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8(토)
 
  • 책 읽는 책-박민영 저자(글), 지식의숲 ·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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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독서법에 대한 책이다. 20년 전에 출판되어 이제는 절판되었다. 읽던 책에서 소개되어 대출해서 읽었다. 독서에 관심이 많다보니 종종 독서 방법에 대한 책을 찾아 읽는다. 여러 가지로 유익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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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 사회에서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글을 읽을 줄 알고 교육 수준도 높은데,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문맹은 없어졌으나 책맹은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글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장벽 못지 않게 책을 읽는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장벽 역시 높다. 다만 그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곧잘 무시하고 있을 뿐이다(p. 35).

 

어느 가난한 시인이 있었다. 시인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서 구걸하는 거지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한쪽 다리를 저는 절름발이였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거지에게 적선을 하고 싶었지만, 가진 것이 없어서 그냥 지나쳐야 했던 시인은 매우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벗들과 더불어 술 한잔을 걸친 시인은 귀갓길에 그 거지를 보았다. 술도 한잔 걸쳤겠다, 마음이 들뜬 시인은 그날만은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주머니를 뒤(p. 59)져 보았으나, 역시 동전 한 닢 없었다. 그나마 가지고 있던 몇 푼도 모두 술값으로 써 버린 터였다. 거지에게 줄 것을 찾던 시인은 가지고 있던 책 한 권을 주었다. 자신이 읽고 있던 인생론이었다.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여기를 지나칠 때마다 늘 적선을 하고 싶었는데, 이 몸도 가진 것이 없어 줄 것이 없구료. 내 가진 것은 이것밖에 없으니, 이거라도 받으시오." 거지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책을 받았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먹지도 못하는 이 따위 책을 어디에 쓴단 말인가.' 시인은 거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책을 준 뒤 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한 달 후, 늘 같은 자리에서 구걸하던 거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책을 조금씩 읽어 나가던 거지가 새로운 삶의 용기를 얻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것이다. 거지가 구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몸의 장애 때문이라기보다는 마음의 장애 때문이었고, 그는 한 권의 책을 통해 그 마음의 장애를 극복할 용기를 얻게 되었다(p. 60).

 

그러면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거기에는 개인적인 이유와 사회적인 이유가 있다. 우선 개인적인 이유를 살펴보자면, 책은 개인이 경험의 테두리 안에서는 얻을 수 없는 지식과 지혜를 제공한다. 인간은 고작해야 평균 70여 년을 산다. 인간의 경험이란 시간적으로 짧을 뿐 아니라 공간적으로도 매우 협소하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한계란 너무도 분명한(p. 61) 것이어서 의식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사람은 대부분 스스로 체험한 인생의 경험이 세계의 전부인 줄 알고 거기에서 지혜를 얻는다. 그러나 독서가는 책을 통해 간접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세계와 무한대로 만난다. 니체는 독서가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나를 다른 사람의 학문의 혼 속을 거닐게 한다."고 했다. 독서가는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알게 되어 개인의 특수한 경험들이 보편적인 범주 안에서 새롭게 의미를 획득한다. 독서는 개인의 경험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지혜를 제공한다. 그 지혜를 얻은 사람은 인생에서 어떤 난관에 부딪히더라도 그것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으며, 인생을 의미있게 살 수 있다. 인간의 생은 짧고 그런 만큼 인간은 허무와 공허감에 빠지기 쉽다. 그런 인생을 의미 있게 산다는 것은 매우 소중한 일이다. 또한 책은 모든 영감과 상상력의 가장 기본적인 원천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영감과 상상력이 샘솟지 않는다. 설사 타고난 상상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금세 바닥난다. 책을 읽지 않으면 자신이 보고 듣는 것만을 바탕으로 창의성을 발휘할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p. 62)문이다.

다음으로 책을 읽어야 하는 사회적인 이유는, 세계가 이미 지적인 영역을 통해 인식되고 있고 그 지적 패러다임이 현실적인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효율적인 설명을 위해 '한국'을 예로 들어 보자. 현재 우리가 실감하는 한국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영토와 사람과 통치자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은 단일 민족이라는 혈통주의와 피억압의 역사를 바탕으로 해서 미래에 대한 포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한국인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으며, 그 의식이 한국인을 움직인다. 그런데 '혈통주의'와 '역사의식'은 머릿속에서 지적으로 작동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실체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혈통주의'와 '역사의식'이 사실과 부합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아니라, 이러한 관념이 현실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실이 존재하고 그를 바탕으로 관념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관념이 있고 그를 바탕으로 현실이 인식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인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문명인에게 동일하게 나타난다. 인간이 정신적 동물이고, 이미 수많은 정신적 재부들이 현실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이상, 백지와 같은 순수한(p. 63) 정신 세계는 존재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공교육에서 배우는 내용과 상식의 이름으로 개인에게 수용되는 내용 자체가 이미 하나의 이데올로기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정신적으로 오염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지가 아니라 지성인 것이다. 책을 읽지 않으면 정치적으로 상업적으로 이용당하기 쉽다. 그런 사람들이 많을 때 사회는 '우중 사회'가 된다. 우중 사회 속의 개인과 집단은 언제라도 사회적 재앙을 불러 일으키는 데 동참할 수 있다(p. 64).

 

다시 읽고 싶은 책이 얼마나 되는지 보라

누구든지 책을 독파하지는 못한다. 어느 대목에 한참 머물며 음미했어도 시간이 지나 다시 그 부분을 펴 보면 당신의 눈길이 머물렀던 그 문장의 새로움에 깜짝 놀랄 때가 있지 않은가.- 발터 벤야민

 

나의 독서 편력에도 슬럼프가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나는 지적 슬럼프에 빠져 도무지 더 이상 책을 읽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읽어도 더 진전 되는 느낌도 없었다. 습관적으로 책을 들기는 했지만 내 안에서 어떠한 지적 욕구도 발견할 수 없었다. 한동안 의욕 없이 지내던 나는 마침내 어떻게든 이 슬럼프를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지적 모색이 필요했다. 어느 날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책들을 모두 정리했다. 당(p. 84)시 나는 약 1,000권의 책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절반 가량의 책들을 내다 버렸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껍질을 깨지 않고서는 새로운 지적 모색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버릴 책을 골라내는 기준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나의 정신을 박제화시키고 있다고 판단되는 책과 또 하나는 다시 읽을 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책들이었다. 전자에는 소위 운 동권 사회과학서적들이 포함되었고, 후자에는 구입할 당시에는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 담론의 유효기간이 지난 책들이 포함되었다. 그렇게 책을 정리하고 보니, 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책들이 남게 되었다. 인간과 세계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구하는 책들이었다. 결국 남는 책은 고전이었다. 그때 나는 고전의 위력을 새삼스럽게 실감했다. 왜 고전이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하는지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책을 버렸어야 했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당시 나로서는 매우 절박한 문제였으며 그런 과정이 결국은 나의 지적 슬럼프를 극복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p. 85). 지적으로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책장에서 재독하고 싶은 책이 얼마나 되는지 세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재독하고 싶은 책이 전체에서 몇 퍼센트를 차지하는지 알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는 그것이 자신의 독서 수준을 점검하는 좋은 기준이 된다고 생각한다. 재독하고 싶은 책을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좋은 독서 습관을 가지고 있으며 수준 높은 독서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다. 그러나 그런 책이 드물다면 독서 경향을 바꿀 필요가 있다. 반드시 고전을 읽으라고 권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맞는 '양서'를 얼마나 읽어 왔는지 스스로 평가해 보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평가를 바탕으로 다음에 책을 살 때는 조금 더 신중하게 선택하길 바란다. '내가 과연 이 책을 나중에 다시 읽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인가?' 라고 자문하고 책을 고른다면 한층 높은 안목으로 후회 없는 독서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재독하고 싶은 책이 얼마나 되는지 스스로 점검하면 자신이 왜 열정적인 독서가가 되지 못하는지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 번 읽고 버릴 책들만 읽는 사람이 고급 독자가 되지 못하는 것이나, 얼마 못 가서 책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는(p. 86)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반대로 다시 읽고 싶은 책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지적 성취가 있었다는 것이며, 지적 성취가 있는 만큼 독서에 대한 열의가 높아지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일 것이다(p. 87).

 

독서는 기본적으로 저자와의 대화이다. 저자의 관심사와(p. 132) 독자의 관심사가 다르면 그 대화가 재미있을 리 없고, 억지로 읽는다고 해서 머릿속에 들어올 리도 없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 그것은 소위 지성인들이 추천해 주는 책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좋은 책을 고르는 안목이 부족한 독자들은 학자연하는 사람들이 권하는 책에 누구나 한번쯤은 귀를 기울일 때가 있다. '서울대가 추천하는 책 100선' 이나 '한국의 지성인들이 추천하는 책 100선' 같은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독서 목록에는 주로 고전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권장 도서가 초보 독자들에게는 약이 아니라 심지어 독이 되는 경우도 있다. 눈높이에도 맞지 않고 관심도 없는 주제의 책을 억지로 읽으려 하면 책에 흥미가 생기기는커녕 '역시 나에게 책은 무리인가 봐.' 하는 생각이 들면서 오히려 책을 멀리하게 된다. 고전이 좋은 책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p. 133).

 

독서의 목적은 자신의 생각을 발견하는 데 있다

하나의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단어를 사전적 의미로만 읽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텍스트에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 낸다.-멀린 C. 위트록

 

"당신은 책을 왜 읽습니까?" 하고 묻는다면 많은 사람이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서 책을 읽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배우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독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목적만 충족시키고자 한다면 학원 같은 곳에 가는 것이 더 나은 경우도 많다. 배움은 독서의 기능 중 하나이지 전부는 아니다. 독자들이 인식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독서 행위는 보다 포괄적인 만족감을 준다. 독서는 지식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감동을 주(p. 225)고, 감동은 정서적 공감과 이성적 깨달음에서 비롯된다. 독자들은 책을 읽고 정서적 공감을 할 때 울고 웃는다. 토마스 하디가 쓴 『테스」를 읽을 때, 순수하고 착한 심성을 지닌 테스가 오히려 그 때문에 고통받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안타까움과 슬픔에 젖게 된다. 반면 성철 스님의 다음과 같은 글귀를 읽을 때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교도소에서 살아 가는 거룩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술집에서 웃음을 파는 엄숙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부 처님들, 오늘은 당신네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꽃밭에서 활짝 웃는 아름다운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 생신이니 축하합니다....교회에서 찬송하는 부처님들, 법당에서 염불하는 청수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넓고 넓은 들판에서 흙을 파는 부처님들, 우렁찬 공장에서 땀 흘리는 부처님들, 자욱한 먼지 속을 오고 가는 부처님들, 고요한 교실에서 공부 하는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이런 글을 읽은 우리는 종교와 귀천과 인간과 자연을 뛰어(p. 226) 넘은 정신 세계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 정신 세계는 세속적인 차원을 넘어선 것으로, 세상의 모든 것이 조화롭게 융화 될 수 있는 화엄의 세계이자 선과 악의 경계도 사라진 세계이다. 그러나 이러한 글은 냉철한 깨달음만 주는 것이 아니라 스님의 따뜻한 마음도 함께 읽혀져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p.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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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363】 왜 그리고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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