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들여지지 않는 슬픔에 대하여-칼렙 와일드 저자(글) · 박준형 번역, 살림 · 2018년

미국의 젊은 장의사가 쓴 책이다. 미국은 장례식 때 시신을 단장해 조문객들에게 보여준다. 그러기 위해서는 피를 빼고 그 속에 방부제를 넣어야 한다. 우리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장례법이다. 저자는 수많은 장례를 치루면서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우리에게 외치고 있다.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사후 세계를 알지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만질 수도 없기 때문이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무조건 어둡고 부정적으로 그려버린다. 만약 죽음과 망자를 보고, 만지고, 잡을 능력이 있었다면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지금처럼 강하지 않았을 것이다(p. 18).
몇 년 전에 우리 아버지는 낡은 86년형 포드 F-150의 범퍼에 "목사님이 장례식에서 거짓말하지 않게 살자!"는 스티커를 붙이셨다. 이 스티커는 어느 정도 맞는 말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4,000건의 장례식을 치렀지만, 목사님이 고인을 나쁜 사람이라고 말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대신 고인이 천국에 있다는 추도 연설은 수없이 들었다. 목사님은 관대하고, 친절하고, 애정 넘치는 삶을 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환상적인 설교를 만들어내곤 했다. 언젠가 신을 비롯해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증오했던 어느 고인에 대해서 이렇게 설교하는 것을 들은 적도 있다. "고인은 신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밖을 좋아했어요. 밖을 사랑하는 사람은 신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께서 바깥세상을 창조했으니까요. 이제 고인은 가장 넓은 바깥세상인 천국을 즐기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차 범퍼에 붙여 놓았던 스티커에서처럼 목사님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이들은 진심으로 고인이 신의 손길을 받기를 바란다(p. 38).
죽음은 우리의 생활을 잠깐 멈추게 만든다. 그렇다고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아무것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다만 우리에게 순간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진심으로 느끼고, 여기에 귀를 기울이라고 한다. 크로노스를 잊고 카이로스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한다. 나는 홀로 차에 앉아 눈물을 흘리면서 드디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실감하며 그 순간을 맞았다. 할아버지를 기억하면서, 앞으로 얼마나 보고 그리울지를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 이 약해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 강해졌다. 가끔은 삶을 잠깐 멈춰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마음으로 죽음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충분히 받아들이게 된 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애도하는 안식의 시간은 나 자신을 발견하는 방법이기도 하다(p. 60).
쉽게 잊히고 무시되며, 매우 단출한 논리이다. 죽음을 많이 접할수록, 두려움은 줄어든다. 망자에게 가까이 갈수록, 죽음을 더 쉽게 수용한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살펴보면 사람들은 죽음과 아주 가까웠다. 현대에는 죽음과 관련된 부정적인 인식이 너무 강해서 초월하기가 어렵다(p. 95).
사실 염은 단순히 체액을 바꾸는 작업이다. 즉 고인의 몸에서 피를 완전히 뺀 다음에 방부 처리가 된 용액으로 다시(p. 152) 채우는 것이다. 손가락을 자신의 목 오른쪽에 가만히 가져다 대보자. 심장 박동에 맞추어 경동맥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그 동맥을 열어야 한다. 그래서 목을 절개하고, 경동맥을 찾을 때까지 근육과 조직 사이를 훑는다(하지만 다른 동맥을 사용하는 장의사들도 있다). 경동맥 옆에는 경정맥이 있다. 염을 할 때는 이 두 가지 혈관을 모두 들어 올려서 분리해 묶고, 각 혈관에 작은 구멍을 뚫는다. 이 과정을 굳이 비유하자면 큰 볼 속에 스파게티 면을 담고 위에 토마토소스를 뿌려서 끈끈해진 면발 바닥 어딘가에 있는 펜네 스파게티면 하나를 찾아내는 것과 비슷하다. 방부 처리를 위한 염 작업에 사용되는 기계는 매우 실용적이다. 영국 드라마 〈닥터 후(Dr. Who)〉에 나오는 달렉(Dalck) 로봇처럼 생긴 이 기계의 이름은 포티 보이(Porti Boy)인데, 다른 재주라거나 스타일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 위쪽은 용액을 담는 용기로 되어 있고, 밑쪽엔 버튼이 달려 있다. 버튼을 돌리면 염을 위한 혼합액이 경동맥과 연결되어 있는 고무 튜브를 통해서 삽입된다. 포티 보이의 압력이 용액을 혈관으로 밀어 넣으면 경정맥으로 피가 빠져나온다. 도자기로 만든 염을 위한 테이블에 진홍색 피가 흘러내리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진해졌다가 연해지기를 반복하면서 피가 넘실(p. 153)대는 모습은 맑은 가을날에 해가 지는 일몰을 저속으로 촬영한 것처럼 보인다. 나는 염 작업이 부담스럽지만, 훌륭하게 마무리된 염 작업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가족들에게 작은 위안을 주기도 한다(p. 154).
나는 늘 죽음 가까이에 있고, 불임으로 고통받았다. 또 예레미야에 대한 줄리아의 사랑과 용기도 보았다. 그래서 이 아이의 생명은 내게 너무나 소중하다. 모든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우리가 함께하는 매 순간, 아이와의 레슬링 한판, 함께 읽는 책 한 권, 함께하는 한 끼의 식사, 아이가 내게 하는 질문, 아이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는 순간이 너무나 감사하다. 심지어 어려운 시간에도 감사하며, 못된 행동에도 감사한다(아이만 못된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 나 역시 못되게 행동할 때가 있다). 아이가 성질을 부릴 때, 투정이 도가 지나칠 때도 감사한다. 삶이 얼마나 짧은지를 알고 있어서 나는 늘 현실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마음은 피곤할 때, 퉁명스러워질 때, 인내심이 부족해질 때도 도움이 된다. 나는 절대 좋은 부모는 아니다. 하지만 죽음 가까이에 있고, 죽음을 알고 있어서 더 나은 부모가 된다. 아마도 삶의 고통과 상실을 알지 못(p. 246)했다면, 지금처럼 감사하고, 지금처럼 인내심을 가지고, 지금처럼 현실에 충실하고, 지금처럼 예레미야를 사랑할 수 없었을 것 같다. 모든 면에서 나는 죽음이 가진 선함의 덕을 본 사람이다(p. 247).
어느 장의사의 열 가지 고백
우리 집은 대대로 죽음을 다루는 직업을 가졌지만, 10년 넘게 나는 가업을 잇지 않으려고 했다. 매일 나는 슬픔과 고통, 눈물, 콧물, 그리고 그보다 덜 매력적인 체액 주변에서 살고 있다. 나는 장례식장에 가장 먼저 가야 하고, 장례식이나 묘지를 가장 마지막으로 떠나는 사람이다. 가장 고통스러운 날을 누구보다 먼저 시작하고, 맨 마지막으로 마무리한다. 어떻게 보면 내가 선택한 건 아니다.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결국 이 일을 갖게 된 데 감사한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의미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의미가 장의사라는 직업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누구나 죽음의 의미 앞에서는 마음을 연다고 믿는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삶의(p. 249) 한계를 슬퍼하고,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이 두 가지는 오히려 우리를 살아 숨 쉬게 하며, 자신에게 더 진실하고, 우리 주변에 더 최선을 다하도록 만들어준다. 이 이례적인 일을 하면 할수록 죽음이 가진 의미 열 가지를 배우고 믿게 되었다. 이 책의 독자들이 기억했으면 하는 것이기도 하다. 독자들이 이 열 가지 의미를 되새기며, 죽음을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라며, 삶이 공포가 아닌 경건함으로 충만하기를 바란다.
▲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죽음이 전혀 좋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인간의 진화가 만들어낸 유산이며, 각종 뉴스를 통해 일반화된 인식이다. 사람들이 의료 기관과 전문적인 장의 시설에서 죽은 고인과 그들의 죽어가는 모습을 숨기면서 더 악화되었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죽음은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분이다. 죽음을 건강하게 이해하게 될 때,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 죽음은 길들일 수 없다. 죽음은 우리의 마음을 열 수도 있고, 마음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 죽음으로 마음을(p. 250) 연 사람들은 온정·이해·용서, 그 외의 여러 가지를 위한 여지를 찾는다. 마음을 열도록 노력해보자.
▲ 죽음은 무시할 수 없다. 과거로 치부할 수도 없다. 죽음이 만드는 특별한 공간은 시간을 멈추고,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죽음은 사람들에게 잠깐의 휴식기를 만들어준다. 죽음의 안식일을 갖게 하고, 삶을 반추하고, 생각하고, 돌아보게 한다.
▲ 천국이나 사후 세계만 중요하게 생각하면 이곳에서의 가치나 죽음의 가치를 축소하고, 무시하게 된다. 이곳 지상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면, 이곳의 장점과 죽음이 가진 장점도 찾게 된다. 죽음은 지금 이곳에서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보여주고, 감사하게 만든다.
▲ 죽음은 목소리가 없다. 죽음의 침묵을 받아들이면, 죽음도 수용할 수 있게 된다. 침묵을 받아들이자. 침묵을 채워야 할 필요는 없다
▲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죽음을 부끄럽게 여기(p. 251)도록 만든다. 긍정적인 인식은 언젠가는 죽게 된다는 사실 앞에서 진정한 나 자신을 발견하도록 도움을 준다. 배우고, 성장하고, 극복하면서, 타인과 나 자신에게 인내심을 갖도록 하자.
▲ 가끔 죽음과 죽어가는 과정에서의 경험은 지상에서 천국을 경험하게 한다. 죽음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공동체는 에덴동산과 같은 순간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공동체에 의지하고, 그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 죽음은 거대한 우주와 같아서,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서로 간의 차이를 넘어서, 함께 모일 기회를 제공한다. 죽음이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타인에 대한 사랑을 찾아야 한다.
▲ 능동적으로 고인을 기억하다 보면 슬픔에는 끝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또 삶 속에 사랑했던 고인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열심히 기억하자. 고인이 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절대 떠나지 않는다는(p. 252) 것을 기억하자.
▲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제대로 된 삶을 살기 위한 중요한 요소이다. 죽음을 수용하고, 죽음을 더 가까이하고, 죽음을 제대로 바라볼 때, 삶에 더 충실할 수 있다(p. 2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