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8(토)
 
  • 키워드로 읽는 불평등 사회 - 조형근 저자(글), 소동 ·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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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시각을 넓히는 책이었다. 흥미롭게 읽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보고 지적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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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떠 보니 선진국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의 기성세대가 어렸을 때 한국은 가난한 개발도상국, 제3세계에 속했다. 선진국은 꿈같은 단어였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1970년대, 교실 뒤편이나 복도에는 '수출 100억 달러 달성' '국민소득 1,000달러 달성' 같은 구호가 요란했다. 그 말들에서 선진국이 보이는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리곤 했다. 그런데 살아서 그 선진국 국민이 됐다. 지금 한국은 부자 나라가 모였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경제력 중상위권에 드는 나라다. 세계적인 대기업도 여럿 있고, 세계인이 열광하는 대중문화도 풍요롭다. 막강 파워를 자랑하는 자국 여권을 든 한국인이 세계로 나가는 동안, 여러 나라 사람들이 꿈(p. 4)과 일자리를 찾아 한국으로 온다. 그리고 또 다른 한국이 있다. OECD 회원국이 되던 1995년에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8.3%였다. 100명 중 여덟 명쯤이 중위 소득의 절반을 못 버는 빈곤층이었다. 2020년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15.3%, 100명 중 열다섯 명 정도가 빈곤층이다. 선진국이 됐는데 빈곤층 비율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세계불평등데이터베이스World Inequality Database에 따르면, 1995년 한국에서는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31.8%를 차지했다. 2021년에는 그 비율이 46.5%로 늘었다. 소득 상위 1%가 차지하는 몫은 7. 2%에서 14.7%로 두 배 이상 늘었다. 그만큼 중하층 몫이 줄었다. 현재의 노동에 비해 과거로부터 쌓여온 자산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는 피케티 지수는 1995년 5.8배에서 2021년 8.8배로 증가했다. 같은 시기 서구 여러 나라는 지수가 대개 5~6배 전후를 오가는데도, 20세기 초 이후 가장 높은 수치라며 논란이 뜨겁다. 20세기 중반에는 2~3배 사이였다. 불평등이 심각해져서 비상이 걸린 중국이 2021년 기준 7.3배다. 한국의 피케티 지수는 아찔하다. 불평등이 심하다 보니 부자 나라가 됐는데도 사는 게 팍팍하다. 자살률은 줄곧 OECD 1위를 지키고 있고, 산재사망률도 최고 수준이다. 어려운 이웃에게도 모질다. 난민 보호율은, 세계 평균이 40%쯤 되는데 한국은 5% 정도다. 재난을 피해 찾아온 이들 대부분을 쫓아낸다. 코로나 19를 거치며 권위주의 성향도 강화됐다. 인권보호보다는 질서유지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 이들이 많아졌다(p. 5).

어느 쪽이 진짜 한국의 모습일까? 둘 다 맞다. 한국은 불평등이 심한 선진국이 됐다. 어느 한쪽만 보아서는 안 된다. 그동안의 성취를 부정해서도 안 되고, 그 성취가 동반한 불의에 눈감아서도 안 된다.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동안의 성취를 바탕으로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뜻과 힘을 모으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는 그럴 여력이 있다. 그래서 정치가 중요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의 주체는 시민, 보통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다. 실제로는 '보통사람'은 선거 때 홍보 문구에만 등장하고, 엘리트가 정치를 주도한다. 정치인, 관료, 기업가, 언론인 등 힘센 사람들이 여론과 정책을 주무르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좌지우지한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폐해다. 이 폐해가 심해지면 썩은 세상 모조리 뒤집어엎자는 포퓰리즘의 분노 와 음모론이 창궐하기도 한다. 포퓰리즘은 기득권을 욕하지만 실제 공격하는 대상은 여성, 비정규직, 이주민 같은 사회적 약자다. 그들이 고통의 근원으로 지목되고, 을들끼리의 싸움이 격화 된다. 오늘날 한국과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좋은 정치를 위해서는 고통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이 책은 지금 우리 정치공동체가 겪고 있는 고통, 현안들을 스물일곱 개의 키워드를 통해서 접근한다. 문제의 실상을 파악하 고, 구조적 원인을 진단하며, 가능한 한 해법을 타진하고 향후 전망을 시도해 보았다. 한국사회의 문제는 다양하지만, 그 기초에는 모두 불평등을 확대하는 이윤 논리, 약육강식의 욕망이

(p. 6)있다. 연대와 협력을 통해 넘어서는 수밖에 없다.

두 개의 키워드를 통해 책 내용을 조금 엿보자. 첫째, 최저임금. 최저임금 결정 시즌이 되면 해마다 난리가 난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처지가 어려운데 최저임금을 올리려 한다며 보수언론•경제지 등에서 대서특필한다.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이 OECD 중위권이라서 결코 낮지 않다며 근거도 댄다. 그런가 보다 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OECD 회원국 중 고소득 여덟 개 나라에는 최저임금제도가 아예 없다. 왜 없을까? 노동조합의 힘이 강하고 복지제도가 잘되어 있으니 그렇다. 이 여덟 개 나라를 빼고 난 다음 순위에서 중위권이니, 사실은 중위권이라고 말할 수 없다. 노조도 약하고 복지도 빈약한 한국에서 최저임금은 서민의 삶을 지탱하는 보루다. 둘째, 사회적 가치. 이익이라는 경제적 가치만 절대시하는 경 쟁 자본주의 대신 협력과 연대라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경제 활동을 사회적 경제라고 부른다. 협동조합이 대표적이다. 자본주의의 탐욕스런 욕망을 제어하는 중요한 활동이다. 한국은 오랫동안 협동조합 설립의 자유를 막아온 사회적 경제의 후진국이다. 2012년부터 비로소 설립이 자유화됐다. 미약한 사회적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2014년에 당시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 정의당 등 142명의 여야 국회의원이 사회적경제기본법을 발의 했다. 사회적가치기본법도 발의됐다. 재계와 경제지, 보수언론 등이 반시장적 사회주의 법안이라며 대대적인 이념공세를 퍼부(p. 7)었다. 아직도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 사회적 경제 부문에 고용된 유급 노동자는 2016년 기준 0.82%에 불과하다. 한 줌도 못 된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유럽연합은 2015년 기준 전체 유급 노동자의 6.3%가 사회적 경제에서 일한다. 서유럽과 북유럽의 경제가 발전한 나라일수록 사회적 경제의 비중이 높다. 보수가 곧잘 자유의 나라로 숭상하는 미국은 어떨까? 유럽과 기준이 달라서 사회적 경제가 아니라 비영리 부문이라고 부르는데, 2019년 기준 미국 전체 사적 영역 노동력의 10.2%를 비영리 부문이 고용하고 있다. 한국 재계와 보수언론의 논법대로라면 유럽과 미국은 빨갱이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p. 8).

 

한국이 개발도상국이던 시절, 힘센 사람들은 늘 선진국이 될 때 까지만 참으라고 말했다. 아직 형편이 어렵다며 대신 미래의 넉넉한 분배를 약속했다. 선진국이 된 지도 여러 해가 지난 지금, 힘센 사람들의 말이 바뀌었다. 더 이상 미래를 약속하지 않는다. 이 세상은 정글이라서 불평등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능력있는 사람이 잘사는 게 정의라고 말한다. 가난과 고통은 스스로의 무능력 탓이라고 한다. 평등한 관계를 만들지 못한 탓에 기득권이 이렇게 무도해졌다. 힘센 사람들의 시혜로는 평등한 세상이 오지 않는다. 보통사람들이 뜻과 힘을 모으는 수밖에 없다. 연대와 협력의 길이다. 역사는 연대와 협력이 성장에도 이로웠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성장이 아니더라도 연대와 협력은 소중한 가치다(p. 9).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는 예외가 아니다

2020년 10월 12일, 한진택배 소속 택배 노동자 김동휘 씨(36세)가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평소 지병이 없었기에 과로사가 의심됐지만, 사측은 고인의 평소 배달량이 하루 200개 정도로 평균보다 적은 편이었다며 과로사 가능성을 반박했다. 하지만 숨지기 4일 전 고인이 회사 선임자에게 남긴 문자 메시지가 발견되면서 과로사 가능성이 짙어졌다. 문자 메시지를 보면 고인은 당일 420개의 배달 물품을 배정 받았고, 오후 9시까지도 280개가 남아 있었다. 결국 새벽 4시 28분까지도 다 배달하지 못하고 귀가하면서 너무 힘들다며(p. 18) 메시지를 남겼다. 분류 작업을 위해 6시까지 다시 출근해야 하니 사실상 밤샘 격무를 한 것이다. 같은 날 쿠팡의 장덕준 씨(27세)가 사망했고, 그 보다 며칠 전인 8일에는 CJ대한통운의 김원종 씨(48)가 사망했다. 모두 별 다른 지병 없이 건강한 이들이었다. 코로나19 탓에 택배 수요가 폭발하면서 2020년 한 해 동안에만 16명의 택배 노동자가 사망했다. 택배 노동자들은 분류작업만이라도 제외해달라며 작업 거부, 파업에 나서기도 했다. 분류작업이란 택배기사들이 서브 터미널에서 물량을 나눈 뒤 차에 싣는 과정을 가리킨다. 택배 배달 건수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 택배 노동자들 입장에서 분류작업은 사실상 '공짜 노동'이나 다름없고, 과로의 주범이다. 2021년 1월, 노사정 합의로 분류업무를 제외하기로 결정했지만 사측은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다. 이에 같은 해 6월에 택배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면서 6월 15일에는 집회도 열었다. 집회는 코로나 19를 이유로 당국에 의해 금지됐다.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30여 명은 감염병예방법 등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결국 파업 뒤에야 2차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 후(p. 19)에도 계속 잡음이, 무엇보다 죽음이 끊이지 않는다.

코로나19 시절 택배 노동자의 처지는 현대의 노동자가 마주 하고 있는 위태롭고 불안정한 상황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그들이 수행하는 필수노동은 우리가 팬데믹을 견딜 수 있는 버팀목이 되었다. 대신 그들의 목숨이 갈려나갔다. 택배노동자의 상황이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다. 보건의료나 청소 같은 필수노동의 영역부터 제조업, 농업, 건설업 등 산업 전반에 걸쳐 비정규직, 불완전 노동이 창궐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50%를 넘어선 지 한참이다. 이들은 정규직 노동자보다 현저히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신분, 위험한 근로조건을 감수하며 차별받는다. 이들에게는 안정적인 정규직 노동자라는 신분이 오히려 특권으로 보인다. 이토록 열악한 상황은 한국만의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며,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프레카리아트라는 생소한 단어는 이런 불안정한 노동자의 처지를 가리키는 단어로서 새롭게 부상했다. 그것은 새로운 모순, 새로운 사회운동의 등장을 가리키는 단어이기도 하다.

불안정한 노동자, 프레카리아트

프레카리아트를 한국어로 정확히 옮기기는 어렵다. '불안정한 노동자' 정도로 번역하는 게 그나마 가장 무난할 듯하다. 영어를 기준으로 보면 '불안정하다' '위태롭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p. 20) 프리케어리어스Precarlous에서 앞부분 preca-를 가져오고, 노동자계급을 뜻하는 단어 프롤레타리아트Prolelariat에서 뒷 부분 -riat를 가져와서 조합한 단어다. 《뉴욕 타임스》는 십자말 퀴즈에서 프레카리아트를 "직업 안정성이 거의 또는 전혀 없기 때문에 삶이 불안정한 사람들의 계급"으로 풀이했다. 이 단어는 1980년대 이후 본격화된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적 전환 과정에서 일어난 노동자의 지위 하락을 고발하는 단어다. 임시직, 파트타임, 프리랜서 등 모습은 다양하지만 그 본질은 불안정한 직업 안정성 탓에 고통받는 사람들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영세 자영업자, 영세 노인, 청소년, 실업자 등 기존의 상식으로는 노동자로 분류되지 않는 사람들까지 프레카리아트에 포함하기도 한다. 아직 학술적으로 정립된 개념은 아니며, 여전히 형성 중이면서 논란에 휩싸여 있는 개념이다(p. 21).

 

상속세가 이중과세라며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소득을 얻었을 때 이미 소득세를 냈는데 상속시에 또 세금을 내라니 이중과세라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소득세 내고 남은 돈으로 하는 경제 행위에 부과되는 모든 세금이 이중과세가 된다. 물건 살 때마다 내는 제품 가격에는 부가가치세 10%도 포함 돼 있는데 이것도 이중과세다. 자동차를 산다면 부가세, 개별 소비세, 교육세, 취득세도 내야 하니 오중과세라고 할까? 물론 말도 안 되는 어거지다. 이런 주장대로라면 국가는 소득세 말고 걷을 수 있는 세금이 거의 없다. 이중과세라는 주장은 옳지 않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재산을 상속받은 274만 명 중에 상속세를 납부한 사람은 불과 1.9%밖에 안 된다. 과표 기준이 높고 각종 공제가 많기 때문에 사실은 한국에서 상속세 내는 사람 안에 드는 것은 쉽지 않다. 웬 만큼 잘 살아도 걱정 안 해도 될 일이고, 만약 걱정이 되는 사람이라면 꽤 큰 부자라는 말이니까 행복한 고민이기도 하다(p. 36).

 

부작용이 정말 감수할 만한 것일까? 2021년 8월에 감사원이 발표한 〈인구구조 변화 대응 실태 감사보고서〉의 내용은 충격적이다. 2018년 기준 지방대 졸업생 열 명 중 네 명(39.5%)이 수도권에 일자리를 얻는 반면 수도권 대학 졸업자는 열 명에 한 명 정도(11.7%)가 지방에서 일자리를 얻는다. 수도권 대학 졸업자 중 상당수가 지방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청년 세대의 수도권 집중은 어마어마하다. 수도권에 집중된 젊은이들은 치열한 경쟁, 과도한 주거비용 등으로 출산율도 낮다. 2020년 기준 합계출산율의 전국 평균이 0.84명인데, 서울은 0.64명이다. 광역자치단체 중 꼴찌다. 2021년 기준으로는(p. 50) 0.81명 대 0.63명이다. 생활이 안정된 공무원조차 서울과 지방의 출산율이 다르다. 세종으로 이전한 공무원의 평균 자녀 수는 1.89명인데 서울에 계속 머문 공무원들의 평균 자녀수는 1.36명이다. 차이가 크다. 지금처럼 젊은 인구가 수도권으로 계속 빨려 들어가고 세계 최저의 출산율이 계속된다면 한국 자체가 소멸의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2022년 9월, 통계청이 발표한 〈세계와 한국의 인구 현황 및 전망〉에 따르면 총인구에서 생산가능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2022년 71.0%에서 2070년 46.1%로 급감 한다. 당연히 OECD 최저다. 대표적인 초고령 국가로 꼽히는 일본과 이탈리아의 생산가능인구 비중도 같은 기간에 각각 8.1%포인트, 11.7%포인트 감소할 뿐이다. 한국의 24.9% 포인트 감소라는 수치가 유독 두드러진다. 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라가 돼가고 있다(p. 51).

 

한국사회에서 공공임대 주택은 중산층이 아니라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복지'의 영역으로만 간주된다. 적어도 내 집은 아니다. 아니면 젊어서 잠깐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을 지배한다. 정권을 불문하고 한결같이 지속된 분양 중심, 소유 중심의 주택정책이 낳은 결과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금리 인상으로 2022년 상반기 이후 부동산 시장이 급냉했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 몇 년간 부동산 시장의 급상승, 특히 아파트 가격 폭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좌절했다. 서울, 수도권을 중심으로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면서 '내 집 마련의 꿈'을 잃은 이들이 허탈감에 빠졌다. 이는 한국에서 부동산 정책이 늘 '자가 소유'를 중심으로 세워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아파트 분양가, 매매가, 전세가의 동향이 부동산 정책과 이슈를 결정하는 변수가 돼왔다. 공공임대 주택의 양이 충분하고 질도 좋으면서 차별 없이 살 수 있다면 공공임대 주택은 주택시장의 가격 폭등을 막고 주거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된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공공임대 주택이 전체 주택 재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9년 기준 7.6%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도 상당수는 분양 전환되는 것들이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개인 소유 주택으로 바뀐다. 공공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이다. 반면 서구 복지 선진

공공임대 주택(p. 81)국들의 경우 공공임대 주택(사회주택이라고 부른다) 재고가 전체 주택 재고의 20~30%를 넘나든다. 사회주택의 양이 많다 보니 수준도 다양해서 중산층, 심지어 상류층도 사회주택에 사는 경우가 있다. 집은 사는(buying) 것이 아니라 사는 (living) 것이라고들 한다. 이 말이 현실성을 얻으려면 지금까지의 주택정책으로는 불가능하다. 주택정책의 방향이 근본적으로 바 뀌어야 한다(p. 82).

 

빌 게이츠나 마크 주커버거 같은 IT 업계 거인들이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이유도 이 상황을 심각한 위기로 보기 때문이다. 자동화와 로봇 도입으로 일자리가 줄어들면 그만큼 수요도 줄어든다. 따라서 이들은 로봇세를 도입해서 그걸 재원으로 기본소득을 주자고 주장한다. "노동자가 공장에서 일을 하고 연봉 5만 달러를 받는다면 그에 따른 세금을 낸다." "로봇이 동일한 일을 한다면 마찬가지로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 빌 게이츠의 말이다. 서구에서 복지국가가 자리잡게 된 1950~ 1960년대를 돌이켜 보면 직장은 대체로 안정적이었고 실업은 일시적이었다.

실업 때만 실업수당을 받으면 됐다. 지금은 대다수 직장이 불안정해졌고, 실업은 만성적 현상이다. 일시적 실업을 전제로한 복지제도로는 감당이 안 된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지금 복지제도 아래서 이뤄지는 소득, 자산 조사의 부작용이다. 받(p. 92)을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만 지급하므로 정확한 조사가 필수다. 행정비용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완벽한 조사가 불가능해 부정 수급자 문제로 사회적 갈등비용이 늘어난다. 자격 심사를 엄격하게 하면 될 것 같지만, 자격 심사를 강화할수록 다시 행정비용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생긴다. 게다가 수급자는 자격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낙인찍기가 일어나는 건 물론이고 스스로도 심각한 자괴감에 빠지는 일이 적지 않다. 사례 연구들을 보면 정당한 수급 자격이 있어도 이런 심사과정에서 곧잘 심각한 심리적 상처를 입게 되고, 이 자체가 또 사회문제가 된다. 자격이 있어도 이 낙인이 공포스러워서 아예 신청을 회피하기도 한다. 이런 여러 이유 때문에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p. 93).

 

최저임금 제도는 노동조합 조직률이 낮고, 복지제도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한 나라에서 오히려 의미가 크다. 영국과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앵글로 색슨 중심 국가들에서 최저 임금 제도가 발전한 이유다. 한국과 일본도 여기에 포함된다. 또 미국의 경우 연방제 국가로서 주별로 최저임금이 모두 다르고, 스위스도 전국 단위의 최저임금 제도는 없지만 일부 주에서 최저임금 제도를 실시한다. 최저임금의 산정 범위도 나라별로 조금씩 다르다. 최저임금의 국제 비교가 쉽지 않은 이유다. 특히 나라마다 복지예산의 비중이 다르다는 사실은 최저임금의 효과와 관련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나라마다 전(p. 108)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복지예산의 비중이 다르기 때문에, 한 사람이 얻는 전체 소득 중 시장에서 얻는 소득과 복지로 얻는 소득의 비중도 다르게 된다. 복지로 얻는 소득, 즉 사회임금의 비중이 높은 나라는 시장임금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예를 들어 스웨덴, 프랑스 같은 나라는 사회임금이 전체 소득 의 50%에 육박한다. 주거, 의료, 교육, 육아, 노후 대비 등에 지출하는 비용을 개인이 시장에서 직접 임금으로 벌어야 할 필요성이 그만큼 낮은 것이다. 반면 한국은 사회임금의 비중이 1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복지가 허약한 것으로 유명한 미국의 절반 수준이다. 즉 시장임금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고, 90% 가까운 소득을 시장에서의 각자도생으로 해결해야 하는 나라다. 그만큼 최저임금의 역할도 큰 나라인 것이다. 자영업자의 타격이 크다거나, 실업률이 올라간다며 최저임금을 올리지 말자고 하는 사람들이 대신 복지를 그만큼 늘리자고 한다면 진정성을 이해할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서 최저임금을 올리면 안 된다는 말은 가난한 사람들은 더 어려워지라고 하는 말과 같다. 옳지 않다(p. 109).

 

케네스 로고프는 2020년 3월 17일 미국 방송 CNBC에 출연해서, 코로나19 비상사태에 맞서 미국 정부가 수조 달러의 경기 부양책을 쓰고 양적완화를 하면서 빚잔치를 벌이는데, 이래도 되는 거냐는 앵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은 전쟁입니다. 재정건전성을 쳐다볼 수 없습니다. 경기부양을 해야만 합니다." 건전재정의 주창자 로고프조차 재정지출의 긴(p. 122)박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미국도, 유럽연합도 감염병 위기 동안 재정준칙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경제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타격을 입고 있는 기업과 서민들에게 막대한 지원을 퍼 부어야 했던 것이다. 반면 세계에서 재정이 가장 건전한 편에 속하는 한국은 이 비상시국에 허리띠를 더 졸라매겠다며 재정 준칙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보수언론은 기껏 몇십 만 원 수준의 재난지원금을 줄 때마다 재정이 파탄 난다고 아우성을 질렀다. 서민은 죽어가더라도 정부는 아무 일 하지 말라는 것 일까?(p. 123).

 

쿠팡이 뉴욕 증시로 간 이유가 차등의결권 때문?

2021년 3월 11일, 로켓배송으로 유명한 온라인 종합쇼핑몰 쿠팡이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쿠팡 주식은 공모가인 35달러에서 40.7%가 오른 49.25달러로 마감됐고, 쿠팡의 시가총액은 종가 기준 한화 100조 원을 넘어섰다. 쿠팡의 기존 주주들은 천문학적인 부를 얻었다. 30억 달러를 투자한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클래스A 주식 기준 37%의 지분을 얻었다. 거기에 더해 대략 일곱 배쯤의 투자수익을 얻었다고 알려졌다. 이 무렵 국내 경제지, 보수언론들은 쿠팡이 국내 증시가 아(p. 158)니라 뉴욕 증시에 상장하는 이유가 차동의결권 때문이라며 여기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기업이 중시에 주식을 상장하면 외부로부터 자본을 투자받는 대신 창업자의 지분은 그만큼 줄어든다. 그러다 보면 경영권을 위협받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런데, 미국에는 차등의결권 제도라는 것이 있어 자본투자도 받고 경영권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원래 주식회사의 의결권은 1주 1표 원칙을 따른다. 반면 차등의결권은 창업자 등 특수관계인에게 최대 1,000배까지 많은 의결권을 부여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복수의결권이라고도 부른다. 쿠팡의 경우 창업자 김범석 회장의 지분은 상 장 직후 10.2%에 그쳤지만, 1주에 29표의 차등의결권을 행사 할 수 있는 클래스B 보통주를 포함하면 76.7%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경영권 행사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 다. 국내 경제지와 보수언론들은 차등의결권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 증시를 비판했다. 미국처럼 창업자의 경영권을 보호 해주지 못해서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쿠팡이 미국 증시에 상장한 이유가 차등의결권 때문이라는 주장은 사실 노골적인 선동이라고 봐도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쿠팡은 처음부터 미국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상장 전 쿠팡의 기업 지배구조는 기묘했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주)쿠팡의 지분 100%를 미국 델라웨어의 지주회사 쿠팡LCC가 갖고 있는 구조였다. 그리고 뉴욕 증시에 상장한 회사는 한국(p. 159)기업 (주)쿠팡이 아니라 본사인 미국 기업 쿠팡LCC 였다. 게다가 쿠팡의 창업자 김범수 회장은 본명 Bom Kim인 미국 국적자이며, 이사 또한 전원 미국 국적자이다. 경영진 전원이 미국인인 미국 기업이 미국 증시에 상장하지 한국 증시에 상장할 이유 따위는 애당초 없었다. 더욱이 거액의 투자를 한 손정의 회장 등 외국인 투자자들이 규모도 작은 한국 증시에 상장하자고 그 큰돈을 투자했을 리도 없다. 그러니 차등의결권 여부는 애당초 고려대상이었을 리도 없다. 아마 한국증시 상장은 상상한 적도 없었을 것이다. 왜 쿠팡은 한국에서 사업하면서 본사를 미국에 두었을까? 아마도 한국 내의 규제와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사실은 이것도 매우 중요한 논점이지만 지금의 주제는 아니다. 경제지, 보수언론들이 이 정도 사정을 몰랐을 리 없다. 알면서도 그랬다면 이유는 다른 데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참에 재계에서 줄곧 주장해온 차등의결권 도입을 이슈화하려는 의도였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상 선동이라고 보는 이유다. 그동안 재계는 이른바 오너의 경영권 보장 차원에서 상법을 개정해 차등의결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해왔다. 반면 정치권에서는 여론의 비판과 부작용 탓에 도입에 신중한 편이었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이 2020년 총선 공약 2호로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 창업자에게 10년 기한으로 1주에 10표까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차등의결권을 도입하겠다고 공약하면서 논의의 물꼬가 트였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이런 내용(p. 160)을 담고 있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2020년 12월에 국회에 제출했다(법안에서는 복수의결권으로 표현). 개정안은 소관 상임위원회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바로 통과했지만, 2022년 11월 현재까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계류 중이다. 만약 법안이 통과된다면 논의의 지평이 달라질 것이다. 재벌까지 포함한 일반 기업들이 벤처기업에 비해 차별받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일 것이고, 결국 차등의결권이 전면 허용될 수도 있다. 과연 어떻게 될까?

 

차등의결권의 실제

차등의결권을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경영권 안정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기업이 성장하려면 투자를 받아야 하는데 투자받는 대가로 창업자나 기존 지배주주의 지분이 줄고 경영 권이 위협받게 된다면, 투자 유치에 소극적이게 된다는 것이다. 구글, 페이스북같은 세계적인 혁신 기업들이 과감하게 투자를 받고 성장할 수 있는 이유는 차등의결권을 통해서 경영권을 보장받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또 이런 이유로 미국, 캐나다, 영국, 스웨덴 같은 나라들이 차등의결권을 인정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사실 미국도 차등의결권을 인정하는 기업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차등의결권을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제도적으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p. 161)의견을 내세우며 제도화할 것을 주장한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기업의 주인은 주주라는 '주주가치 자본주의'의 원칙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창업자나 지배주주라고 해도 대개 전체 지분 중에서는 일부만 갖게 마련이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들이 그 일부 지분으로 기업 전체를 좌지우지하며 지배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창업자와 지배주주의 이해관계는 더 많은 주주들과 충돌할 때도 있고, 나아가 기업 자체의 이해관계와 충돌할 수도 있다. 편법을 동원한 '오너' 경영과 경영권 세습이 지배적인 한국 기업 환경에서는 이런 우려가 매우 현실적이다. 삼성이나 대한항공, 금호 등 수많은 사례에서 보듯 이른바 오너로 인해 벌어지는 오너 리스크는 한국 재벌, 대기업의 고질적 병폐이기도 하다. 지금도 이런데 이들이 차등의결권까지 가지고 아무런 견제 없이 마음대로 기업을 지배하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비판은 설득력이 있다(p. 162).

 

사실을 적시해서 비판한다고해서 모두 유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좀 어려운 표현이지만 '위법성 조각사유', 즉 그 행위의 위법성이 배제되는 특별한 사유가 있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인정받는다면 위법이 아니다. 정부나 기업에 대한 언론의 비판 보도는 대부분 여기에 해당한다. 이것도 문제다. 우리같은 보통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실을 적시하여 누군가를 비판할 때 공익 목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치과 임플란트 피해자의 경우도 법원에서 공익 목적이라고 인정하지 않은 경우다. 즉 지금의 법리대로라면 공익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아무리 사실이라도 비판적 표현의 자유 자체가 부정된다. 표현의 자유가 극도로 제한되는 상황이다. 국제적으로 살펴보면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형사범죄로 처벌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 민사소송으로 피해를 배상하게 한다. 그래서 유엔 인권이사회나 인권조약기관인 '자유권규약위원회' '여성차별철폐위원회' 등 여러 국제 인권(p. 208)기구들이 우리 정부에 대해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사회적 약자가 권력을 가진 공인이나 기업 등을 자유롭게 비관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심지어 명예훼손죄 자체를 형사범죄로 다루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형사가 아닌 민사소송으로 해결할 문제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만약 형사상 명예훼손죄가 아예 없으면 허위 사실을 마구 유포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고, 특히 돈 많은 사람은 민사소송 배상금 따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악의적으로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명예훼손죄 자체의 폐지는 거의 논의되지 않았고, 대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서만 그 존폐 여부를 두고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 특히 2017년, 헌법재판소에 제기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한 헌법소원의 결과가 주목을 받았다. 2021년 2월 25일, 마침내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왔다.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규정하고 있는 “형법 제307조는 위헌”이라며 제기된 헌법소원 사건을 헌재는 합헌 5 대 위헌 4 의견으로 기각했다. 재판관 6인 이상이 찬성해야 위헌판결이 나는데 두 명이 모자랐다.

 

명예훼손 비범죄화의 길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폐지되고 민사(p. 209)소송을 통해 해결하는 추세임은 분명하다. 이른바 '비범죄화'다. 그렇다고 해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가벼운 사안은 결코 아니다. 진실한 사실 또한 얼마든지 개인의 인격권에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커밍아웃 하지 않은 동성애자 A에 대해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공공연히 알린다면 A의 입장에서는 돈으로는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게 된다. 성폭력 피해를 밝히지 않은 B의 피해 사실을 공공연히 밝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진실한 사실이라고 하더라 도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인 인격적 존엄의 손상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가벼운 사안이라고 보기 어렵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초래할 수 있는 명백한 피해의 개연성에도 불구하고, 비범죄화가 대세인 이유는 앞에서 본 것처럼 그것이 권력에 대한 비판, 고발을 원천봉쇄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p. 210).

리를 듣기 위해

 

번영신학이 특히 미국에서 발생하고 성장한 데는 유럽과는 다른 미국 역사의 특수성이 있다. 19세기 후반 남북전쟁이 끝난 후 미국은 산업혁명과 도시화를 겪으면서 본격적으로 고도성 장을 하게 된다. 이 시기에 기존의 정통 개신교단들은 제도적으로 잘 정비된 기성교회로 변신했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중산층 중심의 교회로 변화했다. 《성경》을 깊이 있게 공부한 목회자들이 신학적 논리에 기반해서 이성적으로 교회를 이끌어 갔다. 그러나 이성적 신앙은 산업화 와중에 가난해진 빈곤층의 마음에는 별로 위로가 못됐다. 빈곤층은 중산층 중심의 교회 질서 안에서 소외감을 느꼈다. 그에 대한 반발로 신앙에 의한 치유나 방언, 은사를 강조하는 오순절운동 같은 새로운 흐름이 일어나게 됐다. 기존의 중산층 중심, 이성적 논리 중심의 신앙과 달리 뜨거운 가슴과 직접적인 신앙 체험에 호소하는 흐름이 부상한 것이다. 신앙을 가지면 영적 구원은 물론 물질적 부와 건강, 장수를 누릴 수 있다는 새로운 논리가,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성장하게 됐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교는 물론 개신교의 본고장이기도 한 유럽에서 번영신학이 성장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다양한(p. 218) 역사적 이유가 있겠지만, 미국과 가장 큰 차이는 좌파정당과 노동운동의 영향력이 컸다는 점일 것이다. 유럽에서는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전반을 거치며 공산당, 사회민주당, 노동당 같은 노동계층 중심의 좌파정당이 부상하며 하층계급의 이해와 정서를 대변하게 됐다. 20세기 후반에는 복지국가가 성장 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과 열정을 반영하고 흡수하기도 했다. 그래서 유럽은 같은 그리스도교 문화권이라고 해도 미국에 비해서 종교가 정치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약하다. 종교가 세속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라는 면에서 미국은 유럽 보다는 차라리 이슬람사회에 가깝다. 두 사회 모두 무신론자를 이해하지 못한다. 미국에서 번영신학이 크게 성장한 것은 20세기 후반이다. 케네스 코플랜드Kenneth Copeland, 베니 힌 Toufilk Benedictus Hinn, T. D. 제이크스, 로버트 슐러Robert Harold Schuller 등 스타 목회자들이 번영신학의 논리 위에 엄청난 규모의 대형 교회(메가처치), 초대형 교회(기가처치)를 성장시켰다. 특히 자신의 세속적 욕망을 긍정적 언어로 표현하고 자기 계발에 열중하게 만드는 로버트 슐러, 조엘 오스틴Joel Osteen 목사 등의 '긍정의 힘' 설교는 20세기 후반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 논리와 맞물리며 번영신학의 부흥에 힘을 보탰다. 과거 가난한 민중에 대한 세속적 위안의 신학으로 출발했던 번영신학은 오늘날 성공한 기득권을 찬미하는 참회 없는 신학이 됐다. 지금 한국 개신교에서 상당한 세력을 이루고 있는 번영신학(p. 220)의 흐름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개신교는 미국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 성장하면서 번영신학을 수용했다. 가난한 계층이 의지할 좌파정당이 부재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세계 최대 규모를 다투는 한국의 초대형 교회 대부분은 1960~1970년대, 서울로 몰려들던 가난한 민중에게 엄숙한 자기 희생의 신학이 아니라 즉자적인 위안과 세속적 성공의 희망을 제공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하나님 믿으면 부자 되고, 건강해 지고, 영적으로 평안해진다"는 조용기 목사의 삼박자 구원론은 대표적이다. 그는 CBS 방송에서 "헌금 많이 하면 복을 많이 받고, 현금 적게 하면 복을 적게 받습니다"라며 노골적으로 기복신앙을 설교하기도 했다. 가난한 민중의 헌금과 봉사의 바탕 위에 성장한 초대형 교회들은 이제 가난한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기보다는 자신들의 세속적 성공을 스스로 축복하고 옹호하는 기득권 질서의 핵심 세력이 돼 있다(p. 221).

 

능력주의의 확산에 따라 능력 측정의 방법으로서 시험, 학력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은 어느 정도는 세계적인 경향이다. 서구에서도 영미권이 좀 더 심한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한국은 그 정도가 세계 제일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심하다. 대학입시, 공채, 고시, 등단과 같은 '결정적 시험'들을 통과하면 이후에는 실제 성과나 기여와는 무관하게 계속 큰 보상을 받는다. 능력주의의 나라 미국에서는 엘리트들이 시험 통과 후에 지속적으로 높은 성과를 요구받고 검증받는다. 한국의 능력주의가 제대로 된 능력주의도 못되고, 승자독식 시스템이라고 비판받는 이유다. 한국에서는 왜 능력 평가의 수단으로 유독 시험이 중시될까? 사회적 신뢰가 부족하다는 점이 곧잘 꼽힌다. '2020 레가툼 번영지수'에서 한국의 종합점수는 167개국 중 28위. 그러나 사회적 신뢰는 139위로 최하위권이다. 공정한 규칙과 심판(p. 230)에 대한 신뢰가 낮다 보니, 그나마 논란의 여지가 적은 시험에 매달리는 경향이 나타난다. 실제 성과나 경력 등 능력을 측정 할 수 있는 더 좋은 수단들이 있지만, 공정하게 측정한다는 신뢰가 없기 때문에 적용할 수가 없다. 결국 믿을 것은 시험밖에 없다는 것이다(p. 232).

 

하지만 막상 아담 스미스 자신의 생각은 저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그는 개인의 이기심을 인정한 만큼이나 타인에 대한 공감도 중시했다. 그가 자신의 대표작으로 생각한 《도덕감정론》은 '연민, 공감이 인간 본성의 첫 번째'라고 주장한다. 연민과 공감이 없이는 사회라는 공동체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p. 252)이다. 〈국부론〉에서도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만큼이나 누진세, 의무교육, 노동자 보호 등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는 타인의 기쁨에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고, 타인의 슬픔에 순수하게 슬퍼할 수 있는 성향이 인간 본성이라고 보았다. 이 세상이 약육강식의 정글에 불과하다는 말,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를 애도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들으면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아담 스미스는 인간의 이기심과 이타심을 균형 있게 파악했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이기적 개인으로서 행동하지만, 동시에 타인과의 협력이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사회적 존재이기도 하다.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지나칠 정도로 이기적 개인을 강조한다. 너무나 치열한 경쟁 풍조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 승자조차도 행복하지 않고, 늘 불안에 시달린다. 균형이 완전히 무너진 사회다. 그러다 보니 참사 앞에서 희생자를 모욕하는 풍조까지 나오고 있다. 더 무너지기 전에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p. 254).

 

사회학자 전상진은 저서 《음모론의 시대》에서 음모론자들이 비합리적이기보다는 오히려 합리주의의 과잉에 시달린다고 보았다. 이 세상에는 어떤 우연도 있을 수 없고, 모든 중요한 사건의 배후에 누군가의 의도와 개입이 있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음모론자들은 지나치게 합리적인 사람들이라는 진단이다. 이 세계에는 고통이 존재하고, 우리는 거기에 슬퍼하고 분노한다. 예전이라면 신의 뜻에서 그 고통의 원인을 헤아렸겠지(p. 264)만, 오늘날 종교의 힘은 크게 약화됐다. 대신 음모론이 그 고통의 원인을 설명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푸코의 추》는 음모론을 진실로 믿는 이들이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사실을 '창조'해내고 결국 파국에 이르게 되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세상에는 늘 음모가 있다. 합리적으로 비판해야 한다. 음모론으로 세상을 이해하려고 하면 결국 그 음모조차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다(p. 266).

 

미국에서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진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행 이후 아시아계를 향한 혐오가 더욱 늘어나고 있다. 미국 내 증오범죄 신고 사이트인 '스톱AAPI 헤이트(아시아계 혐오를 멈춰라)'에 따르면 2020년 3월 19일부터 2021년 6월 30일까지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범죄가 모두 9,081건 보고됐다. 2020년 4,585건, 2021년 상반기 4,533건으로 1년 사이에 1.5배 이상 증가하는 추세다. 16개 대도시의 경우 네 배 이상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 전 미국대통령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중국 바이러 스, 중국 무술 쿵푸에 빗댄 쿵 플루kung flu 등으로 부르며 노골적으로 중국인에 대한 혐오를 부추겼다. 적지 않은 한국인이 트럼프와 그를 추종하는 극우 백인 못지않게 중국인을 혐 오하지만, 미국 안에서 보기엔 어차피 똑같은 아시아계일 뿐이다. 아시아계를 겨냥한 증오범죄의 피해자 여섯 명 중 한 명 (16.8%)이 한국인이다. 중국계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중국계 는 43.5%, 필리핀계 9.1%, 일본계 8.6%, 베트남계 8.2% 순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 이 중의 약자인 아시아계 여성에게 피해가 집중되고 있다. 중국인 혐오에 앞장서는 한국인은, 본의는 아니겠지만 한국인을 향한 미국 내 증오범죄에 힘을 싣고 있는 셈이다. "나는 중국계가 아니다"라며 범인에게 출신 확인 후 증오범죄를 저질러달라고 호소하는 게 해결책일까? 물론 말도 안 된(p. 314)다. . “너희 때문에 이렇게 됐다"며 중국계를 비난하는 것도 옳지 않다. 그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무슨 책임이 있는가? 사실은 중국의 중국인에게조차 책임을 묻기 어렵다. 정부와 인민을 동일시할 수 없고, 무엇보다 바이러스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조사도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국 정부의 적반하장격 태도에 대한 분노와는 분리해서 생각할 일이다. 좀 더 나아가 보자. 100여 년 전에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 중 하나로 꼽히는 스페인독감의 발원지로는 미국이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미국이 사과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사과를 안 했으니 이제 미국인에 대한 혐오를 시작해야 할까? 아니, 누가 사과를 요구한 적이라도 있는가? 그러니 어느 쪽도 답이 아니다. 증오범죄는 비합 리적이고 치우친 견해, 즉 편견에 기반한다. 문제는 편견이다. 편견으로 핍박받는 사람들이 아니라(p. 315).

 

혐오의 피라미드를 경계하자

편견과 혐오에 기반한 범죄를 증오범죄라고 분류한다. 증오범죄의 뿌리에 편견이 있다. 공정하지 못하고, 자의적으로 선택된 정보에 근거한 편견이 범죄를 일으키게 된다. 특히 증오범 죄는 성별 출신지역•출신국가•종교•학력•민족•인종 등에(p. 318)대한 편견에 좌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정한 사례에 기초해서 전체 집단의 속성에 대해 결론을 내리고, 합리적인 반 론이나 반증이 나타나도 고치려 하지 않는다. 편견은 그것을 부정하는 모든 증거에 저항적이다. 편견과 다른 사실을 접하면 예외로 치부한다. 편견과 관련된 정신영역의 문이 결코 열리지 않는 이른바 잠금강화 장치라는 현상이다. 우리는 대부분은 크든 작든 편견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는 편견에서 자유롭다고 믿는다. 증오범죄의 뿌리는 이렇게 우리 내면에 자리잡고 있다. 왜 우리 인간은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할까? 편견, 혹은 무의식적 편향 자체는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생존에 유리했던 형질로서 우리 내면에 정착했을 것이다. 거친 수렵채집 생활에 서는 최대한의 정보를 모아 자세히 처리하기보다는, 조금은 부정확하더라도 위험신호를 빨리 처리하는 쪽이 생존에 유리했다. 원시뇌에 속하는 변연계에 위치한 편도체는 이런 부정적 자극을 삽시간에 처리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편견이 심했던 덕에 살아남은 조상들의 후예인 셈이다. 하지만 지금은 늑대나 호랑이가, 이웃 부족이 호시탐탐 우리 목숨을 노리는 수렵채집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우리는 낯선 타인과의 협력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 복잡한 거대 문명사회에 살고 있다. 과학자들은 편견이 우리의 본성이라고 해도, 문화적 맥락에 따라서는 약화되거나 작동하지 않는다는(p. 320) 것도 발견했다. 미국에서 흑인을 공개적으로 살해하던 백인우 월주의자 KKK단이 난무하던 시대와, 증오범죄가 있어도 그것을 범죄로 간주하고 누구도 공개적으로 옹호하지 못하는 오늘 날의 차이가 바로 그것을 증명한다. 우리는 조금씩이나마 편견을 극복함으로써 문명을 발전시킨 조상의 후예이기도 하다. 증오범죄의 뿌리에는 보통사람의 일상 속에 흔하게 존재하는 사소한 편견의 감정이 있다. 이것이 자라나서 큰 비극을 넣게 된다. 심리학자 고든 윌라드 올포트Gordon Wilard Allport는 '부정적 발언' → 소수자에 대한 '기피' → 고용, 학교 등에서 의 실제 '차별' → 소수자에 대한 '물리적 공격' → '절멸'(제노 사이드) 등 5단계로 강화되는 척도를 통해 이 과정을 설명한다. 1단계는 부정적 발언의 단계다. "외국인은 범죄율이 높다" "여성은 관리자로서 부적합하다" "성소수자는 문란하다" 같은 발언들이다. "말만 하는 건데 어떠냐" "표현의 자유도 없냐" 이렇게 합리화를 한다. 2단계는 기피다. 쉽게 말해 왕따를 시키는 것이다. 상대를 안 해준 것일 뿐 직접 피해준 건 없다며 합리화를 한다. 근래에 미투 폭로가 이어지자 남성들 중에는 펜스룰을 수행한다며 아예 여성과 자리를 같이하지 않겠다는 경우가 있다. 기업에서 여성은 배제하고 남성끼리만 회식하는 상황 같은 것이다. 이런 걸 거치며 혐오가 강화된다. 3단계는 차별이다. 고용, 승진, 교육기회, 정치적 권리 등 여러 영역에서 차별이 일어난다. 4단계는 단순폭행에서 살인에 이르(p. 321)기까지 물리적 공격을 가하는 증오범죄의 단계다. 마지막 5단계는 절멸 단계인데, KKK단의 흑인에 대한 집단적 공개처형이나 나치의 유태인 학살같은 것이 대표 사례일 것이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일상에서의 사소한 혐오 표현이나 왕따 시키기가 점점 자라서 비극적인 증오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증오범죄가 발생하면 범인을 규탄하고 재발방지를 촉구하는 것 자체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범인이 보통사람과 달리 갑자기 툭 튀어나온 인간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 사회가 그런 혐오 표현을 용인하거나 옹호하는 분위기 속에서, 혐오가 피라미드의 계단을 밟듯 상승하다가 비극적이고 끔찍한 범죄가 일어난다. 우리는 좀 더 섬세해져야 한다(p.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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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297】 내가 사는 세상을 바르게 판단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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