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12-0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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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교총 총회 사태, 대놓고 무시당한 합동 교단
    신문기사에서 사진 한 장은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때로 기사보다 사진 한 장이 더 임팩트를 주는 경우가 많다. 위의 사진이 그렇다(C-Report 이능규 목사 밴드 사진 갈무리). 지난 12월 8일 한교총 제6회 총회에서 대표회장으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대표총회장 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를, 공동대표회장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총회장 권순웅 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 송홍도 목사를 선임하는 등 새로운 집행부를 구성했다. 원래 순번으로는 합동측이 대표회장을 해야할 차례이다. 그런데 이변이 생겨 이영훈 목사가 대표회장이 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뉴스앤조이는 이런 기사를 실었다. 이날 한교총은 이영훈 대표회장이 취임하기 직전까지 대표회장 순번제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예장백석·장종현 총회장) 소속 회원들은 순번상 가군(예장합동·예장통합·예장백석)에 속한 예장백석에서 대표회장을 맡아야 하는데, 나군에 속한 기하성이 된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회의를 주재한 직전 대표회장 류영모 목사(한소망교회)는 "순번제에 대한 해석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예장백석 순번이 돌아올 테니 인내하고 참아 달라. 예장합동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류 목사는 지난 회기부터 1인 대표회장 체제로 들어서면서 사실상 순번제는 의미가 없어졌다며 인선위원회가 임원을 선출하는 구조라고 했다. 예장백석 측 회원들은 밀실 정치로 대표회장직이 기하성으로 넘어갔다면서 계속 항의했다.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 예장합동 총회장을 지낸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가 발언권을 요청하며 나섰다. 소 목사는 "누구보다 장종현 총회장님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백석 교단의 주장도 일리가 있고 타당하지만, 집행부에서 결정했으니 논란을 벌이지 말자. 백석이 인내해 달라"면서 "세계적 지도자인 이영훈 목사님께서 인선위 절차를 따라 대표회장 인선이 됐으니, 우리 모두가 박수하고 환영하고 추대하자"고 말했다. 회원 다수는 동의하는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소 목사 발언 이후 반발하는 분위기는 누그러졌고, 이영훈 목사를 대표회장으로 인준하는 분위기로 전개됐다. 물론 백석측이 자기 차례라고 주장을 하지만 그동안은 합동과 통합이 번갈아가며 했기에 이번에는 합동측이 대표회장이 되야했다. 지난 회기에 공동대표제에서 대표회장제로 바뀌면서 류영모 목사가 1억원을 한교총에 납부했다. 그런데 최근 총회를 앞두고 이영훈 목사가 10억 깜짝 이벤트(?)를 벌였다. 이와 관련해 한교총은 이렇게 보도했다. 한교총, 여의도순복음교회, 상담네트워크 한국교회 트라우마센터 설립 MOU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은 지난 11월 16일 한국교회 회복을 위한 기도회에서 추진을 약속한 <한국교회 트라우마센터> 설립을 위한 협약식(MOU)을 가졌다. 26일 아침 프라자호텔에서 진행된 협약은 한교총과 여의도순복음교회, 한국상담서비스네트워크가 센터 설립과 운영에 공동으로 협력하기로 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날 협약의 내용을 보면, 한국교회는 10.29 참사 등 점증하고 있는 사회적 트라우마 환경에 직면하여, 세상 속의 교회로서 치료와 회복의 복음으로 훈련된 상담 전문가들의 활동을 통해 고난 중에 있는 국민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교회 트라우마센터를 운영하기로 한 안을 담고 있다. 이를 위해 순복음교회는 트라우마센터 운영을 위한 설립 및 운용 기금으로 10억 원을 출연하고 센터운영에 참여하며, 한교총은 트라우마센터의 운영 관리를 법적, 행정적으로 지원하고, 상담네트워크는 한국기독교학회와 협의하여 사업과 활동에 대하여 기획하고 실행하는 임무를 맡도록 하고 있다. 협약식에서 한교총 대표회장 류영모 목사는 “한국교회가 재난과 사고가 상존하는 이 시대에 이 아픔을 보듬어 안기 위해 상설기구를 만들어 활동하도록 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기금을 내주시기로 한 여의도순복음교회와 협력하기로 한 기독교학교회 상담네트워크에 감사한다”고 밝혔으며, 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는 “우리 사회는 사고를 당하면서도 치유와 회복에 대하여 소홀한 감이 없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 우리는 과거의 상처만을 얘기하고 있다면 미래로 나아갈 수 없기에, 상처 입은 사회를 치료하는 교회, 섬김을 실천하는 교회의 역할을 잘 감당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소식을 접했을 때 직감한 대로 이영훈 목사가 대표회장이 됐다. 결국 이영훈 목사는 10억으로 대표회장 자리를 산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갖게한다. 그리고는 관례를 무시하고 이영훈 목사를 대표회장으로 세웠다. 그로인해 한교총 총회 현장에서 이와 관련한 논란이 있었던 것이다. 류영모 목사는 결국 1년간 대표회장으로서 많은 것을 누리고 논란 가운데 퇴장하며 한교총의 위상에 심각한 해를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이때 한교총 총회를 제대로 진행할려고 했다면 합동 측이나 백석 측이 강력하게 정회를 요구했어야했다. 소강석 목사 때도 총무 인선 문제로 정회를 하지 않았던가? 대표회장이 총무보다 못하다는 것인가? 결국 짜여진 각본대로(?) 이영훈 목사가 대표회장이 됐다. 이 배후에 합동측 인사도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기회가 되면 해 총회 행위를 하는 "검은 머리 외국인, 수박같은" 이들에 대해 다룰 것이다. 교단 연합 단체에서 자기 몫을 챙기지 못하는 것은 등신(?)이다. 종로5가의 기독교 관련 건물은 대부분 통합측 건물이다. 합동, 통합이 분열될 때 합동은 명분만 챙겼고, 통합은 실리를 챙기지 않았던가? 그것을 되풀이하는 합동 교단은 아직도 제몫을 챙기지 못하는 ‘들러리인가? 등신인가? 머저리인가?’ 이 기사를 시작할 때 사진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기자들에게 기싸를 써 달라고 보낸 이번 한교총 총회 공식 보도자료에 나온 위의 사진들을 보면 합동 교단 대표인 권순웅 총회장의 모습이 제대로 나오지 못했다. 어떻게 이런 사진을 기사로 써 달라고 보낼 수 있는가? 한교총 직원들의 안이함과 합동 교단에 대한 한교총의 태도가 사진에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교단 목사로서 열불이 난다. 한교총에 많은 돈을 납부하면서도 이런 대접을 받는 합동측은 다시 한번 ‘들러리인가?, 등신인가?, 머저리인가?’ 합동 교단 소속 기자 목사로서 자괴감이 든다.
    • 오피니언
    2022-12-09
  • 학력위조, 합동총회 고질병인가?
    최근 모 신문이 어느 목사의 허위 학력 문제에 대한 기사를 썼다. 이 제보에 의하면, "OO노회 김OO목사는 재판국장 단독후보가 되었고, 모든 서류를 준비했으나 가장 기본적인 '신학교 졸업증명서'를 제출할 수 없었다"라고 했다. 더 나아가 "OO지역 협의회 대표회장을 할 때에는 '신학교 졸업증명서와 목사 안수 증명서'를 제출하도록 되어 있는 회칙을 수정하여 대표회장이 되었다"라고 했다.... 김OO 목사는 서울의 OO교회에서 원로목사로 추대될 예정이다. 제보자는 "신학교의 졸업증명서도 제출할 수 없는 김OO 목사가 교단 교회의 원로가 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면서 이 일의 문제 제기를 끝까지 하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이러한 말이 생기지 않도록 명확하고 투명하게 학력 관리를 해야한다. 이것이 조금이라도 사실이라면 참으로 어이없고 부끄러운 일이다. 몇 년 전부터 담임목사 청빙 광고할 때 “청빙 이후라도 서류 내용이 사실과 다를 경우 청빙이 취소됩니다”란 단서를 붙인다. 교회를 담임하고자하는 목사가 허위 서류를 제출하는 일이 얼마나 많으면 이렇게 광고를 해야하나!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만큼 양심에 화인 맞은 목사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자의 학부 다른 과 동문이 서울의 모 교회에 부임했는데 몇 달 만에 허위 서류가 드러나 쫓겨난 일이 있다. 기가 찰 일이다. 합동 교단에 허위 학력자가 적지 않다는 말이 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지금이라도 허위 학력자는 회개하고 정당하게 과정을 밟아 자격을 갖춰야한다. 허위학력 문제에 대한 기사를 쓴 기자는 이렇게 충고한다. 이런 사례에 해당하는 목사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낙향하여 물고기나 잡고 작은 시골교회의 문지기가 되어 평생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런 말씀도 있으니 어찌하랴 계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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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단
    2022-11-30
  • 「샬롬부흥전도대회 총진군식」을 앞두고
    있을 수 없는 이태원 참사로 인해 대한민국은 슬픔과 애통, 분노와 불안에 가득차 있고 세계는 한국을 우려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11월 5일까지 국가 애도 기간을 정해 관공서는 조기를 게양하게하고 공무원들에게는 근조리본을 달게했다. 이런 침울한 분위기 가운데 총회 107회기 주제인 ‘샬롬부흥’의 구체적 행동을 위한 첫 걸음인 샬롬부흥전도대회 총진군식이 11월 3일 오후 2시 주다산교회에서 있을 예정이다. 아직은 이 행사를 계획대로 진행할지 연기할지에 대한 말은 없다. 이러한 행사가 부정적인 여론을 만들지 않을까 우려는 든다. 그러나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참사로 귀한 생명이 황망히 생을 마감한 현실 앞에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우리는 더 비장한 각오로 이 행사에 임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107회 총회장으로 오랫동안 샬롬부흥을 위해 준비한 권순웅 목사에게는 샬롬부흥전도대회 총진군식을 앞두고 생긴 이태원 참사가 마음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권 총회장은 발빠르고 적절하게 대처했다. 참사가 벌어진 다음 날 총회장 이름으로 교단성명서를 발표했다. 슬픔과 애도의 자리에서 교회는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 않았습니까?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생명을 주는 진리인데 증인의 사명을 감당했느냐는 것입니다. 성경적 세계관으로 이 사회를 건강한 문화로 이끌고 섬겼느냐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피해자인 청년과 청소년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꿈과 비전을 심어주어 다음세대를 주안에서 미래세대로 세웠느냐는 것입니다. 샬롬부흥의 직분자로 우는 자와 함께 울어야 합니다. 함께 슬퍼하며 기도합시다. 이 성명서를 통해 국가를 위해 더 기도하지 못한 것에 대해, 희생자 대부분이 청소년들인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한 것에 대해 자책하고 회개했다. 그리고 이태원 참사 현장 근처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찾아 헌화했다. 이러한 일련의 행보는 우리 교단이 사회의 아픔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처럼 죽음은 부지불식간에 찾아온다. 죽음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 이태원 참사를 통해 확인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나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샬롬을 전해야한다. 그것이 얼마나 절박한 일인가를 이태원 참사는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태원 참사는 우리로 하여금 더 열심히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해야할 필요성을 일깨워주는 "계시적 사건"이다. 그러나 큰 참사가 있은지 며칠만에 하는 행사이기에 요란하지 않고 차분하게, 들뜨지 않고 장엄하게, 황망히 세상을 떠난 자들을 생각하며 속으로 눈물을 삼키면서, 언제 어디서나 복음을 전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총진군식이 되기 위해 더 세심하게 진행되야한다. 그래서 괜한 말거리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며 참석자들과 한국교회와 세상에 분명한 생명의 복음을 드러내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 오피니언
    • 논단
    2022-11-01
  • 자나깨나 말 조심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뉴욕 글로벌펀드 재정공약 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48초 만난 후 한 비속어 발언이 방송에서 공개됐다. 이후 청와대 대변인이 15시간 지나 엉뚱한 소리를 하더니만, 이제는 대통령도 자신이 뭔말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보도한 방송국을 조사하겠다고 협박했다. 이준석 전 대표도 윤 대통령이 사석에서 자신을 비속어로 부른다고 말한적이 있다. 즉 윤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 파문은 평소 그의 언어습관으로 결국 터질게 터진 것이다. 교계 기자로서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목사, 장로들을취재한다. 아직은 말실수를 한 경우를 보지 못했으니 다행이다. 요즘은 기자들이 취재지에서 녹음을 하거나 녹화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말실수는 '빼박'이 된다. 지도자나 교계에서 활동하는 분들은 매사 조심해야하니 참으로 피곤한 일이다. 그래도 공인이고 알려진 인물이라 기자들이 취재해주니 이 모든 것을 감수해야한다. 그래도 총회나 행사장을 취재하며 모든 총대들의 말과 행실 수준이 높은 것을 보았다. 참으로 다행이다. 앞으로도 품격있는 언행으로 교단의 품격이 잘 유지 되기를 바래본다. 약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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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2-09-28
  • 주다산교회 집사님, 감사합니다!
    107회 총회가 열린 지난 9월 21일 수요일 저녁 7시 총회 장소인 주다산교회(권순웅 목사 시무)에서 권순웅·배광식 목사 이취임 감사예배 후 『샬롬부흥 한국교회』 창작 뮤지컬 취재를 마치고 나니 시간이 늦었다. 함께 차로 이동하기로 한 팀은 미리 가버렸다. 숙소까지는 1.8키로미터라 걸어가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고 대중교통도 불편하고 택시도 잘 잡히지 않는다해서 고민하고 있는데 총회 행사에 봉사하는 한 여집사가 선뜻 자신의 차로 데려다 주신다고했다. 덕분에 본 기자와 기독신문 사진 기자는 편히 목적지에 갈 수 있었다. 이름모를 여집사는 차를 운전하면서 권순웅 담임목사님이 얼마나 훌륭한 분인가에 대해 쉬지 않고 말했다. 새가족이 등록하면 권 목사님이 심방을 하고, 또 금요일에 해외를 다녀오시더라도 공항에서 교회로 바로 와 금요기도회에 참석해 기도하시는 등 참으로 훌륭한 목사님이시라는 것이었다. 본인도 등록한지 많이 되지는 않았지만 교회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감사하다고 했다. 그리고는 숙소에 가깝게 데려다 주고 가셨다. 성함을 여쭤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초면인 기자에게 차량 봉사를 해주시고, 권순웅 담임목사와 주다산교회를 자랑하는 것을 보고 권 총회장이 목회를 잘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총회장이든 어떤 임원이나 부장이든 목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목양지이며 교인들이다. 주님은 “내 양을 치라”고 목사를 부르셨다. 그러므로 목회를 잘 하고, 교인들에게 존경 받고 인정 받는 목사가 총회를 섬기고 봉사해야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하지 않았던가! 자기가 다니는 교회와 담임목사를 자랑하는 교인을 갖는 것이 목회의 보람이 아니겠는가? 이름모를 집사님께 받은 사랑과 교회와 담임목사에 대한 애정과 자랑이 뇌리를 떠나지 않아 이렇게 글을 써본다. 행사 후 본당 출입구 맞은 편 정문 쪽에서 봉사하셨던 이름모를 집사님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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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2-09-24
  • 『화제의 신간』 내일 맑음
    < 책 소개 > * 발행 : 씽크스마트 * 제목 : 내일 맑음 * 부제: 좋아해 감사해 행복해 * 발행일 :2022년 5월 8일 * 지은이 : 김민홍 * 시리즈 : 스토리 인 시리즈 ⑫ * 판형 : 130*210 / 쪽수 :300쪽 * 가격 :13,000원 * ISBN :978-89-6529-318-7 03810 '한계 상황 속에서 겪은 고통을 극복한 어느 치유자의 이야기' <30년이 넘는 투병 생활> 한창 젊음을 꽃피울 대학생 시절, 저자는 당뇨의 합병증으로 왼쪽 눈을 실명했다. 또한 만성 신부전증으로 10년 동안 혈액 투석을 받고 아내의 신장을 기증받았다. 병원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고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것도 익숙하다. 아직도 건강이 완전하게 회복하지 못한 저자는 자신이 겪은 질병의 고통을 이야기한다. <목표는 애인 백 명 만들기?> 아내에게 신장을 기증받아 이식 수술을 받고 지방의 어느 치유 센터에서 요양하던 저자는 암과 싸우는 여성을 만났다. 그 여성과 같이 투병 생활을 하면서 허락을 받아 ‘애인’이라고 불렀다. 저자가 말하는 ‘애인’은 서로 사랑하는 애인이 아닌,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이다. 저자는 치유 센터에서 우연히 만난 첫 번째 애인을 시작으로 백 명의 애인들 만나 돌보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고 오늘도 애인들을 만나러 간다. <상처받은 사람이 치유하는 사람으로> 저자는 오랜 투병 생활로 깨달은 것을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눴다. 투병 생활로 인해 암울한 삶을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의 메시지는 오늘을 살아가는 힘이 되었다. 저자는 <내일 맑음>을 통해 어두웠던 과거와 투병 생활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끊임없이 닥쳐오는 한계 상황을 극복하며 다른 사람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는 사람으로 변한 저자의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들여다보자. < 출판사 서평 > '상처받은 치유자' 어두웠던 학창시절, 젊은 나이에 찾아온 실명, 혈액 투석과 신장 이식 수술까지. 파란만장한 삶이 주는 고통에 넘어지면서도 언제나 다시 일어나는 저자의 모습은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내일 맑음>은 상처와 시련에 넘어져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는 저자의 모습을 담고 있다. 자신의 상처를 가감없이 드러내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치유하기 위해 힘쓴다. 이 책이 몸과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희망을 주길 바란다. < 책 속으로 > p24. ‘프롤로그 – 상처가 사명이다’ 중에서 요즘 나는 수많은 암 환자들과 당뇨, 고혈압, 만성 신부전증 같은 만성 질환자들, 그리고 우울증과 공황장애와 같은 마음이 아픈 분들을 계속해서 애인으로 만나고 있다. 세상에는 환자들과 미래의 환자, 이렇게 두 부류만 살고 있는 것 같다. 환자는 갈수록 많아지고 질병의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다. 상상할 수 없는 희귀질환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런 질병의 원인은 다양하다. 하지만 원인을 찾아가다보면 한 가지 이유를 만나게 된다. 다름 아닌 마음이다. 마음이 상하고 아프면서 이것이 질병이라는 이름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p39. ‘이제 진짜 시작이다’ 중에서 치료가 이렇게 드러난 증상만을 제거하는 일이라면, 치유는 그 증상이 일어나게 된 그 원인을 찾아 제거하는 일이다. 그래야 암이나 질병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 방구석에 곰팡이가 생기면 락스로 닦아 곰팡이를 제거하는 것은 치료이다. 겉으로 나타난 증상만 제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치유는 방에 곰팡이가 생긴 원인을 찾아 환기도 시키고, 구들장에 뜨거운 불을 피워 곰팡이 생길 환경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다시는 방에 곰팡이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락스로 백날 열심히 닦아봤자 시간이 지나면 곰팡이는 다시 생길 것이다. p115. ‘웃어야 산다’ 중에서 지금 돌이켜봐도 우리 아들이 손주를 낳아주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까지 살지 못했으리라고 100% 확신한다. 앞을 보지 못하고 장님으로 살았던 2년, 그리고 이틀에 한 번씩 해야 하는 혈액 투석은 고통 그 자체였다. 살고 싶지 않았고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자연히 웃을 일이 없어졌고 삶 속에서 기쁨이 없었다. 그런데 손주가 태어나니 이 세상이 환히 밝아졌다. 내가 살아야 할 이유와 목적이 생긴 것이다. 자연스럽게 웃을 날도 많아지고, 기쁨이 회복되니까 내 건강에도 청신호가 켜지는 것 같았다. p207.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다’ 중에서 이렇게 대학교 2학년 때 당뇨병에 걸리고 심한 당뇨 합병증으로 고생한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7살 먹은 막내의 죽음, 그리고 유일한 목격자로서 동생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 이로 인해 부모님께 너무나 죄송해서 모범생으로 살겠다고 결심하면서 나도 모르게 걸린 모범생 콤플렉스, 그리고 어머니의 자살 시도와 대학 시절 친구 집에서 약 5년 동안 빈대 아닌 빈대생활을 하면서 절실하게 느꼈던 가난의 상처들, 마지막으로 학비를벌려고 시작한 장사 때문에 어머니께서 폭력을 당하고 내 마음속에 용솟음쳤던 죽이고 싶을 만큼의 미움과 분노. 이 모든 것이 스트레스로 다가와서 내 몸을 집어삼켰다. p250. ‘삶의 목표를 찾아야 한다’ 중에서 당뇨병으로 고생한 지 벌써 35년이 지났고, 장님처럼 2년을 살았으며, 10년 동안 혈액 투석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은 신장 이식 수술까지 받았다. 이런 세월을 지내면서 내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아버지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평생 아프셨던 아버지였지만 그래도 치열하게 투병생활을 하셨다. 물론 마지막에 가서는 끝까지 견디지 못하고 몇 번이고 자살을 시도하셨고 그때마다 내가 발견해서 아버지를 살릴 수 있었다. 비록 이렇게 삶의 마지막에 가서는 마음이 약해지셨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투병생활은 대단하셨다. 삶의 의지가 대단하셨다. 질병에서 일어나려는 아버지의 노력은 지금도 내 눈에 선하다. 그러므로 나 또한 그 어떤 질병에서도 쓰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 같다. < 목 차 > 추천의글 애인들의 응원 메시지 프롤로그 : 상처가 사명이다 1. 염증과의 싸움 2. 이제 진짜 시작이다 3. 마음이 먼저다 4. 가장 무서운 것 5. 환자의 주권 찾기 6. 기다려야 한다 7. 눈물이 치료제이다 8. 눈물은 영혼의 해독제이다 9. 울어야 산다 10.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다 11. 웃음의 힘 12. 웃어야 산다 13. 애인 만들기 프로젝트 14. 반드시 길이 있다 15. 치유의 핵심은 동역자이다 16. 사랑받는 세포가 치유된다 17. 스트레스에는 원인이 있다 18. 착하게 살지 말자 19.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다 20. 자존심을 버리자 21. 이왕 할 거라면 즐겁게 하자 22.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른다 23. 삶의 목표를 찾아야 한다 24. 삶의 목표가 있는 자는 쓰러지지 않는다 25. 상처가 사명이다 에필로그 : 덕분입니다 < 저자 > 김민홍 상처 입은 치유자 한창 대학교에 다닐 때 당뇨병에 걸려 합병증으로 왼쪽 눈을 실명하고 만성 신부전증으로 10년 동안 혈액투석을 받았다. 결국 아내의 신장을 기증받아 신장이식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고혈압, 심근 경색 등 다양한 성인병 경험을 통해 전인 치유에 관심이 생겼다. 백 명의 애인 신장 이식 수술을 받고 지방에 있는 치유 센터에서 요양하였다. 여기서 암으로 투병 중인 한 자매를 만났는데 그 자매의 허락을 받아 애인이라고 부르면서 함께 투병생활을 하였다. 이때의 경험으로 환자들을 ‘애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목표는 몸과 마음이 아픈 환자들, 즉 애인 백 명을 돌보고 섬기며 그들과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는 것이다. 멘토링 현재 하는 사역은 멘토링을 통한 치유 사역이다. 환자가 되면 외롭다. 건강과 치유에 대한 정보도 필요하다. 애인들과의 교제와 상담을 통해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진정한 친구가 되고 싶다. 인간은 영·혼·육으로 이루어진 전인적인 존재이므로 몸과 마음과 영성까지도 돌보는 치유 사역을 하고 싶다. 정체성 총신대학교 신학과와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천안에서 새백성교회를 개척하여 현재까지 목회하고 있다. 치유 사역을 위해 건양대학교 보건복지대학원 치유선교학과의 석사 과정을 마치고 박사 과정 중에 있다. 동양의학을 접목하고 싶어 이혈(耳穴) 전문 대학원에서 이혈치유 상담학을 공부하여 이혈 지도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목사로 목회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치유 사역자로 활동하며 치유 세미나, 치유 캠프, 강의, 상담 등의 사역을 통해 열심히 애인들을 만나며 교제하고, 섬기고 있다. < 추천사> <누구나 일독해야 할 책> 추천사를 부탁받고 원고를 몇 편 읽으며 글 속에 빠져들어 갔습니다. 저자는 신장병으로 10년 간 투석을 하고 결국 신장이식 수술을 받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겪은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길어 올린 주옥같은 깨달음의 글들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체험을 치료와 치유라는 단어를 설명하면서 잘 정리해 주고 있습니다. ‘치료란 증상을 완화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반면에 치유는 병의 원인을 밝혀내서 그 원인을 제거함으로 깨끗이 완치시키는 것을 말한다.’ 누구나 환자는 치유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현대의료는 치유에 목적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저자도 책에서 고백했듯이 목사님으로 일생을 살아오며 체험한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그래서 글을 읽으면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줍니다. 저자는 ‘상처가 사명이다’라는 말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사명은 저절로 깨달아지는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깨닫는다는 말이겠지요. 사명적 존재란 내가 누구인가, 그리고 내게 사명을 부여한 분은 누구인가를 묻는 질문입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인생을 바르게 산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책은 누구나 꼭 일독해야 할 책입니다. 건강한 분들에게는 건강을 위하여, 환우들에게는 실제적인 도움을 위하여, 그리고 의학적인 지식도 쉽게 전해 주고 있기 때문에 추천을 드립니다. 끝으로 목사님의 소중한 글의 출판을 축하드리며 독자들이 이 책을 읽을 때 성령께서 함께 하시어 귀한 깨달음과 실제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 건양대학원 치유선교학과 학과장 김찬기 교수 <다큐멘터리이자 육필원고> 이 책은 ‘치유일지’입니다. 의사가 자신이 치유한 환자들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환자 자신이 자신의 질병을 어떻게 치유 받아 왔는가를 기록한, ‘병상일지’ 같은 기록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 글을 대할 때, ‘어, 뭐지? 드라마 아닌가?’라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 글은 다큐멘터리이며, 온몸으로 쓴 ‘육필원고’입니다. 저자의 글을 한 편씩 읽어 갈 때면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도 견디고 살아남을 수가 있었을까?’ 또 다른 한 권의 ‘욥기’를 보는 것 같아 독자로 하여금 가슴이 먹먹해 짐을 느낍니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 있는 이 글의 주인공은 ‘지금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라는 물음을 던지게도 합니다. 이 글은 의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너무나도 특이한 내용입니다만, 신앙의 눈으로 볼 때 비로소 이해하고 납득 할수 있을 내용입니다. 그래서 이 ‘치유일지’를 읽어 나갈 때면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치유의 손길을 느끼게 되며, 나도 이런 하나님을 만나고 싶고 또 이런 사랑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글들이 정말 귀하면서도 감사한 것은 저자 자신이 온갖 고난과 질병 가운데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도리어 어렵고 힘든 역경과 질병 가운데 있는 다른 이들을 가슴에 품고, 위로하며, 격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며 어떤 절망의 상황 가운데서도 소망이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들의 병들고 상처받은 몸과 영·혼이 온전히 치유 받을 수 있음을 고백하게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을 찬양하며, 이 귀한 책을 온 정성을 다해 발간하게 되신 김민홍 목사님께 큰 박수를 보내며, 온 마음으로 추천합니다. - 소망 이비인후과 손영규 원장 <환우들에 대한 깊은 공감과 사랑> 질병으로 김민홍 목사님만큼 오랫동안 극단적인 고생의 체험을 한 사람도 흔치 않을 것이다. 그 과정들을 자세히 관찰해 두었다가 정확히 기억해서 기록한 용기와 냉철함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다양한 병증과 치료 이력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때 동료 인간으로서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간결하고 읽기 쉬운 문체로 재미있게 쓰여 있다. 장황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잘 읽힌다. 한번 손에 잡으면 놓기가 싫을 정도이다. 솔직담백한 글이다. 자신의 체험과 상태를 보통 사람들은 부끄럽게 여길 수 있는 것까지 환우들을 위해 진솔하게 기록했기에 생생하고 실감이 난다. 그 체험들이 예사롭지 않고, 놀랍고, 충격적이기도 하다. 단순히 이론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마음에 와 닿는다. 내가 최근에 읽은 것들 중 가장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인 책이다. 목사님 자신이 30여 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병으로 고생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겠지만 환우들에 대한 깊은 공감과 사랑이 진하게 느껴진다. 질병, 특히 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인상이다. 암의 경험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이처럼 해박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 놀랍다. 단지 풍부할 뿐만 아니라 그 통찰들이 건전하고 우리의 이성과 상식, 그리고 신앙적 원리에 부합되는 것들이라 느껴진다. 그러므로 만성병을 가진 사람들에게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 고려신학대학원 양낙흥 교수 <민홍이의 감사의 노래> 김민홍 목사님은 지난 2년간 함께 공부했던 우리 학회 지도사 과정생들에게 치유일지라는 제목으로 글을 공유하여 충격과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 후 학회밴드에서 파장이 휘몰아치더니 이어 라는 작은 잡지에 몇 편의 글이 실렸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구입하여 텃밭에서 여름내 땀흘려 수확한 것들과 함께 과정생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들깨의 기름을 기쁨의 눈물로, 볶은 참깨는 행복의 미소로 칭하며 잡지에 실린 목사님의 글을 <민홍이의 감사의 노래>라는 이름으로 표현했다. 목사님의 어린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고비마다 숱한 역경과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난은 우리가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그 이상의 것이었다. 이 글은 애간장이 끊어지듯 땅을 치고 몸부림치며 통곡하는 지난 삶을 표현한 것이었지만 목사님에게 그 삶은 역경과 고난이라는 이름으로 상처를 낸 삶이 아니라 먼저는 자신의 아픔을 이겨내고, 세상의 모든 아픈 이들의 위로와 회복과 치유를 위한 감사의 노래인 것이다. 이제 그 노래를 아픈 이들과 함께 부르고 얼싸안고 보듬어 춤을 추며 노래하고 싶은 그 간절한 마음이 책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왔음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기뻐한다. 김민홍 목사님은 죽는 그 순간까지, 아니 죽음 이후에도 이 노래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는 그에게 주어진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명이기 때문이다. - 한중 이혈 건강 요법 학회 이현중 학회장 영혼육의 상처와 아픔을 지닌 이 땅 순례자들의 고백과 회복의 대언, 가족들과 걸어온 인생의 숲길에서 정직한 참회의 소리만큼 우리를 울리는 파동이 있을까? 김민홍 목사님을 통해 전달되는 삶의 시간과 여정을 묻는 절대자의 물음에 숲속 그루터기에서 상처 입은 발을 감싸는 우리의 정직한 고백이 쏟아지고 회복의 길로 인도함을 받는 축복과 은혜가 가득하시길. Where are you? - 경주 숲속유향의원 임부돌 원장 <상대방을 위한 배려나 이해, 사랑으로 느낀다는 것> 치유는 우리 자신의 존재를 전체로 들어가도록 인도한다. 그것은 잃어버렸던 자신의 목소리. 거부하고 감추어 두었던 것들을 다시 발견하고 포용하며 초대한다. 치유는 자신의 내면의 견고함을 발견하게 하는 신뢰의 여정이다. 자신의 삶이 부분이 아닌 전체적 삶으로 초대될 때 잃어버렸던 우리의 목소리는 비로소 즐거운 노래로 발견되고, 잊어버렸던 자신의 존재는 춤과 웃음으로 변하게 된다.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껴안고 상처받은 마음을 부드럽게 감쌀 때 우리는 또 다른 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것은 내 자신의 정직한 본성의 발견이며 만남이고 구원이며 자유이다. 치유를 뜻하는 영어 단어인 ‘healing’은 그리스어 홀론(holon)에서 나왔는데 이는 healing, health, wholeness, holiness, holy 등으로 파생되었다. 따라서 치유는 건강과 전체, 신성, 그리고 구원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질병은 부분으로 나누어지고 분리된 것을 의미한다. 질병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disease’에서 ‘dis-’의 의미는 ‘떨어져 나감’, ‘분리 됨’을 말한다. 그리고 ‘ease’는 ‘편하다’, ‘쉽다’, ‘일상적 삶’을 말한다. 따라서 질병은 삶에서 분리되고 파괴된 것에서 기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반면 구속을 뜻하는 ‘salvation’은 ‘완전함’과 ‘전체’를 말하는데 이는 신과 떨어져 있다가 다시 결합된 것을 의미한다. 이는 치유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지금까지 의학은 질병 치료에 중점을 둔 나머지 환자의 남아 있는 생명과 삶의 문제와 인간관계 회복의 문제, 감정 치유의 문제 등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등한시한 경향이 있었다. 이제 현대의학이 이런 요소까지 의료범주에 넣어 치료를 고려한다면 우리 사회는 한 걸음 더 성숙한 ‘인간다움’으로 진화할 것이다. 고통과 상실을 통해서 인간은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회복할 기회를 얻는다. 고통과 상실은 우리가 인간임을, 그리고 우리의 존재가 진정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고통과 상실은 치유와 깊은 관련이 있다. 치유는 질병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삶의 질과 생활의 기술, 삶의 존재방식의 문제에 더 초점을 두기 때문이다. 고통과 상실의 순간에 그동안 밀봉되었던 마음의 본성을 드러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신마저 소외될 때 자신의 실존만이 깃발처럼 바람에 펄럭인다. 습관화되고 마음이 만들어 낸 거짓된 자아와 집착이 고통과 상실의 바람에 산산이 흩어지는 순간, 자신의 정직한 본성과 만나게 된다. 이제 고통과 상실은 영적 성장의 기회가 된다. 슬픔은 슬픔으로, 아픔은 아픔으로, 눈물은 눈물로 해결할 때 비로소 치유가 안착된다. 슬픔과 아픔, 눈물과 온전히 대면하지 않고 다른 것으로 대체하거나 회피한다면 증환은 다시 왜곡되고 인간의 실존마저 박탈된다. 치유는 공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리고 공감은 타자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한다. 타자의 이해는 자신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한다. 자신의 반성으로부터 여과되지 않은 것은 공감이 아니다. 공감의 보편성과 실천적 태도는 자신의 주체적 반성을 거쳐 시작한다. 반성은 타자에 대한 이해와 자신의 자율적 제한의 절제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공감의 출발은 객관적인 대상이나 사건이 아니라 바로 주체의 반성에 의한 것이다. 이런 자기점검의 성찰은 공감의 기초가 되고 사적 감정이 비로소 보편적 감정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된다. 사랑의 감정은 사적 감정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고 할 때 자기 자신만을 내세우고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상대방을 사랑한다고 할 수 없다. 상대방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상대방의 관계 속에서 제한해야 한다. 무제한적 사랑은 결코 사랑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자기제한’을 부자유나 제한, 억압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위한 배려나 이해, 사랑으로 느낀다는 것이다. 이렇게 상대방을 배려와 이해, 사랑의 대상인 타자로 인정할 때 공감이 일어난다. 이 때 상대방은 나의 중심적 계교에 포섭되거나 수단화되는 것이 아니라 독립된 하나의 인격체인 타자로 존재한다. 이제 타자는 ‘존재 그 자체로’ 인정받을 때 쌍방 간의 관계가 치유 회복되기 시작한다. 김민홍 목사님이 쓴 이 책은 한계 상황 속에서 겪은 환자의 고통을 치유자와 함께 일구어 낸 우리들 삶의 진솔한 내러티브이다. 그래서 울림이 크다. 이 이야기는 환자와 치유사 간에 이루어지는 증환의 이야기이지만, 오늘 이 순간 우리가 맞이하게 될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에 등장한 분들이 앞서 행한 일과 이야기는 앞으로 우리가 겪게 될 경험에 어떻게 대면하고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나침반과 따뜻한 위로가 된다. - 고려대학교 임병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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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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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교총 총회 사태, 대놓고 무시당한 합동 교단
    신문기사에서 사진 한 장은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때로 기사보다 사진 한 장이 더 임팩트를 주는 경우가 많다. 위의 사진이 그렇다(C-Report 이능규 목사 밴드 사진 갈무리). 지난 12월 8일 한교총 제6회 총회에서 대표회장으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대표총회장 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를, 공동대표회장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총회장 권순웅 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 송홍도 목사를 선임하는 등 새로운 집행부를 구성했다. 원래 순번으로는 합동측이 대표회장을 해야할 차례이다. 그런데 이변이 생겨 이영훈 목사가 대표회장이 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뉴스앤조이는 이런 기사를 실었다. 이날 한교총은 이영훈 대표회장이 취임하기 직전까지 대표회장 순번제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예장백석·장종현 총회장) 소속 회원들은 순번상 가군(예장합동·예장통합·예장백석)에 속한 예장백석에서 대표회장을 맡아야 하는데, 나군에 속한 기하성이 된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회의를 주재한 직전 대표회장 류영모 목사(한소망교회)는 "순번제에 대한 해석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예장백석 순번이 돌아올 테니 인내하고 참아 달라. 예장합동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류 목사는 지난 회기부터 1인 대표회장 체제로 들어서면서 사실상 순번제는 의미가 없어졌다며 인선위원회가 임원을 선출하는 구조라고 했다. 예장백석 측 회원들은 밀실 정치로 대표회장직이 기하성으로 넘어갔다면서 계속 항의했다.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 예장합동 총회장을 지낸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가 발언권을 요청하며 나섰다. 소 목사는 "누구보다 장종현 총회장님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백석 교단의 주장도 일리가 있고 타당하지만, 집행부에서 결정했으니 논란을 벌이지 말자. 백석이 인내해 달라"면서 "세계적 지도자인 이영훈 목사님께서 인선위 절차를 따라 대표회장 인선이 됐으니, 우리 모두가 박수하고 환영하고 추대하자"고 말했다. 회원 다수는 동의하는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소 목사 발언 이후 반발하는 분위기는 누그러졌고, 이영훈 목사를 대표회장으로 인준하는 분위기로 전개됐다. 물론 백석측이 자기 차례라고 주장을 하지만 그동안은 합동과 통합이 번갈아가며 했기에 이번에는 합동측이 대표회장이 되야했다. 지난 회기에 공동대표제에서 대표회장제로 바뀌면서 류영모 목사가 1억원을 한교총에 납부했다. 그런데 최근 총회를 앞두고 이영훈 목사가 10억 깜짝 이벤트(?)를 벌였다. 이와 관련해 한교총은 이렇게 보도했다. 한교총, 여의도순복음교회, 상담네트워크 한국교회 트라우마센터 설립 MOU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은 지난 11월 16일 한국교회 회복을 위한 기도회에서 추진을 약속한 <한국교회 트라우마센터> 설립을 위한 협약식(MOU)을 가졌다. 26일 아침 프라자호텔에서 진행된 협약은 한교총과 여의도순복음교회, 한국상담서비스네트워크가 센터 설립과 운영에 공동으로 협력하기로 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날 협약의 내용을 보면, 한국교회는 10.29 참사 등 점증하고 있는 사회적 트라우마 환경에 직면하여, 세상 속의 교회로서 치료와 회복의 복음으로 훈련된 상담 전문가들의 활동을 통해 고난 중에 있는 국민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교회 트라우마센터를 운영하기로 한 안을 담고 있다. 이를 위해 순복음교회는 트라우마센터 운영을 위한 설립 및 운용 기금으로 10억 원을 출연하고 센터운영에 참여하며, 한교총은 트라우마센터의 운영 관리를 법적, 행정적으로 지원하고, 상담네트워크는 한국기독교학회와 협의하여 사업과 활동에 대하여 기획하고 실행하는 임무를 맡도록 하고 있다. 협약식에서 한교총 대표회장 류영모 목사는 “한국교회가 재난과 사고가 상존하는 이 시대에 이 아픔을 보듬어 안기 위해 상설기구를 만들어 활동하도록 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기금을 내주시기로 한 여의도순복음교회와 협력하기로 한 기독교학교회 상담네트워크에 감사한다”고 밝혔으며, 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는 “우리 사회는 사고를 당하면서도 치유와 회복에 대하여 소홀한 감이 없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 우리는 과거의 상처만을 얘기하고 있다면 미래로 나아갈 수 없기에, 상처 입은 사회를 치료하는 교회, 섬김을 실천하는 교회의 역할을 잘 감당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소식을 접했을 때 직감한 대로 이영훈 목사가 대표회장이 됐다. 결국 이영훈 목사는 10억으로 대표회장 자리를 산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갖게한다. 그리고는 관례를 무시하고 이영훈 목사를 대표회장으로 세웠다. 그로인해 한교총 총회 현장에서 이와 관련한 논란이 있었던 것이다. 류영모 목사는 결국 1년간 대표회장으로서 많은 것을 누리고 논란 가운데 퇴장하며 한교총의 위상에 심각한 해를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이때 한교총 총회를 제대로 진행할려고 했다면 합동 측이나 백석 측이 강력하게 정회를 요구했어야했다. 소강석 목사 때도 총무 인선 문제로 정회를 하지 않았던가? 대표회장이 총무보다 못하다는 것인가? 결국 짜여진 각본대로(?) 이영훈 목사가 대표회장이 됐다. 이 배후에 합동측 인사도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기회가 되면 해 총회 행위를 하는 "검은 머리 외국인, 수박같은" 이들에 대해 다룰 것이다. 교단 연합 단체에서 자기 몫을 챙기지 못하는 것은 등신(?)이다. 종로5가의 기독교 관련 건물은 대부분 통합측 건물이다. 합동, 통합이 분열될 때 합동은 명분만 챙겼고, 통합은 실리를 챙기지 않았던가? 그것을 되풀이하는 합동 교단은 아직도 제몫을 챙기지 못하는 ‘들러리인가? 등신인가? 머저리인가?’ 이 기사를 시작할 때 사진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기자들에게 기싸를 써 달라고 보낸 이번 한교총 총회 공식 보도자료에 나온 위의 사진들을 보면 합동 교단 대표인 권순웅 총회장의 모습이 제대로 나오지 못했다. 어떻게 이런 사진을 기사로 써 달라고 보낼 수 있는가? 한교총 직원들의 안이함과 합동 교단에 대한 한교총의 태도가 사진에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교단 목사로서 열불이 난다. 한교총에 많은 돈을 납부하면서도 이런 대접을 받는 합동측은 다시 한번 ‘들러리인가?, 등신인가?, 머저리인가?’ 합동 교단 소속 기자 목사로서 자괴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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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09
  • 【신간】 리더여, 스파크가 되라 - 권순웅 저
    불꽃같은 리더십의 비밀을 알게 하는 책! 스파크가 되라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리더십을 취하라는 것이며 이성과 지성만으로는 하나님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먼저 하나님을 믿고 보아야만 하나님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은 우리의 결론이며, 믿음의 결론으로 시작할 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모든 삶을 이해할 수 있음을 진하게 전해준다. 저자 권순웅 ㆍ 미션스쿨 계성중·고등학교에서 신앙 입문 ㆍ 영남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며 신앙적 방향과 민족과 이웃에 대한 고뇌 중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ㆍ 새술교회(주다산교회 전신) 30평 상가교회 개척 ㆍ 주다산교회 천막교회(화성)를 거쳐 동탄에 교회를 건축 ㆍ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초빙교수로 후학 양성 ㆍ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합동) 서기를 거쳐 제107회기 총회장으로 섬김 ㆍ 주다산교회 30주년 기념으로 『예수의 비행기』 출간 목차 - 저자 서문 - PART 1. 리더십의 기초 : 불꽃 사명의 기초 1장 미네르바의 올빼미와 엘리야의 까마귀 2장 구경꾼 성도와 주인공 성도 3장 두려워하는 마음과 건강한마음 4장 견고한 진과 하나님의 능력 5장 악한 목자와 선한 목자 - PART 2. 스파크로 본 인물연구 1 : 불꽃 사명의 믿음 1장. 예배자, 아벨 2장. 동행자, 에녹 3장. 사명자, 노아 4장. 믿음의 소유자, 아브라함 5장. 웃는 자, 이삭 - PART 3. 스파크로 본 인물연구 2 : 불꽃 사명의 행함 1장. 하나님과 씨름하는 자, 야곱 2장. 꿈꾸는 자, 요셉 3장. 온유한 자, 모세 4장. 용기 있는 자, 여호수아 5장. 충성된 자, 갈렙 페이지: 240쪽 정가: 18,000원 출판사: 익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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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2-12-04
  • 학력위조, 합동총회 고질병인가?
    최근 모 신문이 어느 목사의 허위 학력 문제에 대한 기사를 썼다. 이 제보에 의하면, "OO노회 김OO목사는 재판국장 단독후보가 되었고, 모든 서류를 준비했으나 가장 기본적인 '신학교 졸업증명서'를 제출할 수 없었다"라고 했다. 더 나아가 "OO지역 협의회 대표회장을 할 때에는 '신학교 졸업증명서와 목사 안수 증명서'를 제출하도록 되어 있는 회칙을 수정하여 대표회장이 되었다"라고 했다.... 김OO 목사는 서울의 OO교회에서 원로목사로 추대될 예정이다. 제보자는 "신학교의 졸업증명서도 제출할 수 없는 김OO 목사가 교단 교회의 원로가 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면서 이 일의 문제 제기를 끝까지 하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이러한 말이 생기지 않도록 명확하고 투명하게 학력 관리를 해야한다. 이것이 조금이라도 사실이라면 참으로 어이없고 부끄러운 일이다. 몇 년 전부터 담임목사 청빙 광고할 때 “청빙 이후라도 서류 내용이 사실과 다를 경우 청빙이 취소됩니다”란 단서를 붙인다. 교회를 담임하고자하는 목사가 허위 서류를 제출하는 일이 얼마나 많으면 이렇게 광고를 해야하나!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만큼 양심에 화인 맞은 목사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자의 학부 다른 과 동문이 서울의 모 교회에 부임했는데 몇 달 만에 허위 서류가 드러나 쫓겨난 일이 있다. 기가 찰 일이다. 합동 교단에 허위 학력자가 적지 않다는 말이 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지금이라도 허위 학력자는 회개하고 정당하게 과정을 밟아 자격을 갖춰야한다. 허위학력 문제에 대한 기사를 쓴 기자는 이렇게 충고한다. 이런 사례에 해당하는 목사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낙향하여 물고기나 잡고 작은 시골교회의 문지기가 되어 평생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런 말씀도 있으니 어찌하랴 계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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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단
    2022-11-30
  • 선교사나 신학대학 교수가 담임으로 가는 점프대인가(?)
    과거 한때 선교사 출신들이 국내의 규모있는 교회의 담임으로 부임하는 것이 유행인 적이 있었다. 이것을 보면서 매우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생각했다. 선교사들은 안식년 등을 통해 미국 등에서 교육 받을 기회가 있고, 때로 학위를 취득한다. 또한 선교사로 헌신(?)했다는 인정으로 국내에 있는 목사들보다 더 유리하게 큰 교회에 부임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국내 교회 목회 경험이 없었던 이유로 교회에 갈등을 유발해 지금은 그러한 유행(?)이 지나간 듯하다. 필자가 담임목회를 할 때 몇몇 선교사들을 후원했는데 내 기준은 ‘국내 교회 담임자리를 기웃거리지 않고 선교지에 뼈를 묻을 각오가 되있는 선교사’였다. 오죽했으면 이러한 기준으로 선교사 후원자를 선정했을까? 선교사들은 반성해야한다. 국내에서 개척교회를 하다가 중국에서 몇 년간 선교사역을 했던 최요한 목사(명동교회)는 한달에 한번 선교포럼을 개최하는데 국내에 있는 많은 선교사들이 참석한다. 그때마다 최 목사는 “선교사들은 편한 줄 알라”고 말한다. 또한 "국내 개척교회 목사는 평생 비행기 한번 타보지 못하고 어려운 형편 가운데 목회하는데 선교사는 수시로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다니며 선교비 후원을 받아 자녀들을 영어권 대학에 보내 교육을 시키니 얼마나 대단한 혜택이냐"고 선교사들에게 말한다. 본인이 선교사 출신이기에 선교사들에게 이렇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신학대학, 신대원 교수들도 담임으로 종종 간택(?)된다. 대부분 외국박사학위 소시자이기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다. 권성수 교수와 유상섭 교수가 큰 교회에 부임했다. 권 교수에서 배웠던 필자는 이것 또한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선수를 가르치는 코치가 어떻게 자신이 선수로 뛸 생각을 하는가? 이것은 선수들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선교사나 신학대학 교수가 소명에 의해 작은 교회에 부임하거나 개척을 했다면 이런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화려한 스펙으로 대부분 큰 교회에 부임했다. 선교사든 신학대학 교수든 담임목회 자리 기웃거리지(?) 말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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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2-11-28
  • ‘고딩엄빠2’ 19살에 교회 선생과 임신 사연 방송, 교회가 부끄럽다
    '고딩엄빠2' 김보현이 ‘역대급 대가족’ 일상을 공개한다. 11월 22일 오후 10시 20분 방송하는 MBN ‘어른들은 모르는 고딩엄빠2’(이하 ‘고딩엄빠2’) 25회에서는 김보현이 19세에 엄마가 된 사연을 들려주는 한편 ‘교회 선생님’으로 인연을 맺었던 남편 김은석과의 일상을 공개한다. 이날 스튜디오에 등장한 김보현은 박미선, 하하, 인교진 3MC와 인사를 나눈 뒤, 10년전 ‘나홀로 출산’을 결심했던 이유와 그 후의 이야기를 밝힌다. 김보현은 “경제적으로 힘들었고, 부모님께 상처를 주지 않고 싶어서 혼자 미혼모 센터에 갔다. 출산할 때에도 남편에게 오지 말라 했다”고 털어놓는다. 이에 스페셜 게스트 배윤정과 고은애 심리상담가는 “(남편이) 알았는데 안 온 거냐?”며 놀라워하고, 하하 역시 “어떻게 안 갈 수 있지? 이해가 안 간다”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잠시 후 김보현의 일상이 VCR을 통해 공개된다. 김보현은 아침 일찍 일어난 열 살 아들에게 시리얼을 챙겨준 뒤, 설거지를 하는 등 바삐 움직인다. 그러다 뒤늦게 일어난 남편 김은석이 다가와 아내를 끌어안는데, 이를 지켜본 하하는 돌연 “재연 드라마 속 배우와 너무 (외모가) 다르잖아! 역대급으로 다르다”며 급발진해 스튜디오를 웃음바다로 만든다. 그러다 열 살 아들에 이어 연년생 둘째 딸, 100일 된 막내아들 등 줄줄이 아이들이 등장하고, 충격적(?)인 대가족 규모에 이인철 변호사는 “드라마 같다. 이거 실화 맞냐”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 하하 또한 “러시아 인형이야? 계속 나온다”며 당황스러워 한다. 실제로 김보현네 가족은 나들이를 위해 차에 오르는데, 막내아들을 태울 자리를 마련하기위해 진땀을 흘려 짠내 웃음을 자아낸다. 김보현네 가족의 진풍경에 박미선은 “거의 테트리스야”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사진=MBN) 한 종편에서 하는 고등학생 부모에 대한 프로 예고를 보고 기겁했다. 10여년 전 모 교회 고등학생을 열살 많은 교회 교사가 연애해 임신을 시켰고 뒷감당을 하지 않아 미혼모센터에 가서 출산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가 방송을 타면 과연 일반인들은 교회와 교인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심히 걱정된다. 교회 여학생을 교회 교사가 임신 시켰다. 참으로 충격적인 일이다. 이 일로 인해 교회가 이 교사를 제대로 징계했는지 궁금하다. 과거 교회는 연예당이라고 불렸다. 많은 젊은남녀가 모였고 이 안에서 연애를 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저들이 지금도 교회를 다니는지 궁금하다. 교회를 다닌다면 자신들의 행동이 기독교인으로서 바람직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이러한 프로에 출연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로 인해 얼마나 교회가 손가락질 받을지 걱정이다.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얼마나 더 밟혀야 하나.. [마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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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2-11-21
  • 은퇴를 미리 준비하라
    현재 우리 교단과 대부분의 교단은 목사 정년제를 실시하고 있다. 준비 된 은퇴는 여유가 있으나 그렇지 못한 은퇴는 비참하다. 최근 은퇴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있는 책이 있어 책 내용을 발췌해 본다. 「참목회를 위하여」 저자 림형석 목사는 통합측 총회장을 역임했으며 평촌교회에서 19년을 목회하고 2022년 은퇴한다. 그는 자신의 목회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를 담은 책을 쓰며 마지막 장에는 목사 은퇴 문제를 다룬다. 필자는 금년(2022년) 말로 은퇴한다. 그래서 2021년에 은퇴예우를 결정했다. 감사하게도 당회와 성도들이 후한 결정을 내려주었다. 그러나 그 과정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특히 여러 청년들에게 담임목사나 교회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었다는 것이 마음 아팠다. 사실 취업도 잘하지 못하는 그들에게는 담임목사에게 상당한 은퇴예우를 하는 것이 잘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요즘 한국교회의 분위기가 급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성도들이 은퇴하는 담임목사의 생활대책을 마련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거기에다 지금은 은퇴하며 교회에서 받은 돈에서 상당한 세금을 내야 한다. 그리고 은퇴 후에는 교회 사택에서 나와야 하는데 아파트 값이 너무나 올랐다. 그래서 은퇴 준비를 미리 해놓지 않으면 은퇴하면서 큰 고통을 겪을 수 있고, 교회적으로도 덕이 되지 않게 된다. 어느 교회에서 목사님의 은퇴문제로 공동의회를 했다. 그 목사님은 그 교회에서 30년 넘게 비교적 안정적인 목회를 했다. 그런데 시무장로를 포함한 몇 사람이 냉정한 발언을 했고, 그 목사님은 큰 충격을 받게 되었다. 다행히 원로목사로 추대는 되었으나 그 과정에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은 목사님은 며칠 후 목욕탕에 갔다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그 목사님의 장례식은 참으로 쓸쓸한 장례식이 되고 말았다. 과거에 목사님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목회를 했다. "목사는 생활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말은 교회가 책임져 줄 것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였다. 예전에 목사님들은 그렇게 생각했고, 은퇴 후 생활에 대해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와 환경이 달라졌기에 미리 은퇴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은퇴와 관련한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한다. 첫째, 은퇴 준비는 미리 할수록 좋다. 은퇴 준비 가운데 집 문제가 가장 크고 중요하다. 평생 교회 사택에 살다가 은퇴하면 집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앞으로는 목회를 시작하며 사택에 사는 것보다는 여러 방안을 마련해 자가(自家)로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교회는 담임목사에게 사택을 마련해 주는 것보다는 자가를 얻도록 은행 융자를 대신 받아주어서, 교회와 담임목사가 장기간 적정한 비율로 함께 갚아나가면 어떨까? 사택이 목사 명의로 되어 있으면, 세금이 많이 절약되고 목사의 노후 생활에도 도움이 된다. 둘째, 은퇴에 대해 미리 당회와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다. 대개의 목회자들은 자신의 은퇴 이후의 예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다. 누군가가 대신 말을 시작하면 좋지만 은퇴목사의 예우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다 보니 은퇴 시기는 다가오지만 준비는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목회자와 장로님들이 미리 의논할 필요가 있다. 장로님 중에 재정에 대해 잘 아는 두 세 명이 연구를 해서 당회에 안을 내놓으면 좋을 것이다. 요즘은 총회 은퇴연금을 들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엔 다른 은퇴 연금을 드는 등 각종 보험에 가입하는 교회들도 있다. 어쨌든 미리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평촌교회의 경우 '비전기금'이라는 명목으로 매년 1억 원씩 5년간 적립을 했다. 그리고 한 개의 사택을 정리해 은퇴기금을 마련했다. 셋째, 이제는 목회자가 직접 은퇴에 대해 관심을 갖고 미리 준비해야 한다. 은퇴연금은 적어도 25년 이상이 쌓여야 복리이자의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언젠가 부목사들에게 지금부터 장기적금을 하나씩 들어놓으라고 말한 적이 있다. 매달 붓는 액수는 작아도 좋으니 일단 시작을 하고 나중에 담임목회를 할 때, 여유 있으면 더 부으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대로 실행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는 의문이다. 아직 40대 초반이기에 은퇴가 멀리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잠깐이다. 그리고 은퇴 이후의 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있다. 우리 세대만 해도 목사가 생활에 신경 쓰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달라질 필요가 있다. 목사도 청약저축을 들어놓아야 하고, 노후를 대비해야 한다. 나중에 교회에 누를 끼치지 않으려면 미리 준비해야 한다. 은퇴는 목회의 마무리다. 마무리가 좋으면 다 좋게 여겨진다. 비행기 운행에서는 이륙과 착륙이 가장 중요한데, 은퇴는 착륙과도 같다. 부드럽게 착륙을 해야 한다. 그 동안 성도들과 쌓은 신뢰가 은퇴 예우문제로 무너지게 된다면 목회자에게도, 교회에도 고통이 된다. 목사는 성도들과 아름답게 헤어져야한다. 그들이 그리워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교회도 평생 목회하고 은퇴하는 목사님이 노후에 생활고로 시달리지 않도록 잘 준비해 드리는 것이 좋다. 그것이 '하나님의 종'에 대한 바람직한 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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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2-11-12
  • Well Dying(good life, good death) 10 - 죽음의 의미
    Well Dying(good life, good death) 10 - 죽음의 의미 일반적으로 죽음은 객관적으로 모든 신체적·정신적 기능이 회복될 수 없는 정지를 의미하며, 이것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실일 때 인정된다. 그러나 죽음에는 이러한 객관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각 개인마다 다르게 느끼는 주관적인 의미들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죽음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 중요한 죽음의 의미에 대해서 우리는 김명숙의 다음과 같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삶은 죽음으로 종결되기 때문에 더욱 고귀하며, 생명은 죽음에 의해 사라지기 때문에 더욱 존엄하다. 누구든지 자신의 죽음을 직접 경험할 수는 없지만 아주 가까운 사람의 죽음 등을 통해 죽음과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 죽음에 대한 자각이 깊으면 깊을수록 현실의 삶의 뜻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삶의 목적을 주체적으로 다시 묻게 된다. 따라서 죽음을 염두에 둔 생명의 각성은 오히려 사람들을 세속의 속박에서 벗어나 보다 진실한 마음으로 삶에 다가설 수 있게 만든다. 곧 죽음에 대해 가지는 개인의 인식은 세상을 살아가는 가치관의 문제로 정신적 생활의 질과 삶의 태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죽음의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의미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실과는 다르게 다양한 배경과 맥락을 가진 개인들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다. 이런 개인마다 의미를 달리하여 구성된 죽음에 대해서 이이정은 “한 사람의 생각과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살아가는 방식과 죽음을 준비하고 맞이하는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개인적이면서도 다차원적인 죽음의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의미로서의 죽음 모든 생명체는 반드시 죽는 존재이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러므로 죽음은 우리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의 삶을 일시적인 것으로 만들고 영원한 삶의 가능성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삶에 대한 의미조차도 유한으로 제한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죽음이 인간의 모든 삶의 의미를 제거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에 대해서 스티븐 케이브는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죽음이 없었더라면 역사도 문화도 그리고 인류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그러므로 죽음에 맞서는 이야기들의 관점은 인간의 문명을 이해하기에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의미요법의 창시자 프랭클은 자신이 독일 나치의 수용소에서 겪은 실제 경험을 통해 “의미가 분명한 사람은 히틀러의 수용소 안에서도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다르고, 죽음에 응대하는 모습도 분명히 달랐다고 이야기 한다. 곧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이 비록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의미를 발견한 사람들은 시련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갔다”고 말한다. 이처럼 사람은 인격체이기 때문에 죽음 앞에 섰을 때에라도 인생을 의미를 갖고 목적 속에서 살아왔다면 그 죽음조차도 뛰어 넘을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세계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곧 인생이 유한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면 살아 있는 동안에 죽음 그 너머를 생각하며 더욱 인생을 아름답게 살 것이라는 것이다. 2. 소멸로서의 죽음 많은 사람들이 죽음은 모든 것의 끝, 곧 사람은 한 번 죽으면 모든 것이 소멸된다고 생각한다. 곧 캐이건이 주장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죽음을 모든 의식 혹은 자기다움의 완전한 정지라고 믿으며, 죽음은 무(無)에로의 소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죽음에 대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에 대해서 이이정은 “자신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이성적 논리로 합리성을 확보할 수 있는 실증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가진 가치관이다. 곧 이러한 가치관은 인간에 대해서 오관을 통한 체험에 기초를 둔 육체적 물질적 존재로만 전제하고, 죽음을 생물학적 사실로만 인정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죽음을 육체적 물리적 기능의 정지로만 보기 때문에 인간이 죽은 후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자아의 소멸, 곧 무의 상태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멸로서의 죽음관을 가진 사람들은 죽음의 과정에서 사랑하는 사람, 육체, 재산과 명예, 그리고 지식까지 인생을 살면서 땀 흘려 추구했던 모든 것을 잃고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으로 인식한다. 캐이건은 그의 책 에서 소멸로서의 죽음의 특징에 대해서 정의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여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실제적으로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과 완전히 이별하는 것이다. 죽음은 이승과의 단절이며 이승에서 맺었던 모든 관계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둘째, 죽음은 한 사람이 일생을 통해 쌓은 모든 경험을 상실하게 한다. 한 사람이 학문적 연구나 배움이 아닌 삶을 통해 실제적으로 체득한 모든 지혜가 죽음으로써 완전히 단절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쌓아놓은 명예나 지식까지 포함되는 것이다. 셋째, 죽음으로써 그 동안 쌓은 모든 물질적 재산을 상실하게 된다. 한 사람이 이 땅에 살면서 물질적인 부를 위해서 그토록 열심히 살았던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무로 돌아가는 것이다. 넷째, 모든 꿈과의 단절이다. 사람은 꿈을 먹고 사는 존재이다. 꿈을 상실한 삶은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그런데 죽음은 한 사람이 가졌던 모든 꿈을 다 상실하게 한다.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은 곧 미래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꿈을 꾸거나 그것을 실현할 기회조차도 상실한 것이다. 다섯 째, 모든 시간을 상실하여 원래 인간이 가진 유한한 존재의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출생과 함께 유한한 시간을 부여 받아서 일생을 살아간다. 그런데 죽음이 찾아오는 순간 그 동안 누렸던 모든 시간은 끝이 나는 것이다. 이처럼 죽음을 사람의 오관에만 의지하여 이 땅에서 보이는 것만으로 문제를 삼을 때에 모든 것의 끝이며, 그러므로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3. 변화로서의 죽음 죽음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소멸로서의 죽음관과 완전히 배치되는 것으로서 죽은 후에도 내가 계속 존재할 것이란 믿음을 전제한다. 그러므로 장결철이 말하는 것처럼 “변화로서의 죽음이란 이 세상과는 다른 형태의 존재로의 변화의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다. 곧 변화로서의 죽음관은 인간은 필연적으로 영혼이 있다고 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죽음을 변화의 과정으로 보는 것은 개인이나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역설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로서의 죽음에 대한 인식의 배경에는 사람의 존재를 육체와 영혼의 결합체로 전제하는 것이다. 곧 육체가 죽음과 더불어 소멸하더라도 영혼은 다른 존재로 불멸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견해이다. 2015년 11월 27일자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지구상의 70억 인구 중에서 ‘영혼’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 약 93퍼센트다. 곧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의 고귀한 정신 작용은 물리학 법칙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생물학적인 원리로는 설명되기 어렵다고 믿는다. 이것에 대해서 캐이브는 “미국인들 71%가 영혼이 있다고 믿으며, 영국과 독일의 사람들은 60% 정도의 사람들이 영혼의 존재를 믿는다고 나타난다. 그리고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경우는 거의 100%의 사람들이 영혼의 존재를 믿고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영혼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 변화로의 죽음이라는 견해를 가지며, 곧 변화로서의 죽음관은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이나 지옥, 환생 등 죽은 후에도 내세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라고 말한다. 곧 변화로서의 죽음을 믿는 사람들은 죽음을 다음 단계의 삶을 위해 통과해야 할 관문으로 보기 때문에 죽음은 다음 단계의 삶으로 들어가는 변화의 과정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실제로 병원 사역을 통해 경험하는 것은 죽음을 목전에 둔 말기 환자가 어느 날 의식이 또렷해지면서 가족들을 모두 불러 모으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가족들을 바라보며 이제 자신은 며칠 후면 주님께서 기다리시고 준비해 두신 천국 본향으로 돌아갈 것이니 나의 죽음 후에도 슬퍼하지 말고 가족 간에 더욱 사랑하며 주님을 잘 믿으면 살 것을 유언으로 남기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우리가 직접 경험 할 수 없고 이성적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다. 하지만 분명하게 구주 되신 주님을 만나고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종종 이런 모습을 보이는데, 결국 우리 사람에게는 육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함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죽음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죽음을 통해 새로운 생명의 세계 곧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는 변화의 과정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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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08
  • Well Dying(good life, good death) 9 - 우리나라의 죽음학의 역사
    Well Dying(good life, good death) 9 - 우리나라의 죽음학의 역사 우리나라의 죽음학에 관한 연구나 사회적인 분위기 그리고 학교에서의 죽음학에 대한 교육적 상황은 어떠한가? 그리고 우리나라의 죽음의 인식에 관한 상황은 어떤가? 서구의 여러 나라들과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는 죽음에 대한 관심이 매우 낮고, 학문적으로도 이제 막 초기 단계를 벗어나고 있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죽음이나 죽음학에 대한 관심이나 연구는 대부분 말기 환자들을 돌보기 위한 방편으로 인식되거나 급증하는 자살 문제와 호스피스 돌봄을 중심으로 하는 의학적 연구가 중심에 있다. 그리고 문학과 철학 분야의 연구가 그 다음을 잇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죽음학에 대한 그 동안의 연구 상황에 대해서 김선숙은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 죽음학 연구의 시초는 1978년부터 서강대학교에서 죽음에 대한 강의를 시작하고 <죽음에 대한 심리적 이해>를 출간한 김인자로 이야기 할 수 있다. 그 후 1991년 김옥라에 의해서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가 결성되어 죽음에 관한 근본적 성찰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해 지금까지 죽음에 대한 교육, 세미나와 공청회 등을 실시하고 있다. 이어서 1992년에 서혜경의 노인을 위한 죽음 준비의 건강교육 프로그램인 “죽음을 준비하는 건강교육 프로그램에 관한 제언”이 있었고, 1998년 정경숙의 ”발달수준에 따른 아동의 죽음에 대한 개념과 죽음준비교육에 과한 연구“를 통해서 아동의 죽음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이 재발견되었다.” 1978년이면 그렇게 늦지 않은 시기에 죽음학에 눈을 뜬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연구가 이어졌다면 매우 고무적인 발전이 이 분야에서 있었을 것이며, 아울러 사회 곳곳에 죽음과 관련된 연구나 교육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약 2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죽음학이 더 이상 발전하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를 얼마 남기지 않은 1997년 한림대 철학과의 오진탁교수가 당시부터 급속히 늘어나고 있던 자살의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죽음교육과 생사교육에 근거한 자살예방교육을 전국에서 유일하게 시작함으로 다시 죽음에 대한 담론이 시작되었다. 이어서 2004년에는 ‘생사학연구센터’가 개설되어 죽음학·생사학에 기초한 자살예방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에 대해서 곽혜원은 “이처럼 척박한 땅에서 2005년에야 비로소 철학, 종교학, 심리학, 사회학, 의학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죽음에 대한 학계와 사회의 분위기를 바꾸어 보고자 ‘한국죽음학회’(회장: 최준식교수)가 창립되었다”고 말한다. 정리하면 1978년 이후 우리나라 죽음학 연구에 선구적 역할을 한 최준식교수와 김균진교수 비롯한 죽음학의 선각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그 뒤를 이어 원종순의 “죽음을 앞둔 암환자의 돌봄에 관한 연구”(이화여대대학원, 1994), 정영의 “회고 요법이 노인의 죽음 불안, 자아 통합과 생활 만족에 미치는 효과”(카톨릭대대학원, 1994), 한미정의 “대처방식 내외 통제성 자아존중감에 따른 죽음 불안의 발달적 고찰”(서울여대대학원, 2001), 정경숙의 “아동의 보존개념 발달개념 수준과 죽음에 대한 정서 경험 수준이 죽음의 개념과 발달에 미치는 효과”(계명대학교대학원, 2001), 오미나의 “재가 노인과 시설 노인의 자아 존중감 죽음 불안 및 우울에 관한 연구”(영남대학교대학원, 2003) 등을 통해서 죽음학을 연구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죽음학에 관한 연구는 아직까지 죽음 자체에 대한 깊은 철학적·심리학적·상담학적·신학적 연구가 매우 미흡한 실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 죽음을 터부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래도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노인들을 위한 죽음 준비 교육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연구와 함께 자살이나 호스피스와 같은 사회적 이슈와 관련된 내용이 주 내용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에 근자에 외국의 유명한 학자들의 죽음에 대한 연구를 실은 책이 소개되어 우리 한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는데, 대표적으로 셸리 캐이건(Shelly Kagan) 교수의 <죽음이란 무엇인가?>(2013) 라는 책과 스티븐 케이브(Stephen Cave)의 <불멸에 관하여>(2015)를 들 수 있다. 특히 셸리 캐이건 교수의 책은 그가 예일대학에서 17년간 가장 인기 있는 강의를 했다는 부연 설명에 힘을 입어 출판과 함께 여러 언론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이 책들은 현대 과학 문명에 깊이 뿌리를 내린 유물론과 자연주의에 기초를 둔 신기계론적 철학을 바탕으로 한 책으로서 결국 우리들로 하여금 더욱 죽음을 멀리하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여 진다. 왜냐하면 이런 책들은 죽음에 대한 철학적·신학적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잘못된 죽음 관을 갖도록 하는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죽음학에 관한 연구가 그렇게 깊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과학주의적이며 유물론적 사고에 뿌리를 내린 사조까지 소개됨으로 현대인들은 죽음을 더욱 터부시 하는 문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최근 10연 어간에 우리나라에서는 수많은 죽음과 관련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있으나, 가장 긍정적 의견은 드디어 사람들이 죽음을 좀 더 실제적으로 생각하고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곧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죽음의 문제를 통해서 삶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려는 철학을 가진 의사, 철학자, 종교인, 고인의 마지막 유품을 정리해 주는 직업을 가진 사람 등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자기 분야에서 경험한 죽음의 이야기를 통해서 삶의 질을 높이려는 시도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은 사람들의 삶에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죽음에 대한 바른 직면을 더욱 도외시하게 함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죽음에 대한 준비 없이 오직 이 땅에서의 성공과 육체만을 위해서 본능적으로 삶을 살도록 하는 문화가 넘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도 하루 빨리 죽음과 관련하여 우리 삶의 목적과 의미를 연구하는 바른 죽음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곧 죽음학에 대한 다학제적이며, 성경적인 연구가 많이 이루어짐으로 인간의 삶과 죽음을 생명에 대한 사랑 안에서 새롭게 조명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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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05
  • 「샬롬부흥전도대회 총진군식」을 앞두고
    있을 수 없는 이태원 참사로 인해 대한민국은 슬픔과 애통, 분노와 불안에 가득차 있고 세계는 한국을 우려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11월 5일까지 국가 애도 기간을 정해 관공서는 조기를 게양하게하고 공무원들에게는 근조리본을 달게했다. 이런 침울한 분위기 가운데 총회 107회기 주제인 ‘샬롬부흥’의 구체적 행동을 위한 첫 걸음인 샬롬부흥전도대회 총진군식이 11월 3일 오후 2시 주다산교회에서 있을 예정이다. 아직은 이 행사를 계획대로 진행할지 연기할지에 대한 말은 없다. 이러한 행사가 부정적인 여론을 만들지 않을까 우려는 든다. 그러나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참사로 귀한 생명이 황망히 생을 마감한 현실 앞에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우리는 더 비장한 각오로 이 행사에 임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107회 총회장으로 오랫동안 샬롬부흥을 위해 준비한 권순웅 목사에게는 샬롬부흥전도대회 총진군식을 앞두고 생긴 이태원 참사가 마음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권 총회장은 발빠르고 적절하게 대처했다. 참사가 벌어진 다음 날 총회장 이름으로 교단성명서를 발표했다. 슬픔과 애도의 자리에서 교회는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 않았습니까?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생명을 주는 진리인데 증인의 사명을 감당했느냐는 것입니다. 성경적 세계관으로 이 사회를 건강한 문화로 이끌고 섬겼느냐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피해자인 청년과 청소년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꿈과 비전을 심어주어 다음세대를 주안에서 미래세대로 세웠느냐는 것입니다. 샬롬부흥의 직분자로 우는 자와 함께 울어야 합니다. 함께 슬퍼하며 기도합시다. 이 성명서를 통해 국가를 위해 더 기도하지 못한 것에 대해, 희생자 대부분이 청소년들인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한 것에 대해 자책하고 회개했다. 그리고 이태원 참사 현장 근처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찾아 헌화했다. 이러한 일련의 행보는 우리 교단이 사회의 아픔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처럼 죽음은 부지불식간에 찾아온다. 죽음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 이태원 참사를 통해 확인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나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샬롬을 전해야한다. 그것이 얼마나 절박한 일인가를 이태원 참사는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태원 참사는 우리로 하여금 더 열심히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해야할 필요성을 일깨워주는 "계시적 사건"이다. 그러나 큰 참사가 있은지 며칠만에 하는 행사이기에 요란하지 않고 차분하게, 들뜨지 않고 장엄하게, 황망히 세상을 떠난 자들을 생각하며 속으로 눈물을 삼키면서, 언제 어디서나 복음을 전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총진군식이 되기 위해 더 세심하게 진행되야한다. 그래서 괜한 말거리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며 참석자들과 한국교회와 세상에 분명한 생명의 복음을 드러내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 오피니언
    • 논단
    2022-11-01
  • Well Dying(good life, good death) 8 -- 죽음학의 역사
    Well Dying(good life, good death) 8 -- 죽음학의 역사 ( 언어적으로 죽음학을 의미하는 ‘thanatology’의 접두어 ‘thanato-’는 고대 그리스도의 죽음을 의인화한 신 ‘thanatos’에서 유래했다. 이러한 죽음학은 1908년 노벨생물 화학상 공동 수상자 중 한 사람인 러시아의 생물학자 메치니코프가 1903년 출간한 <인간의 본성>에 ‘죽음학’이라는 용어를 쓰면서 시작되었다.) 누가복음 7장 31-32절에서 예수님께서 당시 사람들을 지적하신 말씀이 오늘 우리시대를 향한 말씀으로 다가온다. “또 이르시되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까 무엇과 같은가,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질병이나 고통 그리고 죽음과에 관한 문제가 감추고 멀리한다고 해서 우리 인간의 삶에서 완전히 떠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죽음의 문제는 우리의 인간의 삶과 결코 분리 될 수 없는 실제적인 문제이다. 그러므로 죽음은 우리의 삶에서 늘 인식 되고, 또한 교육을 통해 준비되어야 하며, 아울러 자신의 죽음을 준비해야 할 중요한 삶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할 때에 삶을 더욱 의미 있고 아름답게 살 수 있게 될 것이며, 무엇보다도 영적으로 인간의 유한함과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갖고 영원과 부활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 더욱 연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죽음학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줄 것이다. 이 항에서는 죽음학의 역사를 통해서 현재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1. 외국의 죽음학 역사 미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는 우리나라보다 죽음에 관한 연구가 일찍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우리와 가까운 일본이나 대만도 우리나라보다 죽음학이 훨씬 발전해 있는 상황이다. 이 점에 대해서 대만 학자인 부위훈(傅偉勳, 푸웨이쉰)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최근 30년간 미국과 유럽 등에서 죽음학에 과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데, 이것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과학 기술의 급속한 발전, 의학 지식의 발달과 보급, 의약 설비의 완비, 경제생활의 점진적 개선, 생활의 질의 끊임없는 상승과 요구, 대중 매체의 보편화, 오락산업의 발달, 사회 고령화 현상 등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현재 우리가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는 미국을 비롯한 독일, 일본, 대만 등의 죽음과 관련된 학문적 연구의 역사에 대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의 죽음을 다루는 죽음학(thanatology)의 태동은 대체적으로 1956년 미국의 헤르만 파이펠(H. Feifel)이 새로운 관점에서 죽음을 보는 운동과 다학문적 접근으로 죽음을 연구할 것을 제창한 <죽음의 의미, The Meaning of Death>를 통해서 죽음 현상을 탐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부터로 본다. 이에 대해 임기운 등은 “파이펠은 죽음 연구와 교육을 정당화 한 최초의 책을 저술한 학자로 인정되는데, 그 이유는 죽음과 그 과정의 연구가 과학적 탐구, 특히 행동과학자들에게 타당하고 필요한 것임을 최초로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그 후 1963년 로버트 풀턴(R. Fulton) 교수가 미네소타 대학에서 죽음을 주제로 한 최초의 정규 강좌를 개설하면서 미국에서 죽음학이 발전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시작된 미국의 죽음학의 이어지는 발전에 대해서 곽혜원은 자신의 책 <존엄한 삶, 존엄한 죽음>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하여 소개하고 있다. "1966년에는 죽음학의 실천적 과제를 다루는 죽음 교육 분야의 최초 뉴스레터라고 할 수 있는 <오메가>가 창간됨으로써 죽음 교육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1969년에는 미국 전역의 많은 대학교가 죽음교육 과정을 개설하는 한편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übler-Ross)가 <죽음과 죽어감>이라는 저서를 출간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이 죽음학에 관심을 두는 중요한 계기가 만들어졌다. 특히 그녀는 죽음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크게 이끌어냄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죽음 인식 운동의 확산을 가져왔다. 이러한 성과에 힘입어 1970년대에는 미국의 20여개 대학에서 죽음 관련 교과과정이나 학과가 개설되었고, 죽음교육이 학교 강의실 안팎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둘째, 독일은 몇 백 년에 걸친 풍부한 죽음교육의 전통을 지닌 국가로써 학교 정규교육 이외에도 대부분의 학교에서 종교 수업을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로 나누어 실시하고 있으며, ‘죽음에 대한 준비교육’은 이 수업 중에 다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독일인으로써 일본 죽음학의 기틀을 세운 데켄(Deeken.)은 “독일에서는 1980년대 이후 죽음 교육 프로그램이 학교 교과과정에 정식으로 포함되었으며, 모든 학교에서 실시되는 종교 수업과 함께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4학년까지 13년 동안 학생들의 성장 과정에 맞추어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각적으로 다루는 기회와 시간을 충분히 마련하고 있다. 그리고 교회의 예배를 비롯한 여러 행사와 교육을 통해 죽음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신자라면 누구나 교회 공동체를 통해 죽음을 맞이할 준비에 대해 배우면서 사후의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을 갖는다”고 소개한다. 셋째,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죽음학과 관련해 상당히 앞서 가고 있다. 사실 일본은 죽음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매우 강해서 죽음학·생사학 연구의 활성화가 어려울 수 있었다. 그런데 한 사람의 선각자, 곧 독일에서 귀화한 세계적 죽음학자로서 일본 죽음학의 대부라고 하는 알폰스 데켄 교수에 의해 죽음학이 괄목할 만큼 발전하게 되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최준식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데켄 교수는 1975년 일본 조치 대학에 ‘죽음의 철학’이라는 강좌를 개설한 후 1982년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세미나’와 1983년에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모임’을 결성하였다. 이를 통해 그는 일본인들에게 죽음학을 소개하고 죽음교육이 일본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또한 우리 정부의 장학금을 통해 일본에 가서 죽음학 연수를 한 김옥라는 일본의 죽음학 상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본에서는 1999년 웰다잉 교육을 보급하기 위한 ‘죽음교육연구회’가 결성되어 활발한 활동을 벌리고 있으며, 2004년부터 학교 교육에 죽음교육이 포함되었다. 이처럼 일본에서는 죽음교육이 전국의 학교 기관과 다양한 평생교육 시설에서 30년 넘게 시행되고 있다.” 넷째, 대만은 우리와 같은 체면문화와 유교가 중심이 된 국가이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담론과 연구를 터부시하였기 때문에 죽음학에 대한 연구가 1990년대까지 매우 미진한 상태에 있었다. 그런 대만에서 죽음학에 대한 결정적 변화의 계기가 된 것은 1999년 약 1,500명의 사상자를 낸 대지진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임기운 등이 연구한 것처럼 “대만은 1999년 대지진 후에 정부가 그동안 학자들의 연구와 각종 세미나 정도에 머물던 죽음에 대한 교육을 중고등학교까지 확대하여 실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만에서 죽음학이 태동된 시기는 1999년 대지진보다 앞선 1993년으로 대만 학자들을 주장한다. 왜냐하면 미국 템플대학교 종교과 교수인 푸웨이쉰(한국식, 부위훈) 교수가 자신의 10년간의 죽음 관련 교육 내용을 바탕으로 <생명의 존엄과 사망의 존엄>이란 출간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전병술은 “부위훈은 동양 전통 철학(특히 중국 전통의 생명학)의 기초 위에 서양의 죽음학을 결합해 삶과 죽음을 포괄하는 생사학을 제창하였며, 이 책의 출간은 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으며 죽음학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되었다”고 말한다. 다섯째, 미국이나 독일 이외에 근대적 호스피스가 탄생한 영국은 물론 캐나다, 프랑스, 스웨덴, 오스트레일리아 등의 국가에서도 죽음학에 대한 학문적 접근과 그 실천인 죽음교육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아울러 오늘날 서구 사회의 많은 대학이 죽음학을 필수과목으로 책정하고 있으며, 죽음에 관한 많은 연구 문헌이 발행되고 있다. 최근 서구 신학계도 이러한 일반 사회의 흐름에 부응하여 비교적 적극적으로 죽음에 관한 연구와 논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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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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