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8(토)
 
  • 판사유감 - 문유석 저자(글) 21세기북스 ·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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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부장 판사였다가 작가가 된 저자의 책들을 열심히 읽고 있다. 판사라는 직업은 아직도 문과생들이 선호하는 직업이다. 법관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들은 수많은 사건 사고를 읽고 보고 판단해야 한다. 결코 행복한 직업은 아닐 것이다. 물론 사회정의를 구현할 사명자들은 그럼에도 있어야 한다. 법이 최후의 보루인 사람들이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2019년에 개정 증보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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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벌주의

'엄벌주의'는 사실 인간의 본성에는 가장 부합하는 입장일 것입니다. 고대 함무라비 법전이나 구약성서, 고조선의 팔조금법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문명의 기본이 되는 형벌 이론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p. 74)의 동해보복과 엄벌주의입니다. 살인한 자는 죽이고, 도둑질한 자는 팔을 자르며, 간음한 자는 거세하고, 빛 안 갚는 자는 노비로 삼는다는 식이죠. 현대에도 아랍권, 중국, 북한 등의 형벌은 상당히 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제는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엄벌주의'가 범죄율을 낮추는 특효약이라는 증거는 없다는 점입니다. 만약 '엄벌주의'로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이 형사정책적으로 입증되었다면 지금도 대다수의 문명국가들에서 빵 하나를 훔쳐도 평생 감옥에 가두는 식의 형벌체계를 유지하고 있겠죠. 하지만 선진국 중 우리나라보다 전반적인 형벌 수준이 높은 나라는 미국과 싱가포르 정도뿐입니다. 특히 엄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따라야 할 모범이라고 주장하는 곳이 미국인 것 같습니다. 미국은 확실히 선진국 중 가장 형벌이 엄한 나라 중 하나입니다. 한 연구논문에 따르면 미국의 수감자 수는 200만 명을 넘고 있으며, 1999년을 기준으로 프랑스의 수형자가 평균 8개월 형을 선고받은 데 비해 미국의 수형자는 평균 34개월 형을 선고받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미국이 프랑스보다 4배 더 형벌이 엄하므로 4배 더 안전한 국가일까요? 거꾸로 4배 더 무거운 형벌이 필요할 정도로 위험 요소가 많은 사회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엄벌'은 공짜가 아닙니다. 우리나라가 미국처럼 평균적인 형벌 수준이 높아 많은 수감자 수를 유지해야 한다면 교도소나 소년원과(p. 75)같은 교정시설을 엄청나게 증설해야 하고, 세금으로 그 많은 수감자들을 먹여 살려야 합니다. 동시에 수감 인원 증가는 사회적으로 노동력 감소를 의미하기도 하죠. 물론 그런 사회적 비용을 투입해야 할 만큼 범죄로 인한 사회적 손실과 위험이 큰 상태라면 이를 감수해야 하겠지만 우리나라는 성범죄 등 일부 분야를 제외하면 비교적 치안이 안전한 나라 중의 하나로 꼽히곤 합니다. 또한 '엄벌' 여부를 판단할 때는 징역을 하루도 받아 본 적 없는 일반 시민들이 막연히 영화에서 본 것만 가지고 추측하는 것과 실제 형을 복역하는 사람들이 복역 기간이나 그 후의 사회생활에서 받게 되는 고통이나 불이익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p. 76).

 

저는 어느 카지노에 가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드라마 「올인」에서 봤던 상류사회 느낌의 카지노 모습, 전혀 아닙니다. 슬롯머신에 눈이 퀭해진 채 꾸깃한 만 원짜리를 끝도 없이 쑤셔 넣고 레버를 당기고 있는 사람들은 초라한 행색의 노인들, 아줌마들, 아저씨들이었습 니다. 화장실에서는 고리대금업자(공지)들이 이런 이들에게 백만 원 단위 돈 묶음을 빌려 주고 있더군요. 카지노 주변에는 숱한 전당포가 그들이 전국에서 타고 온 허름한 차, 결혼반지를 담보로 잡으며 성업 중이었고요.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핑크 플로이드의 영화 「더 월』과 같은 영상이 떠오르더이다. 부자의 저금통에 초라한 빈민들이 줄을 서 가며 자(p. 95)발적으로 돈을 넣어 주고 있는 모습, 끝도 없이.... 부자는 자기 저금통에 대신 저금해 주는 바보들의 행렬을 보며 흐뭇해하죠. 사실 사회 여러 부문의 본질은 부자나 승자의 저금통에 어리석은 빈민들이 스스로 자기 푼돈을 넣어 주는 것의 반복일지 모릅니다. 카지노도, 도박도, 복권사업도, 경마, 경륜도, 투기적 주식 투자도, 피라미드도. 이들의 죄는 감히 절대 승산 없는 싸움에서 이겨 부자가, 승자가 될 수 있다고 착각한 죄입니다. 처음부터 패배하게끔 게임의 규칙이 짜인 판에서 50:50의 승률 게임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죠(p. 96).

 

저는 이 모든 끔찍함의 배후에는 우리나라 특유의 가부장주의, 남성 우월주의가 괴물처럼 도사리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것은 불행히도 한국의 엄마들이 조장하는 면이 크고요. 아들은 항상 큰 꿈을 꿔야 하고, 마누라를 휘어잡아야 하고, 사내대장부가 소소한 일에 연연해선 안 되고, 사내놈이 욱하는 심정에 실수할 수도 있는 거고, 남의 집 귀한 딸을 강간해 놓고도 판사에게 탄원서를 내서 한다는 소리가 "젊은 혈기에 실수한 건데 앞날이 구만리 같은 청년을 용서해 주세요"라니. 엄마들은 앞날이 구만리 같기는커녕 앞으로 사고 칠 게 구만리 같은 싹수없는 놈을 살려 본다고 빛내고 집 팔아 합의를 보기 위해 쫓아다닙니다. 이건 엄마들의 책임이기도 해요. 일본 부모들처럼 무슨 일이 있어도 남에게 폐 끼치는 짓을 하면 안 된다고 무섭게 가르쳤어야죠. 판사는 3D 직종이랍니다. 이런 사연들만 보면서 살다 보면 인간에 대한 절망과 냉소에 빠지게 돼요. 그래도 인간에 대한 신뢰와 나약함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아야겠죠. 그래서 답을 찾을 능력도 없는 주제에 구원은 없을까 고민하게 되곤 합니다(p. 99).

 

욕을 먹더라도 단순무식하게 한번 말해 보겠습니다. 인간 사회가 물질적으로 평등해질 수 있다는 것은 망상이다. 모두가 부자가 될 수는 없다. 빈부 격차가 심화되는 것에 대한 경계와 대책은 필요하지만 빈부 격차 자체를 소멸시킬 수는 없다. 모두가 어느 정도 이상 잘살게 되는 것만을 사회의 목표로 삼게 되면 그 힘든 목표가 도달될 때까지는 대부분의 사람이 불행하다. 빈부 격차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각자가 자신의 현재 상태에서 지금 당장 보다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아귀의 허기처럼 충족될 수 없는 물질적 욕구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 다른 행복의 가치를 일깨워야 한다(p. 100).

 

서울 법대와 하버드 로스쿨. 저는 운좋게도 이 두 학교를 다녀 볼 수 있었는데, 하버드에 오기 전 저 역시 속물적인 여러 가지 궁금증을 품고 있었습니다. 하버드 로스쿨 학생들은 정말 공부벌레들일까? 책이나 영화에서 본 것처럼 살벌하게 공부할까? 뭔가 다른 점이 있을까? 머리들은 얼마나 좋을까? 등등... 한 학기를 보내고 나서 생각해 봅니다. 다를 것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른 것 같기도 합니다(p. 138).

얼마나들 머리가 좋을까?

얼마나들 머리가 좋을까? 이런 객관적 기준이 없는 의문을 갖는 것 자체가 별로 영민하지 않은 것이지만 '피상적인' 답을 말하자면 '별다를 것은 없더라'입니다. 수업을 토론식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논리 전개 과정과 아이디어를 지켜볼 수 있는데 생각보다 'brilliant'하 다고 할 만한 친구들이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거칠게 분류하면 10명이 있으면 똑똑하게 잘하는 학생들 1, 2명, 평범하지만 열심히 하는 학생들 4명, 대충 따라가기만 하는 학생들 4명의 비율 정도? 쥐를 가지고 한 실험이 있습니다. 장애물 건너에 먹이를 두고 쥐들을 키워 보니 아무 생각 없이 굶고 있는 놈들, 머리를 쓰고 용기를 내서 먹이를 구해 오는 놈들, 구해 온 먹이를 뺏어 먹는 놈들 등으로 분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먹이를 구해 온 놈들만으로 집단을 만들어 실험해 보니 그 집단 안에 다시 굶는 놈, 구해 오는 놈, 뺏어 먹는 놈으로 나뉘고 다시 그 비율은 비슷하게 유지되더라는... 인간도 크게 다르지는 않은 듯합니다. 서울 법대도, 사법연수원도, 하버드 로스쿨도 모아 놓고 보면 결국 그 내부에서 항상 잘하는 애, 어중간한 애, 포기하고 노는 애로 갈라지거든요. (그중에 너는 어느 부류였냐라는 태클은 정중히 사양합니다.)(p.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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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26】 판사는 3D 직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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