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0-04(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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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토크】 윤락녀 생활 20년의 진솔한 이야기
    불우한 가정 형편으로 인해 윤락녀로 20년을 살았던 한 여성의 진솔한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어떤 책을 보다 추천 받아 읽게 되었는데 한 인생이 어떻게 망가지고 짓밟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나마 20년 만에 그 생활을 마감하고 이제는 일상을 살아가니 다행이다. 한때 이혼남과 결혼해 평범한 가정생활을 살기 원했으나 그도 잠깐만에 폭력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때 그녀의 피난처가 되어준 곳이 바로 교회였기에 감사했다. 교회나마 이 역할을 해 줄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여자의 성(性)을 돈으로 팔고 사는 죄 많은 세상이 빨리 끝나기를 바란다. 아이들도 맞아서 울고 나도 맞아서 울었다. 그 날 이후 그 남자의 폭력은 더욱더 심해졌다. 하루는 결국 나를 죽이겠다고 칼을 들이댔다. 내 비명소리를 들은 큰아이가 그 남자를 말렸고, 손아귀에서 벗어난 나는 필사적으로 집 밖으로 도망쳤다. 갈 곳도 없는 나는 울면서 거리를 배회하다가 교회로 향했다. 사모님은 깜짝 놀라면서 교회에 딸려 있는 작은방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방에 보일러를 켜주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이불을 덮어쓰고도 내 몸은 심하게 떨렸다. 그 남자가 나를 찾아낼까 봐 겁에 질려 눈에서는 눈물만 하염없이 흘렀다. 방이 따뜻해지고 어느덧 잠든 나는 밤새 앓았다. 꿈조차 꾸지 않는 어둠이 차라리 위안이었다. 내일이 찾아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눈을 뜬 것은 새벽이었다. 온몸이 쑤시고 아팠지만 돌아갈 곳 없는 내 처지가 슬펐다. 다시 그 남자의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몸은 괜찮냐고 묻는 사모님의 말에 대답도 제대로 못 하고 눈물만 흘렸다. 사모님은 그 남자의 전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고단한 시집살이와 그 남자의 폭력으로 이혼하게 되었다고 했다. 남자가 여러 여자들과 동거하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전해주었다. 오후에는 아이들이 나를 찾아왔다. 큰아이에게 밥은 먹었냐고 하니 고개를 저으며 할머니가 엄마 욕을 너무 많이 해서 집에 들어가기도 싫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죄를 짓는 기분이 들어서 미안했다. 이제야 겨우 나에게 정을 주고 엄마라고 부르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줘서 마음이 아팠다. 사모님의 배려로 아이들과 식사를 같이 했고,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아이들은 집으로 돌려보냈다. 사모님은 나에 제 몸을 추스를 때까지 교회에서 지내라고 했다. 아픈 내 마음을 위로해주는 사모님이 친언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면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 같아서 다시는 그 집으로는 돌아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몸이 회복되며 마음도 편안해졌다. 팔순 노모가 교회로 나를 찾아와서 "여자가 함부로 집을 나가고, 어디서 배운 짓이냐?" 하고 화를 냈다. 그러면서 생선 가게가 너무 바쁘니 당장 집으로 돌아오라고 했다. 맞아서 몸이 상한 나에게 가게가 바쁘다고 말하는 팔순 노모가 미웠다. 그 남자가 휘두르는 폭력으로 몸과 마음이 다친 나는 더이상 가정부로, 하녀로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단호하게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다. 팔순 노모는 표정이 굳어지면서 다 교회 사모님이 시킨 짓이라고 악담을 퍼부으면서 돌아갔다. 며칠 후 술에 취한 그 남자가 교회에 왔다. 교회 앞마당에서 고함을 지르며 목사님을 불렀다. 교회가 시끄러워져서 목사님과 사모님에게 죄송했다. 목사님은 그 남자를 조용히 달랬고, 한동안 말이 없던 그 남자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교회 옥상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그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역겹고 비릿한 생선 냄새를 맡아가며 시장에서 일을 했고, 몸이 아프고 힘들어도 열심히 노력하면 잘살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 내 마음은 너무나 망가져 있었다. 그 남자와의 관계도 이제 끝이 나고 있었다. 다음 날 나는 그 남자와 살면서 시달렸던 폭력을 끝내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내 과거를 들먹이는 그 남자의 폭력에 힘들었지만 20여 년간 온갖 학대를 받았던 업소로 돌아가지 않으려 그 폭력을 참아냈다.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보탬이 된 시간보다 빛을 갚기 위해 산 시간이 더 길었기에 언제나 미안했고,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 역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돌아가서도 많은 좌절과 아픔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예상했지만, 이제는 지긋지긋한 폭력을 벗어나고 싶었다. 사모님과 함께 그 남자의 집으로 가서 짐을 챙겼다. 내가 사용하던 화장품과 옷가지 몇 개를 챙기고 나머지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주방과 욕실에서도 내가 사용하던 물건을 정리했다. 이 집에서 내가 머물렀던 흔적을 모두 정리하고 싶어서 쓰레기통이 넘치도록 짐을 버렸다. 마을에 오일장이 섰는지 시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주머니에 있는 돈으로 시장 좌판에서 파는 운동복 한 벌과 5000원짜리 신발을 샀다. 그 남자 집에서 가져온 물건은 화장품과 속옷이 전부였기에 입고 다닐 옷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치고 목사님과 사모님에게 그동안 민폐만 끼치고 간다며 인사를 했다. 목사님과 사모님은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해주었고 내 손에 차비를 쥐어주었다. 사모님은 늘 기도하겠다며 건강하게 잘 지내고 다음에 좋은 얼굴로 다시 만나자고 했다. 눈에는 눈물이 맺혔고 목이 메어 제대로 대답하지도 못한 채 버스 에 올라탔다. 버스가 출발하면서 눈앞에 펼쳐지는 이 마을의 전경이 새롭게 느껴졌다. 살기 위해 몸부림쳤던 시간들이 상처로 남아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픔이 되었다. 버스 안에서 모든 것을 잊고 싶은 마음에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pp. 31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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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0-03
  • 【북토크】 실패를 자산으로 만들라
    생태학자 최재천 박사에 대한 책을 대출하면서 함께 대출받았는데 동명이인이었다. 책을 고르는데 실패했지만 내용은 성공적이었다. 살면서 도전하는 사람들은 실패를 경험할 수 있다. 이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가? 이 책은 실패에 대한 책이다. 실패를 가지고 책 한권을 썼다는 것도 대단한데 내용이 읽을만했다. 성공했거나 실패했거나 한 번 읽어보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실패를 예배하라, 실패를 장례하라 “인생의 90%는 실패의 연속이며, 실패를 묻어 두면 계속 실패하고, 실패에서 배우면 성공한다.”-하타무라 요타로(도쿄대 명예교수, 실패학 창시자) 세계 실패의 날 10월 13일은 세계 ‘실패의 날(Day of Failure)’이다. 우리도 이 날을 기념하는 이들이 있다. 유래가 있다. 2010년 10월 13일, 핀란드에서다. 핀란드 알토대학의 창업동아리인 ‘알 토이에스(AaltEs)’는 실패의 날 행사를 열었다. 벤처 성공의 경험이 아닌, 실패의 경험을 나누고 소개하고 무엇을 배웠는지를 털어놓는 행사를 개최했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는 핀란드의 로비오 엔터테인먼트가 앵그리버드라는 게임으로 성공하기까지 52개의 게임을 출시했다가 쫄딱 망해 파산 직전까지 갔던 이야기가 공유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창업동아리의 행사였지만 기업들이 참여했다. 다음 해에는 핀란드를 대표했던 요르마 올릴라 노키아 명예회장이 자신의 실패 경험을 공개하기도 했다. 더불어 핀란드 정부가 후원에 나서면서 실패의 날은 세계적인 운동이 됐다. 이미 적었듯 실리콘밸리의 표어는 '일찍 실패하고, 자주 실패하고, 진취적으로 실패하라'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실패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결코 부끄러움일 수 없다. 당연하게도 실패의 날과 비슷한 행사가 실리콘밸리에서도 열리고 있다. 실패를 공유하는 콘퍼런스 형식인데, '페일콘(FilCon)'이라 부른다. 2009년 시작됐다. 역설적으로 실리콘밸리의 ‘정상회담’이라 부르기도 한다. 실리콘 밸리를 대표하는 창업자들이 참여해 실패의 경험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희극성 무대일까. 강조하지만, 우리 사회는 실패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실패는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부정적인 것만도 아니다. 숨겨야 할 그 무엇도 아니다. 정직한 패배가 부끄러움이 아니듯, 성실한 실패는 결코 음습한 절망일 수 없다. 실패를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실패를 객관화할 수 있어야 한다. 냉정하게 실패를 드러내 보이고, 그 실패의 원인과 과정을 토론하고 그 경험을 나만의 것이 아닌 우리와 세상과 공유할 때 실패의 가능성은 축소되고, 성공의 가능성은 확장된다. 모두가 나서서 실패의 날을 기념해야 한다. 실패 장례식 이번엔 장례식이다. 실패와 이별을 고하는 장례식. 2014년 멕시코에서 시작된 실패 공유 네트워킹 운동 ‘퍽업 나이츠(FuckUp Nignt)’의 일부다. '퍽업'은 '개판'이라는 의미다. 재밌게 표현하자면 '개판 쳐 본 사람들'끼리 모여 경험을 공유하자는 행사다. 우리나라에서도 열리고 있다. 이 중 하나로 실패한 벤처기업의 장례식을 진행하는 퍼포먼스를 열기도 한다. 재미있는 건 후원회사가 주류회사라는 점. 슬로건은 "장례식에 재미를"이다. 종교 행사가 된 사례도 있다. 미국의 닉슨 매킨스라는 소셜 미디어 회사는 매달 ‘실패의 예배’를 개최한다. 고해 성사의 시간도 있다. 하지만, 공개적이다. 예배는 늘 박수와 함성의 찬양으로 끝맺는다. 축하파티도 있다. ‘클래시 오브클랜’, ‘클래시 로얄’등 모바일 게임을 히트시킨 핀란드 게임사 슈퍼셀은 2010년에 시작한 스타트업이다. 2016년 중국 텐센트가 인수했는데, 금액이 무려 10조 원에 달했다. 회사의 독특한 문화 중 하나가 “실패 축하 파티”다. 프로젝트의 실패가 확인되는 순간 샴페인을 터뜨린다. 실패를 허용하는 정도를 넘어 실패를 지원했을 때 더한 벤처 정신이 살아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구글의 CEO였던 에릭 슈밋 역시 비슷한 관점에서 회사를 이끌었다. 그의 말이다. "구글은 실패를 축하하는 기업입니다." 실패 박람회도 있다. 2018년, 우리나라 행안부와 중소 벤처기업부가 공동으로 개최하기 시작했다. 1회 행사의 모토는 ‘실패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에요!’ 우리 사회도 실패의 경험이 사회의 자산일 수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다들 왜 이러는 걸까. 어느 나라건 실패는 감추고 싶은 문화였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하지만, 더 이상 감출 필요가 없는 자산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어떤 형식을 빌리더라도 실패를 공개하고, 공유하고, 사회적 자산으로 만들 때둘 사회의 한 사회의 성공이 재촉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하얀색 콜라, 보라색 케첩 ‘콜라 색’이 있다. 어떤 색인지 바로,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색깔이 없는 무색의 콜라가 있다면? 그걸 ‘크리스털 콜라’라고 불렀다. 1992년 펩시가 시장에 내놓았다. 첫해에는 반응이 뜨거웠는데 다음 해에는 차갑게 식어 버렸다. 그럼, 케첩의 색깔은 무슨 색이어야 할까. 2000년 하인즈는 보라색 케첩을 내놓았다. 처음에는 열광했지만, 나중에 징그럽다며 시장에서 쫓겨났다. 어디로 갔을까. 실패박물관으로 모여들었다. 미국 미시간주에는 실패박물관이 있다. 처음에는 실패 박물관이 아니었다. 신제품 작업소였다. 로버트 맥메스라는 이가 1960년대 말부터 신제품들만을 모으기 시작했다. 애써 모았더니 신제품의 80%가 실패한 제품이 되더라는 것. 7만 점 이상을 수장하게 되자 마케팅 전문가들이 이곳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MBA의 필수 코스가 되었다. 1990년 실패박물관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실패학의 성지가 됐다. 2017년 6월, 스웨덴 헬싱보리에도 실패박물관이 개관됐다. 대표적인 전시품 중 하나가 오토바이 제조사 할리 데이비슨이 1996년 출시한 향수인'핫 로드'다. 할리데이비슨 마니아들은 그들만의 액세서리를 선호한다. 향수도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라이더들의 옷깃에 바람이 스쳐 가듯 향수는 실패했다. 박물관은 최고의 유산만 보존된 곳이 아니다. 아니, 실패 또한 인류 최고의 유산일 수 있다. 실패박물관은 인간의 본질인 실패의 역사를 수집하고 보존하는 곳이다. 인간의 특성인 호기심을 수장하는 곳이다. 인간의 모험과 시도가 얼마나 특별한지를 자랑하는 곳이다. 모든 박물 관이 그러하듯 실패를 기억하는 곳이다. 실패를 전달하고, 공유하는 곳이다. 간접 체험하는 곳이다. 실패의 경험을 컨설팅하고, 반면교사 삼는 곳이다. 실패가 인류의 자산이요, 지식재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곳이다. 우리도 이제 실패박물관을 건립할 때가 됐다. 이를테 면, 2021년 궤도 안착에 실패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1995년 삼성전자 구미 사업장에서 있었던 애니콜 화형식에서의 휴대전화 등등을 전시한다면 박물관으로서의 가치는 넘쳐날 것이다. 실패를 포상한다 미국의 신용정보회사인 '던 앤드 브래드스트리트(Dun and Bradstreet)에는 '실패의 벽'이 있다. 안내문 내용이다. “1. 실패한 순간을 자세히 기록하세요. 2. 그것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를 쓰세요. 3. 자신의 이름을 적고 사인하세요." 이것은 강요가 아니다. 실패에 대한 자기 고백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는 장이다. 실패를 배우는 방식은 이렇듯 다양하다. 단순한 고백을 넘어 아예 실패를 포상하는 기업들이 있다. 가장 큰 실패, 가장 훌륭한 실패에 상을 준다. 대표적인 회사가 일본 혼다 자동차가 시행 중인 '올해의 실패 왕’이다. 한 해 동안 가장 크게 실패한 연구원에게 수여한다. 상금은 우리 돈으로 약 1,000만 원 정도. 혼다의 창업자 소이치로 혼다가 말했다. "성공이란 당신의 일에서 그저 1%의 비율로 존재할 뿐이고, 나머지 99%는 실패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1%가 아닌 그 99%에서 가치를 찾아 내려는 것이다. 미국 3M은 2003년부터 '퍼스트 펭귄 어워드'라는 포상 제도를 실시해 오고 있다. 다른 펭귄이 머뭇거릴 때 과감하게 맨 먼저 바다에 뛰어드는 펭귄이 있다. 그 펭귄을 '퍼스트 펭귄'이라 부른다. 선구자 또는 도전자의 의미로 사용되는 관용어다. 그런데 수상자는 선구자도, 도전자도, 성공자도 아니다. 실패자다. 프로젝트에서 실패한 사람만이 수상 자격을 갖는다. 대신 이들은 자신의 프로젝트가 실패한 이유를 발표해야 한다. 이미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 톰 피터스가 한 말이 있다. "탁월한 실패에는 상을 주고, 평범한 성공에는 벌을 주어라" 왜 그랬을까. 실패를 공포와 손잡게 해서는 안 된다. 실패는 버려서는 안 될 기업의 자산이다. 실패를 어떤 방식으로든 위로하고, 고무하고, 찬양하는 데서 모험은 시작된다. 기본적으로 실패를 어떻게든 어둠 속에서 끄집어내고 싶은 것은 세계적 흐름이다. 성공과 실패에 겸손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 질문을 던져 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혼자서는 해결이 안 되어서다. 함께 고민해 보고 싶은 지점이다. 첫째, 성공과 실패의 상대성이다. 어느 게 성공이고, 어느 게 실패일까, 성공과 실패라는 판정은 늘 공정하고 정확할까. 둘째, 성공과 실패의 시간성이다. 너무 일찍 세상에 나오는 바람에 시장에서 외면받아 실패라고 낙인찍히는 발명품들이 있다. 세상의 무지 때문에 실패한 이론들도 있다. 지동설 같은 경우다. 또 다른 경우도 있다. 성공과 실패의 순환 혹은 부조화다. 한편에서는 실패였지만, 엉뚱하게도 다른 한편에서는 성공으로 평가되는 경우다. 숨겨진 효능이 발견되는 의약품의 경우가 그렇다.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 사건이 있다. 독일의 상품명을 따서 일명 ‘콘테르간(contergan) 스캔들’이라고도 한다. 현대 의학 역사상 최악의 사건 중 하나다. 1957년 산모들 입덧 방지제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입덧 방지제로서는 성공이었다. 하지만 성공이 성공이 아니었다. 약을 복용한 산모에게서 사지 기형아들이 태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끔찍한 실패였다. 판매가 금지되기 전까지 5년 동안, 전 세계에서 1만 2000여 명 이상의 기형아가 태어났다. 하지만, 미국은 예외였다. 미국 FDA에는 켈시상이 있다. 1960년 탈리도마이드 약효를 끝까지 의심하고, 실패 여부를 끝까지 확인하면서 승인을 거부했던 프랜시스 켈시 박사를 기리기 위한 상이다. FDA는 미국에서의 판매를 허락하지 않았는데 이는 온전히 켈시 박사의 공로였다. 그래서 미국에서만큼은 이 약의 실패 사례를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 성공과 실패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의학자들은 먼 훗날 탈리도마이드에서 다른 효능을 찾아낸다. 1998년 미국 FDA는 탈리도마이드를 한센병 합병증 치료제로 승인한다. 2006에는 다발성 골수 종양 환자에게 제한적으로 사용을 승인하기도 했다. 하나의 약품이 어느 때는 성공이고 어느 때는 실패로, 또 어느 기관, 어느 학자, 어느 질병에 따라서는 성공으로, 실패로 인정되거나 평가받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성공과 실패에 대해 겸손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pp. 11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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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0-03
  • 【북토크】 이상과 현실의 괴리
    재밌게 읽었다. 여러 철학자들, 사상가들이 자기의 생각대로 살거나 자기 뜻을 펼쳤는지를 돌아보는 책이다. 맹자가 오래 전 권력자 앞에서 폐위 운운했다는 것은 목숨을 건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그대로 그의 목을 치지 않은 권력자도 나름 위대하다. 자기 생각, 뜻대로 살 수 없는 세상이다. 과거보다 현재가 더 나아졌는가?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왕에게 바른 소리를 하다 학식과 덕망으로 유명해진 맹자가 제자들을 거느리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유가의 이상을 실천하고자 할 때였다. 그의 뒤로는 수레 수십 대가 넘는 긴 행렬과 제자 수백 명이 따랐다. 그 모습은 멀리에서 보기에도 그야말로 일대 장관을 이루었다. 그는 호탕하게 열국을 향해 진군했다. 씩씩한 기상과 굳은 절개를 가졌던 그는 왕들에게 이상 정치(왕도 정치)를 시행할 것을 강력히 권유했다. 맹자가 양나라의 혜왕을 만난 것은 53세 때였다. 혜왕은 자기 나라가 점차 약화되는 것을 염려하여 사방에서 현인들을 초빙했다. 이에 맹자가 찾아가니 혜왕은 매우 기뻐하며 나라에 도움이 될 방법을 물었다. 맹자는 "만일 왕께서 어떻게 하여 내 나라를 이롭게 할까 주장하신다면 대부들도 반드시 어떻게 하여 내 집안을 이롭게 할까 할 것이며, 또 선비나 백성들도 어떻게 하여 나 자신을 이롭게 할까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위아래가 서로 자기의 이득만을 다툰다면 나라가 위태롭게 되고 말 것입니다"라고 충고했다. 이어서 그는 "신하된 자가 자기 이익을 생각하여 임금을 섬기고, 자식된 자가 자기 이익을 생각해서 어버이를 섬기고, 동생된 자가 자기 이익을 생각해서 형을 섬긴다면, 그것은 인의가 아니라 이익 때문에 서로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고서도 멸망하지 않은 경우는 여태껏 없었습니다"고 말했다. 이른바 모든 일에 개인의 공명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의 폐해를 통렬히 비판한 것이다. 하루는 맹자가 왕에게 물었다. "형리가 자기가 맡고 있는 감옥 내의 질서를 바로잡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형리를 파면시켜야 한다." "나라 전체가 문란해졌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자 왕은 다른 이야기로 말꼬리를 흐렸다. 맹자에 따르면, 군주의 의무를 게을리하여 백성들에게 원망이나 불평을 듣는 자는 마땅히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또 왕이 자리에 연연하여 독재를 하거나 백성들을 억압하려 든다면 살해되어도 무방하다. 그리고 이것은 절대 임금과 신하의 의리 혹은 명분을 파괴하는 일이 아니다. 왜 그럴까? 둘 사이에는 벌써 군신간의 관계가 깨졌기 때문이다(pp. 8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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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23
  • 【북토크】 예장합동 신학정체성 선언문
    108회 총회장 오정호 목사는 9월 23일 개회하는 109회 총회를 앞둔 20일 총회장실에서 교단 목사 기자들과 마지막 세 번째 간담회를 가졌다. 끝날 시간에 기자들에게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신학 정체성 선언문 및 해설』을 한 권씩 선물했다. 많지 않은 내용이라 다 읽은 후 몇 가지를 언급하려고 한다. 첫째, 어려운 말이 사용됐다. 20페이지 ‘1. 하나님의 속성’ 아래로 일곱째 줄에 ‘완해불가’라는 말이 나온다. 네이버를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말이다.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라는 뜻으로 추측해 볼 뿐이다. 왜 이렇게 어려운 말을 사용했는지 모르겠다. 또한 121페이지 ‘1, 사회봉사’ 아래로 일곱째 줄에 ‘조응시킴으로’라는 말이 나온다. 이 또한 잘 쓰는 말이 아니라 검색해 보니 “둘 이상의 사물이나 현상 또는 말과 글의 앞뒤 따위가 서로 일치하게 대응함”이라고 설명한다. 좀 더 쉬운 말을 사용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둘째, 문법에 맞지 않는 말이 있다. 154페이지 ‘2. 신자의 죽음’ 아래로 셋째 줄에 ‘영광 중에서 하나님의 얼굴의 바라보며’는 ‘하나님의 얼굴을’이 맞을 것으로 보인다. 오타 하나는 책의 가치를 크게 떨어트린다. 그런데 이 책은 초판 3쇄였는데 오타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하다. 셋째, 논쟁 가능성이 있는 부분이 있다. 127페이지 ‘3. 생명윤리’ 아래로 넷째 줄에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는 방법으로 사람의 생명을 고의적으로 죽인 자에 대하여 사형을 부과하라는 명령은 종말의 날까지 적용되는 보편적 명령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실질적 사형제 폐지 국가이다. 신자들도 사형제도에 대해 이견이 있다. 그런데 이 내용은 사형제도를 허용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사형제도를 지지하는 입장에서도 다소 놀라웠다. 또 한 가지는 같은 페이지 아래로 아홉째 줄에 ‘인간의 생명은 심장과 폐의 기능이 정지되는 심폐사의 시점이 되었을 때 종결된다’ 그러면 의료계가 인정하는 ‘뇌사’는 거부하는 것인가? 이미 뇌사가 인정되고 있는데 심폐사만 인정하는 것이 타당한지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말 그대로 합동교단의 신학이 무엇인지 말하는 선언문이다. 모든 목회자와 신자들이 배우고 숙지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인터넷 교보문고를 검색해 보니 이 책이 ‘절판’으로 나온다. 이유를 모르겠다. 총회 출판국의 대처가 필요하다. 이 책의 서문은 다음과 같다.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와 이에 속한 모든 교회는 수많은 도전 앞에서도 신구약 성경을 하나님의 변함없는 진리로 믿어 왔으며, 지금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무한한 사랑이 모든 성도와 교회의 존립과 사역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기초이자 능력임을 믿는다. 우리는 역사적 개혁신학이 성경의 명확한 진리를 가장 잘 표현한 신학 체계라고 믿으며, 우리 총회가 표방하는 12신조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신도게요) 및 대소요리문답(성경 대요리문답, 성경 소요리 문답)의 진술이 우리 교회의 공적인 표준 문서로서, 여전히 유효한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고백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한 세기가 넘도록 우리 교단과 교회들을 진리 가운데 지켜주시고 오늘날까지 성장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 은혜에 감사하며 새로운 시대 변화에 맞는 우리의 신학정체성을 선언하려 한다. 이는 종교다원주의적 사조와 초기술사회에 따른 세속화, 정경의 진리에 반하는 다양한 윤리적 도전에 맞서 우리가 견지해 온 신앙고백에 충실한 신학적 입장을 표명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신학정체성 선언의 목적은 보다 선명하고 확고한 신앙의 확인이 필요한 다음 세대의 이해를 돕고, 나아가 우리 교회의 신학적 입장을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해 우리가 지켜 온 역사적 신앙고백을 더 명확하고 쉬운 진술을 통해 재확인하는 데 있다. 주후 2024년 3월 4일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제108회 총회장 오정호 총회신학정체성선언문 집필위원장: 김길성 서기: 임종구 위원: 김광열 김석환 김성태 김요섭 라영환 박윤만 박재은 신현철 이상웅 이상원 이풍인 주종훈 채이석 최재호 황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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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22
  • 【북토크】 이야기 창조자, 작가...그 치열한 노력
    명절 연휴를 맞아 모처럼 쉬지 않고 책을 읽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취재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2022년 9월 30일 한겨레신문사에서 34년 7개월 만에 퇴사한 문학전문 기자의 글 모음으로 400페이지다. 이 책을 통해 여러 작가와 책을 알게 됐다. 계속해서 읽을거리가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 책들이 도서관에 있기를 바래본다. 이 책 제목처럼 이야기는 오래 산다. 한때 네러티브 설교 방법이 유행했다. 이 설교를 잘하는 방법의 하나는 소설을 많이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소설을 통해 상상력이 계발되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소설을 열심히 읽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다음에 소개할 내용은 많은 베스트셀러를 쓴 정이정 작가와의 인터뷰 글이다. 몇 년 전 이 작가의 『7년의 밤』을 읽었는데 다 읽었는지 모르겠다. 너무 내용이 길어 읽기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이 작가의 글 쓰는 태도가 대단해서 소개해 본다. "저는 일단 이야기의 얼개가 잡히면 아무리 길어도 석 달 안에 초고를 끝냅니다. 일단 초고를 마친 다음 1년에 걸쳐 말이 되게 다듬고 필요한 세부 사항을 취재해서 또 고치고 하면서 초고를 완전히 벗겨 냅니다. 그러다 보니까 대체로 2년 터울로 신작을 발표하게 되네요. 이 소설도 빨라야 2013년 봄에나 책으로 나 올 것 같아요." 초고를 완전한 원고로 바꾸는 과정에서 그는 하나의 장면을 그릴 때에도 세 가지 정도의 다른 버전을 써 놓고는 그중 가장 나 은것을 고르는 방식을 택한다. 세계문학상 수상작 『내 심장을 쏴라』(은행나무, 2009)의 마지막 장면은 ①승민이 병원에 불을 지른다 ②산사태가 나서 상황이 정리된다 ③글라이더를 이용해 탈출한다. 세 가지 결말을 써 놓고 고민하다가 마지막 것을 택했고, 『7년의 밤』에서 현수가 세령을 차로 치는 장면도 그렇게 썼다. 작가로서 모든 것을 이룬 듯한 정유정의 바람은 무엇일까? "‘정유정, 하면 이야기꾼’으로 불리고 싶어요. 문단의 평가에는 그다지 연연해하지 않습니다. 저는 『화씨 451』(황금가지, 2009)의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가 한 말 ‘나를 통해 세상을 타오르게 하라’를 10년째 책상에 붙여 놓고 있어요. 제 소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불을 지르고 싶습니다. 다만, 상업주의니 영화를 염두에 둔 소설이니 하는 말들에는 마음이 상합니다. 저는 소설이 모든 이야기 예술의 샘이자 대지 같은 장르라고 생각해요. 제가 소설가인 걸 너무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2012년), (pp. 327-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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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17
  • 【북토크】 세월은 빠르게 지나간다
    이 책은 중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모옌의 자전 에세이다. 1955년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난 그가 많은 우여곡절 속에 어떻게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는지를 담담히 보여준다. 아울러 초등학교 동창인 '허즈우'가 어떻게 큰 부자가 되었는지 그리고 '루원리'라는 여학생이 두 번의 사별 후 딸 하나만 바라보고 사는 중년의 여인으로 변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아래에 인용한 글은 책의 마지막 부분으로 딸을 위해 청탁하러 모엔을 찾아온 루원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추석 명절에 작은 조카가 결혼할 여자와 찾아왔다. 조카 나이가 벌써 34살이다. 아기 때 본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이처럼 세월은 무심히 흐르고 그 속에서 우리 모두는 늙어가며 추억만 쌓인다. 몇 시간만에 재미있게 읽었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책은 또 다른 책으로 나를 인도한다. 독서가 취미인 것이 다행이다(인터넷 교보문고를 보니 이 책은 2012년에 나와 절판됐다. 나처럼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어야 할 듯하다.) 모옌 중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프란츠 카프카, 윌리엄 포크너, 찰스 디킨스와 비견되며 환각적 리얼리즘의 정수를 창조한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 2007년에는 중국 문학평론가 10명이 선정한 중국 최고의 작가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본명은 관모예로 글로만 뜻을 표현할 뿐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모옌이라는 필명을 쓴다. 1955년 산둥성 가오미 현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 문화대혁명을 겪으며 학업을 중 단하고 시골 생활을 하다가 1973년, 열여덟 살이 되던 해부터 목화 가공 공장에서 직공으로 일했다. 1976년, 고향을 떠나 중국 인민해방군에 입대해 복무하던 중 문학에 눈을 돌려 해방군 예술 단과대학에 입학해 1986년에 문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베이징 사범대학과 루쉰 문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81년 단편소설 「봄밤에 내리는 소나기」로 등단한 그는, 1984년 발표한 「투명한 홍당무」를 통해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7년 대표적인 장편소설 「홍까오량 가족」을 발표해 반향을 일으켰고, 그 작품의 일부를 장이머우 감독이 영화 <붉은 수수밭>으로 제작해 1988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중국 최고의 문학상으로 손꼽히는 마오둔 문학상과 다자 문학상을 비롯해 프랑스 루얼 파타이아 문학상, 이탈리아 노니노 문학상, 홍콩 아시아문학상, 일본 후쿠오카 아시아 문화대상 등을 수상했으며 프랑스 예술문화훈장을 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201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중국국적 작가로는 첫 수상이라는 영예까지 안았다. 이 책 『모두 변화한다』는 그의 작품세계와 더불어 지난 30년간 중국의 사회 변화를 동시에 엿볼 수 있는 첫 자전에세이다. 주요 작품으로 소설집 『달빛을 베다』,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 장편소설 『열세걸음』, 『개구리』, 『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 『술의 나라』, 『풀 먹는 가족』, 『풍유비둔』, 『맹그로브 숲』, 『탄샹싱』, 『사십일포』, 『인생은 고달파』 등이 있다. "류 선생님은 잘 지내셔?" 그녀는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갔어." 나는 깜짝 놀라 말했다. "어쩌다가. 류 선생님은 이제 예순 살을 겨우 넘었을 텐데." "나는 과부 팔자인가 봐. 내가 기가 세서 사내를 잡아먹는 건지." "무슨 그런 말을" 그녀는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눈동자에 눈물이 어리어리 비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그녀가 말했다. "내 팔자가 사나워서..." 순간 나는 그녀를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해 다만 술잔을 들어 올려 가볍게 그녀의 잔에 부딪칠 뿐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잔 안에 든 술을 몽땅 비우며 말했다. "그런 말은 하지 말자. 내가 당신을 찾아온 건 사실 부탁이 있어서야." 그녀는 품속에서 사진을 한 장 꺼내더니 내게 건넸다. "내 딸이야. 류 환환이지. 마오창 소년반 시험에 등록했고 벌써 2차까지는 시험에 붙어서 60명 안에는 들었어. 학부모들이 저마다 아는 사람을 찾아가 부탁하는 모양인데... 그래서 나도 이 늙은 얼굴이 부끄러운데도 당신을 찾아온 거야." 나는 손으로 사진을 받쳐 들고 찬찬히 살펴보았다. 류 환환, 입이 크고 눈도 큰 것이 류 선생님을 빼닮았다. 그래도 루원리 쪽을 훨씬 더 많이 닮은 듯했다. 그러고 보니 심사위원들로부터 류 환환의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그 자리에서 루 국장에게 문자를 보내 물었더니 그는 이런 회신을 보 내왔다. '모든 조건이 좋은 아이예요. 아마도 두 학생이 끝까지 남을 것 같은데, 그중 한 아이가 그 학생입니다." 나는 루 국장의 문자를 루원리에게 직접 보여주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내가 말했다. "이제 안심해도 되겠지?" 그녀는 목이 메는지 떠듬떠듬 말을 이었다. "고마워.., 고마...." 내가 말했다. "누구한테 뭘 고맙다는 거야? 당신 딸아이의 조건이 원래 좋았던 거야. 재능도 있고 표현도 잘했고. 시험도 아주 잘 봤다던데!" 그녀가 말했다. "요즘 일들 나도 알아. 고마워, 친구." 그녀는 가방 속을 더듬어 편지봉투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 "옛 친구, 내 동창, 고마운 친구야. 이거 만 위안이야. 약소하다고 거절하지 말고 루 국장이랑 다른 분들에게 술이라도 한 잔 대접해줘." 나는 한참을 생각한 끝에 말했다. "알았어, 친구. 내 받아두지." (pp. 160-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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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16

실시간 책소개 기사

  • 【북토크】 윤락녀 생활 20년의 진솔한 이야기
    불우한 가정 형편으로 인해 윤락녀로 20년을 살았던 한 여성의 진솔한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어떤 책을 보다 추천 받아 읽게 되었는데 한 인생이 어떻게 망가지고 짓밟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나마 20년 만에 그 생활을 마감하고 이제는 일상을 살아가니 다행이다. 한때 이혼남과 결혼해 평범한 가정생활을 살기 원했으나 그도 잠깐만에 폭력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때 그녀의 피난처가 되어준 곳이 바로 교회였기에 감사했다. 교회나마 이 역할을 해 줄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여자의 성(性)을 돈으로 팔고 사는 죄 많은 세상이 빨리 끝나기를 바란다. 아이들도 맞아서 울고 나도 맞아서 울었다. 그 날 이후 그 남자의 폭력은 더욱더 심해졌다. 하루는 결국 나를 죽이겠다고 칼을 들이댔다. 내 비명소리를 들은 큰아이가 그 남자를 말렸고, 손아귀에서 벗어난 나는 필사적으로 집 밖으로 도망쳤다. 갈 곳도 없는 나는 울면서 거리를 배회하다가 교회로 향했다. 사모님은 깜짝 놀라면서 교회에 딸려 있는 작은방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방에 보일러를 켜주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이불을 덮어쓰고도 내 몸은 심하게 떨렸다. 그 남자가 나를 찾아낼까 봐 겁에 질려 눈에서는 눈물만 하염없이 흘렀다. 방이 따뜻해지고 어느덧 잠든 나는 밤새 앓았다. 꿈조차 꾸지 않는 어둠이 차라리 위안이었다. 내일이 찾아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눈을 뜬 것은 새벽이었다. 온몸이 쑤시고 아팠지만 돌아갈 곳 없는 내 처지가 슬펐다. 다시 그 남자의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몸은 괜찮냐고 묻는 사모님의 말에 대답도 제대로 못 하고 눈물만 흘렸다. 사모님은 그 남자의 전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고단한 시집살이와 그 남자의 폭력으로 이혼하게 되었다고 했다. 남자가 여러 여자들과 동거하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전해주었다. 오후에는 아이들이 나를 찾아왔다. 큰아이에게 밥은 먹었냐고 하니 고개를 저으며 할머니가 엄마 욕을 너무 많이 해서 집에 들어가기도 싫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죄를 짓는 기분이 들어서 미안했다. 이제야 겨우 나에게 정을 주고 엄마라고 부르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줘서 마음이 아팠다. 사모님의 배려로 아이들과 식사를 같이 했고,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아이들은 집으로 돌려보냈다. 사모님은 나에 제 몸을 추스를 때까지 교회에서 지내라고 했다. 아픈 내 마음을 위로해주는 사모님이 친언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면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 같아서 다시는 그 집으로는 돌아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몸이 회복되며 마음도 편안해졌다. 팔순 노모가 교회로 나를 찾아와서 "여자가 함부로 집을 나가고, 어디서 배운 짓이냐?" 하고 화를 냈다. 그러면서 생선 가게가 너무 바쁘니 당장 집으로 돌아오라고 했다. 맞아서 몸이 상한 나에게 가게가 바쁘다고 말하는 팔순 노모가 미웠다. 그 남자가 휘두르는 폭력으로 몸과 마음이 다친 나는 더이상 가정부로, 하녀로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단호하게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다. 팔순 노모는 표정이 굳어지면서 다 교회 사모님이 시킨 짓이라고 악담을 퍼부으면서 돌아갔다. 며칠 후 술에 취한 그 남자가 교회에 왔다. 교회 앞마당에서 고함을 지르며 목사님을 불렀다. 교회가 시끄러워져서 목사님과 사모님에게 죄송했다. 목사님은 그 남자를 조용히 달랬고, 한동안 말이 없던 그 남자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교회 옥상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그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역겹고 비릿한 생선 냄새를 맡아가며 시장에서 일을 했고, 몸이 아프고 힘들어도 열심히 노력하면 잘살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 내 마음은 너무나 망가져 있었다. 그 남자와의 관계도 이제 끝이 나고 있었다. 다음 날 나는 그 남자와 살면서 시달렸던 폭력을 끝내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내 과거를 들먹이는 그 남자의 폭력에 힘들었지만 20여 년간 온갖 학대를 받았던 업소로 돌아가지 않으려 그 폭력을 참아냈다.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보탬이 된 시간보다 빛을 갚기 위해 산 시간이 더 길었기에 언제나 미안했고,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 역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돌아가서도 많은 좌절과 아픔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예상했지만, 이제는 지긋지긋한 폭력을 벗어나고 싶었다. 사모님과 함께 그 남자의 집으로 가서 짐을 챙겼다. 내가 사용하던 화장품과 옷가지 몇 개를 챙기고 나머지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주방과 욕실에서도 내가 사용하던 물건을 정리했다. 이 집에서 내가 머물렀던 흔적을 모두 정리하고 싶어서 쓰레기통이 넘치도록 짐을 버렸다. 마을에 오일장이 섰는지 시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주머니에 있는 돈으로 시장 좌판에서 파는 운동복 한 벌과 5000원짜리 신발을 샀다. 그 남자 집에서 가져온 물건은 화장품과 속옷이 전부였기에 입고 다닐 옷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치고 목사님과 사모님에게 그동안 민폐만 끼치고 간다며 인사를 했다. 목사님과 사모님은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해주었고 내 손에 차비를 쥐어주었다. 사모님은 늘 기도하겠다며 건강하게 잘 지내고 다음에 좋은 얼굴로 다시 만나자고 했다. 눈에는 눈물이 맺혔고 목이 메어 제대로 대답하지도 못한 채 버스 에 올라탔다. 버스가 출발하면서 눈앞에 펼쳐지는 이 마을의 전경이 새롭게 느껴졌다. 살기 위해 몸부림쳤던 시간들이 상처로 남아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픔이 되었다. 버스 안에서 모든 것을 잊고 싶은 마음에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pp. 31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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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0-03
  • 【북토크】 실패를 자산으로 만들라
    생태학자 최재천 박사에 대한 책을 대출하면서 함께 대출받았는데 동명이인이었다. 책을 고르는데 실패했지만 내용은 성공적이었다. 살면서 도전하는 사람들은 실패를 경험할 수 있다. 이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가? 이 책은 실패에 대한 책이다. 실패를 가지고 책 한권을 썼다는 것도 대단한데 내용이 읽을만했다. 성공했거나 실패했거나 한 번 읽어보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실패를 예배하라, 실패를 장례하라 “인생의 90%는 실패의 연속이며, 실패를 묻어 두면 계속 실패하고, 실패에서 배우면 성공한다.”-하타무라 요타로(도쿄대 명예교수, 실패학 창시자) 세계 실패의 날 10월 13일은 세계 ‘실패의 날(Day of Failure)’이다. 우리도 이 날을 기념하는 이들이 있다. 유래가 있다. 2010년 10월 13일, 핀란드에서다. 핀란드 알토대학의 창업동아리인 ‘알 토이에스(AaltEs)’는 실패의 날 행사를 열었다. 벤처 성공의 경험이 아닌, 실패의 경험을 나누고 소개하고 무엇을 배웠는지를 털어놓는 행사를 개최했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는 핀란드의 로비오 엔터테인먼트가 앵그리버드라는 게임으로 성공하기까지 52개의 게임을 출시했다가 쫄딱 망해 파산 직전까지 갔던 이야기가 공유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창업동아리의 행사였지만 기업들이 참여했다. 다음 해에는 핀란드를 대표했던 요르마 올릴라 노키아 명예회장이 자신의 실패 경험을 공개하기도 했다. 더불어 핀란드 정부가 후원에 나서면서 실패의 날은 세계적인 운동이 됐다. 이미 적었듯 실리콘밸리의 표어는 '일찍 실패하고, 자주 실패하고, 진취적으로 실패하라'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실패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결코 부끄러움일 수 없다. 당연하게도 실패의 날과 비슷한 행사가 실리콘밸리에서도 열리고 있다. 실패를 공유하는 콘퍼런스 형식인데, '페일콘(FilCon)'이라 부른다. 2009년 시작됐다. 역설적으로 실리콘밸리의 ‘정상회담’이라 부르기도 한다. 실리콘 밸리를 대표하는 창업자들이 참여해 실패의 경험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희극성 무대일까. 강조하지만, 우리 사회는 실패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실패는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부정적인 것만도 아니다. 숨겨야 할 그 무엇도 아니다. 정직한 패배가 부끄러움이 아니듯, 성실한 실패는 결코 음습한 절망일 수 없다. 실패를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실패를 객관화할 수 있어야 한다. 냉정하게 실패를 드러내 보이고, 그 실패의 원인과 과정을 토론하고 그 경험을 나만의 것이 아닌 우리와 세상과 공유할 때 실패의 가능성은 축소되고, 성공의 가능성은 확장된다. 모두가 나서서 실패의 날을 기념해야 한다. 실패 장례식 이번엔 장례식이다. 실패와 이별을 고하는 장례식. 2014년 멕시코에서 시작된 실패 공유 네트워킹 운동 ‘퍽업 나이츠(FuckUp Nignt)’의 일부다. '퍽업'은 '개판'이라는 의미다. 재밌게 표현하자면 '개판 쳐 본 사람들'끼리 모여 경험을 공유하자는 행사다. 우리나라에서도 열리고 있다. 이 중 하나로 실패한 벤처기업의 장례식을 진행하는 퍼포먼스를 열기도 한다. 재미있는 건 후원회사가 주류회사라는 점. 슬로건은 "장례식에 재미를"이다. 종교 행사가 된 사례도 있다. 미국의 닉슨 매킨스라는 소셜 미디어 회사는 매달 ‘실패의 예배’를 개최한다. 고해 성사의 시간도 있다. 하지만, 공개적이다. 예배는 늘 박수와 함성의 찬양으로 끝맺는다. 축하파티도 있다. ‘클래시 오브클랜’, ‘클래시 로얄’등 모바일 게임을 히트시킨 핀란드 게임사 슈퍼셀은 2010년에 시작한 스타트업이다. 2016년 중국 텐센트가 인수했는데, 금액이 무려 10조 원에 달했다. 회사의 독특한 문화 중 하나가 “실패 축하 파티”다. 프로젝트의 실패가 확인되는 순간 샴페인을 터뜨린다. 실패를 허용하는 정도를 넘어 실패를 지원했을 때 더한 벤처 정신이 살아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구글의 CEO였던 에릭 슈밋 역시 비슷한 관점에서 회사를 이끌었다. 그의 말이다. "구글은 실패를 축하하는 기업입니다." 실패 박람회도 있다. 2018년, 우리나라 행안부와 중소 벤처기업부가 공동으로 개최하기 시작했다. 1회 행사의 모토는 ‘실패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에요!’ 우리 사회도 실패의 경험이 사회의 자산일 수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다들 왜 이러는 걸까. 어느 나라건 실패는 감추고 싶은 문화였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하지만, 더 이상 감출 필요가 없는 자산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어떤 형식을 빌리더라도 실패를 공개하고, 공유하고, 사회적 자산으로 만들 때둘 사회의 한 사회의 성공이 재촉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하얀색 콜라, 보라색 케첩 ‘콜라 색’이 있다. 어떤 색인지 바로,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색깔이 없는 무색의 콜라가 있다면? 그걸 ‘크리스털 콜라’라고 불렀다. 1992년 펩시가 시장에 내놓았다. 첫해에는 반응이 뜨거웠는데 다음 해에는 차갑게 식어 버렸다. 그럼, 케첩의 색깔은 무슨 색이어야 할까. 2000년 하인즈는 보라색 케첩을 내놓았다. 처음에는 열광했지만, 나중에 징그럽다며 시장에서 쫓겨났다. 어디로 갔을까. 실패박물관으로 모여들었다. 미국 미시간주에는 실패박물관이 있다. 처음에는 실패 박물관이 아니었다. 신제품 작업소였다. 로버트 맥메스라는 이가 1960년대 말부터 신제품들만을 모으기 시작했다. 애써 모았더니 신제품의 80%가 실패한 제품이 되더라는 것. 7만 점 이상을 수장하게 되자 마케팅 전문가들이 이곳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MBA의 필수 코스가 되었다. 1990년 실패박물관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실패학의 성지가 됐다. 2017년 6월, 스웨덴 헬싱보리에도 실패박물관이 개관됐다. 대표적인 전시품 중 하나가 오토바이 제조사 할리 데이비슨이 1996년 출시한 향수인'핫 로드'다. 할리데이비슨 마니아들은 그들만의 액세서리를 선호한다. 향수도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라이더들의 옷깃에 바람이 스쳐 가듯 향수는 실패했다. 박물관은 최고의 유산만 보존된 곳이 아니다. 아니, 실패 또한 인류 최고의 유산일 수 있다. 실패박물관은 인간의 본질인 실패의 역사를 수집하고 보존하는 곳이다. 인간의 특성인 호기심을 수장하는 곳이다. 인간의 모험과 시도가 얼마나 특별한지를 자랑하는 곳이다. 모든 박물 관이 그러하듯 실패를 기억하는 곳이다. 실패를 전달하고, 공유하는 곳이다. 간접 체험하는 곳이다. 실패의 경험을 컨설팅하고, 반면교사 삼는 곳이다. 실패가 인류의 자산이요, 지식재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곳이다. 우리도 이제 실패박물관을 건립할 때가 됐다. 이를테 면, 2021년 궤도 안착에 실패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1995년 삼성전자 구미 사업장에서 있었던 애니콜 화형식에서의 휴대전화 등등을 전시한다면 박물관으로서의 가치는 넘쳐날 것이다. 실패를 포상한다 미국의 신용정보회사인 '던 앤드 브래드스트리트(Dun and Bradstreet)에는 '실패의 벽'이 있다. 안내문 내용이다. “1. 실패한 순간을 자세히 기록하세요. 2. 그것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를 쓰세요. 3. 자신의 이름을 적고 사인하세요." 이것은 강요가 아니다. 실패에 대한 자기 고백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는 장이다. 실패를 배우는 방식은 이렇듯 다양하다. 단순한 고백을 넘어 아예 실패를 포상하는 기업들이 있다. 가장 큰 실패, 가장 훌륭한 실패에 상을 준다. 대표적인 회사가 일본 혼다 자동차가 시행 중인 '올해의 실패 왕’이다. 한 해 동안 가장 크게 실패한 연구원에게 수여한다. 상금은 우리 돈으로 약 1,000만 원 정도. 혼다의 창업자 소이치로 혼다가 말했다. "성공이란 당신의 일에서 그저 1%의 비율로 존재할 뿐이고, 나머지 99%는 실패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1%가 아닌 그 99%에서 가치를 찾아 내려는 것이다. 미국 3M은 2003년부터 '퍼스트 펭귄 어워드'라는 포상 제도를 실시해 오고 있다. 다른 펭귄이 머뭇거릴 때 과감하게 맨 먼저 바다에 뛰어드는 펭귄이 있다. 그 펭귄을 '퍼스트 펭귄'이라 부른다. 선구자 또는 도전자의 의미로 사용되는 관용어다. 그런데 수상자는 선구자도, 도전자도, 성공자도 아니다. 실패자다. 프로젝트에서 실패한 사람만이 수상 자격을 갖는다. 대신 이들은 자신의 프로젝트가 실패한 이유를 발표해야 한다. 이미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 톰 피터스가 한 말이 있다. "탁월한 실패에는 상을 주고, 평범한 성공에는 벌을 주어라" 왜 그랬을까. 실패를 공포와 손잡게 해서는 안 된다. 실패는 버려서는 안 될 기업의 자산이다. 실패를 어떤 방식으로든 위로하고, 고무하고, 찬양하는 데서 모험은 시작된다. 기본적으로 실패를 어떻게든 어둠 속에서 끄집어내고 싶은 것은 세계적 흐름이다. 성공과 실패에 겸손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 질문을 던져 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혼자서는 해결이 안 되어서다. 함께 고민해 보고 싶은 지점이다. 첫째, 성공과 실패의 상대성이다. 어느 게 성공이고, 어느 게 실패일까, 성공과 실패라는 판정은 늘 공정하고 정확할까. 둘째, 성공과 실패의 시간성이다. 너무 일찍 세상에 나오는 바람에 시장에서 외면받아 실패라고 낙인찍히는 발명품들이 있다. 세상의 무지 때문에 실패한 이론들도 있다. 지동설 같은 경우다. 또 다른 경우도 있다. 성공과 실패의 순환 혹은 부조화다. 한편에서는 실패였지만, 엉뚱하게도 다른 한편에서는 성공으로 평가되는 경우다. 숨겨진 효능이 발견되는 의약품의 경우가 그렇다.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 사건이 있다. 독일의 상품명을 따서 일명 ‘콘테르간(contergan) 스캔들’이라고도 한다. 현대 의학 역사상 최악의 사건 중 하나다. 1957년 산모들 입덧 방지제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입덧 방지제로서는 성공이었다. 하지만 성공이 성공이 아니었다. 약을 복용한 산모에게서 사지 기형아들이 태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끔찍한 실패였다. 판매가 금지되기 전까지 5년 동안, 전 세계에서 1만 2000여 명 이상의 기형아가 태어났다. 하지만, 미국은 예외였다. 미국 FDA에는 켈시상이 있다. 1960년 탈리도마이드 약효를 끝까지 의심하고, 실패 여부를 끝까지 확인하면서 승인을 거부했던 프랜시스 켈시 박사를 기리기 위한 상이다. FDA는 미국에서의 판매를 허락하지 않았는데 이는 온전히 켈시 박사의 공로였다. 그래서 미국에서만큼은 이 약의 실패 사례를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 성공과 실패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의학자들은 먼 훗날 탈리도마이드에서 다른 효능을 찾아낸다. 1998년 미국 FDA는 탈리도마이드를 한센병 합병증 치료제로 승인한다. 2006에는 다발성 골수 종양 환자에게 제한적으로 사용을 승인하기도 했다. 하나의 약품이 어느 때는 성공이고 어느 때는 실패로, 또 어느 기관, 어느 학자, 어느 질병에 따라서는 성공으로, 실패로 인정되거나 평가받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성공과 실패에 대해 겸손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pp. 11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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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0-03
  • 【북토크】 이상과 현실의 괴리
    재밌게 읽었다. 여러 철학자들, 사상가들이 자기의 생각대로 살거나 자기 뜻을 펼쳤는지를 돌아보는 책이다. 맹자가 오래 전 권력자 앞에서 폐위 운운했다는 것은 목숨을 건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그대로 그의 목을 치지 않은 권력자도 나름 위대하다. 자기 생각, 뜻대로 살 수 없는 세상이다. 과거보다 현재가 더 나아졌는가?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왕에게 바른 소리를 하다 학식과 덕망으로 유명해진 맹자가 제자들을 거느리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유가의 이상을 실천하고자 할 때였다. 그의 뒤로는 수레 수십 대가 넘는 긴 행렬과 제자 수백 명이 따랐다. 그 모습은 멀리에서 보기에도 그야말로 일대 장관을 이루었다. 그는 호탕하게 열국을 향해 진군했다. 씩씩한 기상과 굳은 절개를 가졌던 그는 왕들에게 이상 정치(왕도 정치)를 시행할 것을 강력히 권유했다. 맹자가 양나라의 혜왕을 만난 것은 53세 때였다. 혜왕은 자기 나라가 점차 약화되는 것을 염려하여 사방에서 현인들을 초빙했다. 이에 맹자가 찾아가니 혜왕은 매우 기뻐하며 나라에 도움이 될 방법을 물었다. 맹자는 "만일 왕께서 어떻게 하여 내 나라를 이롭게 할까 주장하신다면 대부들도 반드시 어떻게 하여 내 집안을 이롭게 할까 할 것이며, 또 선비나 백성들도 어떻게 하여 나 자신을 이롭게 할까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위아래가 서로 자기의 이득만을 다툰다면 나라가 위태롭게 되고 말 것입니다"라고 충고했다. 이어서 그는 "신하된 자가 자기 이익을 생각하여 임금을 섬기고, 자식된 자가 자기 이익을 생각해서 어버이를 섬기고, 동생된 자가 자기 이익을 생각해서 형을 섬긴다면, 그것은 인의가 아니라 이익 때문에 서로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고서도 멸망하지 않은 경우는 여태껏 없었습니다"고 말했다. 이른바 모든 일에 개인의 공명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의 폐해를 통렬히 비판한 것이다. 하루는 맹자가 왕에게 물었다. "형리가 자기가 맡고 있는 감옥 내의 질서를 바로잡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형리를 파면시켜야 한다." "나라 전체가 문란해졌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자 왕은 다른 이야기로 말꼬리를 흐렸다. 맹자에 따르면, 군주의 의무를 게을리하여 백성들에게 원망이나 불평을 듣는 자는 마땅히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또 왕이 자리에 연연하여 독재를 하거나 백성들을 억압하려 든다면 살해되어도 무방하다. 그리고 이것은 절대 임금과 신하의 의리 혹은 명분을 파괴하는 일이 아니다. 왜 그럴까? 둘 사이에는 벌써 군신간의 관계가 깨졌기 때문이다(pp. 8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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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23
  • 【북토크】 예장합동 신학정체성 선언문
    108회 총회장 오정호 목사는 9월 23일 개회하는 109회 총회를 앞둔 20일 총회장실에서 교단 목사 기자들과 마지막 세 번째 간담회를 가졌다. 끝날 시간에 기자들에게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신학 정체성 선언문 및 해설』을 한 권씩 선물했다. 많지 않은 내용이라 다 읽은 후 몇 가지를 언급하려고 한다. 첫째, 어려운 말이 사용됐다. 20페이지 ‘1. 하나님의 속성’ 아래로 일곱째 줄에 ‘완해불가’라는 말이 나온다. 네이버를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말이다.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라는 뜻으로 추측해 볼 뿐이다. 왜 이렇게 어려운 말을 사용했는지 모르겠다. 또한 121페이지 ‘1, 사회봉사’ 아래로 일곱째 줄에 ‘조응시킴으로’라는 말이 나온다. 이 또한 잘 쓰는 말이 아니라 검색해 보니 “둘 이상의 사물이나 현상 또는 말과 글의 앞뒤 따위가 서로 일치하게 대응함”이라고 설명한다. 좀 더 쉬운 말을 사용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둘째, 문법에 맞지 않는 말이 있다. 154페이지 ‘2. 신자의 죽음’ 아래로 셋째 줄에 ‘영광 중에서 하나님의 얼굴의 바라보며’는 ‘하나님의 얼굴을’이 맞을 것으로 보인다. 오타 하나는 책의 가치를 크게 떨어트린다. 그런데 이 책은 초판 3쇄였는데 오타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하다. 셋째, 논쟁 가능성이 있는 부분이 있다. 127페이지 ‘3. 생명윤리’ 아래로 넷째 줄에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는 방법으로 사람의 생명을 고의적으로 죽인 자에 대하여 사형을 부과하라는 명령은 종말의 날까지 적용되는 보편적 명령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실질적 사형제 폐지 국가이다. 신자들도 사형제도에 대해 이견이 있다. 그런데 이 내용은 사형제도를 허용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사형제도를 지지하는 입장에서도 다소 놀라웠다. 또 한 가지는 같은 페이지 아래로 아홉째 줄에 ‘인간의 생명은 심장과 폐의 기능이 정지되는 심폐사의 시점이 되었을 때 종결된다’ 그러면 의료계가 인정하는 ‘뇌사’는 거부하는 것인가? 이미 뇌사가 인정되고 있는데 심폐사만 인정하는 것이 타당한지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말 그대로 합동교단의 신학이 무엇인지 말하는 선언문이다. 모든 목회자와 신자들이 배우고 숙지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인터넷 교보문고를 검색해 보니 이 책이 ‘절판’으로 나온다. 이유를 모르겠다. 총회 출판국의 대처가 필요하다. 이 책의 서문은 다음과 같다.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와 이에 속한 모든 교회는 수많은 도전 앞에서도 신구약 성경을 하나님의 변함없는 진리로 믿어 왔으며, 지금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무한한 사랑이 모든 성도와 교회의 존립과 사역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기초이자 능력임을 믿는다. 우리는 역사적 개혁신학이 성경의 명확한 진리를 가장 잘 표현한 신학 체계라고 믿으며, 우리 총회가 표방하는 12신조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신도게요) 및 대소요리문답(성경 대요리문답, 성경 소요리 문답)의 진술이 우리 교회의 공적인 표준 문서로서, 여전히 유효한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고백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한 세기가 넘도록 우리 교단과 교회들을 진리 가운데 지켜주시고 오늘날까지 성장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 은혜에 감사하며 새로운 시대 변화에 맞는 우리의 신학정체성을 선언하려 한다. 이는 종교다원주의적 사조와 초기술사회에 따른 세속화, 정경의 진리에 반하는 다양한 윤리적 도전에 맞서 우리가 견지해 온 신앙고백에 충실한 신학적 입장을 표명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신학정체성 선언의 목적은 보다 선명하고 확고한 신앙의 확인이 필요한 다음 세대의 이해를 돕고, 나아가 우리 교회의 신학적 입장을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해 우리가 지켜 온 역사적 신앙고백을 더 명확하고 쉬운 진술을 통해 재확인하는 데 있다. 주후 2024년 3월 4일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제108회 총회장 오정호 총회신학정체성선언문 집필위원장: 김길성 서기: 임종구 위원: 김광열 김석환 김성태 김요섭 라영환 박윤만 박재은 신현철 이상웅 이상원 이풍인 주종훈 채이석 최재호 황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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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22
  • 【북토크】 이야기 창조자, 작가...그 치열한 노력
    명절 연휴를 맞아 모처럼 쉬지 않고 책을 읽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취재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2022년 9월 30일 한겨레신문사에서 34년 7개월 만에 퇴사한 문학전문 기자의 글 모음으로 400페이지다. 이 책을 통해 여러 작가와 책을 알게 됐다. 계속해서 읽을거리가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 책들이 도서관에 있기를 바래본다. 이 책 제목처럼 이야기는 오래 산다. 한때 네러티브 설교 방법이 유행했다. 이 설교를 잘하는 방법의 하나는 소설을 많이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소설을 통해 상상력이 계발되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소설을 열심히 읽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다음에 소개할 내용은 많은 베스트셀러를 쓴 정이정 작가와의 인터뷰 글이다. 몇 년 전 이 작가의 『7년의 밤』을 읽었는데 다 읽었는지 모르겠다. 너무 내용이 길어 읽기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이 작가의 글 쓰는 태도가 대단해서 소개해 본다. "저는 일단 이야기의 얼개가 잡히면 아무리 길어도 석 달 안에 초고를 끝냅니다. 일단 초고를 마친 다음 1년에 걸쳐 말이 되게 다듬고 필요한 세부 사항을 취재해서 또 고치고 하면서 초고를 완전히 벗겨 냅니다. 그러다 보니까 대체로 2년 터울로 신작을 발표하게 되네요. 이 소설도 빨라야 2013년 봄에나 책으로 나 올 것 같아요." 초고를 완전한 원고로 바꾸는 과정에서 그는 하나의 장면을 그릴 때에도 세 가지 정도의 다른 버전을 써 놓고는 그중 가장 나 은것을 고르는 방식을 택한다. 세계문학상 수상작 『내 심장을 쏴라』(은행나무, 2009)의 마지막 장면은 ①승민이 병원에 불을 지른다 ②산사태가 나서 상황이 정리된다 ③글라이더를 이용해 탈출한다. 세 가지 결말을 써 놓고 고민하다가 마지막 것을 택했고, 『7년의 밤』에서 현수가 세령을 차로 치는 장면도 그렇게 썼다. 작가로서 모든 것을 이룬 듯한 정유정의 바람은 무엇일까? "‘정유정, 하면 이야기꾼’으로 불리고 싶어요. 문단의 평가에는 그다지 연연해하지 않습니다. 저는 『화씨 451』(황금가지, 2009)의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가 한 말 ‘나를 통해 세상을 타오르게 하라’를 10년째 책상에 붙여 놓고 있어요. 제 소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불을 지르고 싶습니다. 다만, 상업주의니 영화를 염두에 둔 소설이니 하는 말들에는 마음이 상합니다. 저는 소설이 모든 이야기 예술의 샘이자 대지 같은 장르라고 생각해요. 제가 소설가인 걸 너무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2012년), (pp. 327-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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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17
  • 【북토크】 세월은 빠르게 지나간다
    이 책은 중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모옌의 자전 에세이다. 1955년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난 그가 많은 우여곡절 속에 어떻게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는지를 담담히 보여준다. 아울러 초등학교 동창인 '허즈우'가 어떻게 큰 부자가 되었는지 그리고 '루원리'라는 여학생이 두 번의 사별 후 딸 하나만 바라보고 사는 중년의 여인으로 변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아래에 인용한 글은 책의 마지막 부분으로 딸을 위해 청탁하러 모엔을 찾아온 루원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추석 명절에 작은 조카가 결혼할 여자와 찾아왔다. 조카 나이가 벌써 34살이다. 아기 때 본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이처럼 세월은 무심히 흐르고 그 속에서 우리 모두는 늙어가며 추억만 쌓인다. 몇 시간만에 재미있게 읽었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책은 또 다른 책으로 나를 인도한다. 독서가 취미인 것이 다행이다(인터넷 교보문고를 보니 이 책은 2012년에 나와 절판됐다. 나처럼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어야 할 듯하다.) 모옌 중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프란츠 카프카, 윌리엄 포크너, 찰스 디킨스와 비견되며 환각적 리얼리즘의 정수를 창조한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 2007년에는 중국 문학평론가 10명이 선정한 중국 최고의 작가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본명은 관모예로 글로만 뜻을 표현할 뿐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모옌이라는 필명을 쓴다. 1955년 산둥성 가오미 현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 문화대혁명을 겪으며 학업을 중 단하고 시골 생활을 하다가 1973년, 열여덟 살이 되던 해부터 목화 가공 공장에서 직공으로 일했다. 1976년, 고향을 떠나 중국 인민해방군에 입대해 복무하던 중 문학에 눈을 돌려 해방군 예술 단과대학에 입학해 1986년에 문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베이징 사범대학과 루쉰 문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81년 단편소설 「봄밤에 내리는 소나기」로 등단한 그는, 1984년 발표한 「투명한 홍당무」를 통해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7년 대표적인 장편소설 「홍까오량 가족」을 발표해 반향을 일으켰고, 그 작품의 일부를 장이머우 감독이 영화 <붉은 수수밭>으로 제작해 1988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중국 최고의 문학상으로 손꼽히는 마오둔 문학상과 다자 문학상을 비롯해 프랑스 루얼 파타이아 문학상, 이탈리아 노니노 문학상, 홍콩 아시아문학상, 일본 후쿠오카 아시아 문화대상 등을 수상했으며 프랑스 예술문화훈장을 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201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중국국적 작가로는 첫 수상이라는 영예까지 안았다. 이 책 『모두 변화한다』는 그의 작품세계와 더불어 지난 30년간 중국의 사회 변화를 동시에 엿볼 수 있는 첫 자전에세이다. 주요 작품으로 소설집 『달빛을 베다』,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 장편소설 『열세걸음』, 『개구리』, 『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 『술의 나라』, 『풀 먹는 가족』, 『풍유비둔』, 『맹그로브 숲』, 『탄샹싱』, 『사십일포』, 『인생은 고달파』 등이 있다. "류 선생님은 잘 지내셔?" 그녀는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갔어." 나는 깜짝 놀라 말했다. "어쩌다가. 류 선생님은 이제 예순 살을 겨우 넘었을 텐데." "나는 과부 팔자인가 봐. 내가 기가 세서 사내를 잡아먹는 건지." "무슨 그런 말을" 그녀는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눈동자에 눈물이 어리어리 비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그녀가 말했다. "내 팔자가 사나워서..." 순간 나는 그녀를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해 다만 술잔을 들어 올려 가볍게 그녀의 잔에 부딪칠 뿐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잔 안에 든 술을 몽땅 비우며 말했다. "그런 말은 하지 말자. 내가 당신을 찾아온 건 사실 부탁이 있어서야." 그녀는 품속에서 사진을 한 장 꺼내더니 내게 건넸다. "내 딸이야. 류 환환이지. 마오창 소년반 시험에 등록했고 벌써 2차까지는 시험에 붙어서 60명 안에는 들었어. 학부모들이 저마다 아는 사람을 찾아가 부탁하는 모양인데... 그래서 나도 이 늙은 얼굴이 부끄러운데도 당신을 찾아온 거야." 나는 손으로 사진을 받쳐 들고 찬찬히 살펴보았다. 류 환환, 입이 크고 눈도 큰 것이 류 선생님을 빼닮았다. 그래도 루원리 쪽을 훨씬 더 많이 닮은 듯했다. 그러고 보니 심사위원들로부터 류 환환의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그 자리에서 루 국장에게 문자를 보내 물었더니 그는 이런 회신을 보 내왔다. '모든 조건이 좋은 아이예요. 아마도 두 학생이 끝까지 남을 것 같은데, 그중 한 아이가 그 학생입니다." 나는 루 국장의 문자를 루원리에게 직접 보여주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내가 말했다. "이제 안심해도 되겠지?" 그녀는 목이 메는지 떠듬떠듬 말을 이었다. "고마워.., 고마...." 내가 말했다. "누구한테 뭘 고맙다는 거야? 당신 딸아이의 조건이 원래 좋았던 거야. 재능도 있고 표현도 잘했고. 시험도 아주 잘 봤다던데!" 그녀가 말했다. "요즘 일들 나도 알아. 고마워, 친구." 그녀는 가방 속을 더듬어 편지봉투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 "옛 친구, 내 동창, 고마운 친구야. 이거 만 위안이야. 약소하다고 거절하지 말고 루 국장이랑 다른 분들에게 술이라도 한 잔 대접해줘." 나는 한참을 생각한 끝에 말했다. "알았어, 친구. 내 받아두지." (pp. 160-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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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16
  • 【북토크】 아내 폭력
    어떤 책을 읽다 소개받은 책이 이 책이었다. 책 서문에서 처음으로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라는 시를 보고 마지막 부분에서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아내에게 시를 읽어주니 마지막 부분에 아내가 맞아 죽었다는 결론을 예측했다. 여자였기에 가능한 촉이었던 것 같다. 한국사회의 여성에 대한 차별, 아내에 대한 폭력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도 매맞는 아내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성경은 “아내를 귀히 여기라”고 했다. 목사나 장로 중 아내를 구타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아내를 귀히 여기고 대등한 한 인격으로 존중하자. 나와 함께 30년째 살아주는 “아내님”이 고맙다!(도서관에서 대출해 읽었는데, 인터넷 교보문고를 검색해 보니 2001년에 나온 이 책은 절판됐다)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제 생일이거나 무슨 다른 특별한 날이 아니었어요 우리는 지난밤 처음으로 말다툼을 했지요 그리고 그는 잔인한 말들을 많이 해서 제 가슴을 아주 아프게 했어요 그가 미안해 하는 것도 말한 그대로를 뜻하지 않는다는 것도 전 알아요 왜냐하면 오늘 저에게 꽃을 보냈거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우리의 결혼 기념일이라거나 무슨 다른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요 지난밤 그는 저를 밀어붙이고는 제 목을 조르기 시작했어요 마치 악몽 같았어요 정말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지요 온몸이 아프고 멍 투성이가 되어 아침에 깼어요 그가 틀림없이 미안해 할 거예요 왜냐하면 오늘 저에게 꽃을 보냈거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그런데 어머니날이라거나 무슨 다른 특별한 날이 아니었어요 지난밤 그는 저를 또 두드려 팼지요 그런데 그전의 어떤 때보다 훨씬 더 심했어요 제가 그를 떠나면 저는 어떻게 될까요? 어떻게 아이들을 돌보죠? 돈은 어떻게 하구요? 저는 그가 무서운데 떠나기도 두려워요 그렇지만 그는 틀림없이 미안해 할 거예요 왜냐하면 오늘 저에게 꽃을 보냈거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어요 바로 제 장례식날이었거든요 지난밤 그는 드디어 저를 죽였지요 저를 때려서 죽음에 이르게 했지요 제가 좀더 용기를 갖고 힘을 내서 그를 떠났더라면 저는 아마 오늘 꽃을 받지는 않았을 거예요(pp. 15-16). "아내 폭력"이 가족 유지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 개인의 인권 차원에서 접근되어야 하는 이유는, 가족을 기반으로 하는 성별 제도가 여성이 보편적인 인간으로서 권리를 갖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인권은 정치적 투쟁의 결과라는 과정의 의미로 생각되기보다는 선언적 진실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즉 한국 사회에서 인권은 관념적으로는 긍정적, 진보적 가치로 간주되지만, 여성 인권처럼 사회적 약자의 인권이 한국 사회의 주류 가치인 가족주의와 경합할 때는 사소하고 부차적인 것이 된다(김은실, 2000). 이러한 문화적 상황이 법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 이유이다. 이처럼 성차별 사회에서는 "모든 인간은 폭력당하지 않을 권리를 포함하여 인간으로서 권리를 가진다"는 인권 개념이 모순적인 명제가 되어 버린다. 폭력당하는 아내가 가정에서 어머니, 아내이기 이전에 사회적 개인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이 글의 요지는, 모든 문제는 인권 문제라는 식의 당위적 선언이 아니다. "아내 폭력"이 인권의 문제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 사회의 기본 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불가피하다. 국가주의, 민족주의, 가족주의 등 남성 중심의 공동체적 질서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개인성, 시민성을 획득하는 문제는 곧 가족에 대한 공격으로 해석되어 왔다. "아내 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필연적으로 가족에 대한 국가의 개입과 중재가 요구된다(조주현, 2000). 이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편을 통해서만 사회적 지위와 정체성을 획득해 왔던 여성이 직접 국가/사회와 협상하는 주체, 사회적 시민으로 나서게 됨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 대한 사회적 저항이 너무도 크기 때문에 최근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새로운 담론이 모색 되고 있긴 하지만 이제까지 여성 운동 진영조차 가족/아동 중심의 관점, 가정 폭력의 관점에서 "아내 폭력을 논의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아내 폭력"을 비롯한 모든 가정 폭력 현상은 가족의 성격과 기능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동성애 커플의 가정 폭력과 남편으로부터 구타당하는 여성이든 그렇지 않은 여성이든 많은 어머니들이 자녀를 구타한다는 사실은 여성주의자에게 폭력과 권력, 가족과 친밀성, 성과 성별, 성별 제도와 결합한 다른 사회적 모순과의 관계에 대해 복잡한 질문을 던진다(pp. 235-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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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15
  • 【북토크】 그래도 교회가 잘한 한 가지
    유용주 시인의 글은 몇권을 봤다. 시, 수필, 이번에는 소설이다. 2001년에 나온 이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봤는데 현재는 절판됐다. 나는 한 작가에 꽂히면 그 작가가 쓴 책을 계속 찾아본다. 이 책도 모처럼 그가 쓴 수필을 읽다가 시와 함께 읽게 된 초기의 소설이다. 소위 자전적 소설로 그가 가난한 살림살이로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어떻게 야학을 통해 검정고시를 보게 되었는가를 기술하고 있다. 그는 광화문에 있는 정동교회에서 야학을 했다. 요즘같이 교회가 욕을 먹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에 그래도 교회가 잘한 일중 하나는 야학이었다. 교회는 고립된 게토가 되어서는 안된다. 사회와 소통하며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한다. 그것이 과거에는 야학이었다. 이 시대에는 무엇으로 이 세상과 이웃을 품어야 하는지 목회자의 고민이 필요하다. (pp. 154-157.) 1978년 9월, 드디어 정동 제일교회 배움의 집에 입학을 했다. 은근하게 깊어가는 가을이었다. 노래로만 들었던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다. 덕수궁 돌담길보다 건너편에 있는 미 대사관저 담장이 훨씬 높고 경비도 삼업했지만 가을은 낙엽이 있어 아름다웠다. 배울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많은 친구들을 새로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들떴다. 정동교회는 1885년, 그 유명한 아펜젤러 목사가 설립한 유서 깊은 교회였다. 국가 사적 제256호로 지정된 문화재 예배당은 오랜 역사를 증명하듯 키 큰 버드나무가 전봇대를 압도하고 담쟁이덩굴이 붉은 벽돌을 핥아 먹으며 휘감아 돌아 이끼와 함께 푸르렀다. 하얀 아치형 창문 앞에는 돌계단이 있고 정원에는 향나무와 진달래가 소담스레 가꾸어져 있었다. 배움의 집은 정동교회의 장기 선교계획에 포함된 불우 청소년 선도사업의 일환으로 1976년 9월 2일, 처음 문을 열었다. 직장에서 일하는 불우 청소년을 대상으로 중학교 과정을 일 년간 가르쳐서 고 등학교에 진학케 하는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프로그램의 하나로, 1977년 8월에 제1기 수료생 스물네 명을 배출하였으며, 제3기부터는 학생수가 많아져서(우리 3기는 이백 명이 넘었다) 젠센기념관에서 문화재 예배당으로 옮겨 수업을 했다. 예배당은 넓고 서늘했지만 우리는 희망에 부풀어 반짝거렸다. 입학식은 기도로 시작되었다. "자, 기도합시다." 고개 숙인 자세에서 실눈을 뜨고 길다란 의자에 앉아 있는 옆 사람들을 엿보았다. 동료들도 나처럼 교회 의식에 낯선 표정들이다. 기도라는 말을 듣자 우선 전포동 살 때 전도관이 떠올라 슬그머니 웃음부터 삐져 나왔다. 여기는 신발 훔쳐가는 교회가 아니다, 여기는 우리를 위해 중학교 과정을 무료로 가르쳐 주는 곳이다, 엄숙한 자리다, 진지해져야지, 마음을 다잡았으나 '길 잃은 양떼를 저희에게 보내사....' 대목에 이르러서는 참을 수 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기도를 집전하는 목사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열변을 토했다. 곱게 늙어 점잖은 장로님과 권사님과 집사님들은 '아멘'을 연발했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 선생님 한 분이 가만히 다가와 입술에 손가락을 댔다. 기억이란 얄궂은 놈인가 보다. 하필 이런 자리에서 부산 전도관과 누나 친구들이 생각날 게 뭐람. 웃음을 참느라 애를 썼더니 눈물이 나왔다. 첫날부터 실수를 하다니,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랐다. 죄인 아닌 죄인이 된 우리들은 긴 시간을 참회하고 반성하고 뉘우쳤다. 공장에서 십자가 목걸이를 수없이 만들었지만 한번도 기도하거나 참회하거나 반성하지 않았다. 그저 만들기도 쉽고 광내기도 쉬워 편하게 생각했다. 첫날부터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이놈의 주둥아리는 주인을 잘못 만난 것이다. 기분 좋아서 크게 웃어야 할 때 오히려 울음이 나오고, 정작 슬퍼 울어야 할 때 웃음이 나 오질 않나, 말을 꼭 해야 할 때 바위덩어리로 돌아앉고, 말을 하지 말아야 할 때 거짓말이 술술 나와 곤욕을 치렀던 기억이 얼마나 많은가. 녹여서 다시 만들든지 보링을 하든지 갈아치워야 제 명대로 살 것 같다. 주기도문 낭독을 마지막으로 입학식은 끝이 났다. 어색하게 앉아 있는 우리에게 따뜻한 손들이 다가와 격려의 악수를 하고 자리를 떴다. 이제 선생님들과 학생들만 남았다. "아까 목사님 기도하실 때 웃었던 사람 일어나요." "......" 화사하게 화장을 한 여선생님이 싸늘하게 좌우를 훑었다. 뜨끔했다. 물개똥을 싼 강아지처럼 엉거주춤 일어났다. "앞으로 나오세요." 여전히 군복 바지에다 재홍이 형이 산에 갈 때 신었던 등산화 차림이었다. 쭈뼛쭈뼛 앞으로 나갔다. 마룻바닥에서 울리는 발자국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사백여 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내 쪽으로 쏠렸다. 여기저기서 튀밥 튀듯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선 제 소개부터 할까요? 저는 앞으로 여러분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가장 많이 할 사람인데요, 배움의 집 실무간사를 맡고 있는 정수진이라고 합니다." 숱 많은 퍼머넌트에다 늘씬한 키다. 여선생님 중에서는 제일 키가 컸다. 정수진 선생님은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한 재원이었지만 첫 인상은 차고 쌀쌀하고 매웠다. "여러분, 어때요? 이 학생을 3기 회장으로 뽑고 싶은데, 다른 의견이 없는 사람은 박수를 쳐주세요." "좋아할 필요 없어요. 회장은 여러분을 위해 저와 함께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해야 돼요. 그러니까 여러분의 일꾼이에요. 체격이 좋아서 많이 부려먹어도 괜찮을 것 같죠?" 한바탕 웃음바다가 넓은 예배당 안을 넘실거렸다. 각 과목별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부회장을 뽑고 반을 편성했다. 반 편성은 성적순도 아니고 키순서도 아니고 주로 사는 동네와 버스정류장을 같이 이용하는 사람들끼리 묶었다. 시장 좌판에 무질서하게 놓여 있는 열무 단이나 배추 단, 쪽파 단 속에는 오이나 가지나 풋고추나 씨감자도 너댓 개씩 들어 있어, 늦은 시각에 집으로 돌아갈 때 여학생들 안전까지도 책임을 지라는 엄명이 내려졌다. 힘든 일과 영양 부족으로, 자라기도 전에 타들어가 비쩍 마른 마늘쪽들은 얼떨결에 맡은 반장이라는 감투에 싯누렇게 웃었다. 우리만큼이나 진지한 자세로 앉아 있는 선생님들은 서울 시내 중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현직 교사들이었고 상업이나 음악과 미술은 대학생으로 충당했다. 봉사정신과 희생정신으로 무장한 이분들은 낮 시간 동안 파김치가 되도록 근무하고 밤늦게까지 우리들을 위해 온 정열을 다 쏟았으니 나도 뜻밖에 얻어 쓴 감투를 물리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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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28
  • 【북토크】 뒤통수는 아는 사람이 친다
    가까운 사람이 뒤통수를 치는 경우가 많다. 로마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친구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를 포함한 무리에게 암살당하면서 브루투스를 보고 "브루투스, 너마저?"(라틴어: Et tu, Brute?)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예수님도 12제자 중 하나인 가룟 유다에게 배신을 당했다. 그러므로 가까운 사람을 때로 경계해야 한다. 가깝기 때문에 오히려 더 배신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람이 뒤통수를 치고, 배신을 하면 더 아프다. 그런 사람은 더 이상 상종하면 안 된다. 언젠가 또 기회가 되면 그런 짓을 반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 백석도 친구에게서 그런 일을 당했다. 사람을 너무 믿지 말자. 특히 가까이 있는 사람은 더더욱 굳게 믿지 말자. 서글프지만 그것이 인간사인가보다! 백석의 슬픔과 사랑 1936년 4월, 백석은 경성 생활을 정리하고 함흥으로 건너갔다. 이듬해인 1937년 4월 7일, 짝사랑한 박경련은 하필이면 통영으로 함께 여행을 떠났던 친구 신현중과 결혼을 하게 되고, 백석은 충격에 휩싸인다. 신현중은 파혼남이었다. 신현중이 다른 여자와 약혼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파혼까지 하며 결혼한 상대가 하필이면 백석이 오매불망, 짝사랑한 박경련이었던 것이다. 마음에 두고 있던 여인과 결혼한 상대가 친구였으니 이 소식은 그에게 청천벽력이었다. 그렇건만 나는 하이얀 자리 위에서 마른 팔뚝의 새파란 핏대를 바라보며 나는 가난한 아버지를 가진 것과 내가 오래 그려 오던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그렇게도 살뜰하던 동무가 나를 버린 일을 생각한다. 또 내가 아는 그 몸이 성하고 돈도 있는 사람들이 즐거이 술을 먹으러 다닐 것과 내 손에는 신간서 하나도 없는 것과 그리고 그 '아서라 세상사'라도 들을 유성기도 없는 것을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중에서 ‘가진 것과 내가 오래 그려 오던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 그렇게도 살뜰하던 동무가 나를 버린 일을 생각한다’라는 시구를 통해 백석의 상심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이 시는 1938년 〈여성> 4월호에 발표된 시인데 시인은 밖이 아닌 하이얀 이불 위에서 ‘마른 팔뚝의 / 새파란 핏대를 바라보며 나는 가난한 아버지를 / 가진 것’을 생각하며 울분을 삭히고 있는 중이다. 백석의 생각에는 박경련 모친이 백석과의 결혼을 반대하고 신중현에게 시집을 보낸 것이 다 자신의 가난 때문인 듯하고, 갑자기 마른 팔뚝뿐 아니라 자신의 인생이 온기 없는 마른 인생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누구보다 책 읽기를 좋아했던 백석이 신간서 하나도 없는 시절을 견뎌야 하고, 편시춘의 서두에서 노래하는 ‘아서라 세상사’로 시작하는 판소리 단가조차 들을 수 없는 가난이 새삼 슬퍼진다. 너무나 가난했던 백석에게 짝사랑하는 여인이 떠나가는 것은 어쩌면 예정된 슬픔인지도 모른다. 박경련의 모친 입장에서는 백석에게 시집을 보내는 것보다 신현중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경남 하동 출신 신현중은 경성제대를 입학한 수제였는데 시국관련 저항운동에 가담한 죄로 3년형을 살다가 조선일보사 사회부 기자로 지냈지만, 결혼 후 통영에 정착하며 다양한 활동을 재개하였다. (pp.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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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23
  • 【북토크】 영화 『밀양』...값싼 은혜의 부작용
    『밀양』의 이창동 감독은 내가 신일고등학교 다니던 1982년도에 국어 선생님이셨다. 직접 배우지는 않고 다른 국어 담당 변인식 선생님께 배웠다. 이분은 유명한 영화평론가로 가끔 영화 얘기를 해주셨던 것 같은데 기억은 없다. 신일고등학교는 한국유리 재단 소속으로 지금은 서울사이버대학교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그 당시 넓은 교정은 대학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결국 대학을 설립하지는 못하고 대신 사이버대학을 운영하는 것 같다. 신일고는 미션 스쿨이라 이창동 선생님도 신자일 가능성이 높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신자로서 기독교의 값싼 은혜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자 이 영화를 만들었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한다. 갓 신앙을 갖게 된 여주인공이 자기 아들을 유괴해 죽인 범죄자를 기독교의 용서를 실천하기 위해 찾아 갔는데 그 ‘물건’은 감옥 안에서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며 자기 죄는 이미 다 용서 받았다는 ‘막말’을 한다. 이에 여주인공은 “내가 너를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용서 받을 수 있냐?”고 실성한다. 누가 그 살인자에게 기독교를 그렇게 전했는지 모르지만 잘못 가르쳐 준 것이다. 살인자는 피해자에게도 용서를 구해야지 하나님께 회개했으니 용서 받았다고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기독교의 용서가 얼마나 천박해지고 값싸질 수 있는지, 그리고 범죄자의 이런 반응을 볼 때 피해자가 얼마나 분노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밀양은 값싼 은혜에 만족하는 한국교회와 신자를 가시같이 찌르는 영화다. 이 영화를 다른 시각으로 본 책이 있어 소개해본다. 같은 영화지만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영화의 한 특징이다. 고통을 견디게 하는 것은(pp. 113-118) 밀양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일은 무엇일까? 나는 억울한 일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억울한 일에는 원인이 너무 많아서 원인이 없다. 고통에는 위계도 수량도 총량도 없다. 회복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다면 원인을 찾을 것이 아니라 남은 시간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해야 한다. 죽지 않는다면 말이다. 물론 둘 다 어려운 일이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의 원작은 이청준의 단편소설 〈벌레 이야기〉(1985년)이다. 이창동 감독은 1988년에 이 소설을 "광주 항쟁에 관한 이야기로 읽고" 반드시 영화화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소설과 영화의 내용은 다소 다르다. 소설에서, 아이를 살해한 남성은 피해자 가족에게 “제 영혼은 이미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거두어주실 것을 약속해주셨습니다..... 저는 새 영혼의 생명을 얻어 가지만, 아이의 가족들은 아직도 무서운 슬픔과 고통 속에 있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이나 저세상으로 가서나 그분들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라고 간증하고, 이 말을 들은 아이 엄마는 자살한다. 작품은 우리가 피해자의 입장에서 피해와 가해를 이야기 할 때의 주제들-더는 인간의 선을 믿지 않으며, 고통을 견디게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분노, 저주, 복수심이라는 현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용서마저도 가해자의 권리인 현실-을 생각하게 한다. 나는 이 영화를 세 번 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두 번 반이다. 처음 볼 때는 유괴 살인범(조영진 분)과 아이의 엄마(전도연 분)의 교도소 면회 장면을 감당하지 못하고 도중에 나왔다. 나의 어떤 경험과 겹치면서 더 볼 수 없었다. 극장 화장실에서 구역질을 했다. 나는 그녀와 동일시했지만, 내 몸은 그녀를 담을 수 없었고 당연히 몸이 비틀리고 다리가 풀리고 휘청거렸다. 다행히 다음 두 번은 온전히(?) 다 보았다. 나는 이 영화의 두 장면을 가슴에 담고 산다. 하나는 여자 주인공이 경찰서에서 가해자와 마주쳤을 때의 태도이다. 가해자 앞에서 겁먹고 주눅 들었던 그녀는 나중에 자신의 행동에 분노한다. "내가 왜 그 사람 앞에서 당당하지 못했을까!" 이 장면은 그녀가 '부동산이 좀 있다고 자랑'한 것이 유괴의 원인이었다고 자책할 것이라는, 관객의 예상을 뒤엎는다. 감독은 범인과 마주쳤을 때 피해자의 반응을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재현한다. 엄마의 이전 행동이 어떠했든 간에, 그것은 아이의 죽음과 아무 상관이 없다. 피해자는 죄가 없다는 이 간단한 윤리, 아니 상식이 우리 사회에는 없다.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에게 흔히 사회가 보이는 반응은 "당신은 그때 어떻게 했습니까?(평소 네가 어떻게 행동했길래, 그런 일에 휘말리다니, 그 사람이랑 어떤 관계인데...)"이다. 자녀가 유괴되어 살해당한 어머니의 고통과 대비되는 가해자의 마음의 평화. 이 이야기에서 이창동 감독이 '80년 광주'를 연상한 것은 이 작품이 한국 사회에 만연한 부정의, 즉 피해자 비난, 낙인, 고립을 상징적으로 그렸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이보다 더 억울한 일은 없다. 더구나 가해자는 피해자가 그토록 원했던 '하느님의 구원'을 받은 데다, 피해자를 걱정하고 가르치려 한다. 반민특위의 실패부터 ‘나쁜 사람들’, ‘기회주의자’만이 살아남았던 것이 한국 현대사이고 우리의 일상이었다. ‘악한 자의 승리, 악한 구조의 승리’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제주 4·3 사건은 말할 것도 없고 세월호, 최근 포항 지역의 지진에 이르기까지 피해자는 몸을 숨기고 사죄했다. ("저희들 때문에 수능이 연기되어 죄송해요.") 억울한 일로 평생을 불면의 밤과 싸우고 절망과 분노로 자신을 '망가뜨리는' 이들을 종종 본다. 이들은 가해자가 처벌 받지 않음을 알고 있다. "이 생에서는 해결 방법이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 문제는 두 장면 중 나머지 한 장면으로 연결된다. ‘신앙의 힘으로 잠시 구조된 듯한’ 여주인공이 교인들과 다과를 나누면서 의기양양하게 소회를 밝힌다. "하느님이 제게 구원을 주셨으니, 저도 그분께 뭔가를 드려야겠어요." 가해자를 용서하겠다는 의미다. 나는 이 장면에서 '피해자'라는 주제(主題)를 깨달았다. 맙소사. 그녀는 자신이 ‘하느님’과 동급인 줄 알고 있었다.(여기서 하느님은 절대성, 운명. 인생이라는 짧은 시간... 을 뜻한다.) 그녀는 '하느님'과 대적하려고 한다. 일 대일로 주고받는 관계. 그러니 자기도 하느님께 은혜를 갚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무슨 일이 되겠는가. 더 큰 고통만이 그녀를 기다릴 뿐이다. 나는 이 장면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하느님(우주)’은 모든 것을 관장하는 원리지, ‘나(우주의 먼지)’와 무엇인가를 교환하는 상대가 아니다. 아니,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감히’ 갚겠다는 것인가. 이런 황당하고, 망상적이고, 확대된 자아는 도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이후에도 그녀는 물건을 훔치고, 유부남을 '유혹'하고, 집회 마이크를 끄는 등 계속 하느님과 협상하고, 대결하기를 반복한다. 나는 피해자가 진짜 미쳤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잃고 피해자가 되었을 때, 너무나 억울할 때, 고통이 숨통을 죄고 있을 때, 죽음만이 육체의 구원일 때····고통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 일상인데도 고통은 줄지 않는다. 이자에 이자가 붙어 고통은 쌓여만 간다. 이때 유일한 출구는, "나는 순수한 피해자"라는 정체성이다. 피해자는 도덕적으로 우월하다. 그런데 이 우월함의 근거는 피해자가 생각하는 정의(justice)가 전부다. 피해=정의도 아닐뿐더러 누가 그것을 공감해주겠는가. 문제는 이것이다. ‘선’의 힘으로 ‘악’을 이기려 할 때, 인간은 부서지고 무너진다. 도덕적 우월감은 타락의 지름길이다. 더구나 우리에겐 이 영화처럼 ‘송강호’도 없으며, 마지막 미용실 장면에서 만난 가해자 소녀와도 함께 살아가야 한다. 나는 잠들기 전에 언제나 조용히 되뇐다. 잠들기 위해서. 구원, 해결, 복수... 세상에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저는 이것을 받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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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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