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8(토)
 
  • 인간의 대지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김모세 번역, 부북스 ·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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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직업을 가졌던 저자는 사람이 사는 땅, 대지에 대해 남다른 생각을 했다. 이당시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여러 사고가 있었다. 그렇다고해서 인간의 땅 대지는 쉬운가? 그렇지 않다. 그때나 지금이나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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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12년 동안 일을 한 뒤 다시 한 번 남대서양을 횡단하던 중, 그는 뒤쪽 오른편 엔진을 끈다는 짧은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침묵이 흘렀다. 이 소식은 별로 불안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침묵이 10분 동안 계속되자 파리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이르는 항공로의 모든 무전국은 불안감 속에서 철야 근무에 들어갔다. 10분 늦는다는 것은 일상생활에서는 별 의미가 없지만, 우편 비행기에는 중대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 죽은듯한 시간 속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 숨겨져 있다. 무의미한 것이건 불행한 것이건 그 사건은 이미 저질러진 것이다. 운명은 판결을 내렸고, 이 판결에 대해 더 이상 항소할 길이 없다. 강철 같은 손이 승무원을 무사히 물에 착수시키거나 파국으로 이끌어 간 것이다. 그(p. 34)러나 판결은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통보되지 않는다. 우리들 가운데 이렇게 점점 희미해져 가는 희망을, 시간이 지 날수록 마치 죽을 병처럼 악화되는 이 침묵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희망은 점점 사라졌다. 이제 우리는 동료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것을, 자신들이 그렇게 자주 날아다니던 남대서양 속에 우리의 동료들이 잠들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결국 메르모즈는 자기의 업적 뒤로 영원히 숨어 버린 것이다. 마치 볏짚을 잘 묶고 나서 자신의 밭에 누워 잠든 추수꾼처럼. 어떤 동료가 이처럼 죽을 때면, 그의 죽음 역시 직무상의 명령에 따른 행동처럼 여겨지고, 여느 죽음보다 처음에는 더 슬프지 않다. 물론 그는 마지막 전근 명령에 따라 저 멀리로 떠났다. 하지만 매일 먹는 빵이 없는 것처럼 그의 존재가 뼈에 사무치도록 그립지는 않다. 실제로 우리는 동료를 오랫동안 기다리는 데 익숙하다(p. 35).

 

가끔 흑인 노예가 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저녁 바람을 맛보는 일도 있다. 이 포로의 육중한 몸속에서는 더 이상 추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는 단지 붙잡힌 당시의 일, 주먹질과 비명 소리, 지(p. 109)금의 암흑 속으로 그를 밀어 넣은 남자의 팔만 기억할 뿐이다. 그 시간 이후 그는 기이한 꿈속에 빠져들었다. 장님처럼 천천히 흐르는 세네갈의 강물이나 모로코 남부의 하얀 도시들의 풍경을 빼앗긴 채, 그리고 귀머거리처럼 친근한 목소리들을 빼앗긴 채 말이다. 이 흑인 노예는 불행한 것이 아니라 불구가 된 것이다. 어느 날 유목민들의 생활 반경 속에 들어와, 그들이 이주할 때마다 이끌려 다니고, 그들이 사막에서 그려나가는 궤도에 평생 동안 매어 있게 된 지금, 그와 과거, 가정, 아내와 아이들 사이에 공유할 무엇이 남아 있겠는가? 그 모든 것들은 지금 그에게 죽은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오랫동안 위대한 사랑을 품고 살아왔으나 그 사랑을 빼앗긴 사람들은 종종 자신들의 고독한 고귀함에 싫증을 느끼곤 했다. 그들은 겸손하게 삶에 다가가 평범한 사랑을 가지고 자신들의 행복을 만들어 나간다. 그들은 체념하고, 스스로를 노예로 만들어, 일상의 평화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마음 편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노예는 주인의 숯불을 자신의 자랑으로 삼는다. 자, 들어. 가끔씩 주인이 포로에게 말한다. 이때야말로 주인이 노예에게 선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이다. 그날 하루의 피로와 무더위로부터 벗어나 시원한 저녁으로 들어가는 순간이다. 주인은 노예에게 차를 한 잔 준다. 그러면 노예는 고마워 어쩔 줄 모르고, 이 차 한 잔으로 인해 주인의 무릎에 입이라도 맞출 지경이 된다. 노예는 결코 사술에 묵이지 않는다. 그(p. 110)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토록 충성스러운데! 그는 현명하게도 빼앗긴 후인 왕으로서의 모습을 부정해 버린다. 그는 단지 행복한 포로일 뿐이다. 하지만 그는 어느 날엔가 해방될 것이다. 너무 늙어서 음식과 의복 값을 못하게 되면, 그는 무한한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면 사흘 동안 이 노예는 이 천막, 저 천막을 헛되이 돌아다니며 자기를 써 달라고 간청할 것이다. 하루가 지날수록 쇠약해지는 그는 사흘째 되는 날이 저물면 언제나처럼 담담하게 모래 위에 몸을 눕힐 것이다. 쥐비에서 나는 이처럼 벌거벗은 채 죽어가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무어 인들은 그들의 임종의 곁을 스치고 지나다니지만, 그들의 태도가 그다지 냉혹한 것은 아니었다. 무어 인 아이들은 검은 몸뚱이 곁에서 놀았으며, 새벽마다 이 몸뚱이가 아직 움직이는지 장난삼아 보러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결코 그 늙은 노예를 비웃지는 않았다. 그것은 자연의 질서에 속한 것으로, 마치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너는 그동안 수고 많았으니, 잠잘 권리가 있다. 가서 자거라." 그는 여전히 드러누운 채 현기증에 지나지 않는 허기를 느꼈지만, 유일한 괴로움인 부당함은 느끼지 못 했다. 그는 조금씩 대지와 하나가 되었다. 태양에 의해 말라붙고, 대지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30년 동안 일을 하고 나서 잠과 대지에 대한 권리를 얻은 것이다(p. 111).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우리는 우리가 맡은 역할을 자각 할 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 그때에만 비로소 우리는 평화롭게 살 수 있고, 또한 평화롭게 죽을 수 있다. 생명에 의미를 주는 것은 죽음에도 의미를 주기 때문이다. 죽음이 삶의 질서 속에서 이루어질 때 그것은 아주 감미롭다(p.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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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279】 하늘과 땅, 모두 살아가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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