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Home >  오피니언
-
111회 총회 경선 결과를 보며 드는 생각
금번 111회 총회에 전 총대가 투표한 선거는 3개의 직책이었다. 목사부총회장, 장로부총회장, 총무. 공교롭게 모두 2번이었고, 주관적으로 볼 때 경선 상대 보다 부드럽고 연약한 측면이 있었다. 그런데 경선에서 이겼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가? 노자의 스승이었던 상용이 죽음을 앞두고 노자에게 입을 벌려 보여주며 물었다. "내 이빨이 남아 있느냐, 혀가 남아 있느냐?" 노자는 "이빨은 다 빠지고 없지만, 혀는 남아 있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길 수 있다. 성경의 가르침도 그러하다. 약하다고 할 때 강하다!
-
【서기원 목사 선교16】 정년 연장
정년 연장 총회를 앞두고 여러 안건 중에서 올해도 중요한 안건은 여성 안수와 정년연장일 전망이다. 이 문제는 매 총회마다 상정되었는데 거듭되는 논쟁만 되풀이하고 매듭을 짓지 못하고 있다. 총회 때 마다 이 문제가 상정이 되고 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번 총회 때에도 또 반복되는 악순환을 반복할 것인가? 이번 총회에서는 적어도 한 문제만이라고 매듭을 지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여성 안수 문제는 교계의 바램 뿐 아니라 교단의 신학적 정체성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다양한 논의와 숙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총회에서는 정년 연장에 대한 문제를 매듭지어 주기를 소원한다. 정년 연장의 문제는 현재 사회에서도 논의되고 있고 여러 교단에서도 논의가 되고 있다. 그 이유는 수명의 연장이 큰 원인이다. 은퇴 이후에도 사회의 여러 부분에서 또는 목회 부분에서도 계속 감당할 만한 여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년을 연장하면 대두되는 문제도 있다. 사역을 계승해야 하는 자들이 누적이 되기 때문에 다음세대들을 준비하는 부분에서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부분을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정년 연장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정년 연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중재안은 담임목회 정년과 사역 정년을 구분하는 것이다. 담임목사의 정년은 교단에서 정한 법대로 70세에 정년을 하고 은퇴 이후에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서 사역을 연장하는 방법이다. 가칭” 총회 시니어 선교목회자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수십 년간 목회한 은퇴목사들의 경험을 살리는 제도이다. 총회세계선교회(GMS), 총회교회자립개발원, 노회와 연계하여 은퇴목회자들을 국내외 선교현장에 연결하는 제도이다. 특별히 한국은 현재 200 여나라의 280만명의 이주민들이 거주하는 다문화사회가 되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가운데 한국에 이주민들을 보내신 것이다. 앞으로 더욱더 많은 이주민들이 들어와서 거주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한국을 선교하는 나라로 세워 가시려는 섭리이다. 이미 한국교회는 해외에 수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했다. 해외에 선교사를 보내는 것과 함께 한국에 들어온 이주민들을 함께 선교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은퇴목사 1 명과 이주민교회 1곳과 지역교회 1곳을 연결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해외 은퇴한 선교사 1명도 연결할 수 있다. 이 제도를 논의해서 잘 준비하면 정년 연장과 이주민선교 해외선교와 지역교회의 부흥을 이룩할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시 92:14
-
【북토크445】 한나 아렌트의 사상이 궁금하다
오늘날 우리는 어둠이 전 세계를 삼키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한나 아렌트는 아무리 어두운 시대라 하더라도 불빛을 찾을 희망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 불빛은 이론이나 개념보다는 개인들의 삶과 일에서 등장하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바로 그러한 불빛을 제공하며 우리가 정치와 당혹스러운 문제들에 비판적 관점을 갖출 수 있게 돕는다. 한나 아렌트는 현대의 삶에 나타나는 위험한 경향들을 빈틈없이 비판했으며, 정치의 품위를 회복하기 위한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한나 아렌트가 읽히고 있는 그리고 한나 아렌트를 읽어야 할 이유다. 『한나 아렌트』는 따듯한 시선과 감동적인 서술로 한나 아렌트의 삶과 작품을 소개한다.-예스24. 한나 아렌트의 사상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면도 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영향력을 끼치고 있기에 마음 먹고 종종 한나 아렌트의 책을 읽고자 한다. 귄터 안더스가 도피하고 며칠 후, 그러니까 2월 27일에 제국 의회 의사당에 불이 났다. 히틀러는 이 방화 사건을 긴급조치를 내리고 기본권을 무효화시킬 구실로 삼았다. 이제 자의적인 체포는 다반사가 되었고, 정적에 대한 테러도 늘어났다. 베를린과 독일의 많은 유대인들은 그제야 국가사회주의자들의 반유대주의를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한나가 보기에 그것은 벌써 몇 년 전부터 예고되었던 상황을 어처구니없게 오해한 것이었다. 그녀는 회상한다. “나치가 우리의 적임을 알게 된 건 히틀러의 정권 장악 때문이 아니예요! 정신이 모자란 사람들을 뺀 모든 사람에게 나치가 우리의 적이라는 것은 적어도 4년 사이에 너무도 자명한 일이 돼 있었어요.” 한나는 예를 들어 여전히 유대인들이 처한 위험을 믿고 싶지 않은 친구 안네 멘델스존보다 상황을 훨씬 더 현실적으로 평가했다. 한나가 보기에 나치의 목적은 분명했다. 마찬가지로 그녀 의 태도 역시 명명백백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공격을 당한다면, 유대인으로서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 그것은 나치의 반유대주의를 개인적인 비극으로 받아들이는 유대인들을 향해 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정치적인 행동을 호소하는 일이었다(p. 79). 한나는 쉽게 절망하는 여성은 아니었다.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그녀에게는 ‘살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그러나 '너무도 나쁜' 세계 상황을 볼 때 그녀 역시 어떤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12년 후 그녀는 쿠르트 블루멘펜트에게 귀르 수용소에서 자살을 하면 어떨까 곰곰이 생각했지만, 결국 "웃긴다"는 대답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개인적인 일과 정치적인 일을 구별할 줄 안다고 자부하는 한나에게 포로 수용소에서의 자살이란 대단히 무기력한, 웃기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그녀는 귀르 수용소에서의 체험에 대해 훗날 이렇게 말한다. “귀르 수용소에서 [••] 자살에 관한 소리를 들은 것은 단 한번뿐이었다. 그것도 집단행동을 위한 제안으로서의 자살이었다. 프랑스인들이 당황하도록 일종의 항의 행동을 제안한 것이다. 몇 사람이 우리가 ‘뒈지려고’ 이리 실려왔냐고 말하자 갑자기 모두들 분위기가 바뀌며 열정적인 삶의 용기가 터져나왔다. 전체의 불행을 여전히 개인적인 불운으로 여기며 자신의 생명을 개인적, 개별적으로 끝맺음했던 사람은 비정상적이고 비사회적인 사람이며 사태의 일반적인 결말에 관심을 상실한 것이 틀림없다는 견해가 일반적이었다.” 귀르 수용소의 여러 생존자들은 수용소의 여자들 사이에 반항적(p. 100)인 자기 주장의 의지가 팽배했음을 증언한다. 그들은 화려하게 화장을 하고 제일 좋은 옷을 입고 마치 가로수길을 산책하듯이 수용소 지대를 산책하곤 했다(p. 101). 그녀는 미국에 머문 지는 불과 몇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자신의 주장을 펼칠 토론의 장을 발견했다. 그녀가 독일어 잡지 『아우프바우』에 공개서한을 보내자 편집장 만 프레트 게오르게는 그녀가 피력하는 논거의 힘에 깊은 감명을 받고, 그녀에게 문예란의 자유기고가로서 활동하기를 제안했다. 『아우프바우』에 1941년 11월부터 격주로 '이것은 당신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라는 제목으로 한나의 칼럼이 실렸다. 제목만큼이나 내용도 독자의 마음을 흔들어 깨웠다. 하인리히는 그녀의 정열적이고 가차 없을 정도로 객관적인 이야기 방식을 "도끼 같다"고 말한다(p. 112). 그녀는 첫 기고에서 이렇게 쓴다. “히틀러에 대항한 유대 민족의 현실적인 전쟁만이 유대인 전쟁에 관한 뜬소문에 종말을 준비해 줄 것이다. 그것은 가치 있는 종말이다. 자유란 선물이 아니다. [...] 자유란 괴로움을 견뎌낸 데 대한 보상이 아니다.” 한나는 동유럽에서 나치의 유대인 박해와 팔레스타인에서 영국인들의 변화된 정책을 배경에 두고 이 글을 썼다. 점점 더 많은 유대인들이 유럽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고, 아랍인들에게서 유대인의 우세에 대한 저항이 점점 더 커지자 영국인들은 이주민의 수를 제한하기로 결정했다. 이주민들을 수송하는 배들은 팔레스타인의 항구에서 거부되었다. 수송선 '스트루마'의 침몰과 같은 재앙이 발생했다. 스트루마호는 오랫동안의 외교적인 줄다리기 끝에 다시 바다 로 끌려가 운명에 맡겨졌던 것이다. 과도하게 많은 사람과 짐을 실은 데다 기동능력이 없는 그 수송선은 예상대로 가라앉았고, 여기서 구출된 생존자는 단 두 사람이었다. 다른 760명의 승객들은 모두 물에 빠져 죽었는데, 그들 중 절반이 여자와 아이들이었다. 이러한 정책의 결과로 지하운동단체 '이르군단'과 같은 전투적인 유대인 집단들이 생겨나 영국의 시설물과 사람들을 공격했다. 한나 아렌트는 메나 베긴 휘하의 이런 테러리스트들을 "폭약 속물" 이라고 부르며 비판했다. 그들은 친구와 적이라는 완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이분법에 매달리며 무책임하게 행동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유대인들의 위험한 경향, 즉 반유대주의를 '자연스런 현상'으로 간주하고, 선택된 민족으로서 적대적인 세계에 에워싸여 있(p. 113)다는 잘못된 믿음에 빠지는 경향에 대해 경고한다. 마찬가지로 독자적인 유대인 국가가 반유대주의를 피해 도망갈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되리라는 시온주의의 기대에 대해서도 경고한다. 그녀는 칼럼에서 팔레스타인이 '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랍인들로 에워싸여 있 고, 그들에게 협조를 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거듭 상기시킨다. 독자적인 유대인 국가는 이러한 양해를 불가능하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유대인 국가 내에서 비유대인들은 언제나 소수로서의 권리밖에 갖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유대인 국가는 영국이나 미국과 같은 강대국의 손에 자신을 내맡기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약속의 땅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다시 말해 스파르타와 같은 '전사족 1'이 될 것이며, 적대 적인 아랍인들로 에워싸인 상황에서는 군사적 방어가 최우선이기 때문에 모든 경제적 발전과 문화적 진보는 질식되고 말 것이다(p. 114).
-
【북토크444】 책을 통해 나와 남을 연결한다
처음보는 특이한 형식의 책으로 흥미로웠다.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과거의 사람들과 연결된다. 그런면에서 책은 인간이 만든 참으로 특별한 것이다. ‘독서문화’는 시대를 읽어내는 데 유용한 ‘탐침’이 될 수 있다. 당대에 어떤 책이 어떻게 읽혔는지 알면, 지층의 단면을 보고 지형의 변화를 짚어내듯 시대의 풍경이 손에 잡힌다. 이 책은 해방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청년’들의 ‘책 읽기’에 주목한 독서문화사다. 해방 이후 누구든지 ‘제몫’이 없는 ‘청년’으로 살아가야 했다. 문학이란 키워드로 한국 근현대사의 이면을 파헤치는 데 골몰한 저자는 이 중 문학과 현실에서 4인을, 시대를 읽는 ‘문화적 탐침’으로 주목했다. 이념 과잉의 시대를 견뎌야 했던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 ‘준’, 혁명의 뒤끝을 앓아야 했던 김승옥 소설 『환상수첩』의 ‘정우’ 그리고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란 스테디셀러를 쓴 전혜린과 인간답게 살고 싶었지만 결국 스러진 전태일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시대와 불화하며 책을 통해 치열하게 더 나은 ‘삶’을 꿈꾸었다는 점에서 각각의 시대를 상징한다. 이들은 ‘국가’가 무엇인지 고뇌했고, ‘혁명’에 좌절했으며, ‘여성’과 ‘노동’이 무엇인지 물었다. 이들이 읽고 던진 물음으로 우리 삶의 지도가 단단해졌다. 우리 역사는 그 청년들에게 빚지고 있다. 우리 역사는 이들이 읽어낸 만큼의 역사다. 이 책은 바로 그렇게 책을 읽으면서 더 나은 세상을 상상했던 청년들의 이야기를 탄탄하고 명징한 문장으로 치밀하게 담아냈다.-예스24 말랑말랑하되 생생한 1960년대 젊은 작가들은 그 전과 분명히 달랐다. 기성 작가들은 "김승옥이라는 벼락에 맞아서 넋이 빠진 상태"였고 "이제 우리들 시대는 갔다"고 했다. 그런 거였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문장이 달랐고 감성이 달랐다. 이들은 자신들의 느낌을 잘 드러내는 표현이 좋다고 배운 세대였다. 입말의 말랑말랑함이 고스란히 배어나오는 단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태백산맥》에 이런 일화가 있다. 허명길이라는 학생이 배가 고파 진달래꽃을 많이 따먹어서 밤중에 배가 깨지게 아파 호되게 고생했다고 하자.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런 생생한 일을 글로 쓰지 않았다. 배가 고파서 진달래꽃을 따먹고 설사까지 했던 일이 자랑스럽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느낌을 구태여 '주욱주욱 쏟아진 물은 진달래물똥'이라는 식으로, 친구에게 말하는 것처럼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 경험을 생생한 표현으로 쓰는 것이 칭찬받는 시대가 되었다. 이는 평론가 김현이 책 읽기의 달달함을 겨울밤에 가슴에 베개를 괴고 해남 물고구마를 눌어붙도록 쪄가지고 먹어대며 이형식에게로, 허숭에서 임꺽정에게로 그리고 오필리아에서 파우스트로 정신없이 뛰어 다닌다고 쓰는 것과 같은 그런 감각이다. ‘주욱주욱’ 쏟아진 진달래물의 고통이나 '해남 물고구마를 눌어붙도록 찐' 사정은 당사자가 아니면 모르는 일이지만 그 개인적 감각을 언어로 전달하는 것은 라디오를 듣다가 텔레비전을 보는 것만큼이나 생생한 것이었다. 그래서 "의용군에 끌려간 것을 한하였다" 라거나 "여기까지 끌려 오는 사이 맥진이 되어" "지난날이 호기스러웠던 것만큼 말로가 애상적이다"라는 식의 표현을 쓰지 않았다. 그것은 남들도 다(p. 89) 하는 표현이 아닌가. 또 자신이 느낀 감정이 한이나 애상이라는 표현으로 쓰는 게 맞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감정을 관습적으로 표현하는 대신 어떤 상황에서 그 감정이 어떻게 느껴졌는지를 세세하게 나누어 서술했다. 이를테면, 윤희중이라는 어떤 남자가 있다고 치자, 이 남자가 무진이라는 고향에 내려가는데 그간의 여러 사정으로 무진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 마음은 고향에 대한 묘사에서도 드러난다. "밤 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다" 고 말이다. 안개가 '적군' 같다는 묘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적군과 아군의 대립이 지닌 무서움을 그대로 경험해본 사람일 것이다. 그 적군을 어두컴컴한 새벽에 발견했다면 그 압박감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그런데 고향을 두고 이렇게 묘사하다니, 도대체 고향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 궁금해지는 게 당연하다. 한글세대 소설가들은 주관적 느낌과 기억을 객관적인 이미지 재현에 그대로 투사했다. ‘감수성의 혁명’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자신만의 감정과 감각을 그대로 옮겨낼 수 있었던 사정을 반영한 말이다. 이 간질간질하고 말랑말랑한 청년들의 언어 속에서 새로운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 빛은 자기 언어를 가진 자들의 몫이었고, 자기 언어를 부릴 수 있는 신세대의 권리였다. 1960년대 청년들은 자신들 만의 언어로 매체를 만들고 문학판을 재편하고자 했다. 그래서 '새로운 창작'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안이한 창작 태도와 족벌주의, 그리고 더러는 관권에 대한 하염없는 동경 등의 순수치 못한 기풍에 젖어 있는 이유와 관련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연이어 문학이 어떻게 현실과 관계되어야 하는지 물었다. 이들은 '문학'이 무엇인지 재차 물었다. 그것은 문학 뒤에 숨지 않겠다는 말인 것처럼 보였다(p. 90). 쌍가락지, 올빼미, 바꿔치기 등등 자유당 시절의 유물들이 되살아나고 빈대표 유령표 기표 감시 따위의 새로운 전통을 착착 기록하면서 6•8공명선거는 전무후무한 막걸리 선심 속에 비틀비틀 막을 내렸다. 그리고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처음엔 그것이 축하시위인지 규탄시위인지 분간하기 썩 힘들었다. 이번 선거가 공명선거였다는 당국의 발표가 있은 후의 일이었고 학생들의 주장엔 옳은 데도 없지 않다는 평가가 따랐으니까. 어쨌든 축하인지 규탄인지 모를 그 학생들의 시위는 쉬 끝나지 않을 기세였다. 학생들이 거리로 나간 채 학교문은 닫혔고 거리는 연일 최루가스와 경찰봉이 휩쓸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청년들도 세계가 달라져야 한다고 외쳤다. 1968년 프랑스에서 시작된 학생들의 시위가 결국 유럽 전역을 휩쓸며 68혁명으로 불렸지만 "극좌학생의 유혈데모"라고 보도됐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6월 8일 6·8부정선거가 자행되었다. 4•19 이후 10년도 안 되었지만 또다시 발생한 부정선거로 저 멀리 베를린에서 공부하는 학생들만 붙잡혀 왔다. 이름하여 동백림사건. 이 명칭은 정직하지 않았다. '동베를린 학생 납치사건'이라고 해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을 텐데 ‘동백림사건’이라고 하니 살기 바쁜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 사건뿐이랴. 4•19와 6•3한일회담, 6•8부정선거에 이어 동백림사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역사가 말의 난장이었다(p. 91). 혜린은 죽기 전 편지 한 장을 남겼다. "장 아제베도에게"로 시작하는 편지다. '장 아제베도'를 향해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너를 좋아해. 너를 단념하는 것보다도 죽음을 택하겠어"라고 쓰면서 "내가 원소로 환원하지 않도록 도와줘"라고 간절히 말한다. '장 아제베도'는 프랑수아 모리악의 소설 《테레즈 데케루》에 등장하는 이름이다. 혜린(p. 168)은 자살하기 직전에 《테레즈 데케루》를 다시 인용한다. 테레즈는 답답한 가정을 벗어나서 열정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주인공이었다. 그가 이 작품을 죽기 직전에 붙잡았다는 것은 이 세계에 번역되지 않은 그 무엇을 이 책에서 찾고 있었다는 뜻이다. 예전에 그가 뮌헨에 처음 도착했을 때처럼 말이다. 그 속에서 자유로운 영혼의 장 아제베도를 다시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장 아제베도'는 번역되지 못한 자신의 이야기와 관련되어 있다. 그는 이런 글을 쓰기도 했다. 〈덫에 걸린 세대〉라는 글에서 "원을 긋고 달리면서 너는 빠져 나갈 구멍을 찾느냐? 알겠느냐? 네가 달리는 것은 헛일이라는 것을". 혜린은 사랑하고 '사랑' 받으며 살고 싶다고 했지만 혜린이 발견한 것은 빠져 나갈 수 없는 '쥐덫'뿐이라고 생각했다. 1970년대까지 독자들은 혜린을 잊지 않았다. 혜린이 남긴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1970년대까지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라는 말 자체가 역설적이었다. 번역되지 못한 말, 말해지지 못한 말이 있다는 사실이 그 어떤 메시지 보다 강력했다. 각자의 내면 안에 번역되지 못한 언어가 있다는 짐작은 수많은 청년들의 마음을 뜨겁게 했다. 혜린은 스스로의 삶을 번역 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남겼다. 독자들은 혜린이 하고자 한 말에 응답했다. 아마도 혜린이 꿈꾸었던 것은 이런 것이었을지도 모른다(p. 169). 더 리더 책을 읽는 것은 '나와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타인'을 통해 나를 만나는 일인 동시에 '타인'을 경유해서 내가 속한 세계를 만나는 일이다. 그러므로 책 읽기는 나와 다른 나, 타인 너머의 타인, 그 있음직한 세계의 상상이다. 이 책에서는 해방 이후의 문화사를 다루면서 청년들이 무엇을 읽고 어떻게 생각했는지 살펴보았다. 이 세계 속에서 주목한 청년은 모두 4 명이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국가가 무엇이고 국민이 누구인지 생각했던 '전후세대'의 청년, 1960년대 4•19혁명과 5•16쿠데타를 경험한 한글세대 대학생, 그리고 해방 이후의 삶 속에서 차별과 배제를 겪어낸 ‘여성들’, 마지막으로 가난한 삶 속에서 소외를 경험했던 노동하는 '소년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국가와 언어, 성별과 노동의 한복판에서 벌거벗은 자들이었다. 그럼에도 그 중심에서 살고 싶었던 삶을 꿈꾸면서 책을 붙잡았다(p. 236). 그럼에도 이들이 마주한 막다른 골목은 우리 현대사의 아물지 않은 흔적이다. 해방 이후 어느 국가를 선택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 대해 "국가를 선택하지 않는 편이 낫겠습니다"라고 응답했던 (명)준, 그리고 4•19혁명 이후 "가만히 있어라"라는 명령이 야기한 삶의 파괴를 증언하고 있는 정우, 번역되지 못하는 말들 속에서 제 자리를 얻지 못했던 혜린,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인간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되물었던 태일까지, 이들은 국가가 무엇이고, 인간은 어떠해야 하며, 여성은 어떻게 다른 언어를 품고 있는지, 그리고 인간이 누구인지 물었다. 우리는 이들이 던진 질문에 답해야 한다. 준은 한국전쟁을 거치며 국가가 성립되는 과정을 경험한 전후세대 청년이다. 국가는 그 청년에게 네가 누구인지 물었고, 이곳은 너의 국가가 아니라고 얘기했다. 네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라는 답변이었다. 그가 듣고 싶었던 것은 네가 있을 곳은 여기라고 말해주는 것, 그것은 존재에 대한 긍정이었다. 그리고 말과 말이 서로 들려지고 말해지는 광장, 그런 국가를 기대했다. 그러나 준에게 남은 것은 삶이 지워진 생명뿐이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삶이 지워진 생명이 아니라, 그런 삶의 형식을 거부하는 것, 그래서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고민한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삶 사이에서 갈등했다. 4•19와 5•16을 거치면서 청년들은 "무관심 하라", 다시 말해 "가만히 있어라"라는 말을 들었다. 가만히 있다는 것은, 제 목소리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 이는 그간의 인간관계를 무참히 지워내는 일이다. 친구 수영은 이를 기꺼이 선택했다. 그래서 감정을 지워내고, 윤리적 판단을 거부하며 생존만을 목표로 삼았다. 정우가 그 얼굴에서 본 것은 다름 아닌 ‘괴물’의 모습이었다. 정우는 그것이 인간의 삶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생각한 정우는 결국 살아남지 못했다. 그(p. 237)의 죽음은 한 세계의 몰락을 말하는 것이어야 했다. 소설은 그 이후에 쓰이는 인간의 이야기였으면 했다. 혜린은 두 개의 언어를 가진 여성 번역가이다. 그가 번역한다는 것은 다른 언어와 개념이 이입되는 것, 이를테면 《데미안》이 번역된다는 것은 이미 있는 세계에 앞선 '실존'에 대한 이야기이며 《생의 한가운데》가 번역된다는 것은 여성의 목소리가 기록될 수 있는 가능성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1960년대엔 번역해야 하는 세계는 있는데 번역을 기다리는 세계는 없었다. 그래서 번역이 되지 못한 채 두 개의 언어가 나란히 같이 쓰이기도 했다. 혜린은 마지막 순간에 번역해야 하는 세계 속에서 나오지 못했다. 그가 무엇보다 원했던 것은 번역될 수 있는 언어였고 세상이었다. 번역된다는 것은 알을 깨고 이 세상 속에 태어나는 일일지도 몰랐다. 태일은 국가와 법을 믿었다. 그래서 법이 '우리'에게도 있다고 생각했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거라는 기대, 노력하는 자에게 내일이 있다는 믿음,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상식. 그러나 이 당연한 상식과 믿음은 어디에서도 통하지 않았다. 태일은 '이름'이 불리는 인간으로 살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어디에서도 불리지 않았다. 그가 "나를 아는 모든 나"에게 외치고 있는 것은 우리 모두가 수많은 '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었고, 기억해 달라는 외침이었다. '우리'도 인간이라고 외친 그의 절규 이후 사람들은 '우리'가 누구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되묻기 시작했다. 이 청년들이 멈춘 그 지점에서 새로운 길이 시작되었다. 독고준이 몰래 읽고 버젓이 읽으며 내면의 망명국가로 잠수하는 순간, 정우가 가만히 있어라, 라는 말을 끝내 어긴 채 구구절절한 사연을 한 권의 일기로 남긴 순간, 그리고 혜린이 번역되지 않는 언어를 붙들고 번역(p. 238)했으나 그 언어가 이 현실에 없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마지막으로 태일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광장에 자기 목소리가 들리게 하는 것이라고 깨닫는 순간, 그 순간들이 모여 바로 대한민국의 역사가 되었다. 그 결과, 홀로 남았던 명준의 광장은 수많은 자들이 같이 손잡는 광장으로, 정우가 되물었던 양심 있는 소설에 대한 물음은 '문학'으로, 혜린이 멈춰 섰던 번역할 수 없는 세계는 읽혀지는 세계로, 태일의 외침은 민중으로서의 인간을 발견하는 광장으로 이어졌다. 준, 정우, 혜린, 태일은 다른 세계를 읽어낸 리더reader 였다. 이들은 국가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읽었고, 언어를 가진 자들이 무엇을 써야 하는지 엿보았으며, 성차가 삶의 질곡이라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리고 인간을 소외시키지 않는 노동을 문자와 문자의 행간 사이에서 상상했다. 세계의 심연을 엿보았기에 그 중심을 상상할 수 있었다. 이들은 끝까지 자기 신념과 존재를 버리지 않았다. 있어야 할 세계를 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가치를 저버리지 않았고, 공동체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미래의 삶을 반납하지 않았다. 이들은 읽은 것은 나의 삶이 아니라 나와 너의 삶이었고, 인간이 살아갈 만한 세상에 대한 이해였다. 그리고 타인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일이었다. 우리 역사는 그들이 상상한 만큼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이들을 리더leader라고 불러도 좋으리라. 이 청년들은 제몫을 가지지 못한 벌거 벗은 자들이었으나, 그럼에도 국가와 난민, 혁명과 언어, 여성과 번역 (반역), 노동과 인간이 무엇인지 상상했고, 그 상상이 지금 현재의 삶이 되었다. 이들은 누구보다 더 강렬하게 희망을 품었고, 또 그만큼 정직하게 절망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 그것은 포기하지 않은 자들의 신념이기도 했다. 해방 이후의 역사 속에서 같이 살아갈 세상을 읽어낸 이들. 그렇게 책 너머의 세상을 상상하며 읽어낸 이들, 우리 역(p. 239)사는 이들이 읽어낸 만큼의 역사이다. 오래된 미래를 상상할 수 있었던 그들, 그들은 언제나 리더이다(p. 240).
-
【양대식 목사 칼럼35】 GMS 이사장 임기를 마치고
GMS 이사장 임기를 마치고 부족한 종이 본 교단 총회세계선교회 GMS 이사장으로 섬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였습니다. 어제(2026년 9월 3일) GMS 이사장직의 2년 임기를 잘 마쳤습니다. 2년의 임기 동안 큰 사고나 어려움이 없이 잘 마치고, GMS 선교단체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GMS 본부 임원과 직원들과 함께 겸손히 섬겼습니다. GMS 이사장 임기를 마치고 곧 GMS 명예 이사장으로(임기 2년, 9월 3일) 추대받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립니다. 명예 이사장의 분수에 맞게 성실히 최선을 다해 섬기고자 합니다. 이사장 임기 동안 본 교회인 진주성남교회의 온 성도들의 기도와 여러 가지로 GMS를 위해 헌신했고, 주일 예배나 공예배 때마다 대표 기도할 때, GMS 본부와 GMS 파송 선교사와 파송 국가를 위해 기도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선교에 앞장서는 진주성남교회 당회원을 중심으로 모든 성도들께 감사드립니다. GMS 소속 전 세계 파송 선교사 약 2,600여 명의 선교를 위해 헌신하는 분들과 파송하여 헌신하는 교회와 담임목사님들 그리고 GMS 이사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이사장직을 마치며 시원하면서 서운함도 있으나,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남은 목회에 전념하며 본 교단 GMS 선교단체를 위해 기도하고 겸손히 섬기고 싶습니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도 선교에 동참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GMS 이사장 2년 임기 동안 저를 위해 기도해 주고, 격려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임마누엘! 샬롬!
-
【서기원 목사 선교15】 북방선교의 훈련장
북방선교의 훈련장 백령도에 토마스 선교사 기념관이 준공되어 개관예배를 드렸다. 토마스 선교사는 한국에서 순교한 최초 순교자다. 그러나 지금까지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역사는 일본과 북한에 의해서 왜곡되었다. 이것을 받아들인 한국의 일부 역사학자들에 의해 한국교회에 있었던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 역사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안타까운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셔서 기도하고 연구하고 힘을 모아서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 110회 총회에서 설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노력한 가운데 이렇게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동안 여러 면에서 헌신하고 노력하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이제는 이 기념관을 잘 사용해야 한다. 이 기념관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첫째는 한국교회가 식어 버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한국 교회가 지금까지 이렇게 은혜를 누리고 있는 것은 토마스 선교사 및 다른 많은 순교자들의 헌신의 피가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순교자들의 피와 눈물의 헌신과 희생을 그동안 우리는 잊고 살았다. 이제는 한국교회의 모든 성도가 순교의 피와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 기념관이 이러한 역할을 감당하는 곳이 되기를 기원한다. 둘째는 선교의 불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 한국교회는 선교사로부터 받은 복음을 세계 만민에게 전해야 한다. 해외에 나가서 전하는 것만 아니라. 국내에 들어온 300만의 열방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특별히 백령도에 세워진 토마스 선교사 기념관은 북방선교에 집중하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 북방은 지역적으로 북한 중국 몽골 러시아 중앙 아시아를 가리킨다. 세계의 많은 지역 중에서 복음을 전하는 데 어려운 지역이다. 토마스 선교사도 북한에서 순교를 당했고 백령도가 위치한 곳도 북한과 가장 최근거리에 위치한 지역으로 북방에 대한 선교교육과 훈련을 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이곳에서 눈에 보이는 북한 지역을 바라보면서 기도하면 북방을 향한 선교의 열정이 타오르라고 생각한다. 성도들도 이곳을 방문하면 배로 4시간의 선상에서 바다를 보면 기도할 수 있고 백령도에 와서 많은 경관을 보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기념관에서 교육과 훈련을 받으면 북방선교의 훌륭한 교육장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기념관이 개관된 것은 새로운 출발이다. 이곳을 한국교회가 사랑하며 잘 사용할 때에 잃어버린 은혜에 대한 감사와 열정을 다시 회복할 수 있고 이것을 통해서 교회가 부흥하고 나라와 민족이 새로워지고 복음통일을 이루고, 세계선교의 부흥이 시작되리라고 믿는다. “각 지방, 각 읍, 각 집에서 대대로 이 두 날을 기념하여 지키되 이 부림절을 유다인 중에서 폐하지 않게 하고 그들의 후손들이 계속해서 기념하게 하였더라” (에 9:28)
-
-
111회 총회 경선 결과를 보며 드는 생각
- 금번 111회 총회에 전 총대가 투표한 선거는 3개의 직책이었다. 목사부총회장, 장로부총회장, 총무. 공교롭게 모두 2번이었고, 주관적으로 볼 때 경선 상대 보다 부드럽고 연약한 측면이 있었다. 그런데 경선에서 이겼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가? 노자의 스승이었던 상용이 죽음을 앞두고 노자에게 입을 벌려 보여주며 물었다. "내 이빨이 남아 있느냐, 혀가 남아 있느냐?" 노자는 "이빨은 다 빠지고 없지만, 혀는 남아 있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길 수 있다. 성경의 가르침도 그러하다. 약하다고 할 때 강하다!
-
- 오피니언
- 칼럼
-
111회 총회 경선 결과를 보며 드는 생각
-
-
【서기원 목사 선교16】 정년 연장
- 정년 연장 총회를 앞두고 여러 안건 중에서 올해도 중요한 안건은 여성 안수와 정년연장일 전망이다. 이 문제는 매 총회마다 상정되었는데 거듭되는 논쟁만 되풀이하고 매듭을 짓지 못하고 있다. 총회 때 마다 이 문제가 상정이 되고 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번 총회 때에도 또 반복되는 악순환을 반복할 것인가? 이번 총회에서는 적어도 한 문제만이라고 매듭을 지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여성 안수 문제는 교계의 바램 뿐 아니라 교단의 신학적 정체성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다양한 논의와 숙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총회에서는 정년 연장에 대한 문제를 매듭지어 주기를 소원한다. 정년 연장의 문제는 현재 사회에서도 논의되고 있고 여러 교단에서도 논의가 되고 있다. 그 이유는 수명의 연장이 큰 원인이다. 은퇴 이후에도 사회의 여러 부분에서 또는 목회 부분에서도 계속 감당할 만한 여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년을 연장하면 대두되는 문제도 있다. 사역을 계승해야 하는 자들이 누적이 되기 때문에 다음세대들을 준비하는 부분에서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부분을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정년 연장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정년 연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중재안은 담임목회 정년과 사역 정년을 구분하는 것이다. 담임목사의 정년은 교단에서 정한 법대로 70세에 정년을 하고 은퇴 이후에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서 사역을 연장하는 방법이다. 가칭” 총회 시니어 선교목회자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수십 년간 목회한 은퇴목사들의 경험을 살리는 제도이다. 총회세계선교회(GMS), 총회교회자립개발원, 노회와 연계하여 은퇴목회자들을 국내외 선교현장에 연결하는 제도이다. 특별히 한국은 현재 200 여나라의 280만명의 이주민들이 거주하는 다문화사회가 되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가운데 한국에 이주민들을 보내신 것이다. 앞으로 더욱더 많은 이주민들이 들어와서 거주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한국을 선교하는 나라로 세워 가시려는 섭리이다. 이미 한국교회는 해외에 수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했다. 해외에 선교사를 보내는 것과 함께 한국에 들어온 이주민들을 함께 선교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은퇴목사 1 명과 이주민교회 1곳과 지역교회 1곳을 연결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해외 은퇴한 선교사 1명도 연결할 수 있다. 이 제도를 논의해서 잘 준비하면 정년 연장과 이주민선교 해외선교와 지역교회의 부흥을 이룩할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시 92:14
-
- 오피니언
- 기고
-
【서기원 목사 선교16】 정년 연장
-
-
【북토크445】 한나 아렌트의 사상이 궁금하다
- 오늘날 우리는 어둠이 전 세계를 삼키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한나 아렌트는 아무리 어두운 시대라 하더라도 불빛을 찾을 희망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 불빛은 이론이나 개념보다는 개인들의 삶과 일에서 등장하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바로 그러한 불빛을 제공하며 우리가 정치와 당혹스러운 문제들에 비판적 관점을 갖출 수 있게 돕는다. 한나 아렌트는 현대의 삶에 나타나는 위험한 경향들을 빈틈없이 비판했으며, 정치의 품위를 회복하기 위한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한나 아렌트가 읽히고 있는 그리고 한나 아렌트를 읽어야 할 이유다. 『한나 아렌트』는 따듯한 시선과 감동적인 서술로 한나 아렌트의 삶과 작품을 소개한다.-예스24. 한나 아렌트의 사상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면도 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영향력을 끼치고 있기에 마음 먹고 종종 한나 아렌트의 책을 읽고자 한다. 귄터 안더스가 도피하고 며칠 후, 그러니까 2월 27일에 제국 의회 의사당에 불이 났다. 히틀러는 이 방화 사건을 긴급조치를 내리고 기본권을 무효화시킬 구실로 삼았다. 이제 자의적인 체포는 다반사가 되었고, 정적에 대한 테러도 늘어났다. 베를린과 독일의 많은 유대인들은 그제야 국가사회주의자들의 반유대주의를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한나가 보기에 그것은 벌써 몇 년 전부터 예고되었던 상황을 어처구니없게 오해한 것이었다. 그녀는 회상한다. “나치가 우리의 적임을 알게 된 건 히틀러의 정권 장악 때문이 아니예요! 정신이 모자란 사람들을 뺀 모든 사람에게 나치가 우리의 적이라는 것은 적어도 4년 사이에 너무도 자명한 일이 돼 있었어요.” 한나는 예를 들어 여전히 유대인들이 처한 위험을 믿고 싶지 않은 친구 안네 멘델스존보다 상황을 훨씬 더 현실적으로 평가했다. 한나가 보기에 나치의 목적은 분명했다. 마찬가지로 그녀 의 태도 역시 명명백백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공격을 당한다면, 유대인으로서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 그것은 나치의 반유대주의를 개인적인 비극으로 받아들이는 유대인들을 향해 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정치적인 행동을 호소하는 일이었다(p. 79). 한나는 쉽게 절망하는 여성은 아니었다.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그녀에게는 ‘살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그러나 '너무도 나쁜' 세계 상황을 볼 때 그녀 역시 어떤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12년 후 그녀는 쿠르트 블루멘펜트에게 귀르 수용소에서 자살을 하면 어떨까 곰곰이 생각했지만, 결국 "웃긴다"는 대답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개인적인 일과 정치적인 일을 구별할 줄 안다고 자부하는 한나에게 포로 수용소에서의 자살이란 대단히 무기력한, 웃기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그녀는 귀르 수용소에서의 체험에 대해 훗날 이렇게 말한다. “귀르 수용소에서 [••] 자살에 관한 소리를 들은 것은 단 한번뿐이었다. 그것도 집단행동을 위한 제안으로서의 자살이었다. 프랑스인들이 당황하도록 일종의 항의 행동을 제안한 것이다. 몇 사람이 우리가 ‘뒈지려고’ 이리 실려왔냐고 말하자 갑자기 모두들 분위기가 바뀌며 열정적인 삶의 용기가 터져나왔다. 전체의 불행을 여전히 개인적인 불운으로 여기며 자신의 생명을 개인적, 개별적으로 끝맺음했던 사람은 비정상적이고 비사회적인 사람이며 사태의 일반적인 결말에 관심을 상실한 것이 틀림없다는 견해가 일반적이었다.” 귀르 수용소의 여러 생존자들은 수용소의 여자들 사이에 반항적(p. 100)인 자기 주장의 의지가 팽배했음을 증언한다. 그들은 화려하게 화장을 하고 제일 좋은 옷을 입고 마치 가로수길을 산책하듯이 수용소 지대를 산책하곤 했다(p. 101). 그녀는 미국에 머문 지는 불과 몇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자신의 주장을 펼칠 토론의 장을 발견했다. 그녀가 독일어 잡지 『아우프바우』에 공개서한을 보내자 편집장 만 프레트 게오르게는 그녀가 피력하는 논거의 힘에 깊은 감명을 받고, 그녀에게 문예란의 자유기고가로서 활동하기를 제안했다. 『아우프바우』에 1941년 11월부터 격주로 '이것은 당신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라는 제목으로 한나의 칼럼이 실렸다. 제목만큼이나 내용도 독자의 마음을 흔들어 깨웠다. 하인리히는 그녀의 정열적이고 가차 없을 정도로 객관적인 이야기 방식을 "도끼 같다"고 말한다(p. 112). 그녀는 첫 기고에서 이렇게 쓴다. “히틀러에 대항한 유대 민족의 현실적인 전쟁만이 유대인 전쟁에 관한 뜬소문에 종말을 준비해 줄 것이다. 그것은 가치 있는 종말이다. 자유란 선물이 아니다. [...] 자유란 괴로움을 견뎌낸 데 대한 보상이 아니다.” 한나는 동유럽에서 나치의 유대인 박해와 팔레스타인에서 영국인들의 변화된 정책을 배경에 두고 이 글을 썼다. 점점 더 많은 유대인들이 유럽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고, 아랍인들에게서 유대인의 우세에 대한 저항이 점점 더 커지자 영국인들은 이주민의 수를 제한하기로 결정했다. 이주민들을 수송하는 배들은 팔레스타인의 항구에서 거부되었다. 수송선 '스트루마'의 침몰과 같은 재앙이 발생했다. 스트루마호는 오랫동안의 외교적인 줄다리기 끝에 다시 바다 로 끌려가 운명에 맡겨졌던 것이다. 과도하게 많은 사람과 짐을 실은 데다 기동능력이 없는 그 수송선은 예상대로 가라앉았고, 여기서 구출된 생존자는 단 두 사람이었다. 다른 760명의 승객들은 모두 물에 빠져 죽었는데, 그들 중 절반이 여자와 아이들이었다. 이러한 정책의 결과로 지하운동단체 '이르군단'과 같은 전투적인 유대인 집단들이 생겨나 영국의 시설물과 사람들을 공격했다. 한나 아렌트는 메나 베긴 휘하의 이런 테러리스트들을 "폭약 속물" 이라고 부르며 비판했다. 그들은 친구와 적이라는 완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이분법에 매달리며 무책임하게 행동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유대인들의 위험한 경향, 즉 반유대주의를 '자연스런 현상'으로 간주하고, 선택된 민족으로서 적대적인 세계에 에워싸여 있(p. 113)다는 잘못된 믿음에 빠지는 경향에 대해 경고한다. 마찬가지로 독자적인 유대인 국가가 반유대주의를 피해 도망갈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되리라는 시온주의의 기대에 대해서도 경고한다. 그녀는 칼럼에서 팔레스타인이 '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랍인들로 에워싸여 있 고, 그들에게 협조를 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거듭 상기시킨다. 독자적인 유대인 국가는 이러한 양해를 불가능하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유대인 국가 내에서 비유대인들은 언제나 소수로서의 권리밖에 갖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유대인 국가는 영국이나 미국과 같은 강대국의 손에 자신을 내맡기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약속의 땅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다시 말해 스파르타와 같은 '전사족 1'이 될 것이며, 적대 적인 아랍인들로 에워싸인 상황에서는 군사적 방어가 최우선이기 때문에 모든 경제적 발전과 문화적 진보는 질식되고 말 것이다(p. 114).
-
- 오피니언
- 책소개
-
【북토크445】 한나 아렌트의 사상이 궁금하다
-
-
【북토크444】 책을 통해 나와 남을 연결한다
- 처음보는 특이한 형식의 책으로 흥미로웠다.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과거의 사람들과 연결된다. 그런면에서 책은 인간이 만든 참으로 특별한 것이다. ‘독서문화’는 시대를 읽어내는 데 유용한 ‘탐침’이 될 수 있다. 당대에 어떤 책이 어떻게 읽혔는지 알면, 지층의 단면을 보고 지형의 변화를 짚어내듯 시대의 풍경이 손에 잡힌다. 이 책은 해방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청년’들의 ‘책 읽기’에 주목한 독서문화사다. 해방 이후 누구든지 ‘제몫’이 없는 ‘청년’으로 살아가야 했다. 문학이란 키워드로 한국 근현대사의 이면을 파헤치는 데 골몰한 저자는 이 중 문학과 현실에서 4인을, 시대를 읽는 ‘문화적 탐침’으로 주목했다. 이념 과잉의 시대를 견뎌야 했던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 ‘준’, 혁명의 뒤끝을 앓아야 했던 김승옥 소설 『환상수첩』의 ‘정우’ 그리고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란 스테디셀러를 쓴 전혜린과 인간답게 살고 싶었지만 결국 스러진 전태일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시대와 불화하며 책을 통해 치열하게 더 나은 ‘삶’을 꿈꾸었다는 점에서 각각의 시대를 상징한다. 이들은 ‘국가’가 무엇인지 고뇌했고, ‘혁명’에 좌절했으며, ‘여성’과 ‘노동’이 무엇인지 물었다. 이들이 읽고 던진 물음으로 우리 삶의 지도가 단단해졌다. 우리 역사는 그 청년들에게 빚지고 있다. 우리 역사는 이들이 읽어낸 만큼의 역사다. 이 책은 바로 그렇게 책을 읽으면서 더 나은 세상을 상상했던 청년들의 이야기를 탄탄하고 명징한 문장으로 치밀하게 담아냈다.-예스24 말랑말랑하되 생생한 1960년대 젊은 작가들은 그 전과 분명히 달랐다. 기성 작가들은 "김승옥이라는 벼락에 맞아서 넋이 빠진 상태"였고 "이제 우리들 시대는 갔다"고 했다. 그런 거였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문장이 달랐고 감성이 달랐다. 이들은 자신들의 느낌을 잘 드러내는 표현이 좋다고 배운 세대였다. 입말의 말랑말랑함이 고스란히 배어나오는 단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태백산맥》에 이런 일화가 있다. 허명길이라는 학생이 배가 고파 진달래꽃을 많이 따먹어서 밤중에 배가 깨지게 아파 호되게 고생했다고 하자.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런 생생한 일을 글로 쓰지 않았다. 배가 고파서 진달래꽃을 따먹고 설사까지 했던 일이 자랑스럽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느낌을 구태여 '주욱주욱 쏟아진 물은 진달래물똥'이라는 식으로, 친구에게 말하는 것처럼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 경험을 생생한 표현으로 쓰는 것이 칭찬받는 시대가 되었다. 이는 평론가 김현이 책 읽기의 달달함을 겨울밤에 가슴에 베개를 괴고 해남 물고구마를 눌어붙도록 쪄가지고 먹어대며 이형식에게로, 허숭에서 임꺽정에게로 그리고 오필리아에서 파우스트로 정신없이 뛰어 다닌다고 쓰는 것과 같은 그런 감각이다. ‘주욱주욱’ 쏟아진 진달래물의 고통이나 '해남 물고구마를 눌어붙도록 찐' 사정은 당사자가 아니면 모르는 일이지만 그 개인적 감각을 언어로 전달하는 것은 라디오를 듣다가 텔레비전을 보는 것만큼이나 생생한 것이었다. 그래서 "의용군에 끌려간 것을 한하였다" 라거나 "여기까지 끌려 오는 사이 맥진이 되어" "지난날이 호기스러웠던 것만큼 말로가 애상적이다"라는 식의 표현을 쓰지 않았다. 그것은 남들도 다(p. 89) 하는 표현이 아닌가. 또 자신이 느낀 감정이 한이나 애상이라는 표현으로 쓰는 게 맞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감정을 관습적으로 표현하는 대신 어떤 상황에서 그 감정이 어떻게 느껴졌는지를 세세하게 나누어 서술했다. 이를테면, 윤희중이라는 어떤 남자가 있다고 치자, 이 남자가 무진이라는 고향에 내려가는데 그간의 여러 사정으로 무진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 마음은 고향에 대한 묘사에서도 드러난다. "밤 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다" 고 말이다. 안개가 '적군' 같다는 묘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적군과 아군의 대립이 지닌 무서움을 그대로 경험해본 사람일 것이다. 그 적군을 어두컴컴한 새벽에 발견했다면 그 압박감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그런데 고향을 두고 이렇게 묘사하다니, 도대체 고향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 궁금해지는 게 당연하다. 한글세대 소설가들은 주관적 느낌과 기억을 객관적인 이미지 재현에 그대로 투사했다. ‘감수성의 혁명’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자신만의 감정과 감각을 그대로 옮겨낼 수 있었던 사정을 반영한 말이다. 이 간질간질하고 말랑말랑한 청년들의 언어 속에서 새로운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 빛은 자기 언어를 가진 자들의 몫이었고, 자기 언어를 부릴 수 있는 신세대의 권리였다. 1960년대 청년들은 자신들 만의 언어로 매체를 만들고 문학판을 재편하고자 했다. 그래서 '새로운 창작'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안이한 창작 태도와 족벌주의, 그리고 더러는 관권에 대한 하염없는 동경 등의 순수치 못한 기풍에 젖어 있는 이유와 관련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연이어 문학이 어떻게 현실과 관계되어야 하는지 물었다. 이들은 '문학'이 무엇인지 재차 물었다. 그것은 문학 뒤에 숨지 않겠다는 말인 것처럼 보였다(p. 90). 쌍가락지, 올빼미, 바꿔치기 등등 자유당 시절의 유물들이 되살아나고 빈대표 유령표 기표 감시 따위의 새로운 전통을 착착 기록하면서 6•8공명선거는 전무후무한 막걸리 선심 속에 비틀비틀 막을 내렸다. 그리고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처음엔 그것이 축하시위인지 규탄시위인지 분간하기 썩 힘들었다. 이번 선거가 공명선거였다는 당국의 발표가 있은 후의 일이었고 학생들의 주장엔 옳은 데도 없지 않다는 평가가 따랐으니까. 어쨌든 축하인지 규탄인지 모를 그 학생들의 시위는 쉬 끝나지 않을 기세였다. 학생들이 거리로 나간 채 학교문은 닫혔고 거리는 연일 최루가스와 경찰봉이 휩쓸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청년들도 세계가 달라져야 한다고 외쳤다. 1968년 프랑스에서 시작된 학생들의 시위가 결국 유럽 전역을 휩쓸며 68혁명으로 불렸지만 "극좌학생의 유혈데모"라고 보도됐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6월 8일 6·8부정선거가 자행되었다. 4•19 이후 10년도 안 되었지만 또다시 발생한 부정선거로 저 멀리 베를린에서 공부하는 학생들만 붙잡혀 왔다. 이름하여 동백림사건. 이 명칭은 정직하지 않았다. '동베를린 학생 납치사건'이라고 해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을 텐데 ‘동백림사건’이라고 하니 살기 바쁜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 사건뿐이랴. 4•19와 6•3한일회담, 6•8부정선거에 이어 동백림사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역사가 말의 난장이었다(p. 91). 혜린은 죽기 전 편지 한 장을 남겼다. "장 아제베도에게"로 시작하는 편지다. '장 아제베도'를 향해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너를 좋아해. 너를 단념하는 것보다도 죽음을 택하겠어"라고 쓰면서 "내가 원소로 환원하지 않도록 도와줘"라고 간절히 말한다. '장 아제베도'는 프랑수아 모리악의 소설 《테레즈 데케루》에 등장하는 이름이다. 혜린(p. 168)은 자살하기 직전에 《테레즈 데케루》를 다시 인용한다. 테레즈는 답답한 가정을 벗어나서 열정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주인공이었다. 그가 이 작품을 죽기 직전에 붙잡았다는 것은 이 세계에 번역되지 않은 그 무엇을 이 책에서 찾고 있었다는 뜻이다. 예전에 그가 뮌헨에 처음 도착했을 때처럼 말이다. 그 속에서 자유로운 영혼의 장 아제베도를 다시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장 아제베도'는 번역되지 못한 자신의 이야기와 관련되어 있다. 그는 이런 글을 쓰기도 했다. 〈덫에 걸린 세대〉라는 글에서 "원을 긋고 달리면서 너는 빠져 나갈 구멍을 찾느냐? 알겠느냐? 네가 달리는 것은 헛일이라는 것을". 혜린은 사랑하고 '사랑' 받으며 살고 싶다고 했지만 혜린이 발견한 것은 빠져 나갈 수 없는 '쥐덫'뿐이라고 생각했다. 1970년대까지 독자들은 혜린을 잊지 않았다. 혜린이 남긴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1970년대까지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라는 말 자체가 역설적이었다. 번역되지 못한 말, 말해지지 못한 말이 있다는 사실이 그 어떤 메시지 보다 강력했다. 각자의 내면 안에 번역되지 못한 언어가 있다는 짐작은 수많은 청년들의 마음을 뜨겁게 했다. 혜린은 스스로의 삶을 번역 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남겼다. 독자들은 혜린이 하고자 한 말에 응답했다. 아마도 혜린이 꿈꾸었던 것은 이런 것이었을지도 모른다(p. 169). 더 리더 책을 읽는 것은 '나와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타인'을 통해 나를 만나는 일인 동시에 '타인'을 경유해서 내가 속한 세계를 만나는 일이다. 그러므로 책 읽기는 나와 다른 나, 타인 너머의 타인, 그 있음직한 세계의 상상이다. 이 책에서는 해방 이후의 문화사를 다루면서 청년들이 무엇을 읽고 어떻게 생각했는지 살펴보았다. 이 세계 속에서 주목한 청년은 모두 4 명이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국가가 무엇이고 국민이 누구인지 생각했던 '전후세대'의 청년, 1960년대 4•19혁명과 5•16쿠데타를 경험한 한글세대 대학생, 그리고 해방 이후의 삶 속에서 차별과 배제를 겪어낸 ‘여성들’, 마지막으로 가난한 삶 속에서 소외를 경험했던 노동하는 '소년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국가와 언어, 성별과 노동의 한복판에서 벌거벗은 자들이었다. 그럼에도 그 중심에서 살고 싶었던 삶을 꿈꾸면서 책을 붙잡았다(p. 236). 그럼에도 이들이 마주한 막다른 골목은 우리 현대사의 아물지 않은 흔적이다. 해방 이후 어느 국가를 선택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 대해 "국가를 선택하지 않는 편이 낫겠습니다"라고 응답했던 (명)준, 그리고 4•19혁명 이후 "가만히 있어라"라는 명령이 야기한 삶의 파괴를 증언하고 있는 정우, 번역되지 못하는 말들 속에서 제 자리를 얻지 못했던 혜린,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인간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되물었던 태일까지, 이들은 국가가 무엇이고, 인간은 어떠해야 하며, 여성은 어떻게 다른 언어를 품고 있는지, 그리고 인간이 누구인지 물었다. 우리는 이들이 던진 질문에 답해야 한다. 준은 한국전쟁을 거치며 국가가 성립되는 과정을 경험한 전후세대 청년이다. 국가는 그 청년에게 네가 누구인지 물었고, 이곳은 너의 국가가 아니라고 얘기했다. 네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라는 답변이었다. 그가 듣고 싶었던 것은 네가 있을 곳은 여기라고 말해주는 것, 그것은 존재에 대한 긍정이었다. 그리고 말과 말이 서로 들려지고 말해지는 광장, 그런 국가를 기대했다. 그러나 준에게 남은 것은 삶이 지워진 생명뿐이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삶이 지워진 생명이 아니라, 그런 삶의 형식을 거부하는 것, 그래서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고민한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삶 사이에서 갈등했다. 4•19와 5•16을 거치면서 청년들은 "무관심 하라", 다시 말해 "가만히 있어라"라는 말을 들었다. 가만히 있다는 것은, 제 목소리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 이는 그간의 인간관계를 무참히 지워내는 일이다. 친구 수영은 이를 기꺼이 선택했다. 그래서 감정을 지워내고, 윤리적 판단을 거부하며 생존만을 목표로 삼았다. 정우가 그 얼굴에서 본 것은 다름 아닌 ‘괴물’의 모습이었다. 정우는 그것이 인간의 삶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생각한 정우는 결국 살아남지 못했다. 그(p. 237)의 죽음은 한 세계의 몰락을 말하는 것이어야 했다. 소설은 그 이후에 쓰이는 인간의 이야기였으면 했다. 혜린은 두 개의 언어를 가진 여성 번역가이다. 그가 번역한다는 것은 다른 언어와 개념이 이입되는 것, 이를테면 《데미안》이 번역된다는 것은 이미 있는 세계에 앞선 '실존'에 대한 이야기이며 《생의 한가운데》가 번역된다는 것은 여성의 목소리가 기록될 수 있는 가능성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1960년대엔 번역해야 하는 세계는 있는데 번역을 기다리는 세계는 없었다. 그래서 번역이 되지 못한 채 두 개의 언어가 나란히 같이 쓰이기도 했다. 혜린은 마지막 순간에 번역해야 하는 세계 속에서 나오지 못했다. 그가 무엇보다 원했던 것은 번역될 수 있는 언어였고 세상이었다. 번역된다는 것은 알을 깨고 이 세상 속에 태어나는 일일지도 몰랐다. 태일은 국가와 법을 믿었다. 그래서 법이 '우리'에게도 있다고 생각했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거라는 기대, 노력하는 자에게 내일이 있다는 믿음,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상식. 그러나 이 당연한 상식과 믿음은 어디에서도 통하지 않았다. 태일은 '이름'이 불리는 인간으로 살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어디에서도 불리지 않았다. 그가 "나를 아는 모든 나"에게 외치고 있는 것은 우리 모두가 수많은 '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었고, 기억해 달라는 외침이었다. '우리'도 인간이라고 외친 그의 절규 이후 사람들은 '우리'가 누구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되묻기 시작했다. 이 청년들이 멈춘 그 지점에서 새로운 길이 시작되었다. 독고준이 몰래 읽고 버젓이 읽으며 내면의 망명국가로 잠수하는 순간, 정우가 가만히 있어라, 라는 말을 끝내 어긴 채 구구절절한 사연을 한 권의 일기로 남긴 순간, 그리고 혜린이 번역되지 않는 언어를 붙들고 번역(p. 238)했으나 그 언어가 이 현실에 없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마지막으로 태일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광장에 자기 목소리가 들리게 하는 것이라고 깨닫는 순간, 그 순간들이 모여 바로 대한민국의 역사가 되었다. 그 결과, 홀로 남았던 명준의 광장은 수많은 자들이 같이 손잡는 광장으로, 정우가 되물었던 양심 있는 소설에 대한 물음은 '문학'으로, 혜린이 멈춰 섰던 번역할 수 없는 세계는 읽혀지는 세계로, 태일의 외침은 민중으로서의 인간을 발견하는 광장으로 이어졌다. 준, 정우, 혜린, 태일은 다른 세계를 읽어낸 리더reader 였다. 이들은 국가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읽었고, 언어를 가진 자들이 무엇을 써야 하는지 엿보았으며, 성차가 삶의 질곡이라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리고 인간을 소외시키지 않는 노동을 문자와 문자의 행간 사이에서 상상했다. 세계의 심연을 엿보았기에 그 중심을 상상할 수 있었다. 이들은 끝까지 자기 신념과 존재를 버리지 않았다. 있어야 할 세계를 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가치를 저버리지 않았고, 공동체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미래의 삶을 반납하지 않았다. 이들은 읽은 것은 나의 삶이 아니라 나와 너의 삶이었고, 인간이 살아갈 만한 세상에 대한 이해였다. 그리고 타인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일이었다. 우리 역사는 그들이 상상한 만큼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이들을 리더leader라고 불러도 좋으리라. 이 청년들은 제몫을 가지지 못한 벌거 벗은 자들이었으나, 그럼에도 국가와 난민, 혁명과 언어, 여성과 번역 (반역), 노동과 인간이 무엇인지 상상했고, 그 상상이 지금 현재의 삶이 되었다. 이들은 누구보다 더 강렬하게 희망을 품었고, 또 그만큼 정직하게 절망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 그것은 포기하지 않은 자들의 신념이기도 했다. 해방 이후의 역사 속에서 같이 살아갈 세상을 읽어낸 이들. 그렇게 책 너머의 세상을 상상하며 읽어낸 이들, 우리 역(p. 239)사는 이들이 읽어낸 만큼의 역사이다. 오래된 미래를 상상할 수 있었던 그들, 그들은 언제나 리더이다(p. 240).
-
- 오피니언
- 책소개
-
【북토크444】 책을 통해 나와 남을 연결한다
-
-
【양대식 목사 칼럼35】 GMS 이사장 임기를 마치고
- GMS 이사장 임기를 마치고 부족한 종이 본 교단 총회세계선교회 GMS 이사장으로 섬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였습니다. 어제(2026년 9월 3일) GMS 이사장직의 2년 임기를 잘 마쳤습니다. 2년의 임기 동안 큰 사고나 어려움이 없이 잘 마치고, GMS 선교단체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GMS 본부 임원과 직원들과 함께 겸손히 섬겼습니다. GMS 이사장 임기를 마치고 곧 GMS 명예 이사장으로(임기 2년, 9월 3일) 추대받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립니다. 명예 이사장의 분수에 맞게 성실히 최선을 다해 섬기고자 합니다. 이사장 임기 동안 본 교회인 진주성남교회의 온 성도들의 기도와 여러 가지로 GMS를 위해 헌신했고, 주일 예배나 공예배 때마다 대표 기도할 때, GMS 본부와 GMS 파송 선교사와 파송 국가를 위해 기도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선교에 앞장서는 진주성남교회 당회원을 중심으로 모든 성도들께 감사드립니다. GMS 소속 전 세계 파송 선교사 약 2,600여 명의 선교를 위해 헌신하는 분들과 파송하여 헌신하는 교회와 담임목사님들 그리고 GMS 이사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이사장직을 마치며 시원하면서 서운함도 있으나,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남은 목회에 전념하며 본 교단 GMS 선교단체를 위해 기도하고 겸손히 섬기고 싶습니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도 선교에 동참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GMS 이사장 2년 임기 동안 저를 위해 기도해 주고, 격려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임마누엘! 샬롬!
-
- 오피니언
- 기고
-
【양대식 목사 칼럼35】 GMS 이사장 임기를 마치고
-
-
【서기원 목사 선교15】 북방선교의 훈련장
- 북방선교의 훈련장 백령도에 토마스 선교사 기념관이 준공되어 개관예배를 드렸다. 토마스 선교사는 한국에서 순교한 최초 순교자다. 그러나 지금까지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역사는 일본과 북한에 의해서 왜곡되었다. 이것을 받아들인 한국의 일부 역사학자들에 의해 한국교회에 있었던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 역사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안타까운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셔서 기도하고 연구하고 힘을 모아서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 110회 총회에서 설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노력한 가운데 이렇게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동안 여러 면에서 헌신하고 노력하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이제는 이 기념관을 잘 사용해야 한다. 이 기념관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첫째는 한국교회가 식어 버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한국 교회가 지금까지 이렇게 은혜를 누리고 있는 것은 토마스 선교사 및 다른 많은 순교자들의 헌신의 피가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순교자들의 피와 눈물의 헌신과 희생을 그동안 우리는 잊고 살았다. 이제는 한국교회의 모든 성도가 순교의 피와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 기념관이 이러한 역할을 감당하는 곳이 되기를 기원한다. 둘째는 선교의 불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 한국교회는 선교사로부터 받은 복음을 세계 만민에게 전해야 한다. 해외에 나가서 전하는 것만 아니라. 국내에 들어온 300만의 열방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특별히 백령도에 세워진 토마스 선교사 기념관은 북방선교에 집중하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 북방은 지역적으로 북한 중국 몽골 러시아 중앙 아시아를 가리킨다. 세계의 많은 지역 중에서 복음을 전하는 데 어려운 지역이다. 토마스 선교사도 북한에서 순교를 당했고 백령도가 위치한 곳도 북한과 가장 최근거리에 위치한 지역으로 북방에 대한 선교교육과 훈련을 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이곳에서 눈에 보이는 북한 지역을 바라보면서 기도하면 북방을 향한 선교의 열정이 타오르라고 생각한다. 성도들도 이곳을 방문하면 배로 4시간의 선상에서 바다를 보면 기도할 수 있고 백령도에 와서 많은 경관을 보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기념관에서 교육과 훈련을 받으면 북방선교의 훌륭한 교육장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기념관이 개관된 것은 새로운 출발이다. 이곳을 한국교회가 사랑하며 잘 사용할 때에 잃어버린 은혜에 대한 감사와 열정을 다시 회복할 수 있고 이것을 통해서 교회가 부흥하고 나라와 민족이 새로워지고 복음통일을 이루고, 세계선교의 부흥이 시작되리라고 믿는다. “각 지방, 각 읍, 각 집에서 대대로 이 두 날을 기념하여 지키되 이 부림절을 유다인 중에서 폐하지 않게 하고 그들의 후손들이 계속해서 기념하게 하였더라” (에 9:28)
-
- 오피니언
- 기고
-
【서기원 목사 선교15】 북방선교의 훈련장
실시간 오피니언 기사
-
-
111회 총회 경선 결과를 보며 드는 생각
- 금번 111회 총회에 전 총대가 투표한 선거는 3개의 직책이었다. 목사부총회장, 장로부총회장, 총무. 공교롭게 모두 2번이었고, 주관적으로 볼 때 경선 상대 보다 부드럽고 연약한 측면이 있었다. 그런데 경선에서 이겼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가? 노자의 스승이었던 상용이 죽음을 앞두고 노자에게 입을 벌려 보여주며 물었다. "내 이빨이 남아 있느냐, 혀가 남아 있느냐?" 노자는 "이빨은 다 빠지고 없지만, 혀는 남아 있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길 수 있다. 성경의 가르침도 그러하다. 약하다고 할 때 강하다!
-
- 오피니언
- 칼럼
-
111회 총회 경선 결과를 보며 드는 생각
-
-
【서기원 목사 선교16】 정년 연장
- 정년 연장 총회를 앞두고 여러 안건 중에서 올해도 중요한 안건은 여성 안수와 정년연장일 전망이다. 이 문제는 매 총회마다 상정되었는데 거듭되는 논쟁만 되풀이하고 매듭을 짓지 못하고 있다. 총회 때 마다 이 문제가 상정이 되고 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번 총회 때에도 또 반복되는 악순환을 반복할 것인가? 이번 총회에서는 적어도 한 문제만이라고 매듭을 지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여성 안수 문제는 교계의 바램 뿐 아니라 교단의 신학적 정체성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다양한 논의와 숙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총회에서는 정년 연장에 대한 문제를 매듭지어 주기를 소원한다. 정년 연장의 문제는 현재 사회에서도 논의되고 있고 여러 교단에서도 논의가 되고 있다. 그 이유는 수명의 연장이 큰 원인이다. 은퇴 이후에도 사회의 여러 부분에서 또는 목회 부분에서도 계속 감당할 만한 여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년을 연장하면 대두되는 문제도 있다. 사역을 계승해야 하는 자들이 누적이 되기 때문에 다음세대들을 준비하는 부분에서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부분을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정년 연장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정년 연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중재안은 담임목회 정년과 사역 정년을 구분하는 것이다. 담임목사의 정년은 교단에서 정한 법대로 70세에 정년을 하고 은퇴 이후에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서 사역을 연장하는 방법이다. 가칭” 총회 시니어 선교목회자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수십 년간 목회한 은퇴목사들의 경험을 살리는 제도이다. 총회세계선교회(GMS), 총회교회자립개발원, 노회와 연계하여 은퇴목회자들을 국내외 선교현장에 연결하는 제도이다. 특별히 한국은 현재 200 여나라의 280만명의 이주민들이 거주하는 다문화사회가 되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가운데 한국에 이주민들을 보내신 것이다. 앞으로 더욱더 많은 이주민들이 들어와서 거주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한국을 선교하는 나라로 세워 가시려는 섭리이다. 이미 한국교회는 해외에 수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했다. 해외에 선교사를 보내는 것과 함께 한국에 들어온 이주민들을 함께 선교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은퇴목사 1 명과 이주민교회 1곳과 지역교회 1곳을 연결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해외 은퇴한 선교사 1명도 연결할 수 있다. 이 제도를 논의해서 잘 준비하면 정년 연장과 이주민선교 해외선교와 지역교회의 부흥을 이룩할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시 92:14
-
- 오피니언
- 기고
-
【서기원 목사 선교16】 정년 연장
-
-
【북토크445】 한나 아렌트의 사상이 궁금하다
- 오늘날 우리는 어둠이 전 세계를 삼키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한나 아렌트는 아무리 어두운 시대라 하더라도 불빛을 찾을 희망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 불빛은 이론이나 개념보다는 개인들의 삶과 일에서 등장하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바로 그러한 불빛을 제공하며 우리가 정치와 당혹스러운 문제들에 비판적 관점을 갖출 수 있게 돕는다. 한나 아렌트는 현대의 삶에 나타나는 위험한 경향들을 빈틈없이 비판했으며, 정치의 품위를 회복하기 위한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한나 아렌트가 읽히고 있는 그리고 한나 아렌트를 읽어야 할 이유다. 『한나 아렌트』는 따듯한 시선과 감동적인 서술로 한나 아렌트의 삶과 작품을 소개한다.-예스24. 한나 아렌트의 사상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면도 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영향력을 끼치고 있기에 마음 먹고 종종 한나 아렌트의 책을 읽고자 한다. 귄터 안더스가 도피하고 며칠 후, 그러니까 2월 27일에 제국 의회 의사당에 불이 났다. 히틀러는 이 방화 사건을 긴급조치를 내리고 기본권을 무효화시킬 구실로 삼았다. 이제 자의적인 체포는 다반사가 되었고, 정적에 대한 테러도 늘어났다. 베를린과 독일의 많은 유대인들은 그제야 국가사회주의자들의 반유대주의를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한나가 보기에 그것은 벌써 몇 년 전부터 예고되었던 상황을 어처구니없게 오해한 것이었다. 그녀는 회상한다. “나치가 우리의 적임을 알게 된 건 히틀러의 정권 장악 때문이 아니예요! 정신이 모자란 사람들을 뺀 모든 사람에게 나치가 우리의 적이라는 것은 적어도 4년 사이에 너무도 자명한 일이 돼 있었어요.” 한나는 예를 들어 여전히 유대인들이 처한 위험을 믿고 싶지 않은 친구 안네 멘델스존보다 상황을 훨씬 더 현실적으로 평가했다. 한나가 보기에 나치의 목적은 분명했다. 마찬가지로 그녀 의 태도 역시 명명백백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공격을 당한다면, 유대인으로서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 그것은 나치의 반유대주의를 개인적인 비극으로 받아들이는 유대인들을 향해 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정치적인 행동을 호소하는 일이었다(p. 79). 한나는 쉽게 절망하는 여성은 아니었다.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그녀에게는 ‘살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그러나 '너무도 나쁜' 세계 상황을 볼 때 그녀 역시 어떤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12년 후 그녀는 쿠르트 블루멘펜트에게 귀르 수용소에서 자살을 하면 어떨까 곰곰이 생각했지만, 결국 "웃긴다"는 대답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개인적인 일과 정치적인 일을 구별할 줄 안다고 자부하는 한나에게 포로 수용소에서의 자살이란 대단히 무기력한, 웃기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그녀는 귀르 수용소에서의 체험에 대해 훗날 이렇게 말한다. “귀르 수용소에서 [••] 자살에 관한 소리를 들은 것은 단 한번뿐이었다. 그것도 집단행동을 위한 제안으로서의 자살이었다. 프랑스인들이 당황하도록 일종의 항의 행동을 제안한 것이다. 몇 사람이 우리가 ‘뒈지려고’ 이리 실려왔냐고 말하자 갑자기 모두들 분위기가 바뀌며 열정적인 삶의 용기가 터져나왔다. 전체의 불행을 여전히 개인적인 불운으로 여기며 자신의 생명을 개인적, 개별적으로 끝맺음했던 사람은 비정상적이고 비사회적인 사람이며 사태의 일반적인 결말에 관심을 상실한 것이 틀림없다는 견해가 일반적이었다.” 귀르 수용소의 여러 생존자들은 수용소의 여자들 사이에 반항적(p. 100)인 자기 주장의 의지가 팽배했음을 증언한다. 그들은 화려하게 화장을 하고 제일 좋은 옷을 입고 마치 가로수길을 산책하듯이 수용소 지대를 산책하곤 했다(p. 101). 그녀는 미국에 머문 지는 불과 몇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자신의 주장을 펼칠 토론의 장을 발견했다. 그녀가 독일어 잡지 『아우프바우』에 공개서한을 보내자 편집장 만 프레트 게오르게는 그녀가 피력하는 논거의 힘에 깊은 감명을 받고, 그녀에게 문예란의 자유기고가로서 활동하기를 제안했다. 『아우프바우』에 1941년 11월부터 격주로 '이것은 당신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라는 제목으로 한나의 칼럼이 실렸다. 제목만큼이나 내용도 독자의 마음을 흔들어 깨웠다. 하인리히는 그녀의 정열적이고 가차 없을 정도로 객관적인 이야기 방식을 "도끼 같다"고 말한다(p. 112). 그녀는 첫 기고에서 이렇게 쓴다. “히틀러에 대항한 유대 민족의 현실적인 전쟁만이 유대인 전쟁에 관한 뜬소문에 종말을 준비해 줄 것이다. 그것은 가치 있는 종말이다. 자유란 선물이 아니다. [...] 자유란 괴로움을 견뎌낸 데 대한 보상이 아니다.” 한나는 동유럽에서 나치의 유대인 박해와 팔레스타인에서 영국인들의 변화된 정책을 배경에 두고 이 글을 썼다. 점점 더 많은 유대인들이 유럽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고, 아랍인들에게서 유대인의 우세에 대한 저항이 점점 더 커지자 영국인들은 이주민의 수를 제한하기로 결정했다. 이주민들을 수송하는 배들은 팔레스타인의 항구에서 거부되었다. 수송선 '스트루마'의 침몰과 같은 재앙이 발생했다. 스트루마호는 오랫동안의 외교적인 줄다리기 끝에 다시 바다 로 끌려가 운명에 맡겨졌던 것이다. 과도하게 많은 사람과 짐을 실은 데다 기동능력이 없는 그 수송선은 예상대로 가라앉았고, 여기서 구출된 생존자는 단 두 사람이었다. 다른 760명의 승객들은 모두 물에 빠져 죽었는데, 그들 중 절반이 여자와 아이들이었다. 이러한 정책의 결과로 지하운동단체 '이르군단'과 같은 전투적인 유대인 집단들이 생겨나 영국의 시설물과 사람들을 공격했다. 한나 아렌트는 메나 베긴 휘하의 이런 테러리스트들을 "폭약 속물" 이라고 부르며 비판했다. 그들은 친구와 적이라는 완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이분법에 매달리며 무책임하게 행동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유대인들의 위험한 경향, 즉 반유대주의를 '자연스런 현상'으로 간주하고, 선택된 민족으로서 적대적인 세계에 에워싸여 있(p. 113)다는 잘못된 믿음에 빠지는 경향에 대해 경고한다. 마찬가지로 독자적인 유대인 국가가 반유대주의를 피해 도망갈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되리라는 시온주의의 기대에 대해서도 경고한다. 그녀는 칼럼에서 팔레스타인이 '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랍인들로 에워싸여 있 고, 그들에게 협조를 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거듭 상기시킨다. 독자적인 유대인 국가는 이러한 양해를 불가능하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유대인 국가 내에서 비유대인들은 언제나 소수로서의 권리밖에 갖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유대인 국가는 영국이나 미국과 같은 강대국의 손에 자신을 내맡기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약속의 땅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다시 말해 스파르타와 같은 '전사족 1'이 될 것이며, 적대 적인 아랍인들로 에워싸인 상황에서는 군사적 방어가 최우선이기 때문에 모든 경제적 발전과 문화적 진보는 질식되고 말 것이다(p. 114).
-
- 오피니언
- 책소개
-
【북토크445】 한나 아렌트의 사상이 궁금하다
-
-
【북토크444】 책을 통해 나와 남을 연결한다
- 처음보는 특이한 형식의 책으로 흥미로웠다.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과거의 사람들과 연결된다. 그런면에서 책은 인간이 만든 참으로 특별한 것이다. ‘독서문화’는 시대를 읽어내는 데 유용한 ‘탐침’이 될 수 있다. 당대에 어떤 책이 어떻게 읽혔는지 알면, 지층의 단면을 보고 지형의 변화를 짚어내듯 시대의 풍경이 손에 잡힌다. 이 책은 해방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청년’들의 ‘책 읽기’에 주목한 독서문화사다. 해방 이후 누구든지 ‘제몫’이 없는 ‘청년’으로 살아가야 했다. 문학이란 키워드로 한국 근현대사의 이면을 파헤치는 데 골몰한 저자는 이 중 문학과 현실에서 4인을, 시대를 읽는 ‘문화적 탐침’으로 주목했다. 이념 과잉의 시대를 견뎌야 했던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 ‘준’, 혁명의 뒤끝을 앓아야 했던 김승옥 소설 『환상수첩』의 ‘정우’ 그리고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란 스테디셀러를 쓴 전혜린과 인간답게 살고 싶었지만 결국 스러진 전태일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시대와 불화하며 책을 통해 치열하게 더 나은 ‘삶’을 꿈꾸었다는 점에서 각각의 시대를 상징한다. 이들은 ‘국가’가 무엇인지 고뇌했고, ‘혁명’에 좌절했으며, ‘여성’과 ‘노동’이 무엇인지 물었다. 이들이 읽고 던진 물음으로 우리 삶의 지도가 단단해졌다. 우리 역사는 그 청년들에게 빚지고 있다. 우리 역사는 이들이 읽어낸 만큼의 역사다. 이 책은 바로 그렇게 책을 읽으면서 더 나은 세상을 상상했던 청년들의 이야기를 탄탄하고 명징한 문장으로 치밀하게 담아냈다.-예스24 말랑말랑하되 생생한 1960년대 젊은 작가들은 그 전과 분명히 달랐다. 기성 작가들은 "김승옥이라는 벼락에 맞아서 넋이 빠진 상태"였고 "이제 우리들 시대는 갔다"고 했다. 그런 거였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문장이 달랐고 감성이 달랐다. 이들은 자신들의 느낌을 잘 드러내는 표현이 좋다고 배운 세대였다. 입말의 말랑말랑함이 고스란히 배어나오는 단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태백산맥》에 이런 일화가 있다. 허명길이라는 학생이 배가 고파 진달래꽃을 많이 따먹어서 밤중에 배가 깨지게 아파 호되게 고생했다고 하자.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런 생생한 일을 글로 쓰지 않았다. 배가 고파서 진달래꽃을 따먹고 설사까지 했던 일이 자랑스럽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느낌을 구태여 '주욱주욱 쏟아진 물은 진달래물똥'이라는 식으로, 친구에게 말하는 것처럼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 경험을 생생한 표현으로 쓰는 것이 칭찬받는 시대가 되었다. 이는 평론가 김현이 책 읽기의 달달함을 겨울밤에 가슴에 베개를 괴고 해남 물고구마를 눌어붙도록 쪄가지고 먹어대며 이형식에게로, 허숭에서 임꺽정에게로 그리고 오필리아에서 파우스트로 정신없이 뛰어 다닌다고 쓰는 것과 같은 그런 감각이다. ‘주욱주욱’ 쏟아진 진달래물의 고통이나 '해남 물고구마를 눌어붙도록 찐' 사정은 당사자가 아니면 모르는 일이지만 그 개인적 감각을 언어로 전달하는 것은 라디오를 듣다가 텔레비전을 보는 것만큼이나 생생한 것이었다. 그래서 "의용군에 끌려간 것을 한하였다" 라거나 "여기까지 끌려 오는 사이 맥진이 되어" "지난날이 호기스러웠던 것만큼 말로가 애상적이다"라는 식의 표현을 쓰지 않았다. 그것은 남들도 다(p. 89) 하는 표현이 아닌가. 또 자신이 느낀 감정이 한이나 애상이라는 표현으로 쓰는 게 맞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감정을 관습적으로 표현하는 대신 어떤 상황에서 그 감정이 어떻게 느껴졌는지를 세세하게 나누어 서술했다. 이를테면, 윤희중이라는 어떤 남자가 있다고 치자, 이 남자가 무진이라는 고향에 내려가는데 그간의 여러 사정으로 무진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 마음은 고향에 대한 묘사에서도 드러난다. "밤 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다" 고 말이다. 안개가 '적군' 같다는 묘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적군과 아군의 대립이 지닌 무서움을 그대로 경험해본 사람일 것이다. 그 적군을 어두컴컴한 새벽에 발견했다면 그 압박감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그런데 고향을 두고 이렇게 묘사하다니, 도대체 고향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 궁금해지는 게 당연하다. 한글세대 소설가들은 주관적 느낌과 기억을 객관적인 이미지 재현에 그대로 투사했다. ‘감수성의 혁명’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자신만의 감정과 감각을 그대로 옮겨낼 수 있었던 사정을 반영한 말이다. 이 간질간질하고 말랑말랑한 청년들의 언어 속에서 새로운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 빛은 자기 언어를 가진 자들의 몫이었고, 자기 언어를 부릴 수 있는 신세대의 권리였다. 1960년대 청년들은 자신들 만의 언어로 매체를 만들고 문학판을 재편하고자 했다. 그래서 '새로운 창작'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안이한 창작 태도와 족벌주의, 그리고 더러는 관권에 대한 하염없는 동경 등의 순수치 못한 기풍에 젖어 있는 이유와 관련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연이어 문학이 어떻게 현실과 관계되어야 하는지 물었다. 이들은 '문학'이 무엇인지 재차 물었다. 그것은 문학 뒤에 숨지 않겠다는 말인 것처럼 보였다(p. 90). 쌍가락지, 올빼미, 바꿔치기 등등 자유당 시절의 유물들이 되살아나고 빈대표 유령표 기표 감시 따위의 새로운 전통을 착착 기록하면서 6•8공명선거는 전무후무한 막걸리 선심 속에 비틀비틀 막을 내렸다. 그리고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처음엔 그것이 축하시위인지 규탄시위인지 분간하기 썩 힘들었다. 이번 선거가 공명선거였다는 당국의 발표가 있은 후의 일이었고 학생들의 주장엔 옳은 데도 없지 않다는 평가가 따랐으니까. 어쨌든 축하인지 규탄인지 모를 그 학생들의 시위는 쉬 끝나지 않을 기세였다. 학생들이 거리로 나간 채 학교문은 닫혔고 거리는 연일 최루가스와 경찰봉이 휩쓸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청년들도 세계가 달라져야 한다고 외쳤다. 1968년 프랑스에서 시작된 학생들의 시위가 결국 유럽 전역을 휩쓸며 68혁명으로 불렸지만 "극좌학생의 유혈데모"라고 보도됐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6월 8일 6·8부정선거가 자행되었다. 4•19 이후 10년도 안 되었지만 또다시 발생한 부정선거로 저 멀리 베를린에서 공부하는 학생들만 붙잡혀 왔다. 이름하여 동백림사건. 이 명칭은 정직하지 않았다. '동베를린 학생 납치사건'이라고 해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을 텐데 ‘동백림사건’이라고 하니 살기 바쁜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 사건뿐이랴. 4•19와 6•3한일회담, 6•8부정선거에 이어 동백림사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역사가 말의 난장이었다(p. 91). 혜린은 죽기 전 편지 한 장을 남겼다. "장 아제베도에게"로 시작하는 편지다. '장 아제베도'를 향해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너를 좋아해. 너를 단념하는 것보다도 죽음을 택하겠어"라고 쓰면서 "내가 원소로 환원하지 않도록 도와줘"라고 간절히 말한다. '장 아제베도'는 프랑수아 모리악의 소설 《테레즈 데케루》에 등장하는 이름이다. 혜린(p. 168)은 자살하기 직전에 《테레즈 데케루》를 다시 인용한다. 테레즈는 답답한 가정을 벗어나서 열정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주인공이었다. 그가 이 작품을 죽기 직전에 붙잡았다는 것은 이 세계에 번역되지 않은 그 무엇을 이 책에서 찾고 있었다는 뜻이다. 예전에 그가 뮌헨에 처음 도착했을 때처럼 말이다. 그 속에서 자유로운 영혼의 장 아제베도를 다시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장 아제베도'는 번역되지 못한 자신의 이야기와 관련되어 있다. 그는 이런 글을 쓰기도 했다. 〈덫에 걸린 세대〉라는 글에서 "원을 긋고 달리면서 너는 빠져 나갈 구멍을 찾느냐? 알겠느냐? 네가 달리는 것은 헛일이라는 것을". 혜린은 사랑하고 '사랑' 받으며 살고 싶다고 했지만 혜린이 발견한 것은 빠져 나갈 수 없는 '쥐덫'뿐이라고 생각했다. 1970년대까지 독자들은 혜린을 잊지 않았다. 혜린이 남긴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1970년대까지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라는 말 자체가 역설적이었다. 번역되지 못한 말, 말해지지 못한 말이 있다는 사실이 그 어떤 메시지 보다 강력했다. 각자의 내면 안에 번역되지 못한 언어가 있다는 짐작은 수많은 청년들의 마음을 뜨겁게 했다. 혜린은 스스로의 삶을 번역 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남겼다. 독자들은 혜린이 하고자 한 말에 응답했다. 아마도 혜린이 꿈꾸었던 것은 이런 것이었을지도 모른다(p. 169). 더 리더 책을 읽는 것은 '나와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타인'을 통해 나를 만나는 일인 동시에 '타인'을 경유해서 내가 속한 세계를 만나는 일이다. 그러므로 책 읽기는 나와 다른 나, 타인 너머의 타인, 그 있음직한 세계의 상상이다. 이 책에서는 해방 이후의 문화사를 다루면서 청년들이 무엇을 읽고 어떻게 생각했는지 살펴보았다. 이 세계 속에서 주목한 청년은 모두 4 명이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국가가 무엇이고 국민이 누구인지 생각했던 '전후세대'의 청년, 1960년대 4•19혁명과 5•16쿠데타를 경험한 한글세대 대학생, 그리고 해방 이후의 삶 속에서 차별과 배제를 겪어낸 ‘여성들’, 마지막으로 가난한 삶 속에서 소외를 경험했던 노동하는 '소년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국가와 언어, 성별과 노동의 한복판에서 벌거벗은 자들이었다. 그럼에도 그 중심에서 살고 싶었던 삶을 꿈꾸면서 책을 붙잡았다(p. 236). 그럼에도 이들이 마주한 막다른 골목은 우리 현대사의 아물지 않은 흔적이다. 해방 이후 어느 국가를 선택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 대해 "국가를 선택하지 않는 편이 낫겠습니다"라고 응답했던 (명)준, 그리고 4•19혁명 이후 "가만히 있어라"라는 명령이 야기한 삶의 파괴를 증언하고 있는 정우, 번역되지 못하는 말들 속에서 제 자리를 얻지 못했던 혜린,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인간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되물었던 태일까지, 이들은 국가가 무엇이고, 인간은 어떠해야 하며, 여성은 어떻게 다른 언어를 품고 있는지, 그리고 인간이 누구인지 물었다. 우리는 이들이 던진 질문에 답해야 한다. 준은 한국전쟁을 거치며 국가가 성립되는 과정을 경험한 전후세대 청년이다. 국가는 그 청년에게 네가 누구인지 물었고, 이곳은 너의 국가가 아니라고 얘기했다. 네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라는 답변이었다. 그가 듣고 싶었던 것은 네가 있을 곳은 여기라고 말해주는 것, 그것은 존재에 대한 긍정이었다. 그리고 말과 말이 서로 들려지고 말해지는 광장, 그런 국가를 기대했다. 그러나 준에게 남은 것은 삶이 지워진 생명뿐이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삶이 지워진 생명이 아니라, 그런 삶의 형식을 거부하는 것, 그래서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고민한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삶 사이에서 갈등했다. 4•19와 5•16을 거치면서 청년들은 "무관심 하라", 다시 말해 "가만히 있어라"라는 말을 들었다. 가만히 있다는 것은, 제 목소리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 이는 그간의 인간관계를 무참히 지워내는 일이다. 친구 수영은 이를 기꺼이 선택했다. 그래서 감정을 지워내고, 윤리적 판단을 거부하며 생존만을 목표로 삼았다. 정우가 그 얼굴에서 본 것은 다름 아닌 ‘괴물’의 모습이었다. 정우는 그것이 인간의 삶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생각한 정우는 결국 살아남지 못했다. 그(p. 237)의 죽음은 한 세계의 몰락을 말하는 것이어야 했다. 소설은 그 이후에 쓰이는 인간의 이야기였으면 했다. 혜린은 두 개의 언어를 가진 여성 번역가이다. 그가 번역한다는 것은 다른 언어와 개념이 이입되는 것, 이를테면 《데미안》이 번역된다는 것은 이미 있는 세계에 앞선 '실존'에 대한 이야기이며 《생의 한가운데》가 번역된다는 것은 여성의 목소리가 기록될 수 있는 가능성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1960년대엔 번역해야 하는 세계는 있는데 번역을 기다리는 세계는 없었다. 그래서 번역이 되지 못한 채 두 개의 언어가 나란히 같이 쓰이기도 했다. 혜린은 마지막 순간에 번역해야 하는 세계 속에서 나오지 못했다. 그가 무엇보다 원했던 것은 번역될 수 있는 언어였고 세상이었다. 번역된다는 것은 알을 깨고 이 세상 속에 태어나는 일일지도 몰랐다. 태일은 국가와 법을 믿었다. 그래서 법이 '우리'에게도 있다고 생각했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거라는 기대, 노력하는 자에게 내일이 있다는 믿음,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상식. 그러나 이 당연한 상식과 믿음은 어디에서도 통하지 않았다. 태일은 '이름'이 불리는 인간으로 살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어디에서도 불리지 않았다. 그가 "나를 아는 모든 나"에게 외치고 있는 것은 우리 모두가 수많은 '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었고, 기억해 달라는 외침이었다. '우리'도 인간이라고 외친 그의 절규 이후 사람들은 '우리'가 누구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되묻기 시작했다. 이 청년들이 멈춘 그 지점에서 새로운 길이 시작되었다. 독고준이 몰래 읽고 버젓이 읽으며 내면의 망명국가로 잠수하는 순간, 정우가 가만히 있어라, 라는 말을 끝내 어긴 채 구구절절한 사연을 한 권의 일기로 남긴 순간, 그리고 혜린이 번역되지 않는 언어를 붙들고 번역(p. 238)했으나 그 언어가 이 현실에 없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마지막으로 태일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광장에 자기 목소리가 들리게 하는 것이라고 깨닫는 순간, 그 순간들이 모여 바로 대한민국의 역사가 되었다. 그 결과, 홀로 남았던 명준의 광장은 수많은 자들이 같이 손잡는 광장으로, 정우가 되물었던 양심 있는 소설에 대한 물음은 '문학'으로, 혜린이 멈춰 섰던 번역할 수 없는 세계는 읽혀지는 세계로, 태일의 외침은 민중으로서의 인간을 발견하는 광장으로 이어졌다. 준, 정우, 혜린, 태일은 다른 세계를 읽어낸 리더reader 였다. 이들은 국가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읽었고, 언어를 가진 자들이 무엇을 써야 하는지 엿보았으며, 성차가 삶의 질곡이라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리고 인간을 소외시키지 않는 노동을 문자와 문자의 행간 사이에서 상상했다. 세계의 심연을 엿보았기에 그 중심을 상상할 수 있었다. 이들은 끝까지 자기 신념과 존재를 버리지 않았다. 있어야 할 세계를 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가치를 저버리지 않았고, 공동체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미래의 삶을 반납하지 않았다. 이들은 읽은 것은 나의 삶이 아니라 나와 너의 삶이었고, 인간이 살아갈 만한 세상에 대한 이해였다. 그리고 타인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일이었다. 우리 역사는 그들이 상상한 만큼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이들을 리더leader라고 불러도 좋으리라. 이 청년들은 제몫을 가지지 못한 벌거 벗은 자들이었으나, 그럼에도 국가와 난민, 혁명과 언어, 여성과 번역 (반역), 노동과 인간이 무엇인지 상상했고, 그 상상이 지금 현재의 삶이 되었다. 이들은 누구보다 더 강렬하게 희망을 품었고, 또 그만큼 정직하게 절망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 그것은 포기하지 않은 자들의 신념이기도 했다. 해방 이후의 역사 속에서 같이 살아갈 세상을 읽어낸 이들. 그렇게 책 너머의 세상을 상상하며 읽어낸 이들, 우리 역(p. 239)사는 이들이 읽어낸 만큼의 역사이다. 오래된 미래를 상상할 수 있었던 그들, 그들은 언제나 리더이다(p. 240).
-
- 오피니언
- 책소개
-
【북토크444】 책을 통해 나와 남을 연결한다
-
-
【양대식 목사 칼럼35】 GMS 이사장 임기를 마치고
- GMS 이사장 임기를 마치고 부족한 종이 본 교단 총회세계선교회 GMS 이사장으로 섬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였습니다. 어제(2026년 9월 3일) GMS 이사장직의 2년 임기를 잘 마쳤습니다. 2년의 임기 동안 큰 사고나 어려움이 없이 잘 마치고, GMS 선교단체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GMS 본부 임원과 직원들과 함께 겸손히 섬겼습니다. GMS 이사장 임기를 마치고 곧 GMS 명예 이사장으로(임기 2년, 9월 3일) 추대받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립니다. 명예 이사장의 분수에 맞게 성실히 최선을 다해 섬기고자 합니다. 이사장 임기 동안 본 교회인 진주성남교회의 온 성도들의 기도와 여러 가지로 GMS를 위해 헌신했고, 주일 예배나 공예배 때마다 대표 기도할 때, GMS 본부와 GMS 파송 선교사와 파송 국가를 위해 기도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선교에 앞장서는 진주성남교회 당회원을 중심으로 모든 성도들께 감사드립니다. GMS 소속 전 세계 파송 선교사 약 2,600여 명의 선교를 위해 헌신하는 분들과 파송하여 헌신하는 교회와 담임목사님들 그리고 GMS 이사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이사장직을 마치며 시원하면서 서운함도 있으나,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남은 목회에 전념하며 본 교단 GMS 선교단체를 위해 기도하고 겸손히 섬기고 싶습니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도 선교에 동참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GMS 이사장 2년 임기 동안 저를 위해 기도해 주고, 격려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임마누엘! 샬롬!
-
- 오피니언
- 기고
-
【양대식 목사 칼럼35】 GMS 이사장 임기를 마치고
-
-
【서기원 목사 선교15】 북방선교의 훈련장
- 북방선교의 훈련장 백령도에 토마스 선교사 기념관이 준공되어 개관예배를 드렸다. 토마스 선교사는 한국에서 순교한 최초 순교자다. 그러나 지금까지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역사는 일본과 북한에 의해서 왜곡되었다. 이것을 받아들인 한국의 일부 역사학자들에 의해 한국교회에 있었던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 역사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안타까운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셔서 기도하고 연구하고 힘을 모아서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 110회 총회에서 설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노력한 가운데 이렇게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동안 여러 면에서 헌신하고 노력하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이제는 이 기념관을 잘 사용해야 한다. 이 기념관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첫째는 한국교회가 식어 버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한국 교회가 지금까지 이렇게 은혜를 누리고 있는 것은 토마스 선교사 및 다른 많은 순교자들의 헌신의 피가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순교자들의 피와 눈물의 헌신과 희생을 그동안 우리는 잊고 살았다. 이제는 한국교회의 모든 성도가 순교의 피와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 기념관이 이러한 역할을 감당하는 곳이 되기를 기원한다. 둘째는 선교의 불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 한국교회는 선교사로부터 받은 복음을 세계 만민에게 전해야 한다. 해외에 나가서 전하는 것만 아니라. 국내에 들어온 300만의 열방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특별히 백령도에 세워진 토마스 선교사 기념관은 북방선교에 집중하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 북방은 지역적으로 북한 중국 몽골 러시아 중앙 아시아를 가리킨다. 세계의 많은 지역 중에서 복음을 전하는 데 어려운 지역이다. 토마스 선교사도 북한에서 순교를 당했고 백령도가 위치한 곳도 북한과 가장 최근거리에 위치한 지역으로 북방에 대한 선교교육과 훈련을 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이곳에서 눈에 보이는 북한 지역을 바라보면서 기도하면 북방을 향한 선교의 열정이 타오르라고 생각한다. 성도들도 이곳을 방문하면 배로 4시간의 선상에서 바다를 보면 기도할 수 있고 백령도에 와서 많은 경관을 보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기념관에서 교육과 훈련을 받으면 북방선교의 훌륭한 교육장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기념관이 개관된 것은 새로운 출발이다. 이곳을 한국교회가 사랑하며 잘 사용할 때에 잃어버린 은혜에 대한 감사와 열정을 다시 회복할 수 있고 이것을 통해서 교회가 부흥하고 나라와 민족이 새로워지고 복음통일을 이루고, 세계선교의 부흥이 시작되리라고 믿는다. “각 지방, 각 읍, 각 집에서 대대로 이 두 날을 기념하여 지키되 이 부림절을 유다인 중에서 폐하지 않게 하고 그들의 후손들이 계속해서 기념하게 하였더라” (에 9:28)
-
- 오피니언
- 기고
-
【서기원 목사 선교15】 북방선교의 훈련장
-
-
【양대식 목사 칼럼34】 리더와 융통성의 중요성
- 리더와 융통성의 중요성 융통성이 있어야 합니다. 융통성은 영어로 'flexibility'입니다. 융통성은 관계와 삶의 지혜입니다. 진리 문제만 아니면 융통성을 가지고 대처해야 합니다. 이기주의와 지나친 고집, 융통성이 없어 다투고, 관계가 깨지고, 문제가 커집니다. 리더는 융통성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융통성이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9:19-23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사도 바울은 은혜받고, 융통성이 있는 자로 변했습니다. 리더가 융통성을 가지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자기주장이 강해 융통성이 없으면 인간관계가 깨집니다. 한 영혼 구원과 화목을 위해 융통성을 가져야 합니다. 교만한 자는 융통성이 없습니다.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 리를 가주는 것이 융통성입니다. 한 가지에 목숨 걸고 고집부리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융통성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융통성의 리더십(flexible leadership)이 있어야 합니다. 가정이나 교회 공동체에서 융통성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넓은 자,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자는 융통성이 있습니다. 융통성이 없는 자는 마음이 좁은 자이고, 남에 대한 배려심이 없습니다. 자신의 유익만 생각하고, 양보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조금 손해를 보고, 양보하여 갈등을 줄이고, 사람을 얻어야 합니다. 융통성이 없는 자는 남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하여 관계가 깨지고, 사람을 잃게 됩니다. 관계가 깨지고 사람을 잃는 것은 큰 손해입니다. 융통성이 부족한 자들이 많습니다. 융통성을 가지고 사는 것은 삶의 지혜입니다. 리더는 반드시 융통성이 있어야 합니다. 나만 옳다는 생각을 버리고 융통성을 가져야 합니다. 융통성이 없는 자는 쉽게 분노하고, 남을 판단합니다. 융통성을 가진 자는 이해심이 있고, 사랑으로 행합니다. 융통성이 있으면 관계가 잘 됩니다. 죄와는 타협하지 말아야 하나, 반드시 융통성이 있어야 합니다. 융통성을 가지고 섬겨야 합니다. 사랑하면 이해하고, 융통성을 가지고 행동하고, 말합니다. 리더는 반드시 융통성이 있어야 합니다. 의자를 어디에 놓아야 하느냐는 진리의 문제가 아니기에 서로 이해하며 융통성을 가지고 의자를 배치해야 합니다. 융통성이 없어 다투고 관계가 깨지게 됩니다. 융통성의 리더십을 가져야 합니다.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영적 리더, 바울은 융통성을 가지고 사역했습니다. 융통성이 없고 꽉 막힌 자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누구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원칙을 지키되, 방법은 부드러워야 합니다. 융통성을 가진다는 것은 우유부단해야 된다는 의미는 아 닙니다. Yes와 No를 부드럽게 해야 하며, 거절할 때는 거절하고, 해야 할 말은 하되, 부드럽게 대처해 나가는 것입니다. 인간에 대해 이해할 때, 융통성을 가지고 대할 수 있습니다. 융통성이 없으면 부러집니다. 사람을 얻고 더 좋은 관계를 위해 융통성을 가져야 합니다. 융통성은 상황에 맞추어 유연하게 대처하는 기술과 지혜입니다. 융통성이 없으면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하기 힘들고, 갈등이 생겼을 때, 타협하기 힘들고, 작은 문제에도 흔들리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스트레스가 됩니다. 융통성이 없으면 문제가 커지고, 문제를 해결하기 힘듭니다. 리더는 반드시 융통성이 있어야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
- 오피니언
- 기고
-
【양대식 목사 칼럼34】 리더와 융통성의 중요성
-
-
【양대식 목사 칼럼33】 리더와 문제 해결
- 특강 설교 주제 : 리더와 문제 해결 (전도서 10:10, 야고보서 1:5) 인사 나 자신 소개 미국 시카고에서 17년간 이민 목회했다. 2007년, 진주성남교회 부임, 19년째 목회하고 있다. 호주 선교사, 알렌 선교사에 의해 설립 102주년 된 교회이고, 선교 지향적 교회이다. 현재, 전 세계 13가정 선교사 파송했다. 하나님만 기쁘게하지 말고 사람도 기쁘게 해야 한다. 고린도전서 10: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인사가 중요하다. 바울 서신, 제일 먼저 인사했다. 인사 잘하는 자는 누구나 좋아한다. 서로 인사하자. 무뚝뚝한 자를 싫어한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연구해야 한다. 가정이 중요하다. 사역의 기초가 가정이다. 부부관계가 중요하다. 가정을 지켜야 하고, 서로 귀히 여겨야 한다. GMS 선교사들 모임 때, 가정의 중요성(이유 설명)을 강조했다. 긍정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갈렙과 여호수아, 사도 바울). 부정적인 자는 실패한다. 긍정의 마음으로 긍정의 생각을 해야 하고, 긍정의 말을 해야 한다. 인생철학이 있어야 한다(성경적이어야 한다). 나의 인생철학, "의리 지키자" 의리는 성경적이다. 하나님은 의리의 하나님이시다(다윗과 요나단의 의리 관계). 배은망덕하지 말자. 주면서 살자. 주는 것의 효과가 크다. 하나님이 돈을 주신 이유는 “주면서 살려고”이다. 누가복음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리더는 주는 자이다. 고난이 있으나, 고난이 유익하다. 이 말씀은 정답이다. 고난을 통과해야 쓰임 받고 복을 받는다. 나의 간증 고난 후에 글을 써서 책을 출판한 예, 여러 가지 고난이 있었다(죽을 고비 세 번). 목회하면서 당한 고난과 위기가 있었다. 고난의 때, 해석을 잘해야 하다. 야고보서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여러 가지 시험당하면, 기쁘게 여겨야 한다(믿음의 해석, 긍정의 해석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나의 목회와 삶, 하나님의 은혜였다. 고린도전서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난 중에 받은 은혜가 있다. 진주성남교회에서 공동의회하고, 청빙 받은 후, 청빙이 무산되었었다. 이유: 아들이 미국 시카고 대학 다닐 때, 등록금이 1년에 5천만원, 교회에서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로 청빙 무산(황당) 해명: 아들이 장학금 받으니 돈을 안 주어도 된다고 말하니 다시 오라고 해서 부임했다 노회에서 미국 시민권 포기를 요구했는데, 포기했다(너무 이상하고 황당했다). 시민권보다 목회를 선택했다. 청빙 받을 때의 상황 예감, 연락 올 것 같았다(미국, L.A. 국제 개혁 대학 특강). 맨 마지막 설교 부탁했다. 청빙 설교: 긍정으로 해야 한다(시편 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 ‘포도원의 작은 여우 잡으라’, 이런 부정적인 설교하면 탈락 된다. 설교가 중요한데, 설교가 길다고 은혜가 되는 것은 아니다(30분 정도). 더 듣고 싶어 할 때, 설교를 마쳐야 한다. 리더가 중요하다.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 공동체의 성패가 결정된다. 리더는 마음이 강하고 담대해야 한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잠언 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 하리라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 지혜가 있어야 한다. 지혜가 제일이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한다. 전도서 10:10 철 연장이 무디어졌는데도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 야고보서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인간관계를 잘해야 한다. 로마서 12: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관계가 전부이다. 관계가 중요하나, 힘들다. 깨지기 쉽다. 관계 잘 맺는 비결이 많다. 친절, 대접, 섬김, 겸손, 선물, 지혜로운 언어 등이다. 죄와 욕심, 이기심 때문에 관계가 깨진다. 관계가 잘되어야 성공한다. 선교와 목회는 관계이다. 리더는 성실해야 한다. 성실은 신실함과 충성인데, 신실해야 신뢰받는다. 신뢰 얻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부지런해야 한다. 희생, 헌신해야 한다. 요한복음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희생 없이 열매가 없다. 리더는 돈을 쓰는 자, 팁을 주는 자이다. 리더는 정리, 정돈을 잘해야 한다. 리더는 글을 써야 한다. 말은 사라지나, 글은 남는다. 성경은 글이다. 바울 서신은 바울이 남긴 글, 성경이다. 리더는 도전 정신이 있어야 하고,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리더는 문제를 해결하는 자이다. "Leader is problem solver", "리더와 문제 해결"이라는 글을 써서 책을 출판했다. 문제는 시험인데,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해야 한다. 시험 들면, 큰 문제가 생긴다. 문제 해결의 예, '교역자들과의 다툼과 갈등 해결' '교회에서 문제 일으키는 중직자 해결의 예' 'GMS 이사장 사역 중, 교회 비우게 되는 문제 제기 해결의 예' 선교가 중요하다. GMS 섬기면서 외친 내용 '기도가 중요하다.' '기도가 선교의 기초이다.' '선교는 쉽다.' '선교하는 자는 행복하다.' '주는 자가 복을 받는다.' '선교하는 교회가 부흥된다.' '선교하는 인생이 복 받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확고히 신뢰해야 한다. 예, 하나님은 공급자이시다. 빌립보서 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상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임마누엘) 이사야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은 치유하신다(여호와라파). 출애굽기 15: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 영적 리더는 말씀 한 권의 사람이어야 한다.
-
- 오피니언
- 기고
-
【양대식 목사 칼럼33】 리더와 문제 해결
-
-
【서기원 목사 선교14】 이주민 교회들의 어려움
- 이주민교회들의 어려움 중에 하나는 재정적인 어려움과 일꾼의 부족함이다. 몽골에서 돌아와서 부천몽골교회를 개척하고 난 후에 재정적인 어려움이 컸다. 몽골인 초신자들과 함께 시작하다보니 헌금이 적을 뿐만 아니라 몽골 현지 선교사로 사역할 때 후원하셨던 분들이 이주민선교를 이해하지 못하여 후원을 중단하였다. 그러므로 매월 내야하는 교회 임대비를 걱정하게 되었다. 교회에는 일꾼들이 없고 소수의 성도가 초신자여서 교회의 여러 일을 혼자 감당하는 것이 힘들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또한 나름대로 재정을 마련해 보려고 안간 힘을 썼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응답이 없었다. 너무나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이주민교회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응답을 주시지 않고 기다리게 하셨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인내하며 기다리는 훈련을 하게 하셨다. ‘강남 금식기도원’에 가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부천몽골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말씀하여 주셨다. “나그네와 같은 몽골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나라를 소망하는 거룩한 교회를 세우라.”는 응답을 받고 기도원에서 내려왔다. 그 이후에 하나님은 성도들을 보내주셨고 여러 성도들이 모이며 부흥하기 시작하였다. 성도들의 믿음이 성장하면서 십일조를 드리고 헌금을 드리는 성도들이 늘어갔다. 또한 아내에게는 경인여자 대학교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사로 불러주시고, 나는 서울의 어느 회사에서 매주 신우회를 인도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다. 또한 이주민 선교를 이해하시는 분들이 선교헌금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재정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셨다. 또한 몽골선교에 헌신한 평신도분들도 찾아와서 교회를 돕기 시작하였다. 지금도 많은 이주민 사역자들이 이주민선교를 하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그 중에 가장 큰 것은 재정적인 어려움과 일꾼의 부족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이해하며 많은 분들의 기도와 협력이 필요하다. 그러면 힘들어하는 이주민 사역자들에게는 큰 힘이 된다. 또한 사역자들도 어려운 기간은 하나님께서 훈련하시고 준비하시는 기간임을 알고 믿음으로 인내하며 기다릴 때에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시간에 놀랍게 채우시는 역사가 있을 것이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 1:4)
-
- 오피니언
- 기고
-
【서기원 목사 선교14】 이주민 교회들의 어려움
-
-
【북토크443】 후회 없기 위해서 삶을 돌아보며 살자
- 30만 명의 독자가 읽고 독일과 스페인 등 5개국에서 번역된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에 이은 신작 산문집. 많은 작품을 통해 그만의 인생관을 세상에 알린 작가로 여행자로 살아가면서 깨달은 것들이 다채로운 이야기 속에 담겨 있다. 작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진실의 힘이 느껴진다. 인간에 대한 더욱 깊어진 이해에 문체의 매력이 더해져 서문을 읽는 순간부터 기대감이 커진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떠난 여행지에서 아름다운 풍경에 압도당하는 기분의 연속이다. 그렇듯이, 그의 글에는 가벼움과 깊이가 공존한다. 깃털의 가벼움이 아니라 새의 가벼움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마주할 때 사람은 말과의 관계가 돈독해진다. 전달된다고 믿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다고 작가는 말한다. “인생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다른 인생’이다. 새는 해답을 갖고 있어서 노래하는 것이 아니다. 노래를 갖고 있기 때문에 노래하는 것이다. 삶이 힘든 시기일수록 마음속에 아름다운 어떤 것을 품고 다녀야 한다. 그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한다.”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자신이 좋아하는 색으로 자신을 정의하라」 「나의 지음을 찾아서」 「깃털의 가벼움이 아니라 새의 가벼움으로」 「성장기에 읽은 책을 빌려주는 도서관」 「웃음은 마지막 눈물 속에 숨어 있었어」 「플랜A는 나의 계획, 플랜B는 신의 계획」 「자기 앞에 놓인 길을 볼 수 있다면」 등 글의 힘으로 많은 독자의 삶을 변화시켜 온 작가의 글 42편 수록. 글들을 한 편 한 편 읽고 있으면 불꽃놀이가 터지는 유리컵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마음속으로 다양한 부호들이 쏟아진다. 청각과 후각의 예민함을 언어화해 나가는 뛰어남이 느껴진다. 그래서 열심히 읽게 된다. 문장에서 힘을 받고 내일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예스24 생각해볼만한 내용들이 많다. 특히 남에게 하는 마지막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심금을 울렸다. 류시화의 책을 더 읽을 것이다. 삶에서 불행한 일을 겪은 후, 그 불행 감정을 오랫동안 껴안고 있는 사람들의 결론을 압축하면 ‘이번 생은 틀렸어.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라는 것이다. ‘행복해지려면 다시 태어나는 수밖 에 없어.’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 감정은 확증 편향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믿음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믿음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한다. 또한 그 확증 편향이 진리인 양 마음을 닫아 건다. 왜 우리는 자신의 삶을 살면서도 자기 삶의 심리학자가 되지 못할까? 우리는 한때 얼마나 옳았는가? 또 나중에 돌아보면 얼마나 틀린가? 삶은 발견하는 것이다. 자신이 기대한 것이 아니라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인생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다른 인생'이다. 그 다른 인생의 기쁨은 부스러기로 즐기는 것이 아니다(p. 19). 우리는 상처받은 자에서 치유자로 여행해 나가는 사람들이다.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는가가 여행의 방향을 결정한다. 예술가에게 상처를 입혀 보라는 말이 있다. 그러면 당신은 당신이 가한 상처가 걸작품으로 탄생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를 짓누르는 것은 짐의 무게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짊어지고 다니는 방식이다. 부서진 크레용도 여전히 색을 가지고 있다. 그 부서진 크레용으로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p. 36). 한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환영받는다고 느끼고, 자신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 준다고 느끼고, 지지받는다고 느끼게 하는 것만큼 위대한 일은 없다. 친절은 상담료를 받지 않는 심리 치료이다. 칼 융이 말했듯이, 모든 이론을 알고 심리 기법에 통달한다 해도 한 인간 영혼을 대할 때는 단지 따뜻한 인간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상실의 깊이는 저마다 다를지라도 그 상실감은 다른 형태로 다가오는 사랑에 의해 회복될 수 있다. 불완전한 인간을 완전하게 만드는 것은 사랑이다(p. 44).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연민을 가져야 한다. 그들의 혼이 뼈와 만나는 저 안쪽에서 어떤 전투가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는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저마다의 가슴에는 있다(p. 49). 힘든 시절이 행복한 결말을 가져다준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절실하지 않았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나 자신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이리라. 그러나 돈이든 그 무엇이든, 지금 '절벽 끝'에 몰려 있다고 불행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갑자기 절실하게 만든다. 그 중요한 순간에 생명력이 솟고 우리는 신이 토해 내는 숨결이 된다.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도망칠 곳은 없다. 그때 우리는 스스로 하늘을 만들고 자신도 몰랐던 날개가 돋는다. 무엇인가 절실하게 갈구한 모든 순간이 날개였다. 그 절(p. 57)박함과 간절함이 내게는 날개였다. 날개를 잃었다면 떠올려 보라, 날개가 돋았던 어느 순간을(p. 58). 저녁 무렵, 한 젊은 여성이 전철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노을을 감상하며 가는데, 다음 정거장에서 중년 여인이 올라탔다. 여인은 무슨 이유에선지 큰 소리로 투덜거리며 젊은 여성의 옆 자리 좁은 공간에 엉덩이를 들이밀고 끼어 앉았다. 그러고는 막무가내로 그녀를 옆으로 밀어붙이며 들고 있던 짐가방을 그녀의 무릎 위에 걸쳐 놓았다. 그녀가 처한 곤경을 보다 못한 맞은편 남자가 그녀에게, 왜 옆 사람의 무례한 행동에 아무 항의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느냐고 물었다. 젊은 여성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사소한 일에 화를 내거나 언쟁할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우리가 함께 여행하는 시간이 걸지 않으니까요. 나는 다음 정거장(p. 84)에서 내리거든요." 함께 여행하는 짧은 시간을, 우리는 얼마나 많은 다툼과 무의미한 논쟁으로 허비하는가? 너무나 짧은 여정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단점을 들추고, 잘못을 비난하며, 불쾌감 속에 시간 흘려보내는가? 다음 정거장에 내려야 할지도 모르는데. 작자 미상의 이 이야기의 저자는 우리에게 충고한다. "누군가가 마음에 상처를 입혔는가? 진정하라. 함께하는 여행이 짧다. 누군가가 당신을 비난하고, 속이고, 모욕 주었는가? 마음의 평화를 잃지 말라. 함께하는 여행이 곧 끝날 것이다. 누군가가 당신을 괴롭히는가? 기억하라, 우리의 여행이 짧다는 것을. 이 여행이 얼마나 길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들이 내릴 정거장이 언제 다가올지 그들 자신도 예측할 수 없다."(p. 85). 이런 이야기가 있다. 평생을 경건하고 독실하게 살아온 남자가 있었다.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다섯 시간씩 신에게 기도했다(p. 96). 하지만 무신론자인 동생과 다르게 불행한 삶을 살다가 죽었다. 아내는 그를 떠났으며, 동업자는 배신했고, 자식들도 연락을 끊었다. 반면에 평생 한 번도 기도한 적 없는 그의 동생은 훌륭한 아내와 충실한 자식들에 둘러싸여 행복한 삶을 누렸다. 죽어서 신 앞에 선 경건한 남자는 물었다. "저는 불평하는 게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불평하는 타입이 결코 아닙니다. 아내가 떠났을 때도 당신께서 정해 주신 섭리를 믿으며 조금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자식들이 등을 돌렸을 때도 당신의 뜻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왜 이 모든 불행한 일이 무신론자인 제 동생에게 일어나지 않고 매일 다섯 시간씩 기도한 저에게 일어난 건가요?" 신이 말했다. "왜냐하면 그대는 재미없는 사람이기 때문이야! 매일 다섯 시 간씩 그대의 기도를 듣느라 나도 지겨웠어. 지루하게 살지 말라고 내가 그토록 속삭였는데 듣지 않았어." 묘비명에 '최선을 다했다.'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 지루하게 살았다.’가 적히면 안 되지 않겠는가(p. 97). 한 남자가 영적 스승을 찾아와 물었다. "영원한 행복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스승이 말했다. "바보들과 다투지 않아야 한다." 남자가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p. 109). 그러자 스승이 말했다. “그렇다, 그대의 말이 옳다.” 상대방이 마음을 열 준비가 되지 않은 메시지를 이해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앞에서는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돌아서면 나의 가슴과 의지에 따른다. 받아들임과 흘려보냄, 이 전략을 나는 계속 실천해 나갈 것이다. 당신이 누군가와 논쟁한다면 그것은 죽은 자와 논쟁하는 것이다. 누구나 머지않아 죽을 것이기에. 무기 같지도 않은 무기로 상대방을 이기려고 하는 대신, 빠르게 동의하고 자신의 시간을 창조적인 일에 몰입하는 것이 감정을 소모하지 않는 관계법이다. 무의미한 논쟁을 끝내고 삶의 심연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논쟁에서 이기는 내공이 아니라 논쟁에 휘말리지 않는 내공이다. 밀림 속에서 동물들이 사이좋게 살고 있었다. 불필요한 의견 충돌 없이 서로 양보하고 도와 가며 평화롭게 지냈다. 어느 날 호랑이와 당나귀 사이에 사소한 충돌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어떻게 논쟁이 촉발되었는지 아는 동물은 없지만, 당나귀가 한 말에 호랑이가 짜증을 내며 "풀은 초록색이야!" 하고 외치는 것이 들렸다. 당나귀는 모두가 놀랄 정도로 더 크게 외쳤다. “아니야, 풀은 파란색이야!” 그 후 “초록색!” “아니야, 파란색!,” "초록색이라니까!", “파란색이라니까!” 하고 연거푸 고성이 오갔고 시간이 가도 논쟁은 멈(p. 110)추지 않았다. 둘의 논쟁에 다른 동물들도 덩달아 편이 갈려 ‘초록색!’ ‘파란색!’을 외쳤다. 상황이 점점 심각해져서,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밀림의 세계가 파국을 맞이할 것이 분명했다. 마침내 동물들은 그들의 왕 사자를 찾아가 판결을 부탁했다. 사자는 당나귀와 호랑이의 주장을 듣고 나서 잠시 심사숙고한 후, 호랑이가 틀렸다고 엄숙히 선언했다. 판결에 따라 호랑이는 소란을 일으킨 죄로 1년 동안 밀림에서 추방되어야만 했다. 떠나기 전에 호랑이는 사자를 찾아가, 풀이 초록색이라는 사실을 온 세상이 다 아는데 왜 당나귀 편을 들고 자신을 벌했느냐며 하소연했다. 사자가 말했다. "물론 나도 풀이 초록색인 걸 안다. 하지만 어리석은 자와 논쟁을 벌였기 때문에 너를 벌한 것이다. 논쟁을 하려면 자신보다 지식과 지혜가 높은 자와 해야 한다. 어리석은 자와 무의미하게 논쟁함으로써 너는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그것이 네가 벌을 받는 진짜 이유이다."(p. 111). 저명한 정신과 의사이며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빅터 프랭클에게 마음의 병으로 고통받는 여성이 밤 늦게 전화를 걸어 곧 자살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랭클은 새벽까지 그 여성에게 말을 걸 었고, 그녀가 삶을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근거들을 하나씩 제시했다. 긴 설득 끝에 그녀는 목숨을 끊지 않겠다고 그에게 다짐했다. 나중에 그녀를 직접 만났을 때, 빅터 프랭클은 그가 제시한 여러 가지 근거 중 어떤 것이 그녀의 결심을 번복하게 했는지 물었다. 그녀는 단순히 "그것들 중 어떤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프랭클이 의아해하며 설명을 부탁하자, 그녀는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오랫동안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그의 자세가 그녀로 하여금 마음을 바꾸게 하고 삶을 살 가치가 있음을 이해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누군가를 원한다. 마음속에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품고 사는 것만큼 큰 고통은 없다. 기차 안에서 만난 그 인도인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위해 내 말을 들은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 들었다. 모든 만남의 궁극적인 의미는 조언이나 설교가 아니라 포옹이다. 포옹이 필요한 사람에게 강의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p. 120). 일상의 순간에 예술적 생명감을 불어넣은 사진작가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평생 삶의 결정적 순간을 찍으려 발버둥 쳤으나, 삶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평범한 사람이 특출난 사람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한 가지를 죽어라고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 문장에 '재미있게'라는 단어를 넣으면 더 완벽할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 특출난 사람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한 가지를 '재미있게' 죽어라고 하는 것이다." 그때 좋아하는 것이 세상과의 유쾌한 승부가 된다(p. 132). 우리는 시도하고, 시도하다가 생을 마치는 운명이다. 그것이 시든, 음악이든, 그 무엇이든 그대가 '이룬 것'을 들고 내게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툴고 거칠더라도 혼을 담아 ‘시도한 것’을 들고 오면 더 좋겠다. 그러면 나도 이 삶에서 시도한 것들을 보여 줄 것이다. 겨울 속에서 봄을 시도하고, 불완전한 환경에서 완전한 사랑을 시도하고, 굴레에도 불구하고 자유와 깨달음을 시도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많이 다른 존재가 아니다. 스트라빈스키의 또 다른 일화가 있다. 그는 매일 아침 작업실에 들어가면 맨 먼저 피아노 앞에 앉아 바흐의 푸가를 한 곡씩 연주했다. 그런 다음에야 10시간 작곡에 몰두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을 음악가라고 느끼는 의식이, 악보와 자신을 연결시키는 연주가 필요했을 것이다. 아니면 자신의 영웅인 바흐를 존경하며 그날의 작업을 위해 축복을 내려주기를 비는 의미였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손가락을 유연하게 하고, 일에 발동이 걸리게 하고, 마음이 음악을 생각하게 만드는 단순한 수단이었을 수도 있다. 어떤 이유였든, 작업실에서 매일 아침 반복하는 그 똑같은 행위가 자신의 일을 시작하는 의식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것이다. 그대의 바흐 푸가곡은 무엇인가? 그대가 하는 일이 단순히 취미 생활이 아니라면, 그 일을 그대의 삶 자체로 여긴다면 그대가 매일 하는 의식은 무엇인가? 나(p. 136)의 경우는 매일 아침 글을 쓰기 시작하기 전에 내 시집을 열어 내가 쓴 시를 한 편씩 읽는다. 지난 30년 동안 이것을 건너뛴 날이 거의 없다. 산문을 쓰든, 번역일을 하든, 다른 시인들의 시를 모아서든, 나 자신이 시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내 안의 시인에 연결되기 위해. 시인이며 소설가인 찰스 부코스키는 "네가 사랑하는 것을 찾으라. 그리고 죽을 만큼 그것에 빠져 보라"고 했다. 영혼의 작업에 다만 집중하라는 의미이다. 불꽃을 계속 태우는 것이 삶이다. 생을 불태우려면 자신이 불타는 것을 견뎌야 한다(p. 137). 상대방이 이야기할 때는 상대방이 주인공이 되어야 하며, 자신이 주인공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파머는 말한다. "인간의 영혼은 조언을 듣거나 바로잡아지거나 구원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봐 주고, 들어 주고, 동반자가 되어 주기를 원할 뿐이다. 우리가 고통받는 사람의 영혼에 깊은 절을 할 때, 우리의 그러한 존중은 그 사람이 고통을 극복하는 중요한 치유 자원이 된다."(p. 144). 어려울 때는 스스로 행복해지라는 티베트 속담이 있다. 우리는 희망하고, 절망하고, 희망한다. 이것이 우리의 날갯짓이다. 물에 얼굴을 박고 넘어져 있다면 당신이 할 일은 얼른 일어나는 일이다. 물속에서 산소를 찾거나, 아가미를 만들려고 할 것이 아니라. 기린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새끼 기린은 태어나면서부터 일격을 당한다. 키가 하늘 높이만큼 큰 엄마 기린이 선 채로 새끼를 낳기 때문에 수직으로 곧(p. 150)장 떨어져 온몸이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것이다. 충격으로 잠시 멍해져 있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는 순간, 이번에는 엄마 기린이 그 긴 다리로 새끼 기린을 세게 걷어찬다. 새끼 기린은 이해할 수 없다.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났고 이미 땅바닥에 세게 부딪쳤는데 또 걷어차이다니! 아픔을 견디며 다시 정신을 차리는 찰나 엄마 기린이 또다시 새끼 기린을 힘껏 걷어찬다. 처음보다 더 아프게!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진 새끼 기린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 머리를 흔든다. 그러다가 문득 깨닫는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계속 걷어차이리라는 것을. 그래서 새끼 기린은 가늘고 긴 다리를 비틀거리며 기우뚱 일어서기 시작한다. 바로 그때 엄마 기린이 한 번 더 엉덩이를 세게 걷어찬다. 충격으로 자빠졌다가 벌떡 일어난 새끼 기린은 달리기 시작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발길질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제야 엄마 기린이 달려와 아기를 어루만지며 핥아주기 시작 한다. 엄마 기린은 알고 있는 것이다. 새끼 기린이 자기 힘으로 달리지 않으면 하이에나와 사자의 먹잇감이 되리라는 것을, 그래서 새끼 기린을 무조건 걷어차는 것이다. 일어서서 달리는 법 을 배우라고. 당신은 엉덩이를 걷어차인 적이 몇 번인가? 별로 기억나지 않(p. 151)는다면 각오하는 게 좋다. 조만간 연타로 발길질 당할테니. 당신이라고 해서 삶이 살살 기분 좋게 굴리는 법은 없다. 그러나 걷어차이고 또 걷어차여도 당신은 일어설 힘이 있다. 당신은 기린 이니까. 카뮈는 "눈물 나도록 살라"고 말했다. 그리고 『백 년 동안의 고독』의 저자 마르케스는 "인간은 어머니가 세상에 내놓은 그날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 태어남을 강요하는 것은 삶이다."라고. 인생은 우리에게 엄마 기린과 같다. 때로 인생이 우리를 세게 걷어차면 우리는 고꾸라진다. 하지만 다시 비틀거리며 일어나야만 하고, 또다시 걷어채여 쓰러질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또다시 일어난다. 그것이 우리가 성장하는 방식이다(p. 152). 고통은 주로 단절과 고립에서 온다. 이때 필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연결'이다. 그것이 나의 경험이다. 비록 이것을 깨닫는 데 생의 반이 걸렸지만. 꽃이 피지 않으면 꽃이 아니라 꽃이 자라는 환경을 바꿔야 한다. 누구나 삶에서 고립을 경험하고, 그때 세상과의 연결을 위해 나름의 몸짓을 한다. 우리에게는 그 몸짓을 읽는 연민과 공감의 눈이 필요하다. 홀로된 그녀의 분노와 싸움 역시 세상과 연결되기 위한 필사적인 시도였다. 비록 방법은 부정적인 것이었지만, 그 몸짓이 강하게 말하고 있는 것은 이것이었다. "나는 살아 있어요. 나는 연결되고 싶어요. 나는 투명인간이 아니에요." 혹시 당신도 고립된 감정의 덫에 걸려 있다면, 다히 카엥기?(p. 165). 내가 아는 사람의 실제 이야기이다. 신은 비극과 상실을 일으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그렇게 우리가 깨달음을 얻고 가슴이 원하는 삶으로 나아가게 한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자신이 계획했던 삶을 기꺼이 놓아 주어야 한다.(조셉 캠벨) 우연을 거부하는 것은 신의 계획을 무효화시키 는 것과 같다. 인생은 길을 보여 주기 위해 길을 잃게 한다. 돌아가는 길투성이의 인생에서 뜻대로 되지 않는 일과 행복한 일은 동시에 일어 난다. 플랜A보다 플랜B가 더 좋을 수도 있다, 가 아니라 더 좋다. 플랜A는 나의 계획이고, 플랜B는 신의 계획이기 때문이다(p. 181). 일본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단편소설 『열흘 밤의 꿈』 에서 일곱째 밤 이야기의 주인공 남자는 큰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건넌다. 그런데 그 배를 타고 있는 이유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 뱃사람을 붙잡고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만 알 수 없는 말만 한다. 언제 육지에 닿을지도 모른다. 배에는 외국인도 있고 형형색색의 사람들이 타고 있다. 난간에 기대 울고 있는 여자도 있다. 자신이 배에 타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사람들도 있다. 불안하고 따분해진 나머지 남자는 죽기로 결심한다. 어느 날 밤,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배의 난간에서 뛰어내린다. 그런데 발이 갑판을 떠나 배와 인연이 끊긴 그 찰나, 그는 갑자기 목숨이 아까워진다. 뛰어내리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멀어져 가는 배 안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를 듣고 문(p. 193)득 다시 살고 싶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더 이상 그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절망 속에서 몸은 바다를 향해 다가가고 검푸른 물에 점점 가까워진다. 마지막으로 남자는 생각한다. 나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배일지라도 역시 타고 있는 편이 나을 뻔했다고 비로소 깨달았다. 하지만 그 깨달음을 이용하지도 못한 채 한없는 후회와 공포를 안고 검은 파도 속으로 조용히 떨어져 내렸다. 내가 선택한 이 길, 나에게 손짓하던 그 많은 무화과 중에서 이 열매가 나에게 최선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이 배를 끝까지 타고 가서 목적지를 확인할 것이다. 내일은 내가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르지만 끝까지 가보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성실함이다. 어차피 나는 죽음에 패배하기 위해 태어났다. 하지만 아름답게 패배하는 것은 나에게 달린 일이다. 심장이 침묵한 것 같으면 스스로 심장을 깨워 그 고동 소리를 들어야 한다(p. 194). ‘사람들은 죽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죽으면 더 이상 불평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말에 나는 동의한다. 긍정적인 감정이 좌뇌에서 간단히 처리되는 반면에 부정적인 감정은 우뇌에서 훨씬 많은 분석과 사고 과정을 거친다고 뇌신경학자들은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 감정보다 불쾌한 감정과 사건을 묘사할 때 더 논리적이고 강한 말들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렇게 발달한 우뇌는 부정적인 것을 발견하는 일이 습관이 된다. 그것이 인간 뇌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있다. 동화가 필요한 순간이 바로 그때이다. '학자처럼 공부하고 동화의 주인공처럼 살라'는 말은 소중한 금언이다(p. 218).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앨리스 카하나는 헝가리 출신의 유대인 화가이다. 열다섯 살 때 독일군에 의해 가족 전체와 함께 아우 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다. 그녀는 그곳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생존자 중 한 명이다. 전쟁 후 미국으로 이주해 텍사스 주에서 살며 화가로 활동했다. 그녀에게 일생 동안 마음을 떠나지 않은 뼈아픈 기억이 한 가지 남아 있었다. 수용소로 이송되면서 그녀는 강제로 부모와 분리되었고, 여덟 살 남동생을 책임지게 되었다. 다시 트럭에 실려 어느 장소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아래를 내려다보고서야 동생이 신발을 한 짝만 신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도중의 어딘가에서 다른 한 짝을 잃어버린 것이다. 누나가 어린 동생에게 흔히 하듯이 그녀는 부주의한 동생을(p. 242) 나무라며 소리쳤다. "넌 왜 그렇게 바보 같니! 너 자신의 물건 하나도 제대로 못 챙기니?" 누구라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일이었다. 더구나 갑자기 밀어닥친 혼란과 비극 속에서 모두가 신경이 불안하고 날카로워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가 동생에게 한 마지막 말이 되고 말았다. 곧바로 동생은 다른 트럭으로 끌려갔고, 그 후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반세기가 지난 후에도 앨리스 카하나는 마음의 구멍을 메울 수 없는 그 아픈 기억을 이야기하며 눈물지었다. 아우슈비츠에서의 사건 이후 그녀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하는 말이 그 사람에게 한 마지막 말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전시관에 가면, 그곳에서 희생된 어린아이들의 신발이 쌓여 있는 곳을 지나갈 때가 가장 슬프고 고통스럽다고 한다. 카하나의 남동생도 그곳 가스실에서 숨졌다. 어떤 것이 진실과 사실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서로를 지적하고 비난하는 말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내용은 서로의 관점에서 대부분 옳다. 하지만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그 사람에게 하는 마지막 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 기억이 오래도록 자신을 아프게 할 수도 있으며, 나(p. 243)아가 다른 인간관계까지 공허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p. 244). 인간의 입술은 마지막으로 발음한 단어의 형태를 보존한다고 한다. 상대방에게 하는 마지막 말도 입술의 형태로 그 사람 가슴에 남을 것이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한 마지막 말은 무엇이었을까? 헤어진 후에도 남는 그 말은? 영어의 '말word'과 '칼sword'이 같은 단어를 가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 둘을 잘못 사용할 때 같은 결과를 낳는 것도(p. 246).
-
- 오피니언
- 책소개
-
【북토크443】 후회 없기 위해서 삶을 돌아보며 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