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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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분야의 책 읽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모든 책의 저자가 고맙다. 어쭙잖은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많은 고생을 한 경험이 있기에 책 한 권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조금 경험했다. 권위 있는 이상 문학상 대상 수상자가 자신들에 대해 쓴 책이라 흥미롭게 봤다. 속된 말로 그들은 참 드센 ‘팔자’로 작가가 됐다. 몇몇 유명한 작가가 아닌 이상 책으로 밥 벌어 먹고살기는 쉽지 않다. 그러면서도 쓰지 않고는 못 배기니 이 무슨 천형이란 말인가? 그런데 요즘은 사람들이 책을 이전보다 덜 본다. 책이 아니라도 볼거리가 넘쳐나기 때문에 책 읽기라는 지루한 과정을 견디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다가 출판사도, 작가도 사라질까 봐 미리 걱정이 든다. 이 세상에 책이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아야 하나? 이전처럼 책을 사보지 않고 대출해 보니 작가들에게 미안하다. 책을 사도 둘 곳도 없기에 책을 사지 않게 된다. 어쨌든 오늘도 한 땀 한 땀 수 놓듯이 글을 쓰고 있는 전 세계 모든 작가들에게 리스펙! 

 

박민규 작가

글을 쓰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주로 이곳에서 나는 공부를 한다. 문학가니 소설가니, 작가여서가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조차도, 이 터무니없고 말도 안 되는 나 라는 괴물도 실은 알고 보니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턱없이 늦은 공부고, 물론 독학이다. 그래서 최선을 다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태어난 인간이기 때문이며, 아무것도 모르고 글을 쓰기 시작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다 그렇지 뭐, 라고 하기엔 나 라는 인간이 너무나 불쌍하다. 공부는 불쌍한 인간이 스스로에게 바칠 수 있는 유일한 공양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행위나 방법에 대해선 사실 무관심하다. 내게 소설은 ‘그냥’ 쓰면 되는 것이었다. 창작의 고통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그래서 늘 기분이 이상하다. 그냥....쓰면 되는 거잖아, 절로 그런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어떻게 써야 고통스럽지? 그런 고민을 한 적도 있었다. 물론 잠시였다. 마조히즘에 특별한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내 복이지 뭐, 라고 생각해버린 지 오래다. 그래서 ‘그냥’ 쓴다. 대신 꾸준히, 열심히 쓴다. 열심히만 하면 될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건 그야말로 바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오히려 관건은 늘 물리적인 것이었다. 체력과 에너지, 어깨의 통증, 프린터에 남아 있는 잉크의 분량, 몇 장 남지 않은 A4지의 매수, 즉 그런 것들(설마 이런 걸 가지고 고통이라 떠드는 건 아니겠지). 나는 소설을 정신적인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물질' 이다. 유기적이고 다분히 물러 보이긴 해도 분명한 물질이다.

그래서 오히려 수학과 공학을 이해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결국 그것은 자연에 대한 이해다. 글도 자연의 일부다. 읽고 쓰고 읽고 쓰고...... 그런데 잠깐, 이런 얘길 왜 하고 있는 거지? 이게 무슨 꼭지였더라... 문학적 자서전이란 타이틀을 나는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아, 그렇지. 결국 아무소리나 해대는 거였어, 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어쩌다 보니 이런 글을 써야만 하는 입장이 되었지만, 자서전은 무슨 얼어 죽을 자서전인가. 나는 아직 출발도 안 했다. 나는 신인이다. 고작 다섯 권의 책을 냈을 뿐이며, 대부분 실수투성이의 연작이었다. 좋아 좋아, 그리고 갑판에 앉아 이제 막 무거운 닻을 올리려던 참이었다. 항해기란게 있을 수 없다. 사람을 바보로 아나, 심지어 그런 기분마저 드는 게 사실이다. 내 견해로는 그렇다. 적어도 문학적 자서전이란, 책을 백 권 정도는 쓴 인간들이나 논할 수 있는 것이다.

올해로 마흔두 살이 되었다. 지극히 간단한 생활을 하지 않고선 읽고, 쓰는 시간을 얻을래야 얻을 수 없다. 지난 몇 년은, 아무 일 없이 읽고 쓰는 생활을..... 그런 습관을 마련하려 애쓴 시간이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나는 몇 가지 원 칙을 세워야만 했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 볼일을 만들지 않는다. / 화를 내지 않는다. / 겸손해진다(시간 외에도 많은 것을 절약해준다). / 생깐다(경조사들!). / 그래요, 당신이 옳아요 라고 말한다. / 양보한다. / 손해를 본다(정말 많은 것을 절약해준다). 피치 못할 일들이 그래도 가끔 생기지만, 덕분에 내 삶은 지극히 간편해졌다. 그런, 느낌이다. 아무도 아무것도 없는 방에 우두커니 앉아 나는 생각하고, 글을 쓴다. 필요한 것도 없고 궁금한 것도 없다(pp. 154-160).

 

전경린 작가

글을 써서 먹고산다는 것이 사치스럽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등단한 지 10년 가까이 되었을 때부터 글쓰기가 맨손으로 굴을 파고 나가는 듯 힘겨웠다. 그 노동이 쉬 돈으로 바뀌지도 않고 스스로 고갈을 느낄 뿐 아니라 평단에서는 비판적 비평이 나올 때, 홀로 글에 파묻혀 사는 사이 일상적인 생활과는 점점 더 유리되는 고립감이 들고 가족들에게 면목이 없어 존재감이 불안정해질 때, 글쓰기를 그만두고 싶은 심정이 찾아오곤 했다. 하지만 온갖 일을 떠올려보고 상상 해보고 곰곰이 생각해보다가는 결국 글쓰기로 돌아오게 되었다. 다른 어떤 일로도 살 길을 마련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오직 글쓰기로만 삶의 방편을 삼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사치스러운 지향이지만 동시에 생이 내게 허용한 유일한 방편이기도 했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어떤 것은 쓰고 어떤 것은 피해간다. 내 삶에 대해서는 한 자락도 이 글에서 들키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이런 자신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어떤 힘이 나를 이 먼 곳까지 데리고 왔을까, 하는 생각에 잠길 뿐이다. 여기는 내 상상뿐 아니라 나의 가족과 친구들 모두의 상상을 넘어선 곳이고 보통의 사람들이 세 번쯤 죽고 다시 태어나며 운명을 전복해야 이르렀을 곳이며 내가 삶의 깨어진 조각들에 가슴이 찔리며 피 냄새를 맡으며 걸어온 곳이다. 이곳.... 다행히 이곳에서 미처 예기치 못한 큰 화해가 일어나고 있다(pp. 263-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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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작가라는 직업의 숭고한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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