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는 마음 - 이다희 저자(글), 한겨레출판사 · 2023년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물건들과 함께 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 물건들과 인간 사이에는 서사가 생긴다. 저자도 책에서 밝힌대로 나이를 먹으니 물건을 덜 사게 된다. 사람과도 사물과도 관계 맺는 것이 번거롭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많은 것들과 관계 맺지 않고 심플하게 살고 싶다.
고대 철학의 역사를 가볍게 풀어낸 책 《그리스 철학사 1》에서 저자 루치아노 데 크레센초는 물건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페피노 루소에 대해 이야기한다. 루소 할아버지는 대학교에서 연구와 강의를 하거나 책을 쓰는 학자는 아니지만 그의 '인생철학'은 사물에도 영혼이 있다는 고대의 물활론의 연장선에 있다. "공장에서 만들어 낸 모든 장난감이 즉시 영혼을 갖는 것은 아니오. 천만의 말씀이지. 그 순간에는 그저 단순한 물건일 뿐이오. 그런데 어떤 어린애가 인형을 사랑하기 시작하는 순간, 아이의 영혼이 플라스틱 사이에 스며들어 생명을 가진 물건으로 바뀌어 가는 거요. 그렇게 되면 비록 부서지고 상처 난 인형이라 하더라도 버릴 수 없는 생명체 로 바뀌는 거고 말이오" 나는 이 생각에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다. 사람이 홀로(p. 20)선다는 것이 나를 아껴 준 사람의 물건과 작별하는 일이라면 곧 나를 아껴 준 사람의 영혼과 작별하는 일일 터이다. 그래서 단번에 할 수 없고 세월이 필요한 일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사랑하는 물건과 오랜 시간에 걸쳐 나날이 작별할 때 비로소 만들어지는 나라는 사람. 나는 그 아침, 이 가혹하고 부조리한 진실을 깨닫고 눈앞이 빙빙 돈 것인지도 모른다. 늘어나는 책들을 입주시키기 위해 어떤 책장을 마련할 것이냐 하는 고민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하지만 그 고민은 고스란히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는지 묻는 과정 일터. 나는 책이 든 상자를 성급하게 풀지 않겠다(p. 21).
친구들의 하소연에서 시작된 비공식 탐구에서 나는 잠정적으로 다음과 같은 바람을 얻었다. 엄마가 물려준 살림살이가 우리의 주방을, 아니 집 전체를 미니멀리스트 스타일에서 영영 멀어지게 만들어도 딸들은 살림살이를 모으며 취향을 키우고 만족감을 느꼈을 엄마를 너무 원망하지 않으면 좋겠다. 엄마들은 그 귀한 살림살이를 당근에 내놓자고 설득하는 딸들을, 혹은 몰래 내다 파는 딸들을 너무 원망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는 각자 저 나름대로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을 터이다(p. 48).
마음에 꼭 들지 않으면 사지 않기, 세월이 흐를수록 아름다워지는 물건을 사기, 그동안 나를 기쁘게 했던 물건이 아니라면 미련 없이 남에게 주거나 버리기. 가만 보니 이 원칙은 새 인연을 만들 때도 쓸 수 있겠다. 특히 폐기가 쉽지 않은 인연을 맺으려는 사람들은 꼭 참고 바란다(p. 107).
한편 부모 잘 만난 번역 프리랜서가 뜨끈한 방구석 책상 머리에 앉아 맥이 어쩌고 윈도우가 저쩌고 인간성이 어쩌고 주체성이 저쩌고 할 때, 다른 한편에는 화장실에 갈 시(p. 140)간조차 주어지지 않는 일터에서 오줌을 참다가 방광염에 걸리는 사람이 있다. 하루 일해도 하루 먹을 임금조차 주어 지지 않는다. 인간은 때가 되면 먹고 때가 되면 배설을 해야 하는 동물이다. 인간은 기계에 끼이면 팔다리가 잘리고 높은 데서 떨어지면 죽는 동물이다. 하지만 인간을 인간 취급하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 인간을 인간으로, 생명을 생명으로 보지 않으려는 세력은 인간을 계급으로 구분하고 우리와 남을 구분해서 착취를 합리화한다. 이는 인간 역사에서 무수히 되풀이되었고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21세기가 되면 로봇이 반란을 일으킬 줄 알았건만 반란은커녕 기계가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날은 요원하고 일단은 인간의 밥줄을 위협하는 중이다. 한쪽에서는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체하고 한쪽에서는 작업 도구의 디자인을 따지는 사람이 있으며 또 한쪽에서는 작업 도구에 사람이 깔려 죽는 지금, 지금은 2022년이다(p. 1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