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8(토)
 
  • 소강석 저자(글) 샘터(샘터사) · 2025년 1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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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만에, 정확히 말하면 총 몇 시간만에 이 책을 모두 읽었다. 그정로도 흡입력이 있고 설득력이 있으며 재미있고 막힘이 없다. 소강석 목사의 신간 『영혼을 담은 시 쓰기』 북 콘서트 ‘크리스마스에 詩가 내리면’을 취재 가서 이 책에 대해 저자 소강석 목사와 김종회 교수, 정호승 시인이 대담하는 것을 보며 많은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취재 후 본당 로비 매대에서 팔고 있는 책을 구입해 저자 싸인도 받고 열심히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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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선 재미가 있다. 지루할 틈이 없다.

저자 소강석 목사는 어린 시절 이야기와 시를 쓰게 된 배경 등을 진솔하게 밝히고 있다. 그리고 본인이 오랜 세월 연구해 온 시 작법에 대해 자신만의 이론을 펼치고 있다. 그만큼 이 분야의 대가가 됐다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을 한번 읽는다해서 당장 시를 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목회자라면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뜩 과거 신학생 시절 읽었던 김지찬 교수의 『언어의 직공이 되라』는 책이 떠 올랐다. 목회자는 언어에 능숙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하도 읽은지 오래 되어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검색해 보니 목차가 다음과 같았다.

제1부 서론:루터의 권면

1. 시인과 수사학자가 되라

제2부 소리와 의미

2. 소리에 유의하라

3. 유사 발음 반복에 주의하라

4. 동음 이의어 반복에 유의하라

5. 각운, 두운, 모운에 유의하라

제3부 비유적 언어와 의미

6. 비유적 언어에 유의하라

7. 직유에 유의하라

8. 은유에 유의하라

9. 환유에 유의하라

10. 제유에 유의하라

11. 의인법에 유의하라

12. 상징에 유의하라

13. 알레고리에 유의하라

제4부 수사법과 의미

14. 수사법에 유의하라

15. 아이러니에 주의하라

16. 풍자에 유의하라

17. 과장법에 유의하라

18. 패러디에 유의하라

제5부 결론: 언어는 존재의 집

19. 언어의 직공이 되라

 

이는 소강석 목사가 『영혼을 담은 시 쓰기』에서 제안하는 시 쓰는 방법과 일맥상통하다. 그런면에서 결국 목회자는 언어의 직공이 되어야 하며 그것은 시인이 되라는 말과도 같다. 물론 소강석 목사와 같은 시인이 되지는 못할지라도 설교문 작성과 설교에 시의 요소를 가미한다면 설교는 더욱 풍성해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면에서 이 책은 모든 목회자가 읽어야 한다. 그것도 여러번 읽어야 하고 그때 이 책의 진가를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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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 남길 내용이 많아 포스트 잇이 많이 사용되었다 

시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그 마음의 시선을 은유, 상징, 함축과 은닉의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운율의 언어로 쓰다 보면 시가 된다. 그래서 시를 쓰다 보면 자연을 가까이하게 되고 인간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p. 9) 내가 시 속으로 들어가 꽃이 되기도 하고 시가 내 안으로 들어와 꽃을 피울 때도 있다. 성경도 당대 최고의 문학적 경지에 오른 예술적 작품성을 지닌 영감의 글이다. 그래서 특히 목회자라면 탁월한 수사학적 웅변가도 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문학적 감성과 독법의 테크닉도 있어야만 한다. 그럴 때 인간을 이해할 수 있고 더 깊 은 지혜와 사유, 감동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혼을 담은 시 쓰기》는 학문적 이론서라기보다는 내가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써 내려간 시의 이력서요, 자소서 같은 책이다. 어떻게 시를 쓰게 되었는지, 시적 환경과 상황, 시의 진보와 심화, 확장의 내력을 살펴볼 수 있다. 특별히 어떻게 시를 쓸 것인가에 대한 실제적인 방법을 소개하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다양한 현대 시인들의 시를 소개하면서 시 이론을 설명하였지만, 저작권 문제로 인하여 부득이하게 제목과 해설만 담게 되었다. 대신 나의 시를 많은 예문으로 소개하였다. 나의 시와 더불어 책에 수록된 시인들의 시를 직접 찾아 읽어 보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p. 10).

 

이처럼 이야기는 사람들을 매혹하는 힘이 있다. 나는 이야기가 끝나면 또 해달라고 졸랐다. 할머니와 어머니, 누나들은 이야기보따리가 떨어지면 거짓말로 이야기를 지어서 해 주곤 했다. 그때 들었던 이야기들 덕분에 나에게는 독특한 상상력과 창의성, 문학성이 길러졌다. 즉,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게 하는 창의적 내러티브의 힘이 생겼다. 나는 목회자로서 설교할 때도 이야기 설교를 한다. 어떤 딱딱한 교리나 이론적인 설교를 해도 이야기로 들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음을 열고 이야기 속에 빠진다. 마치 어린 시절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p. 19).

 

고난의 용광로 속에서 온갖 고생을 다 하며 고학으로 신학을 공부하고, 시골 벽촌에 가서 교회를 개척하고, 다시 서울 가락동에 올라와 맨손, 맨발, 맨땅에서 새에덴교회를 개척했다. 신적 소명의 용광로 속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나는 오히려 문학과 멀어졌다. 그때는 삶이 너무 처절하여 오직 기도, 오직 전도밖에 몰랐다. 젊은 시절, 그 어느 자매와도 손을 잡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거친 사명의 들길을 걸었다. 그 광야에서 오히려 내 가슴에 빛나던 시의 별빛은 흐릿해져 갔다. 그러나 내 삶이 문학이었고, 내 삶이 시였다. 광야를 걷는 삶에 축적되어 있는 문학성이 직접적인 글로 발화가(p. 36) 되고 시로 꽃피지는 않았지만, 푸른 청춘의 나날 자체가 시이고 문학이었다.(p. 37).

 

원시림 속에 있으면 마치 선악과를 따 먹기 전의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오죽하면 내가 <원시림>이라는 시에서 선악의 욕망을 버린 상태라면 원시림 안에서는, 시적 표현이긴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죄가 아니라고 노래하였겠는가. 시를 쓰기 위해서는 절규하고 탄식하며 아우성치는 치열한 약육강식의 경쟁과 증오의 시대 속에서도 마음속에 원시 림을 품고 살아야 한다. 자신만의 원시림 속으로 들어가 삶을 돌아보며 신비로운 원형의 세계와 때 묻지 않은 푸른 적막의 언어를 찾아야 한다(p. 45).

 

시인은 길들여지고 학습되는 부분도 있지만 탄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운명적으로 탄생했는가? 그건 아니다. 우리 모두는 다 시적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시를 쓰건 안 쓰건 인생은 한 폭의 시다. 그러므로 사람으로 태어나 시를 알고 시를 창작하고 경험하며 산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답고 찬란한 행복인가(p. 48).

 

히브리서 11장 1절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했다. 종교적으로는 바라는 것이지만 문학적으로는 그리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이나 그리는 것이 그리움이며, 그리움은 곧 사랑이다. 그러므로 시는 본성적으로 잃어버린 원형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다(p. 67).

 

〈쑥 캐는 소녀〉는 나의 마음 깊은 곳 그리움의 순정이 발화하여 쓴 시다. 나는 진리를 전하고 올곧게 살라고 설교하는 목사이다. 누구보다 성스러운 삶을 살아야 할 뿐만 아니라 지켜야 할 윤리나 도덕의 울타리가 있다. 그러나 내 안의(p. 74) 시심의 날개가 사랑과 그리움을 싣고 시간을 역류하고 공간 을 초월할 때가 있다. 비록 빛바랜 추억의 앨범 같은 것일지라도 그것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소중한 추억과 그리움으로 남아 있을 때 시는 발화하게 된다. 〈쑥 캐 소녀〉는 회색 도시의 경쟁과 분노, 야욕과 망상을 떠나 오직 애틋한 사랑으로만 가득하던 그 눈부셨던 4월의 봄 길을 걷게 한다(p. 75).

 

내가 생각하는 시의 정의

시는 먼저 깊은 시심을 갖고 이미 사랑을 갖고 있어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새롭게 보고, 찾지 못 하는 것을 찾고, 남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며, 감추어진 시적• 창의적 생명 언어를 조합하여 은유적(상징성)이며 함축적이고 아주 낯설게 표현하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시심의 바탕에는 하늘과 땅, 자연과 인간, 그리고 신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한다. 그 사랑의 눈과 마음이 모든 걸 새롭게 보고 느끼게 한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시를 쓸 수 있다. 하나님과 인간, 자연을 향한 사랑이 있을 때 시가 솟아난다. 그러(p. 86)므로 시는 사랑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그렇다고 순수한 문학적 감성만으로 시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시는 인간과 자연과 하나님에 대한 사상과 감정, 영감을 운율이 있는 언어 로 압축하여 표현하는 문학이다. 그런 측면에서 시는 문학적 귀족성을 요구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나도 목회자이기 때문에 시가 고백적이고 설교적인 요소가 이따금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더욱더 시를 연구하고 습작을 지속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들을 써 보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전문 출판사의 문턱을 넘어 출간하게 된 책이 바로 샘터에서 출간한 《꽃씨》라는 시집이다. 샘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전통이 있는 출판사 중의 하나로 그동안 이해인, 법정 등과 같은 작가들의 책을 출간한 곳이다. 그런데 목회자로서는 최초로 나의 시집이 출간되었다. 샘터 역사상 유일하다는 것이다. 출간 이후에도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서 교보문고와 영풍문고에서 베스트셀러 시집으로 선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5~6주 동안 시 분야에서 1위를 기록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 이후로도 계속 시집을 출간하여 《어느 모자의 초상》으로 천상병귀천문학대상을, 《다시, 별 헤는 밤》으로 윤동주문학상을, 《너라는 계절이 내게 왔다》로 황순원문학상을 수상(p. 87)하게 되었다. 나도 나만의 시 세계에 안주했다면 오늘날의 시의 발전을 이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단순히 시를 사랑하는 애호가의 단계를 넘어 예술적 시를 창작하는 진정한 시인이 되고자 한다면, 더욱더 치열한 시 연구와 고도의 습작 훈련, 다독과 다상량을 통해서 시 창작을 해야 한다(p. 88).

 

시를 쓰려면 애절함,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시는 머리로 생각해서 억지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시상이 찾아와야 쓸 수 있다. 이렇게 찾아온 시는 나에게, 혹 누군가에게, 아니면 시대를 향해 서정적•이상적• 예언적 메시지를 줄 수 있다. 그건 시인에게 축복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하늘에서 내리고 받는 것이 많다. 물론 시들이 삶의 순간순간마다 우리에게 찾아오려고 한다. 그런데 우리의 문예적 눈이 닫혀 있고 시심과 상상력이 닫혀 있으니 발견하지 못한다. 지금도 시는 어느 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겐 간절함이 필요하다. 그 간절(p. 91)한 마음으로 먼저 시집을 많이 읽어야 한다(p. 92).

 

나는 두 번의 성대 결절 수술을 받았다. 차가운 수술실에 들어갈 때마다 이대로 내 인생이 끝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에 여러 다양한 애상이 떠오른다. 그리고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병상 침대에서 깨어나 바라보는 세상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나뭇잎 하나, 새싹 하나, 꽃 한 송이가 너무나 사랑스럽고 아름답다. 따스한 햇살과 바람을 느끼고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시를 쓴다는 것은 이처럼 전혀 새로운 눈과 호흡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따스하고 사랑스러운 시선일 것이다(p.95).

 

시인은 태어난다는 말이 있다. 시인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시를 쓰고 싶어도 시인의 마음을 갖지 못하면 시를 쓸 수 없다(p. 103).

 

시의 시작-새롭게 보기

시 창작은 시공간의 제한을 벗어나는 상상력으로부 터 시작한다. 상상력은 시의 문을 여는 열쇠와 같다. 우리는 상상력을 통하여 시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상상은 우리 말로 '그리다'이다. 다시 말하면 상상력은 '그리는 힘'이다. 마음속으로만 그리는 것은 '그리움'이고, 선과 색채로 그리면 '그림'이 되며, 언어로 그리면 '시적 이미지'가 된다. 그래서 영국의 시인 C. D. 루이스는 “시적 이미지는 말로 그린 정열적 그림”이라고 정의했다 여기서 정열적이란 말은 강렬한 그리움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움은 곧 사랑이다. 그러니까 시인은 강렬한 사랑을(p. 108)하는 사람이다. '시'와 '노래'와 '그림'은 상상력으로 발원하여 도달한 그리움의 꽃이며 사랑의 열매이다. 곧 영혼의 열매인 것이다(p. 109).

 

시를 쓰려면 시인의 눈을 가져야 한다. 시인의 상상력을 가져야 한다. 그럴 때 사물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p. 112).

 

시의 기술-낯설게하기

'낯설게하기'는 러시아 문학가 빅토르 시클롭스키가 주장한 문학 기법 중 하나이다. 우리 주위에서 일상적이고 상투적인 사물이나 관념을 낯설게 하여 전혀 새로운 느낌을 주도록 표현하는 것이다. 낯설게하기를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시의 성공과 실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시인이 가져야 할 매우 중요한 시 창작 기법이다. 여기서 낯설게하기라는 말을 어색한 표현이나 아마추어적인 표현을 포장하는 의미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시의 새로움을 넘어서 또 다른 고차원의 시적 기교를 말한다(p. 113).

 

시의 생명-창의성

시는 문득문득 찾아올 때가 있고 길을 가다가 주울 때도 있다. 또 애써 노력하여 쓰는 시도 있다. 그런데 전제 조건이 있다. 어떤 사람에게 시가 찾아오고, 어떤 사람이 길을 갈 때 시를 줍고, 또 어떤 사람이 노력해서 시를 쓸 수 있는가. 바로 창의성이 있는 사람이다. 다른 문학 장르도 마찬가지겠지만, 특별히 시는 창의성이 생명이다. 창의적인 소재, 창의적인 언어의 직공이 되지 못하면 죽은 언어가 된다. 시인은 끊임없이 창의적인 이미지와 언어를 찾아 헤매는 고독한 순례자와 같다. 시인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생각하지 못한 것을 사유하는 창의적 존재이기 때문(p. 118)이다. 그런 의미에서 T. S. 엘리엇은 아마추어 시인은 흉내 내지만 진짜 시인은 훔쳐 온다고 했다. 시의 창의성을 강조한 것이다(p. 119).

 

똑같은 시선, 똑같은 감성, 똑같은 사고를 가지면 누구나 알고 있고 상상할 수 있는 상투적인 시밖에 쓸 수 없다. 그러나 시인이 창의적 눈과 마음, 상상력을 가지게 되면 전혀 새로운 시의 세계를 보여 줄 수 있다. 독자는 그런 시인의 눈을 통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깊고 신비로운 세계와 만나게 된다(p. 121).

 

시의 디자인-이미지화

예술 작품의 창작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 형상화하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서 '무엇을'은 작품의 내용이며, '어떻게'는 작품의 형식이다. 그런데 '무엇을'이란 내용은 '인생' 혹은 '인간 존재' 등이 주안점이 되지만, '어떻게'란 형식은 시인의 모든 작품이 다 새로운 형식의 창작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 작품의 가치 평가는 어떻게 형상화되었느냐 하는 형식적 평가가 중요한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시의 창작은 곧 새로운 이미지의 형상화이다. 그래서 현대 시론에서 "시는 이미지이다'라는 정의는 곧 시의 형식적 정의를 의미한다. 시는 이미지 언어다. 설명이나 서사가 아(p. 128)니다. 그래서 은유와 직유, 비유와 상징의 언어로 표현한다. 은유는 시적 비유의 핵심이다(p. 129).

 

시의 여백-함축과 은닉

시는 함축과 은닉의 여백미가 있어야 한다. 한 편의 시를 통하여 독자에게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하면 안 된다. 오히려 함축과 은닉을 통하여 시적 화자의 마음과 생각을 감추고 독자의 가슴에 또 다른 상상의 문을 열고 감동의 여운을 남겨야 한다. 특히 시를 통하여 설명하고 교훈하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함축과 은닉을 통한 여백미는 시 세계를 광활한 시공간 속으로 확장시킨다(p. 137).

 

시의 묘미-역설과 반어

시 창작의 기술 중에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역설과 반어적 표현이다. 다른 문학 장르는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한다. 그러나 시는 그것을 뛰어넘어 감동의 여진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독자들이 똑같은 시를 읽더라도 매번 새롭게 다가온다(p. 144).

 

시의 형식-운율과 문체

시는 운율이 생명이다. 현대 시의 경향이 아무리 자유시, 해체시를 표방한다고 해도 시는 본질적으로 운율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시의 문체는 운율과 함께 연과 행이라는 기본적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지나치게 시의 형식을 파괴하고 운율을 무시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한 시는 본질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결코 좋은 시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시 창작을 하려면 시의 형식인 운율과 문체를 잊지 않아야 한다(p. 154).

 

시의 진화-모방과 창작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을 모방으로 본다. 따라서 모방 충동이 예술을 창작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이론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 4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 창작은 사람의 모방성에서 시작한다. 사람의 모방 본능은 어린아이 시절부터 본능적으로 있다. 그리고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사람은 가장 모방적인 동물이며 최초의 지식은 모방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방을 통해서 즐거움을 누리는 것 또한 사람의 본능이다." 시 창작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의 좋은 시를 모방해서 써 보면 어느새 자기 자신만의 새로운 색깔을 창조할 수 있다(p. 158).

 

시는 백지상태에서 전혀 새로운 언어로 그 림을 그릴 수도 있으나 기존의 시적 언어와 이미지 속에서 모방을 하여 자신만의 새로운 창작을 할 수도 있다. 처음부터 훌륭한 시를 쓰는 사람은 없다. 처음에는 좋은 시인의 시를 필사해 보면서 시의 느낌을 익히고 점점 자신만의 색깔을 갖추어 가면 된다. 분명한 것은 모방이 흉내와는 다름을 알아야 한다. 창조적 모방을 하다 보면 훔침의 단계에 오른다(p. 161).

 

시의 진실-체험과 해석

시는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쓴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시에는 시적 화자의 삶의 체험과 해석을 통한 진실이 담겨 있어야 한다. 아무리 현란한 수사와 기교, 은유가 화려하게 펼쳐져 있어도 그 안에 시인의 체험을 통한 진실이 느껴지지 않으면 독자는 뒤로 물러난다. 시는 머리로 쓰는 단계, 가슴으로 쓰는 단계, 몸(삶)으로 쓰는 단계가 있다고 말한다. 시는 삶의 현장 속에서 온몸으로 부딪치며 쓰는 것이다. 그것이 슬픔이든, 행복이든, 사랑과 분노든, 자신이 직접 목격하고 체험한 것을 가슴과 머리로 재해석하여 표현한다(p. 162).

 

시의 성격-콜라 같은 시, 물 같은 시

사람들은 콜라를 좋아한다. 그러나 콜라는 계속해서 마실 수 없다. 순간적인 미각의 만족은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진정한 목마름을 해소해 주지 못한다. 시도 마찬가지다. 콜라와 같은 시가 있고, 물과 같은 시가 있다. 물과 같은 시는 순간적인 충격과 감각은 조금 덜할지 모르지만, 독자들의 가슴에 오랫동안 간직되며 진정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p. 170).

 

어떤 현란한 수사나 작위적 강요가 없다. 그저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는 시인의 순수한 마음을 담담히 고백한다. 시는 상대방을 압박하거나 부담감을 주는 설득이나 교훈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의 문을 열어 주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 주는 낮고 다정한 질문이 되 어야 한다(p. 173).

 

시는 드러내지 않지만 그 어떤 것보다 선명하게 보이고, 강요하지 않지만 그 어떤 설득보다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마시고 또 마셔도 질리지 않고 힘이 되는 샘물 같은 시가 된다.

 

내 마음 강물 되어 흐르고 있습니다

멈추라 하여도 흘러야만 합니다

보냄을 아쉬워 않고 돌아옴을 반기지 않고

다시 옴을 그리워하지도 않습니다

멈추지 않고 흐르는 것만이 행복이고 기쁨인 것을

흐르고 또 흐릅니다

미움도 원망도 슬픔도 고통도 고일 길이 없어서

흐르고 흘러가고 있습니다

멈추고 붙잡는 것이 속절없는 것을

흘러야 행복인 줄 알기에 끊임없이 흘러갑니다

- 소강석, <내 마음 강물 되어〉

신학생 시절에 진심으로 존경하는 목사님이 계셨다. 그래(p. 174)서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그분을 자랑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그분에 대해 험담하면 오히려 더 크게 소리를 내며 그 분을 지켜 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분이 그분을 찾아가 이렇게 물었다. "소 목사가 어떤 사람인가요?" 내가 개척한 교회가 건축을 앞두고 있을 때였는데, 우리 교회에 큰 헌금을 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려고 찾아갔던 것이다. 그때 그분이 이렇게 대답한 것이다. "나는 소강석이를 잘 모르요. 솔직히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소." 이 말이 나에게 들리는 순간 나의 가슴은 청천벽력처럼 무너져 내렸다. '나는 그분을 얼마나 존경했는데, 나는 그분을 얼마나 신뢰하고 따랐는데···. 왜 그분은 나를 모른다고 하셨을까? 왜 나를 신뢰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을까?' 이 상처가 너무나 오래가고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님, 왜 그러셨느냐"고 찾아갈까도 싶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 어른에게도 상처가 되고 나에게도 상처가 될까 봐 찾아가지 못했다. 그 상처는 내 마음의 응어리가 되고 가슴에 피가 굳을 정도였다. 시간이 흘러 그분이 천국에 가셨다. 나는 제일 먼저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분의 영정사진 앞에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닦고 닦아도(p. 175)눈물이 계속 흘렀다. "목사님, 왜 그러셨어요? 왜 그때 저를 모른다고 하셨어요? 그때, 지금은 볼품없지만 소강석의 장래성은 내가 확실하게 보장한다고 한마디만 해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왜 저를 모른다고 하셨어요?"

나는 끝까지 빈소를 지켰고 발인 예배까지 참석하였다. 세월이 흘러 어느 날 강가에 서서 흐르는 강물을 보는데 위의 시구절이 떠올랐다. 정말 그렇다. 아무리 미움과 상처가 있더라도, 내 마음이 강물 되어 흘러가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흘려보내지 못하니까 그것이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되는 것이다. 미움도 원망도 슬픔도 고통도 그냥 강물처럼 흘려보내면 되는 것이다. 그것들을 붙잡고 있으면 속절없고 덧없을 뿐 이다. 그리고 어느 날 바닷가에 서서 이 시를 생각하니 선율이 떠올라서 〈내 마음 강물 되어〉라는 노래도 작곡하였다. 이 노래를 몇 번 부르고 나니까 가슴에 응어리가 다 녹아 흘러 버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삶의 진솔한 체험과 고백이 내재된 시는 강물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씻어 주고 위로해 준다(p. 176).

 

시의 혼-시대적 소통과 가교

시인은 하늘의 뜻을 나팔 부는 사명자이다. 시인을 상(商)나라에선 정인 (곧은 사람)이라 했고, 《시경》에서는 축(기도)이라고 했으며, 그리스에서는 시를 신탁이라 했고, 시인은 영매라고 했다. 신의 뜻을 전하는 사자라는 뜻이다. 나는 이것을 시대와 사람, 사람과 역사를 연결하는 고리 라고 표현하고 싶다. 우리나라도 개화기나 일제 강점기의 시를 보면 그 시대의 언어와 혼이 있다. 시인들은 역사의 암흑 속에서 고뇌와 번민의 밤을 보내며 한 줄 한 줄 시대의 혼을 담은 시를 지었다. 그들의 혼이 담긴 시는 시대를 위로하고 상처를 싸매어(p. 177) 주는 문학적 치유 역할을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시인은 시대를 바라보는 혼이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나에게만 보이는 역사적 직관과 통찰력이 생긴다. 그 역사적 통찰력을 기초로 하여, 개인의 사변적 시를 뛰어넘어 시대와 소통하는 역사적 시를 쓸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인의 시는 대중과의 가교 역할을 하게 된다. 시인은 깊은 혜안으로 미래를 통찰하는 예언자이며 선지자와 같다. 그러므로 시인에게는 시대와 역사를 대변하고 이끌어 가는 예언자적 책무가 있다(p.178).

 

시인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윤동주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가 남긴 단 한 권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 과 시》는 지금도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집이다. 특별히 〈서시〉, 〈별 혜는 밤〉, 〈자화상〉과 같은 시들은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는 인간의 보편적 가치와 자연에 대한 서정성을 순결한 영혼으로 노래한 별의 시인으로 빛나고 있다. 물론 일제 암흑기 속에서 정서적 저항을 한 시인 정도로 이해하는 성향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시 세계를 심층 심리적으로 연구해 보면 자연을 노래한 서정성 이면에 감춰진 저항적 시대 예언자로서의 시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 그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며 하고 싶었던 말들은 무엇이었을까, 별 해는 밤에 흙바닥 위에 썼다 지웠던 문장들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어두운 시대에 태어나서 불운하게 죽었던 민족의 대표자요. 고난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p. 194)다. 그래서 너무 애처롭고 무언가 빚을 지고 있다는 마음이 들어서 그가 못다 한 말들을 시로 써 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일본의 릿교대학, 도시샤대학, 후쿠오카 감옥 등을 두루두루 다니며 그의 체취와 숨결을 느끼려 했다. 그리고 몇 번이나 다녀갔던 중국 용정의 명동촌을 다시 방문 하였고 윤동주의 무덤을 가 보았다. 그런데 윤동주의 무덤은 풀 한 포기 나지 않은 채 완전히 벌거숭이가 되어 있었다. 야산에 방치된 윤동주의 무덤을 보고 마음이 너무 측은하고 민망한 마음이 들었다. '아, 그는 죽어서까지 이렇게 외롭고 고 독하고 쓸쓸하게 있어야 한단 말인가.' 그래서 동행한 가이드에게 돈이 얼마나 들어도 좋으니까 당장 뗏장을 구해다가 입혔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용정에는 뗏장이 없다는 것이다. 심양이나 상해까지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뗏장이 구해지면 연락을 주라고 당부해 놓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얼마 후 가이드에게서 심양에서 뗏장을 구했다는 전화가 왔다. 그래서 윤동주 시인의 6촌 동생인 가수 윤형주 선생님과 함께 다시 용정을 방문 하였다. 윤형주 선생님과 동행하면서 책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윤동주 시인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마침내 윤동주 시인의 벌거숭이 무덤 위에 하나둘 푸른 뗏장을(p. 195)입히기 시작했다. 하늘의 구름도 잠시 멈추고 바람도 다가와 윤동주 시인의 푸른 무덤을 내려다보는 듯하였다. 그의 무덤 앞에서 짧은 연시를 바쳤다.

 

님의 무덤을 찾아오지 않고서야

어찌 시인이라 할 수 있으랴

그대처럼 아파하지 않고서야

어찌 시를 쓴다 할 수 있으리오

부끄러움 하나 느끼지 않고 시를 썼던

가짜 시인을 꾸짖어 주십시오

눈물 없이 쓴 껍데기 시를

심판해 주십시오

참회록 없는 이 시대의 시인들을

파면해 주십시오

당신 무덤에 피어오른 동주화를

내 마음의 무덤에 심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 소강석, 〈윤동주 무덤 앞에서 3〉(p. 196).

 

시인은 시대의 어둠을 깨우는 예언자요, 선지자가 되어야 한다. 시대가 아파하면 함께 울고, 길을 잃으면 옳은 길을 제시하는 등대이자 이를 지키는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시대의 눈물을 닦아 주고 다리를 놓는 희망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럴 때, 그의 시는 시대적 혼을 담은 역사적 길잡이로 승화된다(p. 199).

 

시의 종착-땅의 사람, 하늘의 시

시는 머릿속으로 만들어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와야 하는 면이 더 크다. 내가 사라진 자리에 하늘의 언어가 찾아와 시로 발현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의 종착지는 땅의 사람에게 찾아온 하늘의 언어, 하늘의 시라고 말할 수 있다(p. 200).

 

시 창작을 위한 제언

T. S. 엘리엇은 "문학의 위대성은 문학적 기준만으로는 결정되지 않는다. 다만 문학인가 아닌가라는 사실만이 문학적 기준에 의해 결정될 따름이다"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문학적 기준은 표현 기법에 대한 문제다. 다시 말해서 아무리 위대한 문학 정신과 사상을 담고 있다 하더라도 표현 기법 (이미지, 은유, 함축, 은닉, 낯설게하기 등)이 제대로 적용되어 있지 않으면 성숙한 시로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성숙한 시인의 단계에 오르기 위해서는 표현 기법에 대한 많은 고뇌와 습작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시 창작에서 감각적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산문적 설명을 버리는 것(p. 209)에서부터 출발한다. 산문적 해석과 설명을 버리고 또 버려서 대리석같이 단단한 시, 뼈다귀같이 군살이 없는 시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많은 시집을 읽으며 필사해 보는 것이 좋다. 평소에 좋아하던 시인들 위주로 몇 번을 반복해서 읽고 다시 써 보는 것이다. 그러면 점점 시를 쓰는 방법과 형식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무리 그 필사의 대상이 일류 시인이라 해도 나는 또 새로운 관점에서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 그러면 몇십 편을 써 본다. 완성도가 높은 시가 아니어도 좋다. 처음에는 낙서 같은 시여도 좋다. 그러나 포기하지 말고 반복해서 습관처럼 계속해서 시를 써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점점 시의 형식과 단어, 압축된 문장을 익히게 되고 주제의 폭도 넓어진다. 이제는 모방을 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시의 소재가 떠오르고 시를 쓸 수 있는 용기와 마 인드가 생긴다. 같은 시 제목이지만 전혀 다른 시를 창작하게 된다. 생각해 보면, 세상에 어찌 전혀 새로운 것이 있겠는가.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 모든 것은 이미 세상에 다 나왔다. 다만, 이미 기록된 것을 새롭게 모방하여 어떻게 재창조하느냐가 관건이다. 물론 모방을 한다고 해서 표절이 되어서는 안 될(p. 210)것이다. 시집을 최하 3백 권 이상 읽고 시를 쓸 수만 있으면 자신의 이름으로 시집을 내는 게 좋다. 시를 써도 다시 읽고 수정하고 또 수정하고 끝이 없다. 우리 시대 최고의 시인으로 불리는 정호승 시인도 시집을 출간하기 위해 1년이 넘도록 원고를 수정하고 또 수정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시집 5백 권을 읽고 시집 대여섯 권을 내고서야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게 되고, 그렇게 깨달으면 자기 시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문학적 거인을 만나 보는 것이다. 나 또한 이어령 교수, 김종회 교수, 정호승 시인 등을 만나 직접 사사를 받으면서 문학적 전환과 지평을 새롭게 열 수 있었다. 물론 다양한 책을 통해서도 만날 수 있다. 오늘 이 자리가 새로운 시 세계의 문을 여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강의를 마무리하며 소개하고 싶은 시가 있다. 내가 평소에 너무나 애송하는 정호승의 《고래를 위하여》라는 시다.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푸른 바다가 아니지

마음속에 푸른 바다의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p. 211)

청년이 아니지

푸른 바다가 고래를 위하여

푸르다는 걸 아직 모르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모르지

고래도 가끔 수평선 위로 치솟아 올라

별을 바라본다

나도 가끔 내 마음속의 고래를 위하여

밤하늘 별들을 바라본다

정호승, 〈고래를 위하여〉

 

이 시대 최고의 감성 시인이요, 언어의 연금술사인 정호승 시인의 삶을 향한 깊은 통찰력과 서정성이 돋보이는 시다. 고래는 얕은 호수나 시냇물에서 살 수 없다. 아무리 거대한 아마존강이라 할지라도 고래는 강물에서도 살 수 없다. 고래는 푸르고 드넓고 깊은 바다에서만 살 수 있다. 그런데 시인은 그 푸르고 드넓은 바다를 우리 마음으로 비유하고 있다. 따라서 고래가 없으면 바다가 아니듯, 우리 마음의 푸른 바다에 고래 한 마리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가슴이 뛰는 청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그 사람은 늙어(p. 212)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래 한 마리가 푸른 바다를 푸르게 할 뿐만 아니라, 푸른 바다 역시 고래를 위하여 푸르다는 것이다. 이것을 아직도 모르는 사람은 사랑을 모른다는 것이다. 여기서 시 인은 위대한 반전을 한다. 그래서 시인은 하루하루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푸른 바다가 되라고 권면한다. 비록 거센 파도가 몰아치고 해일이 휘몰아치는 거친 바다일지라도, 우리의 마음은 반드시 푸른 바다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 마음의 바다에서 거대한 고래를 만 날 수 있다. 그 고래는 우리의 꿈일 수도 있고, 이상일 수도 있고, 사랑과 자유일 수도 있다. 아니, 우리 안에 꿈틀거리고 있는 위대한 생명일 수도 있다. 생명이 있어야 꿈도 있고 이상도 있고 사랑과 자유도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시인은 또 한 번의 시적 이미지의 상승을 시도한다. 그것은 고래도 가끔 수평선 위로 치솟아 올라 별을 바라 본다는 것이다. 여기서 별의 이미지는 꿈 너머의 꿈, 이상 너머의 이상, 사랑과 자유를 넘어선 그 어떤 것들로 볼 수 있다. 그러니까 고래가 바라보는 별은 우리의 꿈이 꿈 되게 하고 생명이 생명 되게 하는 진정한 삶의 초극적 이상이요, 그 꿈과 생명의 빛이다. 그래서 고래가 가끔 수평선 위로 치솟아 별을 바라보는 것처럼, 우리 모두도 마음속의 고래를 위(p. 213)하여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우리의 가슴이 시리도록 감동을 주는 시인가. 시를 알고 배우고 시인이 된다는 것은 가슴속 푸른 바다에 고래 한 마리 풀고 사는 것과 같다. 수평선 위로 치솟아 올라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일이다. 이 책을 읽는 모든 분들이 시를 읽고 쓰면서 자신의 인생과 이 세상을 푸른 바다로 만드는 한 마리의 고래가 되기를 소망한다(p.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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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18】 목회자 필독서, 소강석목사 신간『영혼을 담은 시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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