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반 세대가 온다 - 한국일보 창간기획팀 저자(글), 현암사 · 2023년

인구가 줄고 있다. 이는 결국 대한민국의 소멸을 불러온다. 전쟁으로 나라가 망하는 것이 아니라 인구 감소로 나라가 망하는 비극의 첫 나라가 대한민국이 될 위기다. 청년들이 현실 앞에 좌절하고 절망하는데 어떻게 결혼하고 자녀를 낳을 수 있는가? 강고한 기성세대의 틀 안에서 다음세대는 질식하고 이는 결국 모두의 파국을 불러 올 것이다. 살아서 대한민국의 종말을 볼 줄이야.....

"내 한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굳이 아이를 낳아서 나의 불행을 또 다시 대물림해야 할까요?" 우리가 만나본 절반 세대의 요구는 분명했다.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만 하지 말고, 태어날 아이도, 키우는 어른도 행복한 세상을 먼저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갈수록 쪼그라드는 대한민국 인구 규모에 맞춰 사회 시스템을 하나하나 재구조화하는 작업을 이제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껏 기성세대가 누려온 세상의 틀을 바꿔 나가며 미래 세대가 존속할 세계를 함께 준비하는 일이다. 어느 한 쪽의 일방적 희생과 포기만을 강요해서는 결코 풀리지 못하는 문제일 것이다.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우!" 얼마 전 방영했던 인구 위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미국의 한 대학교수는 2022년 대한민국 합계출산율 숫자(0.78명)를 전해 듣자마자, 머리를 부여잡으며 경악했다. OECD 평균 합계출산율(1.59명)의(p. 10)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국의 암담한 현실이 그에게는 충격과 공포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 현실의 악순환을 끊어버리기 위해 기성세대는 절반 세대의 이야기를 나중이 아니라 지금부터 끊어내지 않고 들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길이다. 이 책이 우리 모두의 미래와 공존을 위한 작은 경청의 시작이 됐으면 한다(p. 11).
건국 이래 처음 등장한 절반 세대
1970년 이 땅엔 100만 6,64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났다(p. 36). 통계 집계 이래 1년 출생아가 100만 명을 넘은 첫 해였다. 이듬해도 100만 명이 넘었다. 그 결과 1970년대 말과 80년대 국민학교는 콩나물 시루였다. 한 반 학생이 70명 넘는 곳이 허다했고, 학교 교실이 부족해 오전 오후반으로 나뉘어 학교를 다녔다. 당시 1970년생이 고3때 치른 1989학년도 학력 고사에는 무려 110만 명(재수생 포함)이 응시했다. 그랬던 출생아가 절반으로 꺾인 해가 바로 2002년이다. 이 해 태어난 아이들은 49만 6,911명. 그 2002년생이 고3이었던 2021학년도 수학능력시험 응시자는 49만 3,434명으로, 수능 사상 최초로 50만 명 아래를 기록했다. 그래서 2002년생은 건국 이래 처음 등장한 '절반 세대'다. 2023년 지금 만으로 스무 살이나 스물 한 살이 되었을 이 절반 세대가 주로 활동하는 대학가에선 이미 학생 부족 현상이 시작됐고, 남학생들이 휴학을 하고 가야 할 군대에선 부대 통폐합 작업이 이어지는 중이다.
왜 하필 2002년이었을까. 인구 전문가들은 1980•90년대 등락을 반복하던 출생아 수가 2000년대 초 급감한 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1997년 외환위기로 대량 실직 사태가 발생하며,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현상이 보편화했다는 것이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IMF 사태가 출산에 영향을 준 것(p. 37)이 가시화된 시점이 바로 2002년"이라고 지적한다. 인구 감 소로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해인 것이다. 지금 한국의 인구 상황은 1970년, 2002년에 이은 세 번째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 2017년(35만 7,771명) 처음 40만 명 아래로 내려온 출생아 수는 속절없이 수직낙하하며, 2022년 24만 9,000명으로 기어이 25만 명 아래로 무너졌다. 2002년의 절반으로 감소하며, 불과 20년 만에 두 번째 절반 세대가 출현한 것이다. 절반 세대의 충격파는 이들의 생애주기를 따라 쭉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이들이 취업하고, 결혼을 고려하고, 가족 계획을 하고, 부동산을 구입하고, 자녀 교육에 돈을 투자하며, 부모를 봉양하고, 은퇴를 결정하게 되는 모든 생애주기에서, 대한민국은 100만이 떠받치던 인프라를 50만에게 부담하도록 해야 하는 '절반 쇼크' 현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쇼크는 이미 현실이 됐다. 2002년생이 대학에 들어간 2021년 지방대에선 대량 미달 사태가 벌어졌다. 최슬기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이들이 군대에 입대하고 직장인이 되는 3~5년 뒤 병력 부족과 구인난 등 사회적 충격이 본격화할 것"이라며 "현 인구로는 기존 사회를 운영할 수 없는 만큼 사회적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진단했다(p. 39). 두 번째 절반 세대(17-22년생)가 몰고 올 '제2의 물결' 또 한 똑같이 반복될 것이다. 그 물결은 보육→초등교육→사교육→대학→군대→취업→결혼·출산으로 이어지며 우리 사회 인프라에 엄청난 충격파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전문가들은 지금이 절반 쇼크에 대비할 마지막 기회인 만큼 절반 세상에 적응할 특단의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조언한다. 조영태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장은 "80만~100만 명씩 태어난 기성세대가 만든 구조•제도• 정책이 작동하는 상황에서 40만 명이 노동시장에 들어오고 결혼을 하게 된다"며 "후속 세대가 활용할 구조가 잘 작동할 수 있도록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p. 40).
혈액은 부족하고 수혈 고령자는 들어가고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한국에서 분명히 오고야 말 필연적 미래가 바로 '피 부족' 사태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인구변동에 따른 사회변화 전망 및 대응체계 연구' 보고서에서 피를 주는 청년의 숫자가 줄고 피를 받는 고령층이 늘면서, 수혈용 혈액 부족이 만성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연 얼마나 부족할 것이며, 언제부터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사태가 시작되는 걸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대한적십자사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입수한 연령별 헌혈•수혈 실적(2010~2022년)(p. 79)과 통계청 인구추계를 기반으로 시뮬레이션을 진행해보았다. 그 결과, 2020년 150만 건 수준이던 헌혈 건수와 수혈 건 수의 격차는 2050년 535만 건까지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처럼 청년층 중심으로 헌혈하는 구조가 이어진다면, 2040년에는 전체 헌혈 건수(162만 건)가 80세 이상의 수혈 건수(171만 건)도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디스토피아적 예측은 인구구조 변화 탓에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시나리오다. 지금 한국에서 헌혈을 주로 하는 연령대는 16~24세다. 신체가 건강하고, 복용하는 약물이 없(p. 80)어 헌혈 제한이 없으며, 특히 학교와 군대에서 주기적으로 집단 헌혈을 하기 때문이다. 적십자사에 따르면 16~24세 헌혈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4~2002년 평균 55%에 달했다. 대신 수혈을 많이 받는 연령대는 건강에 문제가 생기거나 큰 수술을 받는 65세 이상 고령층(2014~2021년 평균 50%)이다. 헌혈·수혈의 이런 연령적 특성을 고려하면, 고령자 인구가 급증하고 1970년생의 절반 이하인 2002년생 이후 절반 세대가 청년층의 주류로 자리잡으면 피 부족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것이 분명하다. 혈액의 특성상 보관 기간 (적혈구제제 35일, 혈소판제제 5일, 혈장제제 1년)도 지켜야 하고, 세계보건기구의 자급자족 원칙에 의해 수입도 쉽지 않다. 헌혈을 주관하는 적십자사도 헌혈의 연령 편중이 가져 올 비관적 미래를 잘 알고 있다. 적십자사는 "주요 선진국에 비해 10대와 20대 헌혈 비율이 높은 상황에서 고령사회(p. 81)에 진입함에 따라 중장년층 헌혈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45~49세 인구의 헌혈 비율은 2010년 1.28%에서 2022년 4.95%로 4배 가까이 늘 기도했다. 그러나 이런 정도로는 인구구조의 변화라는 큰 강물의 흐름을 막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적십자의 헌혈 연령 다변화 정책이 가장 많이 반영된 2022년 실적을 반영해 시뮬레이션을 다시 진행했으나, 헌혈-수혈 최고 격차 시점이 2050년 (최대 3.54배)에서 2053년(최대 3.41배)로 늦춰졌을 뿐, 큰 개선의 여지는 보이지 않았다(p. 82).
절반 세대 여성들이 유독 더 결혼과 출산에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건 왜일까. 우선은 자신의 직업적 커리어가 망가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자녀를 낳지 않겠다고 밝힌 절반 세대 여성 10명 중 8명은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을 걱정(82.2%) 했는데, 이는 90년대생 여성들의 응답(72.7%)보다 높은 것이다. 반면 절반 세대 남성들의 경우, 자녀 출산과 양육으로 자신의 커리어가 단절될 것에 우려를 표한 응답은 40%에 불과해 대조를 이뤘다(p. 97). 아이를 낳아도 제대로 잘 키울 수 있을지, 한국에서 아이를 낳는 게 과연 옳은 선택일지에 대한 불안감도 출산을 주저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이런 우려는 세대• 성별을 막론하고 공유되는 정서였는데, 특히 90년대생 여성들의 민감도가 더 높았다. 이들은 한국 사회가 "아이가 행복하고 안전하기 힘든 사회여서"(94.8%), "한국의 치열한 경쟁과 교육 제도 아래 키우기 싫어서"(90.9%)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미래 전망이 어두워질수록 출산 의향이 강하게 줄어드는 것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세대•남녀 가릴 것 없이 한국에서 삶의 조건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란 응답이 과반을 넘었는데, 출산을 가장 적극적으로 거부한 절반 세대 여성이 가장 크게 비관(66.4%)한 것으로 나왔다. 또한 이들은 출산이 '부담'이라면, 결혼은 '손해'로 인식하는 경향이 컸다. 결혼할 의향이 없는 이유에 대해 모든 그룹에서 '자녀 양육 및 가사노동 증가 부담'을 가장 많이 뽑았다. 특히 절반 세대 여성, 90년대생 여성의 응답이 각각 97.8%, 95.7%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신경아 교수는 "가정 학교에서 차별받지 않고 동등하게 자라온 절반 세대 여성들에게 결혼·출산에 따른 양육은 성취를 가로막는 걸림돌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며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은 보편화했는
(p. 98)데, 남성이 동등하게 가사를 부담하고 아이 돌봄에 나서는 변화는 너무 더딘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일 본 사례를 들어 경고했다.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 합계출산율이 떨어지자 '조용한 혁명'이란 말이 회자된 적이 있어요. 여성들이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 너무 어려운데, 사회가 바꾸지 못하자 변화를 요구하는 대신, 조용히 출산을 보이콧하는 방식으로 대응한 거죠. 한국도 똑같아요. 위기가 심각하다면서, 정부와 기업 모두 제대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어요." 그사이 절반 세대들의 '조용한 혁명'은 이미 시작됐는지 모른다(p. 99).
한국의 2022년 합계출산율은 역대 최저인 0.78을 기록 했다. 이에 국제사회도 한국의 심각한 저출생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프랑스 1.8 대 한국 0.78. 2022년 프랑스와 한국 각각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다. 2022년 출생아 수로 보면, 프랑스에선 72만 3,000명이 태어났고 한국에서는 24만 9,000명이 태어났다. 프랑스 인구(6,800만 명)가 한국(5,163만 명)보다 많다는 점을 감안해도 차이가 크다. 프랑스는 유럽연합(EU) 회원국 27개국 중 합계출산율 1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8개국의 평균인 1.59명(2020년 기준)보다 높다. 프랑스도 한때 저출생 문제로(p. 141) 고민했었다. 1950년 2.93이었던 합계출산율이 1993년 1.65 까지 꺾이자 적극적으로 출생률 부양책을 폈다. 그중에서도 '혼외 출생을 제도적으로 차별하지 않는 정책'을 펼친 것이 가장 큰 효과를 보았다. 시민연대계약(파스•PACS, Pacte civil de solidarite)'을 맺은 동거 커플에게 결혼한 커플과 똑같은 출산 육아 지원을 하는 정책이 대표적이다. 1999년에 도입된 팍스는 '결혼은 싫은데 아이는 갖고 싶은' 남녀 모두에게 유효한 대안이었다. 이러한 정책을 펼친 후 프랑스는 2010 년대 출생률이 2명대까지 올랐다.
아이를 낳아도 인생이 망가지지 않을 것
프랑스에서 2022년 태어난 아이의 63.8%가 혼외 출생아였다. 비혼 출생의 비중은 2002년 45.2%에서 2012년 56.7%로, 2022년 63.8%까지 계속 늘어왔다. 프랑스의 경우에서 확인했듯 '혼외 출생의 제도권 편입'은 출생률을 높이는 빠른 대안이라고 전 세계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그러나 한국에선 거부감이 상당하다. 저출생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면서도 혼외 출생은 비윤리적인 행위로 보는 경향이 큰 탓이다. 건강가정기본법도 혼인이나 혈연으로 연결돼야 이른바 '정상 범주의 가족'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의 혼외 출(p. 142)생 비율은 2021년 기준 2.9%에 불과하다. '0.78'이라는 절박한 숫자 앞에서 다양한 해법, 특히 검증된 해법을 연구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p. 143).
개인의 삶이 행복한 것이 우선
전문가들은 남녀 모두가 불행한 이러한 성차별적 가족 문화를 그대로 둔다면 저출생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고 말한다. 성차별적 가족 문화를 혁파하는 첫 단추는 여성이 경력 단절을 우려하지 않고 회사를 다닐 수 있도록 노동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이 경력단절이 되고 복직하더라도 임시직 등의 일자리로 밀려나는 상황에서는 부부가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기가 어렵다"면서 국가가 남녀 모두 육아휴직을 할 수 있도록 기업들에 인건비 등을 강력하게 지원하되 육아휴직자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눈치를 보게 만드는 기업들은 문 닫게 하겠다는 각오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노동시간 단(p. 159)축, 돌봄 서비스 강화, 교육비 절감 등은 필수적이다. 이러한 정책들을 바탕으로 남녀 모두가 일과 육아를 함께하는 성평등한 가족 문화가 형성된다면 합계출산율도 높아질 것이라는 것이 신 교수의 설명이다. 또한 진미정 서울대 아동가정학과 교수는 "현재 맞벌이 비율이 절반 정도인데, 맞벌이를 전제로 정책설계를 해서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을 더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며 가족 친화적 직장환경을 만들어 근로시간의 자율성과 유연성을 확보해야 남녀 모두 일 가정 양립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갈수록 다양해지는 가족 형태를 고려한 지원책도 필요하다.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보건학 박사)는 젊은이들이 좀 더 쉽게 서로를 만나고 그 안에서 아이를 낳도록 하려면 프랑스나 핀란드, 스웨덴처럼 사실혼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에게 기혼 가족에게 버금가는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배 교수는 "가족주의란 것은 결국은 가부장제를 말한다"면서 "혼인 지상주의 국가가 되어 가고 있다는 건 곧 다른 삶을 선택한 이들에게 불이익을 준다는 것이고 이는 결국 결혼 해체, 가족 해체 혹은 국가 소멸로 가게 된다. 아이를 낳든 안 낳든 개인의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국가의 책무”라고 강조했다(p. 160).
다양한 개인과 가족을 상상하고 받아들이는 사회
홍홍석,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상임위원
최슬기,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이진송, 독립잡지 <계간홀로> 발행인
인구학자인 데이비드 콜먼 옥스퍼드대 교수가 "인구 감소 위기가 지속된다면, 대한민국은 지구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 지 17년이 지났다. 그의 예언대로 대한민국 합계출산율은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위기의식과 절박함이 없는 건 아니었다. 우려와 다양한 논의 속에서 수백조 원을 쏟아 부었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했다(p. 225). 어디부터 잘못됐을까.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홍석철 상임 위원,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이자 인구학자 최슬기, 한림대 사회학과 신경아 교수, 독립잡지 〈계간홀로〉 발행인 이진송 작가가 머리를 맞댔다.
청년에 희망 못 준 사회의 자업자득일까
-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OECD 국가 중에서 또 꼴찌다.
홍석철 상임위원(홍):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환경이 얼마나 취약해졌는지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다. 저출생 위기에 맞선 정부 대응 역시 낙제점에 가깝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최슬기 교수(최): 과거 독일의 통일 직후 동독의 합계출산율이 0.7명대로 떨어진 적이 있다. 국가 시스템이 무너지고 실업자가 급격히 증가하던 '체제 붕괴' 상황이었다. 정상적 사회에서 0.7명대 출산율은 상상하기 어려운 숫자다. 대한민국 시스템 전반이 고장 났다는 증거다.
신경아 교수(신): 그동안은 아이는 낳고 싶은데 현실적 여건 탓(p. 226)에 포기한 '비자발적 선택'이 강했다면, 지금은 비출산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당장 내 삶도 버티기 힘들고 앞으로도 나아질 거란 희망이 희박한 상황에선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거다.
이진송 작가(이): 나라에선 인구 감소가 위기라고 하지만, 여성에게 출산은 '내 문제'로 다가오지 않는다. 아이를 낳으라고 다그치는데, 이 사회가 아이에 친화적인지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카페에 들를 때마다 노키즈존이 있는지부터 체크한다. 아이 키우기 어려운 사회에서 아이가 적게 태어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자업자득이다.
-무수한 원인 중 핵심 몇 가지를 꼽아본다면.
최: 요즘 세대는 불안을 느끼는 정도와 깊이가 이전과 달라졌다는 걸 정부에서 알았으면 좋겠다. 젊은 여성들에겐 미세먼지와 기후위기도 출산을 기피하는 요인이다. 불안을 감당할 수 있는 역량도 과거 세대보다 약해졌다. 양극화가 심해지고 상대적 박탈감이 더욱 커질수록 아이를 낳지 않게 된다. 1997년 IMF 금융위기 여파가 지속된 2000년 대 초, 그리고 '헬조선 각자도생' 담론이 퍼진 2015년 이후(p. 227)에 출생률이 크게 꺾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청년 세대에게 결혼과 출산은 모든 것이 준비된 완벽한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으로 인식되고 있다. 데이팅 프로그램만 보더라도 외국은 카페 서빙 아르바이트를 직업으로 가진 출연진이 등장하지만, 한국에선 고소득 정규직과 전문직들이 나와 집은 있는지, 돈은 얼마나 모았는지 '스펙'부터 따진다. 결혼과 출산의 계급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아닐까.
체제 붕괴 상황에서나 볼 수 있던 합계출산율 대한민국 시스템 전반의 고장을 의미. 이 사회가 아이에 친화적인지 먼저 고민해볼 필요
홍: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결혼과 출산의 기회비용이 빠른 속도로 높아진 데 반해 양육과 돌봄 부담을 덜어주는 정부 투자는 뒤따르지 못 하고 있다. 사회 전반에 공고히 퍼진 가부장 문화, 가족친화 적이지 못한 기업 문화, 입시부터 취업까지 과열된 무한 경쟁, 그리고 아동과 공동체에 대한 사회적 가치가 경제 논리에 밀려 소홀히 다뤄진 점도 원인이다(p. 228).
신: 고정된 성별 역할을 강요하는 현실이 남성과 여성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육아 돌봄이 여성들 몫으로만 굳어지면, 커리어를 포기할 수 없는 여성은 아이를 낳지 않을 수밖에 없다. 최근엔 경력 단절을 경험한 엄마들이 딸의 '비출산'을 지지해주는 '세대 간 동맹'마저 나타나고 있다. 남성들도 불행하긴 마찬가지다. 안정적 일자리가 풍부하지 않은 상황에서 생계 부담을 더 많이 떠안으며 압박을 받고 있다.
이: 2015년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페미니즘 리부트' 사건도 빼놓을 수 없다. 강남역 살인사건이후 2030 여성들은 한국 사회가 엄마와 아내라는 이름으로 여성들을 얼마나 집요하게 착취하고 있는지 각성했다. 거기다 세월호 참사, 노키즈존, 스쿨존 논란 등을 거치면서 아이 안전을 사회가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우려가 커졌다. 출산이 잘하는 일인지 끊임없이 자조하고 검열하게 됐다. 오죽 하면 '아이를 낳지 않는 게 모성'이라는 말까지 나올까.
저출생 정책과 예산은 제대로 집행되고 있을까
-저출생 대응 예산에 수백조 원을 쓰고도 합계출산율은 끌어 올리지 못했다(p. 229).
홍: 16년간 280조 원을 쏟아 부었지만 성과가 없었으니 수치로만 보면 실패가 맞다. 하지만 저출생 예산이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를 파악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전임 정부 때 만들어 놓은 '4차 기본계획'에 따라 편성된 대응 예산이 51조 원인데, 백화점식 정책이 남발됐다는 지적이 많았다. 임신, 출산, 양육, 돌봄, 일-육아 병행 지원 등 실질적인 저출생 예산은 20조 원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최근 5년 동안에는 예산이 크게 늘지 않았다. 그러니 280조 원 전체가 저출생 예산이라고 포장된 것부터가 문제다. 정작 필요한 예산은 오히려 부족했다. 과감한 정 책이 없어서 실패한 게 아니라, 과감한 지원이 없어서 실패 했다.
최: 진짜 필요한 곳을 선별해 제대로 돈을 썼는지 살펴보면 정책에 후한 점수를 주기 힘들다. 육아휴직 지원금과 아동수당이 확대되고 있지만, 점진적으로 개선되다 보니 체감하기 쉽지 않다.
신: 돈을 제대로 쓰려면 성 평등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천명하는 게 우선이다. 육아기 재택•단축근무만 봐도, 대부분 여성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기업들이(p. 230) 여성 채용을 꺼려하지 않겠나. 제도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 정부가 중심을 잡아야 개별 정책도 효과를 낼 수 있다.
이: '아이 몇 명 낳으면 얼마'라는 일회성 현금 지원은 헛발질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아이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는 발상 자체가 온당치 않을 뿐더러, 돈으로 출산을 강요하는 게 폭력처럼 느껴져 반발만 키울 수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인구 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나.
홍: 부처들과 협력해 정책 계획을 수립하고, 평가•보완하는 게 법적 역할이지만, 그동안 위원회가 제대로 역할을 못한 측면이 있다. 정부가 인구 위기를 총력 대응하기 위해, 모든 부처가 참여 하는 범부처협의체인 인구정책기획단을 위원회 내부에 신설했다. 부처별로 산재한 인구 관련 정책 어젠다를 통합하고 새롭게 발굴해 나갈 계획이다. 인구정책평가센터도 설립할 예정이다. 향후 활동을 지켜봐달라(p. 231).
최: 청년들이 느끼는 결혼과 출산의 어려움을 위원회가 얼마나 심각하게 고민해왔는지, 출산 장려에만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전통적 가치관을 강요하는 '올드 스타일' 정책은 오히려 출생률을 떨어뜨릴 뿐이다.
여성은 출산 도구가 아니라는 기본적인 인식부터 갖출 것 비혼 출산, 미혼모, 입양 가정 등 다양한 가정을 지원하는 상상력 필요한 시대
신: 여성을 출산 도구로 인식하는 행태부터 바꿔야 한다. 그를 위해서 정부에선 큰 그림을 그려주는 게 중요하다. 여성을 존중하고 아이가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비전을 제시 해줘야 한다. 사회 돌봄 영역의 공공성이 강화되는 것도 중요하다. 양육을 개별 가족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규정하면 출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바뀔 수 없다. 돌봄은 국가 책임이며, 부모가 원하는 만큼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출산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생길 것이다.
이: 결혼을 전제로 한 출산•양육의 공고한 연결고리를 끊어서 다양한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결혼하지 않고도 가정을 꾸릴(p. 232)수 있고, 출산하지 않고도 양육할 가능성에 대해 우리 사회는 굉장히 폐쇄적이지 않나. 비혼 출산을 선택한 방송인 사유리 씨를 두고 정상 가족을 무너뜨린다고 우려하기도 하지만, 지금은 이혼율이 높아서 정상 가족 테두리에서 자라지 않는 사람도 많다. 미혼모나 입양 가정 등 다양한 가족 구성원들이 차별받지 않고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저출생 극복을 위해 제안하고 싶은 구체적 정책이 있나.
홍: 우리나라는 육아휴직 급여의 소득대체율이 30% 수준에 불과하다 보니, 남성들이 가계 소득 감소를 우려해 육아휴직 사용을 주저하게 된다. 과감하게 지원을 늘려야 청년들 인식을 바꿀 수 있다. 한국에선 고용보험 기금에서만 지급되지만, 소득대체율이 70%에 달하는 유럽은 사회보험기금 등을 신설해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우리도 다양한 재원 확보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최: 한국에서 육아휴직은 공공기관이나 대기업 같은 '좋은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고 있다. 사각지대를 없애고, 짧게라도 육아휴직을 경험할 수 있도록 '아빠 출산 휴가'를 한 달이라도 쓰는 방식을 제안한다(p. 233).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아빠에게 양육의 공동책임자로서 역할을 하도록 하면, 복직 후에도 자연스럽게 남성들의 육아 참여로 연결될 수 있다. 특히 아빠 출산 휴가 때는 100% 통상임금이 지급돼야 한다. 저출생이 국가적 과제라는 데 공감 한다면 국가 재정으로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 육아에 적극 참여하는 북유럽의 '라테 파파'도 남성들의 육아 휴직이 보편화하면서 자리 잡았다
신: 노동시장에서 성별 불평등 격차를 해소하는 데 정부가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최근 통계를 보면 외벌이보다 맞벌이 가정에서 둘째 아이를 출산하는 경우가 많다. 노동시장에서 여성들이 임금과 고용 형태에서 차별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있도록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실패해도 괜찮아", 다르게 사는 것을 받아들이는 사회
- 청년들이 아이 낳고 살 만한 사회가 되려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홍: 한국은 급격한 산업화 속에 생애 초기부터 치열하게 경쟁 하면서 가족, 아동, 공동체 가치를 소홀히 해왔다. 그런 희생(p. 234)을 딛고 경제 선진국이 되었으니, 이제는 잃어버린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공정하고 유연하며 지속가능한 사회경제 구조가 필요한 이유다. 대전환을 위해선 가족, 기업, 정부 등 구성원 전체의 인식 전환과 동참이 필수적이다.
최: 다가올 미래는 아이 한 명 한 명이 모두 소중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개개인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존중하고 이를 키워가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신: 성별•계층 간 불평등이 크고 수직적인 사회일수록 합계출산율이 낮은 편이다. 한국이 대표 사례 아닐까. 성별•계층 격차를 줄이고 구성원들 관계를 수평적으로 바꾸려면 민주적이고 탈권위적인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어떤 부모에게 태어나든 아이의 돌봄과 성장을 지원하는 일 차적 책임은 국가가 감당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제도와 문화 속에서 구현될 때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은 보장될 것이다.
이: 청년 세대의 최우선 가치는 생존이다. 생사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구성원에게서 배제당하지 않고 살(p. 235)아갈 수 있는 의미까지 포함한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정상성'에 대한 압박이 매우 커서 실패나 지연, 다른 선택을 용인하는데 인색하다는 거다. 그렇다 보니 '이성 간 연애-결혼-출산-육아'로 이어지는 하나의 루트만 표준으로 제시된다. 아이를 낳아도 괜찮고, 아이를 낳지 않아도 괜찮은, 어떤 선택을 하든 자신의 삶이 위협받거나 침해당하지 않고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여기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p. 2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