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8(토)
 
  • 전쟁과 죄책 - 노다 마사아키 저자(글) · 서혜영 번역, 또다른우주 ·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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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전쟁에서 벌인 비인간적인 범죄의 내면을 파헤친 책이다. 흥미롭게 봤다. 일본인 저자가 밝힌 이 책을 쓴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전쟁과 죄의 연구를 시작했을 때 나의 문제의식은, 왜 일본인은 침략전쟁을 반성하지 못하는가, 반성하지 않고 무엇을 애도(p. 470)하고 있는가, 일본군의 권위주의는 전후 일본 사회에 어떻게 형태를 바꾸어 이어져 왔는가 등이었다. 잔학한 전쟁 행위와 그 전쟁에 찬동한 일을 반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위에서 '시켜서 한 전쟁'에서 내가 '한 전쟁'으로, 주체를 되찾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가 한 행위를 되돌아보면서 내가 저지른 잔학행위를 상기 해나간다면, 그때 내 감정은 어떠했는지, 왜 이토록 감정이 없어 졌는지, 죽인 사람에 대한 무감정과 자신의 가족, 그에 준하는 집단에 대한 감정은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 등에 대해 스스로의 정신을 분석할 수밖에 없게 된다.” 500 여 페이지에 육박하지만 읽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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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분위기에 물든 의학

그로부터 패전하기까지 3년간, 유아사는 첫 경험을 포함, 모두 일곱 번 생체 해부에 참여했다. 다섯 번은 사단 군의관 수술 연습, 한 번은 위생 초년병 교육, 또 한 번은 타이위안 군의부에서 실시한 군의관 교육을 위한 생체 해부였다. 이 일곱 번의 생체 해부로 열네 명의 중국인이 학살당했다. 북지나방면군의 기밀명령에 따라 사단마다 실시했던 군의관 교육을 위한 수술 연습은 연 2회로 정해져 있었다. 유아사는 첫 번째 생체 해부를 경험한 그해 가을, 두 번째 생체 해부에 참여 했다. 늘 하던 대로 두 명의 중국인이 수술 연습에 사용되었다. 이때 유아사는 처음으로 기관 절개를 해보았다. 한편에서는 치과의사인 N 중위가 턱뼈 골절을 가정한 아래턱 수술을, 비뇨기과 출신의 젊은 안도 소위는 고환 적출 수술을 했다. 그는 고환을 한 손에 들고 "와, 떼냈어"라며 기뻐했다. 유아사도 그렇지만, 군의관들이 꼭 외과의 출신인 것은 아니다. 또한 외과의라 하더라도 전투에서 입은 다양한 외상 처치를 두루 해낼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때 살아있는 사람의 몸을 사용하는 수술 연습은 가장 짧은 기간에 각종 외과수술 방법을 체득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실습 교육이었다(p. 44).

 

여기에는 스스로 깨닫지 못한 채 집단에 준거해서 사는 인간의 정신세계가 잘 나타난다. 자아가 분명하지 않은 사람은 집단으로 있는 한 불안하지 않다. 집단이 혼란에 빠질 때는 자신도 혼란에 빠지지만, 그때뿐이다. 집단은 끊임없이 개개인이 한 행위에 대한 책임을 모호하게 흐리고, 집단이 요구하는 모든 행위에 동의하도록 한다(p. 51).

 

고지마는 '자백하면 죽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버티려고 마음 속으로 안간힘을 쓰면서도, 동시에 '거의 모두가 탄바이했다. 나만 고립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초조해졌다. '또, 시간이 흐름에 따라 결국 거짓이 드러날 것이다. 어디서든 드러날 것이다' 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는 일본을 점령했던 미군 병사가 저지른 강간 사건이 몇 년 지나서야 드러난 일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피해를 입은 여성은 자신을 강간한 미군 병사를 온 세상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찾아낸다. 나 또한 아무리 모르는 척하고 있어도 반드시 어디서부터든 조사를 당하게 될 것이다.' 고지마의 생각은 이렇게 변해갔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것조차도 커다란 변화라 할 수 있(p. 162)다. 중국인 희생자에 대해서는, '그때는 전쟁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으로 자신을 방어하는 데에만 급급해서, 피해자의 처지가 되어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처지가 바뀌어, 고국의 가족이 피점령국 국민이 되어서 미군 병사에게 강간당한 사건을 듣고는, 드디어 상처 입은 자의 원한이란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죄의식과는 거리가 멀었다(p.163).

 

그날 밤 야간열차로 톈진을 향해 떠났습니다. 기차 안에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텐진에 도착한 첫날, 둘째 날, 셋째 날..... 일주일 정도 있었는데 여전히 밤이면 잠들지 못했죠. 일 본에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해서요. 그 정도로 내 마음은 온통 일본에 돌아간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나는 정말이지 '감쪽같이 속였다' 하는 기분이었어요. 평생 죄를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는 등, 그럴듯한 소릴 해댔지만, 귀국했을 때의 내 모습은 중국 쪽이 말하는 제국주의 사상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요?" 재판이 끝나자 이들은 자유의 몸이 되었고, 일단 푸순전범관리소로 돌아갔다. 지도원, 간수, 의사, 간호사, 취사 담당 등 모든 직원이 악수로 맞아주었고, 뜰에서 송별회도 열어주었다. 그 후 소련에서 이송될 때 가지고 있던 개인 물품이 정중하게 각자 에게 되돌려졌고, 새 옷이랑 일용품, 용돈으로 중국 화폐 50원이 나왔다. 당시 중국 노동자의 평균 수입은 한 달에 40원이 었다. 이렇게 해서 일본 선박 고안마루를 타고 17년 만에 귀국한 고지마가 자신의 죄의식을 되돌리는 데는 다시 몇 년이 걸렸다. 그전에 우선, 그는 살기 위해 싸워야만 했다. 사회주의 국가에 억류되었다 돌아온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세뇌당한 사람' '빨갱이'라는 낙인이었다. 취직이 안 되고, 공안 경찰의 정기적인 방문을 받아야 했다. 그를 받아주겠다고(p. 177) 적극적으로 나서는 곳은 증원을 서두르고 있던 자위대뿐이었다. 대학 시절의 교수님과 선배가 애를 써줬지만, 중국 귀환자라는 이유로 아무 데서도 일을 시켜주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론, 자위대에서 제국 군인이 그대로 살아 돌아왔다는 이유로 입대할 것을 권했다. 고지마는 이런 일본의 현실을 마주하고, '과연 중국에서 말한 것이 틀림없구나' 하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건재하셔서 쌀 도매상을 하고 있었으므로 1년간 신 세를 졌다. 그리고는 어렵사리 이토추 관련 회사에 들어가 소련 대상 무역 업무를 맡았다. 전범관리소에서 배운 사상과 일본의 현실을 곰곰이 생각하는 나날이 한동안 계속됐다. 고지마가 개인으로서 전쟁범죄와 맞서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p. 178).

 

고지마는 1998년 6월 14일에 여든 살이 됐다. 그는 전쟁에서 상처를 입은 중국인과의 접촉을 가능한 한 계속하려고 애써 왔다. 유족의 비애를 통해 죽어간 사람들의 통한을 느끼기 위해서다. 슬픈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이야말로 고지마를 감정을 지닌 인간으로 존재하게 해준다. 죽인 자도 슬퍼할 수 있다. 그는 푸순(p. 197) 전범관리소에서 6년의 준비기간을 거쳤고, 자신이 죽인 아이의 얼굴을 고스란히 떠올리는 체험을 했다. 이때, 고지마가 죽인 사람들은 비로소 얼굴과 감정을 갖기 시작했다. 그것은 고지마가 인간다운 감정을 되찾는 일이기도 했다. 전쟁에 직접 관계하지 않은 세대도 고지마 같은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그의 진짜 슬픔, 전쟁에서 저지른 죄를 의식하고 사는 의미를 들어봐야 한다. 그럼으로써 그들도 경직된 역사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지식과 마찬가지로, 아니 지식 이상으로, 감정을 소중히 키우고 풍요롭게 가꾸어야 한다. 노병의 슬퍼하는 마음에 공감함으로써 전후세대도 감정을 풍부하게 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p. 198).

 

도미나가답다. 사건의 세세한 부분까지 경과를 기술하고 냉정히 자기 분석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자기 분석이 지하 감방에 들어갔던 시점에서 모두 형성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 후 3년 8 개월에 걸친 전범관리소 생활로 더욱 심화했을 것이다. 그에게 전환점이 된 것은, '죽임을 당한 자의 처지에서 보았을 때 나는 어떤 인간인가'를 생각할 수 있게 된 시점이다. "지하 감방에서의 체험이 그때까지 매여 있던 명령이니까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을 변화시켰습니다. 억울하게 죽어야 했던 사람에게는 '명령이었으니까' 하는 말만으로는 통하지 않지요. 그렇다면 우선 실행자로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실행자는 실행자로서 책임이 있다. 그다음에 명령자의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이렇게 실행자로서의 나를 인식하면서 처음으로 자신과 대결할 수 있었습니다." 도미나가의 고백에는 일본 군대라는 하나의 시스템이 어떻게 단순한 청년을 살인 수행의 부품으로 변화시켰는지에 관한 중요한 관점이 제시된다. '전쟁은 인간을 잔혹하게 만든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반화는 사고의 태만에서 비롯된다. 구체적 인 전쟁이 있고, 각각의 군대가 있으며, 그런 구체적인 시스템 속(p. 220)에서 인간은 잔혹해진다. 도미나가는 제국대학을 졸업한 후 징병되자, 다른 고학력자들처럼 당연히 견습 사관을 지원했다. 그리고 야전 소대장(소위)이 되었다. "내 부하인 부사관, 병사들은 모두 역전의 용사들이다. 나만 전투 경험이 없다. 이런 부하를 지휘하려면, 포로 한 명도 못 벤다는 말을 들어서는 안 된다. 소대장으로서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 나는 '인간이기'보다는 '야전 소대장이기'를 선택했다." 소속 집단에 적응하고자 하는 노력, 그리하여 엘리트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마음, 즉 일본형 상승의식이 그를 잔혹성을 느끼지 못하는 살인 기계로 만들었음을 볼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잔혹한 행위를 거부할 수 있을까?(p. 221).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대로 전쟁에 빨려 들어간' 심리의 깊은 곳에는, 소년 시절에 다섯 명의 가족을 묻어야 했던 체험도 관계가 있을 거라고 여겼다. 혼자만 남은 소년에게, 당시 일본의 문화는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을까? 소중한 사람을 잃었어도, 사람과 사람의 유대는 믿을 만한 것이라고 전했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인생은 그대로 순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p. 248)상은 이상일 뿐, 별것 아니다'라고 느끼게 했을 것이다. 나의 이런 말에, 도미나가는 "나 자신의 상실감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라고 부정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도미나가가 겪은 소년 시절의 무력감, 그 무력감을 돌보려 하지 않는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문화가, '그대로 전쟁에 빨려 들어가는 청년'을 키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죄의식을 묻는 것은, 타자의 슬픔을 감싸 안는 문화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평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p. 249).

 

류 반장 앞에 엎드린 쓰치야의 사죄는, 천황제 이데올로기와 군국주의에서 벗어나는 '탈세뇌' 과정의 정점에서 일어났다. 우선 충분한 식사와 휴양이 주어지자, 전범들의 긴장이 풀렸다. 다음으로 천황제 이데올로기와 군국주의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일본 정부가 왜곡하고 은폐해온 사실을 알기 위한 학습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감정이 되돌아오지 않는다. 학습에 이어,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악행을 열거했다고 해도, 그것은 기억의 단순한 재생에 불과하다. 사건으로 정리하고 지적으로 반성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감정을 되돌릴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때의 행위는 당시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죄의식을 느끼지 않게끔(p. 361) 방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 본연의 감정은 아직도 상처 입지 않도록 수많은 변명으로 겹겹이 쌓여있었다. 감정이 통하는 인간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무감각한 채로 체험해 왔던 행위를 돌아보고, 추상 속에서 다시 느끼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도입부에서 류 반장과 같은 감정이 풍부한 사람을 향한 신뢰를 쌓고, 그와의 교류를 통해 군국주의 청년이 되기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회로를 통해, 쓰치야에게는 고통받아온 중국인에게 공감하고, 그렇게까지 잔학했던 자신을 자각하고, 무감각해져 있던 자신을 느낄 능력이 생겼다. 범죄를 저질러놓고도 상처 입지 않는 자는, 느끼고 생각하는 주체가 될 수 없다. 그는 군국주의 이데올로기의 찢어진 틈새로 감정을 토해내고, 마침내 이데올로기의 갑옷을 부쉈다(p. 362).

 

87세의 쓰치야는 젊은 시절처럼 빡빡 깎은 머리로 젊은 세대에게 말 걸기를 멈추지 않는다. "국가에 맹종해서는 안 돼. 전쟁만큼 큰 죄악은 없어. 이것만큼 쓸데없는 것은 없어. 그러니까 반드시 도망쳐야 해. 전쟁에 이겨서 행복해진 나라는 없다. 이겨도 져도, 수십 년 지나고 나면 세상은 완전히 바뀌어버려." 나는 어눌한 도호쿠 사투리로 말하는 쓰치야를 바라보면서, '불타올랐던 야심도 그 불씨가 다 타서 잦아들게 마련이다. 쓰치야에게도 이렇게 따뜻한 노인이 숨어 있다.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히지 않고는, 다른 사람과 경쟁하지 않고는 살기 힘든 사회에서 어떻게 도망치면 좋을지 우리에게 답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p. 368).

 

나는 강한 인간이기 전에 느끼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은 경직돼버린다. 어떤 상황에서 무엇이 일어났는지, 늘 구체적으로 알려고 할 것. 충분히 알고 나서 당사자에게 감정 이입하여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야말로 소중한 것이 아닐까? 아버지 세대가 숨겨왔고 때로는 폭력으로 왜곡시켜온 침략전쟁의 사실에 대해 알려고 하는 것은 음침한 일이다. 그 음침함은 아버지 세대가 보여준 잔학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잔학성을 부인하려 했던 아버지 세대의 자세로부터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이 음침함을 청명하게 벗겨내지 않는 한, 감정의 풍요로움은 되찾을 수 없다. 그리고 감정의 풍요로움이 없는 한, 상처 입은 사람들의 얘기를 들을 능력은 생기지 않는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강제로 연행하여 학대하고 죽인 데 대해서도, '듣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보상하느냐 마느냐, 보상액(p. 440)을 얼마로 하느냐만이 문제가 된다. 피해자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묻고 공감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상처 입은 사람은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의해, 자신의 무력한 체험을 정리하고 존엄을 되찾을 수 있다. 그것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보상금이 화제가 된다면, 피해자는 더욱 모욕당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와타나베는 아버지의 전쟁을 알고, 아버지의 굳은 자세가 자신의 감정의 흐름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을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피해자의 얘기를 들을 힘을 키워갔다. 강함에 연연해하던 그의 마음은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차차 부드러워질 것이다(p. 441).

 

감정을 되찾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풍부한 감정을 회복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상처 입을 줄 아는 정신을 되찾을 수 있을까? 부드러운 감정은 단번에 회복되지 않는다. 나는 우선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 책에서 각 장에 소개한 사람들이 했듯이,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자 하는 노력에서부터 시작된다. 전후 반세기가 지나 늦은 감도 있지만, 지금이라도 전쟁 시기를 산 사람들은 동시대인이 무엇을 했는지, 전후세대는 부모나 조부모가 무엇을 했는지, 물어봐야 한다.

물어봐서 알아갈 때 우리는 다음 단계에 도달한다.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알아야만 죽어간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 생생하게 마음속에 그려보는 것에 의해, 고지마가 10여 년이란 세월이 걸려서야 자신의 정신적 외상을 느낀 것처럼, 굳어 있는 정신에 균열을 만들 수 있다. 살육에 직접 가담한 사람만이 아니라, 전쟁 시기를 산 세대라면 누구나 자신의 감정 마비를 문제로 느끼고 살펴볼 수 있다. 전후세대는 구라하시나 와타나베 등이 지금 시도하고 있듯이, 침략전쟁을 부인했던 전후 사회에서 왜곡될 수밖에 없었던 자아 형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살펴봐야 한다. 알고 서로 이야기 하는, 그리고 느끼는, 이 두 단계를 차례로 거쳐서, 우리는 상처(p. 464) 입을 줄 아는 부드러운 정신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드디어 그 작업이 가능한 시점에 와 있다(p. 465).

 

문고판 후기

일본인, 특히 남성들은 왜 이다지도 권위적이고 경직되어 있고 감정이 빈곤한가. 감정을 억압하고 짓누른 데서 오는 충동의 힘으로 다른 일을 한다. 공부한다, 시합에 이긴다, 시험에 합격한다, 자격을 딴다, 업적을 올린다, 과장•부장•국장으로 승진하기 위해 출퇴근하고, 희미해졌다고는 하나 여전한 '집' '무덤' '불 단 위패'를 향해 죽어간다. 모두 억압이라는 심리적 메커니즘에 의한 폭발의 힘이다. 여성들도 변함없는 인생관 아래에서 경직된 감정에 기대어 살고 있다. 좁고 정돈된 문화이긴 하나, 너무나도 감정이 빈곤하다. 게다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부인 하면서 무사도, 야마토의 혼, 일본의 아름다움을 연호한다.

전쟁과 죄의 연구를 시작했을 때 나의 문제의식은, 왜 일본인은 침략전쟁을 반성하지 못하는가, 반성하지 않고 무엇을 애도(p. 470)하고 있는가, 일본군의 권위주의는 전후 일본 사회에 어떻게 형태를 바꾸어 이어져 왔는가 등이었다. 잔학한 전쟁 행위와 그 전쟁에 찬동한 일을 반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위에서 '시켜서 한 전쟁'에서 내가 '한 전쟁'으로, 주체를 되찾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가 한 행위를 되돌아보면서 내가 저지른 잔학행위를 상기 해나간다면, 그때 내 감정은 어떠했는지, 왜 이토록 감정이 없어 졌는지, 죽인 사람에 대한 무감정과 자신의 가족, 그에 준하는 집단에 대한 감정은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 등에 대해 스스로의 정신을 분석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렇게 전쟁을 반성하고, 주체를 되찾는 노력을 함으로써 비로소 오랜 세월을 요하는 감정 창조의 과정이 시작될 것이다. 그 과정은 자신이 받아온 교육, 천황제 이데올로기, 군국주의, 권위주의를 하나하나 분석하고 벗겨내고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감정을 키워가는 시간이 될 것이다. 내가 만난 군인들은 그 과정 중에 세상을 하직했다. 그들이 전후세대에게, 더 젊은 세대에게 남기고 간 것은, 긴장과 이완의 빈곤한 정신으로 살지 말고 풍부한 감정을 키우기를 바란다는 유언일 것이다(p. 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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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03】 과거사를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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