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8(토)
 
  • 당신의 뇌, 미래의 뇌 - 김대식 저자(글), 해나무 ·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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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에 대해 잘 모른다. 관심을 가져본 적이 별로 없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뇌에 대해, 신체에 대해 더 알아야겠다는 호기심이 생긴다. 앞으로 뇌에 대한 책을 더 찾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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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미국에 있을 때 겪었던 일입니다. 알고 지내던 판사 한 분이 자신이 다뤘던 사건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예전에 뉴욕에서 있었던 일이래요. 평생 죄 안 짓고 대형 은행에서 근무하던 어느 임원이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아내를 죽였습니다. 이 사람이 왜 이런 짓을 했을까, 하고 세상이 떠들썩해졌어요. 그런데 그 임원의 전두엽에 본인도 모르게 암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변호사가 알게 됐어요. 변호사는 게이지의 사례를 들어 변론을 했습니다. 임원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살인한 게 아니고 그 모든 것이 병적인 행동이었다고 말이죠. 전두엽 손상을 근거로 들었는데, 당시 판사는 그 걸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유인즉, 영미법은 계몽주의 시대에 만 들어진 건데, 계몽주의에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하거든요. 자유의지가 있는 사람은 자기 행동에 스스로 책임져야 하(p. 52)는데 신경세포가 책임질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하는 시각이었던 거죠. 이런 식으로 자신의 책임을 신경세포에 전가하기 시작했다간 큰일 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교통신호를 어겨 경찰한테 잡혔는데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는 거죠. "아, 죄송합니다. 오늘 제 전두엽 신경세포 254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우리 현실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2015년에는 우리나라 법원이 처음으로 살인 사건 피의자의 뇌 영상 자료를 재판에 활용했습니다. 피의자의 뇌를 MRI와 fMRI로 촬영한 거죠(p. 53).

 

인간의 행복지수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연봉이 같은데도 자기 주변 사람들이 부자이면 자신이 가난하다고 느낄 테고, 주변 사람들이 가난하면 자신이 부자라고 느낄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자신이 한 달에 10만 원 더 많이 받는 경우와 주변 사람이 한 달에 20만 원 덜 받게 하는 경우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후자를 선호합니다. 상대적으로 그게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사회적 부는 점점 커지고 있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지수는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오히려 현대인들 대다수가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여깁니다. 파이 자체는 100년 전보다 훨씬 커져서 자기가 먹을 것도 많아졌지만 퍼센트로 따지면 자기 몫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으니까요. 정치인들이 허구한 날 국민 행복 시대니 뭐니 하며 떠들어대는데, 이는 사실 불가능합니다. 모든 사람이 잘사는 건 어찌어찌해서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행복 자체가 상대적인 개념이라서 그렇습니다. 사람이 행복해지려면 비교 대상을 바꿔야 합니다.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이 아니라 과거의 자신과 비교하면 어떨까요? 더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을까요? 즉 비교 대상을 무엇으로 삼느냐에 따라 행복의 척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p. 98)

 

쥐는 시력이 안 좋아 세상을 초음파로 파악합니다. 우리 인간은 어떨까요? 인간은 뇌 안에 10¹⁵개 되는 연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연결성을 부모한테 100퍼센트 물려받는 건 아닙니다. 대략 3분의 1 정도가 유전적으로 타고난다고 알려져 있고, 또 3분의 1 정도는 태어난 뒤 10~12년까지의 아주 중요한 발달 기간 동안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결정적 시기라고 하는 이 기간 동안 자주 사용하는 연결성은 살아남고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연결성은 다 사라져버립니다. 뇌에서 다 지워져요. 지금 살고 있는 환경에 최적화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자라고, 한국 사람 얼굴을 보고, 한국 음식을 먹고...., 그런 것과 관련한 신경세포들은 다 살아남습니다. 그러나 스웨덴 사람을 알아보고, 아프리카 음식 냄새 구별하는 방법은 사용하지 않으니까 그런 기능을 하던 신경세포는 다 없어져버립니다. 고향이라는 게 뭘까요? 고향이란, 뇌가 최적화된 환경입니다. 그래서 고향이 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정적 시기에 뇌가 그 환경에 익숙해졌으니까요. 그 밖에 나머지 3분의 1은 랜덤으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일란성 쌍둥이도 100퍼센트 똑같은 뇌를 가질 수는 없습니다. 유전적으로는 똑같아도 환경이 100퍼센트 똑같을 수는 없거든요. 말하자면 사람들이 모두 조금씩 다른 뇌를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조금씩 다른 뇌를 갖고 있으면 조금씩 다른 계산이 일어나고, 그에 따라 해석이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우리 눈에(p. 103)는 세상이 매번 다르게 보입니다. 어떻게 보면 항상 다르게 보이는데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더 신기한 일입니다(p. 104).

 

1929년부터 쓰나미처럼 밀어닥친 대공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식·금융·산업 등의 경제 기반이 한꺼번에 붕괴됐습니다. 대공황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고도 하죠.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인간이 합리적인 행동을 한다고 하면서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질까요? 명색이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체면이 있지, 사실(p. 114) 이런 일이 벌어지면 안 되잖아요? 이런 현상이 자꾸 발생하는 이유는 뭘까요? 시장이 붕괴되고, 사람들에게 크나큰 상처를 남기는......이런 현상을 두고 존 케인스는 음과 같은 주장을 펼칩니다. 인간은 당연히 합리적으로 행동하지만 가끔씩 동물같은 본능에 지배당하기도 한다고 말이죠. 케인스는 이렇게 인간에게 내재된 동물적인 본능을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이라고 했습니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만 어떤 특정 상황에서는 야수 같은 본능이 튀어나와서 비합리적인 선택으로 치닫기 때문에 시장 붕괴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뇌과학자는 경제학자와 완전히 반대로 생각합니다. 경제학자들은 아주 오랫동안 인간의 합리성을 믿어왔고 간혹가다 예외가 발생한다고 여겼습니다. 즉 경제학자들은 특수한 조건이나 아주 예외적인 상황에서 비합리적인 선택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뇌과학자들은 정반대로 주장합니다. 즉 인간은 대부분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아주 가끔 예외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고 말이죠(p. 115).

 

어쩌면 우리는 선택을 먼저 하고 나서 그걸 보고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는지도 모릅니다. 스페리는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뇌는 세상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기계가 아니고 자기 행동을 정당화 하는 기계라고.... 결론은, 사람들이 대부분 선택을 해놓고 그것을 합리화한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뇌의 기능, 아니면 뇌의 여러 가지 기능 중 하나입니다. 몇 년 전에 맥도널드에서 커피를 팔기 시작할 때 실시했던 실험을 알아보겠습니다. 이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분할 뇌 환자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보통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한테 커피를 마시게 했습니다. 똑같은 커피를 두 잔에 나눠놓고, 하나는 2,000원, 다른 하나는 4,000원이라고 써 붙였습니다. 똑같은 커피입니다. 마셔보고 어느 커피가 더 맛있는지 선택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를 들어보시죠.

참가자 A: 4,000원짜리가 더 마음에 들어요. 2,000원짜리는 신맛이 좀 더 강한 거 같은데요. 4,000원짜리는 커피 향 자체에서 연기(p. 125)향이 좀 더 깊게 난다고 해야 되나요?

참가자 B: 4,000원짜리 커피가 더 맛있는 거 같은데요. 향이 좀 더 진하고요. 음.... 제가 좀 좋아하는 스타일인 거 같고요. 자꾸 그 쪽으로 손이 가게 되네요.

참가자 C: 4,000원짜리가 제가 먹기에 좀 더 편하고 좋거든요. 부드럽고 향도 오래가고. 제가 맛에 좀 민감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요. 쓴맛이 조금 덜해서 시럽이나 설탕을 안 넣어도 될 만큼..

도대체 이분들은 왜 그럴까요? 지금 좌뇌가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똑같은 커피예요. 지난번에 착시 현상 알아볼 때, 사각형 A와 B의 밝기가 똑같은데 그중 하나가 그림자 안에 있다는 사실을 가지고 뇌가 밝기를 재해석하는 현상 기억나시죠? 똑같은 현상입니다. 여기서도 2,000원짜리 커피와 4,000원짜리 커피는 똑같아요. 혀는 맛이 똑같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뇌는 우리 오감을 절대로 믿지 않거든요. 눈•코•입•귀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고 재해석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 재해석 과정에 자기 경험에서 비롯된 지식을 투영시킨다는 것입니다. 실험 참가자들이 생각하는 진실은 비싼 게 좋다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문제가 생깁니다. 분명히 혀는 똑같다고 신호를 보내요. 그런데 자기 경험에서 나오는 지식으로는 4,000원짜리가 더 좋아야 됩니다. 과학에서는 데이터와 모델이 일치하지 않으(p. 126)면 모델을 바꿉니다. 그런데 뇌는 절대로 그러지 않아요. 뇌는 모델과 데이터가 일치하지 않으면 데이터를 버려요. 이 사람들의 모델, 즉 비싼 게 좋다는 지식은 20년 내지 30년 정도 걸려 만들어진 것입니다. 커피는 약 5초 동안 마셨을 뿐이에요. 20~30년 걸려서 형성된 모델을 단 5초의 경험으로 바꾸는 건 적절하지 않죠. 조현병 환자처럼 자아가 불안정한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모델을 쉽사리 바꾸지 않습니다. 결국 자아라는 것은, 젖은 찰흙 같은 상태가 세월이 흐르며 점점 굳어지는 것처럼, 오랜 기간 동안의 경험과 해석들이 축적되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간접 경험과 직접 경험, 나에 대한 기억, 나에 대한 다른 사람의 판단, 타인이 나에 대해 내린 판단을 나는 어떻게 생각 하는지 등 이런저런 사고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자아가 완성돼 갑니다. 이 실험을 보면 모델이 데이터를 이겨버리는 것입니다. 손길이 자꾸만 4,000원짜리 커피로 간다고 하잖아요. 데이터가 지고 모델이 이겼습니다. 자, 이미 선택은 해버렸어요. 그런데 뭔가 찜찜합니다. 혀는 계속 맛이 똑같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거든요. 찜찜한 기분에 대한 반작용일까요? 이제 좌뇌가 4,000원짜리가 왜 맛있는지 스토리텔링을 하기 시작합니다. 향이 진하고 어쩌고, 맛에 민감하고 어쩌고저쩌고.... 얼핏 들으면 상당히 논리적인 설명으로 들립니다. 상황을 모르고 들었다면 충분히 믿어도 될 만한 얘기들이죠(p. 127).

 

뇌과학에서는 거짓말을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합니다. 우선, 그냥 흔히 이야기하는 거짓말입니다. 자신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걸 알고 하는 거짓말이에요. 또 하나는 '작화 confabulation'라는 게 있습니다. 작화를 병적으로 구사하는 증상을 작화증이라고 합니다. 작화는 내적인 일관성이 있고 나름대로 논리적인 발언입니다. 듣는 사람이 전체 상황을 모르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얘기죠. 일정한 맥락 아래 그럴 듯한 얘기를 술술 지어냅니다. 이처럼 아주 논리적이면서도 그럴듯한 거짓말을 작화라고 합니다. 스페리의 주장처럼, 뇌의 핵심 기능 중의 하나가 자신의 행동과 선택을 정당화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도 일상생활에서 뭔가 선택을 해놓고 구구절절 말이 긴 사람은 한 번쯤 의심해보는 게 좋습니다. 그 사람의 내면에서 뭔가 일치하지 않는 게 있다는 반증일 수 도 있거든요. 선택했는데 아무 이유 없이 좋으면 그게 제일 좋은 것입니다. 선택하고 나서 이게 왜 좋았는지 주변 사람들한테 자꾸 이야기하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다른 사람들한테 '좋아요' 버튼을 누르라고 강요하는 건 스스로도 내면에서 뭔가 찜찜한 게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진 찍어 SNS에 올리고, '좋아요' 횟수로 자기 선택의 정당성을 확인받으려 하고... 덕분에 소셜 미디어 업체만 돈을 벌죠.

자기 정당화는 왜 할까요? 우리는 다양한 선택을 하면서 살아 갑니다. 로저 스페리 이론의 핵심은 이런 결정들이 서로 연결되지(p. 128) 않는다는 것입니다. 선택하는 행위 하나하나는 그 주변에 있는 수백 가지 요소들이 얽히고설켜서 이뤄지지만, 개별 선택 사이에는 아무 인과관계가 없어요. 즉 제가 파스타를 먹은 것과 5년 전에 카이스트를 직장으로 선택한 것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선택을 하고, 그다음에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함으로써 자기 인생에서 벌어진 선택들을 서로 연결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 이유로 그것을 했다, 이래서 이것을 했다, 그것을 한 것은 무엇무엇 때문이다•••••. 자신의 인생이 마구잡이가 아니라 서로 연결이 된다는 것입니다. 인생이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고, 그 선이 자기 자아가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자아라는 건 사실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억에 남아 있는 자신의 선택을 스스로 합리화해서 자기 자신이 이 세상에 오직 하나만 존재하는 것인양 선을 그어 연결할 뿐이라는 얘기죠. 자기 자신이란 존재하지 않거나 여러 명입니다. 현재의 자신과 20년 전의 자신은 완전히 다른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이 선을 계속 그어 점과 점을 연결 함으로써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기 자신이 존재한다는 일종의 착시 현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p. 129).

 

그래서 가장 좋은 공부 방법은 이미 존재하는 정보에 새 정보를 연결시켜주는 것입니다. 시냅스를 강화시켜주면 되죠. 우리나라처럼 주입식 교육을 계속 반복하면 그 지식은 외딴섬 신세가(p. 171)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연결이 안 돼 있으면 해당 정보가 어딘가에 존재는 하지만 다시 찾기가 힘듭니다. 학습에서 중요한 요소는 뇌에 입력된 정보를 얼마나 잘 끄집어내느냐입니다. 잘 꺼내야 배운 내용을 활용할 수 있죠. 그런 경우 많이 겪었을 겁니다. 어떤 배우 이름이 기억 날 듯 말 듯 한데 누군가 그 배우가 나왔던 영화 제목을 얘기하니까 불현듯 이름이 떠오르는.... 주변에 있는 정보가 지나가면서 시냅스가 활성화되니까 그게 생각나는 겁니다. 학습의 정석은 존재하는 정보들 간의 연결성을 많이 만들어놓는 겁니다. 그래서 시너지니 융합이니 학제 간 연구니 그런 얘기가 많이 나오는 것입니다. A라는 사실을 'A, A, A,....' 하고 100번 공부하면 나중에 찾지 못합니다. 그런데 'A라는 사실은 B하고 이렇게 연결이 되고, B는 알고 보니까 C고, C를 역사적으로 보면 이러저러한데 종교적으로 보면 이렇고, 물리적으로는 저렇고 진화적으론 요렇다' 하는 식으로 다양하게 생각하면서 그 범위를 점점 넓혀가면 모두 다 연결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관련 정보와 지식이 조합돼서 훨씬 더 고차원적인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p. 173).

 

기계와 뇌의 가장 큰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기계는 설계하고 만들면 그걸로 끝입니다. 그 자체로는 더 이상 발전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뇌는 삶의 일정한 시기까지 계속 발달합니다. 약 10¹¹개 정도 되는 뇌 속의 신경세포들은 수천, 수만 개의 다른 세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연결성은 총 10¹⁵개나 됩니다. 우리는 연결성이 100퍼센트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태어납니다. 이 연결성을 대한민국 지도에 빗대어 생각해보죠. 태어날 때는 굵직한 고속도로 정도만 가지고 세상에 나옵니다. 예컨대 경부고속도로라면, 톨게이트 지나서 구체적인 장소까지 이어지는 자잘한 길은 아직 랜덤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굵직한 고속도로에 정보가 입력되는데, 그 랜덤 상태의 길 중에는 맞는 길도 있고 틀린 길도 있을 겁니다. 살아가며 경험을 통해서 채워 넣는 겁니다. 모든 동물한테는 결정적 시기라는 게 있습니다. 동물마다 조금씩 다르죠. 오리는 태어나서 두세 시간, 고양이는 태어나서 4주에서 8주, 원숭이는 태어나서 1년, 사람은 태어나서 10년에서 12년 정도 됩니다. 결정적 시기에는 뇌의 시냅스가 거의 젖은 찰흙 같아서 말랑말랑합니다. 유연성이 있다는 얘기죠. 이 시기에 계속 사용하는 길은 살아남고, 사용하지 않는 길들은 싹 없어집니다. 뇌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됩니다(p. 177).

 

교육 분야에서는 창의력 얘기가 많이 거론됩니다. 창의력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뇌과학 입장에서는 간단하게 답할 수 있습니다. 가능한 한 많이 연결성을 유지하는 게 창의력의 기반입니다. 어렸을 때 한정된 경험밖에 못한다면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길이 하나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 길이 막히면 아무 데도 가지 못해요. 그렇지만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서 어렸을 때 연결성을 많이 확보해놓는다면 다양한 생각을 펼칠 수 있을 겁니다. 주요 도로가 막힌다 해도 다른 길을 찾아낼 잠재력이 생깁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아이들을 조기 교육시키라는 소리로 알아듣습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어렸을 때의 뇌는 흡수력이 어마어마합니다. 예를 들어 세 살에서 다섯 살 무렵의 아이는 TV만 보고 있어도 하루에 단어를(p. 181) 수백 개씩 배웁니다. 거의 지식의 스펀지입니다. 어렸을 때 비싼 돈 들여 1년 동안 미국으로 조기 유학을 보내는 것과 주말에 이태원에 가서 인도 음식 먹는 것의 효과는 거의 비슷하답니다. 저 같으면 이태원으로 가겠습니다. 다양성도 좋지만 '비용 편익 cost benefit'을 따져봐도 더 낫습니다. 어린 시절의 뇌 흡수력을 감안하면 그냥 국내에서도 충분히 경험하게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주말에 애들 데리고 평소 경험하지 않았던 걸 보여주고, 영화 등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게 해도 아이들은 스스로 상상을 펼쳐나가거든요. 더욱이 인간은 눈에 안 보이는 것도 상상할 수 있는 정신병을 기본적으로 탑재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교육의 우선순위를 조금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결정적 시기에 경험하는 것들은 우리 뇌에 들어와 탁탁 박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뇌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시기이거든요. 따라서 결정적 시기에는 누구나 동의하는 객관적인 내용만 가르쳐주는 게 좋다고 봅니다. 예컨대 수학· 논리·인권 같은 과목 위주로 공부시키는 게 좋습니다. 역사나 이념은 나중에 가르쳐줘도 됩니다. 주관이 개입되기 마련인 역사나 이념을 결정적 시기에 배워 뇌에 고착돼버리면 거기서 벗어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특정 관점에서 자유롭지 못하죠. 어렸을 때 배운 게 현재의 신경 회로망을 다 만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늦었지만,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살아가는 사회를 미래 세대에게 물려줘야(p. 182)합니다. 그러려면 아이들에게 그런 뇌를 만들 환경을 조성해줘야 할 겁니다. 또 하나, 제 개인적으로는 초등학교, 중학교 선생님이 교수보다 월급을 많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선 생님이 가르쳐준 것이 학생들의 뇌를 만들거든요. 이건 다시 되돌릴 수도 없습니다. 어찌 보면 이 시기의 선생님은 대학 교수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더 많은 보상을 받아야 하죠. 뇌의 발달 단계에 비춰보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격 요건을 강화해야 하겠죠(p. 183).

 

인간이 두려워하는 건 약한 인공지능이 강한 인공지능으로 진화하는 것입니다. 기계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스스로 자율성을 획득하는 순간, 인간이 설정해놓은 통제 조건 따위를 무시해 버리면 끝입니다. 결국 강한 인공지능이 인간을 인정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인간이 없는 세상보다 그래도 인간이 이 세(p. 254)상에 존재하는 게 더 낫다는 인식을 기계와 공유해야 합니다. 인간 역시 역지사지로 생각해봐야 합니다. 만약 자기가 기계라면, 인간이 어떻게 처신해야 공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여길 것인가? '인간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이 왜 필요할까?' 이런 질문에 답을 얻으려면 인간이 없는 세상을 한번 가정해 보는 게 가장 논리적인 접근 방식일 것입니다(p. 255).

 

에르빈 슈뢰딩거는 세상의 진짜 본질은 물질이 아니라 정신이라고 주장합니다. 정신이 물질을 만들어낸다는 것 입니다. 일종의 범신론이죠. 이게 타당하다면 우주에 정신이 있다는 뜻입니다. 우주의 모든 물질에 정신이 있다는 게 아니고, 정보를 어느 정도 융합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정신이 있다는 것이죠. 바꿔 말하면, 생명체는 다 자아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조건만 충족되면 기계에도 자아가 있지 않을까요? 강한 인공 지능은 자아가 있어야 하잖아요? 기계가 지능과 의식을 갖게 되는 순간, 기계는 지각하고 기억(p. 266)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고 싶을 것입니다. 인간은 기회가 된다면 기계한테서 지능과 의식을 빼앗고 싶겠죠. 기계가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러면 기계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기계에게 인간은 유의미한 존재일까요? 어쩌면 기계에게 인간은 우리 발밑의 벌레들처럼 무의미한 존재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줘야 할까요? 그것은 아마도 기계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즉 인간 고유의 능력일 것입니다(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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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292】 뇌에 대해 더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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