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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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 기자를 내쫓는 노회들...무엇이 두려운가?
    봄 정기노회가 열리는 계절이다. 서울에서 먼 지방의 몇몇 노회를 취재갔다. 그 중 2개 노회에서 “내쫓김”을 당했다. 이리노회는 북일교회 문제로 회원 호명 때부터 시끄러웠다. 결국 노회원들간에 고성이 오갔다. 이런 가운데 취재하고 있는 기자들에게 나가달라고 "거칠게" 요구했다. 결국 쫓겨날 수 밖에 없었다. 충청노회도 전 총신대총장 김영우 목사 피소건에 대해 다루며 기자들에게 나가달라고 “험악하게” 요구했다. 결국 본당 중이층으로 쫓겨갈 수 밖에 없었다. 기자는 사실을 취재하고 알리기 위해 그 현장에 가 있는 것이다. 북일교회 문제는 대부분의 총회원들이 알고 있을만큼 큰 이슈이다. 당연히 기자들이 가서 취재할 수 밖에 없는 사항이다. 기자는 총회원들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대신해서 그 현장에 간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기자들을 내쫓는 것인가? 그것이 과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겠는가? 기자가 보면 안될만큼 감춰야할 문제가 있는가? 사실을 사실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문제 없는 노회는 취재간 기자들을 반기며 좋게 기사를 써서 노회를 잘 홍보해 달라고 부탁한다. 기자로서도 기분좋은 일이다. 반면 문제 있는 노회는 기자를 내쫓는다. 마치 잡상인 취급을 한다. 부득이 기자를 내보낼 필요가 있다면 “정중하게” 요청했으면 한다. 같은 합동측 목사한테 그렇게 함부로 해서 되겠는가? 앞으로도 “문제 있는” 이리노회와 충청노회 “사태 추이”에 대해 예의주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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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4-04-03
  • 【북토크】 편협한 꼰대가 되지는 말아야 할텐데....
    자기 생각에 갇혀 사는 사람은 편협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하고는 대화도 되지 않는다. 열린 사고가 필요하다. 남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개방해야한다. 죽고 사는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면 “그럴수도 있구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편협함 공부를 하면서 문득 깨달은 건, 법률 외에 삶의 모든 기준들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 기준들은 절대불변의 진리가 아니어서 주변사람에게 영향을 받아 생성되기도 하고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세워지기도 한다. 또 삶의 경험이 켜켜이 쌓이면서 조금씩 견고해지고 구체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렇게 여러 기준들을 만들어 옳고 그름을 평가하는 일은 어쨌거나 사람이 하는 것이란 점에서 언제나 주관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너무 쉽게 각자가 세운 판단 기준이 ‘정답’이라고 착각한다. 사람은 쉽게 타성에 젖으니 자신의 판단 기준과 결론이 절대적인 단 하나의 정답이라 믿으며 자기 우물 안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 기준에 정답이란 없기에 자신이 바르고 타당한 기준을 세워가며 나이 먹고 있다는 생각도 사실 편협한 ‘착각’에 가깝다. 나이를 먹는 일이 무서운 건 나도 모르는 새 나의 판단이 바르고 타당한 정답이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어떤 조직에 잘 적응한다는 것은 곧 그 곳의 기준을 잘 습득해 체화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공동체에서 튀는 사람이 되기 싫어서 공동체의 평가 기준을 답습하기도 하고, 나는 다르다 여기며 살아도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그 밥에 그 나물처럼 사고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쉼 없이 자신의 옳고 그름을 고집하기도 하고 자신의 결핍된 부분을 숨기기 위해 고집스러운 기준으로 타인을 깎아 내리기도 한다. 입만 열면 세상 곳곳에 대한 불만을 쏟아 내는 투덜이 스머프 같은 사람이 있었다(입만 열면 남의 흉을 보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 결이랑은 또 다르다). ‘이건 이래서 구리고, 저건 저래서 구리고’, ‘그런 사고방식이 말이 되느냐. 말은 그렇지만 속내는 이런 것 아니겠느냐’하는 식으로 언제나 자신 밖의 사람과 상황에 대해 평가만 늘어놓는 사람이었다. 초반에는 그가 솔직하고 유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어떤 것. 누군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 지 밝히는 것은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그 취향과 기준을 고백하는 것이 자신의 약점이 될 수도 있는 데 저렇게 쿨하게 늘어놓다니! 성격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화의 주된 발언이 자기 자신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평가이다 보니 들을수록 의아한 지점이 생겼다. 당신에게 평가할 자격이 있는지, 타인이 당신에게 평가 받아야 할 이유가 있는지, 평가할 자유가 있다고 해도 당신의 평가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는지 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의 평가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에 대한 인상 또한 '예리하고 유쾌한 사람이다' 라기 보다 ‘어딘가 모르게 편협하다’, ‘편협함을 자랑하는 태도가 참 멍청하다’까지 이어졌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 몇몇 단정적인 말들에서 그가 타인에 대한 평가를 거침없이 내뱉을 수 있었던 까닭을 눈치 첼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은 자신의 말이 정답이라고 여겨서 가능했던 것 이었다. 자기 말이 정답인 사람 곁에 다른 의견들은 오답처리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자신의 의견이 오답이 되 는 대화를 좋아라할 사람은 없다. 그렇게 그는 자기주장이 뚜렷한 사람에서 편협한 사람으로 점차 다르게 기억 됐다. 중학생 때 유독 적이 없었던 한 친구가 떠오른다. 말수가 적어서,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아서, 호불호가 없어서가 아니라 ‘편견’이 없어서 두루두루 모두와 잘 지내는 친구였다. 그는 어떤 친구들에게도 늘 같은 태도로 화답했다. 편견, 그러니까 그 편협함은 끊임없이 나를 위해 타인을 배척하는 수단이 된다. 진정한 세월의 지혜는 오히려 '편견 없음'에 가까울 거라 생각한다. 타인을 판단하는 가장 괜찮은 기준은 포용이 아닐까? 타인과 자신에 대해 사람은 언제나 ‘알 수 없음’ 한 줌은 가지고 사니까. 견고한 기준은 편협한 생각의 방증일지도 모른다(pp. 178-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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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31
  • 【북토크】 自害가 생존전략이라니....
    나는 상담, 심리 관련 책도 좋아한다. 대학때부터 지금까지 기회 되는대로 읽고 있다. 우연히 보게 된 이 책에서 “자해도 생존방법”이라는 것에 작은 충격을 받았다. 오죽하면 살기 위해 자기 몸에 해를 주는 것인가? 길지 않은 인생을 사는데도 참 힘들다. 세상에 불쌍한 사람들이 참 많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이들과도 더불어 살려면 무엇을 해야하는가 고민하게 된다. 자해하는 게 문제라고 말하며 부모님 권유로 상담실에 온 고등학생 내담자를 만났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사소한 일로 친구들과 사이가 멀어졌고 왕따를 당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학교 가는 게 힘들어서 지각과 결석을 반복하며 적응이 더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친구들이 자신에 대해 안 좋게 말할까 봐 계속 예민한 상태로 있다 보니 피곤하고,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워서 거의 책상에 엎드려 있는다고 합니다. 반대로 온라인에서 만난 학교 밖 친구들과는 관계를 잘 맺고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웃으면서 인기가 많다고 얘기 하다가 이내 걱정하는 얼굴로, 사실 인기가 많은 이유는 친구들을 잃을까 봐 엄청나게 신경을 쓰면서 친구들 비위를 다 맞춰주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습니다. 학교에서는 왕따니까 밖에서 힘들게 만든 친구들이라도 잃지 않기 위해 친구들이 부르면 거절하지 못하고 모든 모임에 나가고 친구들 말을 들어주고 웃어주느라 에너지가 다 빠진다고 했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날도 즐거운 것처럼 친구들과 놀고, 막상 집에 오면 허무하고 외로운 마음이 든다고 합니다. 혹시나 말실수해서 친구들이 자신을 싫어하게 될까 봐 매번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자신이 잘못한 게 없는지 확인 한다고 합니다.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한 상태로 가득 차 있다가 가족들의 말 한마디에 갑자기 화를 냅니다. 우울한 기분, 친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공허한 느낌, 불안감이 뒤섞이면서 마음이 터질 것 같은 상태가 된다고 합니다. 그럴 때 자해를 하게 된다고,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고, 나지막이 말 합니다. 물속에 오래 있을 때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안 쉬어지다가 수면 위로 올라오면 숨이 크게 내쉬어지는 것처럼, 자해하고 나면 숨이 쉬어지고 살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많은 내담자가 말합니다. 자해는 화가 나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이자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수단입니다. 아무런 감각이나 감정을 느끼지 못할 때 무언가를 느끼도록 도와주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요청하는 방법입니다. ‘자해는 나쁘다, 절대 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올 수도 있지만, 자해는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생존전략이 됩니다(pp. 7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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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31
  • 【북토크】 문학을 통해 배운 것들
    이 책의 저자는 문학을 통해 배운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세상을 바라볼 때 시선의 위치와 방향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시야가 달라진다는 것,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일,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듣고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보는 일, 한 편의 소설을 읽고 내 안의 무언가가 완전히 바뀌어버리는 일 또한 가능하다는 것, 인간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고 쓰면서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다른 사람이 되는 일을 꿈꾸면서도 끝내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 이 모든 것을 나는 문학을 통해 배웠으며 이 경험이 나를 바꿨다는, 어쩌면 너무나도 문학도 같은 이야기다” 나는 이 글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래서 지금도 이 “재미”에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은 직접 문학 작품을 다루지는 않는다. 저자는 넥플릭스, 왓챠, 웨이브 등 여러 OTT에 있는 드라마나 영화를 소재로 이 책 한권을 썼다. 물론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도 많다. 내공이 보통이 아니라는 느낌을 갖는다. 나는 이런 글을 쓸 실력이 없어 감탄하면서 봤다. 유홍준 교수는 그의 역작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했다. 모르면 보이지 않는다. 기회가 되면 이 책의 저자처럼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글도 써보고 싶다. 그럴려면 아들이 가입해 놨지만 안 보고 있는 넥플릭스를 열심히 이용해야 할 것 같다. 할 일이 또 하나 늘었다. 이 또한 새로운 도전이니 기대가 된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서른 줄에 접어든 이후로는 이야기할 일이 거의 없긴 하지만, 피치 못할 이유로 전공을 언급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괜히 머쓱해진다. 직업이 작가이기 때문이다. 작가인데 국어국문학과를 나왔다고 하면 "전공을 살리셨구나!" 같은 말을 듣게 되고 만다. 전공을 살린 것일까? 괜히 골똘해졌다가는 국어학과 국문학의 차이라든가, '과연 어디까지가 문학인가'라는 질문이라든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해서 작가가 되면 전공을 살린 것인가 아닌가 같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게 되기 때문에, "그런가요?" 하고 대답한 뒤 얼른 소재를 바꾸는 것이 좋다. 그러지 않으면 "국문과가 굶는 과라던데... " 하는 식의 무례한 농담을 듣게 되어버리고 만다. 이 농담을 들을 때면 미소 비슷한 것도 지을 수 없기 때문에 재빠른 소재 전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봐도 국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작가가 된 것 같지는 않다. 인과관계가 없는 일로 보인다. 학과 공부가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거나 쓸모없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문학이 정말 재미있었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했고, 그래서 상당히 많은 영향을 받았다. 문학 작품을 읽고, 문학을 배우고, 듣고, 공부하며 보낸 20대 초반의 몇 년간, 내가 세상을 보는 법은 달라졌다. 이 시절의 경험이 내 삶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또 나의 어떤 부분을 바꿨는지를 전부 말하자면 너무 긴 이야기가 될 것이다. 줄여서 말해보자면, 나는 문학을 통해 이런 것들을 배웠다. 세상을 바라볼 때 시선의 위치와 방향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시야가 달라진다는 것,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일,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듣고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보는 일, 한 편의 소설을 읽고 내 안의 무언가가 완전히 바뀌어버리는 일 또한 가능하다는 것, 인간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고 쓰면서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다른 사람이 되는 일을 꿈꾸면서도 끝내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 이 모든 것을 나는 문학을 통해 배웠으며 이 경험이 나를 바꿨다는, 어쩌면 너무나도 문학도 같은 이야기다(pp. 139-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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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8
  • 【북토크】 한 대형 교회의 탄생과 몰락
    세상에는 별별 사람들이 있고, 별별 책들이 있다. 이 책도 그 중 하나다. 우연히 읽게 됐다. 읽다보니 재밌어서 끝까지 보게 됐다. 세계 여러 곳의 버려진 건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목사 아니랄까봐 그중 교회에 대해 다룬 이야기에 관심이 갔다. 큰 돈으로 지은 교회가 결국 교인들의 이사로 숫자가 줄자 큰 건물 유지에 실패하고 버려진 이야기다. 얼마전 아랫 지방에서 열린 노회를 취재했다. 교회가 매우 컸다. 그런데 외진 곳이라해서 부목사나 여전도사나 부교역자가 한명도 지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방 작은 동네에 있는 이 큰 교회가 앞으로도 잘 유지가 될 수 있을지 염려스럽다. 인구감소는 절벽이라 지방은 소멸하고 있고 사람들은 먹고 사느라 종교에 관심이 없는데 앞으로 50년 후에도 그 큰 교회가 교회로서 제대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적의 도시'는 왜 미국의 살인 수도'가 됐을까-시티감리교교회(GARY CITY METHODIST CHURCH) 미국 인디애나주의 공업 도시 가운데 가장 젊은 도시인 게리Gary는 미시간호 남쪽에 40.46제곱킬로미터쯤 펼쳐진 습지에서 1906년에 태어났다. 시카고에서 고작 64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게리는 유나이티드스테이츠철강 United States Steal Corporaton(Us스틸)이 낳은 도시다. US스틸은 게리에 시간과 에너지, 비용을 쏟아 최첨단 공장을 짓는 대신 공장 노동자를 위한 마을은 눈에 띄게 무성의하게 계획했다. 예를 들어 게리에서는 시민이 아니라 철강 공장을 중심으로 전력 공급을 조절했기 때문에 가로등이 깜박거리곤 했다. 하지만 게리를 '기적의 도시' 나 '마법 같은 도시', '금세기의 도시'라고 부르며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금세기의 도시'라는 별칭은 게리의 앞날을 어느 정도 예언했다. 게리는 20세기의 우여곡절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렸고, 도시의 운명은 미국 제조업의 호황과 불황에 따라 요동쳤다. 도시 인구는 유럽 에서 이민자가 쏟아져 들어오고 짐크로Jim Crow법(공공시설에서 백인과 유색 인종을 분리하는 남부 주들의 법률로 1876년부터 1965년까지 시행됐다. 옮긴이)이 시행되는 남부에서 아프리카계 시민이 몰려오며 대거 늘어났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는 실업과 소위 백인 탈출white flight(백인 중산층이 도심에서 교외로 탈출하는 현상. 옮긴이) 탓에 인구가 대폭 줄어들었다. 게리의 인구는 1960년에 17만 8000명으로 절정에 달했지만, 오늘날에는 7만 8000명 미만이다. 도시가 이름을 따온 주인공은 엘버트 H. 게리라는 기업 변호사이자 카운티 지방법원 판사다. 그는 US스틸에 융자해준 존 피어폰트 모건의 의견에 따라 기업의 이사회 회장에 임명되며 기업가로 변신했다. 게리는 노동조합과 노동자 권리에 반대하고자 성경을 선택적으로 인용하는 독실한 사람이었다. 자존심이 강하고 유머 감각이라곤 없는 이 도덕주의자는 하얗게 센 머리와 콧수염을 깔끔하게 정리한 모습으로 귀족적 분위기를 풍겼다. 신도시에 게리라는 이름을 붙이자고 제안한 사람도 그였다. 모건이 “물렁뼈 아첨꾼”이라고 맹비난할 만큼 교활한 수완가였던 그는 이사회의 반대를 노련하게 물리쳤다. 사실 이사회는 새 도시에 US스틸 회장 윌리엄 엘리스 코리의 이름을 붙여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미국 우체국도 신도시의 명칭을 게리로 정하면 메릴랜드주의 게리와 헷갈릴 것이라며 반대했다. 중서부에서 나고 자란 게리는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가 설립된 후에도 계속 뉴욕에 머물렀지만, 내 마음은 인디애나주 게리에 있다"라고 자주 주장했다. 1920년대에 그는 급증하는 게리 인구에 헌신할 새로운 감리교 교회를 세우는 사업도 열정적으로 후원했다. 교회를 지을 부지를 제공하고 기업 자금 35만 달러를 공사 기금으로 내놓는 안을 승인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4단 건반 어니스트 스키너 파이프 오르간까지 개인적으로 기부했다. 아마 게리는 교회가 재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계획되었고, 예배를 보는 본관 외에도 사회적, 교육적 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맡은 별관이 들어선다는 데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이 계획은 진보적인 지역 목사 윌리엄 그랜트 시먼 박사가 주도했다. 인디애나 출신으로 보스턴신학교를 졸업하고 인디애나 그린필드의 드포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던 시먼은 1916년에 다코타웨슬 리언대학교에서 게리로 왔다. 게리에서 그는 낙천적 성격 덕분에 '서니 짐 Sunny Jim(명랑한 짐. 옮긴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아울러 인종적 관용과 더 커다란 통합을 지지하며 큰 목소리를 냈다. 1924년, 그는 큐클럭스클랜(K.K.K)을 영웅으로 묘사하는 D.W. 그리피스의 영화 <국가의 탄생>이 "인종적 편견을 일으킨다"며 오르페움 극장에서 상영을 중단해달라고 게리 시장 R. O. 존슨을 압박했다. 안타깝게도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해 12월, 누군가가 어느 흑인 남성을 공격한 후 휘발유를 들이붓고 불을 질러서 심각한 화상을 입혔다. 가해자는 끝내 체포되지 않았고, 게리에서는 인종차별적 공격이 급증했다. 시먼은 교회가 게리의 모든 공동체를 하나로 모으기를 바랐다. 그러나 수많은 백인 신도의 저항과 인종 차별 탓에 모두를 포용하는 교회를 만들겠다는 그의 꿈은 꺾이고 말았다. 시먼은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제작한 팸플릿에서 교회에 관한 자신의 비전을 이렇게 설명 했다. "쇠와 철을 만드는 건장한 노동자, 활발하게 영업하는 상업가, 바쁜 여성, 성장하는 아이들은 주일에 한 시간뿐만 아니라 주중에도 매시간 주님의 영향력을 확인하며 그리스도가 살아계신다고 확신합니다. 따라서 시내 교회에서 예배 계획과 포괄적인 목회 활동 계획을 마련했습니다. 교회는 일주일 내내 문을 엽니다. 교회는 청년과 노인을 위해 기독교 교육, 건전한 오락, 매력적이고 순수한 여흥 거리를 제공합니다. 무엇보다도 교회는 도시의 중심부에 기독교의 우애 정신을 불러옵니다" 게리의 시티감리교교회는 고딕 양식을 완벽하게 부활시킨 장중한 작품이자 중서부 최대의 감리교교회였다. 시카고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건축 회사 로앤드볼렌바허Lowe & Bplenbacher가 인디애나 베드퍼드의 석회암을 사용해서 21개월 만에 완공했다. 1926년 10월 3일에 시먼이 첫 예배를 집전했고, 게리에서는 일주일 동안 밤마다 축하 행사가 열렸다. 목사 관저 뒤로 각종 사무실과 체육관, 극장 홀까지 품은 9층짜리 건물이 들어섰다. 교회에서는 강연과 대담, 연극, 스포츠 행사(정규직 직원 여섯 명 중에는 스포츠 감독도 있었다), 공공 행사, 음악 콘서트, 종파를 초월한 공연과 쇼, 심지어 영화 상영까지 이루어졌다. 그런데 1700명쯤 되는 신도 가운데 일부는 교회 건물이 지나치게 가톨릭적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교회 단지 전체를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은 시먼이 처음에 계산했던 것보다 더 컸다. 유지비 탓에 자금이 계속 부족해졌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해졌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도 찾아오게 만들어서 수익을 개선하고자 카페테리아를 만들자는 계획이 제안되었다. 하지만 자기 식당의 손님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던 주요 감리교 식당의 주인이 반대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볼링장을 만드는 계획도 거론된 듯하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어쨌든 교회가 춤과 저속한 언어를 반대했으니 젊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고단한 일상에서 벗어나 느긋함을 즐기려는 사람들은 언행을 조심할 필요가 없는 데다 술도 마실 수 있는 무허가 술집에 드나드는 편을 더 좋아했다. 시먼은 1929년에 결국 신도들에게 쫓겨나서 오하이오주 랭커스터 교구로 옮겼다. 그는 게리를 떠나면서도 이곳에는 "진보와 환대라는 진정 서구적인 정신"이 있다며 게리를 여전히 사랑한다고 밝혔다. 그는 1944년에 자동차 사고로 숨졌다. 유언에 따라 시먼의 유해는 그 자신이 설립에 힘을 보탰던 게리의 교회에 묻혔다. 전후 종교 부흥기였던 1950년대에 게리의 시티감리교교회는 무려 3000명이나 되는 신도수를 자랑했다. 백인과 중산층이 대다수였던 교회 신도는 게리의 심각한 인종간 불평등을 반영했다. 게리는 당대 미국 복부에서 인종 차별이 가장 극심한 도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1960년대로 접어들자 부유한 백인이 교외로 떠나기 시작했다. 철강 산업에서 해외 경쟁이 치열해지고 자동화가 확대되면서 정리해고가 발생하자 도심 범죄율도 증가했다. 결국 교회 신도 숫자가 점차 줄어들었다. 1973년에 교회의 신도는 겨우 320명뿐이었고, 이 중에서 예배에 꾸준히 나오는 사람은 3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2년 후, 시티 감리교 교회는 문을 닫았다. 인디애나대학교가 교회와 이웃한 홀 일부를 인수했지만, 교회를 대신할 용도를 찾지 못했다. 게리가 "미국의 살인 수도"라는 부끄러운 이름을 얻은 1993년, 교회는 이미 무너져가는 겉껍질로 변해 있었다. 4년 후에는 화재가 건물 전체를 휩쓸었고, 복구를 향한 희망을 완전히 꺾어놓았다. 2000년대로 들어선 후 한동안은 철거가 유일한 답인 듯했지만, 이제는 공원 조성이라는 가능성이 새로 생겨났다. 이 도심 속 에덴은 러스트벨트에서 가장 고통받은 도시, 가까운 과거는 괴로웠고 미래는 불안한 이 지역에 위안이 되어 줄지도 모른다(pp. 274-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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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8
  • 【북토크】 나는 집에서 죽고 싶다
    나는 아직 60살도 되지 않았지만 예전부터 “늙음”과 “죽음”은 늘 나의 관심사다. 그래서 이와 관련된 책들은 기회가 되면 읽는다. 이번에도 우연히 이 책을 읽게 됐다. 일본은 아무래도 초고령사회다 보니 노년과 죽음에 대한 책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다 집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밖에서 죽으면 “객사”라고 했다. 그런데 요즘은 대부분 병원에서 “객사”한다. 장례 문화가 바뀐 것이다. 저자는 간병 제도를 통해 각자의 집에서 생을 마감하기를 바라고 있다. 80세 중반을 넘어서는 연로하신 부모님과 함께 사는 입장에서 마지막이 평안하시기를 바라고 있다. 가능하시면 집에서 자연스럽게 돌아가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마지막 순간, 누가 꼭 옆에 있어야 할까? 이제 고독사의 정의 중 마지막으로 하나가 남았다. 바로 두 번째 '입회인이 없는 죽음'이다. 그런데 죽어가는 사람에게 입회인의 유무가 그렇게 중요할까? 혼자 사는 고령자라면 당연히 집에 혼자 있다. 다른 사람이 가끔 오갈 수도 있지만 24시간 내내 누군가가 있을 리는 없다. 싱글은 혼자 살고 혼자 나이를 먹으며 혼자 간병을 받는다. 그러다 어느 날, 혼자 죽는다. 이게 그렇게 특별한 일인가? 나도 기본적으로 혼자 있는데 죽을 때만 갑자기 온 친척과 지인에 둘러싸인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마음이 불편하다. 가족과 함께 살아도 가족이 자고 있거나 외출하는 경우도 있다. 지방에는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이 많지만 낮에는 일 하러 모두 나가서 간병 필요도 4등급이나 5등급을 받은, 한 마디로 자리보전한 고령자가 하루 종일 집에 혼자 있는 일이 흔하다. 요즘은 '며느리'라는 이름의 성인 여성이 24시간 집을 지키지도 않는다. 가족이 미처 지켜보지 못할 때 죽으면 그것도 입회인이 없는 죽음'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시설이나 병원에 있으면 고독사는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시설도 직원이 몇 시간 간격으로 보러 올 뿐이다. 간호사가 병실을 순회한 후 다음 순회를 하기 전에 죽을 수도 있다. 병원이라고 간호사가 24시간 주시하지도 않는다. 각종 모니터가 붙어 있으니 이상을 알리는 알람이 울리면 누군가가 달려오겠지만 그도 결국은 기계가 알려주는 죽음이다. 그뿐 아니라 의사가 매뉴얼에 따라 전기 쇼크나 심장 마사지를 시작하면 평온해야 할 죽음이 화재 현장처럼 변할지도 모른다. 일본재택호스피스협회 회장인 오가사와라 씨는 이를 병원 내 고독사'라고 부른다. 병원이나 시설에 있다고 해서 반드시 입회인이 있는 죽음'을 보장받지는 않는다. 덧붙이면 오가사와라 씨는 사람은 죽을 때를 “고른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손자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가 죽는다든 지. 가장 좋아하는 요양보호사가 지켜볼 때 숨이 끊어지는, 정말 실화일까 싶은 에피소드를 수없이 들었다. “어떻게든 장남이 올 때까지 버텨달라”는 가족의 강력한 요구에 무리하게 연명 처치를 하는 일도 있다. 오가사와라 씨는 그동안 혼자 사는 사람을 수없이 간호했지만 혼자서 죽는 사례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오가사와라 클리닉에서 혼자 사는 사람을 간호한 사례가 적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이제는 사례가 많이 쌓여서 세 자릿수에 달하는 것을 보고 선생님, 아무도 없는 곳에서 죽는 사람도 있긴 하죠?"라고 물으니 "그렇죠, 이제 다양해요"라고 했다. 아무렴 그렇지 싶었다. 임종관리사를 양성하고 있는 시바타 구미코 씨는 '혼자서 죽게 하지 않겠다', 안아주며 보내겠다'며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다. 시바타 씨는 아무리 힘든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라도 마지막 1%가 행복하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성공이며, 그 마지막 1%를 도와주는 사람이 임종관리사라고 말한다. 나는 내 책 『케어의 카리스마적 리더들』에서 그녀와 대담을 나눴는데, 내가 "전 혼자서 죽을 거예요" 라고 하자 그녀는 "혼자 두지 않을 거예요. 가실 때는 제가 꼭 안아드릴게요"라고 말했다(웃음). 그런데 고령자 그룹 리빙 홈인 '코코(COCO) 쇼난다이'에서 지내는 사이조 세쓰코 씨에게 들은 이야기다. 말기 암으로 죽어가는 입소인이 있어 마지막까지 한시도 혼자 두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동료들과 돌아가면서 지켰는데, 죽어가던 그 사람이 "가끔은 혼자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나는 취재를 하면서 이런 에피소드를 들을 때 흥미롭다. 나는 강연 중에 "죽을 때 자녀나 손자에게 둘러싸이고 싶나요?", "누군가가 손을 잡아주면 좋겠나요?"라는 질문을 한 다. 그런데 그 반응을 보면 지역 차가 크다. 어느 지방에서는 고령의 한 남성이 자신 있게 손을 들었다. 어느 지방 도시에서는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도쿄에서는 500명 이상의 고령 여성이 일제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손을 잡아주기를 원한다고 한들 아무나 좋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일까, 아니면 요양보호사여도 상관없다는 것일까. 오래 살면 사랑하는 사람이 한 명씩 사라진다. 이는 숙명이다. 임종을 맞을 때, 사람은 주변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있느냐고 호스피스 의사에게 물은 적이 있다. "아니요, 알 수 없어요. 임종 직전에는 뇌 내 마취약이라고 불리는 엔도르핀이 나와서 옆에 누가 있든 상관없어요"라는 답변도 있었고, 누가 손을 잡아줘도 모를 거예요"라는 답변도 있었다. 그래서 "선생님은 죽어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아시죠?'라고 물으니 죽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알 수 있다고 했다. 오감 중 청각만은 마지막까지 남아 있어서 말을 걸어주는 게 좋다는 의사도 있다. 이런 에피소드도 들었다. 자녀와 손자들이 누워 있는 할아버지를 둘러싸고 말을 걸었더니 할아버지가 확실한 발음으로 "시끄럽다"고 했다는 일화였다. 죽을 때만이라도 조용히 죽게 해달라는 그 기분을 나는 이해한다. 오랜 지인 중에 평생 고독하게 산 싱글 남성을 돗토리시의 호스피스 의사 도쿠나가 스스무 씨에게 소개한 적이 있다. 혀암 수술 이후 목소리를 잃은 지인은 의사와 필담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자기 집에서 죽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그는 어느 날 아침 요양보호사가 방문해보니 침대에서 죽어 있었다고 한다. 주변을 모두 정리하고 홀로 훌륭하게 죽음을 맞이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서예와 전각, 술과 차를 즐겼던 고고한 그에게 어울리는 죽음이었다. 작별 인사와 감사의 말은 미리미리 하자 그렇다면 '입회인 없이 죽을까 봐 걱정하는 것은 죽어가는 사람일까 남겨지는 사람일까? 취재하면서 보니 임종을 지켜보고 싶어 하는 쪽은 죽는 사람이 아니라 남겨지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를 '임종 입회 콤플렉스'라고 이름 붙였다. 엄마와 단둘이 살면서 오랫동안 간병해온 지인은 자신이 외출한 사이에 엄마가 돌아가시자 자신을 탓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시간을 보냈으니 마지막 잠깐을 놓쳐도 괜찮지 않나 싶었지만 본인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동안 작별 인사와 감사의 말을 전할 시간은 충분히 있었을 텐데 꼭 죽어가는 사람에게 매달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초고령 사회의 죽음은 속도가 느리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죽음이다. 작별 인사와 감사의 말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미리미리 하는 게 좋다. 작가 이시무레 미치코 씨가 임종을 맞았을 때, 오랜 친구이자 둘도 없는 동지였던 와타나베 교지 씨는 자리를 피했다고 들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은 "울러 갔나 봐요'"라고 말했지만 정작 당사자는 작별 인사는 예전에 했다"고 말했다. 임종관리사 시바타 씨는 작가 세토치 자쿠초 씨가 인용한 겐유 소큐의 소설 『아미타바』 속 문구를 나에게 들려줬다. “사람은 세상을 떠날 때, 25m 수영장을 529번 채울 만한 물도 바로 끓게 할 정도의 에너지를 옆에 있는 사람에게 넘겨준다”라는 문장이 바로 그것이다. 의심 많은 나는 “그걸 어떻게 측정할 수 있지?”라며 갸우뚱했지만, 시바타 씨는 죽은 자가 넘겨주는 에너지를 남아 있는 쪽이 받지 않는 것은 아까운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사실 이 문장은 임종을 지키려는 것이 어차피 남겨지는 사람의 고집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호주에서 간병 일을 하는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영국에 사는 아들이 죽음을 앞둔 어머니를 방문했다. 호주 사람들은 영어권에 일자리가 있으면 전 세계 어디든지 이주한다. 그래서 세계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가족도 많다. 그 어머니가 반년 후에 돌아가시자 간병인이 영국에 사는 아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아들은 "작별 인사는 이미 해두었으니, 장례식은 그쪽에서 알아서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지인은 “그렇게도 하더라고요. 일본인인 저는 좀 이해하기 힘들 있지만....”이라고 했다. 어쩌면 이런 모습이 일본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작별 인사와 감사의 말은 상대의 귀가 들릴 때, 들을 수 있는 곳에서 몇 번이고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죽어가는 사람을 붙잡고 “엄마의 자식이라서 행복했어요”라며 눈물을 흘리기보다는 아프기 전에 말해주는 게 좋다. 일본인은 특히 가족 간에는 부끄럽다고 좀처럼 그런 말을 하지 못 하는데, 언젠가는 해야지 하고 생각만 하다가 부모님이 치매에 걸리고 상태가 점점 나빠져버리기도 한다. '부모님의 정신이 온전할 때 물어볼걸', '이런 말도 해드릴걸' 하고 후회하느니 좀 더 빨리 몇 번이고 말해드리자. 나는 요즘 친구들에게도 "그때 네가 친절하게 대해준 일을 잊을 수가 없어, 너의 이런 점이 좋아'"라고 말해주기 시작했다. 죽고 난 후에 장례식에서 아무리 훌륭한 조사를 읽는들 죽은 이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비슷한 연배의 동료들을 만나면 '다음에 만날 때도 모두 살아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데, 다음에 또 만나게 되면 "다시 만나 기쁘다"라며 진심으로 기뻐하면 된다. 혼자서 죽는 게 뭐가 나쁘죠? 혼자 사는 노인이 혼자서 죽는 게 뭐가 나쁜가. 이런 죽음을 고독사라고 부르기 싫어서 그냥 속 시원하게 '재택사'라는 말을 만들어버렸다. 현재 일본에서는 나 말고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서 저작권 마크를 붙였다. 아니, 사실은 농담이다. 저작권 따위 쩨쩨하게 굴 생각은 없고 더 많은 사람이 사용해서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간호사 스가하라 유미 씨는 방문 간호 업계를 이끌고 있으며 '캔너스(CANNUS)'라는 방문 간호사 모임을 만들었다. 캔너스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에서 "입회인이 없는 죽음을 고독사라고 부르지 말자"라는 글을 봤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고독사의 정의를 바꾸면 고독사 통계는 간단히 바뀐다. 조사 방법이나 선택지 카테고리를 바꾸면 통계 데이터는 바뀐다. 간병 필요 인정도 '간병 필요 고령자' 수에서 '지원 필요 고령자'를 빼버리면 간병 필요 고령자의 수가 감소한다. 그중 고령자의 정의를 '75세 이상'으로 변경한다면(일본노년학회가 이미 제언 중이다) 고령화율의 수치도 달라진다. 고독사를 없애자는 캠페인은 사후에 빨리 발견하는 시스템을 만들면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사후에 빨리 발견되는 게 아니라 살아생전에 고립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pp. 94-103).
    • 오피니언
    • 책소개
    2024-03-27

실시간 오피니언 기사

  • 【내이야기】 어머니와 장모님…아내에게 미안하다
    어머니의 아랫배가 이상하게 불룩했다. 뵐 때마다 몸이 어떠신지를 의례히 물었는데 한달 전부터 아랫배가 조금 불편했다고 하시면서 보여주시는데 만져보니 장이 만져졌다. 너무 놀랬다. 유튜브를 검색해 보니 탈장인 것 같았다. 결국 연초 직장암 수술했던 고대안암병원을 예약하고 담당 의사를 만나니 수술해야겠다고 탈장 수술 의사를 만날 수 있도록 예약을 도와줬다. 3년전 목회를 중단하고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어머니는 여러 차례 시술과 수술을 하셨다. 첫 번째는 척추 시술이었다. 골다공증이 있으시다 보니 누워계신 아버지를 무리하게 일으키시다가 허리를 상했는데 금이 갔다. 주사로 뼈를 굳게하는 용액을 넣는 시술을 하셨다. 두 번째는 작년에 빗물에 젖은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대퇴골 두 군데가 부러졌다. 긴급 수술을 하시고 3주 입원하시고, 요양병원에 2주를 입원하셨다. 세번째로 올 연초 직장암 수술을 받으시면서 2주간 정도 입원하셨다. 그리고 이제 네 번째로 탈장 수술을 위해 입원하셔야한다. 지난번 직장암 수술을 받으실 때 복강경 로봇수술을 하며 뚫어놓은 곳이 잘 아물지 않았는지 그쪽으로 탈장이 된 것이다. 앞으로 입원과 수술을 어떻게 하셔야하며 그동안 병간호를 어떻게 해야할지, 누워계신 아버지를 어떻게 챙겨드려야할지 생각이 복잡한 가운데 문뜩 작년에 돌아가신 장모님이 생각났다. 혼자 계시던 장모님은 어느날 늦은 저녁 배가 아파 응급실에 가셨는데 장에 괴사가 생겨 급히 절단 수술을 해야하는데 코로나 상황이라 노인 환자를 받아줄 병원이 없었다. 결국 의정부에 사시던 장모님은 인하대병원으로 가셔야했고 당직의사였던 가슴성형전문의에게 긴급 수술을 받으셨다. 이후 장이 제대로 붙지 않아 고생고생하며 사경을 헤매시다가 돌아가셨다. 나는 장모님을 응급실에서 뵙고 말씀을 나누고 이후 중환자실에서 면회 한번한 후 돌아가셨다. 참으로 황망한 죽음이었다. 장모님을 좀더 자주 찾아 뵙고 안부를 여쭈었더라면 조기에 예방하고 치료했을 것이다. 그나마 지금은 부모님과 함께 사니 늘 부모님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든 날 저녁에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하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모든 사위 중에 나를 제일 좋아했던 장모님을 잘 살펴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부모님들은 자식에게 짐이 되고 부담이 될까봐 몸이 아프셔도 내색을 하지 않는다. 결국 자식들이 적극적으로 부모를 살펴 드려야하는 것이다. 나는 딸만 있고 아들이 없는 장모님께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 사실 수 있었는데 그만 병을 키우시다가 돌아가신 것이다. 장모님도 어머니인데 사위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내 어머니만 챙기고 아내의 어머니는 챙기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아내에게 사과한 것이다. 80 중반이신 부모님께서 덜 아프시고 오래 사시다가 가셔야 하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 같다. 노인들이 좋아하는 숫자가 있다고 한다. 99881234. 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1,2,3일 아프고 죽자(4)는 말이다. 부모님은 백세까지 사셨으면 좋겠다.
    • 오피니언
    • 칼럼
    2023-12-15
  • 【단상】 총신이여, 평안하라!
    어제 총신대학에서 기독교교육과 설립 50주년 기념 홈커밍데이가 있어 취재 갔다. 총신을 졸업 후 목회하는 오랜 동안 모교를 방문할 일이 없었는데 기자를 하다보니 종종 방문하게 된다. 그때마다 38년전 학창시절이 떠오른다. 그때 우측에 있었던 신관 건물은 외관이 리모델링 되어 전혀 다른 모습이 됐다. 또한 종합관 건물은 헐려 현재 고층 건물이 되었고, 언덕 위는 휑한 운동장이었는데 거기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다. 세월의 흐름 속에 학교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다. 80년대는 군부독재시절로 교내에서 민주화 시위도 있었고 학내 문제 혹은 총회 문제로 많이 시끄러웠다. 학생들은 수시로 수업 거부, 시험 거부를 했고 총장실을 점거하거나 총회 현장을 찾아가기도 했었다. 그것은 대학 4년으로 끝나지 않고 신학대학원 3년 내내 그랬다. 그때도 학생의 배울 권리를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웠는데 지금도 그때를 생각해보면 기성세대로 인해 젊은이들이 희생당한 것이 마음의 상처로 남아있다. 엄혹한 시대에 민주화를 위한 시위는 차치하고 왜 7년 내내 학내 문제, 총회 문제로 학생들이 피해를 봐야했던가? 그당시 학생 신분으로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런데 학교를 자기의 이권 대상으로 생각하고 흔드는 자들이 있었기에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그 모든 혼란이 사라지고 학교는 평안하다. 그리고 잘 성장하고 있다. 학교와 총회는 서로 상생을 도모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혜택을 누리는 것은 다음 세대인 학생들이다. 이 당연한 권리가 내 학창 시절에는 없었다. 종종 학교를 방문할 때 학생들을 보면 표정이 밝다. 그들은 최루탄과 대자보, 현수막이 사라진 학교에서 마음껏 학문을 배우며 자신들의 미래를 그려가고 있다. 그들을 볼 때 나의 40여년전의 모습이 자동적으로 오버랩된다. 그 암울한 시대, 그 암울한 캠퍼스. 그 시대를 살아간 세대에게 그 시절은 회색이었다. 이제 두 번 다시 총신에 그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래본다. 학생들의 당연한 권리인 학습권이 침해되지 않기를 바란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치열하게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학교가 되기를 바란다. 더 이상 교권 야욕자들이 총신을 흔드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현재 총신은 평안하다. 앞으로도 영원히 평안하기를....
    • 오피니언
    • 논단
    2023-12-15
  • 목사의 성범죄는 패가망신의 지름길....누구도 장담 못한다
    최근 이름만 대면 알만한 어느 목사가 뜻밖에 조기 은퇴했다. 모 언론이 그 일을 다루면서 기사 말미에 의미심장한 사족을 덧붙였다. 목사와 교회 측은 조기은퇴 사유로 건강 문제를 주로 내세우고 있으나, 교계 안팎에서 윤리 문제에 대한 여러 다양한 설(說)들도 제기되고 있다. 물론 내밀한 그 일이 드러나 문제시 되지는 않았다. 교회를 지키기 위해 철통보안을 했다는 풍문도 들린다. 그러나 세상에는 비밀이 없다. 언젠가는 드러나리라고 본다. 본 기자는 그를 몇 번 본적이 있다. 그리고 그가 쓴 여러 권의 책을 읽었다. 그가 쓴 많은 책들이 기독교 서적에서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였다. 그런 사람이 불명예스러운 일로 물러나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을 갖는다. 그 한 사람으로 인해 교회는 큰 고통을 당해야하고, 교인들은 말할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야하며 그의 모든 활동은 중단되고 그가 그동안 쓴 모든 책들은 이제 폐기 될 것이다. 얼마나 큰 손해인가! 과거 수만명의 젊은이들이 몰려오는 삼일교회를 목회했던 전00 목사가 성범죄 연루설로 인해 그가 끼쳤던 많은 영향력이 사라진 것과 같은 일이 또다시 벌어질 것이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끼쳤던 미국 윌로우크릭교회의 빌 하이벨스가 불륜 후 걸은 수치스러운 몰락의 길과 같다. 신학교 시절 교수님들과 선배 목사님들은 우리에게 '돈, 명예, 여자'를 조심하라고 했다. 이 말은 들은지 40여년이 흘러가는 지금도 유효하다. 어떤 목사는 돈 때문에, 명예욕 때문에 그리고 여자 문제로 인생이 몰락한다. 우리는 잘 나가던 다윗이 유부녀 밧세바와의 간통으로 몰락의 길을 간 것을 잘 알고 있다. 때로 성범죄를 저지른 목사들은 다윗도 간통 이후에도 버림 받지 않았다고 하며 성범죄 후에도 뻔뻔하게 목회를 계속 할려고 한다. 그러나 다윗이 그 범죄 이후 국가와 가정은 몰락했다. 그러므로 다윗은 성범죄 목사를 위한 방패막이가 아니다. 그러면 성범죄를 저지른 목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유불문 목회를 중단해야한다. 그리고 다시 목회해서는 안된다. 엎질러진 물, 깨진 그릇이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용히 자중하면서 죄를 참회하는 삶을 살아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뻔뻔하게 여전히 목회하고 있는 제2, 제3의 전00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목사의 성범죄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이다. 한 순간 정욕에 눈이 멀어 모든 것을 잃은 그 사람을 애도한다. 참으로 안타깝다. 목사라도 성범죄에는 안전지대가 없다. 주여 우리를 시험에 들게하지 마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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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3-12-11
  • 【북토크】완독의 기쁨
    우연히 검색하다 대출해 읽게 된 가벼운 책이다. 책 뒷날개를 보니 이 출판사가 「직업이야기」라는 주제로 여러 책을 발간했다. 흥미가 생겨 빌려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은 현직 신문사 문화부 기자가 하는 일을 담은 에세이 형식의 글이다. 책 읽고 서평하고 돈을 버는 직업이라 좋을 것 같다. 물론 일이라 단순한 책 읽기가 아니기에 고충이 있기는 한 것 같다. 그래도 신문사에 서평이 소개 되기 위해 매주 신문사에 공짜로 200권의 책이 배달되고 그 중에서 책을 소개하는 나름 지적인 직업같다. 빌려 봐도 될 책. 본문에서 저자가 밝힌 완독의 기쁨이다. 출판 담당 기자가 된 이후로 책이란 언제나 취재 대상. 읽기 버거운 책에 대해 리뷰를 쓸 때면 입 무겁고 까다로운 취재원을 대할 때처럼 눈치 보며 살살 달래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불행하게도 책에는 입이란 게 없다. 그저 묵묵히 책장을 넘기는 수밖에. 누군가는 안쓰러워하며 말한다. 기사에 쓸 부분만 발췌해도 충분할 텐데 왜 고지식하게 책을 다 읽으려 하냐고. 그러게 왜 나는 고통을 자처하는 걸까. 스스로에게 묻다 보면 답이 나온다. 책 읽기를 사랑하는 만큼 완독이 주는 기쁨을 알기 때문이다. 완독의 힘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나는 안다. 일이라는 건 대충 하면 그저 월급 받는 대가에 그치고 말지만 열과 성을 다하면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자산이 되어 내 안에 남는다는 걸. 결국 성장하고 싶다는 이기적인 욕구 때문에 한숨을 쉬면서도 남은 책장을 세어가며 읽고 읽고 또 읽는 것이다(p.86).
    • 오피니언
    • 책소개
    2023-12-10
  • 【북토크】지식인의 책무는? 그리고 세상을 읽는 능력을 기르려면?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의 작가 조정례가 등단 40년을 기념해 독자들과 주고 받은 문답을 책으로 엮었다. 어떻게 대하 소설을 세 편이나 쓰게 되었는지? 어떤 자세로 글을 써 나갔는지를 보여준다. 소설 이면의 작가의 모습을 진솔하게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을 통해 조정례가 단순한 소설가가 아니라 내면이 단단한 지식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내용 있는 책들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여러 항목 중에 지식인에 대해 묻고 답한 것이 마음에 와닿아 인용한다. 목사도 지식인이다. 지식인의 책무를 다 해야할 것이다(본인은 요즘 것이 아닌 2020년 개정판 1쇄를 대출해 읽었다). 지식인의 책무는 무엇이라 생각하시고, 대학생이 지식인으로서 자기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읽는 능력을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좋을지 알려주십시오. -연유진·이화여대 중어중문학과 지식인에게 사회적 책무가 따르는 것은 지식인이 자연스럽게 그 사회의 지배계층에 속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의미를 담은 서양의 용어로, 우리 사회에서 10여 년 전부터 크게 부각되었던 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입니다. 로마 시대부터 있었던 그들의 용어가 21세기의 한국 사회에서 크게 부각되었던 것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그 지식층의 책임의식이 빈약했기 때문이었던 것 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은 다름 아닌 사회 지도층의 솔선수범, 지배계층의 정직한 권력 수행, 지식층의 양심적 언행 등을 총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평소에는 세금 한 푼 안 내고, 국난이 닥쳐와도 군대에 가지 않았던 우리의 옛 양반들의 행태와는 정반대의 정신이었던 것입니다. 지식인의 그 사회적 책임감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민족이 불행에 처했을 때 더 커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일제에 나라를 강탈당했을 때 안중근 · 신채호 · 한용운 · 김구 · 안창호 · 박은식 · 이회영 · 김원봉 · 윤봉길 · 이봉창 같은 분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섰던 것이 그 좋은 본보기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식민지 역사에서는 독립투쟁에 몸바친 분들보다 자신만의 사리사욕을 위해 친일을 했던 지식인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서양식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 없이 썩은 양반의 행태만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늦었지만 우리 사회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거론되는 것은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분단 조국의 역사를 앞에 두고 그런 정신이 갖추어지지 않은 대학생이 양산되어 사회에 나온다면 그것처럼 심각한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6자 회담'을 유심히 보십시오. 그게 우리 민족이 처한 과거·현재·미래입니다. 무슨 말인지 선뜻 모르겠다고요? 러시아는 세계에서 영토가 가장 넓은 나라고, 중국은 캐나다와 약간의 차이로 세계 3위로, 우리 한반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 나라는 옛부터 우리 땅을 호시탐탐 노려왔습니다. 미국과 일본은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각각 필리핀과 조선을 나눠 먹는 일을 자행했습니다. 그런 그들은 우리의 분단과 한국전쟁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당사자이며, 지금의 분단 상황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들 네 나라가 우리의 통일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초등학생들도 꽤나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에 저는 깜짝 놀라고, 얼마나 환호했는지 모릅니다. 초등학생도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는데 하물며 지식인은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이 지구상에 그 많은 나라 중에서 왜 하필 이 땅에 태어났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그것을 모른 채 이 땅에서 함께 숨 쉬고 먹고 애들을 낳고 기르다가 이 땅에서 죽어가게 됩니다. 태어난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죽어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그것을 우리는 운명이고숙명이라고 합니다. 이 땅에서 사는 당신과 나는 어쩔 수 없이 같은 운명, 한 숙명에 묶여 있습니다. 그걸 사회학에서는 공동운명체라 합니다. 그 불가항력 때문에, 이 땅의 지식인이기 때문에 당신은 싫더라도 지식인의 책무를 짊어져야 합니다. 그러니까 어차피 져야 할 짐이라면 보기 좋게 솔선해서 지십시오. 다음의 글들을 읽어보시고 어떤 심정이 되는지 당신의 마음을 스스로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우월하고 문명한 국가가 열등하고 미개한 나라를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을사보호조약'을 인정하며 한 말입니다. "코리아 인민은 자치 능력이 없으므로 일제가 패망한 뒤 수십 년에 걸쳐 연합국의 신탁통치를 받아 정부를 운영하는 능력을 수습해야 한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말입니다. 윈스턴 처칠은, 카이로 선언에 한국의 독립 시기와 관련해 '적당한 과정을 거쳐'라는 문구를 넣도록 했습니다. "코리아인은 자치 능력이 없다. 항일독립운동을 이끄는 코리아의 지도자 중에도 일제가 패망한 이후 자기 나라를 이끌어갈 인물이 없다. 일제가 패망한 뒤 코리아에 즉각적인 독립을 주는 것보다는 선진국의 고문이 코리아인을 정치적으로 훈련시키면서 코리아를 통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의 말입니다. "코리아는 중국이 지난날의 종주권을 되찾아야 할 나라다."홈쑨원(손문)과 장제스(장개석)의 말입니다. "코리아는 중국이 되찾아야 할 식민지 중 하나다." 마오쩌둥 (모택동)의 말입니다. 그 어떤 음식이나 그 어떤 표백제도 당신의 피부 색깔을 바꿀 수 없습니다. 당신이 아무리 이 땅의 역사를 외면하려고 해도 당신은 부처님 손 안의 손오공일 뿐입니다.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대학생이 지식인의 책무를 바르게 실천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안목을 갖추는 일은 별로 복잡하지도 어렵지도 않습니다. 그런 자세를 갖추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 사람은 벌써 그 절반을 이룬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은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 자각의 싹 위에 물을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우선 책을 읽는 것입니다. 첫째, 지식인의 삶을 충실히 살다 간 분들의 전기나 평전을 골라 읽으십시오. 둘째, 신뢰할 수 있는 지식인의 책과 글을 골라 읽으십시오. 셋째, 진정성을 가진 시민단체를 골라 틈틈이 자원봉사를 하며 실천 경험을 쌓고, 성취의 보람 속에서 안목을 더욱 넓혀 가십시오. 참된 지식인의 삶은 고달프나 그 의미와 보람은 하늘의 넓이입니다(pp. 395-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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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8
  • 【기자의눈】 조사중인 이종철 목사의 일방 주장...득일까? 독일까?
    1000만원 게이트의 조사 대상자 이종철 목사의 행보가 눈에 띈다. 최근 기독신문 인터넷판 12월 6일자에 「이종철 목사 “주홍동·이이복 장로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인터뷰 기사가 실렸고 이종철 목사의 일방적인 주장이 길게 게재됐다. 그리고 몇 일부 언론들도 비슷한 논지의 기사를 실었다. 현재 이종철 목사는 1000만원 게이트 조사 대상자 중 하나이다. 법적으로 하면 뇌물 수수자의 한 당사자이다. 그래서 총회 임원회와 감사부가 연관자인 이종철 목사, 주홍동 장로, 이이복 장로를 계속 조사하고 있다. 기독신문에 실린 1000만원 게이트 조사 기사는 두 건이다. 첫 번째 기사는 기독신문 인터넷판 11월 14일 기사 「오정호 총회장 “누군가 거짓말하고 있다”」이다. 여기에서 이종철 목사는 주홍동 장로에게 1000만원을 받은 과정을 설명했다. 이날은 1000만원 게이트와 관련해 임원회에 첫 번째로 소환받은 날이다. 8월 18일 밤 11시 45분경 주홍동 장로가 이 목사의 집으로 찾아왔으나 돌아가라고 설득해, 다음날 낮 11시에 경기도 일산의 모 식당에서 주 장로를 만났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주홍동 장로가 봉투 2개에 각각 500만원이 들어 있는 금품을 자신에게 건넸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이이복 장로가 준 거냐”고 물었고, 주홍동 장로는 “그렇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이종철 목사는 식사를 마친 후 금품 전달 상황을 배광식 선관위원장에서 보고하고, 선관위 담당 직원을 불러 1000만원을 총회금고에 보관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종철 목사는 이와 관련한 확인서도 작성했다고 밝히며, 확인서는 주 장로가 작성을 거부해 자신이 썼고 주 장로는 서명했다고 했다. 주홍동 장로가 이종철 목사에게 1000만원을 전달한 과정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선관위 심의분과는 이이복 장로가 주홍동 장로에게 1000만원을 전달한 과정을 조사했을까. 이종철 목사의 답변은 “주홍동 장로에게 언제 1000만원을 받았는지 묻는 게 쉽지 않았다”였다. 즉 조사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또한 선관위에서 이이복 장로와 주홍동 장로의 대질심문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이종철 목사는 “주홍동 장로와 이이복 장로의 관계는 주 장로가 이 장로의 선거운동을 했을 정도로 생각보다 많이 깊다”면서, “선관위는 금권선거가 확실하다고 판단했고, 이이복 장로와 주홍동 장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고 말했다. 1000만원 게이트 조사 기사 두 번째는, 기독신문 인터넷판 11월 24일 기사 「주홍동 장로 “1000만원은 내 돈, 이이복 장로 무관하다”」이다. 이날 감사부의 소환에 1000만원 게이트 관련자 세 명인 이종철 목사, 주홍동 장로, 이이복 장로가 참석했다. 여기에서 이종철 목사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이때 주홍동 장로는 선관위 1000만원 게이트에 대해 “이종철 목사가 유도한 일이고, 이종철 목사가 판 함정에 빠진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이종철 목사는 주홍동 장로의 주장을 강하게 반박했다. 먼저 이 목사는 8월 18일 아침 통화에 대해 “통화한 것은 기억나지만 선거 관련 대화는 전혀 없었다. 통화 중 ‘우리가 남이가’라고 말했는지 가물가물하지만, 친분을 나타내는 말로 경상도에서 흔히 쓰는 표현이지, 돈을 가져오라는 말은 전혀 아니”라고 반박했다. 또한 이 목사는 “지난 5월 선관위 워크숍 때 내 입으로 ‘클린 선거’하자고 얘기했다. 그런 내가 뇌물을 유도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고 덧붙였다. 이종철 목사는 “주홍동 장로는 선관위 심의 과정에서 단 한 번도 1000만원이 자신의 돈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며, “주 장로의 주장은 믿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후 이종철 목사는 임원회나 감사부의 소환에 의해서가 아닌 자발적 인터뷰를 통해 자기 주장을 했다. 기사 일부를 발췌한다. 지난 11월 24일 열린 감사부 소환조사에서 주홍동 장로는 “1000만원은 내 돈이다. 이이복 장로는 무관하다”면서, “이종철 목사가 (1000만원을 주도록) 유도했다. 이종철 목사가 판 함정에 빠진 것 같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이종철 목사는 “주홍동 장로가 코너에 몰리니까 물귀신 작전을 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주홍동 장로는 8월 18일 밤 11시가 넘어 1000만원을 들고 이종철 목사의 교회에 찾아간 것에 대해 그날 아침 이종철 목사가 전화해 “우리가 남이가, 다녀와서 연락 달라”라며, 신호를 줘서 그랬다고 증언했다. 반면 이종철 목사는 “아침 통화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선거 관련 얘기도 꺼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다음날 일산 카페에서 만나 주홍동 장로가 건넨 1000만원을 굳이 받은 이유에 대해 “오히려 내가 누명을 쓰고 선관위가 피해받을 수 있기 때문에 받았다”고 말했다. 해당 장소에 직원을 대동한 것에 대해서도 “증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주홍동 장로는 이번 감사부 소환조사만이 아니라, 제108회 총회 직전에 선관위 1000만원 게이트가 이슈로 떠올랐을 때도 이이복 장로가 아니라, 이종철 목사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본지 기자가 주홍동 장로에게 조사처리위원회가 구성돼 조사받을 수 있다고 하자, 주 장로는 “나뿐만 아니라, 이종철 목사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종철 목사는 “말 같은 소리여야 대꾸하지. 클린선거하자고 한 내가 그 짓을 왜 해”라며 흥분하며 반박했다. 위 기사 내용을 보면 이종철 목사가 총회 임원회와 감사부에서 밝힌 내용과 다른게 없고, 더 밝혀진 것도 없다. 그리고 그런 내용이 있다면 자신을 조사하기 위해 소환한 총회 임원회나 감사부에서 밝혀야한다. 어찌보면 기독신문을 통해 자기 변명과 주장의 기회를 가진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종철 목사를 취재한 모 언론 기사에 있는 이종철 목사의 발언이다.이 언론은 다른 언론에는 없는 이종철 목사의 발언을 기재했다. -제108회 총회에서 이와 관련한 사안을 끝내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되고 있다. 내가 할 수 는 없지만 사실 계좌를 추적하면 모든 것이 밝혀질 일이라고 생각한다. 선관위는 백 번 자신 있으며 바른 일을 하고자 한 것 밖에 없다. 옳은 일을 한 선관위를 지적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제108회 총회에서 선관위가 사과한 것은 선거를 매끄럽게 진행하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이지, 심의를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선관위 전체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총회의 거룩성과 깨끗한 선거를 위해 최선을 다했고 잘못된 부분에 있어서는 단호하게 대처한 것 밖에 없다. 그런데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거론되는 것은 잘못한 인사들의 잘못을 듣기 위한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선관위를 지적하고 질타하는 것은 누가 들어도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지난 108회 총회에서 총대들이 선관위를 조사해야한다고 강하게 발언했던 것은 이종철 목사가 생각하는 것처럼 “선거를 매끄럽게 진행하지 못한 것” 때문이 아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선관위를 지적하고 질타하는 것은 누가 들어도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라고하니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다. 오정호 총회장은 총회를 위해 선관위 위원장 배광식 목사와 심의분과장 이종철 목사가 사과하는 것으로 일단락 짓고자 했지만 당사자는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종철 목사의 의욕에 찬 인터뷰는 1000만원 게이트라는 핫 이슈에 휘발유를 붓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누구를 향할지 아직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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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단
    2023-12-08
  • 【북토크】문장력 키우기
    김훈 작가의 소설집 『강산무진』을 읽었다. 역시 문장 표현이 예사롭지 않다. 그는 이혼한 전처에 대해 집요하게 풀어썼다. 이혼하고 헤어진 아내를 아내라고 불러도 되는 것인지를 생각하는 일은 쑥스럽고 우습다. 전처(前妻)라는 말이 있어서 그 말에 거덜난 인연의 흔적이 남아 있기도 하지만, 전처와 남이 어떻게 다른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내라면 현재의 처를 가리키는 말일 터인데, 현처(現妻)라는 말이 무너질 수도 있는 인연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면 '전처가 내포하는 인연의 고리가 '현처' 보다 가벼운 것도 아니지 싶었지만, 잘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기야 아내에서 타인으로 돌아가는 과정의 온갖 우여곡절을 인연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었다(p. 330). 이러한 문장 표현력을 갖기 위해서는 한 단어에 대해 식상한 견해를 넘어서서 다양하게 둘러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혼한 아내를 전처라고 한다. 여기서 그는 현처를 생각해 냈고, 전처를 가리켜 ‘거널난 인연의 흔적’이라고 했고, 현저를 가리켜 ‘무너질 수도 있는 인연’이라고 했다. 참으로 기막힌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표현은 식상한 단어를 다른 각도로 깊이 생각했다는 것이다. 책 제목과 같은 8번째 단편 내용은 이러하다. 한 50 후반의 직장인이 암 판정을 받고 회사와 주식, 집을 처분한다. 그리고 전처에게 남은 위자료 5천만원을 전달하고 아들이 있는 미국으로 치료와 요양을 위해 출국한다. 그런데 전처는 남편의 입사 동기지만 직급이 낮은 직원과 불륜관계를 맺고 있으면서 교인들과 함께 전남편 배웅을 위해 공항에 찾아오나 남편은 그것을 외면하고 출국한다. 짤막한 줄거리이지만 이것으로 하나의 단편을 만들어 내는 것이 소설가의 능력이다. 혹시 나도 앞으로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계속해서 다양한 소설을 읽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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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6
  • 【북토크】 베스트셀러 글을 쓰는 방법
    유시민은 자타가 공인하는 이 시대의 대중 지식인이다. 그가 쓴 이 책 『표현의 기술』은 쉽게 읽히면서도 많은 통찰을 준다. 나는 예전에도 글쓰는 것에 대한 책들을 여러권 읽었는데 교계 기자로 나서면서 글쓰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기자는 記者이기 때문이다. “기사를 취재하여 쓰거나 편집하는 사람”이 기자이다. 인터넷 신문 “빛과소금뉴스”를 만든지 2년 남짓에 쓴 기사가 1280여건이다. 하루에 1.75건의 기사를 썼다는 것이다. 즉 매일 기사를 썼다는 것이다. 그렇다. 취재갈 경우에는 스트레이트 기사를 쓰고, 취재가 없을 때는 이런저런 글을 만들어 올렸다. 요즘은 “책이야기” 코너에 신경을 쓴다. 사실 많은 책을 보면서 잊어버리는 것이 아까워 우선은 나를 위해 그리고 누군가에게 책을 소개하기 위해 이 코너를 만들었다. 내가 읽은 책을 누구라도 관심을 갖고 읽는다면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틈틈이 만들어 올린다. 유시민은 많이 읽히는 글을 쓰기 위한 한 방법으로 책을 많이 읽으라고 했다.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있는 것이다. 다행히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책 읽는 것이 취미활동이고 여가활동이니 다행이다. 글쓰는 것에 관심이 있다면 가볍게 읽어볼만한 책이라 생각한다. 다음은 책에서 공감가는 내용이다. 지금은 누구나 글을 쓰고 전파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인터넷 글쓰기는 제작과 유통에 돈이 들지 않습니다. 전파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전파되는 공간도 하루가 다르게 확장되는 중입니다. 영어로 멋진 글을 쓸 수 있다면 빛의 속도로 지구촌 전체에 퍼뜨릴 수도 있습니다. 정말 신기하죠? 30년 전만 해도 이런 세상이 올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미래학자들의 '예언서'에나 등장하는 이야기였는데 어느새 익숙한 현실이 되었어요. 어떤 글은 수억 명이 읽습니다. 반면 어떤 글은 몇 사람의 눈길도 제대로 끌어 보지 못한 채 사라집니다. 왜 그럴까요? '베스트셀러 글'에는 어떤 특별한 점이 있는 걸까요? 아마 한번쯤은 이런 의문을 품어 보셨을 겁니다. 저는 어떻게 쓰면 베스트셀러가 되는지 묻는 분을 종종 만납니다. 베스트셀러 글을 쓰려면 무엇보다 먼저 문장을 쓰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겠죠? 문장쓰는 기술이 첫 번째 조건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문장이 전부인건 아닙니다. 좋은 문장으로 표현한 생각과 감정이 훌륭해야 합니다. 이것이 베스트셀러의 두 번째 조건입니다. 어떤 사람은 문장 기술을 가르쳐 주는 책을 보고 혼자 훈련해서 금방 효과를 봅니다. 하지만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표현할 가치가 있는 지식, 정보, 논리, 감정, 생각을 내면에 쌓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문장 기술을 배워도 글이 늘지 않습니다. 내면에 그런 것을 쌓으려면 직간접 경험을 통해 배우고 깨닫고 느끼고 사유해야 합니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지 않으면 글을 잘 쓸 수 없다고 하는 겁니다. 독서는 간접 경험을 얻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거든요. 베스트셀러의 세 번째 요소는 감정 이입입니다. 독자가 쉽게 이해하고 깊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도록 써야 한다는 것이죠. 350쪽짜리 책 한 권을 내려면 200자 원고지 1,300장 정도를 써야 합니다. 아는 것이 많고 글 쓰는 기술도 있는 사람이라야 이 정도 분량을 쓸 수 있지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쓴 책이라도 대중의 눈길을 받지 못한 채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공감을 일으키는 글'이 아니어서 그런 겁니다. 어떤 책이 공감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크게 보아 두 가지입니다. 첫째,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둘째, 이해는 하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아는 것도 많고 글 쓰는 기술도 좋은 사람이 독자가 이해할 수 없고 공감하기 어려운 글을 쓰는 것은 독자를 의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글로 남의 공감을 받으려면 타인의 생각과 시선과 감정으로 자신이 쓴 글을 살펴야 합니다. 아무리 대단한 정보와 지식과 논리를 지녔고 아무리 멋진 문장을 구사하는 능력을 가졌다해도, 독자를 존중하고 배려하지 않으면 '베스트셀러' 글은 쓰지못합니다(pp. 13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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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5
  • 【북토크】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내가 사는 동네 가까운 수유역 근처에 교보문고가 있다. 한번도 가보지는 않았는데 어느 날 지나가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슬로건을 사진으로 찍었다. 맞는 말이다.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운명을 뒤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책은 중요하다. 스스로를 “지식 소매상”이라고 하는 유시민이 쓴 『청춘의 독서』를 읽었다. 그가 20대에 읽고 영향 받았었던 책들을 50대에 다시 읽으면서 그때와 지금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흥미로운 시도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 책은 가만히 있지만 책을 읽던 사람은 연륜과 지식이 더해지면서 새로운 각도로 과거의 책을 보게 된다. 그러면 전혀 다른 느낌을 주기도한다. 나도 그런 경험을 했다. 군대에 가기 전 20대에 박영한 작가의 『머나먼 쏭바강』을 재미있게 읽었다. 이후 50대 중반에 문뜩 이 책을 다시 읽고 싶어 구입했는데 보다가 관뒀다. 군대생활을 경험하기 전에는 그 소설이 그럴듯했는데 군대 생활을 4년이나 경험한 입장에서 볼 때 너무나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다시 읽기를 원치 않았다면 좋은 추억으로 남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또한 고원정의 1999년 작 군대 소설 『빙벽』도 마찬가지이다. 너무 흥미진진하게 읽었는데 지금은 크게 감흥이 없다. 소설이 너무나 “소설”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뜬금없이 고원정 작가 생각이 나서 검색해 보니 2003년에 쓴 『불타는 빙벽』이 있다는 것을 알고 도서관에서 빌려 봤다. 9권의 『빙벽』 이후의 이야기였는데 젊었을 때 봤으면 큰 감동이 있을지는 모르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책은 변함이 없는데 책을 읽는 내가 변했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이러한 책은 고전이 될 수 없다. 고전은 그때나 지금이나 포인트는 달라도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것이 있다. 유시민 작가는 자신이 젊었을 때 읽었던 14권의 책에 대해 쓰고 있다. 이 중에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있기도 하다. 기회가 되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유시민 작가를 통해 간접 경험을 해보는 것도 나름 흥미로운 일이다. 다음은 인용글이다.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는 E. H. 카 선생께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50년을 살면서 읽은 책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 하나 만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바로 이 책 『역사란 무엇인가』를 집어 들것 이다. 그는 내게서 역사와 사회에 대한 개안의 기적을 일으켰고, 어느 정도 내 삶을 바꾸어놓았다. 다른 삶을 살았더라도 가치 있는 삶일 수 있었겠지만, 그의 영향을 받았던 실제의 내 삶에 나는 불만이 없다. 이번에 다시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으면서 다시 한 번 그에게 감사 하게 되었다. 나는 지쳤다. 존경했던 이들은 먼 곳으로 떠났고, 사랑하는 동료들은 시대의 삭풍에 떨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겠으나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야 할지 몰라 번민한다. 내가 받들고자 하는 사 람들은 나를 외면하고, 같은 방향을 보고 걷는 사람들과도 손을 잡기가 어렵다. 가끔 나는 내 자신이 물 밖으로 팽개쳐진 물고기 같다고 느낀다. 다른 생각 없이 그저 잘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하면서 나에게 친숙한 작은 공동체 안에서만 머무르고 싶다. 그런 나를 선생은 따뜻하 게 격려해준다. “역사와 사회의 진보에 대한 믿음은 어떤 자동적인 또는 불가피한 진행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인간 능력의 계속적 발전에 대한 믿음”이라고, 이 믿음만 있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그의 격려를 받아들여야 할까?(p. 319). 좋은 책은 그 자체가 기적이다. 『사기』를 읽을 때 나는 2000년을 단숨에 건너뛰어 사마천의 숨결을 느낀다. 『광장』을 읽는 동안 내 정신과 감각은 60년 전 해방 공간으로 시간 여행을 하고 4• 19혁명 직후 새 공화국을 보면서 최인훈 선생이 느꼈던 환희를 함께 맛본다. 『대위의 딸』 을 읽으면서는 시인 푸시킨의 자유를 향한 목마름을 나눈다. 이것이 기적이 아니면 무엇이 기적일 수 있을까. 이런 기적을 일으키는 책보다 위대한 인류의 유산이 달리 또 있을까. 이 책이 독자들의 마음에 그러한 기적을 직접 체험하고 싶은 갈증을 불러일으키고, 위대한 지성이 인류에게 남겨준 유산을 함께 나누는데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기를 바란다(p.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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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3
  • 【북토크】 무관심 속에 세월만 흐르는 남북통일
    역사는 내가 싫어하는 분야다. 연도나 인물을 외우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사나 세계사 얘기가 나오면 주눅이 든다. 억지로라도 교양인 수준의 역사 지식은 가져야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저명한 역사학자 강만길 교수가 그의 책에서 남북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한 글이다. 질문) 남북분단이 오래 지속되어 사람들 사이에 통일에 대한 열망이 많이 사그라든 것 같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분단시대를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요? 답변) 민족분단시대가 반세기를 훨씬 넘기다보니 분단 타성 같은 것에 빠져서 분단 고통에 대한 인식과 통일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심지어 어느 강연장에서는 같은 민족이 두개 이상의 나라를 이루어 사는 경우도 없지 않으니 되지도 않을 통일, 통일 하지 말고 남북이 싸우지만 말고 이대로 나뉘어 사는 것이 어떻겠느냐 하는 질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우리 땅의 지정학적 위치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근대사 이후 우리 민족이 겪은 역사적 고통을 누누이 말했지만, 그런 문제를 떠나서도 특히 통일문제에 대한 우리 젊은이들의 열망이 사그라드는 데는 그저 아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도 늙은 세대의 고질이다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 젊은이들, 특히 대학생들이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1학년 마치고 입대할지 2학년 마치고 입대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입니다. 지금부터 육십년 전에 나도 꼭 같은 고민을 하다 결국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입대했었는데, 지금 내 손자들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이게 예사로운 일일까요? 세계에 이런 민족사회가 또 있을까요? 이십대 초엽의 꽃다운 나이에 어제까지의 일을 백지인지 '백치'인지로 돌릴 것을 강요당하는 군대 생활을 반드시 몇년씩 해야 합니다. 동포인 북녘 젊은이들은 복무기간이 더 길다고 알고 있지요. 대부분의 세계 청년들이 가고 싶은 사람만 받을 만큼의 월급을 받고 군대에 가는데 말입니다. 이게 모두 분단 때문이 아닌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저 부자 나라 일본도, 그리고 통일한 독일도 상비군이 30만명 미만이라고 들었는데 우리는 남북을 합치면 백만명이 훨씬 넘습니다. 그 군사비용이 또 얼마입니까? 동족끼리 반세기가 넘도록 다투고 있는 우리 땅을 두고 세계인들이 '극동의 화약고'요 세계에서 전쟁 위험이 제일 높은 곳의 하나라고 한심해하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남쪽은 옛 소련과도 또 중국과도 벌써 국교를 열었는데 북쪽은 아직도 미국과도 일본과도 국교가 없고 따라서 우리 땅 전체가 저 무서운 핵전쟁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모두 분단 때문인데 통일에 대한 열망이 사그라든다고요? 도대체 생각이 있는 젊은이들일까요? 더 할 말을 잃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지난 20세기보다는 세계 평화가 정착되어가고 우리 젊은이들의 세계무대에서의 활동도 활발해지리라는 전망입니다. 그런데 제 민족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서 언제까지나 '극동의 화약고' 소리를 듣는 사람들의 세계무대에서의 활동은 아마 다른 나라 젊은이들의 조롱거리가 되고도 남을 겁니다. 민족의 평화적 통일 문제는 시일이 지난다고 해서 결코 사그라들 문제가 아닙니다(pp. 14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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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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