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의 문제-한수희 저자(글) 터틀넥프레스 · 2025년

이 에세이의 저자는 궁상맞은 자신의 삶의 여러 단면을 노출하고 있다. 이런 류의 에세이는 별로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낯설기도 하면서 재밌기도했고, 저자의 또 다른 책을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자신의 별볼일 없어 보이는 삶의 단편들이 때로 이처럼 누군가에는 힘과 용기가 된다.

혀는 좀처럼 낫지 않았고 수면의 질은 최악이었다. 감정 조절도 안 됐다. 외출했다가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괴로워 울면서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 일단 동네 한의원에 갔다. 양방이 모르는 병이라면 한방에라도 의지해봐야 했다. 나이 지긋한 한의사는 혀는 쓰리고 잠도 못 자고 어깨도 아프다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이렇게 물었다(p. 25) "많이 힘든가보네. 뭐가 그렇게 힘들어요?" 놀랍게도 그 말에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당황스러웠다. 나는 남들 앞에서 잘 울지 않는다. 슬픈 영화를 봐도 웬만하면 이를 악물고 참는다. 그런 내가 난생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나는 그에게 고백했다. "다 힘들어요. 일도 힘들고 아이들 키우는 것도 힘들어요. 뭐든 잘해야 하니까 더 힘들어요." 그제야 알았다. 나는 힘들었던 것이다.
나는 힘들었던 것이다. 너무나 오랫동안 기를 쓰고 살아온 것이다. 유치원과 학교에 다닐 때는 단체 생활에 적응하느라, 공부해서 성적을 올리느라, 20대가 되어서는 혼자 서울에서 살아남느라, 30대에는 아이들을 키우고 먹여 살리느라 너무 기를 쓰고 살았다. 심지어 나는 그 모든 일을 다 잘해내고 싶었다. 내가 아니라면 누구도 이 일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내가 없으면 자랄 수 없을 것이고, 남편은 내가 없으면 티셔츠를 거꾸로 입거나 바지 지퍼를 채우지 않고 나갈 것이고, 회사는 내가 없으면 망할 것이라고 믿었다(p. 26). 친구는 내가 없으면 외로워 죽을 것이고, 부모님은 내가 없으면 슬퍼서 못 살 것이고, 출판사는 내가 없으면 문을 닫아야 할 것이라고, 아니 뭐 그건 아니지만 대충 그렇게 믿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차나 비행기를 탈 때마다 내가 사고의 가능성을 걱정하지 않으면 정말로 사고가 날 것 같은 불안과 망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잘해야 했다. 기를 쓰고 잘해야 했다. 걱정마저도 잘해야 했다. 40여 년 동안 그렇게 기를 쓰고 산 결과,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p. 27).
수능 시험 날 늦잠을 잔 아이에게는 과연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늘 뉴스를 보며 혀만 찼을 뿐, 그 아이들이 어떤 어른이 되어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나는 모른다(p. 88). 늦잠을 잔 아이들, 길을 잃은 아이들, 고사장을 착각한 아이들, 그래서 경찰차와 오토바이를 타고 시험장에 도착한 아이들, 닫힌 시험장 문을 붙잡고 울던 아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을지, 그 일이 과연 그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문득 궁금하다. 수능 시험 날 늦잠을 자지 않은, 수능 시험을 꽤 잘 본 나는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는데... 그러고 보면 그런 것과 인생은 별 관계가 없는지도 모른다. 늦잠 자서 수능 시험을 못 본 이영지 씨도 씩씩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잘된 일이다.
수능 시험 날 지각해서 시험을 못 본 내 아이, 공부 못 하는 내 아이는 어떤 인생을 살게 될까? 내가 점쟁이도 아니고 그걸 어찌 알겠는가? 그 애가 겪을 모든 성공과 실패, 모멸감과 절망감과 기쁨과 자랑스러움 같은 것들은 내가 대신 겪어줄 수 없다. 놀이터의 다른 아이들에게 떠밀려서 화나고 부끄럽고 슬픈 얼굴로 달려와 울던 그 작은 아이는 이제 없고, 나도 그 아이의 뒤를 영원히 서성 일 수만은 없다. 그러니 그런 것들에 대해서 지나치게 생각하지 말자. 아이는 나의 걱정이나 불안과는, 나의 예측이나 소망과는 별 관계없는 인생을 살 것이다. 실패와 좌절, 상처와(p. 89) 눈물, 불행과 불운을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없고, 내 자식들에게도 분명 그런 것들은 닥칠 테지만 그게 너무 아프지는 않기를 바란다. 아니 그러한 아픔마저도 끝내 힘으로 바꿔갈 수 있기를 바란다. 막막하고 서글픈 어느 밤, 제 부모를 떠올리기만 해도 그 애들의 마음에 약간의 따뜻함이 깃들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그렇게 든든한 사람이 되는 수밖에 없다. 우리 자신의 인생을 잘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수밖에 없다. 너무나 단순하고 쉬워 보이지만, 또 너무나 어려운 바람이다(p. 90).
나는 춤추는 것만큼이나 위로에도 서툴다. 그러나 이제 내게도 우울증에 걸린 당사자로서의 경험이 생겼다. 할 말이 생긴 거다.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들이 다른 이들에게도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 그랬으면 좋겠다.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게 무엇이었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별게 없었다.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 내게 필요한 사람들이 내 곁에 있어주는 거였다. 내가 어떤 상태인지 이해하지는 못해도 언제든 도와줄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 가끔 내가 이야기하고 싶어할 때 그저 들어주고, "마음이 너무 힘들어"라고 할 때 "정말 힘들겠다"고 대꾸해 주는 정도면 족했다. 걷고 싶다고 하면 한밤중이라도 같(p. 166)이 걸어주고, 맛있는 것을 함께 먹고 좋은 곳에 함께 가 주면 족했다.
내게는 집과 일터에서 매일같이 붙어 있는 남편과 친구가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남편은 힘들 때마다 아무 말 없이 안아주고 어디든 함께해주었다. 인내심이 강하고 말하기보다는 듣는 일을 더 잘하는 친구의 존재 역시 큰 안정감을 주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엄마는 한 건 했다. 내가 우울증이라고 하자 엄마는 "어머, 나도 그랬어. 그 나이 때는 원래 다 그러고 사는 거야"로 시작하는 어마어마한 대서사시를 읊기 시작했다. 내가 어떤지는 전혀 물어보지 않고 자기 얘기만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엄마 앞에서 어찌 해야 좋을지 몰라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제야 엄마는 사태의 심각함을 눈치채고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아아, 엄마. 엄마를 어쩌면 좋지?
그러니 우리 엄마와는 완전히 반대로 하시라. 그래도 잘 모르겠다면 조심스럽게 물어봐주는 것도 괜찮겠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우울증에 걸린 여자에게 남자는 이렇게 묻는다. "그건 어떤 기분이야?" 여자가 설명 하자 남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거 참 힘들겠다." 그는 또(p. 167) 우울한 기분이 들 때면 저 창 너머에 있는 자신을 생각하라고 말해주었다. 이 정도면 친구의 우울증에 대처하는 모범 답안이라 할 만하다.
그 밖에도 오랜만에 연락한 친구가 뜬금없이 "너는 좋은 사람이야"라고 말해주었을 때도 눈물이 울컥 날 정도로 고마웠다.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에, 그 친구야말로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던 모습도 많이 보아온 사람이기에 그 응원의 말이 더 귀하게 느껴졌다. 동네 한의원 선생님에게 힘들다고 토로했을 때 그가 "그건 왜 그렇게 됐을까?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라고 차근차근 물어봐준 것도 좋았다. 같은 병을 앓아본 사람의 이야기는 더 큰 도움이 된다.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던 작가 윌리엄 스타이런은 책 『보이는 어둠』에서 자신처럼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친구와 밤마다 통화하며 서로 죽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썼다. "안전한 해변에 서 있는 사람들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에게 '용기를 내라!'고 요구하는 것은 엄청난 모독이다.(p. 168) 그러나 모독이 될지라도 반복해서 그런 격려를 보여주면, 그리고 그런 격려가 충분히 끈질기고 헌신적이고 열정적이 라면 위험에 빠진 사람은 거의 언제나 구출된다." 결과적으로 상대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것,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지는 못해도 이해해보려 노력하는 것, 그리고 언제든 기꺼이 함께하려는 태도가 가장 큰 도움이 된다. 특별한 걸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곁에 있어주기.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 잘 치료받을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주기. 그거면 충분하다(p. 169).
어떻게 보면 우리는 망한 것이다. 망한 게 맞다. 아들을 명문대에 입학시킬 때 내 시부모님이 꿈꿨을 미래와는 너무나 먼 길로 왔다. 그 귀한 외동아들이 직장도 없이 전세 6천5백만 원짜리 다 허물어져가는 단독주택에서 아이 둘을 데리고 살 때 시부모님은 얼마나 가슴을 쳤을 까? (시어머니는 가슴이 아파서 우리 집에는 못 오겠다고 했고, 우리(p. 241) 엄마는 비가 많이 올 때마다 전화를 걸어 이렇게 물었다. "너희 집 안 떠내려갔니?”) 나는 우리 집안에서 처음으로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 입학한 사람이었으나 집안을 일으키는 데 실패했다. 다니던 회사마다 때려치우던 남편은 결국 영세자영업자가 되었고, 아이들은 공부를 못한다. 심지어 나는 불안장애와 우울증까지 걸렸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된 걸로 치자면 우리는 망한 게 맞다. 그렇게 무서워하던 망함을 이미 겪고 있는 것이다. 그래, 인정하자. 쿨하게 인정하자. 나는 망했다. 망한 인생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아직 살아 있다. 살아서 공과금도 내고 국민연금도 건강보험료도 밀리지 않고 내고 있다. 하루 세끼 맛있는 밥도 먹고 커피도 맥주도 사 마신다. 웃기도 자주 웃고 친구도 예전보다 더 많아졌다. 어디 아픈 데도 없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빚도 없고 저축도 꾸준히 하고 있다. 어 뭐지? 나 분명히 망했는데... 아이들이 공부를 못하게 된 것도 망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어떻게 하겠는가?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우리 애들이 나쁜 애들도 아니고 쓸모없는 애들도 아니(p. 242)다. 공부를 못해도 여전히 사랑스럽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우리 애들은 인간으로서 유한한 잠재력을 갖추고 있으며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에 자주 등장하는 '무한한 잠재력' 같은 말은 쓰지 말자. 인간의 잠재력은 아무리 봐도 유한하다), 마음씨가 착하고, 최소한의 예의와 매너를 지킬 줄 안다. 무엇보다 이 아이들은 마음이 건강하다. 찌들어본 적이 없어서 건강하다. 어린 시절을 자유롭게 뛰놀며 보냈기 때문에 건강하다. 공부를 잘하는 데 있어서는 망했으나 인생이 망한 것은 아니다. 하긴, 인생에 망하고 홍하는 일이 어디 있는가.
성공과 실패가 어디 있는가. 그냥 사는 거지. 그냥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공과 실패의 정의는 다르게 쓰여야 한다. 나는 얼마 전에야 그 말의 뜻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모든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길에 놓인 징검다리들이다. 그걸 밟지 않고 성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거다. 성공이 모든 것의 끝은 아니다. 성공한 뒤에 바로 죽어버릴 게 아니라면. 그렇게 생각하면 실패도 성공도 그저 과정에 지나지(p. 243) 않는다. 과정 중 하나일 뿐이다.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우리가 지나치는 깃발들 중 하나일 뿐이다. 인생은 그냥 가는 길일 뿐이다.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러니 실패하고 망하자. 실패하고 망하는 거, 해보니까 별거 아니네! 실패하고 망해도 계속 살아지네! 하고 통쾌하게 말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 위하여, 진정 용기 있는 자가 되기 위하여 그래 보자. 용기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 달성하는 거니까. 그래서 닌텐도 게임 속 슈퍼 마리오가 하나씩 따는 동전은 사실은 용기인지도 모른다. 주머니 가득 두둑하게 용기를 채워가면서 용암을 건너 괴물을 물리치고 끝내 공주를 구하는 것이다. 그런 것이다(p. 2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