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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5】 책 앞에서 겸손함을 배우다
일본의 대표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가 던지는 책 이야기. 종이책과 전자책, 도서관과 사서, 학교 교육, 출판계, 독립서점 등 책을 둘러싼 이제껏 접하지 못했던 이야깃거리를 총망라한다. 깊은 성찰을 토대로 한 선생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즐거운 화두가 된다-교보문고 책과 도서관에 대한 저자의 견해가 흥미로웠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당연한 것이지만 말이다. 책과 도서관은 우리의 무지를 깨닫게 하고 열린 창을 내어주기에 늘 가까이 해야 한다. 무지를 가시화하는 장치 도서관은 그곳을 찾은 사람들의 '무지'를 가시화하는 장치입니다. 다시 말해 도서관은 내가 얼마나 세상을 모르는지를 가르쳐 주는 장소이지요. 거기서는 숙연하게 자세를 바르게 하고 '1초를 아까워하며 배워야 한다'는 결의를 다지게 됩니다. 도서관의 교육적 의의는 그것이 전 부일 겁니다. 만약 도서관 서가가 '자신이 이미 읽은 책과 앞으로 읽어야 할 책'으로 채워져 있다면 사람은 어떤 느낌을 받을까요. 자신이 세상 대부분의 일을 대충은 안다고 굳게 믿는 인간만으로 구성된 사회가 얼마나 답답하고 정체 되고 바람이 안 통하는 곳일지, 상상력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짐작할 겁니다. 도서관에 "모두가 읽고 싶어하는 베스트셀러만 비치하고 읽히지 않는 책은 버려라. 그렇게 하면 도서관 방문자 수가 늘어날 것이다"라고 말하는 이는 지성과 인연이 없는 인간입니다(p. 31). 잠시 있다 보면 숨쉬기가 힘들어져서 왠지 빨리 나오고 싶어지는 집이 있는데요. 저의 경우는 책이 없는 집이 그렇습니다. 아무리 집이 깨끗해도 오래 있으면 숨쉬기가 힘들어집니다. 산소 결핍 상태가 되는 거죠. 책이 없으면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책이란 '창'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세계로 난 창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 세계와는 다른 세계와 통하는 창입니다. 그래서 책이 있으면 한숨 돌릴 수 있습니다. 밖에서 시원한 공기가 불어오는 느낌이 들죠. 제 친구 집에 가면 대체로 그런데, 화장실에 책이 있습니다. 우리 집에도 화장실에 책이 굉장히 많이 쌓여 있 습니다. 화장실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에 책이 몇 권쯤 놓여 있는 것만으로 어딘가 널찍한 곳으로 나가는 느낌이(p. 59)듭니다. 넓은 곳에서 배설 작업을 한다는 느낌이 드는 거죠. 그러므로 화장실에 읽고 싶은 책이 없을 때는 화장실에 가기 전에 책을 찾습니다. 집 책장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앗, 앗...." 하면서 "음·····. 이것도 아니고 저 것도 아니고" 하며 책을 고릅니다. "오, 이거다!" 하고 정하면 그대로 화장실로 돌진합니다. 책이 없으면 화장실이 좁게 느껴집니다. 책을 펼치면 왠지 해방감을 느끼고요. 책이 가진 외부 세계로의 개방 효과가 아닐까 합니다(p. 60). 도서관이 거기에 들어온 사람에게 가르치는 것은 아마도 무한이라는 개념일 겁니다. 거기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인생의 유한성'과 '앎의 유한성'을 자각하죠. 이 이상 교육적인 일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얼마큼 자신이 세상을 모르는가, 세상을 모르는 채로 일생을 마치는가. 앞으로 평생을 바쳐서 아무리 똑똑해지려고 노력한들 이 거대한 앎의 저장소 가운데 끄트머리 한구석밖에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죠. 다만 끄트머리 한구석 이라고 해도 '내가 이 무한한 장소의 일부만큼은 닿을 수 있고 잘하면 그 일부가 될 수도 있겠구나' '이 무한한 장소에 내가 만들어 낸 것을 보탤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고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지적' 상태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을 한마디로 하면(p. 64) '조심스러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무한한 삶에 대한 '예의 바름'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내가 얼마나 세상을 모르는지, 내 앎이 닿을 수 있는 범위가 얼마나 좁은지에 관한 '유한성의 자각'이 지적 상태입니다. 자신의 유한성을 자각할 수 있는 것은 눈앞에 이렇게 '무한한 앎을 향해 열린 도서관'이 있기 때문이고요. 저는 도서관에게서 제대로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저와 도서관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진 거죠(p. 65). 책이란 외부로 통하는 문입니다. 책은 독자를 '지금이 아닌 시대'와 '여기가 아닌 장소'로 데려가는 힘을 지녔습니다. 그래서 책 한 권이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닫힌 공간에 자그마한 구멍이 생기고 그로부터 신선한 바람이 불어 들어옵니다. 그 바람 냄새를 맡은 사람들이 책 주위로 모여듭니다. 이것이 21세기 코뮌 부활의 계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p. 135). 도서관의 본질적 기능은 책장 사이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읽은 적 없는 책, 읽을 일 없는 책에 압도당하는 체험을 선사하는 것입니다. 도서관을 찾을 때마다 우리는 자신이 이만큼이나 앎이 부족하다는 사(p. 153)실에 놀라게 됩니다. 이 놀라움이 도서관에 다니는 보람 이죠. 고대의 철인이 가르쳐 주듯이 모든 배움은 '무지의 자각'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오로지 거기서밖에 시작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얼마큼 모르는가를 아는 사람만이 배움으로 향합니다. '내가 무엇을 아는지'에 관한 목록을 빼곡히 만드는 것이 지적 활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은 결국 배움과는 인연이 없습니다(p.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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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4】 만약 암에 걸린다면...
저자 한만청은 서울대 명예 교수, 前 서울대 병원장이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 의대 펠로 3년을 거쳤으며 서울대 의대 교수와 서울대 병원장을 지냈다. 서울대 병원장 재직 당시 ‘ 연구 중심, 환자 중심 병원으로의 개혁’을 이끌며 체계화된 의료 서비스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국내 최초로 북미, 일본, 유럽 방사선의학회 명예 회원이 됐으며 한국의 영상의학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교보문고. 암에 걸린 의사가 자신의 치유기를 적은 책이다. 98년 간암 후 폐로 전이됐지만 완치되었다가 91세에 사망했다. 어느 날 내게 찾아온 악동 같은 친구, 암 병이란 게 무엇인가. 어느 날 문득 내 몸에 찾아와서 살다가 때가 되면 돌아가는 손님 같은 존재가 아닌가. 암이라고 다를 게 없다. 오히려 암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손님이 아닌 친구 같은 존재다. 다른 병과는 달리 애초에 내 몸 안에서 함께 자라다가 뭔가 좀 못마땅한 구석이 있어 내게 반기를 들고 심통을 부리는 악동 같은 친구 말이다. 암이란 내 몸 안에서 착실히 제 몫을 해내던 세포가 어느 날 갑자기 미쳐서 변종이 된 것이다. 아직 원인은 찾지 못했지만 DNA 수준에서 뭔가 못마땅한 구석이 있어 내 몸 안에서 정상적인 세포의 역할을 포기하고 변해버린 것이 다름 아닌 암이다. 마치 영화 〈헐크〉(p. 37)에서 얌전한 주인공이 분노를 느낄 때마다 녹색 괴물로 변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놈 역시 처음에는 내 몸 안에서 충실히 제 역 할을 하던 존재였다. 그래도 지금은 어떻게든 없애야 할 적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암은 적으로 돌려 싸운다고 해서 물러날 존재가 아니다. 애초에 내 몸의 일부였기 때문에 내 몸의 약점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힘들이지 않고 내 몸을 잠식해갈 수 있는지 잘 안다. 그런 암을 대상으로 선전포고를 하고 적대시하고 경계하며 아우성치는 건 소모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암이란 존재를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무조건 싸워 이기겠다는 마음 보다는 어떻게든 잘 구슬리고 달래서 되돌려 보내야겠다는 그런 마음가짐 말이다(p. 38). 암과 맞닥뜨린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암을 두려워하고 거부하며 싸워서 이겨 없애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외면하고 거부해서 암이 떨어져 나간다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암은 그렇게 호락(p. 40)호락한 녀석이 아니다. "너 이놈 왜 왔느냐, 나가 떨어져라" 하며 도망 다니고 숨을 곳을 찾는 사이에 암은 이미 승전고를 울리며 우리 몸을 잠식해 버리고 만다. 단언컨대 두려워해서는 절대 암을 감당할 수 없다. 그렇다고 무조건 거부하고 싸우기엔 암의 위력이 생각보다 강하다. 그렇다면 찾아온 암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막연한 두려움 속에 방황만 할 것인가, 거부하고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싸우다 죽을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포기하고 말 것인가. 가끔 조언을 구하려는 암 환자들에게 내가 해주는 말이 있다.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이고, 그 맛을 씹으며 살자.' '맛'이라는 말이 너무 과장되었다면 이 말이 더 적절할지 모르겠 다. '차라리 잘 달래며 끼고 살자.' 암 환자가 기나긴 투병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가장 먼저 갖춰야 할 조건이 있다면 머릿속에 있는 암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일일 것이다. 암을 싸워 이겨야 할 적이 아닌, 함께 있는 동안 잘 끼고 살아야 할 친구라고 여기라는 말이다. 미국 임상암학회 회장은 200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연차학술대회에서 새로운 연구 성과와 앞으로의 치료 전망에 대해 발표를 하면서 "암은 결국 당뇨병, 고혈압, 심장질환 등과 같은 만성질환의 대열로 들어오고 있다"고 선언했다. 이제 암이란 존재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무시무시한 난치병(p. 41)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 말이 얼마나 무게가 있는가를 따지기 전에 동반자로서의 암의 새로운 면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희망적인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당장 마음속의 억압과 두려움을 버리고 이렇게 한번 외쳐 보면 어떨까. '너랑 나랑 한번 잘 살아보자, 그러다가 때가 되면 기분 좋게 돌아가라."(p. 42). 암에 걸린 당사자 입장에서 볼 때 내가 그 5퍼센트 안에 들어가 완치될 수 있는 확률은 반반이다. 결국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암에 대한 여러 가지 자료와 검사 수치들은 지금까지의 결과론적인 통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 통계가 어떤 개인의 경우를 저울질 하는 잣대가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심지어 어떤 암은 기수 자체를 명명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또한 어떤 암이라도 생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경우는 없다. 생존율이 떨어지고 검사 수치가 나쁘다고 절망해서는 안 된다. 그럴수록 '내가 이 통계의 긍정적인 수치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차라리 통계 자료를 희망의 증거로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나는 암 환자에게 누가 어떠한 자료를 제시하더라도 '나는 단 1 퍼센트의 생존자로 계산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p. 48)다. 그리고 통계상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취한 방법은 무엇일지 고민하고 연구하라는 말도 덧붙이고 싶다. 수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때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희망과 의지, 그리고 암을 돌려보낼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p. 49). 한번 뒤집어 놓고 생각해 보자, 항간에 떠도는 그 많은 약이 정말 안을 고치는 네 탁월한 효과가 있다면 전 세계적으로 암을 연구하는 수많은 학자가 그냥 보고만 있겠는가. 우리나라에만도 밤을 새워가며 암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수천에 이르는데 말이다. 수영할 줄 모르는 사람이 물에 빠졌을 때 사는 방법은 가만히 있는 것밖에 없다. 살려고 발버둥치는 대신 가만히 힘을 빼고 있으면 몸이 절로 떠오른다. 나는 암 환자들에게도 같은 말을 하고 싶다. 살고자 하는 의욕도 좋지만 약 복용에 있어서 만큼은 가만히 있는 게 수다. 약 이야기가 나오거든 차라리 귀를 틀어막아 버려라. 필요할 때는 담당 의사의 지시에 따라 그 효과와 부작용이 정확히 밝혀진 것만 쓰되, 가급적이면 쓰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약이다. 특히 목숨을 담보로 하고 있는 암 환자들의 경우에는 말이다(p. 126). 죽음에 대한 두 가지 태도 내가 보아온 암 환자들은 대개 자신에게 닥친 죽음이라는 문제에 대해 두 가지 태도를 보였다. 그 한 가지는 바로 죽음을 외면하는 것이다.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환자 한 명이 있었다. 나처럼 의사였던 그는 누가 보아도 그리 낙관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치료를 받고 있기는 했지만 언제 어떻게 상태가 악화될지 몰라 스스로 생활을 조절해 나갈 필요가 있었다. 본인이 의사였으니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죽음에 이를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알고 있었(p. 214)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죽음의 가능성을 조금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거나, 죽음을 모면하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평소보다 더 무리해가며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마치 이런 내게 어찌 죽음이 찾아들겠냐며 시위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병원에 있어야 할 시기에 여행을 가겠다고 나서는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심지어 수술 예정일을 일주일 앞두고 보통 사람이라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지방에서 친구가 출마를 하는데 자기가 직접 선거 유세를 도와야겠다는 것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말려도 말을 듣지 않던 그는 막무가내로 지방으로 내려가 버렸고, 수술은 뒤로 미뤄졌다. 물론 나중에 수술도 받고 치료도 계속했지만, 그는 결국 별다른 차도를 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게 되었다. 그는 어쩌면 눈을 감는 그 순간에도 이게 마지막이라 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암 환자들은 죽음의 실체를 외면하려 한다.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눈 가리고 귀를 막고 그럴 리가 없다고 도리질 치면서 스스로를 세뇌한다. "나는 절대 죽지 않아. 암에 걸린 사람이 다 죽어도 나는 살아남을 거야. 난 지금 죽어선 안 되니까." 죽는 순간까지도 그 믿음은 변하지 않았다.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도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맞게 되는 죽음을 그저 외면만 하다가 결국엔 미완성인 채로 삶을 끝내고 마는 것이다. 두 번째로 보이는 상태는 정신적인 공황이다(p. 215).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간 유대인이 있었다. 그는 수감자 중 95퍼센트가 처형당했던 생지옥에서 3년간이 나 죽음을 지켜보면서 자기 자신을 포함해 언제 죽을지 모르는 포로들의 심리 상태를 자세히 관찰하고 기록했다. 후에 정신과 의사가 된 그가 기술한 죽음의 실체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같이 끌려온 사람의 90퍼센트가 30분 내에 가스실에서 죽는다. 포로들은 그것을 보면서 충격과 공포에 빠져드는 1단계에 진입한다. 이들은 극도의 불안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너무 두려워 자살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지내던 포로들도 한 달 정도 지나면 처음과는 다른 2단계 상태로 진입한다. 이때부터는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일념만 남을 뿐이다. 일주일을 빵 한 조각으로 연명하며 얇은 천 조각만 몸에 걸친 채 혹한의 날씨에 철로 공사를 하고도 감기 한 번 안 걸리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다. 지금껏 배워왔던 의학 지식이 다 거짓투성이였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인간의 놀라운 적응력에 전율을 느낀다. 노동력이 있어야 가스실로 끌려가지 않기 때문에 포로들은 아침이면 돌을 주어다 면도를 한다. 면도를 하면 젊어 보이기 때문이다. 병약자를 골라 가스실로 보내는 명단을 작성할 때면 자기 이름을 빼고 다른 사람의 이름을 넣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한다. 그러나 이렇게 치열한 생존 경쟁을 치르며 살아가던 포로들의 마음에 또 다른 변화가 오면서 3단계로 진입한다. 자신의 인간답지 못함에 대한 자괴감과 무력감을 느끼면서 포로들은 점차 정신적인 무감각 상태에 빠져든다. 살겠다는 열망도 없어지고 죽겠다는 생각도 없어지는 정서적인 자멸 상태(p. 216)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바로 죽음을 눈앞에 둔 암 환자들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암 환자들은 닥쳐올 죽음을 무시한 채 맹목적인 낙관론을 펼치는가 하면, 아우슈비츠의 포로들처럼 무력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한동안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다가 결국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무방비 상태, 즉 정신적 공황을 맞는 것이다. 그런 단계에 이른 암 환자들은 분명히 살아 숨 쉬고 있음에도 절대 산 자의 모습이 아니다. 그렇다고 내 앞에 닥친 죽음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삶도 죽음도 아닌 그 중간 지점에서 그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정서적인 자멸 상태에 놓인 아우슈비츠의 포로들처럼 말이다 암과 함께 찾아든 죽음을 앞에 두고 애써 눈 돌려 외면하거나 고통에 겨워 정신적인 공황을 맞는 것, 나는 두 모습 중 어떤 것에도 고개를 끄덕여 수긍할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맞아들여야만 하는 때가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간의 힘으로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때가 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나는 죽음의 형태는 어디까지나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죽음 아닌가. 삶에 있어서 단 한 번 찾아오는, 내 삶의 대미를 장식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바로 죽음 아닌가. 처음 화학 치료를 받을 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p. 217). "만일 이 화학 치료가 효과가 없다면 한 번쯤 다른 약을 쓰는 2차 화학 치료에 응할 용의는 있다. 하지만 그것마저 듣지 않는다면 그 때는 치료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해보겠다." 고백하건대 그것은 결코 치료를 포기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나 스스로 위엄 있게 죽을 권리, 내 삶을 정리하고 마무리할 권리를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에 대해 무방비 상태로 있거나, 아니면 그 실체를 모르는 척 외면만 하고 있다가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리는 그런 죽음을 맞기는 싫었다. 나의 죽 음이므로 내가 선택해서 내가 원하는 형태로 맞이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권리를 놓지 말라 생각해보자. 환자에게 큰 충격이라는 생각에 가족들조차 환자 본인에게 사실을 감춘다. 그러다 우연히 그 사실이 밝혀지면 환자는 현실을 감당해 내기가 어려워 갈팡질팡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렇게 되면 지나간 삶을 정리하고, 떠날 자와 남을 자 사이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한정되어 있어 더욱 소중한 남은 날들을 지켜 갈 여유를 갖지 못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 불현듯 죽음을 맞이하고 그것으로써 모든 상황은 종료된다. 어찌 보면 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순간이 그저 방황과 절망으로 일관하다 부지불식간에 끝나고 마는 거다(p. 218). 그 시간은 누구도 돌이킬 수 없고 보상해줄 수도 없다. 그뿐인가. 결코 보상받지 못할 그 시간들은 남은 자에게 두고두고 상처로 남게 된다. 나는 나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모든 암 환자들에게도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암에 걸린 그 순간 나 자신의 상태가 어떠한가를 정확하게 파악 하라. 죽음이 얼마나 가까이 와 있는지 명확히 알라." 물론 최선을 다해 암을 돌려보내려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인력으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순간이 왔을 때는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권리를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위엄 있게 죽을 권리, 지난 한평생을 정리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낼 권리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마음가짐이 생길 때, 다시 말해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이를 자신의 손으로 과감히 취할 마음가짐이 들 때, 비로소 암이란 놈이 온전히 끼고 살아갈 수 있는 친구로 다가온다. 따지고 보면 암에 대한 두려움이 곧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외면하고 두려워하는 마음가짐이 사라진다면 그 매개인 암이 두려울 까닭은 더더욱 없다. 나아가 그 마음은 암을 끼고 살아 가는 모든 순간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그 결과가 설혹 죽음이라는 형태로 찾아올지라도 그것은 형벌이 아닌 선물이다. 교통사고를 당해 생사의 기로에서 살아난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고가 나는 순간에 그동안 자신이 살아왔던 삶이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가더라고. 이것은 짧은 시간이나마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고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p. 219)하는 신의 배려가 아닐까?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의 어르신들은 저승 갈 때 입고 갈 수의를 미리 지어두곤 했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입을 옷이기에 더욱 정성을 들여 한 땀 한 땀 손수 바느질을 했던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고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는 여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대면하고 있는 암 환자들에게도 그런 여유가 필요하다.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고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 들이는 여유만 있다면 남은 시간이 1년이든 10년 혹은 그 이상이 든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피하고 싶지만, 어떻게 해도 피할 수 없는 삶의 마지막 형태인 죽음. 그러나 죽음 역시 내 삶의 일부이기에 내 손으로 맞아들여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언젠가 찾아올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p. 220). 에필로그-'나'를 지킬 수 있는 힘은 내 안에 있다 병상에 있을 때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었다. 노인은 멕시코 만류에 조각배를 띄우고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한 채 허송세월만 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노인이 '살라오'를 만났다고 수군거린다. 살라오란 스페인어로 '최악의 불운'을 뜻한다. 마을 사람들은 끝끝내 고기잡이를 포기하지 않는 노인에게 연민과 조소를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인은 바다에서 거대한 청새치를 만나 싸움을 벌이게 된다. 사흘 동안이나 계속된 그 싸움에서 노인은 승리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청새치가 흘린 피 냄새를 맡고 상어들이 몰려 들고 만다. 노인은 변변한 무기도 하나 없이 상어 떼에 맞서 처절한 사투를 벌인다. 마침내 노인이 항구로 돌아왔을 때 청새치는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거대한 뼈를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그리고 침묵으로써 노인이 승리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내 처지가 노인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노인은 마을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자신의 배보다 큰 청새치와 차례로 맞서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승리했다'고 생각하는 순(p. 288)간 가장 어려운 상어 떼와의 사투에 직면하게 된다. 내가 간암 선고를 받고 가장 먼저 마주해야 했던 것도 사람들의 동정 어린 시선이었다. 사람들은 어쩌면 이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평생 환자를 돌본 의사도 결국 암으로 죽는구나.' 하지만 나는 간암이라는 존재와 대적한 끝에 내 몸에서 병을 돌려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겼다'는 승리감에 도취해 있는 사이에 더 큰 난관이 나를 덮쳐왔다. 완치된 줄 알았던 암이 폐로 전이된 것이다. 나는 처음 간암 선고를 받았을 때보다 암이 폐로 전이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더 흔들렸다. 그렇지만 주저앉아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내가 나를 믿지 않으면 절대 이겨낼 수 없다.' 의료진과 가족은 최선을 다해 치료에 매달릴 각오가 되어 있는 데, 정작 암에 걸린 당사자인 내가 흔들린다면 그 결과는 보지 않아도 자명했다. 그때부터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치료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항암 치료는 상상했던 것 이상의 고통이었다. 그야말로 벼랑 끝까지 내몰린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나 고통이 더해갈수록 삶에 대한 열망도 커졌다. 삶에 대한 희구는 내게 최선을 다하려는 의지를 불러 일으켰고, 나는 결국 『노인과 바다』의 노인처럼 지독한 살라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일단 환자 자신이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않는 치료의 주체로 서야 한다. 어느 누구도 아닌 나 자신만이 암을 몰아낼 수 있다는 믿(p. 289)음과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감히 말하지만 환자 자신이 믿음과 자 신감을 가지고 치료의 주체로 서지 않는 한 암과 지내는 시간은 혼란과 방황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환자가 치료의 주체로 서지 못하면 어떤 명약이나 치료법으로도 효과를 볼 수 없다. 특히 치료의 진전이 없거나 다른 치료법을 모색해야 할 경우, 환자가 겪게 되는 불안과 혼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때 많은 이들이 암 치료에 대한 갖가지 비방에 귀를 열고 마음을 내주게 된다.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더라도 혹시나 하는 헛된 희망마저 떨쳐 버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면 결국 남들도 다 하는데 나라고 못 하랴 싶어 출처도 분명치 않은 건강식품이나 비방에 몸을 내맡기고 마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환자 스스로 치료의 주체로 온전히 섰을 때만이 암에 대한 갖가지 뜬소문과 그릇된 정보,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상황에 굴복하지 않는 의연한 태도를 가질 수 있다. 또한 그랬을 때만 현대 의학도 자신이 가진 한계를 넘어 최대한의 힘을 발휘하는 최고의 조력자가 되어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암에 걸리고 나서야 생사의 갈림길에 선 환자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40년 동안이나 의사 노릇을 하면서도 알지 못했던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고 할까. 암에 걸린(p. 290)뒤 나는 의술이나 치료 행위만으로 사람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렸다. 바꿔 말하면 의사나 의사의 역할을 하는 제3자가 병 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되어 나로 인해 끝난다. 내 몸에 생겨난 암이라는 녀석을 잘 끼고 살다가 다독거려서 돌려보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지금 당장 자신에게 물어보자. '나는 지금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는가? 나는 나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 이런저런 이야기에 현혹되거나 현대 의학에 불신의 눈길을 보내기 전에 먼저 나 자신부터 돌아보자. 나는 과연 내 몸에 찾아온 암과 제대로 맞설 준비가 되어 있는지,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꿋꿋이 버텨낼 수 있는 믿음과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보라는 말이다. 그것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암이라는 존재가 찾아온 이 현실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노인과 바다』에서 마을 사람들은 꼬박 84일 동안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했으면서도 끝내 고기잡이를 포기하지 않는 노인을 비웃었다. 하지만 노인은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부심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거대한 청새치를 낚아 올린다. 비록 청새치(p. 291)는 상어의 공격을 받아 뼈만 앙상하게 남았지만 노인은 진정한 승리자였다. 노인은 자신을 믿고 자신과의 약속을 지킴으로써 불운 한 어부가 아닌 진정한 승리자로 거듭날 수 있었다. 암 환자가 진정한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암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싸움보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남의 말에 현혹되어 불안해하고, 남이 하는 대로 쫓아가려는 나약한 자신을 먼저 다독이자. 그리고 자신을 치료의 주체로 단단하게 세워야 한다. 아무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한 자기 의지로 암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자신을 말이다. 그렇게 흔들림 없는 의지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울 때, 희망은 어느새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다. 그리고 그때 암은 잠시 머물렀던 친구처럼 내 몸에서 멀리 떠나갈 것이다(p. 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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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14】 두려움의 이유 (딤후 1:7)
두려움의 이유 (딤후 1:7) 인간은 누구나 두려움이 있습니다. 두려움의 많고 적음의 차이뿐입니다. 죄가 들어온 후,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죄를 지으면 두려움이 있고, 의인은 담대합니다. 디모데후서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는 것이 아니고 사탄이 줍니다. 두려움의 이유가 너무나 많습니다. 건강 검진하고 결과를 기다릴 때 두렵습니다. 건강 검진 결과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두려워한다고 건강 검진 결과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두려움이 있으면 건강 검진하기 싫어하는데 두려워서 건강 검진 안 하면 병을 키우게 됩니다. 담대히, 자연스럽게 건강 검진해야 합니다. 담대함을 훈련해야 합니다. 과거의 고난과 어려운 시험이 있었던 트라우마가 큰 자가 두려워합니다. 지나간 과거에 매이지 말고 현재에 감사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만나서 무슨 이야기 하겠다고 말하면 신경 쓰이고 두렵습니다. 막상 만나보면 큰 일이 아니고 습관적으로 만나자고 하는 자도 있기에 만남을 자연스럽게 담대히 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무슨 말을 해도 담대하고 성령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만나서 대화하면 풀리고, 유익한 만남이기도 합니다. 만남을 스트레스로 여기지 말고 즐겨야 합니다. 실수하고 약점이 잡히면 두려움이 있습니다. 가능하면 약점을 잡히지 않도록 언행심사를 조심해야 합니다. 실수 없는 자는 없습니다. 실수를 통해 배워야 합니다. 미래의 일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내일은 나의 시간이 아니고, 인간은 미래를 알지 못합니다. 미래를 두려워하는 것은 쓸데없는 두려움입니다. 쓸데없는 염려와 두려움이 큽니다. 마음이 소심하고 좁은 자, 예민한 자가 두려워합니다. 마음을 넓혀야 하고, 지나치게 예민하지 말고,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모든 일이 진행됩니다. '실패할까, 관계가 깨질까'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실패 없는 인생은 없고, 온전한 관계는 없습니다. 실패하면 교훈 삼고 관계 깨지면 조심하고 고치면 됩니다. 관계 깨지지 않은 인생은 없습니다. 더 좋은 관계 위해 노력하고 최선 다하면 됩니다. 시기, 질투, 미움이 있을 때 두렵습니다. 사랑이 두려움을 이깁니다. 사랑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두려움은 스스로 속는 것입니다. 실패의 이유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두려워서 해야 할 말을 못하면 오해가 커지고 문제가 커집니다. 담대함과 용기가 성공의 비결입니다. 잠언 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 하리라 성령 받지 못하면 두렵습니다. 성령 받으면 담대해집니다. 날마다 성령의 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두려울 때 두려워하지 말라, 담대하라는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이사야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요한복음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두려움은 문제를 만들고, 담대함은 문제를 해결합니다. 사탄은 두려워하게 하고, 성령님은 담대함을 줍니다. 믿음은 담대함입니다. 도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오해하고 잘못 말해서 선동하면 사람을 두려워말고 담대히 말을 해야 합니다. 대화에도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두려움이 있으면 말문이 막히게 됩니다. 두려움이 실패와 멸망의 이유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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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13】 최고의 절대 명언
최고의 절대 명언 세상에는 유명하다는 사람들의 명언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명언은 참고가 되고 유익하나 진리는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면서 최고 절대 진리의 명언입니다. 성경의 절대 명언을 읽고 묵상하고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성경의 명언은 그대로 이루어지고 변하지 않는 명언입니다. 성경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명언입니다. 최고 지혜의 명언입니다. 예수님의 절대 진리 명언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6: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마태복음 5:3-12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사도바울의 명언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사도 요한의 명언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1서 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성경이 절대 진리의 명언임을 기억하고 읽고 묵상하고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성경의 명언은 우리에게 큰 힘과 격려가 됩니다. 성경의 명언은 생명의 명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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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3】 전 법관의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나의 일상을 풍요롭게 채우는 건 어떤 의미인가, 다른 사람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사람과 사회는 바뀔 수 있는가. 자작나무에서 지리산으로, 도스토옙스키에서 몽테스키외로, 일상에서 재판까지. 호의는 사람을,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 받은 것을 사회에 되돌려주라던 김장하 선생과의 추억, 법을 몰라 손해 보는 이들을 헤아리는 마음, ‘자살’을 시도했던 재소자가 ‘살자’는 다짐을 하게 만든 선물,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며 속절없이 흘리는 눈물, 그리고 건강한 법원과 사회를 향한 진심 어린 조언…교보문고 계엄을 도모했던 윤석열을 단죄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쓴 책으로 가볍게 읽을만하다. 착한 사람을 위한 법 2001. 4. 22. 법 없이 살 사람 착한 사람을 일컬어 '법 없이 살 사람'이라고들 한다. 법의 강제 없이도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사람이란 뜻이리라. 과연 착한 사람에게 법은 필요 없는 것일까? 법 없이 살 수 없는 사람 나는 법이 어떠하다고 정의할 만큼 경력도 풍부하지도 않고 타고난 재주도 없지만, 1983년 법학을 전공한 이래 지금까지 18년을 법과 함께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 (그런 점에서 나는 법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다) 착한 사람일수록 법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p. 19). 종종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나가곤 하는데, 거기서 늘 하는 말이 있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 나에게 힘써달라고 전화해봐야 아무 소용 없다. 사건이 터지기 전에 나에게 법을 물어보라." 도대체, 전 재산과 다름없는 300만 원을 전세금으로 걸면서 그 집이 경매 중인 사실도 확인하지 않고 계약하는 사람을 누가 구제해줄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들은 대개 사건이 터지고 난 뒤에야, 집주인을 사기죄로 고소했으니 수사 기관에 힘 좀 써서 집주인을 즉시 구속시켜 달라고 법조인에게 전화를 한다. 법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 하나는 보장적 기능이다. 일정한 행위를 금지하고 거기에 저촉되지 않으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게 해주는 측면이다. 여기서 '법 없이 살 사람'이 빛을 발한다. 다른 하나는 보호적 기능이다. 그러나 법의 이러한 보호적 기능도 경매 절차에서 배당 요구를 하는 임차인이나 노동자에게만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에 유의하여야 한다. 여기서 '법 없이 살 사람'은 초라하기만 하다. 착한 사람부터 법을 알자 판사로서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착한 사람은 법을 모르(p. 20)고, 법을 아는 사람은 착하지 않은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런 사건일수록 해결이 어렵고, 착한 사람을 보호하고자 궁리를 해보나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착한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 따로 있고 착하지 않은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 따로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법을 아는 사람에게 착하기를 요구할 것 인가? 불가능은 아니나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남는 방법은 착한 사람이 법을 아는 것이다. 그 길만이 법이 나쁜 사람을 지켜주는 도구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하는 지름길이다(p. 21). 형사 재판 잘 받는 방법들 중 2006. 12. 19. 진술 거부권 행사 자기에게 불이익한 사실에 대하여 진술을 거부하는 것은 헌법 및 형사 소송법에서 보장된 피고인 및 피의자의 권리입니다. 따라서 법정에서 판사로부터 불이익한 사항에 대하여 질문을 받을 때 진술을 거부하면 되겠습니다. 괘씸죄가 걱정된다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면 되겠습니다. 이것이 모순되거나 불합리한 답변을 하는 것보다 유리합니다. 답변 방식 법정에서 판사의 질문에 대하여 답변을 할 때는 결론을(p. 45) 먼저 말하고 이유를 나중에 설명하는 것이 효과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판사는 질문을 통하여 사건의 윤곽을 파악 하려고 하므로, 판사에게 결론을 먼저 말함으로써 판사가 설명이 더 필요한 부분인가를 쉽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습니다. 판사는 여러 각도에서 사건을 살피기 위하여 다양한 질문을 하는 것이므로, 설령 질문이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 일지라도, 판사가 상대방의 편을 든다고 섣불리 생각하지 말고 정중하게 답변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판사는 피고인의 진심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p. 46). 민사 재판 잘 받는 법 2007. 5. 17. 오늘 재판을 하면서 느낀 점을 토대로 민사 재판 잘 받는 방법을 적어보았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소송을 하려면 어려운 일이 많으므로 형편이 허락한다면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좋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였다고 해서 변호사에게 모든 것을 맡길 것이 아니라 수시로 소송 진행 정도를 확인하고 대응 방안을 함께 의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p. 61). 준비 서면을 간단명료하게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할 경우 법무사의 도움을 받거나 본인이 직접 준비 서면을 작성해야 할 터인데, 이때 주의할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준비 서면이라는 것은 당사자의 주장에 불과하므로 아무리 유리한 내용을 적어놓더라도 증거가 없으면 인정받기가 어려운 반면, 불리한 내용은 별도의 증거가 없더라도 본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따라서 준비 서면은 간단하게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증거가 뒷받침되는 내용일 경우 명료하게 주장을 펼치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준비 서면에 상대방을 비난하는 내용을 적을 경우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해롭다는 것입니다. 재판이라는 것이 당사자의 도덕성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고, 뚜렷한 증거 없이 상대 방을 비난할 때 판사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어렵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준비 서면에 똑같은 내용을 되풀이하여 적어내는 것도 피해야 합니다. 재판부는 많은 사건을 처리하고 있으므로 그들의 노고를 덜어주는 것도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p. 62). 소송의 승패는 증거에 달려 있습니다 민사 소송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증거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흥분할 필요 없이 차분하게 증거를 수집하여 제출하는 사람이 이길 수밖에 없습니다. 증거로는 애초 사건이 있었을 때 작성된 서류, 특히 상대방이 서명 또는 날인한 서류가 가장 효력이 강하고, 그 다음으로 제3자가 작성한 서류가 효력이 강합니다. 증인의 증언은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법정에서는 결론부터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직도 법정에서는 많은 사건을 처리하는 실정이므로 법정에서 판사로부터 질문을 받았을 때는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다음에 그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하는 것이 좋습니다. 조정 또는 화해를 권유받았을 때는 존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재판을 하다 보면 어느 당사자의 주장이, 설득력은 있으나 증거로 뒷받침 되지 않는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법적 관점으로만 해결할 경우 어느 당사자에게 더 가혹하기도(p. 63)합니다. 이길 승산이 있어 보이나 시간과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법원은 당사자에게 조정 또는 화해를 권고하는 데, 긍정적으로 검토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조정 또는 화해 절차에서는 집행에 관한 내용을 반영할 수도 있으므로 이러한 점에서도 조정 또는 화해의 효용은 높습니다. 증인 신문을 할 때는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허점을 짚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법정에 출석한 증인을 상대로 질문을 할 경우 "거짓말쟁이다" "양심도 없느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차분하게 증언의 허점을 짚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상대방이 질문하는 내용을 (미리 받을 수 있습니다) 검토하여 허점을 정리했다가 법정에서 질문 하는 것이 좋습니다. 바람 턱없이 부족한 내용일 것입니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소송을 잘해서 이길 사람이 이기는 재판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p. 64). 문제가 터지고 나서 소송을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은 문제가 터지기 전 검토를 충분히 하는 것입니다. 몇 천 만 원이 오고가는 계약을 체결할 때 변호사나 법을 잘 아는 사람에게 비용을 들여서라도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길게 볼 때 비용이 더 적게 듭니다(p. 65). 책을 읽는 이유 세 가지 2010. 2. 16. 책을 많이 읽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받는다. 무지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고전을 읽은 적이 없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가 보니 문화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투리는 말을 안 하는 것으로 감출 수 있었지만 무지는 감출 방법이 없었다. '장 발장'이 《레미제라블》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읽었다(p. 108). 무경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판사가 되고 보니 사건을 이해하기엔 내 경험이 너무 좁고 얕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도대체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고 거액의 거래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잡히면 처벌받을 게 뻔한 일을 왜 되풀이하는지,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경험을 늘리려고 해보니 이 또한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당장 법관 윤리가 문제였다. 그래서 생각해본 것이 두 가지다. 지금은 언론사 사장이 된 어떤 분이 사법연수생이었던 나에게, 법조인이 되면 초등학교 동창생과 꾸준히 만나라고 당부했던 기억이 떠올라 초등학교 동창생을 만나기로 결심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8년 동안 1년에 몇 회는 초등학교 동창생을 (때로는 부부 동반으로) 만났으니 어느 정도는 실천한 셈이다. 두 번째가 책을 읽는 것이었다. 장르를 구분하지 말고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어보자 하였던 결심이 여기까지 나를 데려왔다. 무소신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어릴 때부터 내성적이었다. 남녀 공학 중학교 시절 소풍(p. 109)을 가서 선생님의 권유에 노래를 불렀는데 가사를 까먹어 끝을 맺지 못할 정도로. 그때 불렀던 노래가 남진의 〈님과 함께〉였다. 고등학교 때는 교복이 중고라서 반장을 하지 못했다. 대학교 가서는 사투리 때문에 남 앞에 나서지 못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무슨 결정을 하려면 무척 어려웠다. 결정을 하고 나면 곧 후회를 하게 되고. 어느 날, 내성적인 이유가 소신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했다. 군대에서 정훈장교를 하게 되었고 정훈장교 하는 일이 장병 교육이다 보니 남 앞에 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어느 정도 해소된 뒤라서 그런 결론을 더욱 쉽게 내릴 수 있었다. 앞서간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그들의 생각과 내 생각을 서로 맞추어보는 과정을 통해 생각이 단단해져 소신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포함해 많은 책을 읽게 되었다. 사족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면 그 사람이 누구와 만나고 무슨 책을 읽는지 말해달라."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p. 110). 혼돈의 시기에 그나마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친구와 책 덕분이라 생각하니 이 글을 쓰는 감회가 남다르다. 모든 분들에게 책을 한번 읽어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p. 111). 책을 고르는 기준 2010.6.26. 책을 어떻게 고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저자를 보고 고른다 어떤 책을 읽고 감동을 받으면 그 저자가 쓴 책은 눈에 띄는 대로 사서 읽는 버릇이 있다. 예를 들면 고 장영희 교수의 《내 생애 단 한 번》을 읽고 《축복》 《살아온 기적 살아 갈 기적》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는 식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저자는 다음과 같다. 신영복 교수, 정 민 교수, 유시민 전 장관, 소설가 김 훈, 오지 탐험가 한비야,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열하일기》 전문가 고미숙 박사(p. 124). 주제어를 보고 고른다 제목이나 문장을 검색하여 관심 있는 주제어가 들어간 책을 고른다. 요즘 즐겨 찾는 주제어는 다음과 같다. 정의, 소통, 성찰, 역사, 철학, 인생, 여행, 행복. 이런 기준으로 고른 책은 다음과 같다. 《정의란 무엇인가》 《서양철학사》 《인도 여행》 《행복의 정복》 《무지개 원리》 《인생이란 무엇인가》 등등. 책 선택에 실패한 적은? 이런 기준으로 책을 골라 읽으면서 후회할 때가 제법 있다. 그러나 산 책은 다 읽는다. 재미가 없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책에 대하여는 독후감을 쓰지 않음으로써 복수를 한다. 블로그에 올린 책은 이중으로 검증을 거쳤다고 보면 된다. 지금껏 읽은 책은,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1천 권 정도 될 것 같다. 책을 고르는 장소는?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하여 고르는 경우가 많고 가끔 서점에 가서 고른다. 베스트셀러 항목과 새로 나온 책 항목을 많이 참조한다(p. 125). 블로그에 독후감을 쓰는 이유는? 독후감을 쓰다 보면 책 내용을 정리하는 효과가 있고, 글쓰기 훈련이 되며, 블로그에 저장해놓으면 다른 글을 쓸 때 인용하기 쉽기 때문이다. 나쁜 사람은 있어도 나쁜 책은 없다. 어떤 책에서도 스승 또는 반면교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께 독서를 권한다. 책이 여러분을 끌어올려줄 것이다(p. 126). 왕후박나무 2011.4.1 남해군법원 다녀오는 길에 경남 남해군 창선면 왕후박 나무를 만났습니다. 500년 이상 되었다고 합니다. 둘레에는 동백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후박나무는 녹나무과에 속합니다. 주로 방풍용으로 많이 심는다고 합니다. 남해군 창선면에 있는 왕후박나무는 천연기념물 제29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왕후박나무는 높이 솟구치지 않고 옆으로 퍼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람 부는 바닷가에서도 500년을 버틴 게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렇다면 이 나무는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낮추는 것이 자신을 높이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것을 말입니다(p. 140). 조영남의 노래가 있죠. 〈겸손은 힘들어〉. 그렇죠. 겸손은 힘듭니다. 공자 이래 2천 년 동안 성현들은 겸손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겸손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적습니다(p. 141). 조정에 임하는 자세 2013.4.28. 조정이란 조정은 법률 분쟁이 생겼을 때 판사의 판결이 아니라 당사자 간 타협을 통하여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를 말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법원에 접수된 사건 중 판결까지 가는 사건은 10퍼센트가 되지 않고 대개는 조정을 포함한 여러 가지 간이한 방법을 통하여 사건을 처리한다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 조정은 이길 사람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것이니 불합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길 사람이라는 건 미리 정해진 것은 아니고 재판 절차를 통하여 증거를 대고 법리를 세워야 하고 그것으로 판사를 설득해야 하며 최종적으로 대법원까지 가봐야 아는 것이다(p. 188). 그리고 1천만 원을 받기 위하여 소송 비용으로 500만 원을 들여야 한다면, 700만 원을 받고 소송 비용을 100만 원 선에서 지출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도 있다. 사건에 관하여 가장 절실한 이해관계자는 판사도 아니 고, 변호사도 아니며, 결국 당사자다. 사건을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람도 당사자일 수밖에 없으므로, 당사자의 주도권이 가장 잘 보장되는 조정 절차가 불합리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조정에 임하는 자세 양보해야 한다. 조정은 당사자 간의 타협을 통하여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고 대체로 당사자는 서로 이해관계가 상반되므로 양보를 해야 조정이 성공한다. 본인이 참석해야 한다. 변호사에게 소송을 위임한 경우라도 조정 절차에는 본인이 참석하는 것이 좋다. 판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고, 상대방의 입장을 직접 들을 수 있으며,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상생하는 방법도 있다. 본인에게 크게 불리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크게 배려하는 방법도 있다. 상대방이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쟁점에 관하여 양보하더라도 본인에(p. 189)게 크게 불리하지 않은 경우도 있으므로, 상생하는 방법을 찾아본다. 집행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소송을 하는 종국적 목적은 대체로 승소 판결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돈을 받아내기 위함이다. 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더라도 집행 절차에서 돈을 받아내는 비율은 생각보다 낮다. 조정 절차에서는 돈을 받아내는 방법도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있으므로 유리하다. 원고는 5천만 원을 고수하고 피고는 3천만 원을 고집할 경우 4천만 원 선에서 타협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때로는 5천만 원으로 정하되 3개월 내에 3천만 원을 가져오면 나머지 2천만 원을 포기하는 방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싸우는 것은 금물. 간혹 조정실에서 상대방과 말이나 몸으로 싸우는 사람이 있다. 사연이 있겠지만 판사 입장에서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자신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풀 수 있는 자리를 어렵게 마련했는데 불만을 터트리는 자리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불합리한 처사다. 그 사건이 해결 되지 않을 경우 가장 손해를 보는 사람은 판사도 아니요 변호사도 아니요 바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판사의 설명에 귀 기울인다. 법원이 조정 절차를 주도하(p. 190)는 경우 판사로부터 사건 전반에 관한 설명을 듣게 된다. 판사는 내가 불리한 점, 내가 유리한 점을 나누어 설명할 것이다. 잘 들으면 판사가 생각하는 바를 엿볼 수 있다. 특히 2심이라면 사건 처리 방향이 대부분 결정되었다고 보면 된다. 민사 사건의 경우 대법원에 상고를 해서 2심 판결이 깨지는 비율이 10퍼센트가 안 된다는 점, 사실 인정은 원칙적으로 2심에서 하게 되어 있는 점을 고려할 때, 2심 재판부의 결론은 존중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내 입장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좋다. 마무리(롯데자이언츠의 마무리는?) 집안에 송사가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적당한 선에서 털고 나오는 것도 마음의 평화를 찾는 좋은 방법이다. '조금 손해 본 것은 다른 일을 해서 보충하면 된다.' 이런 생각으로 조정에 임할 수는 없을까요?(p. 191). 재판 속의 문학 내가 현실에서 맡은 재판은 그렇게 감동적이지 않았다(p. 304).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문학이 재판에서 많은 것을 차용하지만 재판은 문학에서 차용하지 않고 순수함을 고수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판사는 많은 경험을 해야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제한적인 경험을 할 수밖에 없다. 문학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문학은 보편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고, 재판은 구체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며, 양자는 서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판사들이 다 가난했던 경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김훈의 《흑산》을 읽고 나면 가난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가령, 배고픔을 면하자면 오직 먹어야 하는데 많은 끼니 중에서도 지금 당장 먹는 밥만이 배를 채운다는 내용이 그렇다. "아침에 먹은 밥이 저녁의 허기를 달래줄 수 없으며, 오늘 먹는 밥이 내일의 요기가 될 수 없음은 사농공상과 금수축생이 다 마찬가지다." 내가 10년 전 처리한 사건 중 20대 청년이 공무집행 방해죄로 구속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생모라고 밝힌 사람이 탄원서를 보냈다. 오래전에 헤어진 아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자신이 책임지고 선도를 할 테니 선처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p. 305). 재판을 하며 방청객을 둘러보니 유난히 눈에 띄는 분이 있었다. 피고인석 옆에 앉아 대화를 하게 하였더니 피고인을 껴안으면서 "이제 괜찮아, 엄마가 있잖아"라고 말했다. 피고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생모와 시선도 마주치지 못하였다. 생모를 만났으니 이제 마음을 잡지 않겠는가 생각하고 집행 유예 판결을 선고했고, 피고인에게 책을 선물하면서 그 책 한 쪽을 읽어주었다. 알프레드 디 수자의 시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다. 내가 10년 전에 처리한 사건 중에 피고인이 자살을 하려고 여관에 불을 질러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불은 크게 번지지는 않았고 다친 사람도 없었다. 선고하는 당일 피고인에게 자살을 열 번 외치게 하였다. "자살자살자살자살.... 이렇게 열 번 하면 본인은 '자살' 이라고 말하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살자'로 들립니다.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실패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자살에 실패해서 살았지 않았습니까?" 그러고서 피고인에게 《살아 있는 동안 해야 할 49가지》란 책을 선물했다. 나는 이런 재판을 하게 된 배경 중 8할이 문학 덕분이라고 생각한다(p. 306).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 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어쩌면 좋은 문학과 좋은 재판은 그 모습이 모두 비슷할지 모른다.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공동체의 보편적 가치를 질문할 때, 주제와 이야기가 딱 들어맞을 때 독자들은 감동한다. 판사들이여! 《유토피아》를 쓴 토마스 모어가 영국의 대법관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작가들이여! 긴장하시라. 대한민국의 판사도 또 다른 '유토피아'를 쓸지 누가 알겠는가?(p.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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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2】 죽음을 늘 준비하며 살자
KBS 《아침마당》, 《강연100℃》 등에 출연해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위로와 공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 호스피스 의사 김여환의 에세이 《내일은 못 볼지도 몰라요》. 극심한 암성 통증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누구보다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임종 선언을 했던 저자 김여환.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꼼꼼히 기록한 이 책은, 삶이 완성되는 마지막 순간을 위해 더없이 소중한 오늘을 ‘있는 힘껏’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아내야 한다는 인생의 진리를 전하고 있다-교보문고. 이 책은 호스피스 의사가 수많은 죽음을 보고 삶과 죽음에 대해 느낀 것을 쓴 것이다. 많이 유익했는데 현재 절판됐다. 사람의 일생 중 가장 힘든 시기는 보증을 잘못서서 거액의 부도를 냈을 때나 남편이 바람을 펴서 이혼할까 말까 망설일 때가 아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인생의 반전 같은 일말의 빛조차 기대할 수 없는 시간들, 즉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까지의 '짧은 삶'이다. 그 시기를 잘 보내야만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을 온전한 나의 인생으로 만들 수 있다. 그래야만 남겨진 사람들의 인생도 편안해질 수 있다(p. 8). 그렇다. 나는 이 세상에 남들보다 조금 먼저 작별 인사를 건넨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토록 자명한 삶의 진리를 힘겹게 깨달았다. 만약 우리에게 내일이 오지 않을 것임을 안다면, 오늘 우리의 삶은 결코 평범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만약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내일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면, 한 번 더 사랑한다 말하고, 한 번 더 안아주어야 하며, 오늘 깃든 행복을 있는 힘을 다해 누려야 한다. 이렇게 수많은 '오늘의 삶'이 모일 때 삶의 아름다운 결과물은 비로소 완성 된다. 그러므로 "내일은 못 볼지도 몰라요."라는 말에 숨어 있는 참된 의미는 오지도 않은 내일에 대한 불안과 분노, 두려움과 슬픔에 오늘의 행복을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 더 사랑하고, 오늘 더 행복해야만 한다(p. 10). "2012년 8월 21일 12시 42분, 신복연 할머니는 사망하셨습니다." 나는 할머니가 더 이상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사실을 말했다. 그리고 통증 없이 편안히 좋은 곳으로 떠나셨다는 위로의 말도 빼놓지 않았다. 짤막한 사망 선언 뒤에는 언제나 그 마지막 순간을 지키고 있던 가족의 대성통곡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오늘은 조용했다(p. 22). 할머니의 둘째 딸이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우리 엄마가 평소에 유언을 했어요. 내가 떠나면, 울지 말라고. 자식들이 우는 소리가 들리면 뒤 돌아보느라 떠나는 것이 힘드니, 울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어요." "아...하여간 대단하세요. 입원 내내 웃지 않으신 날이 없었는데, 그런 아름다운 유언까지 하신 줄은 몰랐어요. 제가 들어본 유언 중에 가장 훌륭한 유언인 것 같아요." "과장님, 그렇죠! 우리 엄마가 암에 걸렸다고 하니까, 동네 사람들이 이제 꽃 한 송이가 지는구나, 했다니까요." 곱게 아껴두었던 꽃분홍색 한복으로 갈아입고, 흰 양말까지 정갈하게 신은 신복연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살아 있는 그 누구보다도 따뜻해 보였다(p. 23). 짧은 글 한 편을 쓸 때에도 마지막에 무슨 말을 쓸까를 생각하면서 쓰면 글의 흐름이 매끄러워지듯이, 인생도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고 살다 보면 들쭉날쭉한 인생이 일관성 있게 변한다. 타인과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자기 자신과 먼저 소통해야 한다. 자신의 마지막 순간과 소통하면 인생의 해답을 얻을 수 있다(p. 25). 자신과 만나려면 가장 낮은 곳으로 가야 한다. 그러므로 임종실은 부끄럽지만 가장 볼품없고 꾸밈없는 자신의 민낯이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신 있게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만남은 바로 '나의 마지막'이라고(p. 26). "호호호, 난 아직 여기 입원할 단계는 아닌 걸요." "아직은 마약성 진통제를 쓸 만큼 아프지는 않아요." "며칠 전에도 산에 다녀올 만큼 괜찮았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멀쩡하게 걸어 들어오는 말기 암 환자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건강해 보이는 말기 암 환자들이 한두 달 뒤에는 누런 황달이 오거나 폐렴이 와서 황망히 떠나버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남겨진 시간에 대해 불안해하거나 초조해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그 짧은 시간에 환자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칠순 잔치를 하든지, 마지막 콘서트를 하든지, 이혼한 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들을 찾아주는 일들 말이다. 그래도 나도 한 번쯤은 환자를 살려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모두가 죽는다고 포기했던 말기 암 환자가 완치되는 일이 우리 병동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했다. 환자들은 입원해서 퇴원(p. 45) 할 때까지 평균 27일을 살았다. 호스피스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역시 기적이란 부질없는 비현실적인 희망이라는 것을 확신 하게 됐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가슴 저리게 갈구하기도 하고 신에게 떼를 쓰며 의지하기도 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적이겠지만,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이 훤히 보이는 나로서는 그렇게만 하다가 환자를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런 애절한 생각을 할 시간이 있으면 조금밖에 남지 않은 삶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오랜 경험을 통해 내린 슬픈 결론이었다. 사람이 좀 민민하고 삭막하게는 되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이것이 옳았다(p. 46). 말기 암 환자가 되면 환자와 가족은 육체와 정신적으로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과 맞닥뜨린다. 푸시시한 구차한 모습으로 마지막을 보낼 때쯤이면 원치 않았던 현재 시간이 살다 남은 찌꺼기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약한 정신 때문이 아니라 몸이 약해지기 때문에 마음까지 통째로 흔들린다. 심지어 어떤 환자는 "잠자듯이 가는 그런 약 있잖아."라고 노골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말기 암 환자가 안락사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p. 56). 비참한 마지막은 말기 암에 걸린 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살다 남은 삶이라고 쓰러져버리는 마음이 만드는 것이다. 떠날 사람은 남아 있을 이를 위해 조금 남은 삶을 성실히 살아가고, 남아 있을 사람은 떠날 이가 세상에서 사랑받다가 가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도록 노력하면 서로 덜 힘들다. 처음과 마지막까지, 모두가 촘촘히 내 인생이기 때문이다(p. 58). 세상은 가벼움과 무거움이 서로 경계를 불분명하게 가른 채 섞여 있다. 어떤 부분은 내가 그보다 가볍고, 어떤 부분은 내가 그보다 무겁다. 그렇게 어우러져서 세상은 좀 더 좋게 변한다. 그러나 '죽음이 다가오는 것'과 같은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가벼움과 무거움의 경계선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고함을 지르고 입원실 바닥에 소변을 보는 한 할아버지 때문에 사흘 밤낮 동안 시달린 환자들이 하소연을 했다. 할아버지를 간병하던 할머니는 "환자가 병원에 자러 왔나요?"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진정제도 못쓰게 하고 1인실로 가지도 않았다. 그런가 하면 뇌종양에 걸린 12살짜리 소녀는 과자를 들고 병실을 누비며 "아저씨, 빨리 나으세요."라고 하면서 환자들에게 나눠주었다. 한 신문 기자가 말기 폐암 환자에게 물었다(p. 67). "인생의 선배로서 우리에게 해주실 말씀이 없으신지요!" 후덕하게 생긴 환자는 가지고 있던 옷가지며 살림살이를 싹 정리할 정도로 죽음을 잘 받아들었다. 하지만 그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쓸쓸하게 대답했다. "저는....그런 것은 선배가 되고 싶진 않은데요." 그렇다. 죽음이란 일평생을 별 탈 없이 살다가 90살이 되어 마음 독하게 먹고 미리 준비해도 어려운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닥뜨리는 죽음은 아무리 노력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법이다. 죽어가는 사람을 많이 돌본 의사로서 한 가지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이 먼저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남은 사람들 걱정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나 때문에 끼니를 거를까 봐, 나를 잃은 슬픔으로 행여 병이라도 생길까 봐, 경제적으로 힘들까 봐 등등.... 그들은 사소한 걱정을 몰래 했다. 남은 사람들은 그 마음을 알까? 임종실은 섞일 수 없는 삶과 죽음이 뒤엉켜 있고, 살아남은 이들이 비통함에 눈물을 흘리는 작은 방이다. 그러나 그곳을 거(p. 68)쳐 간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존재란 그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도 사랑하는 이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라고(p. 69). 예전에 나는 보기조차 딱할 만큼 남을 부러워했다. 뚱뚱할 때는 날씬한 사람을, 늦게 시작한 의사 생활이 비참하다고 느껴질 때는 처음부터 순탄하게 직장 생활을 하는 동료를 얄밉도록 부러워했다. 누군가는 잘된 사람을 부러워하면서 인생의 꿈도 생기고 삶을 개척할 의지도 생긴다고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 부러움이 오늘날의 나를 있게 한 계기는 되었을지라도 그 과정은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이제 내가 진실로 부러워하는 사람은 돈이 많거나,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입학했거나, 예쁘고 날씬하고 건강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어떤 삶이 자신에게 다(p. 92)가오더라도 묵묵히 잘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으며, 자신의 삶을 그 자체로 당당하게 살아내는 사람이다. 우리는 저마다 지닌 인생의 향기가 따로 있다. 그러니까 이제는 그 누구도 부러워하지 말자. 인생의 마지막에는 행복했던 자신의 과거조차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 시간에는 그 시간에만 누릴 수 있는 나만의 행복이 따로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마지막이 온 것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아쉬운데, 여러 가지 잣대로 부러워하면 병들어 있는 자신이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부러워하지 말자, 그대여! 인생이 아파도 마지막까지 이 세상을 그 누구보다 당당하게 살아내야 한다(p. 93). 불행히도 호스피스에는 죽음을 편안하게 수용할 수 있는 묘약 따위는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속사정을 들어주면 조금은 가벼워졌고, 끝까지 끈을 놓지 않고 가는(p. 108)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평범한 사실에 평안을 찾아갔다. 대식 씨의 어머니처럼 때로는 버리는 것보다 안고 가는 것이 더 홀가분한 인생도 있다. 그러니까 결국 안고 가는 사람, 버리고 가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 셈이다(p. 109). 잘 죽어가기 위해 우리가 정말 배웠어야 할 것은 죽음의 5단계를 외우거나 혼자서 관 속에 들어가 보는 체험을 하는 것이(p. 112) 아니다. "저는요, 이미 죽음을 다 받아들였어요."라고 말하면서 의젓하게 지내다가 진짜 마지막이 다가오면 불안에 떠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라기보다는 결과물이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신산스럽고, 일상은 상처와 갈등의 연속이다. 나에게 주어진 삶을 얼마만큼 잘 녹여내느냐에 따라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있을 마지막 날은 달라진다(p. 113). 어쩌면 인생은 쓰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저절로 쓰이는 소설책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지만 어떻게든 끝까지 살아내야 한다. 죽을 만큼 괴로워도 직접 해봐야 삶에 대한 사랑이 깊어진다. 사람들은 인생이 힘들어지면 앞으로 남은 여정이 얼마나 끔찍해질지 더 두려워한다. 남은 인생이 지금보다 더 불편해지더라도 초조해하거나 원통해하지 말자.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그대의 삶이 다른 누군가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자살이라는 '고의로 스스로를 죽이는 행위'를 생각할 만큼 견딜 수 없이 힘들다면 적극적으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아무 상관도 능력도 없는 사람에게조차 알려야 한다. 마음의 피눈물은 말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상처는 치유될 수 없다. 애써 고통을 삼키지 말자. 누구라도 도와줄 사(p. 120)람을 찾아다녀라. 자존심 따위 내세울 때가 아니다(p. 121). 치통이 아무리 심해도 한꺼번에 진통제를 다섯 알씩 먹지는 않는다. 통증을 잡으려다 사람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타이레놀도 하루에 여섯 알을 초과하면 진통의 효과는 증가하지 않고 간에 부담만 준다. 이렇게 일반 진통제는 일반적으로 정해져 있는 용량을 초과하면 통증에 대한 효과보다는 약물에 대한 부작용이 심해지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용량의 한계가 있다. 이것을 약의 천장 효과(ceiling effect)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천장 효과가 없는 약이 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많이 쓰이는 마약성 진통제이다. 그것은 일반 진통제와 달리 많이 쓰면 쓸수록 통증이 잘 조절된다. 더군다나 날록손 (naloxone)이라는 해독제까지 있으니 '모르핀'이야말로 신이 세상을 떠날 때만은 아프지 말라고 인간에게 특별히 내려준 '마지막 선물'이다. 사망 원인 1위인 암은 사람이 떠날 무렵에 부쩍 커진다. 암(p. 129)덩어리가 커지면 정상 조직을 파괴하는 묵직한 암성 통증도 당연히 심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무 일찍부터 진통제를 쓰기 시작하면 통증이 가장 극심한 마지막 순간에는 정작 쓸 수 있는 약이 없을까 봐 전전긍긍한다. 모르핀을 최후의 약으로 넘겨 두었으면 하고 부탁까지 한다. 그러나 통증에 관한 한 모르핀은 쓰면 쓸수록 효과가 있는 약이다. 이러한 마약성 진통제의 비밀을 알려주면 누구나 "진짜 그런 약이 있나요?" 하고 물으며 신기해한다. 환자나 보호자는 어차피 살릴 수 없다면 고통 없이 떠날 수 있다는 확신만으로 가느다란 희망을 갖는다. 모르핀은 우리를 죽음의 공포보다 더 끔찍한 암성 통증에서 해방시켜주는 이로운 약제이다. 우리는 지금보다 좀 더 정확하게 모르핀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아직도 말기 암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환자, 보호자, 의료진의 모르핀에 대한 오해와 두려움으로 마약성 진통제를 거부하면서 의미 없는 통증에 시달리다가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인생의 마지막 의사로서 당부한다. 언젠가 당신에게 그때가 오면 신이 내린 선물, 모르핀을 거절(p. 130)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통증이 없으면 죽음의 맨 얼굴을 똑바로 응시할 수 있고, 고통 없는 죽음은 결코 폭력적이지 않을 것이다(p. 131). 내일 도사리고 있는 재앙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살아감 속에 죽어감의 흔적을 묻히는 것이다. 내일이라는 것이 그 누구에게도 완벽하게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 오늘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심코 거칠게 한 말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오지도 않을 비겁한 내일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너무 많이는 양보하지 말자(p. 163). 말기 암 환자가 되면 환자와 가족은 육체와 정신적으로 이제까지는 경험하지 못한 일을 경험하게 된다. 가족 간의 갈등이 있었다면, 분명히 그 갈등은 확대된다. 문제의 중심은 늘 '사랑과 돈'이다. 거기에 종교적인 문제가 곁들여지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p. 174). 살다 보면 마음 내키지 않는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하고 싶은 일만 해도 짧은 인생인데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 큰 손해를 볼 것만 같다. 젊은 시절에는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를 때가 많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나 매 순간 저마다 해야 할 일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해야 할 일을 하다 보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훤히 보이고 그때 용기 내어 그 일을 하면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것이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기도, 또 속절없이 짧기도 하다. 그러기에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실수 없이 하려면 마음에 내키지 않더라도 '해야 하는 일'을 먼저 하면서 견뎌보는 것쯤은 각오해야 한다(p. 187). 웰다잉(well dying)은 삶의 완성이 아니라 삶의 결과물이다. 누구나 손쉽게 받을 수 있는 선물은 더군다나 아니다. 저마다 주어진 힘든 삶을 잘 살아내야만 누릴 수 있는 삶의 마지막 축 복인 것이다(p. 203). 죽음을 깊숙하게 연구하고 싶어서라든지 내 성격이 원래 우울해서 호스피스 의사가 된 건 아니다. 나는 호스피스 일을 해오는 동안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사람도 죽음에 이르기 직 전까지는 살아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누구도 아프지 않게 하루를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거창한 죽음의 여의사가 아니라 그저 생명의 에너지가 다 할 때까지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의사로서 당연한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름이 주는 거부감 때문에 국내 암 환자의 마약성 진통제 사용률은 그리 높지 않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국내 사용량은 모르핀으로 환산했을 때 환자 1인당 연간 45mg에 불과하다. 미국 693.44mg, 영국 334.52mg은 물론 세계 평균 58.00mg보다도 낮다. 통증을 효과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안 쓰는 것이다. 아직도 대한민국 사람들은 아프면서 죽어간다. 의사 입장에서 보면 죽음이 삶의 종착역인지 따위는 일단 환자의 통증을 덜어준다음에 생각할 일이다. 암 환자의 통증은 당사자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다. 출산의 고통이 10점 만점에 7~8점이라면 암 환자의 통증은 10점 이상도 간다.암성 통증은 암이 진행되는 생명의 마지막에는 더 심해지고, 그(p. 215)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환자와 가족을 더더욱 애타게 한다(p. 216). 인생을 산다는 것은 세상에 놓인 하나의 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하지만 그저 다리를 건너는 일에만 집중한다면 세상의 아름다움은커녕 다리를 뒤흔들 고통과 혼돈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다. 뜨거운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자기 삶의 아웃사이더가 되어보기를. 삶이 끝난 뒤에 죽음이 오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죽음이 있음을 알아차리기를,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게 되기를 바란다(p.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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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5】 책 앞에서 겸손함을 배우다
- 일본의 대표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가 던지는 책 이야기. 종이책과 전자책, 도서관과 사서, 학교 교육, 출판계, 독립서점 등 책을 둘러싼 이제껏 접하지 못했던 이야깃거리를 총망라한다. 깊은 성찰을 토대로 한 선생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즐거운 화두가 된다-교보문고 책과 도서관에 대한 저자의 견해가 흥미로웠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당연한 것이지만 말이다. 책과 도서관은 우리의 무지를 깨닫게 하고 열린 창을 내어주기에 늘 가까이 해야 한다. 무지를 가시화하는 장치 도서관은 그곳을 찾은 사람들의 '무지'를 가시화하는 장치입니다. 다시 말해 도서관은 내가 얼마나 세상을 모르는지를 가르쳐 주는 장소이지요. 거기서는 숙연하게 자세를 바르게 하고 '1초를 아까워하며 배워야 한다'는 결의를 다지게 됩니다. 도서관의 교육적 의의는 그것이 전 부일 겁니다. 만약 도서관 서가가 '자신이 이미 읽은 책과 앞으로 읽어야 할 책'으로 채워져 있다면 사람은 어떤 느낌을 받을까요. 자신이 세상 대부분의 일을 대충은 안다고 굳게 믿는 인간만으로 구성된 사회가 얼마나 답답하고 정체 되고 바람이 안 통하는 곳일지, 상상력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짐작할 겁니다. 도서관에 "모두가 읽고 싶어하는 베스트셀러만 비치하고 읽히지 않는 책은 버려라. 그렇게 하면 도서관 방문자 수가 늘어날 것이다"라고 말하는 이는 지성과 인연이 없는 인간입니다(p. 31). 잠시 있다 보면 숨쉬기가 힘들어져서 왠지 빨리 나오고 싶어지는 집이 있는데요. 저의 경우는 책이 없는 집이 그렇습니다. 아무리 집이 깨끗해도 오래 있으면 숨쉬기가 힘들어집니다. 산소 결핍 상태가 되는 거죠. 책이 없으면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책이란 '창'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세계로 난 창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 세계와는 다른 세계와 통하는 창입니다. 그래서 책이 있으면 한숨 돌릴 수 있습니다. 밖에서 시원한 공기가 불어오는 느낌이 들죠. 제 친구 집에 가면 대체로 그런데, 화장실에 책이 있습니다. 우리 집에도 화장실에 책이 굉장히 많이 쌓여 있 습니다. 화장실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에 책이 몇 권쯤 놓여 있는 것만으로 어딘가 널찍한 곳으로 나가는 느낌이(p. 59)듭니다. 넓은 곳에서 배설 작업을 한다는 느낌이 드는 거죠. 그러므로 화장실에 읽고 싶은 책이 없을 때는 화장실에 가기 전에 책을 찾습니다. 집 책장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앗, 앗...." 하면서 "음·····. 이것도 아니고 저 것도 아니고" 하며 책을 고릅니다. "오, 이거다!" 하고 정하면 그대로 화장실로 돌진합니다. 책이 없으면 화장실이 좁게 느껴집니다. 책을 펼치면 왠지 해방감을 느끼고요. 책이 가진 외부 세계로의 개방 효과가 아닐까 합니다(p. 60). 도서관이 거기에 들어온 사람에게 가르치는 것은 아마도 무한이라는 개념일 겁니다. 거기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인생의 유한성'과 '앎의 유한성'을 자각하죠. 이 이상 교육적인 일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얼마큼 자신이 세상을 모르는가, 세상을 모르는 채로 일생을 마치는가. 앞으로 평생을 바쳐서 아무리 똑똑해지려고 노력한들 이 거대한 앎의 저장소 가운데 끄트머리 한구석밖에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죠. 다만 끄트머리 한구석 이라고 해도 '내가 이 무한한 장소의 일부만큼은 닿을 수 있고 잘하면 그 일부가 될 수도 있겠구나' '이 무한한 장소에 내가 만들어 낸 것을 보탤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고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지적' 상태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을 한마디로 하면(p. 64) '조심스러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무한한 삶에 대한 '예의 바름'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내가 얼마나 세상을 모르는지, 내 앎이 닿을 수 있는 범위가 얼마나 좁은지에 관한 '유한성의 자각'이 지적 상태입니다. 자신의 유한성을 자각할 수 있는 것은 눈앞에 이렇게 '무한한 앎을 향해 열린 도서관'이 있기 때문이고요. 저는 도서관에게서 제대로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저와 도서관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진 거죠(p. 65). 책이란 외부로 통하는 문입니다. 책은 독자를 '지금이 아닌 시대'와 '여기가 아닌 장소'로 데려가는 힘을 지녔습니다. 그래서 책 한 권이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닫힌 공간에 자그마한 구멍이 생기고 그로부터 신선한 바람이 불어 들어옵니다. 그 바람 냄새를 맡은 사람들이 책 주위로 모여듭니다. 이것이 21세기 코뮌 부활의 계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p. 135). 도서관의 본질적 기능은 책장 사이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읽은 적 없는 책, 읽을 일 없는 책에 압도당하는 체험을 선사하는 것입니다. 도서관을 찾을 때마다 우리는 자신이 이만큼이나 앎이 부족하다는 사(p. 153)실에 놀라게 됩니다. 이 놀라움이 도서관에 다니는 보람 이죠. 고대의 철인이 가르쳐 주듯이 모든 배움은 '무지의 자각'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오로지 거기서밖에 시작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얼마큼 모르는가를 아는 사람만이 배움으로 향합니다. '내가 무엇을 아는지'에 관한 목록을 빼곡히 만드는 것이 지적 활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은 결국 배움과는 인연이 없습니다(p.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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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5】 책 앞에서 겸손함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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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4】 만약 암에 걸린다면...
- 저자 한만청은 서울대 명예 교수, 前 서울대 병원장이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 의대 펠로 3년을 거쳤으며 서울대 의대 교수와 서울대 병원장을 지냈다. 서울대 병원장 재직 당시 ‘ 연구 중심, 환자 중심 병원으로의 개혁’을 이끌며 체계화된 의료 서비스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국내 최초로 북미, 일본, 유럽 방사선의학회 명예 회원이 됐으며 한국의 영상의학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교보문고. 암에 걸린 의사가 자신의 치유기를 적은 책이다. 98년 간암 후 폐로 전이됐지만 완치되었다가 91세에 사망했다. 어느 날 내게 찾아온 악동 같은 친구, 암 병이란 게 무엇인가. 어느 날 문득 내 몸에 찾아와서 살다가 때가 되면 돌아가는 손님 같은 존재가 아닌가. 암이라고 다를 게 없다. 오히려 암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손님이 아닌 친구 같은 존재다. 다른 병과는 달리 애초에 내 몸 안에서 함께 자라다가 뭔가 좀 못마땅한 구석이 있어 내게 반기를 들고 심통을 부리는 악동 같은 친구 말이다. 암이란 내 몸 안에서 착실히 제 몫을 해내던 세포가 어느 날 갑자기 미쳐서 변종이 된 것이다. 아직 원인은 찾지 못했지만 DNA 수준에서 뭔가 못마땅한 구석이 있어 내 몸 안에서 정상적인 세포의 역할을 포기하고 변해버린 것이 다름 아닌 암이다. 마치 영화 〈헐크〉(p. 37)에서 얌전한 주인공이 분노를 느낄 때마다 녹색 괴물로 변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놈 역시 처음에는 내 몸 안에서 충실히 제 역 할을 하던 존재였다. 그래도 지금은 어떻게든 없애야 할 적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암은 적으로 돌려 싸운다고 해서 물러날 존재가 아니다. 애초에 내 몸의 일부였기 때문에 내 몸의 약점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힘들이지 않고 내 몸을 잠식해갈 수 있는지 잘 안다. 그런 암을 대상으로 선전포고를 하고 적대시하고 경계하며 아우성치는 건 소모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암이란 존재를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무조건 싸워 이기겠다는 마음 보다는 어떻게든 잘 구슬리고 달래서 되돌려 보내야겠다는 그런 마음가짐 말이다(p. 38). 암과 맞닥뜨린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암을 두려워하고 거부하며 싸워서 이겨 없애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외면하고 거부해서 암이 떨어져 나간다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암은 그렇게 호락(p. 40)호락한 녀석이 아니다. "너 이놈 왜 왔느냐, 나가 떨어져라" 하며 도망 다니고 숨을 곳을 찾는 사이에 암은 이미 승전고를 울리며 우리 몸을 잠식해 버리고 만다. 단언컨대 두려워해서는 절대 암을 감당할 수 없다. 그렇다고 무조건 거부하고 싸우기엔 암의 위력이 생각보다 강하다. 그렇다면 찾아온 암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막연한 두려움 속에 방황만 할 것인가, 거부하고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싸우다 죽을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포기하고 말 것인가. 가끔 조언을 구하려는 암 환자들에게 내가 해주는 말이 있다.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이고, 그 맛을 씹으며 살자.' '맛'이라는 말이 너무 과장되었다면 이 말이 더 적절할지 모르겠 다. '차라리 잘 달래며 끼고 살자.' 암 환자가 기나긴 투병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가장 먼저 갖춰야 할 조건이 있다면 머릿속에 있는 암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일일 것이다. 암을 싸워 이겨야 할 적이 아닌, 함께 있는 동안 잘 끼고 살아야 할 친구라고 여기라는 말이다. 미국 임상암학회 회장은 200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연차학술대회에서 새로운 연구 성과와 앞으로의 치료 전망에 대해 발표를 하면서 "암은 결국 당뇨병, 고혈압, 심장질환 등과 같은 만성질환의 대열로 들어오고 있다"고 선언했다. 이제 암이란 존재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무시무시한 난치병(p. 41)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 말이 얼마나 무게가 있는가를 따지기 전에 동반자로서의 암의 새로운 면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희망적인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당장 마음속의 억압과 두려움을 버리고 이렇게 한번 외쳐 보면 어떨까. '너랑 나랑 한번 잘 살아보자, 그러다가 때가 되면 기분 좋게 돌아가라."(p. 42). 암에 걸린 당사자 입장에서 볼 때 내가 그 5퍼센트 안에 들어가 완치될 수 있는 확률은 반반이다. 결국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암에 대한 여러 가지 자료와 검사 수치들은 지금까지의 결과론적인 통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 통계가 어떤 개인의 경우를 저울질 하는 잣대가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심지어 어떤 암은 기수 자체를 명명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또한 어떤 암이라도 생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경우는 없다. 생존율이 떨어지고 검사 수치가 나쁘다고 절망해서는 안 된다. 그럴수록 '내가 이 통계의 긍정적인 수치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차라리 통계 자료를 희망의 증거로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나는 암 환자에게 누가 어떠한 자료를 제시하더라도 '나는 단 1 퍼센트의 생존자로 계산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p. 48)다. 그리고 통계상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취한 방법은 무엇일지 고민하고 연구하라는 말도 덧붙이고 싶다. 수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때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희망과 의지, 그리고 암을 돌려보낼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p. 49). 한번 뒤집어 놓고 생각해 보자, 항간에 떠도는 그 많은 약이 정말 안을 고치는 네 탁월한 효과가 있다면 전 세계적으로 암을 연구하는 수많은 학자가 그냥 보고만 있겠는가. 우리나라에만도 밤을 새워가며 암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수천에 이르는데 말이다. 수영할 줄 모르는 사람이 물에 빠졌을 때 사는 방법은 가만히 있는 것밖에 없다. 살려고 발버둥치는 대신 가만히 힘을 빼고 있으면 몸이 절로 떠오른다. 나는 암 환자들에게도 같은 말을 하고 싶다. 살고자 하는 의욕도 좋지만 약 복용에 있어서 만큼은 가만히 있는 게 수다. 약 이야기가 나오거든 차라리 귀를 틀어막아 버려라. 필요할 때는 담당 의사의 지시에 따라 그 효과와 부작용이 정확히 밝혀진 것만 쓰되, 가급적이면 쓰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약이다. 특히 목숨을 담보로 하고 있는 암 환자들의 경우에는 말이다(p. 126). 죽음에 대한 두 가지 태도 내가 보아온 암 환자들은 대개 자신에게 닥친 죽음이라는 문제에 대해 두 가지 태도를 보였다. 그 한 가지는 바로 죽음을 외면하는 것이다.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환자 한 명이 있었다. 나처럼 의사였던 그는 누가 보아도 그리 낙관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치료를 받고 있기는 했지만 언제 어떻게 상태가 악화될지 몰라 스스로 생활을 조절해 나갈 필요가 있었다. 본인이 의사였으니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죽음에 이를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알고 있었(p. 214)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죽음의 가능성을 조금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거나, 죽음을 모면하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평소보다 더 무리해가며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마치 이런 내게 어찌 죽음이 찾아들겠냐며 시위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병원에 있어야 할 시기에 여행을 가겠다고 나서는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심지어 수술 예정일을 일주일 앞두고 보통 사람이라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지방에서 친구가 출마를 하는데 자기가 직접 선거 유세를 도와야겠다는 것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말려도 말을 듣지 않던 그는 막무가내로 지방으로 내려가 버렸고, 수술은 뒤로 미뤄졌다. 물론 나중에 수술도 받고 치료도 계속했지만, 그는 결국 별다른 차도를 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게 되었다. 그는 어쩌면 눈을 감는 그 순간에도 이게 마지막이라 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암 환자들은 죽음의 실체를 외면하려 한다.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눈 가리고 귀를 막고 그럴 리가 없다고 도리질 치면서 스스로를 세뇌한다. "나는 절대 죽지 않아. 암에 걸린 사람이 다 죽어도 나는 살아남을 거야. 난 지금 죽어선 안 되니까." 죽는 순간까지도 그 믿음은 변하지 않았다.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도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맞게 되는 죽음을 그저 외면만 하다가 결국엔 미완성인 채로 삶을 끝내고 마는 것이다. 두 번째로 보이는 상태는 정신적인 공황이다(p. 215).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간 유대인이 있었다. 그는 수감자 중 95퍼센트가 처형당했던 생지옥에서 3년간이 나 죽음을 지켜보면서 자기 자신을 포함해 언제 죽을지 모르는 포로들의 심리 상태를 자세히 관찰하고 기록했다. 후에 정신과 의사가 된 그가 기술한 죽음의 실체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같이 끌려온 사람의 90퍼센트가 30분 내에 가스실에서 죽는다. 포로들은 그것을 보면서 충격과 공포에 빠져드는 1단계에 진입한다. 이들은 극도의 불안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너무 두려워 자살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지내던 포로들도 한 달 정도 지나면 처음과는 다른 2단계 상태로 진입한다. 이때부터는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일념만 남을 뿐이다. 일주일을 빵 한 조각으로 연명하며 얇은 천 조각만 몸에 걸친 채 혹한의 날씨에 철로 공사를 하고도 감기 한 번 안 걸리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다. 지금껏 배워왔던 의학 지식이 다 거짓투성이였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인간의 놀라운 적응력에 전율을 느낀다. 노동력이 있어야 가스실로 끌려가지 않기 때문에 포로들은 아침이면 돌을 주어다 면도를 한다. 면도를 하면 젊어 보이기 때문이다. 병약자를 골라 가스실로 보내는 명단을 작성할 때면 자기 이름을 빼고 다른 사람의 이름을 넣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한다. 그러나 이렇게 치열한 생존 경쟁을 치르며 살아가던 포로들의 마음에 또 다른 변화가 오면서 3단계로 진입한다. 자신의 인간답지 못함에 대한 자괴감과 무력감을 느끼면서 포로들은 점차 정신적인 무감각 상태에 빠져든다. 살겠다는 열망도 없어지고 죽겠다는 생각도 없어지는 정서적인 자멸 상태(p. 216)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바로 죽음을 눈앞에 둔 암 환자들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암 환자들은 닥쳐올 죽음을 무시한 채 맹목적인 낙관론을 펼치는가 하면, 아우슈비츠의 포로들처럼 무력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한동안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다가 결국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무방비 상태, 즉 정신적 공황을 맞는 것이다. 그런 단계에 이른 암 환자들은 분명히 살아 숨 쉬고 있음에도 절대 산 자의 모습이 아니다. 그렇다고 내 앞에 닥친 죽음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삶도 죽음도 아닌 그 중간 지점에서 그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정서적인 자멸 상태에 놓인 아우슈비츠의 포로들처럼 말이다 암과 함께 찾아든 죽음을 앞에 두고 애써 눈 돌려 외면하거나 고통에 겨워 정신적인 공황을 맞는 것, 나는 두 모습 중 어떤 것에도 고개를 끄덕여 수긍할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맞아들여야만 하는 때가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간의 힘으로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때가 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나는 죽음의 형태는 어디까지나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죽음 아닌가. 삶에 있어서 단 한 번 찾아오는, 내 삶의 대미를 장식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바로 죽음 아닌가. 처음 화학 치료를 받을 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p. 217). "만일 이 화학 치료가 효과가 없다면 한 번쯤 다른 약을 쓰는 2차 화학 치료에 응할 용의는 있다. 하지만 그것마저 듣지 않는다면 그 때는 치료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해보겠다." 고백하건대 그것은 결코 치료를 포기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나 스스로 위엄 있게 죽을 권리, 내 삶을 정리하고 마무리할 권리를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에 대해 무방비 상태로 있거나, 아니면 그 실체를 모르는 척 외면만 하고 있다가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리는 그런 죽음을 맞기는 싫었다. 나의 죽 음이므로 내가 선택해서 내가 원하는 형태로 맞이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권리를 놓지 말라 생각해보자. 환자에게 큰 충격이라는 생각에 가족들조차 환자 본인에게 사실을 감춘다. 그러다 우연히 그 사실이 밝혀지면 환자는 현실을 감당해 내기가 어려워 갈팡질팡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렇게 되면 지나간 삶을 정리하고, 떠날 자와 남을 자 사이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한정되어 있어 더욱 소중한 남은 날들을 지켜 갈 여유를 갖지 못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 불현듯 죽음을 맞이하고 그것으로써 모든 상황은 종료된다. 어찌 보면 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순간이 그저 방황과 절망으로 일관하다 부지불식간에 끝나고 마는 거다(p. 218). 그 시간은 누구도 돌이킬 수 없고 보상해줄 수도 없다. 그뿐인가. 결코 보상받지 못할 그 시간들은 남은 자에게 두고두고 상처로 남게 된다. 나는 나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모든 암 환자들에게도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암에 걸린 그 순간 나 자신의 상태가 어떠한가를 정확하게 파악 하라. 죽음이 얼마나 가까이 와 있는지 명확히 알라." 물론 최선을 다해 암을 돌려보내려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인력으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순간이 왔을 때는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권리를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위엄 있게 죽을 권리, 지난 한평생을 정리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낼 권리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마음가짐이 생길 때, 다시 말해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이를 자신의 손으로 과감히 취할 마음가짐이 들 때, 비로소 암이란 놈이 온전히 끼고 살아갈 수 있는 친구로 다가온다. 따지고 보면 암에 대한 두려움이 곧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외면하고 두려워하는 마음가짐이 사라진다면 그 매개인 암이 두려울 까닭은 더더욱 없다. 나아가 그 마음은 암을 끼고 살아 가는 모든 순간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그 결과가 설혹 죽음이라는 형태로 찾아올지라도 그것은 형벌이 아닌 선물이다. 교통사고를 당해 생사의 기로에서 살아난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고가 나는 순간에 그동안 자신이 살아왔던 삶이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가더라고. 이것은 짧은 시간이나마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고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p. 219)하는 신의 배려가 아닐까?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의 어르신들은 저승 갈 때 입고 갈 수의를 미리 지어두곤 했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입을 옷이기에 더욱 정성을 들여 한 땀 한 땀 손수 바느질을 했던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고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는 여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대면하고 있는 암 환자들에게도 그런 여유가 필요하다.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고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 들이는 여유만 있다면 남은 시간이 1년이든 10년 혹은 그 이상이 든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피하고 싶지만, 어떻게 해도 피할 수 없는 삶의 마지막 형태인 죽음. 그러나 죽음 역시 내 삶의 일부이기에 내 손으로 맞아들여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언젠가 찾아올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p. 220). 에필로그-'나'를 지킬 수 있는 힘은 내 안에 있다 병상에 있을 때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었다. 노인은 멕시코 만류에 조각배를 띄우고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한 채 허송세월만 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노인이 '살라오'를 만났다고 수군거린다. 살라오란 스페인어로 '최악의 불운'을 뜻한다. 마을 사람들은 끝끝내 고기잡이를 포기하지 않는 노인에게 연민과 조소를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인은 바다에서 거대한 청새치를 만나 싸움을 벌이게 된다. 사흘 동안이나 계속된 그 싸움에서 노인은 승리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청새치가 흘린 피 냄새를 맡고 상어들이 몰려 들고 만다. 노인은 변변한 무기도 하나 없이 상어 떼에 맞서 처절한 사투를 벌인다. 마침내 노인이 항구로 돌아왔을 때 청새치는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거대한 뼈를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그리고 침묵으로써 노인이 승리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내 처지가 노인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노인은 마을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자신의 배보다 큰 청새치와 차례로 맞서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승리했다'고 생각하는 순(p. 288)간 가장 어려운 상어 떼와의 사투에 직면하게 된다. 내가 간암 선고를 받고 가장 먼저 마주해야 했던 것도 사람들의 동정 어린 시선이었다. 사람들은 어쩌면 이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평생 환자를 돌본 의사도 결국 암으로 죽는구나.' 하지만 나는 간암이라는 존재와 대적한 끝에 내 몸에서 병을 돌려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겼다'는 승리감에 도취해 있는 사이에 더 큰 난관이 나를 덮쳐왔다. 완치된 줄 알았던 암이 폐로 전이된 것이다. 나는 처음 간암 선고를 받았을 때보다 암이 폐로 전이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더 흔들렸다. 그렇지만 주저앉아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내가 나를 믿지 않으면 절대 이겨낼 수 없다.' 의료진과 가족은 최선을 다해 치료에 매달릴 각오가 되어 있는 데, 정작 암에 걸린 당사자인 내가 흔들린다면 그 결과는 보지 않아도 자명했다. 그때부터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치료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항암 치료는 상상했던 것 이상의 고통이었다. 그야말로 벼랑 끝까지 내몰린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나 고통이 더해갈수록 삶에 대한 열망도 커졌다. 삶에 대한 희구는 내게 최선을 다하려는 의지를 불러 일으켰고, 나는 결국 『노인과 바다』의 노인처럼 지독한 살라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일단 환자 자신이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않는 치료의 주체로 서야 한다. 어느 누구도 아닌 나 자신만이 암을 몰아낼 수 있다는 믿(p. 289)음과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감히 말하지만 환자 자신이 믿음과 자 신감을 가지고 치료의 주체로 서지 않는 한 암과 지내는 시간은 혼란과 방황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환자가 치료의 주체로 서지 못하면 어떤 명약이나 치료법으로도 효과를 볼 수 없다. 특히 치료의 진전이 없거나 다른 치료법을 모색해야 할 경우, 환자가 겪게 되는 불안과 혼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때 많은 이들이 암 치료에 대한 갖가지 비방에 귀를 열고 마음을 내주게 된다.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더라도 혹시나 하는 헛된 희망마저 떨쳐 버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면 결국 남들도 다 하는데 나라고 못 하랴 싶어 출처도 분명치 않은 건강식품이나 비방에 몸을 내맡기고 마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환자 스스로 치료의 주체로 온전히 섰을 때만이 암에 대한 갖가지 뜬소문과 그릇된 정보,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상황에 굴복하지 않는 의연한 태도를 가질 수 있다. 또한 그랬을 때만 현대 의학도 자신이 가진 한계를 넘어 최대한의 힘을 발휘하는 최고의 조력자가 되어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암에 걸리고 나서야 생사의 갈림길에 선 환자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40년 동안이나 의사 노릇을 하면서도 알지 못했던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고 할까. 암에 걸린(p. 290)뒤 나는 의술이나 치료 행위만으로 사람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렸다. 바꿔 말하면 의사나 의사의 역할을 하는 제3자가 병 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되어 나로 인해 끝난다. 내 몸에 생겨난 암이라는 녀석을 잘 끼고 살다가 다독거려서 돌려보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지금 당장 자신에게 물어보자. '나는 지금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는가? 나는 나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 이런저런 이야기에 현혹되거나 현대 의학에 불신의 눈길을 보내기 전에 먼저 나 자신부터 돌아보자. 나는 과연 내 몸에 찾아온 암과 제대로 맞설 준비가 되어 있는지,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꿋꿋이 버텨낼 수 있는 믿음과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보라는 말이다. 그것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암이라는 존재가 찾아온 이 현실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노인과 바다』에서 마을 사람들은 꼬박 84일 동안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했으면서도 끝내 고기잡이를 포기하지 않는 노인을 비웃었다. 하지만 노인은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부심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거대한 청새치를 낚아 올린다. 비록 청새치(p. 291)는 상어의 공격을 받아 뼈만 앙상하게 남았지만 노인은 진정한 승리자였다. 노인은 자신을 믿고 자신과의 약속을 지킴으로써 불운 한 어부가 아닌 진정한 승리자로 거듭날 수 있었다. 암 환자가 진정한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암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싸움보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남의 말에 현혹되어 불안해하고, 남이 하는 대로 쫓아가려는 나약한 자신을 먼저 다독이자. 그리고 자신을 치료의 주체로 단단하게 세워야 한다. 아무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한 자기 의지로 암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자신을 말이다. 그렇게 흔들림 없는 의지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울 때, 희망은 어느새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다. 그리고 그때 암은 잠시 머물렀던 친구처럼 내 몸에서 멀리 떠나갈 것이다(p. 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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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14】 두려움의 이유 (딤후 1:7)
- 두려움의 이유 (딤후 1:7) 인간은 누구나 두려움이 있습니다. 두려움의 많고 적음의 차이뿐입니다. 죄가 들어온 후,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죄를 지으면 두려움이 있고, 의인은 담대합니다. 디모데후서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는 것이 아니고 사탄이 줍니다. 두려움의 이유가 너무나 많습니다. 건강 검진하고 결과를 기다릴 때 두렵습니다. 건강 검진 결과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두려워한다고 건강 검진 결과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두려움이 있으면 건강 검진하기 싫어하는데 두려워서 건강 검진 안 하면 병을 키우게 됩니다. 담대히, 자연스럽게 건강 검진해야 합니다. 담대함을 훈련해야 합니다. 과거의 고난과 어려운 시험이 있었던 트라우마가 큰 자가 두려워합니다. 지나간 과거에 매이지 말고 현재에 감사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만나서 무슨 이야기 하겠다고 말하면 신경 쓰이고 두렵습니다. 막상 만나보면 큰 일이 아니고 습관적으로 만나자고 하는 자도 있기에 만남을 자연스럽게 담대히 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무슨 말을 해도 담대하고 성령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만나서 대화하면 풀리고, 유익한 만남이기도 합니다. 만남을 스트레스로 여기지 말고 즐겨야 합니다. 실수하고 약점이 잡히면 두려움이 있습니다. 가능하면 약점을 잡히지 않도록 언행심사를 조심해야 합니다. 실수 없는 자는 없습니다. 실수를 통해 배워야 합니다. 미래의 일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내일은 나의 시간이 아니고, 인간은 미래를 알지 못합니다. 미래를 두려워하는 것은 쓸데없는 두려움입니다. 쓸데없는 염려와 두려움이 큽니다. 마음이 소심하고 좁은 자, 예민한 자가 두려워합니다. 마음을 넓혀야 하고, 지나치게 예민하지 말고,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모든 일이 진행됩니다. '실패할까, 관계가 깨질까'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실패 없는 인생은 없고, 온전한 관계는 없습니다. 실패하면 교훈 삼고 관계 깨지면 조심하고 고치면 됩니다. 관계 깨지지 않은 인생은 없습니다. 더 좋은 관계 위해 노력하고 최선 다하면 됩니다. 시기, 질투, 미움이 있을 때 두렵습니다. 사랑이 두려움을 이깁니다. 사랑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두려움은 스스로 속는 것입니다. 실패의 이유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두려워서 해야 할 말을 못하면 오해가 커지고 문제가 커집니다. 담대함과 용기가 성공의 비결입니다. 잠언 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 하리라 성령 받지 못하면 두렵습니다. 성령 받으면 담대해집니다. 날마다 성령의 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두려울 때 두려워하지 말라, 담대하라는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이사야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요한복음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두려움은 문제를 만들고, 담대함은 문제를 해결합니다. 사탄은 두려워하게 하고, 성령님은 담대함을 줍니다. 믿음은 담대함입니다. 도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오해하고 잘못 말해서 선동하면 사람을 두려워말고 담대히 말을 해야 합니다. 대화에도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두려움이 있으면 말문이 막히게 됩니다. 두려움이 실패와 멸망의 이유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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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14】 두려움의 이유 (딤후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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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13】 최고의 절대 명언
- 최고의 절대 명언 세상에는 유명하다는 사람들의 명언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명언은 참고가 되고 유익하나 진리는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면서 최고 절대 진리의 명언입니다. 성경의 절대 명언을 읽고 묵상하고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성경의 명언은 그대로 이루어지고 변하지 않는 명언입니다. 성경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명언입니다. 최고 지혜의 명언입니다. 예수님의 절대 진리 명언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6: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마태복음 5:3-12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사도바울의 명언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사도 요한의 명언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1서 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성경이 절대 진리의 명언임을 기억하고 읽고 묵상하고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성경의 명언은 우리에게 큰 힘과 격려가 됩니다. 성경의 명언은 생명의 명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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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13】 최고의 절대 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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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3】 전 법관의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 나의 일상을 풍요롭게 채우는 건 어떤 의미인가, 다른 사람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사람과 사회는 바뀔 수 있는가. 자작나무에서 지리산으로, 도스토옙스키에서 몽테스키외로, 일상에서 재판까지. 호의는 사람을,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 받은 것을 사회에 되돌려주라던 김장하 선생과의 추억, 법을 몰라 손해 보는 이들을 헤아리는 마음, ‘자살’을 시도했던 재소자가 ‘살자’는 다짐을 하게 만든 선물,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며 속절없이 흘리는 눈물, 그리고 건강한 법원과 사회를 향한 진심 어린 조언…교보문고 계엄을 도모했던 윤석열을 단죄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쓴 책으로 가볍게 읽을만하다. 착한 사람을 위한 법 2001. 4. 22. 법 없이 살 사람 착한 사람을 일컬어 '법 없이 살 사람'이라고들 한다. 법의 강제 없이도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사람이란 뜻이리라. 과연 착한 사람에게 법은 필요 없는 것일까? 법 없이 살 수 없는 사람 나는 법이 어떠하다고 정의할 만큼 경력도 풍부하지도 않고 타고난 재주도 없지만, 1983년 법학을 전공한 이래 지금까지 18년을 법과 함께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 (그런 점에서 나는 법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다) 착한 사람일수록 법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p. 19). 종종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나가곤 하는데, 거기서 늘 하는 말이 있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 나에게 힘써달라고 전화해봐야 아무 소용 없다. 사건이 터지기 전에 나에게 법을 물어보라." 도대체, 전 재산과 다름없는 300만 원을 전세금으로 걸면서 그 집이 경매 중인 사실도 확인하지 않고 계약하는 사람을 누가 구제해줄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들은 대개 사건이 터지고 난 뒤에야, 집주인을 사기죄로 고소했으니 수사 기관에 힘 좀 써서 집주인을 즉시 구속시켜 달라고 법조인에게 전화를 한다. 법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 하나는 보장적 기능이다. 일정한 행위를 금지하고 거기에 저촉되지 않으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게 해주는 측면이다. 여기서 '법 없이 살 사람'이 빛을 발한다. 다른 하나는 보호적 기능이다. 그러나 법의 이러한 보호적 기능도 경매 절차에서 배당 요구를 하는 임차인이나 노동자에게만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에 유의하여야 한다. 여기서 '법 없이 살 사람'은 초라하기만 하다. 착한 사람부터 법을 알자 판사로서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착한 사람은 법을 모르(p. 20)고, 법을 아는 사람은 착하지 않은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런 사건일수록 해결이 어렵고, 착한 사람을 보호하고자 궁리를 해보나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착한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 따로 있고 착하지 않은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 따로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법을 아는 사람에게 착하기를 요구할 것 인가? 불가능은 아니나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남는 방법은 착한 사람이 법을 아는 것이다. 그 길만이 법이 나쁜 사람을 지켜주는 도구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하는 지름길이다(p. 21). 형사 재판 잘 받는 방법들 중 2006. 12. 19. 진술 거부권 행사 자기에게 불이익한 사실에 대하여 진술을 거부하는 것은 헌법 및 형사 소송법에서 보장된 피고인 및 피의자의 권리입니다. 따라서 법정에서 판사로부터 불이익한 사항에 대하여 질문을 받을 때 진술을 거부하면 되겠습니다. 괘씸죄가 걱정된다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면 되겠습니다. 이것이 모순되거나 불합리한 답변을 하는 것보다 유리합니다. 답변 방식 법정에서 판사의 질문에 대하여 답변을 할 때는 결론을(p. 45) 먼저 말하고 이유를 나중에 설명하는 것이 효과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판사는 질문을 통하여 사건의 윤곽을 파악 하려고 하므로, 판사에게 결론을 먼저 말함으로써 판사가 설명이 더 필요한 부분인가를 쉽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습니다. 판사는 여러 각도에서 사건을 살피기 위하여 다양한 질문을 하는 것이므로, 설령 질문이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 일지라도, 판사가 상대방의 편을 든다고 섣불리 생각하지 말고 정중하게 답변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판사는 피고인의 진심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p. 46). 민사 재판 잘 받는 법 2007. 5. 17. 오늘 재판을 하면서 느낀 점을 토대로 민사 재판 잘 받는 방법을 적어보았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소송을 하려면 어려운 일이 많으므로 형편이 허락한다면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좋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였다고 해서 변호사에게 모든 것을 맡길 것이 아니라 수시로 소송 진행 정도를 확인하고 대응 방안을 함께 의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p. 61). 준비 서면을 간단명료하게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할 경우 법무사의 도움을 받거나 본인이 직접 준비 서면을 작성해야 할 터인데, 이때 주의할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준비 서면이라는 것은 당사자의 주장에 불과하므로 아무리 유리한 내용을 적어놓더라도 증거가 없으면 인정받기가 어려운 반면, 불리한 내용은 별도의 증거가 없더라도 본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따라서 준비 서면은 간단하게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증거가 뒷받침되는 내용일 경우 명료하게 주장을 펼치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준비 서면에 상대방을 비난하는 내용을 적을 경우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해롭다는 것입니다. 재판이라는 것이 당사자의 도덕성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고, 뚜렷한 증거 없이 상대 방을 비난할 때 판사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어렵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준비 서면에 똑같은 내용을 되풀이하여 적어내는 것도 피해야 합니다. 재판부는 많은 사건을 처리하고 있으므로 그들의 노고를 덜어주는 것도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p. 62). 소송의 승패는 증거에 달려 있습니다 민사 소송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증거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흥분할 필요 없이 차분하게 증거를 수집하여 제출하는 사람이 이길 수밖에 없습니다. 증거로는 애초 사건이 있었을 때 작성된 서류, 특히 상대방이 서명 또는 날인한 서류가 가장 효력이 강하고, 그 다음으로 제3자가 작성한 서류가 효력이 강합니다. 증인의 증언은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법정에서는 결론부터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직도 법정에서는 많은 사건을 처리하는 실정이므로 법정에서 판사로부터 질문을 받았을 때는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다음에 그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하는 것이 좋습니다. 조정 또는 화해를 권유받았을 때는 존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재판을 하다 보면 어느 당사자의 주장이, 설득력은 있으나 증거로 뒷받침 되지 않는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법적 관점으로만 해결할 경우 어느 당사자에게 더 가혹하기도(p. 63)합니다. 이길 승산이 있어 보이나 시간과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법원은 당사자에게 조정 또는 화해를 권고하는 데, 긍정적으로 검토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조정 또는 화해 절차에서는 집행에 관한 내용을 반영할 수도 있으므로 이러한 점에서도 조정 또는 화해의 효용은 높습니다. 증인 신문을 할 때는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허점을 짚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법정에 출석한 증인을 상대로 질문을 할 경우 "거짓말쟁이다" "양심도 없느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차분하게 증언의 허점을 짚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상대방이 질문하는 내용을 (미리 받을 수 있습니다) 검토하여 허점을 정리했다가 법정에서 질문 하는 것이 좋습니다. 바람 턱없이 부족한 내용일 것입니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소송을 잘해서 이길 사람이 이기는 재판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p. 64). 문제가 터지고 나서 소송을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은 문제가 터지기 전 검토를 충분히 하는 것입니다. 몇 천 만 원이 오고가는 계약을 체결할 때 변호사나 법을 잘 아는 사람에게 비용을 들여서라도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길게 볼 때 비용이 더 적게 듭니다(p. 65). 책을 읽는 이유 세 가지 2010. 2. 16. 책을 많이 읽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받는다. 무지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고전을 읽은 적이 없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가 보니 문화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투리는 말을 안 하는 것으로 감출 수 있었지만 무지는 감출 방법이 없었다. '장 발장'이 《레미제라블》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읽었다(p. 108). 무경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판사가 되고 보니 사건을 이해하기엔 내 경험이 너무 좁고 얕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도대체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고 거액의 거래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잡히면 처벌받을 게 뻔한 일을 왜 되풀이하는지,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경험을 늘리려고 해보니 이 또한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당장 법관 윤리가 문제였다. 그래서 생각해본 것이 두 가지다. 지금은 언론사 사장이 된 어떤 분이 사법연수생이었던 나에게, 법조인이 되면 초등학교 동창생과 꾸준히 만나라고 당부했던 기억이 떠올라 초등학교 동창생을 만나기로 결심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8년 동안 1년에 몇 회는 초등학교 동창생을 (때로는 부부 동반으로) 만났으니 어느 정도는 실천한 셈이다. 두 번째가 책을 읽는 것이었다. 장르를 구분하지 말고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어보자 하였던 결심이 여기까지 나를 데려왔다. 무소신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어릴 때부터 내성적이었다. 남녀 공학 중학교 시절 소풍(p. 109)을 가서 선생님의 권유에 노래를 불렀는데 가사를 까먹어 끝을 맺지 못할 정도로. 그때 불렀던 노래가 남진의 〈님과 함께〉였다. 고등학교 때는 교복이 중고라서 반장을 하지 못했다. 대학교 가서는 사투리 때문에 남 앞에 나서지 못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무슨 결정을 하려면 무척 어려웠다. 결정을 하고 나면 곧 후회를 하게 되고. 어느 날, 내성적인 이유가 소신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했다. 군대에서 정훈장교를 하게 되었고 정훈장교 하는 일이 장병 교육이다 보니 남 앞에 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어느 정도 해소된 뒤라서 그런 결론을 더욱 쉽게 내릴 수 있었다. 앞서간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그들의 생각과 내 생각을 서로 맞추어보는 과정을 통해 생각이 단단해져 소신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포함해 많은 책을 읽게 되었다. 사족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면 그 사람이 누구와 만나고 무슨 책을 읽는지 말해달라."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p. 110). 혼돈의 시기에 그나마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친구와 책 덕분이라 생각하니 이 글을 쓰는 감회가 남다르다. 모든 분들에게 책을 한번 읽어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p. 111). 책을 고르는 기준 2010.6.26. 책을 어떻게 고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저자를 보고 고른다 어떤 책을 읽고 감동을 받으면 그 저자가 쓴 책은 눈에 띄는 대로 사서 읽는 버릇이 있다. 예를 들면 고 장영희 교수의 《내 생애 단 한 번》을 읽고 《축복》 《살아온 기적 살아 갈 기적》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는 식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저자는 다음과 같다. 신영복 교수, 정 민 교수, 유시민 전 장관, 소설가 김 훈, 오지 탐험가 한비야,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열하일기》 전문가 고미숙 박사(p. 124). 주제어를 보고 고른다 제목이나 문장을 검색하여 관심 있는 주제어가 들어간 책을 고른다. 요즘 즐겨 찾는 주제어는 다음과 같다. 정의, 소통, 성찰, 역사, 철학, 인생, 여행, 행복. 이런 기준으로 고른 책은 다음과 같다. 《정의란 무엇인가》 《서양철학사》 《인도 여행》 《행복의 정복》 《무지개 원리》 《인생이란 무엇인가》 등등. 책 선택에 실패한 적은? 이런 기준으로 책을 골라 읽으면서 후회할 때가 제법 있다. 그러나 산 책은 다 읽는다. 재미가 없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책에 대하여는 독후감을 쓰지 않음으로써 복수를 한다. 블로그에 올린 책은 이중으로 검증을 거쳤다고 보면 된다. 지금껏 읽은 책은,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1천 권 정도 될 것 같다. 책을 고르는 장소는?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하여 고르는 경우가 많고 가끔 서점에 가서 고른다. 베스트셀러 항목과 새로 나온 책 항목을 많이 참조한다(p. 125). 블로그에 독후감을 쓰는 이유는? 독후감을 쓰다 보면 책 내용을 정리하는 효과가 있고, 글쓰기 훈련이 되며, 블로그에 저장해놓으면 다른 글을 쓸 때 인용하기 쉽기 때문이다. 나쁜 사람은 있어도 나쁜 책은 없다. 어떤 책에서도 스승 또는 반면교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께 독서를 권한다. 책이 여러분을 끌어올려줄 것이다(p. 126). 왕후박나무 2011.4.1 남해군법원 다녀오는 길에 경남 남해군 창선면 왕후박 나무를 만났습니다. 500년 이상 되었다고 합니다. 둘레에는 동백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후박나무는 녹나무과에 속합니다. 주로 방풍용으로 많이 심는다고 합니다. 남해군 창선면에 있는 왕후박나무는 천연기념물 제29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왕후박나무는 높이 솟구치지 않고 옆으로 퍼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람 부는 바닷가에서도 500년을 버틴 게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렇다면 이 나무는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낮추는 것이 자신을 높이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것을 말입니다(p. 140). 조영남의 노래가 있죠. 〈겸손은 힘들어〉. 그렇죠. 겸손은 힘듭니다. 공자 이래 2천 년 동안 성현들은 겸손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겸손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적습니다(p. 141). 조정에 임하는 자세 2013.4.28. 조정이란 조정은 법률 분쟁이 생겼을 때 판사의 판결이 아니라 당사자 간 타협을 통하여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를 말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법원에 접수된 사건 중 판결까지 가는 사건은 10퍼센트가 되지 않고 대개는 조정을 포함한 여러 가지 간이한 방법을 통하여 사건을 처리한다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 조정은 이길 사람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것이니 불합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길 사람이라는 건 미리 정해진 것은 아니고 재판 절차를 통하여 증거를 대고 법리를 세워야 하고 그것으로 판사를 설득해야 하며 최종적으로 대법원까지 가봐야 아는 것이다(p. 188). 그리고 1천만 원을 받기 위하여 소송 비용으로 500만 원을 들여야 한다면, 700만 원을 받고 소송 비용을 100만 원 선에서 지출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도 있다. 사건에 관하여 가장 절실한 이해관계자는 판사도 아니 고, 변호사도 아니며, 결국 당사자다. 사건을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람도 당사자일 수밖에 없으므로, 당사자의 주도권이 가장 잘 보장되는 조정 절차가 불합리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조정에 임하는 자세 양보해야 한다. 조정은 당사자 간의 타협을 통하여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고 대체로 당사자는 서로 이해관계가 상반되므로 양보를 해야 조정이 성공한다. 본인이 참석해야 한다. 변호사에게 소송을 위임한 경우라도 조정 절차에는 본인이 참석하는 것이 좋다. 판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고, 상대방의 입장을 직접 들을 수 있으며,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상생하는 방법도 있다. 본인에게 크게 불리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크게 배려하는 방법도 있다. 상대방이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쟁점에 관하여 양보하더라도 본인에(p. 189)게 크게 불리하지 않은 경우도 있으므로, 상생하는 방법을 찾아본다. 집행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소송을 하는 종국적 목적은 대체로 승소 판결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돈을 받아내기 위함이다. 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더라도 집행 절차에서 돈을 받아내는 비율은 생각보다 낮다. 조정 절차에서는 돈을 받아내는 방법도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있으므로 유리하다. 원고는 5천만 원을 고수하고 피고는 3천만 원을 고집할 경우 4천만 원 선에서 타협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때로는 5천만 원으로 정하되 3개월 내에 3천만 원을 가져오면 나머지 2천만 원을 포기하는 방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싸우는 것은 금물. 간혹 조정실에서 상대방과 말이나 몸으로 싸우는 사람이 있다. 사연이 있겠지만 판사 입장에서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자신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풀 수 있는 자리를 어렵게 마련했는데 불만을 터트리는 자리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불합리한 처사다. 그 사건이 해결 되지 않을 경우 가장 손해를 보는 사람은 판사도 아니요 변호사도 아니요 바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판사의 설명에 귀 기울인다. 법원이 조정 절차를 주도하(p. 190)는 경우 판사로부터 사건 전반에 관한 설명을 듣게 된다. 판사는 내가 불리한 점, 내가 유리한 점을 나누어 설명할 것이다. 잘 들으면 판사가 생각하는 바를 엿볼 수 있다. 특히 2심이라면 사건 처리 방향이 대부분 결정되었다고 보면 된다. 민사 사건의 경우 대법원에 상고를 해서 2심 판결이 깨지는 비율이 10퍼센트가 안 된다는 점, 사실 인정은 원칙적으로 2심에서 하게 되어 있는 점을 고려할 때, 2심 재판부의 결론은 존중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내 입장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좋다. 마무리(롯데자이언츠의 마무리는?) 집안에 송사가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적당한 선에서 털고 나오는 것도 마음의 평화를 찾는 좋은 방법이다. '조금 손해 본 것은 다른 일을 해서 보충하면 된다.' 이런 생각으로 조정에 임할 수는 없을까요?(p. 191). 재판 속의 문학 내가 현실에서 맡은 재판은 그렇게 감동적이지 않았다(p. 304).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문학이 재판에서 많은 것을 차용하지만 재판은 문학에서 차용하지 않고 순수함을 고수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판사는 많은 경험을 해야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제한적인 경험을 할 수밖에 없다. 문학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문학은 보편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고, 재판은 구체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며, 양자는 서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판사들이 다 가난했던 경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김훈의 《흑산》을 읽고 나면 가난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가령, 배고픔을 면하자면 오직 먹어야 하는데 많은 끼니 중에서도 지금 당장 먹는 밥만이 배를 채운다는 내용이 그렇다. "아침에 먹은 밥이 저녁의 허기를 달래줄 수 없으며, 오늘 먹는 밥이 내일의 요기가 될 수 없음은 사농공상과 금수축생이 다 마찬가지다." 내가 10년 전 처리한 사건 중 20대 청년이 공무집행 방해죄로 구속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생모라고 밝힌 사람이 탄원서를 보냈다. 오래전에 헤어진 아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자신이 책임지고 선도를 할 테니 선처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p. 305). 재판을 하며 방청객을 둘러보니 유난히 눈에 띄는 분이 있었다. 피고인석 옆에 앉아 대화를 하게 하였더니 피고인을 껴안으면서 "이제 괜찮아, 엄마가 있잖아"라고 말했다. 피고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생모와 시선도 마주치지 못하였다. 생모를 만났으니 이제 마음을 잡지 않겠는가 생각하고 집행 유예 판결을 선고했고, 피고인에게 책을 선물하면서 그 책 한 쪽을 읽어주었다. 알프레드 디 수자의 시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다. 내가 10년 전에 처리한 사건 중에 피고인이 자살을 하려고 여관에 불을 질러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불은 크게 번지지는 않았고 다친 사람도 없었다. 선고하는 당일 피고인에게 자살을 열 번 외치게 하였다. "자살자살자살자살.... 이렇게 열 번 하면 본인은 '자살' 이라고 말하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살자'로 들립니다.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실패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자살에 실패해서 살았지 않았습니까?" 그러고서 피고인에게 《살아 있는 동안 해야 할 49가지》란 책을 선물했다. 나는 이런 재판을 하게 된 배경 중 8할이 문학 덕분이라고 생각한다(p. 306).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 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어쩌면 좋은 문학과 좋은 재판은 그 모습이 모두 비슷할지 모른다.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공동체의 보편적 가치를 질문할 때, 주제와 이야기가 딱 들어맞을 때 독자들은 감동한다. 판사들이여! 《유토피아》를 쓴 토마스 모어가 영국의 대법관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작가들이여! 긴장하시라. 대한민국의 판사도 또 다른 '유토피아'를 쓸지 누가 알겠는가?(p.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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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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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3】 전 법관의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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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2】 죽음을 늘 준비하며 살자
- KBS 《아침마당》, 《강연100℃》 등에 출연해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위로와 공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 호스피스 의사 김여환의 에세이 《내일은 못 볼지도 몰라요》. 극심한 암성 통증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누구보다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임종 선언을 했던 저자 김여환.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꼼꼼히 기록한 이 책은, 삶이 완성되는 마지막 순간을 위해 더없이 소중한 오늘을 ‘있는 힘껏’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아내야 한다는 인생의 진리를 전하고 있다-교보문고. 이 책은 호스피스 의사가 수많은 죽음을 보고 삶과 죽음에 대해 느낀 것을 쓴 것이다. 많이 유익했는데 현재 절판됐다. 사람의 일생 중 가장 힘든 시기는 보증을 잘못서서 거액의 부도를 냈을 때나 남편이 바람을 펴서 이혼할까 말까 망설일 때가 아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인생의 반전 같은 일말의 빛조차 기대할 수 없는 시간들, 즉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까지의 '짧은 삶'이다. 그 시기를 잘 보내야만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을 온전한 나의 인생으로 만들 수 있다. 그래야만 남겨진 사람들의 인생도 편안해질 수 있다(p. 8). 그렇다. 나는 이 세상에 남들보다 조금 먼저 작별 인사를 건넨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토록 자명한 삶의 진리를 힘겹게 깨달았다. 만약 우리에게 내일이 오지 않을 것임을 안다면, 오늘 우리의 삶은 결코 평범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만약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내일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면, 한 번 더 사랑한다 말하고, 한 번 더 안아주어야 하며, 오늘 깃든 행복을 있는 힘을 다해 누려야 한다. 이렇게 수많은 '오늘의 삶'이 모일 때 삶의 아름다운 결과물은 비로소 완성 된다. 그러므로 "내일은 못 볼지도 몰라요."라는 말에 숨어 있는 참된 의미는 오지도 않은 내일에 대한 불안과 분노, 두려움과 슬픔에 오늘의 행복을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 더 사랑하고, 오늘 더 행복해야만 한다(p. 10). "2012년 8월 21일 12시 42분, 신복연 할머니는 사망하셨습니다." 나는 할머니가 더 이상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사실을 말했다. 그리고 통증 없이 편안히 좋은 곳으로 떠나셨다는 위로의 말도 빼놓지 않았다. 짤막한 사망 선언 뒤에는 언제나 그 마지막 순간을 지키고 있던 가족의 대성통곡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오늘은 조용했다(p. 22). 할머니의 둘째 딸이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우리 엄마가 평소에 유언을 했어요. 내가 떠나면, 울지 말라고. 자식들이 우는 소리가 들리면 뒤 돌아보느라 떠나는 것이 힘드니, 울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어요." "아...하여간 대단하세요. 입원 내내 웃지 않으신 날이 없었는데, 그런 아름다운 유언까지 하신 줄은 몰랐어요. 제가 들어본 유언 중에 가장 훌륭한 유언인 것 같아요." "과장님, 그렇죠! 우리 엄마가 암에 걸렸다고 하니까, 동네 사람들이 이제 꽃 한 송이가 지는구나, 했다니까요." 곱게 아껴두었던 꽃분홍색 한복으로 갈아입고, 흰 양말까지 정갈하게 신은 신복연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살아 있는 그 누구보다도 따뜻해 보였다(p. 23). 짧은 글 한 편을 쓸 때에도 마지막에 무슨 말을 쓸까를 생각하면서 쓰면 글의 흐름이 매끄러워지듯이, 인생도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고 살다 보면 들쭉날쭉한 인생이 일관성 있게 변한다. 타인과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자기 자신과 먼저 소통해야 한다. 자신의 마지막 순간과 소통하면 인생의 해답을 얻을 수 있다(p. 25). 자신과 만나려면 가장 낮은 곳으로 가야 한다. 그러므로 임종실은 부끄럽지만 가장 볼품없고 꾸밈없는 자신의 민낯이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신 있게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만남은 바로 '나의 마지막'이라고(p. 26). "호호호, 난 아직 여기 입원할 단계는 아닌 걸요." "아직은 마약성 진통제를 쓸 만큼 아프지는 않아요." "며칠 전에도 산에 다녀올 만큼 괜찮았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멀쩡하게 걸어 들어오는 말기 암 환자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건강해 보이는 말기 암 환자들이 한두 달 뒤에는 누런 황달이 오거나 폐렴이 와서 황망히 떠나버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남겨진 시간에 대해 불안해하거나 초조해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그 짧은 시간에 환자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칠순 잔치를 하든지, 마지막 콘서트를 하든지, 이혼한 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들을 찾아주는 일들 말이다. 그래도 나도 한 번쯤은 환자를 살려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모두가 죽는다고 포기했던 말기 암 환자가 완치되는 일이 우리 병동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했다. 환자들은 입원해서 퇴원(p. 45) 할 때까지 평균 27일을 살았다. 호스피스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역시 기적이란 부질없는 비현실적인 희망이라는 것을 확신 하게 됐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가슴 저리게 갈구하기도 하고 신에게 떼를 쓰며 의지하기도 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적이겠지만,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이 훤히 보이는 나로서는 그렇게만 하다가 환자를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런 애절한 생각을 할 시간이 있으면 조금밖에 남지 않은 삶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오랜 경험을 통해 내린 슬픈 결론이었다. 사람이 좀 민민하고 삭막하게는 되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이것이 옳았다(p. 46). 말기 암 환자가 되면 환자와 가족은 육체와 정신적으로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과 맞닥뜨린다. 푸시시한 구차한 모습으로 마지막을 보낼 때쯤이면 원치 않았던 현재 시간이 살다 남은 찌꺼기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약한 정신 때문이 아니라 몸이 약해지기 때문에 마음까지 통째로 흔들린다. 심지어 어떤 환자는 "잠자듯이 가는 그런 약 있잖아."라고 노골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말기 암 환자가 안락사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p. 56). 비참한 마지막은 말기 암에 걸린 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살다 남은 삶이라고 쓰러져버리는 마음이 만드는 것이다. 떠날 사람은 남아 있을 이를 위해 조금 남은 삶을 성실히 살아가고, 남아 있을 사람은 떠날 이가 세상에서 사랑받다가 가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도록 노력하면 서로 덜 힘들다. 처음과 마지막까지, 모두가 촘촘히 내 인생이기 때문이다(p. 58). 세상은 가벼움과 무거움이 서로 경계를 불분명하게 가른 채 섞여 있다. 어떤 부분은 내가 그보다 가볍고, 어떤 부분은 내가 그보다 무겁다. 그렇게 어우러져서 세상은 좀 더 좋게 변한다. 그러나 '죽음이 다가오는 것'과 같은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가벼움과 무거움의 경계선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고함을 지르고 입원실 바닥에 소변을 보는 한 할아버지 때문에 사흘 밤낮 동안 시달린 환자들이 하소연을 했다. 할아버지를 간병하던 할머니는 "환자가 병원에 자러 왔나요?"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진정제도 못쓰게 하고 1인실로 가지도 않았다. 그런가 하면 뇌종양에 걸린 12살짜리 소녀는 과자를 들고 병실을 누비며 "아저씨, 빨리 나으세요."라고 하면서 환자들에게 나눠주었다. 한 신문 기자가 말기 폐암 환자에게 물었다(p. 67). "인생의 선배로서 우리에게 해주실 말씀이 없으신지요!" 후덕하게 생긴 환자는 가지고 있던 옷가지며 살림살이를 싹 정리할 정도로 죽음을 잘 받아들었다. 하지만 그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쓸쓸하게 대답했다. "저는....그런 것은 선배가 되고 싶진 않은데요." 그렇다. 죽음이란 일평생을 별 탈 없이 살다가 90살이 되어 마음 독하게 먹고 미리 준비해도 어려운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닥뜨리는 죽음은 아무리 노력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법이다. 죽어가는 사람을 많이 돌본 의사로서 한 가지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이 먼저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남은 사람들 걱정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나 때문에 끼니를 거를까 봐, 나를 잃은 슬픔으로 행여 병이라도 생길까 봐, 경제적으로 힘들까 봐 등등.... 그들은 사소한 걱정을 몰래 했다. 남은 사람들은 그 마음을 알까? 임종실은 섞일 수 없는 삶과 죽음이 뒤엉켜 있고, 살아남은 이들이 비통함에 눈물을 흘리는 작은 방이다. 그러나 그곳을 거(p. 68)쳐 간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존재란 그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도 사랑하는 이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라고(p. 69). 예전에 나는 보기조차 딱할 만큼 남을 부러워했다. 뚱뚱할 때는 날씬한 사람을, 늦게 시작한 의사 생활이 비참하다고 느껴질 때는 처음부터 순탄하게 직장 생활을 하는 동료를 얄밉도록 부러워했다. 누군가는 잘된 사람을 부러워하면서 인생의 꿈도 생기고 삶을 개척할 의지도 생긴다고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 부러움이 오늘날의 나를 있게 한 계기는 되었을지라도 그 과정은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이제 내가 진실로 부러워하는 사람은 돈이 많거나,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입학했거나, 예쁘고 날씬하고 건강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어떤 삶이 자신에게 다(p. 92)가오더라도 묵묵히 잘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으며, 자신의 삶을 그 자체로 당당하게 살아내는 사람이다. 우리는 저마다 지닌 인생의 향기가 따로 있다. 그러니까 이제는 그 누구도 부러워하지 말자. 인생의 마지막에는 행복했던 자신의 과거조차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 시간에는 그 시간에만 누릴 수 있는 나만의 행복이 따로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마지막이 온 것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아쉬운데, 여러 가지 잣대로 부러워하면 병들어 있는 자신이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부러워하지 말자, 그대여! 인생이 아파도 마지막까지 이 세상을 그 누구보다 당당하게 살아내야 한다(p. 93). 불행히도 호스피스에는 죽음을 편안하게 수용할 수 있는 묘약 따위는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속사정을 들어주면 조금은 가벼워졌고, 끝까지 끈을 놓지 않고 가는(p. 108)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평범한 사실에 평안을 찾아갔다. 대식 씨의 어머니처럼 때로는 버리는 것보다 안고 가는 것이 더 홀가분한 인생도 있다. 그러니까 결국 안고 가는 사람, 버리고 가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 셈이다(p. 109). 잘 죽어가기 위해 우리가 정말 배웠어야 할 것은 죽음의 5단계를 외우거나 혼자서 관 속에 들어가 보는 체험을 하는 것이(p. 112) 아니다. "저는요, 이미 죽음을 다 받아들였어요."라고 말하면서 의젓하게 지내다가 진짜 마지막이 다가오면 불안에 떠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라기보다는 결과물이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신산스럽고, 일상은 상처와 갈등의 연속이다. 나에게 주어진 삶을 얼마만큼 잘 녹여내느냐에 따라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있을 마지막 날은 달라진다(p. 113). 어쩌면 인생은 쓰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저절로 쓰이는 소설책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지만 어떻게든 끝까지 살아내야 한다. 죽을 만큼 괴로워도 직접 해봐야 삶에 대한 사랑이 깊어진다. 사람들은 인생이 힘들어지면 앞으로 남은 여정이 얼마나 끔찍해질지 더 두려워한다. 남은 인생이 지금보다 더 불편해지더라도 초조해하거나 원통해하지 말자.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그대의 삶이 다른 누군가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자살이라는 '고의로 스스로를 죽이는 행위'를 생각할 만큼 견딜 수 없이 힘들다면 적극적으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아무 상관도 능력도 없는 사람에게조차 알려야 한다. 마음의 피눈물은 말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상처는 치유될 수 없다. 애써 고통을 삼키지 말자. 누구라도 도와줄 사(p. 120)람을 찾아다녀라. 자존심 따위 내세울 때가 아니다(p. 121). 치통이 아무리 심해도 한꺼번에 진통제를 다섯 알씩 먹지는 않는다. 통증을 잡으려다 사람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타이레놀도 하루에 여섯 알을 초과하면 진통의 효과는 증가하지 않고 간에 부담만 준다. 이렇게 일반 진통제는 일반적으로 정해져 있는 용량을 초과하면 통증에 대한 효과보다는 약물에 대한 부작용이 심해지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용량의 한계가 있다. 이것을 약의 천장 효과(ceiling effect)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천장 효과가 없는 약이 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많이 쓰이는 마약성 진통제이다. 그것은 일반 진통제와 달리 많이 쓰면 쓸수록 통증이 잘 조절된다. 더군다나 날록손 (naloxone)이라는 해독제까지 있으니 '모르핀'이야말로 신이 세상을 떠날 때만은 아프지 말라고 인간에게 특별히 내려준 '마지막 선물'이다. 사망 원인 1위인 암은 사람이 떠날 무렵에 부쩍 커진다. 암(p. 129)덩어리가 커지면 정상 조직을 파괴하는 묵직한 암성 통증도 당연히 심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무 일찍부터 진통제를 쓰기 시작하면 통증이 가장 극심한 마지막 순간에는 정작 쓸 수 있는 약이 없을까 봐 전전긍긍한다. 모르핀을 최후의 약으로 넘겨 두었으면 하고 부탁까지 한다. 그러나 통증에 관한 한 모르핀은 쓰면 쓸수록 효과가 있는 약이다. 이러한 마약성 진통제의 비밀을 알려주면 누구나 "진짜 그런 약이 있나요?" 하고 물으며 신기해한다. 환자나 보호자는 어차피 살릴 수 없다면 고통 없이 떠날 수 있다는 확신만으로 가느다란 희망을 갖는다. 모르핀은 우리를 죽음의 공포보다 더 끔찍한 암성 통증에서 해방시켜주는 이로운 약제이다. 우리는 지금보다 좀 더 정확하게 모르핀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아직도 말기 암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환자, 보호자, 의료진의 모르핀에 대한 오해와 두려움으로 마약성 진통제를 거부하면서 의미 없는 통증에 시달리다가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인생의 마지막 의사로서 당부한다. 언젠가 당신에게 그때가 오면 신이 내린 선물, 모르핀을 거절(p. 130)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통증이 없으면 죽음의 맨 얼굴을 똑바로 응시할 수 있고, 고통 없는 죽음은 결코 폭력적이지 않을 것이다(p. 131). 내일 도사리고 있는 재앙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살아감 속에 죽어감의 흔적을 묻히는 것이다. 내일이라는 것이 그 누구에게도 완벽하게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 오늘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심코 거칠게 한 말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오지도 않을 비겁한 내일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너무 많이는 양보하지 말자(p. 163). 말기 암 환자가 되면 환자와 가족은 육체와 정신적으로 이제까지는 경험하지 못한 일을 경험하게 된다. 가족 간의 갈등이 있었다면, 분명히 그 갈등은 확대된다. 문제의 중심은 늘 '사랑과 돈'이다. 거기에 종교적인 문제가 곁들여지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p. 174). 살다 보면 마음 내키지 않는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하고 싶은 일만 해도 짧은 인생인데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 큰 손해를 볼 것만 같다. 젊은 시절에는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를 때가 많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나 매 순간 저마다 해야 할 일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해야 할 일을 하다 보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훤히 보이고 그때 용기 내어 그 일을 하면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것이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기도, 또 속절없이 짧기도 하다. 그러기에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실수 없이 하려면 마음에 내키지 않더라도 '해야 하는 일'을 먼저 하면서 견뎌보는 것쯤은 각오해야 한다(p. 187). 웰다잉(well dying)은 삶의 완성이 아니라 삶의 결과물이다. 누구나 손쉽게 받을 수 있는 선물은 더군다나 아니다. 저마다 주어진 힘든 삶을 잘 살아내야만 누릴 수 있는 삶의 마지막 축 복인 것이다(p. 203). 죽음을 깊숙하게 연구하고 싶어서라든지 내 성격이 원래 우울해서 호스피스 의사가 된 건 아니다. 나는 호스피스 일을 해오는 동안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사람도 죽음에 이르기 직 전까지는 살아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누구도 아프지 않게 하루를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거창한 죽음의 여의사가 아니라 그저 생명의 에너지가 다 할 때까지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의사로서 당연한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름이 주는 거부감 때문에 국내 암 환자의 마약성 진통제 사용률은 그리 높지 않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국내 사용량은 모르핀으로 환산했을 때 환자 1인당 연간 45mg에 불과하다. 미국 693.44mg, 영국 334.52mg은 물론 세계 평균 58.00mg보다도 낮다. 통증을 효과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안 쓰는 것이다. 아직도 대한민국 사람들은 아프면서 죽어간다. 의사 입장에서 보면 죽음이 삶의 종착역인지 따위는 일단 환자의 통증을 덜어준다음에 생각할 일이다. 암 환자의 통증은 당사자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다. 출산의 고통이 10점 만점에 7~8점이라면 암 환자의 통증은 10점 이상도 간다.암성 통증은 암이 진행되는 생명의 마지막에는 더 심해지고, 그(p. 215)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환자와 가족을 더더욱 애타게 한다(p. 216). 인생을 산다는 것은 세상에 놓인 하나의 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하지만 그저 다리를 건너는 일에만 집중한다면 세상의 아름다움은커녕 다리를 뒤흔들 고통과 혼돈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다. 뜨거운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자기 삶의 아웃사이더가 되어보기를. 삶이 끝난 뒤에 죽음이 오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죽음이 있음을 알아차리기를,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게 되기를 바란다(p.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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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2】 죽음을 늘 준비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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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5】 책 앞에서 겸손함을 배우다
- 일본의 대표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가 던지는 책 이야기. 종이책과 전자책, 도서관과 사서, 학교 교육, 출판계, 독립서점 등 책을 둘러싼 이제껏 접하지 못했던 이야깃거리를 총망라한다. 깊은 성찰을 토대로 한 선생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즐거운 화두가 된다-교보문고 책과 도서관에 대한 저자의 견해가 흥미로웠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당연한 것이지만 말이다. 책과 도서관은 우리의 무지를 깨닫게 하고 열린 창을 내어주기에 늘 가까이 해야 한다. 무지를 가시화하는 장치 도서관은 그곳을 찾은 사람들의 '무지'를 가시화하는 장치입니다. 다시 말해 도서관은 내가 얼마나 세상을 모르는지를 가르쳐 주는 장소이지요. 거기서는 숙연하게 자세를 바르게 하고 '1초를 아까워하며 배워야 한다'는 결의를 다지게 됩니다. 도서관의 교육적 의의는 그것이 전 부일 겁니다. 만약 도서관 서가가 '자신이 이미 읽은 책과 앞으로 읽어야 할 책'으로 채워져 있다면 사람은 어떤 느낌을 받을까요. 자신이 세상 대부분의 일을 대충은 안다고 굳게 믿는 인간만으로 구성된 사회가 얼마나 답답하고 정체 되고 바람이 안 통하는 곳일지, 상상력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짐작할 겁니다. 도서관에 "모두가 읽고 싶어하는 베스트셀러만 비치하고 읽히지 않는 책은 버려라. 그렇게 하면 도서관 방문자 수가 늘어날 것이다"라고 말하는 이는 지성과 인연이 없는 인간입니다(p. 31). 잠시 있다 보면 숨쉬기가 힘들어져서 왠지 빨리 나오고 싶어지는 집이 있는데요. 저의 경우는 책이 없는 집이 그렇습니다. 아무리 집이 깨끗해도 오래 있으면 숨쉬기가 힘들어집니다. 산소 결핍 상태가 되는 거죠. 책이 없으면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책이란 '창'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세계로 난 창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 세계와는 다른 세계와 통하는 창입니다. 그래서 책이 있으면 한숨 돌릴 수 있습니다. 밖에서 시원한 공기가 불어오는 느낌이 들죠. 제 친구 집에 가면 대체로 그런데, 화장실에 책이 있습니다. 우리 집에도 화장실에 책이 굉장히 많이 쌓여 있 습니다. 화장실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에 책이 몇 권쯤 놓여 있는 것만으로 어딘가 널찍한 곳으로 나가는 느낌이(p. 59)듭니다. 넓은 곳에서 배설 작업을 한다는 느낌이 드는 거죠. 그러므로 화장실에 읽고 싶은 책이 없을 때는 화장실에 가기 전에 책을 찾습니다. 집 책장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앗, 앗...." 하면서 "음·····. 이것도 아니고 저 것도 아니고" 하며 책을 고릅니다. "오, 이거다!" 하고 정하면 그대로 화장실로 돌진합니다. 책이 없으면 화장실이 좁게 느껴집니다. 책을 펼치면 왠지 해방감을 느끼고요. 책이 가진 외부 세계로의 개방 효과가 아닐까 합니다(p. 60). 도서관이 거기에 들어온 사람에게 가르치는 것은 아마도 무한이라는 개념일 겁니다. 거기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인생의 유한성'과 '앎의 유한성'을 자각하죠. 이 이상 교육적인 일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얼마큼 자신이 세상을 모르는가, 세상을 모르는 채로 일생을 마치는가. 앞으로 평생을 바쳐서 아무리 똑똑해지려고 노력한들 이 거대한 앎의 저장소 가운데 끄트머리 한구석밖에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죠. 다만 끄트머리 한구석 이라고 해도 '내가 이 무한한 장소의 일부만큼은 닿을 수 있고 잘하면 그 일부가 될 수도 있겠구나' '이 무한한 장소에 내가 만들어 낸 것을 보탤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고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지적' 상태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을 한마디로 하면(p. 64) '조심스러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무한한 삶에 대한 '예의 바름'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내가 얼마나 세상을 모르는지, 내 앎이 닿을 수 있는 범위가 얼마나 좁은지에 관한 '유한성의 자각'이 지적 상태입니다. 자신의 유한성을 자각할 수 있는 것은 눈앞에 이렇게 '무한한 앎을 향해 열린 도서관'이 있기 때문이고요. 저는 도서관에게서 제대로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저와 도서관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진 거죠(p. 65). 책이란 외부로 통하는 문입니다. 책은 독자를 '지금이 아닌 시대'와 '여기가 아닌 장소'로 데려가는 힘을 지녔습니다. 그래서 책 한 권이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닫힌 공간에 자그마한 구멍이 생기고 그로부터 신선한 바람이 불어 들어옵니다. 그 바람 냄새를 맡은 사람들이 책 주위로 모여듭니다. 이것이 21세기 코뮌 부활의 계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p. 135). 도서관의 본질적 기능은 책장 사이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읽은 적 없는 책, 읽을 일 없는 책에 압도당하는 체험을 선사하는 것입니다. 도서관을 찾을 때마다 우리는 자신이 이만큼이나 앎이 부족하다는 사(p. 153)실에 놀라게 됩니다. 이 놀라움이 도서관에 다니는 보람 이죠. 고대의 철인이 가르쳐 주듯이 모든 배움은 '무지의 자각'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오로지 거기서밖에 시작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얼마큼 모르는가를 아는 사람만이 배움으로 향합니다. '내가 무엇을 아는지'에 관한 목록을 빼곡히 만드는 것이 지적 활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은 결국 배움과는 인연이 없습니다(p.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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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5】 책 앞에서 겸손함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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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4】 만약 암에 걸린다면...
- 저자 한만청은 서울대 명예 교수, 前 서울대 병원장이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 의대 펠로 3년을 거쳤으며 서울대 의대 교수와 서울대 병원장을 지냈다. 서울대 병원장 재직 당시 ‘ 연구 중심, 환자 중심 병원으로의 개혁’을 이끌며 체계화된 의료 서비스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국내 최초로 북미, 일본, 유럽 방사선의학회 명예 회원이 됐으며 한국의 영상의학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교보문고. 암에 걸린 의사가 자신의 치유기를 적은 책이다. 98년 간암 후 폐로 전이됐지만 완치되었다가 91세에 사망했다. 어느 날 내게 찾아온 악동 같은 친구, 암 병이란 게 무엇인가. 어느 날 문득 내 몸에 찾아와서 살다가 때가 되면 돌아가는 손님 같은 존재가 아닌가. 암이라고 다를 게 없다. 오히려 암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손님이 아닌 친구 같은 존재다. 다른 병과는 달리 애초에 내 몸 안에서 함께 자라다가 뭔가 좀 못마땅한 구석이 있어 내게 반기를 들고 심통을 부리는 악동 같은 친구 말이다. 암이란 내 몸 안에서 착실히 제 몫을 해내던 세포가 어느 날 갑자기 미쳐서 변종이 된 것이다. 아직 원인은 찾지 못했지만 DNA 수준에서 뭔가 못마땅한 구석이 있어 내 몸 안에서 정상적인 세포의 역할을 포기하고 변해버린 것이 다름 아닌 암이다. 마치 영화 〈헐크〉(p. 37)에서 얌전한 주인공이 분노를 느낄 때마다 녹색 괴물로 변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놈 역시 처음에는 내 몸 안에서 충실히 제 역 할을 하던 존재였다. 그래도 지금은 어떻게든 없애야 할 적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암은 적으로 돌려 싸운다고 해서 물러날 존재가 아니다. 애초에 내 몸의 일부였기 때문에 내 몸의 약점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힘들이지 않고 내 몸을 잠식해갈 수 있는지 잘 안다. 그런 암을 대상으로 선전포고를 하고 적대시하고 경계하며 아우성치는 건 소모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암이란 존재를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무조건 싸워 이기겠다는 마음 보다는 어떻게든 잘 구슬리고 달래서 되돌려 보내야겠다는 그런 마음가짐 말이다(p. 38). 암과 맞닥뜨린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암을 두려워하고 거부하며 싸워서 이겨 없애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외면하고 거부해서 암이 떨어져 나간다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암은 그렇게 호락(p. 40)호락한 녀석이 아니다. "너 이놈 왜 왔느냐, 나가 떨어져라" 하며 도망 다니고 숨을 곳을 찾는 사이에 암은 이미 승전고를 울리며 우리 몸을 잠식해 버리고 만다. 단언컨대 두려워해서는 절대 암을 감당할 수 없다. 그렇다고 무조건 거부하고 싸우기엔 암의 위력이 생각보다 강하다. 그렇다면 찾아온 암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막연한 두려움 속에 방황만 할 것인가, 거부하고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싸우다 죽을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포기하고 말 것인가. 가끔 조언을 구하려는 암 환자들에게 내가 해주는 말이 있다.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이고, 그 맛을 씹으며 살자.' '맛'이라는 말이 너무 과장되었다면 이 말이 더 적절할지 모르겠 다. '차라리 잘 달래며 끼고 살자.' 암 환자가 기나긴 투병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가장 먼저 갖춰야 할 조건이 있다면 머릿속에 있는 암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일일 것이다. 암을 싸워 이겨야 할 적이 아닌, 함께 있는 동안 잘 끼고 살아야 할 친구라고 여기라는 말이다. 미국 임상암학회 회장은 200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연차학술대회에서 새로운 연구 성과와 앞으로의 치료 전망에 대해 발표를 하면서 "암은 결국 당뇨병, 고혈압, 심장질환 등과 같은 만성질환의 대열로 들어오고 있다"고 선언했다. 이제 암이란 존재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무시무시한 난치병(p. 41)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 말이 얼마나 무게가 있는가를 따지기 전에 동반자로서의 암의 새로운 면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희망적인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당장 마음속의 억압과 두려움을 버리고 이렇게 한번 외쳐 보면 어떨까. '너랑 나랑 한번 잘 살아보자, 그러다가 때가 되면 기분 좋게 돌아가라."(p. 42). 암에 걸린 당사자 입장에서 볼 때 내가 그 5퍼센트 안에 들어가 완치될 수 있는 확률은 반반이다. 결국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암에 대한 여러 가지 자료와 검사 수치들은 지금까지의 결과론적인 통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 통계가 어떤 개인의 경우를 저울질 하는 잣대가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심지어 어떤 암은 기수 자체를 명명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또한 어떤 암이라도 생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경우는 없다. 생존율이 떨어지고 검사 수치가 나쁘다고 절망해서는 안 된다. 그럴수록 '내가 이 통계의 긍정적인 수치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차라리 통계 자료를 희망의 증거로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나는 암 환자에게 누가 어떠한 자료를 제시하더라도 '나는 단 1 퍼센트의 생존자로 계산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p. 48)다. 그리고 통계상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취한 방법은 무엇일지 고민하고 연구하라는 말도 덧붙이고 싶다. 수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때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희망과 의지, 그리고 암을 돌려보낼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p. 49). 한번 뒤집어 놓고 생각해 보자, 항간에 떠도는 그 많은 약이 정말 안을 고치는 네 탁월한 효과가 있다면 전 세계적으로 암을 연구하는 수많은 학자가 그냥 보고만 있겠는가. 우리나라에만도 밤을 새워가며 암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수천에 이르는데 말이다. 수영할 줄 모르는 사람이 물에 빠졌을 때 사는 방법은 가만히 있는 것밖에 없다. 살려고 발버둥치는 대신 가만히 힘을 빼고 있으면 몸이 절로 떠오른다. 나는 암 환자들에게도 같은 말을 하고 싶다. 살고자 하는 의욕도 좋지만 약 복용에 있어서 만큼은 가만히 있는 게 수다. 약 이야기가 나오거든 차라리 귀를 틀어막아 버려라. 필요할 때는 담당 의사의 지시에 따라 그 효과와 부작용이 정확히 밝혀진 것만 쓰되, 가급적이면 쓰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약이다. 특히 목숨을 담보로 하고 있는 암 환자들의 경우에는 말이다(p. 126). 죽음에 대한 두 가지 태도 내가 보아온 암 환자들은 대개 자신에게 닥친 죽음이라는 문제에 대해 두 가지 태도를 보였다. 그 한 가지는 바로 죽음을 외면하는 것이다.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환자 한 명이 있었다. 나처럼 의사였던 그는 누가 보아도 그리 낙관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치료를 받고 있기는 했지만 언제 어떻게 상태가 악화될지 몰라 스스로 생활을 조절해 나갈 필요가 있었다. 본인이 의사였으니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죽음에 이를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알고 있었(p. 214)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죽음의 가능성을 조금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거나, 죽음을 모면하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평소보다 더 무리해가며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마치 이런 내게 어찌 죽음이 찾아들겠냐며 시위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병원에 있어야 할 시기에 여행을 가겠다고 나서는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심지어 수술 예정일을 일주일 앞두고 보통 사람이라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지방에서 친구가 출마를 하는데 자기가 직접 선거 유세를 도와야겠다는 것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말려도 말을 듣지 않던 그는 막무가내로 지방으로 내려가 버렸고, 수술은 뒤로 미뤄졌다. 물론 나중에 수술도 받고 치료도 계속했지만, 그는 결국 별다른 차도를 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게 되었다. 그는 어쩌면 눈을 감는 그 순간에도 이게 마지막이라 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암 환자들은 죽음의 실체를 외면하려 한다.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눈 가리고 귀를 막고 그럴 리가 없다고 도리질 치면서 스스로를 세뇌한다. "나는 절대 죽지 않아. 암에 걸린 사람이 다 죽어도 나는 살아남을 거야. 난 지금 죽어선 안 되니까." 죽는 순간까지도 그 믿음은 변하지 않았다.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도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맞게 되는 죽음을 그저 외면만 하다가 결국엔 미완성인 채로 삶을 끝내고 마는 것이다. 두 번째로 보이는 상태는 정신적인 공황이다(p. 215).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간 유대인이 있었다. 그는 수감자 중 95퍼센트가 처형당했던 생지옥에서 3년간이 나 죽음을 지켜보면서 자기 자신을 포함해 언제 죽을지 모르는 포로들의 심리 상태를 자세히 관찰하고 기록했다. 후에 정신과 의사가 된 그가 기술한 죽음의 실체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같이 끌려온 사람의 90퍼센트가 30분 내에 가스실에서 죽는다. 포로들은 그것을 보면서 충격과 공포에 빠져드는 1단계에 진입한다. 이들은 극도의 불안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너무 두려워 자살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지내던 포로들도 한 달 정도 지나면 처음과는 다른 2단계 상태로 진입한다. 이때부터는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일념만 남을 뿐이다. 일주일을 빵 한 조각으로 연명하며 얇은 천 조각만 몸에 걸친 채 혹한의 날씨에 철로 공사를 하고도 감기 한 번 안 걸리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다. 지금껏 배워왔던 의학 지식이 다 거짓투성이였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인간의 놀라운 적응력에 전율을 느낀다. 노동력이 있어야 가스실로 끌려가지 않기 때문에 포로들은 아침이면 돌을 주어다 면도를 한다. 면도를 하면 젊어 보이기 때문이다. 병약자를 골라 가스실로 보내는 명단을 작성할 때면 자기 이름을 빼고 다른 사람의 이름을 넣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한다. 그러나 이렇게 치열한 생존 경쟁을 치르며 살아가던 포로들의 마음에 또 다른 변화가 오면서 3단계로 진입한다. 자신의 인간답지 못함에 대한 자괴감과 무력감을 느끼면서 포로들은 점차 정신적인 무감각 상태에 빠져든다. 살겠다는 열망도 없어지고 죽겠다는 생각도 없어지는 정서적인 자멸 상태(p. 216)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바로 죽음을 눈앞에 둔 암 환자들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암 환자들은 닥쳐올 죽음을 무시한 채 맹목적인 낙관론을 펼치는가 하면, 아우슈비츠의 포로들처럼 무력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한동안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다가 결국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무방비 상태, 즉 정신적 공황을 맞는 것이다. 그런 단계에 이른 암 환자들은 분명히 살아 숨 쉬고 있음에도 절대 산 자의 모습이 아니다. 그렇다고 내 앞에 닥친 죽음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삶도 죽음도 아닌 그 중간 지점에서 그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정서적인 자멸 상태에 놓인 아우슈비츠의 포로들처럼 말이다 암과 함께 찾아든 죽음을 앞에 두고 애써 눈 돌려 외면하거나 고통에 겨워 정신적인 공황을 맞는 것, 나는 두 모습 중 어떤 것에도 고개를 끄덕여 수긍할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맞아들여야만 하는 때가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간의 힘으로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때가 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나는 죽음의 형태는 어디까지나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죽음 아닌가. 삶에 있어서 단 한 번 찾아오는, 내 삶의 대미를 장식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바로 죽음 아닌가. 처음 화학 치료를 받을 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p. 217). "만일 이 화학 치료가 효과가 없다면 한 번쯤 다른 약을 쓰는 2차 화학 치료에 응할 용의는 있다. 하지만 그것마저 듣지 않는다면 그 때는 치료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해보겠다." 고백하건대 그것은 결코 치료를 포기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나 스스로 위엄 있게 죽을 권리, 내 삶을 정리하고 마무리할 권리를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에 대해 무방비 상태로 있거나, 아니면 그 실체를 모르는 척 외면만 하고 있다가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리는 그런 죽음을 맞기는 싫었다. 나의 죽 음이므로 내가 선택해서 내가 원하는 형태로 맞이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권리를 놓지 말라 생각해보자. 환자에게 큰 충격이라는 생각에 가족들조차 환자 본인에게 사실을 감춘다. 그러다 우연히 그 사실이 밝혀지면 환자는 현실을 감당해 내기가 어려워 갈팡질팡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렇게 되면 지나간 삶을 정리하고, 떠날 자와 남을 자 사이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한정되어 있어 더욱 소중한 남은 날들을 지켜 갈 여유를 갖지 못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 불현듯 죽음을 맞이하고 그것으로써 모든 상황은 종료된다. 어찌 보면 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순간이 그저 방황과 절망으로 일관하다 부지불식간에 끝나고 마는 거다(p. 218). 그 시간은 누구도 돌이킬 수 없고 보상해줄 수도 없다. 그뿐인가. 결코 보상받지 못할 그 시간들은 남은 자에게 두고두고 상처로 남게 된다. 나는 나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모든 암 환자들에게도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암에 걸린 그 순간 나 자신의 상태가 어떠한가를 정확하게 파악 하라. 죽음이 얼마나 가까이 와 있는지 명확히 알라." 물론 최선을 다해 암을 돌려보내려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인력으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순간이 왔을 때는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권리를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위엄 있게 죽을 권리, 지난 한평생을 정리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낼 권리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마음가짐이 생길 때, 다시 말해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이를 자신의 손으로 과감히 취할 마음가짐이 들 때, 비로소 암이란 놈이 온전히 끼고 살아갈 수 있는 친구로 다가온다. 따지고 보면 암에 대한 두려움이 곧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외면하고 두려워하는 마음가짐이 사라진다면 그 매개인 암이 두려울 까닭은 더더욱 없다. 나아가 그 마음은 암을 끼고 살아 가는 모든 순간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그 결과가 설혹 죽음이라는 형태로 찾아올지라도 그것은 형벌이 아닌 선물이다. 교통사고를 당해 생사의 기로에서 살아난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고가 나는 순간에 그동안 자신이 살아왔던 삶이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가더라고. 이것은 짧은 시간이나마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고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p. 219)하는 신의 배려가 아닐까?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의 어르신들은 저승 갈 때 입고 갈 수의를 미리 지어두곤 했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입을 옷이기에 더욱 정성을 들여 한 땀 한 땀 손수 바느질을 했던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고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는 여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대면하고 있는 암 환자들에게도 그런 여유가 필요하다.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고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 들이는 여유만 있다면 남은 시간이 1년이든 10년 혹은 그 이상이 든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피하고 싶지만, 어떻게 해도 피할 수 없는 삶의 마지막 형태인 죽음. 그러나 죽음 역시 내 삶의 일부이기에 내 손으로 맞아들여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언젠가 찾아올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p. 220). 에필로그-'나'를 지킬 수 있는 힘은 내 안에 있다 병상에 있을 때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었다. 노인은 멕시코 만류에 조각배를 띄우고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한 채 허송세월만 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노인이 '살라오'를 만났다고 수군거린다. 살라오란 스페인어로 '최악의 불운'을 뜻한다. 마을 사람들은 끝끝내 고기잡이를 포기하지 않는 노인에게 연민과 조소를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인은 바다에서 거대한 청새치를 만나 싸움을 벌이게 된다. 사흘 동안이나 계속된 그 싸움에서 노인은 승리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청새치가 흘린 피 냄새를 맡고 상어들이 몰려 들고 만다. 노인은 변변한 무기도 하나 없이 상어 떼에 맞서 처절한 사투를 벌인다. 마침내 노인이 항구로 돌아왔을 때 청새치는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거대한 뼈를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그리고 침묵으로써 노인이 승리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내 처지가 노인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노인은 마을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자신의 배보다 큰 청새치와 차례로 맞서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승리했다'고 생각하는 순(p. 288)간 가장 어려운 상어 떼와의 사투에 직면하게 된다. 내가 간암 선고를 받고 가장 먼저 마주해야 했던 것도 사람들의 동정 어린 시선이었다. 사람들은 어쩌면 이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평생 환자를 돌본 의사도 결국 암으로 죽는구나.' 하지만 나는 간암이라는 존재와 대적한 끝에 내 몸에서 병을 돌려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겼다'는 승리감에 도취해 있는 사이에 더 큰 난관이 나를 덮쳐왔다. 완치된 줄 알았던 암이 폐로 전이된 것이다. 나는 처음 간암 선고를 받았을 때보다 암이 폐로 전이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더 흔들렸다. 그렇지만 주저앉아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내가 나를 믿지 않으면 절대 이겨낼 수 없다.' 의료진과 가족은 최선을 다해 치료에 매달릴 각오가 되어 있는 데, 정작 암에 걸린 당사자인 내가 흔들린다면 그 결과는 보지 않아도 자명했다. 그때부터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치료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항암 치료는 상상했던 것 이상의 고통이었다. 그야말로 벼랑 끝까지 내몰린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나 고통이 더해갈수록 삶에 대한 열망도 커졌다. 삶에 대한 희구는 내게 최선을 다하려는 의지를 불러 일으켰고, 나는 결국 『노인과 바다』의 노인처럼 지독한 살라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일단 환자 자신이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않는 치료의 주체로 서야 한다. 어느 누구도 아닌 나 자신만이 암을 몰아낼 수 있다는 믿(p. 289)음과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감히 말하지만 환자 자신이 믿음과 자 신감을 가지고 치료의 주체로 서지 않는 한 암과 지내는 시간은 혼란과 방황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환자가 치료의 주체로 서지 못하면 어떤 명약이나 치료법으로도 효과를 볼 수 없다. 특히 치료의 진전이 없거나 다른 치료법을 모색해야 할 경우, 환자가 겪게 되는 불안과 혼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때 많은 이들이 암 치료에 대한 갖가지 비방에 귀를 열고 마음을 내주게 된다.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더라도 혹시나 하는 헛된 희망마저 떨쳐 버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면 결국 남들도 다 하는데 나라고 못 하랴 싶어 출처도 분명치 않은 건강식품이나 비방에 몸을 내맡기고 마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환자 스스로 치료의 주체로 온전히 섰을 때만이 암에 대한 갖가지 뜬소문과 그릇된 정보,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상황에 굴복하지 않는 의연한 태도를 가질 수 있다. 또한 그랬을 때만 현대 의학도 자신이 가진 한계를 넘어 최대한의 힘을 발휘하는 최고의 조력자가 되어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암에 걸리고 나서야 생사의 갈림길에 선 환자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40년 동안이나 의사 노릇을 하면서도 알지 못했던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고 할까. 암에 걸린(p. 290)뒤 나는 의술이나 치료 행위만으로 사람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렸다. 바꿔 말하면 의사나 의사의 역할을 하는 제3자가 병 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되어 나로 인해 끝난다. 내 몸에 생겨난 암이라는 녀석을 잘 끼고 살다가 다독거려서 돌려보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지금 당장 자신에게 물어보자. '나는 지금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는가? 나는 나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 이런저런 이야기에 현혹되거나 현대 의학에 불신의 눈길을 보내기 전에 먼저 나 자신부터 돌아보자. 나는 과연 내 몸에 찾아온 암과 제대로 맞설 준비가 되어 있는지,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꿋꿋이 버텨낼 수 있는 믿음과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보라는 말이다. 그것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암이라는 존재가 찾아온 이 현실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노인과 바다』에서 마을 사람들은 꼬박 84일 동안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했으면서도 끝내 고기잡이를 포기하지 않는 노인을 비웃었다. 하지만 노인은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부심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거대한 청새치를 낚아 올린다. 비록 청새치(p. 291)는 상어의 공격을 받아 뼈만 앙상하게 남았지만 노인은 진정한 승리자였다. 노인은 자신을 믿고 자신과의 약속을 지킴으로써 불운 한 어부가 아닌 진정한 승리자로 거듭날 수 있었다. 암 환자가 진정한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암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싸움보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남의 말에 현혹되어 불안해하고, 남이 하는 대로 쫓아가려는 나약한 자신을 먼저 다독이자. 그리고 자신을 치료의 주체로 단단하게 세워야 한다. 아무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한 자기 의지로 암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자신을 말이다. 그렇게 흔들림 없는 의지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울 때, 희망은 어느새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다. 그리고 그때 암은 잠시 머물렀던 친구처럼 내 몸에서 멀리 떠나갈 것이다(p. 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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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4】 만약 암에 걸린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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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14】 두려움의 이유 (딤후 1:7)
- 두려움의 이유 (딤후 1:7) 인간은 누구나 두려움이 있습니다. 두려움의 많고 적음의 차이뿐입니다. 죄가 들어온 후,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죄를 지으면 두려움이 있고, 의인은 담대합니다. 디모데후서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는 것이 아니고 사탄이 줍니다. 두려움의 이유가 너무나 많습니다. 건강 검진하고 결과를 기다릴 때 두렵습니다. 건강 검진 결과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두려워한다고 건강 검진 결과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두려움이 있으면 건강 검진하기 싫어하는데 두려워서 건강 검진 안 하면 병을 키우게 됩니다. 담대히, 자연스럽게 건강 검진해야 합니다. 담대함을 훈련해야 합니다. 과거의 고난과 어려운 시험이 있었던 트라우마가 큰 자가 두려워합니다. 지나간 과거에 매이지 말고 현재에 감사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만나서 무슨 이야기 하겠다고 말하면 신경 쓰이고 두렵습니다. 막상 만나보면 큰 일이 아니고 습관적으로 만나자고 하는 자도 있기에 만남을 자연스럽게 담대히 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무슨 말을 해도 담대하고 성령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만나서 대화하면 풀리고, 유익한 만남이기도 합니다. 만남을 스트레스로 여기지 말고 즐겨야 합니다. 실수하고 약점이 잡히면 두려움이 있습니다. 가능하면 약점을 잡히지 않도록 언행심사를 조심해야 합니다. 실수 없는 자는 없습니다. 실수를 통해 배워야 합니다. 미래의 일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내일은 나의 시간이 아니고, 인간은 미래를 알지 못합니다. 미래를 두려워하는 것은 쓸데없는 두려움입니다. 쓸데없는 염려와 두려움이 큽니다. 마음이 소심하고 좁은 자, 예민한 자가 두려워합니다. 마음을 넓혀야 하고, 지나치게 예민하지 말고,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모든 일이 진행됩니다. '실패할까, 관계가 깨질까'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실패 없는 인생은 없고, 온전한 관계는 없습니다. 실패하면 교훈 삼고 관계 깨지면 조심하고 고치면 됩니다. 관계 깨지지 않은 인생은 없습니다. 더 좋은 관계 위해 노력하고 최선 다하면 됩니다. 시기, 질투, 미움이 있을 때 두렵습니다. 사랑이 두려움을 이깁니다. 사랑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두려움은 스스로 속는 것입니다. 실패의 이유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두려워서 해야 할 말을 못하면 오해가 커지고 문제가 커집니다. 담대함과 용기가 성공의 비결입니다. 잠언 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 하리라 성령 받지 못하면 두렵습니다. 성령 받으면 담대해집니다. 날마다 성령의 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두려울 때 두려워하지 말라, 담대하라는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이사야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요한복음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두려움은 문제를 만들고, 담대함은 문제를 해결합니다. 사탄은 두려워하게 하고, 성령님은 담대함을 줍니다. 믿음은 담대함입니다. 도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오해하고 잘못 말해서 선동하면 사람을 두려워말고 담대히 말을 해야 합니다. 대화에도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두려움이 있으면 말문이 막히게 됩니다. 두려움이 실패와 멸망의 이유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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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14】 두려움의 이유 (딤후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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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13】 최고의 절대 명언
- 최고의 절대 명언 세상에는 유명하다는 사람들의 명언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명언은 참고가 되고 유익하나 진리는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면서 최고 절대 진리의 명언입니다. 성경의 절대 명언을 읽고 묵상하고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성경의 명언은 그대로 이루어지고 변하지 않는 명언입니다. 성경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명언입니다. 최고 지혜의 명언입니다. 예수님의 절대 진리 명언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6: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마태복음 5:3-12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사도바울의 명언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사도 요한의 명언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1서 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성경이 절대 진리의 명언임을 기억하고 읽고 묵상하고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성경의 명언은 우리에게 큰 힘과 격려가 됩니다. 성경의 명언은 생명의 명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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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13】 최고의 절대 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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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3】 전 법관의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 나의 일상을 풍요롭게 채우는 건 어떤 의미인가, 다른 사람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사람과 사회는 바뀔 수 있는가. 자작나무에서 지리산으로, 도스토옙스키에서 몽테스키외로, 일상에서 재판까지. 호의는 사람을,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 받은 것을 사회에 되돌려주라던 김장하 선생과의 추억, 법을 몰라 손해 보는 이들을 헤아리는 마음, ‘자살’을 시도했던 재소자가 ‘살자’는 다짐을 하게 만든 선물,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며 속절없이 흘리는 눈물, 그리고 건강한 법원과 사회를 향한 진심 어린 조언…교보문고 계엄을 도모했던 윤석열을 단죄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쓴 책으로 가볍게 읽을만하다. 착한 사람을 위한 법 2001. 4. 22. 법 없이 살 사람 착한 사람을 일컬어 '법 없이 살 사람'이라고들 한다. 법의 강제 없이도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사람이란 뜻이리라. 과연 착한 사람에게 법은 필요 없는 것일까? 법 없이 살 수 없는 사람 나는 법이 어떠하다고 정의할 만큼 경력도 풍부하지도 않고 타고난 재주도 없지만, 1983년 법학을 전공한 이래 지금까지 18년을 법과 함께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 (그런 점에서 나는 법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다) 착한 사람일수록 법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p. 19). 종종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나가곤 하는데, 거기서 늘 하는 말이 있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 나에게 힘써달라고 전화해봐야 아무 소용 없다. 사건이 터지기 전에 나에게 법을 물어보라." 도대체, 전 재산과 다름없는 300만 원을 전세금으로 걸면서 그 집이 경매 중인 사실도 확인하지 않고 계약하는 사람을 누가 구제해줄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들은 대개 사건이 터지고 난 뒤에야, 집주인을 사기죄로 고소했으니 수사 기관에 힘 좀 써서 집주인을 즉시 구속시켜 달라고 법조인에게 전화를 한다. 법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 하나는 보장적 기능이다. 일정한 행위를 금지하고 거기에 저촉되지 않으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게 해주는 측면이다. 여기서 '법 없이 살 사람'이 빛을 발한다. 다른 하나는 보호적 기능이다. 그러나 법의 이러한 보호적 기능도 경매 절차에서 배당 요구를 하는 임차인이나 노동자에게만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에 유의하여야 한다. 여기서 '법 없이 살 사람'은 초라하기만 하다. 착한 사람부터 법을 알자 판사로서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착한 사람은 법을 모르(p. 20)고, 법을 아는 사람은 착하지 않은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런 사건일수록 해결이 어렵고, 착한 사람을 보호하고자 궁리를 해보나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착한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 따로 있고 착하지 않은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 따로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법을 아는 사람에게 착하기를 요구할 것 인가? 불가능은 아니나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남는 방법은 착한 사람이 법을 아는 것이다. 그 길만이 법이 나쁜 사람을 지켜주는 도구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하는 지름길이다(p. 21). 형사 재판 잘 받는 방법들 중 2006. 12. 19. 진술 거부권 행사 자기에게 불이익한 사실에 대하여 진술을 거부하는 것은 헌법 및 형사 소송법에서 보장된 피고인 및 피의자의 권리입니다. 따라서 법정에서 판사로부터 불이익한 사항에 대하여 질문을 받을 때 진술을 거부하면 되겠습니다. 괘씸죄가 걱정된다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면 되겠습니다. 이것이 모순되거나 불합리한 답변을 하는 것보다 유리합니다. 답변 방식 법정에서 판사의 질문에 대하여 답변을 할 때는 결론을(p. 45) 먼저 말하고 이유를 나중에 설명하는 것이 효과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판사는 질문을 통하여 사건의 윤곽을 파악 하려고 하므로, 판사에게 결론을 먼저 말함으로써 판사가 설명이 더 필요한 부분인가를 쉽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습니다. 판사는 여러 각도에서 사건을 살피기 위하여 다양한 질문을 하는 것이므로, 설령 질문이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 일지라도, 판사가 상대방의 편을 든다고 섣불리 생각하지 말고 정중하게 답변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판사는 피고인의 진심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p. 46). 민사 재판 잘 받는 법 2007. 5. 17. 오늘 재판을 하면서 느낀 점을 토대로 민사 재판 잘 받는 방법을 적어보았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소송을 하려면 어려운 일이 많으므로 형편이 허락한다면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좋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였다고 해서 변호사에게 모든 것을 맡길 것이 아니라 수시로 소송 진행 정도를 확인하고 대응 방안을 함께 의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p. 61). 준비 서면을 간단명료하게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할 경우 법무사의 도움을 받거나 본인이 직접 준비 서면을 작성해야 할 터인데, 이때 주의할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준비 서면이라는 것은 당사자의 주장에 불과하므로 아무리 유리한 내용을 적어놓더라도 증거가 없으면 인정받기가 어려운 반면, 불리한 내용은 별도의 증거가 없더라도 본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따라서 준비 서면은 간단하게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증거가 뒷받침되는 내용일 경우 명료하게 주장을 펼치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준비 서면에 상대방을 비난하는 내용을 적을 경우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해롭다는 것입니다. 재판이라는 것이 당사자의 도덕성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고, 뚜렷한 증거 없이 상대 방을 비난할 때 판사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어렵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준비 서면에 똑같은 내용을 되풀이하여 적어내는 것도 피해야 합니다. 재판부는 많은 사건을 처리하고 있으므로 그들의 노고를 덜어주는 것도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p. 62). 소송의 승패는 증거에 달려 있습니다 민사 소송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증거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흥분할 필요 없이 차분하게 증거를 수집하여 제출하는 사람이 이길 수밖에 없습니다. 증거로는 애초 사건이 있었을 때 작성된 서류, 특히 상대방이 서명 또는 날인한 서류가 가장 효력이 강하고, 그 다음으로 제3자가 작성한 서류가 효력이 강합니다. 증인의 증언은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법정에서는 결론부터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직도 법정에서는 많은 사건을 처리하는 실정이므로 법정에서 판사로부터 질문을 받았을 때는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다음에 그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하는 것이 좋습니다. 조정 또는 화해를 권유받았을 때는 존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재판을 하다 보면 어느 당사자의 주장이, 설득력은 있으나 증거로 뒷받침 되지 않는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법적 관점으로만 해결할 경우 어느 당사자에게 더 가혹하기도(p. 63)합니다. 이길 승산이 있어 보이나 시간과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법원은 당사자에게 조정 또는 화해를 권고하는 데, 긍정적으로 검토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조정 또는 화해 절차에서는 집행에 관한 내용을 반영할 수도 있으므로 이러한 점에서도 조정 또는 화해의 효용은 높습니다. 증인 신문을 할 때는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허점을 짚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법정에 출석한 증인을 상대로 질문을 할 경우 "거짓말쟁이다" "양심도 없느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차분하게 증언의 허점을 짚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상대방이 질문하는 내용을 (미리 받을 수 있습니다) 검토하여 허점을 정리했다가 법정에서 질문 하는 것이 좋습니다. 바람 턱없이 부족한 내용일 것입니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소송을 잘해서 이길 사람이 이기는 재판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p. 64). 문제가 터지고 나서 소송을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은 문제가 터지기 전 검토를 충분히 하는 것입니다. 몇 천 만 원이 오고가는 계약을 체결할 때 변호사나 법을 잘 아는 사람에게 비용을 들여서라도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길게 볼 때 비용이 더 적게 듭니다(p. 65). 책을 읽는 이유 세 가지 2010. 2. 16. 책을 많이 읽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받는다. 무지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고전을 읽은 적이 없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가 보니 문화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투리는 말을 안 하는 것으로 감출 수 있었지만 무지는 감출 방법이 없었다. '장 발장'이 《레미제라블》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읽었다(p. 108). 무경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판사가 되고 보니 사건을 이해하기엔 내 경험이 너무 좁고 얕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도대체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고 거액의 거래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잡히면 처벌받을 게 뻔한 일을 왜 되풀이하는지,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경험을 늘리려고 해보니 이 또한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당장 법관 윤리가 문제였다. 그래서 생각해본 것이 두 가지다. 지금은 언론사 사장이 된 어떤 분이 사법연수생이었던 나에게, 법조인이 되면 초등학교 동창생과 꾸준히 만나라고 당부했던 기억이 떠올라 초등학교 동창생을 만나기로 결심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8년 동안 1년에 몇 회는 초등학교 동창생을 (때로는 부부 동반으로) 만났으니 어느 정도는 실천한 셈이다. 두 번째가 책을 읽는 것이었다. 장르를 구분하지 말고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어보자 하였던 결심이 여기까지 나를 데려왔다. 무소신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어릴 때부터 내성적이었다. 남녀 공학 중학교 시절 소풍(p. 109)을 가서 선생님의 권유에 노래를 불렀는데 가사를 까먹어 끝을 맺지 못할 정도로. 그때 불렀던 노래가 남진의 〈님과 함께〉였다. 고등학교 때는 교복이 중고라서 반장을 하지 못했다. 대학교 가서는 사투리 때문에 남 앞에 나서지 못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무슨 결정을 하려면 무척 어려웠다. 결정을 하고 나면 곧 후회를 하게 되고. 어느 날, 내성적인 이유가 소신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했다. 군대에서 정훈장교를 하게 되었고 정훈장교 하는 일이 장병 교육이다 보니 남 앞에 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어느 정도 해소된 뒤라서 그런 결론을 더욱 쉽게 내릴 수 있었다. 앞서간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그들의 생각과 내 생각을 서로 맞추어보는 과정을 통해 생각이 단단해져 소신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포함해 많은 책을 읽게 되었다. 사족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면 그 사람이 누구와 만나고 무슨 책을 읽는지 말해달라."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p. 110). 혼돈의 시기에 그나마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친구와 책 덕분이라 생각하니 이 글을 쓰는 감회가 남다르다. 모든 분들에게 책을 한번 읽어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p. 111). 책을 고르는 기준 2010.6.26. 책을 어떻게 고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저자를 보고 고른다 어떤 책을 읽고 감동을 받으면 그 저자가 쓴 책은 눈에 띄는 대로 사서 읽는 버릇이 있다. 예를 들면 고 장영희 교수의 《내 생애 단 한 번》을 읽고 《축복》 《살아온 기적 살아 갈 기적》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는 식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저자는 다음과 같다. 신영복 교수, 정 민 교수, 유시민 전 장관, 소설가 김 훈, 오지 탐험가 한비야,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열하일기》 전문가 고미숙 박사(p. 124). 주제어를 보고 고른다 제목이나 문장을 검색하여 관심 있는 주제어가 들어간 책을 고른다. 요즘 즐겨 찾는 주제어는 다음과 같다. 정의, 소통, 성찰, 역사, 철학, 인생, 여행, 행복. 이런 기준으로 고른 책은 다음과 같다. 《정의란 무엇인가》 《서양철학사》 《인도 여행》 《행복의 정복》 《무지개 원리》 《인생이란 무엇인가》 등등. 책 선택에 실패한 적은? 이런 기준으로 책을 골라 읽으면서 후회할 때가 제법 있다. 그러나 산 책은 다 읽는다. 재미가 없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책에 대하여는 독후감을 쓰지 않음으로써 복수를 한다. 블로그에 올린 책은 이중으로 검증을 거쳤다고 보면 된다. 지금껏 읽은 책은,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1천 권 정도 될 것 같다. 책을 고르는 장소는?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하여 고르는 경우가 많고 가끔 서점에 가서 고른다. 베스트셀러 항목과 새로 나온 책 항목을 많이 참조한다(p. 125). 블로그에 독후감을 쓰는 이유는? 독후감을 쓰다 보면 책 내용을 정리하는 효과가 있고, 글쓰기 훈련이 되며, 블로그에 저장해놓으면 다른 글을 쓸 때 인용하기 쉽기 때문이다. 나쁜 사람은 있어도 나쁜 책은 없다. 어떤 책에서도 스승 또는 반면교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께 독서를 권한다. 책이 여러분을 끌어올려줄 것이다(p. 126). 왕후박나무 2011.4.1 남해군법원 다녀오는 길에 경남 남해군 창선면 왕후박 나무를 만났습니다. 500년 이상 되었다고 합니다. 둘레에는 동백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후박나무는 녹나무과에 속합니다. 주로 방풍용으로 많이 심는다고 합니다. 남해군 창선면에 있는 왕후박나무는 천연기념물 제29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왕후박나무는 높이 솟구치지 않고 옆으로 퍼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람 부는 바닷가에서도 500년을 버틴 게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렇다면 이 나무는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낮추는 것이 자신을 높이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것을 말입니다(p. 140). 조영남의 노래가 있죠. 〈겸손은 힘들어〉. 그렇죠. 겸손은 힘듭니다. 공자 이래 2천 년 동안 성현들은 겸손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겸손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적습니다(p. 141). 조정에 임하는 자세 2013.4.28. 조정이란 조정은 법률 분쟁이 생겼을 때 판사의 판결이 아니라 당사자 간 타협을 통하여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를 말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법원에 접수된 사건 중 판결까지 가는 사건은 10퍼센트가 되지 않고 대개는 조정을 포함한 여러 가지 간이한 방법을 통하여 사건을 처리한다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 조정은 이길 사람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것이니 불합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길 사람이라는 건 미리 정해진 것은 아니고 재판 절차를 통하여 증거를 대고 법리를 세워야 하고 그것으로 판사를 설득해야 하며 최종적으로 대법원까지 가봐야 아는 것이다(p. 188). 그리고 1천만 원을 받기 위하여 소송 비용으로 500만 원을 들여야 한다면, 700만 원을 받고 소송 비용을 100만 원 선에서 지출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도 있다. 사건에 관하여 가장 절실한 이해관계자는 판사도 아니 고, 변호사도 아니며, 결국 당사자다. 사건을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람도 당사자일 수밖에 없으므로, 당사자의 주도권이 가장 잘 보장되는 조정 절차가 불합리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조정에 임하는 자세 양보해야 한다. 조정은 당사자 간의 타협을 통하여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고 대체로 당사자는 서로 이해관계가 상반되므로 양보를 해야 조정이 성공한다. 본인이 참석해야 한다. 변호사에게 소송을 위임한 경우라도 조정 절차에는 본인이 참석하는 것이 좋다. 판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고, 상대방의 입장을 직접 들을 수 있으며,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상생하는 방법도 있다. 본인에게 크게 불리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크게 배려하는 방법도 있다. 상대방이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쟁점에 관하여 양보하더라도 본인에(p. 189)게 크게 불리하지 않은 경우도 있으므로, 상생하는 방법을 찾아본다. 집행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소송을 하는 종국적 목적은 대체로 승소 판결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돈을 받아내기 위함이다. 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더라도 집행 절차에서 돈을 받아내는 비율은 생각보다 낮다. 조정 절차에서는 돈을 받아내는 방법도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있으므로 유리하다. 원고는 5천만 원을 고수하고 피고는 3천만 원을 고집할 경우 4천만 원 선에서 타협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때로는 5천만 원으로 정하되 3개월 내에 3천만 원을 가져오면 나머지 2천만 원을 포기하는 방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싸우는 것은 금물. 간혹 조정실에서 상대방과 말이나 몸으로 싸우는 사람이 있다. 사연이 있겠지만 판사 입장에서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자신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풀 수 있는 자리를 어렵게 마련했는데 불만을 터트리는 자리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불합리한 처사다. 그 사건이 해결 되지 않을 경우 가장 손해를 보는 사람은 판사도 아니요 변호사도 아니요 바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판사의 설명에 귀 기울인다. 법원이 조정 절차를 주도하(p. 190)는 경우 판사로부터 사건 전반에 관한 설명을 듣게 된다. 판사는 내가 불리한 점, 내가 유리한 점을 나누어 설명할 것이다. 잘 들으면 판사가 생각하는 바를 엿볼 수 있다. 특히 2심이라면 사건 처리 방향이 대부분 결정되었다고 보면 된다. 민사 사건의 경우 대법원에 상고를 해서 2심 판결이 깨지는 비율이 10퍼센트가 안 된다는 점, 사실 인정은 원칙적으로 2심에서 하게 되어 있는 점을 고려할 때, 2심 재판부의 결론은 존중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내 입장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좋다. 마무리(롯데자이언츠의 마무리는?) 집안에 송사가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적당한 선에서 털고 나오는 것도 마음의 평화를 찾는 좋은 방법이다. '조금 손해 본 것은 다른 일을 해서 보충하면 된다.' 이런 생각으로 조정에 임할 수는 없을까요?(p. 191). 재판 속의 문학 내가 현실에서 맡은 재판은 그렇게 감동적이지 않았다(p. 304).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문학이 재판에서 많은 것을 차용하지만 재판은 문학에서 차용하지 않고 순수함을 고수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판사는 많은 경험을 해야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제한적인 경험을 할 수밖에 없다. 문학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문학은 보편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고, 재판은 구체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며, 양자는 서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판사들이 다 가난했던 경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김훈의 《흑산》을 읽고 나면 가난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가령, 배고픔을 면하자면 오직 먹어야 하는데 많은 끼니 중에서도 지금 당장 먹는 밥만이 배를 채운다는 내용이 그렇다. "아침에 먹은 밥이 저녁의 허기를 달래줄 수 없으며, 오늘 먹는 밥이 내일의 요기가 될 수 없음은 사농공상과 금수축생이 다 마찬가지다." 내가 10년 전 처리한 사건 중 20대 청년이 공무집행 방해죄로 구속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생모라고 밝힌 사람이 탄원서를 보냈다. 오래전에 헤어진 아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자신이 책임지고 선도를 할 테니 선처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p. 305). 재판을 하며 방청객을 둘러보니 유난히 눈에 띄는 분이 있었다. 피고인석 옆에 앉아 대화를 하게 하였더니 피고인을 껴안으면서 "이제 괜찮아, 엄마가 있잖아"라고 말했다. 피고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생모와 시선도 마주치지 못하였다. 생모를 만났으니 이제 마음을 잡지 않겠는가 생각하고 집행 유예 판결을 선고했고, 피고인에게 책을 선물하면서 그 책 한 쪽을 읽어주었다. 알프레드 디 수자의 시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다. 내가 10년 전에 처리한 사건 중에 피고인이 자살을 하려고 여관에 불을 질러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불은 크게 번지지는 않았고 다친 사람도 없었다. 선고하는 당일 피고인에게 자살을 열 번 외치게 하였다. "자살자살자살자살.... 이렇게 열 번 하면 본인은 '자살' 이라고 말하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살자'로 들립니다.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실패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자살에 실패해서 살았지 않았습니까?" 그러고서 피고인에게 《살아 있는 동안 해야 할 49가지》란 책을 선물했다. 나는 이런 재판을 하게 된 배경 중 8할이 문학 덕분이라고 생각한다(p. 306).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 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어쩌면 좋은 문학과 좋은 재판은 그 모습이 모두 비슷할지 모른다.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공동체의 보편적 가치를 질문할 때, 주제와 이야기가 딱 들어맞을 때 독자들은 감동한다. 판사들이여! 《유토피아》를 쓴 토마스 모어가 영국의 대법관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작가들이여! 긴장하시라. 대한민국의 판사도 또 다른 '유토피아'를 쓸지 누가 알겠는가?(p.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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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2】 죽음을 늘 준비하며 살자
- KBS 《아침마당》, 《강연100℃》 등에 출연해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위로와 공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 호스피스 의사 김여환의 에세이 《내일은 못 볼지도 몰라요》. 극심한 암성 통증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누구보다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임종 선언을 했던 저자 김여환.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꼼꼼히 기록한 이 책은, 삶이 완성되는 마지막 순간을 위해 더없이 소중한 오늘을 ‘있는 힘껏’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아내야 한다는 인생의 진리를 전하고 있다-교보문고. 이 책은 호스피스 의사가 수많은 죽음을 보고 삶과 죽음에 대해 느낀 것을 쓴 것이다. 많이 유익했는데 현재 절판됐다. 사람의 일생 중 가장 힘든 시기는 보증을 잘못서서 거액의 부도를 냈을 때나 남편이 바람을 펴서 이혼할까 말까 망설일 때가 아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인생의 반전 같은 일말의 빛조차 기대할 수 없는 시간들, 즉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까지의 '짧은 삶'이다. 그 시기를 잘 보내야만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을 온전한 나의 인생으로 만들 수 있다. 그래야만 남겨진 사람들의 인생도 편안해질 수 있다(p. 8). 그렇다. 나는 이 세상에 남들보다 조금 먼저 작별 인사를 건넨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토록 자명한 삶의 진리를 힘겹게 깨달았다. 만약 우리에게 내일이 오지 않을 것임을 안다면, 오늘 우리의 삶은 결코 평범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만약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내일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면, 한 번 더 사랑한다 말하고, 한 번 더 안아주어야 하며, 오늘 깃든 행복을 있는 힘을 다해 누려야 한다. 이렇게 수많은 '오늘의 삶'이 모일 때 삶의 아름다운 결과물은 비로소 완성 된다. 그러므로 "내일은 못 볼지도 몰라요."라는 말에 숨어 있는 참된 의미는 오지도 않은 내일에 대한 불안과 분노, 두려움과 슬픔에 오늘의 행복을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 더 사랑하고, 오늘 더 행복해야만 한다(p. 10). "2012년 8월 21일 12시 42분, 신복연 할머니는 사망하셨습니다." 나는 할머니가 더 이상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사실을 말했다. 그리고 통증 없이 편안히 좋은 곳으로 떠나셨다는 위로의 말도 빼놓지 않았다. 짤막한 사망 선언 뒤에는 언제나 그 마지막 순간을 지키고 있던 가족의 대성통곡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오늘은 조용했다(p. 22). 할머니의 둘째 딸이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우리 엄마가 평소에 유언을 했어요. 내가 떠나면, 울지 말라고. 자식들이 우는 소리가 들리면 뒤 돌아보느라 떠나는 것이 힘드니, 울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어요." "아...하여간 대단하세요. 입원 내내 웃지 않으신 날이 없었는데, 그런 아름다운 유언까지 하신 줄은 몰랐어요. 제가 들어본 유언 중에 가장 훌륭한 유언인 것 같아요." "과장님, 그렇죠! 우리 엄마가 암에 걸렸다고 하니까, 동네 사람들이 이제 꽃 한 송이가 지는구나, 했다니까요." 곱게 아껴두었던 꽃분홍색 한복으로 갈아입고, 흰 양말까지 정갈하게 신은 신복연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살아 있는 그 누구보다도 따뜻해 보였다(p. 23). 짧은 글 한 편을 쓸 때에도 마지막에 무슨 말을 쓸까를 생각하면서 쓰면 글의 흐름이 매끄러워지듯이, 인생도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고 살다 보면 들쭉날쭉한 인생이 일관성 있게 변한다. 타인과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자기 자신과 먼저 소통해야 한다. 자신의 마지막 순간과 소통하면 인생의 해답을 얻을 수 있다(p. 25). 자신과 만나려면 가장 낮은 곳으로 가야 한다. 그러므로 임종실은 부끄럽지만 가장 볼품없고 꾸밈없는 자신의 민낯이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신 있게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만남은 바로 '나의 마지막'이라고(p. 26). "호호호, 난 아직 여기 입원할 단계는 아닌 걸요." "아직은 마약성 진통제를 쓸 만큼 아프지는 않아요." "며칠 전에도 산에 다녀올 만큼 괜찮았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멀쩡하게 걸어 들어오는 말기 암 환자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건강해 보이는 말기 암 환자들이 한두 달 뒤에는 누런 황달이 오거나 폐렴이 와서 황망히 떠나버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남겨진 시간에 대해 불안해하거나 초조해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그 짧은 시간에 환자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칠순 잔치를 하든지, 마지막 콘서트를 하든지, 이혼한 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들을 찾아주는 일들 말이다. 그래도 나도 한 번쯤은 환자를 살려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모두가 죽는다고 포기했던 말기 암 환자가 완치되는 일이 우리 병동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했다. 환자들은 입원해서 퇴원(p. 45) 할 때까지 평균 27일을 살았다. 호스피스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역시 기적이란 부질없는 비현실적인 희망이라는 것을 확신 하게 됐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가슴 저리게 갈구하기도 하고 신에게 떼를 쓰며 의지하기도 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적이겠지만,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이 훤히 보이는 나로서는 그렇게만 하다가 환자를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런 애절한 생각을 할 시간이 있으면 조금밖에 남지 않은 삶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오랜 경험을 통해 내린 슬픈 결론이었다. 사람이 좀 민민하고 삭막하게는 되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이것이 옳았다(p. 46). 말기 암 환자가 되면 환자와 가족은 육체와 정신적으로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과 맞닥뜨린다. 푸시시한 구차한 모습으로 마지막을 보낼 때쯤이면 원치 않았던 현재 시간이 살다 남은 찌꺼기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약한 정신 때문이 아니라 몸이 약해지기 때문에 마음까지 통째로 흔들린다. 심지어 어떤 환자는 "잠자듯이 가는 그런 약 있잖아."라고 노골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말기 암 환자가 안락사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p. 56). 비참한 마지막은 말기 암에 걸린 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살다 남은 삶이라고 쓰러져버리는 마음이 만드는 것이다. 떠날 사람은 남아 있을 이를 위해 조금 남은 삶을 성실히 살아가고, 남아 있을 사람은 떠날 이가 세상에서 사랑받다가 가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도록 노력하면 서로 덜 힘들다. 처음과 마지막까지, 모두가 촘촘히 내 인생이기 때문이다(p. 58). 세상은 가벼움과 무거움이 서로 경계를 불분명하게 가른 채 섞여 있다. 어떤 부분은 내가 그보다 가볍고, 어떤 부분은 내가 그보다 무겁다. 그렇게 어우러져서 세상은 좀 더 좋게 변한다. 그러나 '죽음이 다가오는 것'과 같은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가벼움과 무거움의 경계선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고함을 지르고 입원실 바닥에 소변을 보는 한 할아버지 때문에 사흘 밤낮 동안 시달린 환자들이 하소연을 했다. 할아버지를 간병하던 할머니는 "환자가 병원에 자러 왔나요?"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진정제도 못쓰게 하고 1인실로 가지도 않았다. 그런가 하면 뇌종양에 걸린 12살짜리 소녀는 과자를 들고 병실을 누비며 "아저씨, 빨리 나으세요."라고 하면서 환자들에게 나눠주었다. 한 신문 기자가 말기 폐암 환자에게 물었다(p. 67). "인생의 선배로서 우리에게 해주실 말씀이 없으신지요!" 후덕하게 생긴 환자는 가지고 있던 옷가지며 살림살이를 싹 정리할 정도로 죽음을 잘 받아들었다. 하지만 그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쓸쓸하게 대답했다. "저는....그런 것은 선배가 되고 싶진 않은데요." 그렇다. 죽음이란 일평생을 별 탈 없이 살다가 90살이 되어 마음 독하게 먹고 미리 준비해도 어려운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닥뜨리는 죽음은 아무리 노력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법이다. 죽어가는 사람을 많이 돌본 의사로서 한 가지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이 먼저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남은 사람들 걱정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나 때문에 끼니를 거를까 봐, 나를 잃은 슬픔으로 행여 병이라도 생길까 봐, 경제적으로 힘들까 봐 등등.... 그들은 사소한 걱정을 몰래 했다. 남은 사람들은 그 마음을 알까? 임종실은 섞일 수 없는 삶과 죽음이 뒤엉켜 있고, 살아남은 이들이 비통함에 눈물을 흘리는 작은 방이다. 그러나 그곳을 거(p. 68)쳐 간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존재란 그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도 사랑하는 이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라고(p. 69). 예전에 나는 보기조차 딱할 만큼 남을 부러워했다. 뚱뚱할 때는 날씬한 사람을, 늦게 시작한 의사 생활이 비참하다고 느껴질 때는 처음부터 순탄하게 직장 생활을 하는 동료를 얄밉도록 부러워했다. 누군가는 잘된 사람을 부러워하면서 인생의 꿈도 생기고 삶을 개척할 의지도 생긴다고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 부러움이 오늘날의 나를 있게 한 계기는 되었을지라도 그 과정은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이제 내가 진실로 부러워하는 사람은 돈이 많거나,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입학했거나, 예쁘고 날씬하고 건강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어떤 삶이 자신에게 다(p. 92)가오더라도 묵묵히 잘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으며, 자신의 삶을 그 자체로 당당하게 살아내는 사람이다. 우리는 저마다 지닌 인생의 향기가 따로 있다. 그러니까 이제는 그 누구도 부러워하지 말자. 인생의 마지막에는 행복했던 자신의 과거조차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 시간에는 그 시간에만 누릴 수 있는 나만의 행복이 따로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마지막이 온 것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아쉬운데, 여러 가지 잣대로 부러워하면 병들어 있는 자신이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부러워하지 말자, 그대여! 인생이 아파도 마지막까지 이 세상을 그 누구보다 당당하게 살아내야 한다(p. 93). 불행히도 호스피스에는 죽음을 편안하게 수용할 수 있는 묘약 따위는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속사정을 들어주면 조금은 가벼워졌고, 끝까지 끈을 놓지 않고 가는(p. 108)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평범한 사실에 평안을 찾아갔다. 대식 씨의 어머니처럼 때로는 버리는 것보다 안고 가는 것이 더 홀가분한 인생도 있다. 그러니까 결국 안고 가는 사람, 버리고 가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 셈이다(p. 109). 잘 죽어가기 위해 우리가 정말 배웠어야 할 것은 죽음의 5단계를 외우거나 혼자서 관 속에 들어가 보는 체험을 하는 것이(p. 112) 아니다. "저는요, 이미 죽음을 다 받아들였어요."라고 말하면서 의젓하게 지내다가 진짜 마지막이 다가오면 불안에 떠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라기보다는 결과물이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신산스럽고, 일상은 상처와 갈등의 연속이다. 나에게 주어진 삶을 얼마만큼 잘 녹여내느냐에 따라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있을 마지막 날은 달라진다(p. 113). 어쩌면 인생은 쓰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저절로 쓰이는 소설책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지만 어떻게든 끝까지 살아내야 한다. 죽을 만큼 괴로워도 직접 해봐야 삶에 대한 사랑이 깊어진다. 사람들은 인생이 힘들어지면 앞으로 남은 여정이 얼마나 끔찍해질지 더 두려워한다. 남은 인생이 지금보다 더 불편해지더라도 초조해하거나 원통해하지 말자.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그대의 삶이 다른 누군가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자살이라는 '고의로 스스로를 죽이는 행위'를 생각할 만큼 견딜 수 없이 힘들다면 적극적으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아무 상관도 능력도 없는 사람에게조차 알려야 한다. 마음의 피눈물은 말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상처는 치유될 수 없다. 애써 고통을 삼키지 말자. 누구라도 도와줄 사(p. 120)람을 찾아다녀라. 자존심 따위 내세울 때가 아니다(p. 121). 치통이 아무리 심해도 한꺼번에 진통제를 다섯 알씩 먹지는 않는다. 통증을 잡으려다 사람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타이레놀도 하루에 여섯 알을 초과하면 진통의 효과는 증가하지 않고 간에 부담만 준다. 이렇게 일반 진통제는 일반적으로 정해져 있는 용량을 초과하면 통증에 대한 효과보다는 약물에 대한 부작용이 심해지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용량의 한계가 있다. 이것을 약의 천장 효과(ceiling effect)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천장 효과가 없는 약이 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많이 쓰이는 마약성 진통제이다. 그것은 일반 진통제와 달리 많이 쓰면 쓸수록 통증이 잘 조절된다. 더군다나 날록손 (naloxone)이라는 해독제까지 있으니 '모르핀'이야말로 신이 세상을 떠날 때만은 아프지 말라고 인간에게 특별히 내려준 '마지막 선물'이다. 사망 원인 1위인 암은 사람이 떠날 무렵에 부쩍 커진다. 암(p. 129)덩어리가 커지면 정상 조직을 파괴하는 묵직한 암성 통증도 당연히 심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무 일찍부터 진통제를 쓰기 시작하면 통증이 가장 극심한 마지막 순간에는 정작 쓸 수 있는 약이 없을까 봐 전전긍긍한다. 모르핀을 최후의 약으로 넘겨 두었으면 하고 부탁까지 한다. 그러나 통증에 관한 한 모르핀은 쓰면 쓸수록 효과가 있는 약이다. 이러한 마약성 진통제의 비밀을 알려주면 누구나 "진짜 그런 약이 있나요?" 하고 물으며 신기해한다. 환자나 보호자는 어차피 살릴 수 없다면 고통 없이 떠날 수 있다는 확신만으로 가느다란 희망을 갖는다. 모르핀은 우리를 죽음의 공포보다 더 끔찍한 암성 통증에서 해방시켜주는 이로운 약제이다. 우리는 지금보다 좀 더 정확하게 모르핀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아직도 말기 암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환자, 보호자, 의료진의 모르핀에 대한 오해와 두려움으로 마약성 진통제를 거부하면서 의미 없는 통증에 시달리다가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인생의 마지막 의사로서 당부한다. 언젠가 당신에게 그때가 오면 신이 내린 선물, 모르핀을 거절(p. 130)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통증이 없으면 죽음의 맨 얼굴을 똑바로 응시할 수 있고, 고통 없는 죽음은 결코 폭력적이지 않을 것이다(p. 131). 내일 도사리고 있는 재앙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살아감 속에 죽어감의 흔적을 묻히는 것이다. 내일이라는 것이 그 누구에게도 완벽하게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 오늘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심코 거칠게 한 말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오지도 않을 비겁한 내일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너무 많이는 양보하지 말자(p. 163). 말기 암 환자가 되면 환자와 가족은 육체와 정신적으로 이제까지는 경험하지 못한 일을 경험하게 된다. 가족 간의 갈등이 있었다면, 분명히 그 갈등은 확대된다. 문제의 중심은 늘 '사랑과 돈'이다. 거기에 종교적인 문제가 곁들여지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p. 174). 살다 보면 마음 내키지 않는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하고 싶은 일만 해도 짧은 인생인데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 큰 손해를 볼 것만 같다. 젊은 시절에는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를 때가 많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나 매 순간 저마다 해야 할 일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해야 할 일을 하다 보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훤히 보이고 그때 용기 내어 그 일을 하면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것이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기도, 또 속절없이 짧기도 하다. 그러기에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실수 없이 하려면 마음에 내키지 않더라도 '해야 하는 일'을 먼저 하면서 견뎌보는 것쯤은 각오해야 한다(p. 187). 웰다잉(well dying)은 삶의 완성이 아니라 삶의 결과물이다. 누구나 손쉽게 받을 수 있는 선물은 더군다나 아니다. 저마다 주어진 힘든 삶을 잘 살아내야만 누릴 수 있는 삶의 마지막 축 복인 것이다(p. 203). 죽음을 깊숙하게 연구하고 싶어서라든지 내 성격이 원래 우울해서 호스피스 의사가 된 건 아니다. 나는 호스피스 일을 해오는 동안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사람도 죽음에 이르기 직 전까지는 살아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누구도 아프지 않게 하루를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거창한 죽음의 여의사가 아니라 그저 생명의 에너지가 다 할 때까지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의사로서 당연한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름이 주는 거부감 때문에 국내 암 환자의 마약성 진통제 사용률은 그리 높지 않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국내 사용량은 모르핀으로 환산했을 때 환자 1인당 연간 45mg에 불과하다. 미국 693.44mg, 영국 334.52mg은 물론 세계 평균 58.00mg보다도 낮다. 통증을 효과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안 쓰는 것이다. 아직도 대한민국 사람들은 아프면서 죽어간다. 의사 입장에서 보면 죽음이 삶의 종착역인지 따위는 일단 환자의 통증을 덜어준다음에 생각할 일이다. 암 환자의 통증은 당사자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다. 출산의 고통이 10점 만점에 7~8점이라면 암 환자의 통증은 10점 이상도 간다.암성 통증은 암이 진행되는 생명의 마지막에는 더 심해지고, 그(p. 215)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환자와 가족을 더더욱 애타게 한다(p. 216). 인생을 산다는 것은 세상에 놓인 하나의 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하지만 그저 다리를 건너는 일에만 집중한다면 세상의 아름다움은커녕 다리를 뒤흔들 고통과 혼돈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다. 뜨거운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자기 삶의 아웃사이더가 되어보기를. 삶이 끝난 뒤에 죽음이 오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죽음이 있음을 알아차리기를,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게 되기를 바란다(p.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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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1】 삶의 찌질함과 누추함에 대하여
- 산문집 《연중무휴의 사랑》과 《헤아림의 조각들》(2023년 문학나눔 선정도서)로 2030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임지은이 신작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를 출간했다. 전작에서 냉철하고, 때론 따뜻한 연민과 너른 헤아림을 보여줬다면 이번 산문집에서는 작가 자신의 깊은 내면에 숨겨진 질투와 열등감, 욕망과 좌절, 위선 등의 감정을 진솔하게 마주해본다. 누구나 한번쯤 특별한 이유 없이 무언가를 미워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싫음’이라는 감정은 과연 무엇일까. 숨기고만 싶은 이 복잡 미묘한 감정을 들여다볼수록 작가는 거기에 어떤 선망이나 외로움, 부끄러움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편으론 자기가 가진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을 돋보이게 하려는, 서툰 사랑의 마음이기도 했다. 작가는 슬픔과 기쁨과 외로움이 버무려진 이 “혼탕과 같은 삶”에 깊게 몸 담그며, 미움과 사랑 사이의 낙차를 발견한다. 엄마를 통해 흉보는 마음과 사랑이 때론 붙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온 세상과 자기 자신을 고루고루 아낌없이 사랑한다는 사람들 옆에서 홀로 투덜거리며 자신의 ‘싫음’을 통해 타인의 ‘싫음’ 또한 이해하게 되는 세계를 경험한다. 좋은 것은 당연하게 제 것이라 누리는 동거인에게 꼬인 마음이 드는 자신을 들여다보며 좋은 것을 좋은 것이라 수긍하기까지의 내면의 갈등과 고통을 인정하기도 한다. 이처럼 작가는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것대로 멋진 일이지만, 무언가를 미워한다는 것 또한 때로는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을 톺다 보면 이 책을 추천한 오은 시인의 말처럼, “곡절 없이 좋아하는 것들을 몇 곱절 더 소중하게 만들어주는” 생경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곧 있으면 닥쳐올 매서운 겨울바람에도 직진하는 용기가 느껴지는 책이다.-교보문고 자신의 찌질함(?)을 드러내는 글을 보며 저자의 용기를 본다. 만족스럽지 않은 환경 가운데서도 살아볼려고 하는 저자의 몸부림(?)에 박수를 보낸다. 이토록 많은 말이 오가는 세상에 말 한마디가 그토록 크게 사람을 흔들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놀라고야 만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버티고 또 흔들릴 만큼 나는 취약 했다. 그러나 누군가를 흔드는 게 무작정 나쁘다거나, 사주는 믿을 만하지 않다는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니다. 나를 흔들던 말 또한 나를 이쪽으로 데려왔음을, 내가 무언가를 그 안에서 발견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밤 안도 속에서 깨달은 건 나를 격려해주는 이가 없어도, 심지어 누가 나를 흔들어놓고 수면 아래로 밀어 넣는다 해도,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란 사실이었다. 그로 인해 생겨난 불안과 슬픔과 무력감, 또 그에 따른 오기와 반발심을 동력 삼으며, 나는 내 안에서 끝내 살아남은 무언가를 마주했다. 어쩌면 그(p. 25)것이 그리도 중요했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나 흔들렸다는 사실 또한. 그러므로 물음에 대한 답은 추가되고 갱신된다. 어쩌다 작가가 되었을까? 나는 끝내 작가가 되고 싶었다(p. 26). 오늘날에는 자신을 돌보는 법에 대한 정보가 넘쳐난다. 그런 정보의 과잉은 때론 상처도 불행도 없어야 한다는 강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건 꼭 완두콩 한 알 만큼의 불편도 용인하지 않기 위해 고안된 듯 보이니까. 혹시 사람들은 자신에게 좋은 것만 주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는 걸까? 그렇게 해야만 제대로 된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건 좀.. 부자연스럽지 않나? 그래도 그런 정보들을 일찌감치 알았다면, 그래서 내 부모가 조금 더 자신을 돌보았다면 그들에게도 내게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내 부모도 조금은 덜 힘들었을 텐데. 나도, 조금 덜 우는 사람이었거나 조금 더 마음 놓고 우는 사람으로 자랐을 텐데. 어쩌다 한 번 하는 우리의 외식도 지금보다는 더 편안할 텐데(p. 103). 뒤늦게나마 나는 내게 좋은 것을 주는 법을 배우고 또 연습한다. 가능한 선에서 질 좋은 걸 산다. 누가 뭘 해주면 사양하지 않고 받는다. 목돈을 모아 요가를 등록하고 되도록 병원을 제때 간다. 때론 근사한 데서 밥을 먹기도 한다. 부모로선 잘 모를 좋은 걸 누려도, 스스로를 이기적이라 느끼지 않으려 이를 악문다. 동거인이 놀리는 걸 보면 갈 길이 먼 것 같지만, 나는 나를 보살피는 훈련을 거듭한다. 그래야 부모를 포함해 그 누구라도, 나를 챙기느라 그 자신을 뒷전으로 두지 않을 수 있다. 그래야 나에게 최선을 다해준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고 끝까지 이해할 수 있다. 동거인의 캠핑을 따라가는 건 훈련의 일환이다. 캠핑을 가면 동거인이 거의 대부분의 일을 도맡아 해주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뻔뻔하게 앉아서 쉰다. 겨울에는 가끔 엄마의 개도 캠핑에 데리고 간다. 텐트 안에서 개는 한 뼘의 볕이 있는 자리에 자기 몸을 두기도 하고, 난로 앞 조금 더 따뜻한 곳에 자리를 잡고 웅크리기도 한다. 주어진 데서 기어이 제 몸만큼의 좋음을 찾아내는 것이다. '너는 바로 아는구나'(p. 104). 내가 오래 걸려 배운 걸 개는 그냥 해낸다. 기특하고 근사한 개 같으니. 몇 년 전가지만 해도 그런 광경, 자신이 괜찮아지는 위치를 미리 알아두고 스스로를 거기 놓는 존재 앞에서는 마음이 볼썽 사납게 흐트러지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웅크린 개를 빤히 바라본다. 걷는 법을 모르고도 걸었고 숨 쉬는 법을 모르고도 숨 쉬었다. 사랑 하는 법을 모르고도 사랑했고 사는 법을 모르고도 살았다. 나를 키워낸 내 부모처럼, 언제나 모르면 모르는 대로 해내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배우면 배우는 대로 더 해내게 된다. 그걸 안 뒤로 나는 배우고 싶은 모든 걸 조금 더 오래 본다. 그럼 볕을 받아 털끝 하나하나가 빛나는 작은 개의 부드러운 몸이 조금씩 솟았다 가라앉길 반복하듯 감탄과 슬픔이 내 몸을 고요히 오르내린다. 어떤 자연스러움은 누군가에게 훈련의 영역에 있지. 그런 게 언제나 조금씩 나를 상하게 만든다고, 개를 쓰다듬으며 생각한다. 아무 불편도 모르는 얼굴,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멸균된 얼굴은 역시 내 것이 아니다. 훈련 해봤자 조금 상한 얼굴을 더 자연스럽게 여기는 내 관점은 아무래도 끝내 바뀌지 않을 모양이다. 그래선지 어떨 땐 사람들의 얼굴이 다 조금씩 상한 것처럼 보이곤 한다(p. 105). 대중교통을 오가며 힐끗힐끗 사람들을 본다. 사람들이 상처 입거나 불행하지 않길 바라면서. 그러나 나는 어쩐지 그들 각자의 상처나 불행이 없어지길 곧장 바라지는 않는다. 거기서 오는 고통과 모순 같은 것들은 한 사람을 감싸는 오래된 맥락이므로. 나로선 그 안에 새겨진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다. 그들의 완두콩들을 헤아려 보고 싶다. 그런 건 사람이 상처와 불행 속에서도 그럭저 럭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알려준다. 다만 그 사실을 증명하겠다고 나를 몰아세우는 건 그만두었다. 스스로를 보살피는 게 죄가 아니라는 걸 개조차 그냥 안다. 나는 개처럼 살아서 숨쉰다. 개에게 배운 바, 그건 머무르는 자리에서 언제나 한 뼘의 볕을 찾아내야만 한다는 뜻이다(p.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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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1】 삶의 찌질함과 누추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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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12】 글쓰기의 중요성에 관계된 성경 구절
- 글쓰기의 중요성에 관계된 성경 구절 말하는 것이 중요하나, 글을 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말하면 사라지고 기억에 남지 못하나 글을 쓰면 작품을 남기게 되어 두고두고 읽고, 감동을 받게 됩니다. 글을 통해 소통하고, 선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글을 쓸 때, 진실하게 써야 합니다. 나쁜 글을 쓰면 나쁜 영향을 끼치고 문제가 생기기에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의 저자들이 글을 써서 성경을 남긴 것입니다. 성경은 최고의 글입니다. 글쓰기의 중요성에 관계된 성경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박국 2:2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요한복음 8:8-9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데살로니가전서 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디모데전서 1:2 믿음 안에서 참 아들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골로새서 1:2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디모데후서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요한1서 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누가복음 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부지런함과 인내가 있어야 글을 쓰게 됩니다. 글을 쓸 때 기도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감을 글로 써야 합니다. 글을 쓰는 것은 훈련과 연습, 경건 훈련입니다. 글 쓰는 영을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글을 쓰는데 도전해야 합니다. 글쓰기가 힘이 드나, 글을 쓰는 것은 유익이 많습니다. 글을 써서 자료를 남기고 책으로 출판해야 합니다. 글을 써서 나누는 것이 문서 선교입니다. 글을 쓰면서 트라우마가 사라지고, 고독을 이기고, 마음의 병이 치유됩니다. 근심이 떠나기도 합니다. 메모하는 습관, 글을 쓰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종교개혁자들은 글을 남겨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설교자는 설교집을, 시인은 시를 남겨야 합니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글을 쓰는 것이 힘들다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모세는 모세오경, 사도 바울은 글을 써서 서신서 13권을 남겼습니다. 솔로몬은 잠언과 전도서를 글로 남겨 우리가 읽고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글을 써서 남겼습니다. 성경은 글을 써서 남긴 최고의 작품입니다. 성경이 없으면 구원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없습니다. 글을 쓰면서 자신의 삶이 치유되기도 합니다. 가장 보람된 것 중의 하나가 글을 써서 기록으로 남기고, 책을 출판하는 것입니다. 글을 쓰고 나면 출판 비용도 하나님이 공급하십니다. 글을 남겨야 합니다. 유명한 소설도 글을 써서 남긴 작품입니다. 글을 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글을 쓸 때,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글쓰기의 유익이 너무 많습니다. 글을 쓰면서 성장하고, 성숙해지며, 문제가 해결되기도 합니다. 글과 펜의 힘이 큽니다. 글을 써서 작품을 남길 때 흐뭇해지고,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설교자는 설교의 내용을 글로 남겨야 하고, 강의나 특강의 내용을 글로 써서 자료를 남겨야 합니다. 글을 써서 자료를 남기는 것이 큰 재산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고, 사람들이 읽고 도전받고, 은혜받는 좋은 글을 많이 남겨야 합니다. 글을 쓸 때마다 성령님의 도움을 구해야 하고, 글의 제목을 쓸 때도 성령님의 도움이 있어야 합니다. 남의 글을 베끼거나 카피하려는 유혹을 버리고 자신의 글을 써야 합니다. 자신의 글을 써야 힘이 있게 됩니다. 마음으로 글을 쓰고 영감을 받아 글을 써야 합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는데, 글쓰기의 중요성을 가르쳐주는 말입니다. 영어로는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입니다. 글의 힘이 어떤 것보다 크다는 의미입니다. 글쓰기는 여러 가지로 유익한데, 생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표현을 명확히 하게 되고, 감정을 표현합니다.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소통을 확장할 수 있고, 글을 기록으로 남기면 시간이 지나도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창의력, 논리력, 집중력을 길러주기 때문에 글쓰기의 유익이 많습니다. 글을 반드시 남겨야 합니다. 글을 써서 책으로 출판되면 마음이 기쁘고 흐뭇해집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 되어진 최고의 문서 선교입니다. 문서 선교의 효과가 큽니다. 글 쓰는 일에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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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12】 글쓰기의 중요성에 관계된 성경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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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80】 여전히 흥미로운 주제, 죽음
- 대한민국이 OECD 자살률 1위라는 아픈 현실을 몇 년째 마주하고 있다. “죽으면 모든 게 끝날 거야”라는 절망 속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젊은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어떤 대답을 들려주어야 할까? 이 무거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평생을 의학계에 몸담았고 ‘죽음학 전도사’라 불리는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와 그의 아내가 함께 펜을 들었다. 바로 신간 『죽음, 삶의 끝에서 만나는 질문 』의 저자 정현채, 이현숙 부부의 이야기다-교보문고. 의사가 하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1) 근사체험 (2) 사후통신 (3) 삶의 종말체험 (4) 사망 시 물리적 현상 (4) 영매 (5) 어린아이들과 관련된 환생 연구이다. 나는 근사체험만 인정한다. 죽음은 이 땅에서의 마지막이기에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책을 찾아 읽게 된다. 읽은 책들이 죽어갈 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정현채 서울대학교 의대 명예교수 1980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 내과학(소화기학)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로 있다. 지금까지 240여 편의 의과학 논문을 SCI 국제학술지에 발표했으며 위염이나 위궤양 등을 유발하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연구의 권위자로 대한소화기학회 이사장, 대한헬리코박터및상부위장관 연구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저명한 의학 저널 『랜싯』을 포함해 전문 학술지에 게재된 죽음에 관한 과학적 연구 성과를 공부하면서 2007년부터 대중을 상대로 죽음학 강의를 시작했다. 중학생부터 80대까지 다양한 계층을 상대로 800여 회 넘게 강의를 해 '죽음학 전도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국죽음학회 이사로서 '한국인의 웰다잉 가이드라인' 제정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할수록 비관적이 되거나 자살 충동이 커지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오히려 정반대예요. 제가 산증인이죠. 인간의 죽음 전후로 일어나는 영적인 현상에 대 해 알면 알수록, 왜 자살하면 안 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게 되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의미를 깨달아 더욱 밀도 있고 충만 하게 살아가게 되거든요. '내 목숨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웬 참견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실상을 알고 나면 그런 말을 하기가 어려워져요. 우리는 모두 서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고, 모르고 지나치는 존재들조차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요. 가족과 친구는 더 말할 나위 없죠. 우리는 모두 이번 생에서 다뤄야 할 저마다의 과제를 갖고 태어나는데, 자살을 한다는 건 그 과제를 너무 빨리 내팽개쳐버리는 거예요. 도망친다고 그 과제에서 벗어나게 될까요? 그렇지 않아요. 그 과제를 잘 다루게 될 때까지 형태만 바뀐 채 계속 마주 치게 돼요.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살면서도 그런 걸 경험하지 않나요? 해결하지 못 한 채 외면하거나 회피했던 문제가 사라지지 않고 어느 순간 눈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경험을요(p. 19). 자살은 남겨진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고, 이 상처는 수십 년이 지나도록 잘 아물지 않아요. 한 사람이 자살하면 주위 사람 다섯 명 내지 열 명이 자살 충동을 갖게 된다고 해요.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평균 마흔 명 가까이 자살한다고 하니, 매일 200명 내지 400명 넘는 사람들이 지인의 자살로 인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거죠.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와요. 서둘러 스스로 생을 마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사고로, 질병으로, 노화로 언젠가 다 죽어요. 그러니 그 전까지는, 자신의 삶은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까지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선택만은 하지 않아야 해요. 저는 4년 전 침윤성 방광암 진단을 받고, 방광 전체와 그 옆에 인접해 있는 전립선까지 제거하는 큰 수술을 받았어요. 소장 60센티미터를 잘라내고 만들어 넣은 인공방광에는 괄약근이 없어서 자율적인 배뇨 조절이 안 돼요. 일정한 간격으로 화장실에 가야 해서 밤잠도 세 시간씩 끊어서 자요. 그러나 이것 때문에 비관하지는 않아요. 30년 전만 해도 방광 절제 수술을 받고 나면 비닐 소변주머니를 밖에서 연결해 부착하고 지내야 했는데, 수술법이 향상되면서 삶의 질이 높아졌어요.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면 감사할 일이 참 많아요(p. 23). 자살하는 순간 후회하지만 자살을 시도했는데 살아난 사람들은 이후 신체적인 고통을 겪더라도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격스러워하며 살아간다고 해요.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이 더 이상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해요. 2013년 EBS 「다큐프라임」 '33분마다 떠나는 사람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에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교(금문교)에서 투신했다가 극적으로 살아남은 2퍼센트의 사람들을 다뤘어요. 미국 플로리다대학의 토머스 조이너 교수가 그 사람들과 면담한 결과, 투신해서 수면에 떨어지기까지 4초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한 행동을 후회했다고 해요. "뛰어내린 순간 나는 인생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방금 다리에서 뛰어내렸다는 사실 만 빼고"(p. 38). "뛰어내리고 처음 떠오른 생각은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였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떨어진 곳이 강이였으니 그나마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이고, 고층 빌딩이었다면 떨어지는 순간 후회한다고 해도 돌이키기 힘들죠. 경북 영주에 사는 한 중학생의 경우가 바로 그랬어요. 같은 반 학생들의 괴롭힘을 이기지 못해, 아파트 20층 계단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려다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 창문틀을 붙잡고 도와달라고 요청했어요. 때마침 20층에 사는 주민이 이 소리를 듣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지만, 이 학생은 팔에 힘이 빠져 결국 추락했다고해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에요. 이처럼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마음 한편에는 살고 싶은 의지가 강하게 있는 것 같아요. 다음에 소개하는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어요. 우울증을 앓고 있던 한 여성이 오피스텔에서 자살하려고 목을 맸는데,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이웃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어요. 잠긴 문을 따고 들어가보니 이 여성은 이미 사망한 것처럼 보였어요. 호흡도 없고 얼굴이 잿빛으로 변해 있었죠. 그런데 출동한 경찰관 중 한 명이 혹시 모르니 응급조치를 해보자며 심폐소생술을 시작했고, 얼마 뒤 이 여성은 "컥!? 하는 소리와 함께 숨을 쉬며 살아났어요. 그리(p. 39)고 살아나서 한 말이, 경찰이 들어왔을 때 자신은 여전히 의식이 있었는데 다른 경찰관이 "시신에 손대지 말고 현장을 보존하자"고 했을 때 속상했다는 거였어요(p. 40). 죽는 것 외에는 거기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자꾸 생각하게 만드는 상황에 있다면, 가족이나 상담사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을 찾으세요. 익숙한 곳을 벗어나는 걸 겁내지 마세요. 죽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지금 그곳보다 더 나쁜 곳은 이 세상에 없으니까요.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려요. 70년을 살아보니 정말 그렇더라구요(p. 42). 케네스 링과 친절 바이러스 근사체험 연구에서 케네스 링 교수를 빼놓을 수 없죠. 미국 코네티컷대학 심리학과 교수로서 30년 넘게 학생들에게 근사체험에 대해 가르쳤어요.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직접 체험하지 않았는데도 근사 체험자에게 일어나는 삶의 변화를 마찬가지로 겪었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삶의 의미를 찾게 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감소한 거예요. 케네스 링 교수는 근사체험을 '친절 바이러스Benign Virus'라고 불러요. 왜냐하면, 이를 알게 된 사람은 근사체험을 직접 하지 않았어도 마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처럼 체험자와 비슷한 긍정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에요. 그런 변화를 저나 주변 사람들한테서도 발견해요. 한 중견기업의 대표는 평소 까칠한 편이었다는데, 죽음학 강의를 들으며 펑펑 울고 난 뒤로는 직원들을 대하는 태도가 한결 부드러워지고 자상해졌다고 했어요(p.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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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79】 만화가 주는 즐거움과 편안함
- “<을지로 순환선>의 만화가 최호철과 만화평론가 박인하가 함께한 여행기『펜 끝 기행』. 같은 학교 교수로 만나 떠난 제주도 교직원 연수에서 결성된 두 만화쟁이 '펜 끝 듀오'의 여행은 이후 일본, 이탈리아, 스위스, 중국을 거쳐 다시 우리 땅 울릉도와 독도에서 마무리된다. 화가였다가 만화를 선택한 최호철과 글쟁이였다가 만화를 선택한 박인하. 만화에 붙들린 두 사람은 세계를 바라볼 때 만화적으로 본다. 최호철은 여행지마다 그림을 그렸고, 박인하는 최호철의 크로키 북을 보며 농담을 던졌다. 이 책은 그들이 그렇게 함께한 여행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만화를 좋아했다. 초등학교때부터 대학때까지 만화를 봤다. 지금은 잘 안 보지만 그래도 만화가 좋다.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이런 책들을 찾아 읽을려고 한다. 일본다운, 너무나 일본다운 규슈 한 일 두 나라는 모두 벚꽃을 좋아하고, 벚꽃 구경 하기를 즐긴다. 그래서 봄이면 어김없이 벚꽃 축제가 벌어지는데, 가만 보면 두 나라 사람들은 각각 다른 벚꽃을 즐긴다. 우리나라에서 즐기는 벚꽃은 봉오리가 오르기 시작해 화려하게 피어오르는 상태이다. 그래서 벚꽃 축제를 구경하기 위해 일기 예보에 민감하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와 꽃잎이 떨어지면 꽝이 되어버리기 때문. 반면, 일본 사람들은 화려하게 만개한 뒤 흩날리는 벚꽃을 즐긴다. 만개한 벚꽃이 바람에 떨어지는 모습을 좋아하는 것이다. 비슷하지만 다른 이웃. 결국 이런 미세한 차이가 모여 문화의 차이가 되고, 문화의 차이는 풍경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일본 미학'이라는 말이 있다. 다양한 논의가 있고, 학자마다 여러 설명을 더하지만 이방인인 우리의 눈으로 볼 때 일본의 모습 자체가 그대로 일본 미학이다. 가을이 서서히 겨울로 넘어가던 날, 두 만화쟁이는 학생들과 함께 후쿠오카를 찾았다. 후쿠오카를 여행지로 결정한 것은 순전히 우리나라에서 가까웠기 때문. 특별히 우리를 끌어당기는 매력이나 꼭 가야 할 곳을 생 각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기대 없이 찾은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활화산 아소 산. 그 웅장한 모습은 대단했다. 아소 산은 해발 1000미터가 넘는 다섯 개의 산봉우리를 통틀어 부르는 이름으로 정식 명칭은 아소고다케인데, 다섯 개의 분화구마다 사실 다른 이름, 다카다케(1592미터), 나카다케(1506미터), 에보시 다케(1337미터), 기지마다케(1326미터), 네코다케(1433미터)로 부른다. 버스로 전망대 인근까지 올라가 케이블카를 타면 쉴 새 없이 하얀 연기를 내뿜는 분화구를 볼 수 있다. 은근하게 풍겨나는 유황 냄새, 곳곳에 자리 잡은 대피소, 은근히 겁을 주는 가이드의 말이 어우러지(p. 243)면 현재 진행형 활화산의 다이내믹함을 느낄 수 있다. 멀리 피어오르는 활화산의 기운을 바라보니, 주군을 위해 목숨을 거는 사무라이, 흩날리는 벚꽃처럼 배를 가르는 영화의 장면이 떠올랐다. 아소 산을 뒤로하고 찾은 곳은 구마모토 성. 구마모토 성은 약 400년 전, 전국 시대의 무장 가토 기요마사가 구마모토를 통치하기 위해 축성한 성이다. 가토 기요마사라고 하면 낯설지만, 한자음 그대로 '가등청정'이라고 읽으면 익숙하다. 바로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했다가 깨진 바로 그 장군. 적의 공격에 대비한 120개의 우물과 조선 성의 장점을 차용한 축조술이 인상적이었지만, 그보다는 거대함 속에 정교하게 쌓아 올린 구마모토 성의 모습 그 자체가 일본, 사무라이를 느낄 수 있는 너무나 일본적인 풍경이었다. 그러나 사실 가장 일본적인 풍경은 활활 불타오르는 아소 산과 전국 시대 의 칼바람이 담겨 있는 구마모토 성이 아니라 그 살벌함과 함께 일상을 살았을 일본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지금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아소 산 자락 아래에서 평화롭게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는 바로 그들의 모습이 가장 일본다운, 너무나 일본다운 모습이었다(p. 244). 이 책을 쓰고 그리게 된 계기에 대해 말하자면(p. 276) 최호철 선생과 나는 같은 직장(청강문화산업대학)에 다닌다. 둘 다 만화창작과 선생이다. 사람들을 만나 "학교에서 만화를 가르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꽤나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마치 황제펭귄처럼. 낯설지는 않으나 내 주변에서 마주칠 때 경험하는 신기한 느낌이 드는 모양이다. 어쨌든 우리는 5월마다 찾아오는 불량 만화 화형식의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기지 않은 만화인들이다. 최호철 선생은 화가였다가 만화를 붙들었고, 나는 글쟁이였다가 만화를 붙들었다. 더 정확히 우리 둘은 모두 만화에 붙들린 사람들이다. 만화에 붙들린 사람들은 세계를 바라볼 때 만화적으로 본다. 일단 빈 종이가 있으면 무조건 그리고, 조금이라도 분위기가 추락하면 농담을 날리고 싶다. 전자가 최호철 선생. 후자가 나다. 하지만 둘 다 천성이 숫기가 많은 사람들은 아니다. 은근 부끄럼쟁이들. 그래서 낯선 이들하고 떠들고 노는 것보다, 친한 이들과 수다 떠는 것이 좋다. 그래서인지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선생들은 보통 직장인들과 달리 사우나 아줌마 분위기를 풍긴다. 그 때문에 여행에 대한 기억이 꽤 많다. 최호철 선생은 여행지마다 그림을 그렸고, 난 최호철 선생의 화집을 뒤적이며 농담을 던진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월간 무가지 〈백도씨〉를 기획할 때였다. "우리 여행 간 거 내가 글 쓰고, 선생님이 그림 그려보세요." "만화? 나 마감 잘 못하는 거 알잖아?" 일단, 방어막을 친다. 역시, 공력이 대단하다. "그냥 한 쪽짜리 그림을 그리자고요. 한 쪽짜리 만화, 그게 최호철 스타일이 잖아!" 나도 다시 공격한다. 왠지 느낌이 낚은 것 같다(p. 277).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되도록 많은 이야기를 담는 게 최호철 스타일 아닌가?" 낚았다. 파닥파닥! 그렇게 해서 〈백도씨〉에 '두 만화쟁이의 여행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내가 낚은 죄로 글을 썼고, 최호철 선생의 애간장 다 태우는 마감에 동참했다. 몇 번 빼먹은 적도 있지만, 한 스무 번쯤 마감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우리가 한때 사슴굴이라고 불렀던 최호철 선생의 개성 넘치는 연구실 소파에 앉아 뒹굴면서 이야기를 하다 한번 책으로 묶어보자는 생각이 번득였다. 최호철 선생은 낙서라고 하지만, 그냥 묵히기 아까운 그림이 많은 그의 크로키 북이 생각났다. "〈백도씨〉에 연재한 만화하고, 그와 연관된 크로키를 모아서 책으로 묶어봅 시다." "재미있을까?" "재미없으면 사람들이 만날 선생님 크로키 북 달라고 해서 보겠어요." "너무 성의 없게 그렸잖아." "성의 있게 그리면 마감 못하잖아요." "..." "또 그냥 그 시간에, 여행지에서 그린 그림이 난 좋던데." "그럽시다." 그렇게 시작된 작업이다. 그림을 모으고, 글을 고쳐 썼다. 최대한 여행지의 느낌을 사람들이 느껴주길 원했다. 여행에는 휴식과 수다가 공존한다. 혼자 가는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지만, 난 함께 수다 떨 수 있는 사람과 가는 여행이 좋다. 서로 말도 안 되는 지식을 공유하고, 느낌을 나누는 여(p. 278)행이 좋다. 이 만화는 그런 여행의 기록이다. 글과 함께 그림도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최호철의 그림은 읽히는 그림이다. 그림으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크로키 북에 그린 사람이 아주 구체적인 당신의 모습이기도 하고, 당신이 바라본 그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림을 읽으며 우리의 여행에 동행하면 어떨까? 같이 수다 떨고, 맛있는 것도 먹고, 바보 같은 개그도 하면서 말이다. 남자들이라면 더더욱, 수다가 주는 세계 평화를 함께 누려보자(p.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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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79】 만화가 주는 즐거움과 편안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