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에서, 잡초 - 이나가키 히데히로 저자(글) · 염혜은 번역, 디자인하우스 · 2014년

이곳저곳에서 흔하게 보이는 잡초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 이 책을 읽은 후 잡초에 대해 친근한 마음이 들었다. 책 한권이 이렇게 사람을 바꾸는 힘이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책은 절판됐다. 기회 되면 동네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으시기를 바란다.

'잡초'라는 식물은 없다
'잡초라는 이름의 식물은 없다.' 이 말은 쇼와 일왕이 한 말이다. 사실 식물 하나하나마다 이름이 있을 텐데,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로 묶어 '잡초'라 부른다. 예전에 농가의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는데 논두렁에 나 있는 잡초의 종류를 너무나 자세하게 알고 있어서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있다. 방언이어서 표준 도감 이름과 일치하지 않는 것도 많았지만, 할머니 머릿속에서는 하나하나 확실하게 분류가 되어있었다. 할머니는 결코 식물학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별히 산야초에 대해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나에게 '이건 먹을 수 있다' '이건 약이 된다' '이건 방충제로 사용한다' '이건 이렇게 해서 가지고 논다' 이런 식으로 풀의 사용법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셨다. 용도가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하나하나의 식물을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방충제로 사용하는 잡초'와 '식용 잡초'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한통속으로 묶어서는 안 된다. 이렇듯 어떤 것을 이용한다는 것은, 그것을 그만큼 잘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고기 '방어'는 학명으로는 Seriola quinqueradiata라는 하나의 이름이다. 하지만 우리는 성장 단계에 따라 '방어' '마래미' 등으로 세분화해서 부른다. 생물학적으로는 똑같아도 맛이 다르니까 같은(p. 19) 것으로 취급할 수 없는 것이다. '벼'는 영어로 'rice' 하나다. 하지만 벼를 다양하게 사용하는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수학하면 '쌀', 도정을 하면 '현미', 완전히 다 도정 하면 '백미', 그것을 조리하면 '밥', 밥솥에 눌어붙은 건 '누룽지' 이런 식으로 용도에 따라 세밀하게 분화시켜 부른다. 놀랍게도 일본의 어느 지역의 아이들은 민들레를 세분화해서 구별 해 부르기도 한다. 그 지역의 아이들은 민들레의 줄기를 이용해 씨름을 한다고 한다. 그 때문에 씨름에 강한 민들레의 특징을 파악해 명확하게 구별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우리 주위에서 자라는 야생풀을 뭉뚱그려 '잡초'라 부르게 되었다. 그것은 이제 우리가 식물을 이용하는 법을 잊어버리게 되면서 가까이 있던 식물의 가치도 잊어버렸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p. 20).
도시를 구하는 잡초의 힘
그렇다면 잡초가 도움이 되었던 건, 다 옛날이야기인가? 모든 현대 문명이 집약된 도시가 발달한 오늘날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가? 아니다. 자연과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하기 쉬운 도시에서도, 아직 잡초는 남몰래 활약하고 있다. 도시에서는 열섬현상이 문제가 된다. 열섬현상이란 도시 부분의 기온이 주위 지역에 비해 높아져, 기온 분포를 살펴보면 섬이 우뚝 솟아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도시에는 흙이 적다. 흙이 있으면 태양에서 오는 에너지는 물의 증발에 의해 방출된다. 태양에너지는 흡수되고 식물의 성장에 이용되지만, 아스팔트나 콘크리트는 태양광에 의한 열을 축적하고 그대로 공기를 데워버린다. 그런 이유로 기온이 상승하는 것이다(p. 25). 때문에 요즘에는 옥상에서 식물을 기르는 옥상녹화가 많이 시행되고 있다. 옥상녹화에는 고온 건조한 기후에 강한 '세담'이라 불리는 종류의 식물이 많이 이용되는데, 세담 중에서 멕시코돌나물이나, 돌나물, 땅채송화 등, 길가나 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초 종류도 자주 사용된다. 작열하는 태양이 내리쬐는 옥상에서 가혹한 환경에도 잘 견디는 잡초가 활약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도시에서는 냉방을 피하고 절전하기 위해, 창밖이나 건물 벽을 '덩굴'로 덮어 직사광선을 피하는 '초록커튼'이라는 방식도 시행하고 있다. 일본에서 초록커튼에 자주 이용되는 나팔꽃은 '야생나팔꽃' 인데, '야생나팔꽃'은 그 이름대로 야생에서 자란 나팔꽃이다. 열대 원산지인 야생나팔꽃은 추위에 약하기 때문에 일본에서 잡초화 되는 일은 거의 없지만, 따뜻한 오키나와현 등에서는 잡초화 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녹지가 없는 도시에서는 학교 교정을 잔디밭으로 만들기도 하는데, 교정에서 관리하기 쉬운 생육이 왕성한 잔디나 우산잔디 (버뮤다그래스)가 자주 이용되고 있다. 들잔디나 우산잔디는 길가나 황무지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잡초다. 도시에서 유출되는 물의 오염이 문제가 될 때에는 식물을 이용한 수질정화가 시행되기도 한다. 수질정화를 위해서는 오염된 물에서 자랄 수 있는 잡초가 자주 이용된다. 갈대나 부들, 등심초, 물냉이 등(p. 26) 물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잡초가 바로 물을 깨끗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대표적인 정화 잡초들이다. 이런 식으로 자연이 파괴된 도시의 환경을 개선시키기 위해, 가혹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잡초의 능력이 활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아예 도시에서 잡초가 사라져버리면 어떻게 될까? 도시의 풍경은 전보다 굉장히 살풍경하게 변해버릴 게 분명하다. 잡초들은 길가나 가로수 화분, 선로 사이, 공터, 주차장 한구석, 교정, 콘크리트나 수로 등, 인간이 야산을 파괴하고 만든 콘크리트 정글을 필사적으로 초록으로 덮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도시의 입장에서 보면, 잡초는 한계를 지닌 친근한 자연일지도 모르겠다(p. 27).
잡초가 지닌 생명력의 비밀 뿌리
우리들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말할 때, '뿌리가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렇다면 잡초는 어느 정도나 그 중요한 뿌리를 뻗고 있을까? 봄에 싹을 틔우는 쇠뜨기는 필두채의 포자줄기다. 쇠뜨기와 필두채는 지면 밑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필두채는 땅속줄기를 지면 밑으로 내려, 이 땅속줄기로부터 뿌리를 뻗는다. 계속해서 잡초를 뽑아도 필두채가 줄기차게 자라는 것은 필두채가 지면 밑으로 땅속줄기를 뻗어 퍼져 있기 때문이다. 땅 위로 보이는 필두채는 고작해야 몇 십 센티미터 정도다. 그렇다면 이 필두채는 어느 정도 깊이까지 땅속줄기를 뻗치고 있는 것일까? 아무리 파내도 필두채의 땅속줄기를 몽땅 다 파내는 건 불가능하다. 옛날사람들은 필두채 뿌리는 지옥 끝까지 뻗쳐있어서 결국 염라대왕의 부뚜막 위의 냄비걸이가 되었다고 믿었다. 그 정도로 깊다는 이야기다. 설마 지옥까지 뻗쳐있지는 않겠지만, 아무리 작은 필(p. 52)두채라도 보통 지하 1미터 정도 깊이까지는 땅속줄기를 뻗고 있다.
예전에 원자폭탄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히로시마 지역을 가장 먼저 초록으로 우거지게 만든 것이 바로 이 필두채였다. 땅속 깊이 뻗어있던 뿌리줄기가 마치 방공호에 들어간 것처럼 열선을 뻗쳐 자라 있었던 덕분이다. 녹지가 생기려면 족히 50년은 걸릴 거라고 예상했던 이 죽음의 땅에 얼마 지나지 않아 살포시 피어난 필두채. 이 작은 잡초가 당시 사람들의 마음에 얼마나 큰 용기를 불어넣었을지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 이 잡초가 지닌 생명력의 비밀은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깊은 뿌리에 있었던 것이다. 또한 길가에서 흔히 자라는 잡초 중에 '메귀리'라는 게 있다. 메귀리는 초장(풀의 길이)이 1미터까지 길게 자라는 잡초다. 이 메귀리는 '수염뿌리'라는, 수염같이 가는 뿌리를 지면 밑으로 뻗는다. 이 세밀한 뿌리를 모두 모아 몽땅 연결하면 대체 어느 정도의 길이가 될까? 10m일까? 100m일까? 어느 연구자가 실제로 그걸 측정해보았다고 한다. 그 결과 한 그루의 메귀리의 뿌리를 모두 연결해보니 무려 550km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길이는 무려 도쿄에서 오사카까지의 거리에 필적하는 길이다. 놀라울 따름이다. 메귀리도 대단하지만, 나는 솔직히 수염뿌리를 일일이 떼고 이어서 측정한 사람이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게 바로 '잡초정신' 이 아닐까? 사실 뿌리는 흙속에 있어서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길가(p. 53)의 작은 잡초조차도 이만큼의 뿌리를 뻗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잡초의 '근성이며, '마음이며, 기질인 것이다.
뿌리는 수분이 부족할 때 뻗는 것
그렇다면 뿌리는 어떤 때에 뻗는 걸까? 물을 풍부하게 제공받는 수경재배 식물은 의외로 뿌리가 길지 않다. 뿌리를 뻗지 않아도 충분히 물을 빨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무리해서 뿌리를 뻗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이 없을 때에는 물을 찾느라 뿌리가 길어진다. 아이다 미쓰오의 시 중 생명의 뿌리라는 작품이 있다.
눈물을 참고 슬픔을 견뎠을 때
입으로 말하지 않고 고통을 견뎠을 때
변명을 하지 않고 잠자코 비판을 견뎠을 때
분노를 삭이고 지그시 굴욕을 견뎠을 때
당신의 눈빛은 깊어지고 생명의 뿌리는 깊어진다(p. 54).
뿌리가 길어지는 건 성장에 적합한 좋은 환경 속에 놓여있을 때가 아니다. 오히려 뿌리는 힘들 때 비로소 더 깊어지는 법이다. 따라서 수분이 모자랄 때야말로 바로 식물이 쑥쑥 성장할 수 있는 포인트 시점이 된다.
에도시대에 기록된 책 중 《논밭식물의 비유》에 이런 기록이 있다.
"논밭의 식물은 가뭄 속에서는 마르고, 비가 오면 자란다. (중략) 하지만 노지에 있는 봄풀은····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
물이나 비료를 주면서 돌봐 주는 작물은 가뭄에 마르는데, 누구도 물을 주지 않는 잡초는 어째서 가뭄에도 생생한 걸까? 사람들은 그 생명력에 경탄한다. 사람의 뿌리도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혹독한 환경에 놓이게 되는 순간, 그 뿌리가 서로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게 된다. 누구도 물을 주지 않는 잡초는 뿌리를 매우 깊게 내리고 있다. 충분히 물을 제공 받는 작물과는 뿌리를 뻗는 방식 자체가 다른 것이다. 뿌리가 중요하다는 말은, 말하자면 제대로 뿌리가 내려지도록 기회를 주는 역경도 또한 성장을 위해서 중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p. 55).
잡초를 없애는 유일한 방법
'마당에서 잡초를 완전히 없애는 방법은 없습니까?'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잡초는 뽑아도 뽑아도 계속해서 생긴다. 제초제를 뿌리면 이미 자라있는 잡초는 죽지만, 바로 다음 타자 잡초가 싹을 틔우기 때문에 대단한 효과는 없다. 따라서 유감스럽지만 최첨단을 달리는 21세기인 오늘날에도 마당의 잡초를 근절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 잡초를 없애는 궁극의 방법이 딱 하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건 대체 어떤 방법일까? 의외로 그건 '잡초를 뽑지 않는 것'이다. 마치 무슨 선문답 같다. 잡초를 없애려면 잡초를 뽑지 말라니, 대체 무슨 말인지(p. 81). 이미 소개했듯이 잡초는 약한 식물이다. 풀 뽑기를 하는 환경에서는 강한 식물이 자랄 일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잡초에게는 오히려 살기 편한 환경이 되고 만다. 반대로 풀 뽑기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처음에는 잡초가 만연 하겠지만 결국 대형 식물이 점점 더 자라게 되어 잡초를 압도하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관목이 자라기 시작하면서 긴 세월에 걸쳐 그곳은 울창한 숲이 되어갈 것이다. 잡초는 강한 식물이 널리 퍼져있는 깊은 숲에서는 살 수가 없다. 그 결과, 결국 잡초는 축출되고 만다. 하지만 사실 이런 과학적인 과정을 통해 '잡초'라 불리는 식물이 없어진다 한들, 그렇게 되었을 때는 이미 그곳은 대형 나무가 자라는 숲이 된다는 뜻이니, 밭이나 정원 관리법으로는 전혀 현실성이 없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유감스럽게도 잡초가 자라면 우리는 잡초 뽑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얄궂게도, 잡초 뽑기를 계속 하는 한 잡초는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p. 82).
아스팔트를 뚫고 나오는 대표적인 잡초로는 쇠뜨기와 향부자가 있다. 쇠뜨기와 향부자는 지면 밑에 땅속줄기를 뻗는다. 때문에 지면 밑에서 아스팔트에 도전하면서 싹을 틔우기 위한 에너지를 충분히 축적하고 있다. 보통 잡초 싹 끝의 세포가 가진 압력은 107압 이상 이라고 알려져 있다. 자동차 타이어의 공기압이 11기압이라는 것을(p. 113) 생각해보면 상당한 압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놀라운 압력이다. 이 압력으로 계속 힘을 주면 결국은 아스팔트를 들어 올릴 수 있다. 하지만 물론 아스팔트를 파괴하는 일이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단단한 아스팔트 때문에 오히려 세포가 파괴되어버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싹 끝의 안쪽에서는 쉼 없이 세포분열이 일어나서 계속해서 새로운 세포가 보강된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압력을 가한다. 그런 끈질긴 작업 끝에 결국 아스팔트도 부서지는 것이다. 사실 아스팔트가 비교적 얇게 덮여있는 부분이라야 한다거나, 더위로 아스팔트가 녹아 좀 부드러워진 상태여야 한다는 등의 조건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몇 번이고 도전하다보면 잡초의 씨가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오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잡초가 지닌 생명력의 핵심을 '다이렉트'하게 본 느낌이다. 아스팔트 밑에서 자라는 잡초는 어쩐지 의양양한 얼굴을 하고 있을 것 같다(p. 114).
잡초의 건강 파워
건강식품 매장에서는 더욱 많은 잡초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건강차로 팔리고 있는 '쇠뜨기차'는 쇠뜨기를 이용해 만든 차다. '뱀 밥은 누구의 아이? 쇠뜨기의 아이'라는 노래 가사에도 나오듯이 쇠뜨기는 봄의 정취를 느끼게 해주는 풍물시에도 자주 등장하는 풀이지만, 밭에서는 굉장히 성가신 잡초 중 하나다. '삼백초차'는 집 주변이나 길가의 그늘에서 볼 수 있는 삼백초라는 풀로 만든 차다. 쇠뜨기나 삼백초 외에도 쑥, 냉이, 민들레, 살갈퀴, 질경이 등, 다양한 잡초가 차로 가공되어 팔리고 있다. 그런데 길가의 잡초 따위에 어째서 약효 같은 게 있는 걸까. 식물은 병원균이나 해충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p. 124) 성분을 몸에 지니고 있다. 그런데 식물이 가지고 있는 병원균이나 해충을 퇴치하기 위한 물질이 우리 몸에 들어오면, 우리의 몸은 그것을 약한 독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이 물질을 해독하고 제거하기 위해 우리의 몸은 방어시스템을 가동시키기 시작한다. 그것을 소화하고 배출하기 위해 위장이 활발해지고, 해독대사를 하기 위해 혈액순환이 좋아지며, 이뇨작용 등도 활발해진다. 이처럼 잡초의 물질에 자극을 받아서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는 생생한 에너지가 활성화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잡초가 가지는 성분의 움직임에 의해, 우리 몸은 건강을 회복하게 된다(p. 125).
논두렁길, 길바닥, 하천부지, 공터, 마을 공원 등, 어떤 장소라도 잡초를 조사 하다보면 반드시 발견하게 되는 것이 있으니, 바로 토끼풀이다. 토끼풀은 에도 시대에 네덜란드에서 유리제품을 들여올 때 완충재로 같이 채워져 있었던 식물이다. 그 때문에 일본어로는 '쓰메쿠사(채우는 풀)'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19 세기 중반 목초로 사용하기 시작한 토끼풀은 잡초화되어 온 일본으로 퍼졌다. 토끼풀은 '클로버'라고도 불린다. 토끼풀은 본래 잎이 세 개지만 가끔가다 잎이 네 개짜리가 발견될 때가 있다. 그게 바로 우리가 행운의 상징으로 알고 있는, 그 유명한 '네잎클로버'다. 네잎클로버의 기원은 성패트릭이 클로버의 세 잎을 사랑' '희망' '신앙'의 삼위일체로 비유하면서, 네 번째 잎을 '행복'이라고 말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게다가 네잎클로버는 십자가와 그 형태가 닮았기 때문에 행운의 상징으로 여겨지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네잎클로버를 찾기 위해서는 약간의 요령이 필요하다. 네잎클로버가 생기는 원인은 몇 가지 있지만 그 원인 중 하나는 성장점이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잎이 만들어질 때에 상처를 입으면 기형이 되어 네잎클로버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네잎클로버는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니는 길가나 운동장 등 사람에게 밟히기 쉬운 장소에서 자주 발견된다. 진짜 행복은 어쩌면 그렇게 밟히면서도 살아남는 과정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네잎클로버가 가르쳐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p. 18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