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한 것들 - 박성웅 , 정준호 , 서동새라 , 홍의권 저자(글), MID(엠아이디) · 2015년

독은 결국 생존을 위한 수단이다. 독이라는 것도 인간을 기준으로 판단한 것인데 이 독도 잘 쓰면 약이 되니 참으로 희한하다. 자세히 알아보고 연구하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해 주어졌고 그 용도를 발견하면 모두 유익할 것이다. 흥미롭게 읽었는데 현재 이 책은 절판됐다.

독을 진화하기 위해 독이 있는 생물들은 많은 것을 감내해야만 했다. 독에는 수많은 화합물들과 단백질들이 들어가는데, 이를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를 희생해야 한다. 자신을 보호하거나 먹잇감을 얻기는 쉬울지 몰라도, 독을 만들기 위해 번식이나 활동에 들어가는 에너지의 일부 는 희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나 전갈에서 독이 차지하는 무게는 몸무게의 0.5% 이내에 불과하다. 하지만 독을 다 쓰고 나서 재충전 시 뱀의 기초대사량은 평소의 11% 이상 상승한다. 독이 재충전되는 시간은 뱀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짧게는 2주에서 길게는 5주 이상 까지 걸린다. 이 기간 내내 대사량이 10% 이상 증가한다면 상당한 희생인 셈이다. 경우에 따라 뱀이나 전갈은 이 비용을 아끼기 위해 사냥에 독을 사용하지 않기도 한다. 독 없이도 제압할 수 있는 만만한 상대라면 몸으로 휘감아 으스러뜨려 죽이거나 집게발로 동강내 사냥을 한다. 또한 화석기록이나 유전정보를 살펴보면 독이 필요 없는 환경이 되면 독니와 독주머니는 금세 퇴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독과 관련된 기관들은 생존에 있어 굉장히 비싼 기회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p. 33).
우리들은 독을 가진 생물들을 '독하다', '나쁘다' '위험하다' 정도로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독을 가지게 된 생물들은 대체로 '불쌍한' 생물들이다. 독을 만드는 데는 적지 않은 노력과 비용이 소모된다. 게다가 경우에 따라서는 독 자체가 자신의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다.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 독을 가지게 된 생물들은 도대체 얼마나 기구한 사연이 있었기에 독을 가지게 되었을까 하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독한 생명들도 사뭇 다르게 보일 수 있다(p. 49).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는 페니실린과 알렉산더 플레밍에 대한 신화가 사실은 만들어진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알렉산더 플레밍이 1928년 곰팡이로부터 항생물질을 분리하여 페니실린으로 이름 붙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14년 후 페니실린이 상용화 될 때까지의 과정에서 플레밍이 기여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심지어 항생제 약품으로 개발한 학자들과 직접 접촉한 적도 없었다. 본인도 페니실린이 이렇게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하고, 한동안 페니실린이라는 물질 자체에 관심을 가(p. 203)진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개발했다'는 신화는 2 차대전 중 영국의 국민들을 감동시키고 격려하기 위한 영웅담으로 재발굴되었다. 페니실린이 상용화된 것은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으로, 이전까지는 전투 자체보다도 상처에 일어난 2차감염으로 사망하는 병사가 더 많았다. 페니실린은 말 그대로 기적의 신약이었고, 언론은 탄생의 배경을 추적하게 되었다. 14년 전 플레밍의 발견 이야기를 들은 영국의 유명 일간지 타임스지는 "하나님의 섭리로, 전쟁의 피로 얼룩진 우리에게 최강의 약물이 허락되었다"며 1944년 6월 12일자 신문에 대서특필했다. 이런 과학적 신화는 반복해서 재생산되는데, 결과적으로는 과학의 발전에 있어서나 대중에게나 이익이 되지 않는다. 이는 과학자들이 과학적 발견을 이루기까지 들어가는 데 필요한 시간과 노력, 데이터의 중요성을 과소평가 하게 만들고, 어떤 위대한 영웅에 의해서만 가능한 업적으로 포장해버린다. 또한 정확한 사실에 기반해 계속해서 검증해야 하는 과학적 가치와도 정반대에 있는 현상이다(p. 204).
뱀에 물렸을 때는?
이런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뱀에 물렸을 때의 처치법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사실 뱀에 물렸을 때의 처치만큼 '민간요법'들이 난무하는 의학 분야도 드물지 않을까. 우리가 흔히 만화나 영화에서 보는 뱀에 물렸을 때의 처치법들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물린 곳을 불 로 지지는 소작법이나 뱀독을 빼내겠다고 물린 부위를 째는 행위는 절대 해서는 안 된다. 독을 빼내겠다고 물린 상처 부위를 입으로 빨아내는 것은 물린 사람에게도 괴로운 일이지만, 빨아내는 사람도 중독될 수 있기 때문에 역시 절대 피해야 할 행동이다. 이렇게 째고 빨고 지지는(p. 227) 행위는 이미 세포독소의 영향으로 괴사되고 있는 조직 손상을 키울 뿐 만 아니라 2차감염의 위험도 높이게 된다. 또 앞서 언급했다시피 뱀독에는 항응고제가 포함된 경우가 있어 괜히 상처 부위를 더 벌렸다가는 엉뚱하게 출혈 과다로 환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그리고 '독이 몸 에 퍼지면 안된다!'며 지혈대를 이용해 물린 부위주변을 압박하는 행동 역시 절대 피해야 할 일이다. 오히려 물린 곳의 혈액 공급을 차단해 조직 괴사를 촉진시켜 예후를 나쁘게 만드는 주범이다(p. 228).
레저용 독
에탄올과 니코틴은 사람들이 가장 널리 쓰는 독 중 하나다. 많은 국가들에서 합법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독인 동시에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독 중 하나다. 담배는 해충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강력한 신경독인 니코틴을 만들었는데, 인간이 이렇게 좋아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전 세계에서 담배를 재배하게 되어 담배종의 입장에서는 성공적인 번식방법이 되었다. 니코틴은 담배를 통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독성 물질 중 하나다. 니코틴은 담배의 뿌리에서 합성되어 잎에 축적되는데, 매우 강력한 신경독소 중 하나다. 곤충에서는 낮은 농도에서도 강한 신경독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과거에는 살충제로도 널리 사용되었다. 즉 본래 담배가 니코틴을 생산하는 것은 해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로 추측하고 있다. 또한 도시에 사는 일부 새들 중에는 담배꽁초를 주워 둥지에 집어 넣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했다. 앞서 언급했던 사례들처럼 독(p. 233)이 있는 물질을 둥지에 넣어 체외기생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행동일 가능성이 있다. 인간에게 있어 니코틴은 낮은 농도에서 높은 각성 효과를 나타내지만, 농도가 올라가면 독성을 나타낼 수 있다. 중독효과도 커서 니코틴 중독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심각한 중독 중 하나이며, 끊기도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p. 234).
에탄올은 신경계에 작용하는 독이다. 중추신경계를 억제해 낮은 농도에서는 행복감과 이완 작용을 하지만, 농도가 올라가면 운동능력이 저하되고 인지능력이 떨어진다. 혈중알코올농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면 중추신경계가 억제되면서 뇌로 가는 혈류가 줄어들고, 의식을 잃을 수도 있다. 이 상태를 지나가면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 에탄올을 마셔 나타나는 숙취와 두통은 에탄올 자체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에탄올이 산화되어 아세트알데하이드라는 대사산물이 생기기 때문이다(p. 2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