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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대식 목사 칼럼14】 두려움의 이유 (딤후 1:7)
    두려움의 이유 (딤후 1:7) 인간은 누구나 두려움이 있습니다. 두려움의 많고 적음의 차이뿐입니다. 죄가 들어온 후,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죄를 지으면 두려움이 있고, 의인은 담대합니다. 디모데후서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는 것이 아니고 사탄이 줍니다. 두려움의 이유가 너무나 많습니다. 건강 검진하고 결과를 기다릴 때 두렵습니다. 건강 검진 결과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두려워한다고 건강 검진 결과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두려움이 있으면 건강 검진하기 싫어하는데 두려워서 건강 검진 안 하면 병을 키우게 됩니다. 담대히, 자연스럽게 건강 검진해야 합니다. 담대함을 훈련해야 합니다. 과거의 고난과 어려운 시험이 있었던 트라우마가 큰 자가 두려워합니다. 지나간 과거에 매이지 말고 현재에 감사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만나서 무슨 이야기 하겠다고 말하면 신경 쓰이고 두렵습니다. 막상 만나보면 큰 일이 아니고 습관적으로 만나자고 하는 자도 있기에 만남을 자연스럽게 담대히 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무슨 말을 해도 담대하고 성령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만나서 대화하면 풀리고, 유익한 만남이기도 합니다. 만남을 스트레스로 여기지 말고 즐겨야 합니다. 실수하고 약점이 잡히면 두려움이 있습니다. 가능하면 약점을 잡히지 않도록 언행심사를 조심해야 합니다. 실수 없는 자는 없습니다. 실수를 통해 배워야 합니다. 미래의 일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내일은 나의 시간이 아니고, 인간은 미래를 알지 못합니다. 미래를 두려워하는 것은 쓸데없는 두려움입니다. 쓸데없는 염려와 두려움이 큽니다. 마음이 소심하고 좁은 자, 예민한 자가 두려워합니다. 마음을 넓혀야 하고, 지나치게 예민하지 말고,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모든 일이 진행됩니다. '실패할까, 관계가 깨질까'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실패 없는 인생은 없고, 온전한 관계는 없습니다. 실패하면 교훈 삼고 관계 깨지면 조심하고 고치면 됩니다. 관계 깨지지 않은 인생은 없습니다. 더 좋은 관계 위해 노력하고 최선 다하면 됩니다. 시기, 질투, 미움이 있을 때 두렵습니다. 사랑이 두려움을 이깁니다. 사랑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두려움은 스스로 속는 것입니다. 실패의 이유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두려워서 해야 할 말을 못하면 오해가 커지고 문제가 커집니다. 담대함과 용기가 성공의 비결입니다. 잠언 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 하리라 성령 받지 못하면 두렵습니다. 성령 받으면 담대해집니다. 날마다 성령의 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두려울 때 두려워하지 말라, 담대하라는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이사야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요한복음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두려움은 문제를 만들고, 담대함은 문제를 해결합니다. 사탄은 두려워하게 하고, 성령님은 담대함을 줍니다. 믿음은 담대함입니다. 도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오해하고 잘못 말해서 선동하면 사람을 두려워말고 담대히 말을 해야 합니다. 대화에도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두려움이 있으면 말문이 막히게 됩니다. 두려움이 실패와 멸망의 이유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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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17
  • 【양대식 목사 칼럼13】 최고의 절대 명언
    최고의 절대 명언 세상에는 유명하다는 사람들의 명언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명언은 참고가 되고 유익하나 진리는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면서 최고 절대 진리의 명언입니다. 성경의 절대 명언을 읽고 묵상하고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성경의 명언은 그대로 이루어지고 변하지 않는 명언입니다. 성경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명언입니다. 최고 지혜의 명언입니다. 예수님의 절대 진리 명언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6: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마태복음 5:3-12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사도바울의 명언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사도 요한의 명언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1서 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성경이 절대 진리의 명언임을 기억하고 읽고 묵상하고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성경의 명언은 우리에게 큰 힘과 격려가 됩니다. 성경의 명언은 생명의 명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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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16
  • 【북토크383】 전 법관의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나의 일상을 풍요롭게 채우는 건 어떤 의미인가, 다른 사람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사람과 사회는 바뀔 수 있는가. 자작나무에서 지리산으로, 도스토옙스키에서 몽테스키외로, 일상에서 재판까지. 호의는 사람을,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 받은 것을 사회에 되돌려주라던 김장하 선생과의 추억, 법을 몰라 손해 보는 이들을 헤아리는 마음, ‘자살’을 시도했던 재소자가 ‘살자’는 다짐을 하게 만든 선물,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며 속절없이 흘리는 눈물, 그리고 건강한 법원과 사회를 향한 진심 어린 조언…교보문고 계엄을 도모했던 윤석열을 단죄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쓴 책으로 가볍게 읽을만하다. 착한 사람을 위한 법 2001. 4. 22. 법 없이 살 사람 착한 사람을 일컬어 '법 없이 살 사람'이라고들 한다. 법의 강제 없이도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사람이란 뜻이리라. 과연 착한 사람에게 법은 필요 없는 것일까? 법 없이 살 수 없는 사람 나는 법이 어떠하다고 정의할 만큼 경력도 풍부하지도 않고 타고난 재주도 없지만, 1983년 법학을 전공한 이래 지금까지 18년을 법과 함께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 (그런 점에서 나는 법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다) 착한 사람일수록 법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p. 19). 종종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나가곤 하는데, 거기서 늘 하는 말이 있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 나에게 힘써달라고 전화해봐야 아무 소용 없다. 사건이 터지기 전에 나에게 법을 물어보라." 도대체, 전 재산과 다름없는 300만 원을 전세금으로 걸면서 그 집이 경매 중인 사실도 확인하지 않고 계약하는 사람을 누가 구제해줄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들은 대개 사건이 터지고 난 뒤에야, 집주인을 사기죄로 고소했으니 수사 기관에 힘 좀 써서 집주인을 즉시 구속시켜 달라고 법조인에게 전화를 한다. 법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 하나는 보장적 기능이다. 일정한 행위를 금지하고 거기에 저촉되지 않으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게 해주는 측면이다. 여기서 '법 없이 살 사람'이 빛을 발한다. 다른 하나는 보호적 기능이다. 그러나 법의 이러한 보호적 기능도 경매 절차에서 배당 요구를 하는 임차인이나 노동자에게만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에 유의하여야 한다. 여기서 '법 없이 살 사람'은 초라하기만 하다. 착한 사람부터 법을 알자 판사로서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착한 사람은 법을 모르(p. 20)고, 법을 아는 사람은 착하지 않은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런 사건일수록 해결이 어렵고, 착한 사람을 보호하고자 궁리를 해보나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착한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 따로 있고 착하지 않은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 따로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법을 아는 사람에게 착하기를 요구할 것 인가? 불가능은 아니나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남는 방법은 착한 사람이 법을 아는 것이다. 그 길만이 법이 나쁜 사람을 지켜주는 도구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하는 지름길이다(p. 21). 형사 재판 잘 받는 방법들 중 2006. 12. 19. 진술 거부권 행사 자기에게 불이익한 사실에 대하여 진술을 거부하는 것은 헌법 및 형사 소송법에서 보장된 피고인 및 피의자의 권리입니다. 따라서 법정에서 판사로부터 불이익한 사항에 대하여 질문을 받을 때 진술을 거부하면 되겠습니다. 괘씸죄가 걱정된다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면 되겠습니다. 이것이 모순되거나 불합리한 답변을 하는 것보다 유리합니다. 답변 방식 법정에서 판사의 질문에 대하여 답변을 할 때는 결론을(p. 45) 먼저 말하고 이유를 나중에 설명하는 것이 효과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판사는 질문을 통하여 사건의 윤곽을 파악 하려고 하므로, 판사에게 결론을 먼저 말함으로써 판사가 설명이 더 필요한 부분인가를 쉽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습니다. 판사는 여러 각도에서 사건을 살피기 위하여 다양한 질문을 하는 것이므로, 설령 질문이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 일지라도, 판사가 상대방의 편을 든다고 섣불리 생각하지 말고 정중하게 답변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판사는 피고인의 진심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p. 46). 민사 재판 잘 받는 법 2007. 5. 17. 오늘 재판을 하면서 느낀 점을 토대로 민사 재판 잘 받는 방법을 적어보았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소송을 하려면 어려운 일이 많으므로 형편이 허락한다면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좋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였다고 해서 변호사에게 모든 것을 맡길 것이 아니라 수시로 소송 진행 정도를 확인하고 대응 방안을 함께 의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p. 61). 준비 서면을 간단명료하게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할 경우 법무사의 도움을 받거나 본인이 직접 준비 서면을 작성해야 할 터인데, 이때 주의할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준비 서면이라는 것은 당사자의 주장에 불과하므로 아무리 유리한 내용을 적어놓더라도 증거가 없으면 인정받기가 어려운 반면, 불리한 내용은 별도의 증거가 없더라도 본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따라서 준비 서면은 간단하게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증거가 뒷받침되는 내용일 경우 명료하게 주장을 펼치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준비 서면에 상대방을 비난하는 내용을 적을 경우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해롭다는 것입니다. 재판이라는 것이 당사자의 도덕성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고, 뚜렷한 증거 없이 상대 방을 비난할 때 판사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어렵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준비 서면에 똑같은 내용을 되풀이하여 적어내는 것도 피해야 합니다. 재판부는 많은 사건을 처리하고 있으므로 그들의 노고를 덜어주는 것도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p. 62). 소송의 승패는 증거에 달려 있습니다 민사 소송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증거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흥분할 필요 없이 차분하게 증거를 수집하여 제출하는 사람이 이길 수밖에 없습니다. 증거로는 애초 사건이 있었을 때 작성된 서류, 특히 상대방이 서명 또는 날인한 서류가 가장 효력이 강하고, 그 다음으로 제3자가 작성한 서류가 효력이 강합니다. 증인의 증언은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법정에서는 결론부터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직도 법정에서는 많은 사건을 처리하는 실정이므로 법정에서 판사로부터 질문을 받았을 때는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다음에 그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하는 것이 좋습니다. 조정 또는 화해를 권유받았을 때는 존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재판을 하다 보면 어느 당사자의 주장이, 설득력은 있으나 증거로 뒷받침 되지 않는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법적 관점으로만 해결할 경우 어느 당사자에게 더 가혹하기도(p. 63)합니다. 이길 승산이 있어 보이나 시간과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법원은 당사자에게 조정 또는 화해를 권고하는 데, 긍정적으로 검토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조정 또는 화해 절차에서는 집행에 관한 내용을 반영할 수도 있으므로 이러한 점에서도 조정 또는 화해의 효용은 높습니다. 증인 신문을 할 때는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허점을 짚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법정에 출석한 증인을 상대로 질문을 할 경우 "거짓말쟁이다" "양심도 없느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차분하게 증언의 허점을 짚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상대방이 질문하는 내용을 (미리 받을 수 있습니다) 검토하여 허점을 정리했다가 법정에서 질문 하는 것이 좋습니다. 바람 턱없이 부족한 내용일 것입니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소송을 잘해서 이길 사람이 이기는 재판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p. 64). 문제가 터지고 나서 소송을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은 문제가 터지기 전 검토를 충분히 하는 것입니다. 몇 천 만 원이 오고가는 계약을 체결할 때 변호사나 법을 잘 아는 사람에게 비용을 들여서라도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길게 볼 때 비용이 더 적게 듭니다(p. 65). 책을 읽는 이유 세 가지 2010. 2. 16. 책을 많이 읽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받는다. 무지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고전을 읽은 적이 없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가 보니 문화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투리는 말을 안 하는 것으로 감출 수 있었지만 무지는 감출 방법이 없었다. '장 발장'이 《레미제라블》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읽었다(p. 108). 무경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판사가 되고 보니 사건을 이해하기엔 내 경험이 너무 좁고 얕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도대체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고 거액의 거래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잡히면 처벌받을 게 뻔한 일을 왜 되풀이하는지,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경험을 늘리려고 해보니 이 또한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당장 법관 윤리가 문제였다. 그래서 생각해본 것이 두 가지다. 지금은 언론사 사장이 된 어떤 분이 사법연수생이었던 나에게, 법조인이 되면 초등학교 동창생과 꾸준히 만나라고 당부했던 기억이 떠올라 초등학교 동창생을 만나기로 결심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8년 동안 1년에 몇 회는 초등학교 동창생을 (때로는 부부 동반으로) 만났으니 어느 정도는 실천한 셈이다. 두 번째가 책을 읽는 것이었다. 장르를 구분하지 말고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어보자 하였던 결심이 여기까지 나를 데려왔다. 무소신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어릴 때부터 내성적이었다. 남녀 공학 중학교 시절 소풍(p. 109)을 가서 선생님의 권유에 노래를 불렀는데 가사를 까먹어 끝을 맺지 못할 정도로. 그때 불렀던 노래가 남진의 〈님과 함께〉였다. 고등학교 때는 교복이 중고라서 반장을 하지 못했다. 대학교 가서는 사투리 때문에 남 앞에 나서지 못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무슨 결정을 하려면 무척 어려웠다. 결정을 하고 나면 곧 후회를 하게 되고. 어느 날, 내성적인 이유가 소신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했다. 군대에서 정훈장교를 하게 되었고 정훈장교 하는 일이 장병 교육이다 보니 남 앞에 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어느 정도 해소된 뒤라서 그런 결론을 더욱 쉽게 내릴 수 있었다. 앞서간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그들의 생각과 내 생각을 서로 맞추어보는 과정을 통해 생각이 단단해져 소신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포함해 많은 책을 읽게 되었다. 사족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면 그 사람이 누구와 만나고 무슨 책을 읽는지 말해달라."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p. 110). 혼돈의 시기에 그나마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친구와 책 덕분이라 생각하니 이 글을 쓰는 감회가 남다르다. 모든 분들에게 책을 한번 읽어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p. 111). 책을 고르는 기준 2010.6.26. 책을 어떻게 고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저자를 보고 고른다 어떤 책을 읽고 감동을 받으면 그 저자가 쓴 책은 눈에 띄는 대로 사서 읽는 버릇이 있다. 예를 들면 고 장영희 교수의 《내 생애 단 한 번》을 읽고 《축복》 《살아온 기적 살아 갈 기적》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는 식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저자는 다음과 같다. 신영복 교수, 정 민 교수, 유시민 전 장관, 소설가 김 훈, 오지 탐험가 한비야,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열하일기》 전문가 고미숙 박사(p. 124). 주제어를 보고 고른다 제목이나 문장을 검색하여 관심 있는 주제어가 들어간 책을 고른다. 요즘 즐겨 찾는 주제어는 다음과 같다. 정의, 소통, 성찰, 역사, 철학, 인생, 여행, 행복. 이런 기준으로 고른 책은 다음과 같다. 《정의란 무엇인가》 《서양철학사》 《인도 여행》 《행복의 정복》 《무지개 원리》 《인생이란 무엇인가》 등등. 책 선택에 실패한 적은? 이런 기준으로 책을 골라 읽으면서 후회할 때가 제법 있다. 그러나 산 책은 다 읽는다. 재미가 없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책에 대하여는 독후감을 쓰지 않음으로써 복수를 한다. 블로그에 올린 책은 이중으로 검증을 거쳤다고 보면 된다. 지금껏 읽은 책은,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1천 권 정도 될 것 같다. 책을 고르는 장소는?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하여 고르는 경우가 많고 가끔 서점에 가서 고른다. 베스트셀러 항목과 새로 나온 책 항목을 많이 참조한다(p. 125). 블로그에 독후감을 쓰는 이유는? 독후감을 쓰다 보면 책 내용을 정리하는 효과가 있고, 글쓰기 훈련이 되며, 블로그에 저장해놓으면 다른 글을 쓸 때 인용하기 쉽기 때문이다. 나쁜 사람은 있어도 나쁜 책은 없다. 어떤 책에서도 스승 또는 반면교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께 독서를 권한다. 책이 여러분을 끌어올려줄 것이다(p. 126). 왕후박나무 2011.4.1 남해군법원 다녀오는 길에 경남 남해군 창선면 왕후박 나무를 만났습니다. 500년 이상 되었다고 합니다. 둘레에는 동백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후박나무는 녹나무과에 속합니다. 주로 방풍용으로 많이 심는다고 합니다. 남해군 창선면에 있는 왕후박나무는 천연기념물 제29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왕후박나무는 높이 솟구치지 않고 옆으로 퍼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람 부는 바닷가에서도 500년을 버틴 게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렇다면 이 나무는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낮추는 것이 자신을 높이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것을 말입니다(p. 140). 조영남의 노래가 있죠. 〈겸손은 힘들어〉. 그렇죠. 겸손은 힘듭니다. 공자 이래 2천 년 동안 성현들은 겸손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겸손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적습니다(p. 141). 조정에 임하는 자세 2013.4.28. 조정이란 조정은 법률 분쟁이 생겼을 때 판사의 판결이 아니라 당사자 간 타협을 통하여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를 말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법원에 접수된 사건 중 판결까지 가는 사건은 10퍼센트가 되지 않고 대개는 조정을 포함한 여러 가지 간이한 방법을 통하여 사건을 처리한다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 조정은 이길 사람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것이니 불합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길 사람이라는 건 미리 정해진 것은 아니고 재판 절차를 통하여 증거를 대고 법리를 세워야 하고 그것으로 판사를 설득해야 하며 최종적으로 대법원까지 가봐야 아는 것이다(p. 188). 그리고 1천만 원을 받기 위하여 소송 비용으로 500만 원을 들여야 한다면, 700만 원을 받고 소송 비용을 100만 원 선에서 지출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도 있다. 사건에 관하여 가장 절실한 이해관계자는 판사도 아니 고, 변호사도 아니며, 결국 당사자다. 사건을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람도 당사자일 수밖에 없으므로, 당사자의 주도권이 가장 잘 보장되는 조정 절차가 불합리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조정에 임하는 자세 양보해야 한다. 조정은 당사자 간의 타협을 통하여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고 대체로 당사자는 서로 이해관계가 상반되므로 양보를 해야 조정이 성공한다. 본인이 참석해야 한다. 변호사에게 소송을 위임한 경우라도 조정 절차에는 본인이 참석하는 것이 좋다. 판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고, 상대방의 입장을 직접 들을 수 있으며,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상생하는 방법도 있다. 본인에게 크게 불리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크게 배려하는 방법도 있다. 상대방이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쟁점에 관하여 양보하더라도 본인에(p. 189)게 크게 불리하지 않은 경우도 있으므로, 상생하는 방법을 찾아본다. 집행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소송을 하는 종국적 목적은 대체로 승소 판결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돈을 받아내기 위함이다. 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더라도 집행 절차에서 돈을 받아내는 비율은 생각보다 낮다. 조정 절차에서는 돈을 받아내는 방법도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있으므로 유리하다. 원고는 5천만 원을 고수하고 피고는 3천만 원을 고집할 경우 4천만 원 선에서 타협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때로는 5천만 원으로 정하되 3개월 내에 3천만 원을 가져오면 나머지 2천만 원을 포기하는 방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싸우는 것은 금물. 간혹 조정실에서 상대방과 말이나 몸으로 싸우는 사람이 있다. 사연이 있겠지만 판사 입장에서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자신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풀 수 있는 자리를 어렵게 마련했는데 불만을 터트리는 자리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불합리한 처사다. 그 사건이 해결 되지 않을 경우 가장 손해를 보는 사람은 판사도 아니요 변호사도 아니요 바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판사의 설명에 귀 기울인다. 법원이 조정 절차를 주도하(p. 190)는 경우 판사로부터 사건 전반에 관한 설명을 듣게 된다. 판사는 내가 불리한 점, 내가 유리한 점을 나누어 설명할 것이다. 잘 들으면 판사가 생각하는 바를 엿볼 수 있다. 특히 2심이라면 사건 처리 방향이 대부분 결정되었다고 보면 된다. 민사 사건의 경우 대법원에 상고를 해서 2심 판결이 깨지는 비율이 10퍼센트가 안 된다는 점, 사실 인정은 원칙적으로 2심에서 하게 되어 있는 점을 고려할 때, 2심 재판부의 결론은 존중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내 입장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좋다. 마무리(롯데자이언츠의 마무리는?) 집안에 송사가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적당한 선에서 털고 나오는 것도 마음의 평화를 찾는 좋은 방법이다. '조금 손해 본 것은 다른 일을 해서 보충하면 된다.' 이런 생각으로 조정에 임할 수는 없을까요?(p. 191). 재판 속의 문학 내가 현실에서 맡은 재판은 그렇게 감동적이지 않았다(p. 304).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문학이 재판에서 많은 것을 차용하지만 재판은 문학에서 차용하지 않고 순수함을 고수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판사는 많은 경험을 해야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제한적인 경험을 할 수밖에 없다. 문학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문학은 보편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고, 재판은 구체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며, 양자는 서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판사들이 다 가난했던 경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김훈의 《흑산》을 읽고 나면 가난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가령, 배고픔을 면하자면 오직 먹어야 하는데 많은 끼니 중에서도 지금 당장 먹는 밥만이 배를 채운다는 내용이 그렇다. "아침에 먹은 밥이 저녁의 허기를 달래줄 수 없으며, 오늘 먹는 밥이 내일의 요기가 될 수 없음은 사농공상과 금수축생이 다 마찬가지다." 내가 10년 전 처리한 사건 중 20대 청년이 공무집행 방해죄로 구속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생모라고 밝힌 사람이 탄원서를 보냈다. 오래전에 헤어진 아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자신이 책임지고 선도를 할 테니 선처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p. 305). 재판을 하며 방청객을 둘러보니 유난히 눈에 띄는 분이 있었다. 피고인석 옆에 앉아 대화를 하게 하였더니 피고인을 껴안으면서 "이제 괜찮아, 엄마가 있잖아"라고 말했다. 피고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생모와 시선도 마주치지 못하였다. 생모를 만났으니 이제 마음을 잡지 않겠는가 생각하고 집행 유예 판결을 선고했고, 피고인에게 책을 선물하면서 그 책 한 쪽을 읽어주었다. 알프레드 디 수자의 시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다. 내가 10년 전에 처리한 사건 중에 피고인이 자살을 하려고 여관에 불을 질러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불은 크게 번지지는 않았고 다친 사람도 없었다. 선고하는 당일 피고인에게 자살을 열 번 외치게 하였다. "자살자살자살자살.... 이렇게 열 번 하면 본인은 '자살' 이라고 말하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살자'로 들립니다.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실패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자살에 실패해서 살았지 않았습니까?" 그러고서 피고인에게 《살아 있는 동안 해야 할 49가지》란 책을 선물했다. 나는 이런 재판을 하게 된 배경 중 8할이 문학 덕분이라고 생각한다(p. 306).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 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어쩌면 좋은 문학과 좋은 재판은 그 모습이 모두 비슷할지 모른다.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공동체의 보편적 가치를 질문할 때, 주제와 이야기가 딱 들어맞을 때 독자들은 감동한다. 판사들이여! 《유토피아》를 쓴 토마스 모어가 영국의 대법관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작가들이여! 긴장하시라. 대한민국의 판사도 또 다른 '유토피아'를 쓸지 누가 알겠는가?(p.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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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6-04-16
  • 【북토크382】 죽음을 늘 준비하며 살자
    KBS 《아침마당》, 《강연100℃》 등에 출연해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위로와 공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 호스피스 의사 김여환의 에세이 《내일은 못 볼지도 몰라요》. 극심한 암성 통증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누구보다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임종 선언을 했던 저자 김여환.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꼼꼼히 기록한 이 책은, 삶이 완성되는 마지막 순간을 위해 더없이 소중한 오늘을 ‘있는 힘껏’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아내야 한다는 인생의 진리를 전하고 있다-교보문고. 이 책은 호스피스 의사가 수많은 죽음을 보고 삶과 죽음에 대해 느낀 것을 쓴 것이다. 많이 유익했는데 현재 절판됐다. 사람의 일생 중 가장 힘든 시기는 보증을 잘못서서 거액의 부도를 냈을 때나 남편이 바람을 펴서 이혼할까 말까 망설일 때가 아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인생의 반전 같은 일말의 빛조차 기대할 수 없는 시간들, 즉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까지의 '짧은 삶'이다. 그 시기를 잘 보내야만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을 온전한 나의 인생으로 만들 수 있다. 그래야만 남겨진 사람들의 인생도 편안해질 수 있다(p. 8). 그렇다. 나는 이 세상에 남들보다 조금 먼저 작별 인사를 건넨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토록 자명한 삶의 진리를 힘겹게 깨달았다. 만약 우리에게 내일이 오지 않을 것임을 안다면, 오늘 우리의 삶은 결코 평범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만약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내일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면, 한 번 더 사랑한다 말하고, 한 번 더 안아주어야 하며, 오늘 깃든 행복을 있는 힘을 다해 누려야 한다. 이렇게 수많은 '오늘의 삶'이 모일 때 삶의 아름다운 결과물은 비로소 완성 된다. 그러므로 "내일은 못 볼지도 몰라요."라는 말에 숨어 있는 참된 의미는 오지도 않은 내일에 대한 불안과 분노, 두려움과 슬픔에 오늘의 행복을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 더 사랑하고, 오늘 더 행복해야만 한다(p. 10). "2012년 8월 21일 12시 42분, 신복연 할머니는 사망하셨습니다." 나는 할머니가 더 이상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사실을 말했다. 그리고 통증 없이 편안히 좋은 곳으로 떠나셨다는 위로의 말도 빼놓지 않았다. 짤막한 사망 선언 뒤에는 언제나 그 마지막 순간을 지키고 있던 가족의 대성통곡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오늘은 조용했다(p. 22). 할머니의 둘째 딸이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우리 엄마가 평소에 유언을 했어요. 내가 떠나면, 울지 말라고. 자식들이 우는 소리가 들리면 뒤 돌아보느라 떠나는 것이 힘드니, 울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어요." "아...하여간 대단하세요. 입원 내내 웃지 않으신 날이 없었는데, 그런 아름다운 유언까지 하신 줄은 몰랐어요. 제가 들어본 유언 중에 가장 훌륭한 유언인 것 같아요." "과장님, 그렇죠! 우리 엄마가 암에 걸렸다고 하니까, 동네 사람들이 이제 꽃 한 송이가 지는구나, 했다니까요." 곱게 아껴두었던 꽃분홍색 한복으로 갈아입고, 흰 양말까지 정갈하게 신은 신복연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살아 있는 그 누구보다도 따뜻해 보였다(p. 23). 짧은 글 한 편을 쓸 때에도 마지막에 무슨 말을 쓸까를 생각하면서 쓰면 글의 흐름이 매끄러워지듯이, 인생도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고 살다 보면 들쭉날쭉한 인생이 일관성 있게 변한다. 타인과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자기 자신과 먼저 소통해야 한다. 자신의 마지막 순간과 소통하면 인생의 해답을 얻을 수 있다(p. 25). 자신과 만나려면 가장 낮은 곳으로 가야 한다. 그러므로 임종실은 부끄럽지만 가장 볼품없고 꾸밈없는 자신의 민낯이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신 있게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만남은 바로 '나의 마지막'이라고(p. 26). "호호호, 난 아직 여기 입원할 단계는 아닌 걸요." "아직은 마약성 진통제를 쓸 만큼 아프지는 않아요." "며칠 전에도 산에 다녀올 만큼 괜찮았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멀쩡하게 걸어 들어오는 말기 암 환자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건강해 보이는 말기 암 환자들이 한두 달 뒤에는 누런 황달이 오거나 폐렴이 와서 황망히 떠나버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남겨진 시간에 대해 불안해하거나 초조해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그 짧은 시간에 환자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칠순 잔치를 하든지, 마지막 콘서트를 하든지, 이혼한 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들을 찾아주는 일들 말이다. 그래도 나도 한 번쯤은 환자를 살려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모두가 죽는다고 포기했던 말기 암 환자가 완치되는 일이 우리 병동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했다. 환자들은 입원해서 퇴원(p. 45) 할 때까지 평균 27일을 살았다. 호스피스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역시 기적이란 부질없는 비현실적인 희망이라는 것을 확신 하게 됐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가슴 저리게 갈구하기도 하고 신에게 떼를 쓰며 의지하기도 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적이겠지만,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이 훤히 보이는 나로서는 그렇게만 하다가 환자를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런 애절한 생각을 할 시간이 있으면 조금밖에 남지 않은 삶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오랜 경험을 통해 내린 슬픈 결론이었다. 사람이 좀 민민하고 삭막하게는 되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이것이 옳았다(p. 46). 말기 암 환자가 되면 환자와 가족은 육체와 정신적으로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과 맞닥뜨린다. 푸시시한 구차한 모습으로 마지막을 보낼 때쯤이면 원치 않았던 현재 시간이 살다 남은 찌꺼기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약한 정신 때문이 아니라 몸이 약해지기 때문에 마음까지 통째로 흔들린다. 심지어 어떤 환자는 "잠자듯이 가는 그런 약 있잖아."라고 노골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말기 암 환자가 안락사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p. 56). 비참한 마지막은 말기 암에 걸린 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살다 남은 삶이라고 쓰러져버리는 마음이 만드는 것이다. 떠날 사람은 남아 있을 이를 위해 조금 남은 삶을 성실히 살아가고, 남아 있을 사람은 떠날 이가 세상에서 사랑받다가 가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도록 노력하면 서로 덜 힘들다. 처음과 마지막까지, 모두가 촘촘히 내 인생이기 때문이다(p. 58). 세상은 가벼움과 무거움이 서로 경계를 불분명하게 가른 채 섞여 있다. 어떤 부분은 내가 그보다 가볍고, 어떤 부분은 내가 그보다 무겁다. 그렇게 어우러져서 세상은 좀 더 좋게 변한다. 그러나 '죽음이 다가오는 것'과 같은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가벼움과 무거움의 경계선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고함을 지르고 입원실 바닥에 소변을 보는 한 할아버지 때문에 사흘 밤낮 동안 시달린 환자들이 하소연을 했다. 할아버지를 간병하던 할머니는 "환자가 병원에 자러 왔나요?"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진정제도 못쓰게 하고 1인실로 가지도 않았다. 그런가 하면 뇌종양에 걸린 12살짜리 소녀는 과자를 들고 병실을 누비며 "아저씨, 빨리 나으세요."라고 하면서 환자들에게 나눠주었다. 한 신문 기자가 말기 폐암 환자에게 물었다(p. 67). "인생의 선배로서 우리에게 해주실 말씀이 없으신지요!" 후덕하게 생긴 환자는 가지고 있던 옷가지며 살림살이를 싹 정리할 정도로 죽음을 잘 받아들었다. 하지만 그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쓸쓸하게 대답했다. "저는....그런 것은 선배가 되고 싶진 않은데요." 그렇다. 죽음이란 일평생을 별 탈 없이 살다가 90살이 되어 마음 독하게 먹고 미리 준비해도 어려운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닥뜨리는 죽음은 아무리 노력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법이다. 죽어가는 사람을 많이 돌본 의사로서 한 가지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이 먼저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남은 사람들 걱정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나 때문에 끼니를 거를까 봐, 나를 잃은 슬픔으로 행여 병이라도 생길까 봐, 경제적으로 힘들까 봐 등등.... 그들은 사소한 걱정을 몰래 했다. 남은 사람들은 그 마음을 알까? 임종실은 섞일 수 없는 삶과 죽음이 뒤엉켜 있고, 살아남은 이들이 비통함에 눈물을 흘리는 작은 방이다. 그러나 그곳을 거(p. 68)쳐 간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존재란 그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도 사랑하는 이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라고(p. 69). 예전에 나는 보기조차 딱할 만큼 남을 부러워했다. 뚱뚱할 때는 날씬한 사람을, 늦게 시작한 의사 생활이 비참하다고 느껴질 때는 처음부터 순탄하게 직장 생활을 하는 동료를 얄밉도록 부러워했다. 누군가는 잘된 사람을 부러워하면서 인생의 꿈도 생기고 삶을 개척할 의지도 생긴다고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 부러움이 오늘날의 나를 있게 한 계기는 되었을지라도 그 과정은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이제 내가 진실로 부러워하는 사람은 돈이 많거나,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입학했거나, 예쁘고 날씬하고 건강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어떤 삶이 자신에게 다(p. 92)가오더라도 묵묵히 잘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으며, 자신의 삶을 그 자체로 당당하게 살아내는 사람이다. 우리는 저마다 지닌 인생의 향기가 따로 있다. 그러니까 이제는 그 누구도 부러워하지 말자. 인생의 마지막에는 행복했던 자신의 과거조차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 시간에는 그 시간에만 누릴 수 있는 나만의 행복이 따로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마지막이 온 것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아쉬운데, 여러 가지 잣대로 부러워하면 병들어 있는 자신이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부러워하지 말자, 그대여! 인생이 아파도 마지막까지 이 세상을 그 누구보다 당당하게 살아내야 한다(p. 93). 불행히도 호스피스에는 죽음을 편안하게 수용할 수 있는 묘약 따위는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속사정을 들어주면 조금은 가벼워졌고, 끝까지 끈을 놓지 않고 가는(p. 108)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평범한 사실에 평안을 찾아갔다. 대식 씨의 어머니처럼 때로는 버리는 것보다 안고 가는 것이 더 홀가분한 인생도 있다. 그러니까 결국 안고 가는 사람, 버리고 가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 셈이다(p. 109). 잘 죽어가기 위해 우리가 정말 배웠어야 할 것은 죽음의 5단계를 외우거나 혼자서 관 속에 들어가 보는 체험을 하는 것이(p. 112) 아니다. "저는요, 이미 죽음을 다 받아들였어요."라고 말하면서 의젓하게 지내다가 진짜 마지막이 다가오면 불안에 떠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라기보다는 결과물이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신산스럽고, 일상은 상처와 갈등의 연속이다. 나에게 주어진 삶을 얼마만큼 잘 녹여내느냐에 따라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있을 마지막 날은 달라진다(p. 113). 어쩌면 인생은 쓰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저절로 쓰이는 소설책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지만 어떻게든 끝까지 살아내야 한다. 죽을 만큼 괴로워도 직접 해봐야 삶에 대한 사랑이 깊어진다. 사람들은 인생이 힘들어지면 앞으로 남은 여정이 얼마나 끔찍해질지 더 두려워한다. 남은 인생이 지금보다 더 불편해지더라도 초조해하거나 원통해하지 말자.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그대의 삶이 다른 누군가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자살이라는 '고의로 스스로를 죽이는 행위'를 생각할 만큼 견딜 수 없이 힘들다면 적극적으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아무 상관도 능력도 없는 사람에게조차 알려야 한다. 마음의 피눈물은 말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상처는 치유될 수 없다. 애써 고통을 삼키지 말자. 누구라도 도와줄 사(p. 120)람을 찾아다녀라. 자존심 따위 내세울 때가 아니다(p. 121). 치통이 아무리 심해도 한꺼번에 진통제를 다섯 알씩 먹지는 않는다. 통증을 잡으려다 사람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타이레놀도 하루에 여섯 알을 초과하면 진통의 효과는 증가하지 않고 간에 부담만 준다. 이렇게 일반 진통제는 일반적으로 정해져 있는 용량을 초과하면 통증에 대한 효과보다는 약물에 대한 부작용이 심해지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용량의 한계가 있다. 이것을 약의 천장 효과(ceiling effect)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천장 효과가 없는 약이 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많이 쓰이는 마약성 진통제이다. 그것은 일반 진통제와 달리 많이 쓰면 쓸수록 통증이 잘 조절된다. 더군다나 날록손 (naloxone)이라는 해독제까지 있으니 '모르핀'이야말로 신이 세상을 떠날 때만은 아프지 말라고 인간에게 특별히 내려준 '마지막 선물'이다. 사망 원인 1위인 암은 사람이 떠날 무렵에 부쩍 커진다. 암(p. 129)덩어리가 커지면 정상 조직을 파괴하는 묵직한 암성 통증도 당연히 심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무 일찍부터 진통제를 쓰기 시작하면 통증이 가장 극심한 마지막 순간에는 정작 쓸 수 있는 약이 없을까 봐 전전긍긍한다. 모르핀을 최후의 약으로 넘겨 두었으면 하고 부탁까지 한다. 그러나 통증에 관한 한 모르핀은 쓰면 쓸수록 효과가 있는 약이다. 이러한 마약성 진통제의 비밀을 알려주면 누구나 "진짜 그런 약이 있나요?" 하고 물으며 신기해한다. 환자나 보호자는 어차피 살릴 수 없다면 고통 없이 떠날 수 있다는 확신만으로 가느다란 희망을 갖는다. 모르핀은 우리를 죽음의 공포보다 더 끔찍한 암성 통증에서 해방시켜주는 이로운 약제이다. 우리는 지금보다 좀 더 정확하게 모르핀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아직도 말기 암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환자, 보호자, 의료진의 모르핀에 대한 오해와 두려움으로 마약성 진통제를 거부하면서 의미 없는 통증에 시달리다가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인생의 마지막 의사로서 당부한다. 언젠가 당신에게 그때가 오면 신이 내린 선물, 모르핀을 거절(p. 130)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통증이 없으면 죽음의 맨 얼굴을 똑바로 응시할 수 있고, 고통 없는 죽음은 결코 폭력적이지 않을 것이다(p. 131). 내일 도사리고 있는 재앙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살아감 속에 죽어감의 흔적을 묻히는 것이다. 내일이라는 것이 그 누구에게도 완벽하게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 오늘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심코 거칠게 한 말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오지도 않을 비겁한 내일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너무 많이는 양보하지 말자(p. 163). 말기 암 환자가 되면 환자와 가족은 육체와 정신적으로 이제까지는 경험하지 못한 일을 경험하게 된다. 가족 간의 갈등이 있었다면, 분명히 그 갈등은 확대된다. 문제의 중심은 늘 '사랑과 돈'이다. 거기에 종교적인 문제가 곁들여지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p. 174). 살다 보면 마음 내키지 않는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하고 싶은 일만 해도 짧은 인생인데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 큰 손해를 볼 것만 같다. 젊은 시절에는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를 때가 많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나 매 순간 저마다 해야 할 일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해야 할 일을 하다 보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훤히 보이고 그때 용기 내어 그 일을 하면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것이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기도, 또 속절없이 짧기도 하다. 그러기에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실수 없이 하려면 마음에 내키지 않더라도 '해야 하는 일'을 먼저 하면서 견뎌보는 것쯤은 각오해야 한다(p. 187). 웰다잉(well dying)은 삶의 완성이 아니라 삶의 결과물이다. 누구나 손쉽게 받을 수 있는 선물은 더군다나 아니다. 저마다 주어진 힘든 삶을 잘 살아내야만 누릴 수 있는 삶의 마지막 축 복인 것이다(p. 203). 죽음을 깊숙하게 연구하고 싶어서라든지 내 성격이 원래 우울해서 호스피스 의사가 된 건 아니다. 나는 호스피스 일을 해오는 동안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사람도 죽음에 이르기 직 전까지는 살아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누구도 아프지 않게 하루를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거창한 죽음의 여의사가 아니라 그저 생명의 에너지가 다 할 때까지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의사로서 당연한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름이 주는 거부감 때문에 국내 암 환자의 마약성 진통제 사용률은 그리 높지 않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국내 사용량은 모르핀으로 환산했을 때 환자 1인당 연간 45mg에 불과하다. 미국 693.44mg, 영국 334.52mg은 물론 세계 평균 58.00mg보다도 낮다. 통증을 효과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안 쓰는 것이다. 아직도 대한민국 사람들은 아프면서 죽어간다. 의사 입장에서 보면 죽음이 삶의 종착역인지 따위는 일단 환자의 통증을 덜어준다음에 생각할 일이다. 암 환자의 통증은 당사자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다. 출산의 고통이 10점 만점에 7~8점이라면 암 환자의 통증은 10점 이상도 간다.암성 통증은 암이 진행되는 생명의 마지막에는 더 심해지고, 그(p. 215)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환자와 가족을 더더욱 애타게 한다(p. 216). 인생을 산다는 것은 세상에 놓인 하나의 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하지만 그저 다리를 건너는 일에만 집중한다면 세상의 아름다움은커녕 다리를 뒤흔들 고통과 혼돈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다. 뜨거운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자기 삶의 아웃사이더가 되어보기를. 삶이 끝난 뒤에 죽음이 오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죽음이 있음을 알아차리기를,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게 되기를 바란다(p.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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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6-04-13
  • 【북토크381】 삶의 찌질함과 누추함에 대하여
    산문집 《연중무휴의 사랑》과 《헤아림의 조각들》(2023년 문학나눔 선정도서)로 2030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임지은이 신작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를 출간했다. 전작에서 냉철하고, 때론 따뜻한 연민과 너른 헤아림을 보여줬다면 이번 산문집에서는 작가 자신의 깊은 내면에 숨겨진 질투와 열등감, 욕망과 좌절, 위선 등의 감정을 진솔하게 마주해본다. 누구나 한번쯤 특별한 이유 없이 무언가를 미워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싫음’이라는 감정은 과연 무엇일까. 숨기고만 싶은 이 복잡 미묘한 감정을 들여다볼수록 작가는 거기에 어떤 선망이나 외로움, 부끄러움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편으론 자기가 가진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을 돋보이게 하려는, 서툰 사랑의 마음이기도 했다. 작가는 슬픔과 기쁨과 외로움이 버무려진 이 “혼탕과 같은 삶”에 깊게 몸 담그며, 미움과 사랑 사이의 낙차를 발견한다. 엄마를 통해 흉보는 마음과 사랑이 때론 붙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온 세상과 자기 자신을 고루고루 아낌없이 사랑한다는 사람들 옆에서 홀로 투덜거리며 자신의 ‘싫음’을 통해 타인의 ‘싫음’ 또한 이해하게 되는 세계를 경험한다. 좋은 것은 당연하게 제 것이라 누리는 동거인에게 꼬인 마음이 드는 자신을 들여다보며 좋은 것을 좋은 것이라 수긍하기까지의 내면의 갈등과 고통을 인정하기도 한다. 이처럼 작가는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것대로 멋진 일이지만, 무언가를 미워한다는 것 또한 때로는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을 톺다 보면 이 책을 추천한 오은 시인의 말처럼, “곡절 없이 좋아하는 것들을 몇 곱절 더 소중하게 만들어주는” 생경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곧 있으면 닥쳐올 매서운 겨울바람에도 직진하는 용기가 느껴지는 책이다.-교보문고 자신의 찌질함(?)을 드러내는 글을 보며 저자의 용기를 본다. 만족스럽지 않은 환경 가운데서도 살아볼려고 하는 저자의 몸부림(?)에 박수를 보낸다. 이토록 많은 말이 오가는 세상에 말 한마디가 그토록 크게 사람을 흔들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놀라고야 만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버티고 또 흔들릴 만큼 나는 취약 했다. 그러나 누군가를 흔드는 게 무작정 나쁘다거나, 사주는 믿을 만하지 않다는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니다. 나를 흔들던 말 또한 나를 이쪽으로 데려왔음을, 내가 무언가를 그 안에서 발견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밤 안도 속에서 깨달은 건 나를 격려해주는 이가 없어도, 심지어 누가 나를 흔들어놓고 수면 아래로 밀어 넣는다 해도,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란 사실이었다. 그로 인해 생겨난 불안과 슬픔과 무력감, 또 그에 따른 오기와 반발심을 동력 삼으며, 나는 내 안에서 끝내 살아남은 무언가를 마주했다. 어쩌면 그(p. 25)것이 그리도 중요했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나 흔들렸다는 사실 또한. 그러므로 물음에 대한 답은 추가되고 갱신된다. 어쩌다 작가가 되었을까? 나는 끝내 작가가 되고 싶었다(p. 26). 오늘날에는 자신을 돌보는 법에 대한 정보가 넘쳐난다. 그런 정보의 과잉은 때론 상처도 불행도 없어야 한다는 강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건 꼭 완두콩 한 알 만큼의 불편도 용인하지 않기 위해 고안된 듯 보이니까. 혹시 사람들은 자신에게 좋은 것만 주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는 걸까? 그렇게 해야만 제대로 된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건 좀.. 부자연스럽지 않나? 그래도 그런 정보들을 일찌감치 알았다면, 그래서 내 부모가 조금 더 자신을 돌보았다면 그들에게도 내게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내 부모도 조금은 덜 힘들었을 텐데. 나도, 조금 덜 우는 사람이었거나 조금 더 마음 놓고 우는 사람으로 자랐을 텐데. 어쩌다 한 번 하는 우리의 외식도 지금보다는 더 편안할 텐데(p. 103). 뒤늦게나마 나는 내게 좋은 것을 주는 법을 배우고 또 연습한다. 가능한 선에서 질 좋은 걸 산다. 누가 뭘 해주면 사양하지 않고 받는다. 목돈을 모아 요가를 등록하고 되도록 병원을 제때 간다. 때론 근사한 데서 밥을 먹기도 한다. 부모로선 잘 모를 좋은 걸 누려도, 스스로를 이기적이라 느끼지 않으려 이를 악문다. 동거인이 놀리는 걸 보면 갈 길이 먼 것 같지만, 나는 나를 보살피는 훈련을 거듭한다. 그래야 부모를 포함해 그 누구라도, 나를 챙기느라 그 자신을 뒷전으로 두지 않을 수 있다. 그래야 나에게 최선을 다해준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고 끝까지 이해할 수 있다. 동거인의 캠핑을 따라가는 건 훈련의 일환이다. 캠핑을 가면 동거인이 거의 대부분의 일을 도맡아 해주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뻔뻔하게 앉아서 쉰다. 겨울에는 가끔 엄마의 개도 캠핑에 데리고 간다. 텐트 안에서 개는 한 뼘의 볕이 있는 자리에 자기 몸을 두기도 하고, 난로 앞 조금 더 따뜻한 곳에 자리를 잡고 웅크리기도 한다. 주어진 데서 기어이 제 몸만큼의 좋음을 찾아내는 것이다. '너는 바로 아는구나'(p. 104). 내가 오래 걸려 배운 걸 개는 그냥 해낸다. 기특하고 근사한 개 같으니. 몇 년 전가지만 해도 그런 광경, 자신이 괜찮아지는 위치를 미리 알아두고 스스로를 거기 놓는 존재 앞에서는 마음이 볼썽 사납게 흐트러지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웅크린 개를 빤히 바라본다. 걷는 법을 모르고도 걸었고 숨 쉬는 법을 모르고도 숨 쉬었다. 사랑 하는 법을 모르고도 사랑했고 사는 법을 모르고도 살았다. 나를 키워낸 내 부모처럼, 언제나 모르면 모르는 대로 해내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배우면 배우는 대로 더 해내게 된다. 그걸 안 뒤로 나는 배우고 싶은 모든 걸 조금 더 오래 본다. 그럼 볕을 받아 털끝 하나하나가 빛나는 작은 개의 부드러운 몸이 조금씩 솟았다 가라앉길 반복하듯 감탄과 슬픔이 내 몸을 고요히 오르내린다. 어떤 자연스러움은 누군가에게 훈련의 영역에 있지. 그런 게 언제나 조금씩 나를 상하게 만든다고, 개를 쓰다듬으며 생각한다. 아무 불편도 모르는 얼굴,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멸균된 얼굴은 역시 내 것이 아니다. 훈련 해봤자 조금 상한 얼굴을 더 자연스럽게 여기는 내 관점은 아무래도 끝내 바뀌지 않을 모양이다. 그래선지 어떨 땐 사람들의 얼굴이 다 조금씩 상한 것처럼 보이곤 한다(p. 105). 대중교통을 오가며 힐끗힐끗 사람들을 본다. 사람들이 상처 입거나 불행하지 않길 바라면서. 그러나 나는 어쩐지 그들 각자의 상처나 불행이 없어지길 곧장 바라지는 않는다. 거기서 오는 고통과 모순 같은 것들은 한 사람을 감싸는 오래된 맥락이므로. 나로선 그 안에 새겨진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다. 그들의 완두콩들을 헤아려 보고 싶다. 그런 건 사람이 상처와 불행 속에서도 그럭저 럭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알려준다. 다만 그 사실을 증명하겠다고 나를 몰아세우는 건 그만두었다. 스스로를 보살피는 게 죄가 아니라는 걸 개조차 그냥 안다. 나는 개처럼 살아서 숨쉰다. 개에게 배운 바, 그건 머무르는 자리에서 언제나 한 뼘의 볕을 찾아내야만 한다는 뜻이다(p.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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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13
  • 【양대식 목사 칼럼12】 글쓰기의 중요성에 관계된 성경 구절
    글쓰기의 중요성에 관계된 성경 구절 말하는 것이 중요하나, 글을 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말하면 사라지고 기억에 남지 못하나 글을 쓰면 작품을 남기게 되어 두고두고 읽고, 감동을 받게 됩니다. 글을 통해 소통하고, 선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글을 쓸 때, 진실하게 써야 합니다. 나쁜 글을 쓰면 나쁜 영향을 끼치고 문제가 생기기에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의 저자들이 글을 써서 성경을 남긴 것입니다. 성경은 최고의 글입니다. 글쓰기의 중요성에 관계된 성경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박국 2:2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요한복음 8:8-9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데살로니가전서 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디모데전서 1:2 믿음 안에서 참 아들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골로새서 1:2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디모데후서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요한1서 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누가복음 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부지런함과 인내가 있어야 글을 쓰게 됩니다. 글을 쓸 때 기도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감을 글로 써야 합니다. 글을 쓰는 것은 훈련과 연습, 경건 훈련입니다. 글 쓰는 영을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글을 쓰는데 도전해야 합니다. 글쓰기가 힘이 드나, 글을 쓰는 것은 유익이 많습니다. 글을 써서 자료를 남기고 책으로 출판해야 합니다. 글을 써서 나누는 것이 문서 선교입니다. 글을 쓰면서 트라우마가 사라지고, 고독을 이기고, 마음의 병이 치유됩니다. 근심이 떠나기도 합니다. 메모하는 습관, 글을 쓰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종교개혁자들은 글을 남겨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설교자는 설교집을, 시인은 시를 남겨야 합니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글을 쓰는 것이 힘들다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모세는 모세오경, 사도 바울은 글을 써서 서신서 13권을 남겼습니다. 솔로몬은 잠언과 전도서를 글로 남겨 우리가 읽고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글을 써서 남겼습니다. 성경은 글을 써서 남긴 최고의 작품입니다. 성경이 없으면 구원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없습니다. 글을 쓰면서 자신의 삶이 치유되기도 합니다. 가장 보람된 것 중의 하나가 글을 써서 기록으로 남기고, 책을 출판하는 것입니다. 글을 쓰고 나면 출판 비용도 하나님이 공급하십니다. 글을 남겨야 합니다. 유명한 소설도 글을 써서 남긴 작품입니다. 글을 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글을 쓸 때,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글쓰기의 유익이 너무 많습니다. 글을 쓰면서 성장하고, 성숙해지며, 문제가 해결되기도 합니다. 글과 펜의 힘이 큽니다. 글을 써서 작품을 남길 때 흐뭇해지고,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설교자는 설교의 내용을 글로 남겨야 하고, 강의나 특강의 내용을 글로 써서 자료를 남겨야 합니다. 글을 써서 자료를 남기는 것이 큰 재산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고, 사람들이 읽고 도전받고, 은혜받는 좋은 글을 많이 남겨야 합니다. 글을 쓸 때마다 성령님의 도움을 구해야 하고, 글의 제목을 쓸 때도 성령님의 도움이 있어야 합니다. 남의 글을 베끼거나 카피하려는 유혹을 버리고 자신의 글을 써야 합니다. 자신의 글을 써야 힘이 있게 됩니다. 마음으로 글을 쓰고 영감을 받아 글을 써야 합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는데, 글쓰기의 중요성을 가르쳐주는 말입니다. 영어로는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입니다. 글의 힘이 어떤 것보다 크다는 의미입니다. 글쓰기는 여러 가지로 유익한데, 생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표현을 명확히 하게 되고, 감정을 표현합니다.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소통을 확장할 수 있고, 글을 기록으로 남기면 시간이 지나도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창의력, 논리력, 집중력을 길러주기 때문에 글쓰기의 유익이 많습니다. 글을 반드시 남겨야 합니다. 글을 써서 책으로 출판되면 마음이 기쁘고 흐뭇해집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 되어진 최고의 문서 선교입니다. 문서 선교의 효과가 큽니다. 글 쓰는 일에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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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2026-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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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상】 이제? 벌써? 60이다
    나는 1966년생으로 백말띠다. 띠를 잘 모르고 관심도 없는데 올해는 적토마 띠라고 한다. 뭐가 됐든 이제 내 나이 60살이다. 환장하겠다! 벌써 60인가? 내 마음은 아직도 이팔청춘인데 생물학적 육신의 나이는 60이다. 앞자리 숫자가 5에서 6으로 바뀌었는데 중압감이 크다. 마치 오래전 택시를 탔을 때 기계식 미터기의 숫자가 올라갈 때 느끼는 불안감이라고나 할까. 작년 연말과 올해 몇몇 연예인들이 세상을 떠났다. 이순재, 윤석화, 안성기 씨 등. 물론 이들의 향년은 다르나 그래도 그들의 죽음은 나로하여금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할 일은 많은데 벌써 인생의 해는 중반을 넘어가고 있다. 그동안 별 탈 없이 60년을 살아온 것이 감사하다. 앞으로 얼마를 살지 모르나 그동안 살아온 모든 세월에 대해 감사하며 살기를 원한다. 초등학교(내 때는 국민학교) 6학년 졸업을 앞두고 담임선생님께서 가르쳐 준 노래가 지금도 잊히지 않고 종종 떠오른다. 소나무야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 쓸쓸한 가을 날이나 눈보라치는 날에도 소나무야 소나무야 변하지 않는 네 빛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 쓸쓸한 가을 날이나 눈보라치는 날에도 소나무야 소나무야 변하지 않는 네 빛 그런데 벌써 이렇게 세월이 흘렀다. 남은 세월 감사하며 후회 없이 열심히 살고자 한다.
    • 오피니언
    • 칼럼
    2026-01-06
  • 【북토크328】 당찬 아가씨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우다
    이 책의 저자가 쓴 『효도하며 살 수 있을까』를 우연히 먼저 읽고 이 책을 찾아 읽었다. 책이 재미있고 당찬 느낌이다. 어디에 내놔도 살아갈 것 같은 단단함이 있다. 많은 것을 배웠다. 돈 벌러 사회에 진출해야 할 즈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공부를 들고파든 무슨 기술을 배우든 간에, 그들도 결국 무언가를 팔아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닌가. 회사라는 것도 알고 보면 대단한 비결을 가지고 운영을 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은 뭐든 가져다 팔아서 이익을 남기면 되는 것이었다. 콘텐츠든 재화든 싸게 만들어서 비싸게 많이 팔면 남는 게 아니던가. 변호사와 의사는 자신의 능력을 팔고, 선생님은 배운 걸 팔아 돈을 벌고, 예술가는 작품을 팔고 입장권을 팔아서 먹고산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돌연 삶이 보였다. "삶은 장사다!" 이제 돈 이야기는 어느 정도 자유롭게 하는 것 같다. 애들도 안다. 돈 없으면 서럽다는 것을. 하지만 '장사' 이야기를 하면 여전히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이 많다. ."장사? 아무나 하는 것 아니잖아(p. 23)요.?" "나는 평생 회사원 체질인걸요." 이렇게 말하며 꾹 참고 산다. 사는 것이 만족스럽지 않아도. 그런데 사실 우리는 모두 이미 장사를 하고 있다.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만만한 시간을 팔고 있다. 시간을 팔아서 공부를 하고 기술을 배운 다음, 그걸로 돈을 번다. 회사는 급여로 당신의 시간을 사서 이익을 남긴다. 하지만 팔 줄 아는 것이 시간밖에 없다면, 여유 있는 삶을 즐기는 데 제약이 많아진다. 평생 시간만 팔다가 더 이상 써주는 곳이 없으면 그제야 물건을 팔려고 하니 치킨이, 커피가 잘 팔릴 리가 없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장사를 해보자 지금 내가 시간만 팔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가진 것 중에 다른 팔 것은 없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그게 외부 강의를 하거나 책을 쓸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일 수도 있고, DIY나 수집처럼 취미생활 일 수도 있고, 세상의 흐름을 먼저 읽어 남보다 먼저 아이템을 발굴해내는 안목일 수도 있다. 아무것도 팔 게 없다면 새롭게 전문기술을 습득할 수도 있다. 어떤 것이든 더 이상 내 시간을 팔 수 없을 때 팔 것을 미리 생각해놔야 한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중요한 것 은 장사에 대한 감을 어릴 때부터 길러두는 것이다(p. 24). 한국에서는 사람을 평가할 때 어떤 차를 타는지 어떤 가방을 메는지를 본다. 특히 창업 강의를 나가면 창업해서 얼마나 돈을 벌었는지를 가늠하기 위해서인지 사람들이 대놓고 내 가방의 상표를 훑는다. 하지만 가방에 투자하는 대신 그 돈을 모으면 훗날 '명품 가방 낳는 황금 오리'를 가질 수 있음을 확신한다. 명품 가방은 나에게 큰돈을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이 아니기에, 그리고 거품 낀 가격을 지불하면 미소 지을 판매자의 얼굴에 배 아프기에, 나는 2만 원짜리 가방을 들어도 언제나 자신감 넘치고 경쾌하다(p. 35). 나를 일으켜 세운 300권의 책 "초반에 책을 많이 읽어 놓으니 지나가는 바람에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책으로 배우는 것보다 실전이 진짜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이야기 해주고 싶다. 무엇이 됐든 이론과 실전이 결합하면 무서운 것이 세상에 없는 거라고. 나는 쇼핑몰을 준비하며 300권의 책을 읽었다. 이렇게 많이 읽은 줄 몰랐는데, 후에 도서관 대출 기록을 세어보니 그만큼이나 되었다. 나는 책에서 끊임없이 동기 부여를 받았고, 책 덕분에 쉼 없이 달렸다. 지금도 나태해질 것 같으면 책을 꺼내든다. 한번이라도 불같이 달려본 적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면 주(p. 163)인공에 몰입해 나를 벌떡벌떡 일으켜 세우게 된다. 쇼핑몰 운영 초반에 내가 감동을 받았던 책들은 단연 쇼핑몰 운영을 성공적으로 했던 선배들의 경험담이었다. 쇼핑몰 기술서들은 한 번 보고 따라 하면 그만이었지만 에피소드와 CEO의 결심이 가득한 이 알토란 같은 책들은 일이 지겹거나 열정이 떨어지려 할 때마다 내가 포기 하지 않고 일을 지탱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책을 읽을 때는 정독 대신 다독을 한다. 좋은 책은 띄엄띄엄 읽으려고 해도 꼼꼼히 다 읽기 마련이고, 어차피 머리에 안 들어오는 부분은 꾸역꾸역 읽어봤자 남지도 않는다. 그래서 필요한 부분만 가려 많이 읽는다. 책 한 권에서 한 구절이라도 내 마음속에 남았으면 그걸로 된 거다. 책 한 권을 집어서 무던히 끝까지 한 번에 보는 일도 거의 없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 자리에서 손에 집히는 수첩, 영수증 조각을 가리지 않고 빼곡히 뭔가를 끄적였고 저자가 툭 뱉고 지나간 한 마디라도 궁금한 것은 인터넷 검색으로 찾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검색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지식 탐험의 무아지경에 빠지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새로운 사이트라도 알게 되면 당장 컴퓨터를 켜고 들어가서 세세하게 둘러보느라 시간을 한정 없이 지체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다음 소장할 가치가 있는 책은 그제야 구매해서 읽고 또 읽는다. 그러면 책값에 대한 부담 때문에 책을 덜(p. 164)보는 일이 없고, 불필요한 책들로 짐을 늘리는 일도 없어진다. 대신 내 마음에 쏙 들고, 나와 통하는 책은 늘 곁에 둔다. 언제 꺼내서 어떤 구절을 않더라도 또 다른 감동을 받고 내게 새로운 동록을 불어넣어준다. 그러니 내가 쉴 수가 없다. 그 많은 위대한 저자들이 젊음을 불태우며 열심히 하라고 말하니, 어찌 시간을 허투루 쓸 수 있겠는가! 한 가지 킥을 만 번 연습한 사람 나는 책벌레다. 언제나 10권 정도의 책을 온 집에 늘어놓고 다닌다. 책을 고루고루 읽기보다는 책 편식이 심한 편이다. 여행에 푹 빠져 있을 때는 여행책을, 글쓰기에 푹 빠져 있을 때에는 글쓰기책에 몰두한다. 1,000만 원의 월 수익이 절실할 때는 빌려온 책이 모두 1,000만 원 수익과 관련된 책이었고, 블로그 마케팅을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블로그 관련 책을 이 잡듯이 뒤졌다. 이소룡도 만 가지의 킥을 차는 사람은 두렵지 않으나 한 가지 킥을 만 번 연습한 사람은 두렵다고 했다. 이렇게 병적으로 읽었던 책들은 일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인문학 책을 읽어야 할 텐데 뭘 읽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았다(p. 165). 내가 필요하면 나도 모르게 책에 손이 갔다. 중국어를 잊어가고 있는데 HSK 책은 보기 싫었다. 마침 인문학이 유행할 때라 자연스럽게 나와 가장 연관성이 있어 보이는 인문 책인 《손자병법》과 《사기》를 집어 들었다. 그렇지 않고 누구나 다 읽는다니까 펴본 《논어》나 《탈무드》 같은 책은 머릿속에 들어가지 않을뿐더러 연애 소설보다도 남는 것이 없었다. 어릴 때 읽은 책이 평생 자산이 된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그때 책을 읽으며 정립된 개념이나 가치관은 커서도 오래오래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일을 도전하면서 그 일과 관련된 책을 초반에 읽어놓으면 많은 도움이 된다. 전체적인 일의 개념과 그 일에 대한 철학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 안에 중심이 잡혀 지나가는 바람에도 쉬이 흔들리지 않는다. 자고로 책 안에 답이 있다. 내가 읽은 책에서는 모두 초반에는 돈을 많이 투자하지 말고 시간을 많이 투자할 것, 수익을 꼼꼼하게 따지고 야무지게 돈을 잘 모을 것을 강조했다. 그 가르침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던지 나는 꼭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을 돌아다녀 보거나 사람들을 만나보면 누구는 광고를 얼마 했다더라, 사입을 많이 해서 가격을 낮췄다더라는 자극적인 이야기가 성행한다. 그 누구도 검증해줄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어느 책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본 적이 없다(p. 166). 대한민국 성인 10명 중 3명이 일년에 책 한 권을 읽지 않는다고 한다. 직장인의 일 년 평균 독서 권수도 9.8권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기회가 없다. 모든 사람들이 다 책을 읽고 똑똑해지면 나의 똑똑함은 소용없다. 남들 안 할 때 틈새를 파고들어야 성 공한다. 모든 일에는 지름길을 찾는 대신 기본기를 충실히 하는 자가 오랫동안 살아남는다. 오래된 불변의 진실, 책 속에 길이 있다(p.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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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6-01-05
  • 【북토크327】 살인도 부를 수 있는 말, 문학이 필요한 이유
    판사 생활을 하면 세상의 온갖 죄악들을 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가운데 전직판사인 이 작가는 말의 중요성과 문학의 필요성을 말했다. 그럴 수 있다는 큰 공감을 했다. 남을 통해서 좋은 교훈을 받으니 좋다. 독자님들은 이제부터 어쩌면 낡은 일기장을 꺼내 읽어볼 때 처럼 거칠고 두서없는 느낌이나 생각들과 마주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미리 말씀드리고 싶다. 사회에 나와 지금까지 겪어온 사람들의 모습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누구나 자기 몫의 아픔은 안고 살고 있더라는 거다. 굳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나 자신의 몫도 포함해서 하는 말이다. 직업병 때문일까. 어떤 때는 다른 것은 몰라도 고통만큼은 평등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자도 권력자도 스타도 화려한 겉껍질 속에는 곪을 대로 곪은 상처가 가득했다. 건강 때문에 가족 때문에 자식 때문에 때로는 자기 자신 때문에 남모를 고통에 시달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물며 돈도 권력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그 흔하디흔해 보이는, 건강하게 자라서 사랑하는 이를 만나 아이를 갖고 키우며 사는 일들이 실은 얼마나 전쟁같이 힘든 일인지...... 지금 힘들어하는 모든 이들에게 드리고 싶은 한상궁 마마님(p. 13)의 말씀이 있다. 장금아. 사람들이 너를 오해하는 게 있다. 네 능력은 뛰어난 것에 있는 게 아니다. 쉬지 않고 가는 데 있어. 모두가 그만두는 때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시작하는 것. 너는 얼음 속에 던져져 있어도 꽃을 피우는 꽃씨야. 그러니, 얼마나 힘이 들겠어.... "네 능력은 뛰어난 것에 있는 게 아니다. 쉬지 않고 가는 데 있어"라고 격려해주면서도, 끝에는 "그러니 얼마나 힘이 들겠어'"라며 알아주는 마음. 우리 서로에게 이것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p. 14). '갑질'의 심리 역시 수직적 가치관의 사회에서 쥐꼬리만한 권력이라도 있으면 그걸 이용해 상대에 대한 자신의 우위를 확인하려는 수컷 동물 사이의 우세경쟁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다. "내가 누군지 알아?"가 이렇게 자주 튀어나오는 사회가 있을까. 이런 사회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타인에 대한 관용 부족으로 이어져 약자 혐오와 위악적인 공격성을 낳는다. 약자는 자기보다 더 약자를 찾아내기 위해 필사적이다. 남들 눈에 비치는 내 모습에 집착하는 문화, 집단 내에서의 평가에 개인의 자존감이 좌우되는 문화 아래서 성형 중독, 사교육 중독, 학력 위조, 분수에 안 맞는 호화 결혼식 등의 강박적 인정투쟁이 벌어진다. 사실 이건 모두 같은 현상이다.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다는 집착 때문에 인생을 낭비하는 이들을 접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그냥 남을 안 부러워하면 안 되나. 남들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안 되는 건가. 배가 몇 겹씩 접혀도 남들 신경 안 쓴 채 비키니 입고 제멋으로 즐기는 문화와 충분히 날씬한데도 아주 조금의 군살이라도 남들에게 지적당할까(p. 32)봐 밥을 굶고 지방흡입을 하는 문화 사이에 어느 쪽이 더 개인의 행복에 유리할까. 우리가 더 불행한 이유는 결국 우리 스스로 자승자박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p. 33). 타인과의 비교에 대한 집착이 무한경쟁을 낳는다. 잘나가는 집단의 일원이 되어야 비로소 안도하지만, 그다음부터는 탈락의 공포에 시달린다. 결국 자존감 결핍으로 인한 집단의존증은 집단의 뒤에 숨은 무책임한 이기주의와 쉽게 결합한다. 한 개인으로는 위축되어 있으면서도 익명의 가면을 쓰면 뻔뻔스러워지고 무리를 지으면 잔혹해진다. 고도성장기의 신화가 끝난 저성장시대, 강자와 약자의 격차는 넘을 수 없게 크고, 약자는 위는 넘볼 수 없으니 어떻게든 무리를 지어 더 약한 자와 구분하려든다. 가진 것은 이 나라 국적뿐인 이들이 이주민들을 멸시하고, 성기 하나가 마지막 자존심인 남성들이 여성을 증오한다. 반면 합리적 개인주의는 공동체에 대한 배려, 사회적 연대와 공존한다. 자신의 자유를 존중받으려면 타인의 자유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톨레랑스, 즉 차이에 대한 용인, 소수자 보호, 다양성의 존중은 보다 많은 개인들이 주눅들지 않고 행복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다(p. 37). 인정투쟁의 소용돌이, SNS 남들에게 인정받고자 치열한 인정투쟁을 벌이는 와중에 자신을 잃어가는 아수라장을 쉽게 관찰할 수 있는 곳이 SNS 공간이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페이스북을 하면서 느낀 건 이 공간 역시 오프라인 세상이 빠져 있는 강박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었다. 페이스북은 참 묘한 매체다. 독백체로 글을 써도 사실 그 글은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페친들에게 건네는 말이다. 방자와 향단이를 통해 대화를 주고받는 이몽룡과 춘향이 같다. '어쩐지 우울한 날이다'라고 쓰면 저커버그 씨가 열심히 이집 저집 다니며 "OO님이 외롭다셔요. 놀아주세요" 또는 "OO님이 섬세한 감정도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달라셔요"라며 말을 전한다. 똑똑똑. 똑똑똑. 방문을 두들기며. 돈 버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바쁜 전갈들이 오가며 점점 상승작용이 일어난다. 전하는 목소리들은 실제보다 더 비장하기도 하고, 더 화사하기도 하다. 아,(p. 39) 내 삶은 너무 완벽해요. 행복해죽겠어요. 저 너무 예쁘지 않아요? 아무것도 모르는 것들이 깝죽거리는구나(나는 이렇게 아는 게 많은데 알아주지 않고), 세상은 썩어 문드러졌고 분노하지 않는 자들은 쳐죽일 비겁자들이다. 나는 이렇게 세상에 대해 고뇌하는 지식인이다 등등. 인정투쟁의 소용돌이. 결국 독백은 외침이 된다. 형식과 실질의 괴리 때문에 더 그로테스크하기도 하다. 읽는 이들의 반응을 의식하면 할수록 실제 자신으로부터 더 많이 이탈해 온라인상의 페르소나가 되어간다. 나중에는 그게 진짜 자신인 것처럼 혼동하기조차 한다. 일베 회원들의 이른바 폭식투쟁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익명성 뒤에 숨어 유희하던 페르소나들이 뭔가 착각하고는 현실 세계로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우디 앨런의 영화 〈카이로의 붉은 장미〉에서 스크린 밖으로 걸어나온 영화 캐릭터와는 달랐다. 그저 평범하고 비루한 실체를 확인했을 뿐이다. 재미조차 없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나 자신도 돌아보았다. 그럼 나는 왜 페이스북에 글을 쓰는 걸까.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오 노! 그런 족쇄를 감수할 만큼 나의 인정욕구는 치열하지 못하다. 나는 본질적으로 개인주의자에 쾌락주의자이고 대중의 잔인성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 생각을 공유하는 연쇄의 힘은 믿지만 그렇다고 글 몇 줄로 세상이 손(p. 40)쉽게 바뀔 거라고 믿을 만큼 순진한 나이도 지났다. 내 책 많이 팔고 싶어서? 이게 그나마 현실적인 생각이었는데 사양산업인 출판 현실을 곧 깨닫고는 기대를 접었다. 글 써서 돈을 번다는 건 망상일 거다. 애들 학원비라도 보태면 다행이다. 결국 재미있어서 쓰는 것 같다. 아마 나와 같은 이유로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이들이 많을 것 같다. 특히 내 경우에는 나 자신의 생각을 관찰하는 데서 큰 재미를 느낀다. MRI 같은 거다. 외부에서 주어진 자극(소재)에 대해 내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글을 써봐야 생생하게 알 수 있다. 돌아서면 잊어버리기 때문에 적어둔 글을 나중에 읽는 재미가 있다. 다른 이들의 반응이 더해지면 더 재미있다. '유체이탈' 증세가 선천적으로 극심한 편이라 어느새 다른 이들과 같은 쪽에 서서 내 글을 관찰하기도 한다. 이건 재밌고 이건 지루하군. 글이란 묘해서 어떤 목적이 앞서거나 읽는 이에게 어떻게 보이고 싶은 욕구가 앞서는 듯 보이는 글은 감흥을 주기 어렵다. 진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 MRI에 '뽀샵'을 하고 싶은 욕구가 앞설 때쯤이 글쓰기를 집어치워야 할 시기일 듯하다(p. 41). 성취, 성공에의 열망은 마약처럼 중독성이 있어서 사람을 파멸로 몰고 간다(p. 44). 그런 점에서 이 영화를 '나는 저만큼 충분히 노력하고 있는 걸까? 미치지 않고는 미치지 못한다는데...'라는 식의 자기계발 강박증으로 소비하는 것은 위험하고 유해한 감상법이라고 본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글을 몇 가지 검색해보니 젊은 관객들이 이런 식으로 영화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꽤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물론 노력은 소중하고 필요한 것이지만 맹목적인 노력만이 가치의 척도는 아니다.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지 성찰이 먼저 필요하고, 노력이 정당하게 보상받지 못하는 구조에 대한 분노도 필요하다. 가장 위험하고도 어리석은 건 '노력해야 성공한다'를 넘어서 '성공한 이들은 다 처절하게 노력했기에 그 자리에 오른 것이다' '그만큼 노력하여 성공한 이들이니까 괴팍하고 못되게 굴 만하다' "강한 것은 아름답다' 등으로 끊임없이 가지를 치는 스톡홀름증후군이다. 스티브 잡스가 매혹적이라 하여 그의 괴팍함과 못된 점조차 찬양할 필요는 없다. 훌륭한 점과 비판받아야 할 점은 냉정하게 분리해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대체로 성공에는 재능과 노력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실사회에는 그저 우연히 부모 잘 만나서 과분한 기회를 누리며 사는 이들도 많다(p. 45). 말이 흉기다 사람이 사람을 살해하는 주된 동기는 과연 무엇일까. 재판 경험에 비춰보면 의외로 '자존심'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건설 현장에서 숙식하는 노동자가 자고 있는 동료를 칼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살해 동기는 말 한마디였다. 저녁 때 소주를 마시다가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특정 지역 출신 촌놈이라고 놀렸다. 다 같이 힘든 삶을 사는 처지면서 좀더 가난한 지역 출신이라고 놀린 것이다. 그만두라고 해도 반복적으로 놀리자 모욕감에 시달리다 일을 저질렀다 40년 해로하던 노부부가 있었다. 평소 유순하고 소심하던 남편이 아내를 살해했다. 이유는 사소한 말다툼 중 '개눈깔'이라고 내뱉은 아내의 말 때문이다. 어린 시절 사고로 눈 한쪽을 잃고 모진 놀림에 시달렸던 그에게 그 한마디는 흉기였다. 이처럼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급소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찌르는 흉기는 바로 '말'이다. 특히 인터넷은 그 흉기를 죄의식 없이 휘둘러대는 전쟁터다(p. 135). 단지 주목받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심각한 상처를 줄 수 있는 모욕을 가하는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인들은 소수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증오 발언에 대해 사회적 제재를 가한다. 한 NBA 구단주는 여자친구에게 전화로 "흑인과 함께 내 경기장에 오지 마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져 영구퇴출당하고 구단을 매각했다. 표현의 자유에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법관들도 말에 대해 주의하고 반성하기 위해 전문가의 강의를 듣는다. 그때 배운 것이 있다. 데이의 「세 황금문」이다. 누구나 말하기 전에 세 문을 거쳐야 한다. '그것이 참말인가?' '그것이 필요한 말인가?' '그것이 친절한 말인가?' 흔히들 첫번째 질문만 생각한다. 살집이 좀 있는 사람에게 '뚱뚱하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 아니다. 그러나 참말이기는 하지만 굳이 입 밖에 낼 필요는 없는 말이다. 사실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하지 말라는 두번째 문만 잘 지켜도 대부분의 잘못은 막을 수 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필요 없는 말로 남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가고 있는지...... 더 나아가 진심으로 친구의 비만을 걱정해 충고하고 싶다면 말을 잘 골라서 '친절하게' 해야 한다. 옳은 총고도 '싸가지 없이' 하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진심이 담긴 필요한 말이라고 해도 배려심 없이 내뱉으면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에 더 상대에게 깊은 상처를 줄 수도 있다(p. 136). 법조인들의 말은 더더욱 무서운 흉기가 될 수 있다. 검찰에서 강도 높은 조사를 받고 귀가한 후 굴욕감에 자살하는 비극적인 사례가 여러 번 발생했다. 최종심판자인 법관의 말은 더 무섭다. "늙으면 죽어야지" 등의 막말만 문제가 아니다. 피고인 앞에서 재판 기록을 뒤적거리며 무심코 하는 혼잣말 한마디도 피고인에게는 청천벽력이다. 그래서 법정에서는 불필요한 말은 단 한마디도 금물이다. 요즘은 동료 법관의 재판을 서로 교대로 방청하며 자신의 재판을 돌아보게 하는 법정 모니터링 기회가 많다. 다른 판사의 재판을 방청석에서 지켜보니 나조차도 높은 법대 위에 앉은 판사의 표정 하나에도 위축되는 느낌이었다. 한번은 판사가 "주소 보정 아직도 안 하셨네요. 일부러 안 하시는 건가요?"라고 내뱉으면서 신경질적으로 서류를 휙휙 넘기자 당사자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연신 몇 번이나 죄송하다고 하는 모습을 보았다. 판사는 일 이 많다보니 순간 짜증 섞인 말을 한 것에 불과하더라도, 법대 밑에서 이를 듣는 당사자에게는 판사에게 밉보여서 불이익을 받을 것 같은 공포심을 충분히 줄 수 있음을 새삼 느꼈다. 절차적으로 필요한 말을 할 때도 표정이나 말투를 더 부드럽게, 친절하게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가 서로에게 '말'이라는 무시무시한 흉기를 무신경하게 휘둘러대는 대신 조금만 더 자제하고 조금만 더 친절할 수만 있다면, 세상은 훨씬 평화로운 곳이 될 것이다(p. 137). 문학의 힘 순문학 작품들은 장르소설 같은 즉각적인 몰입이나 인문학, 사회과학 서적처럼 직접적인 정보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이 먹어가며 점점 순문학에서 멀어진 느낌이다. 그건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다는 말일지 모르겠다. 책 읽는 시간도 한정된 자원이라고 생각하여 책을 통해 세상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빠르게 얻거나 아니면 즉각적인 재미를 얻길 원하는 거다. 온통 문학에만 탐닉했던 소년 시절에는 그런 조바심 따위 없었는데. 긴 겨울밤이 이어지던 날, 서가 구석구석에 처박혀 있던 소설들을 넘겨보았다. 뭐랄까, '문학 근육'이 쇠약해져 있음을 느낀다. 장편이 잘 읽히지 않는다. 주변적인 사색이나 묘사가 이어지는 도입부는 어느 정도 탁월하지 않은 이상 남의 일기장 보는 느낌이 들어 흥미를 잃는다. 그러던 중 선물받은 계간지 『문학동네』 2014 년 겨울호에 실런 단편소설들을 읽었다. 다 좋은 작품들이었지만(p. 152) 특히 김영하 「아이를 찾습니다」, 김훈 「영자」, 천명관 「퇴근」, 성석제 「블랙박스」가 좋았다. 그중에서도 김영하 작품의 올림이 컸다. 마트에서 잃어버린 아들을 찾느라 지옥 같은 11년을 보낸 젊은 부부의 삶에 갑자기 아들이 돌아온다. 그리고 비로소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이를 잃어 버린 부모라는 소재는 그리 드문 게 아니다. 그런데 사라졌던 아이가 긴 시간이 흐른 후 돌아온 상황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본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하다. 그건 결코 해피엔딩이 아니라 새로운 지옥의 시작일 수도 있는 거다. 이미 자아 형성 과정에서 아이는 다른 사람의 아이가 되어버렸고, 자식과 함께할 유소년기의 소중한 시간은 소실되었다. 결말이 작위적이라는 비판도 있을 수 있겠지만, 난 좋았다. 숨쉴 공간을 남겨주어서 말이다. 김훈 작품은 고시텔에서 동거하는 노량진 9급 공무원시험 준비생들의 이야기인데, 김훈의 기자 시절 글이 연상되었다. 황량한 고시촌의 풍경과 고시생들의 내면 묘사가 뛰어나다. 대충 지나가지 않고 최대한 구체적으로 묘사하되 군더더기나 감상은 배제한 단문들이 이어진다. 서사보다 묘사가 오히려 더 몰입도가 높았다. 묘사가 이 정도로 수준 높다면 장르소설의 서사 이상으로 몰입이 된다. 좋은 단편을 찾아 읽는 것은 쇠약해진 '문학 근육' 단련에 좋은 듯하다. 문학적 감수성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법관에게는(p. 153) 더더욱 필요하다. 심리학이든 다른 어떤 학문이든 결국 인간의 여러 특성 중 범주화할 수 있는 보편성을 추출해서 보여준다. 문학은 그보다 훨씬 풍부하게 인간의 개별성, 예외성, 비합리성을 체험하게 해준다. 후자에 대한 이해 내지 상상력 없이 이루어지는 재판은 침대 길이에 맞춰 인간의 신체를 절단하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로 전락할 수 있다. 문학은 겉으로 드러나는 세계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숨기고 싶은 속내 깊숙한 곳을 파헤쳐 보여주곤 한다. 문학이 보여주는 인간 세상의 민낯은 전형적이지 않다. 작가들은 뻔하고 예측가능 한 것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충동적이고, 불가해하고, 모순 덩어리인 인간 마음의 꿈틀거림을 묘사하는 것에 몰두한다. 그리고 그 관찰의 주된 재료는 작가 자신의 내면일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마음을 스쳐갔던 온갖 미묘한 감정과 충동들, 질투, 선망, 욕정, 열등감, 우월감, 증오, 살의.... 자신을 주어로 하여 털어놓기는 어려운 날것의 내면적 충동들을 재료로 상상력을 가미하고 증폭, 변형하여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창조해낸다. 인간 행위를 기술하는 방식에는 문학 이외에 육하원칙이 지배하는 신문기사가 있다. 두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인간이 저지르는 사건은 결국 인간 내면의 작용인데, 기자들은 주로 외형적 행위와 그 결과에만 치중하고 내면의 동기는 돈, 욕정, 복수심 등으로 간명하게 유형화하곤 한다. 사람들은 복잡한 사건을 쉽(p. 154)게 이해하길 원하고, 누가 나쁜 놈이고 누가 착한 놈인지 누구에게 분노하면 되는지 결론부터 알려주기를 성마르게 재촉하기 때문이다. 대중의 분노는 즉각적이고 선명한 정의를 요구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법관으로 일해온 경험에 비춰보면 실제 인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 중 상당수는 인과관계도, 동기도, 선악 구분도 명확하지 않다. 신문기사처럼 몇 문장으로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 참으로 많다. 그래서 흔히들 생각하는 것과 달리 냉정 한 '팩트' 집합으로 보이는 신문기사보다 주관적인 내면고백 덩어리로 보이는 문학이 실제 인간이 저지르는 일들을 더 잘 설명해 줄 때가 많다. 작가는 최소한 자기 자신이라는 한 인간의 심층적인 내면세계를 관찰해서 쓰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작가일 경우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옴진리교 사린가스 살포 사건에 관한 르포 『언더그라운드』를 쓰며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인 옴진리교 신자들도 인터뷰했다. 예상 밖으로 신자 중에 명문대 출신의 연구원 등 이공계 출신이 많았다. 소설가여서일지는 모르지만 하루키는 '픽션'을 읽어본 경험의 부재가 엘리트 과학도를 광신도로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검증된 법칙과 데이터의 세계에서만 살던 이가 아사하라 쇼코(옴진리교 교주)처럼 통상적인 사고의 범주를 넘어선 예외적 인간의 극단적인 상상력과 조우했을 때 오히려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협소한 상식에만 갇혀 있는 인간은 비상식의(p. 155)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인간과 세상을 깊이 이해하는 데 실패 하기 십상이다. 아무리 첨단 과학이 발달해도 여전히 더 많은 문학이 필요한 이유다(p.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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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05
  • 【북토크326】 판사는 3D 직업인가?
    전직 부장 판사였다가 작가가 된 저자의 책들을 열심히 읽고 있다. 판사라는 직업은 아직도 문과생들이 선호하는 직업이다. 법관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들은 수많은 사건 사고를 읽고 보고 판단해야 한다. 결코 행복한 직업은 아닐 것이다. 물론 사회정의를 구현할 사명자들은 그럼에도 있어야 한다. 법이 최후의 보루인 사람들이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2019년에 개정 증보판이 나왔다.). 엄벌주의 '엄벌주의'는 사실 인간의 본성에는 가장 부합하는 입장일 것입니다. 고대 함무라비 법전이나 구약성서, 고조선의 팔조금법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문명의 기본이 되는 형벌 이론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p. 74)의 동해보복과 엄벌주의입니다. 살인한 자는 죽이고, 도둑질한 자는 팔을 자르며, 간음한 자는 거세하고, 빛 안 갚는 자는 노비로 삼는다는 식이죠. 현대에도 아랍권, 중국, 북한 등의 형벌은 상당히 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제는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엄벌주의'가 범죄율을 낮추는 특효약이라는 증거는 없다는 점입니다. 만약 '엄벌주의'로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이 형사정책적으로 입증되었다면 지금도 대다수의 문명국가들에서 빵 하나를 훔쳐도 평생 감옥에 가두는 식의 형벌체계를 유지하고 있겠죠. 하지만 선진국 중 우리나라보다 전반적인 형벌 수준이 높은 나라는 미국과 싱가포르 정도뿐입니다. 특히 엄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따라야 할 모범이라고 주장하는 곳이 미국인 것 같습니다. 미국은 확실히 선진국 중 가장 형벌이 엄한 나라 중 하나입니다. 한 연구논문에 따르면 미국의 수감자 수는 200만 명을 넘고 있으며, 1999년을 기준으로 프랑스의 수형자가 평균 8개월 형을 선고받은 데 비해 미국의 수형자는 평균 34개월 형을 선고받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미국이 프랑스보다 4배 더 형벌이 엄하므로 4배 더 안전한 국가일까요? 거꾸로 4배 더 무거운 형벌이 필요할 정도로 위험 요소가 많은 사회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엄벌'은 공짜가 아닙니다. 우리나라가 미국처럼 평균적인 형벌 수준이 높아 많은 수감자 수를 유지해야 한다면 교도소나 소년원과(p. 75)같은 교정시설을 엄청나게 증설해야 하고, 세금으로 그 많은 수감자들을 먹여 살려야 합니다. 동시에 수감 인원 증가는 사회적으로 노동력 감소를 의미하기도 하죠. 물론 그런 사회적 비용을 투입해야 할 만큼 범죄로 인한 사회적 손실과 위험이 큰 상태라면 이를 감수해야 하겠지만 우리나라는 성범죄 등 일부 분야를 제외하면 비교적 치안이 안전한 나라 중의 하나로 꼽히곤 합니다. 또한 '엄벌' 여부를 판단할 때는 징역을 하루도 받아 본 적 없는 일반 시민들이 막연히 영화에서 본 것만 가지고 추측하는 것과 실제 형을 복역하는 사람들이 복역 기간이나 그 후의 사회생활에서 받게 되는 고통이나 불이익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p. 76). 저는 어느 카지노에 가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드라마 「올인」에서 봤던 상류사회 느낌의 카지노 모습, 전혀 아닙니다. 슬롯머신에 눈이 퀭해진 채 꾸깃한 만 원짜리를 끝도 없이 쑤셔 넣고 레버를 당기고 있는 사람들은 초라한 행색의 노인들, 아줌마들, 아저씨들이었습 니다. 화장실에서는 고리대금업자(공지)들이 이런 이들에게 백만 원 단위 돈 묶음을 빌려 주고 있더군요. 카지노 주변에는 숱한 전당포가 그들이 전국에서 타고 온 허름한 차, 결혼반지를 담보로 잡으며 성업 중이었고요.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핑크 플로이드의 영화 「더 월』과 같은 영상이 떠오르더이다. 부자의 저금통에 초라한 빈민들이 줄을 서 가며 자(p. 95)발적으로 돈을 넣어 주고 있는 모습, 끝도 없이.... 부자는 자기 저금통에 대신 저금해 주는 바보들의 행렬을 보며 흐뭇해하죠. 사실 사회 여러 부문의 본질은 부자나 승자의 저금통에 어리석은 빈민들이 스스로 자기 푼돈을 넣어 주는 것의 반복일지 모릅니다. 카지노도, 도박도, 복권사업도, 경마, 경륜도, 투기적 주식 투자도, 피라미드도. 이들의 죄는 감히 절대 승산 없는 싸움에서 이겨 부자가, 승자가 될 수 있다고 착각한 죄입니다. 처음부터 패배하게끔 게임의 규칙이 짜인 판에서 50:50의 승률 게임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죠(p. 96). 저는 이 모든 끔찍함의 배후에는 우리나라 특유의 가부장주의, 남성 우월주의가 괴물처럼 도사리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것은 불행히도 한국의 엄마들이 조장하는 면이 크고요. 아들은 항상 큰 꿈을 꿔야 하고, 마누라를 휘어잡아야 하고, 사내대장부가 소소한 일에 연연해선 안 되고, 사내놈이 욱하는 심정에 실수할 수도 있는 거고, 남의 집 귀한 딸을 강간해 놓고도 판사에게 탄원서를 내서 한다는 소리가 "젊은 혈기에 실수한 건데 앞날이 구만리 같은 청년을 용서해 주세요"라니. 엄마들은 앞날이 구만리 같기는커녕 앞으로 사고 칠 게 구만리 같은 싹수없는 놈을 살려 본다고 빛내고 집 팔아 합의를 보기 위해 쫓아다닙니다. 이건 엄마들의 책임이기도 해요. 일본 부모들처럼 무슨 일이 있어도 남에게 폐 끼치는 짓을 하면 안 된다고 무섭게 가르쳤어야죠. 판사는 3D 직종이랍니다. 이런 사연들만 보면서 살다 보면 인간에 대한 절망과 냉소에 빠지게 돼요. 그래도 인간에 대한 신뢰와 나약함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아야겠죠. 그래서 답을 찾을 능력도 없는 주제에 구원은 없을까 고민하게 되곤 합니다(p. 99). 욕을 먹더라도 단순무식하게 한번 말해 보겠습니다. 인간 사회가 물질적으로 평등해질 수 있다는 것은 망상이다. 모두가 부자가 될 수는 없다. 빈부 격차가 심화되는 것에 대한 경계와 대책은 필요하지만 빈부 격차 자체를 소멸시킬 수는 없다. 모두가 어느 정도 이상 잘살게 되는 것만을 사회의 목표로 삼게 되면 그 힘든 목표가 도달될 때까지는 대부분의 사람이 불행하다. 빈부 격차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각자가 자신의 현재 상태에서 지금 당장 보다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아귀의 허기처럼 충족될 수 없는 물질적 욕구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 다른 행복의 가치를 일깨워야 한다(p. 100). 서울 법대와 하버드 로스쿨. 저는 운좋게도 이 두 학교를 다녀 볼 수 있었는데, 하버드에 오기 전 저 역시 속물적인 여러 가지 궁금증을 품고 있었습니다. 하버드 로스쿨 학생들은 정말 공부벌레들일까? 책이나 영화에서 본 것처럼 살벌하게 공부할까? 뭔가 다른 점이 있을까? 머리들은 얼마나 좋을까? 등등... 한 학기를 보내고 나서 생각해 봅니다. 다를 것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른 것 같기도 합니다(p. 138). 얼마나들 머리가 좋을까? 얼마나들 머리가 좋을까? 이런 객관적 기준이 없는 의문을 갖는 것 자체가 별로 영민하지 않은 것이지만 '피상적인' 답을 말하자면 '별다를 것은 없더라'입니다. 수업을 토론식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논리 전개 과정과 아이디어를 지켜볼 수 있는데 생각보다 'brilliant'하 다고 할 만한 친구들이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거칠게 분류하면 10명이 있으면 똑똑하게 잘하는 학생들 1, 2명, 평범하지만 열심히 하는 학생들 4명, 대충 따라가기만 하는 학생들 4명의 비율 정도? 쥐를 가지고 한 실험이 있습니다. 장애물 건너에 먹이를 두고 쥐들을 키워 보니 아무 생각 없이 굶고 있는 놈들, 머리를 쓰고 용기를 내서 먹이를 구해 오는 놈들, 구해 온 먹이를 뺏어 먹는 놈들 등으로 분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먹이를 구해 온 놈들만으로 집단을 만들어 실험해 보니 그 집단 안에 다시 굶는 놈, 구해 오는 놈, 뺏어 먹는 놈으로 나뉘고 다시 그 비율은 비슷하게 유지되더라는... 인간도 크게 다르지는 않은 듯합니다. 서울 법대도, 사법연수원도, 하버드 로스쿨도 모아 놓고 보면 결국 그 내부에서 항상 잘하는 애, 어중간한 애, 포기하고 노는 애로 갈라지거든요. (그중에 너는 어느 부류였냐라는 태클은 정중히 사양합니다.)(p.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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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04
  • 【양대식 목사 칼럼2】 리더는 점검하는 자이다(갈 6:1)
    리더는 점검하는 자이다 (갈라디아서 6:1) 어느 공동체에서나 리더가 중요합니다. 리더는 점검하는 자입니다. 점검은 영어로 Check / Check-up, Inspection입니다. Checklist를 작성해야 합니다. 모여서 회의하는 것은 더 좋은 발전을 위해 의논하고 점검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 워하라" 마태복음 25: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꼼꼼히 점검해야 합니다. 일을 시킨 후 점검하지 않아 누군가가 실수하면 리더가 수치를 당하기도 합니다. 동영상을 만들기 전 어떤 내용으로 만드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강의나 설교, 세미나 내용은 어떤지 점검해야 합니다.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점검해야 합니다. 주보의 내용, 홈페이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자료를 검토하고 점검해야 합니다. 이메일, 카톡, 문자 내용을 점검하고 확인하고 답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판단해야 합니다. 자동차도 정기검진을 받아야 합니다. 엔진이나 오일을 점검해야 합니다. 자신의 건강 상태도 검진해야 합니다. 치아 상태도 점검해야 합니다. 정기검진하는 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받은 복을 세어보고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검진입니다. 나 자신의 마음 상태, 믿음은 어떤지 검진해야 합니다. 여행할 때 호텔은 어떤지 점검해야 합니다. 점검하는 것은 섬세함입니다. 섬세함이 없으면 누구나 실수하게 됩니다. 섬세함은 관심입니다. 인간관계에서 무관심이나 방치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가족들을 살피고 검진해야 합니다. 어떤 결과로 나타났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일을 맡기고, 무슨 말을 하면 상대방이 싫어할까? 하는 두려움을 버리고 반드시 점검해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기에 점검해야 합니다. 목사는 성도들의 형편을 살피고 점검해야 합니다. 누가 병들고 문제를 만나고 교회에 빠졌는지 점검한 후 심방을 하든지 전화해야 합니다. 인간은 무슨 말을 들으면 기억하지 못하고 잊어버리기 쉬운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에든지 확인과 점검해야 합니다. 달력이나 메모지에 자신의 활동 일정을 적어 놓고 확인하고 점검해야 합니다. 중요한 이야기나 약속은 메모해놓고 점검하고 지켜야 합니다. 점검해야 실수를 줄이게 됩니다. 점검하지 않고 자주 실수하면 신뢰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리더는 일을 시킨 후 어떤 상황인지 반드시 점검해야 합니다. 점검의 중요성을 알아야 합니다. 점검하지 않아 실수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하나님은 범죄 한 후 두려움에 숨어 있는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 물으신 것은 아담의 상태를 점검하고 확인한 것입니다. 내가 연락해야 할 사람에게 전화는 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설교 내용, 세미나 내용, 여행 스케줄, 사역 일정 등 누가 어느 순서에 담당인지 점검해야 합니다. 미리미리 점검해야 합니다. 점검하지 않으면 후회하게 됩니다. 어떤 상황을 보고 받고 진단한 후 점검해야 합니다. 자신이 하는 사역은 어떤지 점검해야 합니다. 자신의 경건 생활은 어떤지 점검해야 합니다. 은행에 있는 재정 상태 돈은 어떤지 문제가 없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인간관계는 어떤지 인맥 관리는 잘 되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점검하지 않고 인맥 관리, 인간관계도 점검하지 않고 방치하다가 관계가 깨지고 서먹 서먹하기도 합니다. 관계는 위험하고 아슬아슬합니다. 잘못된 말 한마디, 무관심과 점검 부족으로 관계가 깨지기도 합니다. 나 자신의 언어생활, 인격은 어떤지 점검해야 합니다. 가까운 가족관계의 상황도 점검해야 합니다. 점검해야 실수를 줄이기에 점검하는 것은 삶의 지혜입니다. 리더는 무슨 일을 하기 전, 확인한 후 일을 맡기고 반드시 점검해야 합니다. 전화해서라도 점검해야 합니다. 리더는 반드시 점검해야 합니다. 상황을 파악하고 점검해야 합니다. 사람을 의식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반드시 점검해야 합니다. 교회에 등록하고 교회에 다니는 새가족들은 잘 다니는지 관리하고 점검해야 합니다. 새가족 관리가 잘 되는지 모든 부서와 기관이 문제가 없이 잘 되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심방 보고 받아야 합니다. 점검하고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해결해야 합니다. 리더는 점검하는 자입니다. 자료를 가지고 분석하고 점검해야 합니다. 심방하는 것도 점검입니다. 선교사도 후원하고 잘하는지 가끔 보고 받고 점검해야 합니다. 인간은 누군가가 점검하지 않으면 실수하고 함부로 살아가는 죄성이 있습니다. 점검하면서 실수를 줄이게 됩니다. 모든 것이 점검입니다. 직원들의 상태, 집안의 상태, 온방, 냉방, 전기시설, 컴퓨터나 전자기기, 전화, 자동차도 어떤지 점검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적당히 하지 말고 점검하는 습관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리더는 점검하는 자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점검하지 못해 실수해서 문제를 만들어 후회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약속은 지켜지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실수를 막기 위해 무슨 일이 있으면 메모하고 점검해야 합니다. 자신의 사역 현장과 상황을 점검해야 합니다. 리더는 문제를 해결하는 자요 점검하는 자입니다. 리더는 사랑의 마음과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하나 꼼꼼히 살피고 점검해야 합니다. 달력의 스케줄, 교회 요람의 내용, 교회 행사, 주보 광고 내용 등 점검해야 합니다. 교회 홈페이지를 관리하고 점검해야 합니다. 행정은 점검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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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2026-01-02
  • 【단상】 개그맨의 촌철살인
    개그맨, 혹은 코미디언 이경규 씨가 2025 SBS 연예대상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그는 연예대상의 꽃은 공로상이라고 했다. 아무나 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세 가지 조건을 갖춰야 공로상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첫째, 40년 이상 활동해야 한다. 둘째, 대상을 받아야 공로상을 받을 수 있다. 셋째, 인성이 좋아야 탈 수 있다. 그래서 내년에는 수상할 인물이 없기에 공로상은 저를 마지막으로 폐지해야 한다”고 했다. 뼈그맨(뼛속까지 개그맨)이라 불리는 유세윤이 2025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남자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그는 “생각은 부정적으로 흐른다. 멘탈이 강해야 억지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끌어 올릴 수 있다. 그래서 대중들은 행복을 위해서 예능 프로를 사랑해 주시고, 개그맨들은 생각있는 웃음을 줘야 한다”라고 수상소감을 말했다. 정말 큰 공감을 했다. 개그맨들이라 웃으면서, 웃자고 한 말이지만 언중유골이고 촌철살인이다. 남을 웃기는 일이 직업인 개그맨들을 낮춰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직업적으로 남을 웃기는 사람이지 결코 우스운 사람들이 아니다. 남 웃기기가 쉬운가? 그들은 그런면에서 프로이며 전문가로서 존중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이 두 개그맨의 말을 마음에 새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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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2026-01-01
  • 【단상】 욕 먹으면 오래 사는가?...그래도 욕 먹고 살아서야
    성우 송도순씨가 지난해 12월 31일 오후 10시께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가끔 TV에서 봤는데 77세인지는 몰랐다. 더 젊게 보았는데 적지 않은 연세이다. 물론 요즘은 80은 넘어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77세이면 적게 산 것도 아니리라. 요즘 '욕 먹으면 오래 산다'는 말을 자주 떠올린다. 나이 먹어 주책을 부리는 노인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과연 욕을 많이 먹고 있는데 오래 살지 지켜볼 생각이다. 구굴 AI로 검색하니, '욕 먹으면 오래 산다'는 속설은 욕을 먹어도 몸에 해롭지 않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말라는 뜻이거나, 욕먹을 짓 하는 사람이 오히려 뻔뻔해서 오래 산다는 비꼬는 의미로 사용되며, 실제로는 욕설이 뇌 기능과 기억력, 사고력 저하 등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장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욕한다고 해서 뼈가 부러지냐'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속설의 의미 ≪장자≫ 유래: 잘못된 행동을 해도 비난받는 사람일수록 뻔뻔해서 오래 산다는 뜻. 체념적 의미: 욕을 먹어도 육체적으로 다치지 않으니, 너무 화내거나 신경 쓰지 말라는 체념적인 표현. 비꼬는 의미: 이기적이거나 남에게 피해 주는 사람이 오히려 욕을 먹으면서도 개의치 않고 오래 산다는 비꼬는 말. 건강에 대한 영향 뇌 기능 저하: 욕설은 뇌의 해마, 전두엽 등 기억력, 사고력, 계획, 감정 조절을 담당하는 부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언어 능력 약화: 욕을 자주 사용하면 어휘력이 감소하고, 문장 이해력 및 표현 능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 증가: 욕을 듣거나 하는 행위 자체가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 분비를 유도하여 뇌 기능에 손상을 줄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말은 실제 과학적 근거가 있는 장수 비결이 아니며, 대부분 부정적인 상황에 대한 반응이나 비꼬는 의미로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실제로는 욕설이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 인공지능을 활용한 것이라 쓸데없이 잡다한 것을 모아 놓은 부분도 있다. 네이버 AI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욕먹으면 오래 산다’는 속설로, 과학적 근거는 없고 심리·문화적 맥락에서 쓰이는 말입니다. 유래와 의미 ‘오래 살면 욕이 많다’는 속담이 거꾸로 전해져 ‘욕을 많이 먹으면 장수한다’로 퍼졌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장자 ‘수즉다욕’이 와전됐다는 설도 있습니다. 비꼬는 의미로 ‘욕 먹을 짓을 많이 한다’는 맥락에서 쓰이기도 합니다. 해석과 쓰임 욕을 하는 쪽이 스트레스를 더 받아 상대적으로 욕 먹는 쪽이 더 오래 산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담아두지 말라’는 의미로도 해석됩니다. ‘욕을 먹더라도 소신을 갖고 당당하게 사는 게 더 오래·행복하게 산다’는 격려로도 쓰입니다. 주의 욕을 먹는 수준을 넘어 증오의 대상이 되면 암살·타살 등 비명횡사할 수 있다는 경고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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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6-01-01
  • 감사했던 2025년....감사할 2026년
    2025년 12월 31일이다. 어떻게 오늘을 맞이했는지 신기하고 감사하다. 돌아보면 모든 것이 은혜였다. 내년 2026년은 말띠핸가 보다. 나는 말띠니, 내년에는 60이다. 내 나이 앞의 숫자가 드디어, 비로소 바뀐다. 오래전 30대 부목사 때 장례식을 집례하며 화장 후 유골을 안치하러 봉안당에 가 기다리는 동안 이미 안치된 곳을 보면서 놀랐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30대에 죽어 납골 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에 비하면 두 배 정도 더 살았다. 그것만 해도 감사하다. 하지만 인생은 유한하다. 내 나이 앞 숫자가 바뀔 때까지 살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루살이 인생이니 매일 후회 없이 살아야겠다. 이만큼 살아온 것도 모두 감사하고 복된 일이다.
    • 오피니언
    • 칼럼
    2025-12-31
  • 【단상】 주책바가지
    오늘, 별로 가고 싶지 않은 모임에 갔었다. 참석하는 사람들이 맘에 들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빠지기도 뭐해서 갔다. 역시나 뒷맛이 씁쓸했다. 특별히 참석자들의 말을 들으면서 생각나는 말이 있었다. “주책바가지”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쏟아내는 말은 소음이고 쓰레기다. 나이 먹고도 자신의 분수도 모르는 자들이 내뱉는 말을 들으며 다짐했다. “주책바가지 인생이 되지 말아야지!” 구굴 검색 ‘주책바가지’는 일정한 줏대 없이 이랬다저랬다 하여 몹시 실없게 구는 사람을 낮잡아 부르는 말입니다. 1. 뜻과 유래 주책: 본래 ‘주착(主着)’에서 온 말로, 일정하게 자리 잡은 생각이나 줏대를 의미합니다. 바가지: 비속한 느낌을 더하는 접미사로 쓰여, 그 성질이 심한 사람을 비하하거나 희화화할 때 붙입니다. 본래 “주책이 없다(줏대가 없다)”라고 써야 맞지만, 현대 국어에서는 ‘주책이다’와 ‘주책바가지’ 모두 표준어로 인정되어 실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킬 때 널리 쓰입니다. 2. 주로 쓰이는 상황 눈치 없이 행동하거나 끼어들 때 했던 말을 자꾸 되풀이하거나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을 할 때 나이에 맞지 않게 가벼운 행동을 할 때 3. 유의어 주책망나니: 주책없는 짓을 아주 심하게 하는 사람을 더 낮잡아 이르는 말. 주책덩어리: 주책없는 행동을 덩어리째 가진 것처럼 자주 하는 사람. 일상에서는 보통 "나이 먹고 주책바가지처럼 왜 이래?"와 같이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타인의 가벼운 행동을 핀잔줄 때 자주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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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5-12-31
  • 【북토크325】 어떤 상황에서도 삶은 선물이다
    이 책은 자신이 아우슈비츠에서 겪은 삶의 이야기, 그리고 이후의 이야기를 장편으로 쓴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북토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후 두 번째 책이다. 심리치료자로서 삶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고 있어 흥미로웠다. 모든 것을 선물로 보는 것은 우리의 삶을 새롭게 보게 한다. 나의 심리치료 접근법은 절충적이며 직관적이다. 통찰지향 정신요법과 인지지향정신요법의 이론과 임상이 혼합되어 있다. 나는 이를 '선택 요법choice therapy'이라고 부른다. 자유는 근 본적으로 '선택choice'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고난은 모두가 피할 수 없고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지만, 항상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지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내담자가 가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강조하고 이를 이용하려 애쓴다. 내담자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다. 나의 심리치료요법은 네 가지의 핵심 심리학 원칙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첫 번째 핵심 심리학 원칙은 마틴 셀리그만과 긍정심리학에서 나온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 이라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자신의 삶에 어떠한 효능도 발휘할 수 없다고 믿고, 자신이 하는 어떠한 일도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고 믿을 때 가장 고통스럽다는 개념이다. 우리는 '학습된 낙관주의 learned optimism', 즉 자기 삶의 의미와 방향을 자신이 창조하는 능력, 힘, 회복탄력성 등을 동력원으로 이용할 때 잘 살아갈 수 있다. 두 번째 핵심 심리학 원칙은 인지행동치료에 나오는 개념으로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감정과 행동을 생성한다는 개념이다(p. 12). 해롭거나 역기능적이거나 자기파괴적 행동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바꾸어야만 한다. 다시 말해, 부정적인 신념들을 자신의 성장을 도와주고 지지하는 신념들로 대체해 야 한다. 세 번째 핵심 심리학 원칙은 내게 매우 크게 영향을 미친 멘토 중 한 명인 칼 로저스가 제시한 개념으로 긍정적이고 조건 없는 자기 존중 self-regard의 중요성에 관한 개념이다. 우리가 겪는 고통의 많은 부분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동시에 자기 자신의 고유성을 유지할 수는 없다는 오해에서 비롯될 때가 많다. 다시 말해,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수용되고 인정 받으려면 자신의 진짜 자아를 부정하거나 숨겨야 한다는 오해이다. 심리치료를 할 때 나는 내담자들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려고 분투한다. 그리고 가면을 쓰는 것과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할당한 역할과 기대를 충족하려 애쓰는 것을 그만둘 때야만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도록 안내 한다. 이렇게 해야 우리는 자기 자신을 조건 없이 사랑하기 시작할 수 있다. 마지막 핵심 심리학 원칙은 사랑하는 멘토이자 친구 그리고 아우슈비츠 동료 생존자인 빅터 프랭클과 공유하는 개념이다. 바로 최악의 경험이 오히려 우리에게 가장 좋은 선생님이 되어 줄 수 있고, 뜻밖의 발견을 촉진하고 새로운 가능성과 관점을(p. 13)만날 수 있게 해준다는 개념이다. 치유, 성취, 자유는 삶이 우리에게 가져오는 것들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 선택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또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일(특히 우리가 겪는 고난) 에서 의미를 찾고 목적을 끌어내는 능력에 달려 있다. 자유는 일생에 걸쳐 훈련해야 하는 대상이다. 자유는 우리가 하루하루 다시 또다시 내려야만 하는 선택이다. 궁극적으로, 자유는 희망을 필요로 한다. 나는 희망을 두 가지 방식으로 규정한다. 첫 번째는, 얼마나 끔찍하든 모든 고난은 일시적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자 하는 호기심이다. 희망은 우리가 과거 대신 현재에 뿌리내리도록 살게 해주고 우리 마음 감옥의 문을 열어준다(p. 14). 그리고 나는 자유를 향한 길을 걸으려는 여러분에게 세 가지 이정표를 알려주고 싶다. 우리는 준비가 되어야 비로소 변화할 수 있다. 이따금 힘든 상황(가령 이혼, 사고, 질환 혹은 죽음)들이 현재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을 대면하고 다른 방법들을 시도하라고 강요할 수 있다. 때때로 내면의 고통이나 이루지 못한 소망이 매우 소리가 커지고 계속 자리를 떠나지 않아서 더는 그것을 무시할 수 없을 때도 있다. 하지만 준비는 외부로부터 오지 않는다. 또한 재촉될 수도 강요될 수도 없다. 진짜로 준비가 됐을 때는 내면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다음과 같이 결심할 때다. '지금까지 나는 이렇게 했어. 이제 나는 다른 어떤 방법을 실행할 거야.' 변화는 더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습관과 패턴을 중단하는 것이다. 만약 자신의 삶을 진정으로 바꾸고 싶다면 단지 역기능적인 습관이나 신념을 버리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것들을 건강한 습관이나 신념으로 대체해야 한다. 자신이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선택해야 한다. 자신만의 화살을 찾아 내고 그것을 뒤따라야 한다. 치유의 여정을 시작할 때는, 무엇으(p. 19)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지뿐만 아니라 자유로이 무엇을 하거나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또한 심사숙고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킨다는 건 새로운 자신이 되는 것이 아니다. 진짜 자신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 다시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결코 그 무엇과도 대체될 수 없는 고유한 다이아몬드가 되는 것이다. 여러분에게 일어난 모든 일, 다시 말해 여러분이 지금까지 내린 모든 선택들, 여러분이 사용하려고 애썼던 모든 방식들. 이 모두는 중요하다. 그리고 이 모두는 유용하다. 여러분은 모든 것을 내다 버리고서 맨땅에서 다시 시작할 필요가 없다. 여러분이 어떤 일을 했든 간에, 그 일은 여러분을 이만큼 멀리, 바로 이 순간으로 데리고 왔다. 자유의 궁극적인 열쇠는 진정한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존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다(p. 20). 내 경험상 희생자들은 이렇게 묻는다. "왜 하필 나지?" 하지만 생존자들은 이렇게 묻는다. "이제 뭘 해야 하지?" 고통은 보편적이다. 그렇지만 희생자 의식 victimhood은 선택적이다. 다른 사람들이나 상황들에 의해 상처를 입거나 압박을 받는 것을 피할 방법은 없다. 장담할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는 우리가 얼마나 친절하든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든 상관 없이 우리가 언제든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거의 혹은 전혀 통제할 수 없는, 환경적 요소들과 유전적 요소들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 각자는 희생자로 남기로 선택할 수도, 희생자로 남지 않기로 선택할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선택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경험에 어떻게 대응할지 선택할 수는 있다. 많은 사람들이 희생자 의식의 감옥에 머무르는 이유는 무의식적으로 그곳이 더 안전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라고 반복해서 묻는다. 우리가 이유를 알아낼 수 있기만 하면 고통이 완화되리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왜 내가 암에 걸(p. 25)렸지? 왜 내가 해고됐지? 왜 내 파트너가 바람을 피웠지? 우리는 대답을 찾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헤맨다. 마치 그러한 일들이 왜 벌어졌는지 설명해주는 논리적인 근거라도 있는 것처럼. 하지만 이유를 물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책망할 어떤 사람이나 어떤 것을 찾는 일에 갇히게 된다. 왜 이 일이 내게 벌어졌지? 음, 왜 당신이 아니어야 하는가?(p. 26). 희생자 의식은 마음의 사후경직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과거에 갇혀 있고, 고통 속에 갇혀 있고, 상실과 결핍 - 내가 할 수 없는 것과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 -에 갇혀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부드럽게 수용하라.' 이것이 희생자 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이다. 우리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을 좋아해야만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 가 싸우고 저항하기를 멈출 때, 우리에게는 더 많은 에너지와 상상력이 생기고 '이제 뭘 해야 할지' 알아낼 준비를 갖추게 된다. 꼼짝도 하지 않는 대신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게 된다. 또 한 지금 이 순간에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여기로부터 어디로 가고 싶은지 알아낼 준비를 하게 된다. 모든 행동은 어떤 욕구를 충족시킨다. 많은 사람이 희생자로 머물기를 선택하는 이유는 그 상태가 우리에게 자기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면허권을 주기 때문이다. 자유에는 대가가 따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라고 추궁당한다. 게다가 우리가 일으키거나 선택하지 않은 상황에서조차 책임질 것을 추궁당한다(p. 27). 우리 자신을 희생자 의식으로부터 놓아주는 건 다른 사람들을 우리가 그들에게 부여한 역할들로부터 놓아주는 것을 의미 하기도 한다(p. 40). 그때 나는 알지 못했다. 아이들에게서 고통을 아예 없애려고 하면 아이들을 망가뜨리는 셈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감정들이 잘못됐거나 무섭다고 가 르친다. 하지만 감정은 오직 감정일 뿐이다. 옳거나 그르거나의 문제가 아니다. 나의 감정과 상대의 감정이 있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을 그들의 감정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설득하려 애쓰거나 그들을 유쾌하게 하도록 애쓰는 것은 현명하지 않은 행동이다. 그들의 감정을 허용하고 옆에 있으면서 "더 말해봐요"라고 말하는 편이 더 낫다. 아이들이 놀림을 받았거나 따돌림을 당해서 속상해할 때 나는 "네가 어떻게 느끼는지 알아"라고 말하곤 했지만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지 절대 알 수 없다. 그런 일은(p. 56)일어나지 않는다. 공감하고 지지하고 싶다면 다른 사람의 내면 생활이 마치 자기 자신의 내면생활인 것처럼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이는 그들에게서 자신의 경험을 박탈하고 그들을 수렁에 빠지게 만드는 또 다른 방법에 불과하다. 나는 내담자들에게 우울depression의 반대는 표현expression 이라는 사실을 자주 상기시킨다. 우리에게서 표출되는 것들은 우리를 아프게 만들지 않는다. 우리 안에 머무는 것들이 우리를 아프게 만든다(p. 57). 우리가 감정들을 회피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많이 있다. 불편하게 느껴지는 감정일 수도 있고 우리가 가져서는 안 되는 감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힐까 봐 두려워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 감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두려워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가 이미 내린 선택이나 앞으로 내릴 선택에 대해 무엇을 드러낼지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들을 회피하는 한 현실을 부정할 수밖에 없다. 만약 어떤 것을 차단하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아"라고 말한다면, 장담컨대 그것에 대한 생각에서 오히려 벗 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감정을 초대하고 옆에 앉은 후 시간을 함께 보내라. 우리는 연약한 작은 어린아이가 아니다. 모든 현실과 똑바로 마주 보는 것이 좋다. 더는 싸우거나 숨지 말아야 한다. 감정은 감정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감정은 우리의 정체성이 아니다(p. 63). 자유롭다는 것은 자신의 진짜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욕구를 충족 시키기 위해 과거에 택했던 대응 기제나 행동 패턴을 알아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포기해야만 했던 자아의 일부와 다시 연결하고 자신이 되지 못했던 완전한 진짜 모습을 되찾아야만 한다. 자기 자신을 버리고 떠나는 습관을 깨야만 한다. 절대 잊지 말기 바란다. 당신은 다른 누구도 결코 가지지 못할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가지고 있다. 평생 동안 말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항상 내 자신에게 말한다. "에디, 넌 특별한 사람이야. 넌 아름다워. 매일 더욱더 에디다워 지길 바랄게."(p. 113). 수치심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면 다른 사람의 평가가 우리를 규정하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어떻게 말할지 선택할 수 있다. 하루 를 할애해 당신이 자신과 나누는 자기 대화에 귀 기울여보라. 당신이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보라. 당신이 강화하고 있는 것들이다. 이러한 생각들은 당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한 당신이 느끼는 감정들은 당신에게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지시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이러한 기준과 메시지에 이끌려 살아야 할 필요가 절대 없다. 당신은 수치심을 안고 태어나지 않았다. 당신의 진짜 자아는 이미 그 자체로 아름답다. 당신은 사랑과 기쁨과 열정을 가지고 태어났고 당신은 내면의 대본을 다시 쓸 수 있고 자신의 결백을 되찾을 수 있다. 당신은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다(p. 141). 삶이 우리가 원하거나 기대하(p. 153)는 대로 펼쳐지지 않는 것이 얼마나 보편적인 경험인지 말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어떤 것을 얻거나, 혹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어떤 것을 원할 때 고통받는다. 모든 심리치료는 애도 작업이다. 어떤 것을 기대했는데 다른 것을 얻은 삶, 예상하지 않고 기대하지 않은 것을 가져다준 삶을 직시하는 과정이다(p. 154). 우리에게는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힘을 가지기를 바란다. 슬픔을 해소하는 일은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자신의 책임이 아닌 일들에 대해 불필요하게 가지는 책임감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놓아주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내리긴 했지만 돌이킬 수는 없는 선택들을 받아들이는 일이다(p. 158). 만약 우리가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고 슬픔과 화해할 수 없다면, 이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해를 입힐 뿐더러 죽은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죽은 사람은 죽은 대로 내버려두어야 한다. 끊임없이 소환하기를 멈춰야 한다. 그들을 놓아주고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들이 영원한 안식을 얻을 수 있도록 말이다(p. 161). "시간은 모든 상처를 치유해준다"라는 속담이 있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시간은 상처를 치유하지 않는다. 우리가 시간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가 상처를 치유한다. 때때로 사람들은 모든 것을 똑같이 유지하려고 애쓰는 방법으로 비탄이 일으킨 파동에 대처하려 한다. 직장, 루틴, 인간관계 등을 그대로 유지한 채 제자리에서 답보한다. 그렇지만 커다란 상실을 경험했을 때 더는 아무것도 예전과 같을 수는 없다. 비탄은 자신의 우선순위들을 재점검하고 다시 결정하라는 요청일 수 있다. 자신의 기쁨과 목적의식을 다시 연결하고, 자신이 바로 지금 될 수 있는 최고의 사람이 되겠다고 다시 결심하고, 삶이 새로운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수용하라는 요청일 수 있다(p. 166). 어떤 것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하려고 노력도 하지 말라. 왜 그러한가에는 너무 많은 이유가 있다. 왜 이 일이나 저 일이 벌어졌는지 혹은 벌어지지 않았는지, 왜 우리가 현재 있 는 곳에 있는지, 왜 우리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을 하는지. 비탄은 무엇이 나의 소관이고, 무엇이 남의 소관인지, 무엇이 신의 소관인지 명확히 알게 해준다(p. 173). 애도 작업은 힘들다. 하지만 만족감을 줄 수도 있다. 우리는 과거를 다시 방문할 수 있다. 우리는 과거를 껴안을 수도 있다. 우리는 과거에 함몰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다. 그리고 우리는 강하다. 우리는 과거에 일어난 일 그리고 일어나지 않은 일과 화해 할 수 있다. 과거에 잃어버린 것이 아닌 현재에 남아 있는 것에 집중할 수 있다. 모든 순간을 선물로 여기며 살아가고 현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선택할 수 있다(p. 175). 갈등 상황에서 자신의 자유를 지키는 핵심 열쇠는 자신의 진실을 꽉 쥐고 있되 동시에 힘과 통제에 대한 욕구를 포기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우리가 기대하는 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것 또한 도움이 된다(p. 184). 내 친구의 딸이 매우 마음이 상한 채로 유치원에서 돌아온 적이 있었다. 같은 반 친구들이 '멍청해 보이는 얼굴'이라고 놀렸다는 것이다. 내 친구는 자신의 딸아이가 이 갈등에 어떻게 대처하도록 도와야 하는지 내게 물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방어하고 싶은 욕구를 버려야 한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멍청하게 생겼다고 한다면 "나는 멍청하게 생기지 않았어!"라고 말하지 말라.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잘못에 대해 자기 자신을 변호하지 말라. 기싸움으로만 번질 뿐이다. 가해자가 당신에게 밧줄을 던지고 당신은 밧줄의 다른 한쪽 끝을 잡는다. 그러 고 나서 두 사람이 각자 밧줄을 자기 쪽으로 잡아당기다가 결국 둘 다 녹초가 되고 만다. 싸우는 데에는 두 사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싸움을 멈추는 데에는 오직 한 사람만 필요하다. 그(p. 187)러므로 절대 밧줄을 잡지 말기 바란다. 자기 자신에게 말하라. "저 사람이 더 지껄이면 지껄일수록 나는 점점 더 편안해질 거야." 또한 이 일이 자신과 관계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려라. 누군가가 당신에게 '멍청하게 생겼다고' 한다면 사실 그 사람은 자신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p. 188). 우리는 우리가 가진 두려움들을 사라지게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두려움들이 우리를 지배하게 내버려두어서도 안 된다. 우리는 방으로 다른 목소리들을 초대하여 대화를 나눌 것이다. 그런 다음 뭔가를 행동으로 실행해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p. 242). 희망은 정말로 삶과 죽음의 문제다. 아우슈비츠에서 알게 된(p. 278) 한 젊은 여성은 크리스마스 이전에 수용소가 해방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녀는 새로 도착하는 수용자들의 수가 줄어드는 것을 봤고 독일인들이 커다란 군사적 손실을 입고 있다는 루머를 들었고 오직 몇 주만 지나면 우리가 해방되리라고 자신을 납득시켰다. 그러고 나서 크리스마스가 다가왔고 지나갔다. 아무도 수용소를 해방시키기 위해 오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 내 친구는 세상을 떠났다. 희망은 그녀를 계속 견디게 했다. 그리고 그녀의 희망이 죽자 그녀 또한 죽었다(p. 279). 사람들은 내게 어떻게 나치를 용서할 수 있었느냐고 자주 묻는다. 내게는 어떤 사람의 머리에 성유를 바르고 용서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죄에 대해 가진 죄책감을 씻어줄 신적인 힘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내게는 나 자신을 해방해줄 힘이 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다. 용서는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위하는 일이 아니다. 용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하는 일이다. 더는 과거에 사로 잡힌 희생자나 죄수가 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고통만이 담겨 있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기 위해서다. 용서에 관한 또 다른 오해는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과 화해하는 방법이 "난 그 사람과 다 끝냈어요"라고 말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효과가 없다. 그 사람을 잘라 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떠나가도록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다. 자신이 누군가를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하는 한, 우리는 에너(p. 301)지를 자기 자신과 자신이 마땅히 누려야 할 삶에 유리하게 사용하는 대신 불리하게 사용하게 된다. 용서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피해를 줘도 좋다고 누군가에게 허락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피해 보는 일은 전혀 괜찮지 않다. 하지만 피해는 이미 이뤄졌다. 그리고 오직 자기 자신만이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이러한 유형의 해방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해결되는 그런 일이 아니다. 게다가 많은 것들이 앞을 가로막는다. 정당성, 복수, 사과, 심지어 그저 잘못을 시인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욕구 등이 그것들이다(p. 302). 용서하지 않음에서 벗어나기 위한 핵심 열쇠 • 나는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당신에게 잘못을 저질렀거나 해를 끼친 어떤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라. 다음 문장들 중 진실처럼 느껴지는 게 있는가? "그녀가 한 짓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짓이야." "그는 아직 내게 용서를 받지 못했어." "만약 내가 용서한다면, 나는 그를 곤경에서 모면케 해주는 걸 거야." "만약 내가 용서한다면, 나는 그에게 계속 내게 상처를 줘도 괜 찮다고 허용하는 걸 거야." "나는 공정성, 혹은 사과나 사실의 인정이 있을 때에야 용서할 거야." 만약 당신이 이 문장들 중 하나 혹은 그 이상에 공감한다면, 당신은 누군가에게 대항하는 일에 에너지를 쏟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신 자신과 당신이 누려야 할 인생에 에너지를 쏟는 대신 말이다. 용서는 당신이 다른 누군가에게 주는 무언가가 아니다. 용서는 당신이 자기 자신 을 해방해주는 방법이다(p. 314). 피할 수 없는 트라우마, 고통, 슬픔, 비참과 함께할 수밖에 없다 해도 '삶은 선물이다 Life is a gift' 우리가 처벌, 실패, 버림받음에 대한 공포 안에, 우리의 인정 욕구 안에, 수치심과 책망 안에, 우월감과 열등감 안에, 권력 욕구와 통제 욕구 안에 우리 자신을 가둘 때, 우리는 이 선물을 파괴하게 된다. 삶이라는 선물을 축하하는 일은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서 선물을 발견하는 것이다. 심지어 힘겨운 부분에서도, 자신이 견뎌낼 수 있으리라 확신하지 않는 부분에서도 말이다. 삶을 축하하라. 그게 전부다. 기쁨, 사랑, 열정을 가지고 살아 가라. 때때로 우리는 만약 우리가 상실이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간다면, 재미있게 놀고 삶을 즐긴다면, 계속해서 성장하고 진화한다면, 우리가 왠지 망자를 욕보이거나 혹은 과거를 욕보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크게 소리 내어 웃어도 괜찮다! 즐거워해도 괜찮다! 심지어 아우슈비츠에 있을 때에도 우리는 마음속에서 항상 삶을 축하했다. 상상의 연회를 준비하며 최고의 호밀빵에 캐러웨이를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헝가리의 닭고기 요리인 퍼프리카시 치르케에 파프리카를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에 대해 옥신각신했다. 어느 날 밤에는 최고의 가슴 경연대회까지 열었다! (누가 우승했을까?) 나를 모든 일은 마땅한 이유가 있어서 벌어지는 것이라고,(p. 317) 부당함이나 고난에는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고통, 곤경, 고난이 우리가 성장하고 배우도록 도와주고, 우리가 진정한 자신이 되도록 도와주는 선물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p. 318). 【북토크】 아우슈비츠 생존자가 말하는 인생론-“선택” http://www.lnsnews.com/news/view.php?no=2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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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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