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8(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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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이자 민족의 지도자인 장준하(張俊河)선생 47주기 추모식이 8월 17일 오전 11시 파주시에 소재한 장준하공원에서 있었다. 유가족 및 관계자와 추모객 등 100여명의 인원이 모여 고인의 뜻을 기렸다.

 

장준하 선생은 1918년 8월 27일 일제 강점기 조선 평안북도 의군주에서 출생해 1975년 8월 17일 대한민국 경기도 포천에서 의문사했다. 장 선생은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정치가, 종교인, 언론인, 사회운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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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선생의 본관은 안동으로, 일제 강점기에 교육 활동을 하였고, 일본군에 학도병으로 자원입대해 1944년 1월 제65사단 7991부대에 배치되었으나 그해 7월 장쑤성 쉬저우에서 탈출해 중국 중앙군관학교에서 훈련 받고 국민혁명군 준위가 됐다. 1945년 중국 쓰촨성 충칭의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찾아가 1945년 2월부터 한국광복군 소위로 복무했다. 한국광복군으로 재직 중 미국 CIA의 전신인 전략첩보대(OSS)에서 활동하면서 3개월간 국내 진공작전에 가담하여, 국내 밀파 특수공작원으로 대기하던 중 8.15 광복을 맞이했다. 1945년 11월 임정 귀국 제1진으로 귀국, 이후 김구의 비서로 있다가 이범석의 민족청년단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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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제1공화국에서 공무원에 채용되어 서기관으로 임용되었고, 1950년 문교부 국민정신계몽 담당관, 1952년 문교부 국민사상연구원 기획과장, 서무과장, 사무국장 등을 지내고 《사상계》를 창간하였으며, 1956년 동인문학상을 제정하였다. 《사상계》는 당시 자유당 정권을 규탄하며 4·19 혁명의 단초가 되었으며, 혁명 이후 제2공화국에서 장면 내각의 문교부 대학교육심의회 의원, 국토건설단 기획부장, 국토건설단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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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쿠데타 이후 한일회담 반대운동, 베트남 전쟁 파병반대운동에 가담했다. 6대 대선에서 윤보선의 지지 유세 중 박정희의 친일파, 남로당 경력을 문제 삼았다가 선거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렀고, 이후 신민당과 윤보선과 함께 국민당에서 활동했다. 1967년부터는 7대 국회의원을 지내 국방위에서 활동했다. 1974년 대통령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5년 선고 받았으나 2013년 1월 2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1975년 박정희 정권에 대항하는 모종의 거사를 준비 도중, 8월 17일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의 최후를 맞았다.(위키백과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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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선생, 47주기 추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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