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을 살지 못하는 당신에게 - 이지훈 저자(글), 위즈덤하우스 · 2023년

좋아하는 작가다. 기회가 되는대로 책을 찾아 읽고 있다. 읽을만한 책들을 써 줘서 고마운 작가다. 많은 유익을 얻었다. 삶을 진지하게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날 교수님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저는 제 이혼에 대해서 어렵게 말을 꺼냈습니다. 저의 짧은 얘기를 들으신 교수님은 일말의 주저함 없이 저에게 이렇게 조언해주셨습니다. "《탈무드》에서도 결혼은 신중하게 이혼은 신속하게 하라고 했어요. 그리고 이 법무관의 아이들 세대에서는 이혼이 별 의미가 없게 될 거예요." 이혼이라는 패배감에 억눌려 있던 저에게 교수님의 이 말씀은 충격 자체였습니다. 제가 결혼을 할 때도, 결혼 생활로 고통을 받을 때도, 이혼을 할 때도 이런 이야기를 해준 어른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아마도 이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마지막 남은 허물을 남김없이 벗어버릴 수 있었던 것은요. 그리고 저는 다시 제 삶을 살기로 했습니다. 변호사로서 수천 건의 이혼 상담을 하면서 알게 된 공통점은 대다수의 사람이 '내 인생에 이혼은 없어!'라는 근거도 없는 확언으로 이혼을 선택지에서 없애버린다는 것입니다. 사실 결혼과 이혼은 내 인생의 본질이 될 수 없습니다. '나의 삶'이라는 시간 속에서 취업, 결혼, 출산, 이혼 등의 이벤트가 발생(p. 18)하는 것입니다. 결혼한다고 해서, 이혼한다고 해서, 어떤 직업을 갖는다고 해서 나라는 사람의 본질이 바뀔 수는 없습니다.
공자가 상정한 인간상 역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 입니다. 삶에서 의도치 않게 맞닥뜨리는 상황에 굴하지 않고 나답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공자는 두 가지 삶의 태도를 제시합니다. 군자가 세상에 나아갈 때는 반드시 그래야 된다고 고집하는 것도 없고, 반드시 그러지 말아야 된다고 고집하는 것도 없으며, 오로지 마땅함을 척도로 할 뿐이다(p. 19).
우리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앎이란, '삶은 인과율이 지배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결과는 내가 한 선택이 가져온 것입니다. 그것을 안다면 우리는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마땅합니다. 공자가 번지로부터 '앎이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역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에 힘쓰고, 귀신에 대해서는 삼가되 가까이하지 않는다면가히 안다고 할 수 있다. 당신의 삶은 사주팔자가 지배하고 있나요, 아니면 인과율이 지배하고 있나요? 당신은 지금 어떤 일에 힘을 쏟고 있나요?(p. 33).
누군가의 본질은 특정한 직업이나 재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이립, 불혹, 지천명으로 덕을 성장시켜가는 것이 바로 군자의 삶입니다. 자리가 주어지는 것은 하늘에 달린 것일 뿐입니다.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인가? 나답지 않게 살 것인가? 공자의 답은 '아니요'입니다. 세속적으로 '실패한' 공자와 안회는 죽는 순간 행복했을까요? 저는 매우 그렇다고 생각합니다(p. 38).
전전긍긍
삶에 임하는 태도를 '내가 좋아하는 바를 한다'로 정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못 할 바가 없는 무소불위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발현 되어야 할까요? 삶은 죽음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죽음의 순간을 떠올리면 쉽게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병이 깊게 들어 죽음을 앞둔 증자가 문하의 제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제자들아, 이불을 걷어내고 내 발과 내 손을 보아라. 《시경》에 이르기를 삶을 살면서 절절하게 애를 쓰는 것(전전긍긍) 이 마치 깊은 연못가에 있는 듯이 하고, 얇은 얼음을 밟는 듯이 하라고 하였는데, 지금이 되어 서야 비로소 내가 이것을 면하게 된 것을 알겠구나? 깊은 연못 근처에 있거나,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다면 혹시라도 빠지지 않기 위해 얼마나 조심할까요? 이와 같이 전전긍긍이란 항상 두려워하고 삼가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이런 자세로 삶의 매 순간을 대했고, 이는 생을 마칠 때까지 이어지는(p. 39) 것이기 때문에 증자는 죽음에 임박해서야 겨우 이것을 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르되 매사에 전전긍긍하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제가 《논어》에서 찾은 나의 이립입니다(p. 40).
아홉 가지 생각의 기술, 구사
공자는 생각하는 법을 잊어버린 우리를 위해 아홉 가지 생각의 기술을 알려줍니다.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할 때의 본질, 즉 반드시 생각해야 할 아홉 가지를 구사라고 합니다. 공자가 강조하는 구사는 다음과 같습니다(p. 61).
① 시사명: 볼 때는 눈밝음을 생각해라.
② 청사총: 들을 때는 귀밝음을 생각해라.
③ 색사온: 낯빛을 지을 때는 온화함을 생각해라.
④ 모사공: 몸가짐을 행할 때는 공손함을 생각해라.
⑤ 언사충: 말을 할 때는 스스로에게 거짓 없음을 생각해라.
⑥ 사사경: 일을 할 때는 주도면밀함을 생각해라.
⑦ 의사문: 의문이 날 때는 질문을 생각해라.
⑧ 분사난: 화가 나면 그것을 그대로 표출했을 때 일어날 분란을 생각해라.
⑨ 견득사의: 이익을 얻을 때는 내가 그것을 취해도 마땅한지를 생각해라.
이 아홉 가지 생각의 기술은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상황별로 생각해야 되는 기준을 제시해줍니다(p. 62).
고는 고다울 때 가장 행복합니다. 주의할 것은, 생각을 당하는 순간은 주변에서 나를 부러워할 때라는 점입니다. 폭력이 수반된 억압적인 상황이 아닌 이상 가스라이팅으로 인해서 내가 향유하는 이익이 반드시 있습니다. 보통 그 이익이란 것은 '안정과 그로 인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흔히 우리는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안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안타깝게도 그것은 곧 '성장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내가 세속적인 기준에 부합하고 작은 성과에 도취되어 있을 때를 가장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자신에게 질문하십시오. '혹시 지금 생각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것조차 당신의 선택입니다(p. 68).
삶은 크고 작은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나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가장 나다운 선택을 해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선택을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결정이 어려운 당신을 위해 효과적인 선택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먼저 죽음을 떠올리십시오. 그런 상태에서 자신에게 질문하십시오. '나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몇 날 며칠을 고민했던 문제가 사실은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죽음 직전까지 가지 않고 단지 죽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다운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평생을 두고 집중하고 노력해야 하는 문제는 단편적(p. 104)으로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도 흔들림 없도록 나를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참고 참으면서 죽을 만큼 괴로울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매번의 선택을 할 때마다 자기 자신을 돌보시기 바랍니다(p. 105).
관계는 조화를 위해 서로 맞춰갈 수 있지만 반드시 물러설 수 없는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절지입니다. 안타깝게도 절지하지 못한 영희님의 인생은 결혼으로 치달았고, 삶의 중기 목표가 해외에서 근무하며 커리어를 쌓아가는 여성에서 '오늘도 아이와 무사하기를 바라는 우울증에 걸린 경력이 단절된 엄마'로 바뀌었습니다. 평생을 함께해야 하는 '배(p. 185)우자'라는 관계를 맺을 때는 우선 스스로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충분한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이런 것들을 상대방과 함께할 수 있는지 검토해야 합니다. 상대방에게 나를 맞추어서는 곤란합니다(p. 186).
스스로 분발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으로서 최악입니다. 삶이 궁한 상황에 처했는데도 길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공자 같은 성인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공자보다 못한 우리가 그런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이런 사람은 제대로 미워하며 멀리해야 할 대상이지, 관계를 맺고 변화시키기 위해 내 값진 노력을 쏟아부을 대상이 전혀 아닙니다. 만일 당신이 막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저 오만함에 불과합니다. 자발성이란 스스로 먼저 구하는 것입니다. 공자는 스스로 찾아와 육포 한 짝 이상을 내며 배움을 청하는 사람이(p. 220) 있으면 일찍이 가르쳐주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자발성이 있습니다. 첫째 스스로 찾아올 것, 둘째 수업료를 낼 것입니다. 공자는 마지못해서 하는 사람을 굉장히 싫어했습니다. 마지못해서 하는 사람은 삶이 구차한 것이고, 이런 사람에게 무언가를 하도록 억지로 시키는 사람 역시 구차스럽기 때문입니다(p. 221).
결혼은 누가해야 하는가?
어렸을 때부터 제 인생의 화두는 '내 두 발로 서는 것stand on your feet' 이었습니다. 이것은 저의 의지이자 삶의 원동력이었습니다. 특히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최고의 효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결혼이란 독립의 완성이었습니다. 하지만 7년간의 결혼 생활을 끝으로 이혼을 하고 삶의 밑바닥을 헤매면서 제가 깨달은 사실은 결혼이 독립이 아니라, 독립 된 사람이 선택한 것 중의 하나가 결혼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객이 전도된 생각에 사로잡혔던 저는 결혼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했습니다. 삶의 모든 문제는 독립된 인간이 되지 못(p. 224)함에 있습니다. 저는 이혼 상담을 하면서 매우 많은 사람이 결혼을 독립적으로 선택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p. 225).
생각의 힘은 나이나 경험과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생각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결국 사리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사리를 세우기 위해서는 배움이 필수적입니다. 배우는 것이 먼저인 공자는 "온종일 먹지도 않고 밤새도록 자지도 않으며 생각만 해보았지만 얻는 것이 없었다. 배우는 것이 낫다"라고 하였습니다. 생각을 마름질할 도구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생각만 하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망상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데카르트나 공자가 말하는 '생각' 이 아닙니다(p. 235).
배움과 생각의 조화
공자는 배움과 생각이 조화를 이루는 것을 최고로 여깁니다. 배우지 않고 생각만 하는 사람은 조직을 위태롭게 합니다. 시대별로 보면 혜성처럼 '짠' 하고 나타나 혹세무민하는 사이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이비 종교단체의 교주들입니다. 이들은 사리에 맞는 배움이 없지만 생각을 통해 나름대로 논리적인 철학을 만들어냅니다. 공자의 표현에 따르면 양극단을 파고드는 사람들입니다. 양극단을 파고드는 이유는 아무도 하지 않으니 조금만 노력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는 외로움이나 고통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거짓 위안을 주며 승승장구합니다. 결국 이들은 사회를 위태롭게 합니다. 반대로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사기를 당할 뿐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가방끈도 길고 지적인 수준이 필요 이상으로 높습니다. 그런데 사리가 세워져 있지 않습니다. 헛똑똑이입니다. 배움-생각-배움- 생각은 우리의 인생을 통해서 면면히 흘러야 합니다. 배우지 않고서는 생각의 힘을 기를 수 없고,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헛똑똑이가 될 뿐입니다(p. 236).
재혼 금지령
이혼은 상실이자 실패입니다. 이제는 찬찬히 실패의 원인을 분석해봐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거대한 외로움은 당신이 스스로를 탐험하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어떤 유형의 사람들은 이혼을 함과 동시에 미친 듯이 이성을 찾아 나섭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조급증에 빠진 사람들은 쉽게 이성을 만나기 위해 몸무게가 적게 나가려고 발버둥 칩니다. 그렇게 싼값에 자기 자신을 팔아 치우고는 안심합니다. 상황이 이렇다면 X보다 못한 사람을 만날 확률이 99.999퍼센트입니다(p. 286).
사리 분별이 없이 그저 착한 사람은 누군가가 우물에 빠졌다고 하면 그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우물 안으로 따라 들어가 결국 함께 죽습니다. 그야말로(p. 306) 비명횡사입니다. 하지만 사리 분별이 있는 사람은 우물까지 가게 할 수 있어도 우물에 빠지게 할 수는 없습니다. 착한 사람은 사리 분별이 없는 것일 뿐이기에 결코 좋은 사람으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p. 307).
시간은 유한하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50은 인생의 원숙기로 가장 나답게 나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40에는 최소한 삶의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50이 될 때까지 이렇다 할 성장이 없다면 그 사람은 그것으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여기서 성장이란 나를 알고 나답게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p. 3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