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8(토)
 
  • 하필 책이 좋아서 - 김동신 , 신연선 , 정세랑 저자(글), 북노마드 · 20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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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는 많은 경우 불황이다. 요즘 들어 사람들은 더 책을 읽지 않는다. 유튜브 등에 시간을 잠식당하고 있다. 나도 늘 유튜브와 싸움을 벌인다. 동영상은 직접적이고 재미있다. 그러나 독서는 그렇지 않다. 60인 나도 그런데 나면서부터 디지털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젊은 세대는 더 심할 것이다. 그래도 책은 계속해서 나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아직은 책이 재미있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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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인 스카우트나 과감한 이직의 경우 대개 과장급, 팀장급에서 이뤄지는 것 같다. "10년차가 씨가 말랐네" 하는 한탄을 들을 때마다 경제적인 보상도 성장의 기회도 더 나은 쪽으로 인력 유출이 있었겠거니 짐작하게 된다. 조직 내부에 속한 이들뿐 아니라 계약을 맺고 함께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23년에는 14년차에 이르렀는데, 경력이 쌓일수록 안심하고 일할 수 있을 줄 알았건만 점점 더 이상하고 나쁜 계약서를 받는 일이나 인세 입금이 지연 누락되는 일 등이 잦아지고 있다. 벽에 부딪힌 느낌이 들 때 이동의 욕구를 느낄 수밖에 없다. 출판계가 어려워서 사람대우를 제대로 못해준다는 이야기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출판계가 여유 없이 어려운 것은 맞으나 열의를 가진 사람들을 너무 예사로이 여기고 홀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을 필요가 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계속 출판계의 문을 두드리겠지만, 이대로라면 떠나는 속도 또한 빨라질지(p. 58)도 모른다. 마땅한 존중을 이야기할 때가 왔다(p. 59).

 

책을 책일 수 있도록 하는 곳, 책등

책을 보면 가끔 새삼스러운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여러 장의 종이를 엮었을 뿐인 이 단순한 물건의 생산과 소비에 이토록 오랫동안 이렇게 많은 사람이 열성적으로 가담해왔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책의 형태, 종이 여러 장을 겹쳐서 한 쪽 변을 묶고 표지로 감싸는 코덱스(codex) 형식은 역사상 책이 취했던 여러 형태 가운데 한 가지이지만 다른 경쟁자들을 제치고 지금까지 살아남아 책의 대명사가 되었다. 오랜 세월 사람 가까이에 자리했기 때문일까. 책의 세부를 일컫는 명칭을 살펴보면 신체 부위를 뜻하는 말에서 가져온 것이 많다. 책머리, 머리띠, 책배, 책발.... 앞표지는 자주 '책의 얼굴'로 비유되며, 표지 종이를 판형 폭보다 길게 내어 안쪽으로 접어 넣은 부분은 '날개'라고 부른다. 디자인 저술가 엘런 럽튼(Ellen Lupton)은 「책의 몸」이라는 글에서 책과 타이포그래피 관련 용어에 몸과 관련된 것이 많은 것은 글쓰기가 신체의 확장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눈이 볼 수 없는 영역을 카메라를 통해 보고 발로 갈 수 없는 거(p. 110)리를 자동차로 쉽게 도달하듯이 글은 생각을 그 소유자로 부터 시간적•공간적으로 분리해 스스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해준다. 글이 생각의 몸이라면 책은 글의 몸이다. 신체와 관련된 책의 세부 명칭 가운데 가장 절묘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책등이다. 등에는 인체를 지탱하는 기둥인 척추가 있기 때문이다. 코덱스의 구조적 정수가 종이를 엮었다는 점인 만큼 엮인 부분들이 모여 만들어진 면을 등이라고 일컫는 것이 퍽 적절하게 들린다. 영어권에서는 직접적으로 spine이라고 부르는데, 실제로 노출 바인딩으로 제작한 책에서 표지를 입히지 않은 책등을 보면 종이 묶음을 실로 엮은 모습이 뼈마디와 닮아 보이기도 한다(p. 111).

 

출판계에서 경력이 쌓이고, 일을 거듭 할수록 '다 알 것 같아서 지루해지는 순간'은 언제까지나 오지 않을 것을 확신하게 된다. 그리고 그게 좋다. 책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작디작은 나의 세계를 무려 노동을 하면서도 넓힐 수 있다는 것이 말이다. '알면 사랑한다'는 말을 늘 좋아하는데 나로 말하자면 책이 가져다준 다양한 세계 덕분에 사랑과 용기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고 믿는다. 책과 저자에게서 알게 된 새로운 세계를 '잘' 알고자 하면 그 세계를 이내 사랑하게 되었고, 그 사랑 덕분에 세상에 대한 환멸이 닥쳐올 때도 그(p. 249)것을 물리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나에게 그런 용기를 준 책이 몇 권쯤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언제나 가장 큰 용기이고. 그래서 출판계 노동자이자 독자인 나는 이 덕업일치의 삶을 행운으로 여기며 산다. 일을 위해서 읽던 책을 다 끝내면 휴식을 위해 다시 또 책을 꺼내면서 말이다. 천수를 누리다 죽은 행복한 돼지의 이야기, 장애인 운동가의 이야기, 세월호 유가족의 이야기, 홀로코스트 피해자의 이야기, 인도의 작은 출판사 이야기, 프리다이빙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야간의 인공조명으로 죽어가는 새들의 이야기, 사랑의 정의를 넓혀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두 책에 있다. 다큐멘터리나 뉴스 기사로는 미처 다 알 수 없던 깊이 있는 세계가 책 속에서 꼼꼼하게 펼쳐진다. 그것은 비유하자면 이 귀한 사람들을 나의 거실에서 단 둘이 만나는 일이다. 그 내밀한 이야기를 내 두 귀에 직접 전해 듣는 일이다. 나의 바깥으로 간신히 한 발짝 나가보는 일이다. 그 불가능한 일이 일어날 때의 충격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내는 일이다(p.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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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290】 출판업자들의 수고에 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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