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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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상】 기록....소멸에 대한 몸부림
    기자는 기자(記者)다. 쓰는 자라는 말이다. 나는 15년간 담임목회를 하다가 갑자기 기자가 됐다. 그래서 많이 미숙하다. 지금도 여전히 실수하며 배워나가고 있다. 기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처음 기사를 쓴 것은 2020년 9월이었다. 한 행사에 동행해 기사를 써야하는데 막막했다. 결국 다른 기자의 기사를 참고해 어거지 기사를 썼던 기억이 있다. 지나가니 이 또한 “추억”이다. 기자는 어떤 사건, 일에 대해 기록을 남기는 자다.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글”이다. 글로 남기고 평가한다. 요즘은 녹음이나 녹화를 병행한다. 이 모든 것은 결국 남기기 위해서다. 유한한 인간이 하는 모든 것들은 다 소멸한다. 어떤 행위, 행사, 말 등등은 다 과거로 사라지며 소멸의 과정을 거친다. 이에 대한 저항, 몸부림이 쓰거나, 녹음하거나, 녹화하는 것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녹화를 병행한다. 스마트폰에 촬영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방송 장비를 거창하게 준비하지 않아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즉시 현장에서 촬영이 가능하니 얼마나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가? 이번 43회기 전국남전도회연합회 행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촬영했다. 그리고 각 기사에 영상을 첨부했다. 너무 좋았던 설교나 강의를 남기기 위해서다. 기사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모든 내용을 다 기록할 수 없고, 강사의 열정을 담아낼 수 없다. 기사에 대한 보완이 동영상 촬영이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나를 위한 것이다. 유익했던 내용을 기록으로 남겨 언제라도 보고 듣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관심있는 자들에 대한 배려이다. 유튜브는 우리 생활에 깊숙이 파고 들었다. 나만해도 거의 텔레비전을 안 본다. 유튜브가 더 재밌고 유익하기 때문이다. 많은 개인들이 이곳에 동영상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필요한 사람들은 찾아서 보고 있다. 나 또한 그 일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유한한 인간으로서 우리는 시간 속에서 소멸해 가고 있다. 나는 기자로서 글과 녹음, 촬영의 방법으로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한다. 기자는 다양한 방법으로 시간의 기록을 남긴다. 그래서 재밌고 보람이 있다. 이것이 기자라는 직업의 한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라지고 소멸하는 어떤 것에 대해 흔적을 남기는 또 다른 기사를 쓰고 싶다!
    • 오피니언
    • 칼럼
    2024-03-15
  • 【북토크】 40대 조기 은퇴 직장인의 인생 리셋
    같은 직장에서 만나 결혼한 사람들이 있다. 여자는 35세, 남자는 41세였다. 남편은 어느 날 조기 은퇴를 제안했고 그후 여자는 5년간의 은퇴 계획을 세우고 퇴사했다. 남자는 여자보다 조금 먼저 퇴사했다. 좋은 직장에 다녔기에 은퇴 자금을 착실하게 모을 수 있었다. 그리고 둘 다 아이를 낳을 계획이 없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이제 은퇴 후 그들은 일상을 소중히 여기며 살고 있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어도 했던 직장 생활을 청산하고 본인들이 원하는 인생을 살고자 과감하게 결단을 내린 것이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한다. 은퇴로 인해 당장 수입은 줄어도 대신 삶의 자유를 얻은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는 이후 후속 책이 나오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재미있게 읽었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동료들에 비해 난 그저 평범했다. 하지만 평범함에서 조금 다른 한 가지를 더하면 특별함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난 그 한 가지를 더하기 위해 늘 애썼다. 덕분에 연말 평가 결과도 좋았고, 회사에서 나름 인정받으며 일하고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일도 이만큼 하고 있다. 만약 내가 지금 회사에 쏟는 시간을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쓴다면, 은퇴 이후의 긴 시간도 지루하지 않고 적당한 돈벌이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취업 후 지금까지 내가 아닌 회사를 위해 살았다. 회사와 나를 분리해서 생각하지 못하고, 프로젝트의 성공을 나의 성공으로 착각하며 보냈다. 이제부터 회사와 나 사이에 거리를 두기로 했다. 인생 100세 시대라는데, 적성에 안 맞는 일을 하며 그 긴 시간을 아깝게 보낼 수는 없다. 인생 1부는 마흔에 마무리하고, 2부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은퇴가 끝은 아니지 않은가! 은퇴 결심 이후, 아직 닥치지 않은 수많은 변수들을 떠올리며 불안감이 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마흔에 이른 은퇴를 한다는 건 평범한 삶과 크게 차이가 있다. 다들 회사 때려치우고 싶다고 농담처럼 말은 하지만, 실제로 은퇴하는 사람은 주변에 많지 않다. 이른 은퇴란 정해진 경로를 벗어나는 일이다. 내 불안은 '은퇴 자금'보다는 앞으로 남들과 조금 다른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상대적 상황' 때문인지도 모른다. 응급실을 다녀온 후 아픈 배를 부여잡고 멍하게 누워 있으면서 뜻밖에 고민이 해결되었다. 내 불안의 '원인'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미리 걱정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남편, 나 정도로 열심히 살면 뭘 해도 잘하지 않을까?" "그럼! 걱정하지 마. 난 마누라 하나만 믿고 결혼했어"(pp. 60-61). 은퇴 후 이렇게 하고 싶은 일들로 하루를 가득 채우며 살고 있다. 새로운 동네 산책 코스를 발견하거나, 달리기 기록을 달성하는 것도 하루를 풍족하게 하는 일이다. 긴 시간은 지루하지 않다. 회사를 떠나도 할 수 있는 일은 많았다. 우리는 일상에서 소소한 발견을 하며 지내고 있다. '모두가 원하는 삶'이라 부를 수 있는 정의는 없다. 개인이 원하는 삶은 다양하다. 치열하게 일해서 얻은 성과로 보람을 얻거나, 금전적인 여유로 누리는 풍족한 삶을 원할 수도 있다. 내 인생은 회사원으로 끝날 줄 알았고 난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에 대해 잊고 살아왔다. 은퇴했다고 해서 그런 것들이 바로 떠오르지는 않았다. 난 한동안 내가 어떤 사람인지 탐구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어릴 적 꿈을 떠올리며 글쓰기를 시작했고, 브런치에 글을 쓴 지 6개월이 지났다. 내 글을 구독하는 독자들도 생겼다. 독자가 한 명씩 늘어날 때마다 뿌듯했다. 브런치에 올렸던 글을 계기로 신문에 은퇴 관련 연재도 시작했다. 에세이도 쓰게 되었다. 어릴 때 꿈꾸었던 작가라는 꿈에 조금은 가까이 다가간 것 같다. 차근차근 계획한 은퇴였지만, 불안이라는 감정은 자주 나를 공격해왔다. 하지만 은퇴를 하고 난 이후 오히려 불안이 사라졌다. 회사라는 울타리의 바깥세상에는 가능성이 있었다. 은퇴는 나를 가능성의 세계로 이끌었다. 난 아직 정의되지 않은 사람이다. 이제 나는 회사원이 아닌 나를 정의할 다른 단어를 찾고 있다(pp. 295-297).
    • 오피니언
    • 책소개
    2024-02-26
  • 【북토크】 인생의 기회 & 고독사
    이 책의 저자 나카무라 쓰네코는 1929년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다. 1945년 6월, 전쟁이 끝나기 두 달 전에 의사가 되기 위해 히로시마에서 오사카로 떠나 혼란의 시대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되었다. 두 아이를 키우며 2019년(90세)까지 풀타임으로 외래 및 병동 진료를 계속했다. 현재는 은퇴해 평온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 90이 넘은 정신과 의사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조용히 조언하는 내용들이 마음에 와 닿는다. 자신이 정신과 의사가 된 과정에 여러 사람의 도움이 있었음을 밝히며 주어진 기회를 잘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그렇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그들을 통해 여기까지 왔다. 남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기회를 주는 인생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두 번째 글은 고독사에 대한 것으로 저자는 고독사에 대해 긍정한다. 읽어보니 그런면도 있을 것 같다. 가족과 남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죽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소망이리라. 99881234가 있다. 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1, 2, 3일 아프고 죽자(4)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기회는 항상 우연히 찾아온다. 누군가 등을 떠밀면 그 흐름에 올라타보자 누구나 인생에서 몇 번은 큰 흐름이 밀려옵니다. 이른바 인생의 전환기, 인생의 기로라고들 하죠. 저에게도 몇 번 그 흐름이 있었습니다. 저는 종전 직후에 오사카에서 국가시험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의사가 되려면 1년간 병원에서 연중무휴로 일을 해야 했고 (지금의 인턴), 그 뒤 가까스로 시험에 합격해 의사가 됐지만 일할 곳이 없었습니다. 병원 자체가 적었던 데다 일을 하더라도 수년간은 급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죠. 저에게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는 생계가 막막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난처하던 차에 학창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던 영화관의 아이스크림 가게 아저씨가 이런 말을 건넸습니다. "동생이 개업의를 하고 있는데 괜찮다면 소개해주마.” 그래서 그 의사 선생님의 집에서 더부살이로 일을 하게 됐습니다. 사모님과 어린 두 아이가 있어 아이들을 돌보거나 청소, 빨래 등 시키는 일은 뭐든지했죠. 그렇게 도제 살이 같은 생활을 2년 정도 했을 무렵, 오사카 거리를 걷다가 이번에는 연수(인턴) 시절 함께 공부했던 친구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나라 현립 의과대학 정신과에 조수 자리가 비었는데, 오지 않을래?" 신기한 일이 연이어 일어나는 순간이 있나 봅니다. 저는 그때 마침 일주일에 한두 번 공부를 하러 가던 오사카 시립대학의 내과에서 결핵 말기 환자들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죽어가는 환자들에게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는 자신에게 무력감을 느끼고 있던 전 인간의 마음을 공부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전 "갈게!" 하고 바로 대답했고 훗날 정신과 의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환경 변화를 '기회'로 받아들일지 또는 '공포'로 받아들일지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제 경험에 비추어 보면, 좋은 흐름이 올 때는 신기하게도 주변 사람 역시 등을 떠밀어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때도 "사정이 있어 그만두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의사 선생님에게 꺼냈더니 "마침 동생이 의사가 돼서 돌아온다고 하니 걱정 말고 가게. 자네는 젊으니 개업의 조수 보다는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성장하는 게 좋을 거야" 하고 선뜻 등을 두들겨 주었습니다. 물론 개중에는 반대하거나 만류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럴 때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 등을 탁 밀어주기도 합니다. 그런 흐름이 올 때는 이해타산을 따지기보다 순순히 그 흐름에 올라타는 것이 좋습니다. 이해타산을 따지면 마음속 어딘가에 개운치 않은 부분이 생깁니다. 그러니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생각해보세요. 왠지 가슴이 두근두근 대지 않나요? '타산이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하고 싶은 거야? 이렇게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Yes'라는 대답이 나오면 그 흐름에 몸을 맡기세요. 그렇게 폴짝 흐름에 올라타면 다시 새로운 흐름이 밀려옵니다. 나이가 몇이든 마찬가지랍니다. 기회를 주는 건 항상 사람입니다(pp. 66-69). 고독사는 매우 훌륭한 죽음. 어떻게 죽을지 걱정하는 건 시간 낭비이다 세간에서는 고독사한 사람이 있으면 "불쌍하다" "비참하다"라며 큰 소란을 피우는데,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고독사를 대단히 좋게 봅니다. 고독사를 한다는 건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죽었다는 뜻입니다. 가족에게 고생스러운 간병도 시키지 않고 병원에서 의료비도 쓰지 않은 채 홀로 죽어가는 것. 이처럼 훌륭하고 깔끔한 죽음이 또 있을까요? 그래서 전 고독사가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 "혹시 내가 며칠째 안 보이면 죽었을지 모르니 집에 들어와서 살펴봐." 장남 부부와 이웃에게도 이렇게 말해두었죠(웃음). 여든아홉이 된 지금, 혼자 있을 때 언제 죽음이 찾아올지 모릅니다.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아침에는 병원에서 운전기사가 데리러 오는데 "시간이 돼도 안 나오면 죽은 걸 테니 우리 아들 집에 가보세요" 하고 늘 부탁해둡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도 혼자, 죽을 때도 혼자입니다. 죽으면 그걸로 끝이니 죽었을 때의 상황이나 죽은 뒤의 평판을 걱정해봐야 소용없습니다. 죽은 뒤에 칭찬을 받든 조롱을 받든 죽은 당사자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든 들리지 않을 테니까요(웃음).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이 있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링거 줄이나 인공호흡기 튜브에 연결된 채 죽고 싶지는 않다는 겁니다.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심장 마사지를 받는 것도 아플 것 같아 싫고요. 그래서 전 항상 장남에게 말합니다. "절대 연명 치료는 하지 말아라" "혹시 쓰러져 있는 걸 발견하면 아직 호흡이 있더라도 잠시 그대로 둬야 해. 그때 병원에 데려가면 연명 처치를 할 테니까. 병원에 도착할 때쯤 사망할 수 있게 구급차를 불러야 한다." 이처럼 신신당부하고 있습니다(웃음). 저는 병동에서 저보다 어린 환자를 보살필 때가 많습니다. 몇 년째 병동에 입원 중인 환자와는 "마지막에는 어떻게 해주길 바라세요?" 하는 대화를 나누는데, 연명 치료는 하지 말아달라고 하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가족에게도 잘 설명해서 "환자 본인이 바라는 일이기도 하니, 고통스러운 치료는 일절 하지 말고 편안하고 인간답게 보내드리도록 해요" 하고 가능한 고통을 주지 않도록 보살핍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하는 간호는 꽤 인기가 있답니다(웃음). 환자와 나이대가 비슷하다는 이점도 있어요. 제 담당이 아닌 환자들이 저에게 임종 과정을 부탁하기도 하죠. 여하튼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인간은 태어나면 반드시 죽습니다. 홀로 죽든, 병원에서 죽든 인간답고 편안하게 죽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이것저것 걱정하고 계획을 세워봐야 소용없어요. 가족에게 최소한의 뒷일을 부탁해두고 그다음은 자연의 섭리에 맡기는 것이 마음 편하고 좋습니다(pp. 182-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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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4-02-23
  • 【북토크】 나는 누구에게 인정받기 원하나?
    한 예능 PD의 책을 읽게 됐다.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의 책을 읽는 것은 재미있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분야의 삶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한 부분에서 남에게 인정받는 것에 대한 말을 했다. 잘하는 사람도 남에게 인정받을 때 감격한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다른데 어떤 사람은 타인의 인정이 중요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다. 사람의 평가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사람의 평가가 얼마나 불완전하고 또 가변적인가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목사 세계에서 흔히 하는 말로, 부임 이사 왔을 때 제일 환영하는 교인이 나중에 쫓아낼 때 앞장 선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남의 말은 필요하면 듣되 거기에 너무 좌우될 필요는 없다. 신자로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모순 투성이인 사람들의 인정이 아니라 위에 계신 분의 인정이다. 그분이 잘했다하면 되는 것 아닌가? 사람의 인정에 좌우되지 말자. 인정(認定)은 넘치는 법이 없다 2021년 방송가를 장악했던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를 보면서도 기분이 묘했다. 사실 <슈퍼스타K>로 대표되는 기존의 오디션들과 비교하면 이미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전문 댄서들의 경연 서바이벌인 <스우파>를 같은 종류의 프로그램으로 보긴 어렵다. <슈스케> 참가자들은 너무 간절하다. 꿈은 있는데 아무 기반이 없어서 어디서부터 이 꿈을 펼쳐 나가야 할지 막막하다. 혹은 이미 여러 번 실패를 경험해서, 더 이상 평범한 방법으로는 가망이 없다는 생각에 나오는 사람들도 많다. 벼랑 끝에 선 간절함이 있고, 그래서 권위자가 보내는 인정은 더욱 자신을 뒤흔드는 경험일 수밖에 없다. 전율을 느끼고 울음을 쏟아내는 것도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스우파>의 댄서들은 스스로가 프로인 것을 넘어 그 분야에서 충분히 입지를 굳힌 이들이다. 이미 물심양면으로 적지 않은 인정을 충분히 누리고 있다. 심사위원이 가지는 지위도 다르다. <슈스>의 심사위원들은 참가자들에겐 범접할 수 없는 권위자인 만큼 심사평 마디마디의 무게가 남다르지만, <스우파>의 심사위원들은 그들의 전문성과 별개로 참가자들이 간절하게 인정을 갈구할 입장은 아니다. 서로 자기 영역에서 충분히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라, 절대적 위계에서 이루어지는 <슈스케>의 평가와는 전혀 다르다. 그런데 이상했다. 링 위에 오른 <스파>의 댄서들도 심사 위원들이 심사평을 말할 때마다 입이 마르고 눈물을 터뜨리는 것이 아닌가. 중요한 것은 <슈스케>나 <스우파>나, 탈락했을 때의 안타까운 눈물보다 인정받았을 때의 벅차오르는 눈물이 훨씬 자주 보였다는 거다. 마음을 졸이며 열어본 결과가 합격이었을 때 터져 나오는 눈물, 치열하게 고민하며 완성한 무대를 영상으로 다시 지켜볼 때 메여오는 목, 전달하고 싶었던 바를 심사위원이 정확하게 짚어줄 때 피어나는 얼굴들. 어차피 <스우파>의 댄서들은 여기서 떨어져도 인정이 모자라진 않는다. 이 프로그램보다 훨씬 더 크고 전문적인 무대에서도 충분히 인정을 받아왔다. 그러니 여기서 떨어진다 한들 자신을 부정한다고 느낄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이렇게 사람을 무너뜨린다. 우리는 모두 인정이 필요하다(pp. 7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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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4-02-21
  • 【북토크】 어려운 사람을 돕는 작은 방법
    저자가 직장생활 중 부당하게 어려움을 당할 때 누군가 막아 준 감동적인 글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곤란한 상황 가운데 있는 사람을 대신해 행동하고 목소리를 내 줄 필요가 있다. 그럴 때 이 세상은 살만한 곳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도움을 경험한 사람은 언젠가 누군가를 돕는 일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은 함께 더불어 살아야하는 곳이다.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 건 대신 목소리를 내준 한 선배 덕분이었다" 내 갈 길 잘 가고 있는데 옆에서 자꾸 발을 걸고 소금을 뿌리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본인 인생에 충실할 것이지 왜 애꿎은 사람에게 꼬인 마음을 푸는 건지. 그런데 그 사람이 직장상사라면 '똥 밟았네' 하고 쉽게 털고 지나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게 된다. 나도 직장에서 최악의 인간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 출근 전날부터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고, 사무실에서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거나 내 이름을 부르면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긴장되고, 퇴근 후나 주말을 가리지 않고 울리는 카톡 소리에 놀라 이런 메신저를 만든 회사를 원망하기까지 했다. 그땐 너무 힘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쁜 기억은 증발되고 그러한 인간 유형에 대한 이해가 남았다. 당시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비슷한 상황에서 선뜻 도움을 구하기 어렵거나 해결책을 찾기 힘들어하고 있을 누군가가 있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쓰는 이야기이다. 그 사람의 괴롭힘은 다방면으로 이어졌었다. 본인 기분에 따라 매일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는데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은 핑곗거리를 찾아서라도 회의실로 불러 호통을 쳤다. 트집 잡히는 게 싫어 요구한 대로 일을 빨리 처리했는데도 '본인을 무시하느냐'며 억지를 부리는 게 황당했다. 하지만 당시엔 그런 행동을 멈추게 할 방법이 없어 보였다. 선배들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지하지 못했다. 선배들에게는 아주 친절하고, 필요한 사람에게는 절대 선을 넘지 않는 강약약강의 전형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최고 관리자에게는 끔뻑 죽는 시늉이라도 할 만큼 충성을 다 했기에 윗선에선 이런 사실을 암묵적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어렵게 빙빙 돌려 힘들다는 사실을 털어놓아 봤지만 둘의 사이는 여전히 공고했고 나는 무력함을 느꼈다. 그러다 또 어느 날은 한없이 친절하게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부탁하지도 않은 모니터링을 해주며 '네가 정말 잘되었으면 좋겠다' 응원하거나 본인이 나를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에 관해 이야기했다. 결정적으로는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는지 혹은 계속 일을 부려먹기 위한 수작이었는지, 다그치고 달래는 전형적인 괴롭힘의 유형이었다. 신입사원인 나에게 그 사람은 직장이란 원래 이런 곳이라는 주입을 끊임없이 했다.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니 네가 고쳐야 한다고. 그 사람은 회사를 참 좋아했다. 퇴근도 하지 않고 이런저런 일들을 벌였다. 본인이 기획한 일을 스스로 열심히 한다면 얼마나 보기 좋았을까. 세세한 일을 수행하는 건 늘 후배들의 몫이었다. 물론 공적은 본인의 차지였다. 아, 허무하다. 그때의 그 개고생이 이렇게 몇 줄로 끝나다니. 그때 내가 알게 된 것은, 벌어지는 일을 알고도 방관하는 것은 소극적인 형태로나마 가해에 동참하는 의미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입사 후부터 그 사람과 내 자리는 늘 가까웠는데 처음엔 우연의 일치인가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새롭게 자리를 옮기는 이삿날, 본래 자리배치엔 분명 나와 그 사람이 멀찍이 떨어져 있었는데 다시 보니 자리가 그 사람 앞으로 바뀌어 있었다. 마음대로 자리를 바꾸어버리는 월권을 부장이 내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승인해준 것이다. 나는 이 또한 가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내가 왜 그 사람의 괴롭힘의 대상이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오랫동안 이유에 대해 이해하려 노력했었다. 내가 더 친절하게 다가가야 하나? 못한다고 단호하게 말해야 하나? 집에 안 좋은 일이 있나? 오늘 기분은 왜 저런거지? 왜 이해를 하려는 마음까지도 내 몫이어야 했을까. 나를 아는 지인들은 내가 그렇게 당하고만 있을 사람이 아닌데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 말라고 항의하거나, 왜 힘들다고 호소하지 않았는지 의아해했다. 나 또한 그러한 일을 직접 겪지 않았다면 다른 이에게 쉽게 말했을 것이다. 대체 왜 그 상황을 그냥 참고만 있었느냐고. 성희롱이나 성추행 사건의 경우 그러한 질문은 더욱 집요해진다. 왜 그때는 말하지 않았고 이제 와서 그러느냐는 의심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힘들었던 시간을 어렵게 토로하는 당사자에게 다른 목적이나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묻는 2차 가해를 하기도 한다. ‘싫으면 더 강하게 말했어야지. 더 적극적으로 항의했어야지. 문자도 친절하게 답했던데?' 잘 지내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 때문이었을 것이고, 상황을 바꾸어보기 위해 하는 노력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일상을 잃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다분히 노력해서 입사한 소중한 직장이고 이곳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으니까. 문제를 제기했을 때 역으로 입지가 좁아지거나 낙인이 찍히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상대의 권위와 권력이 강할수록 상황이 더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선뜻 이겨내기 쉽지 않다.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 건 나와 같은 후배 입장인데도 대신 목소리를 내준 한 선배 덕분이었다. 나를 괴롭히는 그 사람이, 이미 승인이 난 내 휴가를 본인 마음대로 취소하는 것을 본 선배가 대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왜 그래야 하느냐'고 대신 묻는 선배의 모습에 나도 놀랐고, 후배들도 놀랐고, 그 사람도 놀랐다. 침묵을 깬 선배의 용기에 혼자 끙끙 앓던 후배들이 조금씩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각자 겪었던 일들을 조금씩 공유하기 시작했고 그 사람은 점점 놀란 달팽이처럼 움츠러들었다. 나는 지금도 그 선배에게 무척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회사의 시스템으로 보호받지 못할 때, 리더가 방관할 때 대신 나서서 목소리를 모으는 시작이자 용기가 되어 주었으니까. 결국 그 사람은 그동안의 만행이 알려지며 동료들에게 신뢰와 평판을 잃었다. 당연히 후배들에게 하던 갑질과 괴롭힘도 불가능해졌다. 그리고 얼마 후엔 몇 년 만에 나에게 처음으로 사과를 했다. 사람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니 그다지 진심이라고 믿진 않았지만(pp. 108-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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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3
  • 【북토크】 우리는 모두 문학하는 사람들이다
    책을 왜 읽을까? 사람마다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지식이나 감동을 얻기 위해서이다. 어떤 사람은 갑자기 농구에 관심이 생겼는데 먼저 농구에 대한 책을 찾아봤다고 한다. 참 특이하다. 농구에 관해 관심이 있다면 당장 농구장에 가서 농구공을 만질 것 같은데 그는 먼저 농구에 대해 전반적인 것을 알고 시작했다. 이처럼 무엇인가 알고 싶을 때 관련 서적을 찾아본다. 세상에는 알고 싶은 것이 많기에 계속해서 책을 읽고 있다. 또한 책은 감동을 주기에 읽는다. 책을 읽다가 전율할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어쩌면 그것을 또 느껴보기 위해 끊임없이 책을 읽는지도 모른다. 마치 낚시꾼이 손맛을 보기 위해 낚싯대를 드리우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읽어 내려간 수많은 책이 오늘날의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것이 말과 글로 드러난다. 거창하게 작가는 아니더라도 말과 글을 사용하는 우리는 또 하나의 작가다. 그리고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쓴 책을 부지런히 읽어야 한다. 나는 오랫동안 평론가와 작가 사이에서 위태롭게 줄다리기하며 살아왔다. 이제는 무의식 깊숙이 뿌리박힌 '시나 소설을 써야 문학 하는 사람'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는 중이다. "작가님은 소설 안 쓰세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다. 당황스러움은 '내가 언젠가는 소설을 쓰고 싶어 한다는 것을 어떻게 이리 쉽게 들켰나' 하는 마음 때문이고, 고마움은 '내 글을 보고 이 사람이 소설을 쓰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내 숨은 재능에 대한 칭찬이 아닐까' 하는 설렘 때문이다. "왜 소설을 쓰지 않나"라는 질문이 여전히 서운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에세이나 평론은 문학의 본령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뿌리 깊은 무의식 때문이다. 소설이나 시를 쓰지 않아도 나는 항상 문학의 길 위에 있었다. 평론이든 수필이든 우리가 언어를 통해 삶을 더 아름답게 만들려는 모든 노력은 문학의 자장 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소설가나 시인이 아님에도 '문학 하는 사람'이라는 마음을 버리지 않은 것은 나도 소설가처럼 내 이야기의 플롯을 짜고 시인처럼 내 문장의 운율을 고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문학 하는 마음은 어떤 장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 사람을 어루만진다는 믿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당신이 아름다운 말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었다면, 당신은 오늘 문학 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따스한 언어로 누군가에게 깊은 위로를 받았다면, 그는 당신에게 문학이라는 선물을 듬뿍 안겨준 것이다. 문학은 어디에나 있다. 당신이 이야기의 오랜 울림을 아는 사람이라면, 당신이 아름다운 언어의 맛과 향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문학은 어디서나 당신의 마음에 기쁘게 노크할 것이다(pp. 224-225).
    • 오피니언
    • 책소개
    2024-02-13

실시간 오피니언 기사

  • 【단상】 기록....소멸에 대한 몸부림
    기자는 기자(記者)다. 쓰는 자라는 말이다. 나는 15년간 담임목회를 하다가 갑자기 기자가 됐다. 그래서 많이 미숙하다. 지금도 여전히 실수하며 배워나가고 있다. 기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처음 기사를 쓴 것은 2020년 9월이었다. 한 행사에 동행해 기사를 써야하는데 막막했다. 결국 다른 기자의 기사를 참고해 어거지 기사를 썼던 기억이 있다. 지나가니 이 또한 “추억”이다. 기자는 어떤 사건, 일에 대해 기록을 남기는 자다.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글”이다. 글로 남기고 평가한다. 요즘은 녹음이나 녹화를 병행한다. 이 모든 것은 결국 남기기 위해서다. 유한한 인간이 하는 모든 것들은 다 소멸한다. 어떤 행위, 행사, 말 등등은 다 과거로 사라지며 소멸의 과정을 거친다. 이에 대한 저항, 몸부림이 쓰거나, 녹음하거나, 녹화하는 것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녹화를 병행한다. 스마트폰에 촬영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방송 장비를 거창하게 준비하지 않아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즉시 현장에서 촬영이 가능하니 얼마나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가? 이번 43회기 전국남전도회연합회 행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촬영했다. 그리고 각 기사에 영상을 첨부했다. 너무 좋았던 설교나 강의를 남기기 위해서다. 기사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모든 내용을 다 기록할 수 없고, 강사의 열정을 담아낼 수 없다. 기사에 대한 보완이 동영상 촬영이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나를 위한 것이다. 유익했던 내용을 기록으로 남겨 언제라도 보고 듣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관심있는 자들에 대한 배려이다. 유튜브는 우리 생활에 깊숙이 파고 들었다. 나만해도 거의 텔레비전을 안 본다. 유튜브가 더 재밌고 유익하기 때문이다. 많은 개인들이 이곳에 동영상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필요한 사람들은 찾아서 보고 있다. 나 또한 그 일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유한한 인간으로서 우리는 시간 속에서 소멸해 가고 있다. 나는 기자로서 글과 녹음, 촬영의 방법으로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한다. 기자는 다양한 방법으로 시간의 기록을 남긴다. 그래서 재밌고 보람이 있다. 이것이 기자라는 직업의 한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라지고 소멸하는 어떤 것에 대해 흔적을 남기는 또 다른 기사를 쓰고 싶다!
    • 오피니언
    • 칼럼
    2024-03-15
  • 【북토크】 40대 조기 은퇴 직장인의 인생 리셋
    같은 직장에서 만나 결혼한 사람들이 있다. 여자는 35세, 남자는 41세였다. 남편은 어느 날 조기 은퇴를 제안했고 그후 여자는 5년간의 은퇴 계획을 세우고 퇴사했다. 남자는 여자보다 조금 먼저 퇴사했다. 좋은 직장에 다녔기에 은퇴 자금을 착실하게 모을 수 있었다. 그리고 둘 다 아이를 낳을 계획이 없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이제 은퇴 후 그들은 일상을 소중히 여기며 살고 있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어도 했던 직장 생활을 청산하고 본인들이 원하는 인생을 살고자 과감하게 결단을 내린 것이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한다. 은퇴로 인해 당장 수입은 줄어도 대신 삶의 자유를 얻은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는 이후 후속 책이 나오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재미있게 읽었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동료들에 비해 난 그저 평범했다. 하지만 평범함에서 조금 다른 한 가지를 더하면 특별함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난 그 한 가지를 더하기 위해 늘 애썼다. 덕분에 연말 평가 결과도 좋았고, 회사에서 나름 인정받으며 일하고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일도 이만큼 하고 있다. 만약 내가 지금 회사에 쏟는 시간을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쓴다면, 은퇴 이후의 긴 시간도 지루하지 않고 적당한 돈벌이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취업 후 지금까지 내가 아닌 회사를 위해 살았다. 회사와 나를 분리해서 생각하지 못하고, 프로젝트의 성공을 나의 성공으로 착각하며 보냈다. 이제부터 회사와 나 사이에 거리를 두기로 했다. 인생 100세 시대라는데, 적성에 안 맞는 일을 하며 그 긴 시간을 아깝게 보낼 수는 없다. 인생 1부는 마흔에 마무리하고, 2부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은퇴가 끝은 아니지 않은가! 은퇴 결심 이후, 아직 닥치지 않은 수많은 변수들을 떠올리며 불안감이 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마흔에 이른 은퇴를 한다는 건 평범한 삶과 크게 차이가 있다. 다들 회사 때려치우고 싶다고 농담처럼 말은 하지만, 실제로 은퇴하는 사람은 주변에 많지 않다. 이른 은퇴란 정해진 경로를 벗어나는 일이다. 내 불안은 '은퇴 자금'보다는 앞으로 남들과 조금 다른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상대적 상황' 때문인지도 모른다. 응급실을 다녀온 후 아픈 배를 부여잡고 멍하게 누워 있으면서 뜻밖에 고민이 해결되었다. 내 불안의 '원인'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미리 걱정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남편, 나 정도로 열심히 살면 뭘 해도 잘하지 않을까?" "그럼! 걱정하지 마. 난 마누라 하나만 믿고 결혼했어"(pp. 60-61). 은퇴 후 이렇게 하고 싶은 일들로 하루를 가득 채우며 살고 있다. 새로운 동네 산책 코스를 발견하거나, 달리기 기록을 달성하는 것도 하루를 풍족하게 하는 일이다. 긴 시간은 지루하지 않다. 회사를 떠나도 할 수 있는 일은 많았다. 우리는 일상에서 소소한 발견을 하며 지내고 있다. '모두가 원하는 삶'이라 부를 수 있는 정의는 없다. 개인이 원하는 삶은 다양하다. 치열하게 일해서 얻은 성과로 보람을 얻거나, 금전적인 여유로 누리는 풍족한 삶을 원할 수도 있다. 내 인생은 회사원으로 끝날 줄 알았고 난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에 대해 잊고 살아왔다. 은퇴했다고 해서 그런 것들이 바로 떠오르지는 않았다. 난 한동안 내가 어떤 사람인지 탐구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어릴 적 꿈을 떠올리며 글쓰기를 시작했고, 브런치에 글을 쓴 지 6개월이 지났다. 내 글을 구독하는 독자들도 생겼다. 독자가 한 명씩 늘어날 때마다 뿌듯했다. 브런치에 올렸던 글을 계기로 신문에 은퇴 관련 연재도 시작했다. 에세이도 쓰게 되었다. 어릴 때 꿈꾸었던 작가라는 꿈에 조금은 가까이 다가간 것 같다. 차근차근 계획한 은퇴였지만, 불안이라는 감정은 자주 나를 공격해왔다. 하지만 은퇴를 하고 난 이후 오히려 불안이 사라졌다. 회사라는 울타리의 바깥세상에는 가능성이 있었다. 은퇴는 나를 가능성의 세계로 이끌었다. 난 아직 정의되지 않은 사람이다. 이제 나는 회사원이 아닌 나를 정의할 다른 단어를 찾고 있다(pp. 295-297).
    • 오피니언
    • 책소개
    2024-02-26
  • 【북토크】 인생의 기회 & 고독사
    이 책의 저자 나카무라 쓰네코는 1929년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다. 1945년 6월, 전쟁이 끝나기 두 달 전에 의사가 되기 위해 히로시마에서 오사카로 떠나 혼란의 시대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되었다. 두 아이를 키우며 2019년(90세)까지 풀타임으로 외래 및 병동 진료를 계속했다. 현재는 은퇴해 평온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 90이 넘은 정신과 의사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조용히 조언하는 내용들이 마음에 와 닿는다. 자신이 정신과 의사가 된 과정에 여러 사람의 도움이 있었음을 밝히며 주어진 기회를 잘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그렇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그들을 통해 여기까지 왔다. 남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기회를 주는 인생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두 번째 글은 고독사에 대한 것으로 저자는 고독사에 대해 긍정한다. 읽어보니 그런면도 있을 것 같다. 가족과 남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죽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소망이리라. 99881234가 있다. 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1, 2, 3일 아프고 죽자(4)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기회는 항상 우연히 찾아온다. 누군가 등을 떠밀면 그 흐름에 올라타보자 누구나 인생에서 몇 번은 큰 흐름이 밀려옵니다. 이른바 인생의 전환기, 인생의 기로라고들 하죠. 저에게도 몇 번 그 흐름이 있었습니다. 저는 종전 직후에 오사카에서 국가시험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의사가 되려면 1년간 병원에서 연중무휴로 일을 해야 했고 (지금의 인턴), 그 뒤 가까스로 시험에 합격해 의사가 됐지만 일할 곳이 없었습니다. 병원 자체가 적었던 데다 일을 하더라도 수년간은 급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죠. 저에게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는 생계가 막막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난처하던 차에 학창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던 영화관의 아이스크림 가게 아저씨가 이런 말을 건넸습니다. "동생이 개업의를 하고 있는데 괜찮다면 소개해주마.” 그래서 그 의사 선생님의 집에서 더부살이로 일을 하게 됐습니다. 사모님과 어린 두 아이가 있어 아이들을 돌보거나 청소, 빨래 등 시키는 일은 뭐든지했죠. 그렇게 도제 살이 같은 생활을 2년 정도 했을 무렵, 오사카 거리를 걷다가 이번에는 연수(인턴) 시절 함께 공부했던 친구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나라 현립 의과대학 정신과에 조수 자리가 비었는데, 오지 않을래?" 신기한 일이 연이어 일어나는 순간이 있나 봅니다. 저는 그때 마침 일주일에 한두 번 공부를 하러 가던 오사카 시립대학의 내과에서 결핵 말기 환자들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죽어가는 환자들에게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는 자신에게 무력감을 느끼고 있던 전 인간의 마음을 공부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전 "갈게!" 하고 바로 대답했고 훗날 정신과 의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환경 변화를 '기회'로 받아들일지 또는 '공포'로 받아들일지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제 경험에 비추어 보면, 좋은 흐름이 올 때는 신기하게도 주변 사람 역시 등을 떠밀어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때도 "사정이 있어 그만두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의사 선생님에게 꺼냈더니 "마침 동생이 의사가 돼서 돌아온다고 하니 걱정 말고 가게. 자네는 젊으니 개업의 조수 보다는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성장하는 게 좋을 거야" 하고 선뜻 등을 두들겨 주었습니다. 물론 개중에는 반대하거나 만류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럴 때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 등을 탁 밀어주기도 합니다. 그런 흐름이 올 때는 이해타산을 따지기보다 순순히 그 흐름에 올라타는 것이 좋습니다. 이해타산을 따지면 마음속 어딘가에 개운치 않은 부분이 생깁니다. 그러니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생각해보세요. 왠지 가슴이 두근두근 대지 않나요? '타산이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하고 싶은 거야? 이렇게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Yes'라는 대답이 나오면 그 흐름에 몸을 맡기세요. 그렇게 폴짝 흐름에 올라타면 다시 새로운 흐름이 밀려옵니다. 나이가 몇이든 마찬가지랍니다. 기회를 주는 건 항상 사람입니다(pp. 66-69). 고독사는 매우 훌륭한 죽음. 어떻게 죽을지 걱정하는 건 시간 낭비이다 세간에서는 고독사한 사람이 있으면 "불쌍하다" "비참하다"라며 큰 소란을 피우는데,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고독사를 대단히 좋게 봅니다. 고독사를 한다는 건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죽었다는 뜻입니다. 가족에게 고생스러운 간병도 시키지 않고 병원에서 의료비도 쓰지 않은 채 홀로 죽어가는 것. 이처럼 훌륭하고 깔끔한 죽음이 또 있을까요? 그래서 전 고독사가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 "혹시 내가 며칠째 안 보이면 죽었을지 모르니 집에 들어와서 살펴봐." 장남 부부와 이웃에게도 이렇게 말해두었죠(웃음). 여든아홉이 된 지금, 혼자 있을 때 언제 죽음이 찾아올지 모릅니다.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아침에는 병원에서 운전기사가 데리러 오는데 "시간이 돼도 안 나오면 죽은 걸 테니 우리 아들 집에 가보세요" 하고 늘 부탁해둡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도 혼자, 죽을 때도 혼자입니다. 죽으면 그걸로 끝이니 죽었을 때의 상황이나 죽은 뒤의 평판을 걱정해봐야 소용없습니다. 죽은 뒤에 칭찬을 받든 조롱을 받든 죽은 당사자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든 들리지 않을 테니까요(웃음).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이 있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링거 줄이나 인공호흡기 튜브에 연결된 채 죽고 싶지는 않다는 겁니다.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심장 마사지를 받는 것도 아플 것 같아 싫고요. 그래서 전 항상 장남에게 말합니다. "절대 연명 치료는 하지 말아라" "혹시 쓰러져 있는 걸 발견하면 아직 호흡이 있더라도 잠시 그대로 둬야 해. 그때 병원에 데려가면 연명 처치를 할 테니까. 병원에 도착할 때쯤 사망할 수 있게 구급차를 불러야 한다." 이처럼 신신당부하고 있습니다(웃음). 저는 병동에서 저보다 어린 환자를 보살필 때가 많습니다. 몇 년째 병동에 입원 중인 환자와는 "마지막에는 어떻게 해주길 바라세요?" 하는 대화를 나누는데, 연명 치료는 하지 말아달라고 하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가족에게도 잘 설명해서 "환자 본인이 바라는 일이기도 하니, 고통스러운 치료는 일절 하지 말고 편안하고 인간답게 보내드리도록 해요" 하고 가능한 고통을 주지 않도록 보살핍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하는 간호는 꽤 인기가 있답니다(웃음). 환자와 나이대가 비슷하다는 이점도 있어요. 제 담당이 아닌 환자들이 저에게 임종 과정을 부탁하기도 하죠. 여하튼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인간은 태어나면 반드시 죽습니다. 홀로 죽든, 병원에서 죽든 인간답고 편안하게 죽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이것저것 걱정하고 계획을 세워봐야 소용없어요. 가족에게 최소한의 뒷일을 부탁해두고 그다음은 자연의 섭리에 맡기는 것이 마음 편하고 좋습니다(pp. 182-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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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4-02-23
  • 【북토크】 나는 누구에게 인정받기 원하나?
    한 예능 PD의 책을 읽게 됐다.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의 책을 읽는 것은 재미있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분야의 삶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한 부분에서 남에게 인정받는 것에 대한 말을 했다. 잘하는 사람도 남에게 인정받을 때 감격한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다른데 어떤 사람은 타인의 인정이 중요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다. 사람의 평가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사람의 평가가 얼마나 불완전하고 또 가변적인가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목사 세계에서 흔히 하는 말로, 부임 이사 왔을 때 제일 환영하는 교인이 나중에 쫓아낼 때 앞장 선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남의 말은 필요하면 듣되 거기에 너무 좌우될 필요는 없다. 신자로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모순 투성이인 사람들의 인정이 아니라 위에 계신 분의 인정이다. 그분이 잘했다하면 되는 것 아닌가? 사람의 인정에 좌우되지 말자. 인정(認定)은 넘치는 법이 없다 2021년 방송가를 장악했던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를 보면서도 기분이 묘했다. 사실 <슈퍼스타K>로 대표되는 기존의 오디션들과 비교하면 이미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전문 댄서들의 경연 서바이벌인 <스우파>를 같은 종류의 프로그램으로 보긴 어렵다. <슈스케> 참가자들은 너무 간절하다. 꿈은 있는데 아무 기반이 없어서 어디서부터 이 꿈을 펼쳐 나가야 할지 막막하다. 혹은 이미 여러 번 실패를 경험해서, 더 이상 평범한 방법으로는 가망이 없다는 생각에 나오는 사람들도 많다. 벼랑 끝에 선 간절함이 있고, 그래서 권위자가 보내는 인정은 더욱 자신을 뒤흔드는 경험일 수밖에 없다. 전율을 느끼고 울음을 쏟아내는 것도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스우파>의 댄서들은 스스로가 프로인 것을 넘어 그 분야에서 충분히 입지를 굳힌 이들이다. 이미 물심양면으로 적지 않은 인정을 충분히 누리고 있다. 심사위원이 가지는 지위도 다르다. <슈스>의 심사위원들은 참가자들에겐 범접할 수 없는 권위자인 만큼 심사평 마디마디의 무게가 남다르지만, <스우파>의 심사위원들은 그들의 전문성과 별개로 참가자들이 간절하게 인정을 갈구할 입장은 아니다. 서로 자기 영역에서 충분히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라, 절대적 위계에서 이루어지는 <슈스케>의 평가와는 전혀 다르다. 그런데 이상했다. 링 위에 오른 <스파>의 댄서들도 심사 위원들이 심사평을 말할 때마다 입이 마르고 눈물을 터뜨리는 것이 아닌가. 중요한 것은 <슈스케>나 <스우파>나, 탈락했을 때의 안타까운 눈물보다 인정받았을 때의 벅차오르는 눈물이 훨씬 자주 보였다는 거다. 마음을 졸이며 열어본 결과가 합격이었을 때 터져 나오는 눈물, 치열하게 고민하며 완성한 무대를 영상으로 다시 지켜볼 때 메여오는 목, 전달하고 싶었던 바를 심사위원이 정확하게 짚어줄 때 피어나는 얼굴들. 어차피 <스우파>의 댄서들은 여기서 떨어져도 인정이 모자라진 않는다. 이 프로그램보다 훨씬 더 크고 전문적인 무대에서도 충분히 인정을 받아왔다. 그러니 여기서 떨어진다 한들 자신을 부정한다고 느낄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이렇게 사람을 무너뜨린다. 우리는 모두 인정이 필요하다(pp. 7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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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4-02-21
  • 【북토크】 어려운 사람을 돕는 작은 방법
    저자가 직장생활 중 부당하게 어려움을 당할 때 누군가 막아 준 감동적인 글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곤란한 상황 가운데 있는 사람을 대신해 행동하고 목소리를 내 줄 필요가 있다. 그럴 때 이 세상은 살만한 곳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도움을 경험한 사람은 언젠가 누군가를 돕는 일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은 함께 더불어 살아야하는 곳이다.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 건 대신 목소리를 내준 한 선배 덕분이었다" 내 갈 길 잘 가고 있는데 옆에서 자꾸 발을 걸고 소금을 뿌리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본인 인생에 충실할 것이지 왜 애꿎은 사람에게 꼬인 마음을 푸는 건지. 그런데 그 사람이 직장상사라면 '똥 밟았네' 하고 쉽게 털고 지나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게 된다. 나도 직장에서 최악의 인간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 출근 전날부터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고, 사무실에서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거나 내 이름을 부르면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긴장되고, 퇴근 후나 주말을 가리지 않고 울리는 카톡 소리에 놀라 이런 메신저를 만든 회사를 원망하기까지 했다. 그땐 너무 힘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쁜 기억은 증발되고 그러한 인간 유형에 대한 이해가 남았다. 당시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비슷한 상황에서 선뜻 도움을 구하기 어렵거나 해결책을 찾기 힘들어하고 있을 누군가가 있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쓰는 이야기이다. 그 사람의 괴롭힘은 다방면으로 이어졌었다. 본인 기분에 따라 매일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는데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은 핑곗거리를 찾아서라도 회의실로 불러 호통을 쳤다. 트집 잡히는 게 싫어 요구한 대로 일을 빨리 처리했는데도 '본인을 무시하느냐'며 억지를 부리는 게 황당했다. 하지만 당시엔 그런 행동을 멈추게 할 방법이 없어 보였다. 선배들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지하지 못했다. 선배들에게는 아주 친절하고, 필요한 사람에게는 절대 선을 넘지 않는 강약약강의 전형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최고 관리자에게는 끔뻑 죽는 시늉이라도 할 만큼 충성을 다 했기에 윗선에선 이런 사실을 암묵적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어렵게 빙빙 돌려 힘들다는 사실을 털어놓아 봤지만 둘의 사이는 여전히 공고했고 나는 무력함을 느꼈다. 그러다 또 어느 날은 한없이 친절하게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부탁하지도 않은 모니터링을 해주며 '네가 정말 잘되었으면 좋겠다' 응원하거나 본인이 나를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에 관해 이야기했다. 결정적으로는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는지 혹은 계속 일을 부려먹기 위한 수작이었는지, 다그치고 달래는 전형적인 괴롭힘의 유형이었다. 신입사원인 나에게 그 사람은 직장이란 원래 이런 곳이라는 주입을 끊임없이 했다.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니 네가 고쳐야 한다고. 그 사람은 회사를 참 좋아했다. 퇴근도 하지 않고 이런저런 일들을 벌였다. 본인이 기획한 일을 스스로 열심히 한다면 얼마나 보기 좋았을까. 세세한 일을 수행하는 건 늘 후배들의 몫이었다. 물론 공적은 본인의 차지였다. 아, 허무하다. 그때의 그 개고생이 이렇게 몇 줄로 끝나다니. 그때 내가 알게 된 것은, 벌어지는 일을 알고도 방관하는 것은 소극적인 형태로나마 가해에 동참하는 의미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입사 후부터 그 사람과 내 자리는 늘 가까웠는데 처음엔 우연의 일치인가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새롭게 자리를 옮기는 이삿날, 본래 자리배치엔 분명 나와 그 사람이 멀찍이 떨어져 있었는데 다시 보니 자리가 그 사람 앞으로 바뀌어 있었다. 마음대로 자리를 바꾸어버리는 월권을 부장이 내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승인해준 것이다. 나는 이 또한 가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내가 왜 그 사람의 괴롭힘의 대상이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오랫동안 이유에 대해 이해하려 노력했었다. 내가 더 친절하게 다가가야 하나? 못한다고 단호하게 말해야 하나? 집에 안 좋은 일이 있나? 오늘 기분은 왜 저런거지? 왜 이해를 하려는 마음까지도 내 몫이어야 했을까. 나를 아는 지인들은 내가 그렇게 당하고만 있을 사람이 아닌데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 말라고 항의하거나, 왜 힘들다고 호소하지 않았는지 의아해했다. 나 또한 그러한 일을 직접 겪지 않았다면 다른 이에게 쉽게 말했을 것이다. 대체 왜 그 상황을 그냥 참고만 있었느냐고. 성희롱이나 성추행 사건의 경우 그러한 질문은 더욱 집요해진다. 왜 그때는 말하지 않았고 이제 와서 그러느냐는 의심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힘들었던 시간을 어렵게 토로하는 당사자에게 다른 목적이나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묻는 2차 가해를 하기도 한다. ‘싫으면 더 강하게 말했어야지. 더 적극적으로 항의했어야지. 문자도 친절하게 답했던데?' 잘 지내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 때문이었을 것이고, 상황을 바꾸어보기 위해 하는 노력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일상을 잃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다분히 노력해서 입사한 소중한 직장이고 이곳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으니까. 문제를 제기했을 때 역으로 입지가 좁아지거나 낙인이 찍히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상대의 권위와 권력이 강할수록 상황이 더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선뜻 이겨내기 쉽지 않다.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 건 나와 같은 후배 입장인데도 대신 목소리를 내준 한 선배 덕분이었다. 나를 괴롭히는 그 사람이, 이미 승인이 난 내 휴가를 본인 마음대로 취소하는 것을 본 선배가 대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왜 그래야 하느냐'고 대신 묻는 선배의 모습에 나도 놀랐고, 후배들도 놀랐고, 그 사람도 놀랐다. 침묵을 깬 선배의 용기에 혼자 끙끙 앓던 후배들이 조금씩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각자 겪었던 일들을 조금씩 공유하기 시작했고 그 사람은 점점 놀란 달팽이처럼 움츠러들었다. 나는 지금도 그 선배에게 무척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회사의 시스템으로 보호받지 못할 때, 리더가 방관할 때 대신 나서서 목소리를 모으는 시작이자 용기가 되어 주었으니까. 결국 그 사람은 그동안의 만행이 알려지며 동료들에게 신뢰와 평판을 잃었다. 당연히 후배들에게 하던 갑질과 괴롭힘도 불가능해졌다. 그리고 얼마 후엔 몇 년 만에 나에게 처음으로 사과를 했다. 사람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니 그다지 진심이라고 믿진 않았지만(pp. 108-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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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4-02-13
  • 【북토크】 우리는 모두 문학하는 사람들이다
    책을 왜 읽을까? 사람마다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지식이나 감동을 얻기 위해서이다. 어떤 사람은 갑자기 농구에 관심이 생겼는데 먼저 농구에 대한 책을 찾아봤다고 한다. 참 특이하다. 농구에 관해 관심이 있다면 당장 농구장에 가서 농구공을 만질 것 같은데 그는 먼저 농구에 대해 전반적인 것을 알고 시작했다. 이처럼 무엇인가 알고 싶을 때 관련 서적을 찾아본다. 세상에는 알고 싶은 것이 많기에 계속해서 책을 읽고 있다. 또한 책은 감동을 주기에 읽는다. 책을 읽다가 전율할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어쩌면 그것을 또 느껴보기 위해 끊임없이 책을 읽는지도 모른다. 마치 낚시꾼이 손맛을 보기 위해 낚싯대를 드리우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읽어 내려간 수많은 책이 오늘날의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것이 말과 글로 드러난다. 거창하게 작가는 아니더라도 말과 글을 사용하는 우리는 또 하나의 작가다. 그리고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쓴 책을 부지런히 읽어야 한다. 나는 오랫동안 평론가와 작가 사이에서 위태롭게 줄다리기하며 살아왔다. 이제는 무의식 깊숙이 뿌리박힌 '시나 소설을 써야 문학 하는 사람'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는 중이다. "작가님은 소설 안 쓰세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다. 당황스러움은 '내가 언젠가는 소설을 쓰고 싶어 한다는 것을 어떻게 이리 쉽게 들켰나' 하는 마음 때문이고, 고마움은 '내 글을 보고 이 사람이 소설을 쓰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내 숨은 재능에 대한 칭찬이 아닐까' 하는 설렘 때문이다. "왜 소설을 쓰지 않나"라는 질문이 여전히 서운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에세이나 평론은 문학의 본령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뿌리 깊은 무의식 때문이다. 소설이나 시를 쓰지 않아도 나는 항상 문학의 길 위에 있었다. 평론이든 수필이든 우리가 언어를 통해 삶을 더 아름답게 만들려는 모든 노력은 문학의 자장 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소설가나 시인이 아님에도 '문학 하는 사람'이라는 마음을 버리지 않은 것은 나도 소설가처럼 내 이야기의 플롯을 짜고 시인처럼 내 문장의 운율을 고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문학 하는 마음은 어떤 장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 사람을 어루만진다는 믿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당신이 아름다운 말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었다면, 당신은 오늘 문학 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따스한 언어로 누군가에게 깊은 위로를 받았다면, 그는 당신에게 문학이라는 선물을 듬뿍 안겨준 것이다. 문학은 어디에나 있다. 당신이 이야기의 오랜 울림을 아는 사람이라면, 당신이 아름다운 언어의 맛과 향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문학은 어디서나 당신의 마음에 기쁘게 노크할 것이다(pp. 22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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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4-02-13
  • 【북토크】 미련 없이 죽는 한 방법
    이 책의 저자는 두 명이다. 나카무라 쓰네코는 1929년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다. 1945년 6월, 전쟁이 끝나기 두 달 전에 의사가 되기 위해 히로시마에서 오사카로 떠나 혼란의 시대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되었다. 두 아이를 키우며 2019년(90세)까지 풀타임으로 외래 및 병동 진료를 계속했다. 저서로는 16만 판매고를 올린, 오쿠다 히로미와의 공동 집필한 《내일을 위해 사느라 오늘을 잊은 당신에게》가 있다. 현재는 은퇴해 평온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오쿠다 히로미는 1967년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원래는 내과 전문의였으나 2000년에 나카무라 쓰네코 선생님을 만나 정신건강의학과로 전과했다. 현재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외에 도내 20여 개 기업의 산업의로서 직장인의 몸과 마음을 돌보고 있다. 일본 마음챙김보급협회 대표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내일을 위해 사느라 오늘을 잊은 당신에게》, 《어디서나 1분 마음챙김》 등이 있다. 이 두 의사는 많은 환자들을 상대했고 또 많은 죽음을 지켜봤다. 그리고 한 사람은 노년을, 또 한 사람은 중년을 살아가고 있다.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과 자기들의 인생 경험을 통해 후회 없이, 미련 없이 생을 마감하는 한 가지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그리고 글로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필요치 않다는 것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죽을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죽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술이 개입하는 것은 말년에 고통을 더할 뿐이라는 말에 크게 공감했다. 나도 아내와 연명치료는 서로 하지 않기로 했는데 기회가 되는대로 공식 절차를 밟아 확정해야겠다. 이미 어머니는 해 놓으셨는데 아버지는 여러 해 침상에 누워 계시지만 아직 그럴 생각이 없으시다. 오쿠다: 호스피스 병동에는 오륙십 대도 있었는데요.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고 살았으니, 만족해요"라며 평안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환자들도 꽤 보았습니다. 그런데 칠팔십 대의 고령자가 "아직 죽고 싶지 않아. 아직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라고 후회하며 생을 마감하는 것도 보았지요. 이를 보면서 나이가 인생의 만족을 느끼는 척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강하게 깨달았습니다. 나카무라: 자기 인생의 마지막을 의식하면,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살게 되지요. 그런 나날을 쌓아가다 보면 마지막 때가 다가와도 후회가 적을 거 같아요. 설령 아직 다하지 못한 일이 있다 한들 그 또한 열심히 살아온 결과니까요. 오쿠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지막에 죽음을 거부하며 후회하는 환자들은 ‘몇 년만 더 살면 ㅇㅇ 하려고 했는데, 은퇴하면 ㅇㅇ 하려고 했는데' 같은 말을 자주 했습니다. 나카무라: 그러면 반대로 평안하게 마지막을 맞이한 사람은 어땠나요? 오쿠다: 그런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일은 대체로 다 해봤으니, 후회는 없어, 내 마음대로 살아봤으니 괜찮아' 같은 말을 하고 조용히 웃었습니다. 미련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건강할 때부터 죽음을 의식하고 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고 싶은 일을 가능한 한 미루지 않고 실행해 온 것만은 확실합니다. 나카무라: 그렇지요. 하고 싶은 일을 미루는 것만큼은 피하는 것이 좋답니다. 남에게 폐가 되지 않는 선에서는 마음껏 해보면 좋겠어요.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요. 보통 우리는 동조 현상에 휘둘리기도 하는데요. 조금이라도 주위 사람과 다르게 행동하면 '괴짜'라고 부르기도 하고 '제멋대로 행동한다'고 말해요. 사회 분위기상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미루는 게 더 좋지 않다는 걸 염두에 두었으면 해요. 최대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간다면 평균수명보다 짧은 생을 맞이하더라도 후회는 남지 않을 거예요. 오쿠다: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를 소중히 여기자는 말씀이죠? 더불어 하루하루를 최대한 나답게 자기 마음에 솔직하게 지내는 것이 이상적이란 뜻이 되겠네요. 물론 완벽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겠죠. 그래도 하루에 한두 시간이라도 좋으니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마음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pp. 143-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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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4-02-12
  • 【북토크】 노년의 공포, 치매....예방법은?
    80중반의 부모님과 함께 사는 내 입장에서 가장 크게 신경 쓰이는 것은 바로 “치매”이다. 이 책은 치매가 한자로 ‘어리석을 癡, 어리석을 呆’이기에 ‘인지 장애’나 ‘인지 저하증’등의 용어로 바꾸었으면 하는 제안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치매에 대한 책을 읽게 됐다. 일상적으로 알고 있는 부분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나름 유익했다. 치매 없는 건강한 노년은 모든 사람들의 희망이다. 의사들이 제안하는 예방법은 참고할만한 가치가 있다. WHO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 치매 인구는 3초마다 1명, 해마다 대략 천만 명씩 증가해 2030년에는 8,200만 명, 2050년에는 현재보다 3배 넘는 1억5,2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렇게 급증하는 암울한 현실 속에 그나마 고무적인 것은 전 세계적으로 치매를 정복하고 하는 의학계와 과학계의 노력이 무척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p. 195). 치매 없는 건강한 뇌를 위한 전문가들의 제언 333 치매 예방수칙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기웅 교수는 '333 치매 예방 수칙'으로 치매를 예방하는 건강습관을 알리고 있다. 열심히 해야하는 3권勸, 하지 말아야 하는 3금禁, 정기적으로 꾸준히 관리해야 하는 3행行으로 333 이다. 3권 중 첫 번째는 잘 먹는 것이다. 보약을 따로 챙겨 먹기보다는 매일 끼니를 빠트리지 않고 먹는 것이 가장 좋다. 두 번째는 머리를 자주 쓰는 것이다. 특별한 방법을 찾을 필요는 없고 멍하게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순간을 일상에서 줄여야 한다. 예를 들어 수동적으로 TV만 보는 생활보다는 집안일, 독서, 봉사 활동, 종교 활동, 취미 생활 등 능동적으로 내가 머리를 쓰고 생각을 해내는 활동을 일상에 꾸준히 집어넣는 것이 바람직하다. 세 번째는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다. 적어도 일주일에 세번, 한 번에 30분 이상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 치매를 예방하는 데 단일한 방법으로 가장 확실하게 효과가 크고 검증되어 있는 예방법은 유산소 운동이다. 다음은 3금으로 첫 번째는 금연이다. 흡연은 혈액 순환을 억제하고, 혈액 순환이 나빠지면 혈관성 치매뿐만 아니라 치매와 같은 퇴행성 치매의 위험도 증가하므로 반드시 금연해야 한다. 두 번째는 절주다. 하루에 세 잔 이상 한 번에 술을 마시는 것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한다. 한 잔을 더 마실 때마다 치매 위험이 그에 비례해 높아진다고 생각하면, 금주의 이유를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세 번째는 머리 부상을 조심해야 한다. 운동을 하거나 집안일을 하다가 머리를 다칠 수가 있는데 머리를 다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치매에 걸릴 확률이 4배 정도 높아지고, 불리한 치매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10배까지 높아질 수 있다. 만약 운동 등 위험 소지가 있는 활동을 할 때는 머리 보호대를 착용하고, 집안에서 물건을 정리할 때는 높은 곳에 물건을 두지 않아 머리를 다칠 수 있는 소지를 제거하는 것이 권장된다. 3행 중 첫 번째는 흔한 성인병인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것이다. 불편한 증상이 없으면 관리가 소홀해지기 쉬우나, 이 질환들은 치매 위험을 각각 1.5배 이상씩 높이기 때문에 질환들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정기적으로 투약하는 등 생활 습관을 챙겨 위험을 최소화해야 한다. 또한, 질환이 없는 사람은 예방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 두 번째는 우울증 관리다. 우울증은 두 배 이상 치매 위험을 높이기 때문에 노인들은 우울증의 위험이 젊을 때보다 높으므로 사람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 질환에 걸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세 번째는 기억 검진의 정기화다. 예방수칙을 잘 지켜도 치매에 걸릴 확률은 여전히 있으므로 60세가 넘은 사람은 적어도 1년에 한번은 건강 검진하듯 기억 검진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배운다음 줄이자 뇌과학자 서유현 박사는 건강한 뇌를 통한 치매 예방을 위해 몇 가지 조언을 건넨다. 요약하면 배운다음 줄이자'다. '배'는 배움이다. 나이가 들수록 독서를 즐기고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새로운 자극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치매 예방과 거꾸로 가는 길이다. 집안일, 봉사 활동, 타인과의 교류 등 여러 활동이 뇌에 자극을 준다. 배움의 요지는 새로움이다. 본인이 익숙한 것을 반복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예를 들어 음악을 듣는다면 아는 음악을 똑같이 듣기만 하는 건 큰 자극이 아니다. 가사를 바꾸거나 새로운 노래를 배우는 게 두뇌 활동에 도움을 준다. '운'은 운동이다. 뇌도 운동화를 신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뇌와 운동의 연관 관계를 밝힌 논문은 수없이 많다. 육체적인 운동은 뇌를 깨우고 뇌로 다양한 혈류를 많이 보낸다. 핏속에 들어 있는 산소나 뇌세포를 자극한 뇌 성장 인자들이 활발해지고 노화로 인한 염색체의 쇠퇴를 막아준다. '다'는 마음 다스림이다.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자세가 치매를 막는다. 나이가 들면 소극적으로 변하고 폐쇄적인 태도를 갖기 쉬운데, 이러한 태도와 동반되는 부정적인 생각은 뇌신경 세포의 활동을 억제한다. 또 자기표현을 줄이거나 감정을 억제하는 것도 좋지 않다. 그렇다고 무작정 참을성 없이 화를 내는 것도 치매에 부정적이다. 화를 자주 내거나 화가 나도 참거나 우울증을 겪는 사람 모두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치매 위험이 높다. 그러므로 애초에 그러한 마음이 들지 않게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최선이다. '음'은 적절한 영양 섭취다. 몸에 좋은 음식이 무엇인지 사람들이 몰라서 못 먹는 경우는 별로 없다. 결국 실천이 관건이다. 골고루 필요한 성분을 섭취하면서 몸에 나쁜 것은 가급적 피해야 치매로부터 조금씩 멀어질 수 있다. 이어지는 '줄'은 몇 가지를 줄이자는 의미다. 우선은 술과 담배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반 잔 정도의 술은 스트레스 완화에 도움을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치매 발생의 원인이 된다. 담배의 해악은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같은 맥락에서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도 생활 습관을 교정해 그 수치를 낮추는 데 노력해야 한다. 최근 급격히 늘어나는 스마트폰 사용률도 뇌 건강에는 악재다. 전자파는 뇌에 좋지 않다. 엘리베이터 같은 폐쇄된 공간이나 지하철 같이 다수의 사람이 있는 공간에서는 가급적 쓰지 말고 잘 때는 가까운 곳에 스마트폰을 두지 않는 것이 좋다. 그리고 뇌손상을 줄여야 한다. 머리에 지속적인 타격을 받은 레슬링 선수나 권투 선수가 치매에 많이 걸린다는 연구가 있듯 뇌의 작은 충격도 큰 여파를 불러올 수 있다. '이'는 치아 건강이다. 밥을 먹을 때는 30분 이상 잘 씹어서 넘기는 게 중요하다. 기억의 중추인 해마는 우리가 잘 씹을수록 두터워지고 기능이 좋아진다. 꼭꼭 씹어 먹는 게 기억력 손상을 막아준다는 의미다. 이가 빠져서 잘 씹지 못하는 사람의 치매 발병률은 정상 치아를 가진 사람에 비해 두 배 높다. 치주염이 있는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발병률이 9배 높다는 보고도 있다. '자'는 잠을 잘 자자는 말이다. 상당히 많은 연구 결과가 뇌 건강에서 숙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수면 장애가 지속되면 뇌 크기가 줄어들고 60세 이상이 되면 수면 장애와 뇌 크기의 상관관계가 더욱 뚜렷해진다. 뇌의 위축은 자연히 치매로 이어진다. 나이가 들면 새벽부터 일어나기 쉽다. 잠을 잘 자야 뇌 속에 독성 물질을 배출해 치매의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다. 치매를 예방하려는 사람이든 치매 환자든 햇볕을 쬐어 정상적인 호르몬이 흐르게 하는 것은 중요하다. 따라서 낮에 햇빛 아래에서 활동하고 밤에는 푹 자는 일반적인 생활 패턴으로 유지, 관리해야 한다. 잠은 무엇보다 첫잠 90분이 중요하다. 이때가 꿈이 없는 가장 깊은 수면을 취할 때이기 때문이다. 첫잠을 잘 자면 뇌 피로 회복에 큰 효과가 있다. 잠을 잘 자기 위해서 침실은 어둡고 조용하게 유지하고, 취침 시간과 기상 시간을 일정하게 하면서, 낮에는 30분 정도 햇볕을 쬐고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밤에 몸이 이완되며 잠에 잘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진인사대천명고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이재홍 교수가 건네는 치매 예방법 '진인사대천명고'의 맥락도 다르지 않다. '진'땀나게 운동을 하고, '인'정사정 없이 담배를 끊고, '사'회활동을 하면서 긍정적인 사고를 하고, '대'내외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천'박하게 술 마시지 말며 '명'에 이로운 음식으로 식사를 하고 '고지혈증, 고혈압, 고혈당증 같은 혈관성 위험인자를 일찍 발견하고 조절하는 것이 치매 예방에 중요하다는 이야기다(pp. 186-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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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4-02-10
  • 【내이야기】 달라진 설 명절 풍경
    설 명절 연휴를 보낸다. 이제는 과거와 다른 모습으로 이 기간을 보낸다. 예전에는 명절날 미리 준비한 음식을 가지고 부모님 댁에 와 아침을 동생네와 같이 먹었는데 이젠 그렇지 않다. 담임목회 중단 후 부모님 댁에 같이 살기에 명절날 아침 일찍 차 타고 올 일이 없다. 그리고 장모님께서는 재작년인 2022년에 세상을 떠나셨기에 처가댁에 갈 일도 없다. 처가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명절에 부모님 드실 것, 우리 식구 먹을 것 간단하게 준비해 밥 먹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찾아갈 곳도, 찾아올 사람도 없다. 연휴 기간에는 취재할 일도 없기에 미리 대출한 여러 권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그러다 심심하면 밥 먹고 운동 삼아 뒷동산 한바퀴 돌고 오면 된다. 참으로 평안한 설 연휴이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명절을 맞아 긴 시간 차에 시달리며 고향을 찾아간다. 젊을 때 텔레비전에서 귀성길로 고속도로에 막혀 있는 차들을 보며 지방 여자와는 결혼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내는 경기도 여자이다. 나 또한 서울 태생이라 지방과는 관계가 없다. 아버지는 경기도 분이신데 젊을 때 서울로 올라오셨고, 어머니는 충청북도 분이신데 결혼 후 서울에서 사셨고, 외가댁도 사라졌기에 더 이상 지방하고는 관계가 없다. 그래도 명절이라고 고향을 찾아가는 긴 행렬은 세월이 흐르면 아마 사라지지 않을까? 설레고 좋았던 어린 시절의 명절과는 너무 다른 명절이다. 앞으로 또 어떻게 달라질려나?
    • 오피니언
    • 칼럼
    2024-02-09
  • 【북토크】 거짓말이 일상인 한국사회
    한국만큼 사기 사건이 많은 나라도 없다고 한다. 일본에 비하면 그 숫자는 엄청나다. 사기는 거짓말에서 시작된다. 결국 한국은 “사기 공화국”, “거짓말 공화국”이다. 나도 몇 번의 사기를 당해본 적이 있다. 또 최근 남의 거짓말로 피해를 본적도 있다. 그래서 거짓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그리고 책을 읽기 시작하고 있다. 그 첫 번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거짓말에 대한 책을 읽으며 거짓을 멀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아울러 남의 거짓말에 휘둘리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거짓 뉴스, 거짓 기사, 거짓말이 판치는 세상이다. 속지 않도록 조심하자. 그리고 거짓말을 한 당사자에게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라크 전쟁은 한 소녀의 거짓 눈물로 인해 발생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1990년 미국 연방 하원 공청회에 한 소녀가 등장했다. 그는 공청회에서 당시 진행 중이었던 이라크와 쿠웨이트 간의 전쟁에서 이라크군이 벌인 만행을 고발했다. 소녀는 이라크군이 민간 병원에 난입해 인큐 베이터에서 자고 있는 아기들을 바닥에 던져 죽였다고 전하면서 눈물까지 흘렸다. 소녀의 생생한 증언으로 미국에서는 이라크 전쟁 참전에 대한 여론이 들끓었고, 그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곧 걸프전쟁이 발발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30개가 넘는 국가에서 60만 명이 넘는 군인들이 전쟁에 동원되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충격적인 사실이 하나 밝혀지게 된다. 눈물을 흘리며 이라크군의 만행을 고발한 소녀의 증언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쿠웨이트 정부가 미국의 개입을 이끌어내기 위해 쿠웨 이트 대사의 딸인 나이라흐Nayirah에게 거짓말을 하도록 한 것이다(p. 116). 한국인이 거짓말에 잘 속는 또 하나의 이유는 거짓말에 대해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러 기관들의 조사에 의해 이제 한국인들이 무슨 거짓말을 하는지는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어떻게 거짓말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대중에게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선택의 기로에서 직관에 의존해 진실인지 거짓인지 구분할 뿐이다. 흔히 얘기하는 '여성의 감'이라는 표현처럼, 한국인의 상당수는 자신의 직관적 사고를 '촉'이라고 칭하면서 상당히 신뢰한다. 하지만 이러한 촉에 대한 믿음은 보고 싶은 것만 본 데서 비롯된 심리적 함정일 뿐이다. 직관에만 의존하다가 잘 속는 사람들에게는 다섯 가지 특징이 있다. 첫번째는 과도한 자신감이다. 한국인들 대부분은 자신만은 거짓말에 속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빠져 있다. 우리는 거짓말 앞에서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거짓말을 할 때 거짓만을 말하지 않고 대부분은 진실과 거짓을 섞어 말한다. 그래서 무엇이 진실이며 무엇이 거짓인지 구분하기가 매우 힘들다. 결혼을 한 여성들은 배우자와 자녀의 거짓말을 매우 높은 확률로 구분한다. 하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안타깝게도 그 확률은 매우 떨어진다.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며,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 '무주의 맹시'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만 선택해서 집중해서 보는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거짓말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두 번째는 눈 맞춤을 못한다는 것이다. 눈은 혀처럼 많은 말을 한다는 격언이 있다. 거짓말의 신호는 눈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눈 깜박임, 눈동자 움직임, 눈썹과 눈 주변 근육의 움직임을 통해 우리는 그 사람이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알 수도 있다. 한국인들은 똑바로 마주보는 것을 무례함으로 여기기 때문에 타인과의 눈 맞춤에 익숙하지 않다. 마주한 상대가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잘 구별하지 못하는 데에는 이처럼 상대방의 표정을 살피기 어려운 문화도 있다. 세 번째는 공감 능력의 부족함이다. 공감이란 다른 사람의 감정과 경험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거짓말쟁이들은 가짜 감정을 전달한다. 거짓 미소, 거짓 눈물이 대표적인 거짓 감정의 표현이다. 공감 능력이 높은 사람들은 가짜 감정을 쉽게 알아차린다. 하지만 타인이 느끼는 감정을 읽는데 서투른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가짜 감정 표현에도 쉽게 속을 수 밖에 없다. 네 번째는 언어 중심의 소통 방식이다. 비언어는 언어를 초월해 그 사람의 성격, 감성, 지성, 태도를 전달하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의사소통방식이다. 언어의 역사는 고작 6,000년밖에 되지 않았다. 서양의 비언어 연구는 50년이 넘은 데 반해 한국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비언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알지 못한다. 다섯 번째는 타인에 대한 관심 부족이다. 사람은 말을 하지 않을 때에도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한다. 그것을 우리가 읽지 못할 뿐이다. 자신의 감정에 관심을 기울이는 데에만 익숙하기 때문에 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타인의 감정에 대해 고민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만 배워왔다. 주입식 교육처럼 왜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거짓말을 함으로써 어떤 일들이 발생 하는지 등에 대한 설명은 듣지 못하고 무조건 거짓말은 나쁜 것이니 하지 말라는 이야기만 들었다. 한국인의 거짓말에 대해 객관적 자료를 가지고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사람들도 없었다. 지금까지 만나본 사람들 가운데 거짓말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이는 단 둘뿐이었다. 두 사람 모두 프로파일러라는 특수한 직업인이었다. 그 외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관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았다. 그 결과는 촉에 의지해 거짓말 공화국에서 적당히 속이고 속아주면서 살아가는 지금 우리의 모습들이다. 외국의 경우 거짓말에 관한 연구는 물론 대중들의 이해 역시 한국에 비해 상당히 높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CIA, FBI 기관 출신자들이 직접 거짓말에 관한 전문 교육을 실시한다. 또 그 결과는 곧 대중에게 공개된다. 그러다보니 거짓말에 관한 지식들이 전문가가 아닌 대중에게도 널리 퍼져 있고 시시각각 업데이트되는 정보들 또한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거짓말에 관한 지식이 부족하다보니 한국인들은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영악하게 살아야 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모순되고 막연하기만한 잔소리를 교육이라고 착각한다. 거짓말은 나쁜 것도 아니고 좋은것도 아닌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거짓말에 대해 제대로 교육을 받으면 거짓말도 훌륭한 사교 도구가 될 수 있고 또 쉽게 속지 않을 수도 있다(pp. 40-43). 따라서 이 책의 목적은 거짓말쟁이로 손가락질 받는 누군가를 다시 비난하거나 또는 거짓말에 대해 경고하고자 하는 데 있지는 않다. 한국 사회에서 거짓말이 줄어들기를 바라지만, 그동안 축적해온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거짓말이 줄어들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거짓말에 대해 그 본질을 추적하고 싶었을 따름이다. 한국인의 거짓말을 분석하면서 우려되는 점이 한 가지 있다. 우리가 거짓말을 많이 하거나 또는 쉽게 속는 것이 아니라 거짓말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타인에게 거짓말을 지적받는 것은 가장 치명적인 모욕이다. 그리고 모욕이 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거짓말쟁이들은 거짓말을 시도할 때 사회에서의 신용과 관련된 모든 자격이 상실될 수 있음을 각오하고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속였다가 들키는 사람의 회복보다 속은 사람의 회복이 훨씬 어렵다. 한국인의 거짓말이 가진 고유성은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공정하지 못한 게임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 스스로가 어떻게 거짓말을 하는지 솔직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p.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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