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8(토)
 
  •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 김여환 저자(글), 청림출판 ·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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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호스피스 의사이다. 수많은 죽음을 통해 삶에 대해 배우게 된 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내일이 없는 것처럼 현재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한다’는 것이 큰 울림을 줬다. 현재 이 책은 절판됐지만 찾아서 읽어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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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곳에 와서 편안하게 삶을 끝내는 환자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요즘 유행처럼 번지는 웰다잉 지도자 자격증도 보유하지 않았고, 입관 체험도 해본 적이 없었다. 사전 의료 지시서나 유서 등으로 삶을 미리 정리해둔 사람들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두 가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한 가지는 '나쁜 소식'이다. 그들은 자신이 암에 걸렸고 더 이상의 적극적인 치료가 무의미 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 한 가지는 '긍정적인 죽음관'이다. 죽음은 인생의 실패가 아니라 누구나 거쳐가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죽음관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 보냈거나 죽음에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이다. 자식을 앞세운 사람이나(p. 37) 장애인이 남들보다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마지막이 가까워져서야 죽음에 대해 생각한 다. 긍정적인 죽음관도 나쁜 소식을 안 후에야 가질 수 있다. 나쁜 소식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긍정적인 죽음관도 없는 셈이다. 문제는 가족 사이의 정이 두터운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쁜 소식을 알리는 걸 힘들어한다는 사실이다(p. 38).

 

'나쁜 소식을 알면 빨리 죽는다'는 근거 없는 상식은 환자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끼친다. 가족들은 자신의 병명을 모른 채 고통스럽게 떠나는 환자를 통해 죽음은 힘들고 무서운 것이라 인식하게 되고, 환자는 자신의 마지막을 긍정적으로 마무리할 기회마저 놓 쳐버린다(p. 45).

 

죽음을 외면하는 진짜 이유는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등 뒤로 다가온 나쁜 소식의 정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쁜 소식 그 자체가 불행은 아니다. 나쁜 소식을 불행으로 연결시키지 않기 위해선 떠나는 자에게나 남는 자에게나 슬픔을 견딜 용기가 필요하다. 머릿속이 하 얗게 화하는 것 같은 슬픔이 지나가면 평온이 찾아온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떠날 사람과 함께 죽음의 문턱에 서서,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응어리진 일에 관해 화해하며 서로의 슬픔을 애도하고 위로할 것이다. 그것이 진짜 해피엔딩이다(p. 49).

 

암 환자의 분노에 가장 좋은 대처 방법은 무조건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다. 분노가 사그라져야 삶도 보이고 죽음도 보인다. 그때 비로소 암(p. 75)성 통증도, 삶의 통증도 치유된다. 그래도 그에게 다가온 죽음을 내쫓아줄 수 없으니, 의사로서 나는 늘 미안할 뿐이다. "낫게 해드리지 못해서 미안해요. 그래도 아프지 않게 해드릴 자신은 있어요." "선생님이 미안해할 건 아무것도 없어요. 내 병이 원래 그런걸요. 아프지만 않으면 되죠." 환자는 미안해하는 의사를 도로 위로한다. 그들의 분노는 의료진을 향한 것이 아니라 갑자기 찾아온 죽음을 향한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 찾아오면 육신의 눈이 아니라 마음의 눈이 멀어버리기 때문이다. "미안해요." 그 한마디에 분노의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통찰력이 생기고 얼어붙었던 마음이 녹아내린다. 오늘도 나는 나의 환자들에게 미안하다(p. 76).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정신과 의사 프랭클 박사는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에서 어떤 경우라도 삶의 의미를 잃지 말라고 당부한다. 호스피스가 하는 일도 삶의 의미를 찾아주는 일이다. 사는 것이 서툴러 노숙자가 된 사람, 돌봐줄 피붙이 하나 없는 외로운 사람, 너무 일찍 찾아온 병마 때문에 생을 마음껏 즐기지 못했던 사람.... 그가 누구든 어떤 삶을 살았든, 인생의 마지막은 석양처럼 눈부셔야 한다. 우리가 서로의 어둠에 물감이 될 때 마지막 남은 인생에 황금빛 석양이 비춰진다. 그때 컬러풀 호스피스가 완성될 것이다. 죽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삶의 완성을 위해서, 우리는 서로를 도와야 한다(p. 129).

 

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1964년에 발표한 《죽음의 춤》이라는 책에서 암과 싸우는 어머니의 고통을 차분하게 묘사했다. 마약성 진통제가 제한적으로 사용되던 시대였기 때문에 보부아르의 어머니는 죽음을 앞두고 엄청난 통증과 맞서 싸워야 했다. 보부아르는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 며 "사람이 죽음을 인식하고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그것은 무엇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폭력이다"라고 썼다. 톱니바퀴로 배를 자르는 듯한 통증을 느끼면서 죽어가는 것은 보부아르의 말처럼 무엇으로도 정당(p. 173)화할 수 없는 폭력일 것이다. 나는 호스피스 의사로서 당부하고 싶다. 언젠가 당신에게 그때가 오면 신이 내린 최고의 선물 모르핀을 거절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나는 신이 우리가 아프지 않게 죽어가기를, 그리하여 죽음의 맨얼굴을 응시 하기를 바랐을 거라고 감히 생각한다. 죽음의 맨얼굴은 평화롭다. 다만 통증 때문에 죽음이 어둡고 무서운 것으로 왜곡되었을 뿐이다. 고통 없는 죽음은 결코 폭력적이지 않다(p. 174).

 

과일에 씨가 들어 있듯 우리 안에는 죽음이 내재되어 있다. 죽음은 나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 함께 잉태된다. 그러나 철학적인 죽음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도 의학적인 죽음이 다가오면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의 소용돌이에 맥없이 휘말리고 만다. 흔적조차 없이 소멸될 육신, 흔 자 내던져진 듯한 외로움, 암성 통증의 공포, 돌아갈 수 없는 세월에 대한 향수.... 삶은 힘들고 암과 함께 가는 삶은 더 힘들다. 그러나 진심에서 우러난 말 한마디, 따뜻한 스킨십이 환자의 절망감과 외로움을 달래준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의 외로움을 치유해야 한다. 호스피스 활동은 우리가 자신의 외로움을 견디고 타인의 외로움을 껴안는 방법이다. 우리가 내적 자아를 만날 때, 그리하여 스스로를 더 사랑할 때, 우리의 외로움과 타인의 외로움을 보듬어 안을 수 있다(p. 189).

 

돌이켜보면 참 극성스럽게 살았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선 공부를 잘 해야 한다고 아이들을 다그쳤다. 살다 보면 도움이 되려니 싶어 아이들이 싫어하는 것도 이것저것 배우게 했다. 차 안에서 도시락을 먹여가며(p. 205) 이 학원에서 저 학원으로 끌고 다녔고, 애들이 피자나 햄버거를 먹고 있으면 당장 큰 병에라도 걸릴 것처럼 야단을 치며 현미 채식을 하게 했다. 내일 편하기 위해 오늘을 피곤하게 보내라고 강요했고, 내일 건강하기 위해 오늘 맛있는 음식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어리석은 엄마에게 모든 것의 초점은 내일이었다. 어쩌면 없을지 모르는 내일을 위해 지금 있는 오늘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나는 집 안을 덜 쓸고 덜 닦는 대신 그 시간에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 설거지거리가 쌓여 있어도 영화를 보러 나간다. 아이들에게 성적표에 적힌 숫자에 대해 잔소리하지 않고 공부하는 동기에 대해 묻는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데 시간을 할애하고 일을 줄인다. 호스피스 병동에 근무하면서 나는 내일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내일을 포기하면 뜨거운 오늘이 있다. 나중에 행복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행복한 게 아닐까. 오늘을 즐기는 사람은 마지막이 다가왔을 때 얼마 남지 않은 삶도 즐길 수 있다. 이 순간에 감사하는 것, 그것이 진짜 행복이다(p.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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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47】 호스피스 의사가 전하는 삶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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