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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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
1.
내가 태어날 때 아부지는 45세였다.
이미 내 위로 4명의 누이와
3살 위의 까칠한
형아가 있었다.
그 시대 아부지들은 다 그렇듯이
울 아부지도 늦은 결혼이었지만
아들을 원했다.
하지만 그토록 바랬던 아들은
4명의 딸이 온 후 5번째 태어났다.
오랜 기다림 끝에 태어난 아들을 보며
아부지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거다
아들을 품에 안고 기뻤던 아버지는
하나 더 얻기를 바랬는데 이번에는
희한하게 딸, 아들이 몇 분 사이로
태어났다.
그렇게 이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나는 누이들과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2.
내가 아부지의 존재를 인식할 때
아부지의 모습은 태산과 같았고,
천하장사였다.
상상할 수 없는 무게의 나뭇짐을 지셨고,
거대한 산과 같은 고봉의 밥을 드셨다.
주무실 때 코 고는 소리는 천지를
진동케 했다.
매캐한 연기가 방구석의 사각 모서리의 장판
접힌 틈 사이로 꾸물꾸물 올라올 때쯤
콜록거리며 눈을 떠 보면 어느새 아부지는
콧노래로 찬송 부르며 소죽을 끓이고 계셨다.
그때 생각했다.
아부지는 잠도 없나 어떻게 저렇게
일찍이 일어나시지...
3.
아부지는 바지런하셨다.
얼마 되지 않는 논때기론
자식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워
늘 남의 집 일들을 하셨다.
고단한 날들의 연속이셨던 아부지의 모습은
늘 흙 묻은 옷을 입었고 풀냄새와 땀 냄새가
범벅이 된 이상야릇한 냄새를 풍겼다.
내가 머리와 몸집이 커갈수록
아부지의 존재는 점점 태산에서
야트막한 구릉으로 변했고,
천하장사와 같은 힘도 어느새
내가 범접할 수 있는 힘을 가진
평범한 사내로 바뀌어 있었다.
어느 날, 아부지가 뭐가 그래
화가 났는지 작대기를 나를 때리려
하셨다.
힘과 꾀가 있었던 나는 아부지 뒤로
가서 꽉 껴안았더니 아부지는
꼼짝달싹 못하였다.
그때 처음 알았다.
아~ 아부지도 늙어가는구나.
4.
아부지는 미처 효도할 틈도 주지 않은 채
우리 형제 곁을 떠난 지 벌써 20년이 되었다.
어무이도 떠나고 보니 이상하게
아부지 생각이 많이 났다.
나도 아부지처럼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깊은 잠에 빠진 딸들을 보면서
나는 그제사 깨닫는다.
아부지도 푹 자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일찍 일어난 것이었구나.
좋은 아부지,
능력 많은 아부지가 되고 싶었지만
현실이 만만치 않아 늘 인상 쓰셨던 아부지가
내가 아부지 나이에 가까이 갈수록 이해되고
동변상련의 마음을 깨닫게 된다.
내 책상 위에는 아부지의 한갑때
큰아부지, 큰어무이, 울 어무이와 아부지
이렇게 네 어르신이 차렷 자세로
찍은 빛바랜 사진이 있다.
그 사진 속에 계신 분들은
지금 아무도 없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
오늘따라 아부지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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