 70이 넘어서도 더 목회하고 싶고, 장로들은 안 된다고 하니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가? 매년 총회에서 1시간 넘게 설전을 벌이는데 올해도 재탕이 될 것 같아 취재하는 기자 입장에서 참으로 갑갑한 노릇이다. 해법은 그 어디에 있는가? 뭐든 만들기는 쉬워도 없애기는 어렵다. 과거 정년제를 왜 만들었는지? 그리고 이제 왜 그것을 수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가 있지 않는 한 이 노사갈등은 매년 되풀이될 것으로 보인다. 책을 읽다가 노년 정년 연장에 대한 힌트를 주는 내용이 있어 소개해 본다(『모두가 힘들다고 할 때 기회가 있다』 - 한근태. 글의온도 · 2025년) 헌 것 속에 새로움이 있고, 새로움 속에 헌 것이 있다 우리 사회는 종종 나이를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곤 한다. 은행권에서는 전문성과는 상관없이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임금 피크제를 적용한다. 공평해 보이지만 사실 전혀 공평하지 않은 제도다. 또한 로테이션이라는 명목하에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다. 우수한 인력이 왔다가도 뚜렷한 주특기 없이 평범한 사람이 되어 나온다. 반면 정치권은 전반적으로 노령화되어 있다. 기업이라면 벌써 물러났어야 할 사람들이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한다. 늘 세대교체의 필요성이 제기되지만, 정작 그들 자신이 현역이다 보니 실천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진정한 세대교체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김성근 감독의 주장은 들어볼 만하다. 컵에 물을 계속 부으면 어느 순간부터 원래 담겨 있던 물이 자연스럽게 빠져나온다. 이런 것이 세대교체다. 컵에 있는 물을 전부 비우고 새로 넣는 게 아니다. 세상일은 원래 헌 것 속에 새로움이 있고 새로움 속에 헌 것이 있는 법이다. 나이를 먹어도 능력이 있으면 계속하는 것이고, 젊어도 능력이 없으면 그만둬야 한다. 가득염은 1969년생, 2007년 SK 왔을 때 내일모레 마흔이다. 그런데 4년이나 더 선수생활을 했다. 경력이 많으니 위기에도 떨지 않고 대범하게 자기 볼을 던졌다. 한 마디로 나이 먹었다고 자르고, 젊다고 쓰지는 말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었어도 가득 같은 선수는 기용하고, 젊어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 자르라는 것이다. 컵에 있는 물을 쏟고 새 물을 채우는 대신 계속 새로운 물을 부으라는 것이다. 나이 든 사람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젊기만 한 사람을 채우는 게 세대교체가 아니다. 제 역할을 잘하고 발전에 대한 욕구가 있는 사람은 남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을 내보내고 새로운 피를 수혈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세대교체다(pp. 176-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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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반복되는 목사 정년 갈등…해법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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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카게 살자!
- 명도소송 모든 절차가 오늘로 마무리됐다. 내가 담임 사임 후 어머니 집으로 이사 온 후에 한 여자가 지하방에 세 들어왔다. 어머니 말씀에 돌싱인 것 같다고 했다. 이후 3층에 사는 나와 거의 마주칠 일이 없었는데 한동안 집을 비우더니 월세가 밀리기 시작했고 결국 연락이 끊겼다. 오랜 기간 기다리다 결국 집을 비우기 위해 명도소송을 했고 내가 법원에, 집행관실에 들락날락했다. 그러면서 법무사에, 집행관실에, 짐 빼는 일에, 보관비에 등등 수백만 원이 들었고 나도 시간을 뺏겨야 했다. 오늘로써 소송 건 지 약 4개월 만에, 보관창고에 있던 짐을 30만 원 들여 폐기하는 것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수십년 세를 받아 생활하시는 어머니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셨다. 나야 더 문외한이다. 세를 밀리기 시작했을 때 바로 조처해야 했는데 무슨 사정이 있겠지하며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그간 받은 월세를 다 날려버렸다. 그동안 전화를 받지 않았던 여자와 우연히 한번 통화가 됐다. 그 여자는 자기는 다른 사람이라고 했다. 그 여자 목소리를 잘 모르는 나로서는 다그치기도 애매했다. 이후 전화하니 다시는 받지 않았다. 집행관실에서 명도소송 진행 중인 것을 알리기 위해 그 여자의 초본을 뗘 주소를 알아냈지만 그런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민사라 경찰도 개입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튼 이상한 세입자로 인해 손해 본 것이 한두 푼이 아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차카게 살자는 것이다. 남에게 선을 베풀지는 못하더라도 피해는 주지 않고 살고 싶다. ‘남에게 눈물 흘리게 하면 자기는 피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말도 있다.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나부터 차카게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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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카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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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홍수...이제는 공해, 자중하시라
-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교회나 개인이나 온라인, 유튜브의 달인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설교를 찍어 영상으로 보내는 목사들이 많아졌다. 한다리 거쳐 알게 된 목사가 주일 낮이 되면 오전 예배 때 찍은 자신의 설교를 보내오고 있다. 차단해 버렸다. 도대체 목사에게 자신의 설교를 보내는 목사의 심리가 궁금하다. 카톡에 보면 심심치 않게 자신의 설교를 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제발 자중하시라. 타인이 설교를 올려준다면 그나마 봐줄만하지만 본인이 본인의 설교를 올리면 참 없어 보인다. 이제 설교는 홍수를 넘어 공해 수준이 되었다. 잘 하는 설교는 찾아서 듣는다. 맛집은 골짜기에 있어도 사람들이 찾아가는 것과 같다. 제발 자신의 설교를 본인이 올리는 일은 그만 두기를 바란다. 자신의 설교를 들으라고 강요하지 말라. 들어볼만한 설교가 너무나 많은데 도대체 왜 당신의 설교를 들어야 하는가? 막상 들어봐도 별 내용이 없으니 참 담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설교에 자신감을 갖는 설교자가 가장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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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홍수...이제는 공해, 자중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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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인 내가 카메라 대신 스마트폰 카메라를 쓰는 이유
- 4년 전 인터넷 신문사를 만들면서 캐논 카메라와 일반렌즈, 망원렌즈, 플레쉬를 구비했다. 많은 돈이 들었지만 제대로 사진을 찍고 싶었다. 약 3년간 무거운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다녔다. 그러나 이제는 스마트폰 카메라를 사용한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스마트폰 카메라의 성능이 많이 좋아졌다. 물론 일반 카메라 만큼의 화질은 나오지 않더라도 봐줄만 하기에 카메라를 내려놨다. 둘째, 기사의 신속성을 위해서다. 일반 카메라로 찍으면 메모리카드를 꺼내 편집하고 전송하는 등 절차가 필요하다. 반면 스마트폰은 찍자 마자 편집해서 좋은 사진을 골라내고 바로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다량의 사진을 실어 기사를 만드는데 편리하다. 셋째, 행사 분위기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다. 스마트폰 카메라는 줌으로 당기면 많이 확대 된다. 굳이 앞에 나가지 않아도 앞 자리에 앉아서 찍을 수 있다. 일반 카메라는 줌을 사용하지 않으면 앞에 나가서 찍어야 한다. 결국 행사를 방해할 수 있다. 실제로 취재하다 보면 앞에 나가 사진 찍는 기자들에게 한소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기자들이 돌아다니면서 행사 분위기를 망치고 앞자리를 차지해 자신들이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래저래 비싼 돈 주고 산 카메라 장비를 두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러니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는다고 괄시하지 마시기를 부탁드린다. 기자는 사진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사 내용으로 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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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인 내가 카메라 대신 스마트폰 카메라를 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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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협 고문단의 좋은 전통, 대표 축사
- 중부협의회 정기총회 취재를 가서 순서지를 보니 수많은 순서가 있었다. 다른 협의회나 행사를 가도 순서가 어지러울만큼 많은 것을 보게 된다. 세세하게 취재하는 입장에서 보면 탄식이 나올 정도이다. 그런데 중부협의회 고문단에는 좋은 전통이 있다. 대상자 모두 나와서 함께 인사하고 그 중 한명이 대표자로 격려사나 축사를 한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이런 모습을 보았는데 이번 정기총회에서도 그렇게 했다. 6월 27일 있었던 중부협 정기총회의 고문단은 총 10명으로 하귀호 목사, 박신범 목사, 문세춘 목사, 정진모 목사, 김인기 목사, 박춘근 목사, 오범열 목사, 김정설 목사, 강의창 장로, 노병선 장로이다. 이날은 오범열 목사가 대표로 “강문구 대표회장께서 많이 수고하셨다. 김종원 목사는 많은 것들을 갖추셔서 존경을 받으신다. 중부협을 통해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이루기 바란다”라고 짧지만 필요한 격려사를 했고 이에 참석자들은 박수를 보냈다. 고문단 한명씩 발언했다면 꽤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행사를 취재하러 가다 보면 “말잔치”다. 그래서 누군가는 “말 못하고 죽은 귀신이 들어갔나”하며 비아냥 거리기도 한다. 설교나 격려사나 축사나 짧게 하자. 그것이 참석자들에게 박수 받는 방법이며 다음에라도 초청 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 오늘도 어느 행사를 취재하고 있는데 순서자들이 너무 말이 많아 시간이 초과 되어 뷔폐 음식을 준비한 업체 사람들이 불평하고 있다. 나 또한 배가 고프다. 순서자들의 수많은 말에 시달려야 하는 것이 기자가 감당해야할 직업의 애로사항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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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협 고문단의 좋은 전통, 대표 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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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나쁘게 만드는 악수
- 다양한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악수를 하는데 뒷맛이 씁쓸한 경우가 많다. 어떤 사람들은 악수를 하며 정작 눈은 딴 곳을 쳐다본다. 이런 경우가 제일 많았고 제일 기분이 상했다. 마지못해 악수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악수를 할 때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아야 한다. 그런데 악수는 하면서 얼굴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으면 ‘이게 뭐하자는 건가?’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당해보면 그 기분을 알 것이다. 또 악수를 건성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적당한 힘으로 악수를 하는 것이 정석인데 마지못해 손을 내미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경우들이 있다. 또 적당한 시간 쥐고 있다가 풀어야 하는데 급히 손을 빼는 경우도 있다. 이 또한 ‘이럴려면 왜 악수를 하지?’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중부협의회 정기총회 취재를 갔다가 여러 사람들과 악수를 하며 기분이 상해 돌아오는 길에 악수에 대해 검색해 보니 적절한 글이 있어 실어 본다. 악수 하나가 상대방과의 관계에 좋고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제대로 악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용 글을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올바른 악수 방법과 주의해야 할 점 악수는 원칙적으로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에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악수로 격식과 사람 간의 친근한 정을 함께 담는 매우 중요한 행위로 여겨집니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통하는 국제적인 인사인 악수는 가벼운 인사나 존경, 혹은 관심과 애정, 그리고 화해의 뜻으로 주고받곤 합니다. 악수만으로도 상대방에 대한 첫인상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으며, 악수에도 기준과 예절이 있는데요.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상대방에게 신뢰감과 호감을 주는 제대로 된 악수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악수란? 악수는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이후 맞잡은 손을 위아래로 흔드는 의식적인 행위로, 대개는 만날 때, 헤어질 때, 축하할 때, 합의를 끌어냈을 때 행해집니다. 악수는 선의를 보이기 위한 것이며, 서양의 인사방법으로 손에 무기가 없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상대방에게 우호적인 감정을 나타내기 위한 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삼가야 할 악수의 유형 1. Dead Fish 악수 손을 상대방에게 맡겨놓고 정작 자기는 손에 전혀 힘을 주지 않는 형태입니다. 죽은 사람의 손을 만지는 기분이 드는 악수 형태로, 본인의 감정을 전혀 전달하지 않고 있어 도리어 기분이 나빠지는 악수 유형입니다. 무성의하게 느껴져 악수를 받는 상대방까지 힘이 빠지는 악수 방법입니다. 2. The Glove 악수 Dead Fish 악수의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악수할 때 상대방의 한 손을 자기의 두 손으로 꼭 쥐고 마구 흔드는 악수 유형입니다. 이 악수 방법은 반가움을 감추지 않는 느낌을 주게 되는데요. 상대방이 같은 느낌이 아닐 때는 부담스러울 수 있으며, 서양에서는 아예 피하고 경계하는 악수 방법이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3. 혼합형 악수 상대방의 손을 잡은 채로 허리를 90도 굽혀 인사를 하는 악수 유형입니다. 손을 잡는 것은 서양식이고 허리를 굽히는 것은 한국식 인사로, 귀한 손님을 만나거나 할 때 동서양 인사를 혼합한 악수 방법입니다. 몸을 살짝 숙이는 것은 호감과 존경의 표시일 수 있지만, 너무 많이 숙이면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게 되고, 서양 사람에겐 당혹감을 줄 수 있으므로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4. Bone Crush 악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뼈가 으스러지도록 세게 손을 잡는 악수 방법입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힘을 주어 악수를 하는 것은 당신을 꼭 이기고야 말겠다는 뜻으로 상대방에게 전해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악수할 때 주의해야 할 점 1. 몸을 앞으로 살짝 기울이는 것은 호감의 표시일 수 있지만, 몸을 너무 많이 앞으로 숙이지 않아야 합니다. 2. 2~3초 정도 살짝 손에 힘을 주어 잡고 호의를 표하는데, 손을 잡고 과하게 흔드는 것은 경망스러워 보일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3. 손에 땀이 많은 사람은 손수건을 준비하고, 바지나 상의 등의 옷에 닦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4. 슬픈 일이나 좋지 않은 일에서는 절대로 악수를 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조문 시 상주와 악수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올바른 악수 방법 1. 올바른 악수 자세 먼저, 악수할 때는 똑바로 선 자세로 오른손을 내밀어 자연스럽게 손을 쥐는데, 손바닥이 다 닿도록 잡아야 합니다. 허리는 곧게 펴고 바르고 당당해야 합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상사나 연장자면 10~15도 정도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시선은 상대방의 눈이나 얼굴을 주목하도록 하고, 얼굴에 미소를 띠는 것이 좋습니다. 악수는 왼손잡이라 할지라도 오른손으로 악수해야 하며, 두 손이 맞잡는 것이 아닌 한 손으로 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입니다. 상대방이 나이 차이가 크게 나거나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이면 왼손으로 악수하는 손을 가볍게 받치는 것으로 정중함을 나타냅니다. 2. 악수 예절 악수를 청할 때는 언제나 일어서서 해야 하며, 여성이 남성에게, 연장자가 연소자에게, 기혼자가 미혼자에게,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먼저 청하는 것이 예의입니다. 남성은 악수할 때 장갑을 벗는 것이 예의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악수를 청하며 손을 내밀 때 당황하여 장갑을 벗느라 상대방을 기다리게 하는 것보다 양해를 구한 후 장갑을 낀 채로 신속하게 악수를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여성은 실외에서 악수하는 경우 장갑을 벗을 필요가 없이 낀 채로 해도 무방합니다. 악수할 때는 손을 세게 잡고 오래 흔들거나 너무 느슨하게 잡거나 손끝만 가볍게 쥐는 것, 모두 결례입니다. 적당히 힘을 주어 잡고 두세 번 흔드는 게 가장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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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나쁘게 만드는 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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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유튜브 시대
- 빛과소금뉴스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빛과소금뉴스방송’의 구독자가 1000명을 넘어섰다. 잘 나가는 유튜버에 비하면 미미하지만 이렇게 구독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어느 때 부턴가 신문 기사의 한계를 느끼며 동영상을 첨부하기 시작했다. 기사는 전달하는데 한계가 있다. 30분에서 1시간의 설교나 강연을 다 기록할 수 없어 요약해서 정리한다. 그러다보니 아쉬움이 많아 동영상을 찍기 시작한 것이다. 동영상을 통해 먼저 내가 유익을 받는다. 좋은 설교나 강의를 유튜브에 올리면 언제라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영상을 찍다보니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뜻하지 않게 어느 분의 마지막 동영상이 된 경우가 있었다. 행사에 가서 동영상을 찍었는데 얼마 있다 그분이 베트남으로 선교 가서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다. 참 좋으신 분이었는데 그나마 그 분의 마지막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남긴 것이 다행이었다. 또한 동영상을 보고 댓글로 어느 분과의 추억을 올리는 경우가 있어 그때는 캡쳐해서 당사자에게 보내준다. 유튜브를 통해 오래 전 끊어졌던 인연을 다시 만날 수 있기도 하다. 요즘은 동영상이 대세이다. 나만해도 TV를 잘 안 본다. 유튜브에 올라온 뉴스를 보고, 그 외 다른 많은 동영상을 본다. 그러다보니 너무 많은 시간을 유튜브에 쏟지 않기 위해 신경쓴다. 넋놓고 보면 하루 종일도 볼 수 있다. 어느 날 전세계에서 유튜브에 올라오는 동영상이 하루에 60년치라는 것을 듣고 아찔했다. 전세계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에 그만큼 많은 동영상을 올리고 있다. 그러니 유튜브를 멍하니 보다가는 그것으로 인생이 끝날 수 있다. 그래서 적당히 보다가 다시 책을 든다. 유튜브 시청은 일방적이고 수동적이라 생각할 틈을 별로 주지 않기에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더욱 책을 읽어야 한다. 얼마전 행사장에 가서 동영상을 찍는데 설교자가 안 찍었으면 하기에 중단한 적이 있다. 자신에 대한 근거없는 공격으로 많이 시달렸기에 동영상이 부담스러웠나 보다. 그런데 설교를 들어보니 문제 없이 좋은 내용이었다. 이처럼 필요하면 동영상을 찍지 않거나 편집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자기를 알릴 수 있는 방법도 동영상이다. 이제는 휴대폰에 있는 카메라나 녹음기로 그 누구나 녹화, 녹음할 수 있다. 그러니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한다는 말대로 좋은 말,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실제로 어떤 사람은 동영상을 잘 찍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현장에서 1인 3역을 하다 보니 바쁘다. 동영상 찍으랴, 순서자 다 사진 찍으랴, 설교나 축사 등 발언 받아 적으랴 바쁘다. 늘 앞자리에서 분주하다. 그리고 기사를 빨리 작성해 올리느라 바쁘다. 가능하면 동영상을 첨부해서 기사를 올리나 급하면 먼저 기사를 올리고 동영상은 나중에 첨부하기도 한다. 앞으로도 기사의 한계를 보충하기 위한 동영상 촬영은 계속 될 것이니 많은 관심과 구독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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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학위 탐내다 패가망신
- 윤 전대통령의 처가 숙명여대에서 석사학위가 취소됐다. 표절이 그 원인이다. 자동적으로 국민대 박사학위도 취소되게 된다. 석사가 없으니 박사는 불가능한 것이다. 박사학위 논문도 이미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박사가 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제대로 공부해 학위를 받는 것이다. 둘째, 명예박사가 되는 것이다. 그동안의 공적을 인정 받아 주어지거나 학교 측이 요구하는 돈을 주면 가능하다. 셋째, 논문을 대필 시키는 것이다. 몇 백만원을 주면 논문을 대필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넷째, 표절이다. 표절은 ‘시나 글, 음악 따위를 지을 때, 남의 작품의 일부를 자기 것인 양 몰래 따서 쓰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요즘은 표절을 찾아내는 프로그램이 있어 쉽지 않다. 논문을 입력하면 곧 표절율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가짜가 판치는 세상에 가짜 박사도 많다. 과거 한 때 이것이 사회문제가 되었는데 목사 중에 가짜 박사들이 많았다. 왜 이렇게 박사 학위를 좋아하는가? 한국사회는 배움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문대가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박사라하면 대단한 권위를 지닌 것으로 인정을 해준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은 다 알지 않는가? 세상에 허명(虛名)을 추구하다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많다. 잘 나가던 가수 홍진영이 왜 몰락했는가? 아버지가 교수로 있는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것이 문제가 되어 결국 학위를 반납하고 연예계에서도 퇴출됐다. 과거 불한당(不汗黨)이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이 말의 뜻은 ‘떼를 지어 돌아다니며 재물을 마구 빼앗는 사람들의 무리, 남 괴롭히는 것을 일삼는 파렴치한 사람들의 무리’이다. 원뜻은 땀 흘리지 않고 가지려는 자들을 일컫는 것이다. 박사 학위를 얻기 위해서는 땀을 흘려야 한다. 노력 없이 헛된 욕망을 추구하다 이 무슨 망신인가? 거짓된 방법으로 박사 학위를 탐내다 발각되면 패가망신 당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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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학위 탐내다 패가망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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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후보들이 오지 않은 이유는?
- 110회 총회 예비 후보들은 3개월 남짓 남은 기간 열심히 선거 운동을 하며 이곳저곳 발로 뛰고 있다. 크고 작은 모임에 가서 자신을 알리고 지지를 부탁하고 있다. 그런데 6월 20-21일 진행된 ‘서울서북지역남전도회연합회 부부수련회 및 선교대회’에는 그렇지 않아 취재 간 기자 입장에서 의아해 알아보니 후보 1명만 다녀갔다고 한다. 이에 대해 수련회 참가자에게 물어보니 “아마 수련회에 참석자들 중에 총대들이 적어서 그런 것 같다. 나는 총대인데 오지 않은 후보들은 찍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후보들은 이래저래 피곤하다. 그래도 열심히 발품을 팔아야 한다. 선거에 입소문은 중요하다. 비록 총대는 아닐지라도 그들에게는 입이 있다. 그 입으로 참석한 후보에 대해 좋게 말하고 그렇지 않은 후보들에 대해 나쁜 말을 한다면 후보 입장에서는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메뚜기도 한 철이다. 될지 안 될지는 아무도 모르니 후보로 나온 이상 열심히 발로 뛰어다녀야 한다. 어느 구름에 비 올지 모르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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