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김준기 저자(글), 시그마북스 · 2009년
영화든 드라마든 소설책이든 심리치료의 도구는 다양하다. 이 책은 정신과의사의 관점으로 영화를 분석한 것이다. 흥미롭게 봤다. 한 편의 영화를 통해 마음의 치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귀한 경험이다. 그것이 좋은 영화를 봐야할 이유이다.
극단적인 트라우마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섣불리 고통의 현실을 직면하라고 요구하는 원칙론적인 접근보다 먼저 그들이 한숨을 돌리고 심리적 안정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의 안정을 느끼지 못한 상태에서 트라우마에 직면하는 것은 피해자 대부분을 고통스럽게 하는 불필요한 자극이 되기 쉽습니다. 트라우마의 희생자들은 자신들의 정서적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자신들의 부적응적인 행동까지도 포용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을 때 비로소 안정감과 연결감을 느낄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이런 안정감과 연결감(p. 28)을 느낄 수가 있어야 비로소 트라우마를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합니다(p. 29).
트라우마는 일반적인 스트레스와는 아주 다릅니다. 트라우마는 기본적으로 1) 미리 예측할 수 없고, 2) 미리 대비할 수도 없으며, 3) 또한 도망가거나 회피할 수도 없다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오는 위협에 대항을 해볼 수도 없고 도망을 갈 수도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가장 기본적인 자기 방어 수단이 불가능할 때 우리는 강렬한 두려움, 공포, 무력감, 불안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렇듯 '너무나 무섭고 두려운데 피할 수도 없고 대처할 수도 없이 꼼짝없이 당하게 되는 압도적인 상황의 경험'이 바로 트라우마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압도적인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되면 우리의 뇌에서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냥 내버려 두고 잊어버리려는 노력을 한다고 이러한 변화가 다시 원래의 자리로 쉽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트라우마는 우리 인간의 뇌의 신경회로를 압도적으로 무너뜨리는 사건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 피부의 상처가 저절로 아물듯이, 마음의 상처도 저절로 치유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트라우마는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그 치유가 가능하다고 하겠습니다. 상처의 깊이와 무게에 따라 치유(p. 46)의 방법과 시간에 큰 차이를 보이겠지만 어쨌든 불가항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트라우마의 치료는 큰 진전을 보이는 것입니다(p. 47).
트라우마의 피해자들은 감정을 마비시컴으로써 자신들의 삶을 한없이 단조롭고 무미건조하게 만듭니다. 자극이 될지 모를 상황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철저히 제한하고 똑같은 일상을 반복합니다. 극단적으로 수동적이 되는 것이지요.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삶에서의 주도권을 포기하고 아무 생각 없는 사람처럼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러한 수동적이고 무미건조한 삶의 지루한 반복이 결코 그들의 삶을 만족스럽게, 즐겁게,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할 겁니다.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고 아무런 행복도 느낄 수 없는 답답한 자신의 삶에 대한 염증도 느 끼게 될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수동성에 대한 혐오감도 점차 더해질 테니까요. 무미건조한 삶은 트라우마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트라우 마의 영향력을 완화시켜줄 수 있는 긍정적인 경험의 기회, 삶의 새로운 즐거움 • 기쁨• 성취감의 기회를 제한시키기 때문이지요. 다양한 긍정적인 경험들이야말로 트라우마의 진정한 해결책입니다. '감정의 마비' 라는 방어기전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환자에게 일시적인 안 정감은 줄 수 있지만 그만큼 트라우마의 영향력을 더 길게 지속시킨다는 점에서 '양날의 칼' 인 셈입니다. 2008년 우리나라 여성부 실태 조사에 의하면 성폭력 피해자들의 신고율은 고작 2.3%라고 합니다. 여전히 성폭력의 피해자인 여성이나 아동들은 자신들이 받은 트라우마를 다른 사람에게 알려 도움을 받고(p. 140) 이러한 피해자들이 결국 받아들여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한참 전에 벌어진 일을 잊고 이제 현재 자신의 삶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대부분의 트라우마 피해자들의 내면에는 가해자에 의해 황폐 해져버린 삶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고통스러운 변화와 상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지요. 아무리 회복된다고 하더라도 트라우마를 경험하기 이전의 상태나 모습으로 완벽하게 돌아가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올 수도 없고, 잃어버린 다리가 다시 생겨날 수도 없고, 보이지 않게 된 눈이 다시 보이게 될 수도 없는 것이니까요. 원하지 않은 변화와 상실을 겪게 만든 가해자에 대한 미움과 복수심이 충분히 표현되어 어느 정도 가라앉는 과정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꿈속에서나 상상 속에서라도 가해자들에게 화를 표현하고 그들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내야 피해자들의 마음이 가라앉을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트라우마로 인한 상실과 분노가 더 이상 그들(p. 151)의 삶의 중심에 있지 않게 될 때 피해자들은 비로소 트라우마 이전의 자신과 트라우마 이후의 자신을 통합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나간 일인데 어쩌겠어? 이제부터의 삶이 중요하잖아" 라는 말보다는 "그 분하고 억울한 마음을 어떻게 풀어볼까?" 하는 말이야말로 이런 피해자들에게 먼저 필요한 위로의 말일 것입니다(p. 152).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사고의 전환
"나는 하느님이 주신 세 가지 은혜 덕분에 크게 성공할 수 있었다. 첫째, 집이 몹시 가난해 어릴 적부터 구두닦이, 신문팔이 같은 고생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둘째, 태어났을 때부터 몸이 몹시 약해 항상 운동에 힘써왔기 때문에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셋째, 나는 초등학교도 못 다녔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다 나의 스승으로 여기고 누구에게나 물어가며 배우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마쓰시타 고노스케) 우리나라 기업인들에게 가장 많은 영항을 미친 경영자는 '경영의 신'이라고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1894~1989)일 겁니다. 잘 알려진 대로 마쓰시타는 파나소닉이라는 브랜드로 유명한 마쓰 시타전기산업의 창업자입니다. 일본의 전자 산업하면 우리들은 소니를 떠올리지요. 소니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일본 내에서의 평판이나 인기는 마쓰시타를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사람을 한번 고용하면 평생 같이 가는 가족적인 일본식 기업 문화는 그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초등학교 중퇴자였지만 그는 콤플렉스를 동기 부여로 바꿔 성공한 사람입니다. "나는 가난 덕(p. 236)분에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될 수 있었다, 나는 배우지 못한 덕분에 평생 공부할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사고의 전환' 이었습니다. 즉 매사 '때문에'가 아니라 '덕분에'로 임한 결과 인생의 장애물을 인생 도약의 뜀틀로 바꿀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쓰시타는 콤플렉스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으로 삼은 것이지요. 긍정적 사고와 희망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사례인데,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에도 긍정적 사고와 희망 이상의 치유책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p. 237).
가족을 잃은 상실감은 말할 수 없이 큰 슬픔이자 고통입니다. 그래서 트라우마를 겪은 많은 사람들은 트라우마로 인한 상실을 받아들이고 슬퍼하는 것을 피하려 합니다. 트라우마의 기억을 피하려 하듯이 상실감도 회피하고 외면하려고만 하는 것이죠. 그리고 조반니처럼 "내가 그때 그런 실수만 하지 않았다면”이라는 자책감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으려 합니다. 어쩌면 상실감을 인정하는 것보다 자책을 하는 것이 덜 괴롭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현실을 외면하는 태도일 뿐입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현실에 적응하는 것을 늦추기만 할 뿐이지요.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되돌릴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하고 상실에 대해 충분히 슬퍼하고 아파해야 합니다. 이것을 적응적인 애도 반응adaptive grieving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애도 반응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언제쯤 끝나야 한다는 원칙도 없습니다. 얼마든지 슬퍼하고 원망하고 애통해해도 됩니다. 다만 그런 과정을 통해 서서히 상실로 인한 슬픔과 아픔이 인생의 중심에서 멀어져가면 됩니다. 이렇게 상실감을 받아들이는 것은 누가 뭐래도 살아남은 자의 몫입니다(p. 271).
험난한 이 세상,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커다란 풍랑에 휩싸이지 않고 별 기복 없이 순탄하게 살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뜻하지 않게 큰 사고를 당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이지요. 또한 한순간에 누군가에게 배신당할 수도 있고, 협박당할 수 도 있고, 버림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트라우마는 누구에게나 바로 옆에 있는 것입니다. 통계에 따르면 두 명 중 한 명은 일생에서 트라우마에 해당되는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고 합니다. 정면으로 트라우마와 맞부딪치게 되었을 때 그 충격과 후유증의 흔적이 얼마나 깊게 남을 것이냐 하는 데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것 중 하나가 가장 가까운 사람, 즉 가족 • 친구 • 연인 • 배우자의 태도입(p. 277)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이해와 지지 그리고 함께 아파해주는 공감은 고통스러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 가장 커다란 자원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이해와 지지, 공감을 받지 못할 경우 트라우마의 상처는 오히려 점점 더 깊어지게 됩니다. 특히 어머니라는 절대적 존재로부터의 공감의 결여는 그 자체만으로도 또 다른 제 2의 트라우마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p. 2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