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8(토)
 
  • 공허한 십자가 - 히가시노 게이고 저자(글) · 이선희 번역, 자음과모음 · 2025년(개정판)


9788954473163.jpg

    

깊은 내용을 잘 읽히게 쓴 소설이다. 어떤 책에서 소개받고 읽었는데 좋았다. 죄의 문제, 살인의 문제, 유족의 고통 등등. 많은 것들을 다루고 있다. 살인자는 회개하지 않고 사형 당할 수 있다. 이것이 "사람을 죽인 사람의 반성은 어차피 공허한 십자가에 불과한데 말이에요."라는 말로 나온다. 반면 진정으로 반성하는 자는 십자가를 지고 살아간다. 이 역설과 아이러니가 잘 버무려진 수작이다.

 

신문사로고1.jpg

 

 

하지만 그에게 사건은 이미 과거의 일이었습니다. 그는 오직 자신의 운명밖에는 관심이 없었지요.....사형이 집행된 것은 아시나요?(p. 200) "알고 있습니다. 신문사에서 전화가 왔었지요." 사형 판결이 나고 나서 2년쯤 지났을 때였다. 기자가 전화를 걸어와서, 당시 범인의 사형이 집행됐는데 한마디 해달라고 했다. 그는 물론 거절했다. 그것 말고 재판소 등 공적 기관에서 연락이 온 적은 없었다. 신문사의 전화가 없었으면 아직도 몰랐을지 모른다. "히루카와의 사형이 집행된 이후, 뭔가 달라진 게 있나요?" 나카하라는 즉시 대답했다. "아니요. 아무것도.... 무엇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아, 그래?' 하고 생각했을 뿐이지요." "그렇겠지요. 그리고 히루카와도 결국 진정한 의미의 반성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사형 판결은 그를 바꾸지 못했지요." 히라이는 약간 사시인 눈으로 나카하라를 빤히 쳐다보았다. "사형은 무력(無力)합니다."(p. 201).

 

그녀는 여기에서 분노를 그대로 드러냈다. "딸이 살해된 사건에서도 히루카와는 입만 열면 사죄도 하고 반성도 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그 정도로 연기는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히루카와는 교도소에(p. 211)서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교회에도 참석했겠지만, 조금 더 주의 깊게 관찰했다면 어금니를 숨겼을 뿐이라는 사실을 간파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교도소 밖으로 내보내다니, 지방갱생보호위원회 위원의 눈은 그냥 뚫려 있는 구멍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가석방은 결국 교도소가 가득 찼다는 이유만으로 이루어지는 무책임한 행위일 뿐이다. 만약 최초의 사건에서 히루카와를 사형에 처했다면 내 딸은 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내 딸을 죽인 사람은 히루카와지만, 그를 살려서 다시 사회로 돌려보낸 것은 국가다. 즉, 내 딸은 국가에 의해 살해된 것이다. 사람을 죽인 사람은 계획적이든 아니든, 충동적이든 아니든, 또 사람을 죽일 우려가 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그런 사람을 사형에 처하지 않고 유기형을 내리는 일이 적지 않다. 대체 누가 '이 살인범은 교도소에 몇 년만 있으면 참사람이 된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살인자를 공허한 십자가에 묶어두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징역의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것은 재범률이 높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갱생했느냐 안 했느냐를 완벽하게 판단할 방법이 없다면, 갱생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형벌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마무리했다(p. 212). "사람을 죽이면 사형에 처한다-이 판단의 최대 장점은 그 범인은 이제 누구도 죽이지 못한다는 것이다."(p. 213).

 

하나에는 죽을힘을 다해 호소했다. 하지만 사요코의 뜻을 바꿀 수는 없었다. 사요코는 담담하게 말했다(p. 404). "이러지 마세요. 난 모른 척할 수 없어요. 아무리 갓 태어난 아이라고 해도 어엿한 인간이에요. 그 생명을 빼앗고도 아무런 벌도 받지 않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그게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 알기에 사오리 씨는 지금까지 괴로워했어요. 당신 남편도 자신이 저지른 죗값을 치러야 해요." "남편은 자신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알고 있어요. 그 래서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아왔어요. 그 사람이 얼마나 성실하게 사는지는 제가 가장 잘 알아요." "성실하게 사는 건 인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에요. 특별히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죠." 사요코는 의자에서 일어나면서 덧붙였다. "가령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난 사람을 죽인 사람은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생명이란 그만큼 소중한 거니까요. 아무리 반성해도, 아무리 후회해도, 한 번 잃어버린 생명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요." "하지만 이미 20년이 넘었는데....." "그 세월에 어떤 의미가 있죠? 당신도 아이가 있잖아요. 누군가가 그 아이를 죽였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아이를 죽인 사람이 20년간 반성했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나요?" 하나에는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말을 반박할 수 없었다. 사(p. 405)요코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난 당신 남편도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렇게 되진 않겠지요. 지금의 법은 범죄자에게 너무 관대하니까요. 사람을 죽인 사람의 반성은 어차피 공허한 십자가에 불과한데 말이에요. 하지만 아무 의미가 없는 십자가라도, 적어도 감옥 안에서 등에 지고 있어야 돼요. 당신 남편을 그냥 봐주면 모든 살인을 봐줘야 할 여지가 생기게 돼요. 그런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돼요." 그리고 "다음에 다시 올게요. 내 마음은 바뀌지 않으니까 남편과 잘 얘기해보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사요코는 그 자리를 떠났다. 하나에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 채 현관문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p. 406).

 

하나에는 혀로 입술에 침을 묻힌 뒤, 심호흡을 크게 하고 나서 입을 열었다. "이 사람은.....제 남편은 계속 속죄를 했어요!" 그녀는 선언하듯 단호하게 말했다. 다음 순간,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눈물도 닦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남편은 지금까지, 21년 전 사건에 대해 계속 속죄하면서 살아왔어요. 사요코 씨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저도 처음 알았어요. 그와 동시에 오랫동안 계속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렇게 훌륭한 사람이 왜 저 같은 한심한 여자와 결혼했을까 하는 의문이 겨우 풀렸지요. 제 아이의 친아빠는 남편이 아니에요. 제가 못된 남자에게 속아서 가진 아이지요. 하지만 남편은 그 아이를 자기 아이로 받아줬어요. 그것이 남편 나름대로 속죄하는 방법이었던 거죠. 아버지를 보살펴준 것도 마찬가지예요. 아마 옆방에서 사요코 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버지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그래서 은혜를 갚기 위해 그렇게(p. 412) 끔찍한 짓을 저지른 거죠. 만약에 그때...." 눈물 때문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지, 그녀는 침을 삼킨 후 다시 말을 이었다.

"만약에 그때 남편을 만나지 못했다면 전 틀림없이 죽었을 거예요. 아이도 태어나지 못했을 거고요. 그래요, 남편은 분명히 21년 전에 한 생명을 죽였는지 몰라요. 하지만 그 이후에 두 생명을 구했어요. 그리고 의사로서 많은 생명을 구하고 있어요. 남편 덕분에 얼마나 많은 난치병 아이들이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지 아세요? 남편은 지금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작은 생명들을 구하고 있어요. 그래도 남편이 지금까지 속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세요? 교도소에 들어가도 반성하지 않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어요. 그런 사람이 등에 지고 있는 십자가는 아무런 무게도 없을지 몰라요. 하지만 남편이 지금 등에 지고 있는 십자가는 그렇지 않아요. 너무나 무거워서 꼼짝도 할 수 없는, 무겁고 무거운 십자가예요. 나카하라 씨, 아이를 살해당한 유족으로서 대답해보세요. 교도소에서 반성도 하지 않고 아무런 의미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과 제 남편처럼 현실 속에서 다른 사람을 구하면서 사는 것, 무엇이 진정한 속죄라고 생각하세요?" 목소리의 톤이 계속 높아지면서 마지막은 날카로운 비명처(p. 413)럼 들렸다(p. 414).

 

"사요코 씨를 왜.." 그녀는 신음하듯 간신히 물었다. 그러자 노인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그 여자는 죽을 수밖에 없었어. 우리 사위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야. 한마디로 말해서 성인군자지. 그 사람 덕분에 우리 딸은 행복해질 수 있었어. 딸만이 아니야. 나 같은 쓰레기까지 돌봐주고 있지. 지금 그 사람이 없어지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불행해지는지 알아? 20여 년 전, 철없을 때 낳은 아이를 죽인 게 뭐가 대단하다고 이 난리야? 그건 중절 수술이나 마찬가지잖아? 그들이 누구에게 잘못을 저질렀다는 거지? 누구를 슬프게 했다는 거지? 아이의 유족은 누구지? 당신들이 가해자이자 곧 유족이잖아. 그 아이를 알고 있는 사람은 당신들이고, 그 아이를 위해 슬퍼한 사람도 당신들뿐이잖아. 그런데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감옥에 가야 한다고? 가족 과 헤어져서 징역을 살아야 한다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한번 말해봐. 당신이 지금 자수해서 감옥에 가면 뭐가 좋지?(p. 428) 그냥 마음 편하자고 하는 짓이잖아?" 정신없이 쏟아지는 말의 폭풍우에 사오리는 한마디도 대꾸 할 수 없었다. 후미야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생각한 적이 없다. 자수해서 교도소에 가면 뭐가 좋은지도 생각한 적이 없다. 다만 법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자수하려고 한 것뿐이다. 죄와 정면으로 마주하려면 자수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뿐이다. 단, 그것이 자신의 의사인지 사요코의 강요에 의한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녀는 후회했다. 역시 고백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 비밀은 죽을 때까지 가슴속에 묻어두었어야 했다. 그녀는 무릎부터 무너졌다. 그리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안았다. 내가 왜 사요코 씨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되돌릴 수 없는 짓을 저질렀다는 자책감이 머릿속에서 격렬하게 소용돌이쳤다(p. 429).

 

옮긴이의 말

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쫄깃해지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이번엔 사형 제도다!

평범한 샐러리맨인 나카하라. 그는 강도에게 사랑하는 외동딸을 잃는다. 아내인 사요코가 잠시 저녁 찬거리를 사러 나간 사이 딸이 강도에게 처참하게 살해된 것이다. 그 이후, 그의 목표는 오직 범인의 사형뿐! 마침내 범인은 사형을 당하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허탈감과 깨어진 가정뿐이다. 그들 부부는 결국 아픔만 껴안은 채 이별을 선택한다. 딸을 잃은 지 11년 후, 한 형사가 그를 찾아온다. 사요코가 길거리에서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그는 형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때 사요코와 이혼하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이(p. 443)혼하지 않았다면 또 유족이 될 뻔했으니까요."

그런데 사요코의 살인 사건을 접하면서 그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은 지금까지 딸의 사건에서 도망치려고만 했는데, 사요코는 그 사실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며 '사형 폐지론이라는 이름의 폭력'이라는 책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더구나 사요코의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히가시노 게이고. 그는 항상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어떤 작품이든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이게 만들고, 어떤 작품이든 가슴이 쿵쾅거리게 만든다. 또 어떤 작품이든 심장이 덜컹 내려앉게 만들고, 어떤 작품이든 진한 눈물을 쏟게 만든다. 히가시노 게이고. 그는 항상 내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다. 『방황하는 칼날』에서는 미성년자의 범죄에 관해서, 『교통 경찰의 밤』에서는 교통사고법의 문제점에 관해서, 『아내가 사랑한 여자』에서는 인간은 왜 반드시 여자가 아니면 남자여야 하는가, 하는 사회문제에 관해서 고민하게 만든 것이다(p. 444).

이번에도 그는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내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스토리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내용에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함과 동시에, 잇달아 쏟아지는 사회문제에 때로는 고민하고 때로는 눈물을 흘렸다. 그 때문에 다음 내용을 읽기 위해 페이지를 넘기려는 손과, 잠시 고민하고 생각하기 위해 멈추는 손이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유족. 그것도 살인 사건의 유족. 그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범인의 사형뿐이다. 그러나 범인이 사형을 당한다고 해서 처참하게 죽은 가족이 살아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살인 사건의 유족은 무엇으로 위로를 받아야 할까? 이 작품의 제목인 '공허한 십자가'는 원래 사요코가 쓰고 있던 '사형 폐지론이라는 이름의 폭력'이란 원고에 나오는 대목이다. 흔히 죄를 지은 사람은 평생 십자가를 등에 지고 산다고 한다. 그런데 평생 십자가를 등에 지고 사는 사람은 살인자가 아니라, 살인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피해자의 유족이 아닐까?(p. 445).

사형은 무력하다?

사형은 무력하지 않다?

인간이 인간을 심판할 수 있을까?

인간이 인간을 심판할 수 없다면, 사람을 죽인 사람은 무엇으로 심판해야 할까?

속죄는 무엇일까?

꼭 교도소에 들어가야만 속죄한다고 할 수 있을까?

가해자를 사형에 처하면, 가해자는 어떻게 속죄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은 이렇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에 대한 답을 하지 않는다. 그 답은 독자 여러분의 몫이기 때문이리라(p. 446).

2014년 9월 이선희

 

KakaoTalk_20230718_085629599.jpg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북토크319】 죄와 벌 그리고 참회의 역설인 세상살이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