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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기 서울·서북남전연, 남석필 장로 회장· 임긍호 집사 수석부회장 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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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기 서울•서북지역남전도회연합회 정기총회가 8월 8일 오후 1시 맑은샘광천교회(김현중 목사 시무)에서 열려 남석필 장로를 회장으로, 임긍호 집사를 수석부회장으로 선출, 김덕현 장로를 총무로 지명하고 회무를 처리했다.
12회기 회장 조성탄 장로가 “지난 1년간 기도하시고 함께 하신 모든 회원들께 감사드린다.”라고 이임사, 13회기 회장 남석필 장로가 “오늘 총회를 섬겨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전도와 기도에 힘쓰는 한 회기가 되도록 하겠다.”라고 취임사했다.
1부 개회예배는 회장 조성탄 장로의 인도로 부총무 라동철 집사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표어제창, 수석부회장 남석필 장로가 기도, 서기 정태남 장로가 롬15:76-19을 봉독, 경기노회남전도회연합회가 특송했다.
총회장 장봉생 목사가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란 제목으로 “은혜의 목적은 첫째, 무엇을 위해 부름 받았는지를 알게 한다. 우리는 일꾼으로 부름 받았다. 둘째, 내가 그 일을 해낼 수 있도록 역사하신다. 주님은 나를 통해 일하신다. 셋째, 하나님은 모든 동원 가능한 자원을 모으셔서 일을 이루신다. 남전도회가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기를 바란다.”라고 설교했다.
회계 김덕현 장로가 헌금기도, 맑은샘광천교회 시무장로 일동이 헌금송, 총무 하정민 장로가 광고 후 경기노회장 임은진 목사의 축도로 개회예배를 마쳤다.
격려사
2부 격려사와 축사 및 환영사는 회장 조성탄 장로의 인도로 증경장로부총회장 김영구 장로가 “한 회기 수고하셨다, 새 회기는 하고 싶은 것 잘 하시기 바란다.”라고, 장로부총회장 홍석환 장로가 “남전도회 사명은 전도와 선교이다. 먼저 하나님께 드림으로 채움 받는 역사가 있기를 바란다.”라고, 전국남전도회연합회 명예회장 배원식 장로가 “조성탄 장로는 토마스기념관을 위해 많이 수고하고 계신다. 신임회장 남석필 장로님과는 많은 일을 같이 했다. 잘 되실 것이라 믿는다.”라고, 증경장로부총회장 최수용 장로가 “남전도회가 세계적으로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올 한해 기도로 협력하며 잘 감당하시기 바란다.”라고 격려사했다.
축사
총회 서기 김용대 목사가 “조성탄 장로님께서 많은 수고를 하셨고, 남석필 장로님께서도 잘 하실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총회 부서기 유병희 목사가 “생명력 갖고 살아있는 연합회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전국남전도회연합회 총무 전병하 장로가 “연합회가 전남연에서 큰 역할을 감당하고 있어 감사하다.”라고, 전국장로회연합회 회장 이해중 장로가 “한해 수고하셨고, 올 한해도 잘 섬기실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서울•서북지역장로회연합회 회장 이희근 장로가 “조성탄 장로님께서 토마스기념관 일 잘 마무리 하시기 바라고, 남석필 장로님께서 잘 하실 것이라고 기대한다.”라고, 전국주교 수도권협의회 회장 박종일 장로가 “연합하고 화합하며 새로운 도약을 하기 바란다. ”라고 축사, 경기노회남전도회연합회 회장 황 종 장로가 환영사, 맑은샘광천교회 김현중 목사가 환영인사, 당회서기 정재묵 장로가 교회 광고 후 2부를 마무리했다.
3부 감사패 및 공로패 증정은 서기 정태남 장로의 사회로 감사패, 공로패를 전달했다.
회장 감사패
맑은샘광천교회 김현중 목사, 경기노회남전도회 연합회 회장 황 종 장로, 수도노회남전도회연합회 회장 최점동 장로, 서울노회남전도회연합회 회장 김덕현 장로
회장 공로패
전도위원회 위원장 송기덕 장로, 해외선교위원회 위원장 김용직 장로, 대외협력위원회 위원장 장승수 장로, 군경복음화위원회위원장 정승열 장로,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이희근 장로 (준비위원장), 임역원 수련회 준비위원장 최동균 장로 / 이수행 장로, 부부수련회 준비위원장/ 남석필 장로/ 임금호 장로 (임역원), 총무 하정민 장로 / 서기 정태남 장로, 회록서기 전병철 장로/ 회계 김덕현 장로
공로상
박정수 장로 / 고영란 권사
4부 총회는 회장 조성탄 장로의 사회로 명예회장 신웅철 장로가 기도, 서기 정태남 장로가 회원 85명 참석 보고, 회의록서기 전병철 장로가 제 12회기 정기총회 회의록 보고, 총무 하정민 장로가사업보고, 감사 변정섭 집사가 감사보고, 회계 김덕현 장로가 회계보고했다. 이어 임원선거, 신구임원교체, 임원휘장분배, 고퇴 및 회기 인계 인수, 명예회장 추대와 기념뺏지 및 패증정, 신안건토의, 신임 총무가 광고 후 고문 염채화 장로가 폐회기도함으로 모든 순서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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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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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총회선거쟁점③】 학력 허위기재 문제 삼지 않은 선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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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 선관위가 입후보자 심사를 통해 모두 통과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본지를 포함 몇 언론이 입후보자 가운데 학력 허위기재가 있는 것을 문제 삼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의분과위원회는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이제 지옥의 문이 열렸다.
어떤 입후보자라도 학력을 마음대로 기재해도 된다. "신학원"을 나와도 "신대원"을 나왔다고 기재해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게 된다.
과거 선거에서 학력위조는 큰 이슈였다. 그런데 이번 선관위는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과연 선관위나 심의 분과는 앞으로 되어질 사태를 어떻게 책임질려고 하는가?
납득되지 않는 선관위 행보가 심히 우려스럽다.
이것은 계속해서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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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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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총무기호추첨: ①번 한기영 ②번 박용규 ③번 박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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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9월 14일(월)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 시무)에서 개회하는 제111회 총회 첫날 있는 총회총무 입후보자에 대한 기호추첨이 8월 7일 오후 2시 총회회관 5층에서 있었다.
추첨 결과:
①번 한기영 ②번 박용규 ③번 박철수
나머지 총회 입후보자들에 대한 기호 추첨은 8월 27일 있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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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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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룡·박윤선박사 신학계승, 한국개혁신학유산연구회 창립 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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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개혁신학유산연구회 창립총회가 8월 7일 오전 11시 신용산교회(오원석 목사 시무)에서 열렸다.
한국개혁신학유산연구회는 죽산 박형룡 박사와 정암 박윤선 박사가 놓은 개혁신학의 초석을 사료로 정리해 성경신학적으로 잇고, 다음 세대에 전하는 일을 하고자 한다.
연구회 정관은 본회의 목적과 사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제3조(목적)
본회는 죽산 박형룡(1897-1978)과 정암 박윤선(1905-1988)을 두 기둥으로 하여, 이들과 더불어 한국 개혁신학의 초석을 놓은 명신홍(1907-1980) 등 형성기의 스승들이 남긴 신학적 유산을 계승•연구함을 목적으로 한다. 본회는 이 유산에 관한 저작 원고•자료를 수집• 보존하여 후학에게 전승하며, 이를 통해 한국 교회의 개혁신학 전통을 밝히는 데 이바지한다.
제4조 (사업)
본회는 제3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다음 각 호의 사업을 행한다.
1. 개혁신학 유산에 관한 연례 학술 포럼 및 강좌의 개최
2. 두 신학자 및 관련 인물의 저작•원고•서신•강의자료•구술자료의 수집•정리•보존
3. 본회의 목적에 부합하는 저작물 및 자료에 관한 권리의 취득•관리 보존 및 그 출판•복간의 지원
4. 연구 성과의 발간, 학술지 자료집·아카이브의 구축과 공개
5. 국내외 관련 교육기관•연구기관 교회와의 학술 교류 및 협력
6. 기타 본회의 목적 달성에 필요한 사업
제5조 (공익성)
본회는 특정 교단 교파•정파에 속하지 아니하며, 어떠한 정치적 목적도 추구하지 아니한다. 본회는 학문의 자유와 상호 존중의 정신 위에서 운영된다.
1부 개회예배는 총무 윤원선 목사의 인도로 학술회장 서창원 교수가 기도, 발기인 대표 박순오 목사가 렘 6:16을 본문으로 ‘옛적 길, 그 선한 길’이란 제목으로 “서고, 묻고, 걸어야 한다. 창립총회는 잠깐 서는 자리이며, 물려받은 것을 확인하고, 신학하는 사람의 모습을 회복해 의지적으로 걸어야 한다.”라고 설교 후 합신총회장 김성규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2부 창립총회는 발기인 대표 박순오 목사가 임시의장으로 총무 윤원선 목사가 창립 취지 및 경과 보고 후 임시의장 사회로 명칭 확정, 정관 승인, 임원 선임 및 대표자 선임, 총무가 2026년 사업계획 승인 후 폐회기도로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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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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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 흘려보내는 옥련중앙교회 · 한종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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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연수구에 소재한 옥련중앙교회와 한종근 담임목사가 폭염 가운데 힘들어 하는 지역 사회를 위해 하나님의 사랑을 시원하게 흘려보냈다.
한 목사는 지역 노인정 14곳에 복숭아 두 박스씩 총 28박스를 전달하고, 또 지역 국가유공자 130 가정에 말복을 건강하게 보내시라고 보양삼계죽 세트를 전달했다.
또한 케냐에 말라리야 약 100명분을, 탄자니아에는 모기장을 지원했다.
옥련중앙교회는 오래 전부터 부활절 헌금은 장애인을 위해, 맥추감사절 헌금은 참전용사와 유공자를 위해, 추수감사절 헌금은 불우한 이웃을 위해, 성탄절 헌금은 주변 어려운 가정의 어린이와 기관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한 목사는 “모두 살기 어렵다고 하는데 교회가 이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기를 바라고, 혼자가 아닌 우리 함께 행복한 내일을 만들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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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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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총회선거쟁점②】 학력 허위기재-고의인가? 실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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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회 총회 선거에서 경선인 모 입후보자의 학력 허위기재가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핵심은 고의인가?, 실수인가?이다.
학력을 기재할 때 졸업증명서에 있는대로 쓰면 탈이 없다. 그것이 공식 문서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증명서에 있는대로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알고도 고의로 했다면 이것은 명백한 학력 허위기재로 후보자의 도덕성이 문제될 수 있고, 허위기재에 대해 책임 져야한다.
혹시 실수라도 이 또한 쉽게 넘어갈 수 없다. “경선 입후보자가 그것도 모르면서 뭘 하겠다는 것이냐?”는 비난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허위기재를 통해 학력이 부풀려졌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본인이 나온 과정이 부끄러운 것인가? 실력이 안 되든, 형편 때문이든 다양한 과정에서 공부할 수 있다. 이후 학력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면 여러 방법으로 보충하면 된다. 또한 남들이 볼 때 학위가 부족해도 목사로서 목회를 잘 하면 된다. 그러면 오히려 더 높게 평가 된다.
고의든, 실수든 이미 서류는 제출됐다. 선관위와 총대들이 이 입후보자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지는 지켜볼 일이다. 이 잡음으로 인해 입후보자 당사자에게는 플러스가 아니라 마이너스가 됐다. 첫 단추를 잘 못 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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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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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인천광역시 합동 팔순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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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행 사 명 : “제11회 홀몸어르신 합동 팔순잔치”
2. 일 시 : 2026년 9월 3일(목) 11:00~14:30 효도잔치 / 9월 4일(금) 09:00~16:00 효도관광
3. 장 소 : 한신성결교회 / 강화 교동도 관광
4. 주 최 : (사)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 중앙회, 대한노인회 인천연합회
5. 주 관 : (사)사랑의빨간밥차재단, (사)지구촌나눔재단, 강남푸드지원센터
6. 후원 및 협찬 : 인천광역시 및 인천시 10개 군.구, (주)케이세웅그룹, 청년배관 등
인천광역시 11개 군.구 대한노인회 및 노인복지관에서 추천한 1947년생 50명의 어르신의 “제11회 합동 팔순잔치”가 진행될 예정이다. 장소: (인천시 서구 서곳로 255번길 7-1)
9월 3일(목) 오전 11시 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사)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 중앙회 서경원 부이사장의 개회사, 전달수 사랑의빨간밥차 후원회장의 환영사, 유진현 부이사장의 격려사, 이선구 이사장의 인사 및 내빈소개를 시작으로 공동 주최인 (사)대한노인회 인천연합회 박용렬 연합회장, 인천시 서해구 구청장의 축사로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행사는 김병돈 중앙회 본부장의 1부 사회, 2부 가수 나두리의 사회로 각 군.구별 팔순을 맞으신 해당 어르신 소개와 함께 내빈 및 임원이 드리는 헌수식과 삼배의 시간을 시작으로 가수 나두리(홍보대사), 국악공연 및 선물증정식이 있으며, 기념 케잌 커팅식과 더불어 ‘세계한인여성협회’ 합창단의 ‘어머니 은혜’ 축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팔순상 오찬 및 다양한 민요 및 춤과 노래로 합동팔순어르신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해 드리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이번 제11회 합동 팔순잔치는 1947년생 어르신들이며 첫날 9월 3일은 효 잔치를 해드리고, 둘째날 9월 4일은 대형버스 2대에 어르신들을 모시고 사회복지사들이 동행하여 강화 교동도지역 관광을 한다.
주최:(사)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 중앙회, 대한노인회 인천연합회
주관:(사)지구촌나눔재단, (사)사랑의빨간밥차재단, 강남푸드지원센터
후원과 협찬:, 인천광역시 11개 군.구, 집반찬연구소, K쌍화, (주)케이세웅그룹등 50여개 단체, 언론사와 기업.
○(사)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 중앙회는 서울· 인천을 비롯한 전국 65개 지부와 해외 75개국 지부에서 소외계층에게 식량을 비롯한 다양한 생필품과 의약품지원 나눔을 하고 있는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산하에 ‘지구촌나눔재단’ ‘사랑의빨간밥차재단’ ‘강남푸드지원센터’ ‘노인행복지원센터’에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소외계층(중증장애아동, 쪽방촌 홀몸노인, 노숙인, 장애인, 결식아동, 경로당을 비롯해 다양한 미자립 복지시설, 무료급식 단체 등)에게 쌀, 식료품, 의류, 무료급식을 지원해 연간 150만 명의 먹거리와 생필품을 해결해주고 있는 비영리법인이다.
○국내사업 ‘사랑의빨간밥차’는 밥 한 끼를 통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인천을 비롯해 서울, 경기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대형밥차 4대 (5톤 특장차)가 움직이면서 부평역(주1회), 주안역(주1회), 서구(주1회), 서울역(주1회), 계양구(주3회), 전라북도 지부(정읍, 고창, 전주, 군산), 등에서 연간 1만 5천여명의 봉사자들과 후원자들이 있으며, 항상 봉사자와 후원자들에게 감사하며, 연간 50만명의 독거노인, 노숙인 장애인들에게 무료급식을 제공하고 있다.
○해와사업 (사)지구촌나눔재단은 아프리카를 비롯한 최빈국 12개국에 사랑의빵공장을 세워 굶주리는 이들에게 식량인 빵과 생필품을 지원하고 있다. 지구촌나눔재단은 앞으로도 계속 사업으로 아프리카 55개국에 100개소 이상의 빵 공장을 세워 굶주림의 고통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삶에 희망을 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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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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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총회선거쟁점①】 학력 허위 기재 의혹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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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9월 14일(월)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 시무)에서 개회하는 제111회 총회에 많은 목사, 장로가 임원·부장·기관장·위원(행정직원 포함) 입후보자 등록했다.
등록 필수 서류에 이력서가 있고, 이력서에는 학력을 기재해야 한다. 그런데 허위 학력 기재 의혹이 일고 있다.
AI는 학력 기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과거 비인가 시절 졸업한 학력을 훗날 승격·변경된 대학의 졸업 학력으로 기록하거나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기존 졸업 시점의 법적 지위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학교가 이후에 학력인가를 받았더라도 소급 적용되지 않습니다.
상세한 이유와 올바른 학력 기재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학력 인정 여부: "인정 불가“
▲소급 적용 불가: 학교가 비인가에서 인가 대학으로 승격되거나 개편된 것은 인가를 받은 시점 이후의 재학생과 졸업생에게만 효력이 발생합니다.
▲과거 학력의 유지: 본인이 졸업할 당시 학교의 법적 지위가 '비인가'였다면, 해당 학력은 법적으로 고졸 또는 이전 최종 학력 상태로 유지됩니다. 승격된 대학의 학위나 졸업장이 사후에 자동으로 발급되지 않습니다.
2. 이력서 및 공식 문서 기재 방법: "과거 명칭 사용“
과거 비인가 학교 졸업 사실을 변경된 현재 대학 이름으로 기재하면 학력 위조 또는 허위 기재로 처벌이나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반드시 사실대로 기재해야 합니다.
▲올바른 기재 예시: OO학교 (현 OO대학교, 비인가 시절 졸업) 또는 OO학원 (졸업 당시 비인가)
▲현재 명칭 단독 기재 금지: 현재의 인가된 대학교 이름만 적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반드시 본인이 다녔던 당시의 정확한 학교 명칭을 쓰고, 필요하다면 괄호를 적어 현재 명칭을 병기하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이 원칙을 어기면 허위학력 기재가 된다. 일부 입후보자들이 자신의 학력을 부풀리거나 또는 허위로 기재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전 선거에서도 되풀이 되었던 일이다. 과연 선관위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모든 총대들은 관심 갖고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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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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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 헌의부는 재판건을 기각(棄却)할 권한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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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회 총회재판국장, 제95회 총회 서기를 역임하고, 현재 교회헌법 상담연구소장인 정진모 목사가 『헌법해설문답서』에 이어 『헌법, 권징조례 문답해설서』를 최근 발간했다.
이 책 내용 중 질의 128번은 헌의부에 대해 다루고 있다.
질의 128] 총회 헌의부가 재판건을 기각하고 재판국에 이첩 하지 않을수 있나요?
답변]
1. 총회 헌의부는 재판건을 기각(棄却)할 권한이 없다
2. 기각은 법원이 심리한 결과에 따라 적법하지 않다고 판단 할때만이 기각할 수 있다. 재판국이 소송건을 심리한 결과 적법하지 않으면 재판국에서만 기각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3. 총회 헌의부는 재판건이 들어오면 총회 규칙 3장9조3항 4)번에 따라... 단, 총회 서기로부터 이첩받은 소송건의 경우 심의하여 총회 재판국에 즉시 회부한다(다만 6월30일까지 접수된 사건에 한한다) 라고 하였으므로 헌의부가 재판국처럼 기각하는 것은 월권이고 불법이 되며 시벌 대상이 될 수 있다.
4. 헌의부의 재판건에 대한 불법 기각을 막기 위해 제106회 재판국 보고 중에 청원하여 결의 된 것은 다음과 같다.
1)청원건: 하회에서 제출한 모든 재판건은 총회 규칙대로 재판국에 이첩 시켜 화해 또는 판결토록 허락해달라는 청원건은 헌법대로 해달라는 건이므로 허락하기로 가결하다 라고 결의 하였다.
2) 헌의부의 재판건 기각 결정은 중대한 불법이다.
(1) 총회 규칙 3장9조34)번 재판건을 재판국에 불이첩 위반이다.
(2) 헌법이 보장한 하회 판결후 10일 이내에 총회 상소할 권리를 가로막은 헌법 권징 제94조를 위반한 불법이다.
권징 94조는 하회에서 판결한 재판 사건을 서면으로 상회에 상소를 제기하여 제출하여 재판받을 수 있는 권리가 보장 되어있다.
(3) 권징 95조의 상소할 제기할 사유따라 제96조의 상소인은 하회 판결 후 10일 이내에 상소 통지서와 상소 이유 설명서를 본회 서기에게 제출하여 총회서기부에 접수하여 헌의부에 이첩된 재판건은 헌의부 실행위원에서 재판국에 즉시 이첩하라는 강력한 규정을 어기고 기각이란 재판 용어를 사용한 것은 헌법권장 95조 96조를 위반한 불법행위이고 총회규칙을 위반한 불법행위는 취소되어야 하고 불법을 행한 자 역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3) 상소 기각의 단어는 헌법 권징 76조의 상소를 기각할 수 있다는 재판용어이다. 재판용어를 헌의부가 사용 할 수 없다.
4) 합법적인 절차를 따르지 않는 상소는 재판국에서 기각할 수 있다.
하회 판결이 충분하다고 인정된다고 판단할 때 상소를 기각하면 하회 판결을 인정하게 된다(권장99조, 정문399분)
5) 이와같이 재판국이 아니 헌의부에서는 재판건에 대해서는 76조와 99조의 재판용어인 기각을 사용 할 수 없고 일반 행정 서류가 아닌 재판서류는 재판국으로 보내는 서류는 반려할 수도 없다.
또한 기독신문 기사에 의하면 규칙부(부장:권희찬 목사)는 7월 21일 대전 판암장로교회에서 실행위원회를 갖고, 제111회 총회 현장에서 보고할 총회규칙 개정안을 심의 축조했다.
"같은 조 3항 각 부원의 임무에서 헌의부의 임무에 대해 ‘총회서기로부터 이첩받은 소송 건의 경우, 15일 이내 헌의부 실행위원회를 소집해 이를 심의해 총회재판국에 즉시 회부한다.(다만 6월 30일까지 접수된 사건에 한한다)’에서 접수 기일을 한 달 앞당겨 ‘다만 5월 31일까지 접수된 사건에 한한다’고 개정할 예정이다."
평택제일교회 김태식 목사를 면직한 남수원노회 소송 및 언론대응 위원회는 8월 2일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고문을 모 신문에 게재했다. 다음은 그 내용 중 일부이다.
오는 2026년 8월 13일 제8차 헌의부 실행위원회를 앞두고 공개된 안건 목록은 교단의 공의를 바라는 모든 이들에게 비통함과 분노를 넘어 참담함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과거 적법한 절차에 따라 수차례 기각되고 반려되었던 평택제일교회 관련 불법 서류가 또다시 아무런 법적 하자 치유 없이 당당히 이름을 올렸기 때문입니다.
1. 다섯 차례 반복된 불법 서류 재상정 잔혹사: 법과 원칙은 어디로 갔는가?
단순한 행정적 실수라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이 사안의 경과를 똑똑히 보십시오.
1차 심의: 헌의부는 절차를 무시한 부적격 서류로 엄정히 판정하여 반려했습니다.
2차 심의: 부전지를 붙여 다시 올라왔을 때, 헌의부는 '사회소송대응시행세칙'과 '권징조례 제76조'를 명백히 위반한 사실을 확인하고 법에 따라 기각했습니다.
3차 심의: 남수원노회를 기만한 불법 서류임이 드러나 헌의부에서 다시 기각 조치되었습니다.
4차 심의: 노회를 거치지도 않은 자격 미달의 개인 서류를 총회 접수처에서 무분별하게 받아주었으나, 헌의부의 법률적 엄정함 앞에 또다시 기각되었습니다.
이처럼 적법한 행정 절차와 총회 임원회의 거듭된 원칙 확인("헌의부가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을 통해 이미 4차례나 종결된 사안입니다.
그런데 이 불법 서류가 총회 임원회와 서기부를 거쳐, 다섯 번째로 다시 접수되어 제8차 헌의부 실행위원회 심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헌법과 권징조례를 정면으로 위반하고 노회까지 기만한 서류가 어떻게 끊임없이 총회 문턱을 넘어 헌의부로 순탄하게 이첩될 수 있습니까? 이미 법적 사형선고를 받은 서류가 부활하여 교단을 흔들도록 방치하는 총회 서기부와 접수 담당자들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이들입니까?
제8차 헌의부 실행위원회의 법적 '각하·기각' 결단
오는 8월 13일 열리는 제8차 헌의부 실행위원회는 정치적 타협이나 사사로운 친분에 흔들리지 말고, 사회소송대응시행세칙과 권징조례 제76조, 그리고 이전의 정당한 4차례의 기각·반려 결정을 재확인하여 이 부적격 서류를 단호히 각하·기각하십시오.
총회법과 남수원노회 소송 및 언론대응 위원회의 주장 사이에서 헌의부가 어떤 결정을 할지 총회원들은 관심 갖고 지켜볼 것이며,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은 결국 헌의부원들이 감당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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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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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동빈 장로, 제111회 총회 장로부총회장 입후보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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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9월 14일(월)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 시무)에서 개회하는 제111회 총회 임원·부장·기관장·위원 입후보자 등록이 8월 3일 오전 10시 총회회관에서 있었다. 이날 장로부총회장 입후보자 지동빈 장로가 등록했다.
지동빈 장로는 지난 4월 14일 열린 서울한동노회 제27회 정기회에서 후보 추천되었을 때 다음과 같이 인사말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총회를 기도로 섬기는 장로 부총회장이 되겠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태복음 22:37-39)
존경하는 노회장님과 목사님, 장로님 여러분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섬기시는 교회와 가정 위에 늘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이번 111회기 장로부총회장 예비후보로 추천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후보로 출마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섰습니다. 부족하지만 오직 기도로 준비하며 한동노회의 명예를 총회에 드높이겠습니다. 이제 그 작은 밀알이 되고자 몇 가지 말씀드립니다.
첫째, 화합하고 소통하는 밑거름이 되겠습니다.
총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목사님들과 장로님들 사이에서 유기적인 협력을 돕고 총회산하 모든교회의 상생을 도모하는 창구역활을 감당하겠습니다. 권위보다는 겸손으로 주장보다는 경청하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둘째, 투명하고 건강한 총회행정을 지원하겠습니다.
저는 총회 회계, 재정부장을 거치며 총회의 살림을 경험하고 집행했습니다. 총회 행정과 재정이 더욱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살피며 법과 원칙을 준수하며 어떠한 불의와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저의 가장 장점인 정직함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셋째, 다음세대와 미래를 준비하는 일에 충성하겠습니다.
점점 퇴보되어 가고 있는 다음세대 우리교단의 미래들이 신앙의 유산을 잘 이어받을 수 있게 교육정책에 관심을 갖고 또한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을 살피고 관심 갖고 함께 어울어져가는 총회를 만들겠습니다.
넷째, 선교와 구제의 사명도 다하겠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총회가 되기 위해 국내, 선교 현장을 사회적 약자를 살피고 돌보는 사업들을 활발히 지원하겠습니다. 장로부총회장의 자리가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라 가장 낮은곳에서 무릎으로 섬기는 자리임을 잊지않겠으며 그간의 총회에서 헌신한 경험을 살려서 몸된 총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도록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사랑하는 목사님, 장로님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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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3
오피니언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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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32】 감동과 기쁨을 주는 자들(영국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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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 기쁨을 주는 자들 (영국을 다녀와서)
하나님의 은혜로 GMS 세계 선교회 영국 3개 지부 수련회 인도 차, 영국을 다녀왔습니다(7월 27일 - 8월 5일). 영국에 머무는 동안 선교사님들을 격려해주고, 설교와 특강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머무는 기간, 재영 총신 동문회 수련회에 참석하여 설교했고, 주일은 영국 주찬양교회에서 설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제가 영국에 머무는 동안 훌륭한 선교사님들도 많지만, 두 가정의 선교사님 부부의 섬김과 헌신, 친절에 감동을 받았고, 제 마음이 기뻤습니다. 하나님만 기쁘게 하지 말고 사람도 기쁘게 하는 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고린도전서 10: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K. 선교사님은 이스라엘과 프랑스에서 선교 사역을 했고, 지금은 은퇴를 했지만 여전히 선교하고 목회에 열정적인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70대 후반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사역자들같이 열심히, 부지런히 선교 사역하고, 이민 목회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선교사님 두 부부가 영국의 이민 교회를 섬기고, 누구를 대하든지 친절하게 대해 주는 것을 느꼈습니다. 주위의 선교사나 목회자들에게 존경받는 선교사님이십니다. 또한 J. 선교사님 부부의 섬김과 친절, 섬세함과 헌신, 진실성에 감동 받고, 제 마음에 기쁨을 주었습니다. 체코에서 열린 GMS 유럽 선교 대회에서 만난 인연으로 이번에 영국에서 만났는데, 너무나 진실되고 정성 되이 한결같이 섬겨주심에 너무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나 자신도 부족하지만 섬겨보려고 노력하는데 J. 선교 사님 부부의 섬김은 지금도 기억되고 앞으로 계속 인간관계 맺고 싶어집니다. 섬기기 힘든 시대인데, 섬기시는 주님처럼 지금도 섬기고 섬김받으면 감동을 주고, 기쁨을 줍 니다. 큰 자는 섬기는 자이고, 리더는 섬김의 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계산하지 말고 진정성 있게 사랑하고 섬기면 감동을 주고, 사람을 기쁘게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인생의 삶에 큰 지혜입니다. 영국에서 만난 두 부부의 섬김의 모습에 감동을 받고 도전을 받습니다. J. 선교사님의 아내, K. 선교사님의 아내 선교사의 섬김, 친절이 내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한 번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인간관계 잘 맺는 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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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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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37】 삶을 어루만지는 고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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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공동체 감이당과 남산강학원의 학인들이 저마다 꼽은 ‘인생 고전’을 들고, 어떻게 이 고전과 만나게 되었는지, 이 만남이 자신의 삶을 어떤 방향으로 바꾸었는지 이야기하는 책. 오래된 미래인 동양고전 장자와 주역, 맛지마니까야와 법구경 등의 불경은 물론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의 계보학 등과 프랑스의 현대철학자 들뢰즈와 가타리의 안티오이디푸스, 천 개의 고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고전들만큼이나 다양한 삶의 모습과 고민이 펼쳐진다.-예스24
아직 읽지 못한 고전들이 많다. 젊을 때는 다 읽겠다는 욕심을 냈는데 돌아보니 아직도 고전은 저 멀리 있다. 남은 삶 동안 고전을 가까이 하며 살고 싶다. 세월과 인종을 이겨낸 책들이기에.
도덕의 계보학
명랑한 중년을 위해-최소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 서문에서 이 문장을 만났을 때 반갑고도 놀라웠다. 요즘 나의 상황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말이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 고민은 남편의 은퇴, 딸의 독립, 시어머님의 요양병원 입원 등의 일들이 벌어지면서 시작되었다. 물론 그전에도 살면서 문득문득 이런 고민을 하기도 했었지만 지금처럼 무겁게 다가온 적은 없다. 니제는 우리가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이유가 "무언가를 ‘집(p. 28)으로 가져가는’ 단 한 가지 일에만 진심으로 마음을" 쏟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흔히 자신의 직업을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 선호하는 직업은 무언가를 빨리, 많이, 오랫동안 집으로 가져갈 수 있는 일이며, 무언가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다. 그러니 우리는 직업을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돈을 소유하고 축적하는 것으로만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며 살아간다. 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해 온 내 삶의 궤적 또한 거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대기업에 취업을 했고, 직장에서 남편을 만나 임신 6개월에 전업주부가 되었다. 남편이 승진해서 월급이 오르고, 넓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고, 딸이 특목고에 들어갈 때는 살맛이 났다. 재테크로 투자한 편드가 반 토막이 될 때는 밤잠을 설쳤고, 딸이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해 방황할 때는 무기력과 불안에 시달렸다. 크고 작은 부침은 있었지만 남편이 28년 동안 직장 생활을 했고, 먹고살 만큼 돈도 모았고, 딸도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했다. 이만하면 나름 좋은 아내, 좋은 엄마로 잘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하면서 나를 위한 인생 후반기를 살게 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뭔가 혹하고 빠져나간 것처럼 큰 상실감이 느껴졌고, 뭘 해도(p. 29) 채워지지 않아 헛헛하기만 했다. 더불어 정체를 알 수 없는 막연한 불안도 불쑥불쑥 올라왔다. 니체는 우리가 무언가를 집으로 가져가는 일에만 신경을 쓰느라 “우리의 체험, 우리의 삶, 우리의 존재에서 울려 나오는 열 두 번의 종소리”에는 한 번도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더 이상 집으로 가져갈 것이 없어지자 상실감, 헛헛함, 불안에 휩싸이는 내 모습이 그동안 이렇게 살았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고 있다. 돈으로 채웠다고 생각했으나 실상은 그것에 매달리느라 중요한 많은 것들을 소외시키는 한없이 빈곤한 삶이었다. 현재가 좀더 안락하고 덜 위험하지만 충만함, 의지, 용기, 확신, 미래가 점점 위축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생명력을 소진 시키는 위기의 삶이다. 니체는 내가 사회가 제시하는 도덕적 가치들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인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도덕은 원래부터 주어져서 당연히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특정한 조건과 상황에서 만들어지고 변화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맞는 보편적 도덕이란 존재하지 않고, 조건과 상황이 달라지면 도덕 또한 새롭게 창조되어야 한다. 그러니 외부에서 주어진 도덕을 내 것으로 받아들여 그것에 얽매이는 노예가 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창조한 도덕을 삶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주인이 되어야 한다. 니체(p. 30)는 노예 도덕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자신이 믿고 따르는 가치들이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 생겨났으며 어떤 변화의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따져 보라고 한다. 그러면서 도덕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다면 그 보답으로 삶의 '명랑함'을 얻게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제 청년과는 다른, 새롭게 창조된 중년의 명랑함을 위해 나 자신의 '도덕의 계보'를 밝혀 보려고 한다. 든든한 후원자이자 안내자인 니체와 함께(p. 31).
장자
쓸모없음의 큰 쓸모-이경아
"승진이나 상은 남한테 미루지 말고 할 수 있을 때 해라.”-내가 항공사에 입사하자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다. 아버지의 욕망과 내 욕망이 만나 승진을 위해 달렸다. 승진을 하면 월급 인상 외에 권력이 생긴다. 비행기 매니저를 하게 되면 평가권도 갖고, 그 비행에서는 최고 권력을 갖는다. 대형기일수록 더하다. 그래서 다들 빨리 승진해서 매니저가 되고자 한다. 회사는 승진을 미끼로 충성을 요구한다. 승진을 하면 다음 승진을 위해 또 달린다. 회사는 직원을 소모품으로 본다. 소모품 중 품질 좋은 소모품이 되라며 충성을 요하는 건 기본이고 성형과 몸매관리도 자기관리라며 독려한다. 그러다 기내에서 일하다 다치거나 아파서 병가(p. 60)가 길어지면 그 직원은 쓸모가 없어지고 회사의 지출을 늘리는 불편한 존재가 된다. 회사는 그런 불편함을 당사자가 느껴 그만 두도록 압박을 한다. 그런 일을 하는 중간관리자도 윗선의 필요 에 따라 같은 처지가 된다. 더 윗선은 오너의 마음에 달렸다. 승진 경쟁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나는 체력에 한계가 왔고, 더는 회사의 소모품으로 살기 싫었기에 과감히 사직서를 냈다. 그때 든 생각은 이제 쓸모없는 인간이 될 거라는 두려움이었다. 회사가 나를 상품으로 취급하는 게 싫었는데도 여전히 삶은 돈으로 평가받는다고 생각했다. 돈이 있어야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식에게 당당하고 남에게도 무시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돈을 벌어 나의 능력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백수생활 시작 후 처음 한 일도 재건축 관련 일이다. 그곳은 회사보다 더했다. 오직 돈이었다. 청렴하다고 믿었던 현직 교수인 조합장이 뇌물 관련 사건으로 구속되는 것을 보며 그곳을 떠났다. 유용성에 대한 내 전제는 의심하지 않고 남들만 욕심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이런 삶 말고 다른 삶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던 중 고전 공부를 시작했고 『장자』를 만났다. 장자는 사당목인 상수리나무를 예를 들어 무용지용을 역설한다. 목수 석이, 높이는 산을 굽어볼 정도이고 둥치가 백 아름 정도나 되는 사당목을 보며, 제자에게 배로 만들면 가라(p. 61)앉고 관을 짜면 곧 썩을 나무인데 그 덕에 오래 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자 사당목이 석의 꿈에 나타나 "나를 무엇에 비교하는지? 열매를 맺는 재능이 있는 나무는 그 재능 때문에 가지가 꺾이어 천수를 누리지 못하는 것이니 화를 스스로 자초한 셈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쓸모없기를 바라왔는데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이제야 당신 덕에 완전히 그리되었으니 그것이 나의 큰 쓸모였다"고 이야기한다. 또 둘 다 하찮은 사물인데 어찌 상대방을 하찮다고 하며, 죽을 날이 가까운 쓸모없는 인간이 쓸모없는 나무 운운하느냐고 반문한다. 장자는 삶을 삶 자체로 보라고 한다. 무엇이 진정 생명을 위한 것인지 질문하게 한다. 장자가 말하는 큰 쓸모는 양생(養生)이다. 이 사당목은 남들이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재능이 없기에 오히려 천수를 누리고 있다. 돈이 없다고 비루한 삶인가? 돈이 많으면 고귀한 삶인가?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돈이 많아 공경의 대상이 되고 있나? 부자들이 돈이 없어 자신의 삶을 중독이나 폭력으로 몰고 가나? 장자는 내가 쓸모없음의 유용성에 눈을 뜨도록 해주었다. 난 그동안 돈이 되지 않는 일상은 무시하고 살았다. 돈을 버는 것도 일상을 살기 위한 일인데 돈으로 환산되는 가치들을 절대화하며 소중한 일상과 내 몸을 제물로 삼았다. 돈이라는 작은(p. 62) 것으로 큰 내 삶을 평가받고자 했다. 이제 장자를 통해 새로운 삶의 비전을 만나 굳어 버린 전제들을 하나하나 깨며 자유로워지고 싶다(p. 63).
말과 사물
'당연히'와의 결별-전현주
과연 『말과 사물』은 놀라운 책이었다. 진리는 연속적으로, 진보적으로 발전해 오지 않았다는 것, 각각의 시대는 고유한 인식의 틀로 자신만의 진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는 것. 그렇다면 결국 지금까지 내가 진리라고 믿고 있던 그것은 여하튼 '우리 시대'의 진리일 뿐이다! 이럴 수가, 내가 그동안 배워 온 것은 무엇이었나. 무지에서 진리로, 비인간적인 사회에서 인간적인 사회로 변화 발전해 온 것이 역사 아닌가. 그런데 각각의 시대적 지반 위에 세워진 진리'들'이라니, ‘단절’의 역사라니! 『말과 사물』은 단순히 새로운 정보를 준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의 뿌리를 흔들었다. 『말과 사물』에서 이 새로운 진리를 뒷받침해 줄 증거들을 발(p. 174)견할 때마다 나는 즐거웠다. 공부하는 재미를 알아가는 기분이 있다. 그런데...그렇게 책을 읽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어느날 문득 의문이 생겼다. 진리란 고정불변된 것이 아니라, 시대 마다 새롭게 구성되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왜 또 나는 그것을 진리라고 믿어 버리는 거지? 헐! 내가 푸코(Michel Foucault)를 이렇게 읽고 있었다니. 푸코에게는 각각의 앎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크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 자신의 생각이 서 있는 지반에 질문을 던진다. 각 시대가 자신들만이 구성하는 진리를 갖듯, 푸코 역시 새로운 생각의 길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그는 방대한 자료들을 풀어 헤치고, 그 사이를 촘촘히 들여다보고, 주의 깊게 새로운 매듭을 만들어 내며 완전히 다른 역사를 '재구성'해 내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앎의 길을 내기 위한 그의 지난한 싸움! 바로 여기가 내 공부자리여야 했다. 내가 공부를 시작한 이유는 살아오며 답답했던 일들로부터 자유롭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당연한 것이 너무 많았다. 아버지의 직장 일로 외국에 살던 시절 집에서는 영어식 발음이나 표현이 나오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해야 했다.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한국어를 해야지, 라는 생각에. 성인이 되면서는 ‘인간’ 답게 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놀고 먹는 잉여적 인간이 되지 않기 위(p. 175)해 필사적으로 노동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번 돈으로 각종 보험을 들었다. '생명'은 당연히 죽음과는 반대편에 있으니,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철저한 대비가 필요했다. 이외에도 나는 수많은 '당연히'들을 반복하고 반복했다. 분명 힘들고 혼란스러웠음에도 나는 그것들에 대해 질문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 당연하니까. 푸코를 만난 이후 나의 '당연히'들이 깨지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살고 있는 '당연히'들이 구성된 지반을 잘 보여 주었다. 그 지반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을 때, 나는 그것을 좇아 사느라 힘들었었다. 그것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큰 잘못을 한 것 같았다. 조심 조심 '당연히'들을 지키며 살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었다. 그럼 이제는? 절대적인 것도 아닌 것에 얽매일 필요가 전혀 없네. 괜히 피곤하게 살고 있었네. 그것들에 신경 쓰지 않고 편안하게 살면 되겠군. 신난다! 그렇게 나는 멈춰 섰다. 편안함 위에, 푸코를 새로운 진리로, 또 다른 당연함으로 붙잡으면서 말이다. 이는 공부하기 전에 있던 '당연히'를 다른 '당연히'로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그가 하는 고민을 배우는 대신, 나를 불편한 것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내용만 취하고 있었다. 나아가 내가 자유롭게 되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아주 쉬운 방식을 찾아냈다. 배운 내용을 진리로 받(p. 176)아들이기. 그것으로 나의 편안해진 삶을 계속 유지하기. 『말과 사물』은 이런 나를 가만히 보고 있지 않는다. 진리에 기대고 싶은 마음을 흔든다. 편안함에 주저앉으려는 나를 일으켜 세운다. 이제 자신의 질문을 놓치지 않고, 지난한 싸움을 피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내는 푸코의 공부가 배우고 싶었다. 나의 ‘당연히’를 뿌리째 뒤흔드는 공부를. 잘 가, ‘당연히’~. 나는 이제 푸코와 함께 새로운 길을 가겠어(p. 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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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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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36】 의사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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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매일매일 환자들을 보면서 부딪치고 목격했던 의료현장에 대한 기록으로 현대의학의 '불확실성'에 대해 이야기 한다. 생생한 사례를 통해 의학이 얼마나 불확실한 것인지, 또 의사는 그 불확실성 때문에 얼마나 고뇌하는지를 보여주고 결과적으로 환자-의사 관계를 더욱 가깝게 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총 3부에 걸쳐 의료현실뿐 아니라 그 등장인물들, 즉 환자와 의사를 똑같이 보여주며 의료 현장에서 발생하는 예기치 않은 곡절과 근본적으로 의사가 하는 일의 밑바닥에 깔린 보다 큰 불확실성과 딜레마에 대해 이야기 한다.-예스24
생각해 보면 의사는 업보같다. 머리가 좋아 공부 잘했기에 의사가 된다. 물론 사회적으로 인정 받고 안정된 수익을 얻지만 평생 아픈 사람들을 상대해야 한다. 나 하고는 맞지 않는 직업이다. 병원은 앞으로도 아플 때나 어쩔 수 없이 가는 곳이기를 바래본다.
의사란 참 기이하고 또 여러 면에서 겁나는 직업이다. 위험부담이 높은데도 엄청난 재량권이 주어진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약을 먹이고, 주사를 놓고, 관을 삽입하고, 화학적• 생리적 • 물리적으로 조작하고, 무의식상태로 몰아넣고 몸을 열어제키기도 한다. 물론 전문인으로서 우리의 노하우에 대한 굳은 확신을 갖고서 한다. 하(p. 12)지만 좀더 가까이, 잔뜩 찌푸린 미간, 의혹과 과실, 성공만이 아니라 실패까지도 보일 만큼 가까이 다가가 보면, 아마도 의학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지럽고, 불확실하고, 예측불허한지 보게 될 것이다. 의학은 근본적으로 사람의 일이다. 이 점은 아직도 나를 때때로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의학과 그 놀라운 능력에 대해서 생각할 때 우리는 흔히 과학과, 과학이 질병과 고통에 맞서 싸우도록 우리에게 준 수단들, 즉 여러 가지 검사와 의료기기, 약품, 수술 등을 떠올 린다. 그러한 것들이 의학이 이루어낸 사실상 모든 것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는 좀체 보지 못한다(p. 13).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외과에서 기술과 자신감은 경험을 통해서 더듬더듬, 자존심을 상해 가며 얻어진다. 테니스 선수나 오보에 연주자나 하드드라이브 기술자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 일에 능숙 해지려면 반복적으로 연습을 해야 한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의학에서 연습 대상은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는 점뿐이다(p. 30).
이러한 종류의 소모는 의외로 흔하다. 의사는 보통 사람들보다 스트레스도 잘 견디고 강하고 웬만해서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들 생각한다. (혹독한 수련기간 동안 약골들은 다 추려지는 거 아닌가?) 하지만 여러 증거들을 보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례로, 연구조사에 따르면 알콜중독은 다른 집단만큼이나 의사들 사이에서도 흔하다고 한다. 의사들은 처방용 마약이나 안정제에 중독되기 쉽다. 쉽게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전체 노동연령층 인구의 약 32%는 한 가지 이상의 심각한 정신질환을 보인다. 주로 심한 우울증, 조증, 공포증, 정신이상, 중독증 같은 질환들인데, 그러한 질환이 의사들에게서는 덜 나타난다는 증거는 없다. 그리고 물론 의사들도 병들고, 늙고, 사명감이 없어지거나, 개인적인 문제로 정신이 산란해지기도 하며, 그런저런 이유로 해서 환자들을 돌보는 데 소홀하게 되거나 흔들리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문 제의사들을 비정상분자로 생각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만일 40년간 의사생활을 하면서 한두 해 정도 고전한 시기가 없었다면 그 사람이 비정상일 것이다. ‘문제’가 좀 있다고 해서 모두 위험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때라도 현직 의사 중 3~5%는 사실상(p. 129) 의료행위를 하기에 부적합하다고 추정된다. 의사사회에 그러한 의사들을 처리하는 공식지침이 있기는 하다. 그런 의사의 동료들은 즉각적으로 합심해 시술을 못하게 하고 의사 면허당국에 보고하여야 하며, 보고를 받은 당국은 그들을 처벌하거나 의사사회에서 제명시키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떤 조직사회도 그렇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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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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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35】 체크리스트는 쉬우면서도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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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고 까다로우며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는 현대인. 그들이 실패하지 않기 위한 해결책으로 체크리스트를 제시하는 책이다. 저자는 체크리스트의 사용이 업무의 효율뿐만 아니라 일의 성공과 실패, 나아가 사람의 생사도 좌우한다고 말한다. 체크리스트는 우리의 실수를 막아준다. 불완전한 기억력과 정신적인 허점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실수를 저지르게 마련이다. 게다가 사회가 복잡해지고 전문화되면서 한 사람의 기억력과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업무들이 생겨났다. 때문에 오랜 기간 훈련을 쌓아온, 노련한 전문가들조차 실수와 실패를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작은 실수들이 때로 뼈아픈 실패를 야기하기도 한다. 체크리스트는 바로 이런 실패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이다. 실제로 외과의사인 저자는 수술실에 체크리스트를 도입했다. 그가 고안한 ‘안전한 수술을 위한 체크리스트’를 전 세계 8개 병원에서 실험한 결과, 3개월 동안 합병증 비율은 36%가 떨어지고 환자 사망률은 47% 감소했다. 그 결과, ‘안전한 수술을 위한 체크리스트’는 현재 WHO에 공식 채택되어 세계 각지의 병원에서 활용되고 있다. 체크리스트는 끔찍한 사고를 막아주고, 수많은 사람들이 공들인 프로젝트를 보호해준다. 체크리스트는 단지 ‘지켜주기만’ 하는 방어기제가 아니다. 끔찍한 재난에서 인명을 구할 수 있고, 수술실에서 생명을 구해내며, 금융위기도 피할 수 있게 하고, 한 개인을 성공으로도 이끌어준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종이 한 장에 세상을 바꾸는 힘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예스24
나는 실제로 여러 경우에 체크리스트를 사용하고 있다. 그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의학이든 그 무엇이든 체크리스트는 우리의 두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데 유익하다. 단순한 것으로 책 한 권을 썼다는 것이 대단하다. 현재 이 책은 품절됐다.
우리는 초전문가의 시대, 즉 한정된 분야에서 일류가 될 때까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임상의들의 시대에 살고 있다. 초전문가들은 일반적인 전문가에 비해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중요하고 세부적인 지식을 더 많이 알고 있고, 그들이 종사하는 특수한 분야의 복잡한 상황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습득해서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 복잡한 상황에도 여러 단계가 있고, 고도의 지식과 전문 기술을 보유한 전문가들조차도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실수를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졌다. 수술보다 더 극도로 전문화된 분야도 아마 없을 것이다. 수술실은 집중치료실에서 하는 업무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행해지는 공간이다. 수술실에는 환자의 통증을 조절하고 환자의 상태를 안정시키는 마취의들이 있다. 그런데 마취의들조차 여러 분과로 나뉜다. 소아전문 마취의, 심장전문 마취의, 출산전문 마취의, 신경전문 마취의 등(p. 42) 여러 마취의들이 있다. 간호사들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수술실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간호사들도 전공 분야에 따라 분화되어 있다. 외과의 또한 고도로 전문화되어 있다. 의사들끼리 오른쪽 귀를 수술하는 의사와 왼쪽 귀를 수술하는 의사가 따로 있다는 농담을 하고 나서 정말로 그런 의사가 있는지 확인해볼 정도다. 나는 일반외과의 교육을 받았지만 사실상 일반외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주 궁벽한 시골 병원을 제외하고 말이다. 한 사람의 외과의가 모든 수술을 해낼 수는 없다. 나는 종양학에 집중해서 환자를 보기로 결심했지만 이조차 너무 광범위했다. 그래서 응급사태에 대비해 다양한 외과 기술을 발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면서 내분비샘암 제거에 대한 전문 기술과 지식을 쌓아왔다. 한때 아주 간단한 수술에서조차 사망위험률이 두 자리 숫자였던 적이 있었다. 수술 후 환자의 회복 과정이 길었고, 장애가 생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십 년 동안 급격하게 외과 수술이 전문화되면서 수술 능력과 성공률이 크게 향상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수술로 인한 사망자 수가 줄지는 않았다. 미국인들은 일생 동안 평균 7번 수술을 한다. 외과의들은 매년 5000만 건이 넘는 수술을 한다. 너무 많은 수술을 하기 때문에 수술로 인한 피해 역시 크다. 미국에서는 매년 15만 명 이상의 환자가 수술로 인해 사망한다. 이는 교통사고 사망자 수보다 3배가 많은 수치다. 게다가 연구에 따르면 수술로 인한 사망과 주요 합병증의 절반은 피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극도로 전문화되어서(p. 43) 그에 따른 특수 훈련을 받는다고 해도 여전히 실수할 것이다. 실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의학이 거둔 눈부신 성공 뒤에는 많은 실수와 실패가 존재한다. 의학계는 크나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급박한 상황에서 의사의 전문 지식이 충분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또한 초전문가까지 실패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 의학과는 아무 상관없는 곳에서 얻었다(p. 44).
1935년 10월 30일 오하이오 주 데이턴의 미 육군항공대에서 군에 차세대 장거리 폭격기를 공급하고자 경합을 벌이던 항공기 제조업 자들을 대상으로 비행 시합을 열었다. 사실 그건 시합이라고 할 수 없었다. 이미 초반 평가에서 보잉의 반짝거리는 알루미늄 합금 모델 299기가 다른 항공기 제조회사들, 즉 마틴과 더글라스를 제치고 완승을 거둔 상황이었다. 보잉의 폭격기는 육군이 요청했던 것보다 5배나 더 많은 폭약을 탑재할 수 있었고, 이전에 나온 폭격기들보다 훨씬 빠르며, 2배나 더 멀리 갈 수 있었다. 시애틀 상공에서 시험 비행을 하던 모델 299기를 본 한 기자는 '하늘의 요새'라는 표현을 썼고, 그것이 그 폭격기의 별명이 되었다. 군 역사가인 필립 마일링거에 따르면 그 비행 시합은 단지 형식에 지나지 않았다. 육군에서는 그 항공기를 최소 65대 주문할 계획이었다(p. 47). 이날 군 고위층과 항공회사 중역들이 모여 모델 299기가 시험 비행을 하기 위해 활주로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봤다. 모델 299기는 날개 길이가 31미터에 달하고, 날개에서 그때까지 일반적이던 쌍발 엔진이 아닌 4발 엔진이 튀어나와 있었다. 아주 날렵하고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 비행기는 굉음을 내며 부드럽게 이륙해서 100미터 상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러다 갑자기 엔진이 꺼지며 한쪽 날개에 의지하더니 그대로 폭발해서 추락하고 말았다. 그 사고로 조종사인 육군 소령 플로이어 힐을 포함해 승무원 5명 중 2명이 사망했다. 사고 조사 결과 기계 결함이 아닌 '조종사의 실수' 때문에 비행기가 추락한 것으로 밝혀졌다. 모델 299기에는 4개의 엔진과 접어 넣을 수 있는 착륙 장치, 날개 플랩, 속도에 따라 세심하게 조정해야 하는 전기 트림 탭(trim tab), 비행기가 앞뒤로 흔들리는 것을 유압 조정 장치로 조정하는 정속 프로펠러를 포함해 조종사가 신경 써야 할 복잡한 장치들이 아주 많았다. 힐은 이 모든 장치들을 조종하느라 승강타와 방향타의 새 제어 장치를 깜빡 잊고 해제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모델 299기는 한 신문에서 보도한 대로 ‘한 사람이 조종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비행기’였던 것이다. 육군항공대는 더글라스의 좀 더 작은 폭격기를 시합의 승자라고 발표했다. 보잉은 이 사건으로 인해 파산할 뻔했다. 하지만 육군은 모델 299기를 테스트 비행기로 몇 대 구입했다. 육군에 이 폭격기를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이 없지는 않을 거라고 확신했던 것이다(p. 48). 테스트 비행 조종사들이 모여 어떻게 이 폭격기를 조종해야 하는지에 대해 지혜를 모았다. 그들은 모델 299기를 모는 조종사들에게 평소보다 더 많이 훈련시키지는 않기로 했다. 육군항공대의 테스트 비행 조종사들 가운데서 최고였던 힐 소령보다 더 많은 경험과 지식을 쌓기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아주 간단한 해결책을 고안해냈다. 조종사를 위한 체크리스트를 만든 것이다. 이 체크리스트 덕분에 이후 항공술은 고도로 발달했다. 초기 비행 시대에는 비행기를 상공에 띄우는 일이 불안하기는 해도 복잡하지는 않았다. 비행이 차고에서 차를 후진해 빼는 것처럼 단순하게 여겨지던 시대였다. 이때는 체크리스트가 전혀 필요 없었다. 하지만 성능 좋고 복잡한 비행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조종이 어려워 졌다. 비행사가 아무리 노련한 전문가라고 해도 한 사람의 기억력에만 의존해 조종하기에는 복잡한 장치들이 너무 많아진 것이다. 테스트 비행 조종사들은 한 장의 색인카드에 모든 내용이 들어가는, 짧고 단순하며 핵심 사항만 담은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이것으로 이륙, 비행, 착륙, 지상 이동을 단계적으로 체크할 수 있었다. 체크리스트에는 모든 비행사들이 알고 있는 사항과 꼭 실시해야 할 일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브레이크를 풀었는가, 계기가 제대로 세팅 되었는가, 문과 창문이 닫혀 있는가, 승강타 제어 장치가 풀려 있는 가 등 간단한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체크리스트를 도입한 결과는 놀라웠다. 조종사들은 모델 299기로 총 180만 마일을 비행하면서 단 한 건의 사고도 일으키지 않았다. 결국 육군은 모델 299기를 1만 3000대 더 주문했고, 이 폭격기에는 B-17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p. 49)제 이 거대한 야수를 다를 수 있게 된 미 육군은 제2차 세계대전의 항공전에서 결정적인 우위를 보이면서 나치 독일에 치명적인 폭격을 퍼부을 수 있었다(p. 50).
항상 이런 식이었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만 해도 일부 비행 조종사들은 아무리 신중하게 고안된 준비 절차라고 해도 콧방귀를 끼어대며 무시하는 걸로 악명이 높았다. "난 비행하면서 한 번도 문제가 없었어"라고 그들은 말했다. “그냥 가. 다 괜찮을 거야” 혹은 "내가 캡틴이야. 이건 내 비행기야. 너 희들이 내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거야"라는 말도 자주 했을 것이다(p. 238). 1977년에 일어난 테네리페 참사를 예로 들어보자. 이 사고는 항공 역사상 가장 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안개가 낀 카나리아제도 활주로에서 보잉 747 여객기 2대가 고속으로 충돌해 비행기에 탑송한 583명이 사망했다. 그중 한 대인 KIM 항공편의 기장이 활주로에서 이륙 승인이 나지 않았다는 관제탑의 지시를 오해하고, 관계의 지시 내용이 분명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린 부조종사의 말도 무시 했다. 사실 그때 같은 활주로의 반대편에서 팬암 여객기가 먼저 이륙하고 있었다. "팬암 여객기가 이륙 승인을 받은 거 아닐까요?" 부조종사가 기장에게 물었다. "아니, 우리가 받았다니까." 기장은 이렇게 주장하면서 계속 활주로로 나아갔다. 기장이 틀렸다. 부조종사는 이 점을 즉시 간파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상황에 대비가 돼 있지 않았다. 그들은 한 팀이 될 절차를 밟지 않은 것이다. 부조종사는 승인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기장을 멈추게 해서 혼란스런 상황을 정리하지 못했다. 기장은 막무가내로 계속 밀고 나갔고 결국 모두를 죽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프로토콜을 충실하게 따르면 경직돼 보인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다. 그들은 체크리스트를 따르면 아무 생각 없는 로봇처럼 체크리스트에 머리를 처박고 있느라 밖을 내다보고 그들 앞에 펼쳐진 진짜 세상에 대처하지 못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잘 만들어진 체크리스트를 사용하면 실상은 그 반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체크리스트는 쓸데없는 일에 방해받지 않도록 해주고, 일상(p. 239)적인 일들(예를 들어, "승강타 제어 장치가 세팅이 됐나?" "환자가 항생제를 제때 맞았나?" "매니저들이 모두 주식을 팔았을까?"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이해했나?" 등)에 신경을 쓰지 않도록 해주며 중요한 일("어디에 착륙해야 할까?")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든다. 여기서 내가 본 예리한 체크리스트 중 하나를 소개하려고 한다. 이 체크리스트는 엔진이 하나인 세스나를 몰다가 엔진이 작동되지 않을 때 적용하는 것으로 브리티시에어라인과 조건이 같다. 다른 점은 조종사가 한 명뿐이란 것이다. 이 체크리스트는 엔진의 시동을 다시 걸기 위해 연료 차단 밸브가 오픈 위치에 있는지 확인하는 것과 예비 연료 펌프 스위치가 켜져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과 같이 중요한 6단계로 압축되어 있다. 하지만 이 리스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항목이 하나 있다. 이 단계는 아주 간단하게 표현되어 있다. '비행기를 조종하라'가 그것이다. 조종사들은 엔진에 다시 시동을 걸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추가로 무슨 문제가 생길지 생각하느라 뇌에 과부하가 걸린 상태에서 비행기를 조종하는 가장 기본적인 일을 깜박 잊어버릴 수 있다. 체크리스트를 따른다고 경직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체크리스트는 모든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최선의 기회를 확보할 수 있게 확인하는 절차일 뿐이다(p. 240).
다른 수많은 분야도 사정은 같다. 우리는 교육계, 법조계, 정부 프로그램, 금융계, 혹은 다른 분야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사고나 실패에 대해 연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일어나는 실수의 패턴을 찾지도 않고, 그에 대한 해법을 고안하거나 개선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다. 이 점이 바로 핵심 포인트다. 우리는 온갖 종류의 실패들, 즉 빠뜨리고 지나간 세부적이고 미묘한 사항들, 못 보고 지나친 정보와 터무니없는 실수로 인한 피해에 시달리고 있다. 대개 우리는 좀 더 열심히 일해서 문제를 발견하고, 그 뒤처리를 하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육군 조종사들이 반짝거리는 신형 모델 299 폭격기(B-17, 너무 복잡해서 어떤 인간도 조종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기(p.250)계)를 보면서 생각했던 방식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잡혀 있지 않다. 이 조종사들 역시 ‘좀 더 열심히 노력’하기로 결정하거나 아니면 그 비행기의 추락 사고를 ‘실력이 부족한’ 조종사의 실패로 판단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오류를 범하기 쉽다는 점을 받아 들이는 쪽을 선택했다. 그들은 체크리스트의 단순함과 진가를 알아 차렸다. 우리도 그럴 수 있다. 사실 복잡한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반드시 그래야 한다. 다른 선택이란 있을 수 없다.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면 아주 뛰어난 능력과 결단력을 지닌 사람들조차 계속 같은 공을 떨어 뜨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 패턴과 그에 따른 대가를 잘 알고 있다. 이제는 뭔가 다른 것을 시도해볼 때가 되었다. 체크리스트를 써보라(p.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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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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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원 목사 선교13】 몽골교회와 한국교회의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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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교회와 한국교회의 연합
한국에는 이주민들이 현재 280만 여명이 살고 있다.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가운데 우리나라에 보내 주신 사람들이다. 한국교회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사랑을 베풀며 복음을 전해야 한다. 이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이주민교회와 한국교회가 서로 협력해야 한다.
부천에 있는 부천몽골교회와 순복음 부천교회가 좋은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다. 부천몽골교회는 몽골인과 한국인이 함께 모이는 교회이다. 몽골에서 선교사로 사역을 하던 서기원 목사가 귀국하여 개척하여 세운 교회로 동인천노회에 소속된 교회이다. 몽골인들이 70%이고 한국인이 30% 모이며 유치부, 유초등부, 청소년부의 모임이 있다.
순복음 부천교회는 부천몽골교회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대형교회이다. 이 교회는 해외에 선교를 많이 하는 교회로, 해마다 청년들이 해외단기 선교를 다녀온다. 그런데 작년부터 선교훈련을 받은 청년들이 해외로 단기선교를 가지 않고 부천몽골교회를 찾아와서 함께 수련회를 하고 있다. 작년 여름에 순복음부천교회 청년들이 처음으로 방문해서 함께 수련회를 하기로 의논하고 해외단기선교를 나가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열심히 준비해서 부천몽골교회에서 1박 2일의 수련회를 가졌다. 수련회 시간마다 서로 눈물을 흘리며 많은 은혜를 받고 나누는 경험의 시간을 가졌다. 순복음 부천교회의 담임목사님도 너무나 좋아하시고 이러한 수련회를 계속 갖기를 원하셔서 올해도 수련회를 가졌다. 올해는 그 교회의 성도들도 함께 참여하셔서 봉사를 하시며 함께 은혜를 나누었다.
이것을 보면서 한국에 있는 이주민들을 선교하는 좋은 선교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이주민교회들은 여러가지 면에서 연약한 부분이 많이 있다. 재정적으로 연약하고 교회의 일꾼들도 부족하다. 반면에 한국교회는 재정적인 면이나 일꾼들 면에서 보면 이주민교회들보다 풍성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서 이렇게 풍성한 은혜를 주신 것은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선교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많은 시간과 경비를 드리며 해외선교와 단기선교를 실시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시간과 경비를 들이지 않고도 선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교회의 주변에 여러 나라 민족의 이주민 교회들이 있다.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고 이주민교회들과 함께 협력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좋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보라 형제가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음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 1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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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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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칼럼31】 리더와 희생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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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와 희생의 지혜 (요한복음 12:24)
희생하기 싫어하는 시대입니다.
이기주의자들이 많습니다.
리더가 희생의 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희생은 어리석음이 아니고, 지혜로움입니다.
희생해야 열매 맺게 됩니다.
요한복음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최고의 리더, 예수님의 삶은 희생의 삶이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은 희생의 극치입니다.
희생이 있는 리더가 있는 교회나 공동체가 든든히 세워져 갑니다.
희생하지 않고, 재주부리고, 요령 피는 리더는 실패합니다.
게으른 자는 희생이 없고, 부지런해야 희생합니다.
쉽게 되는 것은 없고, 리더는 희생의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담임목사가 목회할 때, 희생해야 하고, 주일예배 시, 네 번 예배드린다면 피곤하더라도 기쁨으로 네 번 설교해야 교회가 성장합니다.
자신이 편하려고 부교역자에게 주일 설교 맡기면 교회가 성장하지 못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부교역자에게 새벽이나 금요 저녁은 나누어서 설교할 수 있지만, 주일 설교는 대체로 많이 모이고 무게감이 있기에 담임목사가 희생정신으로 설교해야 합니다.
감사와 즐거운 마음으로 주일날 설교하면 네 번 설교해도 피곤하지 않고, 즐겁고, 행복합니다.
목회와 설교를 즐겨야 합니다.
교회의 그릇은 담임목사의 그릇과 비례합니다.
어느 공동체나 리더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리더는 반드시 희생해야 합니다.
희생이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희생하는 것이 손해가 아니고, 축복받는 비결입니다.
더 많이 희생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몸과 재물, 시간 드리는 헌신과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담임목사의 희생하는 모습, 요령 피는 모습을 보게 되고,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희생하는 리더를 사용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희생이 능력이고, 지혜입니다.
희생하지 않는 리더가 있는 공동체는 병들고, 무너지기 쉽습니다.
하나님도 희생의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주시고, 독생자 예수님까지 주셨습니다.
부모의 희생과 헌신으로 자녀가 성장하게 됩니다.
희생한 만큼 성장합니다.
희생의 고통을 인내로 견뎌내야 합니다.
희생해야 신뢰 얻고, 존경받게 됩니다.
사탄의 속성은 희생이 없이, 쉽게 쉽게 무엇인가 하려고 합니다.
희생 없이 성공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비결은 모든 것을 바치고, 헌신하고, 희생함에 있었습니다.
영적 리더는 설교 준비 열심히 하고, 기도 많이 하고, 전도하고, 글을 쓰는 희생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익, 손실 계산하지 말고, 희생정신으로 반드시 희생해야 합니다.
리더가 희생할 때, 리더십이 세워집니다.
하나님과 사람, 공동체의 기쁨이 되고, 유익을 주는 리더로 성장해야 합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희생해야 합니다.
리더가 희생하는지, 안 하는지 하나님은 아십니다.
혹시 재정이 부족하면 담임목사가 사례 늦게 받고, 부교역자나 직원들을 먼저 챙겨주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신기하게 리더가 희생하면 재정도 부족하지 않게 채워지고, 담임목사가 사례 늦게 받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을 경험합니다.
희생의 마음으로 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마음입니다.
희생하느냐, 요령 피우느냐, 지혜로운 자는 희생을 선택합니다.
희생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주일날 교회 일찍 와서 준비하는 것도 희생의 기초가 됩니다.
게으른 자는 실패하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주의 일을 위해 수고하고 희생하는 것, 주님께서 헛되지 않게 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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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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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원 목사 선교12】 한국 이주민 선교 연합회(K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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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이주민 선교 연합회(KIMA)
한국에서 이주민선교의 역사는 30여년이 된다. 이주민 선교의 환경이 어려운 상황이어서 사역자들이 서로 힘을 합하여 연합하여 기도하고 연구하고 공부하면서 사역하고 있다. 1995년에는 외국인 이주노동자협의회(외노협)이 만들어졌다. 1995년 1월에 명동 성당에서 네팔 산업 연수생들이 부당한 처우에 항의하며 농성을 벌인 것이 계기가 되어서 이를 지원하는 단체들이 모여서 결성하였다. 이 모임은 선교단체로 규정하기 보다는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권익을 위한 시민사회 연대기구라고 볼 수 있다.
1991년에는 중국어문선교회가 중국동포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중국교포선교협의회가 구성되고 한국기독교교회 협의회(NCCK)는 1992년에 한국교회 노동자선교협의회를 구성했다. 그 이후 각 교단과 기관에서 이주민선교를 위한 기관들이 설립 되면서 연합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때에 만들어진 기관이 이주민선교 한국교회연합(이선한)이다. 진보와 보수진영이 서로 협력하며 사역을 하였고 이 때에 서해안 기름유출 사건이 발생함으로 만들어진 한국교회 희망봉사단이 이선한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한국교회 희망봉사단이 전국의 이주민사역단체들에게 1년간의 후원을 지원하며 격려해 주었다.
이선한의 모임이 여러 가지 이유로 해산이 되고 2019년에 오륜교회에서 한국교회 이주민선교연합(KIMA)이 공식적으로 출발하였다. 이 단체는 현재까지 한국교회의 이주민선교를 위한 연합체로 설립 이후 지금까지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대부분의 교단 사역자들이 참여하고 있고 외국인노동자선교, 유학생선교, 국제결혼자선교, 비즈니스선교 등 다양한 사역을 하고 있는 사역자들이 모이는 연합체이다. 함께 기도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세미나를 하면서 함께 사역을 하고 있다.
앞으로 한국사회는 더욱 다문화사회로 진행이 될 것이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교회가 앞장서서 다문화사회를 선도해야할 책임이 있다. 이러한 때에 다문화 사회의 큰 흐름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교회와 여러 기관들이 서로 협력을 해야 한다. 우리 보다 앞서 다문화사회를 경험한 유럽의 경우를 보면 정부나 사회단체들이 다문화사회에 대한 관심과 노력을 많이 했지만 교회는 그만큼 노력하지 못했다. 결과 유럽은 역선교를 당하고 있다. 다문화사회에 대한 대처를 교회 및 여러 단체가 함께 힘을 모아서 협력할 때에 대한민국은 아름다운 다문화사회, 선교한국을 이루어 갈 것이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을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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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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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34】 가끔은 처세술이 필요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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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어떻게’가 품격을 만든다” 17세기 스페인 철학자 발타자르 그라시안이 남긴 삶의 지침서인 〈The Art of Worldly Wisdom〉은, 시대와 세계를 초월해 사랑받은 책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로운 삶의 기술에 관한 짧은 격언과 조언 300여 개를 모은 책이다. 이 책에 담긴 300여 개의 격언과 해설은 세속적인 성공을 추구하면서도 도덕적 가치를 잃지 않도록 안내하는 독특한 관점을 보여준다. 우정, 윤리, 대화법, 신중함, 그리고 행복에 이르는 폭넓은 주제를 아우르는 그의 조언들은 오늘날 독자들에게도 쉽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이번 판본은 스페인어 원작을 영어로 번역한 조셉 제이콥스의 뛰어난 번역을 바탕으로, 본문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고 격언과 해설만을 엄선하여 일상 속 통찰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꺼내 읽을 수 있도록 편집했다. 이 책은 오늘날 AI 시대 정보 과잉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이 세상을 현명하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시대를 관통하는 답을 준다. 실용적인 지혜는 물론, 자기관리, 인간관계, 리더십, 상황을 정확히 읽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선택의 중요성 등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생존 전략서다.-예스24
흥미롭게 읽은 처세술이다. 가끔은 이런 종류의 책도 도움이 된다.
윗사람을 이기는 것은 피하라
모든 승리는 증오를 낳으며, 윗사람을 상대로 한 승리는 어리석기도 하고 때론 치명적이다. 우월함은 항상 미움을 사며, 하물며 윗사람보다 우월하면 한층 더 그렇다. 당신이 평범한 이점들을 가지고 있다면 신중하게 그것을 감출 수 있다. 예를 들어, 잘생긴 외모라도 일부러 단정치 못한 옷차림을 하여 감출 수 있다. 어떤 윗사람들은 당신이 운이 좋거나 성격이 좋은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해 준다. 하지만 '좋은 판단력' 만큼은 누구라도, 특히 군주라면 당신이 자신보다 앞서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군주에게 조언할 때에는 그들이 찾지 못한 것을 안내한다기보다는 잠시 잊고 있던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것처럼 해야 한다. 별들이 이 기술 을 잘 알고 있다. 별들은 행복한 기지를 발휘하여 우리에게 이 가르침을 보여준다. 별들은 태양의 자녀이며 태양처럼 빛나지만, 결코 태양의 광채와 경쟁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p. 27).
지식과 선의
지식은 선의와 함께 할 때 성공을 지속시킨다. 훌륭한 지성이지만 악의와 결합한 경우 언제나 부자연스러운 괴물을 낳았다. 사악한 의지가 결합되면 모든 탁월함은 독이 되고 거기에 지식의 도움을 받으면 더욱 교묘한 파멸을 초래할 뿐이다. 파멸만을 낳는 우월함은 비참한 우월함이고 분별력 없는 지식은 어리석음을 가중시킨다(p. 38).
행운을 얻는 기술
행운에도 법칙이 있다. 현명한 사람에게 행운이란 전적으로 우연만은 아니다. 주의 깊은 노력으로 얼마든지 행운을 얻을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운명의 문 앞에 당당히 서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그것으로 만족한다. 하지만 더 현명한 이들은 다르게 행동한다. 그들은 영리함과 대담함을 활용하여 앞으로 밀고 나아가고, 자신의 미덕과 용기로 날개 짓하며 행운의 여신에게 다가가 그녀의 호의를 얻어낸다. 진정한 철학의 잣대로 보면 심판자는 미덕과 통찰력이다. 왜냐하면 행운이나 불운은 결국 지혜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p. 43).
사람마다 가진 약점을 찾아라
이것은 타인의 의지를 움직이게 하는 기술이다. 이는 결단력 보다는 더 많은 노련함을 요한다. 누구나 약점이 있고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 모든 의지는 각자의 동기가 있고 동기는 취향에 따라 달라진다. 모든 인간은 우상 숭배자다. 어떤 이는 명성을, 어떤 이는 사리사욕을, 대부분은 쾌락을 우상으로 삼는다. 노련함이란 바로 이러한 우상들을 파악하여 그런 우상을 지닌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데 있다. 어떤 사람의 동기를 알게 되면, 당신은 그의 의지를 움직이게 하는 열쇠를 쥔 것과 같다. 그들의 원초적 동기를 활용하라. 그것은 대개 그 사람의 본성 중 고귀한 부분보다는 가장 저열한 부분인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잘 조직된 성향보다는 뒤죽박죽인 성향을 가진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먼저 그 사람의 지배적인 열정을 추측하고, 한마디로 그것에 호소하며, 유혹으로 그것을 움직이게 하라. 그렇게 하면 그의 자 유 의지에 결정적인 일격을 가하게 될 것이다(p. 48).
생각은 소수처럼 하고 말은 다수에 맞춰라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듯 다수의 생각과 정면으로 싸워서는 잘못을 바로잡기 어렵다. 오히려 위험에 빠지기 쉬운데 이런 일은 오직 소크라테스처럼 특별한 사람만이 감당할 수 있다. 남의 의견을 반대하는 것은 그 사람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에 상대는 모욕으로 느낀다. 현명한 사람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자신의 진짜 생각을 모두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진짜 생각에 반할지라도 대중의 목소리로 말한다. 현명한 사람은 남을 반박하지 않으며 반박당하는 것도 피한다. 마음속에서는 판단이 서 있지만, 그걸 아무 데서나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진짜 현명한 사람은 침묵 속으로 물러나며, 은밀하게 소수의 적절한 사람 앞에서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p. 65).
명예와 관련된 문제는 애초에 피하라
이는 신중한 사람이라면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극단적인 상황을 멀리하고 항상 신중함이라는 중간 지점에 머물기 때문에, 그 신중함을 뚫고 극단적인 상황으로 가는 것에는 시간이 걸린다. 명예 문제가 생겨 거기서 훌륭하게 벗어나는 것보다 처음부터 그런 문제를 피하는 것이 더 쉽다. 명예 문제는 우리의 판단력을 시험한다. 거기서 승리하는 것보다 피하는 것이 더 낫다. 하나의 명예 문제가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지고, 결국 불명예스러운 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타고난 성향이나 문화적인 배경 때문에 명예를 위한 싸움에 쉽게 뛰어들곤 한다. 하지만 이성을 발휘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오래 생각하고 신중하게 접근한다. 명예 문제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아예 그 문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데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만약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 싸움을 거절해야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는다(p. 69).
자존심을 잃지 말라
그러나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관대해지지도 말라. 당신의 올바른 감각이 곧 당신 정직함의 진짜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외부의 어떤 처벌보다도 스스로에게 내리는 엄격한 판단을 더 중요한 규범으로 삼아라. 보기 흉하거나 부적절한 일을 피해야 하는 이유는 외부 권위가 두렵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다. 이 점을 늘 기억한다면, 세네카가 말한 '가상의 가정교사'는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p. 72).
이를 드러낼 줄 알아라
사자가 죽은 뒤에는 토끼라도 갈기를 뽑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용기란 그런 우스운 장난이 아니다. 처음 한 번 물러서면 두 번째, 세 번째로 계속 밀려 결국 마지막까지 내주고 만다. 초기에 단단히 버텼다면 피하지 않아도 되었을 고생을 하게 된다. 도덕적 용기는 육체적 용기보다 더 고귀하다. 그것은 신중함의 칼집에 꽂힌 채 언제든 뽑아 쓸 준비가 된 정신의 점이다. 높은 지위를 지켜주는 든든한 방패도 바로 이 도덕적 용기다. 육체적 겁쟁이보다 도덕적 겁쟁이가 훨씬 더 비천해 보인다. 많은 이들이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그 마음이 단단하지 못해 생기가 빠지고, 결국 게으름과 무기력 속에 파묻혀 사라졌다. 현명한 자연은 벌에게 꿀의 달콤함과 침의 날카로움을 사려 깊게 결합해 놓았음을 기억하라(p. 76).
마무리를 잘하라
행운의 집에서는 기쁨의 문으로 들어갔다가 슬픔의 문으로 나올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러니 언제나 마무리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입구에서 받는 박수보다 품위 있는 퇴장이 훨씬 더 중요하다. 운이 나쁜 사람들에게 흔한 일은, 화려하게 시작했지만 끝은 비극적인 경우다. 중요한 것은 시작할 때 누구나 받는 그 박수가 아니라, 떠날 때 사람들이 느끼는 전체적인 인상이다. 인생에서 '앙코르'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행운의 여신도 대개 누구를 문 앞까지 배웅해 주지는 않는다. 찾아 오는 손님은 따뜻하게 맞이해도, 떠나는 손님에게는 대체로 차갑기 마련이다(p. 80).
결과가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
어떤 사람들은 이기는 것보다 규칙을 얼마나 성실히 지켰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세상은 최종적으로 실패한 사람에게 그동안 얼마나 애썼는지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승리한 사람은 변명할 필요가 없다. 세상은 그가 어떤 수단을 썼는지보다, 결과가 좋았는지만 본다. 목적을 이루었다면 잃을 것은 없다. 결말이 좋으면, 과정이 다소 미흡했더라도 모든 것이 용서되고 빛난다. 그래서 때로는, 좋은 결과로 가는 다른 길이 없다면, 규칙을 벗어나는 것조차 삶의 기술 중 하나가 될 수 있다(p. 87).
항상 농담만 하지 말라
지혜는 진지한 순간에서 드러나며, 가벼운 재치보다 훨씬 더 값지게 평가된다. 늘 농담할 준비만 되어 있는 사람은, 정작 중요한 일을 맡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농담만 일삼는 사람은 거짓 말쟁이와 닮았다. 사람들이 거짓말쟁이를 믿지 않듯, 농담만 하는 사람 역시 신뢰를 얻지 못한다. 한쪽에서는 늘 거짓을, 다른 쪽에서는 늘 농담을 기대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당신이 언제 진지하게 판단하고 말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게 된다. 이는 곧 판단력이 없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끊임없는 농담은 결국 재미마저 소진시킨다. 많은 이들이 '재치 있는 사람'이라는 평판은 얻지만, 그 대가로 '분별 있는 사람'이라는 신뢰를 잃는다. 농담은 잠시 머물러야 하고, 진지함은 삶의 대부분을 차지해야 한다(p. 97).
지위를 과시하지 말라
개인적 매력으로 두드러지는 게 아니고, 위엄으로 남을 압도하려 드는 것은 더 불쾌감을 준다. 스스로를 중요 인물처럼 보이게 하려는 태도는 미움을 사기 쉽다. 사람들의 질투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버거운데 말이다. 존경을 더 많이 얻으려 애쓸수록, 오히려 덜 얻게 된다. 존경은 타인의 판단에 달린 것이지, 스스로 움켜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타인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중요한 직위에는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만큼의 적절한 권위가 필요하다. 권위가 없으면 직무 역시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직무를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위엄은 유지해야 한다. 존경심을 강요하지 말고, 그것을 만들어 내려 노력하라. 자신의 직위가 지닌 위엄을 지나치게 내세우는 사람은 자신에게 그런 자격이 없음을 오히려 드러내는 것이며 그 직위가 자신에게 과분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는 셈이다. 가치 있게 여겨지고 싶다면, 우연히 얻은 지위나 배경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재능 때문에 존중받도록 하라. 실제로 왕들조차도 자신의 왕좌 때문이 아니라 개인적인 자질 때문에 존경받기를 원한다(p. 125).
타인의 치부를 수집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
남의 나쁜 평판에 관심 두는 태도는, 역설적으로 이미 자신의 명예가 흐려졌다는 신호다. 어떤 이들은 남의 오점을 들춰내며 자신의 흠을 가리거나 씻어내려 한다. 혹은 거기서 위안을 얻지만, 그것은 바보들만이 찾는 가장 비겁한 위안일 뿐이다. 남의 험담을 파헤칠수록 더러워지는 것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다. 사람에게 흠이 없는 경우는 없다. 다만 덜 알려진 사람의 경우 결점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남의 잘못을 기록하는 결점 기록관이 되지 말라. 그것은 혐오스러운 일이며, 인간적인 심장을 잃은 자만이 택하는 삶의 방식이다(p. 144).
어리석음은 저지름이 아니라 감추지 못함에서 드러난다
당신의 욕망은 봉인하고, 결점은 더욱 철저히 감추어라.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지만, 현명한 이는 그것을 덮고 어리석은 이는 떠벌린다. 평판은 드러난 행위보다 오히려 감춰진 것들로 결정된다. 완벽하게 살 수 없다면, 최소한 신중하게 살아야 한다. 위대한 인물의 실수는 일식이나 월식과 같다. 빛이 클수록, 그 그늘은 더 많은 눈에 띈다. 친구라 해도 자신의 치부를 쉽게 드러내지 말라. 가능하다면, 스스로에게조차 잊혀질 만큼 감추는 편이 낫다. 이를 돕는 또 하나의 중요한 지혜가 있다. 바로 잊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p. 145).
말할 때 주의하라
경쟁자 앞에서는 신중하게 말하고, 다른 이들 앞에서는 품위 있게 말하라. 말을 덧붙일 시간은 언제나 충분하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되돌릴 시간은 결코 오지 않는다. 마치 유언장을 작성하듯 말하라. 말이 적을수록 시비와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도 줄어 든다. 사소한 대화에서부터 말조심하는 습관을 들여라. 그래야 정말 중대한 순간이 닥쳤을 때 실수를 피할 수 있다. 깊은 침묵과 비밀을 지키는 힘에는 신성에 가까운 광채가 깃들어 있다. 경박하게 입을 놀리는 자는 머지않아 추락하거나 실패하게 된다(p. 180).
동정심 때문에 당신의 운명을 불행한 이의 운명과 엮지 마라
한 사람의 불운은 다른 누군가에게는 행운이 된다. 사람은 대개 많은 이들의 불행을 발판 삼아 행운을 누리기 때문이다. 불행한 자들에게는 사람들의 선의를 자극하는 묘한 힘이 있다. 사람들은 실질적 도움도 되지 않는, 즉 쓸모없는 호의로 그들의 불운을 보상해 주려 한다. 그래서 잘나갈 때는 미움을 받던 사람도, 역경에 빠지면 순식간에 모든 이에게 사랑받기도 한다. 상대의 성공을 시기하며 날을 세우던 복수심은, 그가 추락하는 순간 가련한 이를 향한 동정심으로 뒤바뀌고 만다. 그러나 운명이 카드를 섞는 방식을 유심히 지켜보라. 늘 불운한 사람들의 곁을 맴도는 이들이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높이 날며 행복해 보이던 사람이, 어느새 그들 곁에서 함께 비참해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고통 받는 자와 운명을 함께하는 일은 고귀한 영혼의 증거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는 아니다(p. 183).
인간관계에서 지나친 친밀함을 피하라
타인에게 허물없이 대하지도 말고, 타인이 당신을 그렇게 대하도록 허락하지도 마라. 격식을 무너뜨리며 친해지는 순간, 사람은 자신이 지닌 영향력의 우위, 곧 존중의 근거를 잃게 된다. 결과적으로 사라지는 것은 친밀함이 아니라 존중이다. 밤하늘의 별이 광채를 유지하는 까닭은 사람들과 섞이지 않기 때문이다. 신적인 것은 언제나 예의와 거리를 요구한다. 지나친 친밀함은 필연적으로 경멸을 낳는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과도하게 드러낼수록 사람은 가진 것이 적어 보인다. 격식 없는 교류 속에서는 침묵과 절제가 가려주었을 결점들까지 여과 없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친밀함은 미덕이 아니다. 윗사람과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위험해지고, 아랫사람과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품위를 잃는다. 특히 무지한 사람과는 결코 친밀해지지 마라. 그들은 당신이 베푼 호의를 당신이 그들을 필요로 한다는 신호로 착각하고, 서슴없이 무례하게 굴 것이다. 지나친 친밀함은 천박함과 맞닿아 있다(p. 197).
마음의 평화가 곧 좋은 인생이다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려면, 타인의 삶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말라. 내면의 평화를 일구는 사람들은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것을 넘어,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간다. 귀 기울여 듣고, 깊이 관찰하며, 필요한 순간에는 침묵을 지키는 것이 현명하다. 다툼 없는 하루는 근심 없는 깊은 잠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평온하고 즐거운 삶은 마치 두 번 사는 것과 같은 풍요로움을 선사하니, 이것이 바로 내면의 평화가 주는 진정한 열매다. 자신에게 의미 없는 일들을 가볍게 흘려보낼 줄 아는 이가 진정으로 모든 것을 소유한 자다. 모든 일을 마음속에 담아두는 것 만큼 스스로를 괴롭히는 행위는 없다. 자신과 상관없는 일에 마음 쓰며 괴로워하는 것과, 정작 마음을 쏟아 중요하게 다뤄야 할 일을 외면하는 것은 모두 똑같이 어리석은 태도다(p. 212).
가치를 알아보는 곳으로 옮겨 가라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으려면 때로는 익숙한 터전을 떠날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원대한 목표를 추구할 때 더욱 그러하다. 고향은 때때로 천재들에게 계모처럼 냉대한다. 시기심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움트며, 사람들은 당신이 이룬 위대한 성취보다는 당신의 미미했던 시작을 더 생생하게 기억하기 마련이다. 먼 곳에서 온 평범한 물건조차 귀하게 대접받고, 낯선 땅에서 건너온 색유리가 다이아몬드보다 높이 평가되기도 한다. 미지의 곳에서 온 것은 본질적으로 존중받는 경향이 있다. 이는 그것이 지닌 신비로움과 함께, 이미 완성된 완벽함을 내포하고 있다는 인상 때문이다. 한때 마을 사람들에게 놀림 받던 인물이 이제 세계적인 명성을 얻어 존경받는 사례를 우리는 흔히 목격한다. 외국인들은 그가 먼 곳에서 왔기에 존경하고, 같은 나라 사람들은 그가 이제 멀리 떨어져 있기에 존경하는 역설이 발생한다. 정원 구석에 굴러다니던 평범한 나무토막이었을 때를 기억하는 사람은, 결코 제단 위에서 숭앙되는 그 나무 조각상을 진심으로 우러러보지 못할 것이다(p. 218).
항상 갈망할 무언가를 남겨두어라
모든 것이 충족된 완벽한 행복은 오히려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 수 있다. 육체가 호흡을 필요로 하듯, 우리의 영혼은 끊임없이 더 높은 곳을 열망해야만 한다. 만약 세상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된다면, 그 결과는 흔히 환멸과 불만뿐이다. 지식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희망을 불태울 '미지의 영역'이 항상 남아있어야 한다. 지나친 행복은 치명적일 수 있다. 심지어 타인을 돕는 경우에도 상대방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키지 않는 것이 현명한 전략이 될 수 있다. 더 이상 갈구할 것이 남아 있지 않다면, 남는 것은 오직 두려움뿐이다. 이는 행복의 탈을 쓴 불행한 상태라 할 수 있다. 욕망이 소멸하는 순간, 공포는 고개를 드는 법이기 때문이다(p. 220).
쉬운 일은 신중히, 어려운 일은 대담하게 다루라
이는 쉬운 과제 앞에서 자만심이 피어나지 않도록 하고, 어려운 도전 앞에서 지레 겁먹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업무의 실패는 흔히 '이미 다 된 일'이라는 안일한 생각에서 비롯되기 마련이다. 반대로 꾸준한 노력은 불가능해 보이는 난관조차 극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크고 복잡한 일을 마주했을 때는 지나치게 깊이 고민하여 압도당하지 말라. 시작하기도 전에 모든 어려움을 미리 헤아리려 하면, 오히려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히기 쉽다(p. 224).
무관심이라는 지혜로운 전략을 구사하라
원하는 것을 얻는 기발한 방법 중 하나는 오히려 그것에 대해 무관심한 척하는 것이다. 세상의 이치는 그림자와 같아서, 쫓아가면 멀어지고 외면하면 따라오는 법이다. 또한 무시야말로 가장 정교한 형태의 복수이기도 하다. 지혜로운 자는 결코 글로 자신을 변호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그러한 방어는 언제나 논쟁의 흔적을 남기며, 상대를 벌하기보다 오히려 그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무능한 자는 위대한 사람과 싸우는 척함으로써 자신이 같은 무대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려 한다. 만약 뛰어난 상대가 그들을 상대해 주지 않았다면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을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망각보다 더 혹독한 복수는 없다. 망각은 그들을 보잘것없음이라는 먼지 속에 완전히 묻어버린다. 대담함을 가장한 사람들은 위대한 것을 무너뜨리면 그것만으로 이름을 남길 수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추문에 대응하는 가장 현명한 태도는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그러한 추문과 맞서 싸우는 것은 오히려 자신에게 해가 된다. 설령 이긴다 할지라도 명성에는 얼룩이 남게 되고, 상대에게는 만족감만 줄 뿐이다. 이 작은 얼룩의 그림자는 명성을 완전히 소멸시키지는 못하더라도 그 빛을 흐리게 만든다(p. 225).
바보들의 병에 죽지 말라
지혜로운 자는 이성을 잃은 뒤에야 죽지만, 바보는 이성을 찾기도 전에 죽는다. '바보들의 병'으로 죽는다는 것은 너무 많은 생각 때문에 심신이 병드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이들은 너무 많이 생각하고 너무 깊이 느끼기에 죽어가고, 어떤 이들은 아무 생각도 느낌도 없기에 오히려 삶을 이어간다. 고통을 인지하지 못하여 생존하는 자들 역시 어리석은 부류이지만, 그 고통 때문에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너무 많은 것을 알기에 병드는 이도 있고, 너무 무지하기에 병드는 이도 있다. 수많은 사람이 어리석은 채로 죽음을 맞이하지만, 죽는 순간까지 끝내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는 이는 거의 없다(p. 228).
영원히 사랑하지도, 영원히 미워하지도 말라
오늘의 친구가 내일 가장 지독한 적이 될 수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사람들을 대해야 한다. 이는 현실에서 흔히 발생하는 일이니, 늘 경계심을 늦추지 말고 미리 대비해야 한다. 우정의 관계에서 벗어난 이들이 훗날 당신을 공격할 무기가 될 만한 정보를 그들의 손에 쥐여 주는 우를 범하지 말라. 반대로 적들에게는 언제든 화해의 문을 열어두는 것이 현명하다. 만약 그 문이 관용을 베푸는 태도로 열린다면, 그것이 당신 자신에게는 더 큰 안전을 보장할 것이다. 오랜 복수는 때로 현재의 고통이 되어 돌아오며, 타인에게 가한 악행에서 비롯된 일시적인 기쁨은 결국 더 큰 슬픔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p. 237).
세상사의 결을 읽고 긍정적인 면을 보라
그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사물의 본질을 거스르거나 부정적으로만 치우쳐 해석하지 말라. 모든 일에는 매끄러운 겉면과 거친 이면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날카로운 무기라도 잘못 잡으면 손을 다치지만, 적이 던진 창조차 자루를 잡으면 당신을 지키는 견고한 방패가 될 수 있다. 많은 일이 고통을 수반하더라도, 그 이면의 긍정적인 면모를 발견한다면 오히려 기쁨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모든 것에는 유리한 면과 불리한 면이 있으며, 진정한 지혜는 바로 그 유리한 측면을 찾아내는 기술에 있다. 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그러니 항상 사물의 가장 좋은 면을 바라보고, 선한 의도를 악의적으로 왜곡하지 말라. 누군가는 모든 일에서 기쁨을 발견하고, 누군가는 슬픔만을 찾아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통찰은 가혹한 운명이 드리울 때 당신을 보호해 줄 거대한 방패가 되어 줄 것이며, 모든 시대와 상황에 적용되는 삶의 중요한 원칙이다(p. 244).
신(神)의 영역은 신에 의존하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라. 그리고는 인간의 노력이 전혀 무의미한 것처럼 신의 뜻에 맡겨라
이것은 위대한 거장의 법칙이며,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진리이다(p. 271).
한 번에 너무 큰 호의를 베풀지 말고 조금씩 나누어 베풀어라
상대가 되돌려줄 수 없을 만큼 과하게 베풀어서는 안 된다. 너무 많이 주는 것은 선물이 아니라 '강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감사함을 바닥까지 긁어내지 마라. 받은 사람이 도저히 갚을 길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 그는 아예 관계를 끊어버릴 것이다. 사람을 잃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가 감당 못 할 만큼의 은혜를 베푸는 것이다.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영원한 채무자로 남기보다, 차라리 당신의 '적'이 되어 도망치는 쪽을 택하기 때문이다. 우상이 자신을 만든 조각가를 늘 앞에 두고 싶어 하지 않듯, 은혜를 입은 사람도 은인을 항상 마주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참으로 교묘한 베풂이란, 비용은 적지만 상대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주어 그 가치가 더욱 크게 느껴지게 하는 것이다(p. 275).
반박하는 자에게 곧바로 맞대응하지 말라
상대의 반론이 '교활함'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천박함'에 서 나온 것인지 분별해야 한다. 상대의 반박이 늘 고집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당신의 속내를 간파하려는 교묘한 술책 일 수 있다. 이 점을 명심하라. 천박함에 응수하면 곤경에 빠질 수 있고, 교활함에 휘말리면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음험한 자들을 상대할 때만큼 경계가 요구되는 순간은 없다. 상대가 당신의 마음을 열기 위해 사용하는 '심리적 자물쇠 따개'에 맞서는 최상의 방책은, 주의력이라는 열쇠를 아예 자물쇠에 물려두어 그들의 접근을 봉쇄하는 것이다(p. 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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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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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33】 신화를 통해 분석한 오늘날의 남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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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남 현상,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극단적 여성 혐오 문화 확산 등 젊은 남성들의 폭력성과 보수적 가치로의 회귀는 한국 사회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심화하고 있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신간 『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은 남성성 위기에 대해 ‘흔들리는 가부장 질서에 대한 반발’이라는 그간의 분석을 넘어, 인류 무의식의 깊은 곳에서부터 본질적인 답을 구하며 남성성을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시도다. 2024년 복간되어 큰 화제를 불러 모은 『여신의 언어』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신화학자이자, 꿈 해석과 신화를 통해 개인과 집단의 트라우마 치유에 매진해 온 고혜경 교수의 신작이다. 제목인 ‘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은 일차적으로 ‘건강한 어른 남성’이 부재한 상황에 놓인 오늘날의 젊은 남성들을 뜻한다.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내면을 온전히 마주하는 법을 잃은 채 세상이 요구하는 모습에만 자신을 욱여넣느라 깊이 병들어 가는 현대인 전체를 향한 은유이기도 하다. 『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은 “남신과 여신들은 인간 정신을 이루는 여러 가지 서로 다른 힘들을 의인화한 것”(10쪽)이라는 심층심리학·원형심리학적 시각으로 그리스 신화 속 여섯 남신을 들여다본다. 올림포스의 12신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듯, 우리 내면의 여러 원형 역시 균형 있게 통합되어야 비로소 자기 삶의 주인으로 설 수 있게 된다. 정여울 작가는 추천사에서 “이 험난한 사회에서 아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막막한 부모는 물론, ‘요즘 남자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답답해하는 모든 세대들, 그리고 끝내 ‘내 인생의 나침반을 과연 어디에 둘 것인가’를 끈질기게 질문하는 모든 현대인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7쪽)라고 했다. 이 책은 특정 성향만이 과잉된 현시대 남성성의 위기를 진단하는 동시에, 피상적인 삶을 좇느라 ‘참자기(True Self)’를 잃어버린 모든 이에게 나와 세상을 이해하는 새롭고도 신비로운 시야를 틔워 줄 것이다.-예스24
여성 신화학자, 정신분석가가 진단한 남성의 위기 현상을 통해 남성인 나도 모르는 것들에 대해 알게 됐다. 흥미롭게 읽었다. 이 저자의 책을 계속 읽기 위해 몇 권을 대출했다. 모처럼 실력있는 저자를 알게 되어 기쁘다.
옛것으로부터 새것이 태어나는 것이 자연의 순리다. 늙어 쇠락한 자리에 다시 젊음이 꽃피는 것도 이치다. 그런데 이 마땅한 순리가 지금의 세상에서는 잘 돌아가지 않는다. 세대 간 갈등이 어느 때보다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운명은 두려움이 있는 자리에서 형상화된다'는 말이 있다. 아(p. 33)버지와 아들 사이의 운명도 크로노스의 두려움이 빚어 냈다. 갈등의 기저에, 이 원형적 드라마가 어김없이 작동하나 보다. 변화는 구질서나 기존 세대에게는 도전이고 위협이다. 새로운 질서나 가치 확립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는 아버지가 구축한 체제에 반기를 드는 고통을 피해 갈 수 없다. 크로노스는 세대 간 전환에 연루되는 불가피한 폭력을 극적으로 보여 주는 존재다(p. 34).
이제 헤파이스토스의 결함과 장애, 결핍이 강변하는 교훈이 선명해진다. 삶이 불완전하듯 우리가 하는 시도 또한 모두 불완전한 것일지라도, 그 불완전한 시도 끝에 놀라움과 기쁨이 태어난다. 예술품이 예술가가 자신을 말하는 방식이라면, 궁극적이며 진정한 예술은 결국 자신을 빚어내는 예술이 아닌가 한다. 헤파이스토스는 자신의 장애와 결핍과 추함에 온 힘을 다해 헌신했다. 그 사이,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천공이 탄생했다(p. 94).
헤파이스토스의 삶은 버겁지만 숭고하다. 열등과 추함 또한 신의 본질이기에 신성하다는 신화의 가르침은 더 이상 결함을 숨기려 괜찮은 척 위장을 하지 않아도, 못난 나를 혐오하거나 이런 내 모습을 세상에 들키지 않으려 애쓸 필요도 없다고 말해 주는 듯하다. 장애도 나라는 고유한 존재의 표식일 따름이다. 이렇게 나의 취약함을 인간다움으로 이해하면 타인의 장애나 결점도 자연스레 수용할 수 있게 된다. '신성한 장애'란 신화 이미지는 상처의 심오한 의미를 들여다보게 할 뿐 아니라 인간다움의 품을 넉넉하게 키워 준다. 헤파이스토스 삶의 핵심은 상처에 대한 헌신으로 보인다. 지난한 세월, 그는 온 힘을 쏟아 담금질과 망치질로 천품들을 탄생시키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천공으로 빚어 냈다(p. 122). 결국 우리에게 절실한 것도 자기 상처나 장애에 대한 헌신이 아닐까? 이런 태도야말로 최선이며 또 삶에 대한 예의 같다. 상처나 장애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추한 게 아니라 특별함이고 신령함이라는 시각은 새로운 눈을 뜨게 한다. 나의 열등함과 추함마저 귀하게 보듬는 진정한 자기 수용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헤파이스토스가 렘노스를 떠나 올림포스에서 제자리를 되찾았듯, 우리 역시 자기 소외와 고립이라는 자기 감금에서 벗어나 본연의 참 터전을 찾아 그에 합당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발터 F. 오토가 말했듯 비로소 찾아온 마음의 자유와 평안, 그 안으로 스며들 관계의 풍요와 삶의 다채로움은 그간 어둠에 싸여 드러나지 않았던 새 세상의 문을 활짝 열어 줄 것이다. 그리고 그 열림의 맛은 자유와 기쁨일 것이다(p. 123).
신전 박공벽에 새겨진 글귀에서도 '아폴론이 누구인지'가 뚜렷이 드러난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가 유행시킨 이 말은 본래 아폴론의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우주와 사물의 질서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인식하라는 뜻이다. 결국 '너는 신이 아닌 인간이니 주제 파악하고 분수 지키라'는 명료한 선 긋기다. 정확한 경계 설정 또한 아폴론의 핵심 특질이다. 아폴론은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애매하게 선을 넘나들거나 경계 너머에 함부로 침입하는 행위를 금기시하는 신이다(p. 129).
‘영웅은 반만 듣는다.’ 애매함을 견디지 못하니 그러하다. 심층심리학적 관점으로 표현하면, 1장에서 제우스를 탐색하며 이야기한 것처럼 영웅은 생각은 짧고 행동은 빠른 자들이다. 나는 역사에 기록된 여러 영웅에 대해 개인적인 물음을 품고 있다. 영웅은 왜 언제나 자신의 자리에서 만족하지 못할까? 남의 땅을 정복하며 일상을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파괴할 권리가 그들에게 있는가? 잔혹성은 영웅의 덕목인가? 어떤 가치관을 지녀야 영웅이 벌이는 행위들을 '영웅적' 이라 칭송할 수 있는가? 오이디푸스도 라이오스도 전통적인 의미의 영웅에 속 하는 인물들이다. 이들 부자의 공통 취약점은 바로 인내심이다. 오이디푸스 신화를 통틀어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재빨리quickly’ 다. 이들은 모호함을 못 견딘다. 만일 라이오스가 친부 살해라는 신탁을 한 번쯤 깊이 되새김질했다면, 즉 그에게 신탁을 듣는 귀가 있었다면 신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아들 오이디푸스도, 자신이 아버지를 극복하고 더욱 부강한 왕국을 건설하게 될 것이라는 은유로서 신탁을 받아(p. 155)들일 수 있었다. 어머니와의 혼인을 ‘궁극의 자궁’, 곧 영원한 피안(彼岸)으로 회귀하려는 인간의 숙명으로 깊이 사유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그 신탁은 피할 수 없는 저주가 아니라 인간 존재를 향한 거대한 공안(公案)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본래 신탁의 언어는 마치 꿈처럼 ‘영웅의 귀’가 아니라 '심리학적 귀'를 필요로 한다.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와의 대화를 자신의 심리학적 귀를 훈련하는 기회로 삼았더라면, 또 오이디푸스가 폴리스의 오염에 대해 델포이 아폴론 신전이 아니라 다른 신들의 신전에 신탁을 구했더라면 전혀 다른 가능성이 열렸을지도 모른다. 다혈질인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깊이 성찰하며, 그 의미가 저절로 앎이 되어 떠오를 때까지 '신중하고 적극적인 수동'의 태도를 취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이 가족 드라마는 비극이 아닐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자판기를 쓰듯, 즉답만을 구하는 자리에서 신성한 언어는 그 의미를 상실하나 보다. 델포이 오라클은 사라졌다. 영웅의 후예인 현대인은 '이제 오라클은 침묵한다'고 단정한다. 폐허가 된 델포이 신전처럼 오라클도 그저 과거의 유물일까? 아니면 지금의 우리는 영웅의 귀를 물려받아 오라클을 듣지 못하는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영혼의 감각을 잃고 피상적인 세계에서 무의미하게 신음하는 현대인들에게 내려진 신탁은 바로 이것일지도 모른다. "영웅의 귀가 비극을 초래한다!"(p. 156).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다. 데카르트는 인간을 사고하는 능력과 동일시한다. 이전의 전체론적, 애니미즘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이성과 합리를 내세우며 인간 사고의 우월성을 선포한다. 그런데 무의식 탐색에 주안점을 두는 심층심리학의 입장에서, 데카르트의 명제는 설득력이 낮다. 심층심리학에서는 인간은 비이성에 속하는 감정이나 본능에 휘둘리는 존재이며, 특히 삶의 방향이나 중요한 결정은 무의식적 동인에 좌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도 뉴턴도 기계론적 사고의 소유자들이다. 개인적으로 데카르트의 명제에 동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이 '과장된 비전'이 현대인 내면의 진실일 수 있다는 점을 한편으로 인정한다. 이성과 합리를 토대로 하는 '거리 두기'와 '객관성 확보'는 학술적 연구 과정에서 필수 가치로 자리매김했다. 과학적 진술은 현시대 우리에게 가장 설득력 있는 언어로 여겨진다. 이런 의미에서 데카르트, 뉴턴과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모두 아폴론의 후예들이다(p. 165).
헤르메스는 머리에 날개 달린 모자를 쓰고, 손에는 마법의 지팡이를 든 채 날개 달린 샌들을 신은 모습으로 유명하다. 동작도 생각도 잽싸고 날렵해 마치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듯하다. 가장 높은 올림포스에서 가장 깊은 하데스의 세계까지, 헤르메스가 가지 못할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물처럼 돌아들고 바람처럼 가변적이라 어떤 걸림돌도 장애물로 헤르메스 앞에서는 작동하지를 않는다. 지혜로운지 장난꾸러기인 건지, 영리한지 교활한지, 심지어 골탕 먹고 있는 건지 같이 즐기고 있는 것인지조차 구분할 틈을 주지 않는 샘솟는 위트와 트릭의 소유자다. 그러니 헤르메스를 '규정'하거나 단정'하는 일은 상상조차 불가능하다. '이거다!' 하는 순간 헤르메스는 이(p. 175)미 그 자리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네 표현 중에선 ‘도깨비 같다’ 는 말이 헤르메스가 가진 뉘앙스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한다. '애매모호'는 헤르메스의 핵심 특질이다. 우리말로 헤르메스를 찾아보면, '도둑' '사기꾼' '모사꾼'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서술이 많다. 그러나 이는 헤르메스를 잘못 이해한 결과다. 헤르메스는 도둑질을 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제시한다. 도둑질당한 당사자는 그를 받고 만족해 하며 행복해지기까지 한다. 이런 헤르메스에게 직접 '당신은 도둑인지'를 묻는다면, 그는 뻔뻔하고 당당하게 '나는 거래를 했을 뿐'이라고 답할 것이다. 아마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오히려 내가 손해 봤다'며, 상인들이 자주 쓸법한 말도 덧붙일지 모른다. 헤르메스는 상업의 신, 무역의 신, 부의 신이다. 잘 알려진 고가의 명품 '에르메스'는 이 신의 이름을 브랜드명으로 사용했다. 구매자도 판매자도 헤르메스의 트릭을 존중할 줄 아는 듯하다. 누구도 에르메스 제품의 값어치를 상세히 따지지 않는다. 원가는 얼마인지, 가성비 따위는 중요치 않다. 비싸기 때문에 갖고 싶어지는 사람의 욕망을 최대한 존중하기에, 그에 걸맞은 값을 매겨 사는 이에게 만족감을 선사하고 파는 이는 그 대가로 부를 얻는다. 헤르메스의 트릭에는 모두를 행복하게 해 주는 마법이라도 숨겨져 있나 보다. 헤르메스가 부의 신이 된 데에는 그가 언어의 연금술사, 대화의 신이라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헤르메(p. 176)스는 흥정과 협상의 달인이다. 헤르메스에겐 그 자체가 놀이 인지라, 정찰제는 헤르메스 영성에 대한 모독이다. 뜨거운 논쟁이 한창인 회의장도, 언어 구사에 있어 고도의 기술적 우아함을 요하는 외교 현장도 헤르메스 신이 관장한다. '말 예술'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 또한 헤르메스가 수호신이다(p. 177).
혁명가들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자들을 주로 섭외한다. 소외와 열등의 자리에서 제 목소리를 가져 보지도 내어 보지도 못하던 사람들로부터 우렁찬 함성을 끌어낸다. 이 자체로 해방이다. 소위 '성공'이나 '꿈' 같은 미래의 가능성으로 부터 차단된 채 좌절과 무기력에 지배당하는 계층의 내면에(p. 238)는 가공할 만한 폭발력을 지닌 분노와 공격성이 잠들어 있다. 선동가는 바로 그 자리에 현란한 수사의 화염병을 던져 넣는다. 이는 단지 가난이나 기회 박탈의 문제만은 아니다. 오늘날, 물기 없는 고목처럼 우울이나 권태로 말라 죽어 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마치 좀비처럼 살아 있되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많은 이들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 갈 곳 없는 노인들이 그러하고, 억압된 학교에서 나날이 숨 막히는 청소년들이 그러하고, 각종 트라우마로 고통받으며 죽음 같은 외로움과 씨름하는 사람들이 그러하다. 이들에게는 어쩌면 구호의 내용보다는 함성의 강도나 전복에 대한 뜨거운 열망이 훨씬 중요한지도 모른다. 갑갑한 가정을 뛰쳐나와 산과 들에서 광란의 춤을 추던 마이나데스처럼, 강요된 순응으로 질식해 가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마이나데스가 된다. 이들에게 '디오니소스 해방자'는 곧 살아 있음을 느끼도록 해 주는 마법이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관계를 깨고 체제를 해체할 필요가 있는 자리는 디오니소스의 유입을 철저히 차단해야만 지킬 수 있다. 개성이 억압되고 표준화된 단정과 예의가 교리처럼 강요되는 곳에는 '착해야 돼' '말 잘 들어야지' '순응해' 같은 말들이 난무한다. 이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혁명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 의례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디오니소스 해방자는(p. 239) '디오니소스 독재자' 없이는 오지 않는다. 잔뜩 술에 취해 닥치는 대로 깨부수고 난 다음날 아침, 심신에 멍이 든 가족의 얼굴과 부서진 살림살이가 나뒹구는 씁쓸한 풍경을 마주한다. 흥분한 관중들이 격렬히 충돌한 경기장에는 치우고 수리해야 할 쓰레기 더미와 파괴의 잔해가 널려 있다. 유리창을 깨고 건물로 난입해 무법천지 활극을 벌인 자들은 '폭도들'이라는 낙인과 함께 사회로부터 격리된다. 이 모두 어제의 해방자가 독재자로 탈바꿈하는 순간들이다. 역사는 혁명가가 독재자로 바뀌는 순간을 '부패'나 '타락'이라 부른다. 혁명의 상상력에는 혁명 뒤에 올 독재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가 보다. 자유와 평등과 해방의 깃발을 치켜드는 혁명은 분명 디오니소스 신의 영감 하에 일어난다. 선동가는 대중을 설득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혁명 이후에는 오직 자신만이 결정을 내리고 자신만이 통치하는 것을 최선이라 여긴다. '영구 집권'은 독재와 폭압에서 빠지지 않는 구색이다. 이러니 지구상에서 혁명이 거듭 되풀이되나 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신화학자의 관점으로 질문을 던져 보자. 소위 문명화된 현 사회에, 사회 질서를 파괴하고 심리적 평안을 위협하는 디오니소스 신이 왜 다시 표면으로 올라 와 세계 곳곳을 위협하는가? 법을 어기고 질서를 파괴하는 디오니소스 신이 집단무의식에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디오니소스는 정통을 위협한다. '정통' '정통주의'라(p. 240)는 뜻의 영어 'orthodoxy'는 '곧은' 올바름'을 뜻하는 그리스어 'ortho'와 '생각' '견해'를 뜻하는 'doxy'가 결합하여 탄생한 말이다. 사회가 정한 '바른 생각'에 동조하는 무리가 있다면, 그 반대편에는 필연적으로 그 틀을 벗어나 '다른 생각heterodoxy' 을 품는 자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디오니소스는 후자를 위한 신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정통 수호는 귀족들의 가치였고, 이들은 주신으로 제우스나 아폴론을 섬겼다. 여성과 농민과 노예의 주신은 물론 디오니소스다(p. 241).
기꺼이 하강하는 사람만이 풍요를 누린다
하데스는 그림자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간 신이라 했다. 하데스의 세계에서 놀라운 통찰을 얻은 카를 융은 '구원의 열쇠는 그림자 속에 있다'고 선언했다. 인류가 '제임스 웹' 이라는 괄목할 망원경으로 우주라는 미지를 탐사하듯, 내면 세계 또한 안으로의 또 깊이로의 탐험이 절실한 때다. 특히 우리 의식에서 제일 멀리 유배시킨 하데스에 구원의 열쇠가 놓여 있다면, 네키아는 택해야만 할 필연이자 구원의 길이다. 융은 자신의 탐색을 '내면 여정inner journey'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여정journey out'이라고 말했다. 안으로 뛰어들지 않고 세상으로 향하는 길은 없음을 강조한 역설적 표현이다. 궁극의 자리에서 안과 밖은 이어질 수밖에 없을지라도, 지금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동안 철저하게 무시해 온 우리의 가까운 미지, 각자의 내면을 탐색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떻게 하데스를 자신의 삶으로 불러들일 수 있을까?(p. 291). 어떻게 하면 하데스의 부로 영혼이 비옥해질 수 있을까? 영웅이고자 매진해 온 현대인이 남겨진 삶을 영혼의 돌봄으로 갈무리하고자 할 때, 즉 자아에서 자기로 삶의 중심을 이동하고자 할 때 하데스는 그를 위한 필연적인 길이자 방향이고, 허기진 우리 영혼의 자양분임을 앞선 선각자들이 삶으로 드러내 보여 주었다. 마침내 저마다 자신의 '마음 오디세이아'를 시작하려 할 때, 고대 그리스의 오디세우스와 현대의 융이 뱃사공 카론이 되어 하데스로의 길라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그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도 내면 깊이에서 기다리고 있는 현자를 만나 보이지 않는 운명의 그물을 가시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혼의 지도는 이미 그려져 있다. 먼저 탐색했던 선조들의 선물이다. 여정에 오르면 수많은 난관을 맞닥뜨리고, 난파되고 표류할 것이다. 삶에 쉬운 길은 없지만, 나만의 길은 있음을 믿는다. 모험으로 가득할 나의 길이 결국 풍요의 길이자, 영예로운 길이고, 또 유일한 길이다(p. 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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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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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432】 우울증을 앓고 있다면...치료를 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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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귀찮기만 하다는 귀차니스트, 죽도록 먹거나 먹지 않는 사람들, 무언가에 중독되어야만 살 수 있는 사람들, 외모에만 집착하는 사람들, 자살을 꿈꾸는 사람들, 늘 피곤하다는 사람들, 그들은 언뜻 다른 범주에 있는 사람들 같지만 모두 우울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그들이 우울과 어떤 관련을 가지고 있는지 조목조목 밝혀내고, 그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우울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를 일러준다. 또 인터넷과 메신저, 문자메시지 등을 타고 급속하게 전개되고 있는 심각한 언어 파괴 현상, 인터넷 폐인과 리플족의 탄생, 조폭영화와 코미디에 열광하는 심리 등을 통해 우울에 빠진 시대를 짚어내고 우울한 시대가 만든 사람들, 키덜트족의 심리를 파헤친다.-예스24
인간의 심리는 늘 흥미로운 주제이다. 나를 알고 상대방을 알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재미있게 읽었다. 내게는 아직 우울증이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나는 쓸모 없는 인간이다
‘살아가는 일이 너무 힘겹게 느껴진다. 나는 너무 나약하다. 그래서 내 인생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지 않다. 내 인생은 엉망진창이다. 나는 내가 싫다.’ 우울한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파괴시켜 나간다. 그러다가 결국엔 자신의 존재 의미마저 부정하면서 자신을 전혀 쓸모 없는 무가치한 인간이라고 규정 짓는다. 그들이 그렇게 되는 이유는 다른 사람에 비해 부정적인 사건을 더 많이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들과 똑같은 사건을 겪어도 부정적인 사건을 더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긍정적인 사건마저 부정적인 생각으로 일관하면서 덜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다 보니 즐거운 일은 별로 없고 온통 불쾌한 일투성이다(p. 21). 긍정적인 사람들이 긍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황금 비율은 16 대 1.0이다. 그러나 우울한 사람들은 긍정적인 생각마저 부정적인 생각으로 몰아간다. 그러나 사노라면 우리의 희망과 상관없이 불행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게 인생이다. 아무리 능력이 많고 뛰어난 사람이라도 불행을 피해 갈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인간이 불행에 대처하는 가장 훌륭한 자세는 아무리 부정적인 일이라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지혜롭게 헤쳐 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라는 생각으로 우울하다면 먼저 ‘왜 내가 그렇게 생각할까?’를 따져 보자.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반드시 있다. 그러나 그렇게 따져 들어가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얼마나 모든 상황에서 나 자신을 깎아내리고 있는지 말이다. 이제 그만 나 자신에게도 조금 관대해져 보자.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이다(p. 22).
남들의 시선에 목숨 거는 당신, 그래서 어느 순간 우울에 빠진 당신이 잊고 있는 것은 남들이 뭐라든 당신은 태어난 것만으로도 존중 받아 마땅한 귀한 생명이라는 사실이다. 당신은 지금껏 남들의 찬탄을 받기 위해 그들보다 더 열심히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 왔다.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느 순간 당신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트린다면, 이제는 그 껍데기 같은 삶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여라. 더 이상 그 신호를 무시함으로써 더 깊은 우울에 빠져 들지 말고 말이다(p. 27).
이러한 상실의 고통이 시간의 강물을 타고 흘러가서 과거라는 시간의 바다의 일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애도 과정' 이라고 한다. 이 과정을 심리학자 볼비는 네 단계로 구분했다. 첫번째 단계는 절망에 빠지면서 무감각해지고 항의를 하는 단계다. 이 때는 죽음을 부정하기도 한다. 두 번째 단계는 죽은 사람을 매우 그리워하고 찾아 다니는 단계로 안절부절못하며 그저 죽은 사람에게 집착하게 된다. 세 번째 단계는 와해의 단계다. 인생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사회적인 관계를 모두 끊고 고립되며, 무감각해지고, 불면증과 체중 감소에 시달리게 된다. 끊임없이 죽은 사람에 대한 기억을 반추하다, 그것이 단지 기억뿐이라는 사실에 실망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시기다. 마지막 단계는 회복의 단계다. 이제 상실의 고통은 줄어들면서 현실로 복귀하게 된다. 떠나간 그 사람이 가슴속에 살아 있으면서 그에 대한 기억은 기쁨과 슬픔을 동반한다. 보통 이 과정은 6개월 정도를 필요로 한다. 이 동안 충분히 슬퍼하면서 그 사람을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부터 떠나보내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우리는 언뜻언뜻 그의 모습(p. 59)을 보기도 하고, 그의 목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죽은 사람을 붙잡아 두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그 사람이 이제는 더 이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서, 차츰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먹게 된다. 그러고는 조금씩 현실로 돌아와 그 사람 없는 세상에서도 살만 하다는 것을 느낀다. 이런 과정을 밟으면서 아주 서서히 에너지가 다 소진되면 그 사람과의 단절이 일어난다. 즉 고통스런 슬픔을 거쳐 애도를 끝내면 그 슬픔의 도가니에서 빠져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제야 비로소 우리는 다시 일어나 새로운 대상과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p. 60).
그러니 만약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다면, 마음껏 슬퍼하라. 그런 뒤에야 새로운 관계, 새로운 사랑을 만나 다시금 살아갈 힘을 얻게 될 테니까.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직 살아가야 할 날이 많이 남아 있다(p. 64). 그리고 그 시간을 우울의 감정으로 흘려 보내기엔 삶이 너무도 소중하다. 우울에 빠져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삶은 떠나간 이에게도, 남은 자신에게도 예의가 아니다(p. 65).
술이든 약물이든 모든 중독 행동은 자신의 무기력감과 무능감을 잊어버리고자 하는 데서 출발한다. 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특히나 무능감이란 감정에 상당히 취약해서, 자신이 무능하다고 느낄 때 극심한 분노를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중독을 통해 재빨리 무능(p. 110)감과 무력감을 극복하고자 한다. 이처럼 중독에 잘 빠져 드는 사람은 어릴 때 마음에 상처를 입고 자아 발달에 손상을 받아서 자신을 보호하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자신의 감정과 충동을 제대로 조절할 줄 모르기 때문에 기분이 저하될 때마다 참지 못하고 약물이나 술을 통한 즉각적인 기분 상승을 하려 드는 것이다. 게다가 중독 상태가 되면 오래 전 엄마 뱃 속에서 느끼던 깊은 안락감을 맛볼 수 있어서 중독자들은 더욱더 술과 약물에 빠져 든다. 스트레스에 직면했을 때 술이나 약물을 통해 고통스러운 현실로부터 물러나서 환상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다. 특히 약물 중독의 경우 대개 혼자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투약을 하며 환각 상태로 빠져 드는데, 이것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어릴 적 부족하던 애정 어린 관계를 복원하고자 하는 심리로 볼 수 있다.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열등감에 사로잡힌 사람들. 그렇게 우울해진 사람들은 자기에 대한 만족을 약물이나 술을 통해 인위적으로 유지하려 한다. 그러나 약효가 사라지면 현실 속에 있는 자기의 모습이 더욱 비참하게 느껴지면서 또다시 우울해진다. 그러면 그 깊은 우울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다시 약물에, 술에 손을 뻗치게 된다. 그렇게 우울의 악순환이 계속된다. 자신을 보호하기는커녕 자신을 파괴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말이다(p. 111).
순덕 씨처럼 오랫동안 화나고 속상하고 억울한 감정들을 계속 참기만 해서, 그러한 화가 쌓이고 쌓여 덩어리로 뭉쳐진 것을 '화병' 이라고 한다. 우울과 화가 마음속에 쌓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화병은 대부분 힘든 과정이 다 끝난 후에 생길 확률이 높다. 시집살이를 시키던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술과 여자 문제로 평생을 속 썩이던 남편이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돌아온 후 등 힘들던 일이 지나가고 이제야 한숨 돌리고 좀 편해진다 싶으면 몸이 이상해지면서 화병이 오기 시작한다(p. 211). 이것은 억압이 풀어지는 것과 관련이 있다. 힘들 때는 자신을 억압하면서 참는 데만 급급하지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돌볼 여력이 없는 것이다. 그러다 억압이 느슨해지면 그 동안 쌓인 우울과 분노가 "이제 나도 좀 숨을 쉬어야겠다" 며 밖으로 나오려 하는 것이다(p. 212).
다만 나는 말해 주고 싶을 뿐이다. 우울은 그저 견디거나, 삶에 무언가 다른 것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넘어서 뛰어난 창조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으니, 우울의 끝이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또 우울이라는 고통스런 감정을 잘 승화시키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충분히 있음을 말이다. 누구는 우울로 인해 죽음에 이르고, 누구는 우울로 인해 위대한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그것은 전적으로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p. 247).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느끼려 한다면 우리는 부정적인 측면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또 그러다 보면 세상은 때로 우울하고 힘들기도 하지만 살 만한 가치가 있음을, 그리고 나에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을 수도, 피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된다. 허락하지 않는 한 그 무엇도 우리를 계속 우울하게 만들 수는 없음을 기억하자. 그런 마음으로 우울의 강을 건너자. 그럴 수 있다면 우리는 우울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감정을 경험하면서 우울이 우리에게 주는 ‘성숙’ 이라는 선물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p. 256).
아무런 상처나 고통도 없는 완전한 세상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인생은 유한하며 살아가는 데 있어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과 불안은 늘 있게 마련이다. 그런 것처럼 인간에게 외로움은 숙명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외로움을 이겨 보겠다고 발버둥쳐 봐야 외로움을 없애기는커녕 고통스러울 뿐이다. 그러나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면, 그 시간이 나와 타인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는 있다. 그러니 더 이상 미련하게 외로움을 이겨 보겠다며 외로움과 싸우지 말라. 그건 당신이 외로워지는 걸 두려워하는 약한 사람이라는 반증밖에 안 되니까 말이다(p. 275).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루소, 도스토예프스키, 빅토리아 여왕, 링컨, 차이코프스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인생의 한때를 우울증으로 고통받던 사람들이라는 것. 그래서 일정 기간 같은 종류의 고통을 경험했다는 점이다. 우울증을 앓아 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 괴로움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그것은 인류를 괴롭히는 무서운 질병 열 가지 중에서 네 번째를 차지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병이다. 그 고통에 대해 인생의 반 이상을 우울증으로 보낸 링컨은 다음과 같이 털어 놓았다. "나는 현재 가장 비참한 사람이다. 만일 내가 느끼는 것이 온 세상 사람에게 나뉠 수 있다면 이 지구상에는 기쁜 얼굴이란 단 하(p. 283)나도 없을 것이다. 내가 좋아질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이대로 남아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죽거나, 아니면 내게 벌어지고 있는 일이 좋아지거나 해야 한다."
심지어 《우울증에 관한 희망의 보고서》를 쓴 루이스 월퍼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기도 한다. "그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 최악의 경험이었다. 아내가 암으로 죽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보다도 더 괴로웠다. 아내의 죽음보다 우울증이 더 고통스러웠다고 인정하는 것은 좀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은 진실이었다.” 이렇게 말 못할 고통을 동반하는 우울증은 전체 인구의 5명 중 1 명이 걸릴 정도로 많은 사람이 걸리는 질병이다. 오죽하면 마음의 독감 이라고 불리겠는가. 그러나 우리 나라 사람들은 정신질환에 대해 깊은 거부감과 편견을 가지고 있다. 몸이 아프면 자연스럽게 병원을 찾거나 병원에 갈 것을 권유하면서도, 마음이 아프거나 우울하다고 하면,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개인적인 성격 문제로 치부해 버린다. 아니면 "할 수 있는데도 일부러 꾀병을 부리는 것 같다"거나, "그건 의지가 약해서 생긴 병이니 마음을 강하게 먹고 네 의지로 고쳐 봐라" 혹은 "여행을 가거나 푹 쉬면 나을 것이다"라는 조언을 한다. 정신과 병원에 가 보라고 하는 이는 드물다. 왜냐하면 사람들은(p. 284) 정신과 하면 으레 텔레비전에서 봄직한 괴상한 환자들이 가는 병원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정신과 약 먹으면 중독되고 바보가 된다", "정신과에 입원하면 사람을 때리고 묶는다"는 등의 잘못된 믿음은 그러한 사람들의 두려움을 더욱 부추긴다. 그래서 애석하게도 한약이나 안수 기도, 굿 등 이것저것 좋다는 방법을 다 써본 다음에야 비로소 어쩔 수 없이 정신과 병원을 찾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다 보니 가족 중 누군가가 정신질환에 걸리기라도 하면 병을 고칠 생각은커녕 창피하게 생각하며 쉬쉬하거나, 그것을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괜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환자 자신도 ‘내 의지가 약해서 그렇다’고 자책하며, ‘내가 가족들에게 짐이 된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우울증은 뇌의 병일 뿐이다. 증세는 심각하지만 치료하면 완전 회복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빠른 진단과 바른 치료만 이루어진다면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폐렴에 걸렸을 때 병원에 가서 약을 먹고 치료를 받듯이 ‘마음의 독감’ 인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우울증의 기미가 발견되면 바로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우울증의 치료 방법으로는 항우울제를 사용한 약물치료, 전기경련요법, 광선치료, 대인관계 정신치료, 인지치료, 행동치료, 정신 분석적 정신치료, 가족치료, 집단정신치료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약물치료와 정신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가장 효과(p. 285)가 높다. 항우울제로는 뇌에서 노어에피네프린과 세로토닌의 시냅스 농도를 높여 주는 삼환계 항우울제가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약물은 효과를 기다리기까지 시간이 걸리며 사람에 따라 졸음 등의 부작용이 많다는 단점이 있다. 최근 들어서는 세로토닌- 재흡수- 차단제인 프로작 같은 약물이 우울증 치료에 많이 이용되고 있다. 이러한 우울증 약물은 그 효과가 완전히 나타나기까지 3~4주 기다려 봐야 한다. 초기에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것은 약물이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증거로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므로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더구나 항우울제는 일반적인 믿음과 달리 습관성이 없다. 이처럼 우울증 치료를 시작하게 되면 대부분 3개월 내에 호전된다. 하지만 그대로 방치할 경우 우울증은 6~13개월 지속되며, 그 극심한 고통은 개인을 황폐화시키고, 심리적 • 사회적 합병증까지 부르게 된다. 그 중에서도 자살의 위험성은 특히나 심각하다. 그러므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 가장 시급한 것은 우울증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치료를 받으면 회복되는 병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을 심하게 탓하거나, 다른 그 누구를 비난하 는 것은 병을 더 키울 뿐이다. 중요한 것은 우울증이 어디에서부터 왔는가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치료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p. 286). 우울증은 분명 치료될 수 있는 병이며, 그 지옥 같은 어둠의 끝은 반드시 있다. 다른 우울증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우울증을 앓은 경험을 책으로 펴낸 윌리엄 스타이런은 어둠의 끝을 이렇게 말한다. "깊이 모를 지옥의 심연에서 위로 위로 힘겹게 걸어 오르면 마침내 눈부신 세상 속으로 나오게 되고, 평정과 기쁨을 즐길 수 있는 능력 또한 회복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절망을 넘어선 절망을 견딘 자들에게 돌아가는 충분한 보상이다." 그러므로 당신에게도 희망은 있다. 우울증에 걸린 자신을 수치스러워하며 꼭꼭 숨기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그저 독감에 걸린 것처럼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p. 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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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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