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이라는 이별 앞에서 - 정혜신 저자(글), 창비 · 2018년

정혜신이라는 정신과의사의 책을 통해 많은 유익을 얻었다. 저자는 책과 책상에서 벗어나 슬픔과 고통의 현장에서 상담의 역할이 무엇인지 새롭게 경험했다. 그래서 삶을 더 깊이 있게 보고, 더 공감적인 상담과 조언을 하고 있다. 일독을 권한다.

책머리에
누군가의 깊은 속마음을 듣고 난 후엔 꼭 묻는다. "오늘 이야기를 하고 나니 어떤 마음이 들었나요?" 그 질문을 통해 자신이 했던 이야기를 몇발자국 떨어져서 또다른 자기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이 속마음 말하기의 핵심이다. 속마음 털어놓는 일을 1부라고 한다면, 그 이야기를 한 후의 마음에 대해 말하는 것은 2부다. 2부가 없다면 1부에서 생애 최초로 자신의 순정한 마음을 꺼내놓고 이야기를 했더라도 치유 효과는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고통을 치유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내 상처의 내용 자체를 드러내는 데서 비롯하지 않는다. 드러낸 상처에 대 한 내 시선이나 태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치유가 결정(p. 5)된다. 상사에게 심한 질책을 받은 사람이 그날 상사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평소 상사와 관계가 어땠는지, 상사가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등 1부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치열한 전장의 병사처럼 말할 때 나는 모든 체중을 실어 그의 고통에 공감하며 이야기를 듣는다. 내가 공감할수록 그는 더 격정적으로 생생하게 말한다. 그후에 그 이야기를 하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물으면 "내가 모멸감을 얼마나 많이 느꼈는지 알았다"거나 "내가 너무 측은하다"거나 "나는 할 만큼 한 것 같다" 등 등 전투 상황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지휘관의 말을 한다. 마음의 지휘관 기능이 자극되었기 때문이다. 지휘관의 시선이 생기면 그 전투를 어떻게 정리하고 마감할지 결론을 수월하게 내릴 수 있다. 옆에서 이래라저래라 조언을 할 필요도 없다. 상담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삶을 제대로 사는 것(1부)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내가 제대로 살았다는 것을 조망하고 확인하는 행위(2부)다. 병 사로서 성공적으로 전투를 치르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p. 6)은 나의 전투가 훌륭했고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나의 전투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인정, 그 모든 과정에서 나라는 존재가 그 자체로 충분했다는 확인과 인정을 지휘관으로서 인식하는 2부의 행위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거기까지 가야 온전하고 편안한 삶, 죽음에 대한 준비를 마친 삶에 다다를 수 있다.
얼마 전 남편이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쓰러지는 일을 겪었다. 그후 두달여 동안 나는 그와 함께 죽음을 경험했다. 그 시간 동안 내가 더욱 절감한 것이 삶에 있어서 2부 시간의 소중함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급작스럽게 이별을 한 사람들의 남은 삶이 주체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것은 상당 부분 삶에 대한 정리와 확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살아 있을 때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충분히 해주세요"라는 말을 반복해서 한다. 사랑한다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삶이 가슴을 짓누르기 때문이다(p. 7).
나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상담 과정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내가 제일 많이 한 말은 "기도하자"는 것이었다. 생전에 미처 확인하지 못한 것들을 기도를 통해서 아이에게 말해주고 마음을 전하고 나눌 수 있어야 부모들이 나머지 생을 이어갈 수 있어서다. 유가족 엄마들 중에는 눈을 뜨고 있는 거의 모든 시간을 기도로 보내는 이들도 있다. 그 기도의 일부는 아이와 미처 나누지 못했던 것들을 확인하고 다시금 전하고 인정하는 일이 기도하다.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벼락같은 이별을 한 이들의 삶과 한치도 다르지 않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을 벼락처럼 잃고 홀로 남거나 사랑하는 이를 남겨두고 이별의 인사조차 남기지 못한 채 떠나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 둘 중 하나가 우리의 삶이다. 그동안 나는 내 삶의 전투에 매일처럼 참전하는 전투병이었다. 그러나 그의 심정지를 겪은 두달 전부터는 지 휘관의 시선으로 나의 하루를 돌아보고 그 느낌을 매일(p. 8)밤 그와 나눈다. 그 이야기의 결론은 사랑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밤마다 정리하고 작별하고 아침이면 다시 새롭게 만난다. 삶과 죽음이 홀가분하게 동거하는 삶을 사는 중이다. 그 삶은 뜻밖에도 암울하거나 우울하지 않고 사랑이 넘치고 자유롭다. 삶과 죽음이 동거하는 삶을 또렷이 인식하기 시작한 후, 나의 매일은 꽃다발 같은 시간이다(p. 9).
세월호 참사 직후 저희 부부는 안산으로 거처를 옮기고 치유공간 이웃(이후로는 '이웃'으로 표기)이라는 트라우마 치유센터를 만들었습니다. 그곳에서 긴 시간 동안 세월호 유가족들과 속마음을 털어놓고 여러 치유 활동을 했습니다. 그렇게 2년여가 지난 어느날 남편과 저 두 사람 다 몸이 많이 안 좋아져서 종합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검사 며칠 후 병원에서 온 전화를 받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암이 의심되는 징후가 있다더군요. 남편은 간과 다른 한곳에 암이 의심되는데 간에는 직경 5센티미터나 되는 종양 덩어리가 보여서 전이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게는 신장과 유방에 암이 의심(p. 18)된다며 정밀진단이 필요하다고 했고요. 그 전화의 내용을 남편에게 전했더니 남편이 1분쯤 가만히 있다가 제게 물었습니다. "그동안 살면서 여한이 없다고 했지?" 제가 그렇다고 말하니 남편도 "그럼 됐어, 나도 여한이 없어" 하더군요. 그렇게 이야기하고 서로 웃었습니다. 사실 그날 명동성당에서 3시간 정도 세월호 민간 잠수사들과 집단상담을 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잠수사들의 고통에 집중해야 하는 날이었지요. 그래서 '왜 하필 전화가 이 순간에 왔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전화 때문에 마음이 심란해져서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못 할까봐 걱정이 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상담을 다 마치 고서야 알았습니다. 잠수사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제가 한시도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을요. 저희 부부의 건강검진 결과가 저를 심란하게 만들지 않았던 겁니다. 제 죽음을 연상케 하는 일이 생겼는데 그것이 제 일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 조금 의외였습니다(p. 19).
다른 사람들 보기에 우리가 이타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을 때도 우리가 그 일을 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그 일이 끌렸기 때문입니다. 내가, 우리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었던 일이 당시에는 바로 그 일이었기 때문에 한 겁니다. 언제나 그랬어요. 잘할 수 없거나 끌리지 않는 일은 아무리 그럴듯해 보이고 절박해 보여도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개입한 일은 오래 할 수가 없으니까요(p. 21).
세월호 피해자가 아니라도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p. 26)들은 세월호 유가족을 향한 비난과 막말에 자기들도 똑같이 상처받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세월호 유가족을 상처 입힌 말이나 30년 전 아기를 잃은 엄마의 가슴을 찌른 비수는 같습니다. 이제 그만하라는 말이 그것입니다. 다들 이제 그만하라는 말 때문에 피해자인데도 오히려 죄의식을 느끼고 있어요. '그만해라, 그 정도 했으면 됐다'라는 말 은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내 슬픔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극단의 고립감을 부추기는 무서운 말입니다. 슬픔 그 자체보다 더 힘든 것이 슬픔을 슬퍼하지 못 하는 거예요. 충분히 슬퍼하지 못하면 결코 그 슬픔을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처를 가슴 속에 묻어뒀던 많은 분들이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울고 그들을 위로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상처에도 딱지가 앉는 치유를 경험했습니다(p. 27).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벼락같은 이별 앞에 목 놓아 울 수 있어야 나머지 생을 비틀리지 않고 살 수 있어요. 슬픔을 슬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은 그래서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반드시 배워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뒤 슬픔에 대처하는 법입니다.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살면서 한번은 반드시 직면하게 되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이 변하지 않는 삶의 진실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남아 있는 사람에게 그만큼 압도(p. 31)적이고 파괴적인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나의 죽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울고 있는 내 곁에 이제 그만하라고 재촉하거나 비난하는 대신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산 사람은 살아야지, 남은 가족을 생각해야지 같은 어쭙잖은 조언 대신 내 눈물이 마를 때까지, 떠난 사람에 대해 더는 할 이야기가 없을 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을 때까지 내 곁에서 산처럼 묵묵하고 바다처럼 먹먹하게 버텨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울고 싶을 때는 마음껏 울 수 있고 웃고 싶을 땐 마음껏 웃을 수 있도록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가장 빠르고 단단하게 슬픔을 회복하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치유자가 아니라 이렇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치유자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옆에 있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진짜 사회안전망입니다(p. 33).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처는 시간이 간다고 옅어지지 않지만 충분히 슬퍼하지 못한 슬픔은 상처의 통증과 함께 고름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충분히 슬퍼하고 그 슬픔이 충분히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하면, 벼락같은 고통이 다 사라지진 않아도 그 상처가 피눈물이나 꽉 찬 고름 같 은 형태가 아니라 뼈저린 그리움 같은 형태로 남아요. 둘 다 아프지만 큰 차이가 있어요. 고름이나 피눈물 같은 상처는 사람을 뒤틀어서 이후에 맺는 관계를 꼬아놓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뼈저린 그리움은 사람을 뒤틀지 않아요.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는 상처이기 때문에 일상적인 관계를 파괴하지도 않지요(p. 34).
가족을 잃은 고통과 슬픔을 제대로 대면하거나 치유하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문제를 온몸으로 보여준 인물이 박근혜씨입니다. 그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평가와는 별개로 그는 트라우마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부모의 비극적인 사망 후 그는 완전한 고립 상태에서 슬픔을 삼키며 세월 을 보냈습니다. 정치를 시작하기 전 18년간 썼다는 일기를 보면 박근혜씨는 두문불출 집에만 있으면서 혼자 요가에 몰두하며 지낸 것 같습니다. 요가를 하도 열심히 해서 두 손가락으로 물구나무를 설 정도였다고 합니다. 세상과의 관계가 모두 끊긴 채 홀로 지냈던 18년 동안 그는 슬픔과 고통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공감받고 치유받지도 못했(p. 53)습니다. 슬픔이나 그리움, 무력감 등을 통제하기 위해 요가에만 집중했다고 볼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 사람의 감정은 서서히 마비됩니다. 결국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이 단계까지 가면 겉으로는 고통을 이겨낸 듯 초연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그건 극복이나 초월 같은 상태가 아니라 감정이 마비된 병적인 상태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씨가 보인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가족을 잃은 상처가 어떤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 텐데도 그는 세월호 피해자의 슬픔에 조금도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국민들이 결정적으로 분노한 것도 바로 그 지점이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씨는 오랜 세월 감정이 마비된 상태였기 때문에 세월호 피해자들의 고통과 슬픔에 공감할 수 없었을 수 있습니다. 슬픔이 넘쳐나는 경험에서 슬픔을 떼어내고 나면 뭐가 남나요? 감정을 배제했으니 정확한 사실관계만 남는 걸까요? 아닙니다.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살만 떼어가라(p. 54)는 주문이 불가능하듯 슬픔을 유발한 상황에서 슬픔을 소거하면 그 상황을 구성하던 사실의 절반 이상이 사라집니다. 그건 이미 사실이 아닙니다. 상황에 묻어 있는 감정에 공감하지 못한 채 그 현실을 정확하게 감각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현실 감각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접하는 모든 상황에는 사실과 정서가 함께 존재합니다. 감정 기능이 마비되어 정서를 느끼지 못하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고 그러면 소통이 제 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관계는 당연히 꼬이게 됩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다음 단추들도 잘못 끼울 수밖에 없듯 감정을 느끼는 기능이 작동하지 않으면 대인관계든 현실감각이든 그 사람이 내리는 모든 판단이나 해석들이 줄줄이 잘못될 수밖에 없습니다. 슬픔과 고통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고 통제하는 버릇이 가져오는 감정마비는 굉장히 큰 문제를 야기하고 끔찍한 일들을 연쇄적으로 불러옵니다(p. 55).
사고로 가족을 여럿 잃은 분에게 아주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지금도 제 슬픔은 자주 드러내고 표현하고 있지만 사고 후 줄곧 제 평생 다시는 기쁨을 느낄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가족을 잃는 순간 제 삶에서 온전한 기쁨은 다 사라졌어요. 적극적으로 내 기쁨을 찾을 수는 없지만 나로 인해 누군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너무 기뻐요. 그래서 누군가를 위로하는 삶을 살기로 했어요." 가족을 잃은 죄책감 때문에 내 기쁨은 용납할 수 없지만 나로 인해 누군가 위로받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며 살고 싶다는 말을 들으니, 깊은 지하 동굴에 갇힌 사람이 자기 힘으로 길을 찾아 밖으로 나오는 순간을 본 것처럼 울컥했습니다(p. 63).
목숨을 버리는 이유는 각자가 처한 환경과 기질, 심리적 상황에 따라 다 다르지만 대개의 자살자들이 목숨을 끊을 때까지 반복적으로 직면하는 감정은 자기모멸감과 무력감입니다. 죽을 만큼 외롭거나 자기혐오가 심할 때, 절박하게 돈이 필요하거나 통제되지 않는 통증으로 힘들 때 자기모멸감과 무력감은 극대화됩니다. 그럴 때 타인에게 손을 내밀기란 쉽지 않습니다. 한껏 움츠러들고 쭈그러진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은 모멸감과 무력감을 더 증폭시키기 때문입니다. 통장 잔고가 충분한 사람은 누구에게든 당당하게 돈을 빌릴 수 있지만 잔고가(p. 76) 바닥인 사람은 그러지 못하고 망설입니다. 누가 잔고를 확인하자고 하지 않아도 그렇습니다. 자기모멸감과 무력감으로 바닥까지 떨어진 사람이 모멸감과 무력감을 느낄 만한 일을 하기란 어렵습니다. 당당하게 도움을 청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힘들게 말을 꺼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게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누구에게도 도움받지 못하고, 세상 누구도 나를 도울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채 끝을 맞게 됩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은 생을 유지하는 것보다 버리는 쪽이 자기가 지키려 하는 것을 더 잘 지킬 수 있다고 믿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p. 77).
죽음에 대한 생각이 우리 부부의 일상에 미친 영향 가운데 이런 게 있습니다. 우리는 저축을 하지 않습니다.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돈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십여년 전 그간 매달 부어왔던 보험들마저 모두 해지해버렸습니다. 세월호 참사 후 안산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생계를 위해 하던 일들도 다 그만두면서 가입한 실손보험 하나가 우리 부부의 미래를 대비한 유일한 장치입니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경험한 생생한 삶의 현실은 노후나 미래를 대비하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 인지도 모른다는 자각이었거든요. 매 순간 우리 삶에 가(p. 117)장 가까이 붙어 있는 것이 죽음이라는 생각, 들숨과 날숨 사이마다 죽음이 어려 있다는 생각이 우리에게 늘 있으니까요. 그 때문에 돈을 모으는 일은 우리 부부의 삶에서 가 창 불필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내린 나름의 결론은 '지금 여기'만을 삶으로 여기고 살자는 것입니다. 잠시 후에 영영 못 보는 상황이 될지라도 덜 아쉽고 덜 후회스러운 삶을 사는 것 외에 미래를 대비하는 다른 방도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와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만 집중합니다. 많이 웃고 많이 느끼고 많이 나눕니다. 평소에 저는 "나는 한 300년쯤 산 것 같다"는 말을 하는데 그건 아마도 제가 선택한 제 삶의 순간들을 최대치의 밀도로 채웠기 때문일 거라 느낍니다. 두달여 전 어느날, 집에서 함께 이야기하던 저의 연인이자 친구, 반려이자 영원한 배후인 그가 급성심근경색으로 인한 심정지로 쓰러졌습니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날 그 순간 나와 그의 동(p. 118)선이 3분만 어긋났어도 지금 이 시간은 저와 그에게는 없는 시간입니다. 반사적인 CPR과 응급시술, 입원치료를 거쳐 남편은 극적으로 회생했고 그 덕분에 우리의 일상이 다시 펼쳐질 수 있었습니다. 그날부터 지금까지의 두달은 죽음 곁에서 지낸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오고 나니 확실해졌습니다. 남편의 심정지 이후 우리 둘은 삶과 죽음에 대한 명료한 결론 하나를 얻었습니다. 죽음을 위한 대비는 충분히 사랑하고 충분히 사랑받았다는 사실 외에는 없다는 것을요. 그것이 죽음에 대한 유일한 대비책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됐습니다. 이번 일을 거치면서 우리 부부는 거의 동시에 "이제는 진짜 죽을 준비가 된 것 같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죽어도 특별한 회한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별의 위협 속에서 둘이 함께했던 지난 시간들을 샅샅이 훑어보니 사랑하고 사랑받은 시간으로 가득 차 있었음을 확인해서입니다. 그걸 확인하니(p. 119) 이제는 언제 헤어져도 준비가 됐다는 마음이 듭니다. 여한이 없다, 미련이나 아쉬운 것이 남아 있지 않다는 생각이 공포까지 밀어낼 수 있는 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더 정교하게 말하자면 '사랑하고 사랑받았다'가 아니라 '사랑하고 사랑받은 삶을 살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 죽음에 대한 진정한 대비인 것 같습니다. 죽음 앞에서 여유롭게 자신의 삶을 통째로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는 않을 텐데, 우리는 이번 일을 겪으며 그 시간을 기적처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생의 마지막 축복이었습니다(p. 120).
따돌림 피해로 아들을 잃은 엄마에게 주변 사람들이 가해자를 용서하라고 합니다.
Q: 저는 40대 평범한 주부입니다.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으로 중3 아들을 잃은 친구가 있습니다. 친구의 아들을 죽음까지 몰고 간 가해 학생 중 한명은 평소 집에 놀러 오기도 하고 친구가 차려준 밥도 먹고 갈 만큼 아들과 친한 사이였다고 합니다. 아들을 잃고 고통과 절망에 빠진 제 친구에게 주위의 사람들 몇몇이 "네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가해 학생인 아들 친구를 용서해줘라"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그 아이를 용서하면 친구가 조금이라도 더 편 안해질까요? 그게 가능하긴 한 걸까요?
A: 우리는 보통 슬픔,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나쁘고 자제해야만 하는 것, 결국은 나를 상하게 만드는 것이(p. 124)라는 생각을 합니다. 반은 맞지만 반은 틀립니다. 남을 해치는 분노도 있지만 나를 지키는 분노도 있습니다. 갑질을 일삼는 사람의 일상적 분노처럼 권력을 가진 사람이 상대방을 투명인간 취급하며 일방적으로 자기 감정만 분출하는 행위, 그로 인해 상대방의 마음을 심각하게 더럽히고 훼손하는 것이 남을 해치는 분노입니다. 이것은 감정 표현이 아니라 감정 배설이며 심리적 폭력이고 범죄입니다. 절대 하지 않아야 하는 나쁜 일이 맞습니다. 그와 반대로 자기를 지키는 분노는 표출하지 못했을 때 오히려 그 사람 자신이 병이 들거나 망가질 수 있습니다. 자기의 심리적 마지노선을 침범당했을 때나 인격적 모욕을 당했을 때의 분노는 표출하는 것이 건강한 행위입니다. 충분히 표출하도록 주변의 지지를 받을 수 있어야 그 사람의 내면이 훼손되지 않고 지켜집니다. 생때같은 아들을 잃은 엄마가 가해자에게 갖는 분노는 정당합니다. 더할 수 없을 만큼 끝까지 분노하고 증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감정을 바닥까지 다 끄집어낼 수(p. 125)있도록 누군가 전적으로 공감하고 함께 분노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끝까지 분노할 수 있으면 마침내 가해자를 용서하는 일이 더 쉬워집니다. 그러나 그런 정당한 분노를 막으면서 가해자를 용서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이미 심리적 마지노선이 무너진 사람을 다시 짓밟는 일입니다. 슬픔에 잠긴 피해자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충분히 공감해주지도 못한 상태에서 가해자를 용서하는 숙제까지 안겨서는 안 됩니다. 피해자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아들을 잃은 엄마가 당장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마음껏 분노하고 그 마음을 충분히 공감받는 날들이 켜켜이 쌓이면 어느날 가해 학생에 대한 연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려줘야 합니다. 용서는 그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슬픔에 잠겨 있는 사람에게 용서를 말하는 사람은 트라우마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는 사람입니다(p. 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