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의인들 42주기 합동 추모식'이 5월 24일 오전 11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있었다. 이날 추모식은 (사)안중근평화연구원,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이 후원하고 10.26 재평가와 김재규장군 명예회복추진위원회가 추최했다.
추모식은 윤원일씨의 사회로 국민의례 후 추모사를 했다.
안동일 홍익법무법인 고문변호사는 "10.26에 대한 재평가와 김재규장군에 대한 재평가가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언젠가 재평가와 명예회복이 이루어지리라 기대한다.
김재규장군은 '제가 이 세상 3심 재판에서는 패했지만 하늘의 4심 재판에서는 영광스럽게 승리할 것이다'라고 했다. 제가 당시 1심에서 국선변호를 했고 변호인단이 7명이었는데 현재 모두 세상을 떠나셔서 나 혼자 남았다. 생전 '우리가 다 죽으면 누가 10.26을 재평가 해줄 것인가?' 서로 말했었다.
두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다. 첫번째는,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10.26에 대해 왜곡된 평가를 갖고 있다. 두번째는, 김재규장군이 가졌던 혁명의 정신이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 10.26은 차지철에 대한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김재규장군은 혁명의 이유를 설명했다. 첫째,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영구집권인 유신을 막아야한다. 둘째, 부마사태는 시민의 요구였다. 이것이 확산되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쏜 것이다. 셋째, 적화야욕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넷째,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기 위해서다. 다섯번째, 국제적으로 미아가 되지 않고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서이다.
많은 사람들이 제게 '아직도 김재규 변호사냐?'하며 힐난하지만 나는 김재규장군의 뜻이 바르게 실현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추모사했다.
이부영 전국회의원은 "1960년대 당시 세계에 군사 쿠테타가 많이 일어났다. 이후 베트남전으로 인해 미국은 딜레마에 빠졌다. 1980년대는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시대였고 1980년대 후반은 탈냉전 시대였다.
1979년 당시 박정희는 자기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대량살상도 불사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김재규장군은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박정희를 제거한 것이다. 하지만 신군부가 권력을 차지했다.
탈냉전의 방아쇠를 당긴 것이 10.26이다. 브라질은 사법독재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김재규장군이 죽음으로 말한 자유민주주의가 과연 윤석열정부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생각해야한다. 다시 새롭게 출발해야한다"고 추모사했다.
신대균 민청학련계승사업회 공동대표가 "김재규장군은 민주주의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셨기에 민주화를 위해 10.26 혁명을 이룬 것이다. 아직도 이에 대해 제대로 평가를 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역사평가해석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하고, 최원녕 3.1민회 감사가 "저는 10.26 당시 고등학생이라 이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후 대학에 들어가서도 여전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김재규장군을 통해 이 땅에 박정희독재가 멈추고 민주주의가 시작됐음을 알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김재규장군에 대한 평가는 나뉘고 있다. 앞으로 김재규장군과 함께한 5분들에 대한 역사적인 재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추모사하고, 표명렬 전 육군정훈감은 "김재규장군에 대해 좋게 평가하고 박정희를 부끄러운 군인이라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비난했다. 5.16 때 나는 육사 4학년생이었다. 박흥주는 나와 육사 18기 동기생이다. 그와 나는 육사 명단에서 제명됐다. 이 행사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김재규장군의 뜻이 실현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추모사하고, 서지영 평화통일화해연구원 이사장은 "육군 소위 때 김일성에 대한 발언으로 간첩 신고를 당해 조사를 받았는데 당시 김재규 보안사령관이 불기소처리를 해줬다. 이후 군생활을 잘 마무리 하고 제대할 수 있었다"고 말한 후 안충석 사제단 신부는 "김재규장군을 의인으로 추모한다. 그런데 현정권이 들어선 것에 대해 너무나 안타깝게 생각한다. 다시 광화문 촛불정신으로 살아야한다. 절망하지 않고 다시 희망을 가져야한다. 김재규장군의 뜻을 따라 이 나라를 바로 세우자"고 말했다.
유가족 대표들이 인사하고, 함세웅 신부가 " 김재규장군의 뜻이 이 세상에 실현되도록 노력해야한다. 역사가 정립되기 위해서는 100-150년의 역사가 걸린다. 윤정부와 태극기 부대를 십자가로 여기고 5년간 잘 어깨에 메고 감으로 이후 승리 부활의 축복을 누리자"고 말했다.
이어 추모곡을 부르고 김재규장군이 처형된 형장으로 가 추모한 후 차로 이동해 경기도 광주시 오포면 삼성개발공원 묘지에 안장된 김재규장군 묘를 찾아 추모했다.







묘비를 보면 '의사'와 '장군'글씨가 반대자들에 의해 훼손된채 세워져있다. 이는 처형된지 42년이 되었지만 아직 김재규장군에 대한 재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현실을 반영하는 듯하다. 추모식 참석자들은 추후 흩어져 있는 6명의 묘가 한 곳에 모여 추모공원이 만들어지는 그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