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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토크456】 책 읽고 책 쓰며 사는 여생
    김정운 교수의 책은 재미있다. 교수직을 사임하고 여수에 서재를 마련하고 남은 생애 독서와 저술의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은 현명해 보인다. 예스24-2012년,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돌연 자신이 ‘지난 50년’ 동안 떠밀려 살아왔음을 깨닫고 ‘앞으로의 50년’ 동안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겠다!’고 결심한다. 그러고는 교수라는 안정적 직위를 박차고 그림 공부를 하러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그가 ‘나름 화가’로 다시 돌아와 머무르기로 선택한 곳은 서울이 아니라 여수다. 왜 여수여야 했을까?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는 김정운이 여수에서 바다를 마주한 채 쓰고 그린 에세이를 모은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는 자기만의 공간 ‘슈필라움’에 대해 언급한다. 독일어에만 있는 단어인 슈필라움(Spielraum)은 ‘놀이(Spiel)’와 ‘공간(Raum)’의 합성어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주체적 공간’을 뜻하는데 ‘물리적 공간’은 물론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하는 말이다. 자기만의 슈필라움이 있어야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자존감과 매력을 만들고 품격을 지키며 제한된 삶을 창조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우리가 밀집 장소에서도 본능적으로 자신을 위한 최소한의 공간을 확보하려 하고, ‘내 공간’을 어떻게든 마련하여 정성껏 가꾸며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이유이다. 이는 현대인이 나만의 ‘케렌시아’를 추구하는 트렌드를 해석하는 중요한 키워드이기도 하다. 김정운은 여수에서 자신이 꿈꾸던 바닷가 작업실 ‘미역창고(美力創考)’를 찾기까지의 여정을 들려준다. 그리고 24개의 키워드(‘시선’과 ‘마음’, ‘물때’와 ‘의식의 흐름’, ‘미역창고’와 ‘바닷가 우체국’, ‘불안’과 ‘탈맥락화’, ‘열등감’과 ‘욱하기’, ‘삶은 달걀’과 ‘귀한 것’, ‘기억’과 ‘나쁜 이야기’, ‘감정 혁명’과 ‘리스펙트’, ‘민족’과 ‘멜랑콜리’, ‘아저씨’와 ‘자기만의 방’, ‘저녁노을’과 ‘올려다보기’, ‘관대함’과 ‘첼로’)를 통해 그 슈필라움이 현대인에게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그리하여 우리는 어떤 삶을 새롭게 꿈꿀 수 있는지에 대해 통찰한다. 타인에 대한 ‘믿음’은 타인의 '다른 생각'에 대한 '이해'를 전제한다. 이건 정말 중요한 이야기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한다’고 믿는 것은 신뢰가 아니다. 강요다. ‘엄마는 믿는다’ 또는 '아빠는 믿는다'고 이야기할 때 ‘자녀의 다른 생각’에 대한 이해를 전제하고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 부모• 자식 관계만이 아니다. 타인은 언제나 '나와 다른 생각을 한다'를 되뇌어야 배신당하지 않는다. 타인의 ‘다른 생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이들은 항상 자기 생각만을 강요한다. 그리고 나중에 꼭 그런다. "정말 믿었던 이가 등에 칼을 꽂았다"고. 그러나 '등에 칼을 꽂는다'는 표현도 함부로 쓰는 거 아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독일군 사령관이었던 에리히 루덴도르프는 "전쟁에서 병사들은 결코 패배하지 않았는데 배후의 사회민주주의자, 유대인이 병사들 등에 칼을 꽂았다"고 불평했다. 아돌프 히틀러는 이 ‘등에 칼 꽂기’를 유대인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하기 위해 적극 퍼뜨렸다. '등에 칼 꽂기'는 의도가 악하기 그지없는 참으로 고약한 표현이다(p. 28). '정말 후회하지 않겠느냐'는 걱정에 대해서는 심리학적으로 더욱 간단히 정리했다. 후회는 '한 일에 대한 후회'와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로 구분해야 한다고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 심리학과의 날 로스 교수는 주장한다. '한 일에 대한 후회'는 오래가지 않는다. 이미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그 결과가 잘못되었더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얼마든지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쉽게(p. 60) 정당화되지 않는다. '한 일에 대한 후회'는 내가 한 행동, 그 단 한가지 변인만 생각하면 되지만,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그 일을 했다면' 일어날 수 있는 변인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심리적 에너지가 너무 많이 소비된다. 죽을 때까지 후회한다는 이야기다.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기억이 그토록 오래가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p. 61). 들판에 생뚱맞은 아파트가 보이기 시작하는 천안을 지나면서 내 심리적 상황은 급변한다. 갑자기 온갖 걱정거리가 떠오르며 공연히 불안해진다. 매번 그런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리 크게 불안할 이유는 없다. 우리의 걱정거리 가운데 정말 진지하게 걱정해야 할 일은 고작 4퍼센트에 불과하다고 한다.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이나 이미 일어난 일, 또는 아주 사소하거나 전혀 손쓸 수 없는 일이 96퍼센트라는 이야기다. 일 년에 삼백 일 이상을 '푸른 하늘'과 '파란 바다'를 볼 수 있는 여수 바닷가의 내 화실에 있을 때는 전혀 생각나지 않던 96퍼센트의 걱정거리가 희한하게도 천안 근처에만 오면 한꺼번에 밀려오며 불안해지는 거다. '공연한 불안'에 대처하는 내 나름의 해결책은 걱정거리의 내용을 노트에 구체적으로 적는 일이다. 제목을 붙여 적다 보면 걱정거리는 '개념화' 된다. 내 걱정거리의 대부분은 아무 '쓸데없는 것'임을(p. 79) 바로 깨닫게 된다. 아주 기초적인 셀프 '인지 치료'다. 간단한 덧셈과 뺄셈은 암산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복잡한 계산은 노트에 수식을 적어가며 풀어야 한다. 마찬가지다. 다양한 경로로 축적된 '공연한 불안' 역시 '개념화'라는 인지적 수식 계산을 통해 처리해야 한다. 생각이 복잡할 때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이유는 바로 이 '개념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p. 82). 우리 인생이 자주 꼬이는 이유는 '질투'와 '열등감' 때문이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이다. 질투가 외부를 향한다면 열등감은 내부를 향해 있다. 열등감을 인간 행동의 중요한 설명 기제로 끌어들인 사람은 알프레트 아들러다. 성적 욕망의 좌절과 억압으로 일관하여 설명하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반기를 들며 내세운 개념이다. 프로이트의 '콤플렉스'와 아들러의 '열등감'은 지난 백 년간 대립해왔다. 우리나라에서 수백만 부가 팔린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는 바로 아들러의 이론을 대중적으로 해설한 책이다. 좋은 책이긴 하지만 그렇게 팔릴 정도로 엄청난 책은 아니다. 내가 직접 감수하고 추천한 책이라 하는 이야기다. 느닷없는 '아들러 열풍'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그만큼 열등감으로 힘들어한다(p. 94)는 사실을 의미한다. 열등감을 생략하고 오늘날 한국인의 집단 심리를 이해하기는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p. 95). 오늘날 사방에서 '욱'하는 이유는 '성취'와 '경쟁'의 규칙들로만 지내온 세월 때문이다. 세계 10위권의 부유한 나라가 되었지만 의사 소통의 가장 기본 규칙인 '순서 주고받기'는 여전히 무시하며 살고 있다. 자신의 '순서'를 빼앗긴 상대방은 분노할 수밖에 없다. '분노'는 또 다른 '분노'를 낳는다. 그동안 까맣게 잊고 지내온 '순서 주고받기'라는 의사소통의 근본 규칙을 회복하지 않으면 이 분노의 악순환으로부터 결코 헤어날 수 없다. 조금만 차분하게 기다릴 줄 알면 그렇게까지 '욱'할 일은 별로 없다(p. 106). 오늘날 스타가 되려면 팬들의 폭력적 '가학 놀이'의 희생양이 될(p. 156) 각오를 해야 한다. 연예인들의 느닷없는 '고통 내러티브'는 바로 이런 대중의 '감정 폭력'에 대한 '항복 선언'이다. '나도 정말 힘들게 먹고살고 있으니 제발 괴롭히지 말아달라'는 호소다. 해당 연예인들의 '공황장애'가 '꾀병'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왜 느닷없이 '공황장애'를 내놓고 고백하는가에 대한 설명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신장애'는 모두가 숨기려고 했던 치명적 약점이었다(p. 157). 프로이트의 '콤플렉스'와 더불어 현대인의 삶을 가장 잘 설명하는 개념이 있다면 마르크스의 '소외'다. 자신이 만든 생산물과는 아무 관계 없이, 그저 노동의 대가로 받는 임금으로 살아야 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 심리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 노동의 결과가 전혀 확인되지 않는 삶을 마르크스는 '소외된 삶'이라 했다. 정신이 자연에 변화를 가져와 자아실현이 가능해진다는 헤겔의 낭만적 '외화' 개념을 자본주의라는 역사적 맥락에 맞춰 비판한 것이다. 마르크스의 개념들은 대부분 공허한 것이 되어버렸지만, 심리학적으로 그의 '소외론'은 여전히 통찰력 있고 의미 있다. 사무직에서 일했던 사람일수록 손으로 직접 하는 일을 배우는 것(p. 198)이 좋다. 두 번째 인생에는 노동의 결과를 눈으로 직접 판단하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구체적인 일을 해야 심리적으로 소외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교수, 기자, 선생과 같이 말과 글로 먹고 산 사람일수록 손으로 직접 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말년의 성품이 무난해지며 '꼰대'를 면할 수 있다. 아니면 컴컴한 방에서 혼자 인터넷에 악플이나 달며 삼십여 년을 더 살아야 한다. 달리 할 일이 있는가? 그래서 아직 체력 좋은 범재에게는 '용접 일'이 만장 일치로 추천되었다. (진지하게 나눈 이야기다. 우리 모두 대학 사년 그렇 게 대충 다니고 삼십 년 가까이 잘 먹고 잘살았으면 감사해야 한다. 앞으로 삼 십여 년을 더 살려면 뭔가를 처음부터 새롭게 배우는 게 당연하다.) 하나 더. 연구의 '객관적 평가'가 불가능한 인문사회 분야의 교수는 딱 두 종류다. '이상한 교수'와 '아주 이상한 교수', 끝까지 우겨 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교수가 은퇴 후를 걱정하며 정치권이나 기웃거리면 진짜 이상해진다!(p. 199). 한번 비관적 생각에 빠지면 모든 것을 꼬아 생각하는 내 오래된 습관이 되살아났다. 인생 사는 데 비관주의가 아무 도움 안 된다는 것은 수년 전 교수를 그만둘 때 이미 알았다. 사태의 비관적 전망을 예고하는 것은 '지식인'의 의무다. 이런 비관주의는 '지적 우월함'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나름 지식인'을 아침에 만나면 하루 종일 뭔가 불편한 거다. 스스로의 삶에 대한 비관주의적 태도는 아주 치(p. 235)명적이다. '행복한 지식인'은 형용모순이다. 비관주의보다 아무 대책 없는 낙관주의가 더 심각하다. 이른바 '비현실적 낙관주의'다. 자신의 미래에 관해 아무런 합리적 근거 없이 낙관적 태도를 취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면 다른 흡연자의 폐암 확률은 실제보다 훨씬 높게 생각하고, 자신이 폐암에 걸릴 확률은 현저하게 낮춰 생각하는 흡연자의 경우다. 한•중•일 세 나라를 비교하면 한국인의 '비현실적 낙관주의'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과도한 자기애에 빠져 있는 비현실적 낙관주의자의 두드러진 특징은 실패나 좌절을 겪게 되면 아주 쉽게 분노한다는 거다. 자기 탓이 아니기 때문이다. 죄다 남 탓이다. 반만 차 있는 물컵을 보고 '아직도 물이 반이나 남았네' 하는 것도 진정한 낙관주의가 아니다. 심리적 마스터베이션인 '정신 승리'에 불과할 뿐이다. 반만 남은 물을 작은 컵에 옮겨 담아 꽉 채워야 진짜 낙관적인 거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 바꾸고 변화해야 진정한 낙관주의자다(p. 238). 빈 책장을 채우며 늙어가기로 했습니다! 아, 이건 최근 내가 한 생각 중에 가장 훌륭한 생각입니다. 주제별로 꽂혀 있는 내 책장의 책들을 보면 가슴이 뜁니다. 빨리 그 책들을 읽고 소화해 새로운 주제의 책을 쓰고 싶어서 그럽니다. 책을 사서 책장에 꽂는 일을 내가 가장 행복해한다는 사실을 '미역창고'의 책장 공사를 하며 깨달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좋은 책을 사기 위해 그동안 영어, 일본어, 독일어를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던 겁니다. 외국 여행 가면 책방만 돌아다닙니다. 책을 사지 않는 여행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언어가 낯선 프랑스, 이탈리아 같은 나라를 여행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습(p. 269)니다. 이 나라에는 영어로 된 책이 거의 없습니다. 게다가 친절하지도 않습니다. 아무튼 조상 덕에 먹고사는 나라들은 앞으로 많이 고생 좀 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나는 책을 사려고 여행을 합니다. 좋은 책, 새로운 주제의 책을 사서 한국으로 보내고 나서야 돈을 제대로 쓴 것 같아 마음이 편해집니다. 그중 정말 '좋은 책' 한 권은 남겨서 여행 내내 읽고 다닙니다. 여행 중에는 신기할 정도로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많이 생깁니다. 좋은 책 한 권은 그런 아이디어가 샘솟게 하는 '마약'같은 겁니다. 내가 이렇게 여수 남쪽 섬에 내려와서도 그리 큰 문제 없이 버티고 살 수 있는 이유는 영어, 독일어, 일본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식의 편집', 즉 '에디톨로지'를 가능케 하는 데이터 축적에 아주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하라면 결코 하기 싫은' 젊은 날의 그 경험들이 지금 이렇게 나를 먹여 살리고 있습니다(p. 272). 내 책장을 가득 채운 책들을 보면, 열이면 아홉이 꼭 물어봅니다. "이 책들을 다 읽으셨어요?" 아, 말문이 콱 막히는 질문입니다. 그런 질문은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하는 겁니다. 단언컨대, 책은 다 읽고 책장에 꽂아두는 게 아닙니다. 앞으로 읽으려고 책장에 꽂는 겁니다! 책장에 책이 그렇게 많은 이유는 내가 알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는 뜻입니다. 책장에 꽂힌 책들을 볼 때마다 삶의 의욕이 팽창되는 것을 느낍니다. 음탕한 영화를 볼 때 몸이 뻑뻑해지는 그 느낌과 거의 같은 수준입니다. 아직 다 읽지는 않았지만 어떤 책이 책장 어느 위치에 있는가는 '정확히' 입니다. 그리고 그 책이 어떤 내용인지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 책 주위에 어떤 책이 있는지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책장은 원고를 쓰다가 어떤 책이 필요해지면 바로 찾아내 읽을 수 있게 잘 정리되어 있어야 합니다. 수시로 책장의 책들이 '헤쳐 모여'를 반복합니다. 내 관점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책장의 책을 다시 정리하는 행위 자체가 내겐 '지식의 편집' 과정입니다. 이전에 전혀 관련 없던 책들이 새롭게 연관되어 붙어 있게 된다는 것은(p. 273) 두 책이 담고 있는 지식을 연결시켜주는 내 '메타 언어'가 새롭게 생겨났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p. 274). 책은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 게 아닙니다! (물론 소설과 같은 문학작품은 예외입니다.) 세상에 바보 같은 경우가 '책은 끝까지 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책을 읽는 겁니다. 그러니 책을 안 읽는 겁니다. 책에는 필요한 부분만 찾아 읽으라고 목차가 있고 색인이 있는 겁니다. 책을 살 때 먼저 목차나 색인의 키워드를 살펴보라고 그렇게 자세하게 정리되어 있는 겁니다. 자기 관심이 명확해야 목차나 색인을 찾아보게 됩니다. 그렇게 책을 읽어야 '좋은 이웃의 법칙'에 따라 책을 잘 정리하게 됩니다. 원하는 내용을 찾아(p. 276) 읽다가 정말 재미있으면 읽지 말라고 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게 됩니다. 책을 끝까지 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로워야 책을 많이 읽습니다. 책도 많이 사게 됩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책을 펴놓고 읽어도 됩니다. 좋은 책은 '새끼를 많이 치는 책'입니다. 읽다 보면 더 읽고 싶은 책들이 고구마 뿌리처럼 딸려 나오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야 책장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집니다(p. 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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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10-13
  • 【북토크455】 프로파일러는 어떤 사람인가?
    범죄자를 상대하는 직업은 행복할까? 참으로 사람이 사는 모습이 다양하다. 범죄자를 만나 사건을 풀어가는 프로파일러의 삶에 대해 엿보는 기회가 됐다. 예스24-현직 프로파일러인 저자가 프로파일러가 어떤 직업이고, 무슨 일을 하는지를 소개하며 범죄자를 대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어려움, 그럼에도 끝끝내 포기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진솔하게 풀어낸다. 저자는 가정의 해체와 외로움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삼거나 범행 동기가 불분명한 최근 범죄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보고, 흉악 범죄와 사회에 대한 자신의 의견도 내놓는다. 억울한 피해자가 없도록 단 한 건의 미제 사건도 남기지 않기 위해 저자는 오늘도 끊임없이 공부하며 사건 현장을 누비고 있다. 시체를 발견하기만 하면 모든 상황이 끝나리라고 생각한 그녀는, 자신이 예상한 것과는 상황이 뭔가 다르게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한 듯했다. 이제 다 끝난 거냐고, 자신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진짜 아무것도 몰랐다고 몇 번이나 반복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수사팀에서는 다음 날 아침 10시까지 경찰서에 나와달라고 요청했다. 그녀는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것 같았지만 알겠다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나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녀가 경찰서에 오지 않았고 집에선 인기척이 없다는... 약속한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아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집으로 찾아갔을 땐 이미 그녀가 극단적 선택을 하고 난 다음이었다(p. 33). 하지도 않은 일을 만들어서 벌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렇지만 죄를 짓고도 본인만 빠져나가려는 사람을 눈앞에서 그냥 놓아둘 수는 없다. 그 오빠라는 사람은 피의자와 동거하기 전 쉼터에 있던 다른 미혼모와 이미 동거한 사실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 수사에서 빠져나가면 또 다른 대상을 물색해서 수급비에 의존하며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기생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특성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런 사람들은 특별한 죄의식도 없이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먹잇감을 잘도 발견해낸다. 그러니 예방을 위해서라도 잘못을 밝혀야 했다(p. 59). 큰 도움이 된 상담 공부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예전에 비하면 최근엔 살인사건이 그리 빈번하게 발생하지 않고(강력범죄 중 살인사건 발생 건수는 10년 전만 해도 연간 70~80건이었으나 최근 1~2년은 40여 건에 그쳤다), 과학수사요원들의 근무 시스템도 바뀌어서 새벽에 불려 나갈 일이 많지 않다. 하지만 당시엔 살인사건만 나면 늦은 밤이나 새벽 시간에 상관없이 출동해야 했고, 목욕탕에 갈 때도 카운터에 휴대폰을 맡기고서 전화가 오면 불러달라고 신신당부하기도 했다. 선배들과 함께 현장에 가야 했기 때문에 늦으면 엄청 눈치가 보였다. 결국 발령받고 나서 1년 만에 지방청과 가까운 집으로 서둘러 이사하기도 했다. 선배들보다 빨리 출동하기 위해서였다. 현장에 도착하면 현장 내외부를 살피는 것은 물론, 시체를 자세(p. 90)히 들여다보고 어느 쪽에서 어떻게 공격당했는지 상태를 면밀히 관찰해야 하는 일도 쉽지는 않았다. 사건이 발생한 직후 발견된 현장은 그래도 나은 편이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 시체가 부패하기 시작했거나 훨씬 시간이 지나고 나서 신고돼고도 부패가 일어나면 상황은 더 어려워졌다. 이러다 보니 친정 부모님이나 가족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계속 근무할 수 있겠느냐, 너무 힘들지 않겠느냐며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그렇지만 상담 공부를 할 때 상담실에서 접하는 문제와 나를 떼어놓는 연습을 해서인지 현장을 둘러보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건 사진을 들여다보고 하는 일들이 힘들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밤마다 꿈에 나타나거나 하지 않고 그냥 업무로 분리되는 느낌이었다. 가끔 감정이 너무 메말랐나 싶을 정도였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게 되는데 다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니 어떻게든 그 억울함을 해결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더 커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p. 91). 묻지마 범죄는 단순 상해나 방화, 살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검거 후 범죄자들이 피해자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거나 원한 같은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피해자로서는 트라우마를 평생 가져갈 수도 있는 심각한 범죄다. 지하철이나 버스, 공공 장소 등에 폭발물을 설치하거나 커터칼을 들고 다니며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의 다리를 긋는 경우도 있고,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만 골라서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그리고는 조용히 자신이 사는 곳으로 돌아가거나 다니던 직장에 복귀해서 근무하기를 반복하다가 검거된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길거리에 있는 쓰레기더미에 불을 놓기도 하는데, 운이 좋아 초기에 검거되지 않으면 점점 대담해져서 재활용 쓰레기가 수북하게 쌓인 곳에 불을 붙여보는 등 더 큰불로 번질 가능성이 있는 곳에 불을 지른다. 그러고 나서 본인도 겁을 먹고 직접 119에 신고하거나 불을 끄는 장면을 감상하며 나름대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물론 살인으로까지 연결되는 범죄도 꽤 있다. 자신의 분노나 스트레스를 조절하지 못하고 거리를 헤매(p. 158)던 중 누군가가 기분 나쁘게 쳐다봤다는 이유로, 웃었다는 이유로, 자신을 피하려고 했다는 이유로, 늦은 시간에 다닌다는 이유로 그들의 표적이 된다. 피해자로 선정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점을 조심하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삼는 이들의 레이더망을 피할 방법은 없다는 생각이다. 굳이 방법을 제시하라고 하면 아무런 이유 없이 시비를 거는 사람에게는 말을 섞으려고 하지 말고 얼른 그 장소를 피하라는 정도의 조언이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묻지마 범죄는 범인을 조기에 검거하는 것이 유일한 예방법이기 때문에 가까운 지구대에라도 당시에 벌어진 상황을 자세히 신고하려는 시도는 중요하다(p. 159). 자신이 왜 범행하게 되었는지 모르는 경우도 아주 많다.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인으로서 해야 할 일은 범죄를 저지른 그들을 정확히 이해하고 범행 동기를 탐색해 범죄 전, 중, 후의 행동들을 분석해서 유사한 범죄가 발생하면 조기에 해결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담심리와 교육학을 전공한 내가 생각하는 또 하나의 목표는 범죄자들이 나와의 만남을 통해 아주 작은 것(p. 188) 하나라도 자신에 대해 알게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통찰하지 않는 그들에게 범죄와 만나기까지 자신의 삶을 면밀히 살펴볼 기회를 주고 싶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자신의 범행을 시인하고 관련된 세부 사항을 설명해서 더 큰 벌을 받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도 면담을 마치며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는 그들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오로지 자신에게만 시간을 할애해서 이야기 를 집중해 들어주는 경험을 해보지 못한 이들로서는 범죄자임에도 프로파일러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것 같다. 일은 이미 벌어졌고, 검거된 상황에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사실대로 말할지 범죄자는 끊임없이 갈등할 것이다. 왜 범죄를 저질렀고 피해자와 어떤 상호작용이 있었는지는 범죄자만이 알고 있는 내용이다. 수사관들은 이미 벌어진 상황을 보고 묻지만,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하고 아니고는 범죄자의 선택인 것이다. 열심히 설명한다고 해도 자신의 형량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리라고 판단되면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은 장면들을 떠올리는 데 애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우리도 마음을 잘 알아주는 사람과의 대화가 편하고 오랜 시간 이야기하고 싶듯, 강력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도 비슷한 마음이리라 추측해본다(p.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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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10-08
  • 【북토크454】 무의식이 보내는 신호, 꿈
    나는 꿈을 잘 안꾼다. 그리고 꿈을 꾸어도 잘 기억나지 않고, 꿈을 믿지도 않는다. 그러나 심리학은 꿈에 대해 관심이 많다. 무의식의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 읽었고, 기회가 될 때마다 이 저자의 책을 찾아 읽을려고 한다. 교보문고-“인간은 누구나 깊고 오롯한, 본질적인 자신을 알고 싶은 욕망이 있다. ‘나는 누구일까?’ ‘내게 벌어지는 이 모든 일들은 어떤 인과관계를 지니는 것일까?’ ‘내 삶에 궁극적 방향성은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은 존재에 대한 고민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만나게 됩니다. 꿈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데 매우 유용하고 안전한 도구입니다.(6쪽)” 의식이 깨어 있는 낮과 달리 꿈을 꾸는 동안 우리는 오롯이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간다. 꿈은 우리에게 말을 건네지만, 무의식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언어는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와는 다른 방식으로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밤 꿈을 꾸면서도 그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간밤에 꾼 꿈을 쉽게 망각해버린다. 현대인들에게 꿈은 여전히 비과학, 혹은 미신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꿈이야말로 자기 자신을 알 수 있는 확실한 목소리이다. 우리는 존재에 대한 고민들을 매일 밤 꾸는 꿈을 통해 찾을 수 있다. 「나의 꿈 사용법」은 보이지 않는 꿈 세계가 궁금한 이들, 그리고 꿈을 통해 좀 더 본질적으로 자신을 알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이 책은 꿈에 대한 다양한 층위뿐만 아니라 그 안에 감춰진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모습, 문화적인 의미들을 이야기한다. 꿈은 자신의 내면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텍스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깊고 오롯한, 본질적인 자신을 알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나는 누구일까?' '내게 벌어지는 이 모든 일들은 어떤 인과관계를 지니는 것일까?' '내 삶에 궁극적 방향성은 있을까?' 존재에 대한 고민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만나는 질문들입니다. 꿈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데 매우 유용하고 안전한 도구랍니다(p. 6). 꿈은 무의식 세계가 의식 세계로 말을 거는 자연스러운 방식이다. 그 안에는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 자랄 때 결코 허용되지 않았던 모습도 있다. 또 집안이나 사회 규범에 따르느라 억압되고, 편향되게 발달하느라 남겨진 부분들이 간직되어 있다. 무엇보다 온전한(p. 15) 자신을 발견하는 데 필요한 재료와 자원이 있다. 이런 무의식이 꿈이라는 말 걸기 방식을 통해 본래의 자신을 만나는 데 장애물이 되는 상처들을 다시금 어루만지도록 계기를 만들어준다. 또 이전에는 몰랐던 자신의 잠재된 가능성들을 발견해 창의적인 삶을 살도록 도와준다. 저마다의 '진정한 나'를 발견하도록 접촉을 시도해오는 방식이 꿈인 것이다. 그러니 ‘꿈에 관심을 갖고 꿈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꿈과 친해지’는 것이 필요하다(p. 16). 꿈 이론에서 악몽이란, ‘지금 여기에 네 본성에 어긋나는 게 있어. 뭔가를 시급히 바꾸어야 하니 제발 깨어나서 이 상황을 좀 볼래?’ 라는 메시지다. 무의식은 급박하게 경각심을 촉구할 때 악몽의 형태를 취한다. 왜냐하면 진화의 역사에서 인간은 신나는 꿈을 꿀 때보다 끔찍하고 잔인한 악몽을 꿀 때 훨씬 꿈을 잘 기억하고 꿈에 관심을 더 쏟는다는 사실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악몽은 괴로움을 주려는 게 아니라 시급함을 알려주는 신호다. 꿈이 최선을 다해 현재의 위기를 알리고 상황을 개선하라고 촉구하는 것이다(p. 28). 꿈에 대해 이야기할 때, 흔히 꿈에 등장하는 자신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꿈을 바라본다. 이 존재를 꿈자아 dream ego라고 하는데 꿈자아가 꿈에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는지,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어떤 느낌을 갖는지에 따라 좋은 꿈 혹은 나쁜 꿈이라 판단한다. 그렇지만 꿈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 즉 사람뿐 아니라 동식물, 그리고 무생물이나 밝기까지 어느 것도 꿈꾼 이의 심리를 반영하지 않는 요소는 없다. 따라서 꿈에 등장하는 모든 것이 자신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된다. 이를테면 자신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사람이 꿈에 등장했다고(p. 34)치자. 꿈자아는 실제 상황처럼 그 사람 앞에서 몸이 굳고 입조차 떨어지지 않아 꼼짝 못할 것이다. 이런 꿈을 꾸고 일어나면 '아니, 이 사람은 꿈에까지 등장해서 나를 힘들게 하는구나'라고 탄식한다. 그렇지만 이럴 때, 꿈자아뿐 아니라 꿈자아를 힘들게 하는 상대도 자신의 일면임을 상기하자. 꿈 작업 법칙 중 하나, 내 안에 없는 것은 내 꿈에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자문해야 한다. '내게 그 사람처럼 안하무인이고 편협하고 강압적인 부분이 있는가?' 불편하겠지만 이 질문을 숙고한다면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p. 35). 후쿠시마 사태는 해결의 실마리조차 없는 듯하다. 쓰나미가 강타한 어촌 마을들은 재건 계획만 난무할 뿐 공사는 진척이 없다. 건설입자들은 도쿄 올림픽을 위해 매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또 다른 투사의 드라마가 올림픽이다. 올림픽은 국민의 눈을 돌리고 귀를 막아 근거 없는 행복감과 환상을 심어주기에 좋은 수단이다. 현실을 망각하게 만드는 주술로 이용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방사능도 쓰나미도 지진도 잊고 일본의 건재함을 만방에 떨치며 인류의 평화를 노래합시다! 절묘한 타이밍이다. 이 야만의 드라마는 인류가 자행한 집단적 편견과 이에 따른 파괴 행위 때마다 반복되어왔다. 역사상 가장 참혹하고 사악하고 파괴적인 행위는 전부 투사의 드라마가 연루되어 있다. 나치가 유대인에게, 백인이 흑인에게, 기독교인이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에게, 유럽 백인이 북미 원주민에게, 제1세계가 제3세계에게, 한국인이 외국인 노동자에게, 그리고 남성이 여성에게 투사를 한다. 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을까? 긴긴 역사적, 정치적 사건들을 단순화 하려는 의도는 없다. 하지만 암흑의 역사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기여 없이 일어나지 않는다. 내 안에 한 치도 없는 내용이라면, 아무리 집단광기가 회오리를 일으켜도 동참할 수 없다. 사회 문제를 개인의(p. 84) 문제로 귀결시켜 책임을 개인에 전가하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 그럼에도 시작은 한 사람부터라는 것도 사실이다. 집단의 광기에 에너지를 보태지 않으려면 결국 나부터 그러한 각성이 비롯되어야만 한다. 이런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집단 의식을 만든다(p. 85). 로맨틱 러브는 투사이다. 투사는 고착되어 있을 경우 헤어나올 수(p. 109)없는 늪이 된다. 하지만 앞서 강조했듯 투사의 본질은 완전에 대한 요청이자 사랑이다. 보이지 않던 면모나 존재의 첫 만남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투사이고 투사는 눈을 안으로 돌려 자기 안에 있는 무의식의 원형을 의식화하라는 초대이다. 융이 내면의 파트너와의 관계를 '개성화의 결작'이라 한 이유다. 일생이 '내면의 파트너'에 헌신할 때 삶의 드라마에서 저마다의 걸작이 완성될 것이다(p. 110). 중년의 위기는 그림자의 초대 중년의 위기는 그림자 세계를 직시하는 통과의례로의 초대다. 중년이 되면 기존에 살아오던 방식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 에너지는 고갈되(p. 126)고 불안, 초조와 허무가 밀어닥친다. 우울에 빠지고 자신뿐 아니라 술이든 일이든 도박이든 사랑이든 중독으로 빠져들기도 한다. 이는 의식적으로 그림자를 찾고 만나지 않는 이에게 그림자가 찾아왔다는 신호이다. 위기는 언제나 기회와 맞닿아 있다.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또 전혀 모르고 있던 영역으로 눈을 돌리라는 초대장이 무의식으로부터 날아든 순간이다. 이 초대에 응한다는 말은 혁명을 위한 맹세와 같다. 삶의 방향을 180도 전환하라는 요구는, 마치 폴 고갱이 파리의 은행원 자리를 박차고 남태평양 섬을 찾아 떠났듯이 막다른 선택 상황으로 몰고간다. 무모하고 극단적이었지만 고갱도 이런 선택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이런 무의식의 초대 앞에서 도무지 어찌해야 할지? 그 방법이 모호하기만 하다. 우리는 그림자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먼저 그림자의 생리를 알아야 한다.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언제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자취가 드러날 때 잡아두는 방법은 있는가? 개인의 그림자뿐 아니라 집단의 그림자도 있는가? 그림자와 백년가약을 맺는다는 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 자신을 만나는 일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자신의 그림자를 대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최선과 최악을 만날 것이다. 두렵지만 신비한 이 여정은 진정한 나를 찾는 데 필연적인 길이다. 용기와 지혜를 겸비한 사람만을 위한 영광된 길이기도 하다. 그림자라는 중년의 초대는 이런 준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p. 127). 꿈은 존재의 근원에서 밤마다 시도해오는 친절한 말 걸기라 했다. 꿈 말을 경청하다 보면 꿈의 상징들이 신비로운 내면의 심장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준다. 영혼의 깊이로 향하는 모험에 기꺼이 '예'라 답하는 일생의 언약을 할 때 내면의 노래는 점차 또렷하게 들린다(p. 172). 자주 꾸는 꿈 20가지와 상징적 의미 꿈을 꾸고 '무슨 뜻이지?' 궁금할 때 의미 파악에 도움되는 힌트가 있다. 가장 보편적인 꿈의 은유적 표현을 익혀 심오하고 풍요로운 꿈 세계를 탐색해보자(p. 190). 나체로 돌아다녀요 평상시와 달리 나의 생각이나 감정을 사람들에게 과잉노출했는지? 꿈에서 다른 사람들도 나체인 나(꿈자아)를 발견하고 당혹해하는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자신은 속내를 많이 드러내어 편치 않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은 경우이다. 가끔 꿈에 등장하는 군중들이 내가 벗은 모습을 보고 당황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타인들도 그 상황이 불편했다는 말이니 그에 대해 뒷수습을 하거나 가벼운 사과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가 빠졌어요 감당하지도 못할 만큼 많은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인가? 내가 이 일들을 주어진 시간 안에 다 처리할 수 있을까? 이는 자신감과 관련 있는 질문이다. '너는 할 수 없어'라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라. 일을 줄이거나 우선순위를 정하거나 도움을 줄 사람을 찾거나, 어떤 식이든 상황을 다룰 수 있기에 꿈을 기억한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사람이 죽어요 내가 죽든, 옆 사람이 죽든, 자살을 하든, 시체를 보든 다 죽음의 꿈이다. 죽음은 커다란 성장과 변화의 표식이다. 내가 급격하게 성장하지 않았나? 기존의 이미지로는 변화하고 성장한 나의 모습을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이기에 그 이미지가 사라지는 것이다. 죽음 중에서도 자(p. 191)살이 가장 특별한 성장의 징표이다. 왜냐하면 이 변화나 성장이 나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똥을 못 누어요 볼일은 급한데 변소를 못 찾거나 화장실은 찾았지만 더러워서 들어갈 수가 없는 등 어떤 이유든 대소변을 보지 못했다면 자문해보자. 지금 내 안에서 올라오는 어떤 생각이나 감정을 인정하지 못하거나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이나 감정도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하면 마음에 변비가 걸린다. 꿈을 다시 들여다보면서 '아, 내가 지금 이런 마음이 있구나!' 이해하고 인정해주면 그날 밤 시원하게 볼일 보는 꿈을 꿀 확률이 높다. 파트너가 바람을 피워요 남자 친구가 혹은 여자 친구가, 아니면 아내나 남편이 꿈에서 바람을 피운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더 중요한 질문은 '내 내면의 남성성 혹은 여성성이 나를 속이고 있지 않은가?'이다. 꿈에 등장하는 누구든, 심지어 무생물까지도 꿈꾼 사람 심리의 어떤 측면을 드러낸다. 나를 배신하는 내 파트너도 나라는 점을 기억하라. 무서운 사람한테 쫓겨요 ‘변화를 거부하고 성장에 저항하고 있나? 대면을 피하려고 끝없이 도(p. 192)망 다니는 일이 무엇인가?’ 더 이상 도망만 치지 말고 정면으로 바라볼 때라는 걸 꿈은 말해주고 있다. 도망치는 꿈은 죽는 꿈과 연결되어 있다. 회피하던 문제를 직시하면 스트레스를 주는 꿈 상황이 달라진다. 섹스를 했어요 노골적인 섹스가 일어나는 꿈을 꾸면 민망해서 꿈 이야기를 잘 안하려 하지만 이는 꿈 언어를 모르기에 벌어지는 상황이다. 꿈에서 적나라하게 섹스가 이루어지고 오르가슴을 느끼거나 그런 섹스를 시도하는 경우는, 대단히 영성적인 체험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신과의 합일, 깊은 전율, 감동 같은 특별한 체험이 일어나지 않았나 살펴볼 일이다. 신발을 잃어버렸어요 신발을 찾는데 내 신발만 없거나 맨발로 다니는 상황이라면 나를 지탱하고 도움을 주는 기반에 변화가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굳건히 두 발로 땅을 딛고 서려하나 제대로 된 보호막이 없는 상황이다. 궁극적으로는 삶의 기반에 관한 질문이라 정체성과도 연결된다.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꿈은 이 물음을 성찰하고 답을 찾도록 촉구한다. 차가 나와요 꿈에 나오는 이동 수단은 다양하다. 탈 것이 등장하면 관계에 대해 질문해보라. 버스, 지하철, 기차, 비행기가 나오면 나와 기관, 즉 본인이(p. 193) 다니는 학교, 직장, 교회와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를 살펴보라. 자전거나 자가용이 등장할 때는 개인적인 관계에 대한 질문을 해보라. 차가 원활하게 나가는지? 브레이크가 고장났는지? 기름이 떨어졌는지? 충돌사고가 났는지? 물 꿈을 꾸어요 바다, 강, 호수, 우물, 그릇에 담겨 있는 물, 수영장 물 등 다양한 형태의 물은 감정, 정서의 상황을 나타낸다. 물의 색깔이나 깊이, 온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라. 압도적인 깊이인지?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지? 풍랑이 치는지? 홍수가 났는지? 고요하고 물 표면이 아름답게 반짝이는 지? 물이 탁한지? 감정에 빠져 허우적대는지? 감정의 급류에 휩싸일까 두려운지? 불이 났어요 불은 '탄다'고 표현하는 열렬한 감정, 즉 타오르는 화, 뜨거운 열정, 이글거리는 시기, 질투와 연관지어 볼 수 있다. 꿈에 나오는 불 가운데 노출되면 화상을 입거나 뜨거운 불, 무언가를 태우는 불, 그리고 불 속으로 들어가도 전혀 데지 않는 '성령의 불'을 함의하는 불도 있다. 동물이 등장해요 동물은 기본적으로 본능의 에너지를 나타낸다. 동물이 어떤 상태인지? 무슨 동물인지? 본능의 에너지는 생존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p. 194)다. 건강하게 살아 있는 본능은 정신적 육체적 영성적 건강의 기반이다. 동물의 생태나 특징에서도 본능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집이 자주 나와요 어떤 집인가? 집 상태는 어떠한가? 내 영혼이 거주하는 자리가 집이다. 건물 종류나 상태로 현재 나의 상태를 알 수 있는 힌트가 된다. 특히 집은 육체적 건강 상태를 가늠해보는데도 좋은 실마리가 된다. 페인트가 벗겨진 정도인지? 대들보가 위험한지? 골조가 튼튼한지? 잘 보존된 집인지? 충분히 넓고 아늑한 집인지? 폐허같은 황량한 곳인지? 음식을 먹어요 식당에서 꿈이 전개되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꿈은 영적인 자양분과 연관이 된다. 음식을 먹으면 아프다는 속설은 아픔 없이 커다란 영적 성장이 일어나기 쉽지 않기에 그런 것 아닌가 추정해본다.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경우 염려보다는 오히려 감사할 일이다. 군대에 다시 오래요 남자들에게 군대는 통과의례의 장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한국 남성들에게 가장 흔한 악몽인데, 군대처럼 또 다른 통과의례나 그에 상응하는 치열함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p. 195). 죽은 사람이 나와요 죽은 사람이 등장하면 꿈을 꾸는 동안, ‘이미 죽었는데 여기 있구나’ 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는 사자의 방문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대다수는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으로 인식한다. 이때는 내가 그 사람에게 투사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질문해보자. 예지몽을 꾸어요 꿈에는 언제나 예언적인 층위가 있다.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날아다녀요 창의적인 사람들이 나는 꿈을 많이 꾼다. 인간이 새처럼 난다는 것은 중력을 거스르는 일인데, 중력이란 그 자체로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힘이다. 심리에서 중력처럼 작동하는 것은 사회의 인습이나 관습이다. 인습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발상의 전환이니 자연히 창조와 관련된다. 머리카락이 달라졌어요 머리에서 자라나오는 것. 즉 머리카락은 생각을 의미한다. 달라진 머리 모양은 예전과는 다르게 생각하게 된 어떤 내용을 뜻한다. 이때 꿈에 다르게 표현된 헤어스타일을 관찰하면 변화된 생각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짧은 머리, 긴 머리, 곱슬 머리, 금발, 퍼머 머리, 대(p. 196)머리, 원형 탈모 등등, 각각의 헤어스타일이 일반적으로 뜻하는 바를 떠올려보라. 예를 들어 '백발'로 나오면 흰머리는 지혜의 상징이기도 하고, 연륜에 대한 이미지도 있다. 어린 나이에 머리만 희다면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사는지, 혹은 에너지의 불균형은 아닌지도 생각해볼 일이다. 꿈이 전체적으로 어두웠어요. 환하게 밝아요 꿈에서 빛의 특질은 중요하다. 빛은 의식의 밝기를 나타내기에 꿈이 제시하는 내용에 관해 내 의식의 밝기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볼 수 있다. 따라서 빛의 변화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잿빛이나 어둡게 시작하다가 어느 시점부터 밝아질 수도 있고 역으로도 가능하다. 하나의 꿈 안에서 일어나는 빛의 변화는 꿈이 제시하는 문제에 관한 의식의 진화 속도를 가늠해보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p.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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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10-07
  • 【북토크453】 인생이 무엇인지에 대한 한 견해
    고미숙 작가의 책은 기회가 되는대로 찾아 읽어본다. 고전연구가이기에 내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볍게 읽어볼만한 책이다. 예스24-상품과 소비의 범람, 그 이면의 빈곤과 양극화. 전염병과 기후위기라는 전지구적 재앙. 우리는 이 위기의 시대를 어떻게 건너야 하는가?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고미숙의 인생 특강』을 통해 ‘질주를 멈추고 욕망의 방향을 전면적으로 바꿀 것’을 그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소비와 쾌락에서 휴식과 성찰로, 외적 확장에서 내적 충만으로, 자연의 도구화에서 자연과의 공존으로!” 우리가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 그리고 평화롭고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 새로운 길로 방향을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저자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다. 이 책은 저자가 그동안 각기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했던 네 번의 강의를 책으로 엮었다. 화폐로 환산되는 거창한 ‘가치’보다 삶 자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첫번째 강의(「삶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나요?」)부터 ‘길 위에서’ 접속하고 공부하는 실천적인 지침을 제공하는 마지막 강의(「길 위의 공부」)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멈추고, 접속하고, 성찰할 것’을 줄곧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꿈’과 ‘가치’, ‘의미’ 같은 것들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 그것들이 우리의 ‘에로스’적인 생명의 힘을 갉아먹고 있지는 않은지를 ‘로고스’적 지혜로 성찰해야 하며, 그 길은 집을 나서서 고전과 접속하고 세계와 접속할 때 열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삶이 무엇인가, 이걸 근원적으로 한 번 살펴보면, 산다는 건 어느 날 어떤 시간과 공간, 시공에 내가 던져지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왜 지금 하필 여기에 던져져 있는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걸 아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걸 알면 여기 안 오겠죠. 그걸 아는 존재는.... 다 아는데 왜 옵니까. 그리고 이것은 너무너무 평등한 거예요. 금수저건, 흙수저건, 엘리트건 평생 꼴찌만 한 사람이건, 모두에게 동일한, 무지라는 생명의 토대, '모른다'라는 것. 그래서 삶은 다 어디서 시작하냐 하면 '모른다'에서 시작하는 거예요. 내가 왜 지금 여기 있는지 모르겠는데, 삶이 시작이 되어 버린 거예요. 만약에 그 의미를 찾아야 된다면 갓난아기들은 돌 전에 다 삶을 포기해야 되지 않을까요. 걔들이 뭘 알겠습니까. 왜 왔는지, 왜 살아야 되는지 알고 사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삶은 이 무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기나긴 앎의 여정'이다, 이렇게 정의할 수 있어요. 그런 점에서 모든 존재는 태어나는 순간 이미 구도자가 되는 겁니(p. 17)다. 누구에게나 삶은 그 자체로 절실하니까요. 그래서 인생이 뭐냐. 나에게 던져진 길, 주어진 길 위에서 나의 길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이렇게 정의를 하면 일단 '의미가 있어야 돼' '꿈이 있어야 돼', 이런 건 굉장히 부차적인 것이 됩니다. 이렇게 삶이 시작되기 때문에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세상만사가 너무너무 궁금해요. 너무나 알고 싶어요. 이 알고 싶어서 미치는 거, 이게 인간의 존재성이에요. 왜냐하면 태어날 때 완벽한 무지에서 시작하니까요. 그래서 인류의 역사는 어떤 점에서 모든 걸 다 알고 싶다고 하는 그런 지식의 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갓난아기 때부터 성장기, 청춘, 중년, 장년, 노년까지, 삶을 이끌어가는 건 질문인 거예요. 질문이 사라지는 순간 나는 좀비가 됩니다. 그건 청년이든 노년이든 똑같아요. 청년은 좀비가 되고, 노년은 꼰대가 되는 거죠. 똑같은 대답을 반복하는 것. 반복은 생명과 완전히 반대예요. 반복은 반생명이에요. 그래서 계속 질문을 던져 가는 것이죠(p. 18). 그런데 쾌락과 쾌락 사이에 괴로움이 있어요. 왜냐하면 쾌락은 정•기•신을 굉장히 많이 쓰게 하거든요. 그 대가로 기진맥진하거나 너무 공허하다, 이런 느낌을 받게 됩니다. 사회활동에서도 사업을 너무 열심히 하느라 잠 안 자고해서 성공을 하고 나면 그다음에 너무 헛헛해지는 거죠. BTS도 그렇게 외롭다는 거예요. 그 청년들이 전 세계를 주름잡는데, 저는 제가 가까이 아는 청년들이면 정말 걱정이 될 거 같아요. 얼마나 외로울까. 공연이 끝난 뒤에 환호성 뒤에 서 얼마나 기진맥진할까.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수만 군중 앞에서 그들을 즐겁게 해준다는 일이.... 그(p. 106)거는 고생 중에 고생이에요. 그러니까 자본주의의 모든 성공한 존재들은 이런 패턴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걸 저는 확신합니다. 성공해서 '이걸로 충분해' 라는 게 있을 수 없어요. 그런데도 이런 사이클이 반복되는 것이 좀 이상하지 않나, 이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보라는 겁니다(p.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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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10-07
  • 【북토크452】 잊혀진 유태인 빨치산들 이야기
    2차 대전 가운데 항전한 여러 빨치산들이 있었다. 그들 중 유태인으로만으로 구성된 빨치산은 어디에나 속하지 못하고 겉돌았다. 가장 큰 고통을 당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계속 외면 당하는 유태인들의 아픔과 전쟁의 고통이 잘 드러난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예스24-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경험을 토대로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자전적 성찰 회고록을 쓴 이탈리아의 화학박사 프리모 레비의 자전적 장편소설이다. 생존 당시 세계의 수많은 양심적인 지식인들과 인문주의자들이 '당대의 가장 고결하면서도 가장 고독한 작가'라는 찬사를 보냈던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아우슈비츠 경험과 동유럽 유태인 빨치산 투쟁을 그렸다. "홀로코스트를 제대로 표현하기에는 인간의 언어가 너무 빈약하다"고 고백했던 프리모 레비. 홀로코스트 앞에서는 그 어떤 언어도 무력하고, 그 어떤 진실도 밝힐수록 더욱 초라해지지만 그는 기어이 그것을 언어로 표현해내고자 한다. '신이 없는 곳'이라고 불릴 정도로 참혹한 현장인 아우슈비츠에서 생존 자체를 혼란스러워 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우리네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나치의 추적과 공포로부터 숲속으로 도망다니는 이질적인 두 젊은 유태인의 야영생활을 그린 부분은 특히 인상적이다. 비록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지만 굳이 그걸 붙잡고 싶은 희망은 마치 질식상태 직전의 마지막 호흡과도 같은 것이다. 작가는 흥미진진한 빨치산 부대의 활동, 여러 강제수용소 포로들의 고백들, 러시아와 폴란드 빨치산 부대들과의 만남, 이따금 마주친 나치병사들, 빨치산 대원들의 사랑, 유태인 풍자극, 내면의 고통과 정신적인 변화 같은 이야기들을 드라마틱하게 전한다. "그리고 여기, 이 느슨한 하나의 공동체에 합류한 이상 우리에겐 비밀이 없네. 그게 여기 총책임자로서의 내 원칙이네. 그동안 많은 이들이 왔다가 떠나고 또 죽음을 맞기도 했지. 또 많은 젊은이들도 왔다가 내 허락과 무관하게 떠나갔네. 이 초라한 엉터리 공동체에서 기아와 공포 속에 떨며 무기력하게 살아가느니, 차라리 유격대에 가담해 화끈하게 싸우다 죽는 게 훨씬 뜻 깊을 테니까. 역설적으로 좌절과 절망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얼마든지 죽을 수 있는 게 젊은이들의 특권이 아닌가. 그만큼 무서운 게 절망이라네. 죽음에 이르는 병이지(p. 103) 파벨이 또 능청을 떨자 조제크가 슬쩍 핀잔을 주었다. 웃음이 가라앉자 게달레 대장이 점잖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늘, 진정한 사랑을 위해서는 사랑의 소유보다 점유를 더 중시해야 한다는 귀한 사실을 배웠군. 그렇지만 역시 문제는 실천이란 말이지. 문득 맑스와 엥겔스 선생의 지적처럼 '철학자들은 세계를 이러쿵저러쿵 해석만 할뿐 변화시키지는 않는다'는 말이 떠오르는 군. 그렇다고 해서 거꾸로 우리가 실천적인 빨치산이기 때문에 철학자들의 다양한 이론적 해석을 무시해도 좋다는 얘기는 더욱 아(p. 264)니네. 그걸 우려한 맑스 선생이 이미 100년 전에 일침을 가하기도 했지." "....” "이론적으로 철저하게 깊이 파고들지 않으면 혁명도 성공시킬 수 없다고 말야. 그러니 여러분들도 비록 가시밭길 같은 힘든 생활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욱 이론학습에 정진하길 바래. 난 책 없는 빨치산 배낭은 실탄 없는 총이나 조종사 없는 전투기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네. 그런 자들은 좋은 세상이 와도 살 자격이 없는 인간쓰레기들이지. 그리고 책은 읽고 난 다음엔 반드시 덮게. 오늘 라인과 시슬 동지가 제기한 여성해방 문제는 우리 남성들의 치부를 건드리는, 그러면서도 앞으로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보네. 라인의 지적처럼 남성의 야수적인 본능이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해결되지는 않기 때문이지?" ".." "오히려 거만하고 오만한 권력과 결탁해 더욱 교활한 폭력으로 바뀌겠지. 10월 혁명이 지난지 벌써 30년이 다 되어가네. 그 30년간 우린 이 두 눈으로 많은 실상들을 똑똑히 보고 겪으며 살아왔네. 우리가 쫓겨다니며 지금 딛고 있는 이 땅, 수십 년 동안 해결되지 않은 여성동지들의 삶과 불만사항들, 날마다 추방당하거나 처형당하는 형제들, 나치로 위장한 우리 붉은 군대의 대학살... 바로 그게 성공한 이 위대한 혁명사회의 알량한 현실이네..."(p. 265). 게달레 대장은 이 말이 곧 결론이라는 뜻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뒤쪽에 서 있던 멘델에게 말했다. "자네도 빨리 준비하게. 모험적인 전투에는 모험적인 전사가 필요한 법이지." "그렇지만 무모한 모험은 피하는 게··" "어떤 모험이든 처음엔 다 무모했네." "..." "콜럼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까지는 바다에 빠져죽은 수많은 탐험가들이 있었네. 바로 그 시체들을 딛고 올라섰기 때문에 그가 신천지를 볼 수가 있었던 거네. 어쩌면 우리도 그 시체들 중의 하나가 될지도 모르지. 운명이네."(p. 307). "포로가 전부 120명이었는데 우리 10명을 차출하고는 모조리 죽여버렸소." "어떻게 죽였소?" "넓은 자재창고에 다 몰아넣고는.. 석유를 뿌려 불태워버렸소...." "그런데... 당신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소?" "우리한테...그 짓을 대신 시켰어요...." "그래서 시키는 대로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단 말이오?" "안 하면 머리에 권총을 대고..." "..." 구레나룻 대머리가 죄지은 아이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기어들 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포로들도 모두 눈치를 보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게달레 대장은 어이가 없었다. 비명과 아우성이 들려오는 창고에 계속 석유를 뿌려대는 저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살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이것이 인간이란 말인가...? 과연 삶을 위해서는 모든 것이 용납되어야만 하는가? 도대체 삶이 뭐길래? 수천 년 동안 누구나 살다 죽었고 앞으로도 역시 그럴 것인데, 고작 100년도 안 돼 소멸되는 건 불멸의 이치가 아닌가... "대장님, 저 포로들은 풀어주고 이놈은 죽이고 빨리 철수하죠?" 게달레 대장이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있자 피오트르가 재촉했다. 그러자 라인이 포로들을 매섭게 쏘아보더니 분노한 음성으로 반기를 들었다. "저 포로들은 더 이상 인간들이 아니에요. 아무리 강압에 못 이(p. 314) 계 시키는 대로 했다고 하더라도 엄연히 자기 손으로 수백 명을 불 태웠어요. 그것도 자기와 똑같은 유태인 형제들을요." "어쩔 수 없었잖아? 안 그러면 자기도 죽는데..." "어쩔 수 없다니요? 그럼 내가 살기 위해 당신 가슴에 총을 쏘아도 괜찮다는 얘긴가요?" “...” 라인의 비수 같은 말에 피오트르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갑자기 분위기가 심상찮게 돌아가자 유태인 포로들이 동요하며 몸을 떨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대원들이 라인의 서릿발 같은 말에 수긍이 가는지 간혹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멘델도 라인의 전혀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슴에 찬바람이 불었다. "전 그렇게 생각해요. 아무리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상관이 시키는 대로 무조건 따라하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라구요. 도대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뭐죠? 제 아둔한 머리로서는 생각한다, 못 한다 바로 그 차이라고 봐요. 그래서 아무리 하늘같은 상관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그게 잘못된 명령이면 당연히 거역해야죠. 왜냐하면 인간은 바로 생각할 줄 아는 동물이니까요. 그런데 저 포로들은 자기들이 살기 위해 그런 생각을 모조리 유보해버린 거예요! 무뇌아나 짐승이 됐단 말예요!" “...” "설사, 저 사람들이 여기서 살아서 나간다고 하더라도 동료들을 죽인 죄책감과 자괴감 때문에 앞으로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겠어요? 전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요. 차라리 여기서 깨끗하게 죽는 게 자신들을 위해 훨씬 나을지도 몰라요."(p. 다음날 아침에 뜨거운 캔커피가 배급되더(p. 373)니 식기도 전에 날카로운 인상의 간부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대원들의 몸을 신체검사하듯 일일이 살핀 다음 다시 세 그룹으로 나누었다. 첫 번째 그룹은 거의 폴란드 빨치산들이었는데 간부가 말했다. "여러분들은 폴란드 출신 군인이고 계속 군인으로 살게 될 것이다! 새로운 군복과 무기가 지급되어 러시아군대로 편입된다!" "아니, 우리가 왜 붉은 군대가 돼야한단 말이오?" "옳소! 전쟁도 끝나지 않았소?" 폴란드 빨치산들이 웅성거리며 저항하자 보초병들이 일제히 총을 겨누었다. 분위기가 차츰 험악해져가기 시작했다. 간부가 다시 두 번째 그룹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러분들은 다른 방식으로 붉은 군대를 도울 것이다!" 에데크 대장이 포함된 10명의 소수그룹이었는데, 예전의 학생이나 점원 출신들이었다.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진 에데크가 버럭 소리쳤다. "이 폴란드 빨치산 부대의 대장은 나요!" "그 부대는 이미 해체된 걸 모르나?" "난 대장으로서 해체한 적이 없소!" "그 부대는 더 이상 존재이유가 없다. 아직 라디오방송도 못 들었나?” "무슨...라디오 말이오?" 그랬다. 며칠 전 폴란드 임시정부가 있는 영국의 '라디오 런던'에서 총사령관의 긴급메시지가 발표되었다. 내용은 소비에트 붉은 군대가 나치를 물리치고 폴란드를 해방시켰으니, 앞으로 폴란드의 모든 정규군대, 레지스탕스, 빨치산 부대들은 붉은 군대로 재편돼야 한다는 것이었다(p. 374) "그럼 이제 우리를 어디로 보낼 생각이오?" 에데크 대장이 한풀 꺾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 본인 소관이 아니라 알 수 없다. 다만 여러분들을 본부가 있는 지역으로 보내라는 명령만 받았을 뿐이다." 세 번째 그룹은 유태인 빨치산들이었는데, 게달레 대장과 슈물레크도 포함되었다. "현재로선 여러분들에게 내릴 명령이 없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은 군인도 아니고, 민간인도 아니고, 전쟁포로도 아니고, 그냥 남자와 여자들뿐이니까?" "우리는 빨치산이오." 러시아간부의 모욕적인 말에 속이 울컥했지만 게달레 대장은 최대한 억누르며 말했다. 그 간부가 다시 말했다. "러시아의 어느 빨치산이든 모두 소비에트 빨치산 연맹에 소속되어 있다. 그런데 유태인만의 독자적인 빨치산 부대에 관해서는 아직 들은 바가 없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여기에 머무르면서 상부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으니 그리 알기 바란다."(p. 375). 음침한 성채로 둘러싸인 글로가우는 게달레 대원들이 마주친 첫 번째 독일 도시였다. 대대로 석탄생산 중심지라 검고 우중충한 도시 주변으로는 철책이 쳐진 나치의 군수공장들로 빽빽했다. 임시 포로수용소로 쓰는 그 공장들에는 이제 나치포로들과 신분이 불확실한 각양각색의 빨치산들, 또 어쨌든 수상한 자로 찍히는 자들은 모조리 감금시켰다. 게달레 대원들 역시 도착하자마자 아무 확 인절차도 없이 한 공장에 곧장 수용됐다. 그 안에는 폴란드 유태인, 독일인, 프랑스인, 네덜란드인, 그리고 그로스-로젠에서 해방된 유태인 등 50여 명이 이미 수감되어 있었다. 나치에 맞서 목숨 걸고 싸운 대가가 죄수나 다름없는 포로신세였으니, 그 치욕감이 어떠 하겠는가. 결국 모두 자폐증 환자처럼 스스로의 가슴에 철책을 치고 완벽하게 고립시켰다(p. 389).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투하!" 연합군, 특히 미군이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만 것이었다. 멘델도 가슴이 무너져내려 저 검은 버섯구름만큼이나 후폭풍이 솟아올랐다. 제2의 드레스덴 폭격만큼은 그토록 없기를 바랐는데, 수십만의 무고한 시민들이 아침햇살 속에서 '리틀보이'라는 이름의 핵폭탄을 맞자마자 처참한 시체로 변했다. 평화라는 이름으로 복수가 복수를 불렀고, 자유라는 이름으로 탐욕이 탐욕을 부른 것이었다. 과연 이런 역사는 언제까지 되풀이될 것인가? 멘델은 현기증이 일어나(p. 436)고 도통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지금 당장은 또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는 문득 지난 모든 것을 잊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내 삶의 단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고향으로 가 나치가 총살해 아무렇게나 묻어버린 아내의 시신을 찾아 제대로 묻어주는 게 그 첫 단계로 판단되었다. 비록 예루살렘에 가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 다음은? 그 다음 단계는 그 다음에 생각하기로 했다. 병원을 뛰쳐나온 멘델은 지체 없이 발길을 돌려 밀라노 중앙역으로 달렸다. 카틴숲에서 학살당한 줄도 모른 채 무작정 아버지를 찾아 모스크바로 떠나는 폴란드 소년처럼 자욱한 새벽안개 속을 숨차게 달렸다. 그때 멘델의 귓가로 애절한 노래가 들려왔다. 내가 나를 위해 살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나를 위해 대신 살아줄 것인가? 내가 또한 나 자신만을 위해 산다면 과연 나의 존재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 길이 아니면 어쩌란 말인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란 말인가?(p. 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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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10-05
  • 【북토크451】 대치동 입시 전쟁터에서 증명된 독서의힘
    사교육 1번지 대치동. 많은 부모들이 자식에 올인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부모와 자식은 함께 고통당하며 갈등한다. 이때 독서에서 갈길을 찾은 주부들의 남다른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흥미롭게 읽었다. 예스24-우리나라 사교육의 대표 성지인 대치동에서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이 책은 이런 변화를 몰고 온 대치동 엄마들의 유쾌한 반란을 이야기한다. 독서를 통해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대치동 엄마들은 “대치동에 가면 니 새끼가 뭐라도 될 줄 알았지?”라는 질문에 ‘무엇’의 정의가 달라졌다고 말한다. 이전에 ‘무엇’은 자식이 명문대에 들어가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갖고 사는 것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 ‘무엇’은 스스로 삶의 주인공으로 당당히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 책은 이러한 대치동 엄마들의 유쾌한 변화 과정을 이야기하며 독서의 힘이 무엇인지 실감나게 그려낸다. 내 새끼가 뭐라도 되길 바라며 닦달하지 않으면, 유명 학원에 들여보내는 걸 목표로 삼지 않으면, 주변이 아닌 내 아이를 바라보며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게 해 준다면 '대치동 살이'는 충분히 즐거움으로 채워 갈 수 있다는 걸, 걱정 반 설렘 반으로 대치 입성을 앞둔 학부모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물론, 쉽지 않다. 레벨 테스트에 낙방 하는 거 별거 아니라고 머리는 말해도 가슴이 거부하는 일이 학원(p. 67) 세팅이 끝날 때까지 반복될 수도 있다. 머리와 가슴만 시끄러우면 다행인데 입에서 총알이 발사되고 손이 아이의 등판을 향해 달려가기도 한다. 나 또한 다 겪었던 일이다. 그럼에도 ‘Inner peace!’ 견디시길, 엄마니까!(p. 68). 지나간 세월을 돌이켜 보면 나는 아들을 독립된 인격체로서 믿지 못했다. 나 스스로 설정한 허상들-명문대 입학, 좋은 학원, 유능한 강사, 그리고 이를 이루어 줄 대치동의 삶-에 아들을 끼워 넣으려고만 했을 뿐이었다. 그것들조차도 진정 아들을 위하기보다 나 자신의 체면과 만족을 위한 것이었다. 이제는 깨닫는다. 공부든 그 무엇이든 자신의 삶에 대한 독립적이고도 주체적인 자각과 깨달음이 생기면 저절로 해결된다는 것을. 오랜 시간 나는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끌어 주는 것이 아이를 위하는 길이라고 착각을 하며 살았다. 결국 중요한 건 신뢰였다. 자신이 결정하도록 믿어 주고, 자신이 책임지도록 격려하는 것만이 부모가 할 수 있는 역할인 것이다(p. 129). 고3처럼 학원과 독서실에서 자정을 넘겨 공부하던 큰아이가 운이 좋게도 영재고에 진학했다. 합격의 기쁨은 딱 일주일이라더니 합격 발표 직후 학부모 모임에서 과학 각 과목과 수학 그리고 영어와 컴퓨터 선행 학습이 논의되었다. 학기 중에는 좀 덜 했지만 방학 때는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또다시 공부가 이어졌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고 큰아이가 고백하기를 친구들과 야식 먹는 재미 때문에 학원을 다녔고, 복습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깨진 독에 물 붓기였다는 것이다. '자기 주도가 아니라 자본 주도'였던 것이다. 선행 학습의 효과는 없었다. 그 많은 사교육비며 대치동의 살인적인 픽업 전선에서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아이가 얄밉고 철이 없(p. 192)다는 사실에 더 화가 났다. 게다가 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친구들이 자신보다 머리가 좋다고 말하며 열등감을 표현했고 짜증까지 늘었다. 공부보다는 방송반, 축구부 동아리 활동에 더 열심이었다. 아이는 고등학교 삼년 내내 축제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자랑했다. 그 사이 고음 불가의 노래 실력이 늘어 조금 들어 줄 만하게 변했다. 성적은 오월 단오 너울마냥 오르내렸다. 기숙사에서 늦은 밤 야식을 먹으러 친구들과 학교 담을 넘어서 우리까지 불려가 혼나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 부부는 참고 또 참았다. 들판에서 좀 거칠게 자라다 보면 스스로 성장하고, 상대적으로 집이 따뜻하다는 것도 알리라 생각했다. 지금도 큰아이는 몸과 마음이 성장 중이다. 나는 아이가 넘어 질 때마다 적당하게 거리를 두고 기다려 줄 마음의 준비를 해 왔다. 그래도 때때로 지치고 힘들면 친한 사람들에게 하소연한다. 해답을 얻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숨을 한 번 길게 내쉬고, 다시 기다려 본다. 아이들은 더디게 그러나 분명 커 간다(p. 193).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그러니 자신을 믿고 나를 찾는 여행을 지금 바로 시작하시길! 그 여행에서 나는 '니 새끼가 뭐라도 될 줄 알았니?'라는 질문에 자신있게 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의 정의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전에 나에게 '무엇'은 자식이 명문대에 들어가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갖고 사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 '무엇'은 스스로 삶의 주인공으로 당당히 살아가는 것이다. 내 아이가 선택하고 내 아이가 사랑하는 삶을 산다면 그것(p. 233)은 타인의 평가와는 무관하게 ‘뭐라도 된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당연히 우리 아이들은 모두 뭐라도 될 수 있다. 아니, 뭐든지 될 수 있다(p.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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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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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토크456】 책 읽고 책 쓰며 사는 여생
    김정운 교수의 책은 재미있다. 교수직을 사임하고 여수에 서재를 마련하고 남은 생애 독서와 저술의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은 현명해 보인다. 예스24-2012년,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돌연 자신이 ‘지난 50년’ 동안 떠밀려 살아왔음을 깨닫고 ‘앞으로의 50년’ 동안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겠다!’고 결심한다. 그러고는 교수라는 안정적 직위를 박차고 그림 공부를 하러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그가 ‘나름 화가’로 다시 돌아와 머무르기로 선택한 곳은 서울이 아니라 여수다. 왜 여수여야 했을까?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는 김정운이 여수에서 바다를 마주한 채 쓰고 그린 에세이를 모은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는 자기만의 공간 ‘슈필라움’에 대해 언급한다. 독일어에만 있는 단어인 슈필라움(Spielraum)은 ‘놀이(Spiel)’와 ‘공간(Raum)’의 합성어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주체적 공간’을 뜻하는데 ‘물리적 공간’은 물론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하는 말이다. 자기만의 슈필라움이 있어야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자존감과 매력을 만들고 품격을 지키며 제한된 삶을 창조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우리가 밀집 장소에서도 본능적으로 자신을 위한 최소한의 공간을 확보하려 하고, ‘내 공간’을 어떻게든 마련하여 정성껏 가꾸며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이유이다. 이는 현대인이 나만의 ‘케렌시아’를 추구하는 트렌드를 해석하는 중요한 키워드이기도 하다. 김정운은 여수에서 자신이 꿈꾸던 바닷가 작업실 ‘미역창고(美力創考)’를 찾기까지의 여정을 들려준다. 그리고 24개의 키워드(‘시선’과 ‘마음’, ‘물때’와 ‘의식의 흐름’, ‘미역창고’와 ‘바닷가 우체국’, ‘불안’과 ‘탈맥락화’, ‘열등감’과 ‘욱하기’, ‘삶은 달걀’과 ‘귀한 것’, ‘기억’과 ‘나쁜 이야기’, ‘감정 혁명’과 ‘리스펙트’, ‘민족’과 ‘멜랑콜리’, ‘아저씨’와 ‘자기만의 방’, ‘저녁노을’과 ‘올려다보기’, ‘관대함’과 ‘첼로’)를 통해 그 슈필라움이 현대인에게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그리하여 우리는 어떤 삶을 새롭게 꿈꿀 수 있는지에 대해 통찰한다. 타인에 대한 ‘믿음’은 타인의 '다른 생각'에 대한 '이해'를 전제한다. 이건 정말 중요한 이야기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한다’고 믿는 것은 신뢰가 아니다. 강요다. ‘엄마는 믿는다’ 또는 '아빠는 믿는다'고 이야기할 때 ‘자녀의 다른 생각’에 대한 이해를 전제하고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 부모• 자식 관계만이 아니다. 타인은 언제나 '나와 다른 생각을 한다'를 되뇌어야 배신당하지 않는다. 타인의 ‘다른 생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이들은 항상 자기 생각만을 강요한다. 그리고 나중에 꼭 그런다. "정말 믿었던 이가 등에 칼을 꽂았다"고. 그러나 '등에 칼을 꽂는다'는 표현도 함부로 쓰는 거 아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독일군 사령관이었던 에리히 루덴도르프는 "전쟁에서 병사들은 결코 패배하지 않았는데 배후의 사회민주주의자, 유대인이 병사들 등에 칼을 꽂았다"고 불평했다. 아돌프 히틀러는 이 ‘등에 칼 꽂기’를 유대인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하기 위해 적극 퍼뜨렸다. '등에 칼 꽂기'는 의도가 악하기 그지없는 참으로 고약한 표현이다(p. 28). '정말 후회하지 않겠느냐'는 걱정에 대해서는 심리학적으로 더욱 간단히 정리했다. 후회는 '한 일에 대한 후회'와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로 구분해야 한다고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 심리학과의 날 로스 교수는 주장한다. '한 일에 대한 후회'는 오래가지 않는다. 이미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그 결과가 잘못되었더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얼마든지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쉽게(p. 60) 정당화되지 않는다. '한 일에 대한 후회'는 내가 한 행동, 그 단 한가지 변인만 생각하면 되지만,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그 일을 했다면' 일어날 수 있는 변인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심리적 에너지가 너무 많이 소비된다. 죽을 때까지 후회한다는 이야기다.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기억이 그토록 오래가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p. 61). 들판에 생뚱맞은 아파트가 보이기 시작하는 천안을 지나면서 내 심리적 상황은 급변한다. 갑자기 온갖 걱정거리가 떠오르며 공연히 불안해진다. 매번 그런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리 크게 불안할 이유는 없다. 우리의 걱정거리 가운데 정말 진지하게 걱정해야 할 일은 고작 4퍼센트에 불과하다고 한다.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이나 이미 일어난 일, 또는 아주 사소하거나 전혀 손쓸 수 없는 일이 96퍼센트라는 이야기다. 일 년에 삼백 일 이상을 '푸른 하늘'과 '파란 바다'를 볼 수 있는 여수 바닷가의 내 화실에 있을 때는 전혀 생각나지 않던 96퍼센트의 걱정거리가 희한하게도 천안 근처에만 오면 한꺼번에 밀려오며 불안해지는 거다. '공연한 불안'에 대처하는 내 나름의 해결책은 걱정거리의 내용을 노트에 구체적으로 적는 일이다. 제목을 붙여 적다 보면 걱정거리는 '개념화' 된다. 내 걱정거리의 대부분은 아무 '쓸데없는 것'임을(p. 79) 바로 깨닫게 된다. 아주 기초적인 셀프 '인지 치료'다. 간단한 덧셈과 뺄셈은 암산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복잡한 계산은 노트에 수식을 적어가며 풀어야 한다. 마찬가지다. 다양한 경로로 축적된 '공연한 불안' 역시 '개념화'라는 인지적 수식 계산을 통해 처리해야 한다. 생각이 복잡할 때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이유는 바로 이 '개념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p. 82). 우리 인생이 자주 꼬이는 이유는 '질투'와 '열등감' 때문이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이다. 질투가 외부를 향한다면 열등감은 내부를 향해 있다. 열등감을 인간 행동의 중요한 설명 기제로 끌어들인 사람은 알프레트 아들러다. 성적 욕망의 좌절과 억압으로 일관하여 설명하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반기를 들며 내세운 개념이다. 프로이트의 '콤플렉스'와 아들러의 '열등감'은 지난 백 년간 대립해왔다. 우리나라에서 수백만 부가 팔린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는 바로 아들러의 이론을 대중적으로 해설한 책이다. 좋은 책이긴 하지만 그렇게 팔릴 정도로 엄청난 책은 아니다. 내가 직접 감수하고 추천한 책이라 하는 이야기다. 느닷없는 '아들러 열풍'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그만큼 열등감으로 힘들어한다(p. 94)는 사실을 의미한다. 열등감을 생략하고 오늘날 한국인의 집단 심리를 이해하기는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p. 95). 오늘날 사방에서 '욱'하는 이유는 '성취'와 '경쟁'의 규칙들로만 지내온 세월 때문이다. 세계 10위권의 부유한 나라가 되었지만 의사 소통의 가장 기본 규칙인 '순서 주고받기'는 여전히 무시하며 살고 있다. 자신의 '순서'를 빼앗긴 상대방은 분노할 수밖에 없다. '분노'는 또 다른 '분노'를 낳는다. 그동안 까맣게 잊고 지내온 '순서 주고받기'라는 의사소통의 근본 규칙을 회복하지 않으면 이 분노의 악순환으로부터 결코 헤어날 수 없다. 조금만 차분하게 기다릴 줄 알면 그렇게까지 '욱'할 일은 별로 없다(p. 106). 오늘날 스타가 되려면 팬들의 폭력적 '가학 놀이'의 희생양이 될(p. 156) 각오를 해야 한다. 연예인들의 느닷없는 '고통 내러티브'는 바로 이런 대중의 '감정 폭력'에 대한 '항복 선언'이다. '나도 정말 힘들게 먹고살고 있으니 제발 괴롭히지 말아달라'는 호소다. 해당 연예인들의 '공황장애'가 '꾀병'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왜 느닷없이 '공황장애'를 내놓고 고백하는가에 대한 설명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신장애'는 모두가 숨기려고 했던 치명적 약점이었다(p. 157). 프로이트의 '콤플렉스'와 더불어 현대인의 삶을 가장 잘 설명하는 개념이 있다면 마르크스의 '소외'다. 자신이 만든 생산물과는 아무 관계 없이, 그저 노동의 대가로 받는 임금으로 살아야 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 심리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 노동의 결과가 전혀 확인되지 않는 삶을 마르크스는 '소외된 삶'이라 했다. 정신이 자연에 변화를 가져와 자아실현이 가능해진다는 헤겔의 낭만적 '외화' 개념을 자본주의라는 역사적 맥락에 맞춰 비판한 것이다. 마르크스의 개념들은 대부분 공허한 것이 되어버렸지만, 심리학적으로 그의 '소외론'은 여전히 통찰력 있고 의미 있다. 사무직에서 일했던 사람일수록 손으로 직접 하는 일을 배우는 것(p. 198)이 좋다. 두 번째 인생에는 노동의 결과를 눈으로 직접 판단하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구체적인 일을 해야 심리적으로 소외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교수, 기자, 선생과 같이 말과 글로 먹고 산 사람일수록 손으로 직접 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말년의 성품이 무난해지며 '꼰대'를 면할 수 있다. 아니면 컴컴한 방에서 혼자 인터넷에 악플이나 달며 삼십여 년을 더 살아야 한다. 달리 할 일이 있는가? 그래서 아직 체력 좋은 범재에게는 '용접 일'이 만장 일치로 추천되었다. (진지하게 나눈 이야기다. 우리 모두 대학 사년 그렇 게 대충 다니고 삼십 년 가까이 잘 먹고 잘살았으면 감사해야 한다. 앞으로 삼 십여 년을 더 살려면 뭔가를 처음부터 새롭게 배우는 게 당연하다.) 하나 더. 연구의 '객관적 평가'가 불가능한 인문사회 분야의 교수는 딱 두 종류다. '이상한 교수'와 '아주 이상한 교수', 끝까지 우겨 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교수가 은퇴 후를 걱정하며 정치권이나 기웃거리면 진짜 이상해진다!(p. 199). 한번 비관적 생각에 빠지면 모든 것을 꼬아 생각하는 내 오래된 습관이 되살아났다. 인생 사는 데 비관주의가 아무 도움 안 된다는 것은 수년 전 교수를 그만둘 때 이미 알았다. 사태의 비관적 전망을 예고하는 것은 '지식인'의 의무다. 이런 비관주의는 '지적 우월함'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나름 지식인'을 아침에 만나면 하루 종일 뭔가 불편한 거다. 스스로의 삶에 대한 비관주의적 태도는 아주 치(p. 235)명적이다. '행복한 지식인'은 형용모순이다. 비관주의보다 아무 대책 없는 낙관주의가 더 심각하다. 이른바 '비현실적 낙관주의'다. 자신의 미래에 관해 아무런 합리적 근거 없이 낙관적 태도를 취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면 다른 흡연자의 폐암 확률은 실제보다 훨씬 높게 생각하고, 자신이 폐암에 걸릴 확률은 현저하게 낮춰 생각하는 흡연자의 경우다. 한•중•일 세 나라를 비교하면 한국인의 '비현실적 낙관주의'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과도한 자기애에 빠져 있는 비현실적 낙관주의자의 두드러진 특징은 실패나 좌절을 겪게 되면 아주 쉽게 분노한다는 거다. 자기 탓이 아니기 때문이다. 죄다 남 탓이다. 반만 차 있는 물컵을 보고 '아직도 물이 반이나 남았네' 하는 것도 진정한 낙관주의가 아니다. 심리적 마스터베이션인 '정신 승리'에 불과할 뿐이다. 반만 남은 물을 작은 컵에 옮겨 담아 꽉 채워야 진짜 낙관적인 거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 바꾸고 변화해야 진정한 낙관주의자다(p. 238). 빈 책장을 채우며 늙어가기로 했습니다! 아, 이건 최근 내가 한 생각 중에 가장 훌륭한 생각입니다. 주제별로 꽂혀 있는 내 책장의 책들을 보면 가슴이 뜁니다. 빨리 그 책들을 읽고 소화해 새로운 주제의 책을 쓰고 싶어서 그럽니다. 책을 사서 책장에 꽂는 일을 내가 가장 행복해한다는 사실을 '미역창고'의 책장 공사를 하며 깨달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좋은 책을 사기 위해 그동안 영어, 일본어, 독일어를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던 겁니다. 외국 여행 가면 책방만 돌아다닙니다. 책을 사지 않는 여행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언어가 낯선 프랑스, 이탈리아 같은 나라를 여행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습(p. 269)니다. 이 나라에는 영어로 된 책이 거의 없습니다. 게다가 친절하지도 않습니다. 아무튼 조상 덕에 먹고사는 나라들은 앞으로 많이 고생 좀 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나는 책을 사려고 여행을 합니다. 좋은 책, 새로운 주제의 책을 사서 한국으로 보내고 나서야 돈을 제대로 쓴 것 같아 마음이 편해집니다. 그중 정말 '좋은 책' 한 권은 남겨서 여행 내내 읽고 다닙니다. 여행 중에는 신기할 정도로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많이 생깁니다. 좋은 책 한 권은 그런 아이디어가 샘솟게 하는 '마약'같은 겁니다. 내가 이렇게 여수 남쪽 섬에 내려와서도 그리 큰 문제 없이 버티고 살 수 있는 이유는 영어, 독일어, 일본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식의 편집', 즉 '에디톨로지'를 가능케 하는 데이터 축적에 아주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하라면 결코 하기 싫은' 젊은 날의 그 경험들이 지금 이렇게 나를 먹여 살리고 있습니다(p. 272). 내 책장을 가득 채운 책들을 보면, 열이면 아홉이 꼭 물어봅니다. "이 책들을 다 읽으셨어요?" 아, 말문이 콱 막히는 질문입니다. 그런 질문은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하는 겁니다. 단언컨대, 책은 다 읽고 책장에 꽂아두는 게 아닙니다. 앞으로 읽으려고 책장에 꽂는 겁니다! 책장에 책이 그렇게 많은 이유는 내가 알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는 뜻입니다. 책장에 꽂힌 책들을 볼 때마다 삶의 의욕이 팽창되는 것을 느낍니다. 음탕한 영화를 볼 때 몸이 뻑뻑해지는 그 느낌과 거의 같은 수준입니다. 아직 다 읽지는 않았지만 어떤 책이 책장 어느 위치에 있는가는 '정확히' 입니다. 그리고 그 책이 어떤 내용인지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 책 주위에 어떤 책이 있는지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책장은 원고를 쓰다가 어떤 책이 필요해지면 바로 찾아내 읽을 수 있게 잘 정리되어 있어야 합니다. 수시로 책장의 책들이 '헤쳐 모여'를 반복합니다. 내 관점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책장의 책을 다시 정리하는 행위 자체가 내겐 '지식의 편집' 과정입니다. 이전에 전혀 관련 없던 책들이 새롭게 연관되어 붙어 있게 된다는 것은(p. 273) 두 책이 담고 있는 지식을 연결시켜주는 내 '메타 언어'가 새롭게 생겨났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p. 274). 책은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 게 아닙니다! (물론 소설과 같은 문학작품은 예외입니다.) 세상에 바보 같은 경우가 '책은 끝까지 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책을 읽는 겁니다. 그러니 책을 안 읽는 겁니다. 책에는 필요한 부분만 찾아 읽으라고 목차가 있고 색인이 있는 겁니다. 책을 살 때 먼저 목차나 색인의 키워드를 살펴보라고 그렇게 자세하게 정리되어 있는 겁니다. 자기 관심이 명확해야 목차나 색인을 찾아보게 됩니다. 그렇게 책을 읽어야 '좋은 이웃의 법칙'에 따라 책을 잘 정리하게 됩니다. 원하는 내용을 찾아(p. 276) 읽다가 정말 재미있으면 읽지 말라고 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게 됩니다. 책을 끝까지 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로워야 책을 많이 읽습니다. 책도 많이 사게 됩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책을 펴놓고 읽어도 됩니다. 좋은 책은 '새끼를 많이 치는 책'입니다. 읽다 보면 더 읽고 싶은 책들이 고구마 뿌리처럼 딸려 나오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야 책장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집니다(p. 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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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10-13
  • 【북토크455】 프로파일러는 어떤 사람인가?
    범죄자를 상대하는 직업은 행복할까? 참으로 사람이 사는 모습이 다양하다. 범죄자를 만나 사건을 풀어가는 프로파일러의 삶에 대해 엿보는 기회가 됐다. 예스24-현직 프로파일러인 저자가 프로파일러가 어떤 직업이고, 무슨 일을 하는지를 소개하며 범죄자를 대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어려움, 그럼에도 끝끝내 포기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진솔하게 풀어낸다. 저자는 가정의 해체와 외로움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삼거나 범행 동기가 불분명한 최근 범죄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보고, 흉악 범죄와 사회에 대한 자신의 의견도 내놓는다. 억울한 피해자가 없도록 단 한 건의 미제 사건도 남기지 않기 위해 저자는 오늘도 끊임없이 공부하며 사건 현장을 누비고 있다. 시체를 발견하기만 하면 모든 상황이 끝나리라고 생각한 그녀는, 자신이 예상한 것과는 상황이 뭔가 다르게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한 듯했다. 이제 다 끝난 거냐고, 자신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진짜 아무것도 몰랐다고 몇 번이나 반복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수사팀에서는 다음 날 아침 10시까지 경찰서에 나와달라고 요청했다. 그녀는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것 같았지만 알겠다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나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녀가 경찰서에 오지 않았고 집에선 인기척이 없다는... 약속한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아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집으로 찾아갔을 땐 이미 그녀가 극단적 선택을 하고 난 다음이었다(p. 33). 하지도 않은 일을 만들어서 벌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렇지만 죄를 짓고도 본인만 빠져나가려는 사람을 눈앞에서 그냥 놓아둘 수는 없다. 그 오빠라는 사람은 피의자와 동거하기 전 쉼터에 있던 다른 미혼모와 이미 동거한 사실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 수사에서 빠져나가면 또 다른 대상을 물색해서 수급비에 의존하며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기생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특성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런 사람들은 특별한 죄의식도 없이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먹잇감을 잘도 발견해낸다. 그러니 예방을 위해서라도 잘못을 밝혀야 했다(p. 59). 큰 도움이 된 상담 공부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예전에 비하면 최근엔 살인사건이 그리 빈번하게 발생하지 않고(강력범죄 중 살인사건 발생 건수는 10년 전만 해도 연간 70~80건이었으나 최근 1~2년은 40여 건에 그쳤다), 과학수사요원들의 근무 시스템도 바뀌어서 새벽에 불려 나갈 일이 많지 않다. 하지만 당시엔 살인사건만 나면 늦은 밤이나 새벽 시간에 상관없이 출동해야 했고, 목욕탕에 갈 때도 카운터에 휴대폰을 맡기고서 전화가 오면 불러달라고 신신당부하기도 했다. 선배들과 함께 현장에 가야 했기 때문에 늦으면 엄청 눈치가 보였다. 결국 발령받고 나서 1년 만에 지방청과 가까운 집으로 서둘러 이사하기도 했다. 선배들보다 빨리 출동하기 위해서였다. 현장에 도착하면 현장 내외부를 살피는 것은 물론, 시체를 자세(p. 90)히 들여다보고 어느 쪽에서 어떻게 공격당했는지 상태를 면밀히 관찰해야 하는 일도 쉽지는 않았다. 사건이 발생한 직후 발견된 현장은 그래도 나은 편이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 시체가 부패하기 시작했거나 훨씬 시간이 지나고 나서 신고돼고도 부패가 일어나면 상황은 더 어려워졌다. 이러다 보니 친정 부모님이나 가족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계속 근무할 수 있겠느냐, 너무 힘들지 않겠느냐며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그렇지만 상담 공부를 할 때 상담실에서 접하는 문제와 나를 떼어놓는 연습을 해서인지 현장을 둘러보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건 사진을 들여다보고 하는 일들이 힘들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밤마다 꿈에 나타나거나 하지 않고 그냥 업무로 분리되는 느낌이었다. 가끔 감정이 너무 메말랐나 싶을 정도였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게 되는데 다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니 어떻게든 그 억울함을 해결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더 커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p. 91). 묻지마 범죄는 단순 상해나 방화, 살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검거 후 범죄자들이 피해자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거나 원한 같은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피해자로서는 트라우마를 평생 가져갈 수도 있는 심각한 범죄다. 지하철이나 버스, 공공 장소 등에 폭발물을 설치하거나 커터칼을 들고 다니며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의 다리를 긋는 경우도 있고,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만 골라서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그리고는 조용히 자신이 사는 곳으로 돌아가거나 다니던 직장에 복귀해서 근무하기를 반복하다가 검거된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길거리에 있는 쓰레기더미에 불을 놓기도 하는데, 운이 좋아 초기에 검거되지 않으면 점점 대담해져서 재활용 쓰레기가 수북하게 쌓인 곳에 불을 붙여보는 등 더 큰불로 번질 가능성이 있는 곳에 불을 지른다. 그러고 나서 본인도 겁을 먹고 직접 119에 신고하거나 불을 끄는 장면을 감상하며 나름대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물론 살인으로까지 연결되는 범죄도 꽤 있다. 자신의 분노나 스트레스를 조절하지 못하고 거리를 헤매(p. 158)던 중 누군가가 기분 나쁘게 쳐다봤다는 이유로, 웃었다는 이유로, 자신을 피하려고 했다는 이유로, 늦은 시간에 다닌다는 이유로 그들의 표적이 된다. 피해자로 선정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점을 조심하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삼는 이들의 레이더망을 피할 방법은 없다는 생각이다. 굳이 방법을 제시하라고 하면 아무런 이유 없이 시비를 거는 사람에게는 말을 섞으려고 하지 말고 얼른 그 장소를 피하라는 정도의 조언이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묻지마 범죄는 범인을 조기에 검거하는 것이 유일한 예방법이기 때문에 가까운 지구대에라도 당시에 벌어진 상황을 자세히 신고하려는 시도는 중요하다(p. 159). 자신이 왜 범행하게 되었는지 모르는 경우도 아주 많다.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인으로서 해야 할 일은 범죄를 저지른 그들을 정확히 이해하고 범행 동기를 탐색해 범죄 전, 중, 후의 행동들을 분석해서 유사한 범죄가 발생하면 조기에 해결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담심리와 교육학을 전공한 내가 생각하는 또 하나의 목표는 범죄자들이 나와의 만남을 통해 아주 작은 것(p. 188) 하나라도 자신에 대해 알게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통찰하지 않는 그들에게 범죄와 만나기까지 자신의 삶을 면밀히 살펴볼 기회를 주고 싶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자신의 범행을 시인하고 관련된 세부 사항을 설명해서 더 큰 벌을 받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도 면담을 마치며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는 그들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오로지 자신에게만 시간을 할애해서 이야기 를 집중해 들어주는 경험을 해보지 못한 이들로서는 범죄자임에도 프로파일러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것 같다. 일은 이미 벌어졌고, 검거된 상황에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사실대로 말할지 범죄자는 끊임없이 갈등할 것이다. 왜 범죄를 저질렀고 피해자와 어떤 상호작용이 있었는지는 범죄자만이 알고 있는 내용이다. 수사관들은 이미 벌어진 상황을 보고 묻지만,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하고 아니고는 범죄자의 선택인 것이다. 열심히 설명한다고 해도 자신의 형량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리라고 판단되면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은 장면들을 떠올리는 데 애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우리도 마음을 잘 알아주는 사람과의 대화가 편하고 오랜 시간 이야기하고 싶듯, 강력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도 비슷한 마음이리라 추측해본다(p. 189).
    • 오피니언
    • 책소개
    2026-10-08
  • 【북토크454】 무의식이 보내는 신호, 꿈
    나는 꿈을 잘 안꾼다. 그리고 꿈을 꾸어도 잘 기억나지 않고, 꿈을 믿지도 않는다. 그러나 심리학은 꿈에 대해 관심이 많다. 무의식의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 읽었고, 기회가 될 때마다 이 저자의 책을 찾아 읽을려고 한다. 교보문고-“인간은 누구나 깊고 오롯한, 본질적인 자신을 알고 싶은 욕망이 있다. ‘나는 누구일까?’ ‘내게 벌어지는 이 모든 일들은 어떤 인과관계를 지니는 것일까?’ ‘내 삶에 궁극적 방향성은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은 존재에 대한 고민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만나게 됩니다. 꿈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데 매우 유용하고 안전한 도구입니다.(6쪽)” 의식이 깨어 있는 낮과 달리 꿈을 꾸는 동안 우리는 오롯이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간다. 꿈은 우리에게 말을 건네지만, 무의식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언어는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와는 다른 방식으로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밤 꿈을 꾸면서도 그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간밤에 꾼 꿈을 쉽게 망각해버린다. 현대인들에게 꿈은 여전히 비과학, 혹은 미신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꿈이야말로 자기 자신을 알 수 있는 확실한 목소리이다. 우리는 존재에 대한 고민들을 매일 밤 꾸는 꿈을 통해 찾을 수 있다. 「나의 꿈 사용법」은 보이지 않는 꿈 세계가 궁금한 이들, 그리고 꿈을 통해 좀 더 본질적으로 자신을 알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이 책은 꿈에 대한 다양한 층위뿐만 아니라 그 안에 감춰진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모습, 문화적인 의미들을 이야기한다. 꿈은 자신의 내면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텍스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깊고 오롯한, 본질적인 자신을 알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나는 누구일까?' '내게 벌어지는 이 모든 일들은 어떤 인과관계를 지니는 것일까?' '내 삶에 궁극적 방향성은 있을까?' 존재에 대한 고민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만나는 질문들입니다. 꿈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데 매우 유용하고 안전한 도구랍니다(p. 6). 꿈은 무의식 세계가 의식 세계로 말을 거는 자연스러운 방식이다. 그 안에는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 자랄 때 결코 허용되지 않았던 모습도 있다. 또 집안이나 사회 규범에 따르느라 억압되고, 편향되게 발달하느라 남겨진 부분들이 간직되어 있다. 무엇보다 온전한(p. 15) 자신을 발견하는 데 필요한 재료와 자원이 있다. 이런 무의식이 꿈이라는 말 걸기 방식을 통해 본래의 자신을 만나는 데 장애물이 되는 상처들을 다시금 어루만지도록 계기를 만들어준다. 또 이전에는 몰랐던 자신의 잠재된 가능성들을 발견해 창의적인 삶을 살도록 도와준다. 저마다의 '진정한 나'를 발견하도록 접촉을 시도해오는 방식이 꿈인 것이다. 그러니 ‘꿈에 관심을 갖고 꿈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꿈과 친해지’는 것이 필요하다(p. 16). 꿈 이론에서 악몽이란, ‘지금 여기에 네 본성에 어긋나는 게 있어. 뭔가를 시급히 바꾸어야 하니 제발 깨어나서 이 상황을 좀 볼래?’ 라는 메시지다. 무의식은 급박하게 경각심을 촉구할 때 악몽의 형태를 취한다. 왜냐하면 진화의 역사에서 인간은 신나는 꿈을 꿀 때보다 끔찍하고 잔인한 악몽을 꿀 때 훨씬 꿈을 잘 기억하고 꿈에 관심을 더 쏟는다는 사실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악몽은 괴로움을 주려는 게 아니라 시급함을 알려주는 신호다. 꿈이 최선을 다해 현재의 위기를 알리고 상황을 개선하라고 촉구하는 것이다(p. 28). 꿈에 대해 이야기할 때, 흔히 꿈에 등장하는 자신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꿈을 바라본다. 이 존재를 꿈자아 dream ego라고 하는데 꿈자아가 꿈에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는지,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어떤 느낌을 갖는지에 따라 좋은 꿈 혹은 나쁜 꿈이라 판단한다. 그렇지만 꿈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 즉 사람뿐 아니라 동식물, 그리고 무생물이나 밝기까지 어느 것도 꿈꾼 이의 심리를 반영하지 않는 요소는 없다. 따라서 꿈에 등장하는 모든 것이 자신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된다. 이를테면 자신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사람이 꿈에 등장했다고(p. 34)치자. 꿈자아는 실제 상황처럼 그 사람 앞에서 몸이 굳고 입조차 떨어지지 않아 꼼짝 못할 것이다. 이런 꿈을 꾸고 일어나면 '아니, 이 사람은 꿈에까지 등장해서 나를 힘들게 하는구나'라고 탄식한다. 그렇지만 이럴 때, 꿈자아뿐 아니라 꿈자아를 힘들게 하는 상대도 자신의 일면임을 상기하자. 꿈 작업 법칙 중 하나, 내 안에 없는 것은 내 꿈에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자문해야 한다. '내게 그 사람처럼 안하무인이고 편협하고 강압적인 부분이 있는가?' 불편하겠지만 이 질문을 숙고한다면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p. 35). 후쿠시마 사태는 해결의 실마리조차 없는 듯하다. 쓰나미가 강타한 어촌 마을들은 재건 계획만 난무할 뿐 공사는 진척이 없다. 건설입자들은 도쿄 올림픽을 위해 매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또 다른 투사의 드라마가 올림픽이다. 올림픽은 국민의 눈을 돌리고 귀를 막아 근거 없는 행복감과 환상을 심어주기에 좋은 수단이다. 현실을 망각하게 만드는 주술로 이용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방사능도 쓰나미도 지진도 잊고 일본의 건재함을 만방에 떨치며 인류의 평화를 노래합시다! 절묘한 타이밍이다. 이 야만의 드라마는 인류가 자행한 집단적 편견과 이에 따른 파괴 행위 때마다 반복되어왔다. 역사상 가장 참혹하고 사악하고 파괴적인 행위는 전부 투사의 드라마가 연루되어 있다. 나치가 유대인에게, 백인이 흑인에게, 기독교인이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에게, 유럽 백인이 북미 원주민에게, 제1세계가 제3세계에게, 한국인이 외국인 노동자에게, 그리고 남성이 여성에게 투사를 한다. 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을까? 긴긴 역사적, 정치적 사건들을 단순화 하려는 의도는 없다. 하지만 암흑의 역사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기여 없이 일어나지 않는다. 내 안에 한 치도 없는 내용이라면, 아무리 집단광기가 회오리를 일으켜도 동참할 수 없다. 사회 문제를 개인의(p. 84) 문제로 귀결시켜 책임을 개인에 전가하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 그럼에도 시작은 한 사람부터라는 것도 사실이다. 집단의 광기에 에너지를 보태지 않으려면 결국 나부터 그러한 각성이 비롯되어야만 한다. 이런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집단 의식을 만든다(p. 85). 로맨틱 러브는 투사이다. 투사는 고착되어 있을 경우 헤어나올 수(p. 109)없는 늪이 된다. 하지만 앞서 강조했듯 투사의 본질은 완전에 대한 요청이자 사랑이다. 보이지 않던 면모나 존재의 첫 만남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투사이고 투사는 눈을 안으로 돌려 자기 안에 있는 무의식의 원형을 의식화하라는 초대이다. 융이 내면의 파트너와의 관계를 '개성화의 결작'이라 한 이유다. 일생이 '내면의 파트너'에 헌신할 때 삶의 드라마에서 저마다의 걸작이 완성될 것이다(p. 110). 중년의 위기는 그림자의 초대 중년의 위기는 그림자 세계를 직시하는 통과의례로의 초대다. 중년이 되면 기존에 살아오던 방식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 에너지는 고갈되(p. 126)고 불안, 초조와 허무가 밀어닥친다. 우울에 빠지고 자신뿐 아니라 술이든 일이든 도박이든 사랑이든 중독으로 빠져들기도 한다. 이는 의식적으로 그림자를 찾고 만나지 않는 이에게 그림자가 찾아왔다는 신호이다. 위기는 언제나 기회와 맞닿아 있다.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또 전혀 모르고 있던 영역으로 눈을 돌리라는 초대장이 무의식으로부터 날아든 순간이다. 이 초대에 응한다는 말은 혁명을 위한 맹세와 같다. 삶의 방향을 180도 전환하라는 요구는, 마치 폴 고갱이 파리의 은행원 자리를 박차고 남태평양 섬을 찾아 떠났듯이 막다른 선택 상황으로 몰고간다. 무모하고 극단적이었지만 고갱도 이런 선택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이런 무의식의 초대 앞에서 도무지 어찌해야 할지? 그 방법이 모호하기만 하다. 우리는 그림자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먼저 그림자의 생리를 알아야 한다.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언제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자취가 드러날 때 잡아두는 방법은 있는가? 개인의 그림자뿐 아니라 집단의 그림자도 있는가? 그림자와 백년가약을 맺는다는 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 자신을 만나는 일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자신의 그림자를 대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최선과 최악을 만날 것이다. 두렵지만 신비한 이 여정은 진정한 나를 찾는 데 필연적인 길이다. 용기와 지혜를 겸비한 사람만을 위한 영광된 길이기도 하다. 그림자라는 중년의 초대는 이런 준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p. 127). 꿈은 존재의 근원에서 밤마다 시도해오는 친절한 말 걸기라 했다. 꿈 말을 경청하다 보면 꿈의 상징들이 신비로운 내면의 심장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준다. 영혼의 깊이로 향하는 모험에 기꺼이 '예'라 답하는 일생의 언약을 할 때 내면의 노래는 점차 또렷하게 들린다(p. 172). 자주 꾸는 꿈 20가지와 상징적 의미 꿈을 꾸고 '무슨 뜻이지?' 궁금할 때 의미 파악에 도움되는 힌트가 있다. 가장 보편적인 꿈의 은유적 표현을 익혀 심오하고 풍요로운 꿈 세계를 탐색해보자(p. 190). 나체로 돌아다녀요 평상시와 달리 나의 생각이나 감정을 사람들에게 과잉노출했는지? 꿈에서 다른 사람들도 나체인 나(꿈자아)를 발견하고 당혹해하는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자신은 속내를 많이 드러내어 편치 않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은 경우이다. 가끔 꿈에 등장하는 군중들이 내가 벗은 모습을 보고 당황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타인들도 그 상황이 불편했다는 말이니 그에 대해 뒷수습을 하거나 가벼운 사과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가 빠졌어요 감당하지도 못할 만큼 많은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인가? 내가 이 일들을 주어진 시간 안에 다 처리할 수 있을까? 이는 자신감과 관련 있는 질문이다. '너는 할 수 없어'라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라. 일을 줄이거나 우선순위를 정하거나 도움을 줄 사람을 찾거나, 어떤 식이든 상황을 다룰 수 있기에 꿈을 기억한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사람이 죽어요 내가 죽든, 옆 사람이 죽든, 자살을 하든, 시체를 보든 다 죽음의 꿈이다. 죽음은 커다란 성장과 변화의 표식이다. 내가 급격하게 성장하지 않았나? 기존의 이미지로는 변화하고 성장한 나의 모습을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이기에 그 이미지가 사라지는 것이다. 죽음 중에서도 자(p. 191)살이 가장 특별한 성장의 징표이다. 왜냐하면 이 변화나 성장이 나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똥을 못 누어요 볼일은 급한데 변소를 못 찾거나 화장실은 찾았지만 더러워서 들어갈 수가 없는 등 어떤 이유든 대소변을 보지 못했다면 자문해보자. 지금 내 안에서 올라오는 어떤 생각이나 감정을 인정하지 못하거나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이나 감정도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하면 마음에 변비가 걸린다. 꿈을 다시 들여다보면서 '아, 내가 지금 이런 마음이 있구나!' 이해하고 인정해주면 그날 밤 시원하게 볼일 보는 꿈을 꿀 확률이 높다. 파트너가 바람을 피워요 남자 친구가 혹은 여자 친구가, 아니면 아내나 남편이 꿈에서 바람을 피운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더 중요한 질문은 '내 내면의 남성성 혹은 여성성이 나를 속이고 있지 않은가?'이다. 꿈에 등장하는 누구든, 심지어 무생물까지도 꿈꾼 사람 심리의 어떤 측면을 드러낸다. 나를 배신하는 내 파트너도 나라는 점을 기억하라. 무서운 사람한테 쫓겨요 ‘변화를 거부하고 성장에 저항하고 있나? 대면을 피하려고 끝없이 도(p. 192)망 다니는 일이 무엇인가?’ 더 이상 도망만 치지 말고 정면으로 바라볼 때라는 걸 꿈은 말해주고 있다. 도망치는 꿈은 죽는 꿈과 연결되어 있다. 회피하던 문제를 직시하면 스트레스를 주는 꿈 상황이 달라진다. 섹스를 했어요 노골적인 섹스가 일어나는 꿈을 꾸면 민망해서 꿈 이야기를 잘 안하려 하지만 이는 꿈 언어를 모르기에 벌어지는 상황이다. 꿈에서 적나라하게 섹스가 이루어지고 오르가슴을 느끼거나 그런 섹스를 시도하는 경우는, 대단히 영성적인 체험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신과의 합일, 깊은 전율, 감동 같은 특별한 체험이 일어나지 않았나 살펴볼 일이다. 신발을 잃어버렸어요 신발을 찾는데 내 신발만 없거나 맨발로 다니는 상황이라면 나를 지탱하고 도움을 주는 기반에 변화가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굳건히 두 발로 땅을 딛고 서려하나 제대로 된 보호막이 없는 상황이다. 궁극적으로는 삶의 기반에 관한 질문이라 정체성과도 연결된다.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꿈은 이 물음을 성찰하고 답을 찾도록 촉구한다. 차가 나와요 꿈에 나오는 이동 수단은 다양하다. 탈 것이 등장하면 관계에 대해 질문해보라. 버스, 지하철, 기차, 비행기가 나오면 나와 기관, 즉 본인이(p. 193) 다니는 학교, 직장, 교회와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를 살펴보라. 자전거나 자가용이 등장할 때는 개인적인 관계에 대한 질문을 해보라. 차가 원활하게 나가는지? 브레이크가 고장났는지? 기름이 떨어졌는지? 충돌사고가 났는지? 물 꿈을 꾸어요 바다, 강, 호수, 우물, 그릇에 담겨 있는 물, 수영장 물 등 다양한 형태의 물은 감정, 정서의 상황을 나타낸다. 물의 색깔이나 깊이, 온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라. 압도적인 깊이인지?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지? 풍랑이 치는지? 홍수가 났는지? 고요하고 물 표면이 아름답게 반짝이는 지? 물이 탁한지? 감정에 빠져 허우적대는지? 감정의 급류에 휩싸일까 두려운지? 불이 났어요 불은 '탄다'고 표현하는 열렬한 감정, 즉 타오르는 화, 뜨거운 열정, 이글거리는 시기, 질투와 연관지어 볼 수 있다. 꿈에 나오는 불 가운데 노출되면 화상을 입거나 뜨거운 불, 무언가를 태우는 불, 그리고 불 속으로 들어가도 전혀 데지 않는 '성령의 불'을 함의하는 불도 있다. 동물이 등장해요 동물은 기본적으로 본능의 에너지를 나타낸다. 동물이 어떤 상태인지? 무슨 동물인지? 본능의 에너지는 생존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p. 194)다. 건강하게 살아 있는 본능은 정신적 육체적 영성적 건강의 기반이다. 동물의 생태나 특징에서도 본능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집이 자주 나와요 어떤 집인가? 집 상태는 어떠한가? 내 영혼이 거주하는 자리가 집이다. 건물 종류나 상태로 현재 나의 상태를 알 수 있는 힌트가 된다. 특히 집은 육체적 건강 상태를 가늠해보는데도 좋은 실마리가 된다. 페인트가 벗겨진 정도인지? 대들보가 위험한지? 골조가 튼튼한지? 잘 보존된 집인지? 충분히 넓고 아늑한 집인지? 폐허같은 황량한 곳인지? 음식을 먹어요 식당에서 꿈이 전개되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꿈은 영적인 자양분과 연관이 된다. 음식을 먹으면 아프다는 속설은 아픔 없이 커다란 영적 성장이 일어나기 쉽지 않기에 그런 것 아닌가 추정해본다.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경우 염려보다는 오히려 감사할 일이다. 군대에 다시 오래요 남자들에게 군대는 통과의례의 장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한국 남성들에게 가장 흔한 악몽인데, 군대처럼 또 다른 통과의례나 그에 상응하는 치열함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p. 195). 죽은 사람이 나와요 죽은 사람이 등장하면 꿈을 꾸는 동안, ‘이미 죽었는데 여기 있구나’ 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는 사자의 방문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대다수는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으로 인식한다. 이때는 내가 그 사람에게 투사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질문해보자. 예지몽을 꾸어요 꿈에는 언제나 예언적인 층위가 있다.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날아다녀요 창의적인 사람들이 나는 꿈을 많이 꾼다. 인간이 새처럼 난다는 것은 중력을 거스르는 일인데, 중력이란 그 자체로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힘이다. 심리에서 중력처럼 작동하는 것은 사회의 인습이나 관습이다. 인습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발상의 전환이니 자연히 창조와 관련된다. 머리카락이 달라졌어요 머리에서 자라나오는 것. 즉 머리카락은 생각을 의미한다. 달라진 머리 모양은 예전과는 다르게 생각하게 된 어떤 내용을 뜻한다. 이때 꿈에 다르게 표현된 헤어스타일을 관찰하면 변화된 생각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짧은 머리, 긴 머리, 곱슬 머리, 금발, 퍼머 머리, 대(p. 196)머리, 원형 탈모 등등, 각각의 헤어스타일이 일반적으로 뜻하는 바를 떠올려보라. 예를 들어 '백발'로 나오면 흰머리는 지혜의 상징이기도 하고, 연륜에 대한 이미지도 있다. 어린 나이에 머리만 희다면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사는지, 혹은 에너지의 불균형은 아닌지도 생각해볼 일이다. 꿈이 전체적으로 어두웠어요. 환하게 밝아요 꿈에서 빛의 특질은 중요하다. 빛은 의식의 밝기를 나타내기에 꿈이 제시하는 내용에 관해 내 의식의 밝기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볼 수 있다. 따라서 빛의 변화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잿빛이나 어둡게 시작하다가 어느 시점부터 밝아질 수도 있고 역으로도 가능하다. 하나의 꿈 안에서 일어나는 빛의 변화는 꿈이 제시하는 문제에 관한 의식의 진화 속도를 가늠해보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p.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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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10-07
  • 【북토크453】 인생이 무엇인지에 대한 한 견해
    고미숙 작가의 책은 기회가 되는대로 찾아 읽어본다. 고전연구가이기에 내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볍게 읽어볼만한 책이다. 예스24-상품과 소비의 범람, 그 이면의 빈곤과 양극화. 전염병과 기후위기라는 전지구적 재앙. 우리는 이 위기의 시대를 어떻게 건너야 하는가?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고미숙의 인생 특강』을 통해 ‘질주를 멈추고 욕망의 방향을 전면적으로 바꿀 것’을 그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소비와 쾌락에서 휴식과 성찰로, 외적 확장에서 내적 충만으로, 자연의 도구화에서 자연과의 공존으로!” 우리가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 그리고 평화롭고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 새로운 길로 방향을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저자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다. 이 책은 저자가 그동안 각기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했던 네 번의 강의를 책으로 엮었다. 화폐로 환산되는 거창한 ‘가치’보다 삶 자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첫번째 강의(「삶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나요?」)부터 ‘길 위에서’ 접속하고 공부하는 실천적인 지침을 제공하는 마지막 강의(「길 위의 공부」)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멈추고, 접속하고, 성찰할 것’을 줄곧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꿈’과 ‘가치’, ‘의미’ 같은 것들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 그것들이 우리의 ‘에로스’적인 생명의 힘을 갉아먹고 있지는 않은지를 ‘로고스’적 지혜로 성찰해야 하며, 그 길은 집을 나서서 고전과 접속하고 세계와 접속할 때 열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삶이 무엇인가, 이걸 근원적으로 한 번 살펴보면, 산다는 건 어느 날 어떤 시간과 공간, 시공에 내가 던져지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왜 지금 하필 여기에 던져져 있는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걸 아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걸 알면 여기 안 오겠죠. 그걸 아는 존재는.... 다 아는데 왜 옵니까. 그리고 이것은 너무너무 평등한 거예요. 금수저건, 흙수저건, 엘리트건 평생 꼴찌만 한 사람이건, 모두에게 동일한, 무지라는 생명의 토대, '모른다'라는 것. 그래서 삶은 다 어디서 시작하냐 하면 '모른다'에서 시작하는 거예요. 내가 왜 지금 여기 있는지 모르겠는데, 삶이 시작이 되어 버린 거예요. 만약에 그 의미를 찾아야 된다면 갓난아기들은 돌 전에 다 삶을 포기해야 되지 않을까요. 걔들이 뭘 알겠습니까. 왜 왔는지, 왜 살아야 되는지 알고 사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삶은 이 무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기나긴 앎의 여정'이다, 이렇게 정의할 수 있어요. 그런 점에서 모든 존재는 태어나는 순간 이미 구도자가 되는 겁니(p. 17)다. 누구에게나 삶은 그 자체로 절실하니까요. 그래서 인생이 뭐냐. 나에게 던져진 길, 주어진 길 위에서 나의 길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이렇게 정의를 하면 일단 '의미가 있어야 돼' '꿈이 있어야 돼', 이런 건 굉장히 부차적인 것이 됩니다. 이렇게 삶이 시작되기 때문에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세상만사가 너무너무 궁금해요. 너무나 알고 싶어요. 이 알고 싶어서 미치는 거, 이게 인간의 존재성이에요. 왜냐하면 태어날 때 완벽한 무지에서 시작하니까요. 그래서 인류의 역사는 어떤 점에서 모든 걸 다 알고 싶다고 하는 그런 지식의 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갓난아기 때부터 성장기, 청춘, 중년, 장년, 노년까지, 삶을 이끌어가는 건 질문인 거예요. 질문이 사라지는 순간 나는 좀비가 됩니다. 그건 청년이든 노년이든 똑같아요. 청년은 좀비가 되고, 노년은 꼰대가 되는 거죠. 똑같은 대답을 반복하는 것. 반복은 생명과 완전히 반대예요. 반복은 반생명이에요. 그래서 계속 질문을 던져 가는 것이죠(p. 18). 그런데 쾌락과 쾌락 사이에 괴로움이 있어요. 왜냐하면 쾌락은 정•기•신을 굉장히 많이 쓰게 하거든요. 그 대가로 기진맥진하거나 너무 공허하다, 이런 느낌을 받게 됩니다. 사회활동에서도 사업을 너무 열심히 하느라 잠 안 자고해서 성공을 하고 나면 그다음에 너무 헛헛해지는 거죠. BTS도 그렇게 외롭다는 거예요. 그 청년들이 전 세계를 주름잡는데, 저는 제가 가까이 아는 청년들이면 정말 걱정이 될 거 같아요. 얼마나 외로울까. 공연이 끝난 뒤에 환호성 뒤에 서 얼마나 기진맥진할까.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수만 군중 앞에서 그들을 즐겁게 해준다는 일이.... 그(p. 106)거는 고생 중에 고생이에요. 그러니까 자본주의의 모든 성공한 존재들은 이런 패턴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걸 저는 확신합니다. 성공해서 '이걸로 충분해' 라는 게 있을 수 없어요. 그런데도 이런 사이클이 반복되는 것이 좀 이상하지 않나, 이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보라는 겁니다(p.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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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10-07
  • 【북토크452】 잊혀진 유태인 빨치산들 이야기
    2차 대전 가운데 항전한 여러 빨치산들이 있었다. 그들 중 유태인으로만으로 구성된 빨치산은 어디에나 속하지 못하고 겉돌았다. 가장 큰 고통을 당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계속 외면 당하는 유태인들의 아픔과 전쟁의 고통이 잘 드러난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예스24-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경험을 토대로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자전적 성찰 회고록을 쓴 이탈리아의 화학박사 프리모 레비의 자전적 장편소설이다. 생존 당시 세계의 수많은 양심적인 지식인들과 인문주의자들이 '당대의 가장 고결하면서도 가장 고독한 작가'라는 찬사를 보냈던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아우슈비츠 경험과 동유럽 유태인 빨치산 투쟁을 그렸다. "홀로코스트를 제대로 표현하기에는 인간의 언어가 너무 빈약하다"고 고백했던 프리모 레비. 홀로코스트 앞에서는 그 어떤 언어도 무력하고, 그 어떤 진실도 밝힐수록 더욱 초라해지지만 그는 기어이 그것을 언어로 표현해내고자 한다. '신이 없는 곳'이라고 불릴 정도로 참혹한 현장인 아우슈비츠에서 생존 자체를 혼란스러워 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우리네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나치의 추적과 공포로부터 숲속으로 도망다니는 이질적인 두 젊은 유태인의 야영생활을 그린 부분은 특히 인상적이다. 비록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지만 굳이 그걸 붙잡고 싶은 희망은 마치 질식상태 직전의 마지막 호흡과도 같은 것이다. 작가는 흥미진진한 빨치산 부대의 활동, 여러 강제수용소 포로들의 고백들, 러시아와 폴란드 빨치산 부대들과의 만남, 이따금 마주친 나치병사들, 빨치산 대원들의 사랑, 유태인 풍자극, 내면의 고통과 정신적인 변화 같은 이야기들을 드라마틱하게 전한다. "그리고 여기, 이 느슨한 하나의 공동체에 합류한 이상 우리에겐 비밀이 없네. 그게 여기 총책임자로서의 내 원칙이네. 그동안 많은 이들이 왔다가 떠나고 또 죽음을 맞기도 했지. 또 많은 젊은이들도 왔다가 내 허락과 무관하게 떠나갔네. 이 초라한 엉터리 공동체에서 기아와 공포 속에 떨며 무기력하게 살아가느니, 차라리 유격대에 가담해 화끈하게 싸우다 죽는 게 훨씬 뜻 깊을 테니까. 역설적으로 좌절과 절망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얼마든지 죽을 수 있는 게 젊은이들의 특권이 아닌가. 그만큼 무서운 게 절망이라네. 죽음에 이르는 병이지(p. 103) 파벨이 또 능청을 떨자 조제크가 슬쩍 핀잔을 주었다. 웃음이 가라앉자 게달레 대장이 점잖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늘, 진정한 사랑을 위해서는 사랑의 소유보다 점유를 더 중시해야 한다는 귀한 사실을 배웠군. 그렇지만 역시 문제는 실천이란 말이지. 문득 맑스와 엥겔스 선생의 지적처럼 '철학자들은 세계를 이러쿵저러쿵 해석만 할뿐 변화시키지는 않는다'는 말이 떠오르는 군. 그렇다고 해서 거꾸로 우리가 실천적인 빨치산이기 때문에 철학자들의 다양한 이론적 해석을 무시해도 좋다는 얘기는 더욱 아(p. 264)니네. 그걸 우려한 맑스 선생이 이미 100년 전에 일침을 가하기도 했지." "....” "이론적으로 철저하게 깊이 파고들지 않으면 혁명도 성공시킬 수 없다고 말야. 그러니 여러분들도 비록 가시밭길 같은 힘든 생활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욱 이론학습에 정진하길 바래. 난 책 없는 빨치산 배낭은 실탄 없는 총이나 조종사 없는 전투기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네. 그런 자들은 좋은 세상이 와도 살 자격이 없는 인간쓰레기들이지. 그리고 책은 읽고 난 다음엔 반드시 덮게. 오늘 라인과 시슬 동지가 제기한 여성해방 문제는 우리 남성들의 치부를 건드리는, 그러면서도 앞으로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보네. 라인의 지적처럼 남성의 야수적인 본능이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해결되지는 않기 때문이지?" ".." "오히려 거만하고 오만한 권력과 결탁해 더욱 교활한 폭력으로 바뀌겠지. 10월 혁명이 지난지 벌써 30년이 다 되어가네. 그 30년간 우린 이 두 눈으로 많은 실상들을 똑똑히 보고 겪으며 살아왔네. 우리가 쫓겨다니며 지금 딛고 있는 이 땅, 수십 년 동안 해결되지 않은 여성동지들의 삶과 불만사항들, 날마다 추방당하거나 처형당하는 형제들, 나치로 위장한 우리 붉은 군대의 대학살... 바로 그게 성공한 이 위대한 혁명사회의 알량한 현실이네..."(p. 265). 게달레 대장은 이 말이 곧 결론이라는 뜻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뒤쪽에 서 있던 멘델에게 말했다. "자네도 빨리 준비하게. 모험적인 전투에는 모험적인 전사가 필요한 법이지." "그렇지만 무모한 모험은 피하는 게··" "어떤 모험이든 처음엔 다 무모했네." "..." "콜럼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까지는 바다에 빠져죽은 수많은 탐험가들이 있었네. 바로 그 시체들을 딛고 올라섰기 때문에 그가 신천지를 볼 수가 있었던 거네. 어쩌면 우리도 그 시체들 중의 하나가 될지도 모르지. 운명이네."(p. 307). "포로가 전부 120명이었는데 우리 10명을 차출하고는 모조리 죽여버렸소." "어떻게 죽였소?" "넓은 자재창고에 다 몰아넣고는.. 석유를 뿌려 불태워버렸소...." "그런데... 당신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소?" "우리한테...그 짓을 대신 시켰어요...." "그래서 시키는 대로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단 말이오?" "안 하면 머리에 권총을 대고..." "..." 구레나룻 대머리가 죄지은 아이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기어들 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포로들도 모두 눈치를 보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게달레 대장은 어이가 없었다. 비명과 아우성이 들려오는 창고에 계속 석유를 뿌려대는 저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살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이것이 인간이란 말인가...? 과연 삶을 위해서는 모든 것이 용납되어야만 하는가? 도대체 삶이 뭐길래? 수천 년 동안 누구나 살다 죽었고 앞으로도 역시 그럴 것인데, 고작 100년도 안 돼 소멸되는 건 불멸의 이치가 아닌가... "대장님, 저 포로들은 풀어주고 이놈은 죽이고 빨리 철수하죠?" 게달레 대장이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있자 피오트르가 재촉했다. 그러자 라인이 포로들을 매섭게 쏘아보더니 분노한 음성으로 반기를 들었다. "저 포로들은 더 이상 인간들이 아니에요. 아무리 강압에 못 이(p. 314) 계 시키는 대로 했다고 하더라도 엄연히 자기 손으로 수백 명을 불 태웠어요. 그것도 자기와 똑같은 유태인 형제들을요." "어쩔 수 없었잖아? 안 그러면 자기도 죽는데..." "어쩔 수 없다니요? 그럼 내가 살기 위해 당신 가슴에 총을 쏘아도 괜찮다는 얘긴가요?" “...” 라인의 비수 같은 말에 피오트르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갑자기 분위기가 심상찮게 돌아가자 유태인 포로들이 동요하며 몸을 떨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대원들이 라인의 서릿발 같은 말에 수긍이 가는지 간혹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멘델도 라인의 전혀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슴에 찬바람이 불었다. "전 그렇게 생각해요. 아무리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상관이 시키는 대로 무조건 따라하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라구요. 도대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뭐죠? 제 아둔한 머리로서는 생각한다, 못 한다 바로 그 차이라고 봐요. 그래서 아무리 하늘같은 상관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그게 잘못된 명령이면 당연히 거역해야죠. 왜냐하면 인간은 바로 생각할 줄 아는 동물이니까요. 그런데 저 포로들은 자기들이 살기 위해 그런 생각을 모조리 유보해버린 거예요! 무뇌아나 짐승이 됐단 말예요!" “...” "설사, 저 사람들이 여기서 살아서 나간다고 하더라도 동료들을 죽인 죄책감과 자괴감 때문에 앞으로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겠어요? 전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요. 차라리 여기서 깨끗하게 죽는 게 자신들을 위해 훨씬 나을지도 몰라요."(p. 다음날 아침에 뜨거운 캔커피가 배급되더(p. 373)니 식기도 전에 날카로운 인상의 간부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대원들의 몸을 신체검사하듯 일일이 살핀 다음 다시 세 그룹으로 나누었다. 첫 번째 그룹은 거의 폴란드 빨치산들이었는데 간부가 말했다. "여러분들은 폴란드 출신 군인이고 계속 군인으로 살게 될 것이다! 새로운 군복과 무기가 지급되어 러시아군대로 편입된다!" "아니, 우리가 왜 붉은 군대가 돼야한단 말이오?" "옳소! 전쟁도 끝나지 않았소?" 폴란드 빨치산들이 웅성거리며 저항하자 보초병들이 일제히 총을 겨누었다. 분위기가 차츰 험악해져가기 시작했다. 간부가 다시 두 번째 그룹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러분들은 다른 방식으로 붉은 군대를 도울 것이다!" 에데크 대장이 포함된 10명의 소수그룹이었는데, 예전의 학생이나 점원 출신들이었다.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진 에데크가 버럭 소리쳤다. "이 폴란드 빨치산 부대의 대장은 나요!" "그 부대는 이미 해체된 걸 모르나?" "난 대장으로서 해체한 적이 없소!" "그 부대는 더 이상 존재이유가 없다. 아직 라디오방송도 못 들었나?” "무슨...라디오 말이오?" 그랬다. 며칠 전 폴란드 임시정부가 있는 영국의 '라디오 런던'에서 총사령관의 긴급메시지가 발표되었다. 내용은 소비에트 붉은 군대가 나치를 물리치고 폴란드를 해방시켰으니, 앞으로 폴란드의 모든 정규군대, 레지스탕스, 빨치산 부대들은 붉은 군대로 재편돼야 한다는 것이었다(p. 374) "그럼 이제 우리를 어디로 보낼 생각이오?" 에데크 대장이 한풀 꺾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 본인 소관이 아니라 알 수 없다. 다만 여러분들을 본부가 있는 지역으로 보내라는 명령만 받았을 뿐이다." 세 번째 그룹은 유태인 빨치산들이었는데, 게달레 대장과 슈물레크도 포함되었다. "현재로선 여러분들에게 내릴 명령이 없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은 군인도 아니고, 민간인도 아니고, 전쟁포로도 아니고, 그냥 남자와 여자들뿐이니까?" "우리는 빨치산이오." 러시아간부의 모욕적인 말에 속이 울컥했지만 게달레 대장은 최대한 억누르며 말했다. 그 간부가 다시 말했다. "러시아의 어느 빨치산이든 모두 소비에트 빨치산 연맹에 소속되어 있다. 그런데 유태인만의 독자적인 빨치산 부대에 관해서는 아직 들은 바가 없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여기에 머무르면서 상부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으니 그리 알기 바란다."(p. 375). 음침한 성채로 둘러싸인 글로가우는 게달레 대원들이 마주친 첫 번째 독일 도시였다. 대대로 석탄생산 중심지라 검고 우중충한 도시 주변으로는 철책이 쳐진 나치의 군수공장들로 빽빽했다. 임시 포로수용소로 쓰는 그 공장들에는 이제 나치포로들과 신분이 불확실한 각양각색의 빨치산들, 또 어쨌든 수상한 자로 찍히는 자들은 모조리 감금시켰다. 게달레 대원들 역시 도착하자마자 아무 확 인절차도 없이 한 공장에 곧장 수용됐다. 그 안에는 폴란드 유태인, 독일인, 프랑스인, 네덜란드인, 그리고 그로스-로젠에서 해방된 유태인 등 50여 명이 이미 수감되어 있었다. 나치에 맞서 목숨 걸고 싸운 대가가 죄수나 다름없는 포로신세였으니, 그 치욕감이 어떠 하겠는가. 결국 모두 자폐증 환자처럼 스스로의 가슴에 철책을 치고 완벽하게 고립시켰다(p. 389).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투하!" 연합군, 특히 미군이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만 것이었다. 멘델도 가슴이 무너져내려 저 검은 버섯구름만큼이나 후폭풍이 솟아올랐다. 제2의 드레스덴 폭격만큼은 그토록 없기를 바랐는데, 수십만의 무고한 시민들이 아침햇살 속에서 '리틀보이'라는 이름의 핵폭탄을 맞자마자 처참한 시체로 변했다. 평화라는 이름으로 복수가 복수를 불렀고, 자유라는 이름으로 탐욕이 탐욕을 부른 것이었다. 과연 이런 역사는 언제까지 되풀이될 것인가? 멘델은 현기증이 일어나(p. 436)고 도통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지금 당장은 또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는 문득 지난 모든 것을 잊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내 삶의 단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고향으로 가 나치가 총살해 아무렇게나 묻어버린 아내의 시신을 찾아 제대로 묻어주는 게 그 첫 단계로 판단되었다. 비록 예루살렘에 가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 다음은? 그 다음 단계는 그 다음에 생각하기로 했다. 병원을 뛰쳐나온 멘델은 지체 없이 발길을 돌려 밀라노 중앙역으로 달렸다. 카틴숲에서 학살당한 줄도 모른 채 무작정 아버지를 찾아 모스크바로 떠나는 폴란드 소년처럼 자욱한 새벽안개 속을 숨차게 달렸다. 그때 멘델의 귓가로 애절한 노래가 들려왔다. 내가 나를 위해 살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나를 위해 대신 살아줄 것인가? 내가 또한 나 자신만을 위해 산다면 과연 나의 존재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 길이 아니면 어쩌란 말인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란 말인가?(p. 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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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10-05
  • 【북토크451】 대치동 입시 전쟁터에서 증명된 독서의힘
    사교육 1번지 대치동. 많은 부모들이 자식에 올인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부모와 자식은 함께 고통당하며 갈등한다. 이때 독서에서 갈길을 찾은 주부들의 남다른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흥미롭게 읽었다. 예스24-우리나라 사교육의 대표 성지인 대치동에서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이 책은 이런 변화를 몰고 온 대치동 엄마들의 유쾌한 반란을 이야기한다. 독서를 통해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대치동 엄마들은 “대치동에 가면 니 새끼가 뭐라도 될 줄 알았지?”라는 질문에 ‘무엇’의 정의가 달라졌다고 말한다. 이전에 ‘무엇’은 자식이 명문대에 들어가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갖고 사는 것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 ‘무엇’은 스스로 삶의 주인공으로 당당히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 책은 이러한 대치동 엄마들의 유쾌한 변화 과정을 이야기하며 독서의 힘이 무엇인지 실감나게 그려낸다. 내 새끼가 뭐라도 되길 바라며 닦달하지 않으면, 유명 학원에 들여보내는 걸 목표로 삼지 않으면, 주변이 아닌 내 아이를 바라보며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게 해 준다면 '대치동 살이'는 충분히 즐거움으로 채워 갈 수 있다는 걸, 걱정 반 설렘 반으로 대치 입성을 앞둔 학부모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물론, 쉽지 않다. 레벨 테스트에 낙방 하는 거 별거 아니라고 머리는 말해도 가슴이 거부하는 일이 학원(p. 67) 세팅이 끝날 때까지 반복될 수도 있다. 머리와 가슴만 시끄러우면 다행인데 입에서 총알이 발사되고 손이 아이의 등판을 향해 달려가기도 한다. 나 또한 다 겪었던 일이다. 그럼에도 ‘Inner peace!’ 견디시길, 엄마니까!(p. 68). 지나간 세월을 돌이켜 보면 나는 아들을 독립된 인격체로서 믿지 못했다. 나 스스로 설정한 허상들-명문대 입학, 좋은 학원, 유능한 강사, 그리고 이를 이루어 줄 대치동의 삶-에 아들을 끼워 넣으려고만 했을 뿐이었다. 그것들조차도 진정 아들을 위하기보다 나 자신의 체면과 만족을 위한 것이었다. 이제는 깨닫는다. 공부든 그 무엇이든 자신의 삶에 대한 독립적이고도 주체적인 자각과 깨달음이 생기면 저절로 해결된다는 것을. 오랜 시간 나는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끌어 주는 것이 아이를 위하는 길이라고 착각을 하며 살았다. 결국 중요한 건 신뢰였다. 자신이 결정하도록 믿어 주고, 자신이 책임지도록 격려하는 것만이 부모가 할 수 있는 역할인 것이다(p. 129). 고3처럼 학원과 독서실에서 자정을 넘겨 공부하던 큰아이가 운이 좋게도 영재고에 진학했다. 합격의 기쁨은 딱 일주일이라더니 합격 발표 직후 학부모 모임에서 과학 각 과목과 수학 그리고 영어와 컴퓨터 선행 학습이 논의되었다. 학기 중에는 좀 덜 했지만 방학 때는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또다시 공부가 이어졌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고 큰아이가 고백하기를 친구들과 야식 먹는 재미 때문에 학원을 다녔고, 복습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깨진 독에 물 붓기였다는 것이다. '자기 주도가 아니라 자본 주도'였던 것이다. 선행 학습의 효과는 없었다. 그 많은 사교육비며 대치동의 살인적인 픽업 전선에서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아이가 얄밉고 철이 없(p. 192)다는 사실에 더 화가 났다. 게다가 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친구들이 자신보다 머리가 좋다고 말하며 열등감을 표현했고 짜증까지 늘었다. 공부보다는 방송반, 축구부 동아리 활동에 더 열심이었다. 아이는 고등학교 삼년 내내 축제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자랑했다. 그 사이 고음 불가의 노래 실력이 늘어 조금 들어 줄 만하게 변했다. 성적은 오월 단오 너울마냥 오르내렸다. 기숙사에서 늦은 밤 야식을 먹으러 친구들과 학교 담을 넘어서 우리까지 불려가 혼나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 부부는 참고 또 참았다. 들판에서 좀 거칠게 자라다 보면 스스로 성장하고, 상대적으로 집이 따뜻하다는 것도 알리라 생각했다. 지금도 큰아이는 몸과 마음이 성장 중이다. 나는 아이가 넘어 질 때마다 적당하게 거리를 두고 기다려 줄 마음의 준비를 해 왔다. 그래도 때때로 지치고 힘들면 친한 사람들에게 하소연한다. 해답을 얻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숨을 한 번 길게 내쉬고, 다시 기다려 본다. 아이들은 더디게 그러나 분명 커 간다(p. 193).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그러니 자신을 믿고 나를 찾는 여행을 지금 바로 시작하시길! 그 여행에서 나는 '니 새끼가 뭐라도 될 줄 알았니?'라는 질문에 자신있게 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의 정의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전에 나에게 '무엇'은 자식이 명문대에 들어가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갖고 사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 '무엇'은 스스로 삶의 주인공으로 당당히 살아가는 것이다. 내 아이가 선택하고 내 아이가 사랑하는 삶을 산다면 그것(p. 233)은 타인의 평가와는 무관하게 ‘뭐라도 된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당연히 우리 아이들은 모두 뭐라도 될 수 있다. 아니, 뭐든지 될 수 있다(p.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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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10-05
  • 【북토크450】 벗어나기 힘든 아우슈비츠의 고통
    프리모 레비와 장 아메리는 동시대 같이 아우슈비츠를 경험했다. 이후 살아남아 글로 그 죄악을 드러냈는데 두 사람의 반응은 달랐다. 레비는 화해를 아메리는 적대적이었다. 그리고 결국 둘 다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아우슈비츠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다. 예스24-이 책은 도이칠란트라디오의 방송을 위한 원고 「말로 담아낼 수 없는 이야기: 작가 프리모 레비와 장 아메리를 생각하는 기나긴 밤」을 토대로 한다. 저자는 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 아우슈비츠를 오랫동안 꾸준히 성찰해 왔고 아우슈비츠의 경험에서 서로 다른 결론을 끌어내 선명한 대비를 이루는 두 인물, 레비와 아메리의 생생하고도 농밀한 초상화를 그려냈다. 두 사람은 매우 비슷한 운명을 겪었음에도 그 삶과 작품에서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장 아메리: 검은 머리의 청년이 피를 철철 흘리며 거리를 정신없이 달린다. 그 뒤를 갈색 셔츠를 입은 남자 약 15명이 추격한다. 몇 명은 곤봉을 휘두른다. (…·) 미쳐버릴 것처럼 벌렁거리며 뛰는 가슴은 청년을 도우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이내 혐오스럽기 짝이 없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저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다행이다. (••) 아냐, 나도 노릴 거야. 나도 공격당할 수 있어. (•••) 오이겐은 알았다. (••) 자신이 다시금 못난 선택을 하리라는 걸. 물론 15명에 맞서는 것은 무의미하다. (•••) 그러나 그는 생각만으(p. 45)로라도 쫓기는 청년에게 거리를 두고 싶지 않았다. 특히 저 15명이 지켜보는 앞에서. 간격은 남았다. 저 술집이나 기웃거리며 춤추기 좋아하는 청년 또는 아버지의 잘나가는 법무법인을 물려받을 법대생을 내가 뭐라고 신경 쓰나. 하지만 피를 흘리는 청년을 공격하는 저 남자들에게는 반드시 거리를 두어야만 한다. 저들에게 맞선다면 나도 쫓기겠지. 하지만 맞서지 않으면 나 자신에게 쫓기리라(p. 46). 학교의 파시즘 교과과정은 레비가 인문학을 싫어하도록 몰아붙였다. 레비가 다닌 학교였던, 휴머니즘을 교훈으로 삼는 김나지움은 파시즘에 반대하는 교사 대다수를 이미 1930년대 중반에 교직에서 몰아냈다. 다시금 레비는 화학이야말로 이런 ‘타락’으로부터 자유로운 학문이라고 확인했다. “모든 단계를 검증할 수 있으며, 부풀려진 거짓말이 통할 수 없는 화학”이야말로 파시즘을 막아줄 해독제라면서. 어떤 여교사는 진정한 교양은 오로지 문학만이 선물한다며, 자연과학은 그저 정보만 줄 뿐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이 말에 충격을 받은 레비는 이후로도 평생, 인식의 세계를 이처럼 인문학과 자연과학으로 갈라놓고 자연과학을 차별하는 것에 분노를 참지 않았다(p. 59). 타인을 고문으로 괴롭히며 독재자로 군림하는 사람은 생명이 깃들 안식처를 짓밟는다. 잔혹하게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린 주체의 생활세계는 두려움과 불신으로 얼룩진다. 관계를 갈망하며 세계를 향해 자신을 던지는 인간의 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주체에게 세계는 언제라도 절대적인 지옥이 될 수 있는 곳, 아직은 아닐지라도 언제라도 돌변할 잠재적 지옥이다(p. 96). 프리모 레비: 수용소 생활에서 신발은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것이다. 죽음은 신발에서 시작한다. 우리 대다수에게 신발은 정말이지 냉혹한 고문 도구다. 신발은 몇 시간만 걸어도 발에 상처가 나게 만들어 피할 수 없는 감염을 일으켰다. 발에 상처가 나 곪는 사람은 체중을 가누지 못해 뒤뚱거리(p. 112)며 걷는다. (...) 무슨 일을 하든 늘 꼴찌이며 어디서든 얻어맞는다. 누가 쫓아와도 달아날 수가 없다. 발은 부풀어 오르고, 그럴수록 나무로 만든 신발 바닥에 쓸리며 고통은 극심해진다. 결국 남은 방법은 의무실 신세를 지는 것이다. 하지만 상처로 곪은 발로 의무실을 찾는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그럼 누구나, 특히 친위대 대원은 이 아픔에 시달리는 사람이 쓸모를 다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p. 113). 독일제국이 패망하고 독일 민족이 다른 민족들에게 천덕꾸러기 취급받던 ‘0시’, 곧 새로운 출발점에서 아메리는 잠시나마 역사가 순리대로 흘러간다고 만족해했다. 드디어 정의를 바로잡을 기회가 주어졌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1950년대부터 그는 희망이 환멸로 바뀌는 쓰라림을 맛봐야만 했다. ‘감자밭과 폐허의 독일...은 언제 그랬냐는 듯 패망을 떨치고 일어났다. 승전국들은 어제의 숙적을 감싸며 먹여 살렸다. 새롭게 빚어진 대치 상황, 이른바 '냉전'의 서막을 여는 세력 구도 재편성에서 승전국들은 독일을 새로운 동맹으(p. 169)로, 적과 맞설 전선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잘못을 참회하는 분위기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대신 다시 형편이 좋아진 독일에서 사람들은 아메리에게 왜 끝도 없이 그런 비난을 하냐며 손가락질을 해댔다. 괜스레 분란만 조장하려는 훼방꾼, 마치 빚을 갚을 수 없으면 살점이라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샤일록이라며 곳곳에서 자신을 손가락질하는 것 같은 느낌, ’그저 복수심에 불타는 유대인’이라는 진부한 반유대주의가 다시 기승을 부린다는 느낌에 아메리는 허탈한 환멸을 맛보았다(p. 170). 하이센뷔텔의 적극적인 도움 덕에 아메리는 실력을 인정받는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한나 아렌트가 나치스의 악행 원인을 평범한 속물의 진부함에서 찾은 것을 두고 그녀가 ‘유리 상자’ 안에 앉은 아이히만을 보고 지어낸 이야기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아우슈비츠 재판, 특히 프리모 레비의 책에 동기를 얻어 마침내 그 자신도 전쟁의 극복을 시도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고 결심하게 되었다(p. 174). 사르트르의 자유와 주체 철학을 아메리가 중시한 또 다른 이유는 자유가 필연적으로 책임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책임은 언제나 개인의 몫이다. 주변 정황 탓에, 지도자의 명령으로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저 명령을 수행했다는 말로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아이히만은 이 세상에 없다. 바로 그래서 아메리는 개인이라는 주체를 사회 전체라는 구조에 종속된 것으로 보는 모든 철학을 경멸했다. 미셸 푸코와 구조주의를 아메리가 거듭해서 비판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인간은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파도에 휩쓸릴 뿐이라는 구조주의의 저 유명한 비유, 푸코의 제자들이 행동하는 주체에게 조롱하듯 조종을 울리면서 사회 전체를 이길 수 있는 개인은 없다며 의기양양해하는 비(p. 196)유에 아메리는 분통을 터뜨렸다. 개인의 모든 행동이 사회 구조 탓에 다른 선택의 여지를 가지지 않는다면 책임져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p. 197). 너그러운 ‘용서’를 어떻게 말할 수 있느냐는 아메리의 비난은 사실 레비의 진의를 잘못 짚은 것이다. 레비는 독일 전체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했다. 또 독일인 대다수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외면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자신이 중시하는 것은 진정한 참회의 전제조건인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말했다. 레비는 오랜 세월이 지나 자신의 책 『이것이 인간인가?』 가 마침내 독일에서 출간되었을 때 전율했다. 그는 독일인이 이 책을 읽고 진상을 알기를 바랐다. 동시에 자기 나름대로 독일인을 이해하고 싶어 했다(p.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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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10-05
  • 【북토크449】 왜 그는 자살했는가?
    레비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왔지만 끝내 자살했다. 수용소에서의 충격은 평생 그를 따라다녔을 것이다. 이 세상에 이런 비극이 다시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과거의 악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1945년 10월, 평균 생존기간이 3개월인 아우슈비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프리모 레비는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의 처절한 경험과 사유를 시와 소설과 성찰록 등 다양한 형식의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시집으로 이탈리아 최고의 시인에게 주는 ‘존 플로리오상’을 수상했다. 『살아남은 자의 아픔』은 그가 생전에 펴낸 2권의 시집인 〈쉐마〉와 〈브레마의 선술집〉을 하나로 묶은 것으로, 전체 82편 가운데 60여 편을 가려내 수록하였다. 나치학살과 야만성에 초점이 맞춰 사실을 과장하고 미화시키고 감정적인, 대부분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과는 달리 프리모 레비의 글은 매우 간명하고 담담하다. 나치의 야만성을 밖으로 격렬하게 고발하기보다는 오히려 안으로 내면화시킴으로써 나치를 하나의 현상 이전에 먼저 그 본질을 추적한다. 생존의 극한상황 속에서도 주어진 운명에 섣불리 대립하지 않고, 오히려 내면으로 성찰의 날을 세워 자신을 단련시킨 시인의 모습이 빛을 발하는 작품집이다.-예스24 포솔리 수용소의 석양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게 난 무슨 뜻인지 너무 잘 알고 있다. 저 높은 담장 철조망 너머로 태양도 막간을 이용해 잠깐씩 뜨고 진다는 걸 난 이 두 눈으로 매일 확인했다. 문득, 늙은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떠올라 하얀 뼈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태양은 지고 나면 다시 떠오르건만 우리는 그 짧은 빛이 사라지면 끝없이 암흑 속으로 침몰해야 하는구나. • 1943년 11월에 이탈리아 최초의 유태인 수용소가 포솔리 (Fosol)에 설립되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 말에는 이탈리아 유태인 30% 이상이 절멸당하거나 감금되어 있었다. 나는 1944년 초 한겨울, 이 수용소에 감금되어 고문을 받다가 갑자기 가축 화물열차에 실려 폴란드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다.(프리모 레비)(p. 11) 기차는 슬프다 단 하나의 목소리와 단 하나의 노선으로 정해진 시간에 떠나야하는 기차보다 더 슬픈 게 있을까? 그 어떤 것들도 이보다는 더 슬프지 않다. 아마도 두 개의 막대기 사이에 묶여 서로를 바라보지도 못하는 마차만이 유일한 예외일 것이다. 물론 그 인생은 그저 앞으로 걷는 것뿐이다. 그럼 인간은 어떠한가? 인간도 슬픈 존재가 아닌가? 오랜 시간 고독하게 정해진 길만을 돌며 충만한 삶을 살았다고 믿는다면 그 인간 역시 슬픈 기차에 불과하리라(p. 25). 생각하지 않은 죄-아돌프 아이히만에게 바람이 평원을 가로질러 자유로이 불어오고 거센 파도가 끊임없이 해변으로 몰아친다. 인간은 땅을 비옥하게 만들고 땅은 그에게 꽃과 열매를 선사한다. 인간은 고된 노동과 기쁨 속에 살아가고 희망과 공포 속에서도 고귀한 자손들을 남긴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의 저승사자인 그대가 나타났고 짐승처럼 우리들은 죽음의 쇠사슬에 묶여버렸다. 우리가 만난다면 그대는 과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여전히 신에게 하소연이라도 하겠는가? 그럼 어느 신에게 말인가? 또 기꺼이 무덤에라도 뛰어들 것인가? 아니면 오히려 미완성의 작품을 아쉬워하는 예술가들처럼 아직 살아있는 1300만의 생명에 대해 통탄이라도 할 텐가? 오- 죽음의 화신이여(p. 31) 우리는 그대에게 결코 한 순간의 죽음을 바라지 않으며 그 어느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장수하기를 바란다. 단지 500만 년 동안만 불면으로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가스실에서 숨져간 모든 이들의 신음과 비명소리가 매일 밤 그대를 방문해 강한 위로를 해주기를 바랄 뿐이다(p. 32) 아우슈비츠의 소녀 타인의 고통은 곧 나의 고통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고통 속에 함께 산다. 어린 폼페이의 소녀여! 하늘이 잿빛으로 변하며 세상이 무너질 때 다시 자궁 속으로 회귀라도 하듯 넌 뼈만 남을 때까지 어머니의 몸을 끌어안고 있구나. 검은 화산재는 노래와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던 너의 집 창문으로 일제히 침투했다. 그 재는 2천 년의 세월이 흘러 가냘픈 소녀들의 육체를 영원히 덮어버렸다. 이처럼 넌 지금도 우리와 함께 회색 담장 속에 갇혀 끝없이 고통 받고 있구나. 내일이면 굴뚝의 검은 연기로 피어오를지도 모를 도축장 같은 수용소에 갇혀 날마다 몰래 일기를 쓴 13살 어린 아우슈비츠의 소녀여!(p. 35) 가녀린 그대 가슴속에는 검은 재만 흩날릴 뿐 이미 안네의 짧은 생애는 일기장에서 끝나버렸구나.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리틀 보이'의 검은 불바다에 살점 하나 없이 완벽하게 사라져버린 어린 히로시마의 소녀여! 네 영혼이 아직도 검은 구름처럼 떠돌며 울부짖는구나. 더러운 자본의 권력, 끊임없는 탐욕의 침략자들 지금도 살육의 광풍을 은밀히 준비하는 전쟁광들이여 그대들은 그동안 하늘이 우리에게 내린 고통들만으로는 정녕 부족하단 말인가. 한 개의 손가락으로 폭탄단추를 누르기 전에 잠깐만, 아주 잠깐만 멈추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 타인의 고통은 나의 고통이다(p. 36). 진주조개 야만적이고 성급하고 조악한 인간들이여 나의 이 쫄깃한 맛 외에 당신들이 부드러운 내 몸에 대해 무얼 더 알고 있는가? 난 깊은 바다 속에 살며 추위와 더위를 느끼고 수축과 이완을 거듭하며 고요한 리듬에 몸을 맡기고 때로 민첩하게 움직이며 먹이들을 포획해 즐길 줄 알고 당신들처럼 사나흘 굶으면 고래고래 아우성도 지른다. 또 단단한 혈관에 기억과 지능 같은 칩들이 심어진다면 나도 얼마든지 미래를 예언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난 당신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당신들과 닮아 있고 눈물과 정자 같은 것들도 가슴속에 은밀히 품는다. 간혹, 파편이 내 몸에 상처를 내면 나 역시 당신들처럼 조금씩 그것을 몰래 감추며 안으로 삭혀간다. 나는 언제나 진주조개다(p. 64) 증인심문 증인의 이름은? 알렉스 징크라고 합니다. 태어난 곳은? 화려한 고대도시로 유명한 뉘른베르크입니다. 그런데 재판장님, 먼저, 일사부재리 원칙에 입각해 이미 나치전범 재판에서 다뤘던 것들은 여기에선 더 이상 효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논쟁의 여지가 많을수록 더욱 그렇구요. 셋째, 참고로 이 세상 최고의 카페트들은 바로 제가 만든 펠트제품이라는 사실입니다. 허허- 증인이 쓸데없는 것까지 걱정하는군.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나 말해 보시오. 물론 위증의 대가에 관해선 잘 알 테고.... 재판장님,(p. 86) 전 진짜 피땀 흘리며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돌 위에 돌을 쌓고, 상처 위에 상처를 쌓으며 제 이름을 딴 '징크 컴퍼니' 공장을 설립해 최고로 아름다운 펠트 카페트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직원들의 봉급도 후하게 주는 자비롭고 근면성실한 사장인데다가 고객들도 절대로 불평하는 법이 없었어요. 한마디로 유럽 최고의 제품만 생산했죠. 카페트 제조기술이 아주 좋은 모양이군. 근데 그 훌륭한 솜씨는 어디에서 배웠소? 예? 그, 그건..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고 했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머리카락으로... 카페트를 짜면서 배웠습니다... 양모와 머리카락 중 어떤 게 더 품질이 좋던가? 아무래도... 머리카락이...(p. 87) 그래, 그동안 꿈자리는 편안하던가? 뭐, 대충은 꿀 만했는데....간혹 슬픈 영혼들이 자꾸 흐느끼는 것 같이 꿈이 뒤숭숭하긴 했죠. 증인은 이제 돌아가서 기다리시오. • 나치는 굴뚝에 검은 연기가 나기 전에는 머리카락을 잘라 카펫과 담요를 짰고, 연기가 난 다음에는 금니로 금괴를 만들어 전쟁자금을 마련했고, 또 화장 후의 쌓인 재로는 정원의 꽃 밭과 전시 작물밭의 비료로 사용했다. 유태인을 인간이 아니라 짐승으로 취급했기에 가능한 나치의 알뜰하기 그지없는 실용 주의다. 특히 머리카락으로 짠 카펫과 담요는 양모재료보다도 더 따뜻하고 더 윤기가 잘잘 흐른다고 해서 당시 주문생산이 밀릴 만큼의 최고 인기상품이었다. 그 VIP고객들은 나치와 연합군 간부들을 비롯해 전쟁물자를 생산해 이익을 챙기던 기업가들과 사회의 소수 특권층 인사들이었다. 그들은 주로 사업 로비용이나 가정 선물용으로 앞다퉈 구입했다. 물론 최대의 납품처는 나치의 병영이었다. 특히 날씨가 쌀쌀해지는 가을이면, 따뜻한 방한용 담요가 필요한 동계 전투를 대비해 수용소의 머리카락 삭발식이 더욱 분주해졌고, 굴뚝도 그만큼 바빠졌다(p. 88). 참고로 주문생산자들의 구체적인 명단은 굳이 밝히지 않겠으나 우리의 귀에 익숙한 나치간부들과 2차대전의 연합군 영웅들은 거의 포함되어 있다고 보면 틀림없다. 심지어 같은 유태인들도 있다. 여기서 2차대전 중 일부 특권층 유태인들이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 유태인들을 아우슈비츠로 보내기 위해 게슈타포한테 팔아넘긴 사실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일찌감치 전시 안전지대로 벗어나 자기 형제들의 머리카락으로 짠 따뜻한 이불을 덮고 자며 안락한 삶을 누렸다. 또 그것도 모자라 전후에는 희생자들의 가족서류를 위조해 사망 보상금까지 가로챘다. 우리의 일제 식민지 역사도 그와 다르지 않다. 다른 게 있다면 우린 아직도 참된 사과나 보상 같은 것들을 전혀 받아내지 못 했다는 점이다. 모두 친일잔재가 청산되지 않아서 겪는 우리의 수모이지만, 그런 수모를 겪을수록 난 나치의 그 '알뜰한 실용주의'를 더욱 본받고 싶어진다. (이산하)(p. 89). 살아남은 자의 아픔 -생존자 B.V에게 언제부터인가 그 끔찍한 순간들이 되살아나 그 얘기를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내 가슴은 너무나 쓰라리고 저려왔다. 그는 희미하게 밝아오는 새벽이면 온통 시멘트 가루로 뒤덮인 잿빛 얼굴이며 다음날을 기약할 수 없는 불안한 잠자리로 죽은 송장이나 다름없는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밤마다 악몽을 꾸며 너무 배고픈 나머지 무 같은 거라도 씹는 듯 마구 턱을 움직이며 애절한 목소리로 잠꼬대를 하곤 했다. "돌아가게! 제발 나를 내버려두고 돌아가게, 먼저 간 동료들이여! 난 아직 어느 누구의 것도 빼앗은 적이 없고 어느 누구의 빵 한 조각도 훔친 적이 없네. 그리고 지금까지(p. 103) 나 때문에 정말 단 한 사람도 죽은 적이 없네. 제발 그대들은 그대들의 세상으로 어서 돌아가게. 내가 아직 살아서 내가 아직 죽지 못해서 먹고, 입고, 잠자며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는 게 어찌 내 탓이고 내 잘못이란 말인가!" • 생존자 B.V는 오스트리아 도나우 강변의 마우트하우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레비의 친구 부루노 바사리(Bruno Vasari)를 말한다. 그는 유태인 레지스탕스였고, 나치는 이 악명 높은 수용소의 30만 죄수들을 '귀향 거부자들'로 불렸다. 이 시는 프리모 레비가 바사리의 처절한 경험을 토대로 쓴 작품이며, 그 작품배경에 대해서는 미리엄 아니시모프의 평전인 〈프리모 레비- 한 낙관주의자의 비극》 속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이산하) (p. 104) 석양 그 어떤 것도 억지로 꿈꾸지 않았고 그 어떤 것에도 애써 매달리지 않았네. 거센 폭풍의 바다를 헤치고 나와 항구의 선술집 난로 옆에 앉아 홀로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그런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여라. 축제 뒤의 사그라져가는 불씨처럼 저물어가는 강가의 모래알처럼 무거운 짐을 모두 내려놓은 채 이마의 땀방울을 닦으며 조용히 길모퉁이에 앉아 쉬고 있는 그런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여라. 욕망도 집착도 모두 내려놓고 말없이 저무는 석양만 응시하네(p. 118) 인생연감 무심한 강물은 하염없이 돌지만 결국은 바다로 흘러가고 거대한 빙하는 표류하면서도 끊임없이 정착을 하려다가 한순간에 미끄러져 어린 생명의 숲들을 지우기도 한다. 바다는 풍요로울수록 더욱 탐욕을 내며 싸우고 태양과 별과 행성들은 언제나처럼 자기궤도를 유지하며 지구별 역시 정교한 우주의 이치대로 돌고 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아니다. 반란의 씨앗에다 지능까지 높다는 그 멍청한 인간들은 항상 불안하고 탐욕스런 나머지 마구 짓밟고 파괴해왔다. 조만간 울창한 아마존 숲과 삶이 꿈틀거리는 이 세상 그리고 마지막엔 따뜻한 인간들의 가슴까지 모조리 황폐한 사막으로 만들어버릴 것이다(p. 123) • 이 시는 1987년 4월 11일, 프리모 레비가 투신자살 직전에 쓴 마지막 작품이다. 따로 남긴 유서가 없으므로 이 시가 결국 유서가 된 셈이다. 강물과 빙하는 디아스포라를 연상시키며, 자연과 우주는 특별한 사태 없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데, 유독 인간만은 다르다. 68세에 그는 결국 인간에 대한 희망의 단서를 찾지 못하고 완전히 절망한 것처럼 보인다. (이산해) (p. 124) 프리모 레비는 평균 생존기간이 3개월도 채 안 되는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1년을 버티며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살아야 한다는 것보다는 살아서 내가 경험한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의지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아케론 강가에서 망자를 실어주는 사공의 "이 저주받을 영혼들아, 비통하고 비통할지어다!"라는 절규 대신, 아우슈비츠로 달리는 열차 속에서 나치병사가 돈이나 반지나 시계 같은 귀중품들을 당연한 듯이 요구할 때부터 이미 지옥이 종착지임을 예감했으리라. 그 예감대로 단테의 '지옥' 입구에는 "여기 들어오는 자, 지금부터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라는 경고문이 있었던 것처럼,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에는 "노동이 그대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뜻 깊은' 모토가(p. 145)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노동은 그를 너무 자유롭게 만들었다. 프리모 레비는 역사를 왜 기억하고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를 그의 생이 끝날 때까지 거듭 물으며 고뇌 했다. 그 고뇌의 핵심이자 그를 죽음으로 이송시켰던 ‘악은 무엇인가?’라는 화두에 대한 가장 빠른 대답이 '내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난 맹세코 악과 생각의 역사는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 가지 못하고 오히려 전속력으로 후진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그래왔듯 앞으로도 우리는 아우슈비츠에 대해서 여전히 계속 대답해야 하고,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과 최소한의 인권마저 완벽하게 파괴해버린 아우슈비츠는 과거에서 미래까지 일어날 세계의 모든 학살과 폭력의 한 상징이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의 굴뚝이 사라졌다고 해서 지옥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가슴에 뜨거운 화상을 입으며 때로는 차가운 숨결로, 때로는 뜨거운 숨결로, 간신히 옮겨 다듬고 또 간신히 후기를 쓰다가 이제야 글을 접는다(p. 146) 아직도 레비의 상처 받은 영혼들이 디아스포라처럼 떠돌고 있을 이 시집이 나오기까지,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준 많은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특히 의역의 폭에 대한 도정일 선생님의 여러 조언과 지금은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 어디쯤에서 도보여행하고 있을 김종돈 형의 꼼꼼한 텍스트 해석과 고영주 형의 자료조사, 그리고 여러 언어를 비교하며 행간의 의미를 일깨워준 보스톤의 내 사랑스럽고 애틋한 딸 한나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1987년 4월 11일, 프리모 레비는 투신자살을 했다. 그는 죽음으로써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다시 들어간 것이다. 지난번엔 타의였고 이번엔 자의였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회의를 끝내 떨치지 못한 그의 마지막 항변에 나는 거듭 동의하면서도 거듭 절망한다. 2011년 겨울 이산하(p.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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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10-02
  • 【북토크448】 아우슈비츠 수용소 희생자의 최후의 말들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인 프리모 레비의 책을 다시 읽고 있다. 또 이전에 못 읽었던 책도 읽고 있다. 인간이 인간에 대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에 대해, 그럼에도 생명이 얼마나 질긴지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홀로코스트로 대표되는 인간의 야만을 거론할 때 누구보다 먼저 거론되는 사람은 이탈리아의 화학자이자 작가 프리모 레비다. 유대인이라는 별다른 자각 없이 살았던 그는 대학 졸업 후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부의 인종법에 저항하다 체포돼 1944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되었고, 11개월 뒤인 이듬해 1월 해방돼 아홉 달 만에 고향인 토리노로 돌아왔다. 그 뒤 도료 공장의 관리자 내지 연구자 등으로 생업을 이으며 틈틈이 자신의 체험을 글로 옮겼고, 지금도 최고의 증언 문학으로 인정받는 『이것이 인간인가』 『주기율표』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등으로 시대의 진상을 알렸다. 하지만 시대를 대표하는 거창한 일은 그의 애초 셈과는 거리가 멀었다. 극도로 내성적인 유년과 학창 시절을 지나온 그는 “이야기가 최고의 치료제”임을 누누이 말하며 누구보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려고 글을 썼다. 그러나 당황스럽게도, 여러 권의 저서를 출간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가가 된 뒤에, 모든 걸 털어놓음으로써 과거를 극복했다고 믿던 67세의 나이에 그는 돌연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프리모 레비의 말』은 마음산책 ‘말 시리즈’의 열두 번째 책이다. 프리모 레비가 세상을 뜨기 두 달 전인 1987년 1월과 2월에 가진 마지막 인터뷰를 담았다. 이탈리아 문학 교수이자 평론가인 조반니 테시오가 인터뷰어로 나섰다. 그는 프리모 레비가 세상을 뜰 때까지 10여 년간 우정을 나눈 조언자로서, 프리모 레비와 공동으로 자서전을 쓰기 위해 구술을 받던 중이었다. 따라서 『프리모 레비의 말』은 1987년 1월 12일, 1월 26일, 2월 8일, 이렇게 세 차례의 인터뷰로 이루어졌지만 맥락상 한 편의 인터뷰로 볼 수 있다. 두 사람의 대화는 가족과 유년 시절의 이야기로 시작해 학창 시절, 성격, 취향, 독서 등 편안하고 애틋한 이야기를 계속하다가도 언뜻언뜻 프리모 레비 자신도 낯선 듯 털어놓는 즉흥적인 변주가 끼어들어 긴장감을 일으킨다. 자신에 관해서도 남에 관해서도 격렬한 목소리를 내지 않던 프리모 레비의 심경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예스24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의 첫 부분에서 그런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건 당신에게 말할 수 있어요. 한 여인을 암시했어요. 제가 이 여인에게 내 방식으로 환심을 사려고 해서 그녀를 몹시 당황스럽게 만들었어요. 그녀는 제가 극도로 내성적이고 우유부단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우리는 함께, 정확히 말하면 아주 흔한 방식으로 체포되었어요. 콜드주Col de Joux. 이탈리아 발다오스타 계곡과 맞닿은 프랑스 쪽 알프스의 산길에서 우리는 어떤 임무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정치적 임무를 수행하러 함께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밤중에 산으로 올라가지 말고 계곡의 은신처에서 자고 가라는 제안을 받았어요. 우리는 거절했습니다. 무슨 이유 때문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러고는 한밤중에 콜드주까지 올라갔고 다섯 시간 뒤에, 그 밤이 지나고 체포되었지요. 저는 자주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테시오: 본의 아니게 체포에 일조했다는 것 때문인가요? 레비: 게다가 그 여자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자살을 시도했어요. 동맥을 잘랐지만 곧 봉합을 해주었습니다. 그 후 그녀가 죽었기 때문에, 간단히 말해 저는 지금의 아내를 만날 때까지 그녀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제게는 정말 절망적인 상황이었어요. 사랑하는 여자가 더(p. 135)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게, 게다가 내가 그녀의 죽음에 한 원인이었다는 게 말입니다. 이것이 어떤 느낌인지 생각하면.... 내가 그녀에게 조금만 더 적극적이었다면, 우리가 같이 도망쳤더라면, 우리가 같이 잤더라면.... 그런데 저는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p. 136). 『이것이 인간인가』의 번역을 마치고 난 뒤 한참 동안 가슴이 먹먹했던 기억이 난다. 테시오와 인터뷰 약속을 해놓고도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선택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서인지 이 책을 번역할 때는 자주 그런 기분이 들었다. 레비의 자살에 대한 이유는 아직도 알려지지 않았고 알 수도 없다. 그러나 레비가 남긴 이 마지막 "말"에서는 굽이 굽이 숨겨진 아픔과 슬픔을 어렴풋하게나마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삶과 인간에 대한 레비의 변함없는 진실성과 애정도 읽을 수 있어서 한 걸음 더 그에게 다가간 느낌이다. 2019년 4월 이현경(p. 227). 번역자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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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10-02
  • 【북토크447】 하던 일하며, 살던 집에서 죽고 싶다
    요즘 대부분은 병원에서 그것도 중환자실에서 죽는다. 간혹 호스피스에서 죽기도 한다. 그러나 얼마전까지 대부분 집에서, 살던 곳에서 생을 마무리했다. 연로하신 부모님께서 사시는 집에서 돌아가셨으면 한다. 나 또한 살던 곳에서 생을 마치고 싶다. 낯선 병원에서 죽고 싶지 않다. 좋아하던 음악을 들으면서 즐겁고 기쁘게 사후의 세계로 건너가고 싶다. 우리는 모두 ‘어디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차가운 기계음 가득한 병원 침대 대신, 익숙한 내 방에서 사랑하는 이들의 온기를 느끼며 떠날 수는 없을까? 이 책은 임종 직전까지 평소처럼 일상을 지켜내며 “나다운 마침표”를 찍은 사람들의 뜨거운 기록이다. 병원이라는 차가운 공간이 아닌, 익숙한 냄새와 온기가 남아있는 나의 집. 30여 년간 환자들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 온 나이토 이즈미는 말한다. 죽음은 삶의 단절이 아니라 평소와 다름없는 ‘오늘의 연속’이어야한다고. 임종 직전까지 가게를 지키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벚꽃을 보러 가며, 가족들의 빨래를 개며 웃음 짓던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예스24 나의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알았을 때 사람은 과연 무엇을(p. 38) 바라게 될까요? 환자들을 보다 보면, 제각기 소망이 얼마나 다른지 모릅니다. 다만 건강할 때 바라던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 같은 호사스러운 소망이나, "예전에 이루지 못한 꿈을 꼭 이루고 싶다" 같은 극적인 소망은 드뭅니다. 대부분의 환자는 단지 조금 더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길 선택합니다. 죽음을 앞둔 비장함에 사로잡히지도 않고, 남은 생명을 쥐어짜듯 애쓰지도 않습니다.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고 지내다가 그 과정에서 혹시 소원을 이룰 수 있다면 그저 '다행이다' 하고 받아들이는 느낌입니다(p. 39). 욕망을 이루는 것이 인생의 성공이라 여기면 아무리 많이 얻어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물질적으로 많이 가져 남의 부러움을 사는 사람일수록 마지막까지 머뭇거리게 됩니다. "그런대로 괜찮은 인생이었어"라고 받아들이지 못 하고 "그걸 아직 못 했다" "그때 그러지 말아야 했는데"라며 후회가 가득 남습니다. 반대로 은퇴한 지 몇 년이 지나도 과거의 직함이나 지위를 과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분들은 결국 '훌륭하게 살았다'라고 할 만한 결말을 맞이하지 못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몸이 아프다는 사실 자체를 순순히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미련에 발목 잡히지 않는다(p. 98)면 몸과 마음 모두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병에 걸린 것과는 별개로 지나온 삶은 이미 존재했던 시간입니다. 후회를 떨치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하는 일은 자신의 일생을 부정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너무도 서글픈 일입니다(p. 99). 저는 어머니를 만날 때마다 이 사람을 평생 넘어설 수 없겠다고 느낍니다. 무엇이 대단하냐면, 궁극적으로 긍정적이라는 점입니다. 단순히 낙관적이거나 적극적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눈앞에 어려움이 닥쳐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자기 힘으로 극복하려 합니다. 힘들고 슬픈 일이 있어도 "이까짓 것!" 하며 맞섭니다. 지극히 사적인 얘기입니다만, 어머니만큼 그런 삶을 관철해 온 사람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전쟁을 겪고 남편도 일찍 여의었으며 쉬지 않고 일했 습니다. 자식을 모두 키워 겨우 살만해졌을 때는 유방암이 찾아왔습니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150 퍼센트의 에너지를 쏟으며 남을 위한 봉사도 잊지 않았습니다(p. 119). 그런 삶의 태도가 장수의 비결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늘 밝고 쉽게 좌절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더 충실한 노년을 보낼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이가 들면 젊었을 때와 다른 시련이 더 자주 찾아옵니다. 과거에 큰 어려움을 극복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회복 탄력성 또한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과 몸은 이어져 있어서, 마음으로 맞설 수 없다면 몸도 점점 약해집니다. 시련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 살아온 사람은 그 형태가 달라져도 극복하는 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닥쳐도 ‘그때에 비하면 별일 아니야’ ‘뭐,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살다 보면 여러 일이 생기고, 때로는 일어서지 못하거나 일어서고 싶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 자신을 탓할 필요는 없지만그 시간이 결국 미래를 더 풍요롭게 만들 것이라 믿는다면, 직면한 지금의 현실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p. 120). "슬픔이 열어질 것 같지 않아요. 선생님은 괜찮아진다고 하셨지만 거짓말 같아요. 너무 슬퍼서 매일 밤 울다가 잠들어요. 언제쯤 이 슬픔이 사라질까요?" 슬픔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우세요. 실컷 우세요. 참지 마세요. 무작정 울다 보면 지쳐서 더 이상 울 수 없게 될 거예요. 눈물이 마를 때까지 우세요." 그녀는 울고 또 울며 지냈고, 두 달이 지난 뒤 제가 물었습니다. "이제 좀 괜찮으세요?" "남편에게 미안해요. 이제 울지 않는 밤도 생겼어요." 그리고 한 달이 더 지났습니다. "선생님, 이상해요. 울지 않는 날이 더 많아졌어요." 또 한 해가 지나자, 그녀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근처 들판에서 심호흡할 수 있게 됐어요. 오랜 만에 마음이 평온해졌습니다."(p. 186). 남편의 권유와는 달리 아내는 추억이 가득한 집에 계속 살았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떠난 지 3년이 지나자 “이제 제가 자란 곳으로 돌아가야겠어요"라며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즐겁게 일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p. 187). 예전에 등산가인 도다카 마사후미 씨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는 해발 8,000미터가 넘는 히말라야 봉우리를 산소통 없이 등정했습니다. 특히 K2봉(해발 8,61미터) 남동릉을 단독 무산소로 오른 것은 경이로운 업적으로 평가받았습니다. "7,000미터까지 올라가면 몸 안의 90조 개 세포가 한 순간에 변화합니다. 생존에 필요한 기능에 체내 에너지가 집중되죠. 그러면 그때까지 들리던 모든 소리가 사라지는 느낌이 듭니다." 오직 자신만 존재하는 또 다른 차원의 세계, ‘제로 지점’ 누군가는 이를 '데스 존(죽음의 지대)'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제로 지점을 넘어서자 불안이 사라지고 모든 것을 신(p. 208)뢰할 수 있는 충만한 마음에 휩싸였습니다. 혼자였지만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고 그저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과거도 미래도 없이 오직 지금만이 존재하는 영원한 시간. 모든 것을 신뢰할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감이 느껴졌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우리 몸은 연수(숨뇌) 등 생존에 최소한으로 필요한 장기에 산소를 우선 공급합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번뇌와 욕망이 깎여 나가고, 마지막으로 남는 것이 바로 신뢰감이라는 것입니다(p.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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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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